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발카르인의 결혼식을 취재하는 카자흐스탄 TV 다큐멘터리 |
발카르인은 튀르크어족에 속하는 카라차이-발카르어를 사용하는 민족 중 하나로, 오늘날에는 러시아 카프카스 내 카바르디노-발카리야 공화국을 중심으로 12만여 명 정도가 거주한다. 스탈린 시절 강제 이후의 영향으로 아직 키르기스스탄과 카자흐스탄에 인구 수천여 명이 남아있으며, 미국으로 이민한 인구와 그 후손은 3~5천여 명이다.
러시아 다게스탄 공화국의 쿠미크인과 친척 관계이며, 카라차이인과는 같은 언어를 공유한다.
2. 역사
이들과 카라차이인들은 카프카스의 알라니아 왕국을 침략하고 정복한 킵차크족이 알란인들과 혼혈되면서 생긴 민족으로 추정된다. 발카르 인들의 직계 조상은 티무르 제국의 킵차크 칸국 정벌 과정에서 많은 킵차크인들이 옐브루스 산 일대로 피난한 것을 계기로 카라차이인들과 분화된 것으로 추정된다.발카르인들은 5단계의 엄격한 신분 제도로 유명했으며, 3등급에 해당하는 평민 계급은 튀르크어에서 “검은 사람들”이라는 의미의 카락키시라고 칭해졌다. 중세 튀르크어에서 Qara라는 말은 검다는 뜻도 있지만 대중적이다 라는 뜻도 있다. 이들의 선조 중 하나인 하자르 칸국의 경우에도 귀족 계급은 하얀 하자르 라는 뜻의 아크 하자르라 칭하고 평민 계급은 검은 하자르 라는 뜻의 카라 하자르라 칭했었다.
발카르라는 민족명은 러시아인들이 17세기 이들을 처음 조우한 말카르 계곡의 이름에서 와전된 것으로 추정된다. 옐브루스 산을 중심으로 한 고산 지대에 살던 이들은 은광 개발을 통해 유명해졌으나 1828년 이 지역의 은광을 노린 러시아 제국에 정복당했다.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스탈린은 이들을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으로 강제이주시켰고 이 과정에서 발카르인 상당수가 영양 결핍과 질병으로 사망했다. 이들의 복권은 1957년에야 이뤄질 수 있었는데 1944년 이주당할 당시 3만 7천여 명이던 이들의 인구는 1958년 3만 2천여 명으로 감소한 상황이었다.
3. 문화
이들은 순니파 무슬림이지만 이들의 과거 풍습과 문화는 중세 초 튀르크 사회와 오히려 더 흡사하다 볼 수 있다. 대부분의 무슬림 사회에서는 대놓고 계급 차별을 하는 것은 지양하는 것과 다르게, 이들은 혈통을 기반으로 한 견고한 5계급 체계를 유지했으며, 이슬람 율법학자가 없고 무당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계급마다 입을 수 있는 옷이나 장신구가 달랐고 고립된 산악 지대에 다 함께 모여 거주하는 만큼 다른데로 도망가지 않는 이상 신분 이동도 사실상 불가능했다.[1]러시아 제국 시절까지 유지된 이들의 신분 제도는 역사학자들이 하자르 칸국의 사회를 추정할 때 참고 자료가 되었다. 소련 성립 이후 대숙청과 강제 이주 크리를 맞고 오늘날에는 발카르인 인구 상당수가 일자리를 찾아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대도시로 이민가면서 이들의 신분 제도는 불행 중 다행으로 완전 붕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