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20 19:07:44

키르기스스탄

키르기스 공화국
Кыргыз Республикасы

Kırğız Respublikası
Кирги́зская Респу́блика
Kirgizskaya Respublika
파일:키르기스스탄 국기.png
국기
파일:키르기스스탄 국장.png
국장
면적 199,990km²
인구 5,789,122명(2017)
수도 비슈케크(Бишкек)
민족구성 키르기스인 68%, 우즈베크인 14%, 러시아인 9%
공용어 키르기스어, 러시아어
종교 이슬람(75%), 러시아 정교(20%), 개신교 등 기타(5%)
정치체제 의원 내각제
대통령 소론바이 젠베코프(Сооронбай Жээнбеков)
총리 무함멧칼르이 아블가지예프(Мухамметкалый Абылгазиев)
GDP 66억 달러(2015년 기준)
1인당 GDP 1113 달러(2015년 기준)
통화
국가 키르기스스탄 공화국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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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국명3. 역사4. 자연과 관광5. 경제6. 민족7. 언어8. 문화9. 키르기스스탄군10. 외교 관계
10.1. 러시아와의 관계10.2. 카자흐스탄과의 관계10.3. 우즈베키스탄과의 관계10.4. 아프가니스탄과의 관계10.5. 중국과의 관계10.6. 대한민국과의 관계
11. 창작물에서의 키르기스스탄12. 둘러보기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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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스어: Кыргызстан (크르그스스탄)
러시아어: Киргизия (키르기지야)
영어: Kyrgyzstan
중앙아시아 남부 산악지역에 위치한 나라. 수도비슈케크.

상하이 협력기구, 옛 소련 구성국 간의 정치/경제 협력 단체 독립국가연합, 유라시아 연합 회원국이기도 하다.

국기에 표현된 문양은 본래 유목민족인 키르기스인의 전통적인 이동식 천막(유르트) 맨 위 가운데에 뚫린 환기구, 냉방 역할을 하는 구멍의 모습을 본 딴 것이다. 즉 키르기스스탄 사람들이 집 안에서 누워있거나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볼 때 볼 수 있었던 것을 국기에 새긴 것이다. 붉은 배경 가운데에 있는 심볼은 태양과 다민족을 의미한다. 한국인에게 유목민족의 천막은 몽골게르 쪽이 그나마 더 유명하고 거기에도 위쪽 같은 위치에 구멍이 있지만 키르기스인의 유르트의 구멍과는 모양이 약간 다르다.

현재 키르기스스탄 영토인 탈라스(Талас)는 세계사 교육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건인 당나라압바스 왕조 간의 탈라스 전투로도 유명하다.

중앙아시아의 구 소련권 국가들중에서 사실상 유일한 민주주의 국가이다. 물론 안정적으로 민주주의가 갖추어졌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주변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같은 나라들이 민주주의 및 언론과 국민의 자유가 세계 최악 수준인 것에 비하면 한참 낫다. 카자흐스탄은 나름대로 경제발전에 성공했고 인권탄압도 비교적 덜해 세계 최악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여기 역시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장기집권했던[1] 독재국가인지라 독재 체제를 무너뜨린 키르기스스탄에 비하면 정치분야에 한해서는 한참 못하다.

이처럼 정치는 비교적 안정되었지만 알라 카추라는 몹쓸 납치혼 관습이 남아 있어서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2. 국명

국명의 현행 표준 표기는 러시아어 표기법을 따라 '키르기스스탄'이지만, 국명이 다소 독특하기 때문에 키르기즈스탄, 키르키스스탄, 키르키즈스탄, 키르기스탄, 심지어는 키르기리스탄(...) 등으로 와전되기도 한다.키르기리시탄 일단 키르기스어로는 '크르그스스탄(Кыргызстан, [qɯrʁɯsˈstɑn\])'이라고 하는데[2], 민족명인 '크르그즈(또는 어말 장애음이 무성음화된 크르그스)'라는 단어의 유래는 40을 뜻하는 크르크(кырк)에 복수형 접사인 -ыз가 붙은 형태인데, 고대 튀르크어로 '40여 부족들' 또는 '40명의 여인들'같은 의미를 지닌다.

러시아에서는 '키르기지야(Киргизия, [kʲɪrˈɡʲizʲɪjə\])'라는 표기를 사용한다. 소련이 붕괴된 이후 결정된 러시아어 표준 표기법에서도 표준으로는 이것을 삼고 있을 정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등 -스탄이 붙는 국가들이 모두 원형대로 쓰이는 반면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은 키르기지야, 투르크메니야라는 다소 이질적인 형태가 표준이 되었다. ы가 и가 된 건 러시아어에서 к를 포함해 몇몇 자음 뒤에 ы가 올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고, 거기에 러시아어의 일반적인 국명 어미인 -ия를 붙인 형태로 변이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제는 러시아의 주류 언론들에서도 원어 표기를 존중하여 Кыргызстан(다만 러시아어 발음은 '키르기스탄[kɨrɡɨˈstan\]'에 가까움.)으로 말하는 경우도 점차 늘고는 있다. 주로 젊은 층들은 원어대로 읽고 쓰는 경향이 많다고 한다. 특히 외래어의 경우 к 뒤에 ы가 오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

3. 역사

유목민족에 관한 중국 최초의 기록에서부터 등장하고 그 이후 역사 기록 속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나, 단 한 번도 유목제국을 건설해보지 못했고, 그럼에도 나타났다 사라진 수많은 민족들과 달리 끝까지 살아남아 현대에까지 그 이름으로 국가를 세운 민족.

키르기스인들은 기원전부터 예니세이 강 상류, 삼림지대의 수렵민 집단으로 생활해 왔다. 본래는 이란계 유목민, 정확히는 사카계(스키타이계) 유목민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한자 기록에서는 주로 '견곤(堅昆)' 혹은 '격곤(鬲昆)'이라는 이름으로 표기된다. 가장 이른 기록은 사기 흉노열전의 기록인데, 기원전 209년에 흉노의 묵특 선우가 아버지 두만 선우를 죽이고 권력을 장악한 뒤 주변 유목집단들을 병합해 나가는 과정에서 북쪽 바이칼 호 방면으로 혼유, 굴사, 정령, 격곤, 신려 등을 복속했다는 내용에서 등장한다. 기원전 60년 흉노허려권거 선우가 사망한 이후 흉노는 동서로 분열하는데, 동흉노의 호한야 선우내몽골로 내려가고 외몽골에 남았던 서흉노의 질지골도후 선우는 북방 여러 민족들을 정복하고 다녔는데, 오걸의 군대를 동원해서 격곤을 격파했다는 기록에서 다시 한 번 등장한다.

이후 오호십육국시대선비가 강성해지자 선비에 복속하였고, 남북조시대에는 유연에 복속하였다. 돌궐이 등장한 이후에는 돌궐에 복속되었는데, 돌궐의 3대 무한 카간 때 "서쪽으로 에프탈을 격파하고 동쪽으로는 거란을 패주시켰으며 북쪽으로는 키르기스를 병합하여 새외의 모든 나라를 복속시켰다"는 《주서》(周書)의 기록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이를 전후하여 6세기 무렵부터 일찍이 튀르크화되었다. 돌궐이 당나라에 의해 멸망한 이후에는, 646년 당에게 '격곤 도독부'라는 이름으로 복속되어 기미지배를 받았다. 이후 돌궐 제 2제국 시기에는 일테리시 카간에 의해 격파당하고 복속되었다. 위구르가 돌궐 제 2제국을 멸망시키고 중앙아시아의 패자로 등장하자, 다시 위구르에 복속되었다.

위구르 카간국의 알프 빌게 카간이 사망한 뒤 위구르 제국 내부의 권력 다툼 와중에, 840년 카사르 테긴 카간과 대립하던 한 수령이 키르기스인들을 불러들였고, 키르기스 군대는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들어와 카간을 살해하고 위구르 제국의 수도를 점령한 뒤 약탈을 자행함으로써 위구르 제국을 멸망시켰다. 키르기스인들은 이를 대신하여 새로운 제국을 건설하지 못하고 다시 자신들의 땅(예니세이 강 상류)로 돌아갔다.[3][4][5]

1207년 칭기즈 칸의 통일 몽골에 의해 복속되었다. 1260년 몽케 칸의 사망 이후 쿠빌라이 칸아리크부카의 칸위 계승 전쟁에서 아리크부카가 키르기스로 피난하기도 하였다. 15세기 전반에는 오이라트의 지배를 받았던 것으로 보이며, 현재의 키르기스스탄의 위치인 천산 북방으로 언제 이주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러시아 제국의 동양학자인 바실리 바르톨트는 오이라트가 모굴 칸국과 전쟁을 할 때 키르기스도 동참하여 모굴리스탄으로 왔다가 1470년대에 전쟁이 끝난 뒤 그대로 남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키르기스인들의 유명한 서사시 『마나스』에는 이들이 '칼미크에센 칸'의 공격과 학살에 직면하여, 고향을 떠나 천산 지방으로 이주했다는 내용이 보인다. 즉, 키르기스인 본인들의 기록에 따르면 1440~50년대 에센 칸 치하 오이라트의 압력을 피해 지금의 위치로 남하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후에는 다른 집단 혹은 사건들과 연관되어 간간히 등장한다. 미르자 하이다르의 『라시드사(Tarikh-i-Rashidi)』의 후기 모굴 칸국 알둘 라시드 칸에 의해 공격받았다는 기사, 백산당 지도자인 호자 부르한 앗 딘과 호자 야흐야가 바다흐샨 산지로 도주했을 때 그곳에서 유목하던 키르기스인에 의해 피살되어 건륭제에게 수급이 인도됐다는 기사에 등장한다. 19세기 중반 신강무슬림반란 시기에도 등장하는데, 카슈가르 지역에서 키르기스의 수령 시디크와 퉁간(Tungan)[6]들이 연합하여 반란을 일으킨 뒤 코칸트에서 백산당계 호자 부주르그를 초치하였다

19세기에 들면서 동방으로 세력을 확장하던 러시아 제국, 러시아 혁명 이후에는 소련의 지배에 들어가게 되고 1937년 스탈린에 의하여 민족주의 인사 137명이 학살당해 비밀리에 매장되는 일이 있었다. 이들의 시신은 1991년에서야 발굴되었는데, 키르기스스탄의 경우 몇몇 목격자가 계속 입으로 그 장소를 알렸다가 소련에서 독립하자마자 시신을 파내고 성지화했다. 1991년 소련에서 독립한 후 2005년 튤립 혁명이라 불리는 민주화 혁명으로 아스카르 아카예프 독재정권이 축출되고 쿠르만베크 바키예프가 대통령이 된다. 2008년 지진이 일어나 69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이 당시 보여진 정부의 무능한 대비와 여전히 비리가 넘치는 현실. 그리고 우즈베크인들이 대거 와서 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에 여론이 분노하였다.

결국 2010년 4월 7일, 바키예프의 오른팔이었던 로자 오툰바예바의 주도 하에 다시 민중봉기가 일어나 열두 시간 만에(...) 바키예프 정부가 뒤집어지고 대통령은 망명했다. 더불어 두 달 후인 6월, 남부 지방 대다수 키르기스인들이 우즈베크인들을 마구 집단공격하면서 우즈베키스탄과 갈등이 크게 벌어졌다.

2010년혁명이후 헌법 개정을 통하여 중앙아시아 국가로는 최초로 의원 내각제를 도입하였다. 여성 임시 대통령 로자 오툰바예바는 이후 각종 평화상을 수상한다.

2011년 12월 1일, 중앙아시아 최초의 민주적인 절차를 거친 대통령 선거로 알마즈베크 아탐바예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명예직에 가깝고, 총리가 행정 관련 업무와 모든 권한의 위임 등을 차지하고 있는 내각의 실질적인 수장이다.

2015년 5월 1일에는 경제부 장관을 역임한 바 있는 테미르 사리예프가 총리로 취임하였다. 2016년 4월 13일 총선에서는 독립당과 소론바이 젠베코프가 이김으로써 정권 이양을 했으며 그는 전 총리의 실권을 그대로 물려 받아 실질적인 의회의 수장이 되었다.

2016년에, 2010년에 작성된 헌법 원본이 사라지는 소동[7]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알마즈베크 아탐바예프가 2016년 12월 11일에 치러진 국민투표로 개헌이 통과됨에 따라 자신의 임기 연장을 노리려고 한다는 것이 점점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아탐바예프 대통령은 출마하지 않았고, 같은 당 소론바이 젠베코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2017년 12월 1일부터 임기를 시작하였다.

4. 자연과 관광

고산이 많고 사막이 없는 천혜 환경을 지니고 있어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라 불린다.

파일:lake_issyk_kul.jpg
이 나라에 있는 최대의 호수인 이식쿨(으슥쾰)(Ысык-Көл, 따뜻한 호수)[8]은 소련 시대에는 공산당 간부들도 휴양지로 찾아올 정도로 명성 높은 곳이었고, 지금도 거의 오염되지 않았다고 하니 정치상황만 안정되고 홍보만 되면 관광지로 각광받을 수 있을 듯 하다. 이식쿨 호수는 티티카카호에 이어 세계 2위의 산정호수로, 길이 180km 폭 70km로 바다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넓으나, 뜨거운 태양볕 아래 수평선 넘어 보이는 만년설 산봉우리(호수가 해발 1600m, 수심 700m)가 묘한 조화를 이루며 평범한 바다나 호수에서 볼 수 없는 경이로운 풍경을 선사한다.

바다보다 5배 약한 소금기를 함유하고 있어 수영하기에도 좋고 피부병 치료에 탁월한 약수로 알려져 있어 중앙아시아인이나 러시아인들은 1-2달씩 작정하고 와서 쉬다 간단다.

이 나라 최고봉 젱이시 초쿠수(Жеңиш чокусу, 승리봉)는 7439m의 흠좀무한 높이인데 이외에도 타지키스탄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7,134m높이의 이븐 시나 봉(레닌 봉)도 있는데 이 산은 암벽이 거의 없어서 세계 7,000m 대 산들 중에서 오르기 쉬운 산으로 소문나있다. 물론 전문 산악인이 아닌 일반인한테는 상당히 버겁다.

CBT(Community Based Tourism)라는 일종의 여행 조합이 활성화돼 있는데, 웬만한 마을까지 사무실이 다 있어서 여행안내, 도시나 시골 유목민 천막 홈스테이나 투어를 연계해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영어가 참 안 통하는 중앙아시아 나라들 중에서 러시아어나 현지어를 모르는 외국인이 그나마 배낭여행하기 편한 나라로 알려져 있는데, 사람 사는 곳 어디나 그렇지만 가성비가 창렬이라는 평가도 있다.

5. 경제

자원은 별다른 게 없으나 이 많은 지리적 이점으로 반대로 물이 부족한 이웃 자원부국 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에게 물을 수출하면서 석유와 가스 자원을 들여오고 있다. 우즈베크인 추방 및 민족 갈등으로 우즈베키스탄과 외교적인 갈등이 노골화되고 있지만, 키르기스스탄에서 수입하는 물이 워낙 많아 우즈베키스탄도 함부로 이 나라를 견제하지 못한다고.

중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민주 정권을 이룬 점은 본받을만 하지만 일각에서는 오히려 민주 정권이 들어선 점이 주변국들에 비해 키르기스스탄의 경제가 도약하지 못 하는 원인이라 보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이런 곳에는 개발독재가 필요하다"는 식의 극단적인 논리가 아니라, 키르기스인이 본래 유목민이었다는 점과 소비에트 연방 때에도 국민들의 생활상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는 점에서 비롯되는 특수한 문제이다.

유목 생활은 21세기 현대 기준에서는 생산력이 매우 낮은 생활수단으로 여겨지지만 키르기스스탄의 경우는 아직 전통적인 유목 생활을 고수하기를 원하는 국민들이 많고 주변국들과는 달리 민주주의 체제이기 때문에 이들을 강제로 산업 체제에 편입시킨다는 생각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사실 그렇다고 키르기스스탄이 주변국들보다 실제로 손해를 보고 있는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 게, 우즈벡이나 투르크멘 같은 곳이 산업 인구를 확보했다곤 해도 실제로는 국민들이 별다른 교육 없이 목화 농장에서 푼돈으로 일할 것을 강제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2017년 10월 19일경 EBS 특집 다큐멘터리로 키르기스스탄의 유목생활에 대한 다큐가 방영되기도 했다.

6. 민족

키르기스인에 이어 우즈베크계와 러시아인 (9~11 %), 중국계 무슬림인 둥간인, 중국의 탄압으로 이주한 위구르족 등이 대거 살고 있지만, 철저하게 이슬람을 믿으며 중국과 거리를 두기에 화교들을 견제하는 편이다. 이들은 다수 키르기스인들과 그럭저럭 평화롭게 사는 편이다. 90년대 중국이 둥간인들을 중국인이라면서 끌어들여 국경분쟁에서 유리한 영향력을 가지려고 시도했으나 이들은 우린 중국어도 모른다며 선을 그어버렸다고 한다. 아닌게 아니라 이들은 다수가 19세기에 걸쳐 수 차례에 터졌으며, 매번 청나라 황실의 유혈 진압으로 끝났던 둥간 반란 당시 난민들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처지였던 준가르인들이 청나라의 학살로 결국 영원히 지구상에서 사라졌던 것처럼 이들도 혹독하게 시달려왔기에 지금도 중국과 사이는 영 좋지 않다.

고려인들도 제법 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오래전에 강제로 끌려온 한국인들의 후손들이다. 대다수는 한국 성을 유지하고 있고 나름대로 자부심도 있지만, 조상들이 어떻게해서 키르기스스탄까지 왔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당연히 한국어도 전혀 할 줄 모른다.

이렇게 다양한 민족들이 살고 있다 보니, 키르기스스탄에서는 눈 파란 사람, 라면머리 사람 등 다 다르게 생긴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키르기스스탄에서 생긴 건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러시아어를 쓰니까 신기하게 보는 해외 관광객도 많다. 키르기스어는 키르기스인이 주로 사용한다. 키르기스스탄에 있는 러시아인들은 러시아어를 고집하며 키르기스어를 잘 배우려 하지 않는다. 키르기스스탄에서 태어났지만 본토어를 배우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그런데 이건 다른 옛 소비에트 연방이던 나라에서 마찬가지다. 그러다보니 에스토니아나 몇몇 나라는 자국어 교육을 강화하고 러시아어를 사용을 줄이려고 하여 거주 러시아인들이 반발하는 일도 벌어졌다.

7. 언어

독립 당시엔 키르기스어만 공용어로 정하다가 나중에 러시아어도 추가되면서 둘 다 공용어가 되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많은 어린 학생들이 키르기스어가 배우기가 귀찮다고 많이 배우지 않고, 쓰지도 않는다. 오히려 키르기스 민족이면서 키르기스어를 못하는 학생들이 상당히 많다. 거기에다 러시아어를 알려고 노력까지 하는 등 러시아어가 널리 퍼져 있다.#(러시아어 원문)

키르기스스탄에서는 러시아어, 키르기스어 둘 중 아무 언어나 써도 대부분 사람들이 이해한다.

우즈베키스탄과 달리 카자흐스탄 사람들이 러시아어를 특별한 억양없이 구사하는것처럼 키르기스스탄 사람들이 쓰는 러시아어도 표준 러시아어다. 그리고 소수민족들도 거주하고 있어서 둥간어, 우즈베크어, 위구르어 등도 쓰이고 있지만, 이들 언어의 화자도 대부분 러시아어를 같이 사용한다.

8. 문화

쾩뵈뤼(көк-бөрү)라고 불리는 민속스포츠가 유명하다. 카자흐어로는 쾩파르(көкпар), 페르시아어로는 부즈카시(بزکشی)라고 불리는데, 축구나 농구와 달리 선수들이 말을 타고 다니며 공 대신에 양이나 염소 시체를 잡고 던져서 상대편 구덩이에 골을 넣는 경기로 그 위상은 다른 구기종목을 능가할 정도다.

스포츠로 축구가 인기있긴 하지만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하고 있다...가 2019 AFC 아시안컵에서 덜컥 16강에 올라가는 위력을 보여주었다. 키르기스스탄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 참조. 2019 아시안컵에서 카타르 축구 국가대표팀알모에즈 알리와 함께 유이하게 해트트릭을 기록했던 비탈리 룩스가 이 팀 소속이다.

키르기스스탄 "알라 카추" 이라는 유구한 풍습이 전해져 오고 있다. 알라 카추라는 이름은 '붙잡아서 뛰기'라는 뜻으로, 합의 하에 이루어지는 납치혼이다. 유목민 시절의 약탈혼 관습과 중동 문화의 가부장적 의식을 배경으로 등장하였다. 요즘은 몇몇 시골에서만 잔재할 뿐...이라고 하지만 문제는 키르기스스탄 인구의 65%가 시골에서 산다. 실제 1년에 결혼하는 수가 54,000쌍인데 이중 50%가 알라 카추에 의한 것이라고 키르기스스탄 정부에서 인정한바 있다(2014년). 대개는 양 집안의 합의하에 전통적인 퍼포먼스 정도로 행하고 있지만, 매년 1만명 이상이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전통이라는 미명 아래 강제결혼의 피해자가 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강간, 폭행, 살인사건도 종종 발생한다고 한다. 이 지역의 풍습이나 여성에 대한 인식(순결을 잃은 여성...)으로 인해, 이런 강제결혼을 80%는 어쩔 수 없이 순응하며 사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상술한 대로 중앙아시아에서는 그래도 민주주의가 발달한 편이다. 유라시아 연합에서 아르메니아와 함께 둘밖에 없는 민주 국가인데, 주변 나라들이 싸그리 장기집권 독재자가 판치는데 두 나라만이 선거를 치루며 정권 이양이 평화롭게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두 나라 모두 경제적으로 그리 풍족하지 못하고 러시아 입김을 많이 받고 있는 현실이다.

이 나라는 초등학교 4년, 중학교 5년, 고등학교 2년이다. 또한 이 나라도 제헌절이 5월 5일이라서 5월 5일이 공휴일이다. 재수가 없으면 5월 9일 이후 11월 7일까지 공휴일이 없을 수도 있다(...). 우리는 6, 7, 8과 10, 11, 12월에 빨간 날 없는 해는 있지만 얘네는 재수 없으면 6, 7, 8, 9, 10, 11, 12월 일곱 달 동안 노는 날 없는 최악 크리스마스는 1월 7일이다.

9. 키르기스스탄군

소비에트 연방의 여느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소련 독립 이후에 정식 창설되었다. 창설일은 1992년 5월 29일이며 정식 명칭은 "키르기스 공화국의 군대"이다. 소련 해체 이전에는 소비에트 연방의 투르케스탄 군구에 속해 있었다. 이 공화국 군대는 육군, 공군, 방공군, 남쪽과 북쪽의 군 사단들, 공화국 내륙 방면의 병력들, 국가국경방위군 및 국가보안군청으로 이루어져 있다. 1967년 이후 소련 시기에는 제 8 판필로프 기계화보병 사단이 이 지역의 주 군사 집단이었고, 이 사단은 2003년 1월에 이르러서 해체되었다. 판필로프 사단은 1967년에 발트해 군구에 있던 것이 비슈케크로 옮겨진 것이다.

육군은 탱크, AIFV, APC, 대공포, 기관총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특수부대들은 방위부에 속해 있는 부대, 국가 방위 특수부대, 국가보안청 소속 부대, 내륙방면 부대 크게 4가지로 나눠진다. 공군은 러시아산 Mil Mi-8 8대, Mil Mi-24 24대의 헬기들을 보유했고, 방공군은 SA-2 20대, SA-3 20대, SA-4 12대, SA-7 1대, ZSU-23-4SP 24대, S-60 24대를 보유했다.

10. 외교 관계

한때 미군과 러시아군이 함께 주둔했던 기묘한 나라다. 미군의 마나스 공군 기지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지원하고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중요한 장소로 상주인원이 2만 명에 달했으나, 2014년 이후 러시아의 등쌀과 회유에 못 이긴 키르기스스탄 정부에 의해 폐쇄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여론조사에서는 대체로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에 대해서는 우호적이며, 반대로 미국과 우즈베크·타지크에 대해서는 비우호적이고, 중국에 대해서는 양면적인 여론이 나타난다.#

10.1. 러시아와의 관계

소련해체부터 친러 성향을 띄며,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독립국가연합, 상하이 협력기구에 가입해있다. 2017년의 여론조사에서는 키르기스인의 97%가 러시아가 중요한 경제적 파트너라고 응답했다. 그리고 키르기스스탄은 처음에는 키르기스어만 공용어로 지정하다가 나중에는 러시아어도 공식언어에 추가시켰다. 유라시아 연합에는 2015년 5월 1일에 가입했다. 옆나라 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처럼 키르기스스탄 젊은이들도 대부분이 독립할 나이가 되면 러시아에서 일자리를 찾길 원하며 러시아에 가서 일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리고 키르기스스탄에도 러시아군이 주둔하고 있고, 러시아인들의 비중도 10%이상되어 있는 편이다.

하지만 최근엔 러시아도 저유가와 경기침체, 서방의 경제제재로 사정이 좋지않아 러시아로 가도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렵고 구해도 저임금 일자리밖에 못구하는 현실이다. 게다가 러시아에서도 인종차별을 당하는데다 인종차별주의자인 스킨헤드들에 의해 살해되는 경우도 많이 존재하며 반대로 키르기스인에 의한 범죄도 많이 발생되고 있다.

키르기스스탄이 경제난에 빠지자 러시아측은 키르기스스탄에 3천만 달러를 지원했다.#

10.2. 카자흐스탄과의 관계

카자흐족과 키르기스족은 19세기 초반까지만해도 키르기스스탄으로 묶여져 있었고, 두민족간의 굉장히 비슷한 언어뿐만 아니라 생김새도 구별하기 힘들 정도이다. 하지만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키르기스스탄이 자신들과 같은 경제발전에 실패하고 과거에 계속 머무는 거라고 무시하는 경향이있다. 키르기스스탄은 카자흐스탄을 롤모델로 성장중이며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는 점점 알마티화돼가고 있다.

2017년 12월 26일에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은 양국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국경문제에 대한 원칙에 합의했다.#

10.3. 우즈베키스탄과의 관계

우즈베키스탄과는 사이가 매우 좋지 않다. 거기에다 충돌까지 일어나는 편이다.[9] 심지어는 키르기스스탄에서 개설한 사이트가 우즈베키스탄에선 차단될 정도이다. 그리고 키르기스스탄의 오시라는 도시는 우즈베크족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10.4. 아프가니스탄과의 관계

중국과 마찬가지로 아프가니스탄에도 키르기스족들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들은 아프가니스탄 북동부의 바다흐샨 주에 거주하고 있다. 그리고 아프간의 키르기스족들은 키르기스어를 표기할 때 중국과 마찬가지로 아랍 문자로 표기된 키르기스어를 사용한다.

10.5. 중국과의 관계

중국과는 소련 해체 이후부터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 그리고 중국에도 키르기스족들이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키질수 키르기스 자치현에 주로 거주하고 있다. 중국의 키르기스족들도 키르기스어를 사용하지만, 아랍 문자로 표기된 키르기스어를 사용하고 있다.

정부간 사이는 좋은 편이지만, 키르기스스탄 국민 사이에는 반중감정이 어느정도 있다. 2013년 1월에 중국인과 현지인들간에 충돌이 크게 벌어졌다. 중국인 4명이 현지 키르기스인이 자기네 핸드폰을 훔쳤다고 납치해서 감금하고 구타한 것. 이에 구타당한 현지인이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고 아버지가 왔으나 중국인들은 아버지도 구타하고 감금했다. 이후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했으나 중국인들은 경찰까지 구타해버렸다. 결국 경찰들에게 이들은 처맞고 구금당했으며 엄청난 벌금형을 처했다. 이에 중국에선 피해자로서 반발했으나 "경찰구타가 피해자냐?" 라는 키르기스스탄 측의 주장에 침몰. 러시아가 중재하여 이 4명은 석방되어 중국으로 보내졌지만 이들은 키르기스스탄 영구입국 금지를 당하여 그동안 키르기스스탄에서 자영업으로 벌어들인 것을 모두 잃었다.

그리고 키르기스스탄은 일대일로 사업에 따른 인프라 건설로 국가부채 규모가 GDP 대비 78% 수준까지 늘어났다. 일대일로 사업 참여 이전의 62%에 비해 큰 폭으로 증가했다.

10.6. 대한민국과의 관계

1992년 독립지위 승인에 따라 대한민국과는 그 해에 외교관계를 맺었으며 1997년 문화협정, 투자협정을 체결하였다.

2012년 7월 26일 키르기스스탄 정부가 관광산업 활성화와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대한민국을 포함한 44개 국가에 대한 사증 면제 프로그램을 공포하고 즉시 시행에 들어갔다. 대한민국 국민은 비자 없이 최대 60일까지 체류할수 있다.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에 대한 인상은 비교적 우호적이다. 2011년 흥행 1위를 차지한 자국영화 <구준표와 결혼하는 법>이란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한류에 푹 빠진 소녀 주인공을 둘러싼 가벼운 코미디이지만 한국에 대하여 매우 우호적으로 나왔던 영화라고 한다.

2013년 11월 19일 아탐바예프 대통령이 방한, 대한민국 국회를 방청했다. 높은 수준(?)인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배우겠다는 취지에서 방청했으나 전날 있었던 민주당 강기정 의원사건에 항의해 야당 의원들이 모두 퇴장(...)하여 좀 난감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한국 정부에서는 외국인 학생들을 선발하여 한국에서 국비 유학을 하게 해 주는 제도가 있다. 관련 시험(한국어능력시험)을 이웃 국가인 카자흐스탄에서 한꺼번에 치른다. 키르기스스탄 출신 지원자들은 대부분 여학생들로, 한국에 반드시 가야 한다는 열망이나 절박함이 카자흐스탄인 지원자들을 압도한다고 한다. 키르기스스탄은 구소련 국가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나라중에 하나로 꼽히다 보니, 국비장학생으로 한국에 들어온 여학생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한국남자와 국제결혼해서 한국에서 살겠다는 다짐으로 중무장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 키르기스로 귀국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때문에 카자흐스탄 지원자들 사이에서는 당해 응시자들 중에 키르기스스탄인 지원자가 많으면 '아 올해는 틀린 건가?'라고 생각할 정도(...)라는 설이 있다.

2013년 방한했던 아탐바예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해, 2015년부터 한국의 자동화된 선거 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2015년 10월부터 실시되는 모든 공직 선거에 한국의 선거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2015년 5월 지방의회 보궐선거에서 시범적으로 한국의 광학 판독 개표기를 가동했고, 개표와 집계가 10분만에 완료되는 등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이후 10월 실시되는 총선부터 모든 공직 선거에 한국의 선거 관리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도입했다. 지난 20여년간 투표 및 개표 시스템의 미비로 선거 과정의 투명성이 결여되어 있던 탓에 부정선거 의혹과 정치에 대한 불신이 만연했던 점을 극복하기 위해 한국의 선거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한다(#).

2018년에 주한 키르기스스탄 대사가 망명 신청하였다고 한다. 망명한 국가는 밝히지 않았으며, 이유는 정부의 신뢰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2019년에 월드옥타는 키르기스스탄과 남아공에서 지역경제인대회를 개최했다.# 그리고 주한 키르기스스탄 대사는 완주군을 방문했다.#

북한과도 대한민국과 같은 해에 수교하였다. 북한인들이 갈 수 있는 무비자 국가들 중의 하나로, 놀랍게도 기한이 없다! 그렇다고 친북 성향을 가진 나라는 아니다. 어차피 못오니까 통크게 해줬나

이낙연 총리는 2019년 7월 18일에 타지키스탄에 이어 키르기스스탄을 방문했다. 그리고 한국과 키르기스스탄은 직항노선개설을 검토하면서 보건, 의료, 농수산, 교통, 전자정부, 관광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이낙연 총리와 키르기스스탄의 무하메드칼르이 아블가지예프 총리는 양자회담을 가지면서 한국의 신북방정책을 지지했고, 양국간의 협력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낙연 총리는 마지막날의 일정으로 알라 아르차 국립공원을 방문했다.#

11. 창작물에서의 키르기스스탄

맥스 브룩스좀비 아포칼립스 소설 세계대전Z에서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좀비가 발견된다.

커맨드 앤 컨커 제너럴 중국 미션 5에서 발릭치라는 도시가 등장한다. GLA가 이 지역을 요새로 만들고, 밀리터리 캠프를 구축하여 다가오는 중국군을 막으려 했으나 중국군과 미국의 B-52 융단폭격으로 도시는 초토화되며 GLA는 철수하게 된다,

윤후명 의 소설 하얀 배 에서 나오는 나라 중 하나이다.

디씨 일렉갤의 mo라는 유저가 kyrgyzstan bouncing syndrome 이라는 유명한 영상 편집본을 올린다. 세계적인 DJ 티에스토의 네덜란드 로테르담(영상에서는 이것도 시드니로 주작) 공연에 KBS 스포츠 시그널 뮤직을 결합했는데, 힛갤에 올라가며 큰 주목을 받았다. 당연히 낚시글인데도 많은 유저들이 낚여 갓 잡은 횟감 저리가라할 정도의 팔딱거리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kyrgyzstan bouncing syndrome 을 줄이면 KBS이기는 하다. 키르기스스탄 사람들은 전혀 모른다는 것이 함정 키르기스스탄 바운싱 신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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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아시아의 일부로 보는 의견도 강하다. 그 외 이란,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티베트 자치구, 타타르스탄 공화국, 아제르바이잔도 때때로 중앙아로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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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9년 3월 20일부터 그는 대통령직을 물러났다. 다만 본인은 대통령 위에 군림하는 최고지도자로 있기 때문에 후임 대통령인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는 그의 바지사장일 가능성도 있다.[2] 단, 공식 국호에는 스탄자를 빼고 크르그스 공화국이라고만 한다.[3] 이는 때마침 몽골 고원에 닥친 혹한 및 폭설과 같은 자연재해와도 관련있다. 혹한과 폭설로 인해 가축들이 집단으로 폐사한 것. 몽골어로는 이런 종류의 재해를 '조드'라고 하는데, "전사는 화살 한 방에 죽고, 부자는 조드 한 번에 망한다"는 속담이 몽골에 있을 정도로 그 위력은 엄청나다.[4] 키르기스인들이 위구르의 중심지를 약탈한 뒤 몽골 고원을 버리고 떠난 것은 그 이후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키르기스의 약탈로 다수의 위구르인들은 몽골 고원을 이탈하여 남쪽과 서쪽으로 이주하는데, 이중 남쪽으로 간 위구르인들은 항복하지 않고 물자를 요구하다가 당군에 의해 학살 당해 사라졌고, 방테긴의 지휘 하에 서쪽으로 간 무리 중 일부는 하서회랑에 들어가 하서 위구르를 세웠고 다른 일부는 더 서진하여 천산 위구르를 세웠다. 이러한 위구르인의 이주는 동투르키스탄, 더 나아가 중앙 유라시아의 튀르크화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또한 위구르 멸망 이후, 위구르인들은 몽골 고원밖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키르기스인들 마저 예니세이 강 상류로 돌아가버리자, 몽골 초원에는 힘의 공백이 생겼고, 이에 따라 위구르 제국의 동북부 변경지역에 살던 타타르 부족, 그리고 '몽올실위' 등 몽골계 집단이 몽골 초원 중심부로 이주해들어왔다. 몽올실위는 '몽골'이라는 이름이 역사상 최초로 알려진 사례인데, 바로 여기에서 칭기즈 칸이 출현했다. 즉, 키르기스에 의해 초래된 힘의 공백에 의해, 몽골계 부족들은 비옥한 몽골 초원에 진입할 수 있었고, 칭기즈 칸과 그 후손들의 정복활동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5] 참고로, 후일 몽골 제국을 세우는 칭기즈 칸의 보르지긴 씨족이 본디 키르기스부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다.[6] 당시 신강 지역에 있었던 한회(漢回), 즉 무슬림화된 한족(漢族)이다. 현대에는 둥간(Dungan)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 지방에서 집단을 이루어살고 있다.[7] 한국 또한 제헌헌법 정본을 분실하여 지금까지 찾지 못하고 있다.[8] 보통은 러시아어 표기를 따른 이식쿨(Иссык-Куль) 호수라는 표기로 알려져 있으나 여기서 '쿨(Куль)은' 키르기스어로 호수를 의미하는 '쾰(Көл)'을 옮긴 것이다.[9] 우즈베키스탄과는 국경부터가 월경지가 수도 없고 굉장히 난잡하게 되어 있어서 충돌을 피하기 어렵다. 국경이 이런 구조라면 평소에 소 닭 보듯 하던 민족들도 충돌이 생길 수 밖에 없는데 중앙아시아 지역은 유목 문화 때문에 러시아 제국의 중앙아시아 정복 시기부터 소련 치하에서까지 서로간의 반목이 심한 지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