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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20909><colcolor=#fff> 上海证券交易所 Shanghai Stock Exchange SSE 상하이증권거래소 | ||
정식 명칭 | 상하이증권교역소 | |
종류 | 증권거래소 | |
주소 | 상하이시 푸둥신구 푸둥난루 528 上海市浦东新区浦东南路528号 | |
설립일 | 1990년 11월 26일([age(1990-11-26)]주년) | |
거래 화폐 | 중국 위안 (A주)[1] 미국 달러 (B주)[2] | |
연동 지수 | 상하이종합지수 (SSE Composite Index) | |
대표 | 황훙위안(黄红元) | |
상위 기구 | 중국증권 감독관리위원회 | |
거래 시간 (현지 시간) | am 9:30 - 11:30 (오전) pm 13:00 - pm 15:00(오후) | |
외부 링크 | 홈페이지 |
상하이증권거래소 사옥. |
1. 개요
중화인민공화국의 증권거래소 중 하나이다. 다른 하나는 선전증권거래소이다. 대표지수는 상하이종합지수가 있다. 상하이종합지수의 종가 기준 역대 최고치는 2007년 10월 16일에 기록한 6092.06포인트이다.[3]본사는 상하이시 푸둥신구에 위치해 있다. 대중교통으로는 푸둥난루역 상하이 지하철 2호선 쪽에서 제일 가깝다. 역세권으로 불러주기는 어려운 위치이지만 어쨌든 지하철로 접근이 가능하기는 하다.
2. 상세
이 거래소의 역사는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주식 거래 자체는 1860년대부터 시작되었고 주식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이 거래소의 전신격인 상하이주식중개인협회(上海掮客公会)가 1891년에 개설되었지만 어디까지나 외국기업들이 상장된 방식이었다. 중국 토종 기업들이 상장되고 중국인들이 거래하는 자체적인 증권거래소는 1920년에 개설되었는데 이를 상하이증권거래소라고 한다. 상하이증권거래소는 중일전쟁으로 상하이가 일본군에 점령당하며 운영이 중단되었다가 1946년에 운영이 재개되었지만 물가 폭등을 조장하는 투기꾼들의 놀이터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제 역할을 못했다.
1949년에 중화인민공화국의 중국 통일로 대륙이 공산화된 이후로는 상하이증권거래소는 운영이 중단되었다. 그러나 단순히 공산주의 사상 때문에 폐지된 것은 아니었고 당시 상하이증권개래소 운영을 좌지우지하는 투기세력들이 사재기와 매점매석으로 물가를 교란시키는 등 경제를 혼란상태로 몰아놓는데 일조했기 때문에 물가폭등을 진정시킬려고 폐쇄한 것이다. 물론 따지고 보면 물가폭등이 심각한 상황 속에서 주식시장만 정상으로 돌아갈 리는 없었기는 했지만.
여하튼 중국 내에서 주식시장이 바로 폐지된 것은 아니라서 1950년대에도 중국에서 주식거래는 가능했는데 톈진증권거래소와 베이징증권거래소에서 거래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것도 중국이 국유화를 완료하고[4] 대약진 운동을 추진함에 따라 1958년에 주식 발행을 중단했고 그날로 베이징과 톈진증권거래소의 운영이 완전히 중단되며 완전히 명맥이 끊겼다. 애초 공산국가에서 주식거래는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러나 1979년 덩샤오핑이 화궈펑을 밀어낸 후 실시한 개혁개방 시행 이후로 주식거래가 다시 활성화되어 나가기 시작하자 1990년에 상하이증권거래소를 재개설하였다. 이후 중국 금융시장이 급성장하며 중국본토 내에서 시가총액 1위로 메인보드 역할을 수행한다.
참고로 최대 호황기는 2005년 말부터 2007년도까지였다. 이때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10%대에 다다랐을 정도로 엄청난 호황이었고 거기에 더해 2008 베이징 올림픽으로 인한 건설붐까지 겹치며 주식시장은 엄청난 호황을 누렸고 주가지수는 1000P대에서 6000P대까지 폭풍같이 상승했다. 그러나 베이징 올림픽이 개최되기도 전에 거품이 바람같이 꺼졌고 미국발 세계금융위기까지 겹치며 상하이 종합지수는 2000P 아래로 떨어졌다. 그래도 너무 과도하게 내려간 것이라서 2009년 상반기에 잠시 상승하여 3000P에 도달한 적이 있지만 그 이후로는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상승하였음에도 2000P대에서 횡보했고 그래서 2014년까지 침체기를 맞았다.
그러다가 2014년 하반기부터 2015년까지 상반기까지 상하이 종합지수가 5000P까지 도달하며 다시 가지개를 펼것 같았지만 불과 10개월만 상승했을 뿐이었고 이후로는 다시 80%로 복구되어(...) [5] 그 이후로는 2700~3500P대의 박스권을 횡보하고 있다.
물론 사회주의 국가 특성 상 외국인의 직접투자는 제한되어 있었다. 2014년 이전에는 외국인 자유거래 종목이 별도로 지정되어 있었는데 이를 B주라고 했고, A주는 외국인 기관 거래자 정도가 아닌 일반 투자가들은 매매가 불가능했다. 그러나 증권시장 활성화의 일환으로 2014년에 A주의 외국인 매매가 부분 자유화되었지만 외국인들은 주로 특별행정구인 홍콩증권거래소를 통해 매매하는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인프라가 더 잘 되어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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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white> 순위 | 증권거래소 | 시가총액 (USD) | |
1 | 뉴욕증권거래소 | 25.56조 | |
2 | 나스닥 | 23.41조 | |
3 | 유로넥스트 | 6.89조 | |
4 | 상하이증권거래소 | 6.52조 | |
5 | 일본거래소 | 6.15조 | |
6 | 인도국립증권거래소 | 4.34조 | |
7 | 선전증권거래소 | 4.29조 | |
8 | 봄베이증권거래소 | 4.01조 | |
9 | 홍콩증권거래소 | 3.97조 | |
10 | 런던증권거래소 | 3.42조 | |
11 | 토론토증권거래소 | 3.09조 | |
12 | 타다울 | 3.02조 | |
13 | 나스닥 노르딕 | 2.12조 | |
14 | 도이체 뵈르제 | 2.07조 | |
15 | 스위스증권거래소 | 2.04조 | |
16 | 한국거래소 | 1.97조 | |
17 | 대만증권거래소 | 1.85조 | |
18 | 호주증권거래소 | 1.79조 | |
19 | 테헤란증권거래소 | 1.71조 | |
20 | 요하네스버그증권거래소 | 1.02조 | |
2023년 12월 기준# |
2020년 연말 기준 세계 증권거래소 시가총액 순위.
시가총액 기준으로 세계 5위의 증권거래소였으나 2015년 4위로 올라섰다. 뉴욕증권거래소, 나스닥, 도쿄증권거래소 다음이었다. 2016년에 도쿄증권거래소를 잠깐 제치고 세계 3위[6]에 올랐으나, 2018년 미국-중국 무역 전쟁의 여파로 다시 세계 4위[7]로 내려 앉았다. 2020년 다시 3위에 올라섰다.
금융당국의 규제로 상하이증시 A시장에서는 외국인들이 마음놓고 투자하기 힘들다. 그래서 2014년부터 홍콩증권거래소에 중국 본토기업들을 상장시켜놓고 프로그램 매매로 교차매매하는 후강퉁(沪港通)제도가 시행중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요 기업은 대부분 이 상하이증권거래소에 상장되어 있으며, 선전증권거래소는 상하이증권거래소 기업이 중복 상장하거나 중국의 중소기업, 벤처기업들이 많이 상장한다.
한편 2020년 들어서는 1월 2일, 시진핑 주석이 이 상하이증권거래소와 영국 런던증권거래소 간 주식, 채권교차거래, 이른바 후룬퉁(沪伦通) 시행을 전격 연기하기로 했다. 후룬퉁 시행을 연기한 이유는 정치적 긴장이라고 적었다. 영국 정부가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에서 홍콩 민주파를 지지하고 홍콩 정부 및 중국공산당의 인권 탄압에 대해 항의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추정된다. 기사 그리고 2020년 1월 3일,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을 두고 영국과 중국간의 갈등으로 인해, 중국 정부에서 상하이증권거래소와 런던증권거래소 간 주식, 채권 교차거래인 후룬퉁을 완전히 중단할 것이라고 중국 전문가가 전망했다. 기사 더구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여파로 상하이증시 역시 폭락을 면치 못했다. 이후 2020년 6월 4일, 중국 정부는 상하이증권거래소와 런던증권거래소 간 교차상장을 통한 주식 거래를 하는 "후룬퉁" 사업을 5개월만에 재개하기로 결정하였다. 1991년 설립된 보험사인 중국태평양보험을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시키는 것으로 후룬퉁 사업을 시작한다. 홍콩 국가보안법으로 중국의 고립이 심화되자, 영국한테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내 영중관계 개선을 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기사
위의 얘기들을 간단히 말하면 코로나19 여파로 상하이증시도 폭락했으나 출구전략을 모색 중이라는 의미다.
[1] 내국인과 허가받은 외국인 기관투자자 전용[2] 외국인 전용[3] 상하이, 선전 주식지장 개장이 1998년 부동산 사유화보다 훨씬 일렀기 때문에 1990년대와 2000년대에는 주식시장으로 많은 자금이 몰려갔지만 2000년대 후반에 주가지수가 급속히 하락한 뒤로는 후진타오 정권의 부동산 부양정책까지 겹쳐서 부동산에 대한 투자비율이 압도적이게 되었다.[4] 민족자본가라고 칭해진 기업인들이 국가에 주식을 헌납하는 대신에 기업관리인이 되는 방식이었다.[5] 한국으로 치면 1998년 하반기~2000년 초의 주식상승기보다도 짧게 간 셈이다.[6] 아시아에서는 1위[7] 아시아에서는 2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