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1-11 15:24:30

방글라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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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인민 공화국
গণপ্রজাতন্ত্রী বাংলাদেশ

Gônoprojatontri Bangladesh
파일:방글라데시 국기.png
국기
파일:방글라데시 국장.png
국장
면적 147,570km²
인구 166,640,511명(2018)
인구밀도 1,237명/㎢
민족구성 벵골인 98%, 기타 2%
수도 다카
건국 1971년 3월 26일 (독립 선언)
1971년 12월 16일 (독립 승인)
1972년 11월 4일 (헌법 제정)
정치체제 공화국, 단일국가, 의원 내각제
대통령 압둘 하미드 (আব্দুল হামিদ)
총리 셰이크 하시나 (শেখ হাসিনা)
임기 2009년 1월 6일 ~
명목 GDP 2,736억 1,800만$, 1인당 1,745 $ (2018)
GDP(PPP) 7,488억 1100만$, 1인당 4,541$(2018 예측치)
수출 340억 2000만 $(2016~2017)
수입 434억 9000만 $(2016~2017)
국가신용등급 BB-(S&P)
공용어 벵골어
국교 이슬람
종교 이슬람 86.6%, 힌두교 12.1%, 불교 0.6%, 기독교 0.4% 등
국가(國歌) 나의 금빛 벵골(벵골어: আমার সোনার বাংলা)
화폐단위 타카(Taka, BDT)
위치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00px-Bangladesh_on_the_globe_%28Asia_centered%29.svg.png

1. 개요2. 국가 상징
2.1. 국호2.2. 국기2.3. 국가
3. 인구4. 민족5. 자연
5.1. 자연재해5.2. 생태계5.3. 지리
6. 행정구역7. 역사8. 군사9. 정치10. 사회11. 문화
11.1. 언어11.2. 스포츠
12. 경제13. 외교14. 대중매체에서의 방글라데시
14.1. 방글라데시 국적, 출신 캐릭터14.2. 한국 방송 및 영화

1. 개요

파일:external/i.infopls.com/mbanglad.gif

인도 동북 지역 벵골 만 연안에 자리잡은 국가이다. 수도는 다카(ঢাকা, Dhaka).

지도를 얼핏 보면 거대한 인도 반도의 동쪽 겨드랑이에 위치했으므로, 방글라데시의 서쪽은 인도이고 동쪽은 인도차이나일 듯이 느껴지지만, 국경선의 95% 이상이 인도에 둘러싸여 있는 형국으로 미얀마와 접하는 국경은 매우 협소하다.

방글라데시가 북쪽과 동쪽으로 접하는 인도는 오랫동안 사회주의 경제 정책을 유지해온 데다 인도 측 입장에서도 개발이 잘 안 되는 낙후 지역이기에 경제 교류 상 무의미하고, 남동쪽 끝에서 접하는 미얀마도 쇄국 정책이 길었기 때문에 방글라데시는 수십년간 인접국과의 교류가 무의미했다고 한다.

사소하지만 우루과이와 유사한 점을 가지고 있다. 둘 다 거대한 나라(인도, 브라질)의 한 주 였다가 떨어져 나온 독립국이며 둘 다 그 나라의 끝자락(방글라데시는 동쪽, 우루과이는 남쪽)에 위치해 있다가 독립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2. 국가 상징

2.1. 국호

방글라데시는 현지어 명칭을 영어식으로 읽은 것으로, 벵골어 명칭은 '방라데시'(/ˈbaŋlad̪eʃ/)에 좀 더 가깝다. 국명의 어원은 벵골어벵골 지역이나 벵골어를 가리키는 말인 방라(বাংলা)와 국가를 의미하는 데시(দেশ)를 합친 단어벵골국인데, 벵골이라는 단어에 비해 방글라데시라는 단어는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20세기 초에 라빈드라나트 타고르나 카지 나즈룰 이슬람(Kazi Nazrul Islam) 같은 벵골 문학가들이 자신의 작품에 이 말을 처음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1940년대 말 파키스탄 자치령 시절에 현 방글라데시에 민족주의 정당들이 생기면서 방글라데시라는 말을 정치적인 수사로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결국 방글라데시가 파키스탄에서 독립하면서 국호가 되었다. "데시"라는 단어는 일상에서도 자주 쓰이는데, 예를 들어 "국산-국산 아닌 물건"을 현지어에서 "데시-비데시"라고 부른다.

정식 국명은 '방글라데시 인민 공화국(গণপ্রজাতন্ত্রী বাংলাদেশ, 고노쁘로자똔뜨리 방라데시)'. 인민공화국을 표방한 것은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당시 독립 진영에서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를 지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도와는 다르게 사회주의적 경제체제를 세우거나 하지는 않았다.

2.2. 국기

방글라데시의 국기는 초록색 바탕에 빨간 원이 중앙에 있는 형태의 국기로 현지에서는 라알 쇼부즈(লাল-সবুজ, Laal Shobuz)라 한다.

국기가 일본 국기인 일장기와 바탕 색깔만 다르게 보이지만 빨간 원이 정 중앙에 놓인 일장기와 달리 약간 왼쪽으로, 정확히는 원의 중심이 국기의 정 중앙에서 국기 가로 길이의 5%만큼 왼쪽으로 치우쳐 있다.[1] 이는 기가 바람에 날릴 때 중앙에 보이기 위해 기의 중심보다 깃대쪽으로 조금 물러나 있는 거라고 한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00px-Flag_of_Bangladesh_%281971%29.svg.png
▲ 1971년부터 1972년까지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당시 쓰던 옛 국기.

바탕의 초록색은 이슬람교의 신성한 전통 색깔이자 방글라데시 청년들의 의기와 패기, 그리고 벵골 지방의 푸른 초원과 지방을 상징하며 빨간 원은 붉은 피로 독립을 쟁취하고 싸워 이겨낸 방글라데시 국민들의 희생 정신을 나타낸다. 해가 동쪽에서 뜬다는 점이나 이 나라의 위치가 인도 반도 동남부에 위치해 있다는 점을 보아 해가 뜨는 동쪽의 이슬람 국가일장기 이슬람 버전라는 뜻도 있다. 원래 빨강 원에는 금색의 방글라데시 지도가 그려져 있는데 이 무늬가 없어지면서 일장기와 비슷하게 된 것이었다. 일본과 관련이 있어서 비슷해진 것은 아니지만, 이 국기가 만들어질 당시에 재임하고 있던 방글라데시 초대 대통령인 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의 장녀이자 현 방글라데시 총리인 셰이크 하시나가 "아버지가 국기를 디자인할 때 일장기를 참고하였다"라고 발언한 적이 있다.

팔라우의 국기와도 비슷하다. 색깔은 다르지만 원이 조금 왼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것까지 같다.

2.3. 국가

국가(國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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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바브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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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자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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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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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가나다순 정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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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나의 황금빛 벵골(আমার সোনার বাংলা ; Amar Shonar Bangla)」이다. 작사가는 벵골을 대표하는 대문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곡은 가간 하르카라(গগন হরকরা ; Gagan Harkara)가 쓰고 부른 「그를 어디서 만나야 합니까(কোথায় পাবো তারে ; Ami Kothay Pabo Tare)」에서 가져온 것이다. 1905년 벵골 분할령 당시 완성된 노래로 이후 벵골 민족주의자들 사이에서 불리기 시작하다가 방글라데시 독립 이후 국가로 지정되었다.

3. 인구

국토 면적은 144,000㎢로 그다지 큰 편은 못 되지만 인구는 2018년 기준 약 1억 6,664만 명으로 어마어마하게 많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나라로 꼽힌다. 2015년 기준 1,237명/㎢(울산광역시·경기도와 비슷한 정도)으로 모나코·싱가포르·바티칸·바레인·몰타·몰디브에 이어 7위이나, 저 여섯 나라 가운데 인구가 가장 많은 싱가포르가 고작 580만여 명(약 1/29), 면적이 가장 넓은 바레인이 겨우 778㎢(약 1/185)밖에 안 되니 어지간한(?) 국가 중에서는 부동의 1위다. 2위는 중화민국(㎢당 651명), 3위는 레바논(㎢당 596명), 4위는 대한민국(㎢당 513명). 다만 국토 대부분이 평야 지역인 데다 국토 면적의 60% 이상이 경작지라서 경지 면적당 인구밀도는 한국·중화민국·일본보다 낮다. 경지 면적당 인구 밀도는 ㎢당 2,040명으로, 국토 면적 1만 ㎢를 넘는 국가 혹은 인구 1,000만 명 이상 국가들 중에서는 세계 6위에 해당한다.[2]

이는 방글라데시 국토 전체가 삼각주이며, 따라서 인구 부양력이 높은 벼농사에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도를 보면 국토 정중앙이 수많은 강으로 나뉘어져 있다. 2050년이면 인구가 2억 5,000만 명(현재 삭제됨)까지 증가한다는데, 그러면 인구밀도는 1,737명/㎢가 되고 2050년의 러시아보다 인구가 2배 가까이 많게 된다. 물론 러시아가 1990년대와 2000년대에 걸쳐서 저출산 현상이 심각해서 그만큼 인구증가세에 제동이 걸리기 쉽다는 점도 감안해야 되겠지만.

그나마 출산율은 엄청 줄였다. 1970년대만 해도 1가구당 6.6명이라는 가공할 출산율을 보여 당시 중국의 5.1명이나 인도의 4.5명을 넘어섰던 걸 산아제한의 적극적인 실행등으로 한국정도는 아니지만 어쨌든 급속히 떨어뜨리는데에는 성공해서 2010년대 현재는 2.1명대 정도로 딱 적당한 수준이다. 파키스탄이 원래는 방글라데시보다 인구가 적었지만 출산율 하락속도가 방글라데시보다는 주춤하기에.. 둘 다 출산율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3] 그래도 출산율은 2010년대 들어서면서 집집마다 두세 명만 낳는 수준으로 많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워낙 가임기 여성이 많고 노인인구 비중이 적어 출산율이 높고 사망률은 낮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상당한 인구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4. 민족

민족 측면에서는 전 국민의 98%가 벵골족인 사실상 단일민족국가다. 인도가 분할되는 과정에서 다른 지방의 무슬림들이(특히 비하르 주 출신의 비하리인) 소수 이주해 오긴 했지만 워낙 벵골인의 인구가 많아서 비율은 얼마 안 됐고,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때 다른 민족의 무슬림들은 파키스탄으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비하리인은 전쟁 직전에 100만여 명이 살고 있었으나 상당수가 파키스탄으로 이주하였고, 15만 명은 피난을 갔다가 난민촌에 살면서 파키스탄 국적도 방글라데시 국적도 얻지 못한 무국적 상태에 있다가 2009년에 대법원 판결에 의해 국적을 부여받았다. 그 결과로 지금은 동부에 거주하는 불교계 소수민족 원주민들인 줌머인들이 비하리인보다 많아졌다.

2017년 9월 들어 일명 '인종 청소 학살'으로 크게 논란이 되고 있는 미얀마의 로힝야족 또한 뿌리는 미얀마 계통이 아닌 방글라데시와 같은 벵골 계통이다[4] 로힝야족의 정확한 기원은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얀마 전체를 식민지배하던 영국이 미얀마인들이 식민지배에 저항하면서 미얀마 개발이 힘들어지자 인도인들을 대거 이주시켰는데, 마니푸르, 아삼 주의 힌두 브라만은 주로 공무원을, 시크교도는 군인으로, 벵골인 무슬림들은 벼농사 플렌테이션을 개간할 농부로 정착하였다. 종종 인도계 무슬림들이 우월한 입지와 재력을 바탕으로 미얀마 현지 여자를 첩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미얀마 민족주의자들과 승려들이 이를 갈았다고. 오늘날 미얀마의 최대도시로 성장한 양곤시는 영국에 의해 개발될 당시 아예 초창기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인도인이었다. 2차 대전 전후로 인도계 미얀마인 중 눈치 빠른 사람들은 재산을 정리한 후 인도로 도피했지만, 벵골인 농민들은 미얀마에 있는 농토를 두고 동파키스탄으로 굳이 돌아가봐야 할 게 없었다. 미얀마 독립 당시 초창기에는 이들의 영향력을 절대 무시할 수 없었고, 꽤 오랫동안 미얀마의 기득권층으로 군림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네 윈이 주도하는 사회주의 정권이 출범하면서, 한큐에 모든 기득권을 잃고 몰락하면서 오늘날처럼 하층민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이런 역사적 연원으로 인해, 미얀마 영토에서 살아가고 있는 로힝야족[5]들은 미얀마인들과는 말도 안 통하고, 오히려 방글라데시와는 말이 통한다. 또한 로힝야족은 거의 대부분이 이슬람교를 믿어서 더욱 방글라데시와 연관성이 깊다. 하지만 방글라데시 정부 측은 "이들은 17세기부터 미얀마 지역에 거주해왔기 때문에 미얀마인이다."라는 이유를 내세워 이들의 방글라데시 유입을 막으려는 편이다[6]. 그리고 방글라데시는 세계에서도 손에 꼽는 인구 초 포화 국가인 것도 방글라데시 정부가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7]

5. 자연

5.1. 자연재해

영토 자체가 다우지(多雨地)에 자리잡은 데다 과도한 플랜테이션으로 인한 환경 훼손까지 겹쳐져서 엄청난 대홍수를 겪는 국가가 되었다. 연평균 1.6건이 발생하는 사이클론과 이 대홍수 때문에 하구의 비옥한 삼각지가 다 쓸려나가서 농업에도 큰 손실이 났다. 실제로 사이클론을 비롯한 열대성 저기압으로 발생한 최악의 인명피해는 방글라데시에서 발생했다. 1970년 11월 사이클론 '볼라'가 당시 동파키스탄이었던 방글라데시와 인도 서벵골 지역을 강타했는데, 이 때 발생한 사망자 및 실종자는 약 50만명에 달했다.

그래서 이를 두고 대홍수에 대해 홍수가 한번 날 때마다 영토가 줄어든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는 지구 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매년 약 0.4%씩 영토가 줄어들고 있다. 매년 약 서울특별시 면적 정도가 물에 잠기는 셈이다. 작아 보일지 모르겠지만 작은 게 아니다.

이런 상황 때문에 2030년까지 2,000만 명의 기후 난민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그나마 슌도르본 세계자연유산 등 맹그로브숲 등을 잘 관리해 둔 덕분에 그나마 피해가 적은 편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부레옥잠 해상 농법을 시험적으로 재배하고 있다. 홍수로 늘어나는 호수에서 아예 집을 짓고 부레옥잠밭을 통하여 식용 호박류를 재배하는데 성공하여 그것을 재배하고 팔면서 생계 수단으로 삼자는 것. 더불어 부레옥잠은 이나 염소 같은 가축 먹이로도 나쁘지 않다. 또한 인도가 산업화 된 이래로 각종 생활하수와 공장에서 흘러나온 오폐수/산업폐기물들이 갠지스 강으로 대량 방출되다 보니 오염이 심각하고 인도에서 갠지스 강 유역에 댐을 건설할 때마다 쓸 수 있는 수자원이 줄어들어 농업생산량에도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수자원은 풍족한 편이지만 그래도 상수도 시설이 잘 갖추어지지 않는 곳이 허다하다 보니 인프라 부족 문제로 문제점이 심각한 상황이다.

5.2. 생태계

100년 전에는 코끼리코뿔소, 물소등 큰 짐승들이 있었지만 현재는 모두 멸종하고 중소형 동물만 남아 있다. 가장 큰 포식자인 호랑이도 50~75kg 수준으로 작지만 맹수라서 사람을 해치는 일도 생긴다. 그 밖에 사슴이나 멧돼지, 원숭이포유류가 주류고 황새등 민물 조류도 서식한다. 습지 주변에는 악어도 있다.

5.3. 지리

전체적으로 직소퍼즐 한 조각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세로로 약간 긴 직사각형에서 북쪽으로 작게 튀어 나간 부분이 있고, 동쪽에는 약간 파먹힌 부분이 있는 모양. 남쪽엔 벵골만에 접해 있고 여기를 통해 인도양으로 향한다. 그리고 국경의 대부분이 인도와 접해 있지만 동남쪽에는 미얀마와도 국경을 접하고 있고, 직접 국경을 접하지 않지만 가까운 주변국으로는 네팔, 부탄, 중국 등이 있다.

초견에 대충 보기에는 서쪽에만 인도와 접하고, 그 외 다른 여러 나라과 국경선(네팔, 부탄, 중국 등)을 접할 것 같아 보이나... 알고보면 희한하게도 인도로 둘러싸인 나라이다. 남동쪽 끄트머리에서 미얀마와도 접하지만 전체 국경선의 5%정도밖에 안된다. (95%가 인도와의 국경)

방글라데시 국토의 북서쪽 코너 국경선에서 네팔 국경선까지의 거리는 20여 km로 매우 가깝지만 서로 붙어있지 않다. 이 부분은 인도의 영토로서, 방글라데시의 서쪽에 주로 위치한 인도가 방글라데시의 북쪽 영토와 동쪽 영토까지 차지하여 방글라데시를 감싸는 형국이 되도록 인도의 땅을 이어주는 협곡 같은 형상이다. 인도 본체 쪽에서 볼 때에 방글라데시 너머에 존재하는 이 또 하나의 작은 인도 땅덩어리는 방글라데시 국토만큼이나 넓으며 8개 이상의 주가 있다.

방글라데시의 국경선이 인도와 희한하게 구성된 이유는, 결국 방글라데시는 옛날에 인도의 북동부 지역이었다가 영국의 분할령에 의해 파키스탄이 강제 분리될 때에 함께 (동)파키스탄으로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분리 직후에 정치 주도권이 서쪽 멀리 떨어진 파키스탄의 주도로 진행되었기에 동쪽에는 정치력이 확고하지 못했으며, 곧 이어서 이곳 방글라데시가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하는 전쟁의 과정을 겪으며 거버넌스를 상실한 기간이 있었던 것. 알고 보면 국경선이 개막장

6. 행정구역

파일:방글라데시 행정구역.jpg
  • 랭푸르 주
  • 랏사시 주
  • 다카 주: 정중앙에 위치한 주. 수도인 다카가 이 곳에 있다.
  • 실헷 주: 동부 내륙지대.
  • 쿨나 주: 남서부 해안지대.
  • 바리사이 주: 남부 해안지대.
  • 치타공 주: 남동부 지대. 이 곳의 동부지역인 힐 트랙스(Chittagong Hill Tracts)는 철수권고지역이다. 주로 불교를 믿는 줌머(Jumma)인이 거주하는 이 지역은 카라카스와 같은 수준의 우범지역이다. 치타공은 우리나라로 치면 부산과 같은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이며 선박들의 무덤으로 불리는 폐선 처리장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선박해체 작업이 매우 힘든 작업이라[8] 인건비가 싼 방글라데시에 그 수요가 많이 몰리는듯 하다. 치타공 도심에 큰 시장이 있고 이동은 아직도 오토바이 택시나 자전거 택시에 많이 의존을 한다. 여행경보 3단계이니만큼 위험한 지역이기도 한데, 피부색이 다른 사람이 도심을 활보하면 손해를 입을 정도로 치안수준이 매우 좋지않다. 가끔 시장통에서 한국말을 잘하는 상인을 볼수도 있는데 한국취업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걸로 추정된다. 인구가 많아서 항상 건물보다 사람들이 많은 모습을 볼수 있을것이다. [Why] 하루에 1달러… 맨손으로 폐선을 뜯어내는 노동자들(조선일보 기사) 또한 로힝야족 난민이 거주하는 세계 최대의 난민촌이 이곳에 있다.

7. 역사

인도 · 파키스탄 · 방글라데시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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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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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데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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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J
C
A아라칸
※ S는 북부, J는 중북부, D는 중부, K는 쿨다, G는 남부 삼각주, C는 동남부}}}}}}

근대 이전의 역사는 옆나라 인도 벵골 지방의 역사와 겹친다. 수천년 전부터 문명이 존재했으며, 마우리야 왕조나 굽타 제국, 팔라 제국 등의 영향권에 들어갔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방글라데시는 인도와 특별히 구분되진 않았으나, 12세기 아랍인 상인들에 의해 이슬람이 전파되기 시작해 이후 벵골 동부는 무슬림이 다수를 이루게 되었다.

그리하여 12세기 후반 벵갈 술탄국이 수립되어 벵골인들이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갖기 시작했다. 1345년부터 1576년까지 존속된 이 나라는 무굴 제국에 의해 정복당했고 이후 무굴 제국의 영향권에 들어갔다. 그러나 무굴 제국이 쇠퇴하면서 독립을 선포하고 벵골 나왑국[9]이 되었다. 1717년부터 1818년까지 존속된 나왑국은 북부 인도의 패권을 손에 쥔 마라타 동맹에 의해 정복당했고, 이 마라타 동맹이 대영제국에 의해 패배, 실질적으로는 멸망함에 따라 1877년에 세워진 영국의 괴뢰국인 인도 제국의 일부로서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후에도 방글라데시는 인도의 서벵골과 구분되지 않다가 1905년 무슬림이 많은 지역인 현 방글라데시 지역이 분리되었다. 분리된 목적은 명목상 행정상 편의를 위해서라고 했으나, 실제론 벵골 지역의 독립운동에 종교로 분열을 일으키려는 목적이었다. 벵골인들은 이것에 대해 반대 운동을 일으켰고, 이것이 인도 전역으로 퍼지자 결국 영국은 얼마 안 가 벵골 분할령을 철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힌두교도와 무슬림의 분쟁은 피할 수 없었다. 힌두교도가 주도한 국민회의는 무슬림을 은근슬쩍 무시하게 되자 무슬림들은 전인도 무슬림 연맹을 창설한다.

1947년 인도 제국이 힌두교인 위주인 인도 자치령(후에 인도 공화국)과 무슬림 위주인 파키스탄 자치령(후에 파키스탄 이슬람 공화국)으로 따로 독립하면서 무슬림이 대다수였던 방글라데시는 파키스탄에 들어갔다. 이렇게 방글라데시는 동벵골(পূর্ববঙ্গ), 혹은 동파키스탄이라는 이름이 되었고, 파키스탄은 서파키스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일단 파키스탄이라는 이름 하에 한 나라가 되었으나 영토가 파키스탄의 최대 적대국가인 인도의 거대한 국토에 의해 분리되어 있었다. 그것도 그냥 분리된 게 아니라 비행기나 비행선 타고 아주 오래 걸리는 먼 거리를 사이에 두고 분리되어 있었다.

게다가 정작 이 두 지역은 종교가 이슬람이라는 점을 빼고는 겹치는 게 별로 없었다. 언어도 서파키스탄은 우르두어, 펀자브어 등을 비롯한 여러 언어가 쓰이는 데 비해 동파키스탄은 벵골어가 쓰이는데 둘은 완전히 다른 언어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파키스탄 정치의 주도권은 서파키스탄이 가지게 되었고, 서파키스탄은 동파키스탄을 일종의 식민지마냥 취급해 뽑아먹을 건 다 뽑아먹고 정부 요직에 서파키스탄 출신 인물만 앉히고 동파키스탄 출신 인물은 배제하는 등 심각한 차별대우를 일삼았다.영국 지배 받으면서 식민지 상전인 영국한테서 못된 짓이나 배웠나 보다.

서파키스탄은 방글라데시에서 많이 쓰는 벵골어 대신 서파키스탄에서 쓰이는 우르두어를 쓰라고 하면서 다카 대학교 학생들이 반발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는 1952년 2월 21일에 일어났는데, 이날은 현재 방글라데시의 주요 국가 기념일 중 하나이자 유네스코에서 세계 모어의 날로 기념하는 날이다. 결국 서파키스탄에서 항복하여 벵골어를 공용어로 지정했지만, 시위에서 군인들이 폭력으로 누른 것이 방글라데시인들에게 자극이 되었고, 벵골인들은 아와미 연맹을 결성했다.

1970년 역사상 가장 큰 인명피해를 준 열대성 저기압인 사이클론 볼라가 방글라데시를 내습해 50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는데, 파키스탄은 국제사회에서 받은 원조물자를 불공평하게 배분해 방글라데시인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서파키스탄의 빈민층에게 많이 주고 지원이 필요한 동파키스탄의 방글라데시인들에게는 적게 주었다. 그리고 같은 해 동년에 방글라데시의 자치를 주장하는 아와미 연맹이 파키스탄 총선에서 압승해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10] 하지만 파키스탄 측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총선 무효화를 선언했다. 이에 동벵골 지역에선 정부의 총선 무효화에 항의하는 폭력적인 시위가 벌어지자 파키스탄의 아히야 칸 대통령은 아와미 연맹의 당대표였던 무지부르 라흐만(মুজিবুর রহমান)과 협상하려 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11] 협상이 실패하자 결국 아와미 연맹의 당대표였던 무지부르 라흐만은 1971년 방글라데시의 독립을 선언했다. 파키스탄군이 라흐만을 체포하자 분노한 방글라데시인들은 독립군을 결성해 방글라데시 독립전쟁을 일으켜 동파키스탄 내의 서파키스탄인들을 공격하여 죽이거나 추방시켰고 방글라데시 일대를 장악했으나 결국 파키스탄군에게 진압당하고 인도 국경 지대로 밀려났다.

방글라데시로 들어온 파키스탄군은 방글라데시인을 무차별 학살했으며 방글라데시 측은 이때 300만 명이 학살되었다고 주장한다. 반면 파키스탄 정부 측은 이러한 주장을 부정하며 당시 사망자의 수가 26,000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국제적으론 50만여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독립군이 인도 국경에서 게릴라 투쟁을 함에 따라 파키스탄은 인도 영토의 독립군을 폭격하고, 벵골인들 1,000만여 명이 인도로 피난을 오자 이를 계기로 인도군이 참전해 2주일 만에 파키스탄군을 무찌르고, 결국 1971년 방글라데시는 독립했다. 한편 이 당시 파키스탄 군내의 방글라데시 출신 군인들도 집단으로 탈영해 독립군에 가담하여 파키스탄군을 공격하기도 했었다.[12] 묘하게 방글라데시가 독립하여 여기 살던 파키스탄 지지자들은 파키스탄에 가서 살려고 하나 거기서도 차별하는 통에 지금까지도 어렵게 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방글라데시 초대 지도자로는 아와미 연맹의 무지부르 라흐만이 되었다.[13] 무지부르 라흐만의 별명이 '벵골의 친구'라는 의미의 '봉고본두(বঙ্গবন্ধু)'인데 방글라데시 해군 주력함으로 한국에서 수입한 프리깃 방가반두 함의 함명도 여기서 온 것이다.[14] 그는 얼마 안 가 방글라데시를 1당 독재 국가로 만들려 하다가 1975년 쿠데타로 피살되고, 지아우르 라흐만(জিয়াউর রহমান, 1936~1981)이 정권을 장악한다. 라흐만은 반인도 정책을 취하고 이슬람 우위 정책을 삼으면서 경제적인 위기에 처해 큰 비난을 당했고 결국 1981년 지아우르 라흐만 또한 부하들에게 벌집이 되어 총살되었고 1982년 쿠데타가 일어난다. 이런 혼란 내내 반정부 투쟁이 계속 일어났으며, 1990년 반정부 시위로 에르샤드 대통령이 사임하고 일단 민정이 들어섰다. 그러나 2006년 반정부 시위가 또 일어났고 사망자가 발생했다.

2013년 2월부터 독립전쟁 중 파키스탄군에 협력했던 전쟁범죄자사형 여부를 두고 하탈(Hartal)[15]이 지속되고 있다. 현재 2013년 6월까지 여러 번의 하탈이 있었으며, 내년에 있는 선거까지 하탈이 지속될 전망이다.

2015년부터는 다에시의 소행으로 보이는 테러들까지 계속 발생하는 판국이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현지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소행으로 주장하지만 다에시가 공식적으로 주장함에 따라 기정 사실로 여기고 있다. 다만 2017년에 IS의 본거지였던 시리아이라크의 IS 거점지들이 시리아군과 이라크군에게 함락당해 IS가 몰락하게 되면서 지금은 다소 잠잠해진 편.

방글라데시의 국교를 폐지해 달라는 세속주의 활동가들의 청원을 고등법원에서 기각했다.기사 링크

2018년에는 7월 29일에 10대 2명이 과속하던 버스에 치여 사망한 사건이 발생되자 반정부시위가 발생했다.#

2018년 12월 30일에 방글라데시는 총선에서 여당인 아와미 연맹이 승리했고 셰이크 하시나 총리는 3연임을 했다.# 하지만 야당측은 반발하면서 재검표를 요구했다.#

8. 군사

9. 정치

국가 형태는 입헌공화국이며, 정치 체제는 내각책임제다. 1972년 1월 ~ 1975년 1월 내각책임제로 출발했다가 1975년 1월 대통령중심제로 바뀌었다. 그러다 1991년 9월에 개헌을 통해 다시 내각책임제로 복귀하였다. 1972년 12월 26일 헌법이 공포되었고, 1991년 9월 제10차 개헌을 했다.

의회는 임기 5년의 단원제이며 의석은 345석이다. 주요 정당은 아와미 연맹(AL, Awami League), 방글라데시 민족주의당(BNP, Bangladesh Nationalist Party), 자티야당(Jatiya Party)이다. 그 밖에 자티야 사마지탄트리크당(Jatiya Shamajtantrik Dal), 자마티이슬라미당(JI, Jamaat-e-Islami), 노동당(Workers Party) 등이 있다.

2001년 방글라데시 제8차 총선에서 방글라데시 민족주의당이 3분의 2에 가까운 의석(297석 가운데 193석)을 확보하면서 집권하였다.

2006년 10월 베굼 칼레다 지아(Begum Khaleda Zia) 정권 퇴진 후 차기 총선을 둘러싼 방글라데시 민족주의당(BNP, Bangladesh Nationalist Party)과 아와미 연맹 사이에 극한 대치 상황이 지속되고 전국적인 유혈 사태로 인해 군부 후원하에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 그리고 총선 때까지 정국을 관리할 과도정부(Non-party Caretaker Government)가 구성되었다.

과도정부는 헌법상 총선 전 3개월만 존속하도록 되어 있으나, 총선이 2008년 말까지 연기됨에 따라 약 2년간 과도정부가 방글라데시를 통치하였다. 과도정부는 당초 부패 척결과 정치 개혁을 명분으로 베굼 칼레다 지아 방글라데시 민족주의당 당수와 셰이크 하시나(Sheikh Hasina) 아와미 연맹 당수를 배제한 새로운 정치 질서를 모색하였다. 그러나 두 사람을 대체할 정치 세력 형성이 시기상조라는 점이 분명해짐에 따라 이들의 정치 참여를 보장하고, 2008년 12월 29일 총선을 실시했다.

총선 결과 셰이크 하시나 당수가 이끄는 아와미 연맹이 총 300석 가운데 230석을 획득하여 방글라데시 민족주의당을 누르고 압승하였다. 2009년 1월 6일 정식 출범한 셰이크 하시나 정부는 과도정부 기간 동안 폭등하였던 쌀값을 안정화하는 한편 방글라데시의 만성적인 전력 및 교통난 해소를 위한 다양한 국가 사업을 추진하였다.

하지만 하시나 정권은 서서히 독재로 이어지고 있으며, 근래에는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사체로 발견되고 수사도 제대로 하지 않는 등 갈수록 문제점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2014년에는 아와미 연맹이 강행한 총선에 방글라데시 민족주의당 등 야권 18개 정당이 참여를 거부하면서 300개 선거구 가운데 154개에서 후보가 한 명 뿐인 상황이 벌어졌다. 아와미 연맹은 이들 154개 비경쟁의석 가운데 127개를 차지한 것을 포함해 모두 231석을 획득했다.[16] 하지만 투표율은 40%에 불과했고 이에 대해 야권은 재선거를 바라는 국민의 마음이 표현된 것이라고 주장한 반면, 아와미 연맹은 낮은 투표율이 선거의 합법성을 부정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대한민국 18대 총선이 45%

방글라데시 정치의 특징은 각 정당 지도자 가운데 여성이 많다는 점이다. 대개 유력 남성 정치인이 죽은 뒤 부인이나 딸이 후광을 업고 정계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으며, 그 때문에 여성 총리가 자주 등장하는 편이다. 1991년 이후로 정권은 바뀌어도 총리는 계속 여성이다. WEF 같은 곳에서는 이를 근거로 하여 의사결정권을 남녀가 양성평등하게 나누어 갖는다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이에 대해서 엘리트 계층이 친인척들을 동원하여 그 사회의 실권을 장악하는 사례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이 때문에 가족관계로 얼키고설킨 뇌물낙하산, 정경유착 등의 문제도 크다고. 또한 정계에 진출한 여성들이 정작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에는 자기 의견을 내지 못하고 그저 거수기 수준의 역할에만 그친다는 비판도 있다. # 단순히 여성 정치인의 수를 가지고 그 사회의 양성평등의 정도를 판단하기는 곤란하다는 얘기.

10. 사회

한마디로 개막장. 콩고 민주 공화국,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나라다. 그나마도 앞에 세 나라는 오랜 내전으로 그렇다고 하지만 이 세 나라와 달리 내전도 없는 방글라데시이기에 그 막장성이 더한 셈이다.

성매매가 2000년대 초반 이후로 합법화 되어 만 18세 이상의 여자들은 성매매가 가능하다. 하지만 방글라데시 성매매의 현실 미성년자들의 성매매가 빈번하며 20대 초반만 되도 베테랑 소리를 들을정도로 난잡하다.... 주로 다울랏디아, 라즈바리, 탄가일, 머밍싱등이 유명하다.

한때는 행복지수가 가장 높다는 근거 없는 낭설이 국내에서 정설로 통했으며 심지어 교과서에까지 실리기도 했지만[17] 헛소리로 판명된 지 오래다. 오히려 90년대 당시 행복도 조사의 기준이 애매해서 생긴 문제로, UN에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오히려 최하위권에 속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 현지 중산층이나 교민에게 물어보면 저런 조사결과에 대해서 어이없어한다고. 그들은 행복지수가 아니라 체념지수가 높다는 게 맞는 표현이지요라고 한다. NEF의 행복지수 조사에선 30에서 40위 정도로 평가받으며 삶의 만족도는 세계 104위라고 한다.

문맹률도 72.8%로 높다. 아마 행복도 설문에 응답한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불행한 하층민이 다 빠져 있었을 것이다.

얼마나 막장인지 2010년 기준 방글라데시의 자살률만 해도 무려 인구 10만 명당 128.8명이라는 경악할 수치를 보여줬을 정도이며, 대한민국의 자살률(2012년 기준 28.1명)보다 4~5배나 되는 수치를 보이고 있을 정도다. 자료. 환산하면 대략 1년에 무려 20만 명이 자살을 하는 셈이며 방글라데시가 얼마나 살기 힘든 국가인지를 말해주는 셈. (특히 이슬람에서는 자살을 가장 큰 죄악으로 여기기에 이슬람 국가인 방글라데시의 자살률이 저렇다는 것은 비상식적이다.) 다만, 이 조사는 정부가 발표한 공식조사가 아닌 시민단체의 비공식 조사이므로 수치를 100% 신뢰하기는 어렵다. 물론 저런 추정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이며 오히려 방글라데시와 같은 후진국 정부가 시행하는 직접 조사는 자국의 문제를 축소하거나 은폐하려 시도할 소지가 높다.

게다가 여기에 따르면, 방글라데시에서는 11세의 아동도 일 최대 14시간에 달하는 중노동을 독성 물질에 노출되면서도 억지로 하고 있다고 한다. 또 세계보건기구에서 1984년의 보팔1986년의 체르노빌보다도 심각한, 역사상 최대의 집단 중독(?)이 방글라데시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비소 중독으로 최대 7700만 명이 수년에서 수년의 수명 단축을 겪을지도 모르며 심각한 보건상의 문제도 초래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상황이 좀 낫다는 어린이들 역시 주로 FIFA 월드컵에 납품하는 공인구를 꿰매는 일을 하는데 이게 얼마나 참담하냐 하면 대한민국 원으로 환산했을 경우 고작 200원 남짓한 돈을 하루 급여로 받기 위해서 이 어린이들이 하루종일 축구공만 꿰매고 있다는 점이다.

방글라데시는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을 보다못한 의류노동자들이 임금인상 시위를 벌였고 방글라데시 정부가 진압하는 과정에서 노동자 1명이 사망했고 시위 양상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양상을 보였다.#

의외로 행복지수나 삶의 만족도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전형적인 이슬람교 국가답게 여성 인권 유린 문제도 대단히 심각한 수준이다. 여성 학대 비율과 강도가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까지 포함해서 전 세계 최고 수준이며 심지어 남편이 아내를 상습적으로 고문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것도 현재 실권자인 여성 총리 셰이크 하시나가 집권 중인데도 여성 인권이 바닥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현 총리가 틈만 나면 신경 쓰는 게 여성과 아동 인권이다.[18] 그리고 2018년 1월 30일에 아시아개발은행은 방글라데시의 여성차별이 매우 심각하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런 막장 상황에 경제적으로도 박살나서 실업률도 굉장히 높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실업률이 5%라고 주장하지만 세계은행은 20%로 추산하며 방글라데시 시민단체들의 조사론 무려 60%에 달한다. 이 나라의 인구밀도를 봐라. 이 정도 인구밀도라면 무슨 짓을 해도 실업율이 개쩔 수 밖에 없다. 특히 청년실업이 심각하다# 직장인들조차 저임금에 시달리며 빈곤율도 굉장히 높다. 그래서 무수한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이 해외로 가서 일하는 판국이다. 방글라데시 노동자는 아랍권에서 파키스탄과 더불어 많기로 유명하여[19] 아랍권에서 가난한 이슬람 나라로 푸대접받으며 무시당한다. 아랍권 외에도 한국과 유럽, 일본, 미국에도 많이 와서 일한다.

방글라데시 내의 소수민족들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게 심각한 차별과 탄압을 받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이를 막거나 할 생각을 안하고 오히려 소수민족들을 차별하며 탄압을 하고 있다는것이다.#

일본인 차 연구가인 오사다 사치코[20]가 쓴 <세계의 차>에서도 방글라데시 차 농장에 취재하러 가서 무척 우려한 게 나오는데 방글라데시 여성들이 찻잎을 하루에 12시간 가까이 따는 일을 하면서 받는 돈이 5타카 수준, 우리 돈으로 약 70원(2017년 4월 한화 추산액)이라고 한다! 햇볕에 노출되면서 그 넓은 농장에서 찻잎을 따는 일에 이런 가공할 푼돈을 받고 일하고 있었다. 방글라데시 물가를 고려해도 엄청난 푼돈이었는데 네팔이나 스리랑카, 케냐 같은 다른 나라 차농장에서 여성들도 상대적으로 남성보다 적은 돈을 받고 일해도 방글라데시보다 훨씬 많이 받고 직업환경도 더 좋았다고 쓸 정도였다. 네팔이나 인도 차 농장에서는 몇몇 인기 좋은 농장은 여직원들에게 햇볕을 가릴 양산을 기본으로 주고 식사 제공에 상여금에 쉬는 시간도 주고 명절에 특별 보너스, 우수 직원에게는 커피 포트나 가전제품을 준다든지 그 나라 여성 인력 고용상황에서 엄청나게 우대하는 경우도 종종 봤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농장에서 빈 자리가 정말 없다고 한다! 여기 일하는 여성들은 아파서 죽기 전이 아니면 일하기에 간혹 사람이 그만둬서 새롭게 1명이라도 고용하자면 수십 대 1에서 수백 대 1 경쟁률이 벌어질 정도로 오려는 여성이 많다고 한다. 반면 방글라데시에는 그런 거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방글라데시에서 취재한 그 농장이 잘 팔리는 농장임에도 대우가 이렇다! 인도나 파키스탄에서도 여성 노동자들을 헐값에 부려먹는 차 농장(그리고 그 농장들조차도 당연히 방글라데시보다 훨씬 돈도 많이 주고 일할 환경도 좋다고 한다...)도 많지만 여긴 작은 시골 농장 같이 벌이도 시원치 않기 라도 하지 방글라데시는 엄청 크고 해외 수출로 벌이가 좋은 농장임에도 이런 막되먹은 대우를 하고 있으니 문제다. 여성들은 대충 스스로 낡은 모자를 쓰거나 대충 천을 붙여서 햇빛가리기를 하고 찻잎을 따고 식사도 대충 도시락을 싸와 맹물과 같이 먹는 수준이라고 한다. 당연하지만 현지 여성들도 아주 푼돈받고 일해서 분노하면서도 도무지 다른 직업이 없어 이거라도 해야 하지 않으면 굶어 죽는다고 울며 겨자먹기로 한다며 하소연했으니 말 다했다. 인도나 파키스탄도 방글라데시에 비하면 그냥 천국인 셈.

빈자들에게 무담보 저이자 소액대출을 해주는 마이크로크레디트의 개념이 처음 나오기도 한 나라이기도 하다. 창시자인 무함마드 유누스 그라민 은행 총재는 이러한 빈자 구제 극복에 대한 공을 인정받아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하지만 유누스 그라민 총재가 정치에 진출하려고 했다가 현 총리와 집권당 아와미 연맹에게 밉보이는 바람에 견제를 받아 그라민 총재에서 쫓겨나고 말았다.기사 방글라데시 헌법 상 총재직은 정년이 60세인데 유누스는 이를 훨씬 넘긴 70세에도 총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정부가 이를 방글라데시 고등법원에 고소하여 그를 물러나게 만들었다. 정계 진출 시도 안 했어도 결국 그 꼴 났을 듯 이 때문에 유누스 지지자들이 반발하며 무려 300여만명이 얽히면서 반정부 시위를 벌일 정도였으니 사회적, 경제적으로 정부에게도 타격을 줬다.

이슬람이 주류인 탓에 주말은 금요일토요일이고 일요일은 그냥 평일이다.

11.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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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 다카에 있는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জাতীয় সংসদ ভবন)이 유명한 편. 루이스 칸이 설계한 것으로, 건물이 독특한 게 특징이다. 외국인은 허가 없이 즉석으로 들어갈 수 없지만, 인터넷으로 사전 방문 신청을 하면 들어갈 수 있다.

종교는 이슬람교가 대다수로 사회 주류다. 인도 문화권의 영향으로 힌두교 인구도 9%로 상당한 숫자가(힌두교도 자체집계로는 인구 12%까지 추산) 있다. 하지만 이슬람의 박해로 인해 이를 못 견딘 나머지 힌두교 신자들이 이웃의 힌두교 국가 인도로 많이 탈출하고 있는 형편이다.

11.1. 언어

공용어는 벵골어이다.

인도파키스탄처럼 교육받은 사람들과 상류층들은 영어를 할 줄 안다. 그리고 영국의 영향으로 영어가 주요 외국어로 지정되어 있다. 영어는 정규과정에서도 필수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다만 방글라데시는 이 두 나라와 달리 영어가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지 않은데, 그 이유는 여러 민족과 수많은 언어가 존재하는 인도, 파키스탄과는 달리 벵골인이 전체 인구의 98% 이상을 차지하므로 벵골어만으로도 소통에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1947년 인도, 파키스탄 분할 당시 벵골 지방이 아닌 인도의 비하르, 동부 우타르프라데시의 바라나시, 발리야, 차프라 등지에서 피난온 사람들은 비하리라 불리며 이들은 힌디어, 우르두어, 비하리어 등을 사용한다. 그리고 방글라데시는 아랍과 이슬람교의 영향으로 아랍어가 영어와 함께 주요 외국어로 가르치고 있다.

인도 영화나 미디어의 영향으로 의외로 힌디어가 통한다. 남자보다는 여자가 잘하는데 아무래도 여자가 드라마를 더 많이 보니까 많이 배운다.

벵골어의 경우, 인도 북동부에서 사용하는 것과 같은 뱅골어이므로 서로 언어가 잘 소통된다. 다만 서로 완전히 똑같은 것은 아니고 다소의 방언적 차이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차이로 ছ 문자를 인도 벵갈에선 '처' 로 발음하고 방글라데시에서는 '셔' 로 발음하며 여러 단어, 발음의 차이가 있다.
  • 예: '나는 밥을 먹게 앉을테니 나중에 얘기할게'
  • 인도-আমি এখন খেতে বসছি, পরে কথা বলব(아미 에콘 케떼 보스치- 뽀레 꺼타 볼보)
  • 방글라데시- আমি এখন খাইতে বসতেছি, পরে কথা বলমু (아미 에콘 카이떼 보스떼씨- 뽀레 꺼타 볼무)
인도 사람들은 방글라데시 벵골어에 대해 '굉장히 시골에서 쓰이는 구어적 사투리' 라고 생각하고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인도 콜카타에서 쓰이는 벵갈어에 대해 '매우 교과서적이고 문어체적인 언어' 라고 생각한다. 방글라데시의 벵갈어는 동사,단어 중간중간에 '이' 발음이 자주 첨가되며 동사의 현재진행형 중간에 '떼' 발음이 추가된다. 그리고 방글라데시 내에서 쓰이는 벵갈어는 사투리가 굉장히 많다. 이를 벵갈어로 আন্চলিক ভাষা(안쫄릭 바샤) 라고 부르며 통상 제숄, 라즈샤히 부근의 언어가 제일 공식적이고 표준어에 가깝다 여겨지고 동쪽으로 갈수록 사투리가 심화되며 치타공의 언어는 도저히 같은 벵갈어라고 할수 없을 정도로 다른 경지에 도달해 버린다.

‘미안하다.’는 표현이 없다는 말이 있으나 사실이 아니다... 영어의 Sorry 와 비슷한 느낌인 দুখিঃত (두킷또)를 쓰긴 한다. 빈도가 적긴 하지만.

11.2. 스포츠

축구의 인기가 많은 덕택에 축구를 즐기는 사람도 많지만 축구를 즐기는 사람만 많지 선수 육성시스템이 영 좋지 않기 때문에(...) 인도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많은 인적자원을 지니고 있음에도 자국 축구 실력은 세계적인 약체다. 자세한 건 방글라데시 축구 국가대표팀 참고.

하지만 실력과 달리 이 나라 국민들은 세계에서 가장 극성스런 축구팬들로 알려져 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자국 팀도 아닌,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졌다고 자살하는 사람까지 나올 정도다. 1994 미국 월드컵 당시 디에고 마라도나가 약물 검사에 걸려 월드컵 출전이 금지당하자 방글라데시 축구팬 수천여 명이 피파 본부가 있는 스위스 대사관 앞으로 몰려들어서 돌을 내던지며 분노했었고 1998 프랑스 월드컵 네덜란드 vs 아르헨티나 8강전에서 아르헨티나가 네덜란드에 패하자 아르헨티나 축구팀을 응원하던 한 방글라데시인이 자살했다는 뉴스가 해외 토픽으로 실리기도 했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선 프랑스가 탈락하자 방글라데시에서 분노하면서 작은 폭동이 벌어졌으며 2010 남아공 월드컵 당시 정전으로 월드컵 중계가 중단되자 다카 거리에서 수천여 명이 폭동을 일으켜 수백여 명이 다치는 일까지 벌어졌다.

대중 인기에 비해 실력은 떨어지는 축구와 달리 영연방 나라답게 크리켓에도 환장하는 나라다. 정전이 자주 일어나지만 크리켓 월드컵 땐 정전이 없다고 한다. 정전이 나면 사람들이 국영전기 관계자들을 죽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이웃 인도스리랑카, 파키스탄이 크리켓 월드컵에서 우승한 것과 달리 크리켓 월드컵 최고성적은 8강 토너먼트 진출이다. 그러나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정식 종목이 된 남자 크리켓으로 마침내 염원하던 금메달을 따냈다. 이는 방글라데시 역사상 첫 구기 종목 국제대회 우승 기록이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는 남자 크리켓에서 동메달을 받았으며 여자 크리켓은 두 아시안 게임에서 은메달을 받았다. 만약 크리켓이 올림픽 정식 종목에 추가된다면 메달권에 진입하려나? 인구가 1억 명이 넘는 나라 중 올림픽 메달을 하나도 못 따 본 나라가 방글라데시다.

12. 경제

의류업, 그 중에서도 직물 가공업이 '국부'(國富)로 불릴 정도로 2010년대 현재 방글라데시의 산업에서는 직물 가공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하지만 그만큼 이면에 숨겨진 인권 유린과 노동 환경 문제도 큰데, 이런 문제가 2013년 4월 24일에 사상 최악의 건물 붕괴 사고라는 방글라데시 라나 플라자 붕괴사고가 발생하면서 전 세계에 드러나게 되었다.

13. 외교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방글라데시/외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4. 대중매체에서의 방글라데시

14.1. 방글라데시 국적, 출신 캐릭터

※ 해당국 작품 인물은 제외한다.
  • 애쉬 파룩 - 프론트 미션 2nd : 해당 작품의 주인공. 작중에서는 아롤데시 인민공화국이라는 명칭으로 나온다. 처음엔 방글라데시로 OCU에 가입했지만 모종의 이유로 분리독립하며 국명을 바꾼 것이다. 여기서도 힘들게 사는 동네북 국가로 나온다...

14.2. 한국 방송 및 영화

  • KBS 이웃집 찰스2016년 6월, "방대한" 씨가 출연했다.(방글라데시 이름은 칸 모하메드 아사두즈만) 방글라데시 출생, 20대에 한국으로 취직 이후 귀화. 영화 "방가방가(방가? 방가! - 감독 육상효. 2010년 작. 코미디.)"로 방송을 타게 되었다. 원래 노래를 잘 했으며 트로트 음반도 냈다(알고보면 고국에서 로스쿨 지망생이었다는 사연도 소개됨). 현재는 고국의 여성과 결혼하여 딸 1명을 두었다.

[1] 일장기 역시 1999년 이전까지는 가로 길이의 1/100만큼 왼쪽으로 치우쳐져 있었다. 지금은 정중앙이다.[2] 1위인 중화민국이 ㎢당 3,600명, 2위는 국토 대부분이 사막인 이집트(!)로 ㎢당 3,300명이 거주한다. 3위는 일본으로 ㎢당 3,150명, 4위는 한국으로 ㎢당 2,960명, 5위는 레바논이고 ㎢당 2,350명이다.[3] 한국만 해도 1955년에는 6.3명의 출산율을 보였던 적도 있고, 대만도 1950년에는 7명대의 출산율을 보였던 적이 있으며 몽골도 1960년대 당시에는 7.5명대의 출산율을 기록한 적이 있으니까, 그냥 방글라데시의 출산율 하락 시점이 늦다 보니 가공할만한 출산율 수치를 나타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 뿐이다.[4] 로힝야족의 역사가 그리 긴 편이 아니다. '로힝야'라는 민족명도 20세기 이후에나 생겨난 말로, 억지에 가까운 기록에 등장하는 정체불명의 단어를 대충 끌어다 쓴 것에 불과하다. 이들의 기원은 벵골계 민족들의 한 부류인 치타공인과 같은 민족이며, 사촌뻘이 아닌 완전히 동일한 민족이다. 다만 언어적인 측면에서 약간의 방언 수준의 차이가 있을 뿐이고, 문화적으로는 거의 차이가 없다.[5] 이들은 미얀마에서 살지만, 국적상으로 미얀마인은 아니다. 미얀마의 국적 정책 때문인데, 자세한 내용은 로힝야 문서 참고.[6] 앞서도 언급했듯이 로힝야족은 19세기에나 미얀마에 유입되기 시작한 이들이고, 미얀마에 완전히 정착하게 된 건 20세기의 일이다.[7] #[8] 쥐꼬리만도 못한 일당을 벌기위해 매일 12-16시간씩 일하는데 해체 과정에서 석면, , 폐기름 등 온갖 유해성 물질에 그대로 노출되는데다가 폐선 조각에 깔려 사망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9] 나왑(nawab)은 이슬람인 귀족이다. 굳이 서양식으로 번역하자면 대공국 정도. 영어로는 nawab of Bengal.[10] 방글라데시의 인구는 현재 1억 6,000만으로 파키스탄의 인구 2억보다 적지만, 저 당시에는 방글라데시의 인구가 더 많았다.[11] 이 당시 아히야 칸 대통령은 총선 과정에서 동파키스탄 측과 아와미 연맹 측의 부정 행위가 있어 무효화할 수 밖에 없었다고 변명을 했으나 라흐만 아와미 연맹 당대표는 아와미 연맹과 동파키스탄을 중앙 권력에서 배제하려고 서파키스탄 측이 총선 무효화를 했다고 격하게 반발하여 협상이 실패했다.[12] 이러한 사례는 과거 다른 나라의 일부였던 국가가 독립하거나 독립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많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일인데 구 유고 내전에서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 마케도니아가 유고 연방에서 독립하자 유고슬라비아 군내에 있던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마케도니아 출신 군 장병들이 신생 국가들의 군대로 신분을 옳기거나 귀순하기도 했고, 1950년대 알제리 전쟁에서도 프랑스 군내에 있었던 알제리 출신 군인들이 프랑스군에서 나가 알제리 독립군에 합류하여 프랑스군과 싸우기도 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국 역시 일제강점기 말기 일본군으로 강제 징병되어 끌려갔던 조선 출신 학도병들이 일본군에서 탈영하여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에 합류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13] 현 총리가 무지부르의 장녀다.[14] 그래서 반 무지부르 파가 집권했을 때는 강제 퇴역을 당하거나 함명이 변경되는 등 나름대로 수모도 겪었다.[15] 남아시아에서 파업을 일컫는 말. 하지만 말이 파업이지 사람들이 차도를 점거하고 소리지르며 돌아다니며 도로에 주차되어 있는 차들을 부수거나, 심하면 길가의 가게들의 유리창을 부수고 약탈한다. 그래서 실질적으론 파업이 아니라 폭동이다.[16] 이미 2008년에 야권 연대의 의석 총합이 33석에 불과할 정도로 참패한 상황이라, 야권이 불참한 선거였지만 아와미 연맹의 의석이 늘기보다는 아와미 연맹에 협력하는 다른 정당이 의석을 나눠가졌다. 그 뒤 8석의 재선거를 거쳐 아와미 연맹의 의석은 234석으로 늘어났다.[17] 부가 인간의 행복을 결정짓지 않는다는 주장의 근거로서 등장했다. 이원복 교수의 저서 세계사 산책에도 나왔다.[18] 사실 여성 인권이 낮은 국가에서도 가문의 힘으로 유력 정치인이 되는 경우는 꽤 많다. 방글라데시의 경우 셰이크 하시나는 초대 대통령인 셰이흐 무지부르 라만의 딸이고, 가장 큰 야당 BNP의 칼레다 지아는 4대 대통령인 지아우르 라만의 아내다. 여성 인권 지수를 결정하는 데 고위직 여성의 수를 고려할 경우 실질적으로는 여성 인권 최악인 나라가 여권이 높은 나라로 판단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성평등과는 무관하게 유력 가문 출신, 유력 가문의 유력 인사 누구의 딸, 누구의 부인 이런 간판이 더 중요하게 작용해서 여성이 고위직에 올라선 경우가 많기 때문.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등 여권이 최악이라는 남아시아 국가들은 이미 서구 국가들보다도 이른 시기에 여성 총리급을 배출한 바 있다.[19] 왜냐면 아랍권이 다른 국가들보다 가기 쉬우니까. 아무래도 같은 무슬림이라 더 받아주는 편이다. 덕분에 다수 인구가 기독교가 많은 필리핀이나 다른 나라 노동자보다 아랍권에서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 막노동자가 엄청나다.[20] 현재 한국 남성과 결혼해 한국에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