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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생디칼리슴 공세평의회 에스파냐 팔랑헤 | |
Falange Española de las Juntas de Ofensiva Nacional Sindicalista | |
등록 약칭 | FE y de las JONS |
창당일 | 1934년 2월 15일 |
통합일 | 1937년 4월 19일 |
통합정당 | 통합 팔랑헤 |
지도자 | 호세 안토니오 프리모 데 리베라 -> 마누엘 에디야 |
창립자 | 호세 안토니오 프리모 데 리베라 훌리오 루이스 데 알다[1] 오네시오 레돈도 라미로 레데스마 라모스[2] |
종교 | 가톨릭 |
이념 | 팔랑헤주의 |
정치적 스펙트럼 | 극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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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팔랑헤(공식 명칭: 국민생디칼리슴 공세평의회 에스파냐 팔랑헤, 즉 팔랑스)는 스페인 제2공화국과 프랑코 정권의 극우 정당이다. 베니토 무솔리니 본인부터 고대 로마의 파스케스를 국가 파시스트당의 상징으로 삼았을 만큼 고대 그리스와 고대 로마에 집착했던 파시스트들이니 유사하게 그리스 보병 전술 팔랑크스에서 명칭을 따왔다. 스페인 왕정복고 시기 군부의 지도자였던 미겔 프리모 데 리베라 장군의 아들 호세 안토니오 프리모 데 리베라가 창당한 정당이다.2. 역사
제2공화국 당시 다양한 우파세력 중 카를리스타들은 반동 복고적 가톨릭 전통주의, 스페인 자치보수연합은 기존 부르봉계 왕정 복고와 유산 계급의 계급적 특권사수에 초점을 두었다면 팔랑헤는 무정부주의자들의 CNT 같은 좌파적 조직 문화와 뒤틀린 의미에서 인민주의적 초점과 기존 보수 우익 집단과 확연하게 다른 혁명적 이상주의까지 계승했다는 점에서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그 오리지널 파시즘에 가장 가까운 집단이었다. 바야돌리드, 살라망카, 부르고스 같은 보수적이고 스페인의 경제, 사회적 근대화에서 소외된 카스티야 라 비에하 지방에서 영향력이 가장 컸으며, 상술한 좌파 혁명 조직들과 어느 정도 공유한 조직 문화적 코드[3] 때문에 나머지 스페인 보수 우파들에 비해 상당히 이질적인 존재로 인식 되었다. 반면 이러한 인민주의적 초점 때문에 특히 청년층 사이 대중 장악력에서는 확실한 힘을 발휘하여 카를리스타들의 군사조직인 레케테가 나바라, 바스크 지방을 비롯한 북부에서 국민전선의 전열을 모집하는 주축이었다면, 카스티야 지방에서 비슷한 대중 동원은 팔랑헤의 힘이 컸다.반면 아버지의 강력한 후광과 본인의 카리스마, 매력을 통해 상류층 계급주의적 특권 의식에 민감했던 나머지 보수 우익과 지속적으로 정치적 연대를 유지할 능력이 있었던 호세 안토니오 프리모 데 리베라가 공화파에게 체포, 사형당하자 나치 독일의 표현을 빌리자면 스테이크 같은 (즉, 겉은 돌격대의 갈색이라도 속은 시뻘건) 팔랑헤의 이질성 때문에 다른 국민 진영의 우파 세력과의 마찰이 더 심해졌다. 결국 이런 우파 내 갈등은 1937년 경쟁자들이 하나둘씩 사라져[4] 국민전선의 유일무이한 지도자가 된 프랑코가 각종 정치 단체들을 강제 통합하고, 여기에 반발했던 팔랑헤의 2인자 마누엘 에디야를 숙청하는 것으로 매듭지었다.[5]
이런 각종 우익 진영을 단일 정당으로 합치면서 팔랑헤 또한 강제 통합된 카를리스타들의 이데올로기적 포지션 또한 반영한답시고 국민생디칼리슴 공세평의회 에스파냐 전통주의자 팔랑헤 (스페인어: Falange Española Tradicionalista y de las Juntas de Ofensiva Nacional Sindicalista, 약칭으론 FET de las JONS) 이라는 쓸데없이 길고 복잡한 이름으로 강제 개명당했다
이후는 통합 팔랑헤 항목 참고.
2.1. 역대 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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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안토니오 프리모 데 리베라 | 마누엘 에디야 | }}}}}}}}}}}} |
3. 관련 문서
4. 매체에서
Hearts of Iron IV에서는 스페인 내전으로 파시스트 스페인을 만들 수도 있는데, 리베라가 풀려나기 전에는 에밀리오 몰라[8] 장군이 파시스트로 나오는 오류가 있다.이 게임의 카이저라이히 모드에서는 하비에르 1세가 이끄는 후견전제주의 정당으로 등장한다.
[1] 스페인의 군인이자 정치인. 리베라와 함께 초기 팔랑헤를 설립했다. 내전 당시 마드리드에서 사망[2] 국민생디칼리슴 정치인으로 팔랑헤주의의 기본 틀을 다지는데 기여했다. 내전이 일어나기 전 팔랑헤의 호세 안토니오 프리모 데 리베라와 그 주변인들이 너무나 부르주아냄새가 나는 우익놈들이라며 팔랑헤 자체를 탈당했고 내전이 발생한 직후 사회주의 민병대에 잡혀 사망했다. 탈당 직전에는 자신의 원래 조직인 JONS를 가지고 탈당하려 했으나 그게 되지않자 아예 새로 단체를 꾸리고 했던 인물.[3] 팔랑헤를 포함한 파시스트는 원래 프랑스의 철학자, 조르주 소렐의 생디칼리즘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 조르주 소렐은 극우 보수주의에서 시작해 평생동안 극우와 극좌를 오가는 전향을 여러차례 했다가 마지막에는 러시아 혁명을 보고 영감을 받아 레닌주의에 빠졌다.[4] CEDA의 지도자였던 호세 마히아 힐로블레스는 총선 패배 이후 우파에서의 영향력을 잃어버리고 외국으로 망명, 스페인 혁신의 지도자였던 호세 칼보 소텔로는 내전 직전 공화파 경찰에 의해 암살, 호세 안토니오 프리모 데 리베라는 상술했듯이 공화파에 의해 처형, 본래 국민전선의 지도자가 될 예정이었던 호세 상후르호는 내전 발발 3일 만에 비행기 사고로 사망, 경쟁자였던 에밀리오 몰라는 마드리드에서의 졸전으로 입지가 줄어들던 중 비행기 사고로 사망, 안달루시아를 차지하는 공을 세운 곤살로 케이포 데 야노는 프랑코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을 지언정 프랑코의 자리를 위협할 깜냥은 되지 않았다.[5] 나치도 1934년에 이러한 좌익 세력들을 숙청하였다. 다만 사살당한 에른스트 룀과 그레고어 슈트라서와는 달리 에디야는 1970년 스페인에서 사망할 때까지 천수를 누렸다.[6] 레데스마 라모스는 아예 노동조합이 이끄는 노동조합국이라는 개념을 발표했을 정도로 좌파 파시즘적 혁명가 성격을 보였다.[7] 호세 안토니오 프리모 데 리베라의 구 팔랑헤당은 금융산업의 국유화와 노동자와 자본가가 협동하는 국민생디칼리슴과 국가가 임금 수준을 결정해야한다는 사회주의적 면모를 강조하였다.[8] 이전에는 카를리스타라고 했는데 이 사람은 사실 카를리스타는 아니고 공화주의자에 가까웠다. 다만 하필 내전 직전에 이 사람이 하필 카를리스타의 본거지인 팜플로나에 부임했기 때문에 국민진영과 카를리스타와의 연결점 노릇을 하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