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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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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

1. 개요

대중의 취향에 따귀를 때려라(Пощечина общественному вкусу)
다비드 부를류크, 알렉산드르 크루체니흐,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 빅토르[1] 흘레브니코프의 선언문

미래주의(未來主義, Futurism)는 이탈리아에서 등장하여 퍼져 나간 모더니즘 미술 사조로, 대략 1909년에서 1916년 사이를 전성기로 본다.

미래주의 - 네이버캐스트

2. 상세

이탈리아의 예술가 필리포 마리네티(Filippo Marinetti)가 1909년 2월 5일 <라 가제타 델레밀리아(La gazzetta dell'Emilia)>에 미래주의 선언을 출판하고 이후 프랑스의 <르 피가로(Le Figaro)>(1909년 2월 20일)에 광고를 냄으로서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미술가가 "나는 이런 예술을 하겠다"며 언론에 광고를 내고 시작되었다는, 여타 미술 사조와는 달리 비범한 방식으로 시작을 끊었으며, 그만큼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는 자부심이 대단한 사조기도 했다.

미래주의는 회화, 조각, 건축, 의복, 실내장식, 영상,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실험적인 작업을 시도하였다. 대표적으로 미래주의에 참여하였던 예술가들로는, 미술 분야에서는 움베르토 보치오니(Umberto Boccioni), 카를로 카라(Carlo Carrà), 지노 세베리니(Gino Severini)가 동참했고, 음악 분야에서는 작곡가 루이지 루솔로(Luigi Russolo)가 이 운동에 참여했다.

이들 미래주의자들은 보통 속도와 역동성, 신기술 및 기계주의 등에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근대 이후로 천주교적 전통에 얽매이고 낙후된 이탈리아 사회와 문화에 대한 반동이라 볼 수 있다. 18세기 이후의 이탈리아는 알프스 이북과 달리 산업화가 이뤄지지 못해 상대적으로 경제가 뒤쳐져 있었다. 당시 이탈리아는 이를 만회하고자 빠른 공업화를 추진하고 있었고, 이것이 당시 신세대들에게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미래주의자들은 당대 이탈리아의 미술이 전통적인 예술적 가치와 조형의식 때문에 퇴보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이들은 심지어 미래주의적인 시도를 의복과 요리에 대해서도 했을 정도로 이탈리아의 전통 미술에서는 볼 수 없었던 해프닝적인 행위를 통해 과거의 미적 취향과 예술제작 과정을 타파하고자 애썼다. 게다가 산업도시와 자동차, 기차 등 산업혁명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새로운 도상들을 작품에 담았다. 미래주의자들은 심지어 사모트라케의 여신상보다 달리는 기차가 더욱 아름답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파일:external/ncc.phinf.naver.net/%B1%B3%C3%BC.jpg

보치오니, <공간에서 연속성의 독특한 형태>, 1914

대표적으로 보치오니는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공간에서 연속성의 독특한 형태>에서 기계적이며 기하학적인 조각품을 만들기도 했다. 언뜻 보기에도 보치오니의 작품은 마치 로봇이나 스포츠카와 같은 느낌을 준다. 아마 이러한 시도와 움직임들이 이후, 이탈리아 디자인 산업의 발달과도 연관이 없지 않을 것이다.

파일:external/ncc.phinf.naver.net/010.jpg

자코모 발라, <줄을 단 개의 역동성>,[2]

그리고 사진이나 영화 등 당대에 새롭게 등장한 기록매체를 회화로 재현하고자 노력하기도 하였다. 자코모 발라는 <줄을 단 개의 역동성>에서 당시의 활동사진을 회화로 표현하기도. 참고로 이 당시에는 아직 대중에게 잔상효과가 알려지지 않았던 시기였다.

이들은 과거의 유산을 모두 파괴하여 그 위의 새롭고 진취적인 새 문화를 만들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의 과거혐오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마리네티의 미래주의 문학의 기술 선언(1912)에서 나오는 전통적 시적 어구의 파괴이다. 비유법, 부사, 형용사, 구문론과 같은 기존의 시는 물론 언어라는 것을 만들었던 것까지 모두 부수어 새로운 언어, 새로운 시, 나아가서 새로운 문화라는 것을 만들려는 이들이였고 그렇기에 자연스레 파괴의 미학을 추종할 수 밖에 없던 미래주의자들은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즉각 군에 입대하였다. 그 결과로 1916년 보치오니는 말에서 떨어져 죽었고, 같은 해 미래주의 건축가 안토니오 산텔리아 또한 트레에스테를 방어전에서 28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이후, 베니토 무솔리니파시스트 정권 휘하에서 일어난 제2차 세계 대전에서도 당연히 좋은 결과는 없었고 이렇듯 두 차례의 거대하고 치열했던 전쟁들을 통해서 전쟁의 실상을 체험한 예술가들이 환멸을 느끼고 미래주의에서 이탈하게 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

러시아에서도 혁명기에 미래주의 예술 운동이 있었으며, 이 '러시아 미래파'들은 오히려 미래파를 가르쳐주려 온 이탈리아의 원류 미래주의자들 보고 '과거에 매몰된 선배들은 꺼져버려라'라고 평할 정도로 과격하고 거대한 흐름을 이루었다. 러시아 미래파는 부를류크와 마야콥스키로 대표되는 모스크바의 '입체미래파'(кубо-футуризм)와 이고르 세베랴닌으로 대표되는 페테르부르크의 '자아미래파'(эго-футуризм)로 나뉘었으며, 이 둘은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었고, 나중에는 자아미래파 파벌이 붕괴하며 입체미래파가 주류로 떠올랐다.
이 미래주의자들은 러시아의 아방가르드 운동 중에서 가장 거대했던 파벌 중 하나였으며, 훗날 구축주의와 연대해 소련의 예술 기관이었던 프롤레트쿨트의 핵심 파벌로 자리잡았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다비드 부를류크[3],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 알렉세이 크루쵸니흐, 벨리미르 흘레브니코프[4] 등이 있다.
절대주의의 창시자인 말레비치와 구축주의와 연관된 엘 리시츠키 역시 미래파로 분류하기도 한다.

상술한 인물 중 크루쵸니흐와 흘레브니코프는 '자움'(за́умь)이라는 실험적 예술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자움이라는 게 언어라고 하기에는 문법과 구문 법칙을 죄다 포기하고 무질서한데다 비체계적인데, 이는 애초에 자움이라는 언어가 삶의 무질서를 언어에도 반영하려는 의도를 지니기도 했고, 언어를 계속 벗겨내어서 자음의 발음과 어근의 본질을 찾아내려는 시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 자움 프로젝트의 산물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크루쵸니흐가 제조한 '듸르 불 쉴'(Дыр бул щыл)이라는 '시'이다.
이 '시'는 기본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이 시가 만들어지고 나서부터 자움 프로젝트가 탄생했다고 평해질 만큼
자움 프로젝트에게 있어서 중요한 작품이다.

미래주의가 파시즘과 연관이 되어있는 미술 사조 중 하나지만, 러시아의 미래주의는 아예 별개의 노선으로, 이들은 볼셰비키들과 손을 잡아 공산주의를 지지했다. 오히려 파시즘보다 진보의 정점인 공산주의자들과 연대한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미래주의자라고 평할 수 있을 정도.

하지만 정작 볼셰비키들은 미래주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레닌마야콥스키의 선전 포스터는 좋아했지만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5], 오히려 '이게 대체 뭐여'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볼셰비키 간부들과 서서히 대립하던 소련의 미래파들은 이후 대두된 신고전주의에 기반을 둔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밀려나면서 프롤레트쿨트를 구성하던 대부분의 러시아 아방가르드 세력과 함께 기세가 크게 꺾였다.

사실 사회주의 리얼리즘 자체가 프롤레트쿨트로 대표되는 러시아 아방가르드 운동에 브레이크를 걸기 위한 목적도 없잖아 있었는데, 가장 거대한 파벌이었던 미래주의자들부터가 '과거의 모든 유산을 불사르고 그 위에 새롭고 진취적인 진보된 문화를 세우자'는 주장을 강력하게 내세우고 있던지라, 내버려두면 문화대혁명을 몇십 년이나 앞 당길, 세계에서 볼 수 없었던 대규모 반달리즘을 벌일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그래도 아예 싹 쓸어버리지는 말자'라는 메세지를 담고 있는 신고전주의에 가까웠던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푸쉬했던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프롤레트쿨트는 러시아 혁명기에 공을 세웠던 러시아 아방가르드 세력이 그 기원이고, 대체적으로 소련 인민들은 이 '아방가르드'한 예술들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렇게 대중과의 연대에 실패하고(애초에 큰 관심을 두는 편도 아니었지만) 노동자 대중이 '진보된 문화'를 거부하며 옛 부르주아들의 문화를 탐닉하게 되자, 그것을 방지하는 목적, 그리고 상술한 문화재 반달리즘의 위협 제거라는 목적으로 프롤레트쿨트를 날려버린 것이다.
산업화가 덜된 나라들에서 미래 기계문명을 예찬하는 운동이 발전하고, 정작 산업적으로 선진국이던 영국이나 프랑스 등에서는 과거회귀적인 미술공예운동이나 비공업적인 제3세계에서 대안을 찾는 원시주의 경향이 나타난건 아이러니하다. 어쩌면 산업화되고 도시화된 사회의 실상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일 수도 있다.
1929년 이후에 탄생한 2세대 미래주의 중에는 이탈리아를 기원으로 한 '아에로피투라'(Aeropittura)라는 분파 또한 있었는데, 이 분파는 기계에 대한 전반적인 찬미를 행하던 미래주의자들과 달리, 그 중에서도 당시에는 나름 최신 기술이었고, 기계 기술의 집약체였던 항공기를 찬미하는 일파였다. 아에로피투라는 1차 세계대전 이후에 탄생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상대적으로 늦게 등장한 분파였고, 이탈리아 원류에서 뻗어나간 미래주의 운동이 거의 그렇 듯이 후반엔 무솔리니 등의 파시즘 운동과 연대하기 시작했다.


[1] 본명은 빅토르지만 필명은 '벨리미르'이며, 이게 더 유명하다.[2] 자코모의 이 그림은 그를 다른 미래주의자들과 차별화 하는 대표적인 요소를 보여주는데, 미래주의자들 대다수가 기계와 폭력을 찬미할 때 자코모는 딱히 그것에 관심이 없었고, 자코모는 빛과 움직임, 그리고 '속도'에 집중했다. 이 작품에서도 줄을 단 개의 다리의 속도로 인해 발생하는 잔상 효과 등을 표현하는 것에 집중했지, 기계와 폭력에 대한 찬양은 드러나질 않고 있다.[3] 그 유명한 마야콥스키를 미래주의의 길로 들여놓은 사람으로, 입체미래파의 선두주자 중 하나였다.[4] 본명은 '빅토르'이며, 대중의 취향에 따귀를 때려라 서명자 명단에도 빅토르라고 적혀있다.[5] 레닌 등의 볼셰비키 고위 간부들이 원하는 '예술 혁명'은 실험주의적인 전위예술이 아니라, 모든 인민에게 백조의 호수 공연을 배포하는 것에 가까웠기 때문에, 애초에 두 세력이 생각하는 '예술 혁명'이 무엇인지부터 갈렸던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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