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07 21:57:55

2008 베이징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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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6년 6회 올림픽은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1940년 12회 및 1944년 13회 올림픽은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취소 }}}}}}

28회 29회 30회
2004 아테네 올림픽 2008 베이징 올림픽 2012 런던 올림픽
第二十九届夏季奥林匹克运动会
Games of the XXIX Olympi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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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기간 2008년 8월 8일 ~ 8월 24일
개최국가/도시 중국/베이징
대회 이념 同一个世界 同一个梦想
One World, One Dream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
공식 주제가 Forever Friends
마스코트 베이베이, 징징, 환환, 잉잉, 니니
참가국 204개국
참가선수 11,028명
(남자: 6,305명, 여자: 4,637명)
경기종목 28개 종목 - 302개 세부 종목
개회 선언자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선수 선서 장이닝
심판 선서 황리핑
성화 점화 리닝
주경기장 베이징국가체육장
이전 대회 2004 아테네 올림픽
다음 대회 2012 런던 올림픽
1. 개요2. 유치3. 마스코트4. 개막식5. 대회6. 대한민국 선수단7. 대한민국 하계 올림픽 성적8. 기타 참가국 관련9. 한국측 중계진
9.1. KBS9.2. MBC9.3. SBS
10. 사건11. 기타

1. 개요

아시아에서 도쿄-서울[1]에 이어 세 번째로 개최된 하계 올림픽 대회이자 개최국 중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보유한 나라다.

개최전부터 중국 개최라서 말이 많았던 대회이다. 중국이 그간 죽의 장막 아래 있는 낙후된 국가, 20년 전의 천안문 6.4 항쟁(천안문 사태)로 인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씻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인 대회이기도 하며, 세계 강국으로 부상했음을 전 세계에 과시하려는 대회이기도 하다.

대회 주제는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One world, One dream)'[2]이다. 여기에는 평화와 진보, 조화로운 발전, 우호적 생활, 협력, 상호 이익, 행복한 삶의 향유 등 전세계 모든 나라의 시민들이 공통적으로 꿈꾸는 이상을 실현하고 평화롭고 밝은 세계를 건설하는 데 이바지하고자 하는 13억 중국인들의 염원이 담겨 있다고 한다.

중국은 이 베이징 올림픽에 건 기대가 굉장히 컸던 지라 개최 확정 이후 시민 의식 상승 운동 및 시설 재정비에 들어갔다. 베이징 서우두 공항 등 주요 인프라가 보수되고, 국제화 규격과 맞지 않은 게시판들도 교체가 있었다.[3]

2. 유치

2008년 올림픽 유치 투표 과정
국가 도시 1차투표 2차투표 결과
중국 베이징 44 56 유치 선정
캐나다 토론토 20 22 유치 탈락
프랑스 파리 15 18 유치 탈락
터키 이스탄불 17 9 유치 탈락
일본 오사카 6 유치 탈락
21세기의 첫 올림픽 유치전인 만큼, 이번에는 제3세계에서 올림픽을 유치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했다. 타이의 방콕, 이집트의 카이로, 스페인의 세비야, 쿠바의 아바나,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도 유치전에 뛰어들었으나, 이들은 유치 과정 중 정식 개최후보도시로 선정되지 못했다. 유치전은 2000년대 이후 올림픽 유치전에서 가장 쓸 말이 없는 유치전이다. 그냥 중국이 압도적인 물량을 바탕으로 밀어붙였고, 2차 투표에서 과반수인 56표를 획득해 베이징이 개최지로 확정되면서 그대로 끝났다. 일본은 오사카의 광탈 이후, 전략을 바꿔서 다시 수도 도쿄의 올림픽 개최를 노리게 되었고, 이후 십여년이 지나 터키의 이스탄불과 스페인의 마드리드를 제치고 2020 도쿄 올림픽 유치에 성공하게 된다.

3. 마스코트

마스코트의 이름은 각각 베이베이(贝贝), 징징(晶晶), 환환(후안후안)(欢欢), 잉잉(迎迎), 니니(妮妮)인데, 한 음절이 반복되는 이름이다. 차례대로 1음절씩만 떼어서 발음하면 베이징 환잉니(北京欢迎你, 베이징은 당신을 환영합니다.)가 된다.

4. 개막식

5. 대회

대회 기간 내내 중국 관중들의 매너는 썩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이 중평이다.

2000년대 들어서 오랜만에 기인에 가까운 선수들이 제법 많이 나왔던 올림픽으로써 숱한 명승부와 명장면들이 펼쳐진 대회였음은 부정할 수 없다. 마이클 펠프스는 금메달을 무려 8개나 따내며 마크 스피츠를 넘어 역사상 한 대회 최다 금메달리스트라는 기록을 세웠고 육상에서는 우사인 볼트가 100m, 200m, 4x100m에서 3번 연속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미국 육상을 압도했다. 반대로 미국 육상계는 단거리 부분에서 남자나 여자나 모두 털리면서 제대로 망했다. 장미란은 다른 선수들이 모두 메달을 가린 후에 혼자 역기를 들며 '세계신기록'을 갱신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하였다.
  • 야구에서는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이 올림픽 참가하면서 처음으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또한 금메달 뿐만 아니라 전승으로 우승한 기록을 세우게 되었는데 이것은 야구가 올림픽 종목으로 진입한 후 최초의 기록이였다.
  • 펜싱에서는 여자 플뢰레 개인전에서 발렌티나 베찰리가 한국의 남현희를 상대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펜싱 역사상 유일하게 단일 종목 3연패를 기록한 유일한 선수가 되었다. 남자 사브르 개인전에서도 명승부가 나왔다. 결승전은 한국의 오은석을 이기고 올라간 니콜라 로페즈와 홈팀 중국의 중만간의 대결이었다. 초반에 먼저 8득점을 올리며 전반전을 리드로 끝낸 쪽은 로페즈였으나, 중만은 단 1점만 실점하고 무려 9득점을 올리며 15-9의 완승을 거두고 중국의 역대 2번째 올림픽 펜싱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첫 금메달은 이보다 24년전에 여자 플뢰레 개인전에서 우승한 루안지제였다. 그러나 중만의 전성기는 대한민국이 남자 사브르에서 구본길을 발굴하면서 금새 끝났다.[4]
  • 남자 축구의 경우 리오넬 메시가 출전해서 화제가 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만나는 팀마다 죄다 쳐발라버리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무시무시한 당시 아르헨티나 스쿼드를 처음 접한 축구 커뮤니티는 모두 "이 새키들 월드컵 나가냐?"며 경악. 후안 로만 리켈메,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세르히오 아구에로, 앙헬 디 마리아, 에세키엘 라베시, 리오넬 메시 등을 자랑했다. 참고로 아르헨티나는 결승전에서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승리를 거둬 이전 대회에 이어 올림픽 본선 12연승을 기록했다. 이 올림픽 축구종목은 앙헬 디 마리아라는 새로운 스타 플레이어를 발굴했다.
이 당시 아르헨티나의 무시무시한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 조별리그
    • VS 코트디부아르 2-1 승
    • VS 호주 1-0 승
    • VS 세르비아 2-0 승
  • 8강 VS 네덜란드 2-1(연장) 승
  • 4강 VS 브라질 3-0 승
  • 결승 VS 나이지리아 1-0 승
1실점 이상 기록하지 않았고 전승 금메달도 기록이지만 브라질을 일방적으로 쳐발라버린 것이 압권이었다.

특히 이 대회에서 세계적 스타인 메시가 금메달을 딴 이후 올림픽 축구는 2년 후에 있을 월드컵 전초전 성격을 띠게 되며 23세 미만이지만 세계적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선수들이 더 많이 나오게 된다. 특히 브라질은 월드컵 5회 우승에 빛나지만 올림픽 금메달이 없다보니 엄청난 투자를 감행하기도 한다. 이 대회 이후 올림픽 축구는 전력 상향평준화에 이어 FIFA 월드컵, UEFA 유로, 코파 아메리카(남미선수권) 못지않은 제 4의 메이저대회로 성장했다.[5]

한편, 한국은 전번에 이어 2연속 2라운드 진출을 노렸으나 하위팀인 온두라스를 이긴 뒤 빼고 조 3위로 짐을 쌌다. 일본은 3전 전패로 광탈했고 사상 첫 축구 메달을 노렸던 개최국 중국 역시 약체 뉴질랜드와 사이좋게 1무 2패를 거두고 골득실 차로 3위를 차지하면서 광탈. 처음으로 아시아 예선을 거쳐 올라온 호주도 1무 2패를 거두면서 아시아 팀이 전멸했고 그 중 한국이 유일하게 1승을 거뒀다.
  • 양궁은 중국인들의 시민의식이 아직 갈 길이 얼마나 먼지 보여주었다. 특히 악천후 속에서 치러진 여자 개인전에서 중국의 장쥐안쥐안은 8강에서 주현정, 4강에서 윤옥희, 결승에서 박성현마저 이겨 한국인 올킬을 달성했는데, 무식하고 개념 없는 중국 관중들은 장쥐안쥐안의 경기에서 한국 선수들이 조준할 때마다 호루라기를 불고 페트병까지 두드리며 경기를 방해했다. 아무리 국내에서 이런 상황에 대비한 훈련을 했다고 하지만, 한발 한발 집중해서 쏘아도 10점에 들어갈까 말까인데 잡다한 소음이 들리니, 아무리 담이 큰 한국 선수들이라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이 대회 뒤 한국 양궁 대표팀은 전보다 훨씬 더 강도가 센 훈련을 강행했는데 바로 소음하면 둘째가는 야구 경기장에서 야구 경기가 시작되기 전 훈련을 한 것. 물론 관중들에게는 조용히 하라는 제지는 하지 않았고 야구팬들은 평소처럼 분위기를 띄우며 쿵짝쿵짝 엄청난 소음[6]을 유발했고, 그 상황 속에서 귀도 안 막고 훈련했다고 한다. 웃기는 것은, 2004 아테네 올림픽 단체전 결승에서 박성현이 26번째 화살을 실수했을 때 옆에서 이겼다는 착각 속에 촐랑댄스를 추던 중국 선수가 바로 장쥐안쥐안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성현은 베이징에서 장쥐안쥐안이 홈 텃세를 등에 업고 금메달을 가져가고 오히려 중국 관중들의 무개념 응원으로 한국 여자양궁이 개인전 7연속 우승에 실패했다. 한편 몇몇의 멍청한 누리꾼들은 1988 서울 올림픽에서의 복싱 박시헌2002 한일 월드컵의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응원을 생각하면, "우리가 무슨 자격으로 중국 관중들과 장쥐안쥐안을 욕할 수 있겠느냐"라는 주장을 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이건 경기 종목상 잘못된 비교이다. 애초에 축구와 복싱은 떠들썩하게 응원해도 충분히 치룰 수 있는 경기고, 양궁은 떠들면 집중력의 떨어져 선수들에게 큰 불이익이 돌아오는 경기다. 실제로 축구의 경우 자기편이 공을 잡고 있을 때도 미친 듯이 소리지르며 응원한다. 하지만 양궁은 자기 편이 공격할 차례엔 응원단이 조용해진다. 즉 크게 응원해도 되는 경기와 응원을 조용히 해야 하는 경기를 똑같이 비교한 것이다. 바둑 두는 사람 옆에서 큰 소리로 응원하는 것과 학교운동장에서 축구팀 응원하는 것, 둘 중 어느 쪽이 비매너일까? 따라서 중국팀이 비매너로 욕 먹는 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 남자 역도 105kg 초과급에서는 수많은 이들의 예상을 뒤집고 독일의 마티아스 슈타이너가 용상 인상 도합 461kg을 들어올리며 금메달을 거머쥐었다.[7] 슈타이너는 2007년에 아내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며 선수 생활을 그만둘 위기에 처했지만, 마음을 다잡고 선수생활을 계속해 올림픽에 출전했다. 아테네 올림픽에서 오스트리아 대표로 출전해 7위에 그쳤던 슈타이너는, 올림픽 전초전 격이었던 2008년 유럽선수권대회에서 아내의 조국인 독일을 대표로 출전해 은메달을 거머쥐며 가파른 상승세를 탔고, 결국 베이징 올림픽에서 자신의 기록을 갈아치우며 금메달을 거머쥐게 된다. 정작 본인은 워밍업을 하던 당시 용상과 인상 모두 실전에서만큼의 무게를 들어올리지 못했고, 러시아 선수의 컨디션이 좋아 자신이 금메달을 획득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저 같은 날 독일이 트라이애슬론에서 깜짝 금메달을 획득한 것 정도가 자신에게는 큰 힘이었다고. 용상에서 4위에 그쳤던 슈타이너는 인상 마지막 시기에 11kg을 추가하는 승부수를 두었고, 기어코 그 무게를 들어올려 두 계단을 한번에 뛰어올라 1kg 차로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금메달이 확정된 직후 슈타이너는 바벨 위에 엎드려 오열했고, 시상식에서는 아내가 항상 곁에 있었음을 알리기 위해 세상을 떠난 아내의 사진을 금메달과 함께 들어보이며 미소를 지었다. 이 장면은 경기를 시청한 수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적셨고, 지금까지도 베이징 올림픽을 넘어 100년이 넘는 올림픽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장면 중 하나로 회자되곤 한다.마티아스 슈타이너의 회상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로 자신의 전 아내에게 작별인사를 고한 슈타이너는, 뉴스앵커를 만나 2010년 재혼한 후 2012년 런던 올림픽까지 출전한 뒤 2013년 은퇴했다.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은퇴 후 40kg을 감량한지라 예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웬 훈남이 인터뷰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헤르초크 & 드 뫼롱이 설계한 '새둥지' 주 경기장 등 걸작 건축들도 한몫 했다. 운영자체는 막장이었어도 볼 건 많았다고 해야되나...이런 말 저런 말이 나왔지만 그래도 큰 사고는 없이 끝난 대회였다.

베이징올림픽 종합 우승은 중국으로 중국은 개최국의 이점으로 금 51개 은 21개 동 28개로 종합순위 1위에 랭크되며 중국은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대회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종합 메달에선 미국이 1위)

6. 대한민국 선수단

한국은 이 올림픽에서 금 13개 은 10개 동 8개로 역대 최다 메달을 따내어 총 7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했다.

참고로 당시 여자 역도에서 장미란 선수가 금메달을 따고 임정화 선수가 4위를 차지했는데 그 당시 은메달을 차지했던 터키의 시벨 오스칸이란 선수의 소변에서 금지약물 반응이 나와 차지했던 은메달이 박탈 당하면서 당시 동메달을 딴 선수는 은메달로 승격되어 4위였던 임정화 역시 8년이나 지난 지금에 3위로 올라섬으로써 늦게나마 동메달을 받게되었으며 또다시 그 메달을 땄던 중국 선수마저 메달이 박탈됨에 따라 은메달을 따게 되었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에 메달이 총 32개로 하나가 더 늘었으며 순위는 전과 동일하다. 남자 단체 종목으로는 사상 최초로 구기 종목에서 금메달이 나왔다. 자세한 사항은 2008 베이징 올림픽/야구 문서 참조.

그리고 한국에서는 물론 아시아에서도 메달이 나오기 힘든 자유형 수영에서 박태환이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한국 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딴 기적을 연출했다. 또한 장미란은 상대 선수들과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며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수상했다.

한국은 메달 종합순위 7위를 차지해서 아테네 올림픽에서의 부진을 만회했다. 아무래도 이웃나라에서 열린 올림픽이다보니 현지적응 부분에서는 다른 나라에 비해 유리했기 때문에 호성적을 거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선수들의 귀국 문제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모든 경기가 끝나서 더 이상 중국에 남아있을 필요없는 선수들의 귀국을 체육회가 막아버렸다. 이를 두고 정권의 홍보를 위하여 선수들의 단체 귀국 차량 퍼레이드에 동원하기 위하여 막은 거 아니냐는 비난이 속출하자[8] 선수들의 상업적 이용을 막기 위해서라는 개드립 변명을 했고, 결국 차량 퍼레이드가 아닌 선수들의 단체 귀국 걷기 퍼레이드를 보였으나 몇몇 선수들은 불쾌한 얼굴을 보이며 걷기도 했다.[9] 중계도 당연히 되지 않았고 중앙일보 계열인 일간스포츠는 1면으로 시대를 역행한 국제적 망신거리라고 비판했다.[10]

그리고 이런 계획은 2012 런던 올림픽때에도 쭉 써먹으려다가 호된 비난을 받고 강제적인 면을 없애 몇몇 선수가 한국에 먼저 왔는데 (양학선같은 경우) 그래도 말이 많았었다.

7. 대한민국 하계 올림픽 성적

■ 2008년 29회 베이징 올림픽 (2008 Summer Beijing Olympics)
  • 기간 : 8월8일~8월24일
  • 규모 : 204개국 16000(여)명 참가.
  • 종목 : 근대5종, 농구, 레슬링, 배구, 배드민턴, 복싱, 사격, 사이클, 소프트볼, 수영, 승마, 야구, 양궁, 역도, 요트, 유도, 육상, 조정, 체조, 축구, 카누, 탁구, 태권도, 테니스, 트라이애슬론, 펜싱, 하키, 핸드볼
  • ▶대한민국 참가 현황 : 임원 122명, 선수 267명 참가.(근대5종, 농구, 레슬링, 배드민턴, 복싱, 사격, 사이클, 소프트볼, 수영, 승마, 야구, 양궁, 역도, 요트, 유도, 육상, 조정, 체조, 축구, 카누, 탁구, 태권도, 테니스, 트라이애슬론, 펜싱, 하키, 핸드볼)
  • ▶대한민국 참가 성적 : 금메달 13개, 은메달 11개, 동메달 8개 획득. 종합순위 7위.
  • 금메달
    • 배드민턴(혼합복식) 이용대, 이효정
    • 남자 사격(50m 공기권총) 진종오
    • 남자 수영(자유형 400m) 박태환
    • 남자 야구
    • 여자 양궁(단체) 박성현, 윤옥희, 주현정
    • 남자 양궁(단체) 박경모, 이창환, 임동현
    • 남자 역도(77kg) 사재혁
    • 여자 역도(75kg) 장미란
    • 남자 유도(60kg) 최민호
    • 여자 태권도(57kg) 임수정
    • 여자 태권도(67kg) 황경선
    • 남자 태권도(68kg) 손태진
    • 남자 태권도(80kg) 차동민
  • 은메달
    • 여자 배드민턴(복식) 이효정, 이경원
    • 남자 사격(10m 공기권총) 진종오
    • 남자 수영(자유형 200m) 박태환
    • 여자 양궁(개인) 박성현
    • 남자 양궁(개인) 박경모
    • 여자 역도(48kg) 임정화
    • 여자 역도(53kg) 윤진희
    • 남자 유도(73kg) 왕기춘
    • 남자 유도(81kg) 김재범
    • 남자 체조(평행봉) 유원철
    • 여자 펜싱(플러레) 남현희
  • 동메달
    • 레슬링(그레코로만형 55kg) 박은철
    • 남자 배드민턴(복식) 이재진, 황지만
    • 복싱(웰터급) 김정주
    • 여자 양궁(개인) 윤옥희
    • 여자 유도(78kg) 정경미
    • 남자 탁구(단체) 오상은, 유승민, 윤재영
    • 여자 탁구(단체) 김경아, 당예서, 박미영
    • 여자 핸드볼
대한민국은 종합 7위의 성적을 거뒀다.
파일:대한민국하계올림픽성적 16.jpg

8. 기타 참가국 관련

카리브해에 자리한 네덜란드령 안틸레스가 마지막으로 참가한 올림픽이기도 하다. 2년 후인 2010년에 네덜란드령 안틸레스는 행정 구역 개편으로 여러 곳으로 분할되어 해체되었으며, 당시 선수들은 차기 올림픽에서 무소속 선수단으로 출전한다.

리비아는 카다피 정권기에 쓰였던 대리비아 아랍 사회주의 인민 자마히리야국라는 국호와 초록색 단색 국기를 쓰는 마지막 올림픽으로 기록되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1년 전 카다피의 자마히리야 정권이 멸망하면서 국호를 리비아로 바꾸고 국기도 초록색 단색 국기 대신 왕정시절 국기로 교체하였다.

9. 한국측 중계진

9.1. KBS

9.2. MBC

9.3. SBS

10. 사건

성화 봉송 와중에도 티베트 독립운동 문제와 겹치면서 한국에 온 성화 봉송 도중에 중국 유학생들이 대거 난동을 부린 일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반중 정서가 격화되기도 했다.

올림픽 개막식 날 러시아조지아전쟁이 터지면서, 원래 올림픽의 취지였던 '부디 이 시기 만큼은 싸우지 말자'는 것이 무색하게 되었다.

11. 기타

  • 존 티토는 이 베이징 올림픽이 개최되지 않으리라 예언했지만, 결국 성공리에 개최되면서 그의 예언은 빗나갔다.[11]
  • 이 베이징 올림픽 때 세계급 스포츠마다 꼭 털리는 세븐 갤러리의 사망전대 전설이 시작되었다.
  • 중국에서는 이 올림픽을 앞두고 천안문 광장 등에 일반 경찰 및 사복경찰을 배치하는 등 치안에 엄청나게 신경을 썼다. 짐을 많이 들고 있는 등 수상해 보이는 경우 불심검문을 당할 수도 있었으며, 위구르족이나 티베트인 등 분쟁 지역에서 온 사람으로 보일 경우에도 불심검문 대상이었다.
  • 올림픽 이전 베이징에는 큰 가 왔으나 대회일에는 쭉 맑은 날씨를 유지했는데, 이에 대해서 중국 정부에서 기술을 동원하여 인공강우를 유도하였다는 말이 퍼지기도 했다. 쉽게 말해서 미리 비를 다 내려버려 대회일 중에 비가 내리는 것을 방지했다는 것. 베이징 현지인들 사이에서는 꽤 퍼졌던 이야기이지만 공식적으로는 인정되지 않았다. 베이징은 원래부터 건조한 도시라 큰 걱정은 없었지만 개최 시기가 여름이다 보니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 개막식의 시작은 정확히 200888일 오후 888초로 예정되어 있었다. 이는 중국에서는 8을 길한 숫자로 여기기 때문.[12] 실제로는 운영 사정 때문에 8시 정각에 시작하는 것으로 변경.[13] (마찬가지 이유로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또한 8시 정각에 국기가 입장하며 시작됐다.) 또한 이 시기를 기념하여 베이징 지하철에 올림픽 경기장 쪽으로 이어지는 8호선을 개통했다.
  • 1956 멜버른 올림픽과 비슷하게, 승마는 중국 본토가 아닌 홍콩에서 열렸다. 홍콩은 중화인민공화국의 특별행정구로, 행정과 경제 면에서 (명목상) 본토와 별개이며, 올림픽에서는 별개의 국가올림픽위원회로 참가하고 있기 때문에 타국이라고 봐야 한다.
  • 당시 "베이징 올림픽 4대신"이란 농담이 유행했다. 문자 그대로 초인적인 기록을 보여준 선수 네 명을 기리는 말로서, 전승마다 내용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보통은 다음을 의미한다.

  • 여기에 더해 불의 신으로 한기주(...)를 거론하거나 *신으로 호시노 센이치 일본 야구팀 감독을 넣어 5대신으로 꼽기도 하며, 둘 다 넣고 6대신으로 꼽는 경우도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한기주와 호시노를 까기 위한 농담일 뿐이며, 나머지 4대신에 대해서는 한치의 가감 없는 담백한 직설적 묘사이므로 주의.
  • 이 올림픽에서는 메달에 옥을 넣은 옥메달을 선보였지만 그다지 알려지지 못했다.


[1] 공교롭게도 2008년은 서울올림픽이 열린 지 20주년이다. 동아시아 삼국의 개최 주기가 약 20년이라는 것도 재미난 대목이다.[2] 이 주제에서 중국의 본심이 보이기도 한다. 자세한 건 하나의 중국 참조.[3] 이는 1988 서울 올림픽도 마찬가지였다.[4] 그리고 2018년 현재, 아시아 남자 사브르는 한국의 절대적 우위 속에 이란이 2인자 위치를 굳히고 있다[5] 사실 축구계 트렌드가 어린 선수라도 능력만 검증되면 바로 바로 프로 데뷔를 시키는 것으로 바뀌었고 그만큼 어린 나이에도 괴물급 기량을 보유한 선수가 늘고, 그 결과로 예전에 비해 프로에서도 주전 선수인 경우에도 와일드 카드가 아니라 U-23 선수로 올림픽에 출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리고 아무리 축구계에서 올림픽이 언더 타이틀 붙은 대회라고 해도 올림픽이라는 이름값이 어디가서 빠질만한 대회가 아니므로 정말로 올림픽 메달을 원해서 출전을 감행하는 경우도 많이 늘어난 편.[6] 양궁 선수들 입장에서는 소음이라고 볼 수 있다.[7] 여담이지만, 슈타이너의 금메달 기록은 애틀랜타 올림픽 남자 105kg+ 급 금메달리스트 안드레이 셰메르킨이 들어올린 457kg 다음으로 낮은 기록이다. 하지만 슈타이너는 도핑 대란이 일어나는 와중에도 편법 없이 금메달을 지켜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8] 선수 몇몇은 '한국에 가서 부모님 보고 싶은데...'라며 불쾌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이런 반응을 보이던 박태환은 4년 뒤 런던에선 아예 부모님이 런던에 머물렀다.[9] 여자 태권도 67kg급 금메달리스트 황경선은 당시 8강전에서 왼쪽 무릎 연골 파열, 전방 내측 십자인대 파열 부상을 당해 급히 귀국해야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기어코 높으신 분들의 입김 때문에 선수단 전체가 귀국할 때 같이 귀국해야 했으며, 퍼레이드에서도 어쩔수 없이 절뚝거리며 걸을 수 밖에 없었다.[10] 여담으로 최후의 올림픽 대표 차량 퍼레이드는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였다. 당시 노태우 정권이었다는 점, 손기정 이후 56년만에 황영조마라톤 금메달 획득 등 호성적을 냈다는 점, 그리고 당시 차량 퍼레이드를 할 때 오늘날에 비해 차량 통제가 비교적 쉬웠다는 점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11] 티베트 사태 등 여러가지 불안요소들이 많아 개최되지 않으리라는 관측도 있긴 했다.[12] 중국어로 8(ba)이 돈을 번다는 뜻의 發財(fa cai)와 비슷하다는 이유.[13] 중국 CCTV는 매 30분마다 디지털 시보를 내보내는데 당시 영상을 유튜브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