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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 항쟁,(1989), | 각종 매체 · 사건 진행 · 탱크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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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黑貓白貓論(黑猫白猫论)제5대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었던 덩샤오핑이 제창한 실용주의적 개혁개방정책으로 유명한 어록이다. 오늘날 중국의 발전을 가속시킨 도화선과도 같은 발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이 발언은 쓰촨성 격언인 황묘흑묘론을 저우언라이가 인용한 말을 덩샤오핑이 재인용한 것이다.
2. 배경
1970년대 말 중국의 사정은 그야말로 좋지 않았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또 아울러 사회적으로도 중국은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던 실정이었다. 무엇보다 문화대혁명이 가져다 준 후유증이 너무나도 컸다. 인민들은 혁명이나 공산주의 같은 사상학습에 피폐해져 있었는데다가 그들의 미래 역시 비관적이었다.사실상 문화대혁명은 경제적으로도 침체를 면치 못하여 일본과 아시아의 네 마리 용에게 뒤쳐지게 되었고 심지어 북한조차 중국보다 훨씬 잘살았던 시절이 바로 이 때였다.[1] 이에 따라 온 사회가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인민들 사이에서도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아울러 문화혁명의 주체였던 마오쩌둥이 세상을 떠나고 문화혁명의 실질적 집행부 일원들이었던 4인방인 마오쩌둥의 부인인 장칭, 왕훙원, 장춘차오, 그리고 야오원위안 4명이 화궈펑에게 제거되고, 1977년 덩샤오핑이 베이징 축구장에 모습을 드러냄으로서 그의 건재함을 과시한다.
1979년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덩샤오핑은 "흑묘백묘 주노서 취시호묘 (黑猫白猫 抓老鼠 就是好猫)" 즉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란 말을 남겼는데 이는 즉 공산주의냐 자본주의냐에 관계없이 인민들이 당면한 문제인 생활수준 향상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이면 그것이 제일이라는 의미의 말이었다. 아울러 중국의 정치이념인 사회주의는 고수하되 경제정책은 개방정책을 도입함으로서 중국의 경제 발전을 도모했으며 동시기 유고슬라비아와 헝가리의 사례들을 상당히 많이 참고했다.
3. 평가
개혁개방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의미로 널리 인용되는 어록이며, 의미가 확장되어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잘 하는 쪽을 선호한다는 실용주의를 상징하기도 한다. 즉 경제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이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라는 의미로 많이 쓰이고 있다. 더구나 덩샤오핑의 이 발언은 1985년 그가 제창한 "부자가 될 능력이 있는 자들이 먼저 부자가 되어라, 그 후에 낙오된 자들을 도우라"는 선부론과 합쳐져 현재의 중국을 만들게 한 밑거름[2]이 되었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크다.사실 이 말은 중국인들을 기만하는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당장 중국공산당이 집권 초기에는 경제 문제를 다룰 때 이념을 그 누구보다 따졌던 것[3]을 생각해보면 원래 중국공산당은 저런 말 할 자격은 없는 집단이다. 경제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이념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공산당이 설령 과거의 경제를 망친 역사가 있다고 해도 그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안 지겠다라고 해석이 가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공산당이 이념에서 이탈하든 뭘 하든 너희는 불만 말고 닥치고 있어라!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덩샤오핑이 의도했던 것과 달리 이 발언의 논리대로라면 경제문제를 다룰 때 정말로 이념을 안 따지는 중국은 중국공산당이 아니라 중화민국 국민정부를 계승한 중화민국이다.[4]
다만, 중국 공산당을 조금 옹호해보자면 덩샤오핑 집권기의 주류세력들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세력의 한 갈래일지언정 대약진 운동이나 문화대혁명 같은 초대형 삽질을 주도한 세력은 아니다. 특히 후자의 경우에는 오히려 피해자로서 덩샤오핑 자신도 하방 조치되어 트랙터 공장의 노동자 신세가 되기도 했다. 그나마도 덩샤오핑은 정말 운이 좋았던 것이 펑더화이나 류사오치는 이보다도 더 비참했다. 즉 덩샤오핑을 비롯한 그의 집권기의 집권세력들은 다들 뭐가 되었든 문화대혁명때 한번쯤 데여본 이들이다. 그리고 이들의 이념 역시도 마오와 같지는 않았다. 요컨대 마오쩌둥 시절의 중국공산당이 저지른 잘못들이 모두 이들의 책임인 것은 아니다. 물론 이들도 결국 권력을 잡은 후에는 그들 못지않게 억압적이었고 일당 독재도 유지했고 공산주의 이념도 끝내 버리지 못했다. 요컨대 가해자가 된 피해자인 셈이다.
[1] 다만 당시 북한은 남한에 밀리기는 했어도 어떻게든 먹고 살 수는 있는 나라였다는 것은 감안해야 한다. 북한이 오늘날과 같은 최빈국으로 전락한 것은 1980년대 후반에 여러 경제실책으로 경제가 추락한 후 1990년대 중반에 고난의 행군으로 직격탄을 맞은 후이다.[2] 부정적 의미에서도 그렇다고 할 것이다. 명색이 사회주의인 나라가 자본주의의 수괴 미국보다도 심각한 빈부 격차(이는 심지어 데이터 마사지가 세게 들어가는 중국 정부 공인 통계에 근거하여 그렇다.) , 빈약한 중산층 비율, 명목상 소득(GDP) 대비 떨어지는 구매력(PPP)으로 인한 서민들의 낮은 생활 수준 및 민도 등이 그렇다.[3] 심지어 같은 공산권과 비교해도 그렇다.[4] 물론, 이 쪽도 국부천대 이후 오랜 기간 동안의 계엄령 철권 통치에서 알 수 있듯, 메카시즘식 "아무튼 빨갱이들 하는 짓거리랑 조금이라도 비슷한 짓은 안 돼!" 논리가 오랜 기간 강하게 작용했음은 감안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