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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 아테네 | 1900 파리 | 1908 런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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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 [[프랑스 제3공화국|]] | [[네덜란드|]] | [[미국|]] | ||
1924 파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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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 베를린 | 1948 런던 | 1952 헬싱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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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 멜버른 | 1960 로마 | 1964 도쿄 | 1972 뮌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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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자치령|]] | [[소련|]] | [[미국|]] | [[대한민국|]] | [[스페인|]] | |
1988 서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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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시드니 | 2004 아테네 | 2008 베이징 | 2012 런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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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도쿄(연기) | 2024 파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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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21023><colcolor=#fff> 1980 모스크바 올림픽 | |
제22회 모스크바 올림픽 대회 Игры XXII Олимпиады™ Москва 1980 Jeux de la XXIIe Olympiade™ Moscou 1980 Games of the XXII Olympiad™ Moscow 1980 | |
대회기간 | 1980년 7월 19일 ~ 8월 3일 |
개최지 | [[틀:깃발|러시아 SFSR 모스크바[1] | ]][[틀:깃발| ]][[소련| ]]
마스코트 | 미샤 |
주제가 | Олимпиада (Olympiada / 올림피아다) Стадион моей мечты (My Dream Stadium / 나의 꿈의 경기장)[2] |
참가국 | 80개국 |
참가선수 | 5,179명[3] |
경기종목 | 21개 종목, 203개 세부 종목 |
개회선언 |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소련 최고회의 상임위원회 주석 |
선수 선서 | 니콜라이 안드리아노프 |
심판 선서 | 알렉산드르 메드베트 |
성화 점화 | 세르게이 벨로프 |
개·폐회식장 | 레닌 스타디움 |
[clearfix]
1. 개요
개회식 |
폐회식 |
올림픽 주제가[4][5] |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제치고 개최지로 확정되어[6] 공산국가 특유의 중앙집권 체제와 웅장한 것을 좋아하는 풍토를 잘 반영해서 열심히 대회를 준비했고, 당연히 각 주요도시별로 체육시설을 확충하고, 공항과 호텔, 지하철 등 인프라 공사도 대대적으로 벌였다. 이 당시에 소련의 경제가 오일머니에도 성장률이 3% 이하에 머무른 침체상태였기 때문에 해외에서 외채를 빌려서 인프라 공사를 벌인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돌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복권 발행으로 비용의 상당수를 충당했었다. 1970년부터 발행된 "스포츠 로또"의 수익금으로 대회개최비용 및 인프라 건설비용 상당수를 마련했던것이었다. 한국에서도 로또가 발행되기 이전에는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1988 서울 올림픽, 1993 대전 엑스포, 2002 한일 월드컵 재원의 상당부분을 복권 발행으로 충당했으니[7] 딱히 이상할 것이 없다.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에서 했다고 하니까 의아할 수 있으나 사실 소련은 당대 복권판매로 세계 순위권을 달리던 국가이기도 했다.
33년 6개월 후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이 열렸는데 1991년 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 연방 출범후 23년만에 열린 올림픽이 되었다.
2. 문제투성이 올림픽
당시 국제 정세와 공산권 국가 특유의 폐쇄성이 합쳐지면서 올림픽 역사상 최악의 올림픽을 선별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올림픽이다.2.1. 보이콧
1979년 12월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이 터지자 인권 외교를 표방하던 미국의 지미 카터 정부는 올림픽 보이콧을 선언했고, 이에 동조해 대한민국, 서독, 일본, 노르웨이, 캐나다, 튀르키예, 태국 등 서방 세계라 불리는 국가들 중 상당수가 올림픽 참가를 포기했다.[8][9] 그러나 그리스[10]나 아이슬란드, 스웨덴처럼 보이콧하지 않고 올림픽 대회에 참가한 서방 국가들도 있었다. 한편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와 같은 미국의 말에 무조건 따르기 싫고, 그렇다고 무턱대고 참가하긴 눈치보이는 일부 서방 국가들은 한때 대한민국 선수단의 플랜B로 거론되었던, 국기 대신 올림픽기 또는 자국 올림픽 위원회기를 들고 입장하여 이 대회 참가가 개인적인 것이라는 점을 명시해 버렸다.[11]덤으로 소련과 사이가 1960년대 이후 좋지 않았던 중국도 이 때 그냥 불참해 버렸다. 원래 이 대회를 통해 하계 올림픽 무대에 처음 데뷔할 예정이었는데 결국 4년 뒤인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으로 연기됐다. 이외에 일본과 대만도 불참했고 이슬람 혁명으로 이란도 불참했다.
대한민국도 보이콧했다. 미국의 보이콧 선언에 서방국가들이 동조하는 분위기인지라 그 영향이 당연히 한국에도 미쳤는데 '보이콧에 동참해야 한다'는 의견과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선수들에게 피해가 가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대립했고 일각에서는 '그러면 참가를 원하는 선수에 한해 태극기 대신 올림픽기를 들고 개인 자격으로라도 참가시키자'는 절충안도 나왔는데, 정서적으로는 북한의 우방국 이미지인 공산국가 소련의 심장부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대한 반감도 있고[12][13] 현실적으로는 미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서 최종 엔트리 제출 마감 1주일 전인 1980년 5월 17일이 되어서야 대한올림픽위원회(KOC) 긴급총회를 통해 결국 불참하기로 확정했다. 그런데 긴급총회의 결정이 아니더라도 국내의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참가가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긴급총회가 개최된 당일 신군부의 계엄 확대가 감행되었고, 뒤이은 5.18 민주화운동과 신군부의 정권 찬탈로 인한 국내 정국의 불안정 때문에 참가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불운을 맛본 선수들이 상당히 많은데, 대표적인 선수가 당시 여자 양궁 세계선수권 대회 우승자였던 김진호였다. 그녀는 최전성기에 올림픽과 인연을 맺지 못하면서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의 영광과는 아쉽게 멀어졌고, 4년 후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참가했지만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신예 서향순이 금메달을 차지하면서 동메달로 만족해야 했다. 그럼에도 김진호는 지금도 한국 여자 양궁 역사상 최고 선수, 즉, 신궁의 선구자로 인정받고 있다.
한편 1970년대 초반 펩시가 소련에 진출하여 짭짤하게 수익을 내자 이에 맞서 코카콜라도 소련에 진출하려 했다. 소련 당국에 지속적인 로비를 한 결과 올림픽 때 코카콜라를 팔 수 있게 허가권까지 받아냈고 이를 계기로 소련에 진출하려고 했지만 하필이면 그놈의 아프간 침공이 터지면서 미국의 보이콧으로 인해 무산되었다. 결국 1987년이 되어서야 코카콜라는 본격적으로 소련에 진출하게 되었다. 이외에도 여러 미국 패스트푸드점들이 소련에 진출하려고 했지만 마찬가지로 사업이 무기한 연기되었고, 개방을 주장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정권이 되어서야 소련에 진출하게 되었다.
역사상 다섯 번 일어난 집단 보이콧의 하나이며 그 규모가 가장 커서 파행으로 치러진 올림픽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같이 언급된다. 한 마디로 반쪽 대회. 올림픽 주 경기장인 레닌 스타디움(現 루즈니키 스타디움)은 보수를 거쳐 FC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의 홈 구장으로 쓰였으나 현재는 신축한 다른 경기장으로 홈을 이전했다. 2007-2008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열린 곳이자, 2018 러시아 월드컵의 결승전이 열린 경기장이다.
미국과 서구 국가들이 없던 자리는 소련(금메달 80, 메달 195개)을 위시로 동독(금메달 47, 메달 126개), 불가리아(금메달 8, 메달 41개), 체코슬로바키아 등의 공산권 국가들이 순위를 차지하면서 마무리되었다. 전체 메달의 약 40%를 소련과 동독 두 나라가 차지했으며, 금메달만 따진다면 60% 정도다. 이탈리아가 5위, 헝가리, 루마니아에 이어 올림픽기 들고 참가한 프랑스와 영국이 체면치레를 하는 정도였으며 북한은 26위였다.[14] 메달수로 따지면 순위는 소련, 동독, 불가리아, 헝가리-폴란드, 루마니아, 영국, 쿠바 순서가 된다.
공교롭게도 차기 개최국이 바로 미국이었는데[15] 미국이 모스크바 올림픽에 불참하게 됨에 따라 결국 차기 개최국가의 국기 게양식 때 미국의 국기인 성조기를 대신하여 로스앤젤레스의 시기(市旗)가 게양되고 미국 국가 대신 로스앤젤레스의 시가(市歌)가 연주되어 올림픽 사상 최초로 특정 국가의 도시 시기와 시가가 연주되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16]
이 때의 보복을 잊지 않은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이 칼을 갈면서, 4년 후 반쪽 대회 시즌 2가 열리게 된다. 보이콧만 한 게 아니라 공산권은 딱 LA 올림픽이 열리는 기간에 프렌드쉽 게임이라는 국제 스포츠 대회를 개최해서 흥행을 깎아먹었다. 사실 서방 진영도 규모는 작지만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 대항해 리버티 벨 클래식(Liberty Bell Classic)을 만들어 1회성 육상대회를 열기는 했다. 그리고 8년이 지나고 나서야 드디어 소련과 동유럽은 다시 참가를 하게 된다.[17][18]
2.2. 편파판정
당시 소련은 자국에서 치러지는 올림픽인 만큼 작정하고 금메달을 쓸어모으기 위해 대놓고 편파적인 판정을 남발했으며, 경기장 관중석 절대다수를 차지한 소련 국민들도 이에 동조해 외국 선수 차례가 되면 야유를 보내고 소음을 일으키는 등 방해행위를 했다.이에 항의하는 의미로 폴란드의 코자키에비치 선수가 금메달 확정 후 주먹 감자를 날린 것은 유명한 일화다.
3. 경기 종목
- 근대 5종
- 농구
- 레슬링 - 그레코로만형, 자유형
- 배구
- 복싱
- 사격
- 사이클 - 도로, 트랙
- 수영 - 경영, 다이빙, 수구
- 승마 - 마장마술, 장애물, 종합마술
- 양궁
- 역도
- 요트
- 유도[19]
- 육상
- 조정
- 체조 - 기계체조
- 축구
- 카누 - 스프린트
- 펜싱
- 필드 하키
- 핸드볼
4. 메달 집계
1980 모스크바 올림픽 메달 집계 최종 집계 | |||||||||||
<rowcolor=#c3ab4b,#ffffff> 순위 | 국가 | 메달 | 합계 | ||||||||
금 | 은 | 동 | |||||||||
1 | [[소련|]] 소련 | 80 | 69 | 46 | 195 | ||||||
2 | [[동독|]] 동독 | 47 | 37 | 42 | 126 | ||||||
3 | [[불가리아 인민공화국|]] 불가리아 | 8 | 16 | 17 | 41 | ||||||
4 | [[쿠바|]] 쿠바 | 8 | 7 | 5 | 20 | ||||||
5 | [[이탈리아|]] 이탈리아[A] | 8 | 3 | 4 | 15 | ||||||
6 | [[헝가리 인민공화국|]] 헝가리 | 7 | 10 | 15 | 32 | ||||||
7 | [[루마니아 사회주의 공화국|]] 루마니아 | 6 | 6 | 13 | 25 | ||||||
8 | [[프랑스|]] 프랑스[A] | 6 | 5 | 3 | 14 | ||||||
9 | [[영국|]] 영국[A] | 5 | 7 | 9 | 21 | ||||||
10 | [[폴란드 인민공화국|]] 폴란드 | 3 | 14 | 15 | 32 | ||||||
11 | [[스웨덴|]] 스웨덴 | 3 | 3 | 6 | 12 | ||||||
12 | [[핀란드|]] 핀란드 | 3 | 1 | 4 | 8 | ||||||
13 |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 체코슬로바키아 | 2 | 3 | 9 | 14 | ||||||
14 |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유고슬라비아 | 2 | 3 | 4 | 9 | ||||||
15 | [[호주|]] 호주[A] | 2 | 2 | 5 | 9 | ||||||
16 | [[덴마크|]] 덴마크[A] | 2 | 1 | 2 | 5 | ||||||
17 | [[브라질|]] 브라질 | 2 | 0 | 2 | 4 | ||||||
[[에티오피아 인민민주공화국|]] 에티오피아 | 2 | 0 | 2 | 4 | |||||||
19 | [[스위스|]] 스위스[A] | 2 | 0 | 0 | 2 | ||||||
20 | [[스페인|]] 스페인[A] | 1 | 3 | 2 | 6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20위권 미만 국가 순위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21 |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 | 1 | 2 | 1 | 4 | |||||
22 | [[그리스|]] 그리스 | 1 | 0 | 2 | 3 | ||||||
23 | [[벨기에|]] 벨기에[A] | 1 | 0 | 0 | 1 | ||||||
[[인도|]] 인도 | 1 | 0 | 0 | 1 | |||||||
[[짐바브웨|]] 짐바브웨 | 1 | 0 | 0 | 1 | |||||||
26 | [[북한|]] 북한 | 0 | 3 | 2 | 5 | ||||||
27 | [[몽골 인민공화국|]] 몽골 | 0 | 2 | 2 | 4 | ||||||
28 | [[탄자니아|]] 탄자니아 | 0 | 2 | 0 | 2 | ||||||
29 | [[멕시코|]] 멕시코 | 0 | 1 | 3 | 4 | ||||||
30 | [[네덜란드|]] 네덜란드[A] | 0 | 1 | 2 | 3 | ||||||
31 | [[아일랜드|]] 아일랜드[A] | 0 | 1 | 1 | 2 | ||||||
32 | [[우간다|]] 우간다 | 0 | 1 | 0 | 1 | ||||||
[[베네수엘라|]] 베네수엘라 | 0 | 1 | 0 | 1 | |||||||
34 | [[자메이카|]] 자메이카 | 0 | 0 | 3 | 3 | ||||||
35 | [[가이아나|]] 가이아나 | 0 | 0 | 1 | 1 | ||||||
[[레바논|]] 레바논 | 0 | 0 | 1 | 1 |
위 표를 보면 알겠지만 자국의 국기를 앞세우고 참가하여 10위권에 진입한 국가들은
5. 기타
- 모스크바 올림픽을 1년 앞두고 기념으로 독일 밴드 징기스칸의 노래 'Moskau(모스크바)'가 나왔다. 다만 이 영상은 모스크바 올림픽 때 나온 영상이 아니라 2013년 새해 기념 방송에서 나왔던 영상이다. 붉은 군대 합창단까지 초청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1절은 독일어 원곡 가사로 부르지만 2절부터는 러시아어 가사로 번안해 부른다.
- 에스토니아 가수인 터니스 매기(Tõnis Mägi)[31]가 부른 Олимпиада(올림피아다)는 Стадион моей мечты(나의 꿈의 경기장)보다 이 쪽이 더 듣기 좋다는 사람들도 많았으며 이 노래는 2014년 소치 올림픽 때도 다른 가수에 의해 리메이크되어 불렸다.
- IOC가 도핑테스트를 수행하기로 한 1967년부터 2016년까지 열린 올림픽[32] 중 단 한명도 금지약물에 의해 메달 박탈이 이루어지지 않은 유일한 올림픽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서방세계에서는 동구권에서 약물복용이 워낙 일반화되다 보니 제대로 약물검사를 하지 않은것으로 치부하고 있으며 Chemists' games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는 소련 시절부터 체육계의 약물 문제가 거론되었다.
- 미국이 예상을 깨고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본선 티켓을 받지 못하고 탈락하면서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 이어서 2018년 월드컵에서 불참했다는 농담이 미국 인터넷 상에서 돌아다니기도 했다.
-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서 일본이 당시 이 올림픽 참가를 보이콧했던 사실이 소설의 내용 전개에 사용되었다.
- 로쿠데나시 블루스에서 콘도 마사히코 선생이 과거 프로 레슬링 선수로 국가대표였다는 과거가 나온다. 그런데 1972 뮌헨 올림픽과 1976 몬트리올 올림픽을 앞두고 연이어 병이 나서 수술받느라 나가지 못했다. 드디어 1980년 이 올림픽 국대선수 자격을 얻었지만 일본도 불참해서 이렇게 해서 올림픽에 한번도 나가지 못했다. 이 이야기를 들려줄때 다들 신나게 웃어서 콘도 선생은 화냈지만 주인공인 마에다 타이슨은 엉엉 울면서 "불쌍하다, 선생님. 그렇게도 나가고 싶어했을 꿈인데 그렇게 다 이루지 못했으니 너무나도 불쌍해...."라고 슬퍼하는 통에 다들 아연실색하고 콘도 선생조차도 어...응....이렇게 대했다.
- 모스크바 북동부의 이즈마일로보 역 근처에 세워진 이즈마일로보 호텔 시리즈는 모스크바 올림픽 당시 모스크바를 방문하는 외국인 응원단 및 선수들을 수용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호텔 단지며 오늘날에도 운영 중이다.
- 당시 모스크바를 방문했던 선수단이나 응원단 중 모스크바 현지인 여성들을 임신시키고 잠적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에는 일반인들 사이에서 휴대전화나 인터넷 같은게 보급되기 훨씬 전이었고, 모스크바 올림픽 당시 원치 않은 임신으로 태어난 사람들 중에는 생부와 연락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러시아 흑인 문서 등등 참조.
- 모스크바 올림픽를 두고, 간혹 보이콧때문에 소련내 흥행이 망했다고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 당시 소련인들에게 있어서도 자국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올림픽인 만큼 관심이 당연히 지대하였고, 여유가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다들 표를 구하려고 애썼기에 표를 구하려는 경쟁은 매우 치열했다. 특히 입장표 발행량이 소련 전체 인구에 비해 턱 없이 모자란데다가, 그나마도 다수의 표는 기업과 기관, 학교 단위로 배분했기 때문에 개인이 따로 표를 구하기가 더더욱 힘들었다. 이 때문에 축구, 농구, 핸드볼, 권투 등 인기종목이나 체조같이 소련이 메달을 잘따내는 종목 경기의 경우는 암표가 판을 쳤다.
- 이때 소련 당국에서 체육복 단복을 아디다스사에서 주문했는데, 그 영향으로 소련에서 아디다스 체육복과 운동화, 슬리퍼가 대유행하였으며, 짝퉁들도 양산되어서 고프닉을 상징하는 스테레오 타입도 아디다스 츄리닝복이 될 정도였다.
[1] 모스크바 이외의 지역에서도 일부 종목이 개최되었으니 러시아 SFSR, 벨라루스 SSR, 우크라이나 SSR, 에스토니아 SSR 공동개최다.[2] 두 곡 중 어느 곡이 공식 주제가인지는 불분명하며 당시 특정 한 개의 곡을 공식 주제가로 지정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참고로 올림피아다가 공식 주제가라는 한국 기사가 존재한다. #[3] 남자: 4,064명, 여자: 1,115명[4] 두번째 주제가의 경우 소련 음악치고는 소련이나 공산주의를 찬양, 미화하는 가사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마르크스주의는 스포츠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을 위해 돈을 철저히 배제한 아마추어화를 추구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현재의 스포츠 세상이 벌이는 돈판을 생각해 보면 아이러니한 일.[5] 자세히 보면 위 동영상은 모스크바 올림픽 개회식 동영상이 아니다. 개회식 동영상과 위 동영상을 비교하면 성화 점화시 카드섹션 색상이 서로 다를 뿐더러 위 동영상에는 올림픽을 상징하는 오륜기도 없고 공식 마스코트인 미샤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이 동영상은 1979년 소련 전국체전 당시 동영상으로, 소련 정부가 올림픽을 앞두고 선전을 위해 전 세계 각국의 선수들을 초청해서 성대한 행사를 치렀다.[6] 39대 20, 거의 더블스코어 차이로 이겼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가 바로 다음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었는데, 결국 둘 다 사이좋게 반쪽짜리 올림픽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물론 그 두 올림픽은 서로 거의 정반대 격의 차이가 있었는데 1980 모스크바 올림픽이 자본주의 국가들이 불참했던 대회였다면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은 공산주의 국가가 불참했던 대회였다.[7] 서울 아시안 게임과 서울 올림픽 당시에는 주택복권의 발행을 일시중지하고 올림픽복권을 발행했고, 대전 엑스포를 개최했을 당시에 엑스포복권이라는 명칭으로 즉석복권을 발행했으며, 한일 월드컵 당시에는 주택복권이나 신용카드 복권, 복지복권, 자치복권 등 이미 존재한 여러 복권들과 별도의 복권인 월드컵 복권을 발행했다.[8] 그러나 같은 나라면서 선수단을 따로 보내는 푸에르토리코는 참가했다. 푸에르토리코 올림픽 위원회는 권투 선수 세 명을 출전시켰고, 이 세 선수만이 미국 여권을 들고 와서 참가한 선수가 되었다. 단, 푸에르토리코 깃발이 아닌 올림픽기를 앞세워 개인 자격으로 입장하였다. 반대로 영국 본토는 참가했지만 홍콩은 불참했다.[9] 한편, 라이베리아는 개막식까지는 정상적으로 참여하여 선수단까지 파견했으나 개막식 이후 보이콧을 강행하였다.[10] 올림픽의 발상지이기도 한 그리스의 경우 올림픽 대회에서 입장할 때 가장 먼저 입장하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참가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1980년 올림픽은 친 그리스 국가인 키프로스의 첫 올림픽 무대였다.[11] 국기 대신 자국 올림픽위원회기를 내세우고 참가한 나라는 스페인, 포르투갈, 뉴질랜드, 그리고 올림픽기를 내세우고 참가한 나라는 호주, 덴마크, 푸에르토리코, 안도라. 한편 개막식에서도 선수단이 개막식 입장을 거부하고 소련 측 주최 관계자가 대신 올림픽기를 들고 입장한 나라는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위스, 룩셈부르크, 산마리노였으며 영국, 아일랜드처럼 개막식에서 임원 한 명만 올림픽기를 들고 입장한 경우도 있었다.[12] 그렇지만 대한민국은 이미 1973 모스크바 하계 유니버시아드와 민스크 세계 레슬링 선수권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1960년대 말부터는 '공산권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에 참가하지 않는다.'란 원칙은 없어서 여건이 되면 다 참가했다. 대통령이 바뀌진 않았지만 1962년 월드컵 지역예선 때와는 입장이 상당히 달라진 듯. 다만 반대로 1980년대 초까지는 공산권 국가들은 '남조선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에 참가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존재했다. 지금 보기는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올림픽과 인지도도 낮고 대부분이 아마추어 대학생들로 이루어진 유니버시아드가 크게 차이가 나게 보이지만, 1973년 당시에는 올림픽 메달도 따기 힘든 시절이라 당시 유니버시아드에 관심이 높았고, 이 대회 참가는 큰 이슈가 되었다. 메달을 따자 '적의 심장부에 태극기를 올렸다'는 기사들도 올라왔다.[13] 그 후 1983년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이후에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계유도선수권에는 불참했다. 다음 1985년 대회 개최지가 서울특별시였음에도 대회를 보이콧한 것이다.[14] 은메달 3에 동메달 2개. 금메달이 없어서 순위는 더 낮았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금메달 4개, 동메달 5개(금, 은, 동 순 16위)가 최고 성적이고, 이건 3번째로 높은 성적이다.(2012 런던 올림픽 20위) 다만 메달 개수로 따지면 의외로 1992년에는 21위, 2012년에는 순위권 밖이었다.[15] 같은 해 열렸던 동계 올림픽 개최지도 미국 뉴욕주 레이크플래시드. 주로 동계올림픽이 연초에 열리기 때문에 같은 해에는(1992년까지) 동계 대회가 먼저 열리게 된다. 그 대회 당시 서방 국가들의 모스크바 올림픽 불참이 예측되었지만, 이 때는 동구권 선수들이 그냥 참가하고 다음 하계 올림픽 때 보복했다. 중국도 참가했다.[16] 미국 측이 국기 게양과 국가 연주를 거부했다. 미국은 선수는 참가시키지 않았지만, 일부 임원과 심판은 파견했다.[17] 단, 북한 등의 일부 국가는 보이콧을 했다.[18] 그리고 다시 참가했던 소련은 그 올림픽에서 기어이 종합 1위를 차지했다. 이후 그 다음 올림픽이 열리기 1년도 채 안된 시기에 나라 자체가 붕괴되는 바람에 소련이라는 이름으로서의 마지막 영광이 되고 말았다.[19] 종주국인 일본이 보이콧하였기에 역대 올림픽 유도 중 일본 없는 유도 경기다.[A] 개인자격으로 참가[A] [A] [A] [A] [A] [A] [A] [A] [A] [30] 심지어 북중미 카리브의 공산국가 쿠바를 제외하면 모두 동유럽과 남유럽의 공산국가이다.[31] 참고로 아이러니하게도 터니스 매기는 후일 에스토니아에서 분리독립 움직임이 활발해지자 이에 동참했다. 노래 혁명 영상에서도 나올 정도다.[32] 1968년 멕시코시티부터 2016년 리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