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8 00:13:37

벨기에

  • 지명, 인명은 언어별로 다르게 불릴 수 있습니다.
  • 네덜란드어, 프랑스어로 나누어 작성되어 있습니다.
벨기에 왕국
Koninkrijk België
Royaume de Belgique
Königreich Belgien
파일:벨기에 국기.png 파일:벨기에 국장.png
국기 국장
상징
국가 La Brabançonne
국화 없음
국조 없음
국가 코드 BE
표어 통합이 힘을 만든다[1]
역사
1831년 7월 21일 벨기에 왕국 성립
면적
30,528㎢
수도
브뤼셀[2]
인문 환경
전체 인구 11,376,000명(2018년 1월 1일)[3]
인구 밀도 373명/㎢(2018년 1월 1일)
출생 인구 122,000명(2015년)
기대 수명 81세(2015년)
출산율 1.78명(2015년)
공용 언어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독일어
종교 기독교 60.7%(가톨릭 52.9%, 개신교 2.1%, 정교회 1.6%, 기타 4.1%), 무종교 32.0%, 이슬람 5.2%, 기타 2.1%
군대 벨기에군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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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양원제
국왕 필리프(Filip)
총리 샤를 미셸(Charles Michel) }}}}}}
경제
GDP 5,622억 2,900만 달러(2018년)
1인당 GDP 49,272 달러(2018년)
GDP(PPP) 5,506억 6,400만 달러(2018년)
1인당 GDP(PPP) 48,258 달러(2018년)
공식 화폐 유로(€)
ccTLD .be[4]
단위
기년법 서력 기원
시간대 중앙 유럽 표준시 (UTC+01:00)
도량형 SI 단위
외교
대한 수교 현황 대한민국: 1961년, 북한: 2001년[5]
국제 연합 가입 1945년
주한 대사관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로45길 23
여행 경보
여행 유의 브뤼셀을 제외한 전지역
여행 자제 브뤼셀
위치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90px-EU-Belgium.svg.png


1. 개요2. 상징
2.1. 국호2.2. 국기2.3. 국가
3. 언어4. 역사5. 인구6. 행정 구역7. 사회8. 정치9. 경제10. 군사11. 문화12. 외교
12.1. 대한민국과의 관계12.2. 주변국과의 관계12.3. 외교공관 관련 이야깃거리
13. 사건사고
13.1. 플란데런 독립 페이크 뉴스속보 사건13.2. 2011년 리에주 총기난사 사건13.3. 안드라스 팬디 사건13.4. 마르크 뒤트루 사건13.5. 2016년 브뤼셀 테러13.6. 2018 리에주 테러
14. 출신 인물15. 창작물에서16. 기타17. 관련 문서18. 같이 보기

1. 개요

벨기에는 네덜란드의 남쪽, 프랑스의 북쪽에 위치한 서유럽의 입헌군주국이다.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와 함께 베네룩스로 불린다. 수도는 브뤼셀(Bruxelles, Brussel).[6]

네덜란드와 함께 연합 왕국을 구성하였으나(1815–1839), 얼마 못 가 갈라졌다. 네덜란드가 벨기에와 네덜란드 사이를 흐르는 강의 정비를 제대로 하지 않자 홍합 불매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7] 네덜란드와의 국경 지대 중에 바를러라는 곳이 있는데, 국경이 정말 복잡해서 월경지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지리적으로 개방되어 있는데다가 강력한 국가들에 둘러싸여 있어 나폴레옹 전쟁과,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에서 격전지가 되었다. 현재는 유럽연합 본부와 의회, 북대서양 조약기구 본부가 있는 유럽의 중요한 국가가 되었다.

벨기에의 총리를 지낸 헤르만 판 롬푀이(Herman Van Rompuy)가 유럽연합 정상 회의[8] 의장(President of the European Council)으로 활동하고 있다.

2. 상징

2.1. 국호

벨기에는 로마 제국갈리아 점령 이전에 이 지역에 살았던 갈리아-게르만 민족의 일파인 벨가이(Belgae) 족에서 유래한 말이다. 벨기에라는 발음은 네덜란드어 België를 옮겨적은 것에서 유래했는데, 실제 발음은 '벨히어'에 좀 더 가깝다.

벨기에는 지역명으로 쓰였던 이름은 아니며, 원래 이 지역은 네덜란드와 통틀어서 저지대라고 불렸던 지역으로, 오늘날 벨기에가 있는 지역도 '네덜란드'[9]라고 불렀다.

프랑스 대혁명이 끝나고 벨기에 지역은 새로 형성된 네덜란드 연합 왕국의 영토가 되지만 두 지역이 화합하기는 어려웠다. 국가의 중심이 연합 왕국 북부로 쏠리고 남부에 대한 차별이 계속되자 남부는 1830년에 벨기에 혁명을 일으켜 국호를 벨기에(벨기에 왕국)로 채택해 독립한다.

2.2. 국기

파일:external/images.uncyc.org/Flagg_Belgia.gif

네덜란드어: Vlag van België, 프랑스어: Drapeau de la Belgique, 독일어: Flagge Belgiens

공식적인 비율은 13:15며, 세 색깔들은 가로를 3등분하는 수직의 선으로 나누어진다. 이 비율은 자신들이 정해 놓았지만 어떤 경위로 지정되었는지 불확실하다. 통상적으로는 2:3인 국기를 쓰고 간혹 정부 기관에서도 세로:가로 비율이 2:3인 국기를 쓰기도 한다. 검은색, 노란색, 빨간색의 삼색기다.

벨기에 혁명이 시작된 다음날인 1830년 8월 26일, 브뤼셀 시청에서 네덜란드의 국기가 끌어내려졌고, 그 자리는 검정, 노랑, 빨강의 삼색기로 급히 대체되었다. 이 삼색기는 벨기에 합중국이 세워지도록 했던 브라반트 혁명 당시 사용된 기에서 본따온 것이다. 이 때는 세로가 아닌 가로 줄무늬의 국기였으나, 1831년 1월 23일, 세로 줄무늬로 공식적으로 바뀌게 되어 현재의 국기가 제정되었다.

독일의 국기와 배색이 비슷한데 독일의 국기는 형태가 가로형인데다 색도 검정, 빨강, 황금으로 조금 다르다. 순서도 벨기에는 빨강이 끝에 오나, 독일은 빨강이 가운데다.

2.3. 국가

국가는 La Brabançonne이다.

3. 언어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50px-BelgieGemeenschappenkaart.png

벨기에에서는 다양한 언어가 사용되며, 네덜란드어(노랑), 프랑스어(빨강), 독일어(파랑)가 공용어다.

국민 통합을 위해 네덜란드어권은 제1외국어로 프랑스어를 하고, 프랑스어권은 제1외국어를 영어와 네덜란드어 중에 선택한다. 브뤼셀의 프랑스어권 학교 학생은 의무적으로 네덜란드어를 제1공용어로 배워야한다. 그러나 현지 사람들도 제2공용어는 간신히 알아듣는 수준이다.

프랑스어권으로 들어가면 (브뤼셀 제외) 영어 의사 소통이 힘들다. 프랑스어권에서는 대학생들도 취업 전까지는 프랑스어밖에 못하는 사람들이 상당수다. 네덜란드어권은 영어가 비교적 잘 통한다.

수도 브뤼셀(빗금 지역)은 벨기에 프랑스어권 중 영어와 네덜란드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인구가 꽤 많지만 이것도 완전한 수준은 아니다.

벨기에에서는 네덜란드어를 쓰기는 하나 벨기에의 네덜란드어는 네덜란드의 네덜란드어와는 좀 달라서 따로 플람스어(Vlaams)라 하기도 한다. 다만 네덜란드어권 사용자나 네덜란드어를 제2공용어로 사용하는 사람에게 네덜란드어나 플람스어를 하는지 물을 때는 이 말에 지역적인 의미가 있어서 사용에 주의해야 한다. 플란데런과 벨기에 연방 정부는 공식적으로 네덜란드어를 사용한다. 그리고 정부 기관에서도 네덜란드어권 화자, 네덜란드어 사용 기구라고 하지 Vlaams(플람스) 사용자라고 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국가 사이에서 네덜란드어가 널리 인정되고 프랑스어권과 동등하게 하나의 정식 공용어로 쓴다는 의미가 포함되어있다. 물론 네덜란드어와 플람스어는 좀 차이가 있다. 그래서 실생활에서 플람스어를 하는지 현지인이 묻는 경우 벨기에식 네덜란드어를 하는지를 물어보는 것이다.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네덜란드어를 하는지 물어보는 것이 더 맞다. (어차피 대답을 듣는 그 순간부터 어느 지역 화자인지 대충 추측이 가능하다)

Vlaams를 플럼스라고 읽을 경우 일반적으로 West-Vlaams라 하는 West-Vlaanderen에 기반하는 사투리를 의미한다. 동부와 서부 간에 언어 차이도 제법 난다.

Vlaams는 비하의 용도로 쓰이기도 했다. 네덜란드어권 화자들 중에 네덜란드인이 플람스어를 한다는 표현을 쓰거나 혹은 프랑스어권 화자가 이 표현을 쓰면 경우에 따라 인종적, 지역적 비하가 있는 표현일 수 있다. 벨기에 분리 직후 왈롱이 국가 주도권을 잡고 플라망어 사용자라고 해서 사회 전반에서 네덜란드어권 화자들을 제외시킨 것에서 비롯된다.

공용어가 세 개기 때문에 벨기에의 국가(La Brabançonne) 1절은 프랑스어, 2절은 독일어, 3절은 네덜란드어로 작사되었다.

대부분의 지역 명칭에는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 명칭이 동시에 붙어 있는데, Aalst/Alost, Antwerpen/Anvers, Liège/Luik, Mons/Bergen처럼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하거나 전국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케이스도 있지만, Jodoigne/Geldenaken처럼 도저히 한쪽만 듣고는 구별하는 것이 불가능한 소도시들도 매우 많다. 언어권의 구분이 너무 확실해서 이중 언어 지역인 브뤼셀을 제외하면 프랑스어 지역에서는 도로 표지판이 프랑스어로만 되어 있고, 네덜란드어 지역에서는 네덜란드어로만 되어 있어서 한쪽 이름만 아는 상태로 돌아다니다간 길을 찾기 쉽지 않다. 철도 안내 방송도 마찬가지.

미스, 미스터 벨기에는 국민 통합을 위해 반드시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를 자유롭게 구사해야 한다.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마저도 두 언어를 모두 할 줄 알아야 한다. 마르크 빌모츠는 감독으로서 전술, 선수 기용 등 여러 면에서 잘 쳐줘야 평범한 수준임에도 언어권별로 단합하기 쉽지 않은 선수단을 휘어잡을 수 있는 벨기에 축구계의 보기 드문 이중 언어 구사자라는 이유로 계속해서 지휘봉을 잡고 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여러 이유로 아예 영어로 의사 소통할 정도다.

다양한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이 많아서 조금만 성공하면 프랑스나 네덜란드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네덜란드보다도 주로 규모가 큰 프랑스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왈롱 지방에는 벨기에식 프랑스어[10]가 많이 쓰이지만, 왈롱어라는 언어도 있다. 프랑스어와 같은 오일제어(langues d'oïl)에 속하는데, 프랑스어의 벨기에 방언으로 취급하는 경우도 있지만 언어학자들은 프랑스어와 가까운 다른 언어로 취급한다. 현재는 벨기에식 프랑스어에 밀려서 60만명 정도만 왈롱어를 사용한다. 비슷하게 서플란데런어라는 언어가 플란데런 지방 서부에서 쓰이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네덜란드어의 방언으로 취급하지만 표준적인 네덜란드어와 의사 소통이 불가능할 정도로 상당히 달라서 언어학자들이 별개의 언어로 분류하기도 한다. 1990년대 말기에 140만명 정도가 사용하는 걸로 조사되었다. 왈롱어와 서플란데런어는 유네스코에 의해 소멸 위기 언어로 지정되었다.

그 외에도 벨기에는 영어를 주요 외국어로 많이 가르치고 있는 편이다. 아랍계 이민자들도 많은 편이라서 아랍어도 학교에서 가르치는 편이고, 스페인어, 터키어도 가르치고 있다. 일부 이민자들에 의해 이탈리아어, 러시아어도 사용된다.

대부분의 통번역 대학에서 필수적으로 가르치는 언어는 벨기에 공용어들을 제외하고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 폴란드어, 포르투갈어, 아랍어 등이 있다. 네덜란드어권 한정으로 통번역 대학의 경우 네덜란드어를 제외한 두개의 추가 언어를 통번역 언어로 배워야 한다.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통역의 수요가 굉장히 높다. 특히나 정치적으로 정확한 통역이 필요하기에 가르치는 곳도 많은 편이다. 벨기에 국회와 정부 기관에서는 외부 통역사나 통역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중요 통역 언어를 반드시 정부에서 지정된 법정 통역사들이 직접 통역을 해야만 한다. 브뤼셀과 연방 의회에는 뒷편에 통역 부스가 의무적으로 있다. 다른 지방 의원들이 연설과 발언을 할 때 의원들은 좌석에서 통역 버튼을 누르고 헤드셋을 착용하고 듣는다.

벨기에 왕족은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를 모두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독일어는 특별한 규정은 없다. 오히려 제1차 세계 대전 중 독일의 만행으로 인해 인해 왕가 내에선 독일에 대한 반감으로 1920년에 기존의 독일계임을 상징하는 가문명인 작센-코부르크-고타(Sachsen-Coburg-Gotha)를 버렸고[11] 영어로 of Belgium에 해당하는 성씨로 변경했다. (프랑스어: de Belgique, 네덜란드어: van België, 독일어: von Belgien)[12] 공용어가 3개이므로 이름을 각 언어별로 3개씩 쓸 수 있으나 대부분의 왕족은 독일어 이름을 따로 두지 않고 벨기에 독일어 공동체에서도 프랑스어 이름을 공식적으로 사용한다.

벨기에의 국가인 브라방 찬가(La Brabançonne)는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독일어, 왈롱어 가사가 각각 존재하며, 국가적인 공식 행사에서는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섞은 것을 쓰는 경우가 많다.[13] 벨기에의 어떤 공주가 국가를 부르는 도중에 프랑스어로 된 국가는 무사히 불렀는데 네덜란드어로 된 국가를 틀리는 바람에 플란데런 사람들에게 국가의 왕족이면서 국어도 모른다고 비난받았다.

현 국왕의 경우 왕세녀를 네덜란드어권 공립학교에 보냈다. 네덜란드어권이 왕실에 대해 가진 반감을 줄이려는 걸로 보인다. 기존의 왕족들의 경우 대다수가 프랑스어권 학교에서 재학했다.

4. 역사

기원전 58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저지대 지역에 거주하던 켈트 족의 일파인 벨가이 족을 정벌했다는 기록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카이사르는 갈리아 전기에 벨가이 족이 가장 용맹하다고 기록했지만 벨가이족을 정벌하는데 어려웠던 것을 변명하려고 적은 것일 수도 있다.

이후 프랑크 왕국과 동프랑크 왕국에 편입되었다. 신성 로마 제국이 성립되고 나서 저지대 지역에는 신성 로마 제국의 영방인 플랑드르, 브라반트, 홀란트 등의 여러 공국들이 등장하였으며 저지대 지역은 교통의 요지로 사람이 많이 드나들어 상업 발달에 적합한 위치였기 때문에 서유럽에서 부유한 지역으로 성장하였다. 과거부터 유럽에서 부유한 지역들 중 하나[14]여서 많은 국가들이 노렸기 때문에 다른 국가의 지배를 받으면서 지냈다.

15세기 초 벨기에 지역에 위치했던 플랑드르 백국, 에노 백국, 브라반트 공국 등을 프랑스의 부르고뉴 공국[15]이 거의 강제로 전부 상속받으면서 북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네덜란드 지역이 부르고뉴 공국의 통치 아래로 들어갔다. 1477년 부르고뉴 공작이던 용담공 샤를이 남자 계승자를 남기지 못하고 전사하자 부르고뉴와 저지대의 병합을 노리던 프랑스는 부르고뉴를 침공하였고 이것을 막기 위해 샤를의 유일한 후손이었던 외동딸 마리 드 부르고뉴 여공작이 합스부르크 가문의 오스트리아 대공작 막시밀리안 1세와 결혼하면서 저지대는 부르고뉴와 함께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마리와 막시밀리안의 아들인 펠리페 1세는 유화적인 통치를 하여 대체로 지지를 얻었다.

합스부르크의 저지대[16]는 막시밀리안 1세와 펠리페 1세를 거쳐 카를 5세가 물려받게 되었다. 이후 카를 5세는 네덜란드 북부까지 저지대 지역을 완전히 차지하였고, 저지대 지역을 17개 주로 개편한다. 카를 5세는 플랑드르헨트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저지대를 고향으로 여겼고 어느정도 애착심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수많은 전쟁을 수행했던 카를 5세에 의해 점차 과중한 세금에 시달리게 되자 결국 플랑드르가 반란을 일으켜서 카를 5세와의 관계가 크게 악화되었다. 게다가 네덜란드에 칼뱅파 개신교가 확산되자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카를 5세는 나이가 들어서 네덜란드의 개신교도들을 크게 탄압했다.

1556년 카를 5세가 아들 펠리페 2세에게 스페인, 남부 이탈리아와 함께 저지대 17개 주를 물려준다. 카를 5세 시절에는 그래도 스페인과 동등한 합스부르크의 영토 중 하나의 대우를 받았으나[17] 스페인에서 나고 자랐고 가톨릭 신자였던 펠리페 2세는 스페인을 본국으로 여기고 네덜란드에는 총독을 파견하여 강압적인 통치를 했다. 특히 저지대의 칼뱅파 개신교도들을 억압하려 들면서 합스부르크에 대한 반감이 커져갔다.

1568년 스페인의 폭정에 대항해 네덜란드어권의 북부 7개 주[18]가 반란을 일으키면서 80년 전쟁이 일어났는데 남부 10개 주는 반란에 참여하지 않고 중립을 유지했다.[19] 1579년 같은 네덜란드어권의 플란데런,[20] 안트베르펜, 브라반트의 3개 주가 추가로 반란에 동참해 기존의 반란을 일으킨 네덜란드어권의 7개 주와 함께 위트레흐트 동맹을 결성하고 프랑스어권의 나머지 7개 주가 스페인에 협력하는 아라스 동맹을 결성한다. 반란에 추가로 동참한 3개 주는 저지대 17개 주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지역이었는데 3개 주는 저지대 중에서도 가장 부유한 지역이었으며, 스페인의 저지대 지역의 행정 중심지가 브라반트의 중심 도시 브뤼셀이기도 했다. 스페인에 잔류한 프랑스어권 7개 주와 인접해 있어서 공격하기 가장 쉬웠기 때문에 이 3개 주는 스페인 진압군의 첫 번째 목표가 되었다.

스페인군 사령관 알레산드로 파르네세의 활약으로 1585년 안트베르펜이 함락당하면서 결국 3개 주는 다시 굴복하였다. 이때부터 가톨릭의 남부 10개 주(벨기에)와 개신교의 북부 7개 주(네덜란드)가 나뉘게 되었다. 3개 주의 개신교도들은 가톨릭으로 개종할 것을 강요받았으나 대부분 개종을 거부하고 북부 네덜란드로 이주했다. 그 결과 3개 주는 가톨릭 다수 지역이 되었으나 원래 거주하고 있던 칼뱅파 개신교도들이 대거 북부로 빠져나가면서 산업의 중심지가 북부로 이동하였다. 과거에는 벨기에 지역이 네덜란드 지역에 비해 인구가 많은 지역이었지만 전쟁을 끝낸 1609년에는 벨기에 지역의 인구는 1,600,000명이고 네덜란드 지역의 인구는 1,500,000명으로 거의 차이가 나지 않게 되었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에서 북부 7개 주가 네덜란드로 독립하는 것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었지만 남부 10개 주는 계속해서 스페인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1714년에는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의 결과로 스페인의 네덜란드를 오스트리아에 본거지를 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이 가져갔고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의 지배에 벨기에 지역은 저항했다. 1789년 프랑스 왕국에서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자 프랑스 혁명군에게 공격을 받아 프랑스의 영토가 되었고 혁명에 호응하여 1790년에 벨기에 합중국을 세우게 된다. 비록 벨기에 합중국은 1년을 채 못 가고 다시 진압당하지만 벨기에라는 이름을 가진 첫 독립 국가로 벨기에의 국가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다.

이후 1815년에 열린 빈 회의에서 벨기에를 네덜란드에 편입시켜 네덜란드 연합 왕국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가톨릭이 다수였던 벨기에 지역은 개신교를 신봉하는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1830년 7월 혁명 이후 벨기에 지역은 네덜란드를 상대로 벨기에 혁명을 일으켰다. 1815년에 연합 왕국이 형성될 시기에는 벨기에의 인구는 많이 증가해서 3,400,000명이었고 네덜란드의 인구는 2,400,000명이었기 때문에 벨기에가 네덜란드보다 인구는 많았지만 주도 세력은 벨기에보다 네덜란드였다. 결국 벨기에는 네덜란드와 분리되었고 1831년 런던 회의에서 영국, 프랑스, 프로이센 등의 주요 국가들로부터 분리 인정과 중립화를 약속받았다. 벨기에는 작센코부르크고타 가문의 레오폴드를 레오폴드 1세로 국왕으로 추대한다.

분리된 이후 식민지 개척을 해서 1885년부터는 자국보다 80배나 더 큰 콩고를 식민지로 가졌던 식민 국가가 되었다. 콩고 땅은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의 사유지였기 때문에 개인의 영토로는 엄청났다. 레오폴드 2세는 식민지를 갖기 위한 군사력을 가질 수 없었지만, 당시 주요 국가 간의 관계의 틈을 노리는 동시에 리빙스턴, 스탠리의 탐험을 지원하는 전략을 통해 콩고를 얻어서 콩고(지금의 콩고민주공화국) 지역의 수백명의 부족장들로부터 서명 등을 받아 '콩고 자유국'이라는 이름으로 벨기에의 식민지를 만들었다.

하지만 가혹한 레오폴드 2세의 식민지 운영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되거나 기근과 질병으로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고무, 다이아몬드, 야자유, 상아를 생산하기 위해 원주민을 혹사했는데, 할당량을 못 채운 사람은 한쪽 팔이 잘려나가고 한 번 더 못 채우면 바로 죽여서 남은 할당량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식으로 무자비하게 학살하였다. 현지의 관리인들은 열심히 일하는 증거로 잘린 팔이 가득한 바구니를 내세우고는 했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마을 사람 전체가 살해당하기도 했으며, 할당량을 위해 사람들끼리 돌을 들고 서로 싸우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렇게 모은 당시 왕의 개인 재산은 상당했고 자신은 한 번도 콩고에 방문한 적이 없었지만, 그 재산 덕에 브뤼셀 등의 주요 도시에 수많은 공적 건물이 들어섰다. 이러한 통치는 제국주의가 일반적이었던 시절이었음에도 다른 국가들의 비난을 받을 정도였으며 결국 벨기에 의회가 콩고 식민지를 레오폴드 2세에게서 빼앗기에 이르렀다.

레오폴드 2세가 죽고 즉위한 조카 알베르 1세는 실추된 명성을 꽤 회복했다.[21] 1913년 벨기에의 인구는 7,700,000명으로 훨씬 많은 인구를 상대해야 했지만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때 독일군의 공격을 받아 국토 대부분을 점령당해서 최대의 격전지가 되었으며 이후 에방 에말 요새를 건설하는 등 대비를 하였으나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또 독일군의 공격을 받아 전 국토가 넘어가버렸다. 그의 아들 레오폴드 3세가 제2차 세계 대전 때 독일군에게 항복해서 명성도 다시 추락했다.[22] 1949년 벨기에의 인구는 8,600,000명으로 그래도 어느 정도는 유지했다. 결국 나치가 패배한 이후 국민 투표에서 57%의 압도적이지는 않은 찬성을 얻어 왕가가 돌아오긴 했지만 레오폴드 3세는 나치를 막아내지 못한 책임을 지고 퇴위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전쟁에 더이상 휘말리는 일을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영구 중립을 포기하면서 나토에 가입하고 적극적으로 국제 기구를 유치한다. 마셜플랜을 시작으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부터 석유파동 이전까지 성장세를 유지했고, 이후로도 제조업 중심의 산업에서 제약 등의 첨단 산업과 서비스업으로의 전환에 성공했다.

5. 인구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벨기에/인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행정 구역

-1 {{{#000000 '''[[벨기에]]의 행정구역''' }}}
-1 {{{#FFFFFF '''[[플란데런|{{{#FFFFFF 플란데런}}}]]'''}}}
안트베르펜 림뷔르흐 플람스브라반트
오스트플란데런 베스트플란데런
-1 {{{#FFFFFF '''[[왈롱|{{{#FFFFFF 왈롱}}}]]'''}}}
브라방왈롱 에노 리에주
뤽상부르 나뮈르
-1 '''[[브뤼셀|{{{#FFFFFF 브뤼셀 수도권 지역}}}]]'''
리에주 주의 지방자치단위 중 9곳은 벨기에 독일어 공동체 관할구역이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px-Flag_of_Flanders.svg.png
플란데런 지역과 플람스(네덜란드)어 공동체의 기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px-Flag_of_Wallonia.svg.png
왈롱 지방과 프랑스어 공동체의 기[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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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 공동체의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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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셀 수도권의 기[24]

벨기에는 여러 지역과 언어 공동체들로 나누어져 이것들이 연방의 구성체를 이룬다. 벨기에의 모든 영토는 지역과 언어 공동체라는 두 구성체에 동시에 소속된다. 이렇게 두 가지 유형의 구성체가 한 영역을 동시에 포함하는 방식은 다른 연방 국가에서 볼 수 없는 벨기에만의 독특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언어권(gemeenschap)의 경우 교육을 맡고, 지역(geweest)의 경우 그외의 행정(의료, 교통 등)을 맡는 형식이다.

1970년에 지역권과 언어 지역을 설정하고 벨기에 전국이 지역권과 언어 지역에 동시에 속하게 구성하였다. 이때의 지역권과 언어 지역은 단순히 지역을 구분하는 기준이었을 뿐 행정 조직이나 의회는 없었다. 다시 말해 처음부터 연방의 구성체라는 개념으로 출발한 것은 아니다. 각 지역권과 언어 공동체에 의회와 행정 조직이 생긴 것은 1980년대 말이다.

언어 사용 실태에 따른 언어 지역은 4가지로 나뉜다. 네덜란드어-프랑스어 이중 언어 지역은 네덜란드어 사용자와 프랑스어 사용자가 섞여 산다. 벨기에의 수도인 브뤼셀과 주변 지역에 해당한다. 네덜란드어 지역은 네덜란드어를 사용한다. 북부 네 개 주와 Brabant(네덜란드어: 브라반트, 프랑스어: 브라방) 주의 북부다. 브뤼셀을 제외한 플란데런 지역에 해당한다. 프랑스어 지역은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남부 네 개 주와 Brabant 주의 남부다. 왈롱 지역 대부분(독일어 지역을 뺀 나머지)에 해당한다. 독일어 지역은 독일어를 사용한다. 왈롱 지역 동쪽 일부 리에주(Liège) 주의 오스트칸토네(Ost-Kantone) 행정구에 속하는 11개 지방 자치체[25] 가운데 9개다. 본래 독일 영토였지만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벨기에에 포함된 지역 중 일부다. 프랑스어권이 된 지역도 있어서 과거에 얻은 모든 지역이 독일어 공동체로 지정되어 있진 않다.

지리에 따른 지역권은 3가지로 나뉜다. 플란데런 지역(네덜란드어: Vlaanderen, 프랑스어: Flandre, 영어: Flanders)은 플란데런 지역의 가운데이자 브라반트 주의 가운데에 있는 브뤼셀 수도권은 포함하지 않는다. 단 의회 등에서 플람스어(벨기에 네덜란드어) 공동체와 기능이 병합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 지역 밖에 있는 브뤼셀을 수도로 취급한다. 왈롱 지역(프랑스어: Wallonie, 네덜란드어: Wallonië, 영어: Wallonia)은 수도를 나뮈르(Namur)로 한다. 브뤼셀 수도권(프랑스어: Région de Bruxelles-Capitale, 네덜란드어: Brussels Hoofdstedelijk Gewest)은 브뤼셀 시와 인근 지역을 합친 지역을 가리킨다.[26] 위치상으로는 Vlaams-Brabant 지역이 브뤼셀 수도권을 둘러싸고 있다.

1971년 총선부터는 모든 정당이 네덜란드어권 정당과 프랑스어권 정당으로 나뉘어서 참여하고 있다. 벨기에의 정부 구성 방식도 이 때부터 생긴 것이다.

1974년에는 독일어 사용 지역에 독일어 공동체 정부가 결성되었다. 인구와 영토가 벨기에 전체의 1% 수준인 독일어 지역을 별도의 주로 독립시키기가 어려워 적어도 언어 정책(언어, 교육, 문화 등)만큼은 스스로 처리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독일어 공동체 선거는 연방 선거와 같이 치렀다. 1974년에 독일어 공동체 정부가 생긴 것도 1974년에 연방 총선을 실시했기 때문이다.

이후 각 지역권(브뤼셀 수도권, 플란데런, 왈롱)에 각각 의회와 정부를 구성[27]하고, 독일어 지역에만 구성되었던 언어 공동체가 나머지 언어 지역(네덜란드어, 프랑스어)에도 생겼다. 행정 구역도 언어 공동체에 따라 개편했다.

예를 들어 Brabant 주는 네덜란드어 사용 지역은 플람스 브라반트(Vlaams-Brabant) 주, 프랑스어 사용 지역은 브라방 왈롱(Brabant Wallon) 주로 갈라졌고, 이중 언어 지역인 브뤼셀은 플람스 브라반트 주의 한가운데 섬처럼 분리되었다.(공식적으로 플란데런의 수도는 브뤼셀이다) 또한 네덜란드어 공동체에 속하는 웨스트 플란데런 주에서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지방 자치체 1개가 에노 주로 넘어가 에노 주의 월경지가 되었고, 프랑스어 공동체에 속하는 리에주 주에서 네덜란드어를 사용하는 지방 자치체 1개가 림뷔르흐 주로 넘어가서 림뷔르흐 주의 월경지가 되었다. 독일어 공동체는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 월경지다.

플람스(네덜란드)어 공동체(Vlaamse Gemeenschap)는 브뤼셀 수도권의 네덜란드어 사용자[28]와 북부 다섯 주다. 수도는 브뤼셀. 프랑스어 공동체(Communauté française)는 브뤼셀 수도권의 프랑스어 사용자와 남부 다섯 주다. 이곳도 수도는 브뤼셀. 독일어 공동체(Deutschsprachige Gemeinschaft)는 리에주 주 동부 극히 일부 지역이다. 수도는 오이펜(Eupen).

이런 방식으로 벨기에 연방 의회 밑에 연방 구성체의 의회가 7개가 되었다. 벨기에 전체를 대표하는 연방 의회는 상·하원으로 구성된 양원제다. 그리고 언어 공동체와 지역권별로 단원제 의회가 있고 연방제라 각각 입법권이 있다. 선거는 5년마다 실시하며(최근 선거는 2014년) 지역권 의회는 지역 정책, 언어 공동체 의회는 언어 정책을 관할한다.

그러나 월경지까지 만들면서 행정 구역을 언어 공동체에 맞게 조정했음에도, 각 언어 공동체 내에는 해당 언어 공동체의 언어가 아닌 벨기에의 다른 공용어를 쓰는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들도 있다. 이런 곳에는 언어 공동체의 언어가 아닌 다른 공용어를 위한 언어 시설(네덜란드어: faciliteitengemeenten, 프랑스어: communes à facilités, 독일어: Fazilitäten-Gemeinden, 영어: language facility)을 설치, 해당 언어 공동체의 언어를 모르는 이들의 불편을 방지하도록 한다.

이러한 지역 설정은 지역의 인구 구성이 바뀔 때 곤란해진다. 예를 들어 브뤼셀 수도 지역에 접한 플란데런 지역의 한 지방 자치체는 1970년대에 플란데런 지역으로 구분되었으나, 계속 프랑스어 사용자 인구가 늘어 1995년에 지역 의회가 생길 즈음엔 아예 프랑스어 사용자가 지방 자치체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플란데런 지역에 속해 있어서 프랑스어 정당이 활동하지 않고 지방 선거에선 '프랑스어권 연합'이라는 정당에서 공천한 후보가 당선된다. 이렇듯 언어와 지역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 나중에는 무정부 상태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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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10개 주. 남쪽의 룩셈부르크(뤽상부르)는 벨기에의 주지만 원래 룩셈부르크의 땅으로, 1839년 네덜란드(당시 룩셈부르크는 네덜란드와 동군 연합 상태)에서 벨기에로 넘어갔다.

언어가 다르기도 하고 지역 간의 대립과 반목이 심하다. 경제적으로 낙후된 왈롱(왈로니) 지방과 주도권을 잡고 있는 플란데런 지방의 갈등은 정부(정확히는 내각) 성립까지 후퇴시켰다. 왈롱에 지원 정책이 세워지면 플란데런 지역은 또 여기에 반발하고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는 일이 빈번하다.

과거에는 벨기에를 오래 전에 지배하였던 부르고뉴의 영향으로 주요 문서들이 프랑스어로 작성되었기 때문에 그걸 읽고 쓸 줄 모르는 플란데런 지방 사람들은 문맹으로 분류되어 입법, 행정, 사법에서 제외되었다. 글도 못쓰는데 재판이 가능하지 않다는 논리였다. 국가 형성을 왈롱인들이 주도한 것도 왈롱계의 영향력을 증대시켰다. 이 시기 프랑스어를 쓰던 지배층들은 문서를 모두 프랑스어로만 작성하게 하여 프랑스어를 모르는 플란데런인들을 예속 상태로 유지하려고 하였다. 또한 상류 계층인 부르고뉴인들이 네덜란드어를 못해 서로 의사 소통이 단절되어 있었던 데다가 일부 상류층들이 플란데런 사람들을 해적, 거지에 비유하여 제도적, 정서적으로 갈등이 심했다. 벨기에의 탄전과 철광산 대부분이 왈롱 지방에 집중되어서 벨기에의 성장을 이끈 중공업 또한 왈롱에서 발달하였다. 이것으로 인해 막대한 부가 왈롱인들에게 쏠리게 된다.

반면 한때 서유럽 무역의 거점으로 번영하던 플란데런 지방[29]은 전통 산업이 축소되고 왈롱인들에게 무시당하는 일을 겪었다. 본래 플란데런인들의 도시였던 브뤼셀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빠져나가는 플란데런인들과 수도로 진출하려는 왈롱인들의 이주로 인해 인구비가 역전되어 왈롱인들의 도시가 되고 말았다.[30] 이런 취급이 150년 가까이 지속되다가 현대에 들어와서 벨기에의 중공업이 축소되고, 관광과 금융으로 플란데런의 산업이 살아나면서 완전히 바뀌어 버린 것이다.

플란데런 사람들의 불만은 어떤 사람이든 자신이 쓰는 언어로 된 행정 문서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법을 제정하는 것을 시작으로, 국가의 주요 부서의 장관을 플란데런인으로 지속적으로 정하는 등 프랑스어권에 대한 압박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 프랑스어권은 반발하고 있다. 그리고 독일어권이 둘의 싸움에 소외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중이다.

단순히 지역을 구분하는 이름에 지나지 않던 플란데런과 왈롱이 1995년에 별도로 의회와 정부를 구성하면서, 양쪽 모두 자치권 확대를 외치는 목소리가 심각하게 커져서 이미 연방 국가긴 하지만 스위스 수준으로 느슨한 연방제 국가로 변모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어쩌면 연방(federation)보다는 국가 연합(confederation)인 여러 국가들의 연합체로 변경될 가능성도 있고, 그보다 더 과격하게 아예 별개의 국가들로 완전히 분리될 수도 있다.

거의 매년마다 여러 일로 지방들이 서로 분리하려고 난리다. 2009년 여름에도 총리가 최후 수단인 의회해산권을 발동하였는데 새로 당선된 총리가 모든(7개) 의회에서 통과되지 못해서 무효가 되었고, 거의 반 년 간 정부 수반이 없는(왕은 정부 수반이 아니라 상징적인 국가 원수니 제외) 무정부 상태가 되었다. 다만 연방 정부의 공무원들은 각 부처의 차관 등이 공석인 장관을 대리하여 일하긴 했으니 완전한 의미의 무정부는 아니었다. 이 난리 끝에 겨우 새로 정부를 만들었더니, 연립 정부를 구성하는 5당 중 하나가 탈퇴해버렸다.[31] 나머지 네 정당만으로도 과반수는 유지할 수 있으나, 새 총리가 네덜란드어 기독당 소속인데 네덜란드어 정당 하나가 프랑스어 정당 셋과 연정하면 네덜란드어권에서 배신자라고 욕 먹을 것이 자명했다.

결국 여당들은 또다시 의회와 내각을 다 해산해버렸다. 2010년 6월 중순의 총선 결과, 플란데런 지방은 분리주의당이 여당(온건파 N-VA와 강경파 Vlaams Belang[32]을 합쳐서 40%)이 되고, 왈롱 지방은 PS(사회주의당)가 여당이 되었다. N-VA는 벨기에 총리는 왈롱에게 주고, 자신은 플란데런 통치에 나서는 대신 독립국에 준하는 자치를 얻으며 점차 조용한 분리를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협상 과정을 보면 꼭 그렇게 하지만은 않았다.

이런 식으로 국가가 언제 분리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총선 후 200일이 넘도록 내각이 구성되지 않아, 2011년 1월 23일 브뤼셀에 2만명이 넘는 인파가 모여서 무정부 상태를 끝내라는 시위까지 벌였다. 정부가 구성될 때까지 남자들은 수염을 깎지 말자는 캠페인도 진행했으나, 캠페인을 펼친 사람들도 턱수염이 땅에 닿을 때까지 무정부 상태가 지속될 것 같다는 말까지 남겼다.

2011년 3월 30일에 무정부 상태로 290일째를 맞이하면서 무정부 상태 세계 기록을 경신했다. 화가 난 국민들은 지연된 정부 수립 날짜만큼 누드 시위를 벌였다. 벨기에 정부는 6월 3일까지 무정부 상태로 남아 마침내 1년을 넘겼다. 결국 2011년 9월 15일, 459일만에 브뤼셀-알레-빌보르데(BHV)[33] 선거구 분할의 합의를 이뤘고, 그 뒤에도 지체하다가 11월 25일 S&P가 벨기에의 신용 등급을 한 단계 강등하고 나서야 비로소 각 정파들이 회동해 예산 삭감을 통해 재정 적자 감축에 합의함에 따라 12월 6일, 사회당의 엘리오 디 뤼포를 새 총리로 하는 내각이 겨우 출범해 무정부 상태는 541일 만에 끝났다.

이런 상황에서도 국가는 어느 정도 돌아갔다. 벨기에가 중앙 정부가 매우 약한 대신 지나칠 정도로 강한 지방 정부를 가졌다는 점이 도움이 되었다. 예를 들어 벨기에 대사관에 가면 상무관은 연방 정부에서 파견되는 게 아니라 각 지방 정부에서 1명씩 나온다. 산업 정책이 지방 정부 고유 권한으로 넘어가 있기 때문이다.

왈롱에서는 국가 분열 시 66%가 프랑스에 합병되는 것을 찬성한다는 여론 조사가 나왔다. 왈롱 사람들은 플란데런 지역이 압박하는 것이 지나치다는 입장인데다, 평소 사먹는 식료품 등을 주말에 프랑스에 가서 사오는 등 프랑스 문화와 유사하므로 프랑스에 편입되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프랑스는 역사적인 사정도 있고(오래 전에 벨기에에서 노동자들이 넘어와 프랑스인들과 경쟁하면서 벨기에에 대한 감정이 나빠졌다.) 벨기에인들과 합쳐지는 것을 싫어하는 경향을 보인다.

반대로 플란데런 역시 분리되면 바로 네덜란드와 합치자는 여론이 가끔 있다. 다만 왈롱과 달리 극우파들이 주장하는 거라 별 호응은 못 얻는 편.

대체로 플란데런은 보수 성향, 왈롱은 진보 성향이 강한 편이다. 다만 왕실 지지도는 프랑스어권이 네덜란드어권보다 두배 이상 높다.

국가 수장인 왕은 매번 두 지방들 간의 대화를 이끌어내려고 고생하지만, 영향력은 없다. 덕분에 왕을 향한 국민들의 시선은 좀 많이 불쌍한 사람일 정도다. 무정부 상태가 지속되던 200여일 간 왕이 지명한 조정관이 플란데런 다수당인 N-VA(새로운 플란더런 연합)와 왈롱 다수당인 PS(왈롱 사회당)의 협상을 주도했지만 조정관만 9번 바뀌었다.

벨기에의 국가 표어인 통합이 힘을 만든다도 저러한 분리 시도를 극복하고 단결된 국가를 만들자는 뜻에 가깝다. 그럼에도 현실이 표어와 동떨어져가고 있는 상황이라 참 반어법적으로 잘 만든 표어란 비아냥까지 듣게 되었다.

벨기에는 브뤼셀 수도권을 위한 .brussels과 플란데런을 위한 .vlaanderen을 GeoTLD로 등록했다. 반면 왈롱 정부는 거기에 들어가는 예산이 아까우니 도메인을 등록하지 않을 것이며 차라리 그 돈을 다른 데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제 이런 최상위 도메인은 민간 단체·기업이 등록할 수도 있기 때문에 향후 왈롱의 민간에서 나서서 왈롱의 도메인을 등록하려 할 수도 있다.

브뤼셀 수도권(브뤼셀 시와 그 주변 지역 모두 포함)은 언어 공동체 두 개가 중첩되는 곳으로 양측에게 중요한 곳이다. 따라서 만약 플란데런과 왈롱을 나눈다면 대체 어디에 속하게 해야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먼저, 플란데런과 왈롱이 서로 브뤼셀을 차지하겠다고 다툴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아예 독립국이 된 플란데런과 왈롱이 공동으로 통치하는 지역(condominium)으로 만들자는 말도 있다. 또, 아예 어디에도 안 속하는 별도의 지역으로 만들자는 제안도 있다. 2010년 9월의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수도인 브뤼셀 시민들까지도 국가가 남북으로 쪼개진다면 브뤼셀은 또 별개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브뤼셀을 유럽연합수도 내지는 유럽의 특수 지역으로 만들어 플란데런과도 왈롱과 합쳐지지 않겠다는 말이다.

브뤼셀 수도권은 플란데런 지방에 둘러싸여 있는 형태로 되어 있어서 왈롱 지방과 직접 닿지 못하는 지역이다. 그래서 브뤼셀 수도권이 독립국 플란데런과 왈롱의 공동 통치 구역이 되거나, 왈롱에 속하게 될 경우 플란데런 지방 일부를 수도권으로 옮겨서 왈롱 지방과 직접 경계선이 닿게 하자는 말도 있다.

독일어 공동체는 벨기에가 분리될 경우 왈롱 지방에 속하니 왈롱을 따라갈 가능성이 가장 높긴 하지만, 그냥 왈롱인들의 희망일 뿐일 수도 있다. 왈롱을 따라가지 않을 경우 독일에 합병되거나 왈롱에서 분리되어 소형 국가가 되거나 왈롱에서 분리되어 그나마 언어가 비슷한 인접국 룩셈부르크에 합병될 수도 있다.

독일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1990년 동-서독 통일 후 기본법(헌법)에 더 이상 영토를 확장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독일이 기본법을 개정하고 벨기에 독일어 공동체를 흡수할 순 있는데 독일이 이럴 경우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게 전쟁 피해를 입었거나 싸운 적이 있던 유럽 여러 국가들이 나치즘의 부활이 아니냐며 강하게 반발할 여지가 크다. 독일이 통일 후 기본법에 영토를 더 확장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괜히 집어넣은 게 아닌데 고작 벨기에의 독일어 공동체를 흡수하자고 주변국과 유럽 여러 국가들의 반발에 시달리면서까지 이 조항을 삭제하거나 수정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설령 독일로 돌아간다 해도, 벨기에 사회의 소수 언어 사용 집단으로서 누려온 자치권 등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커서 독일어 공동체 주민들에게 손해가 될 수 있다. 일례로 독일어 공동체에서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 다수가 독일 등지로 유학을 선택하는데 독일에 합쳐지면 독일어 공동체 화자에게는 입학에서 받을수 있는 혜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별도의 국가가 되는 것은 벨기에 독일어 공동체 구성원들의 자신들이 독일어 공동체 사람이라는 생각에 따르면 가장 유효할만한 선택지일 수 있으나, 만약 독립국을 만들게 되면 EU에 들어있다 쳐도 특별한 산업이 없어 다른 국가들의 각종 압력을 무릅쓰고 조세 피난처가 되어야 겨우 운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룩셈부르크와 합치는 것도 룩셈부르크는 굳이 벨기에 쪽으로 영역을 넓힌다면 독일 연방과 나치 시절 합쳐져 있던 수준의 독일어 공동체 영역보다는 영국, 프랑스, 프로이센 사이에서 중립을 보장받는 대신 벨기에에 넘겨주게 된 벨기에 뤽상부르 주를 원할 가능성이 가장 커서 쉽지 않다. 여기에 현재 독일어 공동체는 땅이 이어져 있지 않고 두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어[34] 월경지가 있다. 독일어 공동체의 영역을 변경하지 않은 채 두 지역을 오가려면 다른 국가(독립국이 된 왈롱이나 독일)를 거쳐가야 한다.[35] 유럽 통합이 많이 이뤄져서 큰 문제는 아닐 수 있으나 그래도 월경지가 없는 것보다는 성가실 수 있다.

벨기에 독일어권 지역(을 포함한 뤽상부르 주)과 룩셈부르크 사이의 차이는 꽤 많이 벌어지기도 했다. 룩셈부르크에 일하러 넘어오는 벨기에인들도 왈롱의 프랑스어 사용자들이 대다수고, 독일어권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그들 또한 일할 때는 프랑스어를 쓴다. 룩셈부르크 입장에선 동쪽 독일에서 일하러 넘어오는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 저임금 노동자들은 프랑스 혹은 벨기에인들이고, 이들은 모두 프랑스어 사용자들이며 룩셈부르크 또한 프랑스어가 통용되는 국가다. 여기에 룩셈부르크는 제2차 세계 대전 때문에 자국 언어 내에서 독일어의 흔적을 상당부분 부정하는 상태고 독일어는 프랑스어와는 다르게 룩셈부르크의 공용 언어조차 아닌 상태다. 룩셈부르크의 공용어는 독일어와 가까운 룩셈부르크어기 때문에, 벨기에의 독일어 사용자들이 낄 자리는 사실상 거의 없다고 봐도 될 정도다. 하나의 국가였다가 오래전에 갈라진 이 두 지역이 합병하면 룩셈부르크의 영향력이 제일 크게 작용할 것이고, 이렇게 얻을 수 있는 영향력이 크지 않은 이상 룩셈부르크가 적극적으로 시도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무엇보다 이걸 시도하면 유럽연합의 독일과 프랑스의 눈치를 보게 된다. 어떤 면에서 보더라도 매우 가능성이 낮은 일이다.

그 밖에, 브뤼셀 수도권이 별도의 국가나 지역으로 남을 경우 이곳의 월경지가 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는 있겠으나 이것도 쉬운 선택지는 아니다.

결론적으로 독일어 공동체 입장에서는 벨기에가 쪼개질 경우 고르기가 곤란한 선택지들만 놓이게 되는 것이므로 좋은 일이 아니다. 독일어 공동체 주민들은 자신들을 마지막 벨기에인들이라고 부른다. 마지막으로 벨기에에 통합되었고, 마지막까지 통합된 벨기에를 지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벨기에의 분할과 별개로, 벨기에 안에서 왈롱 지방과 분리된 독자적인 지역으로 만들자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현재는 언어 공동체로서만 존재하지 지방은 왈롱에 소속되어 있는데, 아예 지방도 분리된 지역으로 만들자는 주장이다. 근데 이것도 독일어 공동체가 너무 작기 때문에 왈롱과 별개로 자립이 가능할 것인지 불확실하다.

7. 사회

공식적으로는 이민에 대한 제도 자체가 없는 국가다. 외국인 신분의 경우 크게 단기 거주자, 장기 거주자, 벨기에인 가족이 있는 자에 한해서만 가능한 영주권자의 세 분류로 나뉘어진다. 투자 이민의 경우 불가능은 아니지만, 공식적인 루트가 아닌 비공식적으로 변호사를 통해 이민국과 경제부에 접촉을 해야만 허가가 나온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최소 금액은 50만 유로지만 벨기에 국부 펀드에 3년간 투자한 최소 금액일 뿐이다. 골든 비자를 원하면, 비공식적으로는 150만-200만 유로를 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골든 비자 신청을 하면 벨기에 경제부에서 보증을 서므로, E나 F카드에 준하는 투자 카드가 나온다. 해당 카드 소지자는 벨기에 영주권자와 동일한 신분이다. 해당 비자 소지자는 이후 3년 후에 시민권 신청을 하면 별도의 절차 없이 여권을 발급받는다. 단, 시민권을 받을때까지 투자 금액은 벨기에 안에서 묶여야 한다. 한 개 이상의 국적을 가졌으면 이 기간은 더 늘어나는데, 벨기에의 경우 한 개 이상의 시민권을 보유한 귀화자에 한해서는 언제든 시민권 박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벨기에는 하나의 국적만을 가질 것을 권한다.

인구 증가율이 계속 낮아지고, 무슬림 이민자가 늘어나면서 이들을 견제하는 극우 세력이 커지고 있다. 프랑스어가 통하는 모로코 출신들이 가장 많고 그 외에 터키, 알제리 출신들도 상당하다. 이렇게 무슬림 비중이 전 인구의 5%에 달하지만, 이들 중 일부는 현대적 교육을 경시하고 소득 수준도 낮아, 브뤼셀 몰렌베이크 지구처럼 게토화가 된 지역도 있다. 게다가 무슬림 가정의 홈스쿨링 비율이 높아지면서 극단 세력에 노출될 우려도 나오고 있다. 2019년 1월 7일부터 플란데런 지역에서 할랄, 코셔 방식의 도축 방법이 금지되자 이슬람계, 유대계가 반발했다.

벨기에는 혈통 중심의 국가다. 예외적으로 벨기에에서 출생한 사람은 18세까지 벨기에 거주자에 한해서는 국적을 부여한다. 단,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기존 보유 국적을 포기하는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벨기에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거나 부모 한쪽이 벨기에인이고 벨기에에서 출생하면 벨기에 국적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부모 중 한쪽이 벨기에인이고 해외 출생자면 벨기에 대학을 졸업하거나 벨기에 의무 교육을 받거나 벨기에에서 18세부터 28세까지 경제적 기여(세금 납부)를 하지 않았으면, 벨기에 국적을 박탈당할 수 있다. 심지어 국적 보유자가 벨기에 국적만 가지고 있고 다른 국가에서 영주권을 가지고 체류하고 있더라도 벨기에 국적을 박탈당할 수 있다. 2013년 BN(O)[36]가 있는 홍콩 시민과 벨기에인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 벨기에 국적을 박탈당한 일이 있었다. 대법원까지 갔으나 결국 패소했다. 이 사람은 22세까지 벨기에 시민권자와 홍콩 영주권자로 살았다. 그래서 부모 한쪽이 벨기에인일 경우 벨기에 대사관에서는 벨기에에서 출생하기를 권한다.

만약 국적을 박탈당했으면, 벨기에 법무부를 통해서 벨기에로 와서 28세까지 거주를 하거나 대학을 졸업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이 경우 해당인은 벨기에 준시민이기에 유럽 시민권자로 인정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F카드 영주자 신분이기는 하나 국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매번 벨기에를 나갈때 Bijlage(정부 발행 임시 서류)를 받아야만 다시 벨기에 입국이 가능하다. (일종의 출입국 허가 서류다.) 부모를 만나러 갈때는 해당 서류를 발급받지 않아도 괜찮다. 이 경우에도 입국할 때 될 수 있으면 바로 벨기에로 들어오는 것이 좋다. 일반적으로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의 경우 이해를 하는 편이지만 영국, 스페인 등 벨기에와 국경이 직접적으로 맞닿지 않는 국가의 경우 상륙이 불가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Snel-Belgwet라고 하는 국적법이 있는데 조부모와 부모 두세대 모두 벨기에에 거주하나, 벨기에 거주권이 없거나 영주권 신분인데 3세대 이상 벨기에에서 살아왔고, 벨기에 태생이면 즉각적으로(물론 신청을 해야하지만) 벨기에 국적을 부여받는 법이 존재한다.

박준형이 벨기에에서 촬영하던 중 현지인들에게 인종 차별을 당하는 장면이 방송에 고스란히 방영되어 이슈가 되기도 하였다. 2015년 tvN의 <가이드>[37]라는 방송에 배경으로 등장한 벨기에 소녀들이 카메라맨을 향해 동양인 차별적인 동작를 취하는 장면이 찍혔다. 흑인 기상 캐스터가 시청자들로부터 인종 차별 메시지를 받았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관광객들의 경험담도 많이 올라와, 거리를 걷고 있는데 누군가가 차이나 타운이라고 외친다든가 하는 경험담은 꽤 흔하게 보이는 편이고 시비를 걸어오는 벨기에인을 중국인들이 몰려와 쫓아내주었다는 이야기마저 돌아다닌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말을 모두 믿을 수는 없겠지만, 방송 카메라 등의 실질적인 증거물이 될만한 매체 앞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해당 행위를 저지른다는 것은 그 행위로 인해 얻는 사회적인 페널티가 적거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아이더라도 부모가 방어해주지 않는 이상, 절대 다수의 선생들이 아이들을 직업 교육 학교로만 보냈다는 보고서도 올라왔다.

VUB 공식 보고서에서도 심각성이 드러나는데 석사 학위 이상을 가진 흑인들조차 보통 취업에 걸리는 시간이 1년으로 나왔다. 백인계 벨기에인(Autochtonen)의 경우 같은 조건에서 3개월이 걸리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 흑인들의 경우 인종 차별적인 대우를 면접과 이메일에서 받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나 교육 수준이 낮은 직종일수록 대놓고 백인을 고용하길 원하는 경우가 많다.

벨기에는 인종 차별 협약을 맺고 있고, 차별 금지법도 존재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그다지 엄하지 않은 편이다. 일례로 벨기에 만화 '땡땡의 모험'에 관한 논란이 있다.

벨기에는 인종 차별을 본인이 모든 증거를 제출하지 않는 한 신고를 받지 않는다. 게다가 증거 채택에 있어서 녹취와 비디오의 경우 반드시 해당 인종 차별을 보이는 자의 녹화 동의가 있어야만 채택이 된다. 벌금도 일반적으로 높아야 200 유로고 최대 2000 유로 정도다. 그냥 운이 없어서 벌금을 낸다는 인식이 가득하지, 인종 차별이 잘못 되었다는 인식은 없다.

동양인이 차별당한다는 신고는 접수도 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접수를 받는 경우는 해당 신고자가 입양인 출신인 경우, 부모가 벨기에인이기에 어쩔 수 없이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이민자 출신들 중에 동양계는 나가서 살려고 한다.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 주전 공격수 로멜루 루카쿠가 어린 시절부터 직접 겪었던 인종 차별 경험담들을 털어놓기도 했다.

벨기에와 비슷한 국가인 네덜란드 혹은 룩셈부르크는, 네덜란드는 나름 다양한 인종이 있는 국가고 룩셈부르크 또한 다른 인종에 대해 꽤나 관대한 국가다. 네덜란드는 과거 식민지 출신들이 많이 들어와서 그런 것이 크고, 룩셈부르크는 워낙 적은 인구 때문에 노동력이 많이 들어와서 그러는 것이 큰데, 벨기에는 과거 식민지에서 오는 인구가 별로 없다.(네덜란드처럼 식민지 출신들이 벨기에로 넘어갈 생각이 없다) 브뤼셀같은 도시에는 다른 인종의 게토가 있을 정도긴 하지만, 이런 요인으로 인해 인종 차별이 많이 일어난다. 해외에서 벨기에인들을 상대해보면 기본적으로 예전 사람 느낌이 꽤 많이 난다. 그러다보니 현대 사회에 대한 의식이 약간 동떨어져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편이고 그것이 인종 차별로 이어지는 것이다.

벨기에의 인종 차별이 유럽 국가 중 두드러진다고 보긴 힘들다. 2015년 유럽의 여론 조사 기관 equineteurope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벨기에인의 87%가 아시아인과의 직장 생활이 괜찮으며, 74%가 아시아인과의 연애에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프랑스보다는 나쁜 수치지만,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보다 좋은 수치다.

물론 어디까지나 동양인에 대한 긍정적인 답변일 뿐, 부정적인 사람들이 얼마나 부정적인지는 알 수가 없어서 단순히 이것만 보고 인종 차별이 덜하다고 볼 수는 없다. 예를 들어 독일같은 경우 순위는 벨기에보다 떨어지지만 동양인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걸 대놓고 내색하진 않으며 만약 그런 사람이 있을 경우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으로 본다. 반면 벨기에는 아시아인에 대한 부정적인 사람들의 비율은 더 적을지 몰라도 그 부정적인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전혀 없는 수준이다. 이런 설문은 조사론적 방법 중에 설문지법에 속하는데 전통적으로 설문지법은 자료 조사가 쉽고 간편하지만 신뢰도가 매우 낮은 방법에 속한다. 반대로 자료 조사가 어렵고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모되지만 신뢰도는 높은 방법은 관찰법인데 인종 차별 사례들은 관찰법에 속하고 동양인에 대해 차별이 없는지를 답한 것은 설문지법의 영역이므로 이걸 두고서 벨기에에서 아시아인에게 호의적인 비율이 더 높게 나왔으니 벨기에가 다른 유럽에 비해 인종 차별이 심한 건 아니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8.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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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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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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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크기가 작고 군사력도 별볼일 없어 무시당하지만 서방의 기관총을 석권한 FN 미니미FN MAG를 개발한 FN 에르스탈 사라는 걸출한 총기 회사가 바로 벨기에에 있다. 국제연합 평화 유지군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르완다 내전 당시 10명의 병사들이 수상을 지키던 중 살해당하는 일도 있었다. 군수 기업으로는 장갑차의 포탑을 생산하는 CMI 그룹 산하의 코케릴가 유명하다. NATO 본부도 브뤼셀에 있다.

11.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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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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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공으로 설명하는 외교관계

12.1. 대한민국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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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시기인 1901년에 외교 관계를 맺은 적이 있었으나 1905년에 을사늑약으로 단교되었다. 그 후 미안했는지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제일 먼저 대한민국 정부를 합법 정부로 승인, 1950년 한국전쟁 때는 룩셈부르크와 연합하여 UN군 일원으로 참전하였다. 당연히 대한민국 정부는 휴전 후 최우선 수교대상국으로 지정, 1961년에 외교관계를 재개하였고 1965년에 수교했다.

이 나라 출신 줄리안 퀸타르트대한민국 방송에도 출연한다. 인천광역시 송도국제도시 內 송도글로벌캠퍼스 안에는 겐트 대학교의 캠퍼스가 들어서 있다. 심찬구가 AFC 튀비즈의 구단주로 있다.

전라북도 임실군에서는 이곳 출신인 디디에 세스테벤스 신부의 노력으로 치즈 제조업이 발달했고, 신부의 한국어 이름인 '지정환'에서 이름을 딴 피자 브랜드도 있다.

2018년 9월 11일부터 11월 3일까지 브뤼셀 시내에 있는 문화원에서 '제5회 한·벨기에 만화교류 특별전'을 개최한다고 주벨기에·EU문화원이 밝혔다.# 그리고 11월 2일에 한국의 순항훈련전단이 벨기에의 앤트워프 항구에 도착해서 교민들과 벨기에 한국전 참전용사, 벨기에 군 관계자 등으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2019년 3월 8일에 청와대는 벨기에의 필립 국왕이 3월 26일에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 회담을 갖는다고 밝혔다.# 3월 26일에 필립 국왕이 한국을 방문했고 전경련 회장도 벨기에의 필립 국왕 방문을 환영하는 행사에 참석했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은 SNS에 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박원순 시장은 필립 국왕에게 서울시 명예시민증을 수여했다.# 필립 국왕과 함께 방한한 마틸드 필립 왕비는 한국 청소년을 만난 자리에서 아동과 청소년은 소외되면 안된다는 발언을 했다.#

벨기에의 싱어송라이터 '시오엔'이 2019년 3월 28일에 내한공연을 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산업통상자원부는 벨기에의 솔베이사와 신소재개발을 위해 협력을 한다고 밝혔다.#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대한민국과 함께 H조에 속하게 되어, 세 번째[38]로 벨기에와 월드컵 대결을 펼치기도 했다.

벨기에 현지에 한국인은 824명이 거주하고 있다.

2019년 5월 7일 ~ 9일까지 브뤼셀 수산박람회개막할 예정인데 한국기업들도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브뤼셀에서는 제주 해녀에 대한 특별전시회가 6월 29일까지 있을 예정이라고 한국문화원이 밝혔다.# 그리고 SK건설은 벨기에의 안트베르펜 석유화학단지에 PDH 플랜트 건설을 위한 기본설계 프로젝트 계약을 체결하면서 서유럽에서 처음으로 플랜트사업을 수주했다.# 주벨기에 대한민국 대사관은 브뤼셀에서 참전용사 보은행사를 가졌다.#

12.2. 주변국과의 관계

벨기에의 경우 프랑스,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와는 유대 관계가 꽤 깊으며[39], 독일과는 역사적으로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물론 지금이야 훨씬 나아졌지만, 그래도 때문에 많이 좋지는 않다. 그 외에도 영국, 러시아, 스위스, 이탈리아 등 다른 주변국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2016년)에는 벨기에와 네덜란드가 일부 영토를 돌려주거나 되돌려받는 형식으로 국경 문제를 해결했다. # 이 국경은 2018년 1월 1일부터 발효가 되었다. #

유럽국과들은 축구로 가면 천적+라이벌이 된다. 잉글랜드와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같은 축구 강국들이 월드컵이나 유로리그 만나면 유럽 축구 전통 강국 이라는 자존심까지 걸고 경쟁할 정도.
잉글랜드와는 축구로 가면 천적이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조별리그에서 1:0으로 이기고, 3,4위전에서 2:0으로 이기면서 축구의 종가를 떡실신 시켰다.

프랑스도 축구로 가면 천적+라이벌이다. 남북간의 삼색기+유럽 축구의 전통 강호국의 대결이며, 벨기에가 북쪽의 붉은악마프랑스는 남쪽의 블루 오디션이다.
러시아 월드컵 4강에서 매치가 성사됬지만 1:0으로 아쉬운 패배했다. 그래도 3,4위전에서 축구의 종가를 2:0으로 떡실신 시키고 유럽축구의 전통 강호라는 명예는 지켰다

좀 특이한 사항으로는 왕족 과 귀족 및 일반 국민을 포함해서 그 어떠한 경우에도 네덜란드 왕가 및 중앙귀족(헤이그 및 레이던에 기반을 둔)과 결혼을 한 당사자 및 자녀의 경우 공직을 포함한 교사, 국영기업 취업등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거다. 이는 과거 네덜란드 연합 왕국에서 혁명을 통해 독립한 벨기에 역사에 기반한다. 신구 헌법 모두 명시되어 있고, 본인의 성이 네덜란드 왕실 출신이 아니어도 직계 및 가까운 방계가 왕실이나 중앙귀족 출신이라면 벨기에 국적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공직, 국영기업, 교사 등 국가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직종에 일체 취업 관련 행위가 엄히 금지된다.

12.3. 외교공관 관련 이야깃거리

벨기에에 설치된 외교공관 개수는 무려 183개국으로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두 번째로 많이 설치된 나라로 볼 수 있다. 벨기에에 설치된 대사관 중 없는 나라는 북한, 스웨덴, 에콰도르, 바하마, 통가, 앤티가 바부다, 니우에[40], 키리바시, 마셜 제도, 미크로네시아 연방, 팔라우, 나우루, 쿡 제도 등 13개국만 설치되지 않는 것으로 나와 있다. 겸임국을 보면 스웨덴은 본국 대사에서, 에콰도르는 베를린 주재 에콰도르 대사가, 북한통가, 바하마런던 주재 자국 대사관 및 고등판무관 사무소를 통해 겸임하고 있다. 그 밖에도 쿡 제도는 멀리 떨어진 뉴질랜드 웰링턴 주재 고등판무관 사무소가 벨기에를 비공식으로 관리되고 있으며, 쿡 제도가 추후 EU 대표부 또는 제네바 유엔 사무국 등에 마련되면 불편함이 크게 줄어들 수도 있다. 해당 출처

13. 사건사고

13.1. 플란데런 독립 페이크 뉴스속보 사건

2006년 12월 13일, 왈롱 지역의 공영방송인 RTBF에서 갑자기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플란데런이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했다는 뉴스속보를 방송한다. 평소 저녁뉴스를 진행하던 간판 앵커[41]가 진행했으며, 벨기에의 유명인들과 인터뷰를 하는 모습 등이 방송되었기에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고, 당시 해외에 있던 왕자 필리프(현 국왕)는 측근에게 소식을 전해듣고 하얗게 질렸다고 한다. 출장 나온 틈에 직장이 없어졌다. 그러나 이건 사실 페이크 다큐였고, 페이크 다큐였다는 사실을 방송을 시작한지 30분이나 지나서야, 방송위원회의 경고를 받고서야 자막으로 표시를 했다.

벨기에의 양 진영이 모두 분리독립적 성향이 강하다곤 해도, 아무래도 잘사는 플란데런측이 강한 편인데, 플란데런측은 왈롱과 사회보장제도를 공유함으로써 플란데런의 돈이 왈롱으로 빠져나간다고 보아왔다. 그래서 당시에 의료보험, 고용보험 등의 사회보장제도마저 언어권별로 분리하지 않으면 독립하겠다고 위협하고 있었다. 왈롱 주민들은 그러려니 하고 있었고, RTBF의 한 PD가 이대로는 안된다며 왈롱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어넣을 방책으로 이 프로그램을 제작한 것이다.

이는 다음날부터 벨기에의 각종 언론들에게 언론윤리를 잊은 행동이라고 질타를 받았다. 사실 이 프로그램을 만들때, 기자회에서는 반발을 했고, PD의 지속적인 설득에 기자회에서도 뉴스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자막을 내보내고, 로고도 한눈에 픽션임을 알 수 있도록 할 것 등을 조건으로 참여했으나 위에서 보면 알겠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그리고 해당 뉴스를 진행한 앵커는 본래 자신이 진행하던 정시뉴스와 다른 시간에 할 것을 조건으로 참여했으나, 덕분에 더 속보 같아져버렸다.

왈롱 지방정부에서도 RTBF의 사장을 소환하는 등 조사를 벌였으나, '실수' 였다며 아무도 처벌하지 않았다.

13.2. 2011년 리에주 총기난사 사건

2011년 12월 13일 벨기에의 도시 리에주에서 5명이 죽고 125명[42]이 다친 사건.

33세의 노르딘 암라니가 크리스마스가 다가와 사람들로 북적이던 상 랑베르 광장에서 수류탄을 던지고 FN FAL을 난사한 뒤 권총으로 자살했다.

암라니는 로켓런쳐와 소총, 저격소총을 포함한 수십 정의 무기와 수천 개의 무기 부품, 2800여 포기의 대마초를 범죄를 목적으로 소지한 혐의[43]로 2008년에 58개월 형을 선고받았다가 2010년 10월에 가석방되었다[44]...

사건 당일 성적 학대와 관련하여 경찰에 출두하기로 되어 있었던 암라니는 이웃집을 청소해주던 여성을 자신의 집도 청소해달라며 유인, 살해했다. 그리고는 달려나와 학살극을 벌인 것.

13.3. 안드라스 팬디 사건

헝가리의 성직자 출신으로 벨기에에서 난민 생활을 하던 안드라스 팬디라는 살인마가 자신의 친딸과 의붓딸을 성폭행하고 두 명의 전처와 자신의 자식, 의붓자식 도합 6명을 연쇄 살해하고[45] 시신을 아주 잔인하게 훼손한 사건.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이뤄진 것으로 추정되며 1997년에 같이 범행에 가담했던 딸 아그네스가 자수함으로써 그 진상이 드러났으나 당시에는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채 잠정 종결되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5년 뒤인 2002년 마르크 뒤트루 재판이 여론에 알려져 벨기에 내에서 아동 성범죄, 살인죄에 대한 엄벌 여론이 일고 미제 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적극 촉구하는 여론의 요구로 검찰이 사건 파일을 다시 열고 안드라스 팬디와 그 딸을 구속, 조사하면서 진상이 드러나게 됐는데 알고 보니 안드라스 팬디는 겉으로는 훌륭한 성직자였으며 루마니아 독재자 때문에 고아가 된 아이들을 보호하는 단체의 설립자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집안에서는 폭군이었고 자기 눈밖에 났거나 도망친 사람을 죽이지 못해 안달인 인물이었던 것.

결국 다섯 명에 대한 살인. 의붓딸에 대한 성폭행 및 살인미수. 친딸에 대한 성폭행이 유죄로 인정되어 안드라스 팬디는 무기징역. 딸 아그네스 팬디는 기소된 살인 및 살인 미수 모두가 유죄로 인정되긴 햇으나 자수한 점과 오랜 기간 성학대를 받으며 범행 가담을 강요당한 것이 참작되어 징역 21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아그네스 팬디는 2010년 6월 가석방되었으며[46] 안드라스 팬디는 현재도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13.4. 마르크 뒤트루 사건

1990년대 중반에 벌어진 아동 성폭행 연쇄살인 사건으로 벨기에의 소아성애자인 마르크 뒤트루가 다수의 아무런 관계도 없는 소녀들을 납치하고 성폭행한 뒤 감금했으며 그 중 두 소녀를 살해하고 또한 범행의 은폐를 목적으로 공범 베르나르 와인슈타인도 살해한 사건이다. 그가 다른 범죄로 경찰에 붙잡혔을 때 아내 미셸 마르탱이 또 다른 두 명의 어린 소녀를 굶겨 죽임으로써 도합 네 명의 소녀가 피살되었으며 희생자는 총 5명에 이르렀으며 벨기에 검찰은 마르크 뒤트루를 주범으로, 아내 미셸 마르탱과 미셸 르리브르, 미셸 니울을 공범으로 기소하였다.

이후 오랜 기간에 걸친 조사 끝에 2004년부터 재판이 시작되었고 아동 4명 납치 살해. 2명 납치 및 성폭행. 공범 살해(뒤트루는 이 사건을 혼자서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등 모든 사건의 유죄가 인정되어 뒤트루는 무기징역 및 정부의 임의 처분 대상 지정.[47] 미셸 마르탱은 징역 30년. 미셸 르리브르는 징역 25년. 미셸 니울은 납치와 살인 모두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마약 관련 행위에 대해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미셸 니울은 2006년 5월에 만기 출소. 미셸 르리브르도 2005년 10월에 피해자와 합의한 점. 살인 및 성폭행은 하지 않고 납치에만 가담한 점 등이 인정되어 가석방을 허용. 출소하였다. 미셸 마르탱은 30년 중 15년의 형량을 채운 뒤 2011년 가석방 신청을 하여 허가받고[48] 수녀원에서 남은 수감 기간 동안 격리, 감시받는 형태로 출소하게 되었다. 마르크 뒤트루는 현재도 교도소에서 복역 중에 있는데 뒤트루는 2013년 무기수의 기본 복역 형량을 채운 뒤 가석방 신청을 했다가 '죄질이 너무 나쁘고 위험한 인물이라는 이유' 로 기각되었다. 소아성애자라 교화도 거의 불가능한 만큼 교도소에서 일생을 마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참고로 이 사건 직후 벨기에 내부에서는 사형 제도를 부활시켰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 적이 있지만[49] 이는 벨기에 헌법상(제18조 연성헌법 국가라 굳이 수정 못 할 이유는 없다만)이나 유럽연합 헌법 규정상으로는 불가능하다.

13.5. 2016년 브뤼셀 테러

2016년 3월 22일 오전 8시 브뤼셀 자반템 공항과 멜베이크 지하철역에서 연쇄 테러가 발생했다.

17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6년 브뤼셀 테러 사건 참조.

13.6. 2018 리에주 테러

2018년 5월 29일에 리에주에서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과 만난 것으로 확인된 용의자가 교도소를 나오면서 경찰관 2명과 행인 3명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되었다.## 그리고 다에시가 리에주에서 있었던 테러사건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거기에다 벨기에 경찰은 용의자가 수감자까지 살해했다고 보도했다.#

14. 출신 인물

15. 창작물에서

홈즈 다음으로 유명하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탐정 캐릭터 에르큘 포와로의 모국이 벨기에다. 자신의 조국에 대한 애국심이 강하여, 주위 사람들이 프랑스 사람이냐고 물으면 딱 부러지게 "나는 벨기에 사람입니다." 라고 대답한다. 영국 총리가 독일 스파이에 의해 납치당한 사건을 맡았을 때, 영국의 요원으로부터 벨기에 국왕으로부터의 추천을 받았음을 알게 된 포와로가 경례를 올리면서 감격한 목소리로 반드시 사건을 해결할 것을 다짐하였다.

이상하게도 아르센 뤼팽 시리즈의 악역들은 벨기에로 도망가는 경향이 있다. 프랑스인들의 벨기에에 대한 관점인지도. 실제로 프랑스인 범죄자들의 도피처로 벨기에가 선호됐으며, 프랑스 혁명 당시에도 수많은 정치범들이 벨기에로 망명 내지는 피신을 갔다. 그러다 벨기에 정부에서는 타국의 정치상황에 더이상 연루되는 것을 막기 위해 1833년에 '정치범 불인도법'을 국내법으로 제정했고 이듬해에 프랑스-벨기에 간 범죄인 인도조약에서 정치범의 불인도에 대한 내용을 삽입하기에 이르렀다.

소설 자칼의 날에서 주인공이 의뢰하는 총포 전문가가 벨기에 국적이다.

카레이도 스타 - 로제타 파셀 [51]

이 외 땡땡의 모험, 스머프 등 다양한 만화를 배출한 국가이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우주에서는 어떤 이유에선지 가장 심한 욕으로 설정되어 있다.

잠깐 조는 사이 사라져 버린다. 이런저런 냉전 배경의 창작물에서는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 같은 미국 본토만큼은 아니지만) 수틀리면 갈려나가는 동네다. 역시 NATO 사령부의 존재 때문에...

문명 5에서 정규 문명으로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시나리오에서 레오폴드 2세 시절의 벨기에를 플레이해볼 수 있다. 아프리카 쟁탈전이라는 이름의 시나리오로, 이 시나리오에서 벨기에의 역할은 대놓고 악역이다. 고무나무 농장에서 팔까지 잘라가며 콩고인들을 착취한 역사를 살려 재배지에서 생산력 +2를 받으며, 고유유닛은 공안군이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대놓고 까고 있지만 당시의 벨기에는 이만큼 까여 마땅한 짓을 하긴 했다.

16. 기타

  • 벨기에에서 학생들에게 교복을 입히는 것은 불법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정확히는 공동체마다 다르다. 네덜란드어권은 교복 잘 입고 다닌다.
  • 벨기에 사람들은 만 16살이 되면 을 마실 수 있다. 흡연도 16살이면 된다. 원래 다 고등학교 1학년부터들 흡연 시작. 술의 경우 맥주와 같이 도수가 낮은 경우만 16세, 도수가 높은 경우 18세이다.
  • 벨기에도 8월 15일이 공휴일이다. 물론 이 날 독립했다거나 하는 이유는 아니고 그 날이 가톨릭의 성모승천대축일이라서 그렇다. 대신 2월9월, 10월에 공휴일이 없다. 벨기에 사는 교포들은 설에도, 추석에도 제대로 명절을 못 지낸다 3월4월, 6월은 부활절, 예수승천일, 강림절 월요일의 날짜에 따라 생겼다가 사라졌다가 한다. 결국 벨기에에서 항상 공휴일이 있는 달은 1월, 5월, 7월, 8월, 11월, 12월인 셈. 대체휴일 제도는 없다. 때문에 2010년처럼 크리스마스가 토요일이면 8, 9, 10 3개월은 물론 11월 만성절 이후 다음 해 3월이나 4월의 부활절 월요일까지 무려 6개월 가량 평일인 공휴일이 없게 된다.

17. 관련 문서

18.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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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영국]]의 경우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 국민 투표]]에서 과반수가 찬성하였으며 이에 따라 2017년 3월 29일 탈퇴를 규정한 리스본 조약 50조를 발동했다.
*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10월 31일로 연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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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네덜란드어: Eendracht maakt macht, 프랑스어: L'union fait la force, 독일어: Einigkeit macht stark[2] 역사적인 인구 변화는 브뤼셀/인구 참조.[3] 역사적인 인구 변화는 벨기에/인구 참조.[4] 벨기에 전체의 국가 코드 최상위 도메인(ccTLD). 유럽연합 회원국으로 .eu도 쓴다. GeoTLD로 브뤼셀 수도권을 위한 .brussels과 플란데런을 위한 .vlaanderen도 서비스에 들어갔다.[5] 대한민국과 벨기에는 수교 연도를 대한제국과 벨기에의 수교 연도인 1901년으로 간주한다.[6] 네덜란드어로는 브뤼설(Brussel)이라고 하는데 어원은 bruoc(늪)와 Sella(집)의 합성어인 Bruocsella다.[7] 두 국가 모두 홍합을 자주 먹는다.[8] 혹은 유럽 이사회.[9] 네덜란드어, 저지 독일어 등으로 '낮은 땅'이라는 뜻이다.[10] 벨기에가 프랑스 옆에 있다보니 프랑스식 프랑스어와 차이가 퀘벡 프랑스어나 아프리카에서 쓰이는 프랑스어에 비해 큰 편은 아니지만 둘의 표준 억양을 비교해보면 미묘하게 다름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벨기에에서만 쓰이는 어휘도 있다.[11] 영국도 에드워드 7세 때부터 이 성의 영어식 표기인 Saxe-Coburg and Gotha를 성으로 썼으나 그의 아들인 조지 5세 때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지면서 반독 정서 때문에 윈저(Windsor)로 변경했다.[12] 왕가의 문장(coat of arms)에서도 작센의 상징을 빼버렸다.[13] 네덜란드어 - 프랑스어 - 독일어 가사를 한두 소절씩 돌아가며 부른다. 왈롱어까지 섞어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14] 영국에서 양털을 들여와서 플란데런에서 레이스, 천으로 가공했다.[15] 부르고뉴 공국은 프랑스 왕실의 혈통이 있긴 하지만 영토와 세력 확장을 위한 갈등으로 프랑스 왕실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거의 독립국이나 마찬가지였고 부르고뉴 공작은 부르고뉴 등의 프랑스 내 영토보다는 플랑드르 등의 저지대 지역에 머무는 걸 좋아했다.[16] 정확히는 저지대의 중남부 지역[17] 카를 5세 본인이 가끔 고향인 저지대에서 거주하기도 했으며, 마리 부르고뉴의 딸이자 카를 5세의 고모인 Margaretha van Oostenrijk가 카를 5세를 대리해서 네덜란드를 통치했기 때문에 네덜란드의 대우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18] 홀란트, 젤란트, 위트레흐트, 겔레, 프리슬란트, 오버레이설, 흐로니언.[19] 다만 지금의 네덜란드는 가톨릭 다수 지역이었으며 저지대에서 개신교 다수 지역은 지금의 벨기에 북부인 플란데런 지방이었다.[20] 지금의 플란데런 지방의 오스트플란데런/베스트플란데런 주.[21] 제1차 세계 대전 때 국가가 황폐해질 것을 각오하고 독일군에 맞서 싸워 진격 속도를 지연시키고 국토의 일부를 끝까지 사수한 점 덕분에 벨기에는 물론 유럽 전역에서 큰 존경을 받는다. 나중에 등산하다 추락사로 죽었다.[22] 전황이 워낙 불리했으므로 항복을 충분히 고려할만한 상황이었으나, 연합국과 제대로 된 협의나 통보가 없었고, 심지어 자국 정부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총사령관 자격으로 항복 선언을 했다.[23] 프랑스의 상징이 닭이다.[24] 2015년에 변경되었다.[25] 국가의 행정 구역 단위 중 최소 단위로, 지방 의회 등의 자치 제도가 있다.[26] 브뤼셀 시는 이 지역의 일부다. 참고로 벨기에의 법적인(de jure) 수도는 브뤼셀 시 뿐이지만, 브뤼셀 수도권 전체가 실질적인(de facto) 수도 역할을 한다. 각종 정부 시설들이 수도권 안에서 브뤼셀 시가 아닌 지역에도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27] 벨기에 수도권 의회가 1989년에 먼저 생겨서 벨기에 행정 구역 개편의 해로 본다. 플란데런 지역-네덜란드어 공동체 의회와 왈롱 지역-프랑스어 공동체 의회는 1995년에 구성했다.[28] 브뤼셀은 이중 언어 지역이기에 모든 시민이 선택해서 반드시 신분증 언어로 결정되는 둘 중 하나의 공동체에 속해야만 한다. 브뤼셀 수도권 안에서 두 언어 사용자가 뒤섞여서 살기 때문에 지역으로 구분할 수가 없다. 선거에 한해서 원한다면 네덜란드어권 브뤼셀 시민이 프랑스어권 브뤼셀 정치인에게 투표가 가능하고 반대도 성립한다. 하지만 선거 정보를 보통 하나의 언어로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일부 정당의 경우 두 언어 모두 제공한다.)[29] 브뤼셀 근교의 브뤼헤 등의 도시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브뤼헤는 서유럽 무역의 거점으로 '서유럽의 베니스'라는 호칭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모직물 공업이 쇠락하고 도시 주변의 수로가 막혀버렸다. 그래도 옛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어 벨기에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가 되었다.[30] 다만 브뤼셀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프랑스어를 상용하였고, 현재는 네덜란드어권인 헨트도 과거에는 카를 5세가 프랑스어와 스페인어를 상용하던 곳이다. 빈곤했던 플란데런의 인구들이 브뤼셀로 이주하면서 네덜란드어가 다소 쓰이게 되었다.[31] 네덜란드어 정당 둘(기독당, 자유당)에 프랑스어 정당 셋(기독당, 자유당, 사회당)이 참여했는데, 네덜란드어 자유당이 탈퇴했다.[32] 당 이름부터가 플람스의 이익이다.[33] 네덜란드어: Brussels-Halle-Vilvoorde, 프랑스어: Bruxelles-Hal-Vilvorde. 알레-빌보르데 지역과 브뤼셀 수도권 지역을 합친 지역. 알레-빌보르데는 플람스 브라반트 주의 서쪽 절반에 해당한다.[34] 오이펜과 그 주변 지역, 벨기에 아이펠 지역으로 쪼개져 있어서 프랑스어 공동체 지역을 거쳐야 두 지역을 오갈 수 있다. 본래의 오이펜-말메디 지역은 지금보다 넓어서 이렇게 둘로 쪼개져 있지 않았으나, 독일어 공동체는 그보다 적은 관할지를 가지면서 월경지가 생겼다. 오이펜-말메디 지역의 프랑스어 사용 지역이 언어 따라 왈롱으로 완전 편입된 결과다.[35] 플란데런도 월경지들이 두 군데 있긴 하다. 경계선이 복잡하기로 악명 높은 네덜란드와의 국경 지대 바를러와, 왈롱 지방을 거쳐 가야 하는 부런(Voeren) 지역이 여기에 해당된다. 왈롱도 플란데런이나 프랑스를 거쳐가야 도달할 수 있는 코민 와른통(Comines-Warneton)이라는 이름의 작은 월경지가 있다.[36] 영국의 국적의 일종으로 홍콩이 영국의 영토였던 시절에 태어난 홍콩인들이 받을 수 있는 국적. 영국 국적으로 취급되지만 영국 거주권이나 투표권, EU 시민권 같은 건 없다. 무비자 정책도 영국 시민권자와 다르다.[37] 예능인이 가이드를 하는 여행 프로그램.[38] 벨기에와 대한민국은 앞서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에서도 같은 조에서 만난 경험이 있다. 알다시피 차범근이 해임된 후 맞붙었던 1998 월드컵그러고 보니 베네룩스 3국네덜란드랑 같은 조였다에서는 유상철의 동점 골로 무승부(1-1)이었고그 덕분에 벨기에의 발목을 잡았다 1990 월드컵에서는 대한민국이 후반전에만 2골을 얻어맞으며 패(0-2)했다.[39] 유대 관계가 깊다고 했지 사이가 좋다는 얘기는 아니다.[40] 니우에는 뉴질랜드의 자치령이다.[41] François de Brigode. 54세인 2019년 지금까지도 RTBF 저녁 뉴스를 진행하고 계시다![42] 국내 뉴스에는 4명 사망, 122명 부상이라고 말하지만 영문판 위키백과를 따른다.[43] 장물 거래와 성추행 혐의도 있었음[44] 사회에 별 위협이 안 될 것 같으면 특별한 조건 없이 가석방하는 벨기에 법. 법의 온정을 베풀었더니...[45] 드러난 것만 6명이다. 실제로는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결국 밝혀내지 못했는데 이 과정에서 벨기에 사법당국이 이런 사건을 얼마나 안이하게 처리했는지가 드러나면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46] 벨기에 법은 형량을 어느 정도 채우면 특별히 사회에 위협이 되거나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석방을 허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47] 벨기에는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제도가 없기 때문에 가석방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데 뒤트루가 가석방된 뒤에도 정부가 임의로 다시 재수감할 수 있게 한 제도. 실제 의도는 가석방을 하지 말라는 뜻일 가능성이 높다.[48] 이 때문에 벨기에 법원이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아무리 사회에 더 이상 위험이 되지 않는다지만 어떻게 죄없는 아이들을 굶겨 죽인 범죄자를 사회로 내보낼 수 있느냐는 것.[49] 사실 이건 어느 나라나 큰 차이가 없다. 캐나다에서도 전직 공군 대령이자 성도착자인 러셀 윌리엄스가 여성 두 명을 연쇄 성폭행 살해한 사건이 발생한 뒤 사람들은 사형 제도를 부활시켜 그를 처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50] 그의 창의력과 독특함이 잘 드러나는 곡 https://youtu.be/CAMWdvo71ls[51] 디아볼로 천재소녀. 벨기에 출신. 9살때부터 디아볼로 국제대회에 나가 3년 연속 우승을 차지한 실력있는 디아볼러이다카레이도 스타 7화의 "웃음을 잃은 굉장한 소녀"로 카레이도 스타에 첫 출연했다. 처음에는 관객의 즐거움을 배제한, 기술의 완벽함만을 추구하는 냉정하고 현실적인 디아볼로머신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나에기노 소라와 디아볼로 공연을 통해 관객의 호응을 얻게되면서 자신이 처음 디아볼로 대회에 출전했을 때 즐거워했던 관객들을 다시 기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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