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인민공화국 총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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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제7대 대통령 배우자 방글라데시 제10·12대 총리 칼레다 카눔 푸툴 খালেদা খানম পুতুল | Khaleda Khanum Putul | |
<colbgcolor=#820A0A> 출생 | <colbgcolor=#ffffff,#191919>1945년 8월 15일[1] ([age(1945-08-15)]세) |
인도 제국 디나이푸르 구 (현 방글라데시 디나이푸르 구) | |
국적 | [[방글라데시| ]][[틀:국기| ]][[틀:국기| ]] |
가족 | 배우자: 지아우르 라흐만 (1960년-1981년) 장남 타리크 라흐만 차남 아라파트 라흐만[2] |
약력 | 방글라데시 제1·4대 영부인 방글라데시 민족주의당 지도자 방글라데시 제10대 총리 방글라데시 제12대 총리 |
정당 | [[방글라데시 민족주의당| 방글라데시 민족주의당 ]] |
지역구 | 페니 1구[3] 보그라 6구[4] |
의원 선수 | 3 |
재임기간 | 1991년 3월 20일 – 1996년 3월 30일(10대 총리) 2001년 10월 10일 – 2006년(12대 총리) |
직업 | 정치인 |
종교 | 이슬람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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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방글라데시의 전 총리. 방글라데시 최초의 여성 총리이며 전 대통령이자 독재자 지아우르 라흐만의 부인이다.1981년 남편이 암살된 후 정치에 뛰어들었으며 1990년대 이후 방글라데시 정치에서 사별한 남편 못지 않은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셰이크 하시나와 함께 방글라데시 정치판을 주도한 두 여인 중 한 명인데 다만 하시나가 권력을 잡은 2009년 이후부터는 견제를 받으면서 제대로 정치활동을 하지 못했다.
2018년에는 횡령혐의로 수감되어 10년형을 선고받았는데 2024년 8월 5일 셰이크 하시나가 반정부 시위의 여파로 사임한 이후 방글라데시 대통령와의 협상을 통해 특별 사면 및 석방되었다.
정치인으로서의 평가는 좋지 않다. 라이벌인 셰이크 하시나 못지 않은 독재성향과 부정부패로 악명높은 인물로 하시나와 차이가 있다면 좀더 무능하다는 것.[5]
2. 생애
현 총리 셰이크 하시나의 숙적#으로, 방글라데시 민족주의당을 이끌고 있다.원래 방글라데시 민족주의당은 1975년 쿠데타 이후 군부세력이 창당한 집권당으로 지아우르 라흐만이 집권했지만 준비되지 않은 쿠데타다 보니 경제문제를 비롯한 국내 문제 해결에 실패한 뒤 군부의 분열이 생겨서 1980년 다시 군부의 장교 후세인 무하마드 에르샤드가 주도한 쿠데타로 인해 남편 지아울 라흐만이 살해당하고 지아도 감옥에 갇혔다.
이후 지아는 에르샤드 군사정권에 강력하게 저항하며 감옥을 수시로 드나들면서 묘하게도 독재자의 아내지만 방글라데시 민주주의의 투사 이미지도 얻게 되었다. 물론 완전한 방글라데시의 민주화를 원하는 방글라데시 국민들 입장에서는 군사정권이나 칼레다 지아나 도긴개긴이며 쿠데타 세력들끼리 권력 다툼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양쪽을 모두 비난했다.
신군부 에르샤드 정권이 1991년 소련 붕괴로 촉발된 남아시아의 도미노 경제위기에 무너지면서 정치적 재기 기회를 얻었고 에르샤드가 퇴진한 후 새로 치러진 총선거에서 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의 딸인 셰이크 하시나가 당수가 되어 이끌었던 아와미 연맹에 승리하여 제1당이 되어 당수인 지아가 총리에 올랐다.
집권 후에는 1975년 쿠데타 당시 방글라데시의 국부 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 살해범들에 대한 재심을 막는 법안을 통과시켜 논란이 되었다. 집권 초에는 나름 기대를 받았으나 이전 정권과 다를 바 없는 무능하고 부패한 모습을 보이면서 지지율이 추락해서 1996년 선거에선 아와미 연맹에 패하면서 총리에서 물러났다.
2001년에 아와미 연맹으로부터 어거지로 정권을 탈환했지만 그 과정에서 부정선거 논란에 폭력으로 국민을 학살하고 경제를 박살내는 등 국정 운영은 엉망 그 자체였다. 너무 혼란이 지속되자 방글라데시를 원조하는 국가들이 압력을 강하게 넣어 2006년에는 Care Take Government라는 선거용 임시정부 체제로 강제 전환되었으며 칼레다 지아는 총리를 사임했다.
결국 2008년에 아와미 연맹에 다시 정권을 빼앗겼으며 2014년 다시 총선거를 준비했지만 2008년과는 다르게 아직까지 남아 있던 신군부 에르샤드의 자티야 당이 구군부인 민족주의당에 복수하고자[6] 일으킨 네거티브에 민족주의자당도 같이 네거티브를 일삼다가 공도동망했다. 실망한 국민들이 둘 모두를 외면하고 아와미 연맹을 선택한 것.
2018년에는 횡령 등의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었다. 이후 10년까지 형이 늘어났는데 감옥을 가진 않고 가택연금 상태라고 한다. 칼레다 지아 및 BNP측은 지아에게 씌어진 혐의에 대해 셰이크 하시나 정부가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2024년 방글라데시 시위로 2024년 8월 5일 하시나가 사임하면서 칼레다 지아의 거취가 관심을 받았는데 모하메드 샤하부딘 대통령은 칼레다 지아를 즉각 사면, 석방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실제로 하시나가 사임한지 하루만에 가택연금이 해제되었다.
석방은 됐지만 과연 정치일선에 복귀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미지수이다. 일각에서 정계복귀에 대한 전망도 나오고 있으나 군부 독재자의 부인인데다 집권 중에 하시나보다 더욱 잔인하고 심한 독재와 악행을 저질렀기 때문에 이미지나 행적이나 현재 방글라데시의 분위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다.
하시나가 쫓겨난 이후 그라민은행의 설립자이자 빈곤퇴치에 앞장서면서 방글라데시인들에게 큰 존경을 받아오던 무함마드 유누스 교수가 과도정부 수반으로 선출되었으며 총선을 다시 치룰 예정이기 때문에 2024년 현재 80살을 앞둔 칼레다 지아가 권좌에 다시 앉기는 쉽지 않아보인다. 다만 유스누 교수는 현재 아무런 정치 조직이 없고 아와미 연맹이 정권을 잃고 아직까지 상황이 불투명하여 총선까지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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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 생일이 이 날이 아니라는 말도 있다. 이 날은 하필이면 숙적 셰이크 하시나의 가족들이 쿠데타군에 몰살당한 날이기도 해서 측근들조차 생일잔치 다른 날에 하면 안되냐고 건의할 정도라고 하지만 지아는 걍 생까고 생일잔치 한다는데 둘의 사이를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는 부분이다.[2] 차남은 2015년 말레이시아에서 심장 질환으로 사망했다.[3] 치타공 주 페니 구 위치[4] 라즈샤히 주 보그라 구 위치[5] 하시나는 그래도 경제성장이나 여성인권 신장과 같은 공적이라도 있지만 이 분은 그냥 답이 없다.[6] 사실 지아 입장에선 에르샤드야말로 자기 남편을 죽이고 자신을 탄압한 원수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