벵골인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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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방글라데시의 유명한 시인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
인도 서벵골 주의 주 총리인 마마타 바네르지 |
방글라데시의 총리인 셰이크 하시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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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벵골인은 인도아리아계의 분파 중 하나로, 인도의 서벵골 주, 트리푸라 주와 방글라데시, 미얀마[1]에 거주하고 있다. 방글라데시에는 1억 6천만 명 정도가, 인도에는 총 9천 7백만 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 방글라데시인의 약 98%[2]가 이 벵골인에 해당한다.국내에도 약 12000명정도의 벵골인이 거주하고 있다. 영화 방가? 방가!에도 나왔던 방대한씨가 방글라데시 벵골인 출신.
2. 언어
벵골인의 대부분은 벵골어를 사용하며 인도의 서벵골 주에서 사용하는 벵골어와 방글라데시에서 사용하는 벵골어는 조금 다르다. 자세한 내용은 벵골어 항목을 참조.그 외에도 로힝야인들이 쓰는 로힝야어는 치타공어 화자와 대화가 통해서 벵골어와 로힝야어, 치타공어는 방언연속체에 속해 있다.
영어도 제법 쓰이고 있는데 이는 방글라데시 자체가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은 나라인데다가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난 이후로도 식민지 시대의 사회, 문화가 많이 계승되어 영어가 중요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벵골인들 중 교육받은 계층과 상류층들은 영어를 할 줄 안다.
2.1. 힌디어의 입지
2.1.1. 서벵골
"벵골에 사는 사람은 벵골어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마마타 바네르지, 2019년 연설에서
오늘날 서벵골 지방에서 힌디어의 지위는 다소 미묘하다. 서벵골 콜카타 벵골인 중산층이나 상류층은 잘 교육받은 사람일수록 전통적으로 영어와 벵골어에 집중[3]하는 경우가 많고, 정확한 벵골어를 사용하는 것에 스스로 큰 자긍심을 느낀다. 힌디어는 중등교육 과정에서 학교에서 가르쳐주므로 기본 회화와 독해는 가능하며 타 지방에서 온 인도인과 소통할 때 이따금 사용하긴 해도, 그 이상으로는 그다지 학습에 열의가 없는 경우가 아주 흔하다. 서벵골이라고 해도 시골에서는 취학률이 낮아 힌디어를 배우지 못했거나, 배워도 쓸 일이 없어 잊어버리고 사는 경우도 많다. 또한 남인도보다 과격성이나 힌디어를 거부하는 정도는 덜하지만, 서벵골에는 어느 정도 벵골어 기반 언어 민족주의 운동이 있다.마마타 바네르지, 2019년 연설에서
보통 힌디어 모어 화자가 아닌 인도인이 중고등학교에서 가르쳐주는 필수 과목 이상으로 힌디어에 몰입해 배우려면 문화적 자극(문학, 영화, 음악, 드라마 등)이 필요한데, 벵골에서는 (적어도 많은 교육받은 벵골인이) 벵골 문학, 영화, 음악 등이 힌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해서 굳이 힌디 문화를 찾아보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4] 벵골 문화를 중시하는 벵골인은 자녀도 초등교육부터 고등교육까지[5] 벵골어와 영어 위주로 쓰는 곳에 보내고, 그러다 보니 이렇게 교육받은 자녀는 도무지 교과서 밖에서는 힌디어에 정을 붙일 겨를이 없게 된다.
하지만, 서벵골에도 2010년대 이래 힌디어를 주 교육 언어로 쓰는 학교들이 많아졌고, 오히려 벵골어 교육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인도 문화 전체, 특히 현대 인도 대중문화에 관심을 두게 되어 힌디어를 열심히 배우는 사람도 있다. 2010년대 인도 중앙 정부의 힌디어 강조가 이어지면서 서벵골 중산층, 상류층 가운데에도 학습 대상으로서 벵골어의 우선 순위를 힌디어보다 낮게("영어는 필수, 힌디어가 그다음") 설정하는 경우가 꽤 많아졌다. 정부의 정책 외에도, 이런 현상에는 현실적으로 오늘날 벵골어가 쓰이는 서벵골 및 동부 지방이 경제적으로 그다지 윤택하지 못하고, 이곳에서 취업 기회가 제한적이라는 원인이 있다. 사람들이 서벵골에서만 살 게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벵골어 학습에 그렇게 집중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서벵골의 벵골어 문학과 출판 문화가 여전히 활기가 넘치기는 하지만, 오늘날 서벵골에서 벵골어로 이루어지는 대중 문화 활동(대중 음악, TV 프로그램 등)의 비중과 중요성은 예전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고, 야금야금 세력을 키운 힌디어 문화 상품이 그 자리를 채워나가고 있다. 이제는 벵골어를 잘 보존하고 가꿔나가는 곳은 서벵골이 아니라 방글라데시라고 씁쓸하게 말하는 서벵골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 전통적으로 벵골의 자부심이었던 영화 산업(톨리우드)조차 최근에는 볼리우드와의 경쟁에서 전체적으로 밀리는 추세다. 같은 비힌디어권이라고 해도 벵골 관객은 남인도 드라비다어권 관객에 비해 힌디어 이해가 가능한 경우가 좀 더 많고, 이로 인해 오늘날 확고한 독자 시장을 확보한 타밀어나 텔루구어 영화에 비해 벵골어 영화는 서벵골에서 힌디어 영화와 직접 경쟁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벵골 영화계는 전반적으로 자본과 설비 등에서 볼리우드나 남인도에 비해 열세이므로, 결국 저예산, 저임금으로 제작하게 되는 경우가 많으며 흥행하기 힘들게 된다. 벵골에서 작가주의 영화가 많이 만들어지고 훌륭한 감독들이 많이 배출된 것은 사실이지만, 벵골 영화의 상업적 성공은 벵골 영화가 누려 온 세계적 명성에 비해서는 많이 부족한 상태다. 벵골 고전/인기 영화는 종종 힌디어 버전으로 리메이크되어 원작보다 더 큰 인기를 누리기도 한다. 더 큰 성공을 위해 벵골 출신 배우가 힌디어 영화를 찍는 일은 이제 그다지 특별한 것도 아니게 되었다.
2.1.2. 방글라데시
방글라데시에서는 힌디어가 필수로 교육되지 않는다. 대학에는 힌디어 학과가 있고, 중등교육 과정에서 선택적으로 가르치는 경우는 있다. 그래도 인도 힌디어 영화의 대중성과 인기로 영화, 유튜브 등의 매체로 어느 정도 힌디어를 학습하는 방글라데시인도 많다. 그렇지만, 힌디어가 어느 정도 통하는 콜카타 등 서벵골 도시와 달리 다카, 치타공 등의 방글라데시 대도시에서는 사람들의 힌디어(또는 우르두어) 실력이 현저하게 낮다. 아예 안 통하는 것은 아니고, 외국인이라면 어느 정도 감안하고 맞춰주려 하겠지만[6], 확실히 인도 도시 수준을 기대할 수는 없다. 중소도시나 시골에서는 힌디어가 거의 통하지 않는다.한편, 방글라데시 교육 기관 가운데 데오반드파의 (사립) 까우미(القومية) 마드라사(2010년대 기준 6만 개 이상이 있음)에서는 오늘날까지도 어느 정도 전통적 방식으로 교육을 진행하며, 따라서 페르시아어와 우르두어가 교육되고 이 두 언어로 된 교육 자료도 사용된다. 이는 보다 현대적인 (국가 공인) 알리야 마드라사와 대조적으로, 알리야 마드라사에서는 현대적 교육 과목도 대폭 도입되어 있고 이슬람 교육에서 페르시아어와 우르두어를 벵골어로 전환하려는 시도도 아주 활발하다. 이에 따라 알리야 마드라사는 오늘날 정식 중등교육/고등교육 기관으로 인정받고 있지만[7] 까우미 마드라사를 국가가 공인하려는 시도는 2006년에야 시작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많은 까우미 마드라사는 미등록 상태이고 졸업해도 학위를 인정받지 못한다. 까우미 마드라사의 교사들은 알리야 마드라사의 교육 현대화를 이슬람 교육의 순수성을 훼손한다고 비판적인 경우가 많다.[8] 까우미 마드라사에서 전통 이슬람 교육을 받은 방글라데시인이라면 우르두어에 어느 정도 익숙할 것으로 기대할 수는 있다.
3. 문화
혼인서약 중 하나인 Gaye Holud에서 신부의 이마에 심황을 바르는 모습 |
서벵골은 힌두교도 인구가 많은데 비해 방글라데시의 경우 무슬림 인구가 더 많다. 이는 중세 갠지스 강 하류 삼각주 일대가 개간되고 해당지역 부족민들이 새로 인도 문화권으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힌두교 대신 이슬람으로 개종했기 때문이다. 인도는 문화적으로 가깝지만, 방글라데시의 경우 종교적인 면에서 차이가 있다. 서벵골이나 방글라데시의 힌두교인들의 경우 중세 인도 대승불교의 밀교가 힌두교화한 것이기도 하다. 벵골인들의 식문화는 방글라데시 요리 문서 참조.
3.1. 종교
지역에 따라 차이가 크다. 인도의 벵골인은 힌두교 신자가 많고(힌두교 70%, 이슬람 30%), 방글라데시의 벵골인은 수니파의 이슬람교 신자가 많다(이슬람 90% 힌두교 8%).그 외에 기독교, 불교 등을 믿는 벵골인도 있다. 벵골인 불교 신도 비율은 통계에 따라 차이가 큰데, 서벵골과 방글라데시 지역 힌두교 교파 중 불교 밀교 교리를 이어받은 교파가 있기 때문에, 이런 교파 신도들을 불교도로 치면 통계상 불교 신도 비율이 늘어난다.
4. 벵골의 상위 카스트
북인도 주들이 대개 그렇듯, 서벵골의 브라만 인구는 약 8% 정도로 남인도에 비해서는 확연히 높은 비율이다. 벵골 브라만의 계보학은 잘 정리되어 있고, 이 지역에서 어느 정도 뼈대 있는 가문이다 싶으면 대개 브라만이거나 까요스토, 보이도(하술) 카스트다. 타고르(타꾸르) 가문 역시 유명한 벵골 브라만 가문이다.브라만이 하도 많다 보니 브라만 가문들의 분류와 브라만들 사이의 등급을 나누는 보이지 않는 경계도 상당히 다층적이다. 오늘날 특히 유명한 것은 다섯 꿀린 브라만(Kulin Brahmins)으로, 이들은 팔라 왕조의 쇠퇴 이후에 칸나우지에서 벵골로 이주했다고 한다. '꿀린'이란 '우월하다'라는 뜻으로, 이주해온 이들이 토착 브라만들보다 우월한 존재임을 뜻한다. 다섯 꿀린 브라만 성씨는 이하와 같다. 왼쪽은 벵골어식, 오른쪽은 영어식이며, '-오빠다이'(성직자, 교사)나 '-지'(선생) 등의 접미사가 반복되어 쓰이는 것을 볼 수 있다.
- 본도빠다이(বন্দ্যোপাধ্যায়, Bandyopadhyay) 혹은 배너지/바너지/바네르지(Banerjee)
- 보따짜르조(ভট্টাচার্য) 혹은 바타차리아(Bhattacharya)
- 쪼또빠다이(চট্টোপাধ্যায়, Chattopadhyay) 혹은 채터지/차터지/차테르지(Chatterjee)
- 공고빠다이(গঙ্গোপাধ্যায়, Gangopadhyay) 혹은 강굴리(Ganguly)
- 무코빠다이(মুখোপাধ্যায়, 라틴 문자[Mukhopadhyay]로는 잘 쓰이지 않음) 혹은 무커지/무케르지(Mukherjee)
벵골에서 크샤트리아와 바이샤는 사실상 사라졌으며, 전통적으로 벵골 힌두교도들은 브라만과 수드라 두 가지 바르나로 나뉜다. 그러나 벵골의 수드라 계급은 그 안에서 다시 전통적으로 36개(실제로는 41개)의 하위 카스트로 나뉘었으며, 그 가운데 최상위의 두 수드라 하위 카스트로 까요스토(Kayastha, কায়স্থ, '서기')와 보이도(Baidya, বৈদ্য, '의사')가 있었다. 까요스토와 보이도는 직능과 권한 면에서 브라만과 일부 겹치며 사회적으로 존중을 받았고, 이에 따라 사실상 벵골의 힌두 카스트는 상위 3대 카스트(브라만, 까요스토, 보이도) 및 그 외의 중위/하위 수드라로 나뉘었다고 할 수 있다.
브라만 외에 까요스토와 보이도 역시 그 내부에서 또다시 수많은 세부 분류가 있었다. 까요스토를 예로 들어 본다. 이들은 상층의 '꿀린 까요스토'(Kulin Kayastha)와 하층의 '몰리끄 까요스토'(Maulika Kayastha, মৌলিক কায়স্থ)로 나뉜다. 전통적으로 몰리끄 까요스토는 다시 상층의 시도 몰리끄(Siddha Maulika, সিদ্ধ মৌলিক, 8개 성씨)와 하층의 샤도 몰리끄(Sadhya Maulika, সাধ্য মৌলিক, 72개 성씨)로 나뉘었다. 꿀린 까요스토 성씨로는 보슈(বসু, 보스Bose)[9], 구호(গুহ, 구하Guha), 고시(ঘোষ, Ghosh), 미뜨로(মিত্র, 미트라Mitra) 등이 있고, 시도 몰리끄 성씨로는 셴(সেন, 센Sen)[10], 구호(গুহ, 구하Guha), 신호(সিংহ, Sinha), 다시(দাস, 다스Das), 도또(দত্ত, Dutt(a), Datta), 데(দে, Dey, De) 등이 있었다.
까요스토는 지역별로도(라르, 봉고지, 보렌드로) 나뉘었다. 이에 따라 특정 성씨가 지역에 따라 한 지역에서는 꿀린이고 다른 지역에서는 몰리끄일 수 있었고, 같은 몰리끄 내에서도 지역별로 등급이 다를 수 있었다. 가령 봉고지 몰리끄 까요스토를 삼분하면 상층 봉고지 몰리끄, 중층 봉고지 몰리끄, 하층 봉고지 몰리끄로 보는데, 이 분류에 따르면 도또와 다시는 상층 봉고지 몰리끄, 셴, 신호 등은 중층 봉고지 몰리끄가 된다. 하층 봉고지 몰리끄 내에서도 다시 상위 하층 봉고지 몰리끄와 하위 하층 봉고지 몰리끄가 나뉘는데, 이 분류에 따르면 시도 몰리끄 8성에 속했던 뽈리뜨(পলিট, 팔리트Palit), 꼬르(কর, 카르Kar) 등은 상위 하층 봉고지 몰리끄가 되었다.
꿀린 브라만과 꿀린 까요스토는 전통적으로 벵골의 최상류층을 형성했다. 벵골인 가운데 널리 알려진 정치인 또는 문화예술계, 학계 인물 중에는 상술한 꿀린 브라만과 꿀린 까요스토 성씨가 매우 흔하다. 최상층 카스트 및 중간층 브라만, 시도 몰리끄, 보이도 등 상위 카스트 중심으로만 문화계와 학계가 돌아가던 20세기 초에 메그나드 사하(물리학자)[11]와 같은 하층 카스트 출신들은 가시적, 비가시적 차별을 겪어야 했고, 이러한 카스트 문제는 오늘날까지도 어느 정도는 현재 진행형이다.
[1] 로힝야족 참조[2] 나머지 2% 중에 소수의 불교를 믿는 몽골로이드계(정확히 말하면 티베트버마어파에 속하며 성조가 있는 등 벵골어 보다는 미얀마어에 더 가깝다.)민족인 줌머인이 있다. 치타공의 산악지대 근처에 거주하고 있으나 정부에게 상당한 탄압을 당하고 있다. 국내에도 방글라데시 국적인 이들 중에서 줌머인이 꽤 있다. #[3] 여기서 언어 교육을 추가로 받는 경우에도 힌디어나 인도 지방어보다는 프랑스어 등 다른 유럽어를 더 배우려는 경우가 많다.[4] 벵골인과 친해지면 사석에서 벵골인이 "훌륭한 인도 작가 가운데 8할 정도는 벵골인이다"라든가, "볼리우드 영화는 자극적이기만 하고 볼 것이 없다"라는 식의 발언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이것은 다소 과도하게 편향된 의견이지만(힌디 문학/영화나 타밀 문학/영화에도 벵골 것 못잖게 뛰어난 작품이 많다), 벵골 중심주의적 인식의 예를 들기 위해 소개한다. 이러한 인식은 교육받은 벵골인 가운데서도 드물지 않다.[5] 서벵골이나 방글라데시에서 대학 교육은 영어 (또는 경우에 따라 일부 벵골어) 텍스트를 가지고 벵골어/영어 강의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외국인 교수나 타지에서 온 교수는 주로 영어로 (힌디어와 벵골어를 적당히 섞어 가며) 강의한다.[6] 이 지점에서 서벵골과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서벵골에서 힌디어를 쓰면 그래도 '인도 문화에 관심 있는 외국인' 정도로 이해하고 호의적으로 받아주지만, 방글라데시에서 외국인이 충분한 양해를 구하지 않고 힌디어로 회화를 시도하면 '이 사람은 여기가 인도가 아니라는 것도 모르는군' 정도의 인상을 줄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무례하게 들릴 수도 있다.[7] 까우미, 알리야 모두에서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에 준하는 교육 시스템은 갖춰져 있다. 영국 식민지 시대에는 알리야 마드라사는 영국 행정 기구의 지원을 받기도 했다.[8] 참고 문헌은 다음과 같다. Keiko Sakurai, Fariba Adelkhah. 2011. The Moral Economy of the Madrasa: Islam and Education Today. New York: Routledge.[9] 보스-아인슈타인 응집, 보스-아인슈타인 분포 및 보손의 어원이다. 이들과 관련된 이론의 정립에 기여한 벵골인 물리학자 사티엔드라 나트 보스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보스는 힌디어식 변형이고, 벵골어 발음은 보슈이다.[10] 셴은 벵골에서 종종 세나 왕조와 계보적으로 연결되는 흔한 성 중 하나로 보이도 등 다른 분류에도 많은 '셴'들이 속한다. 이는 한국으로 치면 본관이 다르거나 파가 다르지만 성은 같은 경우와 비슷하다.[11] 1893~1956, 열평형 상태에 있는 가스의 이온화 상태를 나타내는 방정식인 사하 이온화 방정식(Saha ionization equation)을 발견했으며, 이 발견은 항성 스펙트럼을 해석하는 데 큰 기여를 한 중요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출생지는 오늘날 방글라데시의 수도인 다카지만, 인도 독립 후에는 인도에서 살았다. 말년에는 정계에 입문해서 1952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인도 하원의원을 지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