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21 12:02:44

록 음악

파일:external/www.bbc.co.uk/00519a63d07519f249b4a89e12ae90eee8bb2c35.jpg
전 세계최대의 록 음악 축제인 글래스톤배리 페스티벌 (2015년)

1. 개요
1.1. 정의
2. 역사3. 특징4. 한국5. 세부 장르6. 관련 문서

1. 개요

대중음악 장르의 하나이다. 보통 Rock을 미국영어 발음대로 락이라고 읽는 경우도 많다.[1] 약 반세기 동안 대중음악의 거의 모든 것을 바꿔놓은 장르이기도 하다.[2]

록음악은 출현 부터 계급성과 뗄 수 없는 연관성이 있다. 음악적으로 흑인 노예들이 부르던 찬송가인 가스펠과 역시 미국 흑인들의 전통음악인 블루스, 그리고 미국 백인들의 민요인 컨트리음악이 결합된 방식으로 시초 부터가 피지배계층의 음악이라는 속성을 갖고 있다. 게다가 미국에서는 노예의 음악이던 가스펠과 블루스를 영국의 노동자 및 하층계급 청년들이 원용하면서 현재적 의미의 록앤롤이 출현했다고 보는게 옳다. 록음악이 가진 사회비판적 요소들, 그리고 저항 정신들은 이러한 계급적 바탕과 출현의 역사를 배제하면 이해하기 어렵다.

다만 너무 극단적으로 나아가서 저항정신, 사회비판요소가 없으면 록이 아니라는 의견이 있는데, 록 문화는 자신의 감정을 되도록 강하게 어필하는 것과 분출에 있지, 사실상 꼭 사회풍자나 비판적인 요소가 있어야 되는 것은 아니다. 당장 록 음악에서 맨 처음에 쓰였으며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쓰이는 소재는 '사랑'이다. 물론 인생과 사회에 대한 이야기도 많긴 하다. 80년대 한국에선 문화적, 사회적 환경 때문에 저항정신이 강조되었다. 록 음악은 기본적으로 대중 음악이기는 하지만 대규모 자본에 의한 기획 음악이 아니라 하층민 혹은 사회 기득권층과 거리가 먼 사람들, 노동자 등이 자신의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는 방식으로 출현한 역사를 가진 만큼 거대 자본과 친연관계가 멀다. 방향과 방식에 있어 대중의 기호에 맞춰 제품을 제작하는 방식의 거대 자본 혹은 기획사의 음악과 달리 아티스트가 가진 계급적 바탕, 문화적 체험 등이 중시되고 그렇기 때문에 현 시대의 대중음악보다는 예술이 작동되는 방식과 가깝다고 보는게 옳다.

원래 록음악은 12마디 블루스를 당시 기준으로 퇴폐적인 댄스리듬으로 바꿔서 만든 로커빌리, 즉 오늘날의 로큰롤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이후 록의 메인스트림 역시 블루스에 기반을 둔 로큰롤, 하드 록, 컨트리와 섞인 서던 록(Southern rock)등의 듣기 좋고 부르기 좋은 곡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당장 60년대, 70년대의 아이돌들은 대다수가 로큰롤 스타였다.

그러나 록이 저항이나 비판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단순한 대중음악의 한 장르일뿐이라고 주장하는 것 역시 약간의 무리가 있으며, 이는 록 음악이 탄생한 이후 현 시대에 이르기까지 사회비판과 각종 억압을 벗어나려는 움직임과 함께 해왔기 때문이다. 이렇듯 록 음악이 반 사회 정서를 가지게 된 첫번째 계기는 바로 포크 음악과의 결합에서 이뤄졌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1969년의 우드스톡 페스티벌이다. 포크 음악 역시 전통 음악에서 기반하여 공감대를 얻기 쉬운 음악이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급진적인 아티스트에 의한 프로파간다가 되기 편했다. 록 음악 역시 이 부분을 받아들여서 대중적이고 반 엘리트주의적인 음악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러한 저항정신과 사회비판에 관련된 논란은 힙합 장르와 궤를 같이하는 편이다.

록 음악의 시대적 변화와 함께 출현한 하드 록과 프로그레시브 록은 음악적 테크닉의 발전을 이루었으며, 70년대 대중적 인기를 얻은 주류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이에 반발해서 나타난 것이 펑크 운동이었으며, 이들은 훨씬 단순화된 음악을 추구했다. 그 후, 하드록의 유산인 뛰어난 테크닉과 구성력, 펑크 특유의 귀에 꽂히는 리듬과 멜로디를 모두 이어받아 80년대에 록의 주류가 된 헤비메탈이 등장하였다. 뿐만 아니라 헤비메탈은 대중 음악적으로도 주류의 위치를 차지했는데, 메인스트림의 대중 지향적인 팝 메탈[3]과 인디 시장의 반사회적, 저항적, 진보적인 다양한 하위 메탈 장르[4]의 분화가 이뤄졌다. 그러나 이 역시 시대가 흘러가면서 매너리즘에 빠지고, 90년대에 들어서 대중적 인기를 상실함과 동시에 록 씬 내에서도 지배적 위치에서 내려오게 된다.[5] 그 자리를 대체한 것은 시애틀 그런지 음악이었고, 이후 록 씬 내의 장르적 다양성이 이루어졌으나, 2000년대 이후 대중 음악 내에서 록의 위치는 주변부로 밀려난 상태이다.

록의 역사적 흐름에서 메인스트림의 위치를 차지한 장르와 이의 안테테제의 대립구도가 자주 언급되는데, 록의 역사를 음악적 완성도에 중점을 둔 메인스트림 뮤직과, 새로운 시도와 메세지 전달에 중점을 둔 얼터너티브 뮤직의 대립으로 보는 관점에서 기인한다. 사실 이것은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록 음악의 특성과도 상당히 부합하는 관점이라 볼 수 있다.

1.1. 정의

록이라는 장르가 워낙 오랜 세월동안 발전해온 장르이기 때문에 록의 딱 부러지는 정의를 내리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클래식 음악처럼 형식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재즈처럼 과거로부터 어떠한 특정한 층을 중심으로 발전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완전한 정의를 내리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더군다나 대중적인 음악을 의미하는 장르인 이 록의 유행을 타고 끈질기게 록을 흡수해왔고, 록 역시 세월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진화와 변화를 거듭하며 팝의 특징들을 닮아왔기 때문에 둘 사이의 경계는 흐릿하다고 볼 수 있다.

형식적인 측면을 보자면 4/4박자의 리듬에 절-후렴구조, AABA구조 등을 들 수 있으나, 당장 록 음악 안에서도 이 형식을 변형시키거나 완전히 벗어난 하위장르가 한 둘이 아니며, 시간이 흐른 오늘날엔 수많은 대중 음악에서 널리 사용되는 구조라서 딱히 록만의 특징이라고 보기엔 뭣하다.

비틀즈의 성공으로 인해 록음악 생산의 중심 주체가 '가수' 등 솔로 뮤지션에서 록'밴드' 단위로 바뀌어서 록밴드가 대세가 되었고, 그 록밴드의 악기 구성이 일렉트릭 기타, 일렉트릭 베이스 기타, 드럼으로 완전히 정형화되고 정착되었다. 여기에다 세컨드 기타나 키보드 등이 추가 되거나, 기타리스트가 리드싱어를 겸하거나 하는 식으로 밴드마다 약간의 가감이 있어서 대개 3~5인조의 멤버 구성이 대부분이다.[6] 이러한 구성은 대부분의 밴드가 그렇다는 것 뿐, 70년대 프로그레시브 록 시대부터 수많은 하위 장르들이 우후죽순 등장하며, 단순히 악기 구성 만으로 록을 정의하긴 힘들어졌다.

록 음악은 밴드 음악을 한다고 해서 록이 절대 아니다.[7][8]

2. 역사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Dani California 뮤직비디오. 록음악의 역사를 함축적으로 요약해낸 뮤비이다. 레드 핫 칠리 페퍼스 멤버들이 각 시대의 중요한 록뮤지션들과 흡사하게 변신하여 흉내내는 유머러스한 개인기(?)를 선보인다. [9][10]

록 음악의 기원은 1940년대 후반~1950년대이며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시체제가 풀리면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 수많은 청년층들이 기존의 중후한 스탠다드 팝, 재즈 장르의 이외의 더욱 신나고 경쾌한 음악을 추구하면서 자연스레 발생했다. 당시 미국에서 블루스, 컨트리와 같은 루츠 음악들을 기반으로 크로스오버하여 빠르고 경쾌하게 연주한 음악을 로커빌리라고 불렀는데 성인 층을 대상으로 한 당시 스탠더드 팝과는 달리 10-20대와 같은 젊은 수용층을 바탕으로 점진적으로 성장했다. 로커빌리란 장르는 50년대 초중반에 로큰롤이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하며 그 인기를 가속화시켰다. 초기 로큰롤에서는 피아노를 리드 악기로 썼지만 5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기타가 추가되거나 기타가 리드 악기로 쓰이는 형태를 띄게 되었으며 척 베리의 등장으로 로큰롤 기타 주법이 확립되었다. 빠른 속도로 성장하던 로큰롤은 엘비스 프레슬리라는 불세출의 스타의 등장으로 당시 대중음악계의 주류를 바꿔버리며 상업적인 정점을 찍는다.

이렇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던 로큰롤은 58~9년경부터 순식간에 몰락하게 되는데, 저질음악 취급하며 꾸준히 로큰롤을 탄압했던 기성 세대들의 불만과 로큰롤 뮤지션들의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생긴 결과였다. 제리 리 루이스는 미성년자 사촌과 결혼했다가 큰 지탄을 받아 몰락했고, 버디 홀리는 비행기 사고로 사망, 척 베리는 미성년자를 동반하고 무단으로 주(州) 경계선을 넘다가 체포되었으며 엘비스 프레슬리는 여론의 눈길을 피하고자 군 입대를 선택했다. 로큰롤의 몰락 이후, 미국에서는 로큰롤에서 파생되었지만 가사가 아예 없는, 사운드 기교 중심의 서프 음악이 60년대 초반에 활개를 쳤다.

미국에서는 로큰롤이 기성세대의 탄압과 뮤지션들의 불운한 사고들, 새로운 음악적 아이디어의 고갈 등으로 몰락했지만, 상대적으로 미국보다 개방적이었던 영국에서는 뒤늦게 로큰롤의 열풍이 불며 여러 로큰롤 밴드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비틀즈가 1959년 결성되어[11] 리버풀을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그 후로 롤링 스톤즈(1962년 결성), 더 킹크스(1964년 결성), 더 후(1964년 결성)와 같은 전설적인 밴드들이 차례차례 결성되었다.

로큰롤이란건 50년대 후반에 생명을 다해버려 이미 죽은 장르라는 취급을 당하던 미국에 1963년부터 비틀즈의 록큰롤 음반들이 큰 성공을 거둔 것을 계기로 다시금 록큰롤의 인기가 부활하기 시작했다. 1964년 초 비틀즈의 미국 공연 때 비틀즈의 인기는 더욱 폭발했고, 이후 비틀즈의 뒤를 이어 여러 영국 밴드들이 미국에 진출하여 인기를 모았다. 이렇게 비틀즈를 필두로 한 영국 밴드들이 미국에 진출하여 큰 인기를 거두고 로큰롤 열풍을 다시 부활시켰던 현상을 (1차) 브리티시 인베이전이라고 부른다.

이런 영국의 브리티시 인베이전 밴드들에게 영향과 자극을 받아 미국에서도 다시 록음악이 부흥하게 되어 많은 록 뮤지션들이 새로 쏟아져 나왔고, 영국과 미국의 이런 다양한 록 뮤지션들에 의해 저변이 넓어지면서 록 음악의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록음악 열기가 영, 미 뿐 아니라 세계로 퍼지면서 전 세계적으로도 록 음악 열풍이 불어서 록 음악이 세계 대중문화의 중요한 분야로 자리잡게 된다.

미국에 상륙하여 많은 젊은이들을 도취시킨 비틀즈의 영향은, 당시만 해도 로큰롤과 대척점에 있다고 여겨지던 장르인 포크음악의 유망주였던 한 미국 청년에게도 크게 미쳤는데, 그가 바로 밥 딜런이었다.[12] The Freewheelin' Bob Dylan(1963)의 성공 이후 포크 장르의 일약 스타로 떠올랐지만, 포크 엘리티즘 특유의 폐쇄적이고 강압적인 포크 커뮤니티에 슬슬 질려가고 있던 데다가, 단조로운 포크 사운드만으로는 음악적 표현의 한계를 느껴서 뮤지션으로서의 회의감에 빠져있던 차에 비틀즈를 접하게 된 것이다. 밥 딜런은 비틀즈의 로큰롤이 지닌 에너지와 자유로운 환희에 본인의 10대 시절을 떠올리며 다시금 매료되었다. 이후 그는 전기 기타를 들어 포크 커뮤니티를 배신하고[13], Bringing It All Back Home(1965), Highway 61 Revisited(1965), Blonde on Blonde(1966)[14] 세 장의 포크 록 앨범을 냄으로서 음악적 변화를 추구했다. 포크와 록 두 장르를 결합한 혁신적인 사운드와, 은유적이고 문학적인 그의 가사는 많은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특히 그의 가사는 남녀 간의 사랑 위주였던 기존의 록 음악에서 탈피하고 사회 전반에 걸친 메시지와 철학적인 내용을 담아 록 음악이 예술의 경지에 오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밥 딜런이 비틀즈에게 먼저 영향을 받았지만, 그후 비틀즈 역시 밥 딜런에게 영향을 받게 된다. 특히 밥 딜런의 깊이 있는 작사면에서 영향을 받아서, 사랑 문제를 벗어나 좀 더 개인적이고 은유적인 내용들을 가사에 담기 시작한다. 이렇게 애초엔 장르를 달리하던 두 뮤지션의 상호 화학작용에 의해 '포크 록'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탄생하고 만개하게 된 것이다.

이런 가운데 1965년에 발매된 비틀즈의 6집 Rubber Soul은, 철저히 싱글 위주였던 그때까지의 대중음악계 관행을 깨고 최초로 싱글곡 컷팅 발표 없이 정규앨범만을 발표하여 파장을 몰고 왔다. 게다가 앨범 전체에 흐르는 유기적인 구조와 감성적인 통일성은 록음악도 앨범 자체가 하나의 감상 단위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런 비틀즈의 혁신적인 시도에 영향과 자극을 받아 비치 보이스[15], 롤링 스톤즈, 더 후, 버즈 등도 너나 할 것 없이 야심적인 명반 앨범 만들기에 주력하였고, 마치 백가쟁명같이 다양하고 풍요로운 명반 앨범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비틀즈가 이어서 발표한 Revolver 앨범도 사이키델릭 록의 태동과 제3세계 음악의 접목 등 중요한 혁신과 실험으로 또 한번 진일보한 성취를 이루어낸다.

Revolver 등을 통해 시작된 사이키델릭 록의 시대는 1967년에 만개했다. 비틀즈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가 그 선봉이었으며, 더 도어즈의 The Doors, 러브의 Forever Changes,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의 Are You Experienced?, 핑크 플로이드의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 등의 명반들이 쏟아졌다. 사이키델릭 록은 이후 하드 록과 프로그레시브 록을 비롯한 여러 록음악 장르의 탄생에 영향을 주고 흡수되면서 독자적인 장르로서의 사이키델릭 록은 사라졌지만, 그 음악적 요소들은 오늘날까지도 여러 실험적인 록음악의 DNA에 영원히 남아있다.

사이키델릭 록의 시대를 거치며 그 표현영역이 한껏 확대된 록 음악은 60년대 후반-70년대 초반에 들어서서 여러 하위 장르를 낳으며 대중음악 시장의 메인스트림을 장악한다. 영국에서는 하드 록, 프로그레시브 록, 글램 록이 유행했고, 미국에서는 하드 록과, 좀 더 팝 친화적인 록인 소프트 록, 그리고 블루스, 컨트리, 포크와 같은 로큰롤의 원류 음악을 받아들인 루츠 록이 활성화되었다.

하드 록은 블루스와 사이키델릭 록에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좀 더 야성적이고 공격적인 기타 사운드를 위주로한 음악을 추구했다. 60년대 하드 록 음악의 선구자격 밴드인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크림, 더 후와 같은 밴드들의 등장으로 파워풀한 전기 기타 연주 및 드럼 연주 기법 등에 혁신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런 성과물을 바탕으로 뒤이어 레드 제플린, 블랙 사바스, 딥 퍼플 같은 밴드들이 60년대 후반 - 70년대 초 등장해 명반을 발표하고 큰 인기를 누리며 영국 하드 록의 시대를 이끌었다. 하드 록은 후일 80년대에 들어서 헤비메탈 음악으로 발전하게 되는데, 그 전 시대인 6, 70년대의 하드록(혹은 초기 헤비메탈)은 훗날의 헤비메탈과 달리 블루스 친화적인 그루비한 사운드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프로그레시브 록은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발히 진행된 록의 한 주류이다. 스튜디오 음향 기술의 발전을 통해서 다양한 실험적인 록 음악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프로그레시브 록은 그러한 실험 음악의 한 부류이다. 프로그레시브 록은 5분을 훌쩍 넘어가는 대곡지향성, 클래식과 재즈의 요소 도입, 변박과 엇박을 넘나드는 치밀한 곡 구성, 각종 실험적인 음향기법 도입 등의 특징을 가진다. 핑크 플로이드, 킹 크림슨, 예스, 제네시스,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 등의 밴드들이 이러한 프로그레시브 록을 추구하며 영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으며, 핑크 플로이드 경우에는 The Dark Side of the Moon(1973)이 미국 시장에서 역시 큰 성공을 거두었다. The Dark Side of the Moon은 741주 동안 빌보드 200 차트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앞서 말했듯이 프로그레시브 록의 경우에는 영국뿐만 아니라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도 유행했으며, 독일의 프로그레시브 록의 흐름은 영미 중심의 록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가진다. 독일의 프로그레시브 록은 일명 '크라우트록(Krautrock)'[16]이라고 부르는데,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의 영향을 받아 전자음악적 요소를 도입한 것이 특징이었다. 크라프트베르크, , 탠저린 드림, 노이! 등을 위시한 크라우트록의 흐름은 일렉트로닉 뮤직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글램 록은 양성적인 패션과 퇴폐적인 분위기로 화려함과 섹시함을 강조한 시각적인 요소가 가미된 락의 조류이다. 티렉스Electric Warrior(1971)가 성공을 거두면서 글램 록이라는 장르화[17] 및 유행이 시작되었고, 데이비드 보위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1972)의 대성공으로 당당한 락의 조류 중 하나로 자리잡게 된다. 시각적 요소를 강조한 글램 록은 록 공연이 하나의 퍼포먼스로 도약할 수 있게 함으로서, 이후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의 시대를 여는데 효시가 되었다.

70년대 미국의 록 음악은 영국보다 열세였으나 나름의 독자적인 음악들을 내놓았다. 미국에서도 에어로스미스를 비롯한 아메리칸 하드 록 밴드들이 나타나 인기를 끌었으며, 하드 록에 비해서 좀 더 팝 지향적인 소프트 록 역시 유행했다. 대표적으로 이글스, 플리트우드 맥[18]이 있는데, 블루스 밴드에서 소프트 록 밴드로 전향한 플리트우드 맥의 1977년 앨범 Rumours이 1500만장을 판매하며 막대한 성공을 거두면서 소프트 록은 상업적인 정점을 찍었다. 또한 블루스, 컨트리, 포크와 같이 록 음악의 뿌리가 되는 음악들에 더욱 집중한 록 음악인 루츠 록 역시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까지 유행했다. 컨트리 록을 구사했던 더 밴드나, 올맨 브라더스 밴드, 레너드 스키너드와 같은 서던 록 주자들,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 등이 루츠 록의 대표적인 밴드들이다.

70년대 전반의 록의 지형은 특히나 하드 록프로그레시브 록을 중심으로 소비되었는데, 70년대 중반에 들어서 펑크 록이 등장함에 따라 록 음악은 (특히나 영국에서) 급격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펑크 록의 부흥은 당시 영국의 경제적·사회적 상황과 맞물려 있었다. 일명 영국병으로 인해 영국 경제가 파국으로 치닫던 상황에서, 주류 사회에 반항하는 젊은 이들에 의해 펑크 문화가 형성되었다. 이들은 당시의 하드 록프로그레시브 록 등 연주가 너무 복잡하고 테크니컬한데다가 현실과 동떨어진 지적 허세를 뽐내는 듯한 가사 투성이인 주류 록 음악과 기업화되어버린 거대 록밴드들에 대해 반감을 가졌다. 그 대신 사운드 면에선 더 원초적이고 단순한 로큰롤 음악을, 가사 면에선 뜬구름같은 추상적인 내용보다는 거리의 생생한 현실 얘기를 다룬 쉬운 가사를 추구하였다. 당시의 주류 음악에 대안으로서 등장한 이런 원초적인 로큰롤 음악들을 펑크 록이라 부른다. 주류 사회에 대한 반항적인 목소리를 담고 있던 영국의 펑크 록은 당시 영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펑크 록이 DIY 정신을 내세움에따라 수많은 펑크 록 밴드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1977년에는 섹스 피스톨즈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더 클래시The Clash의 발매와 함께 펑크 록의 인기는 정점을 찍는다.

70년대 영국 펑크 문화의 일부라는 좁은 의미에서의 펑크 록이 아니라, 그 근원이 되는 원초적이고 미니멀한 록이라는 넓은 의미에서의 펑크 록은 그 사운드적 기원이 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이들의 음악은 펑크 록 이전의 펑크 록이란 뜻에서 '프로토-펑크'라고 불린다[19]. 이 '프로토 펑크'로 분류되는 음악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중 제일 먼저 등장한게 '개러지 록'이다. 1964년경 브리티시 인베이전에 영향을 받은 많은 미국 젊은이들이 친구들과 밴드를 구성했는데, 주로 집 차고(garage)에서 연습했기 때문에 '개러지 록'(Garage Rock)이라고 불렸다. 이들 개러지 록 밴드들의 음악은 기술적으로 다듬어지거나 세련되지 못한 아마추어적인 음악이라서 조악하고 거친 사운드를 들려줬는데, 이런 투박한 면이 오히려 신선한 매력으로 작용했고 이후 다른 프로토 펑크 뮤지션들 및 더 후대의 본격적인 펑크 록 뮤지션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게 된다.

프로토 펑크를 논할 때 빠져서는 안 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존재가 바로 뉴욕벨벳 언더그라운드다. 당시에 전위 예술이 한창 유행하던 뉴욕에서 이에 영향을 받은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데뷰 앨범 The Velvet Underground & Nico가 1967년에 발매되었다. 동부 뉴욕의 고독하고 지적이면서도 퇴폐적인 아웃사이더 문화에 영향을 받은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음악은 미니멀하고 거친 로파이 사운드를 담고 있었고, 이는 당시 미국의 웨스트코스트 지역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었던 화려하면서 초현실적인 느낌의 록 음악과는 색깔과 정서가 매우 다른 음악이었다.

한편 미시건 주에서도 프로토 펑크로 분류할 수 있는 밴드인 MC5, 그리고 이기 팝의 밴드 스투지스가 활약했는데, 특히 스투지스는 이후 펑크록의 탄생에 직접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친 중요한 걸작인 Fun House(1970), Raw Power(1972) 등을 발표했다. 1970년 메사추세츠 주에서 결성된 더 모던 러버스는, 극히 단순한 코드로 이루어진 이들의 셀프 타이틀 앨범 The Modern Lovers(1973)를 발매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상에서 언급한 각종 개러지 록 밴드들, 그리고 벨벳 언더그라운드, MC5, 스투지스, 모던 러버스, 뉴욕 돌스 등의 밴드들은 이후 본격적인 펑크 록이 등장하기에 앞서서 그 청사진을 보여줬다는 의미에서 '프로토 펑크 록'이라고 불린다. 참고로 '프로토' 펑크록이 아닌, '본격적인' 펑크록의 시초는 라몬즈부터라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이렇게 산발적인 개러지록 등 프로토-펑크 음악들의 영향을 받아, 뉴욕을 중심으로 70년대 중반부터 펑크 록이라는 새로운 움직임이 시작되었으며, 이들의 음악은 영국 펑크록 밴드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라몬즈 등을 통해 후일 영국 펑크로도 이어진다. 뉴욕 펑크를 논할때는 CBGB라는 장소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 뉴욕 빈민가인 보웨리에 세워진 CBGB는 원래 다양한 음악을 하는 밴드들을 무대에 올리는 작은 클럽이었다. 그런데, 이 장소를 거쳐간 밴드들, 패티 스미스 그룹, 라몬즈, 토킹 헤즈, 블론디, 텔레비전, CBGB를 거쳐한 이 다섯 밴드들이 펑크 록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게 된다. 패티 스미스텔레비전의 경우 아트 펑크(Art Punk)를 추구하며 80년대 포스트 펑크로 이어지는 예술적 흐름을 선취했으며, 라몬즈의 경우 3코드 연주와 다운스트로크만을 이용한 단순한 연주법으로 영국 펑크 밴드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토킹 헤즈블론디의 경우에도 후술한 펑크 록 이후의 음악인 뉴 웨이브포스트 펑크의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예술성을 추구했던 뉴욕 펑크의 흐름은 미국 내에서는 오일 쇼크로 침체된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성공하지 못했으나, 영국으로 그 음악적 영향력이 전파되어 앞서 설명한 섹스 피스톨즈더 클래시를 비롯한 영국 펑크 록의 부흥으로 이어지게 된다.

개러지록과 프로토 펑크, 예술성을 추구한 뉴욕 펑크의 흐름을 거쳐, 영국에 당도하게 된 펑크 록은 1977년 정점을 맞이하게 된 이후 급속도로 몰락하게 되는데, 펑크 문화와 결합되어 반문화를 추구했던 이들의 움직임이 주류 미디어의 간택을 받아 주류 문화로 올라오게 되면서 그 정체성이 분열되기 시작한 것이다. 1977년 이후로 펑크 록은 여러 갈래로 분화됨에 따라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지 못했고, DIY 에토스를 내세운 펑크 문화도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대안 음악으로서의 원초적인 펑크 록은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해 뉴 웨이브포스트 펑크, 하드코어 펑크라는 새로운 장르로 발전해서 그 명맥을 이어갔다. 펑크 록의 등장 이후 음악적 성질이 그 대척점에 있던 프로그레시브 록은 완전히 몰락했으며, DIY 에토스의 펑크 록 운동은 80년대부터 나타나는 인디 록의 시발점이 되었다.

뉴 웨이브는 1978년부터 유행하여 1980년 초까지 크게 유행했던, 펑크 록의 후속 장르로, 신시사이저를 적극 차용하는 등 일렉트로닉적 요소를 도입하고, 당대에 유행하던 디스코와 같은 말랑말랑한 팝 사운드와 펑크 록을 결합한 음악이다. 미국에서는 블론디, 더 폴리스 등이 있었고, 영국에서는 엘비스 코스텔로 등이 있었다. 신디사이저의 적극적 차용은 영국에서는 80년대부터 신스팝, 뉴 로맨틱으로 이어져 80년대 영국 팝 시장을 장악하게 된다.

포스트 펑크는 펑크 록을 바탕으로 등장한 실험적인 음악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펑크 록의 혁명적인 등장과 더불어서, 이러한 음악에 자신들만의 독창성과 실험성을 가미한 밴드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기적으로는 펑크 록과 거의 동시에 등장했으며, 1977년부터 1980년까지 그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와이어Pink Flag(1977)에서 곡 길이가 3분을 넘지 않는 최소한의 구조의 미니멀한 음악을 보여주었고, 갱 오브 포Entertaiment!(1978)에서 록에 훵크 리듬을 도입하여 베이스의 역할을 강조했다. 뉴욕 펑크의 일원이었던 토킹 헤즈는 4집 Remain in Light에서 아프로비트를 도입했고, 런던 펑크의 일원이었던 더 클래시London Calling에서 레게, 덥 리듬을 도입했다. 조이 디비전Unknown Pleasures(1979)와 Closer(1980)에서 음울한 음악 세계를 표현했다. 이와 같이 각자의 개성이 두드러지는 음악을 했던 이들이지만, 펑크 록의 영향을 받아 탄생했다는 점이 공통 분모로서 포스트 펑크로 한데 묶인다. 복잡한 곡 구조를 지닌 프로그레시브 록과는 달리 구조적 단순성을 유지하되 그 표현 방식을 다양화 했다는 점에서 실험성이 구분된다. 포스트 펑크는 당대에는 팝 지향적인 뉴 웨이브에 비해서 상업적으로 큰 인기를 끌지 못했으나, 그 영향력은 80년대 중반까지 이어져 후술할 얼터너티브 록 음악의 직접적인 선조가 되었다.

하드코어 펑크는 80년대 초 미국에서 등장한 펑크 록의 하위 장르로, 더욱더 과격하고 빠르며 단순한 펑크 록을 추구했다. 하드코어 펑크의 대표 주자는 블랙 플래그로, 블랙 플래그의 리더 그레그 진은 그들의 1집 Damaged가 앨범이 레코드 사로부터 퇴짜를 맞자 직접 SST 레코드라는 레이블을 설립해 그의 앨범을 발매하고, SST 레코드에서 여러 하드코어 펑크 밴드들을 키워냈다. 이러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지닌 블랙 플래그의 Damaged가 하드코어 펑크 신의 대표작으로 뽑히며, 워낙 과격하고 단순한 음악을 했기에 비평적으로 좋은 소리를 듣진 못했다. 허나 하드코어 펑크에서 출발하여 그 음악색이 변화한 일부 하드코어 펑크 밴드들이 초기 얼터너티브 록의 걸작을 내놓았으며, 하드코어 펑크에 영향을 받아 탄생할 포스트 하드코어 음악 역시 얼터너티브 록에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후술할 얼터너티브 록의 선대 장르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펑크 록과 뉴 웨이브의 열풍이 지나간 뒤, 80년대에 들어서서는 메인스트림 록 시장은 하드 록으로부터 파생된 헤비메탈에 의해 점령된다. 헤비 메탈 음악은 그 기원 자체는 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특히 블랙 사바스가 지금의 정형화된 메탈 음악의 원형을 최초로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70년대를 거치며 발전하던 하드 록/초기 헤비메탈은 펑크 록의 등장 이후 이들의 공격성과 속도감을 결합한 NWOBHM[20] 운동으로 발전하여 모터헤드, 쥬다스 프리스트, 아이언 메이든과 같은 영국 밴드들이 인기를 끌었고, 80년대 초중반에 들어서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드코어 펑크의 영향을 받아 기존 헤비메탈 음악보다 더욱더 공격성과 속도감이 강화된 익스트림 메탈이 나타났다. 특히나 메탈리카를 비롯한 쓰래시 메탈 밴드들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80년대 중후반에 들어서는 무게감 있는 메탈의 기타 드라이브와 대중적인 멜로디가 결합된 글램 메탈 밴드들이 크게 인기를 끌면서 최전성기를 맞이한다.

90년대에 접어들면서, 메인스트림에서의 헤비메탈의 열풍은 1991년 너바나Nevermind의 흥행과 함께 몰락하게 되고, 너바나를 필두로 한 얼터너티브 록이 급부상한다. 얼터너티브(Alternative)는 '대안'이라는 뜻의 영단어로 당시 매너리즘에 빠져 그 인기를 잃어가던 헤비메탈 음악의 대안적 음악이라는 뜻에서 명명되었다. 얼터너티브라는 명칭은 90년대에 새로운 음악의 등장과 함께 고안되었으나, 얼터너티브 록의 음악적 기원은 80년대 초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얼터너티브의 부흥 이후 많은 밴드들이 얼터너티브의 선조로 재평가되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초기 얼터너티브 록은 70년대 후반 등장한 포스트 펑크가 80년대에 들어서서 점차 발전한 형태로, 80년대 초 후기 포스트 펑크/초기 얼터너티브 록 음악들은 그 장르적 특성이 혼재되어 있어 많은 80년대 밴드들이 포스트 펑크 밴드이자 얼터너티브 록으로 동시에 분류된다. 80년대 메인스트림 시장을 헤비메탈이 점령한 기간 동안, 많은 포스트 펑크/초기 얼터너티브 록 밴드들은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며 로컬 씬에서 입지를 다졌다. 이러한 초기 얼터너티브 음악은 대학가 라디오 방송을 통해 많이 퍼져나갔기 때문에 칼리지 록이라 부르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80년대 초, R.E.M.이 등장하여 인기를 끌면서 많은 얼터너티브/인디 록 밴드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하드코어 펑크 밴드 출발한 허스커 듀, 미니트맨, 리플레이스먼츠는 하드코어 펑크에 멜로딕한 요소가 가미된 음악을 하여 얼터너티브의 초기 주자로 탈바꿈해 유명해졌다. 영국에서는 80년대 초 쟁글 팝 계열의 음악을 들려준 더 스미스가 큰 인기를 끌었고, 80년대 후반에 더 큐어고딕 록스톤 로지스매드체스터 장르가 인기를 끌었다. 또한 아일랜드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U2The Joshua Tree(1987)가 그래미 상을 석권하면서 세계적인 얼터너티브 록 주자로 떠올랐다.

특히나 초기 얼터너티브 록에서 두드러지는 흐름 중 하나는 바로 노이즈에 대한 탐구로, 80년대 초중반부터 시끄러운 기타 노이즈를 음악적 요소로 가미한 밴드들이 등장했다. 영국의 지저스 앤 메리 체인Psychocandy(1985)에서 달콤한 멜로디와 노이즈 피드백을 결합한 음악을 들려주었고, 노이즈 낀 전위 음악을 구사하던 소닉 유스Daydream Nation(1988)에서 변칙적인 기타 튜닝과 기타 노이즈를 팝 멜로디에 성공적으로 결합시킴으로서 노이즈 음악을 팝, 록의 일부로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 픽시스는 노이즈 낀 기타 사운드와 광적인 보컬을 아름다운 팝 멜로디에 결합시킨 역작 Doolittle(1989)를 발매했다. 이러한 노이즈 팝/록의 시도는 영국에서는 슈게이징 장르의 발전으로, 미국에서는 그런지의 등장으로 이어지게 된다. 또한 미국의 하드코어 펑크 신은 이러한 노이즈 록의 흐름을 받아들여 포스트 하드코어로 발전했으며, 빅 블랙, 푸가지와 같은 포스트 하드코어 밴드들 역시 얼터너티브 음악에 영향을 끼쳤다.

80년대 메인스트림의 헤비메탈의 움직임과는 별개로 언더그라운드/인디를 중심으로 찬찬히 진행되어서 오던 얼터너티브의 움직임은 결국에 너바나의 등장과 함께 폭발하게 된 것이다. 너바나의 리더 커트 코베인 역시 R.E.M., 픽시즈, 소닉 유스와 같은 밴드들의 영향력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90년대에 들어서서 얼터너티브 록은 수많은 하위 장르를 낳으며 발전해 나갔다. 주된 흐름으로는 90년대 초 미국의 그런지 열풍, 1993~97년 간의 브릿팝 열풍, 그리고 1997년 등장하여 2000년대로 이어지는 포스트 브릿팝 정도를 꼽아볼 수 있으며, 이 외에도 슈게이징, 인더스트리얼 록, 팝 펑크와 같은 다양한 장르의 밴드들이 등장했다.

그런지는 너바나가 소속되어 있던 장르로 얼터너터브 부흥과 함께 떠오른 장르라고 봐도 무방하며, 90년대 초의 미국 록 신을 지배했던 장르이다. 시애틀의 로컬 록 신에서 발전한 음악으로, 너바나, 펄 잼, 앨리스 인 체인스, 사운드가든 네 밴드가 대표적인 밴드로 손꼽힌다. 이들의 음악색은 펑크, 하드 록, 메탈 등 다양했으나 디스토션과 노이즈가 잔뜩 걸린 기타와 90년대를 관통하는 젊은이들의 '루저' 정서를 대변한 우울한 가사가 장르적 특징으로 삼았다. 그런지 열풍이 지나간 뒤에는 이에 영향을 받은 포스트 그런지가 다시금 유행을 이어나갔다.

90년대 초 미국의 그런지 열풍이 한 차례 지나간뒤, 90년대 중반 영국에서는 브릿팝이라는 음악이 유행했다. 이 음악은 60~70년대의 비틀즈와 킹크스를 비롯한 기타팝 내지 파워팝 음악을 기원으로 하고 있으며, 가까이는 80년대 영국 인디 밴드인 더 스미스스톤 로지스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장르적 특징으로는 기타와 멜로디 중심의 편곡과 밝고 경쾌한 분위기를 꼽을 수 있다. 오아시스, 블러, 펄프, 스웨이드 네 밴드가 브릿팝의 대표 주자로 뽑힌다. 브릿팝은 90년대 초 유행하던 미국의 록 음악의 대항마로서 영국 매스미디어의 의해 발굴되어 큰 푸쉬를 받았으며, 브릿팝 전쟁과 같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낳았다.

밝고 경쾌한 브릿팝 음악은 약 3-4년간의 짧은 기간동안 전성기를 맞이한 뒤 급격히 추진력을 상실해 갔다. 결국 1997년 브릿팝과는 대비되는 우울한 분위기의 두 걸작, 더 버브Urban Hymns라디오헤드OK Computer의 등장으로 브릿팝의 시대는 끝나게 되며, 이들의 우울한 분위기를 계승한 새로운 기타 팝 앨범들이 나오게 되는데 이들을 한데 묶어서 포스트 브릿팝이라는 말을 쓴다. 콜드플레이, 뮤즈, 트래비스를 비롯한 초기 포스트 브릿팝 밴드들은 더 버브라디오헤드의 영향을 받아 이들과 유사한 음악을 들려주었지만 2000년대에 접어들어 자기만의 음악색을 찾아가면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다. 90년대 록 음악의 게임 체인저가 된 라디오헤드의 OK Computer는 당시에는 더 버브의 Urban Hymns에게 밀려 낮은 평가를 받았으나 꾸준히 재평가를 받아 현재는 록 음악을 대표하는 대표적인 명반으로 손꼽힌다.

슈게이징 음악은 80년대 중반부터 나타나는 노이즈에 대한 탐구에서 큰 영향을 받아 탄생한 장르로, 층층히 쌓아올린 기타 노이즈에 서정적인 보컬 멜로디라는 이질적 요소를 결합한 장르이다. 시끄러운 기타 노이즈와 대비되는 몽환적인 분위기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크리에이션 레코드 소속의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슬로우다이브, 라이드 세 밴드가 슈게이징의 대표 주자이며,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Loveless(1991)가 슈게이징 장르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의 Loveless는 장르의 대표작을 넘어서서 90년대 록 음악을 대표하는 명반 중 하나로 일컬어진다. 슈게이징은 90년대 초 등장해 전성기를 맞이한 뒤 이후로는 침잠했으나, 2010년대 들어서 앞서 언급한 세 밴드가 다시 새로운 앨범을 발매함에 따라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인더스트리얼 록은 80년대에 등장한 실험적 장르인 인더스트리얼에 영향을 받아 기계음과 메탈의 헤비한 기타 사운드를 결합한 음악으로, 나인 인치 네일스의 성공으로 메이저 장르로 등극했다. 이후 나인 인치 네일스의 트렌트 레즈너의 지원을 받아 성장한 밴드 마릴린 맨슨이 인기를 끌었다. 대표작으론 나인 인치 네일스의 The Downward Spiral(1994)이 있다.

팝 펑크는 대중적인 멜로디를 강조하며 재등장한 펑크 록의 한 갈래로, 하드코어 펑크 씬을 통해 펑크 록의 전통을 유지하던 미국에서 출발하였다. 사회 비판과 저항이 중심으로 하던 기존의 공격적인 펑크 록하드코어 펑크와는 달리 90년대를 관통하는 '루저' 정서를 바탕으로 개인적인 정서를 대중적인 멜로디와 코드 진행을 통해 표현한 펑크 록이다. 그린 데이가 이러한 팝 펑크의 시도를 통해 펑크 록을 다시금 메인스트림으로 돌려놓았으며, 이후 sum41, Blink-182와 같은 후발주자들이 뒤따랐다. 당시 폐쇄적인 하드코어 펑크 신에서는 이들을 배신자라며 비난했으나, 그러한 비난과는 별개로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하면서 펑크 록의 대표주자들로 떠올랐다.

80년대 후반부터 메인스트림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힙합 음악은 등장 초기부터 이러한 얼터너티브 록 음악들과의 결합을 시도하기도 했다. 런-D.M.C., 비스티 보이즈와 같은 초기 힙합 주자들은 록 음악을 샘플링하며 얼터너티브 힙합을 구사했으며, 90년대 초에는 헤비메탈 음악과 힙합의 랩을 결합한 뉴 메탈, 랩 메탈 음악들이 등장했다.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림프 비즈킷, 과 같은 밴드들이 이러한 랩 메탈을 시도하여 인기를 끌었다.

또한, 얼터너티브 록의 시대를 맞이하여 다양한 장르의 록 음악이 쏟아져 나오자, 이러한 음악들을 경계없이 뒤섞은 크로스오버 음악들도 여럿 등장했다. 90년대 초 그런지 음악의 유행과 함께 인기를 끈 밴드 스매싱 펌킨스는 드림 팝, 프로그레시브 록, 사이키델릭, 고딕 록 등을 여러 록 음악의 요소들을 결합한 음악을 들려주었으며, 은 록의 경계를 넘어서서 힙합컨트리와 같은 음악까지 뒤섞은 음악으로 주목을 받았다.

90년대에 유행했지만, 메인스트림의 얼터너티브 록 조류와는 이질적인 흐름으로 포스트 록 장르의 등장이 있었다.[21] 포스트 록은 앰비언트, 프리 재즈, 크라우트록, 최소주의 클래식 음악과 같이 인스트루멘탈의 역할이 강조된 실험적인 음악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탄생한 록의 흐름으로, 영국 밴드 톡 톡Laughing Stock(1991)과 미국 밴드 슬린트Spiderland(1991)가 발매된 1991년이 포스트 록의 시작점으로 거론된다. 포스트 록은 멜로디 중심의 기존 록 음악과는 달리 악기의 소리와 질감 그 자체를 강조하는 음악을 추구했다. 때문에 보컬은 중요시되지 않으며, 곡의 길이는 길지만 반복적인 모티브를 중점으로 이루어진 최소주의적 음악들이 많다. 91년의 등장 이후 미국에서는 토터즈의 쓰릴 쟈키 레이블을 중심 하나의 장르로 발전해 이어져왔고, 영국에서는 슈게이징 장르와 결합하여 성장했다.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에는 시규어 로스갓스피드 유! 블랙 엠퍼러Ágætis byrjun(1999)과 Lift Your Skinny Fists Like Antennas to Heaven(2000)의 발매로 장르 내에서 주목을 받았다.

2000년대에 들어서서 여전히 얼터너티브 록 밴드들이 인기를 끌었으며, 새로운 흐름으로 개러지 록 리바이벌이 등장했다. 개러지 록 리바이벌, 혹은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이라 불리는 이 흐름은 좀 더 기타 중심의 기본적인 록 음악을 구사하는 밴드들로, 60-70년대 개러지 록/뉴 웨이브/포스트 펑크와 같은 고전적인 음악들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음악을 보여주었다. 2001년 스트록스Is This It?화이트 스트라입스White Blood Cells의 성공으로 메이저로 떠올랐으며, 더 킬러스, 인터폴, 프란츠 퍼디난드, 리버틴즈, 악틱 몽키스, 더 블랙 키스와 같은 후발 주자들이 뒤따랐다. 개러지 록 리바이벌은 2000년대 중반이 되어서 대부분의 밴드들이 상업적으로 실패하며 리바이벌 열풍은 사그라들었다.

2000년대에 중요한 음악적 특징은 록 음악이 인디와 메이저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록 음악의 인디를 중심으로 소비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2000년대 인디 록의 흐름의 대표적인 밴드로는 Funeral(2004)로 명성을 얻은 아케이드 파이어가 있으며, 이를 비롯한 많은 인디 밴드들이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인터넷을 통해서 소비되었다. 또한 2000년대에는 디지털 기기의 발전으로 일렉트로니카 음악이 발전하면서 이를 록의 결합하려는 시도 역시 자주 일어났다. 라디오헤드의 Kid A(2000)는 이러한 시도의 시발점으로 평가받으며, 이후 LCD 사운드시스템이나 The XX와 같이 록 음악 인스트루멘탈과 일렉트로니카를 결합한 음악들을 시도하는 밴드들이 나타났다.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지금에 이르기까지, 록 음악은 개러지 록 리바이벌을 끝으로 이렇다 할 조류를 형성하지 못하며 팝 음악의 메인스트림의 바깥으로 밀려나간 상태이다. 많은 인디 록 밴드들이 여전히 새로운 앨범을 내놓으며 명맥을 이어나가곤 있으나, 새로운 흐름으로는 크게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2010년대 들어 Imagine DragonsFall Out Boy, Coldplay 등의 아티스트들이 시도하는 일렉트로닉 락으로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도 아직 미미한 편이다. 당장 빌보드 차트만 봐도 힙합, R&B가 압도적인 대세이며 락 장르의 음악은 찾기가 어려운 편.

평론가나 록 매니아들은 록 음악이 이젠 생명이 다해서 거의 죽은 상태에 도달했다고 진단하기도 한다. 클래식 음악이나 재즈 음악도 계속 끝없이 발전한게 아니라 전성기 때 폭발적으로 발전했다가 나올만한게 다 나와서 수명이 다 한 뒤로는 계속 정체상태에 빠져있듯이, 록 음악도 사실상 수명이 거의 다 되었다는 견해다. 많은 이들은 그간 록 음악이 너무 빠르게 발전해서 이젠 거의 모든 방법론이 이미 다 등장했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은 아주 새로운 사운드나 뭔가 혁신적인 새 흐름이 등장하기는 매우 힘들어 보인다는 것. 물론 록 자체가 재즈 등보다 훨씬 폭이 넓은 장르고, 다른 장르들과의 크로스오버 융합 등을 통해 새로운 들을만한 것들을 계속 내놓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벌써 사망선고를 내리는 것은 성급한 진단이라는 반론도 있다만 록 음악의 일부 요소를 차용해 타 장르에 양념처럼 곁들이는 식의 콜라보를 제외하곤 록 장르 자체가 다시금 생명력을 얻고 새 장르를 탄생시키거나 대중의 큰 주목을 받는 경향은 확실히 덜해졌다.

3. 특징

어쿠스틱 록 드럼, (일렉트릭) 기타, (일렉트릭) 베이스를 주축으로 보컬, 신디사이저, 스트링 등의 악기가 보조한다.
이외에는 배리에이션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모든 하위장르를 하나로 묶을 만한 딱히 이렇다 할 특징을 집기가 힘들다. 거칠고 반항적이며, 악마의 노래라는 의견이 있으나 이는 하드락 등의 소수 장르들만 들어본 사람들이 내리는 평가다. 락에 클래식을 도입한 제네시스나 느린 리듬과 끈적이는 기타리프를 넣은 핑크 플로이드 등의 프로그레시브 락 같은 게 있는데 어떻게 락을 그저 '거칠고 반항적이다'라고 하겠는가?

4. 한국

  • 록밴드 문서 한국 록밴드의 현실 항목 참조.

한국에서의 록의 입지는 매우 불안정하다.

한국 록 음악의 태동기는 1960년대에 신중현[22]을 비롯한 한국의 1세대 록 뮤지션들이 등장하고 부터이다. 하지만 1960년대의 한국은 정치 상황도 전체주의 군사독재를 겪는 중이었던 데다가 아직은 보수적이고 폐쇄적이었던 사회 분위기 때문에 당시 서구권에선 청년문화의 대표격이었던 히피 문화와 록 음악은 높으신 분들(정부)의 눈에는 단순히 탄압의 대상일 뿐이어서 한국엔 제대로 들어오지 못했다. 즉, 모든 서구권과 일본을 비롯한 전 세계 대부분이 록음악을 필두로 한 새로운 청년문화의 혁명에 휩싸여 있었던 1960년대에 한국은 그런 열풍에서 한참 비켜나 있었던 것이다.
1970년대부터는 그래도 상황이 나아져서, 중류층의 가정에도 '전축'이 조금씩 보급되기 시작했고 '빽판'이라고 불리던 불법복제 해외음반들이 유통되기 시작했으며 신촌과 명동 등지의 음악다방에서 DJ들이 록과 팝음악을 트는게 유행하면서 한국에서도 조금씩 록음악 팬들이 많아지고 록음악 문화의 저변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70년대 초중반에 록음악을 듣고 자란 한국의 록키드들이 대학생이나 성인이 되어서 70년대 후반~80년대에 열풍을 몰고온 '록 그룹사운드'의 주력 멤버들이 되었다. 이렇게 서구의 원조 록음악을 들을 기회가 이전보단 훨씬 많아지고, 대학가 그룹사운드를 중심으로 록뮤지션들도 많이 생겨났지만 정부의 검열은 여전히 엄격해서 자유로운 창작활동에는 장애가 많았다.

1970년대에 대표적인 한국 록밴드로는 신중현과 엽전들, 산울림, 송골매를 들수 있다. 이들 70년대 밴드들은 독재정권의 탄압과 간섭이 극에 달했던 유신 시기에 활동을 했기에 각종 검열과 금지에 시달려야 했다.

1980년에는 하드록 밴드 마그마가 대학가요제에 나오면서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이때부터 이상하게도 유독 대학가요제에서 주목을 받은 록밴드는 정규한장내고 해체하여, 보컬이 솔로로 데뷔/장르 변경을 하는 패턴을 이어가 버리고 말았다.(대표적으로 마그마, 티삼스) 마그마의 등장으로 한국에서도 하드록, 헤비메탈이 주목을 받게된다. 이후 1980년대를 대표한다고 할수있는 밴드 시나위, 백두산, 부활도 데뷔를 하게되었고 이들은 80년대 한국록밴드 3대장으로 불리며, 인기를 얻고있었다. 대학가요제 쪽에서도 역시, 마그마 뒤를 이을 록밴드들이 주목을 받기도 하였으며 87년에는 티삼스, 88년에는 무한궤도가 주목을 받았다. 1980년대는 록밴드들이 공중파TV나 라디오 음악 순위 프로그램의 정상권에 자주 진입했고, 심지어 가요톱10 골든컵을 더러 수상할 정도로 록음악이 한국 대중음악의 주류의 위치에 제일 가까이 근접했던 시기였다. 1980년대는 대중문화와 프로스포츠를 장려해서 검열도 과거 박정희 정권 때에 비해서는 상당정도 완화되었기 때문에 록음악같이 자극적인 컨텐츠도 널리 공중파에 나오는 것이 가능해졌던 것도 록 음악이 과거보단 인기를 얻게 된 하나의 원인이었다.

비슷한 시기(80년대 말) 밴드 붐으로 록 음악이 대중들에게 익숙해진 일본에서는 그 흐름이 그대로 이어지면서 90년대 J-Rock이 최전성기를 맞은 것과 달리 한국에서는 90년대 들어서 서서히 불씨가 꺼져가고 있었다. 주목 받은 신인 록밴드 가수로는 N.EX.T[23], 윤도현[24], 김경호, 걸, 이브, 노브레인, 크라잉넛, 크래쉬 등 80년대에 비교하면 양적으로는 절대 밀리지 않았으며 질적으로도 크게 밀리지 않았다. 한국 대중음악이 댄스음악을 받아들여 인기를 얻고있던 시점에 수많은 댄스그룹을 제치고 1위를 달성한 걸이 있었고 넥스트는 애니메이션 음악을 담당하면서 외국의 음악잡지등에서 극찬을 받기도 하였으며, 김경호는 외국의 록보컬들과 비교해고 손색이 없는 가창력과 무대매너로 호평을 받았다. 기대주로 불리던 윤도현 밴드 역시도 4집이 입소문을 타며, 재결합을 계획하기도 하였다. 90년대에는 이들 외에도 선배 밴드들이 다시 새로운 전성기를 맞기도 하였는데 시나위 출신이었던 김종서는 솔로로 컴백하여 큰 인기를 얻었으며, 시나위는 김바다를 영입하여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부활 역시도 새로운 보컬 박완규를 영입하여 반등의 기회를 보고 있었다. (다만 의견충돌로 인하여 김태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박완규는 부활을 떠나게 된다.)

다만 전반적인 대중들의 록 음악에 대한 관심은 80년대에 비하면 너무 많이 사그러들어 있었다. 이미 음악계의 주도권이 발라드, 댄스뮤직에 완전히 뺏겨버린 것이다. 1990년대 한국 록씬에서도 이를 상업적으로 의식하여 비교적 전통적인 당대 록 사운드를 선보이려 했던 1970, 80년대에 비해서 전형적인 발라드 형식에 웅장하면서 거친 록 음악 요소를 가미한 소위 '록 발라드'라 불리는 한국만의 짬뽕음악들이 난무하였다. 대중적으론 한층 더 어필하기 쉬웠지만 장르적 특색과 음악성에 있어서 독이 된것이다. 이는 1990년대 한국의 록 음악이 1970, 80년대 록 음악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예술적으로 저평가를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현상이 가속화 되면서 2000년대 부터는 록 음악에 대한 관심이 1990년대보다도 훨씬 더 사그러들게 된다.

한국 록 아티스트의 현실도 암울하지만 해외 유수의 록 아티스트들에 대한 한국 대중 음악 소비자들의 인지도 역시 처참한 수준이다. 그나마 인지도가 높은 록밴드는 단연 린킨 파크, 뮤즈를 들 수 있다. 그나마 린킨 파크, 노엘 갤러거, 뮤즈, 그린데이의 인기는 10대 층에서 나날이 상승중이다. 또한 현재 세계에서 가장 공연 수입이나 앨범 판매 수입이 높은 밴드 중 하나인 콜드플레이의 경우도 내한 당시 수분만에 전석이 매진될 정도의 인지도는 있지만 세계적인 인지도에 비해 한국내 인지도는 낮은 편이다. 한 커뮤니티에서는 '콜드플레이가 누군데, 사람들이 이 난리 영광임? 솔직히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나 유명한 가수가 좋아한다고 공연장 간다니까 괜히 유행인거 같아서 분위기 타는거 아님?' 이라는 글이 올라올 정도이다. 하지만 보다 마니아틱한 장르들의 밴드는 록 발전에 끼친 영향력에 비해 한국에서의 인지도가 매우 낮다. 2000년대 초반 록씬을 강타한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 밴드들의 경우는 인지도가 바닥을 기어다닌다. 일례로 교보문고 본점 음반 판매 코너에서 그나마 한국내 인지도가 높은 편인 악틱 몽키즈의 앨범은 1집부터 5집까지 재고가 아예 없는 수준이다. 악틱 몽키즈는 런던 올림픽 당시 오프닝 공연을 했던 밴드이며 록 페스티벌을 통해 한 차례 내한공연까지 했다.

전 세계의 많은 대중음악계에서 입을 모아 '록은 팝을, 팝은 록을 닮아왔다'고는 말하지만 한국 대중음악계에서는 예외이다. J-POP에서는 일렉트로닉 등 가상/전자악기가 대중화 된 현재에도 록 음악에서 파생된 기타-베이스-드럼 반주가 주된 것은 아니더라도 삽입되는 경우가 주류인 반면 한국 아이돌 음악에서 기타-베이스-드럼 반주는 오히려 마이너하다. 아이돌 음악만 듣는 사람이라면 일렉트릭 기타와 베이스가 어떤 소리를 내는지 아예 모른다. SM, YG, JYP 등 대형 연예 매니지먼트 회사 내에서는 록밴드가 전혀 없다.[25] 이와 같은 현상은 현재 일본 아이돌과 한국 아이돌의 음악적인 근본이 다르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일본 아이돌의 시작은 1970년대 록 뮤지션들의 경쾌하고 리드미컬한 사운드를 바탕으로 이를 대중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유럽권의 유로비트나 팝 뮤직이 섞여 순화된 음악을 바탕으로 한다. 80년대만 하더라도 김완선, 소방차와 같은 초창기 한국의 댄스가수들도 이런 일본 아이돌 뮤직과 유로비트등에 영향받은 장르를 보여줬지만 90년대 들어서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현진영의 등장으로 인해 힙합과 영미권 댄스팝에 직접적으로 영향받은 새로운 댄스뮤직이 등장하여 기존의 80년대 댄스뮤직을 완전히 세대교체를 시켜버렸다. 한국 아이돌 음악의 뿌리는 1980년대 댄스뮤직이 아닌 서태지를 대표로 하는 1990년대 댄스뮤직이다. K POP에서 힙합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이 한국 아이돌 그룹이라면 한 두명씩은 꼭 있는 래퍼 포지션 아이돌들이 그 증거이다. 일본 아이돌계에선 현재에도 래퍼 담당을 찾기 힘들며 랩이 쓰이기 시작한 시점도 2000년대 이후 들어서이다. 이는 이미 1990년대 초반 서태지때부터 꾸준히 랩을 했던 한국 아이돌과 큰 차이점이다.[26] 그런데 정작 서태지는 초창기에 힙합의 랩을 한 것이 아니라 RATM이나 림프 비스킷 종류의 랩메탈, 뉴메탈로 시작했다. 5년도 안돼서 브릿팝과 개러지 록에 밀려 쇠퇴해버린 장르라서 다들 힙합을 기반으로 둔 줄 알지만 엄밀히 말해 서태지는 록을 했다.

대중음악만 듣던 사람들 중 일부는 '그럼 록밴드들도 좋은 음악을 만들어야 사람들이 알아줄 것 아니냐.'라는 말을 하지만 한국 록의 인지도 부족은 음악성 부족이 아닌 록 음악에 대한 사람들의 무지와 선입견에 기인한다. 한국 인디씬은 1990년대부터 펑크록, 모던록, 헤비메탈, 사이키델릭 록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퀄리티 높은 음악들을 뽑아내왔지만 사람들이 몰라서 안 듣는다. 그 이유는 이미 수십년간 독재정권에 의해 박해를 받아오던 한국 록씬이 SM, JYP, YG 등의 대형 기획사들의 자본력을 따라가지 못하고 홍보, 방송 출연 입지 등 모든 면에서 제약을 받으면서 결국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는 의견이 많다. 특히 카우치음악캠프에서 저지른 노출 사고로 인디 밴드들이 방송전파를 타지 못했다. 한국 록밴드의 실력을 지적한다고 해서 이것이 해외 아티스트들이 한국에서 인지도가 낮은 이유를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K-POP 덕분인지는 몰라도 인디밴드의 연주 영상같은게 올라오면 외국인들의 덧글을 심심치않게 볼수 있으며 차라리 이럴바에는 한국에서 록음악의 관심을 퍼트리는 것보다 외국에서 활동을 하는게 낫다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인디씬에서는 많은 밴드들이 해외쪽으로 활동을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인디밴드의 대부분은 록밴드가 아니고 팝밴드이다. (지방 출신의 밴드가 서울로 진출하려고 해도 (설령 성공해도) 힘든건 마찬가지이니 외국으로 가는 것이 낫다.)

올드 가수들 가운데 그나마 유명한 가수라고 해봐야 김경호, 박완규 등으로 나는 가수다 기준으로 그나마 인지도가 올라갔지만 여전히 신세대 [27]에게 많은 호응을 받기는 어려웠고 그나마 대중들이 많이 들어주는 곡은 록 장르가 아닌 록발라드 정도였다. 그나마 나가수 시즌 2에 들어서 국카스텐이 그나마 록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링크)

현재는 혁오같은 인디 팝에 가까운 인디 밴드들이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5. 세부 장르

6. 관련 문서



[1] 덕분에 TV 프로그램 등에서 말하는 사람은 롹이라 하는데 자막은 록으로 나오는 현상이 벌어진다.[2] 50년대의 역사적인 첫걸음에 이어 60년대는 저항성과 개척정신, 70년대는 예술성과 세련미, 장르의 세분화가 중심이 됐으며, 그 후 80년대는 상업화, 90년대는 분해와 재조합을 겪으며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다만 현 시점에서는 힙합, R&B를 비롯한 흑인 음악에 밀려 그 기세가 덜한 편이다.[3] 퇴폐적 향락적이라느니 어쩌느니 하는 말이 있으나 실제 들어보면 사회풍자적인 내용이나 하류 계층의 분노를 표현한 내용이 상당히 많다. 그리고 음악에서 사랑이나 성적인 것을 주제로 쓴 것이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오히려 이 쪽이 더 솔직한 감정의 표현이며, 사회비판을 노골적으로 하는 밴드들이 똥폼 잡는거라는 식으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함부로 어떤 음악이 우월하고 열등하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4] 스래쉬 메탈 등이 대표적이며, 메탈은 아니지만 하드코어 역시 이런 지점에 들어간다.[5] 예를 들어, 80년대 빌보드 Top 200 앨범 차트에서는 하드락/메탈로 분류되는 밴드들이 1위를 차지하는 일이 종종 있었으나, 91년도 건즈 앤 로지즈의 앨범 차트 1위를 기점으로 빌보트 앨범 차트 상위권에서 메탈밴드들이 사라졌으며, 그 자리를 그런지 사운드의 밴드가 대체했다.[6] 악기 없이 보컬만 따로 두기도 하지만, 보통은 멤버 중 한두 명이 담당한다.[7] 많은 사람들이 착각을 한다.[8] 2012년 KBS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 TOP밴드/시즌 2의 출연밴드를 봐도 물론 주류는 록음악을 하는 밴드들이었지만 이외에도 다양한 장르를 하는 밴드들이 출연했으며 16강 진출팀 중 순수 R&B 밴드 펠라스가 진출하기도 했다.[9] 각 뮤지션들을 복사하듯 똑같이 흉내내기보단 그냥 재밌게 재현해낸 것에 가깝다. 록 역사의 대표 뮤지션으로 선정된 이들을 보면 RHCP의 개인적 선호도도 꽤 반영된 듯 하다. 아무튼 이 유튜브 영상은 높은 조회수를 올리며 인기가 높은 영상이기도 하다.[10] The bands and styles Red Hot Chili Peppers are paying homage to... 0:00 Elvis Presley, 0:26 The Beatles, 0:36 Jimi Hendrix/Cream, 0:56 Parliament Funkadelic, 1:21 Glam Rock, 1:51 The Sex Pistols, 2:02 The Misfits, 2:15 Motley Crue/Poison, 2:47 Nirvana, 3:01 Red Hot Chili Peppers (Themselves)[11] 정확히 말하면 비틀즈라는 밴드명은 1959년에 지어졌지만, 로큰롤 밴드 활동은 존 레논의 고교 스쿨밴드인 쿼리맨 시절부터 하고 있었다.[12] 사실 밥 딜런은 청소년 시절인 1950년대에 엘비스 프레슬리를 비롯한 로큰롤 스타들의 열성 팬이었다. 엘비스가 서있었던 장소에 영광이라며 키스한 것도 유명한 일화이며 실제로 당시 밥 딜런의 학창시절 사진들을 보면 리젠트 머리와 거친 로큰롤 옷차림을 즐겨입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미국에서 로큰롤이 몰락하게 되면서 음악적으로 활약할 기회가 사실상 사라지면서 본인의 또다른 취향이었던 포크 음악으로 완전히 전향한 것이다.[13] 당시 폐쇄적인 포크 커뮤니티는 일렉 기타를 드는 행위는 포크의 순수성을 파괴하는 배신 행위라고 생각했다.[14] 최초의 더블 앨범이다.[15] 비치 보이스의 걸작명반 Pet Sounds 앨범도 바로 비틀즈의 Rubber Soul 앨범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서 만든 앨범이다[16] 독일의 대표음식인 자우어크라우트에서 따온 이름이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독자적인 록 음악을 '김치록'이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17] 초기엔 화려하게 반짝거리는 록이란 의미에서 '글리터 록'(Glitter Rock)이란 표현도 병행해서 사용되었으나 갈수록 글램 록이라는 어휘가 더 우세해졌다.[18] 나중엔 소프트 록 스타일로 인기를 얻었지만 초창기엔 블루스 록 밴드였는데, 레드 제플린의 지미 페이지가 이 초창기 플리트우드 맥의 열렬한 팬이었고 영향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19] proto-( )는 ( )의 이전 형태, ( )의 원조라는 뜻[20] New Wave of British Heavy Metal. 엔워븜이라고 읽는다.[21] 물론 평가하기에 따라 얼터너티브의 한 흐름으로 보는 시각 역시 존재한다.[22] 훗날 펜더사로부터 경의를 받게 되는 한국 록 음악의 대부이자 나아가서 한국 대중음악계의 대부이다.[23] 이마저도 사실 신해철의 새 밴드나 마찬가지였다.[24] 3집부턴 밴드로 결성하여 활동하고 자신의 솔로1, 2집은 그냥 밴드의 정규앨범으로 인식한다.[25] JYP에 데이식스가 있긴 하다.[26] 다만 일본 음악계는 록밴드에 의해 이끌어져 왔다는 점에서 일본 대중음악계는 한국 음악계와는 상당히 다른 경향을 보이는 것도 특징이다. 현재 일본의 록씬은 굉장히 규모가 거대하여, 수천 개의 록 밴드들이 활동하며 공연하고 있고 전국의 공연 클럽 숫자, 그리고 그 록 음악을 소비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어마어마하다. 세계에서 록씬 규모가 제일 큰 국가는 미국, 영국 다음에 일본이다. 경제적 규모로만 보면 영국과 거의 같다고 한다. 이건 굳이 록 음악 뿐 아니라 음악 시장 전반 규모로 봐도 마찬가지다. 다만 알다시피 세계적인 파급력에 있어선 넘사벽의 차이가 있다.[27] 20대, 30대[28] 록 장르의 한 갈래가 아닌 초창기 록, 즉 로큰롤의 탄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장르이다. 록 음악의 부모격인셈[29] 60~70년대 일본, 70~80년대의 한국에서 주류 락밴드들을 일컬었던 말.[30] Anadolu rock. 터키의 록음악을 말한다. 아나톨리안 록(Anatolian rock)이라고도 한다.[31] 동독에서 만들어진 록이다. 의외로 고퀄이어서 서독에서도 인기가 있었다.[32] 和ロック. 일본 전통 음악의 음계 진행을 섞고 일본 전통 악기를 혼합해 연주하는 퓨전 록 장르이다. 서브컬처 기준으로는 凛として咲く花の如く칠색조의 테마곡 등이 유명.[33] 1960년대 초에 프랑스, 포르투갈, 스페인에서 유행한 로큰롤의 서브 장르. 특히, 어린 여자 가수들이 많았다. 장르명의 유래는 영어의 Yeah yeah.[34] 사실 메탈이 하위장르가 이상하게 많다기보단 구 리그베다 위키 락 관련 정보에 메탈 관련 정보 편중이 좀 있어서 관련 정보가 많은 것이다.[35] 아래의 다른 익스트림 메탈들이 너무나 광폭한 음악들이라 스래쉬 메탈을 익스트림 메탈에 넣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아래의 다른 익스트림 메탈의 뿌리가 스래쉬이다.[36] 사실 멜데스데스 메탈의 하위 장르로 봐야 하느냐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멜로딕 데스 메탈 참조.[37] 익스트림 메탈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그라인드코어익스트림 메탈의 범주에 넣아야 하느냐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38] 위의 두 음악과 메탈코어를 헤비메탈의 하위 장르로 분류하지 않는 이유는, 이 음악들은 여러 음악을 결합시킨 크로스오버 장르들이다. 메탈도 그 여러 음악 안에 하나로써 들어가는 것이지, 메탈의 하위 장르로 발전한 음악들은 아니다.[39] 그러나 메탈코어의경우 분명 메탈로 분류하는 사람들도 많고 멜로딕 데스 메탈과 비슷한점이 많기때문에 그라인드 코어급의 논쟁이 계속되고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284 판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