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9-24 05:17:12

찬드라 보스

파일:Seal_of_Azad_Hind.svg.png
자유 인도 임시정부 주석
찬드라 보스

BBC 방글라 선정 위대한 벵골인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1위2위3위4위5위
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카지 노즈룰 이슬람 아불 카셈 파즐룰 후크 수바스 찬드라 보스
6위7위8위9위10위
베굼 로케야 사카와트 호사인 자가디시 찬드라 보스 압둘 하미드 칸 바샤니 이슈와르 찬드라 비댜사가르 람 모한 로이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 ||
파일:external/1.bp.blogspot.com/India%2527s+Nationalist+leader+Subhas+Chandra+Bose%252C+who+is+anti-British+and+pro-Japanese%252C+during+WWII.jpg
<colbgcolor=#000034> 자유 인도 임시정부의 초대 주석
인도 국민 회의의 55대 당수
인도 국민군의 최고 사령관
본명 সুভাষ চন্দ্র বসু[1]
सुभाष चन्द्र बोस[2]
Subhas Chandra Bose
수바스 찬드라 보스[3]
국적 파일:인도 제국 국기.svg인도 제국(1897~1943)
파일:자유 인도 임시정부 국기.png 자유 인도 임시정부(1943~1945)
출생 1897년 1월 23일
파일:인도 제국 국기.svg 인도 제국 쿠탁
사망 1945년 8월 18일 (48세)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일본 제국 타이완 타이호쿠[4]
학력 파일:캘커타 대학교 문장.png 캘커타 대학교
파일:케임브리지 대학교 원형 아이콘.png 케임브리지 대학교, 피츠윌리엄 컬리지
직업 정치인, 독립운동가, 군인
정당 인도 국민 회의
경력 인도 국민 회의 의장 (1938~1939)
자유 인도 임시정부 수반 (1943~1945)
배우자 에밀리 솅클(Emilie Schenkl)[5]
서명 파일:bose's signature.png

1. 개요2. 생애3. 평가4. 음모론5.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수바스 찬드라 보스는 인도독립운동가이다. 인도 국민 회의 당수를 지내기도 했으며, 경칭이자 통칭은 '네타지(지도자라는 뜻)'.

한국에서는 인도를 영국에게서 독립시키고자 영국의 적이었던 추축국, 특히 일본 제국과 손을 잡고 일본 제국의 괴뢰정부자유 인도 임시정부의 국가 주석 겸 인도 국민군 최고 사령관을 지낸 걸로 널리 알려졌다.

2. 생애

찬드라 보스는 1897년 1월 23일, 대영제국인도 제국 쿠탁에서 태어났다. 그는 평소에 비폭력 투쟁에 의문을 제기하고 폭력투쟁을 주장하였다. 물론 견해 차는 있었지만 인도의 독립을 염원하는 것은 같았기에 마하트마 간디자와할랄 네루 등의 다른 독립운동가와 친하게 지내 영국의 감시대상에 올랐다. 1938년 자와할랄 네루의 뒤를 이어 인도 국민 회의 대표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그는 폭력 투쟁을 주장한 강경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비폭력 투쟁을 강조한 간디와 대립했고, 인도 국민 회의 지도층은 간디를 지지했기에 그의 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평소 자신의 소신을 펼치기 위해서 영국의 감시망을 뚫고 소련(러시아)을 통해 독일에 들어갔다. 이 때는 아직 독소 불가침조약이 깨지지 않은 상황인지라 보스는 소련과 독일이 연합해 북쪽에서 인도를 치는 전략을 수립했다.

그러나 이미 바르바로사 작전을 구상 중인 아돌프 히틀러는 소련과의 연합을 묵살하고 그를 대영방송에 동원한다. 한편 영국 역시 이 방송에 대항해 BBC를 중심으로 다른 방송국을 만들었는데 조지 오웰이 잠시 참여한다. 그리고 북아프리카 전역 등의 전선에서 포로로 잡힌 인도군 병사들을 설득해 독일 내부에 인도인 부대를 창설하게 된다. 최종적으로는 3,500여명의 부대원이 모였지만,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패배 이후 독일의 점령 지역이 축소되면서 자꾸만 인도와 거리가 광속으로 멀어지는 통에 해당 부대는 독일과 점령지 내부를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패전을 맞고 전원 연합군의 포로가 되었으며, 일부는 전범으로 처벌받았다. 그래서 해당 부대에 있던 인도인 중에서 전투에 본격적으로 참전한 사람은 에르빈 롬멜 휘하에서 북아프리카 전투에 참가한 수백 명 수준에 불과하였다.

한편 태평양 전쟁이 한창인 1943년일본군이 인도를 향해 접근하자, 찬드라 보스는 도조 히데키아돌프 히틀러의 동의를 얻어 U보트를 타고 일본 측에 가서 이들과 함께 인도를 해방시키려 했다. 물론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유럽의 인도인 부대를 버리고 가는 것이 아니었다. 이 시기에 오스트리아인과 결혼해 딸을 낳았는데 훗날 오스트리아의 대학의 경제학 교수가 되었다.

파일:wwii greater east asia confedence.jpg
(1943년 11월 일본의 영향 하에 있던 아시아의 국정 최고 책임자들을 초청하여 열린 '대동아회의'의 기념사진. 제일 앞줄 맨 오른쪽이 찬드라 보스이다. 왼쪽에서 첫번째는 버마국 수상 바 마우, 만주국 수상 장징후이, 왕징웨이 정권 주석 왕징웨이, 일본 제국 총리 도조 히데키, 타이 왕국 왕자 완 와이타야콘, 필리핀 제2공화국 대통령 호세 라우렐.[6])
私ハ日本ノ新自由亞細亞創建ノ使命ガ十二分ニ完遂セラレンコトヲ所ル次第デアリマス
나는 일본의 신자유아세아 창건에 대한 사명이 십이분 완수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찬드라 보스, 대동아회의

이후 보스는 싱가포르에서 자유 인도 임시정부를 세우고, 주로 말레이 반도와 싱가포르 전투에서 포로로 잡혀 전향한 인도인들을 모아 4만 5천 명의 인도 국민군을 조직했다. 다만 전후 기록에 의하면 위장 전향한 사람들도 꽤 있었고 적어도 3명 이상의 인도군 장교가 영국군 진지로 탈출했다. 사실 인도 국민군은 2차 대전 전부터 일본 제국에 의해서 구상된 바 있어 실제로도 보스가 도착하기 이전부터 이미 군 조직을 갖추었다. 하지만 내부 사정으로 탄압받게 되고 수장이 수마트라 섬으로 유배를 가는 지경에 이르자 일본 측에서는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유명한 반영 운동가 찬드라 보스가 재규합한 것. 그리고 일본군과 함께 공동 전선을 폈는데... 하필 그것이 임팔 작전이라 작은 땅이나마 자국민으로 인도를 해방시키려던 그의 꿈은 좌절되고 작전에 실패한 인도 국민군들도 철수 과정에서 와해에 가까운 타격을 입게 된다. 

이후 타이완에 머물던 보스는 1945년 독일에 이어 일본까지 항복하게 되자 연합군을 피해 소련으로 망명하고자 타이완 쑹산공항을 출발했으나 비행기가 추락하여 숨지게 된다. 

그가 조직한 인도 국민군은 어쨌든 연합국에 맞서서 추축국 편에 붙었으므로 전후 영국에 의해 포로로 생포되었으며, 반역, 고문, 살인죄로 재판장에 서게 된다.(인도 국민군 재판) 그러나 당사자인 대영제국이 머잖아 인도에서 손을 떼려고 했기에 재판에 적극적이지 않았고, 무엇보다 보스의 동지인 자와할랄 네루가 INA 변호 위원회를 조직하여 이들을 변호했기 때문에 거의 불기소무죄 처분을 받는다.

3. 평가

파일:external/www.dollsofindia.com/subhash-bose-GA65_l.jpg
인도 학교에 흔히 걸려 있는 초상 중 하나.
None of those who have written on Bose's Indian national army has investigated whether, while they were trained by the Japanese army, they were permitted to share in the "comfort" provided by thousands of kidnapped Korean young women held as sex slaves by the Imperial Japanese Army at its camps. This might have provided them with some insight into the nature of Japanese, as opposed to British, colonial rule, as well what might be in store for their sisters and daughters.
Gerhard Weinberg, A World at Arms
일본군에게 훈련받던 보스의 인도 국민군이 일본군에게 납치당해 병영에 성노예로 끌려왔던 수천 명의 어린 한국인 위안부들의 "위안"도 제공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이들에 대해서 다룬 연구자들 그 누구도 다루지 않았다. 이[7]는 아마 인도 국민군들이 일본의 식민통치와 영국의 식민통치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점, 그리고 그들 자신의 누이와 딸들에게 어떤 일이 닥치게 될 지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제러드 와인버그, 2차세계대전사

인도에서는 마하트마 간디, 자와할랄 네루와 함께 추앙받는 독립 영웅이다. 당장 캘커타 국제공항의 정식 명칭은 그의 이름을 딴 네타지 수바스 찬드라 보스 국제공항(Netaji Subhas Chandra Bose International Airport)이고 안에 보스의 대형 초상이 있다. 뿐만 아니라 콜카타 시내에도 곳곳에 보스의 초상과 조각상이 산재하여 쉽게 볼 수 있다. 인도 학교에도 이 사람의 초상이 마하트마 간디, 자와할랄 네루,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와 함께 꼭 걸려 있다.

이 사람이 인도의 독립을 위해 일본과 손을 잡아 당시 많은 인도인들이 일본을 형제의 나라마냥 옹호하고 지지서명을 하였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도쿄 전범 재판 당시 무죄 판결로 일관한 라다비노드 팔 판사. 지팡구에서도 꽤나 간지나게 등장하고, 2007년에는 아베 신조 총리가 인도를 방문했을 때 보스의 후손과 만나기도 했을 정도.

찬드라 보스에 대해서 인도를 일본의 식민지로 만들뻔한 인도의 매국노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당시 인도는 영국령 인도 제국이었고, 인도의 독립을 위해서는 영국의 적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손을 잡은 것이 군국주의 일본 제국이다. 영국과 대립하고 있었고 이들을 몰아낼 만한 힘이 있어 보였던 일본에 접근했던 것이다. 물론 일본도 이를 이용하여 대동아 공영권이 정당했다는 명분을 내세우긴 하였지만 같은 친일파라도 개인의 영달만을 추구하거나 회유에 넘어가 핍박받는 동포들을 배반한 게 아니었기에 인도에서는 독립 영웅으로 숭상된다. 방글라데시인들 중에서도 세속주의자들 사이에서 사실상 국부에 준하는 대우를 받고 있다.

4. 음모론

갑작스런 폭사 때문에 그의 죽음에 대한 음모론이 몇 가지 있다. 찬드라 보스가 사고를 당한 비행기에는 군자금으로 쓰던 막대한 금괴와 일본인 고문들이 함께 타고 있었다고 한다. 당연히 찬드라 보스는 행방불명되고 금괴의 행방도 묘연한데, 왠지 그 고문들은 그 뒤에 어디서 얻은 것인지 알 수 없는 자금으로 잘 먹고 잘 살았다는…이야기가 있다. 사실 찬드라 보스가 망명을 결심할 시기는 만주 작전으로 인해 소련과 일본 간에 전쟁이 시작되면서 일본인이 소련에 자발적으로 간다는 것 자체가 굴라크로 가는 것과 동의어가 될 정도로 웃기는 일이 되었고, 전쟁도 패배하기 직전인 마당에 찬드라 보스가 더 이상 일본에 필요하지 않았으므로 현실성이 높다. 당장 관동군소련군에게서 벗어나려고 현지 일본인을 버리고 일본으로 도주하는 것이 그 당시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보스뿐 아니라 일본 관동군 총참모장으로 발령받은 시데이 츠나마사 중장도 이 사고로 전신 화상을 입어 결국 사망했다. 일본인 고문들이 보스뿐 아니라 관동군 총참모장도 살해한다? 때문에 이건 그냥 음모론에 불과하다.

그리고 다른 하나로는 보스는 사실 죽지 않았고 지금 타이완에 있는 유골은 DNA 검사 결과 가짜라는 것이다. 즉 무사히 일본 고문들의 도움으로 러시아로 갔지만 아직 연합국과의 친교가 필요했던 이오시프 스탈린이 보스를 시베리아로 보냈고, 거기서 최후를 맞이했다는 것. 실제로 소-인 외교 관련 회의 때 니키타 흐루쇼프가 인도에서 원한다면 48시간 내에 보스를 귀국시키겠다, 내지는 생존확인을 해 주겠다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런 이야기도 56년 이후에는 사라진다. 인도 정부에서 수차례 이 설을 조사했지만 아직도 명확한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다.

인도 사람들 사이에 퍼져 있는 또 다른 음모론에 따르면, 보스의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자와할랄 네루가 손을 써서 보스를 암살(혹은 시베리아에 있는 걸 알고 모른 체)하여 경쟁자를 제거했다는 주장도 있다. 독립운동의 세 거두 중 마하트마 간디는 세속적 권력에는 관심이 없는 구름 위에 있는 사람이니 경쟁 자체가 성립하지 않았고, 최대 경쟁자였던 네루와 보스의 대립이 암살이라는 형태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단 이 설 역시 확증된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인도에서 은거하다가 1985년에 사망한 힌두교 승려가 사실 이때 탈출한 찬드라 보스라고도 한다. 조작설에 휩싸이긴 했지만 네루의 장례식을 촬영한 영상에 보스와 상당히 비슷한 승려 하나가 참배하는 장면이 찍혀 있다. 조사 위원회는 이 사실을 무시했지만 음모론자들에 따르면 이 승려 사망 시 정부에서 긴급히 시체를 처분했고, 심지어 유골에 황산을 끼얹어 검사를 하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승려의 소지품은 모두 압류했다고 한다. 이 승려가 살던 곳에서는 지방에서 보스의 탄신일을 결부시켜서 기념한다고 한다. 하지만 보스와 같이 독일로 일본으로 날아다니며 적극적으로 움직인 정치가가 종전 이후 갑자기 은거했다는 것도 납득하기는 어렵다. 영국의 보복을 피하기 위해서였다는 설명이 가능하긴 하지만, 그랬다면 그냥 실제 역사대로 소련으로 가면 될 걸 굳이 은거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5. 둘러보기

추축국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cc
국가 | 지도자
유럽 <colbgcolor=#838383,#191919>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나치 독일 | 아돌프 히틀러 · 카를 되니츠 · 요제프 괴벨스 · 루츠 그라프 슈베린 폰 크로지크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 이탈리아 왕국파일:change_pos.png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 베니토 무솔리니 · 피에트로 바돌리오
파일: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국기.png 살로 공화국파일:pupet_state.png | 베니토 무솔리니
파일:헝가리 왕국 국기(1915-1918, 1919-1946).svg 헝가리 왕국 | 호르티 미클로시
파일:헝가리 왕국 국기(1915-1918, 1919-1946).svg 헝가리 국민단결정부파일:pupet_state.png | 살러시 페렌츠
파일:루마니아 국기.svg 루마니아 왕국파일:change_pos.png | 미하이 1세 · 이온 안토네스쿠
파일:불가리아 국기.svg 불가리아 왕국파일:change_pos.png | 보리스 3세 · 시메온 2세
파일:슬로바키아 제1공화국 국기.svg 슬로바키아 제1공화국파일:pupet_state.png | 요제프 티소
파일:보헤미아-모라바 보호령 국기.svg 보헤미아-모라바 보호령파일:pupet_state.png | 에밀 하하
파일:크로아티아 독립국 국기.png 크로아티아 독립국파일:ita_kingdom_symbol.png 파일:pupet_state.png | 안테 파벨리치 · 토미슬라브 2세
파일:국민연합(노르웨이) 당기.svg 노르웨이 크비슬링 정권파일:pupet_state.png | 비드쿤 크비슬링
파일:비시 프랑스 대통령기.svg 비시 프랑스파일:pupet_state.png | 필리프 페탱
파일:모나코 국기.svg 모나코 공국파일:ita_kingdom_symbol.png 파일:pupet_state.png 파일:change_pos.png | 루이 2세
파일:세르비아 구국정부 국기.svg 세르비아 구국정부파일:pupet_state.png | 밀란 네디치
파일:바르다르 마케도니아 국기.svg 바르다르 마케도니아파일:pupet_state.png | 이반 미하일로프
파일:러시아 해군기.svg 러시아 인민해방위원회파일:pupet_state.png파일:whattheydo.png | 안드레이 블라소프
파일:로코트 자치국 국기.png 로코트 자치국파일:pupet_state.png | 브로니슬라프 카민스키
파일:구 벨라루스 국기.svg 벨라루스 중앙 라다파일:pupet_state.png | 라다슬로 아스트로스키
핀란드파일:change_pos.png | 그리스국파일:ita_kingdom_symbol.png 파일:pupet_state.png | 알바니아 왕국파일:ita_kingdom_symbol.png파일:pupet_state.png | 핀도스 공국 파일:ita_kingdom_symbol.png | 류블랴나 주파일:ita_kingdom_symbol.png 파일:pupet_state.png | 덴마크 보호령 파일:pupet_state.png파일:whattheydo.png
아시아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일본 제국 | 쇼와 덴노 · 고노에 후미마로 (전쟁 이전) · 도조 히데키 · 고이소 구니아키 · 스즈키 간타로
파일:만주국 국기.svg 만주국파일:pupet_state_jap.png | 아이신기오로 푸이 · 장징후이
파일:몽강연합자치정부 국기.svg 몽강연합자치정부파일:pupet_state_jap.png | 데므치그돈로브 · 운왕
파일:왕징웨이 정권 국기.svg 왕징웨이 정권파일:pupet_state_jap.png | 왕징웨이 · 천궁보
파일:자유 인도 임시정부 국기.png 자유 인도 임시정부파일:pupet_state_jap.png | 찬드라 보스
파일:Flag_of_the_Empire_of_Vietnam_(1945).svg.png 베트남 제국파일:pupet_state_jap.png | 바오다이 황제
파일:캄보디아 왕국(괴뢰국) 국기.png 캄보디아 왕국파일:pupet_state_jap.png | 노로돔 시아누크
파일:버마국 국기.png 버마국파일:pupet_state_jap.png | 바 마우
파일:필리핀 제2공화국 국기.svg 필리핀 제2공화국파일:pupet_state_jap.png | 호세 라우렐
파일:라오스 왕국 국기.svg 라오스 왕국파일:pupet_state_jap.png | 시사방 봉
파일:이라크 왕국 국기.svg 이라크 왕국파일:change_pos.png | 라시드 알리 알 가일라니 · 파이살 2세
파일:태국 국기.svg 태국 | 라마 8세 · 쁠랙 피분송크람
<colbgcolor=#000> 이념 파시즘 · 전체주의 · 권위주의 · 군국주의 · 반공주의
영토 확장 계획 레벤스라움 · 이탈리아 이레덴타 / 스파치오 비탈레 · 대동아 공영권
파일:change_pos.png 전쟁 도중 연합국으로 전향 파일:whattheydo.png 간접적 지원 및 여부 논란
파일:pupet_state.png 나치 독일의 괴뢰국 / 파일:pupet_state_jap.png 일본 제국의 괴뢰국 / 파일:ita_kingdom_symbol.png 이탈리아 왕국의 괴뢰국
}}}}}}}}}}}}}}}

BBC 방글라 선정 위대한 벵골인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1위2위3위4위5위
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카지 노즈룰 이슬람 아불 카셈 파즐룰 후크 수바스 찬드라 보스
6위7위8위9위10위
베굼 로케야 사카와트 호사인 자가디시 찬드라 보스 압둘 하미드 칸 바샤니 이슈와르 찬드라 비댜사가르 람 모한 로이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 ||


[1] 벵골어, 외래어표기법 상 '슈바시 촌드로 보수'. '바'의 'a' 모음은 역사적인 장모음이지만 벵골어 모음 장단 구별이 사라지는 과정에서 /aː/→/a/의 모음추이를 겪었고, '촌'(Chôn)의 'ô' 모음은 /a/→/ɔ/로의 모음추이를 겪었다.[2] 힌디어, 외래어표기법 상 '수바스 천드르 보스'. '바'의 'a' 모음은 장모음이므로 /aː/가 되고, '천'(Chan)의 'a' 모음은 중설모음화한 단모음이므로 어중에서 /ə/가 됨. 'Chandra'에서 마지막 'a' 모음은 어말 단모음 'a'이므로 힌디어 발음 규칙 상 탈락되지만, 산스크리트어 원음을 존중하여 /ə/ 모음을 넣어 '천드러'로 발음하는 경우도 있다. 산스크리트 원음을 존중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다음에서 인용함. Manjari Ohala, Aspects of Hindi Phonology (Delhi: Motilal Banarsidass, 1983), 138.[3] 외래어표기법 용례집. 보스(O), 보세(X), 보우즈(X), 보우스(X)[4]대만 타이베이[5] 오스트리아 사람이었다.[6] 이 명단을 보면 알겠지만 조선의 대표가 없는데, 조선은 이미 내선일체 정책의 일환으로 일본 본토의 일부로 편입되었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대동아공영권 선전 포스터 등에도 조선을 상징하는 인물은 없는 등 일본은 외부적으로는 조선을 본토로 취급했다. 여러모로 영국의 아일랜드지배와 비슷한 면이 많은 편.[7] 그랬거나 또는 한국인 위안부의 존재를 목격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