দ্বাদশ জাতীয় সংসদ নির্বাচন
1. 개요
2024년 1월 7일와 월 일에 있었던 2번의 방글라데시의 의회선거이다.2. 1차 선거
2024년 1월 7일에 있었던 방글라데시의 의회선거, 지구촌 선거의 해인 2024년에 있었던 첫 선거이다. 방글라데시는 세계에서 인구가 8번째로 많은 국가로(1억 7,470만 명/통계청, 2022) 의원 300명을 뽑는 총선거를 실시했다.2.1. 선거 당시 상황
방글라데시의 제1야당인 방글라데시 민족주의당과 일부 군소 야당들은 참여하지 않았다. 야당은 이번 선거가 불공정하게 치러질 거라며 하시나 총리 등 현 내각이 사퇴하고 중립 내각을 구성한 뒤 공정한 선거를 치르자는 주장을 해왔다. 셰이크 하시나 총리와 정부가 그동안 비민주적인 통치 행위를 해왔기 때문에, 이번 선거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방글라데시 민족주의당과 일부 군소정당들은 2022년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여파로 국내 물가가 뛰고 민생이 어려워지기 시작한 이후 반정부 시위를 벌여왔다. 특히 야권은 2014년, 2018년 총선 때 부정이 저질러졌다면서 올해 공정한 총선을 위해서는 하시나 총리 내각이 사퇴하고 중립적 과도정부가 들어서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하시나 총리는 20년 넘는 집권 기간 세계 최빈국 방글라데시를 남아시아에서 경제 성장이 가장 빠른 국가로 탈바꿈시켰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하지만 그 이면에는 야당 탄압, 시위 유혈 진압, 언론 탄압 등 각종 비판도 뒤따랐다. 실제로 이번 선거를 앞두고 방글라데시 정부 당국은 대대적인 야권 탄압을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선거를 몇 달 앞두고 야당 지도자에 대한 체포에 나섰는데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에 따르면 야권 지도자와 당원 등 최소 1만명이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2만명 이상의 야권 지도자와 당원이 체포됐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선거일을 앞두고 18차례나 폭탄 공격이 있었지만 선거 당일은 비교적 평온하게 지나갔다. 투표율은 40%로 이전 선거에 비해 거의 절반에 그쳤다고 선거관리위원회의 카지 하비불 위원장은 발표했다. 방글라데시 선관위에 따르면 이번 선거는 37개 지역에서 폭력사태가 신고됐고, 5명이 체포됐다. 또한 수도 다카의 한 투표소 부근에서 사제 폭탄이 터져 4명이 다쳤다.
2.2. 결과
의회 정원 300명 중 무소속 후보가 사망하면서 현지 법에 따라 투표가 연기된 1개 지역구를 제외한 299명을 뽑는 선거에서, 여당인 아와미 연맹(AL)이 전체 의석의 75%에 해당하는 222석을 차지했다. 나머지 의석은 무소속(62석)과 제3당인 자티야당(11석) 등이 가져갔다. 방글라데시는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이에 따라 선거 결과 제1당에서 총리가 선출되기에 이번 선거 결과로 집권당 아와미 연맹을 이끌었던 현직 총리 셰이크 하시나 총리가 또다시 차기 내각을 이끌게 되었다.방글라데시 역사상 최장수 총리로 기록될 76세의 하시나 총리는 경제난과 정치적 극한 대립 등 최악의 조건 속에서 향후 방글라데시를 이끌어가게 되었다고 외신들은 보도했다.
일단 야당은 이번 총선 보이콧이 성공했다고 자평하는 분위기이다. 2018년 총선에서 80%를 넘긴 투표율이 이번엔 40%로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제 1야당인 방글라데시 민족당(BNP)을 이끄는 칼레다 지아 전 총리는 방글라데시 유권자들이 정부의 일방적인 폭력 부정선거를 거부했다며 이번 선거 결과를 받아 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여담으로 이 투표율 자체도 조작 논란이 불거졌다. 투표 마감 한 시간 뒤 선관위원장이 기자회견에서 투표율이 28%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는데, 그 자리에서 곧바로 다른 관계자들에 의해 투표율이 40%로 정정 발표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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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차 선거
1차 총선 이후 하시나 총리는 반대파에 대한 탄압과 아와미 연맹을 중심으로 한 독재적 권력을 구축하려고 시도하였고 민생고에 시달리던 국민들을 저버리고 특권층의 이권만을 보장해주려는 행보로 대규모 반 정부 시위를 맞았으며 정부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시위에 참여한 국민들을 대거 학살하여 민심을 잃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8월 5일, 1차 총선 이후 불과 7개월도 되지 않아 하시나 총리는 결국 분노한 국민들을 피해 인도로 도주하며 실각하였다.
이에 따라 과도정부를 구성하겠다고 밝힌 군부와 시민단체 각계 대표단이 시위대 학생대표들과 논의한 결과 이를 수용하면서 8월 7일 노벨평화상 수상자 무함마드 유누스가 과도정부 최고 고문으로 선출되었으며, 다음날인 8월 8일 수도 다카의 대통령궁에서 모하메드 샤하부딘 대통령의 주관 하에 취임하여 총선을 지휘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