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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1936~1991) Қазақ Советтік Социалистік Республикасы[1] Казахская Советская Сosиалистическая Республика Kazakh Soviet Socialist Republic | ||
카자흐스탄 공화국 (1991) Қазақстан Республикасы[2] Республика Казахстан Republic of Kazakhstan | ||
국기 | 국장 | |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Барлық елдердің пролетарлары, бірігіңдер![3] | ||
1936년 12월 5일 ~ 1991년 12월 16일 | ||
성립 이전 | 해체 이후 | |
카자흐 ASSR | 카자흐스탄 공화국 | |
국가 |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국가 | |
위치 | 중앙아시아 | |
수도 | 알마아타 | |
정치 체제 | 일당제 | |
국가원수 | 서기장 | |
언어 | 카자흐어, 러시아어 | |
민족 | 카자흐인, 러시아인 | |
종교 | 국가 무신론 | |
통화 | 소련 루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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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78년 당시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영상이다.)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은 1936년부터 1991년까지 소비에트 연방의 공화국이었다. 수도는 알마아타였다.
소련에서 러시아 다음으로 가장 넓은 공화국이였으며, 바이코누르 우주기지 및 소련 최초 원자폭탄 실험이 이루어진 세미팔라틴스크 핵실험장이 위치해 있었다.
2. 국기
1937년 ~ 1940년 | 1940년 ~ 1953년 | 1953년 ~ 1991년 |
3. 소개
1920년 8월 26일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키르기즈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성립하였다. 러시아 제국 당시 러시아인들은 카자흐인을 키르기스인, 키르기스인을 카라-키르기스인이라고 불렀는데, 거기서 나온 명칭이다.[4]▲ 1922년 당시의 소련령 중앙아시아
1925년 카자흐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36년 12월 5일 소련의 공화국으로 승급되었다.
1920년대까지도 카자흐인이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였으나, 1930년대 농업 집산화 과정에서의 실책으로 대재앙에 가까운 극심한 대기근이 닥쳤다. 특히 카자흐인들에게 큰 피해를 주어 카자흐인들의 1/3 가량이 굶어죽고 인구의 수%가 대기근을 피하기 위해 중국, 이란, 아프가니스탄, 터키 등으로 이주했으며 그 결과, 1926년과 1939년 사이 카자흐인의 인구는 360만 명에서 230만 명으로 전체의 40%에 가까운 130만여 명이 감소하였다.[5] 이후 카라간다, 예키바스투즈를 비롯한 굴라그가 카자흐스탄에 대규모로 설치되고, 소련 전역에서 고려인을 비롯한 소수 민족들이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 당했다. 거기에다가 니키타 흐루쇼프의 주도로 1950~60년대에 처녀지 개간 운동이 일어나면서 러시아인을 필두로 한 많은 소련인들이 정착하면서 러시아인의 인구비율이 카자흐인을 추월하기도 했다.[6] 다만 카자흐인들의 인구증가율이 러시아인들보다는 높았던 지라 소련 말기인 1989년에 카자흐인이 다시 제1민족집단이 되었다.
1986년 카자흐스탄 공산당 제1서기로 이전의 카자흐인 출신인 딘무하메드 쿠나예프 대신 러시아인인 겐나디 콜빈이 임명되자 일명 젤톡산(카자흐어로 12월)이라 불리는 항의시위가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약 200여명 가량이 숨지고 수백명이 부상을 입었고, 콜빈은 제1비서직을 역임한지 고작 3년만에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에게 자리를 넘겨져야했다.
1991년 소련 해체와 함께 독립하여 카자흐스탄이 된다.
4. 대중문화
소련의 여타 지역과 마찬가지로 60년대 전후로 록 음악이 유행하기 시작했다.내 친구(198?)
나의 마당(1986)
카자흐 소비에트 공화국에서는 록 밴드 '아라이'가 활동했다. 장르는 R&B, 시티팝이었다.
그 외에 빅토르 초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 이글라가 창작되었다.
5. 기타
- 소련 시절 중앙아시아 목화 생산량을 늘리려는 관개정책으로 인해 아랄해가 고갈되면서 심각한 환경 문제로 이어졌다.
- 1991년 소련 붕괴 과정 중 소련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탈퇴한 공화국이다. 당시 카자흐스탄 지도자였던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는 신연방조약 과정에서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 소련 해체보다는 자치권 확대를 지지했다. 하지만 8월 쿠데타 이후 실세가 된 보리스 옐친을 비롯한 지도자들이 소련을 해체하고 독립국가연합을 결성하기로 결의하는 벨로베즈스카야 조약을 체결한다. 이에 카자흐스탄 역시 벨로베자 조약에 동의하면서 1991년 12월 16일 독립을 선언한다. 이로써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사임하는 12월 25일까지 약 9일간 소련은 국가 없는 연방이 되어 버린다.
- 이곳에서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발견되었다.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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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Qazaq Sovettık Sotsialistık Respublikasy[2] Qazaqstan Respublikasy[3] Barlyq elderdıñ proletarlary, bırıgıñder![4] 과거 러시아에서는 카자크와 카자흐를 쉽게 구분하기 위해서, 카자흐인들을 키르기스라고 부르던 편이었는데 이 때문에 역사 기록에 나오는 키르기스가 카자흐인을 지칭하는 단어인지 키르기스인들을 지칭하는 단어인지 혼동하기 쉽다. 오늘날 학계에서는 혼동을 피하기 위해 카자흐인들을 "키르기스 카자흐"라고 지칭하고 있다.[5] 대기근 직전에는 카자흐인과 우즈벡인들의 인구수가 비슷했지만 대기근이 카자흐스탄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바람에 카자흐인들의 인구가 우즈벡인들에게 크게 뒤쳐지게 되었다.[6] 처녀지개간메달도 이 때의 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