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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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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 공화국
Ўзбекистон Республикаси

Oʻzbekiston Respublikasi
Республика Узбекистан
Respublika Uzbekistan
파일:우즈베키스탄 국기.png 파일:우즈베키스탄 국장.png
국기 국장
면적 448,978 ㎢
인구 33,254,100명(2019)
민족구성 우즈베크인 83.7%
타지크인 4.8%
카자흐인 2.5%
러시아인 2.3%
기타 6.7%(2017)
수도 타슈켄트 (Toshkent)
주요도시 나망간(Namangan), 사마르칸트(Samarqand), 안디잔(Andijon)
정치체제 공화제, 대통령제 (5년 중임제)
대통령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
(Shavkat Mirziyoyev)
임기 2016년 12월 14일 ~
총리 압둘라 아리포프
(Abdulla Oripov)
국가 우즈베키스탄 공화국의 국가
(우즈베크어: Oʻzbekiston Respublikasining Davlat Madhiyasi)
명목 GDP 전체 GDP 402억 달러(2018)
1인당 GDP 1,238달러(2018)
GDP(PPP) 전체 GDP 2,389억 달러(2018)
1인당 GDP 7,350달러(2018)
공용어 우즈베크어 (국어), 러시아어 (공용어)
화폐단위 우즈베키스탄 숨 (soʻm)

1. 개요2. 민족 구성 및 언어3. 역사4. 지리5. 정치6. 분리주의7. 경제
7.1. 카리모프 집권기 강제노역7.2. 구 대우차의 마지막 천국
8. 군사9. 문화
9.1. 식문화9.2. 종교9.3. 스포츠
9.3.1. 축구
10. 미인의 나라?11. 교통12. 관광13. 외교 관계
13.1. 타지키스탄13.2. 키르기스스탄13.3. 카자흐스탄13.4. 투르크메니스탄13.5. 러시아13.6. 중국13.7. 아프가니스탄13.8. 일본과의 관계13.9. 한국과의 관계
14. 둘러보기

1. 개요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00px-Uzbekistan_on_the_globe_%28Eurasia_centered%29.svg.pn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Uzbekistan-CIA_WFB_Map.png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국가. 국토면적은 447,000㎢, 인구 약 3200만 명. 의외로 구 소련이었던 중앙아시아 5개국 중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 우즈베키스탄이라는 이름은 '우즈(Uz, 자신의)' + '베크(Bek, 왕)' + '스탄(Stan, 땅, 나라)'이 합쳐진 말로, '자신들의 을 가진 나라', 즉 다른 민족에게 지배받지 않는 독립된 나라임을 뜻한다. 수도는 '의 도시'라는 의미의 타슈켄트. 우즈베크어로는 터슈켄트(Toshkent, /tɒʃˈkent/)라고 한다.

여담으로 국가번호 998로 전 세계 모든 국가 중 가장 큰 수이다.

2. 민족 구성 및 언어

우즈베키스탄에는 130개가 넘는 민족들이 살고 있다. 이들 중 80% 이상이 단일 민족 우즈베크인이며, 그 다음에 많은 민족은 전 인구중 5%를 차지하는 타지크인이다. 이들 외에도 카자흐인, 러시아인, 카라칼파크인 등이 있으며, 스탈린 집권 시기에 강제이주 정책으로 중앙아시아에 정착한 고려인과 크림타타르인도 있다. 심지어는 극소수의 우크라이나인과 독일인들까지 살정도로 CIS 국가들 가운데 가장 많은 민족들이 모여 살고 있는 나라다. 그러나 우즈베크인이 전 인구의 81%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카자흐인말고도 러시아인의 인구가 많은 인접국 카자흐스탄 만큼 다채로운 인종이 보이는 편은 아니다. 우즈베키스탄은 고려인의 숫자가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국가이다. 고려인이 많은 만큼 대한민국에 대한 인식이 매우 좋은 친한국가이다. 하지만 우즈베키스탄의 민족주의 정책이 강화되면서 고려인들중에는 한국으로 이주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고려인 현지인에게 물어보면 스탈린에 의하여 끌려간 고려인들은 기차를 타는 도중에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였는데 우즈베키스탄에 도착했을 때 먹을 것을 주고 집을 지어주는 등 가족처럼 대해준 사람들은 우즈베키스탄인들이라고 하며 대부분의 고려인들은 우즈베키스탄인으로서 애국심을 가지고 있다.
참고로 한국에서 '우즈벡인'이라고 하면 튀르크계 민족으로서의 '우즈베크인(Oʻzbeklar, Узбеки)'과 '우즈베키스탄 국적 사람'의 줄인말로서의 '우즈벡인'이라는 뜻이 있다. 예를 들어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러시아인(Ruslar Oʻzbekistonda, Русские в Узбекистане)'을 우즈베키스탄 국민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흔히 '우즈벡인'이라고 하는데, 이 경우 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민족으로서의 우즈베크인과 매우 햇갈리는 상황이 생겨버린다. 대체로 민족으로서의 우즈베크인은 우즈베키스탄이 있던 지역 자체가 청동기 시절부터 유럽의 문명에 영향을 준 코카소이드의 문화권이며 검은 모발에 서구적으로 생겼고 동양적인 느낌이 있다. 이란인이나 터키인처럼 피부가 하얀 사람들도 있으며 예전에는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에 그리스인들도 살았기 때문에 피부가 하얀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아랍인처럼 피부색도 어두운 사람들도 많은데 사막에 사는 사람들이라 햇빛을 많이 받아서이다. 원래부터 고대 유럽인들은 피부 색깔이 어두웠기 때문에 피부가 어두워도 코카소이드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1]반면 이웃한 카자흐인은 카자흐인 자체가 동양인이면서도 서구적이게 생겼고 러시아인들이 워낙 많이 이주하여 살고 있어서 카자흐스탄 거주 러시아인들은 피부가 하얗다.

많은 소수 민족들이 살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이기 때문에 러시아소련의 영향으로 러시아어를 포함해서 중앙아시아 한국어, 카라칼파크어를 포함한 다양한 언어들이 쓰이고 있지만 독립 이후엔 민족주의의 영향 때문에 다른 언어들의 사용이 줄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어가 가장 많이 쓰이는 언어이자 러시아로 일하러 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러시아어는 중요한 외국어이고 아직까지 도시에서는 러시아어가 많이 쓰이고 있지만, 소련시절보다 사용자의 수가 많이 줄었다. 지방쪽에서는 러시아어를 배우는 학생들이 부족한 상황이다.#(러시아어 원문) 일단 수도인 타슈켄트에서는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우즈벡어를 사용하는 경우보다 많다. 비율상으로 우즈베크어는 74.4%, 러시아어는 14.2%, 기타 언어 4.4%순으로 쓰이고 있다.

타지크어타지크인들이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타지크어를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여기에 한류가 유행하고 있어서 한글을 배우는 사람들이 많고 타슈켄트에는 한국교육원이 있다. 그리고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심지어는 국정교과서도 영어외에 한국어로도 발행되었다.#

3. 역사

4. 지리

동쪽의 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 국경지대를 제외하면 지형은 전반적으로 평평한 편이다. 다만 그 조금 있는 산맥이 높기로 유명한 톈산 산맥의 끝자락이라 히서르 산맥(Hisor tizmasi, Гиссарский хребет)에 위치한 최고봉인 해즈래티 술턴 봉(Hazrati Sulton choʻqqisi, Пик Хазрет-Султан)의 높이는 4,643m에 달한다.

우즈베키스탄 북부에 위치한 아랄해가 소련 시절의 면화 사업으로 인해 강물의 유입이 해마다 줄어들면서 급격히 작아지고 있다. 이로 인해 호수 주변의 생태계가 파괴되고 인근의 어민들과 주민들이 큰 피해를 보고 있다. 그래서 우즈베키스탄의 정부가 아랄해 복구에 심여를 기울이고 있다. 많은 부분이 복구되었지만 아직 진행 중이라서 완벽하게 복구되진 않았다.

이웃 나라가 모두 내륙국인 탓에 리히텐슈타인과 더불어 둘뿐인 이중내륙국이다. 이중내륙국이란 의미는 해당 국가의 인접 국가들 모두가 또한 내륙국인 경우를 뜻한다. 리히텐슈타인은 인접국인 스위스, 오스트리아 모두가 내륙국이다. 다만 리히텐슈타인이 있는 서유럽은 솅겐조약으로 주변국을 한 나라처럼 돌아다닐 수 있으며 바다와의 거리도 별로 멀지 않기 때문에 우즈벡에 비할 바는 전혀 아닌 수준이다. 우즈베키스탄의 경우 동부 지역에 농업 산업을 많이 도입하고 있으며 다른 중앙아시아보다 우즈베키스탄이 더 농지에 적합한 땅들이 많으며 그렇기 때문에 우즈베키스탄인들의 오랜 정주로 인하여 중앙아시아에서 오랜 역사와 문화와 전통이 자리잡게 되었다.[2]

5. 정치

우즈베키스탄의 정치 정보
민주주의지수 1.952015년, 세계 158위
부패인식지수 19점2015년, 세계 153위
언론자유지수 61.152016년, 세계 166위[3]

우즈베키스탄은 소련 해체 이후 우즈베크 SSR 제1서기를 역임한 이슬롬 카리모프(Islom Karimov, 1938년 1월 30일 ~ 2016년 9월 2일)로 위시되는 권위주의 독재정권이 유지됐었다.

경찰이 교도소나 수용소에서 수감자들을 고문하거나 학대하는가 하면 외부와의 연락을 차단하며 억류 기간을 자기 멋대로 연장시킬 수 있다. 또한 경찰은 사람들을 임의적으로 체포하거나 구금하는 데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되며, 심지어 이렇게 잡힌 사람들에 대한 재판은 공정하게 치뤄지지 않았다.

거기에 표현의 자유나 언론 집회 및 결사의 자유가 심각하게 제한되며, 시민 사회 활동에 대한 정부 통제가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다.[4] 또한 이슬롬 카리코프 시절에는 소수 종교 단체 회원들에 대한 온갖 종교적 자유가 심각하게 제한되고 있었고, 일부 국민들에게 이주하는 것 또한 강제로 제한하고 있었다. 정부의 강요에 따른 목화 추수 강제 노동 등과 같은 우즈베키스탄 정부에 의한 심각한 인권탄압이 이슬롬 카리모프 시절에는 매우 심하였다. 이슬롬 카리모프 시절 미국의 프리덤 하우스는 우즈베키스탄을 북한, 에리트레아, 투르크메니스탄 등과 더불어 세계 최악의 인권탄압국 9개국으로 지정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현재는 많은 한국인 외의 외국인 기독교인들이 기독교 전파를 하는 둥 매우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종교의 자유가 지켜지고 있으며 타슈켄트의 경우에는 직업이 있다면 언제든 이주할 수 있으며 국민들의 이주도 자유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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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잔 학살 사건의 피해자들.

2005년 안디잔에서 민중시위가 벌어지자 이 작자가 무차별 사격을 명령하면서 최저 5백에서 최대 2500명이 학살당했다. 미국은 당시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였는데 결과적으로 당시 미국에 요긴했던 우즈베키스탄 내 미 공군 기지를 폐쇄할 수밖에 없었다. 참고 인디잔 학살 이전까지만 해도 카리모프는 러시아의 영향에서 벗어나고자 적극적인 친미 정책을 취했지만, 미국이 국내외의 여론 압박에 민주화를 지지하자 정권의 위협이 된다고 판단해 다시 친러로 돌아섰다. 대한민국도 우즈베키스탄과의 교역량이 러시아 다음의 중요 무역 파트너로 특별히 반대하거나 신경쓰진 않았다.

부정부패는 세계 최악 수준으로 2011년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하는 부패인식지수에선 소말리아북한, 아프가니스탄, 미얀마에 이어서 세계에서 5번째 부패한 나라로 꼽히기도 하였다.

하지만 향년 78세의 나이로 이슬롬 카리모프가 사망하고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Shavkat Mirziyoyev, 1957년 7월 24일)가 당선되어 경제발전을 중요시하고 정치범들을 석방하였으며 민주주의체제에 돌입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미르지요예프 정권의 우즈베키스탄에서는 경찰국가체제를 약화시키고 자유경제시장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조치가 이뤄지고 있다. # 또한 한국을 포함한 7개국에 무비자 입국을 시행하였다. 예전에 사진을 찍지 못하던 관광지들도 여행객들이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하였으며 많은 외국기업들의 투자를 권유하고 자유개방시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성장률 7%를 찍는 등 많은 정치적 선진화가 진행되고 있다.

6. 분리주의

소련 치하의 행정구역체계를 답습하였기 때문에 카라칼파크스탄(카라칼파크어: Qaraqalpaqstan, 우즈베크어: Qoraqalpogʻiston) 자치공화국이 존재한다. 영토는 아랄해를 주축으로 우즈베키스탄 영토의 40% 가까이나 차지하지만 인구는 고작 170만 수준이라 독립을 원하면서도 우즈베키스탄에게 억눌리고 있다. 예전엔 여기 대통령이 타슈켄트로 소환되어 행불되고 허수아비 대통령이 새롭게 앉혀진 적이 있다.

우즈베키스탄 남서부 사마르칸트, 부하라, 카슈카다리오, 수르한다리오에는 타지크인들이 많이 살고 있기에 독립운동을 벌였었다. [5], 후잔드를 중심으로 한 타지키스탄 북부에는 우즈베크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6] 후잔드 거주 우즈베크인들이 타지키스탄에서 분리해 우즈베키스탄으로 병합되겠다고 시위를 일으켰다가 폭동으로 발전, 타지키스탄 정부군에 의해 학살이 발생하기도 했다. 국력이 워낙 차이가 나서 타지키스탄이 영토분쟁을 일으키고 있지는 못하지만 명백히 우즈베키스탄의 영토이자 우즈베키스탄에서 가장 악명높은 독재자인 이슬롬 카리모프의 고향인 사마르칸트도 자신들 국가의 영토라 주장하고 있다.

7. 경제

세계적인 천연가스 매장국이자 산유국이다. 더불어서, 면화 생산도 제정 러시아와 소련 치하에서 엄청나게 밀어준 덕에 세계적인 나라이며, 그 밖에 망간, 몰리브데넘, 아연, 구리 같은 광물자원들도 엄청나며, 아직 개발되지 않은 곳도 많다. 덕분에 수출량에 자원이 비중을 많이 차지한다. 현재는 경제성장률 7%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실업률도 매우 낮아지고 있다.

포도멜론 같은 농작물 및 과일들도 많이 재배되는 편이며 농업도 발달하여 물산이 풍부하다. 단, 의 자급자족이 되지 않아 옆나라 카자흐스탄에서 많이 수입해오고 있다.

경제적으로 볼때 중앙아시아에서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유지한것으로 나오지만 이건 수치상으로만 그렇고 아직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하지는 못하였고 정부가 바뀌고 나서야 개방 정책으로 고도의 경제 성장률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많은 가스와 자원으로 경제성장을 한 카자흐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보다는 어느 정도 국민소득은 아직 낮은 편인데다가 독재정치로 인한 부정부패로 막대한 돈이 되는 분야를 일부가 독점하던 때가 있어서 빈부격차에 시달렸었다. 정부에서는 국민들의 불만을 억제하기 위해 식자재 가격을 상당히 낮은 가격으로 유지하고 있다. 전반적인 물가가 남한의 80년대 초반 수준으로 싸다.

당연히 이러다보니 전반적인 국민 소득은 아직은 낮은 편이다. 하지만 높은 경제성장률로 앞으로의 국민소득이 올라가는 것을 기대해볼만하다. 어느 국가나 마찬가지로 농촌으로 갈수록 소득은 낮아지며 당연히 도시 노동자들 역시 월급은 농촌보다 높은 편이다.[7] 하지만 공업이 별로 발달하지 못 한데다 이중내륙국이라는 점까지 겹쳐서 공산품은 대부분 수입하는데, 당연히 공산품 가격은 이들 소득에 비해 턱없이 비싼 편이다. 공산품 가격은 일반인들의 소득 수준을 고려하면 가히 살인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수입품인 프링글스 한 통과 국산에서 생산되는 감자 10kg은 가격이 비슷한 편이다.

2016년까지는 우즈베키스탄 사회는 높은 실업률과 그리고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었다. 마치 80년도 대한민국에서 중동으로 근무하며 가족들에게 돈을 송금하여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에 큰 기여를 한 것 처럼 해외에서 직장을 구하고 일을 하며 그 월급을 가족들에게 송금하는 사람들도 있다. 많은 남성들이 우즈베키스탄에서 가까운 해외(주로 러시아카자흐스탄)에서 근무한다. 그들이 보내오는 돈이 우즈베키스탄 현지 시장 재활성화에 큰 역할을 해서 현재 우즈베키스탄 경제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러시아중앙은행(Central Bank of Russia)의 2013년 3월 보고서에 의하면, 우즈베키스탄 노동 이주자들이 고국으로 송금하는 돈은 56.7억 달러에 달하는데 이는 우즈베키스탄 경제의 16.3%를 차지한다.[8]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일자리를 되찾기 위해 구CIS국가 노동자를 내보내라는 주장도 많다. 이러한 주장과 상황과는 다르게, 구 CIS국가 노동자를 포함하여, 우즈베키스탄 노동자들은 비자 없이 러시아 입국이 가능하다. 러시아 인구 문제가 이를 가능케 했다. 이러한 상황들이 맞아 떨어져서 우즈베키스탄 노동자가 러시아에서 주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현재 우즈베키스탄 인구 중 14세 미만 아동은 1/4을 넘는 수준이란 건데, 이러한 높은 출생률로 인해 젊은 층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커지고, 매년 생겨나는 취업연령층으로 인해 정부는 일자리 창출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문제가 너무 심해지다보니 최근에는 경공업을 육성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품질과 가격은 그럭저럭 괜찮은 제품들인데 CIS 국가 아니랄까봐 포장이... 심지어는 같은 제품인데 포장한 것보다 차라리 포장 안 되어 있는 제품의 질이 더 뛰어난 경우도 있다.

2001년 북한의 경수로 사업 당시 북한에 가서 많이 일하면서 수적으로는 중국 노동자를 압도할 정도였으며 대한민국에서도 우즈베키스탄 남성들이 제법 3D 분야에 와서 일하는 이들이 2001년부터 꽤 있다.

윗 나라 카자흐스탄이 가스 등의 자원으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것이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에게는 꽤 충격이라는 점은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9]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카자흐스탄 가는 일은 매우 쉬우며, 실제 친지방문 등의 목적으로 카자흐스탄에 다녀오는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그런데 소련 시절까지만 해도 아주 별 볼 일 없던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자기들의 도시들보다 못했던 알마티, 아스타나가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고 꽤 충격을 받는 것. '우리나라보다 못 한 나라가 우리나라보다 더 발전해버렸다.'이라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그럴일은 없지만 당장 중국의 1인당 소득이 한국을 추월했다고 생각해보자.별볼일 없던 중국 경제처럼 우즈베키스탄도 소련시절엔 카자흐스탄이 별볼일 없던 국가 느낌인 것이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우즈베키스탄은 사마르칸드, 타슈켄트, 부하라, 키바실크로드의 부유하고 학자, 예술가들이 넘쳐났던 유라시아 교역의 중심 도시들이 몰려 있었던 중앙아시아 최고의 문화와 역사가 있는 국가였던 반면 현대 카자흐스탄 지방은 근대 이전 카자크인들이 목축을 하는 지역이였으며 우즈베키스탄에 비해서는 농지도 적고 도시도 적었다.

정부에서도 여기에서 오는 불만을 인지하고 있는 듯 하였고 최근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서는 개방 정책으로 많이 나아지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경우 인천 송도에 무역대표부를 건설하여 우즈베키스탄인들이 직업을 가지면서의 환경이나 인권 등도 개선시키고 있다. 일단 새로운 대통령이 독재자들이 많은 중앙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우즈베키스탄의 대통령은 독재자가 아니라는 평도 있으니까 말이다. 최근 국민들의 경제에 대한 불만이 단순히 못 사는 데에서 오는 불만이 아니라 이웃 카자흐스탄의 발전으로 인한 불만임을 고려하면 이 불만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정권의 안정과 직결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사람은 불편은 참아도 불평등은 못 참는 동물이다.

하지만 이것도 이슬롬 카리모프의 독재시절 이야기이며 우즈베키스탄의 희망인 샤브카트 대통령은 최근(2018년) 우즈베키스탄은 경제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실제로 몇년사이에 목화강제노동과 인권탄압도 사라져 국민들이 편하게 살고 있고 자유로운 분위기에 소득도 늘어나고 있다.

7.1. 카리모프 집권기 강제노역

면화 산업에 아동 등의 노동력 투입은 중단돼야 하며 정치범에 대한 박해를 깊이 우려한다 - 반기문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소련 치하에서부터 목화농장을 직영하면서 매년 가을 수확철에 중·고교 학생들을 동원해 축사 같은 캠프에서 합숙시키며 석 달 가까이 목화 수확 할당량을 채우도록 강제노역을 시키고 있었다.

우즈베키스탄은 2013년 기준 세계 목화 6대 생산국이자 5대 수출국으로 이 나라에서 목화는 하얀 황금으로 불린다. 그 수익은 연간 10억 달러에 달해 말 그대로 국부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걸 정당한 급료를 주어서 수확시킨 것이 아니라 군대에서 군인들 부려먹듯이 국민들을 부려먹혔다는 것 중앙 정부가 지방 정부와 농민들에게 할당량을 배정하고 지방 정부는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어린이들까지 동원한다. 주민들의 하루 할당량은 40~120kg으로 보수는 1kg당 150~200숨인데 100숨이 우리나라 돈으로 50원 정도니 100kg의 목화를 따도 고작 5000원을 받을 뿐이고 그나마도 이런 저런 공제로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목화강제노동이 있었을때는 해마다 사고가 터져나갔다. 2013년에만 어린이부터 60대 노인까지 11명이 숨졌고 그나마도 정부의 강제적이고 폐쇄적인 운영 탓에 피해자 가족들은 피해보상은 커녕 죽은 이유조차 제대로 알기 어렵다. 심지어 살인도 곧잘 일어난다. 대학생 코짐 오모노브(당시 22세)와 사만다 누마토브(당시 23세)는 2013년 9월16일 아크람 사다토비치 우로브(24)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했는데, 자기 할당량은 다 했다며 남은 일을 서로 미루다가 다툰 것이 문제였다.

강제노동을 반대하는 국제 시민단체 코튼캠페인, 워크프리는 우즈벡에서 해마다 100만 명 이상의 성인과 아동이 경작기, 수확기에 강제 노동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이렇게 생산된 목화는 정부가 독점 매입해 국가 소유의 무역회사를 통해 수출하며 사적으로 목화를 거래하다 걸리면 처벌당하고 목화밭에 다른 작물을 심을 수도 없다. 이렇게 벌어들인 수익은 정부 최고위 관료만 쓸 수 있는 특별 예산 기금으로 들어간다. 물론 그 돈들은 부패한 정치인들과 일부 부패한 기업인들의 재산이 되었을 것이다.

샤브카트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서 목화강제노동은 멈쳐줬고 목화수확을 하는 사람들에게 합당한 급료를 주라고 명하였다. 그래서 지금 우즈베크인에게 목화 강제노동하냐고 물어보면 언제적 이야기냐 몇년전 얘기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왜냐면 우즈베키스탄에서 목화 강제 노동이 이루어지는 곳은 도시들이 모여있는 동쪽보다는 농촌이 많은 서쪽의 지역들이며 목화 강제 노동에 투입되는 사람들도 농촌의 정해진 지역 사람들이기 때문에 아예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7.2. 구 대우차의 마지막 천국

파일:external/s.rdrom.ru/1943749.jpg

▲현재 라본에서 생산하는 젠트라(넥시아), 라세티(젠트라), 마티즈 (참고로 R2는 마티즈와는 별개의 차량으로 판매하지만 위 사진엔 없다.)[10]

공교롭게도 대우그룹과 관계가 깊다. 93년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이 이슬롬 카리모프 대통령과 친분을 쌓으면서 자동차 공장 설립인가를 받아 95년부터 2002년, 약 7년 동안 대우차의 옛 플랫폼[11]을 생산, 판매하는 조건으로 우즈-대우(UZ-DAEWOO)를 출범시키며 공장 안정화가 된 96년부터 19년 뒤인 지금까지 부동의 우즈베키스탄 자동차 판매율 1위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며 아직까지도 날개돋힌 듯 팔려나가고 있다.[12]

그러나 99년, 대우차가 파산선언과 함께 02년을 부로 GM에게 인수가 되어 재계약권은 GM에게 돌아가는데 생산성이 없다는 이유로 우즈-대우의 워크아웃을 포기해버린다. 그러자 우즈베키스탄 정부에서는 갈 길 잃은 일부 옛날 대우차 고참 연구원들을 고용해 버리고 우즈-대우 회사와 공장 자체를 구입해버려 GM을 크게 놀라게 했다. (...)

이에 현지에서의 대우의 느낌을 실감한 GM은 우즈-대우의 약점인 부품 CKD 조달 및 설계 라이센스를 꼬투리 잡아 파트너쉽 관계로 전환하고 일부 생산 차종의 하청 생산을 맡겼다.[13]

아무튼 우즈-대우는 우즈베키스탄에서는 국민차의 지위까지 떠올라 엄청난 인기를 아직까지 자랑하고 있으며 현대와 벤츠, BMW와 일본차를 제치고 2004~5년도 러시아 수입차 시장 판매량 1위라는 엄청난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2006년부터 러시아 수출차 판매량 게임에서는 현대차의 대형 물량공세에 밀려버려 현재는 10위권까지 추락해버리고 만다. 안습. 아니 근데 최초 개발한 지 30년도 더 지난 플랫폼의 차량을 가지고 아직까지 수출차 판매량 10위권에 안착해 있다는 게 더 기적인 거 아닌가

현재는 우즈-대우라는 사명대신 라본(RAVON)[14]으로 변경하였다. 지못미 대우자동차 현재 라본에서 판매하는차량은 젠트라(넥시아), 라세티(젠트라), 마티즈, 스파크(R2), 코발트(R4)다.

최근 포스코대우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대우 브랜드를 사용한 자동차 공장 건설ᆞ판매 프로젝트를 국가와 함께 진행하자, 대우 브랜드의 확산으로 CISᆞ중동 지역에서 쉐보레 브랜드로 판매되는 GM차들의 판매가 저하될 것이라고 우려해 GM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포스코대우의 대우차 프로젝트에 대한 방해공작을 펼치고 있으며, 이를 빌미로 2015년에는 아예 2008년부터 러시아 일부지역 수출 시 사용하던 라본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라고 한다. 직접적으로 말하면 GM이 그동안 숨겨오던 대우 브랜드 죽이기에 대한 노골적인 본색을 드러냈다는 것. 우즈베키스탄 및 동구권 국가들 내부에서도 라본 브랜드에 대한 회의적인 반응이나 격렬한 반대가 많음에도 기어이 바꾸어 버렸으니....

대한민국 기업들이 대단히 인식이 좋아서 현재는 현대차가 우즈-대우보다 많이 팔리고 있다는 이전 서술이 있었는데, 우즈베키스탄 현지에서는 국영기업이라는 프리미엄 덕에 여전히 우즈대우의 판매량이 절대다수이다. 이때문에 중앙아시아 수출 및 현지 점유율 확대를 위해 현대자동차가 2020년도에 현지 공장을 건설한다는 기획을 추진중에 있다.

현재 라본 디비전의 모회사인 GM 우즈베키스탄은 우즈베키스탄 정부의 GM측 지분 전량 매수로 인해 완전히 국영기업화 되었다. 이름만 GM인 셈. 그래도 우즈베키스탄 정부에서는 여전히 GM쪽 차량을 선호하여서, 추가 계약을 통해 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 한국에서 생산도 안하는 쉐보레 이쿼녹스를 생산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8. 군사

9. 문화

원래부터 중앙아시아는 유럽의 문명과 똑같은 아파나시에보 문화로부터 청동기 문화로 발전하여서 문화적으로는 매우 서양적이다. 또한 그리스 때 전해진 음식인 "오쉬"를 즐겨먹으며 결혼식 때 그리스어인 "OPA"를 외치는 등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문화가 남아있다. 튀르크의 유목과 농업의 문화도 가지고 있으며 원래부터 종교에 관대한 튀르크 우즈베크인들로서 이슬람 종교와 정교회 등 여러 종교들이 존재한다. 구소련 국가들 중 가장 많은 소수 민족들이 사는 나라로 130개가 넘는 민족이 존재한다.[15] 그만큼 문화도 다양하나 대체로 우즈베크인의 전통 문화와 러시아인의 정교회 문화로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그리고 우즈벡인들의 전통 문화는 지역별로는 타슈켄트부터 안디잔까지의 동부권, 사마르칸트, 부하라를 중심으로 한 중부권, 히바를 중심으로 한 서부권으로 갈린다. 이는 과거 우즈베키스탄의 중앙아시아 지역에 있었던 3개 칸국과도 일치하는 편.

농촌에서는 아직도 마할라라는 집단을 이루며 거주하는데 차(초이라고 부른다.)를 즐겨마신다. 매우 다양한 차가 존재하며 가족들과 친국들끼리 담소를 나누면서 차를 마시는 문화가 있다. 한때 공산주의국가여서 전혀 어울리지 않겠지만 굉장히 자본주의적이다. 왜냐하면 사마르칸트는 실크로드 무역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카자흐스탄 속담에는 "우즈벡 사람들은 달나라에 가서도 장사한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는 티무르나 15세기에 활동하던 아프가니스탄 출신[16]의 문학가 알리셰르 나바이(Ali-sher Navoiy)가 국부로 추앙받는다. 알리셰르 나바이는 영어에서 셰익스피어, 독일어에서 괴테 같은 존재라고 보면 된다. 당시 거의 유일하자 최초로 우즈베크어로 문학 작품들을 집필해서 우즈베크어 형성 및 발전에 엄청난 공을 세웠다.

이 나라의 예절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문을 사이에 두고 악수하지 않는다. 이는 절교를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실내에서 모자를 쓰거나 신발을 신는다. 머리고기는 연장자에게 준다고 한다.

한편, 관료주의 사회였던 소련의 영향으로 굉장히 관료주의적이어서 어떤 일을 할 때마다 서류가 너무 많이 필요하며 시간도 오래 걸린다.

초등학교가 4년, 중학교가 5년, 고등학교가 2년이다. 따라서 우즈베키스탄에는 고3이 없고 고2가 곧 고등학교 졸업반이 된다. 이 나라의 대학 1학년생의 나이는 한국에서 고3에 해당한다.

우즈베키스탄의 대중가요들.

2017년에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가치를 왜곡하고 안정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34개의 컴퓨터 게임 금지 목록을 발표했다.#

9.1. 식문화

우즈베키스탄 요리 문서 참조.

9.2. 종교

대부분의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무슬림이다. 정교회 국가 러시아 제국에 이어 무신론 소비에트 연방의 소속이였던 나라여서 세속 가치가 뿌리내린 데다 모든 종교에 관대한 유목민족 투르크인이다 보니 전반적으로 우리가 상상하는 이슬람 국가들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파키스탄, 브루나이, 아프가니스탄 등) 보다는 매우 느슨하게 율법을 지키는 편. 술을 친구들과 마시거나 같이 담배를 피거나 돼지고기를 즐기는 등 자유롭다. 공산주의 붕괴 이후에도 이슬롬 카리모프가 적극적으로 세속주의 정치를 펼치며 세속가치를 주입한 것도 한몫 하였다.[* 유감스러운 일이나 이슬람권에 민주주의를 주면 대개 1990년의 알제리처럼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승리하곤 했기 때문에 서방 국가들은 다른 곳과 달리 이슬람권의 세속 독재자는 쫓아내기를 주저한다. 당장 이집트만 봐도 민주화가 되니까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인 무슬림 형제단을 밀어주었고 무슬림 형제단이 집권한 정부와 의회가 종교광신 정책을 제정하여 비이슬람과 세속주의자들을 탄압하다보니, 결국 보다못한 군부가 알제리처럼 나서서 갈아엎었다. 지금 알제리와 이집트는 제2공화국 이후 1960년대 대한민국처럼 군부 주도 집단지도체제 그리고 타지키스탄과 마찬가지로 강력한 세속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래도 중앙아시아 국가들 중에서는 비교적 엄격하게 믿는 편이다. 투르크계 국가 치고는 이 우즈벡이 이슬람을 좀 더 엄격히 믿으며 히잡이나 니캅 같은 물건도 가끔 나온다. 왜냐하면 세속적이라는 중앙아시아에서도 예외적으로 페르가나 계곡 지역은 와하브파가 득세하고 있는데 우즈베키스탄 동부, 키르기스스탄 남부 일부가 해당한다.[17] 물론 카자흐인, 키르기스인, 터키인 등은 그 딴 거 없다. 그리고 투르크이란백인이 섞인 아제르바이잔인은 아예 시아파를 믿는다. 이슬람 명절 휴일을 몇일로 할지는 그 즈음 되어서 정부가 공식 발표한다. 그래서 달력에는 표시가 되어 있지 않다.

한편으로는 이슬람 테러단체 관련해서도 민감한 편인데, IS에 가담한 우즈베크인들이 500명에 달하고 우즈베키스탄 이슬람 운동이 IS에 복속을 선언하면서 우즈벡 정부도 테러단체 가담 시에 시민권 박탈을 추진키로 결정했다. 다만 단일 시민권자는 국적 박탈이 국제법상으로 금지되어 있다는 점 때문에 어떻게 할지는 정해지지 않은 상태. 출처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이들 테러 단체에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현재 이들 이슬람 테러조직의 본거지는 우즈베키스탄 밖 아프가니스탄에 있어서 소탕이 힘든 상황. 아프가니스탄에도 우즈베크인이 300만 명 정도 거주하고 있으며, 이는 전체 우즈베크인 인구의 10% 가까이 되는 큰 수이다. 일단 이슬람 근본주의를 표방하는 이슬람 테러단체들은 우즈베키스탄에서 거주하거나 활동하는 것이 매우 힘들기 때문에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등의 외국으로 간다. 특히 우즈베키스탄에서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이슬람 과격 단체들은 꽤 골치아픈 일이기 때문에 우즈베키스탄 정부 자체가 군대 등으로 미국과 긴밀이 협의하며 아프가니스탄을 억제시키고 있고 중앙아시아에서의 이슬람 근본주의 확산을 막는데 많은 기여를 하는 중이다. 또한 테러 목적의 외국 방문은 FBI 등과 긴밀한 연락을 주고 받는데 해외에서 우즈베키스탄인이 FBI에 잡히면 백이면 백 우즈베키스탄과 FBI의 공조가 있었다고 보면 된다.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러시아인들은 주로 러시아 정교회를 믿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이슬람을 믿는 데다수 국민들을 달래기 위해 다른 종교가 눈에 띄는 활동을 하는 걸 의도적으로 막고 있어 종교 행사는 상당히 조용히 치르는 편.

우즈베키스탄은 이슬람이 강세인데도 불구하고 주말은 토요일일요일이다. 이 동네에서 금요일은 그냥 평일인 셈. 대신 크리스마스가 평일이며 한 해 마지막 공휴일은 12월 8일 제헌절이다.

9.3. 스포츠

권투가 매우 강하다.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권투 동메달 1개를 받았고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 금 1개, 동 2개를 받았으며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동메달 2개(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메달 0개), 2012 런던 올림픽때만 해도 동메달 1개를 받았다가 2016 리우 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 은메달 2개, 동메달 2개를 받으며 권투에서 가장 메달을 많이 받은 나라가 되었다.
국제아마추어복싱연맹(AIBA) 공식사이트에서 남자부 랭킹을 보면 10체급에서 1위 3명이 우즈벡 선수다. 쿠바 4명 다음으로 가장 많은것이다. https://www.aiba.org/rankings-2/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부터 2016 리우 올림픽까지 올림픽에 7번이나 출전한 41세의 기계체조 선수 옥사나 추소비티나가 이 나라 출신이다. 중간에 아들의 백혈병 치료비 때문에 독일로 귀화해서 독일 국가대표로 활동했다가 다시 자국으로 귀화했다. 심지어 추소비티나는 2020 도쿄 올림픽까지 출전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보고싶다고.

동계 올림픽에서는 첫 출전이었던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서 여자 프리스타일 스키에서 리나 체르야조바가 금메달을 획득한 것이 역대 동계 올림픽에서의 유일한 메달이다.

9.3.1. 축구

축구 열기가 뜨거운 나라로 손꼽힌다. 국가대표팀은 아시아 대륙에서 상위권에 드는 전력으로 평가받는다. 우즈베키스탄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 참고.

프로리그에서는 석유자본 및 자원 부국답게 히바우두라든지 스콜라리 감독 등을 영입한 FC 분요드코르가 아시안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노렸으나, 2009년에 파리아스가 이끌던 포항 스틸러스에게 덜미를 잡혀 버렸고, 2010년 대회에선 사우디아라비아 알 힐랄에게 일찌감치 덜미를 잡혀서 금세 퇴장당했다. 2011년 대회에서도 이란 세파한에게 16강에서 덜미를 잡혀 역시나 금세 퇴장당했다.

하지만 2012년 대회에선 확 달라져서 포항 스틸러스를 상대로 2승을 거두며 포항을 16강 탈락시켰고 16강전에서도 성남 일화를 1-0으로 탈락시키고 8강에 오르면서 한 시즌 대회에서 K리그 팀을 2팀이나 탈락시키면서 K리그 킬러가 되나 했지만 4강에선 우승팀 울산 현대에게 완패하면서 또 4강을 넘지 못했다. 분요드코르는 2013년 대회에선 16강에서 타이 부리람 유나이티드에게 덜미를 잡혀 또 일찌감치 탈락해버렸다.그렇긴 해도 2014년에도 16강 진출을 해냈기에 연이어 16강은 가고 있다. 다만 오로지 분요드코르만이 우즈베키스탄 리그 팀에서 홀로 아시안 클럽대회에서 활약하고 있는 수준이다.

여담으로 K리그의 FC 서울성남 FC를 거쳐 2015년 현재 울산 현대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세르베르 제파로프가 분요드코르 출신이며 수원 삼성 블루윙즈 소속이었다가 2012년 아랍 에미리트 구단으로 이적한 알렉산데르 게인리흐도 분요드코르의 라이벌인 파흐타코르 출신이다.

2011년 FIFA U-17 월드컵 대회에서 8강까지 올라왔다. 뉴질랜드에게 4-1로 대패했지만 체코와 미국을 2-1로 이기고 조 1위로 16강에 올라와 6월 30일에 벌어진 16강전에서 오스트레일리아를 4-0으로 뭉개며 건국 역사상 첫 청소년 월드컵 8강에 진출했다. 2013년 FIFA U-20 월드컵에서도 8강까지 올라갔다.거기에 아시아 팀들이 줄초상을 치룬 2015년 FIFA U-20 월드컵에서도 아시아팀에서 유일하게 토너먼트로 올라가 또 8강까지 올라갔다. 이렇다보니 성인 대표팀의 실력 또한 이제는 무시못할 수준인지라 2022년 혹은 2026년 월드컵 본선에는 진출할 듯?

하지만 아무리 실력이 된다 해봤자 인성은 심하게 못 돼먹어서 안 된다. 아시안컵 결승전의 아쉬움에 취해있던 다음 날 열린 U-23 킹스컵 한국과의 경기에서 축구장에서 격투기를 했다.영상 아무래도 감독이 선수 선발을 축구선수가 아니라 격투기 선수를 뽑은 듯. AFC내에서 서아시아로 분류되어서 아랍권 나라 팀들과 맞부딪히며 물들었는지 안하던 침대축구도 점점 하고 있다.

10. 미인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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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다로 알려진 구잘 투르수노바. 2011년에 한국으로 귀화했다.

우즈베키스탄은 사람들이 서구적으로 생겼고 또한 동양적인 느낌도 있기 때문에 꽤 넷상에서 미인의 나라 중에 한 곳으로 알려지기도 한다. 한가인이 밭을 갈고, 김태희가 소를 몬다고 하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을 정도로 [18] 인구 전체가 3.7%밖에 없는 러시아인들이 아니더라도 우즈베키스탄인에서는 미인이 많다는 인식이 있는데, 이 때문에 한국에서는 반쯤 농담으로 장모님의 나라라고 부른다.
또한 우즈베키스탄에는 혼혈이 많은 줄 사람들도 가끔 있는데 사실상 전체 인구의 80%가 우즈베크인 단일 민족이며 [19] 한국인들이 모두 생김세가 각자 다른 것처럼 우즈베크인들도 다 다르게 생겼다. 이란민족[아리안]과 터키민족과 가까워 서구적이게 생긴 사람들이 많다. 물론 서구적인 느낌에 동양적인 느낌도 존재한다.

한국 사람들이 대한민국보다 경제 수준이 낮은 국가들을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우즈벡은 이란이나 사우디 아라비아 정도는 아니지만 국민 대부분이 독실한 무슬림이기때문에 대부분의 여성들이 처녀이다. 또한 결혼 전에는 처녀를 유지하는 것을 매우 중시하는 문화가 있다. 우즈벡에서는 사실 결혼 전 관계란 거의 불가능하며 연애를 하더라도 손이나 포옹 정도만 허용되고 연애를 하면 무슬림들 사이에서 비처녀로 소문이 나고 그러기 때문에 부모들이 정해주는 맞선 결혼이 대부분이다. 이슬람 율법에 따라 결혼 전에는 거의 손만 잡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우즈벡 남자들도 그걸 당연히 여긴다. 한국인과 결혼해도 돼지 고기와 술을 하지않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전체인구의 3.7%인 러시아인들도 많이 살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러시아인은 무슬림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들은 우즈베키스탄인과 고려인들과는 다르게 개방적이며 유럽식 자유 연애를 한다. 그래서 사실 술집 등을 다니는 우즈벡 여성들은 머리가 노랗고 눈이 파란 러시아인들이 대부분이며 이들은 우즈벡어는 잘 사용하지 못 한다.[21] 우즈베키스탄 무슬림 여성의 경우에는 우즈벡어와 러시아어 둘다 사용한다. [22] 그래서 사실 한국인들이 우즈벡에 가서 우즈벡 여성과의 사랑을 꿈꾸기도 하지만 대부분이 결혼 전에는 손도 안 잡는 무슬림들이라는 걸 알고 경악하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우즈베키스탄 여자라고 말 잘 듣고 남편한테 순종(?)하는 것도 아니다. 우즈베키스탄도 엄연한 소련을 구성하던 국가였음을 고려해야 한다. 정상적인 공산국가에서는 남녀평등을 매우 크게 강조한다. 하지만 그건 소련하에있을때 이야기기도 하다. 독립하고 나서 점점 더 우즈벡 사회는 무슬림 사회로 심화되면서 여자에 대한 무슬림 율법을 강요하게 되기도 하였다. 그래도 러시아나 유럽 미국 등의 서양보다는 훨씬 드세지 않은 편. 서양과 유럽의 경우 알다싶히 워낙 여성과 남성의 차이라는 인식이 별로 존재하지 않으니.

미수다에서 유독 우즈베키스탄 출신 미녀들이 많이 알려져서 그 영향 때문도 약간 있을 것이다. 우즈베키스탄 말고도 중앙아시아 쪽 지역 자체가 미인이 많다는 이미지다. 왜냐면 서구적으로 생긴 사람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이것은 동아시아와 비교하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오히려 동아시아의 한국, 중국, 일본의 여성들이 미녀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막상 실례를 듣고 보면 "기회의 땅"이라는 막연한 꿈과 환상을 갖고 출장갔다가 최근엔 미녀들은 죄다 한국에 가서 여기엔 없다는 우스갯소리를 듣고 온 사람도 있다. 만약 피부가 완전히 하얀 유럽인들만 있다고 생각하면 절대로 안된다. 물론 어느 나라나 그렇듯이 늘씬하고 이쁜 사람들도 많다. 백인 유럽 여자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적은 러시아인들을 보고 실망한다. 하지만 우즈베인 여자들도 서구적이므로 상당히 이쁜 여자들이 많다. 사람취향문제이기도 하다. 문제는 러시아인은 자유연애가 가능하니까 연애가 가능하겠지만 우즈베키스탄 여성들과의 교제는 결혼을 전제로 하는 것이 매우 많고 부모의 인사도 필요한 경우가 잇다.

사실 '''한국에서 "우즈벡 미녀"라고 나도는 사진들 보면 대부분이 유럽에 사는 백인들의 사진들이며 이 사진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아닌 것들과 전혀 우즈베키스탄과 관련없는 사람들인 것도 매우 많다. 이는 쉽게 말해서 한국 남자들이 생각하는 우즈베크 미녀는 우즈벡인이 아니라 "우즈벡에 사는 러시아인 즉 우즈베키스탄에서 사는 유럽인들이다". 많은 남자들이 우즈베키스탄을 유럽과 같은 유럽 백인들이 사는 국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고 우즈베키스탄에 와서는 우즈베키스탄은 유럽인들이 사는 곳이 아닌 것을 깨닳는다.[23] 이는 우즈베키스탄 뿐 아니라 카자흐스탄 등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24] 우즈베키스탄은 유럽 청동기 문화를 가지는 지역이여서 인종으로는 코카소이드의 특징이 많이 보이지만 현재 서유럽의 독일 프랑스 동유럽의 러시아 등의 유럽인들과 같은 외모를 가진 사람들이 사는 국가는 절대로 아니다.

우즈베키스탄 인구에서 이들이 좋아하는 유럽계 백인의 비율은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 독일인 모두 합쳐 10%도 되지 않는다. 물론 우즈베키스탄은 일부 한국 남성들이 상상하는것처럼 러시아계 등 유럽계 백인들이 다수가 아니라 우즈베크인이 전 인구의 80%를 차지한다. 투르크 계통인 이들은 이란 계열 외모를 가지고 있으며 서구적이긴 하지만 동양적인 느낌이 있고 동양인처럼 생겨도 서구적인 외모의 특징을 보인다.[25] 오히려 인접국인 카자흐스탄에 유럽계 민족들이 많이 산다.[26]
실제로 유독 우즈베키스탄에 환상을 가진 한국을 제외하고 다른 나라에서는 우즈베키스탄보다는 민족 구성이 더 복잡한 카자흐스탄에 미녀가 많다는 인식이 많은 편이다. 왜냐하면 카자흐스탄의 경우에는 북쪽에 러시아와 매우 인접해 있고 러시아의 카잔 등과 같은 도시에서 카자흐스탄에 이주하여 사는 러시아인들도 많다. 카자흐스탄의 경우에는 우즈베키스탄보다 러시아인의 인구가 훨씬 많다. 또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모델이었던 루슬라나 코슈노바도 카자흐스탄 출신. 유럽 백인을 좋아하는 남자들은 그냥 러시아, 동유럽, 서유럽에서 사는 백인 여성들을 좋아하는 것과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

더 첨부하자면 한국 인터넷에서 우즈베키스탄 미녀 사진이라면서 나도는 것들 중 상당수가 러시아 여성와 우크라이나 여성들의 사진이다. 심지어 핀란드라던가 리투아니아 여성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놓고 우즈베키스탄 여성의 사진이라고 우기는 경우도 있다.[27] 소수의 유럽계 우즈벡 여성이 아닌 우즈베키스탄의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주류 민족인 중앙아시아계 우즈베크인 여성 즉 동양적인 느낌이 많은 투르크계 사진을 보고 실망했다는 반응이 보이기도 한다.[28]

중앙아시아는 유럽이 아니라 엄연한 중앙아시아의 세계이다. 이 지역이 구소련 시절이 있었고 사람들 이름도 러시아 이름처럼 끝에 ~프와 ~바가 있어서 자꾸 러시아인으로 오해하는데 이름과 성 자체도 러시아와는 다르며 이름과 성씨는 이슬람 종교나 투르크에 관련된 이름이 많고 원래 이 지역 사람들의 조상은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아리안, 서돌궐, 카라한 왕조, 차가타이 한국, 티무르 제국 등의 중앙아시아인들이다.
우즈베키스탄 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나라에든 다 미녀는 존재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우즈베키스탄 미녀(우즈베키스탄 아니어도 다른 주변국가들도 포함)하면 러시아계가 아닌 우즈베크인들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동양적인 외모와 서양적인 외모가 있기 때문에 이란, 그리스, 터키 여성처럼 아름다운 미인으로 보기도 한다. 다만 대중들 인식이라던가 알려진 경우가 하필이면 동유럽계 사람들로 잘못 알려지거나 완전 유럽사람들로 알려지는 둥 그러한 현실을 확대해석 했기 때문에 "우즈베키스탄 미인 = 동유럽계 미인"으로 잘못 알려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언급했듯이 미녀는 어디에든 다 있다. 그러므로 그냥 "그런 소문도 있었구나"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11. 교통

소련 시절의 영향으로 주요 도시 간에는 철도가 잘 깔려 있고 활발하게 운행된다. 애초에 바다가 없는 내륙국인 관계로 철도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러시아나 카자흐스탄으로 가는 국제열차도 자주 운행한다.

12.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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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도 같은 히바의 풍경

실크로드의 경유지였고 많은 제국의 중심지였던 찬란한 역사답게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가장 많은 유적이 존재한다. 관광자원만 따지면 상당히 포텐셜을 가지고 있지만 인프라, 인지도 같은 외적인 문제 때문에 별로 알려지지 못했다. 접근성은 2018년 한국인 관광객 무비자가 시행되는 등 차츰 개선되고 있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도시는 수도 타슈켄트 외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도 각자 지정된 중세 중앙아시아의 성곽도시 사마르칸트, 부하라, 히바(이찬칼라) 등이다.

아랄 해는 특히 우즈벡 쪽은 거의 말라붙었는데 옛날 항구도시였던 무이나크(Mo‘ynoq)에 가면 모래사막 위에 나뒹구는 녹슨 배나 어업기념물 등등 바다가 있었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현지 여행사들은 자동차를 타고 새로 생긴 소금 사막, 녹슨 배를 모아놓은 선박묘지, 조금 남은 아랄해[29]등을 둘러보는 투어를 팔고 있다.

13. 외교 관계

13.1. 타지키스탄

타지키스탄과의 사이는 극악으로 안 좋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우즈베키스탄으로 들어오는 주요 마약 루트라서 항상 국경 지역 감시가 철저하다. 심지어는 육로로 타지키스탄에서 우즈베키스탄으로 입국할 때 국경심사 중 타지키스탄 남성의 옷을 홀딱 벗겨보기도 한다.

게다가 타지키스탄이 전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댐을 건설하자 수자원 문제로 양국간에 갈등이 생기고 있다. 이런 이유로 우즈베키스탄은 타지키스탄에 지원해주던 가스 공급을 중단하고, 그만큼의 가스를 중국에 수출하고 있는 중.

하지만 2017년 이후 최근에는 우즈베키스탄의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이 타지키스탄의 라흐몬 대통령과 만나 서로 관계 개선을 하려고도 한다.

13.2. 키르기스스탄

키르기스스탄과의 관계는 타지키스탄과의 관계보다 더욱 나쁘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키르기스스탄의 웹사이트가 전부 차단되어 있다.

키르기스스탄 남부에 우즈베크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데,[30] 이들이 분리 독립이나 우즈베키스탄으로의 합병을 요구하는 시위를 일으켰다가 키르기스스탄군경에게 진압된 적이 있다. 지금도 가끔 우즈베크인들과 키르기즈인들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날 조짐이 나타나곤 한다.

양국간의 국경부터가 월경지가 수도 없고[31] 굉장히 복잡하게 되어있어 충돌을 피하기 어렵다. 국경이 이런 구조라면 평소에 소 닭 보듯 하던 민족들도 충돌이 생길 수 밖에 없는데 중앙아시아 지역은 유목 문화 때문에 먼 옛날부터 민족간의 항쟁이 심한 지역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키르기스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은 타지키스탄과 우즈베키스탄과는 달리 국경이 산악지대라 서로간의 교류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

이쪽 역시 수자원 문제로 갈등이 있다.

2013년 1월 5일, 키르기스스탄에 있는 우즈베키스탄 영토인 소흐(Sokh)에서 전력 문제로 우즈베키스탄 사람들과 국경 수비대 간에 충돌이 발생해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키르기스인 마을을 공격하고 키르기스인들을 인질로 잡는 사건이 발생했다.

13.3. 카자흐스탄

카자흐스탄과는 협력은 하지만, 서로 한국-일본마냥 라이벌 의식이 강하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소련 시절만 해도 중앙아시아에서 역사가 길고 중앙아시아 문화의 중심은 우즈베키스탄이었지만, 카자흐스탄이 급격히 경제성장을 이루어내며 중앙아시아의 중심이 이제는 카자흐스탄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 주변국 중에서는 가장 체급이 비슷하다면 비슷하고, 역사문화적으로도 유목의 카자흐인과 정주민 우즈벡인 등 서로 대비되는 부분이 많다.

우즈베키스탄 입장에서 카자흐스탄이 중요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 나라가 외국과 교역하기 위한 육상 교통로는 사실상 카자흐스탄-러시아로만 이어지기 때문이다. 동부는 사이가 극악으로 안 좋은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이며,스남부의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은 만리장성이라도 쌓아서 막아야 할 막장 상태의 아프가니스탄, 서부는 철저한 중립 이라고 쓰고 '폐쇄'라 읽는다 국가인 투르크메니스탄이기 때문이다. 내륙국이라 육상 교통로가 막히면 수출입부터가 원활하지 않게 되는 상황이므로 상당히 중요한 문제.

사실 우즈베키스탄은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인접 국가들과 사이가 좋지 못하다. 인접 국가인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은 서로를 형제의 국가로 부르며 사이가 좋다. 그것도 당연한 것이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은 중앙아시아여도 서로 문화와 언어가 다르며 오히려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 둘이 서로 가깝다.[32] 타지키스탄은 아프간, 북부 인도와 동질적이다. 워낙 우즈베키스탄이 인구수도 많고 우즈베크인이 우즈베키스탄에 정주하여 정주민족으로도 역사도 길며 문화 수준과 경제수준이 높았어서 콧대가 높다.

2019년 5월 15일에 우즈베키스탄은 카자흐스탄의 카스피 해 항구를 통한 최초의 물류운송을 시작했다.#

13.4. 투르크메니스탄

투르크메니스탄과는 협력을 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다. 아무래도 인구도 안 되고 만만해 보이니까 하지만 이쪽은 투르크메니스탄 입장에서 전혀 급하거나 아쉬운 것이 없기 때문에 실상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나 복지수준도 투르크메니스탄이 더 높기도 하는데다가 북한마냥 폐쇄적인 정책을 펴는 나라라 친목을 다지는 데 한계가 있다.

13.5. 러시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이 러시아와 적극 협력하는 관계에 있는 반면, 우즈베키스탄은 러시아와의 관계에서는 미지근한 반응을 보인다.(대표적으로 유라시아 연합에 카자흐스탄은 가입되어있고 우즈베키스탄은 가입 안 했다.) 특히 러시아가 중앙아시아 국가에 군대를 배치하는 것에는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와의 협력을 안 할 수도 없고, 아무래도 같은 소련 시대를 겪어서 편하기는 하나, 소련을 실상 일본이 조선을 합병한 일제강점기 시절처럼 '러시아 식민지 통치 시기'로 보고 있기 때문. 우즈베키스탄은 19세기말부터 러시아 제국에 점점 합병이 되면서 러시아 제국에 편입된 칸국의 지배자들은 러시아 제국의 귀족으로 인정받았지만 동시에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투르크메니스탄과 마찬가지로 반러적인 성향이 있다. 게다가 중앙아시아 국가 중 가장 부유했던 우즈베키스탄을 소련이 1920년에 합병시키면서 소련 정부가 가장 악랄하고 철저히 착취헀다. 그래서 소련 해체이후에는 러시아어를 배제하면서 우즈벡어를 모르는 고려인, 러시아인 등의 입지가 좁아지고 이들 소수민족들이 다시 러시아로 돌아가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우즈벡어에서 쓰이는 문자도 로마자로 바꾸기도 했지만, 아직까지는 키릴 문자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러시아인들과 전혀 싸우지도 않고 친하게 잘 지낸다.

2005년에 안디잔 학살이 일어나자 카리모프는 서방과 갈등하게 되었고, 다시 친러, 친중정책을 추진하게 되었다. 하지만 국민들이 친러,친중적이진 않다.

러시아쪽에서는 최근 우즈베키스탄에 채무를 탕감하기로 결정하는 등 우즈베키스탄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그리고 미르지요예프가 2016년 12월 4일에 대통령이 되면서 러시아와의 관계도 발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카자흐스탄의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지난 20일에 푸틴 대통령과 우즈베키스탄의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 대통령과 비공식회담을 가지면서 무역, 경제, 문화, 인도주의 등의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방안에 관해 논의했고 독립국가연합과 국제기구간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독립국가연합 , 상하이 협력기구에 가입해있다. 게다가 우즈베키스탄 노동자들이 러시아에서 일하고 있고 러시아어도 우즈베키스탄에서 중요 외국어이기도 한다.

13.6. 중국

중국과는 소련 해체 이후로 매우 가깝다. 그리고 우즈베키스탄 정부도 친중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에도 우즈벡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중국내의 우즈벡인들은 주로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거주하고 있고 아랍 문자를 사용하고 있다. 또한, 우즈베키스탄은 중국인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중국어도 가르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정권은 친중정책을 펼치고 있으나 우즈베크인들은 카자흐스탄인들과 같이 친중적이진 않은 편이다. 유명한 건축물 등이 많은 곳에는 여행객들도 존재한다.

다만 중국과 국경을 직접 맞댄 나라는 아니라서 교류를 크게 끌어올리기엔 좀 애매한 편. 우즈벡인 개개인들은 중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그렇게 좋다고 할 수는 없는 편이다.

13.7. 아프가니스탄

아프가니스탄에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우즈벡족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고 이들은 우즈벡 인구의 10%를 차지하고 있다. 아프간내 우즈벡족들은 우즈베키스탄과 접한 아프가니스탄 북쪽에 거주하고 있다. 그리고 아프간에도 우즈벡어가 자주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우즈베키스탄 이슬람 운동이 아프간에 근거지를 두고 있어서 우즈베키스탄 출신들 중에 가담하는 경우도 있어서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우즈베키스탄 이슬람 운동에 대해서 강경대응 중이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의 불안한 정세가 우즈베키스탄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또한 우즈베키스탄이 러시아가 주도하는 러시아판 나토 CSTO에서 2012년에 탈퇴한 이유도 러시아군이 우즈베키스탄에 있을시 아프가니스탄 근처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항의와 저항이 더 심해질까봐 그렇다고 한다.중앙아시아 군사 강국인 우즈베키스탄도 이슬람 근본주의 확산에 큰 골치 아픔을 격는 모양.

2018년 3월말에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타슈켄트에서 아프간과 탈레반의 평화협상을 주선하기 위해 지역열강들과 미국, 러시아, 중국이 참여하는 컨퍼런스를 개최할 예정이다.#

13.8. 일본과의 관계

일본과는 소련 해체 이후에 관계를 맺었다.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에서도 일본인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일본어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내에도 우즈벡인 공동체가 존재해 있다. 2019년부터는 마에다 아츠코가 일본 내 우즈베키스탄의 홍보대사로 위촉되었다.

13.9. 한국과의 관계


대표적인 중앙아시아 외교에서 중요 국가 중 하나로써, 대한민국은 소련 해체 후 1992년에 수교하였다.

더욱 자세한 내용은 한국-우즈베키스탄 관계를 참고.

14. 둘러보기

중앙아시아의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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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아시아의 일부로 보는 의견도 강하다. 그 외 이란,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티베트 자치구, 타타르스탄 공화국, 아제르바이잔도 때때로 중앙아로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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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s://www.sciencetimes.co.kr/?news=%EA%B3%A0%EB%8C%80-%EC%9C%A0%EB%9F%BD%EC%9D%B8-%ED%94%BC%EB%B6%80%EC%83%89-%EC%A7%80%EA%B8%88%EA%B3%BC-%EB%8B%AC%EB%9D%BC[2] 우즈베키스탄의 경우는 오아시스가 있는 도시가 몇 군데는 있고 농지에 적합한 땅들이 넓고 많은 편이지만 우즈베키스탄과 접하는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의 경우는 농사에 적합한 땅들이 많지 않다. 비록 우즈베크에 비해 물이 많이 나오지만 오히려 타지크, 키르기스는 물이 많은 험준한 골짜기들 때문에 많지도 않은 농촌의 수와 더불어 농사짓기 힘든 곳 중 하나이다.[3] 수치가 높을수록 언론 자유가 없는 국가, 언론자유 최상은 0점, 언론자유 최악은 100점. #[4] 다만 이러한 언론통제에도 좀 깨이다 싶은 식자층들은 위성방송 수신을 통해서 정보를 얻고있다.[5] 우즈베키스탄에 타지크족이 1989년 100만 명이나 살고 있었다.[6] 2000년 기준 101만 명, 다만 타지키스탄의 경제사정이 열악해서 타지키스탄 내 우즈베크인들의 비율은 매년 급속히 줄고있다. 하기야 현지 타지크인들도 외국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은 마당에 우즈베크인이야 별수있냐만.[7] 식자재 가격을 매우 낮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요를 강제로 찍어누르는 것도 필요하다. 그리고 수요를 강제로 찍어누르기 위해서는 임금을 당연히 매우 짜게 주어서 구매력을 아주 낮추어야 한다. 그래도 가격이 워낙 낮게 유지되다 보니 먹고 사는 문제는 그럭저럭 해결이 되는 모양. 물론 이건 구소련권 국가들 전부 다 해당된다.[8] 공정환율로 환산 시 약 12%에 달한다.[9] 소련 시절 중앙아시아 지역의 핵심은 우즈베크였고 수도 타슈겐트는 모스크바, 레닌그라드, 키예프, 바쿠와 함께 소련의 5개 핵심 도시였다.[10] 현재는 마티즈가 단종되었다.[11] 대우 씨에로, 한국GM 라보, 한국GM 다마스, 대우 티코가 대표적.[12] 2010년 8월에 현대 액센트가 러시아 공장에서 붙여지는 이름인 "솔라리스"라는 이름으로 1달 동안 1만 대 판매로 월간 판매량 1위를 했었던 적이 있었지만 9월 경에 다시 우즈대우 젠트라가 뺏어버린다. 현까들이 좋아합니다[13] 대표적으로 GM대우 토스카의 유럽 수출사양 모델 일부나 GM대우 라세티의 유럽 수출사양 모델 전부를 우즈-대우에 맡겨버렸다.[14] 우즈베크어로 '길(Roads)'을 뜻한다.[15] 다만 주류민족인 우즈벡인들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또한 우즈베키스탄보다는 민족 비율의 다양성은 카자흐스탄이 훨씬 더 많다.[16] 정확히는 아프가니스탄의 헤라트에서 태어났는데, 당시 헤라트는 티무르 제국의 주요한 도시였다.[17] 하지만 이쪽은 지역사회 차원에서 규율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성향이 있지만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이라는 나라가 전체적으로 보면 세속적 성향이므로 실제로는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브루나이처럼 꽉 막힌 사회까지는 아니다.[18] 웰스(Wells)의 조사에 의하면 우즈벡인들의 Y 염색체 하플로그룹은 중앙아시아에서 흔한 C(11.5%), 중동에서 흔한 J(13.4%), 유럽에서 흔한 R1a(25.1%)와 R1b(9.8%), 동아시아에서 흔한 O3(4.1%), 남아시아에서 흔한 F(7.9%)가 모두 나타난다. 서구적으로 생겼고 동양적인 느낌도 존재한다. 동양인같이 생긴 사람도 서구적인 느낌이 강하다. 또한 하플로그룹의 비율에서 추측할 수 있듯 유럽계 하플로그룹이 나타난다. 왜냐면 이란계의 사람들이 옛부터 우즈베키스탄에서 살아왔는데 우즈베키스탄은 예전엔 페르시아의 영토였고 그리스인들이 살던 박트리아 왕국과 이란계 유목기마민족인 스키타이가 살던 땅이였기때문이다. 즉 같은 투르크계이지만 동양인으로 보이는(하지만 동아시아 동양인보다는 어느정도 서구적인 특징이 있다) 키르기스인이나 카자흐스탄인들이 사는 키르기스와 카자흐스탄은 러시아인이 워낙 많이 살지만 키르기스인과 카자흐스탄인들이 워낙 몽골로이드의 특징이 많이 보여서 동양인과 비슷한 사람들도 많다. 우즈베키스탄는 이란인,터키인과 비슷하게 생겼다. 우즈베키스탄인과 달리 키르기스인이나 카자흐스탄인의 경우에는 예니세이강 상류에서 나중에 키르기스스탄과 카자흐스탄에 이동하여 정착하였기 때문에 좀 더 동양적인 특징이 많이 보인다. 물론 러시아계 우즈베키스탄인도 있으며 러시아도 한국 남성들에게 "미인의 나라"로 유명하니까 우즈베키스탄도 그러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19] 현재는 우즈베키스탄에 살던 러시아인들이 러시아로 다시 러시아로 돌아가서 88%까지 올라간 적이 있다.[아리안] 인종[21] 그래서 대부분 국제결혼에서 문제가 일어나는 우즈벡 여성들은 자유 연애가 가능한 비무슬림 러시아인이 많으니 이 점을 유의하자[22] 타슈켄트의 경우에는 러시아어를 더 많이 쓰지만 우즈벡인은 우즈벡어가 거의 다 가능하다.[23] 하지만 우즈벡인 자체는 이란계와 비슷하게 생겼기때문에 우즈벡에 사는 키르기스인이나 타타르인을 보고 그러는 경우도 있다. 키르기스와 타타르는 고려인과 거의 비슷하게 생긴 사람도 많다[24] 중앙 아시아에 고려인들이 많이 거주하지만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소수. 길거리에 발에 채이도록 고려인이 많은것은 아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고려인은 전 인구의 0.6% 정도이며 카자흐스탄도 마찬가지.[25] 사실 우즈벡어는 터키투르키스탄등 투르크계의 언어들이 서로 비슷하나 몇 단어와 비슷할 뿐이지 완전히 같지는 않다. 특히 문법쪽에서[26] 카자흐스탄은 한때 러시아계가 전 인구의 50% 가까이 차지했던 나라이다. 하지만 카자흐스탄의 경우 우즈벡과 다르게 카자흐족이 키르기스와 같이 더 동양인처럼 생겼다.[27] 이런 눈속임이 딱 드러나는게 "우즈베키스탄 학생들"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와 있는 사진 속 배경이 우즈베키스탄 학교라고 말하기에는 시설이 너무 좋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북유럽 교실 사진 올려 놓고 우즈베키스탄이라고 거짓말을 하니 거짓말이 들통날 수 밖에.[28] 댓글들을 보면 유럽에 사는 듯한 백인들이 아니라서 꿈이 무너졌다는, 말이 많은데,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의 입장에서나 어디에서나 이런 발언들은 인종차별과 다를바 없는 모욕이 될 수 있으니 경계하자.[29] 사람과 벽돌이 둥둥 뜰 정도로 염도가 높다.[30] 2009년 76만 명 거주[31] 키르기스스탄 남부 페르가나 분지 영내에 우즈베키스탄의 월경지가 몆군데 있다.[32] 사실 카자흐와 키르기스는 투르크 민족들 중에서 비슷한 두 민족을 근현대에 초원에 사는 유목민(카자흐인)과 산악지에 사는 유목민(키르시스인)으로 구분한 것이다. 그래서 카자흐인들과 키르기스인들은 서로 가깝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