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6 22:14:35

2000년대

연대 구분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세기 구분
19세기 20세기 - 21세기 22세기
밀레니엄 구분
제1천년기 제2천년기 - 제3천년기 제4천년기

1. 개요2. 정치, 경제, 사회3. 문화
3.1. 출판계3.2. 음악
3.2.1. 2000년대 한국 음악
3.3. 디지털 방송3.4. 드라마3.5. 패션3.6. 영화3.7. 예능3.8. 만화, 애니메이션3.9. 게임
4. 이 시대에 시작되거나 만들어진 것들5. 이 시대에 쇠퇴한 것들6. 이 시대의 상징들
6.1. 이 시대를 상징하는 것들
6.1.1. 한국 한정6.1.2. 세계 공통
6.2. 유행어
6.2.1. 초반(2000 ~ 2003)6.2.2. 중반(2004 ~ 2006)6.2.3. 후반(2007 ~ 2009)
7. 2000년대생
7.1. 2000년대 초반생(2000년생 ~ 2003년생)7.2. 2000년대 중반생(2004년생 ~ 2006년생)7.3. 2000년대 후반생(2007년생 ~ 2009년생)7.4. 사회적 가치관
8. 여담9. 각종 미디어에서의 2000년대10. 2000년대에 들어가는 해

1. 개요

20세기, 제2천년기의 마지막이면서 21세기, 제3천년기의 시작이다. 2000년에서 2009년까지이다.

21세기 첫 시작은 2001년 1월 1일이다, 2000년 1월 1일이 아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달력의 첫 시작이 AD 1년 1월 1일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100년을 한 단위로 하는 세기의 시작과 끝도 1년부터 100년이다. 다만 100년 전 20세기의 시작을 놓고 독일은 정치적인 필요에 의해 새로운 세기를 알리는 행사를 1900년에 실시한 전례가 있다. 반면 영국은 독일의 20세기 시작 선포를 인정하지 않고 1901년에 따로 거행했다. 21세기와 새로운 밀레니엄 개시를 앞두고 세계시간의 표준이 되는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는 2001년새로운 세기의 시작이라는 입장을 고수하였다.[1][2] 또한 중요한 사실은 김대중 대통령1998년 2월 25일 취임사에서 우리는 3년뒤인 2001년에는 새로운 세기를 맞이한다고 언급하였다.''김대중 대통령 취임사 3분 22초부터

이 시기에 학교에(초1 ~ 고3) 다녔던 세대는 대부분 1982년생(2000년도 고3) ~ 2002년생(2009년도 초1)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2000년대에 초등학교를 입학하는 세대는 (1993년생 ~ 2002년생)이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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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를 기점으로 창씨개명 피해자들이 모두 노인이 되었다.

2. 정치, 경제, 사회

밀레니엄을 맞이했다는 기대감과 함께 IT 버블 붕괴로 전세계적으로 주가가 대폭락하는 공포감도 생성되는 등 전 세계인들은 기대 반 우려 반으로 2000년을 보냈다.

하지만 그 이듬해인 2001년 9.11 테러가 터지면서 세계 질서의 중대한 변화를 예고했다. 경제적으로는 호황 기조가 유지되면서 신자유주의가 절정에 달했으나, 2008년 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세계금융위기가 발생했다.

미국 정치계에선 2000년 대선에서 앨 고어가 총 득표수로 압승해서 클린턴의 뒤를 이을 뻔했으나,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가 선거인단 수로 우세해서 역전하여 민주당 8년 집권기를 끝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전년도 대선 때 선거후유증에 시달리다가 9.11 테러 후 '테러와의 전쟁'으로 국면을 전환해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전에 집중했었다. 그러나 이라크전은 '명분 없는 전쟁'이란 오명을 들으며 제2의 베트남전이 터지지 않을까 우려되었고, 2004년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 포로학대 사건이나 2005년 관타나모 수용소 사건 같은 인권유린 사태가 터졌다.
(2000~2009)브릭스G7의 명목 GDP 흐름[4]2000년2001년2002년2003년2004년2005년2006년2007년2008년2009년
단위: 10억달러(약 1조원)
미국 전체 명목 GDP: G7 10,284 10,621 10,977 11,510 12,274 13,093 13,855 14,477 14,718 14,418
중국 전체 명목 GDP: 브릭스 1,192 1,317 1,455 1,650 1,944 2,287 2,793 3,504 4,547 5,105
일본 전체 명목 GDP: G7 4,731 4,159 3,980 4,302 4,655 4,571 4,356 4,356 4,849 5,035
독일 전체 명목 GDP: G7 1,891 1,882 2,013 2,428 2,729 2,771 2,905 3,328 3,640 3,306
프랑스 전체 명목 GDP: G7 1,372 1,383 1,505 1,851 2,126 2,207 2,327 2,666 2,937 2,700
영국 전체 명목 GDP: G7 1,496 1,485 1,623 1,877 2,221 2,324 2,486 2,858 2,709 2,217
이탈리아 전체 명목 GDP: G7 1,107 1,124 1,229 1,517 1,73 1,789 1,874 2,130 2,318 2,116
브라질 전체 명목 GDP: 브릭스 644 554 506 552 663 882 1,089 1,366 1,653 1,622
캐나다 전체 명목 GDP: G7 739 732 752 887 1,018 1,164 1,310 1,457 1,542 1,370
인도 전체 명목 GDP: 브릭스 476 493 523 618 721 834 949 1,238 1,223 1,365
러시아 전체 명목 GDP: 브릭스 259 306. 345 430 591 763 989 1,299 1,660 1,222
대한민국 전체 명목 GDP 561 533 609 680 764 898 1,011 1,122 1,002 901
같은 시기 브릭스(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라 불리는 4개 국가들이 크게 약진하며 미래의 강국으로 부상했고, 특히 2001년 이후 중국의 급격한 성장은 불과 8년만에 4배의 성장을 기록하는데, 이 때 중국의 엄청난 성장과 함께 한국에는 엄청난 중국발 초미세먼지를 동반하게 되고 2010년대 이후 해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2000년부터 유로화를 도입한 유럽연합도 이 시기에 크게 팽창했다가 2008년 말부터 시작된 금융위기에 가장 직격탄을 맞아 그 후 유로화 사태를 초래해 경제성장이 크게 위축이 되는 다음의 10년기를 맞이하게 된다. 한국은 이 시기부터 경제성장률이 조금씩 떨어지면서 신흥공업국이었던 70~90년대처럼 10년 단위로 수배씩 경제규모가 커지던 고도성장시대의 종말을 고했으며 1990년대부터 시작된 인터넷, 핸드폰 등의 IT가 본격적으로 한국인들의 생활에 차츰 자리잡기 시작했다. 핸드폰의 경우 스마트폰이 등장 및 상용화되기 이전 시기로서 오늘날 피쳐폰이라 불리는 형태의 폴더폰, 슬라이드폰 등이 주로 사용되었는데 2010년대와는 구별되는 2000년대 고유의 풍경 중 하나다.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이래 2003년에는 노무현 정부가 출범함으로서, 2008년 2월까지 민주당계 정당(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이 10년 간 여당으로 집권했다. 또한 2003년 2월 김대중 대통령이 퇴임하고 2004년에는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총재가 정계를 은퇴함으로서, 한국 정치를 풍미했던 삼김시대가 막을 내렸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민주당계 정당이 10년간(1998년 ~ 2008년) 집권했던 시기로서 특히 노무현 정부 시기(2003 ~ 2008)에는 1980년대 운동권 출신 386세대들이 17대 총선을 계기로 제도권 중앙정계에 대거 진출하였고 이들은 국가보안법 폐지,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재산 환수, 과거사정리위원회 활동, 북한과의 화해, 협력 등 1980년대에 형성된 자신들의 이념을 2000년대의 현실 정치 속에서 실현하기 위해 시도하였으나 국가보안법 폐지 등은 현실 정치의 벽에 막혀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한편 2004년 17대 총선에서 진보정당민주노동당이 10석을 얻어 최초의 원내 진출을 이루어내는 등 이전까지 강력한 사회적 반공 분위기 속에 기를 펴지 못 했던 진보세력이 제도권 정치로 진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및 386세대 정치인들은 부동산 정책 실패, 양극화의 심화 등으로 경제 문제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2007년 12월 17대 대선에서 이명박이 500만표가 넘는 표차로 승리하면서 2000년대 후반의 정치 지형은 보수 강세로 다시 변하게 된다. 보수 강세 외에 2000년대 후반의 중요한 정치적 흐름이 한 가지 더 있는데 바로 정치 불신이다. 17대 대선에서 총 투표율은 63%에 그쳤으며 특히 20대의 투표율은 40%대에 그쳤다. 2000년대 초반의 남북정상회담, 반미 열풍과 노무현 열풍 등 새로운 시대를 열망했던 한국사회의 열정은 오래 지나지 않아 2000년대 후반 경제대통령이라는 현실을 내세운 이명박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와 냉소적인 정치불신으로 차갑게 식고 만다.

2000년 6월 15일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졌으며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등의 남북교류가 제한적으로나마 이루어진 시대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북한에 대한 인식이 동족, 통일의 대상 등으로 좋은 편이었다. 이미 1999년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 때 미군의 학살 정황이 폭로된 걸 비롯해 2000년 매향리 미군 공군사격장 사태와 2002년 미군 여중생 압사 사건 등으로 반미감정이 더해지기도 했다. 이는 1990년대 탈냉전 시대 이래 반공을 과거 독재정권의 낡은 이념으로 여기게 되었기 때문에 그 반대급부로 북한과의 화해를 역사적 과제로 여겼던 영향이 컸다고 볼 수 있겠다. 공동경비구역 JSA, 웰컴 투 동막골과 같이 문화예술계에도 이와 같은 사회분위기가 반영되었다. 그러나 2006년 1차 핵실험 등으로 서서히 북한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기 시작해 결정적으로 2010년 연평도 포격 사건을 겪으면서 한국사회의 북한에 대한 인식은 극도의 증오와 불신이라는 정반대의 분위기로 변하는가 하면, 극우 세력들은 전쟁까지 하자고 선동했다.

경제적으로는 IMF 사태 이후로 취업난, 비정규직, 공무원 열풍 등 2010년대까지 이어지는 문제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2010년대 현재 상상하기 힘든 웰빙 열풍이 나타나는 등 체감경기는 2010년대보다는 상대적으로 나았다는 평가가 있으나, 단순히 단어 하나로 시대상을 평가하기에는 무리다. 경제 문제는 정권 이양을 야기시킨 주요 요인이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적 경제 질서의 도입으로 인해 IMF 사태 이전에 비해 빈익빈 부익부, 양극화 문제가 심화되어 OECD 1위 수준의 높은 자살률 문제 등이 때부터 시작되었다. 2000년대의 정치인 김근태는 이를 두고 ''패자부활전 없는 사회를 만들었다"고 한탄하기도 하였다.

2002년 인도네시아 치하였던 동티모르가 21세기 최초로 정식 독립을 했다. 다음으로 2006년에 독립한 몬테네그로, 그리고 2년 후 독립한 코소보가 있으나 코소보는 미승인 국가이다. 이라크도 2003년 미군에 의해 후세인 독재정권이 무너져 민주화의 길이 마련되었으나,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권력다툼, 미군에 대한 공격 등으로 혼란기에 접어들었다.

3. 문화

한국은 1990년대 막판 IMF 외환위기의 아픔을 뒤로하고 대중문화의 황금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전 분야의 걸쳐 발전을 이뤄냈으며 지금도 화자되는 살인의 추억,올드보이등의 명작들이 탄생했으며 게임계는 넥슨, 엔씨, 넷마블 ,한게임 등, 음악계는 JYP, YG, SM엔터테인먼트 같은 대형 대중문화 기업들도 생겨났다.[5] 출판만화는 정부의 철퇴와 스캔본 등의 문제로 몰락했지만, 대신 그 인력들이 아동서적으로 흘러들어가 WHY시리즈, 그리스 로마신화같은 걸출한 결과물이 나오기도 했다. 또한 2010년대 초반에는 웹툰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등 여러 분야에서 진일보가 있었다. 덕분에 이시기 1990년대생 ~ 2000년대 초반생들은 세계 유소년처럼 풍부한 문화생활을 즐기며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한국 현실에 따라 성인이 된 뒤에는 청년 실업으로 고통받게 된다.

3.1. 출판계

2000년 들어 가장 크게 불거진 문제는 바로 '도서정가제 문제'였다. 문화관광부가 9월 도서정가제 의무화를 담은 '출판 및 인쇄진흥법안'을 입법 예고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해당 제도의 핵심 문제는 '온라인 서점의 할인을 인정할 것인가, 막을 것인가'란 문제였는데, 논란 끝에 10%까지 허용하는 걸로 결론이 나 2002년 초부터 실시됐다. 당년 초부터 관심사로 떠오르기 시작한 e북이 7월부터 첫 선을 보였다. 예스24는 첫 e북 상품으로 이순원 소설작품 <모델>을 내놨고, 9월에 구효서의 <정벌>, 백민석의 <러셔>가 각각 이어서 나왔다. 이에 골드북닷컴은 이인화 소설 <려인>을, 에버북닷컴은 이문열의 소설 <하늘길>을 각각 e북으로 내놨다. 동년도 최대 베스트셀러는 1~3위를 석권한 <해리포터> 시리즈였으며,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시리즈, <가시고기>,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 <국화꽃 향기>도 뒤이어 50만 부 이상을 기록해 베스트셀러 지위를 굳혔다.

2002년 출판계 화제는 바로 MBC <느낌표> 코너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란 코너였는데, 해당 프로에 소개된 <괭이부리말 아이들>, <봉순이 언니>,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등 대다수가 밀리언셀러 지위를 얻었고, 타 도서들도 수십만 권씩 팔려 'TV 매체의 위력'을 선보였다. 느낌표 선정도서들이 상위권을 차지하자 출판계에선 이 프로그램을 두고 찬반논쟁이 치열했으나, 국민적 도서 열풍을 조성하는 데 공헌했다. 그 외에도 KBS1 <TV, 책을 말하다>, MBC <행복한 책읽기> 둥 책 소개 방송 프로그램의 확대, 일간신문의 북 섹션 안정화, 시민단체들의 독서운동 확대 등에 힘입어 출판시장이 오랜만에 활성화됐으나, 그 이면엔 출판사 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됐다. 게다가 같은 해 종로서적이 부도를 내 충격을 안겨 주었다.

2003년 들어서도 출판계는 여전히 불황에 시달렸다. 경기침체와 맞물리면서 출판시장 위축이 뚜렷이 드러나 전년도에 비해 5.1%로 줄었고, 분야별로는 아동 및 총류가 큰 감소세를 보였다. 거기에 논란이 됐던 도서정가제가 2월 27일부터 시행됐으나 마일리지 등 변형된 할인제가 성행했다. 당시 인기도서로는 '10억 만들기'나 '부자되기', '청년 창업' 등 재테크 관련 도서가 강세를 보였으며, 인터넷 소설 및 카툰 에세이 역시 인기를 끌어 귀여니의 <그놈은 멋있었다>나 <파페포포 메모리즈> 같은 게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3.2. 음악



음악적으로는 2000년대 에 잠시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포스트록의 열풍이 불었으나, 90년대의 그런지브릿팝등의 영향력에는 미치지 못했으며,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그야말로 하나의 정형화된 음악적인 흐름이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 이는 다시 말하면 다른 어느 때보다도 다양한 음악들이 나타나는 시기였다고 할 수도 있다. 이 무렵부터 인디 음악이 인터넷과 기술의 발전으로 크게 성장하기 시작하여 아케이드 파이어애니멀 콜렉티브 같은 거대 그룹들도 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 가장 흥행한 뮤지션들은 오히려 90년대에 음악적 기반을 둔 콜드플레이 같은 포스트 브릿팝 그룹들이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최고의 아이돌로서 2000년대 초반을 휩쓸었다. 그녀의 라이벌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역시도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아메리칸 아이돌 초대 우승자인 켈리 클락슨은 2000년대 중반을 완전히 휩쓸며 메가히트곡들을 배출해냈다. 또한 혜성처럼 나타난 에이브릴 라빈은 독보적인 컨셉으로 2000년대 초중반 신드롬을 일으켰고 이미지 변신 후에도 큰 인기를 얻으며 2000년대를 지배했다.

다만 이 무렵부터 대중음악의 주류는 락을 중심으로 한 백인음악에서 흑인음악으로 완전히 넘어가게 되었다. 솔로데뷔를 한 비욘세는 말그대로 '아이콘'이 되었으며 2000년대 초반 암흑기를 겪었던 머라이어 캐리는 힙합과 R&B를 적극적으로 결합시켜 다시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1990년대에 황금기를 맞이한 힙합은 여전히 메인스트림에 건재했으며 빌보드를 지배했다. 이 시기에 성공한 대표적인 아티스트로는 Jay-Z, 칸예 웨스트, 에미넴, 아웃캐스트 등이 있다. 또한 장르에 있어서도 00년대 후반에 들어서 기존의 올드 스쿨, 붐뱁 장르가 아닌 사우스 힙합을 기반으로 한 트랩뮤직이 등장하기 시작한 시대이다. R&B 장르의 성장 역시 두드러져 에이미 와인하우스와 같이 소울에 기반을 둔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이 성공을 거두기 시작하였다.

또한 산타나, 리키 마틴, 엔리케 이글레시아스, 마크 앤소니, 샤키라 등의 라틴팝이 메인스트림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한 시기도 2000년대 였다. 이후 라틴팝은 그 자체보다는 댄스음악이나 힙합에 적지않은 영향을 주기도 했다.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로 시작된 옛 것을 가져다가 현대식으로 조합하는 복고 열풍은 현재까지도 장르를 가리지 않고 위세를 떨치고 있다.

인터넷 문화와 컴퓨터 음악의 발달에 힘입어 인디와 메이저의 경계가 점차 희미해지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 무렵부터는 방구석 인디 밴드라고 해도 자신들의 음악을 당시 흥했던 마이스페이스 등의 인터넷 매체를 통해 올리는 것으로 자신들을 알릴 수 있게 되었고, 이를 통해 인기를 얻는 경우도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사례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것은 정말 엄청난 데뷔 시절 인기를 보여준 악틱 몽키즈. 또한 DAW나 신디사이저의 발전 등으로 개인이 음악을 쉽게 만들 수 있게 됨에 따라 여러 개성있는 소규모 그룹 혹은 원맨 밴드 등이 인디에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인디 신의 성장을 바탕으로 피치포크 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다만 인터넷이 발달함에 따라 1990년대에 정점을 찍었던 피지컬 앨범시장이 급격히 축소되기 시작한다. 1990년대엔 자주 나오던 3천만장 돌파앨범도 단 1개밖에 없었다. 2000년대 후반엔 본격적으로 디지털 시장이 발달하기 시작하고 유튜브도 성장하기 시작하면서 2010년대 초반의 디지털 시장 황금기의 기반이 다져진 시기이기도 하다.[6]

일본 대중음악(J팝)은 에이벡스 계열의 위세가 잠시 주춤한 사이, 2000년대 중반까지 J-힙합, J-레게 등의 음악이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대표적으로 GReeeeN, FUNKY MONKEY BABYS, 케츠메이시 등의 아티스트들이 대중성을 바탕으로 장르의 지평을 넓혔다. 그러나 2000년대 에는 음반 시장의 쇠퇴, 그리고 새로운 아티스트의 부재로 인해 J팝 전반이 침체기를 맞았다.

3.2.1. 2000년대 한국 음악


대한민국에서는 2002년을 끝으로[7] 1세대 아이돌들이 물러가게 되었고 한동안 공백상태이던 가요계를 브라운 아이즈를 시작으로 SG 워너비, 테이, 씨야 등의 미디엄 템포 발라드[8], 버즈를 위시로 한 비주얼계 락발라드 장르들이 엄청난 인기를 이끌었다.

1세대 아이돌 그룹들은 해체 또는 침체기를 맞았지만 2000년대 초반은 여자 솔로 가수들의 전성기였으며 장나라, BoA, 이효리, 이수영 등이 전성기를 맞이한 시기였다. 그나마 남자 솔로 가수는 와 남자 아이돌들은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SS501 등이 데뷔하면서 큰 인기를 얻고 명맥을 이어갔지만 이 시기에 걸그룹 시장은 말 그대로 초토화였다. 그나마 남아있었던 게 쥬얼리 정도이며 아이돌 공장이라 불리우는 SM 엔터테인먼트마저 걸그룹 히트에 연달아 실패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 열풍도 그렇게 오래가지는 않았다. 2017년 히든싱어, 슈가맨 등의 프로그램으로 '그때 그 시절이 좋았다..' 같은 추억보정을 얻고 있지만 소몰이창법 항목을 들어가보면 알 수 있듯이 그 당시 가요계는 식상하다, 감정을 낭비한다 등의 지탄을 받고 있었고 매 곡마다 짜는 듯한 목소리로 대중들의 귀도 지쳐있던 상황이었다. 또한 2000년대 초반 이후, 음반 시장은 몰락한 가운데 아직까지 음원 시장이 제대로 커지지 않았기에 여러모로 시장성에 있어서도 크게 위축되었던 암흑기였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고 있던 2007년, 상반기엔 아이비의 유혹의 소나타가 포문을 열었고, 이어서 나온 원더걸스Tell Me가 엄청난 반응과 폭발적인 히트를 기록하며 제2세대 아이돌 시대를 열게 되며 이후 빅뱅, 원더걸스, 소녀시대, 카라 등의 2세대 아이돌들이 미디엄 템포 발라드, 락발라드 가수들을 대체하면서 본격적인 2차 아이돌 전성시대가 2000년대 후반경인 2009년부터 시작되었다.

특히 2007년 ~ 2008년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가요계의 색채가 다양했던 시기인데 바로 소몰이 창법과 발라드의 마지막 전성기와 2세대 아이돌의 시작점이 교차하던 과도기여서 음악장르가 다양했었다. 이 시기에는 아이돌 음악과 발라드가 1위를 양분했지만 소녀시대 Gee 열풍 이후인 2009년부터 아이돌 후크송의 전성기가 시작되면서 발라드가 아이돌에게 완전히 자리를 내어주고 쇠퇴하기 시작하면서 현재의 가요계 구도가 자리잡혔다.

인디 음악의 경우는 그야말로 흥망성쇠를 거듭한 시기로, 한창 성장하고 있던 시기에 카우치 사건으로 한번 큰 타격을 입었으며, 이후 2000년대 후반 들어 장기하와 얼굴들 등 2세대 그룹들이 등장하면서 점차 인디 신 자체를 부활시키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의 한국 음반시장은 카세트 테이프CD음반이 공존하고 있었지만 소리바다프루나, 당나귀로 대표되는 불법 P2P 프로그램이 성황을 이루던 2000년대 의 타격과 연이은 아이리버, 코원, YEPP, iPodMP3 플레이어의 공격으로, 2000년대 이 되면 카세트 테이프는 물론 CD로 음악 듣는 시대는 사실상 끝이 난다. 물론 2020년대를 향해가는 지금도 CD 판매고를 차트 산정의 주요 척도로써 인정하고는 있지만, 1990년대의 판매량에 비하면 무시해도 될 수준인 경우가 많고, 몇몇 아이돌 그룹이 기록하는 음반 판매량은 음악을 듣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해당 그룹의 차트 순위를 높이기 위한 팬들의 화력지원일 뿐, 실질적으로 CD로 음악을 듣는 팬들은 몇몇 마니아들을 제외하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사실 팬들 입장에서는 음원 판매량도 음반 판매량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겨지는 까닭에, 어차피 CD를 샀더라도 음원을 구입하게 되므로 굳이 귀한 CD를 개봉하여 상품성을 낮추느니 음원으로 듣는 게 훨씬 속 편하기도 하기 때문. 따라서 음반 제작사에서는 음반을 구매한 경우에만 얻을 수 있는 각종 특전(예를 들어 화보사진 카드나 보너스 트랙 같은)을 부여하기 시작했는데 이것도 200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현상이다.

3.3. 디지털 방송


임창정 - 소주 한 잔 SBS 인기가요 라이브 (2003.06.08)





버즈 - 가시 MBC 음악캠프 라이브 (2005.05.28)버즈 - 겁쟁이 KBS 뮤직뱅크 라이브 (2005.03.11)[9]


스카이라이프 CF - 전인권 편(2003)

2002년 한국에서 스카이라이프지상파 방송사들이 시험방송을 끝내고 본격적인 디지털방송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하지만 방송방식을 DVB VS ATSC 논쟁때문에 시청자의 HDTV 전환시기를 놓치게 했으며 사람과셈틀을 공중분해되게 만들었다. 스카이라이프는 2002년 3월 1일에 정식으로 출범하였다. UHD에서도 답습되고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HDTV의 활성화가 되지 않아(2002년 HDTV 보급률은 2%에 불과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할 수 있다.

TV방송장비 분야에서도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아날로그 테이프가 취재용으로 간혹 쓰였었는데 2005년경에는 완전히 디지털화되었다. 그리고 라디오 방송의 경우도 2004년 전후로 아날로그 오픈릴 테이프에서 디지털 테이프리스 시스템으로 물갈이되었다.

일본에서도 2000년에 BS디지털이라고 위성방성을 이용한 디지털방송이 시험방송되었다. 이때부터 인텔 펜티엄4 시리즈[10]와 nVIDIA Geforce FX또는 ATi Radeon 9500의 보급으로 HD영상[11]컴퓨터로 볼수 있었고 HD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16:9모니터와 디지털방식의 TV[12]도 같이 보급이 이루어 졌다.

HD로 인한 와이드 스크린 열풍때문에 16:10모니터도 나왔을 정도이며 부작용도 생겼는데 배우의 얼굴에 잡티까지 나와서 HD방송을 위한 화장법(?)도 생겨났다. 케이블 방송도 2005년에 CJ헬로비전을 시작으로 2000년대 후반 들어 모든 사업자가 디지털 채널의 운용을 개시하였다. 2006년에 다채널방송(MMS)[13]을 시험방송하면서 위 영상의 화질은 물건너 갔다 카더라. 휴대전화에서도 2005년도에 DMB라는 규격이 개발되어[14] 언제 어디서든지 TV를 볼수있다.

3.4.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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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의 한류열풍을 이끈 겨울연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명작 드라마들이 많았던 시대이기도 했다. 대표작으로는 겨울연가, 올인, 천국의 계단, 파리의 연인, 미안하다, 사랑한다, 내 이름은 김삼순, 쾌걸춘향, 베토벤 바이러스 등이 있다. 겨울연가, 대장금 등은 해외로까지 수출되어 한류 열풍을 이끌기도 하였다.

케이블 방송 드라마 같은 경우 이때까지만 해도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고 대부분의 인기 드라마는 지상파 드라마였다. 아직 인터넷 다시보기 서비스 등이 활성화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시청률이 30-50%에 달하는 드라마들이 여럿 나올 수 있었다.

이 때 드라마들의 특징으로는 첫째, 명대사가 많았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대표적으로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천국의 계단)" "밥 먹을래! 나랑 같이 죽을래!(미안하다, 사랑한다)," "이 안에 너 있다(파리의 연인)" "애기야(파리의 연인)" 등이 있다.

다음으로는 특히 초중반의 멜로 드라마를 중심으로 주인공들이 평범하기보다는 특별하고 극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설정되었다는 것이다. 출생의 비밀, 환생, 기억상실, 죽음, 재벌 등 주인공들은 평범하기보다는 매우 다사다난한 인생을 사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작품이 많다.[15] 이러한 극적인 스토리 전개는 등장인물들의 개성을 부각시키며 드라마에 극적인 긴장감 및 감동을 더해주는 요소로 작용했다.

마지막으로 대부분의 드라마에 OST가 삽입되기 시작하였으며 또한 명곡이 많았다는 특징이 있다. 천국의 계단보고싶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눈의 꽃, 쾌걸 춘향응급실[16], 베토벤 바이러스의 들리나요.. 등이 유명하다.

결론적으로 2000년대의 명작 드라마들은 주인공들이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면서 명대사를 통해 감정을 풍부하고도 애절하게 표현하는 모습이 시청자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한편 큰 감동을 주었기 때문에 인기를 끌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OST까지 명곡이 많았기 때문에 작품에 완성도를 더해주었다. 이후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드라마는 2000년대와 같은 무거운 정통멜로보다는 잔잔한 일상을 다루거나 로맨틱 코미디와 같은 장르가 유행하면서 변화를 겪게 된다.

또한 시트콤의 전성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00년대 초중반에는 논스톱 시리즈가 젊은 세대 사이에서 좋은 인기를 얻었고, 00년대 중후반은 하이킥 시리즈가 공전의 히트를 쳤다. 논스톱은 당시 대학생활을 배경으로 하여, 10대에게 쓰잘데기 없는(...) 대학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었다.다들 대학가면 조인성, 현빈, 한예슬 같은 사람 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이후 레인보우 로망스에도 청춘 시트콤에 대한 영향을 주었으나, 이는 흥하지 못했고, 그 이후 나온 거침없이 하이킥은 말 그대로 초대박. 가족 시트콤이지만 러브라인도 갖춰져 있고, 내용들도 한편한편 손에 꼽을 정도로 재미있어서 지금까지 회자되는 레전드 시트콤이다. 지붕뚫고 하이킥은 전작보다는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그래도 매우 흥했다.결말이 이상해서 그렇지

3.5. 패션

2000년대는 남녀 불문하고 샤기컷울프컷이 유행이었다. 당시 동방신기, 이준기, 민경훈 등 젊은 스타들의 머리들도 전부 이 머리였다. 소위 말하는 여자 일진들은 앞머리를 눈썹이 보일 정도로 짧게 자른 후, 샤기컷을 한 다음 볼륨을 한껏 넣는 것이 유행이었다.

패션 스타일은 얼짱출신인 반윤희가 유행시킨 스포츠 브랜드 티셔츠+카고바지 스타일링이 유행이었다. 스키니진은 2009년 ~ 2010년 즈음 되어서야 유행이 되었고, 그 전에는 전부 통이 넓은 바지를 입고 다녔다. 가수들의 패션들도 유행이었는데, 2006년 ~ 2009년 초반에는 힙합 패션, 2009년 봄 ~ 2010년 사이 이후 부터는 소녀시대 gee 열풍으로 인한 컬러 스키니진 패션이 유행이었다.[17]

화장법은 2009년 브라운 아이드 걸스가인이 유행시킨 진한 스모키 화장이 열풍이었다.

국내에서 '일본 스타일'이 유행했던 유일한 시절이기도 하다. 심지어 국내 연예인들도 일본 유명 연예인의 스타일을 따라하거나 참고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본 구제 패션, 일본 액세사리, 일본 화장품등이 옷가게와 온라인에서 특수를 누렸던 시기. 그러나 2010년을 기점으로 한류의 부흥과 함께 한국이 아시아 트렌드를 선도하게 됨에 따라 일본 패션은 이제 오히려 촌스럽고 구시대적인 이미지로 인식되고 있다.

3.6. 영화

2000년대 한국 문화의 핵심. 쉬리의 성공으로 90년대에 가능성을 보여준 영화계는 친구의 800만 관객, 실미도를 시작으로 천만영화들을 배출하기 시작했으며, 올드보이가 해외에서도 비평적으로 대박을 터뜨리며 질적인 성장과 양적인 성장을 모두 해냈다.

이 시기를 대표한 영화배우 송강호, 최민식등은 국민 배우 반열에 오르며 인기를 누렸다. 강제규, 곽경택등의 1세대 감독에서 봉준호, 나홍진, 박찬욱등 2세대 감독들로의 세대교체도 진행되는등 인재풀도 상당했다.

80~90년대 최고 부흥기를 누렸던 홍콩 영화가 빠르게 몰락했던 이유는 영웅본색이후의 양산형들로 인해 영화들 자체가 식상해진데다 1997년 홍콩 반환 때문에 홍콩 영화계 전체가 혼란스러워진 탓인데, 반면 90년대 말까지도 질적으로 암담했던[18] 한국 영화계는 이 시기에 대폭 성장하여 스릴러, 로맨스, 사극등 장르의 다양성을 겸비하여 현재까지도 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2009년에는 외국영화 최초로 아바타가 천만관객을 동원기도 했다.

다만 이 시기에도 성소재클레멘타인과 같은 먹튀작들도 상당했다. 또 친구의 흥행으로 인한 부작용으로 한동안 조폭 소재의 저질 코메디, 싸구려 신파 영화가 엄청나게 범람하기도 했다.

3.7. 예능

00년도 초반에는 짝짓기 예능이 단연 흥했다. 강호동의 천생연분, 연애편지, X맨을 찾아라 등등 커플이 되어 게임을 하는 스튜디오 예능들이 평정했다. 이로 인해서 생겨난 폐해들도 많은데, 당시는 팬덤 문화가 지금처럼 성숙하지 않아서, 짝짓기 예능에 우리 오빠(...)와 커플이 되는 것을 보지 못하던 일부 빠순이들이 상대 여성을 테러하는 일도 빈번했다. 대표적인 피해자로는 강은비. 당시 X맨에서 시아준수믹키유천의 호감을 받았단 이유로 미니홈피는 고사하고 인터넷에 강은비의 루머를 퍼뜨리며 온갖 테러를 단행했다. 심지어 본인들의 오빠들이 먼저 좋다고 한 건데도 먼저 꼬리를 쳤다며 없는 말까지 지어냈다(...).[19] 이로 인해 강은비는 연예계에 발도 디디지 못하고,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걸려서 자살생각까지 했다고 했을 정도이니, 그 당시의 무개념 빠순이들의 만행을 짐작할 수 있다. 짝짓기 예능뿐만 아니라 쟁반노래방, 야심만만 등 토크쇼 예능들도 화수분처럼 쏟아져 나왔다.

00년대 초중반 당시는 스튜디오 예능이 대세였던지라, 야외에서 하는 예능들은 정말 손에 꼽았을 정도인데, 이 예능의 판도를 바꾼 것이 무한도전이다. 리얼 버라이어티를 표방하는 취지로 스튜디오보다는 직접 야외로 나가 몸을 쓰는 모습들로 많은 사랑을 받자 이후 예능들도 우후죽순처럼 야외 예능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 후 1박 2일 이라는 리얼 야생 버라이어티가 생겨나면서, 스튜디오 예능에서보다 친근한 모습의 연예인들을 보여주며, 60대 이상의 노년층에게까지 어필했다. 당시 무한도전이 10~30대의 젊은 세대의 지지층이 두터웠다면, 1박 2일은 연령을 불문하고 사랑을 받았다. 그렇지 않아도 유재석vs강호동의 국민 MC 대립구도가 팽팽했는데 타 방송사의 인기 프로그램들을 각자가 진행하면서 라이벌 기믹이 생겼고, 실제로 당시 커뮤니티에서는 무한도전 빠들과 1박 2일의 빠들의 의미없는 경쟁이 판을 쳤다.[20] 두 개의 예능프로그램이 흥하면서, 개나소나 리얼버라이어티를 들고 나왔지만 대부분 도태되었다. 그 덕분에 스튜디오 예능은 손에 꼽다시피하고, 토크쇼 형식의 예능은 멸종 위기에 처해있다(...).

3.8. 만화, 애니메이션

대부분의 사람들이 90년대와 이 시대를 일본 애니 최후의 전성기로 기억한다. 반면 영미권 애니계에선 2000년대 초반부터 디즈니가 드림웍스, 블루스카이 스튜디오 등 후발 주자들과 지브리 등 일본 애니의 약진으로 쇠퇴를 거듭해 2004년 <카우 삼총사>부터 2009년 <공주와 개구리> 이전까지 2D 애니메이션 제작이 중단됐고, 대신 픽사 합작 애니가 상승세를 더하는 기현상을 보여주었다. TV 애니계에선 니켈로디언이 <네모바지 스폰지밥>, <티미의 못말리는 수호천사>, <대니팬텀>, <아바타: 아앙의 전설> 등을 히트쳤고, 카툰네트워크도 <벤 10> 등으로 건재를 과시했다.

3.9. 게임

2004년 E3 당시 닌텐도 DS 발표영상

닌텐도의 경우 이 시대 부활했고 이시대에 출시된 에 비해 저평가를 받아 왔던 시대였고, 마이크로소프트엑스박스 시리즈엑스박스 / 엑스박스 360이 등장하여 많은 인기를 얻었다. 소니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의 경우 초반부의 전성기중후반의 암흑기를 동시에 겪었던 시대다. 한국은 ADSL 보급으로 온라인 게임이 기존 패키지 게임과 ARS 게임 시장을 압살했으며 SCEK와 한국마이크로소프트가 플레이스테이션2 등 해외 게임기들을 정발하기도 했다. 반면 닌텐도는 2002년 대원씨아이를 통해 게임보이 어드밴스, 게임큐브, 닌텐도DS 등을 수입했으나, 한글화 미비, 경쟁사들의 텃세 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2006년에 게임기 수입권 등을 신설법인 한국닌텐도에 넘겼다.

4. 이 시대에 시작되거나 만들어진 것들

5. 이 시대에 쇠퇴한 것들

이전 시대에 나와 지속적으로 쓰인 것들을 적을 것.
  • 고가차도: 원래 교통체증 해소를 위해서 건설되었으며, 과거에는 근대화의 상징으로 추앙받았으나, 2000년대부터 오히려 교통체증을 유발하고 도시미관을 저해시킨다는 이유로 하나씩 철거되기 시작하였다.
  • 공중전화: 2000년대까지는 과거 20세기 시대들과 똑같이 사용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 편이긴 했으나 2010년대 초반을 넘어간 이후론 완전히 쇠퇴하였다.
  • 지상파 애니메이션 방송: 2000년 ~ 2004년까지는 황금시간대에 애니메이션 방영을 해 주었으나 2005년 이후 투니버스 등 케이블 애니메이션 전문채널으로 히트작이 넘어가게 된다.
  • 교련
  • 단파방송, 단파수신기
  • 노점상: 2000년대 초반까지는 길거리에 꽤 많이 보였으나[26], 세금을 내지 않고 탈세하며 장사한다는 인식, 통행에 불편을 준다는 인식, 위생 문제 등이 점차 확산이 되면서 철거되는 추세이다.
  • 도서대여점 : 만화책과 (인터넷 소설, 장르소설 위주의 각종) 소설, 비디오와 DVD가 공존하던 도서 대여점은 2000년대의 상징과 같은 것이 되었다.
  • 떡볶이 활동복: 2000년대까지 군대의 활동복 하면 이걸 생각했다.
  • 라디오
  • 만화 카페
  • 비둘기호: 이미 1990년대부터 장거리 편성들이 자취를 감추다가 2000년 11월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정선선 구간의 비둘기호가 운행을 종료한다.
  • 빠른 생일: 2010년부터 1월생~12월생이 함께 초등학교 1학년으로 입학하면서 '빠른 년생'이 사라지게 되었다.
  • 새마을호: 2004년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 최고등급의 열차라는 상징성이 강했으나, KTX의 개통으로 최고 열차의 지위에서 내려왔을 뿐만 아니라 노후화 때문에 점점 편수가 줄어들고, 2014년 이후 ITX-새마을로 거의 대체되었다. 그리고 2018년 4월 30일에 퇴역하였다.
  • 오락실: 한국에서는 PC방의 부흥으로 인해 시망크리를 탔고, 결정적으로 오락기를 가장한 도박기계가 나오면서 완전히 몰락한다.
  • 카세트 테이프: MP3의 등장으로 쇠퇴하였다.
  • 패키지 게임: 한국 한정으로 [27] 온라인 게임불법 공유, 그리고 무분별한 게임잡지 번들 공급으로 인해 망했고 스팀이 나오면서...
  • 프로씨름
  • 플로피 디스크
  • 유고슬라비아: 몬테네그로의 탈퇴로 해체
  • 통일호: 2004년 KTX의 개통으로 완전히 폐지. 이제는 사진이나 박물관에 가서 봐야 한다.
  • CD 음반: 불법 다운로드 급증과 음원 서비스의 발달로 CD 음반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었다.
  • MBC 대학가요제: 2000년대 들어 망조가 보이더니 결국 2013년 폐지 크리.
  • 음악캠프: 2005년 7월 말 카우치 노출사고 때문에 폐지 크리.
  • CRT: LCD가 나오면서 사라져갔다.
  • PC통신: 인터넷의 대중화로 급격히 쇠퇴하였다.
  • VHS: DVD의 보급 및 불법 다운로드 등으로 쇠퇴하였다.
  • 윈도우 95, 윈도우 98, 윈도우 ME: 2006년에 함께 지원이 종료되었다.
  • 콩코드: 2003년 11월 26일을 마지막으로 운항 종료.
  • 축산업협동조합, 삼림협동조합 : 2000년 7월 농협과 통합하면서 사라졌다. 현재도 일부는 축협이라는 단위를 쓰나 농협 마크로 통일되었다.
  • 서울종합터미널(호남선) : 2000년에 센트럴 시티로 전환되었다.
  • 호남선터미널에서 출발했던 영동선 고속버스 노선 : 2000년 7월에 경부선터미널로 이전하였다.
  • 조흥은행 / 서울은행 / 주택은행 : 2000년대 들어서 타 은행과의 합병으로 사라졌다. 조흥은행은 신한은행과 합병되었고(2006년) 서울은행은 하나은행과 합병되었고(2002년) 주택은행은 국민은행과 합병되었다(2002년). 주택은행의 주택예금과 복권사업은 국민은행으로 이관되었다.[28]
  • 초저항 : 철도박물관에 정태보존중인 대한민국 철도청의 1x01편성이 1999년에 퇴역하는 것을 시작으로 서울지하철공사(現서울교통공사)의 초저항도 서울교통공사 1000호대 VVVF 전동차로 대체되면서 사라졌다.
  • 서울특별시 시내버스(2004년 7월 개편 이전) : 2004년 7월 1일 대중교통 개편화에 따라 입석, 좌석버스가 폐지되고 간선, 지선, 광역, 순환버스로 전환되었다.
  • 서울 - 경기, 서울 - 인천 시내버스 시계외요금(입석버스 기준) : 2004년 7월 1일부로 전면폐지되었다.

6. 이 시대의 상징들

6.1. 이 시대를 상징하는 것들

6.1.1. 한국 한정

  • 스타크래프트: 2000년대의 상징 그 자체이며 이 게임 덕분에 e스포츠프로게이머가 생겨났으며 게임 자체는 1998년 3월 31일에 나왔으나,[29] 2000년대 들어서 전성기를 누렸다.
  • 박지성: 박지성이 맨유에서 활약하던 시절이다.
  • 버즈: 2003년부터 2006년까지 4년이 채 안되는 짧은 전성기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넘사벽 인기로 당시 10대들의 우상으로 부상했다.
  • 리니지 - 리니지 2: 리니지는 1998년에 나와서 2000년대 초반에 전성기를 누렸고, 이후 2003년 10월에 정식 상용화된 속편인 리니지 2로 2000년대 중반 온라인 게임 시장을 호령했다.
  • 2002 한일 월드컵 - 태극전사들의 첫 FIFA 월드컵 4강 진출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4LEAF
  • 개그 콘서트: 1999년 9월 4일 첫방송
  • 메이플스토리: 2003년부터 정식 서비스된 이후 1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일간 검색어 순위 10위 이내에 자주 등재될 정도로 대표적인 국산 2D MMORPG로 빠르게 자리잡았다.
  • 바람의 나라
  • 노스페이스: 2000년대 후반부터 2014년까지 전국적으로 제2의 교복으로 불리며 인기를 끌었다.
  • 논스톱 시리즈: 시즌제인 2000년 5월부터 2005년 10월까지 방영했던 청춘 시트콤 시리즈.
  • 네이트온: 현재는 사용자가 거의없다.
  • 대장금: 2003년 ~ 2004년 사이에 방영된 사극 드라마로, 평균 시청률 40%를 넘은 대히트작.
  • 버디버디: 2000년 1월에 처음 서비스된 이래로 2009년까지 훗날 다른 경쟁사 메신저의 영향력이 커지기 직전까지는 한때 독보적인 인스턴트 메신저였다.
  • 반미
  • 피처폰: 피처폰의 일종인 흑백 혹은 안테나 폴더형 휴대폰이 (2000년 ~ 2004년)을 휩쓸었다면, 또 다른 종류인 가로본능과 얇은 슬라이드, 폴더형은 (2004년 ~ 2008년)에 인기를 끌었다. (2009년 ~ 2010년)에는 디자인이 예쁜 폴더폰과 터치폰의 유행, 2010년대 초반 스마트폰 과도기를 거치고 난 이후인 2012년 이후 스마트폰이 대세가 되면서 현재 모습이되자 사용자는 많이 줄었지만 공부에 전념하기 위한 학생들이 임시 기기로 사용하는 모습이나 어르신들이 사용하는 모습은 간간히 볼 수 있다.[30]
  • 싸이월드(2000년 ~ 2010년)
  • 세이클럽
  • 아이러브스쿨
  • 야후 - 야후꾸러기: 당시에는 네이버의 쥬니어네이버와 경쟁을 치렀으나, 2012년 12월 31일을 끝으로 야후코리아가 폐쇄되었다.
  • 엽기
  • 엽기송
  • 엽기토끼: 2000년에 플래시 애니메이션인 마시마로의 숲을 통해 알려진 이후로 본명보단 엽기토끼라는 애칭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 외계어
  • 웰빙: 참여정부 시기(2003년 ~ 2008년)
  • Windows 98 SE: 1999년 10월에 시작된 국민PC의 보급으로 2000년대 까지 널리 사용되었던 OS.
  • Windows 2000: 기업용 및 서버용에 많이 쓰였던 OS. 반 년 뒤에 나온 Windows Me의 혹평으로 인해 가정용으로도 사용하는 경우가 제법 많았다.
  • Windows XP: 2010년대 초반까지 사용
  • 소몰이창법: 2003년 ~ 2008년
  • SG 워너비
  • 장미가족의 태그교실
  • 조폭 코미디
  • 졸라맨: 2000년 엽기토끼와 함께 어도비 플래시로 제작된 웹 애니메이션 중 가장 유명한 애니메이션 중 하나.
  • 판타지 개그
  • 패밀리가 떴다: 2008년 ~ 2010년
  • X맨을 찾아라: 2003년 ~ 2007년
  • 패밀리 레스토랑: 경양식집의 후계자로 보다 다양한 메뉴와 훨씬 비싼 가격을 자랑했다. 2010년대 초반 이후 경제 위기로 인해 쇠퇴했다.
  • 포트리스 2 블루 아케이드
  • 포트리스3 패왕전
  • 플래시사이트
  • 태권브이 활동복: 물론 얼마 안 가 떡볶이로 다시 교체되기는 했다.
  • 원더걸스 텔미 열풍
  • 투니버스(2000년대): 투니버스에서 방영해준 소위 추억의 애니들은 1990년대생 ~ 2000년대초반생들에게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 합성-필수요소 갤러리(현 합성 갤러리): 2000년대 중반까지 보면 존재감 없는 디시인사이드의 한 갤러리이나, 2008년 빠삐놈 발표 이후 합성물들이 대거 생산됐다. 그 위상을 발휘한 것이 2000년대 후반의 유행어 몇몇이 합성요소 속 인물의 대사인 것이다.
  • 햇볕정책
  • 허무개그
  • 허무송
  • 힐리스: 2003년부터 반짝 인기 상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 지상파 DMB: 2005년 12월 1일 개통 이후로 전철 탑승객들이 대부분 지상파 DMB를 감상하는 진풍경으로 바꾸었다. 지금은 스마트폰이 그 자리를 맡고 있는 중.
  • PMP: 2002년에 처음 등장한 이후로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직전 2012년 까지 동영상 감상용 플레이어로 많이 사용된 휴대용 전자 기기.
  • 닌텐도 DS: 현재는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인기가 식었지만 2006년 7월 한국닌텐도의 공식 출범 이후로 인기를 끌기 시작해 1990년대생 ~ 2000년대 초반생들에게는 휴대용 게임기의 대명사가 되었다.[31]
  • 플레이스테이션 포터블: 닌텐도 DS만큼 대중적이진 않았지만 2007년 4월 가격 인하 발표 덕분에 닌텐도 DS와의 가격 차이가 크게 줄어들어 한때 고사양 휴대용 게임기의 대명사로 거듭나기도 했었다.[32]
  • 플레이스테이션 2: 일반 가정용뿐만 아니라 업소용으로도 인기가 많았던 게임기이자 거치형 콘솔 게임기로써는 마지막 리즈시절이었다.
  • WAP: 물론 비싼요금때문에 사회문제가 많았다.[33] 하지만 중, 후반부터 범국민 데이터 요금제라던가 무게타라던가 프리존이 나오면서 어느 정도는 쓸만해졌다.
  • Fimm 240 무제한 프로모션/june(Data) 무제한 프로모션: 그 당시 스마트폰사용자들에겐 상징과도 같은 요금제였다.
  • KTF: 원래 1997년에 창립된 한국통신프리텔로 출발했던게 2001년 5월부터 사명이 변경되어 2009년 6월 1일 KT에 흡수되기 직전까지 사용되었다.
  • 뇌구조

6.1.2. 세계 공통

6.2. 유행어

6.2.1. 초반(2000 ~ 2003)

6.2.2. 중반(2004 ~ 2006)

6.2.3. 후반(2007 ~ 2009)

7. 2000년대생

2019년부로 2000년생이 2000년대생 첫번째로 성인이 되었고, 2009년생이 초등학교 고학년이다.

2000년부터 2009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을 말한다. 또한 이들을 Z세대라고 한다. 지금 한창 학창시절을 즐기고 있을 연령대.[35]

사회적으로는 저출산 시대[36]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60만대를 유지하던 출생아수가 즈믄둥이로 불리는 2000년을 정점으로[37] 2001년에는 55만으로 확 떨어지고, 2002년부터는 40만대로 내려앉았기 때문이다.[38] 또한 이들은 형제가 없는 외동인 사람도 많이 있으며 외동이 적은 그 윗세대인 1990년대[39]과 세대차이를 많이 느낀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형제가 대여섯명이었던 기성세대와는 완전 다른 세계에 온 느낌이 들 정도라고.

이들이 사회에 진출할 2020년대부터 인구 절벽으로 헬게이트가 벌어질 예정이다. 때문에 이 세대들이 일본같은 사례처럼 인구 감소로 실업률이 낮아지지는 않을까하는 추측이 나오고 있긴 하지만 사실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들이 사회에 진출하는 2020년대 중후반(대졸 기준)에는 많은 노동이 자동화되어 일자리가 더 부족해질 수도 있고 자동화가 의외로 그리 많은 노동을 대체하지는 않아서 줄어든 인구 덕에 취업이 원활해질 수도 있고 혹은 실제 역사처럼 기존 일자리가 사라지더라도 새로운 일자리들이 쏟아질 수도 있다.

7.1. 2000년대 초반생(2000년생 ~ 2003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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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년대생이라는 타이틀을 얻고 태어난 세대중 급변했던 시대를 경험한 탓에 구분짓기가 매우 어려운 세대인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2000년생 ~ 2003년생의 경우 국민의 정부 때 태어난 세대이고[40], IMF 외환위기 전후세대이다. 또한 이들은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이자 X세대의 자녀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들은 태어난 시기에 타이틀이 항상 붙는데 2000년생 : 새천년 밀레니엄 베이비/ 즈믄둥이, 2001년생 : 21세기 최초출생자, 2002년생 : 월드컵둥이로 불리며 90년대 후반생과 마찬가지로 중대한 시기에 태어난 세대이다.[41] 이들은 2019년 기준, 대학교 1학년 ~ 고1이다. 이들은 1990년대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된 세대라, 대부분 세기말 분위기속에서 태어난 마지막 세대라고 평가하여 1990년대생의 연장선 세대라고 평가한다. 그러한 이유여서인지 1990년대생들과 2000년대생들의 문화를 동시에 공감해 사회적 정체성을 공유하는 중립적인 세대이다. 이들은 초등학교에서 좌측통행(2010년 7월 1일 우측통행 전환)과 우리들은 1학년(2012학년도까지 시행), 놀토(2012학년도 폐지), 빠른년생(2009년 폐지)을 마지막 시기에 경험했고, 유치원 시기부터 고등학교졸업 시기까지 6차 교육과정7차 교육과정, 2007 개정, 2009 개정, 2011 개정, 2015 개정을 모두 접한 세대이다.[42] 그리고 아날로그 TV나 비디오테이프, CRT 모니터, 투니버스, 피쳐폰 등의 문화와 물품들을 경험해 본 마지막 세대이고, 윗세대들과 마찬가지로 1998년 김대중 - 오부치 공동선언이후 일본문화 대개방에 따라 국산 애니 세대인 이전 이후 세대와 달리 대한민국 역사상 유일하게 일본 문화 컨텐츠를 접하여 유년시절 동안 즐겨본 유일한 세대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들이 과거에 본 만화 대부분이 일본 애니라서 일본 문화가 더 익숙하다고 한다. 이러한 시대적, 문화적 변화가 이들이 학창시절 사이에 급변하여 과거에는 닌텐도 게임, 컴퓨터 게임(쥬니버 네이버, 야후꾸러기 등), TV 중독 세대로 불렸던 세대가, 현재는 스마트폰,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중독 세대로 뒤바뀐세대이므로 문화의 급변을 한번에 체감한 세대라 이들의 처지는 날이갈수록 계속 변화하고 있다. 정보에 의하면 IT업계와 언론계 혹은 윗 세대들은 2000년이후생 부터는 스마트폰유튜브, SNS등 디지털 매체들을 태어났을 때부터 접하여 익숙하게 경험한 세대인 Z세대라고 단호하게 주장하며 선을 긋는데, 이유는 이들이 태어난 년도 숫자가 2000년 이후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생들까지는 출생년도 숫자가 그들보다 더 윗세대들과 같이 1900년대에 속하기 때문에 아날로그를 경험했다고 대부분 인식하지만 2000년 이후면 새로운 천년생이라는 타이틀과 디지털을 본격 경험한 세대인 2000년대 중후반 이후생들의 비중이 2000년대 초반생보다 출생년도 숫자비율이 훨씬 크기 때문에 저절로 같은 세대라고 인식이 들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로 상당히 애매모호한 세대들이라고 평가받는지라 아날로그 세대인 1990년대 이전 출생자들과 디지털 세대인 2000년대 중후반 이후 출생자들 사이에 있는 1990년대 후반생이나 2000년대 초반생들은 아날로그 시대와 디지털 시대를 모두 경험한 세대이기 때문에 구분짓기가 매우 애매모호한 중도 과도기의 세대로 구분된다. 본래 과거에는 1980년대생 ~ 1990년대'''생들과 같이 밀레니엄 Y세대로 분류되었으나, 학창시기 도중 디지털의 상용화로 인한 시대변모로, 현재, 2000년대 중후반 이후생들과 같은 Generation Z세대로 분류되며, 향후 2020년대 이후, 또 다시 세대구분이 바뀔 세대이다. 쉽게말해, 노선을 여러번 갈아탄 세대인지라 태어난 년도 숫자는 현재 초등학생, 중학생들과 같이 2000년대생이지만, 실제 경험은 1990년대생과 비슷한 세대이므로 겉과 속이 달라 폭이넓고 다원적인 세대라고 생각하면 된다.

7.2. 2000년대 중반생(2004년생 ~ 2006년생)

2000년대 중반에 태어난 2004년 ~ 2006년생들의 경우 참여 정부때 태어난 세대이며 2019년 기준 중3 ~ 중1이다. 시대흐름에 따라, 2000년대 중반에 태어난 세대중 2004년생까진 아날로그를 경험한 세대의 끝이며 본격적인 디지털 시대를 경험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이 초등학교생 시절 좌측통행이(2010년 7월 1일 기준) 우측통행로 바뀌었고, 놀토가 사라졌으며[43] 우리들은 1학년도 없어졌다.[44]

7.3. 2000년대 후반생(2007년생 ~ 2009년생)

2000년대 후반에 태어난 2007년 ~ 2009년생들의 경우 참여 정부이명박 정부때 태어난 세대이며[45], 2019년 기준 초등학교 4학년 ~ 6학년이며 2000년대 초반생들이 초등학교 재학시기때 태어난 세대들로 아날로그 정점을 찍었던 시대에 태어났기에 이들은 아예 아날로그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이들이 유치원, 초등학교 시절때는 완전히 디지털, 스마트폰 시대로 뒤바뀐 뒤이다.

7.4. 사회적 가치관

2000년대생중, 2000년 1월 1일생 ~ 2003년 2월 25일 이전생은 국민의 정부 시기에 태어난 세대이고, 2003년 2월 25일생 ~ 2008년 2월 25일 이전생은 참여 정부시기에 태어난 세대이며 2008년 2월 25일생 ~ 2009년 12월 31일생은 이명박 정부시기에 태어난 세대이다.

또한, 2000년대 초반생인 2000년생 ~ 2003년생 들을 다 합친 기준, 이들이 학창시절을 보내던 초, 중, 고 재학시기(2007년 ~ 2022년)동안 대한민국 대통령미국 대통령, 일본 내각총리대신, 북한 지도자등이 많이 바뀌었는데, 대한민국 대통령의 경우는 노무현(2007년 ~ 2008년) → 이명박(2008년 ~ 2013년) → 박근혜(2013년 ~ 2017년) →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정권 공백기(2017년 3월 ~ 5월) → 문재인(2017년 ~ 2022년)이 있고, 미국대통령은 조지 W. 부시(2007년 ~ 2009년) → 버락 오바마(2009년 ~ 2017년) → 도널드 트럼프(2017년 ~ 2021년) → 후임 미국대통령(2021년 ~ 2022년), 일본 내각총리대신은 아베신조(2007년) → 후쿠다 야스오(2007년 ~ 2008년) → 아소 다로(2008년 ~ 2009년) → 하토야마 유키오(2009년 ~ 2010년) → 간 나오토(2010년 ~ 2011년) → 노다 요시히코(2011년 ~ 2012년) → 아베신조(2012년 ~ 2021년) → 후임총리 대신(2021년 ~ 2022년) → 북한 지도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2007년 ~ 2011년) → 김정은 국무위원장(2011년 ~ 2022년) 이처럼 오랜 세월동안 학교를 다닌 탓에 세상또한 급변했고, 그사이 한•미관계, 한•일관계, 남•북관계등 국내 및 외교 소식, 사건•사고 소식들을 수없이 들어왔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격동의 학창시절을 보내서 윗 세대 이상 세대들은 이들이 성인이 되고난 후에는 뜻깊은 학창시기가 될것이라고 평가하는 긍정적 측면이 있는가 하면, 반면 이사실도 모종의 이유로 인정하지 않고, 비판하는 부정적 측면 또한 존재한다.

2000년대생의 경우에는 급속한 탈민족주의, 개인주의화로 인해서 자유주의적 성향이 이전세대 보다는 좀 강하다고 할 수 있지만, 중도 성향도 상당한 강세를 보인다. 다시 말해 극단적인 정치 성향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라는 의미. 이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역사를 직접 경험했거나 그 여파가 남아 있던 시대를 살았던 이전 세대들과 달리 이미 제도적 민주주의가 정착된 이후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다 중도적인 세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이 유년기일 때는 커뮤니티의 막장화를 위시로 한 인터넷의 극단주의화를 경험했다. (일베저장소메갈) 그렇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파생한 고인드립, 욕설에 둔감한 경향을 보인다. ex) ~노체

90년대생들보다도 이전의 산업화 세력 vs 민주화 세력의 구도에서 자유로운 세대일 것이며 독재, 친북 등과 같은 과거의 이념대립보다는 페미니즘, 동성애, 난민, 권위주의, 검열 등과 같이 새로 떠오르고 있는 이슈들이 이들의 표심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8. 여담

-02 ~ 04년생에게 2002 월드컵 질문-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대부분 2002년 한일 월드컵을 보지 못했다. 거의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인간의 첫 기억은 만 3세 ~ 4세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2000년대생 중에 월드컵 이전과 월드컵 도중에 출생한 2000년 1월 1일생 ~ 2002년 6월 30일생은 만 3~4세(한국 나이기준, 4세 ~ 5세) 이전이므로 2002 월드컵을 기억할 수 없을 것이다.[46] 2002년 7월 이후 출생자의 경우는 아예 일생에서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겪지도 못했다

9. 각종 미디어에서의 2000년대

10. 2000년대에 들어가는 해



[1] 그러나 2000년에 시행한 밀레니엄 행사에는 그리니치 천문대의 주요 인사들도 참가했다.[2] 네이버 지식백과 21세기의시작 (매일경제, 매경닷컴)[3] 2003년 1, 2월생부터는 빠른년생이 폐지되었기에 2002년 12월생까지다.[4] (2000~2009)일본과 주요국가의 명목 GDP 흐름[5] 언급된 기업들은 다들 90년대 말에 설립되긴 했지만, 대중들의 인기를 얻고대형 기업이 된건 2000년대부터 이다.[6] 물론 디지털 시장도 유튜브의 엄청난 성장과 스포티파이등 스트리밍 서비스의 성장으로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서서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7] 1세대 아이돌의 대표주자로 불리는 H.O.T.는 2001년 2월 해체, 젝스키스 2000년 5월 해체했다. 1세대 걸그룹으로 불리는 핑클과 S.E.S의 경우 S.E.S는 2002년 12월 19일 해체했고, 핑클은 공식 해체는 하지 않았지만 2002년 이후 완전체로서의 활동이 전무해 사실상 해체와 다름 없는 상태가 되었다.[8] 소위 소몰이창법으로 유명한 R&B색깔이 가미된 웅장한 발라드[9] 뮤직뱅크는 2007년에 HD화가 되었다.[10] 팬티엄 3에서도 메모리빨로 재생된다는 소리가 있다.[11] 이때는 HD영상을 제대로 돌리기가 무리였고 대다수 영상들은 아날로그 방송을 녹화하거나 480p급으로 다운스케일링을 해서 시청하였다. 이건 당시 나왔던 DVD디코더의 영향도 있다. 본격적인 HD동영상 열기는 NVIDIA Geforce 6시리즈와 ATi Radeon R400계열의 보급, YouTube의 등장과 함께 이루어졌다. 그리고 컴퓨터의 성능상 720p동영상만 재생이 가능했지만 2006년쯤 인텔 코어2 시리즈가 출시되자 1080p동영상도 재생할수 있었다.[12] 디지털방식 말고도 HDReady라고 디지털방송은 지원하지 않지만 HD영상은 지원하는 TV도 판매되었다.[13] Multi Mod Service의 약자, 유럽에서는 Multiplex를 줄여서 MUX라고 한다.[14] 개발까진 아니고 DAB를 뜯어 고친거다.[15] 당장 위에 언급된 대표작들만 봐도 베토벤 바이러스를 제외하면 위의 요소들이 하나 이상씩은 꼭 들어가 있다. 특히 천국의 계단, 미안하다, 사랑한다가 이러한 특징이 강하게 나타나는 드라마다.[16] 특히 이 노래는 오늘날까지도 노래방 애창곡으로 손꼽힌다![17] 일명 소시지(소녀시대+gee)룩.[18] 그 당시 국내 영화는 대중들 사이에서 극장에서 돈주고 보기 아깝다는 정서가 만연 했을정도로 인식이 안 좋았고, 왕가위같은 홍콩 영화 스타일을 표절할만큼 수준 저하가 심했다.[19] 물론 예능으로 짜고 쳐서 상대방을 선택한 것이므로 오해하지 말 것.[20] 진짜 의미가 없었던 것이, 무한도전은 토요일에 방영되었고, 1박 2일은 일요일에 방영되었다. 웬만한 사람들은 둘 다 봤을 텐데[21] 게임보이 어드밴스의 뒤를 잇는 2000년대 휴대용 게임기의 대표 선두주자였다[22] 2002년 현대자동차대우버스에서 처음으로 출시하였다. (저상 슈퍼 에어로시티, BS120CN)[23] 28일 후가 최초.[24] 물론 정액제는 있었다. 문서 참고.[25] 2년 전인 1998년 안산 경원여객에서 먼저 시험 도입한 적이 있었으나, 2000년 서울시에서 대대적인 보급을 시작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26] 2005년까지 방송되는 드라마에서는 노점상에서 음식먹는 장면이 꽤 많이 보였다.[27] 전세계 시장은 콘솔이 주류다[28] 2002 월드컵 은행도 주택은행이 선정되었으나 국민은행으로 이괸되었다.[29] 한국에서는 1998년 4월 9일에 정발되었다.[30] 피처폰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HD 해상도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던 2012년초반부터다.[31] 본격적으로 닌텐도의 인기가 식기 시작한 것은 닌텐도 3DSWii U 출시 이후인 2012년부터다. 그리고 2014년에는 Wi-Fi 커넥션까지 지원이 끝났다.[32] 하지만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PSP의 인기가 하락했으며, 스마트폰의 급격한 성능 향상으로 인해 고사양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해졌다. 물론 게임 자체의 평균 퀄리티는 후계기인 PSVITA가 나오기 이전에도 PSP쪽이 당연히 우세였다.[33] 요금제는 거의 홍보를 안했다. 자살 사례도 있었을정도(...) 이것때문에 알요금제같은 청소년요금제에서는 데이터 통화료가 포함돼서 소진된다.[34] 삼각관계를 다룬 한솔엠닷컴 통신사 CF에서 나온 카피인데, 공전절후의 대히트를 친 차태현김민희의 명대사였다. 사실상 2000년대 초반을 대표하는 유행어로 부족하지 않았고 전국적으로 수많은 패러디를 했을 정도로 유명했었다.[35] 2000년생은 제외.[36] 엄밀히 따지면 초저출산이다. 인구대체율 이하인 2.1명은 1983년에 이미 깨졌고 2002년부터 시작된 건 합계출산율 1.3명 이하인 초저출산이다.[37] 이 때문에 2000년생까지를 1990년대생의 연장선으로 보기도 한다.[38] 이후에도 카드대란 등의 영향으로 출산율이 계속 떨어져서 2005년에 1.08명이라는 역대 최저 출산율을 기록하다가, 2007년 들어 황금돼지해로 잠시마나 오르기는 했다. 다만 이후에는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여파로 주춤해졌다.[39] 참고로 더 윗세대인 1980년대생에 비하자면 형제가 없는 외자식인 사람이 조금 적은 편이다. 왜냐하면 산아제한정책을 폐지해 일시적으로 출산율이 올랐기 때문.[40] 이는 2003년 2월생까지.[41] 1997년생 ~ 1998년생 : 외환위기가 시작할 때 태어난 세대, 1999년생 : 천년의 마지막 출생자.[42] 6차부터 2011 개정까지 모두접한세대는 2000년생 ~ 2002년 2월생에 해당하고, 나머지 2002년생 ~ 2003년생은 일부만 경험한 세대.[43] 정확히는 2011년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2004년생까지 놀토를 경험하였다.[44] 정확히는 2005년생이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2012년까지 우리들은 1학년이 존재했다.[45] 2007년생 ~ 2008년 2월생은 노무현 정부시기에 태어난 세대이고, 나머지는 이명박 정부때 태어났다.[46] 그래도 2002년생 중, 월드컵 이전 생까지는 집에 앨범을 잘 뒤져보면 비더 레드티를 입고 찍은 사진이 한 두장 정돈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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