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사망자 수순 지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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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순위 | 사망자(명) | 규모 | 명칭 | 진앙 | |
1 | 316,000 | M 7.0 | 2010년 아이티 지진 | 아이티 포르토프랭스 지역 | |
2 | 227,898 | M 9.1 | 2004년 남아시아 대지진 |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해역 | |
3 | 87,587 / M 8.0 | 2008년 쓰촨성 대지진 | 중국 쓰촨성 지역 | ||
4 | 87,351 / M 7.6 | 2005년 카슈미르 지진 | 파키스탄 카슈미르 지역 | ||
5 | 59,259 / M 7.8 | 2023년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 튀르키예 카흐라만마라쉬 지역 | ||
6 | 34,000 / M 6.6 | 2003년 밤 지진 | 이란 밤 지역 | ||
7 | 20,085 / M 7.7 | 2001년 구자라트 지진 | 인도 구자라트 지역 | ||
8 | 19,759 / M 9.1 | 2011년 동일본 대지진 | 일본 산리쿠 해역 | ||
9 | 8,964 / M 7.8 | 2015년 네팔 대지진 | 네팔 구르카 지역 | ||
10 | 5,782 / M 6.4 | 2006년 남아시아 대지진 | 인도네시아 자바섬 | ||
11 | 4,340 / M 7.5 | 2018년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지진 |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섬 지역 | ||
12 | 2,946 / M 6.8 | 2023년 모로코 마라케시사피 지진 | 모로코 마라케시-사피 지역 | ||
13 | 2,698 / M 6.9 | 2010년 위수 지진 | 중국 위수 지역 | ||
14 | 2,530 / M 6.3 | 2023년 10월 아프가니스탄 지진 | 아프가니스탄 헤라트 북서부 지역 | ||
15 | 2,266 / M 6.8 | 2003년 부메르데스 지진 | 알제리 부메르데스 | ||
16 | 2,248 / M 7.2 | 2021년 아이티 지진 | 아이티 니프 지역 | ||
17 | 2,000 / M 6.1 | 2002년 힌두 쿠쉬 지진 | 아프가니스탄 | ||
18 | 1,313 / M 8.6 | 2005년 수마트라 지진 |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인근 |
<colcolor=#ffffff> 2004년 남아시아 대지진 2004 Indian Ocean Earthquake | ||
<colbgcolor=#bc002d> 발생 | UTC+00 | 2004년 12월 26일 00시 58분 53초 |
현지시각 / UTC+07 | 2004년 12월 26일 07시 58분 53초 | |
진앙 | 인도네시아 북서쪽 해역 3°18'57.6"N 95°51'14.4"E | |
진원 깊이 | 30km | |
규모 | Mw 9.2-9.3 | |
최대진도 | Ⅸ[미지질조사국] | |
피해 집계 종료 | 사망자 | 최소 227,898명 |
실종자 | 약 4만 4000 명 | |
재산 피해 | 약 140억 달러[2] | |
피해 국가 | [[인도네시아|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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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내셔널지오그래픽 영상 |
2. 원인과 발생 구조
남아시아 대지진의 주원인은 알프스-히말라야 조산대에 속하는 섭입대인 인도 지각판이 버마 지각판 섭입하는 안다만 해구에서 최대 1,300km 길이의 단층대가 단숨에 평균 15-20m, 최대 36m나 이동한 것이다. 이 지진으로 발생한 지각판의 변위로 생성된 총 에너지는 8.03×1022J(줄)이였다. 이는 2022년 1년간 인류가 소모한 총 에너지 6.48*1020J의 100배가 넘었다. 출처초기에는 모멘트 규모 8.8 ~ 9.0으로 추측하였지만, 이후 후속 연구에서 규모가 상향되었다. 미국 지질조사국에서는 규모 9.15로 측정하였다. 출처 2006년 캘리포니아 공대의 지질학 연구소에선 모멘트 규모 9.2으로 판명하였다. 논문 10년 뒤의 2016년 논문에서는 모멘트 규모 9.25로 추정하여 근래의 연구에서는 규모를 더 상향하고 있다. 논문[5]
거대한 지진이였던 만큼, 전 세계에서 지진파를 감지 할 수 있었다. 표면파인 레일리 지진파는 전 지구표면에서 최소 1cm 이상의 진폭을 만들었다. 당시 전세계 지진계에 관측된 표면파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지진의 표면파가 전 지구를 여러번 도는 것을 볼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도 이 지진의 지진파가 감지되었다. # 또한 판 전체가 크게 움직였으므로 지구 전체의 질량분포도 변했다. 이로 인해 자전축이 최대 3cm까지 요동쳤고, 지구의 자전 주기가 2.86마이크로초(100만 분의 2.86초) 짧아졌다. 자료
이런 강력한 지진으로 섭입대의 지각판이 평균 4-5m, 최대 15m까지 상승했고, 30 km³가 넘는 부피의 물이 들어올려서 거대한 물결파, 쓰나미가 발생하였다. 이때 상승한 바다의 부피로 인해 전 지구의 바다의 수위가 0.1mm 올라갔을것으로 추정한다.출처 지진으로 발생한 물결파의 속력은, 수심에 따라 다르지만 최대 시속 900km로 가장 가까운 인도네시아의 아체 지역을 15분 만에 덮쳤다. 지진으로 당황한 주민들에게 지진해일이 15분 만에, 그것도 30m에서 최대 50.9m[6] 라는 전무후무할 정도의 높이의 쓰나미가 덮쳐 온 것이다. 높이 출처 이 엄청난 높이의 쓰나미로 인도네시아 지역에서만 16만명이 사망하였다. 이후 지진 해일은 7시간을 거쳐 인도양 반대편의 아프리카까지 도달했다.
3. 피해
대부분의 사망자는 지진이 아닌 쓰나미에 의해서 발생했다. 맨 처음 지진이 일어났을 때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지만 최대 100m까지[7] 전술했듯이, 해안에 도달한 해일의 높이는 최대 50.9m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아파트 17 ~ 20층 높이이며, 이 높이의 해일 만으로도 치명적인 인명 피해를 끼친다. 세계적으로 보도된 높이도 30m로 많이 알려졌으며, 이는 아파트 10 ~ 12층 높이다. 가장 가까운 지역이였던 인도네시아 아체에서는 지진 발생 15분 뒤 10층 건물만한 해일이 들이닥치면 대피 방법도 없어 쓰나미에 대부분 휩쓸려가 사망자가 제일 많이 나왔다.쓰나미는 인도네시아에 가장 큰 피해를 입히고 주변국인 미얀마, 방글라데시, 태국, 스리랑카를 강타하고 더 나아가 아프리카까지 도달했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도 수백여명의 사상자와 수만여명의 이재민을 냈지만 동남아 지역 사망자가 너무나도 엄청나서 잊혀졌다. 때문에 이 지역 피해자들은 국제구호조차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한다. 쓰나미의 영향이 미친 국가들을 모두 나열한다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8], 스리랑카, 태국, 미얀마, 인도, 방글라데시, 몰디브, 소말리아, 케냐, 탄자니아, 예멘, 세이셸, 남아프리카 공화국, 호주, 마다가스카르, 모리셔스, 오만, 싱가포르, 프랑스[9]로 총 21개 국가이다. 그야말로 인도양 전체를 덮친 것이나 마찬가지다. 피해를 입은 나라는 이 정도지만 쓰나미가 멕시코 동부 해안이나 캐나다 밴쿠버에도 도달했다는 기록도 나오므로[10], 사실상 전 세계 해안에 쓰나미가 덮쳐진 것이다.
이 당시 아프리카 나라 중에는 마다가스카르나 소말리아까지 피해를 입었는데 소말리아 같은 경우에는 117척의 배가 가라앉았으며, 2천여명이 죽거나 다쳤지만 보상이라곤 꼴랑 7척의 배에 대한 지원금이 나왔을 뿐이었다. 그리고 피해 입은 사람들이 대부분 어부였기에 이들이 먹고 살 길이 없어져 해적이 되었다는 의견까지 제기되었다.
동남아시아의 경우에는 지진과 화산은 수도 없이 겪어 봤지만 특히 쓰나미를 겪어 본 경험이 거의 없는 지역이라는 특징 때문에 조기 경보체제가 미흡하여 운석충돌 수준이라 불릴 정도의 피해가 발생했다. 인도네시아 같은 경우엔 독립을 주장하던 아체 지역이 이 쓰나미로 15만여 명이 죽을 정도로 극심한 피해를 입어 저항군이나 인도네시아군이나 가릴 것 없이 쓰나미 피해로 인해 무기한 휴전에 들어갔고 결국 아체 저항군이 독립을 포기할 정도로 피해가 엄청났다. 피해가 클 수밖에 없던 게 진앙지에서 가장 가까운 지역이 바로 아체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스리랑카에서는 사고로 열차가 탈선해 17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왔다. 그 외에도 어떤 섬은 도시나 마을 자체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리기도 했다. 게다가 이 지진이 얼마나 강했으면 바로 지진 발생 지역 바로 옆에 있었던 섬인 수마트라 섬이 통째로 36m나 이동해 버렸다.[11]
몰디브는 그나마 피해가 제일 적었다. 가까운 인도나 스리랑카만 해도 실종자 및 사망자로 몇만 명이나 피해를 입은 반면 몰디브는 사망자는 82명에 이재민까지 다 합쳐도 500명도 되지 않았다. 국토의 80% 이상이 해발 1m임을 감안하면 기적과도 같은 수준인데 관광지 개발을 최대한 억제하여 산호초를 그대로 놔 두어서 파도로부터 타격을 덜 받은 게 그 이유로 분석된다.
남아시아의 휴양지 해변에는 실종자들의 시체 중 일부가 부패되어 모래사장으로 밀려오거나 모래사장 속에서 시체가 발견되거나 조업 중인 어부들의 그물에서 시체가 발견되거나 하는 일이 가끔 있다고 한다.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본에서는 고베 대지진 후 5년이 지나도 당시 피해를 입은 주민들이 정신적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하는데, 이보다 더욱 심각한 남아시아 대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각 나라 주민들의 고통은 지금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고 실제로 지금도 그 피해의 참상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해일에 직격당한 동남아시아 국가의 현지인들이 가장 많이 희생되었지만, 앞서 말했듯이 인도양이 휴양지로 유명한 까닭에 많은 해외 국민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특히 태국에서 크리스마스 휴가를 즐기러 나온 여행객들이 많이 희생되었다. 영상을 검색해보면 당시 수많은 여행객들이 태국에서 찍은 쓰나미를 볼 수 있다. 영상 모음집. 확인된 외국인 사망자만 2200명 이상이다. 그중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온 국가는 스웨덴으로 무려 543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당시 스웨덴 정부의 추정치에 따르면 국민 2-3만명이 쓰나미 피해지역에 있었고, 1500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발표했다 [12] 이외에도 독일 539명, 핀란드 179명, 영국 143명, 스위스 113명, 프랑스 95명, 홍콩 38명, 일본 37명 등 많은 국가에서 희생자가 발생했다.
한국인들도 유명한 휴양지였던 태국에서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었다. 당시에 태국에 1200명정도의 한국인이 있으며, 그중 확인된 사망자는 20명이였다. 기사 고립되었던 한국인들은 푸켓 공항을 통해서 며칠 동안 귀한했다. 당시 뉴스
4. 반응과 영향
국제사회에서는 많은 원조와 지원을 아끼지 않아 2005년 2월까지 40억 달러의 국제구호성금이 국제연합에 전달되었다. 주요 선진국들의 지원내역을 보자면 대충 호주(7억 6,500만 달러) 독일(6억 6,500만 달러) 일본(5억 달러) 미국(3억 5,000만 달러)이다. 일본이 상당 규모로 지원금을 보낸 것과는 달리 한국은 5천만~1억 5,000만 달러만 냈기 때문에 한국에서 남아시아 대지진에 대한 지원금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대한민국이 1997년 외환 위기로 타격을 입고 아직 그 후유증이 남았음을 감안하면 대한민국에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한국에서는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의 망언[13]이 사회적으로 뜨거운 파장[14]을 일으켰으며[15], 쓰나미라는 용어 자체가 이때부터 알려지면서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이전에는 해일, 지진해일 등으로 표현).
그야말로 남아시아 전역에서 일부 아프리카까지 광범위한 피해를 입혔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기억하고 있고 영상자료들이 많은 편이지만 당시에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16]가 없었기 때문에 당시 뉴스 동영상을 찾기는 좀 어려운 편이다. 한국에서는 당시까지만 해도 쓰나미가 생소한 말이라 '지진해일'이라는 표현을 많이 썼기 때문에 당시 뉴스를 찾으려면 지진해일이라는 검색어를 입력해야 찾기 쉽다. 지진해일이라는 용어도 이 사건 이후 쓰나미로 대체되었다.
피해를 입은 동남아 지역은 지역군벌이나 종교적 극단주의 세력이 반군을 형성하여 정치적으로 복잡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일어난 쓰나미는 이런 정치적 상황을 완전히 바꾸기도 했다.[17] 쓰나미 진앙지 바로 옆인 인도네시아 아체 주의 경우 주도 반다아체를 포함한 주 전역이 쓰나미에 막대한 피해를 입는 바람에 중앙 정부로부터 자치권을 받는 조건으로 독립운동을 중단했다.
5. 의의
고베 대지진의 1,600배 규모로 강진 중의 강진이었고 20세기와 21세기를 통틀어 세계 역사상 2번째로 컸던 지진이기도 하며, 21세기 이후 알프스-히말라야 조산대에서 일어났던 지진들 중에서는 가장 큰 규모다.[18] 또한 2000년 이후에 발생한 지진들 중 가장 큰 규모의 지진이었다.인류가 지진 규모를 과학적 수치로 측정하고 기록하기 시작한 이후 있었던 세계 최대 지진은 1960년 칠레 앞바다에서 일어난 규모 9.5의 지진이고, 3번째 기록은 1964년 알래스카 앞바다에서 일어난 규모 9.2의 지진이다. 앞서 서술한 대로 남아시아 대지진의 규모가 상향조정됐다. 참고로 도호쿠 대지진은 4번째로 큰 지진. 칠레 대지진은 규모 9.5였지만 사망자가 6,000명이었다. 그리고 알래스카 지진은 200명이 넘질 않았다. 하지만 그에 반해서 인도네시아가 왜 이렇게 피해가 컸냐면 불행히도 사람이 너무 많이 살고 있었고, 아직 제도적 발전이 인구에 비해 부족하여, 평소 지진이나 쓰나미 등에 대한 대비태세에 있어서도 허술했기 때문이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지진보다 쓰나미에 더 안일하고 취약했는데, 대부분의 사람의 인체가 느낄 수 있는 유감지진이 1년에 수 없이 일어나는 데 비해 쓰나미는 발생 빈도가 매우 낮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이나 그때나 인도네시아가 잘 사는 나라가 아니다 보니 대비태세는 둘째치고 이후의 수습 과정에도 문제가 많았다. 의료시설이나 구조활동 등 많은 외국의 지원이 필요했다. 거기다가 크리스마스에 휴가를 보내러 온 외국인도 많았기에 더더욱 피해가 컸다.[19][20] 하지만 남아시아 지역에서 거대지진과 해일이 발생했던 게 2004년이 처음이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1833년 11월 25일에 니아스 섬 인근에서 M8.8 ~ 9.2로 발생된 강진과 쓰나미로, 사상자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당시 추정규모와 쓰나미 발생으로 미루어 보아 피해 반경, 피해 유형 등에 있어 2004년 남아시아 대지진과 비슷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건이 대한민국에 쓰나미(지진해일)라는 개념을 확립시킨 사건이다. 지진 자체가 드문 한국에서 쓰나미라는 것도 꽤 낯선 존재였는데, 이 지진이 대한민국에 쓰나미라는 것을 인지시켜 준 계기가 되었고, 그 유명한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다시 한번 각인되었다.
전세계적으로도 이 지진 이전에는 '쓰나미'의 위력이나 규모에 대한 경각심이나 인식을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당시로서는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던 쓰나미는 1960년 칠레 대지진까지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그 시기에 살아가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 위력적인 쓰나미 사례가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전후 상황을 보고 엄청난 재앙이 닥칠 것이란 것을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전세계적으로 쓰나미의 무서움이 세계 곳곳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7년 후에 동일본 대지진으로 한 번 더 쓰나미의 위력에 대해 체감할 수 있게 되긴 했지만, 이 때도 남아시아 대지진과 비교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당시 상황을 촬영한 영상에서 외국 관광객들이나 현지인들이 수위가 하강하자 호기심에 해안가로 나가 있다가 변을 당하는 모습이 자주 보이는 것을 보면 동서를 막론하고 쓰나미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인류의 재난 인식 범주에 '쓰나미'가 추가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6. 여담
- 영미권에선 2004 Boxing Day[21] Tsunami라고 한다.
- 3개월 후 니아스 섬에서 또 다시 M8.7의 강진이 발생했다. 이 지진은 설상가상이라는 사자성어가 어떤 단어인지 정확히 보여줬다. 불행 중에서 다행인 것은 수평단층운동만 했기에 쓰나미 피해는 없었다는 거지만 만약에 수직단층운동까지 해서 쓰나미까지 발생시켰다면 지진이 일어나지 않아도 혼란스러웠던 인도네시아 등의 남아시아 국가들을 끔찍하게 제대로 끝장냈을지도 모른다. 2년 뒤에도 거대한 지진이 잇달아 발생했다.
- 14년 뒤 2018년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지진, 17년 뒤인 2022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지진이 발생했다.
- '구름을 사랑한 과학자'로 유명한 지질학 박사 리차드 험블린이 새 저서 '테라: 광포한 지구, 인간의 도전'에서 인류의 역사를 바꾼 4가지 자연재해(리스본 대지진, 18세기 유럽 기상이변, 크라카타우 화산, 하와이 쓰나미)를 집필할 당시 마지막으로 하와이 쓰나미(힐로 쓰나미)를 집필하려다가 이 재해에 대한 소식을 접했다고 한다. 동남아 및 남아시아에 부족하고, 부족할 수밖에 없는 쓰나미 예보 시스템을 안타까워했다.
- 이 당시에 태국의 카오락에서 휴가를 보내다가 이 지진에서 쓰나미를 맞고도 살아남은 알바레스벨론이라는 스페인인 가족이 있었는데, 이들의 실화가 약간의 각색을 거쳐서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의 연출 하에 2012년에 <더 임파서블>로 영화화되었다. 영화 자체는 로튼토마토 81%의 상당한 수작이다. 이완 맥그리거와 나오미 와츠가 출연하며, 톰 홀랜드의 영화 데뷔작으로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투모로우와 같은 와장창 박살나는 눈요기 위주의 재난 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물론 초반에 쓰나미가 덮쳐오는 순간[22]과 진흙물이 덮치는 장면 등 쓰나미의 파괴력을 보여주는 장면도 있지만 엄청난 자연 재해로 피해를 입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와 흩어졌던 가족들이 생고생[23] 끝에 극적으로 조우하는 휴먼 드라마에 더 가깝다.
- 자유민주당 의원들인 하야시 요시마사, 오코노기 하치로, 마쓰야마 세이지, 하마다 야스카즈가 결성한 음악 그룹 'Gi!nz(기인즈)'가 CD 판매 수익을 수마트라섬에 기부했다는 일화가 있다.
- 태국 푸껫 가이드에 의하면, 이 지진에서 푸켓이 쑥대밭에 되는 와중에 평소 파도가 지랄맞게 거칠기로 섬에서 유명한 힐튼호텔 푸켓 앞 해안가만 유일하게 쓰나미가 오지 않았다고 했다.
- 축구선수 필리포 인자기는 몰디브에 여행을 갔는데, 지진 발생 뒤에 멀쩡히 살아서 돌아왔다. 해일이 몰디브를 덮쳤을 당시에 스쿠버다이빙을 해서 살았다는 카더라가 있었지만[24] 당시 기사를 보면 그냥 낭설이고 단순히 운이 좋았다고 한다.
- 개그맨 염경환 부부도 하마터면 이 대지진에 말려들뻔했다. 아내가 장남을 임신했던 시절에, 동남아로 신혼여행을 가려 했으나 갑자기 아내가 진통이 시작되어 결국 어쩔 수 없이 일정을 취소하였는데, 그 때 하필이면 동남아 일대를 휩쓴 쓰나미가 덮쳤다. 공교롭게도 당시 예약했던 호텔도 투숙객 대부분이 사망했었다고 한다. 훗날 염경환은 그날을 아이가 본인 부부를 살린 날이라고 방송에서 이야기를 하였다.
- 유명가수 고복수-황금심 부부의 3남이자 트로트가수 고영준의 동생이며 <보고 또 보고>, <온달왕자들>, <다모>, <여인천하> 등의 걸작 드라마 음악 제작을 총지휘한 고병준 음악감독이 약혼녀와 함께 푸켓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지진 당일에 실종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두 사람은 2005년 2월 1일에 시신의 신원이 확인되어서 사망이 확인됨으로서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그의 사망으로 드라마 <패션 70's>는 그가 마지막으로 참여한 작품이 되었다.
- 토바호, 옐로스톤 국립공원, 롱 밸리 칼데라 등 그 이전까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초화산에도 관심이 집중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왜냐하면 이러한 거대 지진은 주로 화산폭발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이 지진도 화산폭발의 징조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으며, 하필이면 이로 인해 수마트라 섬의 초화산인 토바호가 폭발할 가능성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토바 호수가 이 지진이 났던 단층대 인근에 있다.[25] 공교롭게도 2004년 지진과 2005년 지진이 일어난 직후였던 2005년 4월 19일과 20일 양일간 BBC 다큐멘터리 드라마 <슈퍼볼케이노>가 KBS를 통해서 방송되기도 했다.
- 만화가 강풀의 웹툰 어게인 8화(포지션 3화)에도 이 지진이 나온다. 웹툰 주인공 중 한 명인 김구현이 여기서 아즈라히를 만나서 구해 주며 결혼까지 골인하게 되는 이야기가 나온다.
- 2009년 개봉하여 천만 관객을 동원한 한국 영화 <해운대>에서 주인공이 여자친구의 아버지를 잃게 되는 사건으로 언급된다. 다만 이 영화가 흥행과 별개로 여러 부분에서 흑역사급 연출과 고증오류를 낸 영화다 보니 남아시아 대지진이 언급되는 짧은 장면에서조차도 오류가 눈에 띈다.
- 그 뒤에도 수마트라 섬 근처에서 계속 큰 지진이 발생했다. 2005년 3월, 2007년 9월, 2009년 9월, 2010년 4월, 5월, 10월, 2012년 1월, 4월, 2016년 3월 등.
- 당시 실종된 인도네시아 경찰관 아브립 아셉(Abrip Asep)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17년 만에 정신병원에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 당시 가족들은 그가 끝내 돌아오지 않자 장례까지 치렀다. 그러나 5년이 지난 2009년 아체주 자야군 파자르 마을 촌장이 정신이 나간 청년을 불쌍히 여겨 반다아체의 정신병원에 데려다줬는데 이 청년의 용모가 아셉과 흡사했다. 하지만 DNA 검사 결과 아셉의 유족과 추정 인물은 서로 관계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 유족들은 다시 한번 좌절해야만 했다.#
7. 관련 문서
8. 둘러보기
문서가 존재하는 2000년대 지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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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68e96> 2001년 | ||||
3. 24. | M 6.7 | 2001년 히로시마 게이요 지진 | 6- | |
2003년 | ||||
3. 23. | M 4.9 | 2003년 홍도 해역 지진 | IV | |
3. 30. | M 5.0 | 2003년 백령도 해역 지진 | IV | |
5. 26. | M 7.1 | 2003년 미야기 해역 지진 | 6- | |
7. 26. | M 6.4 | 2003년 미야기 내륙 지진 | 6+ | |
9. 26. | M 8.3 | 2003년 도카치 근해 지진 | 6- | |
12. 26. | M 6.6 | 2003년 밤 지진 | Ⅸ | |
2004년 | ||||
5. 29. | M 5.3 | 2004년 울진 해역 지진 | V | |
9. 5. | M 7.1 | 2004년 기이반도 동남해역 지진 | 5- | |
M 7.4 | ||||
10. 23. | M 6.8 | 니가타현 주에쓰 지진 | 7 | |
11. 29. | M 7.1 | 2004년 쿠시로 근해 지진 | 5+ | |
12. 14. | M 6.1 | 2004년 홋카이도 루모이 남부 지진 | 5+ | |
12. 26. | M 9.3 | 2004년 남아시아 대지진 | Ⅸ | |
2005년 | ||||
3. 20. | M 7.0 | 후쿠오카 현 서부 해역 지진 | 6- | |
3. 28. | M 8.6 | 2005년 수마트라 지진 | Ⅷ | |
7. 23. | M 6.0 | 2005년 치바현 북서부 지진 | 5+ | |
8. 16. | M 7.2 | 2005년 미야기 해역 지진 | 6- | |
10. 8. | M 7.6 | 2005년 카슈미르 지진 | XI | |
2006년 | ||||
5. 27. | M 6.4 | 2006년 남아시아 대지진 | Ⅸ | |
6. 12. | M 6.2 | 2006년 오이타 지진 | 5- | |
10. 9. | M 4.2 | 2006년 길주 인공지진 | - | |
11. 14. | M 8.3 | 2006년 쿠릴 열도 지진 | IV | |
2007년 | ||||
1. 13. | M 8.2 | 2007년 쿠릴 열도 지진 | IV | |
1. 20. | M 5.0 | 2007년 평창 지진 | V | |
3. 25. | M 6.9 | 2007년 이시카와 해역 지진 | 6+ | |
7. 16. | M 6.9 | 2007년 니가타현 주에쓰 앞바다 지진 | 6+ | |
10. 1. | M 4.9 | 2007년 가나가와 지진 | 5+ | |
2008년 | ||||
5. 8. | M 7.0 | 2008년 이바라키 해역 지진 | 5- | |
5. 12. | M 8.0 | 쓰촨성 대지진 | XI | |
5. 29. | M 6.3 | 아이슬란드 지진 | Ⅷ | |
6. 14. | M 7.2 | 이와테 미야기 내륙 지진 | 6+ | |
7. 24. | M 6.8 | 2008년 이와테 연안북부 지진 | 6- | |
2009년 | ||||
5. 25. | M 5.3 | 2009년 길주 인공지진 | - | |
8. 11. | M 6.5 | 2009년 시즈오카 해역 지진 | 6- | |
9. 29. | M 8.1 | 2009년 사모아 지진 | Ⅵ |
<colcolor=#FFFFFF> 나무위키에 문서가 있는 규모 9.0이상 거대지진 | ||
발생 날짜 | 규모 | 해당 지진 |
<colbgcolor=#3d5f7e> 1707. 10. 28. | M 9.3[1] | 호에이 대지진 |
1755. 11. 1. | M 9.0 | 1755년 리스본 대지진 |
1833. 11. 25. | M 9.0 | 1833년 남아시아 대지진 |
1952. 11. 5. | M 9.0 | 세베로쿠릴스크 지진 |
1960. 5. 22. | M 9.5 | 1960년 칠레 대지진 |
1964. 3. 27. | M 9.2 | 알래스카 지진 |
2004. 12. 26. | M 9.3 | 2004년 남아시아 대지진 |
2011. 3. 11. | M 9.1 |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 |
[미지질조사국] 계기진도 9.0, 최대지반가속도 93.25 %g, 최대지반 속도 116.03 cm/s. 출처[2] 이는 당시 인도네시아 GDP(2568억 달러)의 5.5%에 달하는 거액이다. 어마어마한 인명 피해에 비해 재산피해는 적은 편이지만, 이는 당시 인도네시아가 1인당 GDP가 1137달러 정도에 불과한 빈곤국이었던 만큼 날아갈 재산도 없던 것에 더 가깝다.[3] 인도네시아 16만 7천 명 이상, 스리랑카 3만여 명, 인도 1만여 6천 명, 태국 8명 이상 사망. 특히 동남아시아를 찾았던 수천여명의 외국인 관광객들도 사망하거나 실종되었다.[4] 해양에서 발생한 지진 특성 상 진도는 IX(9)로 모멘트 규모에 비해 다소 낮게 측정되었다. 해저 지진에서 MMI 9는 거의 한계치며, 진앙지가 육지와 많이 근접한 곳이었다면 XII(12)가 측정되었을 것이다.[5] 구글에서 검색할 경우 9.4, 9.5로 상향 표기한 것도 볼 수 있다.[6] 한국 아파트의 평균 층수 기준 아파트 17 ~ 20층 높이다. 참고로 동일본 대지진 때는 최대 40.1m의 쓰나미가 덮쳐 왔다.[7] 지진해일이 절정에 달했을 때 인도네시아를 향하던 지진해일이 100m까지 치솟았으나 해안에 도달했을 때까지 유지되지는 않았다. 100m 쓰나미가 어느 정도냐면 영화 해운대에서 쓰나미 높이를 100m로 설정했으며(해운대의 50층 건물 중 대략 30층까지 덮쳐 버린다.) 영화 샌 안드레아스에서 나온 쓰나미가 70m 정도이다.[8] 말레이시아는 수마트라 섬 동쪽에 있어 피해가 크진 않았지만 페낭과 랑카위 지역에서 피해를 입어 67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9] 프랑스의 해외 영토인 레위니옹이 지진 해일에 피해를 입었다.[10] 영어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멕시코 서부에서 무려 2.6m를 찍었다고 나온다![11] 세계에서 6번째로 큰 섬으로, 한반도 크기의 2배가 넘고, 일본 전체 면적에 남한 면적을 더한 것과 비슷한 크기의 거대한 섬이다.[12] 당시 스웨덴 인구가 900만명이였으니까, 약 300명 중 1명이 쓰나미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13] 세이셸 인구의 92%가 기독교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 받은 천벌"이라며 아주 좋아하고 심지어 죽은 유럽 기독교인 관광객들에게도 "잘 죽었다"는 고인드립까지 치다가 아랍과 동남아 나라들에게까지 대대적으로 알려져서 국제적인 개신교 혐오까지 부채질했다.[14] 리처드 도킨스도 저서인 만들어진 신에 이 사실을 거론하면서 "종교에 미치면 이렇게 된다."고 엄청 비판했다.[15] 이들에게 반박할 수 있는 자료로는 1755년 리스본 대지진(2004년 남아시아 대지진과 비슷한 규모)의 사례가 있다. 당시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던 사람들이 지진으로 싸그리 몰살당했는데, 정작 사창가 지역은 리스본 내에서 피해를 안 입은 유일한 구역이었다. 그리고 이 사실은 당대 여러 지식인들로 하여금 기독교에 회의감을 품고 심지어 무신론자로 돌아서게 할 정도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16] 유튜브 같은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를 의미한다. 유튜브는 다음해인 2005년에야 생겼다.[17] 공공기관의 소실로 인한 반군세력의 득세나 반군세력의 쇠퇴 등이 있다.[18] 2위는 2005년 수마트라 지진, 3위는 2012년 수마트라 앞 심해 지진, 4위는 2007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지진, 5위는 2008년 쓰촨성 대지진, 6위는 2015년 네팔 대지진이다. 즉 알프스-히말라야 조산대에서 일어났던 지진들 중 빅3가 모두 2004년부터 3년 동안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났다고 보면 된다.[19] 축구 팬들에게는 스타플레이어 필리포 인자기가 당시 이곳에서 휴가를 즐기다가 살아남은 썰이 유명하다.[20] 게다가 하필이면 아침 8시, 즉 아침 시간+ 출근 시간에 일어나는 바람에 더더욱 사상자의 규모가 커지고 말았다.[21] 크리스마스 다음 날(12월 26일)을 이르는 표현이다.[22] 건물 너머의 야자나무들이 도미노처럼 차례로 넘어지는 광경은 무시무시하다.[23] 더군다나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타지였다.[24] 파도가 쳐도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면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쓰나미의 특성상 먼 바다보다 해안에서 위력이 더 크다 보니 먼 바다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한 사람들이 쓰나미가 온 줄도 모르거나 '오늘따라 조류가 세서 위험하네.' 정도로 여기고 무사히 돌아왔더니 육지가 쑥대밭이 되어 있더라는 사례들이 실제로 있었다.#[25] 1960년 규모 9.5의 발디비아 지진이 있었던 칠레 역시 안데스산맥에 토바호 급의 초화산이 무려 4개나 밀집된 곳이 있는데, 이 지역의 마그마 챔버 부피는 무려 50만km^3^나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