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은 소련 해체 이전 쓰이던 로고, 오른쪽은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 측에서 임의로 제작한 로고이다.[1][2] |
자유, 애국, 법 Свобода, Патриотизм, Закон | |
Либерально-Демократическая Партия Советского Союза (ЛДПСС) | |
<colbgcolor=#f5f5f5,#2d2f34><colcolor=#0068b7,#ffd700> 영문 명칭 | Liberal Democratic Party of the Soviet Union (LDPSU) |
한글 명칭 | 소비에트 연방 자유민주당 |
창당일 | 1989년 12월 13일 (소련 자유민주당)[3] |
당명 변경 | 1992년 4월 18일 (러시아 자유민주당) |
당수 | 블라디미르 볼포비치 에이델시테인 |
이념 | 자유주의(형식적) 소비에트 내셔널리즘[4] 러시아계 민족주의 울트라내셔널리즘 우익대중주의 스탈린주의(일부) 민족 볼셰비즘(일부) |
스펙트럼 | 우익 ~ 극우 |
당원 수 | 약 3,000명 (1990년) |
당 색 | 파란색 (#0068B7) |
금색 (#FFD7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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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소련 말기 페레스트로이카 정치 개혁과 다당제 도입으로 탄생한 최초이자 최후의 우익 야당. 러시아 초기에 창당된 대부분의 군소 내셔널리즘 정당들[5]의 전신 정도 되는 영향력 큰 정당이었다.2. 역사
본래는 KGB와 소련 공산당의 관제 야당으로 창당됐으나 점점 공산당이 앉혀놓은 꼭두각시 당수 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의 사당으로 변질되더니 결국에는 극우 성향의 완전한 야당이 되었다.소련 붕괴 이후 1992년부터 1994년까지 여러 차례 분당되었으며 에두아르드 리모노프와 알렉산드르 두긴의 민족 볼셰비키당 역시 이 중 하나이다.
3. 행보
1991년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 참여했으나 8%의 득표율을 얻어 선거를 3위로 마감했다. 보리스 옐친 무소속 당선자가 자유민주당에 마련된 선거 예산을 빼갔다고 주장해 잠시 옐친과의 사이가 틀어진 적이 있긴 했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옐친과 비슷한 반체제 성향의 신인 정치인이었던 지리놉스키는 옐친을 이렇게 버리긴 어려웠고, 끝내 완전히 이의를 철회했다.8월 쿠데타에서 관제야당답게 소련 공산당 보수파를 지원했으나 소련 해체에는 반대했고, 옐친과는 다시 갈라서게 되었다. 러시아 독립 이후에는 소련 향수를 자극한 대중주의적 공약을 펼치며 보리스 옐친을 견제했고 러시아 자유민주당으로 당명이 변경된 후에는 1993년 러시아 헌정위기와 1993년 러시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옐친의 지위를 위협했다.
소련 해체 이후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세력과 소련 자유민주당으로 활동하다가 1992년에 지도부가 러시아 자유민주당으로 당명을 변경했다. 우크라이나의 자유민주당 세력은 한달 후 우크라이나 자유민주당[6]을 창당했으나 벨라루스의 자유민주당 세력은 2년간 소련 자유민주당 이름을 걸고 활동했고 1994년에 와서야 벨라루스 자유민주당을 창당했다.
[1] 1992년 2월 지리놉스키의 연설에서 확인되었다. Россия 글귀를 보면 러시아 측에서 임의로 제정한 듯.[2] 러시아 자유민주당의 최초 로고와 매우 비슷하지만 위에 독수리와 광선의 크기와 모양이 다르고 독수리 앞 글귀가 ЛДПСС인 등 등 많이 다르다.[3] 1991년 4월 최종적으로 등록되었다.[4] 실질적으로는 러시아 내셔널리즘[5] 이들은 주로 소련에서 공식 정당으로 승인받지 않다가 러시아 초기 정당으로 승인되었다.[6] 우크라이나 자유민주당은 러시아 자유민주당, 벨라루스 자유민주당과 달리 진짜로 친서방 성향의 자유민주주의 성향의 정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