최근 수정 시각 : 2019-07-01 00:20:38

차이나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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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패루.png
차이나 타운의 상징인 패루(牌樓). 인천 차이나타운.[1]
한국어 차이나 타운, 화교촌
중국어 唐人街, 華埠, 中國城
일본어 中華街
영어 China Town
1. 개요2. 역사3. 대한민국의 차이나타운
3.1. 서울특별시 차이나타운3.2. 인천광역시 차이나타운3.3. 부산광역시 차이나타운3.4. 대구광역시 차이나타운3.5. 무산, 사라진 차이나 타운3.6. 조성 예정 지역
4. 해외의 차이나타운5. 주관적 의견

1. 개요

차이나타운은 중국(대만, 홍콩, 마카오 포함) 이외의 나라에서 해외 거주 중국인(화교)들이 집단적으로 모여서 사는 곳을 일컫는 말이다. 중국어에서는 주로 당인가(唐人街)라 부른다. 여기서 당인(唐人)은 물론 중국 당나라 사람이 아닌 현대 중국인이다. '고려'나 '조선'이 'Korea'의 의미로 현대 남북한과 해외에 있는 교포의 범칭으로 쓰이는 것과 똑같다. 그래서 2번 항목의 영화 역시 중국어 제목이 당인가다. 한편 일본에서는 중화가(中華街)라고 부르는데 중국어권에서 '중화가'라 하면 전 세계의 차이나 타운이 아닌 요코하마 등 일본 속의 차이나타운만을 가리켜 쓰는 편이다. 영어권에서는 물론 차이나 타운(China Town)이며 한국은 화교의 이주 역사도 짧은데다 존재감도 없어서 영어인 차이나 타운을 그대로 쓴다. 그리고 한자로는 中華街를 쓴다...

어디에든 있다. 아프리카의 남아공이나 모로코에도 작게나마 존재한다.[2]

2. 역사

최초의 시작은 북송대 해외무역을 하던 무역상들의 중간 보급소였다고 하며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은 청나라 말기에 노동자 계통의 중국인들이 해외에서 거주하는 일종의 수용소적인 장소이다. 해외에선 화교들의 영향력이 강해지고 부를 축적하여 경제적인 실권자가 되자 화교들의 거점이 되었다.

서구권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차이나 타운은 미국샌프란시스코 차이나 타운이며 아시아에선 일본의 요코하마 차이나 타운, 고베 차이나 타운[3], 나가사키 차이나타운 그리고 싱가포르의 차이나타운이 손꼽힌다. 물론 청결도는 싱가포르 쪽이 넘사벽.

2019년 통계를 기준으로 전세계에 현존하는 화교의 수는 약 5천만 명으로 집계되었으며 동남아시아의 경우 그 나라 경제권을 좌지우지 할 정도로 막강한 집단이다. 다만 그만큼 원주민들의 화교에 대한 적대감도 매우 높다.[4] 실제로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에서는 대규모 반화교 폭동이 여러차례 일어나기도 했다. 베트남에서는 1975년 공산화 이후 화교들을 해외로 대거 추방하여 1979년 중월전쟁의 빌미가 되기도 했다. 이런 여파로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의 화교는 오로지 경제활동만 할 수 있고 정치계나 사법기관, 권력기관 등으로의 진출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태국이나 필리핀의 경우에도 정체성을 민족이 아닌 거주지역으로 두고 현지식 이름과 언어를 1순위로 사용할정도로 동화되었고 그래서 차이나타운이 없거나 규모가 크지않다.

한국에서는 조선족 거주지가 주로 차이나타운으로 불린다. 화교의 경우 법적으로 여러 불이익을 받으면서 대만으로 귀국하거나 북미호주, 싱가포르 등으로 이민을 택해 나가 버리거나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해 귀화해버렸기 때문에 현재 중화민국 국적 화교는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자기가 말 안 하면 화교인줄 모르는 경우도 있다.[5] 양친 중 한 명이 화교인 하희라이기용 같은 유명인사들도 많다. 그래서 한국사회에 동화된 화교 대신 중국 국적으로 엄연한 외국인인 조선족들이 타국 화교 포지션인 셈이다. 물론 조선족은 화교와 달리 자신을 철저히 중화인민공화국 국민으로 인식하며 유달리 마찰도 잦다. 특히 이 한국화교와 조선족의 마찰도 장난 아니다. 그래서 화교들의 경우 조선족을 싫어하는 경향이 많다.

조선족 거주지는 수도권의 일명 조선족 벨트인 서울특별시 구로구금천구경기도 안양시, 안산시 등에 대규모로 형성되어 있으며 간체자로 된 한자 간판과 한글 간판이 섞여 있고 연변 사투리와 표준중국어를 흔히 듣는다.

하지만 관광지화된 인천 차이나타운은 정확히는 화교,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중화요리 식당과 상점들이 전부로 조선족들의 집단 거주지가 아니다. 인천 차이나타운 주변은 차이나타운 구역을 벗어나면 바로 일반적인 한국의 주거구역과 관광지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조선족들이 많다는 인식은 배편이 있는 국제여객터미널로 향하는 조선족들로 인한 것이고, 인천 차이나타운 인근에는 주거지역 자체가 규모가 작다.

3. 대한민국의 차이나타운

한국에서는 19세기 말 강화도 조약을 시작으로 주요 항구가 개항하며 인천부산청나라 조계지에 중국인들이 노동자 신분으로 대량으로 유입되어 차이나타운이 최초로 형성되었다. 하지만 정부규모로 화교가 경제적인 실권을 쥐는 안보적인 문제로 지속적으로 견제했으며 특히 1961년 외국인토지소유금지법으로 화교들의 부동산을 압수하고 소유규모를 제한 하였으며 1963년 화폐개혁[6]을 강행, 화교들이 모아온 재산을 죄다 몰수했다. 그 이후에도 심지어 중국집 쌀밥 금지령 온갖 종류의 화교에 대한 규제는 계속되었다[7].

특히 한국에서는 일제시대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서울 소공동 화교촌을 중심으로 탄압에 가까운 정책을 통해 차이나타운을 와해시키다시피했는데, 일부러 중국을 크게 무찌른 민족 영웅의 이름인 을지문덕에서 따와서 을지로라 지명을 개칭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일제강점기 초기에 일제 당국은 하세가와쵸(현재의 소공로)를 새로 뚫었는데 이것은 용산으로의 군사이동을 용이하게 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실제로 화교상권을 둘로 쩍 갈라버리는 효과도 있었다. 또한 서울시청 앞 플라자호텔 일대는 1970년대초 재개발이 되면서 화교회관이 들어오기로 되어 있었지만 이런저런 어른의 사정 덕택에 이루어지지 못히고, 애물단지가 된 부지는 한화그룹이 인수하여 현재의 한화타운(플라자호텔)이 되었다. [8] 결과적으로는 서울시의 보상대책을 한국 정부가 부작위를 통해 이행하지 않았고, 나아가 화교 공동체가 박살난 꼴이 되었다. 이 때문에 당시 국무총리와 서울시 당국자가 동남아 순방 당시 거의 사죄방문 성격으로 타이페이에 가서 기자회견을 해야 했다고 한다.

제노포비아, 6.25 전쟁 후 적대적인 상황[9] 등등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지만, 적어도 경제적인 면에서는 효과를 본 듯 하기도 하고 말이 많다. 물론 영주권시민권에 차별을 두는건 주권 국가의 고유 권리이기도하다. 다만 이후 토지 제한을 개선한 걸 보면 당시에 규제를 뒀던 건 사실이고 한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50년 이상 영주권을 주지 않고 장기 거주 외국인[10]으로 화교들을 두었다가 1997년 외환 위기 등을 겪으면서 해외 투자자 문제가 생기자 개선한것도 사실이듯 충분히 제노포비아였다.

한편 그 반론 겸 옹호론도 있는데, 국부천대 이후 화교들은 (자의든 타의든) 중화민국(대만) 국적이었다. 과거의 한국은 제대로 된 영주권이라는 개념이 없었으므로 화교들의 지위는 영주권자도 아니고 그냥 장기거주 외국인이었다는 것. 물론 대만으로 귀국할 사람은 1980년대 이후 거의 귀국했고 나머지는 한국 국적으로 귀화했으며 특히 화교중학에는 군복 입은 남자 졸업생들이 입대 후 휴가 나와 인사 차 방문하는 경우도 흔했고 지금도 흔하다. 군복무까지 한 한국 화교를 한국인으로 인정 안할 이유도 없다.

이제는 2003년 영주권자 지방선거 투표권, 2007년 외국인공무원 임용으로 화교들이 정치에 끌어들인다던지 안보적 위협이라던지 외국인전형으로 화교가 면접으로만 대학에 진학하는, 영주권자격으로 유지함으로서 한국군대도 안가면서 각종 한국인이상의 특혜를 받아간다는등 한국인이 역차별받는다는 주장도 있다만 말이 안 된다. 한국 화교들의 99%는 현재 대만 귀국자를 제외하고는 거의 한국으로 귀화했고, 한국인과 혼인해서 동화되었다. 행여나 주변에 화교가 있다면 이런 말은 실례가 되니 하지 말자. 어쨌든 현재는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이며 특히 남자들은 군복무도 했다.

이런저런 논란이 있으니 자세히는 화교 항목 참조. 결과적으로 한국에선 화교를 보기가 힘들다.[11] 2010년 이후로 신화교들이 대거 들어온 현재의 상황에서는 화교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중국인들 한국 거주인구수와 한국내 중국커뮤니티 크기를 보면 결고 작다고 할 수 없다.

대한민국부산광역시에 있는 차이나 타운은 이미 러시아 사람들과 조선족들의 환락가가 된 지 오래다. 한국 정부의 대대적인 화교 탄압에 러시아인이 거주하는 유흥업소조선족이 점령한 차이나 타운이 겹치는 바람에 가보면 이게 차이나 타운인지 환락가인지 헷갈린다. 인천의 경우에는 규모가 크고 관광지로 유명한 편이지만, 부산은 규모도 작은데다 해만 지면 러시아인 포주가 "총각 놀다가~"하고 잡아끈다. 그래도 낮에 가면 그나마 안전하다. 주변에 꽤 커다란 중국 음식점들도 몇개 생기고 흑형이 야한 문구를 새긴 티셔츠를 파는 등 말만 차이나 타운이고 거의 국제 인종 박람회 비스무리하게 되어간다. 2010년부터는 차이나 타운 축제를 열고 있다.

한국 차이나타운은 한국화교들이 귀화 후 동화되어 버려 한국 원주민과 섞여 버리는 통에 조선족이 점령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인천 차이나타운만 가봐도 알 수 있듯 가게 주인들은 화교거나 한국인인 경우가 대다수다. 이전 서술은 한국의 화교들은 전부 동화되었거나 사라졌다는 주장이나 여전히 중국어를 사용하고 중화민국 국적을 유지하는 화교들도 얼마든지 많다. 많은 일반인들은 화교와 조선족의 억양 차이를 잘 인지하지 못하거나 신경쓰지 않으니 구분하기도 어렵다.

3.1. 서울특별시 차이나타운

서울 마포구 연남동과 서대문구 연희동 근처에 화교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가 있으며 이 지역의 중국음식점 거리는 최근 잡지나 인터넷에 여러번 오르내리며 새로운 명소로 자리잡았다.[12]

또한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한국으로 넘어온 많은 조선족과 본토 출신 중국인들이[13] 영등포구 대림동과 구로구 구로동 일대에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음식점이나 가게가 들어서고, 이 일대의 분위기가 연변과 비슷해졌다. 조선족한국계 혈통이지만 엄연히 중국 국적을 가지고 중국문화에 동화된 외국인이기 때문에 차이나타운이라고 보면 된다. 그 규모도 상당히 커서 이 일대에는 중국어 간판이 훨씬 더 많을 정도다. 사실 차이나타운이라는 명칭을 쓰지 않을뿐 한국에서 가장 큰 중국인 밀집구역이다.[14] .2017년 현재 이제는 이 일대를 공식적으로 차이나타운이라 부르기 시작했으며, 훠궈[15], 양꼬치, 마라탕과 동북식 요리를 맛보기 위해 찾아오는 한국인들도 많다.

3.2. 인천광역시 차이나타운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차이나타운(인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3. 부산광역시 차이나타운


부산 차이나타운은 19세기 청관(청나라 조계)부터 시작하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현대에 들어 갈수록 화교의 숫자는 줄어드는 편이다. 현재 부산 내에서 텍사스거리로도 불리는데 이름대로 과거에는 미군 수요도 많았지만 지금은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구 소련권과 한중수교 이후 연변에서 넘어온 조선족으로 거의 대체되고 있다.[16] 현재의 공식명칭은 상해거리인데, 1993년 부산광역시와 중국 상하이시가 자매결연을 한 것을 기념해 지었는데 정작 이 차이나타운은 상하이 쪽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것이 함정. 대부분의 화교는 조상의 실제 출신지는 산둥 성 쪽이며 국적은 중화민국(대만)이다.

그래도 화교학교가 있는 등 여전히 화교가 있기는 하지만 러시아인, 터키인조선족, 그리고 한국인 관광객이 더 많은 분위기이다. 거기에 필리핀, 인도 사람들도 있고 몽골 요리집까지 있는 등 차이나타운이라기보다는 서울의 이태원동처럼 다소 복합적인 분위기가 나며, 중국 요리와 (구소련권에서 많이 먹는 우즈베키스탄 요리, 조지아 요리[17]들이 포함된) 러시아 요리를 파는 식당이 많다. 월병 등 중국, 대만 간식이나 식자재를 파는 상점, 흑빵, 피로슈키, 메도빅, 나폴레옹 케이크 등 러시아 빵과 파이등을 파는 러시아 빵집도 있다. 특이한 점으로 짜장면이 상술했듯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생겨난 음식이라 그런지 여기에서는 중국 음식점도 대체로 만두 전문점임을 강조하는 식당이 많고, 심지어 짜장면을 아예 팔지 않는 곳도 있다[18]. 2014년 현재 부산 차이나타운은 보도블럭, 간판 정비를 대대적으로 벌여 매우 깔끔해졌고[19] 특히 내일로 시즌 등 성수기에는 여성 관광객도 부담없이 활보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었다. 부산역이 바로 앞이니 접근성도 상당히 좋고 전통 중국, 중앙아시아 군것질을 살 수 있다던지 특색도 조금 있어 관광지 중 하나로서의 가능성은 있는 상황. 그러나 여전히 늦은 밤이 되면 분위기가 한껏 으슥해지기 때문에(...) 저녁 이후에 혼자서는 가지 않는 것이 좋으며[20], 이 곳의 식당에 간다면 저녁보단 점심때 찾도록 하자. 실제로 이 곳은 하절기(3월~10월)는 20시부터 익일 5시까지, 동절기(11월~2월)는 19시부터 익일 6시까지 내국인은 가급적이면 통행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

영화 올드보이(2003)에서 주인공 오대수(최민식)이 실컷 먹었던 그 군만두집 장성향이 여기 있다.[21] 직원에 따르면, 아직도 일본, 미국, 홍콩, 호주, 독일 등 해외 관광객들이 ‘올드보이 만두’를 찾아 일부러 오기도 한단다. 영화 내사랑 내곁에에도 나온다. 부산 차이나타운과 뒤섞여있는 러시아 거리 부분도 사생결단, 태풍 등 영화 단골 촬영지이다.

최근 차이나타운과 붙어있는 러시아 거리로 들어가는 큰 길 쪽[22]에 텍사스 스트리트라는 큰 간판이 세워졌다. 이렇게 대문은 각각 따로 만들었지만 들어가면 중국계 상점과 러시아계 상점이 섞여있는 분위기라 구역 구분의 의미는 없으나, 환락가가 꽤 밀집된 탓에 아예 청소년 통행제한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특히 야간에는 건장한 내국인 남성조차 혼자 다니기엔 꽤나 위험하니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3.4. 대구광역시 차이나타운

대구에도 있긴 있지만 일단 인천광역시, 부산광역시와 같은 패루도 없을 정도로 규모가 굉장히 작다.[23] 두 도시가 차이나타운을 관광지로 개발한 것과 달리 주류 한국 사회에 동화되어 이리저리 흩어져 살고 있기 때문이다. 또 약전골목이 같은 블록 내에 인접해 있고, 동성로가 근접해 있어서 의미가 거의 없다. 대신 차, 사문방구, 중국식 요리집은 어느 정도 있다.

다행히(?) 이쪽은 부산과 달리 홍등가가 아니다. [24] 그리고 성서공단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 중에 조선족도 많아서 간체자 간판을 가진 중국집이 그 근처에 흔하다.

차이나타운 출신의 화교들이 근처에 동성로나 로데오거리에다 가게를 차려 성공한 경우도 있다. 야끼우동(야끼짬뽕)의 원조인 중화반점[25]이나 태산만두가 유명하다. 이외에도 교동시장 등에 자리잡은 화교도 있다. 이게 차이나타운이 대구의 최대 도심지인 동성로, 중앙로, 반월당 근처인 까닭이다.

3.5. 무산, 사라진 차이나 타운

  • 과거에도 서울에도 차이나 타운이 있었다. 명동 주한중국대사관[26] 일대의 거리가 사실상 차이나 타운이었고, 현재의 회현역 근처 남대문시장 근처부터 서울시청 앞까지 화교들이 집단으로 거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 화교 탄압이 가장 강하게 행해진 곳이 바로 이곳이었기 때문에, 재개발 붐과 더불어 1970년대초에 거의 협잡에 가까운 서울시의 재개발정책 덕에 대부분의 화교들이 버티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졌다.[27] 흩어진 화교들은 이민 가거나 대만으로 되돌아 가거나 귀화해서 다른 지역으로 이사갔다. 지금은 한성화교소학교와 일부 수입서적상과 중국요리 전문점, 중국상품 전문점이 남아있어서 옛 자취를 어느정도나마 확인할 수 있다. 서울의 중앙우체국 옆 골목을 찾아가보면 된다.[28]
  • 이 외에도 창원시에도 차이나타운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의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 부림시장 일대가 바로 차이나타운이 존재했던 곳이다. 하지만 향토사 덕후들이나 알 뿐 마산 사람들도 잘 모른다. 마산의 차이나타운은 경술국치를 전후하여 존속하다 1930년대 원마산(현재의 동서동 알대)이 커지면서 조선인 상권에 흡수되었다.
  • 고양시의 경우 킨텍스 옆 시유지에 한류월드를 조성하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진짜 한국화교들이 현실적인 이유로 귀화를 택한 현재 타겟은 중화인민공화국한족 부유층으로 보인다. 물론 꼬이는 건 조선족들이다. 하지만 결국 무산되고 롯데쇼핑의 빅마켓이 들어섰다.

3.6. 조성 예정 지역

현재 제주도의 경우 중국인들 유입이 늘어나면서 차이나타운이 새로 생길 낌새에 있다. 특히 2014년 투자이민제와 중국인 무비자 정책을 확대 실시 중인데 요즘은 너무 많이 늘어서 되려 문제가 아니냐는 얘기도 있고, 제노포비아적 시각일 뿐이라는 반론도 있고, 복잡하다. 확실한 것은 2014년 들어서는 중국 자본이 제주도 곳곳에 아예 거대한 빌라촌을 건설할 정도로 제주 지역에 영향력이 커졌다는 것.

또한 각 지자체에서도 차이나타운을 건설하여 중국인 양성정책을 실시하는 중인데, 평택시의 경우 2018년 7월 기준 전세계에서 가장 큰 차이나 타운을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4. 해외의 차이나타운

코리안타운이 없는 지역(대표적으로 유럽중남미국가들)에선 한국인 동포들도 자주 찾는다. 대형 쌀포대, 한국 식품(라면 등), 또는 한국 식품을 대체하는 식품은 이런 차이나 타운에서 구할 수 있기 때문[29]. 특히 멕시코베네수엘라, 쿠바는 한인 가게는 없어도 차이나타운은 작게나마 있는 동네도 많아 아쉬운 한일 양국 사람들은 일단 화인촌으로 가는 경향이 있다. 멕시코는 주로 바하 칼리포르니아의 멕시칼리와 티후아나, 게레로 주의 아카풀코나 칠판싱고 등 청나라 쿨리들이 대륙횡단 철도 건설을 위해 들어온 태평양 연안과 멕시코시티에 차이나타운이 있다. 페루 리마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상파울루, 쿠바 아바나에도 차이나타운이 있고 여기에 광동어 라디오 방송국까지 있다.

치안이 안좋은 동네로 인식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게 우리나라만 그런게 아니고 다른 나라에서도 같은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부분 밤에 차이나타운을 돌아다니는 건 어지간하면 피하라는 분위기. 북미권 커뮤니티에서는 종종 "차이나타운에서 사는 게 안전할까요?"라는 글이 올라올때가 있으며, 실제로 몇몇 도시의 차이나타운은 치안 안좋기로 악명 높은 도시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뉴욕이나 시카고의 차이나타운 등이 있다. 특히 뉴욕 맨하튼 차이나타운은 더럽고 우범지역으로 이름나있다. 할렘가보다 더 위험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정도.[30]

북미(캐나다, 미국)의 차이나타운은 사실 화교들을 몰아넣는 게토였다. 반화교 폭동과 학살도 벌어졌다.

당연하지만 다 그런것은 아니고 미국 보스턴이나 쿠바에 있는 차이나타운 같은 경우들은 많이 긍정적으로 바뀐경우로 건전한 관광지가 됐다.

싱가포르는 70%가 중국계 싱가포리언으로 거의 나라 전체가 차이나타운이지만 관광객을 위해 인위적으로 조성했다. 텔록 아이어 스트리트와 탄종 파가 사이의 골목길을 차이나타운 내지는 중국 거리라고 한다. 이는 다민족국가인 싱가포르 특성 상 각 민족의 정체성을 화끈하게 표현하는 거리들을 인위적으로 만들어서이다.[31] 그냥 깨끗한 느낌의 중국이라는 느낌이 든다. 열대국가라는 특성 때문에 위생서의 권한이 막강하고, 화장실 물 안 내려도 벌금 물 정도로 빡세게들 단속하기 때문이다.일종의 먹자골목 식으로 되어 있다.[32]

5. 주관적 의견

여담이지만 차이나타운에서는 어지간하면 외국인들, 특히 주류를 이루는 중국인들하고는 괜한 충돌이나 마찰을 일으키지 않는 게 중요하다. 모두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특히나 그 충돌이나 마찰이 일어난 중국인중국 마피아라 불리우는 삼합회 소속 조직원이거나 혹은 자신이 상대와 충돌났을때 바로 자기가 아는 삼합회 조직원들을 불러낼수있는 반달이기라도 한다면 자신의 신변에 해로운 정도로 끝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목숨이 왔다갔다 할 수 있기 때문인데다 겉으론 상대가 일반인인지 갱단인지 아니면 상대와 충돌이 났을때 바로 자기가 아는 건달들을 불러낼수있는 반달인지 알수 없기때문. 마치 코리이타운에 간혹 한인 마피아들이 자신과 충돌이 난 상대를 죽이거나 상해를 입히는 경우가 존재하는걸 생각해보면 쉽다. 특히 술좌석에서 시비 붙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국내에서도 조선족들과의 괜한 마찰은 피하는 것이 좋다. 아무리 외국인들이라고 해도 그들 거주지에서는 존중해 주는 것이 원칙인데다 쪽수에서도 밀리기 때문이다. 인천항, 부산항이나 서울특별시 구로구 같은데서 간혹 조선족과 한국인이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사례들이 있다. 더구나 삼합회는 국제적으로도 악명이 높은 조직이라 중국인이 많은 동네에서 중국인과 충돌이 날 경우 그 상대 중국인이 마피아 조직원일 가능성이 일반적인 동네에서 자신과 충돌난 상대가 갱단 멤버일 확률과 비교해봤을때 좀더 높을수밖에 없으므로 중국인이 많은 동네에선 더욱 상대와 충돌 안나도록 하자.

[1] 인천 차이나타운과 그 주변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냉면으로 유명했던 인천인만큼 냉면 맛집이 상당히 많이 있는 편이며, 대림같이 국내에 있는 다른 차이나타운을 가보면 알겠지만 정말로 많은 집들이 냉면을 팔고 있다. 한국식 냉면도 있고 나름 땅콩 등을 넣어서 중화풍의 맛을 내는 집들도 있다.[2] 차이나타운의 명칭을 보면 일본어는 중화가, 중국어권을 쓰는 다른 지역에서는 당인가라고 표현하게 되며, 인천에 있는 차이나타운에는 북한식 평양냉면이나 함흥냉면을 차림하고 있게 되는 식당도 물론 존재하게 된다. 차이나타운에 북한 요리 전문 식당이 중간에 점포가 하나씩 끼이게 되는 이유는 중국과 우방인 북한을 상징하고 있는 것을 접목시키기 위한 지름길이기 때문이기도 한다.[3] 고베 차이나타운은 모토마치역(효고)에서 걸어서 2분 거리에 있고 난킨마치라고 부른다. 만두류가 200엔, 북경오리 스낵랩이 200엔~300엔, 탄탄멘이 300엔 하는 싼 가격에 여러 중국요리를 조금씩 맛볼 수 있어서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현지인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편. 그리고 중식뷔페도 많다.[4] 중국 정부에서는 화교의 현지화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정작 전 세계 자원개발 및 시설 제조에 모조리 중국인 노동자를 쓰면서 결국 헛수고한다는 비난을 듣는다. 과거 한국이 아랍 여러 공사 현장에 한국인 노동자를 쓴 경우(여긴 돈만 있고 일할 사람이 없었으니)와 다르게 아프리카나 다른 자원 개발국가에는 싼 인건비 및 실업자인 현지인들을 얼마든지 써도 되거늘 꼭 중국인 노동자를 데려가니 반중, 반화교 감정을 부채질한다.[5] 당연히 이런 경우 면전에서 화교를 욕하면 굉장히 불쾌해하니 말조심하자. 그리고 엄연히 현재는 대한민국 국민인 사람을 출신 성분으로 차별하는 것은 북한이나 하는 짓으로 옳지 않은 자세이다.[6] 그 시절만 해도 한국 화폐단위는 환이었다.그걸 현재 쓰는 원으로 새롭게 화폐를 바꾸면서 종전 환을 많이 가진 외국인은 교환을 못하게 만들었다.[7] 영챔프에서 연재되었던 '내 파란 세이버'란 만화에서 이 내용이 언급되었다. 주인공의 집이 중국요리집이었는데 주방장이 화교로 손화명(자신은 '슨거허민'이란 본토 발음으로 불려지는 것을 선호한다.)이란 이름을 갖고 있었다. 화교들이 겪는 규제로 불편해하다 나중에는 한국을 떠난다.[8] 원래는 린든 B. 존슨 미국 대통령 방한 당시 화교촌부터 남산 밑 해방촌까지가 그대로 미국 TV 전파를 타면서 이것은 나라망신이랍시고 재개발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재미교포를 중심으로 나온 것이 계기였다.[9] 물론 이것은 중화인민공화국을 두고 하는 오해로 화교들은 거의 중화민국 국적이었으며 한국 내에서는 비자를 취득해 체류했다. 이후 화교 탄압으로 대만으로 귀국하는 사람과 한국으로 귀화하는 사람이 나뉘었다.[10] 비자를 발급해 주는 식이었다. 이 때문에 70%의 화교는 대만 귀국, 20%는 미국 등으로 이민을 택했고 10% 정도의 남은 화교들은 한국으로 귀화해야 했다.[11] 반대로 이스라엘에선 화교를 보기 어렵다.[12] 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화교 요리사가 바로 이연복이다.[13] 2017년 현재 영등포구내에 조선족을 포함한 중국인 거주인구가 25,000명을 넘어섰다.[14] 조선족들의 언어 습관만해도 한국어를 잘 못하고 중국어와 연변 사투리를 섞어 쓰거나, 아예 중국어만 쓴다. 한국인과 조선족 사이에서 태어난 2세들도 많은데 이들은 한국어, 중국어를 1대1로 섞어 쓰는 경우가 많다.[15] 훠궈의 경우 무한리필로 파는 집이 상당히 많은 편.[16] 조선족헤이룽장 성 출신들은 러시아어몽골어도 섞어 쓴다. 부산은 대게 하얼빈헤이룽장 성 출신들이 모였고 연변인이 주류인 수도권과 약간 다르다.[17] 낀깔리, 하차푸리, 마야크 등.[18] 만두를 전문점으로 파는 신발원이 대표적.[19] 그런데 간판 정비를 하면서 키릴 문자로 된 러시아 상점들까지 중국 분위기 나는 빨간 간판으로 전부 통일해버렸다.[20] 이 일대를 남자 혼자서 돌아다니면 뚜쟁이 할망구들이 벌레같이 달라붙게 될 것이다. 밤이 아니라 낮에도 가끔 그런다. 주로 러시아 여성들이 성매매를 뛴다. 다만 텍사스 스트리트라는 간판이 세워지면서 단속이 들어가기 시작했는지 최근에는 잘 보이지 않긴 하지만 여전히 암암리에 내국인을 상대로 호객행위를 하고 있는데, 만약 지나가다 러시아 여성이 손짓하거나 말을 걸면 대꾸하지 말고 가던 길 가는 게 신변에 이롭다.[21] 영화 내에서는 지역번호 ‘02’로 나오는 등 서울에 있는 것처럼 연출된다.[22] 부산역으로 건너가는 횡단보도 바로 뒤쪽.[23] 패루가 없는 건 아닌데 약령시 홍살문이다.[24] 부산역 근처에서는 러시아인 여성들이 주로 직업여성으로 많이 종사하며, 한국어도 꽤 유창한 편이다.[25] 가게 이름이 말 그대로 중화반점이다.[26] 원래는 대만대사관이었다. 그러나 1992년 한중 수교를 계기로 주한대만대사와 대만 외교관들이 국교 단절 후 우리나라를 떠나면서 중국이 그 자리를 꿰찼다.[27] 관련하여 뒷이야기가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 손정목 명예교수의 '서울 도시개발 이야기' 제2권에 소상하게 나와 있다. 손 교수가 당시 서울시 당국자였기 때문.[28] 그 영향인지 대사관 건물을 엄청 거대하게 신축했다. 명동을 걷다보면 보이는 중화양식의 고층빌딩이 바로 그 것. 우체국 건물 못지 않게 거대한 크기를 자랑한다.[29] 중국계 인구가 많은 캐나다, 특히 토론토의 경우 중국 슈퍼마켓이 많고 라면, 과자, 농산물 중 한국 상품을 많이 취급해 한인들도 많이 찾는다. 최근에는 한류열풍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왠만한 한국식품들을 상당수 비치해놓기도 하고 심지어 아모레퍼시픽과 같은 한국 화장품 상점도 입점해있다. 심지어 매장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도 K-POP일 정도.[30] 오히려 할렘가는 정화사업으로 지금은 꽤 안전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몇몇 곳은 아예 관광지로도 유명하기도 하고.[31] 비슷하게 인도계 이민자가 사는 리틀 인디아, 말레이계 원주민이 주류인 부기스의 아랍 스트리트도 있다. 그래서 부기스나 리틀 인디아에 가면 아잔이 아침 저녁으로 울려퍼지는 이국적 광경도 보이고, 무슬림 공동묘지도 존재한다. 소위 말하는 무슬림 특유의 알라딘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부기스에 흔하다. 리틀 인디아에 가면 이마에 포뚜(붉은 점)를 찍고 사리를 입고다니는 힌두교계 사람들과 힌두교 사원도 흔히 보인다.[32] 아무래도 그나마 중국과 유사성이 높기 때문인지 탄종 파가 주변에서는 한국 음식점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싱가포르 내에 조성된 코리안타운이라고 볼 수도 있을 만한 곳. 단 한국인 거주지는 한국 학교 근처에 있는 부킷 티마쪽에 몰려있는 편이고 그 외에는 직장이나 경제적 사정에 맞추어 흩어져서 살기 때문에 거주 구역으로서의 한인촌이라고 할 만한 것은 찾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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