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1-11 19:36:29

2000년대

연대 구분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세기 구분
19세기 20세기 - 21세기 22세기
밀레니엄 구분
제1천년기 제2천년기 - 제3천년기 제4천년기

1. 개요2. 정치, 경제, 사회3. 문화
3.1. 출판계3.2. 문학3.3. 음악
3.3.1. 2000년대 한국 음악
3.4. 디지털 방송3.5. 드라마3.6. 패션3.7. 영화3.8. 예능3.9. 만화, 애니메이션
3.9.1. 대한민국3.9.2. 일본3.9.3. 영미권
3.10. 게임
4. 이 시대에 시작되거나 만들어진 것들5. 이 시대에 쇠퇴한 것들6. 이 시대의 상징들
6.1. 이 시대를 상징하는 것들
6.1.1. 대한민국
6.1.1.1. 정/관계6.1.1.2. 재계6.1.1.3. 문화6.1.1.4. 스포츠6.1.1.5. TV 프로그램
6.1.2. 세계 공통
6.1.2.1. 정/관계6.1.2.2. 스포츠
6.2. 유행어
6.2.1. 초반(2000 ~ 2003)6.2.2. 중반(2004 ~ 2006)6.2.3. 후반(2007 ~ 2009)
7. 2000년대생
7.1. 초반생(2000~2003년생)7.2. 중반생(2004~2006년생)7.3. 후반생(2007~2009년생)7.4. 사회적 가치관
8. 여담9. 각종 미디어에서의 2000년대10. 2000년대에 들어가는 해

1. 개요

20세기, 제2천년기의 마지막이면서 21세기, 제3천년기의 시작이고, 서기 2000년 ~ 2009년까지이다.

21세기 첫 시작은 2001년 1월 1일이다, 2000년 1월 1일이 아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달력의 첫 시작이 AD 1년 1월 1일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100년을 한 단위로 하는 세기의 시작과 끝도 1년부터 100년이다. 다만 100년 전 20세기의 시작을 놓고 독일은 정치적인 필요에 의해 새로운 세기를 알리는 행사를 1900년에 실시한 전례가 있다. 반면 영국은 독일의 20세기 시작 선포를 인정하지 않고 1901년에 따로 거행했다. 21세기와 새로운 밀레니엄 개시를 앞두고 세계시간의 표준이 되는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는 2001년새로운 세기의 시작이라는 입장을 고수하였다.[1][2] 또한 중요한 사실은 김대중 대통령1998년 2월 25일 취임사에서 우리는 3년뒤인 2001년에는 새로운 세기를 맞이한다고 언급하였다.''김대중 대통령 취임사 3분 22초부터

이 시기에 학교에(초1 ~ 고3) 다녔던 세대는 대부분 1982년생(2000년도 고3) ~ 2002년생(2009년도 초1)으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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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를 기점으로 창씨개명 피해자들이 모두 노인이 되었다.

2. 정치, 경제, 사회

밀레니엄을 맞이했다는 기대감과 함께 IT 버블 붕괴로 전세계적으로 주가가 대폭락하는 공포감도 생성되는 등 전 세계인들은 기대 반 우려 반으로 2000년을 보냈다.

하지만 그 이듬해인 2001년 9.11 테러가 터지면서 세계 질서의 중대한 변화를 예고했다. 경제적으로는 호황 기조가 유지되면서 신자유주의가 절정에 달했으나, 2008년 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세계금융위기가 발생했다.

미국 정치계에선 2000년 대선에서 앨 고어가 총 득표수로 압승해서 클린턴의 뒤를 이을 뻔했으나,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가 선거인단 수로 우세해서 역전하여 민주당 8년 집권기를 끝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전년도 대선 때 선거후유증에 시달리다가 9.11 테러 후 '테러와의 전쟁'으로 국면을 전환해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전에 집중했었다. 그러나 이라크전은 '명분 없는 전쟁'이란 오명을 들으며 제2의 베트남전이 터지지 않을까 우려되었고, 2004년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 포로학대 사건이나 2005년 관타나모 수용소 사건 같은 인권유린 사태가 터졌다.
(2000~2009)브릭스G7의 명목 GDP 흐름[3]2000년2001년2002년2003년2004년2005년2006년2007년2008년2009년
단위: 10억달러(약 1조원)
미국 전체 명목 GDP: G7 10,284 10,621 10,977 11,510 12,274 13,093 13,855 14,477 14,718 14,418
중국 전체 명목 GDP: 브릭스 1,192 1,317 1,455 1,650 1,944 2,287 2,793 3,504 4,547 5,105
일본 전체 명목 GDP: G7 4,731 4,159 3,980 4,302 4,655 4,571 4,356 4,356 4,849 5,035
독일 전체 명목 GDP: G7 1,891 1,882 2,013 2,428 2,729 2,771 2,905 3,328 3,640 3,306
프랑스 전체 명목 GDP: G7 1,372 1,383 1,505 1,851 2,126 2,207 2,327 2,666 2,937 2,700
영국 전체 명목 GDP: G7 1,496 1,485 1,623 1,877 2,221 2,324 2,486 2,858 2,709 2,217
이탈리아 전체 명목 GDP: G7 1,107 1,124 1,229 1,517 1,73 1,789 1,874 2,130 2,318 2,116
브라질 전체 명목 GDP: 브릭스 644 554 506 552 663 882 1,089 1,366 1,653 1,622
캐나다 전체 명목 GDP: G7 739 732 752 887 1,018 1,164 1,310 1,457 1,542 1,370
인도 전체 명목 GDP: 브릭스 476 493 523 618 721 834 949 1,238 1,223 1,365
러시아 전체 명목 GDP: 브릭스 259 306. 345 430 591 763 989 1,299 1,660 1,222
대한민국 전체 명목 GDP 561 533 609 680 764 898 1,011 1,122 1,002 901
같은 시기 브릭스(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라 불리는 4개 국가들이 크게 약진하며 미래의 강국으로 부상했고, 특히 2001년 이후 중국의 급격한 성장은 불과 8년만에 4배의 성장을 기록하는데, 이 때 중국의 엄청난 성장과 함께 한국에는 엄청난 중국발 초미세먼지를 동반하게 되고 2010년대 이후 해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2000년부터 유로화를 도입한 유럽연합도 이 시기에 크게 팽창했다가 2008년 말부터 시작된 금융위기에 가장 직격탄을 맞아 그 후 유로화 사태를 초래해 경제성장이 크게 위축이 되는 다음의 10년기를 맞이하게 된다. 한국은 이 시기부터 경제성장률이 조금씩 떨어지면서 신흥공업국이었던 70~80년대처럼 10년 단위로 수배씩 경제규모가 커지던 고도성장시대의 종말을 고했으며 1990년대부터 시작된 인터넷, 핸드폰 등의 IT가 본격적으로 한국인들의 생활에 차츰 자리잡기 시작했다. 핸드폰의 경우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이전 시기로서 오늘날 피쳐폰이라 불리는 형태의 폴더폰, 슬라이드폰 등이 주로 사용되었는데 2010년대와는 구별되는 아날로그의 정점 2000년대 고유의 풍경 중 하나다.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이래 2003년에는 노무현 정부가 출범함으로서, 2008년 2월 말 까지 민주당계 정당(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이 10년 간 여당으로 집권했다. 또한 2003년 2월 김대중 대통령이 퇴임하고 2004년에는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총재가 정계를 은퇴함으로서, 한국 정치를 풍미했던 삼김시대가 막을 내렸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민주당계 정당이 10년간(1998년 ~ 2008년) 집권했던 시기로서 특히 노무현 정부 시기(2003 ~ 2008)에는 1980년대 운동권 출신 386세대들이 17대 총선을 계기로 제도권 중앙정계에 대거 진출하였고 이들은 국가보안법 폐지,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재산 환수, 과거사정리위원회 활동, 북한과의 화해, 협력 등 1980년대에 형성된 자신들의 이념을 2000년대의 현실 정치 속에서 실현하기 위해 시도하였으나 국가보안법 폐지 등은 현실 정치의 벽에 막혀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한편 2004년 17대 총선에서 진보정당민주노동당이 10석을 얻어 최초의 원내 진출을 이루어내는 등 이전까지 강력한 사회적 반공 분위기 속에 기를 펴지 못 했던 진보세력이 제도권 정치로 진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및 386세대 정치인들은 부동산 정책 실패, 양극화의 심화 등으로 경제 문제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2007년 12월 17대 대선에서 이명박이 500만표가 넘는 표차로 승리하면서 2000년대 후반의 정치 지형은 보수 강세로 다시 변하게 된다. 보수 강세 외에 2000년대 후반의 중요한 정치적 흐름이 한 가지 더 있는데 바로 정치 불신이다. 17대 대선에서 총 투표율은 63%에 그쳤으며 특히 20대의 투표율은 40%대에 그쳤다. 2000년대 초반의 남북정상회담, 반미 열풍과 노무현 열풍 등 새로운 시대를 열망했던 한국사회의 열정은 오래 지나지 않아 2000년대 후반 경제대통령이라는 현실을 내세운 이명박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와 냉소적인 정치불신으로 차갑게 식고 만다. 다만 이명박 정권 초기(2008년 ~ 2009년)은(는) 노무현 대통령이 2008년 퇴임직후 생존했던 시기라 이명박 정부노무현 대통령 그늘속에 있어 현직대통령 이명박보다 퇴임한 전직 노무현대통령의 인기가 더 많았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는 평범한 수준에 그쳤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사망한 이후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정권개입이 시작해 언론장악등 여러가지로 영향력이 시작된다. 미국의 2001년 빌 클린턴 체제의 그늘속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지못한 조지 W. 부시 미국대통령이 9.11테러 직후 영향력이 생기기 시작한 것과 동일.

2000년 6월 15일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졌으며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등의 남북교류가 제한적으로나마 이루어진 시대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북한에 대한 인식이 동족, 통일의 대상 등으로 좋은 편이었다. 이미 1999년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 때 미군의 학살 정황이 폭로된 걸 비롯해 2000년 매향리 미군 공군사격장 사태와 2002년 미군 여중생 압사 사건 등으로 반미감정이 더해지기도 했다. 이는 1990년대 탈냉전 시대 이래 반공을 과거 독재정권의 낡은 이념으로 여기게 되었기 때문에 그 반대급부로 북한과의 화해를 역사적 과제로 여겼던 영향이 컸다고 볼 수 있겠다. 공동경비구역 JSA, 웰컴 투 동막골과 같이 문화예술계에도 이와 같은 사회분위기가 반영되었다. 그러나 2006년 1차 핵실험 등으로 서서히 북한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기 시작해 결정적으로 2010년 연평도 포격 사건을 겪으면서 한국사회의 북한에 대한 인식은 극도의 증오와 불신이라는 정반대의 분위기로 변하는가 하면, 극우 세력들은 전쟁까지 하자고 선동했다.

경제적으로는 IMF 사태 이후로 취업난, 비정규직, 공무원 열풍 등 2010년대까지 이어지는 문제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2010년대 현재 상상하기 힘든 웰빙 열풍이 나타나는 등 체감경기는 2010년대보다는 상대적으로 나았다는 평가가 있으나, 단순히 단어 하나로 시대상을 평가하기에는 무리다. 경제 문제는 정권 이양을 야기시킨 주요 요인이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적 경제 질서의 도입으로 인해 IMF 사태 이전에 비해 빈익빈 부익부, 양극화 문제가 심화되어 OECD 1위 수준의 높은 자살률 문제 등이 때부터 시작되었다. 2000년대의 정치인 김근태는 이를 두고 ''패자부활전 없는 사회를 만들었다"고 한탄하기도 하였다.

2002년 인도네시아 치하였던 동티모르가 21세기 최초로 정식 독립을 했다. 다음으로 2006년에 독립한 몬테네그로, 그리고 2년 후 독립한 코소보가 있으나 코소보는 미승인 국가이다. 이라크도 2003년 미군에 의해 후세인 독재정권이 무너져 민주화의 길이 마련되었으나,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권력다툼, 미군에 대한 공격 등으로 혼란기에 접어들었다.

3. 문화

한국은 1990년대 막판 IMF 외환위기의 아픔을 뒤로하고 대중문화의 황금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전 분야의 걸쳐 발전을 이뤄냈으며 지금도 화자되는 살인의 추억,올드보이등의 명작들이 탄생했으며 게임계는 넥슨, 엔씨, 넷마블 ,한게임 등, 음악계는 JYP, YG, SM엔터테인먼트 같은 대형 대중문화 기업들도 생겨났다.[4] 출판만화는 정부의 철퇴와 스캔본 등의 문제로 몰락했지만, 대신 그 인력들이 아동서적으로 흘러들어가 WHY시리즈, 그리스 로마신화같은 걸출한 결과물이 나오기도 했다. 또한 2010년대 초반에는 웹툰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등 여러 분야에서 진일보가 있었다. 덕분에 이시기 1990년대생 ~ 2000년대 초반생들은 세계 유소년처럼 풍부한 문화생활을 즐기며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한국 현실에 따라 성인이 된 뒤에는 청년 실업으로 고통받게 된다.

3.1. 출판계

2000년 들어 가장 크게 불거진 문제는 바로 '도서정가제 문제'였다. 문화관광부가 9월 도서정가제 의무화를 담은 '출판 및 인쇄진흥법안'을 입법 예고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해당 제도의 핵심 문제는 '온라인 서점의 할인을 인정할 것인가, 막을 것인가'란 문제였는데, 논란 끝에 10%까지 허용하는 걸로 결론이 나 2002년 초부터 실시됐다. 당년 초부터 관심사로 떠오르기 시작한 e북이 7월부터 첫 선을 보였다. 예스24는 첫 e북 상품으로 이순원 소설작품 <모델>을 내놨고, 9월에 구효서의 <정벌>, 백민석의 <러셔>가 각각 이어서 나왔다. 이에 골드북닷컴은 이인화 소설 <려인>을, 에버북닷컴은 이문열의 소설 <하늘길>을 각각 e북으로 내놨다. 동년도 최대 베스트셀러는 1~3위를 석권한 <해리포터> 시리즈였으며,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시리즈, <가시고기>,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 <국화꽃 향기>도 뒤이어 50만 부 이상을 기록해 베스트셀러 지위를 굳혔다.

2002년 출판계 화제는 바로 MBC <느낌표> 코너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란 코너였는데, 해당 프로에 소개된 <괭이부리말 아이들>, <봉순이 언니>,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등 대다수가 밀리언셀러 지위를 얻었고, 타 도서들도 수십만 권씩 팔려 'TV 매체의 위력'을 선보였다. 느낌표 선정도서들이 상위권을 차지하자 출판계에선 이 프로그램을 두고 찬반논쟁이 치열했으나, 국민적 도서 열풍을 조성하는 데 공헌했다. 그 외에도 KBS1 <TV, 책을 말하다>, MBC <행복한 책읽기> 둥 책 소개 방송 프로그램의 확대, 일간신문의 북 섹션 안정화, 시민단체들의 독서운동 확대 등에 힘입어 출판시장이 오랜만에 활성화됐으나, 그 이면엔 출판사 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됐다. 게다가 같은 해 종로서적이 부도를 내 충격을 안겨 주었다.

2003년 들어서도 출판계는 여전히 불황에 시달렸다. 경기침체와 맞물리면서 출판시장 위축이 뚜렷이 드러나 전년도에 비해 5.1%로 줄었고, 분야별로는 아동 및 총류가 큰 감소세를 보였다. 거기에 논란이 됐던 도서정가제가 2월 27일부터 시행됐으나 마일리지 등 변형된 할인제가 성행했다. 당시 인기도서로는 '10억 만들기'나 '부자되기', '청년 창업' 등 재테크 관련 도서가 강세를 보였으며, 인터넷 소설 및 카툰 에세이 역시 인기를 끌어 귀여니의 <그놈은 멋있었다>나 <파페포포 메모리즈> 같은 게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2004년 들어서 출판계에서 두드러진 걸로는 독자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는 추리소설이 인기를 끌었다는 점이다.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더한 '팩션' 류가 인기도서 목록 윗자리를 차지했는데, 이들 중 <다빈치코드>가 단연 돋보였으며 <천사와 악마>, <단테클럽>, <진주귀고리 수녀>, <4의 규칙> 등도 서점가를 휩쓸었다. 심지어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열풍에 힘입어 김훈 소설 <칼의 노래>나 <이순신의 두 얼굴> 같은 소설들이 연속으로 나와 서점가에도 때 아닌 '이순신 열풍'이 불었다. 그 외에 땅 투자와 관련된 실용서들이 인기를 끌었고, 중국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중국 관련 책들도 나왔다. 2003년 11월에 나온 학습만화 <마법천자문>이 2백만 부나 팔려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인기를 이어 주었다.

2005년에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행사를 치르느라 바빴는데, 출판계 내부적으론 불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됐다. 대형서점의 등장과 온라인 서점의 할인경쟁으로 동네 중소 서점들이 고사 위기에 처했으며 출판사들도 대형 출판사들이 높은 가격을 제시해 해외 저작물들을 독점하다시피 하여 양극화가 가속화됐다. 이 시기 처세/취미/실용도서나 경제/경영서가 인기를 끈 반면, 인문/사회과학은 위축됐다. 이들 중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가 100만 부 이상 출고되면서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블루오션 전략>이 사회 전반에 신드롬을 일으키자 베스트를 기록했다.

2006년 들어서 유명인을 내세운 대리번역 논쟁이 안팤의 관심을 끌었다. 이밖에 인문학 교수들의 인문학 위기 선언에 이은 출판사 대표들의 인문서적 위기 선언, 동화서적 폐업 중단, 그린비의 공개 리콜 실시 등도 주요 관심사로 떠올랐다. 당시 출간도서 중엔 <행복>, <행복한 이기주의자> 등 '행복'을 주제로 한 책들이 많이 나와 인기를 끌었고, 성공 우화의 경제학, 20대 여성의 자기계발서/자녀교육서, 논술서, 글쓰기 방법을 제시한 책이 주목받았다.

2007년 출판계는 제도적 차원에서 큰 변화를 맞이했다.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과 도서정가제 유지 등으로 관련법이 개정되었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시대적 경향에 따라 경제경영서가 강세를 보이는 중에도 더 폭이 넓어졌다. 예컨대 스티븐 핑커의 <마음은 어떻게 움직이는가>라던가 토마스 윌리스의 <영혼의 해부> 등 뇌와 마음에서 일어나는 작용에 관심을 갖는 책들이 주목받았고, 마이클 더다의 <오픈 북>, 니콜 하워드의 <책, 문명과 지식의 진화사> 등 책 자체에 화두를 던진 책도 마찬가지였다. 그 외에 고령화사회를 대비한 노년 대비 지침서, 시니어 마케팅을 다룬 책, 불신의 시대에 자꾸 의심해보라는 메세지를 던져보라는 회의주의적 시각을 강조한 책, 자기계발서 <시크릿>처럼 행복을 넘어 현명성을 추구하는 책 등이 인기를 끌었다.

2008년 상반기 들어 촛불시위로 광우병이 이슈화되면서 관련 서적들의 매상이 올라갔고, 세계금융위기의 여파로 수많은 출판사들이 구조조정을 하거나 문을 닫았으며 인터넷서점 매출도 30~40%에서 10%로 하락했다. 게다가 국방부 불온도서 선정으로 표현의 자유 문제도 크게 제기되었다. 서적들 중 자기계발서와 재테크 책 매출이 하락한 대신 경제위기 관련 서적 매출이 올라갔다.

2009년 들어서 김대중, 노무현, 김수환 등 유명인들의 사망으로 서점가에까지 추모 분위기가 퍼져 <바보가 바보들에게>, <동행>, <후불제 민주주의> 등이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빅뱅의 <세상에 너를 소리쳐>나 구혜선의 <탱고> 등 연예인들이 쓴 에세이가 인기를 끌기도 했다. 아동도서는 일제고사와 신종플루 등으로 매상이 줄어들었으나 예림당 학습만화 <Why?> 시리즈가 2천만 부를 돌파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심지어 서구권에서 유행한 전자책 상용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져 삼성전자나 아이리버 등이 전자책 단말기를 출시했고, 교보문고 같은 인터넷 서점들도 전자책 서비스를 위한 부서를 만들기도 했다. 또 대형서점들과 출판사들이 합작해 '한국이퍼브'를 세우기도 했다.

3.2. 문학

2000년 들어서도 한국 문학은 IMF의 그늘에서 못 벗어났고, 인터넷의 확산과 더불어 문자매체의 위기감을 실감케 했다. 출판시장에서 문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5%도 안 될 정도로 문학의 비중은 양적으로도 두드러졌다. 이 와중에도 이문열의 <아가>, 최인호의 <상도>, 김원일의 <가족>, 이문구의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 등 중견작가들의 건재함이 돋보여졌고, 특히 조선 후기 거상 임상옥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상도>는 출간 석달 만에 50만 부를 팔아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반면 순수문학 쪽은 침체를 면치 못했다. 이문열이나 신경숙, 황석영 책이 10만 권을 넘었을 뿐 다른 작가들은 1만 권을 넘기 힘들었다. 대신 <해리포터> 시리즈나 <가시고기>, <국화꽃 향기> 등 대중소설들이 인기를 구가했다. 이 시기 '문학권력 논쟁'도 이슈가 되었는데, 근원은 일부 문학동인과 출판사에 의한 파벌주의에 대한 비판이었다. 특히 <조선일보>가 주최한 '동인문학상' 논쟁은 문학권력 논쟁을 더욱 가열시키는 역할을 했으며, 황석영 작가가 그의 작품 <오래된 정원> 후보 등재를 거부해 파문이 확산됐다. 다만 이문구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이 이 상을 받으면서 논란은 정점에 달했다. 한편 신예 평론가 이명원은 김윤식 서울대 교수가 쓴 평론문이 일본의 가라타니 고진 평론문과 유사하다고 비판을 제기해 표절 문제가 불거졌다. 이러한 문제는 한국 대학사회에 고착된 가부장적 도제 시스템에 대한 비판까지 확장됐다.

2001년 들어 황석영이나 김원일 등 중견 작가들이 원숙미로 건재를 과시했는데, <손님>이나 <슬픈 시간의 기억>이 그 예였다. 30대 작가 김연수와 김운하도 치밀한 고증력과 형식파괴 실험으로 <굳빠이 이상>이나 <137개의 미로 카드>를 각각 내 주목을 받았고, 오수연 연작 장편 <부엌>도 한국일보 문학상을 받아 주목을 받았다. 시에선 대산문학상을 받은 이성부(지리산), 동서문학상의 허수경(내 영혼은 너무 오래 되었으니),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수상자 나희덕(어두워진다는 것), 김수영문학상의 이정록(제비꽃 여인숙) 등이 호평받았다.

문학권력 논쟁은 전년도에 이어 더욱 가열되어 문학평론가 권성우의 <창작과비평>에 대한 상업주의 비판, 그리고 <문학동네> 편집위원 남진우 시인의 권성우 비판으로 격렬히 진행됐다. 이명원은 권성우와 함께 <사회비평> 가을호에 <창작과비평>에 대해 진보 권위주의, 진보 상업주의, 기회주의에 매몰되어 혁신을 촉구하며 정면적으로 비판했다.

인터넷과 디지털 영상 등 대중매체 확산으로 문학에도 대중화가 가속도를 더해 류시화의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같은 감성적인 소녀풍의 시들이 인기를 얻으며 정통 시집들을 밀어냈다. 다만 김춘수나 고은, 신경림, 마종기, 도종환, 김지하, 강은교 등 중견 및 원로 시인들이 여전히 창작을 계속했는데, 특히 신경림은 시집 <뿔>을, 고은은 전집 38권을 각각 냈으며 김지하도 <화개>로 만해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대산문학상을 잇따라 수상해 뒤늦게나마 문단으로부터 대우받았다. <화개>는 미발표작 100여 편 모음집으로 "이념이나 사상보단 병고를 거친 반독재 투쟁가의 외로운 내면을 서정적으로 드러냈다"는 평을 받았다.

소설계에선 1990년대를 주도했던 여성작가들이 위축된 반면, 중진작가들의 활동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졌다. 김주영은 <홍어>에 이어 <멸치>를 내놓아 김동리문학상을 받았고, 한승원 작가도 고향 전남 장흥 해안가를 소재로 한 <물보라>를 내놓았으며, 딸 한강과 함께 어른을 위한 동화 <우주 색칠하기>와 <물보라>를 각각 내놓아 주목을 받았다. 박상륭 작가도 캐나다 이민생활을 접고 귀국해 <잠의 열매를 매단 나무는 뿌리로 꿈을 꾼다>로 특유의 형이상학적 세계를 선보였다.

3.3. 음악



음악적으로는 2000년대 에 잠시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포스트록의 열풍이 불었으나, 90년대의 그런지브릿팝등의 영향력에는 미치지 못했으며,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그야말로 하나의 정형화된 음악적인 흐름이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 이는 다시 말하면 다른 어느 때보다도 다양한 음악들이 나타나는 시기였다고 할 수도 있다. 이 무렵부터 인디 음악이 인터넷과 기술의 발전으로 크게 성장하기 시작하여 아케이드 파이어애니멀 콜렉티브 같은 거대 그룹들도 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 가장 흥행한 뮤지션들은 오히려 90년대에 음악적 기반을 둔 콜드플레이 같은 포스트 브릿팝 그룹들이었다.

2000년대에는 이모셔널을 섞은 뉴메탈포스트 그런지의 전성기였다. 락 씬 전체적으로, 멜로디컬하거나 리드미컬하면서 '리릭'에 방점을 많이 둔 대중적 뉴메탈포스트 그런지 록 음악들이 인기를 끌던 시절이었다. 당시의 락 차트들과 락 판매량들과 락 콘서트들과 락 페스티벌들은 주로 린킨파크, 푸 파이터스같은 밴드들이 휩쓸었던 시절이다.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최고의 아이돌로서 2000년대 초반을 휩쓸었다. 그녀의 라이벌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역시도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아메리칸 아이돌 초대 우승자인 켈리 클락슨은 2000년대 중반을 완전히 휩쓸며 메가히트곡들을 배출해냈다. 또한 혜성처럼 나타난 에이브릴 라빈은 독보적인 컨셉으로 2000년대 초중반 신드롬을 일으켰고 이미지 변신 후에도 큰 인기를 얻으며 2000년대를 지배했다.

다만 이 무렵부터 대중음악의 주류는 락을 중심으로 한 백인음악에서 흑인음악으로 완전히 넘어가게 되었다. 솔로데뷔를 한 비욘세는 말그대로 '아이콘'이 되었으며 2000년대 초반 암흑기를 겪었던 머라이어 캐리는 힙합과 R&B를 적극적으로 결합시켜 다시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1990년대에 황금기를 맞이한 힙합은 여전히 메인스트림에 건재했으며 빌보드를 지배했다. 이 시기에 성공한 대표적인 아티스트로는 Jay-Z, 칸예 웨스트, 에미넴, 아웃캐스트 등이 있다. 또한 장르에 있어서도 00년대 후반에 들어서 기존의 올드 스쿨, 붐뱁 장르가 아닌 사우스 힙합을 기반으로 한 트랩뮤직이 등장하기 시작한 시대이다. R&B 장르의 성장 역시 두드러져 에이미 와인하우스와 같이 소울에 기반을 둔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이 성공을 거두기 시작하였다.

또한 산타나, 리키 마틴, 엔리케 이글레시아스, 마크 앤소니, 샤키라 등의 라틴팝이 메인스트림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한 시기도 2000년대 였다. 이후 라틴팝은 그 자체보다는 댄스음악이나 힙합에 적지않은 영향을 주기도 했다.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로 시작된 옛 것을 가져다가 현대식으로 조합하는 복고 열풍은 현재까지도 장르를 가리지 않고 위세를 떨치고 있다.

인터넷 문화와 컴퓨터 음악의 발달에 힘입어 인디와 메이저의 경계가 점차 희미해지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 무렵부터는 방구석 인디 밴드라고 해도 자신들의 음악을 당시 흥했던 마이스페이스 등의 인터넷 매체를 통해 올리는 것으로 자신들을 알릴 수 있게 되었고, 이를 통해 인기를 얻는 경우도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사례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것은 정말 엄청난 데뷔 시절 인기를 보여준 악틱 몽키즈. 또한 DAW나 신디사이저의 발전 등으로 개인이 음악을 쉽게 만들 수 있게 됨에 따라 여러 개성있는 소규모 그룹 혹은 원맨 밴드 등이 인디에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인디 신의 성장을 바탕으로 피치포크 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다만 인터넷이 발달함에 따라 1990년대에 정점을 찍었던 피지컬 앨범시장이 급격히 축소되기 시작한다. 1990년대엔 자주 나오던 3천만장 돌파앨범도 단 1개밖에 없었다. 2000년대 후반엔 본격적으로 디지털 시장이 발달하기 시작하고 유튜브도 성장하기 시작하면서 2010년대 초반의 디지털 시장 황금기의 기반이 다져진 시기이기도 하다.[5]

일본 대중음악(J팝)은 에이벡스 계열의 위세가 잠시 주춤한 사이, 2000년대 중반까지 J-힙합, J-레게 등의 음악이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대표적으로 GReeeeN, FUNKY MONKEY BABYS, 케츠메이시 등의 아티스트들이 대중성을 바탕으로 장르의 지평을 넓혔다. 그러나 2000년대 에는 음반 시장의 쇠퇴, 그리고 새로운 아티스트의 부재로 인해 J팝 전반이 침체기를 맞았다.

3.3.1. 2000년대 한국 음악


대한민국에서는 2002년을 끝으로[6] 1세대 아이돌들이 물러가게 되었고 한동안 공백상태이던 가요계를 브라운 아이즈를 시작으로 SG 워너비, 플라이 투 더 스카이, 테이, 씨야 등의 미디엄 템포 발라드[7], 버즈를 위시로 한 비주얼계 락발라드 장르들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1세대 아이돌 그룹들은 해체 또는 침체기를 맞았지만 2000년대 초반은 여자 솔로 가수들의 전성기였으며 장나라, BoA, 이효리, 이수영 등이 전성기를 맞이한 시기였다. 그나마 남자 솔로 가수는 와 남자 아이돌들은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SS501 등이 데뷔하면서 큰 인기를 얻고 명맥을 이어갔지만 이 시기에 걸그룹 시장은 말 그대로 초토화였다. 그나마 남아있었던 게 쥬얼리 정도이며 아이돌 공장이라 불리우는 SM 엔터테인먼트마저 걸그룹 히트에 연달아 실패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 열풍도 그렇게 오래가지는 않았다. 2017년 히든싱어, 슈가맨 등의 프로그램으로 '그때 그 시절이 좋았다..' 같은 추억보정을 얻고 있지만 소몰이창법 항목을 들어가보면 알 수 있듯이 그 당시 가요계는 식상하다, 감정을 낭비한다 등의 지탄을 받고 있었고 매 곡마다 짜는 듯한 목소리로 대중들의 귀도 지쳐있던 상황이었다. 또한 2000년대 초반 이후, 음반 시장은 몰락한 가운데 아직까지 음원 시장이 제대로 커지지 않았기에 여러모로 시장성에 있어서도 크게 위축되었던 암흑기였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고 있던 2007년, 상반기엔 아이비의 유혹의 소나타가 포문을 열었고, 이어서 나온 원더걸스Tell Me가 엄청난 반응과 폭발적인 히트를 기록하며 제2세대 아이돌 시대를 열게 되며 이후 빅뱅, 원더걸스, 소녀시대, 카라 등의 2세대 아이돌들이 미디엄 템포 발라드, 락발라드 가수들을 대체하면서 본격적인 2차 아이돌 전성시대가 2000년대 후반경인 2009년부터 시작되었다.

특히 2007년 ~ 2008년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가요계의 색채가 다양했던 시기인데 바로 소몰이 창법과 발라드의 마지막 전성기와 2세대 아이돌의 시작점이 교차하던 과도기여서 음악장르가 다양했었다. 이 시기에는 아이돌 음악과 발라드가 1위를 양분했지만 소녀시대 Gee 열풍 이후인 2009년부터 아이돌 후크송의 전성기가 시작되면서 발라드가 아이돌에게 완전히 자리를 내어주고 쇠퇴하기 시작하면서 현재의 가요계 구도가 자리잡혔다.

인디 음악의 경우는 그야말로 흥망성쇠를 거듭한 시기로, 한창 성장하고 있던 시기에 카우치 사건으로 한번 큰 타격을 입었으며, 이후 2000년대 후반 들어 장기하와 얼굴들 등 2세대 그룹들이 등장하면서 점차 인디 신 자체를 부활시키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의 한국 음반시장은 카세트 테이프CD음반이 공존하고 있었지만 소리바다프루나, 당나귀로 대표되는 불법 P2P 프로그램이 성황을 이루던 2000년대 의 타격과 연이은 아이리버, 코원, YEPP, iPodMP3 플레이어의 공격으로, 2000년대 이 되면 카세트 테이프는 물론 CD로 음악 듣는 시대는 사실상 끝이 난다. 물론 2020년대를 향해가는 지금도 CD 판매고를 차트 산정의 주요 척도로써 인정하고는 있지만, 1990년대의 판매량에 비하면 무시해도 될 수준인 경우가 많고, 몇몇 아이돌 그룹이 기록하는 음반 판매량은 음악을 듣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해당 그룹의 차트 순위를 높이기 위한 팬들의 화력지원일 뿐, 실질적으로 CD로 음악을 듣는 팬들은 몇몇 마니아들을 제외하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사실 팬들 입장에서는 음원 판매량도 음반 판매량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겨지는 까닭에, 어차피 CD를 샀더라도 음원을 구입하게 되므로 굳이 귀한 CD를 개봉하여 상품성을 낮추느니 음원으로 듣는 게 훨씬 속 편하기도 하기 때문. 따라서 음반 제작사에서는 음반을 구매한 경우에만 얻을 수 있는 각종 특전(예를 들어 화보사진 카드나 보너스 트랙 같은)을 부여하기 시작했는데 이것도 200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현상이다.

3.4. 디지털 방송


임창정 - 소주 한 잔 SBS 인기가요 라이브 (2003.06.08)





버즈 - 가시 MBC 음악캠프 라이브 (2005.05.28)버즈 - 겁쟁이 KBS 뮤직뱅크 라이브 (2005.03.11)[8]


스카이라이프 CF - 전인권 편(2003)

2002년 한국에서 스카이라이프지상파 방송사들이 시험방송을 끝내고 본격적인 디지털방송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하지만 방송방식을 DVB VS ATSC 논쟁때문에 시청자의 HDTV 전환시기를 놓치게 했으며 사람과셈틀을 공중분해되게 만들었다. 스카이라이프는 2002년 3월 1일에 정식으로 출범하였다. UHD에서도 답습되고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HDTV의 활성화가 되지 않아(2002년 HDTV 보급률은 2%에 불과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할 수 있다.

TV방송장비 분야에서도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아날로그 테이프가 취재용으로 간혹 쓰였었는데 2005년경에는 완전히 디지털화되었다. 그리고 라디오 방송의 경우도 2004년 전후로 아날로그 오픈릴 테이프에서 디지털 테이프리스 시스템으로 물갈이되었다.

일본에서도 2000년에 BS디지털이라고 위성방성을 이용한 디지털방송이 시험방송되었다. 이때부터 인텔 펜티엄4 시리즈[9]와 nVIDIA Geforce FX또는 ATi Radeon 9500의 보급으로 HD영상[10]컴퓨터로 볼수 있었고 HD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16:9모니터와 디지털방식의 TV[11]도 같이 보급이 이루어 졌다.

HD로 인한 와이드 스크린 열풍때문에 16:10모니터도 나왔을 정도이며 부작용도 생겼는데 배우의 얼굴에 잡티까지 나와서 HD방송을 위한 화장법(?)도 생겨났다. 케이블 방송도 2005년에 CJ헬로비전을 시작으로 2000년대 후반 들어 모든 사업자가 디지털 채널의 운용을 개시하였다. 2006년에 다채널방송(MMS)[12]을 시험방송하면서 위 영상의 화질은 물건너 갔다 카더라. 휴대전화에서도 2005년도에 DMB라는 규격이 개발되어[13] 언제 어디서든지 TV를 볼수있다.

3.5.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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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의 한류열풍을 이끈 겨울연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명작 드라마들이 많았던 시대이기도 했다. 대표작으로는 겨울연가, 올인, 천국의 계단, 파리의 연인, 미안하다, 사랑한다, 내 이름은 김삼순, 쾌걸춘향, 베토벤 바이러스, 아이리스 등이 있다. 겨울연가, 대장금 등은 해외로까지 수출되어 한류 열풍을 이끌기도 하였다.

케이블 방송 드라마 같은 경우 이때까지만 해도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고 대부분의 인기 드라마는 지상파 드라마였다. 아직 인터넷 다시보기 서비스 등이 활성화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시청률이 30-50%에 달하는 드라마들이 여럿 나올 수 있었다.

이 때 드라마들의 특징으로는 첫째, 명대사가 많았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대표적으로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천국의 계단)" "밥 먹을래! 나랑 같이 죽을래!(미안하다, 사랑한다)," "이 안에 너 있다(파리의 연인)" "애기야(파리의 연인)" 등이 있다.

다음으로는 특히 초중반의 멜로 드라마를 중심으로 주인공들이 평범하기보다는 특별하고 극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설정되었다는 것이다. 출생의 비밀, 환생, 기억상실, 죽음, 재벌 등 주인공들은 평범하기보다는 매우 다사다난한 인생을 사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작품이 많다.[14] 이러한 극적인 스토리 전개는 등장인물들의 개성을 부각시키며 드라마에 극적인 긴장감 및 감동을 더해주는 요소로 작용했다.

마지막으로 대부분의 드라마에 OST가 삽입되기 시작하였으며 또한 명곡이 많았다는 특징이 있다. 천국의 계단보고싶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눈의 꽃, 쾌걸 춘향응급실[15], 베토벤 바이러스의 들리나요.. 등이 유명하다.

결론적으로 2000년대의 명작 드라마들은 주인공들이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면서 명대사를 통해 감정을 풍부하고도 애절하게 표현하는 모습이 시청자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한편 큰 감동을 주었기 때문에 인기를 끌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OST까지 명곡이 많았기 때문에 작품에 완성도를 더해주었다. 이후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드라마는 2000년대와 같은 무거운 정통멜로보다는 잔잔한 일상을 다루거나 로맨틱 코미디와 같은 장르가 유행하면서 변화를 겪게 된다.

또한 시트콤의 전성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00년대 초중반에는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순풍 산부인과의 뒤를 이었고 논스톱 시리즈가 젊은 세대 사이에서 좋은 인기를 얻었고, 00년대 중후반은 하이킥 시리즈가 공전의 히트를 쳤다. 논스톱은 당시 대학생활을 배경으로 하여, 10대에게 쓰잘데기 없는(...) 대학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었다.다들 대학가면 조인성, 현빈, 한예슬 같은 사람 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이후 레인보우 로망스에도 청춘 시트콤에 대한 영향을 주었으나, 이는 흥하지 못했고, 그 이후 나온 거침없이 하이킥은 말 그대로 초대박. 가족 시트콤이지만 러브라인도 갖춰져 있고, 내용들도 한편한편 손에 꼽을 정도로 재미있어서 지금까지 회자되는 레전드 시트콤이다. 지붕뚫고 하이킥은 전작보다는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그래도 매우 흥했다.결말이 이상해서 그렇지

3.6. 패션

2000년대는 남녀 불문하고 샤기컷울프컷이 유행이었다. 당시 동방신기, 이준기, 민경훈 등 젊은 스타들의 머리들도 전부 이 머리였다. 소위 말하는 여자 일진들은 앞머리를 눈썹이 보일 정도로 짧게 자른 후, 샤기컷을 한 다음 볼륨을 한껏 넣는 것이 유행이었다.

패션 스타일은 얼짱출신인 반윤희가 유행시킨 스포츠 브랜드 티셔츠+카고바지 스타일링이 유행이었다. 스키니진은 2009년 ~ 2010년 즈음 되어서야 유행이 되었고, 그 전에는 전부 통이 넓은 바지를 입고 다녔다. 가수들의 패션들도 유행이었는데, 2006년 ~ 2009년 초반에는 힙합 패션, 2009년 봄 ~ 2010년 사이 이후 부터는 소녀시대 gee 열풍으로 인한 컬러 스키니진 패션이 유행이었다.[16]

화장법은 2009년 브라운 아이드 걸스가인이 유행시킨 진한 스모키 화장이 열풍이었다.

국내에서 '일본 스타일'이 유행했던 유일한 시절이기도 하다. 심지어 국내 연예인들도 일본 유명 연예인의 스타일을 따라하거나 참고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본 구제 패션, 일본 액세사리, 일본 화장품등이 옷가게와 온라인에서 특수를 누렸던 시기. 그러나 2010년을 기점으로 한류의 부흥과 함께 한국이 아시아 트렌드를 선도하게 됨에 따라 일본 패션은 이제 오히려 촌스럽고 구시대적인 이미지로 인식되고 있다.

3.7. 영화

2000년대 한국 문화의 핵심. 쉬리의 성공으로 90년대에 가능성을 보여준 영화계는 친구의 800만 관객, 실미도태극기 휘날리며를 시작으로 천만영화들을 배출하기 시작했으며, 올드보이가 해외에서도 비평적으로 대박을 터뜨리며 질적인 성장과 양적인 성장을 모두 해냈다.

이 시기를 대표한 영화배우 송강호, 최민식등은 국민 배우 반열에 오르며 인기를 누렸다. 강제규, 곽경택등의 1세대 감독에서 봉준호, 나홍진, 박찬욱등 2세대 감독들로의 세대교체도 진행되는등 인재풀도 상당했다.

80~90년대 최고 부흥기를 누렸던 홍콩 영화가 빠르게 몰락했던 이유는 영웅본색이후의 양산형들로 인해 영화들 자체가 식상해진데다 1997년 홍콩 반환 때문에 홍콩 영화계 전체가 혼란스러워진 탓인데, 반면 90년대 말까지도 질적으로 암담했던[17] 한국 영화계는 쉬리 이후부터 이 시기에 대폭 성장하여 스릴러, 액션, 로맨스, 사극 등 장르의 다양성을 겸비하여 현재까지도 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2009년 12월에는 외국영화 최초로 아바타가 천만관객을 동원기도 했다.

다만 이 시기에도 성소재클레멘타인과 같은 먹튀작들도 상당했다. 또 친구의 흥행으로 인한 부작용으로 한동안 조폭 소재의 저질 코메디, 싸구려 신파 영화가 엄청나게 범람하기도 했다.

3.8. 예능

00년도 초반에는 짝짓기 예능이 단연 흥했다. 강호동의 천생연분, 연애편지, X맨을 찾아라 등등 커플이 되어 게임을 하는 스튜디오 예능들이 평정했다. 이로 인해서 생겨난 폐해들도 많은데, 당시는 팬덤 문화가 지금처럼 성숙하지 않아서, 짝짓기 예능에 우리 오빠(...)와 커플이 되는 것을 보지 못하던 일부 빠순이들이 상대 여성을 테러하는 일도 빈번했다. 대표적인 피해자로는 강은비. 당시 X맨에서 시아준수믹키유천의 호감을 받았단 이유로 미니홈피는 고사하고 인터넷에 강은비의 루머를 퍼뜨리며 온갖 테러를 단행했다. 심지어 본인들의 오빠들이 먼저 좋다고 한 건데도 먼저 꼬리를 쳤다며 없는 말까지 지어냈다(...).[18] 이로 인해 강은비는 연예계에 발도 디디지 못하고,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걸려서 자살생각까지 했다고 했을 정도이니, 그 당시의 무개념 빠순이들의 만행을 짐작할 수 있다. 짝짓기 예능뿐만 아니라 쟁반노래방, 야심만만 등 토크쇼 예능들도 화수분처럼 쏟아져 나왔다.

00년대 초중반 당시는 스튜디오 예능이 대세였던지라, 야외에서 하는 예능들은 정말 손에 꼽았을 정도인데, 이 예능의 판도를 바꾼 것이 무한도전이다. 리얼 버라이어티를 표방하는 취지로 스튜디오보다는 직접 야외로 나가 몸을 쓰는 모습들로 많은 사랑을 받자 이후 예능들도 우후죽순처럼 야외 예능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 후 1박 2일 이라는 리얼 야생 버라이어티가 생겨나면서, 스튜디오 예능에서보다 친근한 모습의 연예인들을 보여주며, 60대 이상의 노년층에게까지 어필했다. 당시 무한도전이 10~30대의 젊은 세대의 지지층이 두터웠다면, 1박 2일은 연령을 불문하고 사랑을 받았다. 그렇지 않아도 유재석vs강호동의 국민 MC 대립구도가 팽팽했는데 타 방송사의 인기 프로그램들을 각자가 진행하면서 라이벌 기믹이 생겼고, 실제로 당시 커뮤니티에서는 무한도전 빠들과 1박 2일의 빠들의 의미없는 경쟁이 판을 쳤다.[19] 두 개의 예능프로그램이 흥하면서, 개나소나 리얼버라이어티를 들고 나왔지만 대부분 도태되었다. 그 덕분에 스튜디오 예능은 손에 꼽다시피하고, 토크쇼 형식의 예능은 멸종 위기에 처해있다(...).

3.9. 만화, 애니메이션

3.9.1. 대한민국

한국 만화계에선 출판만화 시장이 쇠퇴한 대신 실험 단계였던 웹툰이 발달했다. 2000년에 라이코스코리아가 최초로 무료 온라인 만화방을 개설한 후 '네이버 웹툰', '다음 만화속세상', '야후! 카툰' 등 후발주자들이 우후죽순 생겨났으며, 대원씨아이 등 기존 만화출판사들도 만화잡지를 줄이는 대신 '캔디33' 같은 유료 만화사이트를 열고 네이트 툰도시 등 포털사이트나 휴대폰 무선인터넷 등지에 유료로 콘텐츠를 공급하기도 했다. 학습만화계에선 <살아남기 시리즈>를 비롯해 <무서운 게 딱! 좋아>,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Why? 시리즈>, <마법천자문>, <코믹 메이플스토리> 등 불후의 명작들이 쏟아져나왔다.

한국 애니메이션은 2001년 SBS에서 방송된 토종 애니 <유니미니펫>이 <포켓몬스터>의 시청률을 추월해 <파워디지몬>에 이은 시청률 2위를 차지해 저력을 보였고, 이후 <올림포스 가디언>, <뽀롱뽀롱 뽀로로>, <선물공룡 디보>, <냉장고 나라 코코몽> 등으로 중흥기를 맞이했으며, 2000년 <알렉스의 모험>을 시초로 해외 합작애니 제작 편수가 점차 늘기 시작했다.

이 당시 나온 일본 애니메이션이 투니버스를 통해 활발하게 더빙 방영이 되기도 했으며, 무디 신동식을 필두로 신길주, 최방옥, 김이경 등 걸출한 더빙 PD들이 활약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대원C&A홀딩스도 2001년 자회사 대원디지털방송을 세워 2002년 '애니원', 2005년 '챔프'를 각각 개국해 투니버스의 독주를 견제하기 시작했고, 특히 대원은 '일본애니 자막방송'을 타 채널보다 먼저 시작했다. 2006년에 일본 애니채널 최초로 '애니맥스'가 한국에 진출했다.

거기에 니켈로디언이나 카툰네트워크, 디즈니 채널 등 영미권 애니채널들이 블록 등의 형태로 한국시장에 진출했고, 어린이 교육채널 재능TV와 대교어린이TV도 애니 편성을 늘려 다크호스로 급부상하기도 했다. 심지어 클럽박스나 프루나 등 인터넷 웹하드 및 P2P의 활성화로 합법/불법공유가 늘기 시작했다. 반면 지상파 방송국들은 2005년 애니메이션 쿼터제 시행을 계기로 애니메이션 시간대를 줄이고, 해외 애니 대신 국산 애니로 채웠다.

3.9.2. 일본

일본 만화, 애니메이션에서는 1990년대의 전성기를 이어받아 이누야샤, 강철의 연금술사 등의 작품이 나왔다. 특히 2006년에는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애니메이션, 오란고교 호스트부, 데스노트/애니메이션, 코드 기아스 반역의 를르슈 등의 인기작이 연달아 나오며 일본 애니메이션에 황금기라고 불렸으며, 건담 시리즈에서는 기동전사 건담 SEED, 기동전사 건담 00의 연달은 성공으로 비우주세기가 부흥하게 된다. 2000년대 후반부에는 러키☆스타, 케이온! 등의 흥행으로 모에에 치중한 애니메이션이 일본 애니메이션의 주류로 올라서게 되며 이런 경향은 2010년대에 더 커지게 된다. 반면 <아따맘마>나 <개구리 중사 케로로>, <프리큐어 시리즈> 등 대중적인 애니메이션들도 여전히 나왔다.[20] 극장 애니 분야에선 지브리 독주 속에도 신카이 마코토호소다 마모루 같은 신예 애니제작자들이 나왔다.

3.9.3. 영미권

영미권 애니메이션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월트 디즈니 컴퍼니드림웍스 애니메이션, 블루스카이 스튜디오 등 후발 주자들과 지브리 등 일본 애니의 약진으로 쇠퇴를 거듭해 2004년 <카우 삼총사>부터 2009년 <공주와 개구리> 이전까지 2D 애니메이션 제작이 중단됐고, 대신 픽사 합작 애니가 상승세를 더하는 기현상을 보여주었다. TV 애니계에선 니켈로디언이 <네모바지 스폰지밥>, <티미의 못말리는 수호천사>, <도라도라 영어나라>, <천재소년 지미 뉴트론>, <대니 팬텀>, <아바타 아앙의 전설> 등을 히트쳤고, 카툰네트워크도 <벤10> 등으로 건재를 과시했다.

3.10. 게임

2004년 E3 당시 닌텐도 DS 발표영상
콘솔게임계에서 닌텐도의 경우 이 시대 부활했고 이시대에 출시된 신작들은 전작들에 비해 저평가를 받아 왔던 시대였고, 마이크로소프트엑스박스 시리즈엑스박스 / 엑스박스 360이 등장하여 많은 인기를 얻었다. 소니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의 경우 초반부의 전성기중후반의 암흑기를 동시에 겪었던 시대다.

한국 PC게임계는 단연 '온라인 게임의 황금기이자 독무대'라 할 수 있는데, 1999년 ADSL 보급으로 인터넷이 대중화됨에 따라 온라인 게임이 기존 패키지 게임과 ARS 게임 시장을 압살했으며, 특히 게임업체 중 넥슨-한게임(NHN)-넷마블(CJ인터넷) 3파전이 가장 주목을 받았다. 이 외에 네오위즈, 엠게임, 윈디소프트, 구름인터랙티브, 이플레이온, 라온엔터테인먼트, 나우콤, 파란, 조이온, 그라비티 등 국내외 CD 게임개발사나 포털업체 등 후발주자들도 온라인 게임시장에 뛰어들어 각축전을 벌였다.

콘솔 게임계는 2000년 일본문화 3차 개방 후 2002년 들어 SCEK와 한국마이크로소프트가 플레이스테이션2 등 해외 게임기들을 정발하기도 했다. 반면 닌텐도는 2002년 대원씨아이를 통해 게임보이 어드밴스, 게임큐브, 닌텐도DS 등을 수입했으나, 한글화 미비에 경쟁사들의 텃세, 온라인 및 모바일 게임의 인기 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2006년에 게임기 수입권 등을 신설법인 한국닌텐도에 넘겼다.

4. 이 시대에 시작되거나 만들어진 것들

5. 이 시대에 쇠퇴한 것들

이전 시대에 나와 지속적으로 쓰인 것들을 적을 것.
  • 고가차도: 원래 교통체증 해소를 위해서 건설되었으며, 과거에는 근대화의 상징으로 추앙받았으나, 2000년대부터 오히려 교통체증을 유발하고 도시미관을 저해시킨다는 이유로 하나씩 철거되기 시작하였다.
  • 공중전화: 2000년대까지는 과거 20세기 시대들과 똑같이 사용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 편이긴 했으나 2010년대 초반을 넘어간 이후론 완전히 쇠퇴하였다.
  • 방송광고 사전심의 제도: 2008년 위헌 판정을 받았다.
  • 지상파 애니메이션 방송: 2000년 ~ 2004년까지는 황금시간대에 애니메이션 방영을 해 주었으나 2005년 애니메이션 쿼터제 실시로 투니버스 등 케이블 애니메이션 전문채널으로 히트작이 넘어가게 된다.
  • 교련
  • 단파방송, 단파수신기
  • 노점상: 2000년대 초반까지는 길거리에 꽤 많이 보였으나[24], 세금을 내지 않고 탈세하며 장사한다는 인식, 통행에 불편을 준다는 인식, 위생 문제 등이 점차 확산이 되면서 철거되는 추세이다.
  • 도서대여점 : 만화책과 (인터넷 소설, 장르소설 위주의 각종) 소설, 비디오와 DVD가 공존하던 도서 대여점은 2000년대의 상징과 같은 것이 되었다.
  • 떡볶이 활동복: 2000년대까지 군대의 활동복 하면 이걸 생각했다.
  • 라디오
  • 비둘기호: 이미 1990년대부터 장거리 편성들이 자취를 감추다가 2000년 11월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정선선 구간의 비둘기호가 운행을 종료한다.
  • 빠른 생일: 2010년부터 2003년 1월~12월생이 함께 초등학교 1학년으로 입학하면서 '빠른 년생'이 사라지게 되었다.
  • 새마을호: 2004년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 최고등급의 열차라는 상징성이 강했으나, KTX의 개통으로 최고 열차의 지위에서 내려왔을 뿐만 아니라 노후화 때문에 점점 편수가 줄어들고, 2014년 이후 ITX-새마을로 거의 대체되었다. 그리고 2018년 4월 30일에 퇴역하였다.
  • 오락실: 한국에서는 PC방의 부흥으로 인해 시망크리를 탔고, 결정적으로 오락기를 가장한 도박기계가 나오면서 완전히 몰락한다.
  • 카세트 테이프: MP3의 등장으로 쇠퇴하였다.
  • 패키지 게임: 한국중국에서[25] 온라인 게임불법 공유, 그리고 무분별한 게임잡지 번들 공급으로 인해 몰락했고 스팀이 나오면서...
  • 폴리카보네이트 진압방패: 2001년 알루미늄 방패 도입 이후 의경 및 경비중대 중심으로 쓰이다가 2006년 '평화방패' 보급으로 폐지됨.
  • 프로씨름(민속씨름): 2005년 이후 사라졌다.
  • 플로피 디스크
  • 영상물 등급보류 제도: 2002년 영화진흥법 개정으로 폐지된 후 2008년에 위헌 판정을 받았다.
  • 유고슬라비아: 몬테네그로의 탈퇴로 해체
  • 통일호: 2004년 KTX의 개통으로 완전히 폐지. 이제는 사진이나 박물관에 가서 봐야 한다.
  • CD 음반: 불법 다운로드 급증과 음원 서비스의 발달로 CD 음반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었다.
  • FRP 진압방패: 1997년 폴리카보네이트 진압방패 도입 이후 일선부대에서 사용률이 서서히 줄어 경찰학교로 보내지거나 단셋 중심으로 쓰다가, 2006년 단셋 해체로 사라졌다.
  • MBC 대학가요제: 2000년대 들어 망조가 보이더니 결국 2013년 폐지되었으나 2019년에 부활하였다.
  • MBC 창작동요제: 2000년대에 어린이 방송계 진출 수단으로 변질되었고 시청률 하락 등의 망조가 보이더니 결국 2011년에 폐지되었다. 위의 MBC 대학가요제는 2019년에 부활하였는데 MBC 창작동요제는 부활 논의나 계획조차 없다.
  • 음악캠프: 2005년 7월 말 카우치 노출사고 때문에 폐지 크리.
  • CRT: LCD가 나오면서 사라져갔다.
  • PC통신: 인터넷의 대중화로 급격히 쇠퇴하였다.
  • VHS: DVD의 보급 및 불법 다운로드 등으로 쇠퇴하였다.
  • 윈도우 95, 윈도우 98, 윈도우 ME: 2006년에 함께 지원이 종료되었다.
  • 콩코드: 2003년 11월 26일을 마지막으로 운항 종료.
  • 축산업협동조합, 삼림협동조합 : 2000년 7월 농협과 통합하면서 사라졌다. 현재도 일부는 축협이라는 단위를 쓰나 농협 마크로 통일되었다.
  • 서울종합터미널(호남선) : 2000년에 센트럴 시티로 전환되었다.
  • 호남선터미널에서 출발했던 영동선 고속버스 노선 : 2000년 7월에 경부선터미널로 이전하였다.
  • 진회색 기동복: 전의경 부대에선 2000년, 소방본부에선 2001년, 경비교도대에선 2006년에 각각 사라짐.
  • 조흥은행 / 서울은행 / 주택은행 : 2000년대 들어서 타 은행과의 합병으로 사라졌다. 조흥은행은 신한은행과 합병되었고(2006년) 서울은행은 하나은행과 합병되었고(2002년) 주택은행은 국민은행과 합병되었다(2002년). 주택은행의 주택예금과 복권사업은 국민은행으로 이관되었다.[26]
  • 초저항 : 철도박물관에 정태보존중인 대한민국 철도청의 1x01편성이 1999년에 퇴역하는 것을 시작으로 서울지하철공사(現서울교통공사)의 초저항도 서울교통공사 1000호대 VVVF 전동차로 대체되면서 사라졌다.
  • 초퍼제어 : 2000년대 초중반만 하더라도 여전히 열차의 주류로 있었으나, 2007년부터는 차츰 퇴역하기 시작했고 그래도 2008~2009년까지는 제법 남아있었으나 점차 퇴역을 한다.
  • 서울특별시 시내버스(2004년 7월 개편 이전) : 2004년 7월 1일 대중교통 개편화에 따라 입석, 좌석버스가 폐지되고 간선, 지선, 광역, 순환버스로 전환되었다.
  • 서울 - 경기, 서울 - 인천 시내버스 시계외요금(입석버스 기준) : 2004년 7월 1일부로 전면폐지되었다.
  • 어린이 드라마 : 2000년대 중반까지는 나름 인기를 누렸지만,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쇠퇴한다.
  • 가연재 전동차 :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이후 내장재 개편으로 인해 점점 쇠퇴하기 시작했으나 2005년 이후에도 1985년 이전 제작된 전동차에는 가연재 칸이 남아있었으나, 전동차가 신형으로 교체되면서 2009년 10월을 마지막으로 퇴역함.
  • 1973년 이전 자동차 번호판 : 1973년에 자동차 번호판이 새 것으로 바뀐 뒤에도 1990년대까지는 심심치 않게 1973년 이전 번호판들을 볼 수 있었고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그 번호판을 볼 수 있었지만 2002년 이후로는 1973년 이전 자동차들이 완전히 폐차됨으로써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 준법서약제도: 2003년 폐지됨.
  • 노동쟁의 제3자 개입금지 제도: 1997년 '노동쟁의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정 후에도 제40조(노동관계의 지원) 2항에 '당년도 행정관청 신고자'만 개입토록 했다가 2006년 폐지됐다.
  • 보호감호: 2005년 사회보호법 폐지로 사라졌다.

6. 이 시대의 상징들

6.1. 이 시대를 상징하는 것들

6.1.1. 대한민국

6.1.1.1. 정/관계
6.1.1.2. 재계
  • 강덕수 STX그룹 회장
  • 구본무 LG그룹 회장
  • 구자홍 LS그룹 회장
  • 구자훈 LIG손해보험 회장
  • 김범수-이해진 NHN 대표이사
  • 김영만 한빛소프트 대표이사
  • 김영수 신창건설 회장
  • 김유식 디시인사이드 대표이사
  • 김정주 넥슨 대표이사
  •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이사
  • 나성균 네오위즈 대표이사
  •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
  •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 박석봉 엠파스 대표이사
  •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
  • 박성훈 재능교육 회장
  • 박용성 두산그룹 회장: 두산을 소비재에서 '중공업 중심'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
  •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
  • 백종헌 프라임그룹 회장
  •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 손경식-이재현 CJ그룹 회장
  • 손승철 엠게임 대표이사
  • 송자 대교 회장
  •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 신영환 신성건설 회장
  •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 이구택 포스코 회장
  •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 이용경 KT 사장
  • 이학수 삼성그룹 전략기획실장
  • 이원보 계룡건설 회장
  • 이인원 롯데그룹 정책본부 부본부장
  •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회장
  • 이진성 인츠닷컴 대표이사
  • 이철우 롯데쇼핑 백화점사업본부 대표이사
  • 이한창 윈디소프트 대표이사
  • 임병석 C&그룹 회장
  • 장평순 교원그룹 회장
  • 전제완 프리챌 대표이사
  • 전하진 네띠앙 대표이사
  • 정상원 넥슨 대표이사
  •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 정몽근 현대백화점그룹 명예회장
  • 정몽윤 현대해상그룹 회장
  • 정몽진 KCC그룹 회장
  •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
  • 정욱 대원미디어 회장
  • 조남호 한진중공업그룹 회장
  •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
  • 조정호 메리츠금융그룹 회장
  •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 조양래 한국타이어그룹 회장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 주수도 JU그룹 회장
  • 천호균 쌈지 대표이사
  • 최태원 SK그룹 회장
  • 허영인 SPC그룹 회장
  • 허재호 대주그룹 회장
  •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 허창수 GS그룹 회장
  •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6.1.1.3. 문화
  • 스타크래프트: 2000년대의 상징 그 자체이며 이 게임 덕분에 e스포츠프로게이머가 생겨났으며 게임 자체는 1998년 3월 31일에 나왔으나,[27] 2000년대 들어서 전성기를 누렸다.
  • 버즈: 2003년부터 2006년까지 4년이 채 안되는 짧은 전성기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넘사벽 인기로 당시 10대들의 우상으로 부상했다.
  • 리니지 - 리니지 2: 리니지는 1998년에 나와서 2000년대 초반에 전성기를 누렸고, 이후 2003년 10월에 정식 상용화된 속편인 리니지 2로 2000년대 중반 온라인 게임 시장을 호령했다.
  • 4LEAF
  • 메이플스토리: 2003년부터 정식 서비스된 이후 1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일간 검색어 순위 10위 이내에 자주 등재될 정도로 대표적인 국산 2D MMORPG로 빠르게 자리잡았다.
  • 바람의 나라
  • 노스페이스: 2000년대 후반부터 2014년까지 전국적으로 제2의 교복으로 불리며 인기를 끌었다.
  • 네이트온: 현재는 사용자가 거의없다.
  • 버디버디: 2000년 1월에 처음 서비스된 이래로 2009년까지 훗날 다른 경쟁사 메신저의 영향력이 커지기 직전까지는 한때 독보적인 인스턴트 메신저였다.
  • 반미
  • 피처폰: 피처폰의 일종인 흑백 혹은 안테나 폴더형 휴대폰이 (2000년 ~ 2005년)을 휩쓸었다면, 또 다른 종류인 가로본능과 얇은 슬라이드, 폴더형은 (2006년 ~ 2008년)에 인기를 끌었다. (2009년 ~ 2010년)에는 디자인이 예쁜 폴더폰과 터치폰의 유행, 2010년대 초반 스마트폰 과도기를 거치고 난 이후인 2012년 이후 스마트폰이 대세가 되면서 현재 모습이되자 사용자는 많이 줄었지만 공부에 전념하기 위한 학생들이 임시 기기로 사용하는 모습이나 어르신들이 사용하는 모습은 간간히 볼 수 있다.[28]
  • 싸이월드
  • 세이클럽
  • 아이러브스쿨
  • 야후 - 야후꾸러기: 당시에는 네이버의 쥬니어네이버와 경쟁을 치렀으나, 2012년 12월 31일을 끝으로 야후코리아가 폐쇄되었다.
  • 엽기
  • 엽기송
  • 엽기토끼: 2000년에 플래시 애니메이션인 마시마로의 숲을 통해 알려진 이후로 본명보단 엽기토끼라는 애칭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 외계어
  • 웰빙: 참여정부 시기(2003년 ~ 2008년)
  • Windows 98 SE: 1999년 10월에 시작된 국민PC의 보급으로 2000년대 까지 널리 사용되었던 OS.
  • Windows 2000: 기업용 및 서버용에 많이 쓰였던 OS. 반 년 뒤에 나온 Windows Me의 혹평으로 인해 가정용으로도 사용하는 경우가 제법 많았다.
  • Windows XP: 2010년대 초반까지 사용
  • 소몰이창법: 2003년 ~ 2008년
  • SG 워너비
  • 장미가족의 태그교실
  • 전자책
  • 조폭 코미디
  • 졸라맨: 2000년 엽기토끼와 함께 어도비 플래시로 제작된 웹 애니메이션 중 가장 유명한 애니메이션 중 하나.
  • 판타지 개그
  • 패밀리 레스토랑: 경양식집의 후계자로 보다 다양한 메뉴와 훨씬 비싼 가격을 자랑했다. 2010년대 초반 이후 경제 위기로 인해 쇠퇴했다.
  • 포트리스 2 블루 아케이드
  • 포트리스3 패왕전
  • 플래시사이트
  • 태권브이 활동복: 물론 얼마 안 가 떡볶이로 다시 교체되기는 했다.
  • 원더걸스 텔미 열풍
  • 투니버스(2000년대): 투니버스에서 방영해준 소위 추억의 애니들은 1990년대생 ~ 2000년대초반생들에게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 합성-필수요소 갤러리(현 합성 갤러리): 2000년대 중반까지 보면 존재감 없는 디시인사이드의 한 갤러리이나, 2008년 빠삐놈 발표 이후 합성물들이 대거 생산됐다. 그 위상을 발휘한 것이 2000년대 후반의 유행어 몇몇이 합성요소 속 인물의 대사인 것이다.
  • 햇볕정책
  • 허무개그
  • 허무송
  • 힐리스: 2003년부터 반짝 인기 상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 지상파 DMB: 2005년 12월 1일 개통 이후로 전철 탑승객들이 대부분 지상파 DMB를 감상하는 진풍경으로 바꾸었다. 지금은 스마트폰이 그 자리를 맡고 있는 중.
  • PMP: 2002년에 처음 등장한 이후로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직전 2012년 까지 동영상 감상용 플레이어로 많이 사용된 휴대용 전자 기기.
  • 닌텐도 DS: 현재는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인기가 식었지만 2006년 7월 한국닌텐도의 공식 출범 이후로 인기를 끌기 시작해 1990년대생 ~ 2000년대 초반생들에게는 휴대용 게임기의 대명사가 되었다.[29]
  • 플레이스테이션 포터블: 닌텐도 DS만큼 대중적이진 않았지만 2007년 4월 가격 인하 발표 덕분에 닌텐도 DS와의 가격 차이가 크게 줄어들어 한때 고사양 휴대용 게임기의 대명사로 거듭나기도 했었다.[30]
  • 플레이스테이션 2: 일반 가정용뿐만 아니라 업소용으로도 인기가 많았던 게임기이자 거치형 콘솔 게임기로써는 마지막 리즈시절이었다.
  • WAP: 물론 비싼요금때문에 사회문제가 많았다.[31] 하지만 중, 후반부터 범국민 데이터 요금제라던가 무게타라던가 프리존이 나오면서 어느 정도는 쓸만해졌다.
  • Fimm 240 무제한 프로모션/june(Data) 무제한 프로모션: 그 당시 스마트폰사용자들에겐 상징과도 같은 요금제였다.
  • KTF: 원래 1997년에 창립된 한국통신프리텔로 출발했던게 2001년 5월부터 사명이 변경되어 2009년 6월 1일 KT에 흡수되기 직전까지 사용되었다.
  • 뇌구조
6.1.1.4. 스포츠
6.1.1.5. TV 프로그램

6.1.2. 세계 공통

6.1.2.1. 정/관계
6.1.2.2. 스포츠

6.2. 유행어

6.2.1. 초반(2000 ~ 2003)

6.2.2. 중반(2004 ~ 2006)

6.2.3. 후반(2007 ~ 2009)

7. 2000년대생

2000년부터 2009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을 말한다. 또한 이들을 Z세대라고 한다.

2019년부로 2000년생이 성인이 되고, 2009년생이 초등학교 고학년이다.[34] 한창 학창시절~20대 초반을 즐길 연령대이다. 현재까지 생일이 지난 2000년생들을 제외하면 모두 미성년자다.

사회적으로는 저출산 시대[35]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60만대를 유지하던 출생아수가 즈믄둥이로 불리는 2000년을 정점으로[36] 2001년에는 50만대로 확 떨어지고, 2002년부터는 40만대로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카드대란 등의 영향으로 출산율이 계속 떨어져서 2005년에 1.08명이라는 역대 최저 출산율을 기록하다가, 2007년 들어 황금돼지해로 잠시마나 오르기는 했다. 다만 이후에는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여파로 주춤해졌다.

또한 이들은 형제가 없는 외동인 사람도 많이 있으며 외동이 적은 그 윗세대인 1990년대[37]과 세대차이를 많이 느낀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형제가 대여섯명이었던 기성세대와는 완전 다른 세계에 온 느낌이 들 정도라고 한다.

이들이 사회에 나올 2020년대부터 인구 절벽으로 헬게이트가 벌어질 예정이다. 때문에 이 세대들이 일본같은 사례처럼 인구 감소로 실업률이 낮아지지는 않을까하는 추측이 나오고 있긴 하지만 사실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들이 사회에 나오는 2020년대 중후반(대졸 기준)에는 많은 노동이 자동화되어 일자리가 더 부족해질 수도 있고 자동화가 의외로 그리 많은 노동을 대체하지는 않아서 줄어든 인구 덕에 취업이 원활해질 수도 있고 혹은 실제 역사처럼 기존 일자리가 사라지더라도 새로운 일자리들이 쏟아질 수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는 2019년부터 그레타 툰베리 필두로 한 환경운동, 홍콩 범죄인 인도조약 반대 운동을 이끄는 고등학생들이 사회에 등장하면서 기존과 다른 면모의 세대 주역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7.1. 초반생(2000~2003년생)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2000년~2003년생의 경우 급변했던 시대를 경험한 탓에 구분짓기가 매우 어려운 세대이다. 이들은 1990년대생과 같이 날로그 + 디지털 = 아지털 세대라고 불리기도 한다. 국민의 정부 때 태어난 세대이고(2003년 2월생까지), IMF 외환위기 전후세대이다. 또한 이들은 베이비붐 세대 또는 X세대의 자녀이기도 하다.

이들은 태어난 시기에 타이틀이 항상 붙는데라 불리며 1990년대 후반생과 마찬가지로 중대한 시기에 태어난 세대이다.[38] 이들은 2019년 기준, 성인~고등학생이다.

이들은 1990년대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된 세대라, 대부분 세기말 분위기 속에서 태어난 마지막 세대라고 평가하여 1990년대생의 연장선 세대라고 평가한다. 그러한 이유여서인지 1990년대생들과 2000년대생들의 문화를 동시에 공감해 사회적 정체성을 공유하는 중립적인 세대이다.

이들은 초등학교에서 좌측통행(2010년 7월 1일 우측통행 전환)을 마지막으로 배웠다. 대부분이 중학교에서 자유학기(학년)제를 해 본 경험이 없을 것이다. 2013년 00년생부터 시범 적용되긴 하였으나 극히 소수의 학교 이야기이고, 2016년 03년생부터 전면적으로 시행되었기 때문이다.

유치원 시기부터 고등학교 졸업 시기까지 6차 교육과정, 7차 교육과정, 2007 개정, 2009 개정, 2009 개정 각론(2011 개정), 2015 개정을 접한 세대이다.
정확히는 2000년~2002년 2월생은 6차~2011 개정, 나머지 2002년~2003년생은 2007 개정부터 2015 개정까지를 겪었다. 또한 거기에서 예외적으로 2009년 초등학교 신입생까지(대부분 2002년생까지)는 유치원에서 6차 교육과정을 겪었다.

윗세대들과 마찬가지로 1998년 김대중 - 오부치 공동선언 이후 일본문화 대개방에 따라 국산 애니 세대인 이전 이후 세대와 달리 대한민국 역사상 유일하게 일본 문화 컨텐츠를 접하여 유년시절 동안 즐겨본 유일한 세대이기도 하다.

정보에 따르면 IT업계와 언론계 또는 윗세대들은 2000년 이후 출생부터는 스마트폰유튜브, SNS 등 디지털 매체들을 태어났을 때부터 접하여 익숙하게 경험한 세대인 Z세대라고 단호하게 주장하며 선을 긋는데, 이유는 이들이 태어난 연도 숫자가 2000년 이후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생들까지는 출생년도 숫자가 그들보다 더 윗세대들과 같이 1900년대에 속하기 때문에 아날로그를 경험했다고 대부분 인식한다. 그러나 2000년 이후면 새로운 천년생이라는 타이틀과, 디지털을 본격 경험한 세대인 2000년대 중후반 이후생들의 비중이 2000년대 초반생보다 인구 비율이 훨씬 크기 때문에 저절로 같은 세대라고 인식이 들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로 (아날로그 세대인 1990년대 초중반 출생자들과 디지털 세대인 2000년대 중후반 이후 출생자들 사이에 있는) 1990년대 후반생~2000년대 초반생들은 아날로그 시대와 디지털 시대를 모두 경험했기 때문에 구분 짓기가 매우 애매모호한 중도 과도기의 세대로 볼 수 있다.

본래 과거에는 1980년대생~1990년대생들과 같이 밀레니얼 Y세대로 분류되었으나, 2010년대 학창시절 도중 디지털과 스마트폰의 상용화로 인한 시대변모로 2000년대 중후반 이후생들과 같은 Z세대로 갈아타게 되었으며, 향후 2020년대 이후 또다시 세대 구분이 바뀔 세대이다. 그러나 지금도 가끔 밀레니엄 Y세대로 분류되기도 한다.

쉽게 말해, 노선을 여러 번 갈아탄 세대인지라 태어난 연도 숫자는 현재 초등학생, 중학생들과 같은 2000년대생이지만, 실제 경험은 1990년대생과 비슷한 세대이므로 겉과 속이 달라 폭이 넓고 다원적인 세대라고 생각하면 된다.

7.2. 중반생(2004~2006년생)

2000년대 중반에 태어난 2004년~2006년생들의 경우 참여 정부때 태어난 세대이며 2019년 기준 중1~중3이다.

시대 흐름에 따라, 2000년대 중반에 태어난 세대까진 아날로그 TV비디오 테이프, CRT 모니터, 피쳐폰 등의 물건과 문화들을 경험한 아날로그의 끝자락 세대이자[39] 본격적인 디지털 시대의 시작을 경험했다.

이 세대는 과도기.마지막과 시작을 동시에 경험한 세대이다.우선 시작의 경험을 보자면, 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이미 좌측통행우측통행로 바뀐 뒤였고, 2007 개정이 아닌 처음부터 2009 개정(총론)/2007 개정(각론)을 배웠다. 즉 이들부터 초등학교 수학익힘책만화가 들어 있는 것을 경험했다는 뜻이다.

또한 코딩 교육 의무화,[40] 중학교자유학기(학년)제도 처음으로 경험했다.[41] 초등학교 때는 6년 내내 2009 개정 교육과정으로 배웠다. 역사를 5-6학년으로 배운 세대이다.

반면 변화 전 마지막으로는, 2012년에 놀토가 사라졌다(2004년생까지 경험). [42] 2013년에는 우리들은 1학년, 즐거운/슬기로운/바른 생활이 없어졌다(2005년생까지 경험).[43]

2004년생 한정으로 2009 개정을 중학생 때 마지막으로 배웠다.

2020년에 교복 자유화를 실시하면서 2006년생이 교복을 입게 된 마지막 세대가되었다. 또한 교복 무상을 처음으로 겪게 된다.

7.3. 후반생(2007~2009년생)

2000년대 후반에 태어난 2007년~2009년생들은 참여 정부이명박 정부때 태어난 세대이다(2007년생~2008년 2월생은 노무현 정부시기에 태어난 세대이고, 나머지는 이명박 정부 때 태어났다). 2019년 기준 초4~초6이다. 2000년대 초반생들이 초등학교 재학 시기에 태어난 세대들로 아날로그의 정점을 찍었던 시기에 태어났기에 이들은 아예 아날로그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이들이 유치원, 초등학교 시절 때는 완전히 디지털/스마트폰 시대로 뒤바뀐 뒤이다.

이들이 초등학생때는 2009 개정교육과정과 2015 개정교육과정 두 개를 배운다. 한자 병행, 실과 소프트웨어가 2018년 3-4학년, 2019년 5-6학년 순서대로 개정된다. 2009년생 한정으로 안전한 생활을 겪는다. 중학교 때는 전면 자유학년제, 무상교복이 예상된다. 교복자율화를 처음으로 겪게 된다.

7.4. 사회적 가치관

2000년대생 중, 2000년 1월 1일생 ~ 2003년 2월 25일 이전생은 국민의 정부 시기에 태어난 세대이고, 2003년 2월 25일생 ~ 2008년 2월 25일 이전생은 참여 정부시기에 태어난 세대이며 2008년 2월 25일생 ~ 2009년 12월 31일생은 이명박 정부시기에 태어난 세대이다.

2000년대생의 경우에는 급속한 탈민족주의, 개인주의화로 인해서 자유주의적 성향이 이전세대 보다는 좀 강하다고 할 수 있지만, 중도 성향도 상당한 강세를 보인다. 다시 말해 극단적인 정치 성향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라는 의미. 이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역사를 직접 경험했거나 그 여파가 남아 있던 시대를 살았던 이전 세대들과 달리 이미 제도적 민주주의가 정착된 이후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느정도 정치에 관심이 생기는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유행어들을 보면 좌우가리지 않고 돌려까는 유행어가 많이 탄생하는데 기존 우파세력을 돌려까는것에서 파생된 동년배드립, 좌파세력을 돌려까는것에서 파생된 ‘이 시국에’ 드립을 정치성향과는 별개로 저런 드립들을 재미를 위해 사용하는것을 보면 진영논리나 정치극단주의의 영향은 아직 미미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보다 중도적인 세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90년대생들보다도 이전의 산업화 세력 vs 민주화 세력의 구도에서 자유로운 세대일 것이며 독재, 친북, 친일 등과 같은 과거의 제국주의와 냉전기에서 파생된 이념대립보다는 페미니즘, 동성애, 난민, 권위주의, 검열 등과 같이 새로 떠오르고 있는 이슈들이 이들의 표심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8. 여담

-02 ~ 04년생에게 2002 월드컵 질문-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대부분 2002년 한일 월드컵을 보지 못했다. 거의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인간의 첫 기억은 만 3세 ~ 4세(한국나이, 4세 ~ 5세)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2000년대생 중에 월드컵 이전과 월드컵 도중에 출생한 2000년 1월 1일생 ~ 2002년 6월 30일생은 만 3~4세(한국 나이기준, 4세 ~ 5세) 이전이므로 2002 월드컵을 기억할 수 없을 것이다.[44] 2002년 7월 이후 출생자의 경우는 아예 일생에서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겪지도 못했다. 특히 2003년 5월생부터는 태아 시절이나 그 이전조차 월드컵 이후다.[45]

9. 각종 미디어에서의 2000년대

10. 2000년대에 들어가는 해



[1] 그러나 2000년에 시행한 밀레니엄 행사에는 그리니치 천문대의 주요 인사들도 참가했다.[2] 네이버 지식백과 21세기의시작 (매일경제, 매경닷컴)[3] (2000~2009)일본과 주요국가의 명목 GDP 흐름[4] 언급된 기업들은 다들 90년대 말에 설립되긴 했지만, 대중들의 인기를 얻고대형 기업이 된건 2000년대부터 이다.[5] 물론 디지털 시장도 유튜브의 엄청난 성장과 스포티파이등 스트리밍 서비스의 성장으로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서서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6] 1세대 아이돌의 대표주자로 불리는 H.O.T.는 2001년 2월 해체, 젝스키스 2000년 5월 해체했다. 1세대 걸그룹으로 불리는 핑클과 S.E.S의 경우 S.E.S는 2002년 12월 19일 해체했고, 핑클은 공식 해체는 하지 않았지만 2002년 이후 완전체로서의 활동이 전무해 사실상 해체와 다름 없는 상태가 되었다.[7] 소위 소몰이창법으로 유명한 R&B색깔이 가미된 웅장한 발라드[8] 뮤직뱅크는 2007년에 HD화가 되었다.[9] 팬티엄 3에서도 메모리빨로 재생된다는 소리가 있다.[10] 이때는 HD영상을 제대로 돌리기가 무리였고 대다수 영상들은 아날로그 방송을 녹화하거나 480p급으로 다운스케일링을 해서 시청하였다. 이건 당시 나왔던 DVD디코더의 영향도 있다. 본격적인 HD동영상 열기는 NVIDIA Geforce 6시리즈와 ATi Radeon R400계열의 보급, YouTube의 등장과 함께 이루어졌다. 그리고 컴퓨터의 성능상 720p동영상만 재생이 가능했지만 2006년쯤 인텔 코어2 시리즈가 출시되자 1080p동영상도 재생할수 있었다.[11] 디지털방식 말고도 HDReady라고 디지털방송은 지원하지 않지만 HD영상은 지원하는 TV도 판매되었다.[12] Multi Mod Service의 약자, 유럽에서는 Multiplex를 줄여서 MUX라고 한다.[13] 개발까진 아니고 DAB를 뜯어 고친거다.[14] 당장 위에 언급된 대표작들만 봐도 베토벤 바이러스를 제외하면 위의 요소들이 하나 이상씩은 꼭 들어가 있다. 특히 천국의 계단, 미안하다, 사랑한다가 이러한 특징이 강하게 나타나는 드라마다.[15] 특히 이 노래는 오늘날까지도 노래방 애창곡으로 손꼽힌다![16] 일명 소시지(소녀시대+gee)룩.[17] 그 당시 국내 영화는 대중들 사이에서 극장에서 돈주고 보기 아깝다는 정서가 만연 했을정도로 인식이 안 좋았고, 왕가위같은 홍콩 영화 스타일을 표절할만큼 수준 저하가 심했다.[18] 물론 예능으로 짜고 쳐서 상대방을 선택한 것이므로 오해하지 말 것.[19] 진짜 의미가 없었던 것이, 무한도전은 토요일에 방영되었고, 1박 2일은 일요일에 방영되었다. 웬만한 사람들은 둘 다 봤을 텐데[20] 하지만 2000년대 후반 들어 아동용 애니나 대중적인 애니가 감소한 것도 사실이다.[21] 게임보이 어드밴스의 뒤를 잇는 2000년대 휴대용 게임기의 대표 선두주자였다[22] 물론 정액제는 있었다. 문서 참고.[23] 2년 전인 1998년 안산 경원여객에서 먼저 시험 도입한 적이 있었으나, 2000년 서울시에서 대대적인 보급을 시작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24] 2005년까지 방송되는 드라마에서는 노점상에서 음식먹는 장면이 꽤 많이 보였다.[25] 전세계 시장은 콘솔이 주류다[26] 2002 월드컵 은행도 주택은행이 선정되었으나 국민은행으로 이관되었다.[27] 한국에서는 1998년 4월 9일에 정발되었다.[28] 피처폰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HD 해상도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던 2012년초반부터다.[29] 본격적으로 닌텐도의 인기가 식기 시작한 것은 닌텐도 3DSWii U 출시 이후인 2012년부터다. 그리고 2014년에는 Wi-Fi 커넥션까지 지원이 끝났다.[30] 하지만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PSP의 인기가 하락했으며, 스마트폰의 급격한 성능 향상으로 인해 고사양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해졌다. 물론 게임 자체의 평균 퀄리티는 후계기인 PSVITA가 나오기 이전에도 PSP쪽이 당연히 우세였다.[31] 요금제는 거의 홍보를 안했다. 자살 사례도 있었을정도(...) 이것때문에 알요금제같은 청소년요금제에서는 데이터 통화료가 포함돼서 소진된다.[32] 2000년대 최고수입의 운동선수는 거의 이 선수 차지였다.[33] 삼각관계를 다룬 한솔엠닷컴 통신사 CF에서 나온 카피인데, 공전절후의 대히트를 친 차태현김민희의 명대사였다. 사실상 2000년대 초반을 대표하는 유행어로 부족하지 않았고 전국적으로 수많은 패러디를 했을 정도로 유명했었다.[34] 참고로 2003년생은 고등학교, 2006년생은 중학교에 입학한다.[35] 엄밀히 따지면 초저출산이다. 인구대체율 이하인 2.1명은 1983년에 이미 깨졌고 2002년부터 시작된 건 합계출산율 1.3명 이하인 초저출산이다.[36] 이 때문에 2000년생까지를 1990년대생의 연장선으로 보기도 한다.[37] 참고로 더 윗세대인 1980년대생에 비하자면 형제가 없는 외자식인 사람이 조금 적은 편이다. 왜냐하면 산아제한정책을 폐지해 일시적으로 출산율이 올랐기 때문.[38] 1997년생~1998년생: 외환위기가 시작할 때 태어난 세대, 1999년생: 천년의 마지막 출생자.[39] 2011년까지만 해도 아날로그 감성은 꽤 남아있었다.[40] 2018년부터 의무화. 다만 준비가 덜 돼 1년 미룬 학교가 대다수라 사실상 2006년생부터 코딩교육을 받는다고 봐도 된다.[41] 따지고 보면 2003년생부터 경험했지만, 자유학기제가 아닌 자유학년제는 2004년생부터다. 또한 전면 시행은 2020년부터이므로 서울 등에서는 자유학년제 경험이 쉽지 않다.[42] 2005년생 한정으로,학교 내 부설유치원으로 인해 놀토를 경험하기도 했다.[43] 2005년생이 딱 중간에 걸쳤는데, 원래 즐거운/슬기로운/바른 생활은 2학년 한정으로 2013년까지는 그냥 나두기도 해서 2005년생은 봄,여름,가을,겨울을 안배웠을 가능성이 높다.[46][44] 그래도 2002년생 중, 월드컵 이전 생까지는 집에 앨범을 잘 뒤져보면 비더 레드티를 입고 찍은 사진이 한 두장 정돈 있을 것이다.[45] 만약 태아 시절 청각의 발달을 고려한다고 하면, 7월생과 8월생은 간접적으로 경험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2002년 10월생 이후로는 이러한 경험도 아예 하지 못했을 것이다. 2003년 5월생부터는 어떠한 기준으로도 월드컵을 경험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며, 2003년 10월생부터는 2002년 '자체'의 간접 경험조차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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