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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 Fascism | 結束主義[1] |
△ 대표적인 파시스트 지도자 |
왼쪽부터 베니토 무솔리니와 아돌프 히틀러 |
△ 파시즘의 상징 파스케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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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시즘(Fascism) 또는 결속주의(結束主義)란 일반적으로 포퓰리즘에 기반한 민족주의[2]와 국가주의[3]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제3의 위치를 표방하며 군국주의적이고 권위주의[4]적인 방법을 통해 민족의 결속과 생존권[5]의 확립을 추구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전체주의적 사상, 혹은 그러한 지배 체제이다. 그러나 파시즘에 대하여 학자들 사이에서도 완전히 합의된 정의는 없다.[6] 이는 파시즘이 매우 모호하며, 국가마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사상이기 때문이다.2. 역사
2.1. 사상적 기초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이탈리아의 철학자 조반니 젠틸레(Giovanni Gentile)가 파시즘의 이론적 기초를 세웠다. 그는 마치니, 로스미니, 죠베루티 등 이탈리아의 지식인에 영향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독일 이상주의자에도 강하게 영향을 받았다. 젠틸레는 사회주의자로서 활동해왔다. 그가 파시즘의 기본 이론을 세운 이유조차 그것이 사회주의를 가장 잘 실행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젠틸레에게 파시스트란 국가 정체성을 가진 사회주의자였다. 젠틸레에게 있어 모든 사적 행동은 사회 공헌에 집중되어야 하므로, 사익과 공익을 동일하게 여겨 구분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그는 행정적인 부분의 관리 책임이 국가에 있다 보았고, 이는 곧 사회와 국가에 대한 개개인의 자발적인 복종으로 이루어진 참 민주주의의 실현이 주된 핵심이었다. 이러한 사상이 집약된 저술이 루이지 피란델로, 가브리엘레 단눈치오, 필리포 토마소 마리네티와 주세페 운가레티 등 많은 작가와 지식인들이 서명한 '파시스트 지식인의 선언' (Manifesto degli Intellettuali del Fascismo)이다. 베니토 무솔리니는 젠틸레의 말을 통치의 정당화에 이용하기 시작했고 저서인 '파시즘의 원리'에서도 젠틸레의 말을 되풀이했다. 후에 ‘파시즘의 철학자'로서 베니토 무솔리니 파시즘의 에세이 교리(1932년)를 대작했을 당시에도 젠틸레는 무솔리니를 지지했으며 심지어 1943년 파시스트 정권의 붕괴 이후에도 충실하게 무솔리니를 따랐다.
그 외에도 미래주의와 같은 아방가르드적 예술문학과 아나키즘 그 중에서도 에고이즘적 아나키즘[7]이 큰 영향을 끼첬다.[8] 가브리엘레 단눈치오의 카르나로 이탈리아인 섭정국[9]이 대표적이며 이들은 결론적으로 유일자(보통 '영웅'이라고 표현된다.)라는 개념을 주장했다. 다만 이 유일자가 되기 위해서는 삶의 활력, 열정적인 투쟁, 영웅적인 혈투, 진보적인 노동등이 있어야하기에 두체등으로 표현되는 영도자는 먼저 깨우친 유일자로서 이들을 자신과 같은 '영웅'으로의 길로 올려놓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미래주의 철학은 이런 영웅적 민중이 유일자가 되기 위한 길을 열어주는 진보의 톱니바퀴가 되며 그러기 위해서 생디칼리슴적 조합주의를 가져오게 된다. 조합주의는 부르주아, 프롤레타리아등을 가리지 않으며 모두 가입되며 나아가서 성별, (민족 내에서의) 인종, 나이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민족의 영웅적 투쟁을 위해 나아가는 행동이 된다. 카르나로 이탈리아인 섭정국의 헌법에서 나오는 인간의 영적인 삶을 깨워줄 음악, 고대로부터 이어지는 자유인의 감명적인 예술, 그리고 미지의 세상을 만들어낼 위대한 노동과 자신의 죽음마저 두려워하지않으며 (니체가 말하던) 삶을 누구보다 위험하게 살기위해 조국의 영광과 방어를 위한 성별, 인종을 가리지 않는 징집은 바로 이러한 영웅으로의 길을 위해 있는 것이다. Fatica senza fatica라는 단어로서 표현되는 노동에서의 아픔이 아닌 노동으로서의 영웅화는 바로 이러한 철학을 기반으로 둔 것이다. 조비네차 등에서의 이탈리아 파시즘에서의 삶의 역경을 뚫어낸 이의 아름다운 노래, 청춘의 열정적인 혈기, 인생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내용들은 바로 이러한 철학을 기반으로 둔 내용이다. 다만 부르주아조차도 영웅적으로 만들어야 하기에 계급적 협동을 중요시하고 대신 그 부르주아에게 소유자의 미친듯한 창의력을 요구하는 것이 다른 사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파시즘의 계급관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무솔리니가 결국 로마 진군으로 정권을 잡고서 기존 기득층과 미래주의자, 사회주의자들과의 불안전한 줄타기 속에서 권력을 잡기위해 미래주의를 숙청하고, 공산주의자들을 숙청하면서 점점 모습이 변하게 되었고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시기 베로나 선언문을 처참히 뭉개버리며 미래주의, 사회주의 등은 파시즘에서 오히려 철저히 배제당하게 되었다.
2.2. 상징
전 세계의 파시즘 정당과 조직들의 로고[10] |
국가 파시스트당의 당기와 로고 |
파시즘(Fascism)이란 단어의 근원은 파시즘의 상징이기도 한 속간(束桿)에서 비롯되었다.[11] 고대 로마 시절 집정관의 경호원들인 릭토르(Lictor)가 들고 다니던 것으로 라틴어로 '파스케스(Fasces)'라 불리며, 집정관의 권력과 권위, 그리고 "결속을 통한 힘"을 상징했다. 파시즘이란 사상은 개인을 비롯한 그 무엇보다도 국가를 무조건 우선시하고, 결속을 통한 힘을 강조한 사상이었기에, 파스케스는 그 상징이자 이름의 유래로서 매우 적합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실 파스케스는 로마 공화정을 뜻하는 의미도 있었기 때문에 공화정을 채택한 국가에서 권력기관의 상징으로 자주 활용되고 있다. 미국 상원 의장에도 속간이 들어가 있고 링컨 기념관에서 링컨이 앉아있는 의자에 속간이 새겨저 있으며 프랑스 대통령의 문장에도 속간이 그려저 있다. 이탈리아에서 급진 공화주의 운동이나 사회주의 운동 조직이 스스로 '파시'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이러한 공화정의 속간이 파시즘의 상징이 되었다는 건 민주주의 사회의 국민들이 애써 얻은 권리와 의무를 다시금 국가에게 돌려줬다는 아이러니함을 보여준다.
2.3. 전성기
파시즘은 20세기 초기에 유럽에서 발전하고 전성기를 맞이했다. 파시즘은 국가주의적, 군사적, 독재적인 특성을 갖춘 정치 체계로 정치적인 중심화, 국가의 우월성 강조, 개인의 복종을 강조하는 이념이였고. 여러 국가에서 파시스트 운동이 나타나면서, 이 이념은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었다.- 이탈리아 파시즘 (1922-1943): 베니토 무솔리니를 중심으로 1922년에 국내 정치를 장악하며 이탈리아에서 파시스트 운동이 시작되었다. 무솔리니는 국가주의와 국가의 우월성을 강조하며 독재 체제를 구축했다.
- 독일 나치즘 (1933-1945):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당은 1933년에 독일 정부를 장악하면서 나치즘의 국가사회주의 모델을 구축했다. 나치즘은 유대인에 대한 학살과 인종적 순수성을 강조하며 제2차 세계 대전을 이르킨 주범이다.
파시즘은 이러한 국가들에서 공통적으로 국수주의, 대중주의 등의 특징을 지니고 있었는데, 제2차 세계 대전의 결과로 이러한 파시스트 정권들은 대부분 무너지고 해체되었다. 이후 파시즘은 국제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었으며, 공산주의와는 다르게 많은 국가에서는 이러한 이념을 거부하고 민주주의 체제를 수용하게 되었다.
2.4. 몰락
파시즘은 제2차 세계 대전의 결과로 인해 많은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전쟁 중에 파시스트 국가들인 추축국이 패배하면서 파시즘의 몰락이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파시즘 정권, 정당은 2차 대전 종전과 함께, 혹은 수 년 내에 몰락했다.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과 그의 종말, 나치 체제의 비인간적인 행동, 대량 학살 등은 파시즘에 대한 극심한 비난을 일으켰다. 전후의 국제사회에서는 인권과 자유를 존중하는 민주주의가 강조되면서 파시즘은 부정적으로 평가되었다. 나아가 독일과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사회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다양한 국제 기구를 통해 협력과 안보를 강화하는 데 주력하였다.
이로 인해 파시즘의 정치적·사회적 영향력은 크게 약화되었고, 민주주의와 다양한 형태의 정치 체제가 세계적으로 더욱 확산됐다. 지금까지도 일부 지역에서 극단주의적인 사상과 행동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국제사회의 대부분은 파시즘에 반대하고 인권과 자유를 중시하는 원칙을 받아들이고 있다.
파시즘의 몰락은 다양한 원인이 있는데, 다음은 파시즘의 몰락에 영향을 미친 주요 요인들이다.
- 제2차 세계 대전의 패배: 나치 독일, 파시스트 이탈리아, 일본 제국 등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하면서 파시스트 국가들의 힘과 영향력은 사라졌다. 이 패배는 파시스트 이념이 실현되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세계에 보여주었고, 국제사회는 파시즘의 위험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 전쟁의 파국과 파탄: 제2차 세계 대전은 국제적인 차원에서 무수한 희생과 파괴를 일으켰다. 많은 국가들이 전쟁의 비극적인 결과에 직면하면서 국제적 협력과 평화의 중요성이 부각되었고, 이에 따라 국제사회는 민주주의와 다자주의에 더욱 주목하게 되었다.
- 유럽 통합과 냉전의 형성: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에서는 경제적, 정치적 통합의 노력이 시작되었다. 유럽 연합은 국가 간 협력을 증진시키고 국제적인 평화와 안정을 목표로 삼았다. 냉전의 시작으로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이뤄진 국제 정치의 이분법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에서 이뤄진 대립에서 파시즘의 영향력을 줄이는 데 일조했다.
- 국제 기구와 인권 선언: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국제 사회는 유엔과 같은 국제 기구를 통해 국제 평화와 안보를 강화하고 인권을 존중하는 원칙을 정립했다. 이러한 국제적인 노력은 파시즘과 같은 극단주의 이념의 전파를 억제하는 데 기여했다.
이러한 요인들이 결합하여 파시즘의 몰락을 이끌었으며, 현대 국제사회는 민주주의, 다자주의, 인권 존중을 중시하는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
3. 사상
공동체의 쇠퇴와 굴욕, 희생에 대한 강박적인 두려움과 이를 상쇄하는 일체감, 에너지, 순수성의 숭배를 두드러진 특징으로 하는 정치적 행동의 한 형태이자, 그 안에서 대중의 지지를 등에 업은 결연한 민족주의 과격파 집단이 전통적 엘리트층과 불편하지만 효과적인 협력 관계를 맺고 민주주의적 자유를 포기하며 윤리적 법적인 제약 없이 폭력을 행사하여 내부 정화와 외부적 팽창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정치적 행동의 한 형태
로버트 팩스턴, 〈파시즘 - 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
로버트 팩스턴, 〈파시즘 - 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
이론적으로 파시즘은 여러 갈래로 나뉜다, 개중에는 광신적 인종주의적 관점[12]과 생활권, 그리고 인종청소의 개념을 사용하며 자본가들과 적극적인 동맹관계에 있던 나치즘이나 무솔리니가 미래주의 등의 영향을 받아서 만든 이탈리아 파시즘, 나아가서 조르주 소렐과 같은 혁명적 조합주의와 민족주의를 결합한 국민생디칼리슴도 존재한다, 즉 애초에 파시즘이란 것이 하나로 제대로 잡혀있지 않고 그렇기에 필리포 마리네티, 가브리엘레 단눈치오와 히틀러의 관계처럼 '이놈은 파시스트가 아니라 부르주아 똘마니다.' 라는 발언이 오갈 정도로 서로를 다르게 여긴다.
그러니 여기서 우리는 크게 우리가 파시즘이라 부르는 3가지의 파시즘 분파, 이탈리아 파시즘, 나치즘, 국민생디칼리슴의 간략한 사상을 알아보고자 한다.
첫번째로 이탈리아 파시즘이다, 이들의 중요한 철학관은 미래주의, 막스 슈티르너, 프리드리히 니체 그리고 혁명적 조합주의이다. 하지만 이들은 보통 후기 파시즘으로 칭해지며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초기 미래주의와 혁명적 조합주의로 시작되는 원시 파시즘(proto-fascism)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그럼 무엇을 이야기했는가? 대표적으로
'예술의 노동화, 그리고 노동(예술을 포함한), 군인, 농민의 영웅화, 그리고 독재자의 반대 혹은 독재자의 임기제한, 과거의 분쇄'을 둘 수 있다. 왜 예술의 노동화를, 그리고 영웅화를, 독재자의 반대를 외첬을까? 이는 아래의 미래주의자 선언과 미래주의당 선언 그리고 카르나로 헌법을 토대로 살펴보자.
1. 예술이란 무엇인가? 노동이란 무엇인가?
국가는 재산의 소유권이 절대적인 개인의 소유권이라고 인정하지 않으며 재산의 소유권은 사회적 기능의 가장 유용하고 책임있는 자가 가지는 것으로 본다. 소유권이 제한된 사람은 어떠한 재산도 소유할 수 없으며 게으른 소유자가 자신의 재산을 모아만 두고 있거나 심하게 처분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다. 생산수단과 교환수단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에 맞는 정당한 노동뿐이다. 오직 노동만이 일반 복지에 대한 유익하고 유용한 관리인이다.
국가는 물질적, 정신적 발전을 위해서 공동체를 통해 국민의 열망과 노력을 나타낸다, 노동자들은 국가의 부와 힘을 위해서 노력하며 최선을 다하는 진정한 시민들이다. 이는 국가의 성장과 발달에 있어서 본질적으로 노동자와 국가는 하나의 존재이다.
이탈리아 카르나로 지방에서 음악이란 사회적, 종교적 제도이다.
천년, 이천년에 한 번 나올 명곡은 사람의 영혼에서 솟아나 영원히 흐른다.
고귀한 민족은 자신의 형상대로 신을 창조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경의를 표하는 노래도 만들어야하는 것이 진정으로 고귀한 민족이며 인종이다.
고귀한 민족의 재탄생은 서정적 힘, 전체 민족에 대한 모든 감정을 일깨워줄 잠재력을 가진 서정시에 있으며, 의례의 언어인 음악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성취와 생명을 높이는 힘이 있다.
카르나로 이탈리아인 섭정국 헌법
국가는 물질적, 정신적 발전을 위해서 공동체를 통해 국민의 열망과 노력을 나타낸다, 노동자들은 국가의 부와 힘을 위해서 노력하며 최선을 다하는 진정한 시민들이다. 이는 국가의 성장과 발달에 있어서 본질적으로 노동자와 국가는 하나의 존재이다.
이탈리아 카르나로 지방에서 음악이란 사회적, 종교적 제도이다.
천년, 이천년에 한 번 나올 명곡은 사람의 영혼에서 솟아나 영원히 흐른다.
고귀한 민족은 자신의 형상대로 신을 창조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경의를 표하는 노래도 만들어야하는 것이 진정으로 고귀한 민족이며 인종이다.
고귀한 민족의 재탄생은 서정적 힘, 전체 민족에 대한 모든 감정을 일깨워줄 잠재력을 가진 서정시에 있으며, 의례의 언어인 음악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성취와 생명을 높이는 힘이 있다.
카르나로 이탈리아인 섭정국 헌법
첫번째로 원류 파시스트가 세웠던, 그리고 이상주의의 극치를 달렸던 카르나로 이탈리아인 섭정국(Italian Regency of Carnaro)의 헌법에서 이들은 일단 파시즘이 무엇인가를 따지기 전에 노동이 무엇인지를 따젔다. 왜냐면 노동이 무엇인지를 따저야 이들의 가장 핵심적 사상 '영웅의 해방'을 애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로 이들은 노동이 무엇인 지를 애기했다.
일단 노동은 모든 것의 근원이다. 노동은 모든 것의 근원이며 노력하는 이들이 하는 것이며, 노동 그 자체는 세상을 진보시키는 행동이다. 즉 노동은 '나'라는 존재가 세상을 더욱더 진보시키는 행위이며 이는 진보를 가로막는 물질적인, 관념적인 억압에 맞서서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즉 이는 곧 '노동자의 진보적 해방'을 의미하게 된다. 그리고 예술은 바로 이 노동을, 삶을, 세상을 돋보이게 해주는 존재이며 노래 없이는 활력이 없고 활력 없이는 진보가 없다는 가치아래 이들은 예술을 적극적인 노동화로 만들기 위해 작업하였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음악 자체가 국가의 헌법인' 위의 카르나로 헌법이다.
2. 그럼 해방이란 무엇인가?
우리 중 제일 나이 많은 이가 서른이다: 우리 작업을 끝내는 데 최소한 십 년은 걸린다. 우리가 마흔이 되었을 때, 우리보다 더 젊고 강인한 이들이 아마도 쓸모없는 원고처럼 우리를 쓰레기통에 던져 버릴 것이다 – 우리는 이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그대는 반대하는가? - 알았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우리는 이미 안다 ··· 우리는 이해한다! ··· 교묘하고 속임수에 능한 지능이 말하기를, 우리는 우리 조상들의 재탕이자 확장에 불과하다 – 아마도! ··· 고작 이뿐이라면 그럴 것이다! - 그러나 무슨 상관인가? 우리는 이해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 우리에게 또다시 그런 수치스러운 단어를 말하는 이들에게 비탄 있으리라!
그대의 머리를 들라!
세계의 정상에 우뚝 서라, 다시 한번 우리는 별들을 향해 저항을 투척하리라!
미래주의의 기초와 미래주의 선언
그대는 반대하는가? - 알았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우리는 이미 안다 ··· 우리는 이해한다! ··· 교묘하고 속임수에 능한 지능이 말하기를, 우리는 우리 조상들의 재탕이자 확장에 불과하다 – 아마도! ··· 고작 이뿐이라면 그럴 것이다! - 그러나 무슨 상관인가? 우리는 이해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 우리에게 또다시 그런 수치스러운 단어를 말하는 이들에게 비탄 있으리라!
그대의 머리를 들라!
세계의 정상에 우뚝 서라, 다시 한번 우리는 별들을 향해 저항을 투척하리라!
미래주의의 기초와 미래주의 선언
초기 파시즘의 해방은 우리 생각과 다르게 '억압의 격정적인 분쇄이다.' 이들은 끝없는 진보를 외첬고 앞서 말했듯이 그렇기에 끊임없이 사회를 바꾸어나가는 노동자를 중시한 것이다. 하지만 이 노동자에는 프롤레타리아뿐만 아니라 부르주아 역시 들어간다. 부르주아는 관념적으로 진보적인 '생각'을 만든다면 프롤레타리아는 '물질적인 해방'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단눈치오와 드 암브르시오의 파시즘 선언 등을 읽어보면 이들은 '노력하는 이들에게 노력의 대가를 줘야하고, 노력할 수 있게 해야한다.' 라고 말하지만 이들이 프롤레타리아이여야 하는지, 부르주아여야 하는지를 애기하지 않는다. 단지 노력하는 모든 이들은 노동하며 모든 이들이 영웅이 돼야 한다고 말할 뿐이다.
그럼 그렇게 영웅이 된 자는 어떤 이인가? 여기서는 니체의 말이 인용된다.
위험하게 살아라. 베수비오 화산의 비탈에 너의 도시를 세워라.
이들은 과거를 끊임없이 부수며, 미래로 나아가길 원했다. 그렇기에 자기들 이름을 미래주의로 지었고 이들은 그 끝이 자신들의 반동화일지라도 그걸 반겼다. 그리고 그렇게 끊임없이 과거를 부수고 미래로 진보하여 해방하는 사회를 꿈꾼 것이 초기의 파시즘 이론이다. 파시즘에서 유난히 지방자치, 조합주의적 모습이 많이 나오는 것은 바로 중앙집권제와 어느 한 계급의 독재는 미래를 만드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3. 그렇다면 독재자는 왜 반대하는가?
국가가 위험에 처했을 때 모든 인민을 단합시키고 인민의 승리를 위한 노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게함이 한 사람의 의지와 헌신에 달려있음을 알게될 때 대국민 평의회는 가장 엄숙한 회의에서 아렝고의 구두적 투표아래 '독재자(독재관)'을 지명할 수 있으며 국가 최고 권위를 그에게 부여한다. 독재자는 로마 공화정에서의 독재관의 임기가 6개월이였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며 그가 통치할 기간을 6개월로 하게한다.
모든 시민권자는 관직이 있든 없든 독재관에 선출될 자격을 얻는다.
카르나로 이탈리아인 섭정국 헌법
모든 시민권자는 관직이 있든 없든 독재관에 선출될 자격을 얻는다.
카르나로 이탈리아인 섭정국 헌법
독재자를 반대(알체스테 데 암브리스)하거나 선거독재관(가브리엘레 단눈치오 등)을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간단하게도 '위험하게만 살면 죽어버려서 해방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독재자의 연속적인 독재는 곧 중앙집권제이기에 선거를 두자는 쪽인거다, 물론 반대하는 쪽은 독재자 자체가 중앙집권제라서 반대하기도 하였다. 즉 초기의 파시스트들에게 독재자는 다 위험하게 살다가 죽어버려서 해방 못하는 일이 업게끔 가끔씩만 나와서 막아주는 존재이며 그렇기에 어느 한 누구만이 독재자가 되는게 아니라 모든 이들이 독재자가 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나아가서 이들은 국가의 해체를 거부하였는데, 왜냐면 국가가 해체되는 순간 위험하게 살 수 있는 매개체가 사라지고 모두가 진부하게만 살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이들에게 철학관은 아나키즘보다는 니체주의에 더 가까웠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언제나 세상 속에서 위험하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럼으로서 위버멘쉬가 된다고 말했다. 즉 국가가 사라지고, 위험하게 살 의지가 사라진다면 위버멘쉬가 될 수 없기에 국가와 전쟁은 사라저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나키즘, 에고이즘적 아나키즘 특히 막스 슈티르너에게는 위버멘쉬 자체가 권위였다. 이들은 권위의 본산을 적극적으로 부셔버리기 원했으며, 오직 나(Ego)의 해방을 애기했다.
니체는 국가의 권위와 반기독교를 내세우며 신은 죽었다라고 외첬지만 이들을 완전히 없애길 원하지 않았다. 해방을 하려면 이들이 필요하기에, 그렇기에 니체의 사상은 국가를 포용하는 사상이다. 하지만 막스 슈티르너에게는 그 해방과 위버멘쉬자체가 권위주의였다. 국가는 필요하지 않으며 오직 나(Ego)만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이들은 위버멘쉬마저 부수길 원했다. 그럼 이탈리아 파시즘은 여기서 무엇이 바뀌었는가? 이탈리아 파시즘은 노동자와 미래주의와 같은 초기 파시스트를 철저히 배신하며 이루어젔다. 왜냐하면 이들은 정권을 잡아야하기에 보수와 기존 가톨릭 종교원들을 잡아야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였고 이들 없이 이루어젔던 선거에서의 참패를 기억하기 때문이였다, 이에 대해 필리포 마리네티는 아래와 같이 애기하였다.
우린 카르스트를 향해 가고 있다, 이는 우리가 절대로 반동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물론 이후 무솔리니가 로마 진군이라는 방법으로 집권하자, 마리네티는 다시 무솔리니에게 돌아왔지만 무솔리니는 미래주의를 철저히 탄압하였고 결정적으로 베로나 선언을 진압하며 오히려 해방, 위버멘쉬를 겉만 차용하여 이용한 채 철저히 부셔버렸다. 즉 이탈리아 파시즘의 사상은 초기 파시즘의 사상을 어느정도 가저왔지만 이를 집권을 위한 선전용도로만 사용하였지 이를 실천할 의지가 없었다.(하려고도 안했거나) 실제로도 원류 파시스트들은 인종주의를 배제한 민족주의를 원했는데, 미래를 향해 나아갈 의지만 있으면 부르주아든 프롤레타리아든 병사든 심지어 다른 인종(유대인도!)이든 상관 안하고 썼기 때문이다.[13]
하지만 무솔리니는 정치적 이유 때문에 반유대인법을 창설했고, 이미 무솔리니의 자본가와의 협력 때문에 정이 떨어젔던 단눈치오와 데 암브리스(전자는 쿠데타 계획 중 감시행, 후자는 이탈리아를 떠남)와 다르게 끝까지 남아서 미래주의가 올 수 있다고 믿은 마리네티의 뒤통수를 까버리고 결사반대하던 마리네티를 협박하여 이 법을 통과시켰다. 당시 무솔리니와 초기 파시스트들의 생각의 차이점은 다음에서도 알아볼 수 있다.
Le sue idee sul sindacalismo d'urto, estraneo ad ipotesi di pace con l'organizzazione economica italiana, di ieri di sempre, cozzano con quelle di Rossoni e, perché no, con le mie. Il tema da lui preferito:"Tutto il potere ai sindacati", io non lo condividevo affatto. Ero per lo Stato, un nuovo Stato. E basta. L'avventura dannunziana della quale De Ambris era stato protagonista sociale, era irripetibile, nella forma e nella sostanza»
이탈리아 경제 조직(부르주아<->프롤레타리아)의 평화을 거부하는 폭력적이고, 충격적인 생디칼리슴에 대하여 그(암브리스)의 대한 생각은 로마냐와 충돌하고, 나와도 충돌한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말 노조에게 모든 권한을 보며 나는 이 말에 전혀 공감하지 않았다, 나는 국가, 새로운 국가를 원할 뿐이였다. 데 암브리스와 사회적 주인공이였던 가브리엘레 단눈치오의 모험은 새 이탈리아에서 형식과 그 내용 모든 면에서 번복될 수 밖에 없다.
Benito Mussolini parlando di De Ambris con Yvon De Begnac sui "Taccuini mussoliniani" [14]
이탈리아 경제 조직(부르주아<->프롤레타리아)의 평화을 거부하는 폭력적이고, 충격적인 생디칼리슴에 대하여 그(암브리스)의 대한 생각은 로마냐와 충돌하고, 나와도 충돌한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말 노조에게 모든 권한을 보며 나는 이 말에 전혀 공감하지 않았다, 나는 국가, 새로운 국가를 원할 뿐이였다. 데 암브리스와 사회적 주인공이였던 가브리엘레 단눈치오의 모험은 새 이탈리아에서 형식과 그 내용 모든 면에서 번복될 수 밖에 없다.
Benito Mussolini parlando di De Ambris con Yvon De Begnac sui "Taccuini mussoliniani" [14]
나치즘은 어떠한가? 나치즘은 사실 그 이론적 토대의 작업이 이탈리아 파시즘보다 부실한 작업을 거첬다. 왜냐하면 독일 보수혁명시기 당시 독일식 사회주의[15]를 만들기 위한 이론적 작업을 했던 이들이 나치가 되지 않거나 혹은 나치에 있다가 숙청당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에른스트 윙어는 노동자: 그 지배와 형상과 총동원을 집필하며 노동자에서 아나크[16]로 가는 방법을 전술하며 총력전(이는 관념적인 의미의 총력전이다.)를 통하여 해방을 향해 나아가야한다. 여기서 부르주아적인 그 모든 것(심지어 단어마저도)을 없애고 새로이 노동자만의 것을 만들어야한다.라고 말하였다.[17] 흡사 원시주의와 비슷해 보이는 말을 할정도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부르주아의 잔재를 없애자고 한 인물이였다, 에른스트 윙어는 노동자를 고결하게도, 숭고하게도 묘사하지 않았다, 다만 노동자는 병사이며, 삶 그 자체가 전쟁터이기에 살아가는 것이 총동원인 존재라고 표현하였다, 그리고 그 총동원이 하나로 뭉친다면 부르주아적인 것을 모조리 부숴버리고 곧 아나크가 될 수 있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에른스트 윙어는 나치를 격렬하게 반대하는 인물이었고 실제로도 그다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진 못하였다.
그 외에도 나치즘에 좌익(마르크스주의적이지 않은)적인 색채를 보여줬던 그레고어 슈트라서 등의 인물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유물론적인 관점으로서 자본주의를 본 것이 아니라 현대 유대자본의 타락한 순수성이 아닌 고대 독일인의 비이기적 순수성의 사회주의를 원했다. 아래와 같이 말이다.
우리 민족 사회주의는 경제의 국유화를 포함하여 경제의 혁명을 원한다, 우리는 착취적 자본주의 체제 대신 영혼없고 유대적인 유물론적 관점이 아닌 믿음 있고 희생성 있으며 비이기적이였던 고대 독일인의 순수한 고대 사회주의를 원한다, 커뮤니티와 경제의 목적을 진심으로 느끼는 사회 말이다, 우린 민족혁명을 위해 사회혁명을 외친다.
Childers, Thomas (2017). The Third Reich: A History of Nazi Germany. New York: Simon & Schuster p. 84.
Childers, Thomas (2017). The Third Reich: A History of Nazi Germany. New York: Simon & Schuster p. 84.
하지만 아돌프 히틀러는 역시 베니토 무솔리니처럼 집권을 위해서는 여러 방법이 필요했다, 우리 생각과 달리 파시즘은 절대적인 1인 독재의 체계를 만들지 못했기에 무솔리니든 히틀러든 어떠한 방법으로든 동맹세력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 방법은 바로 자본가와의 정경유착과 복지정책이였다, 다만 무솔리니의 이탈리아는 전통적으로 지방자치의 역사가 깊고 자본가뿐만 아니라 전통적 가톨릭 세력이 있기에 굳이 미래주의와 자본가의 절대적인 지지를 필요하지 않았기에, 나치즘보다는 조합주의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 동맹 세력이 하나 더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치즘은 반교권주의를 내세웠기에 그럴 수 없었다, 그렇기에 기업가와의 더욱더 유대를 할 필요가 있었고 프로이센 왕국부터 이어지던 전통적인 계급 융커 또한 무시할 수 없었기에 계속하여 반자본주의, 반국방군, 인민군, 엘리트 계급(특히 융커)의 전복 등을 애기하던 당내의 좌파를 정리해야 한다고 느낀 히틀러는 당 내의 좌익 인물들을 장검의 밤을 통해 죽여버렸고, 실제로도 이에 반대하며 아예 나치를 탈당하고 새로이 흑색전선 등(정식 명칭은 Kampfgemeinschaft Revolutionärer Nationalsozialisten로 혁명적 국가사회주의자의 전투적 동맹이다.)[18]을 차렸던 인물들도 잡혀 죽거나 살해당하였다. 거기에 인종주의적 면모를 위버멘쉬와 연관시키며 강력한 정경유착으로서 군수경제를 살리고 위버멘쉬를 위해 노동자를 전장으로 보내는(그러면서 실업위기를 해소함과 복지를 만들어 이를 장려하는) 나치의 모습이 탄생하게 한다.
인용문을 제외한 출처는 다음과 같다.
Wistrich, Robert S. (4 July 2013). Who's Who in Nazi Germany. Routledge. p. 248
Ian Kershaw, Hitler: A Profile in Power, first chapter (London, 1991, rev. 2001).
Nolte, Ernst (1969). Three Faces of Fascism: Action Française, Italian fascism, National Socialism. New York: Mentor. pp. 425–426.
Ian Kershaw, 1991, chapter III, first section.
다음은 국민생디칼리슴이다. 이들의 사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JONS(Juntas de Ofensiva Nacional-Sindicalista)로 대표되는 라미로 레데스마 라모스(Ramiro Ledesma Ramos)이다, 위에서는 부르주아와 노동자가 같이 힘을 합처서, 혹은 부르주아가 노동자를 지원하는 형태로서, 혹은 아예 둘의 경계 자체를 애매하게 만들어서 노동자를 부르주아로 만들기도 혹은 부르주아를 노동자로 만들기도(둘 다 거부하면 불이익을 주는) 형태를 띄웠다면 이들은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를 '조국 프롤레타리아 계급'이라는 색다른 계급으로 묶길 원했다.
이들은 당시 스페인에서 있던 노동조합인 CNT, 카를로스파 노조인 자유노조등과 애기해가며 국가는 있되 그 국가가 노동조합의 나라인 국가를 만들기 원하며 이들은 '단일 노동조합이 아닌 지방노동조합에 부르주아, 기술공, 일반 노동자가 모두 포함되어 생산을 꾸리는 사회'를 원했다. 레데스마 자기 자신은 히틀러를 존경했지만 히틀러의 사상, 특히 인종주의를 거부했다. 제3의 위치라며 코뮌주의와 자본주의 둘 다에 반대하는 원류의 의미에 가장 부합하는 이들이기도 하였다.
이들은 말했듯이 조국 프롤레타리아 계급으로서 모두를 묶어 노동조합을 꾸리고, 그 노동조합이 국가의 모든 것이 되는 '노동조합국'을 만들기 원했다, 라미로 레데스마 라모스는 나아가서 독재자란 개념을 거부하고 직접민주주의 방식을 선호했으며 국왕은 멍청한 구체제의 잔재라며 거부하였고, 종교는 민족통합을 위해서는 쓸 수도 있는데 자신은 그다지 안 믿는 편에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최종적 목표는 노동조합의 국가가 된 스페인이 옆 나라 포르투갈과 함께 지브롤터, 북아프리카 등의 나라를 정복하여 스페인 제국의 땅과 포르투갈 제국의 영토를 수복하고 이들을 모두 스페인, 포르투갈 제국인으로 만들어 노동조합 스페인 제국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특히 이들은 팔랑헤와 함께 있다가 탈당했는데 그 이유는 팔랑헤 역시 자본가와 손을 잡아야 하는 권력적 입장에 있었기에 그들과의 화해 특히 '지주들과의 연대'를 함에 있어 이들이 '부르주아 냄새가 난다.'라며 당을 탈당하고 새로이 독립했기 때문이다, 물론 스페인 내전 당시 사회주의자 민병대에게 라미로 레데스마 라모스가 죽고, 팔랑헤가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손에 넘어가면서 강제로 국민전선을 통합시켜버려 통합 팔랑헤를 만들며 부르주아의 냄새가 나는 수준을 넘어 부르주아 그 자체가 되어 버렸지만.
출처
Morales et al, Gustavo (1996). De la protesta a la propuesta. Madrid: Barbarroja. «(...) Establecer un sistema de democracia participativa que permita la participación popular a través de lo municipal y lo sindical además de a través de las asociaciones políticas.»
Payne, 1986, p. 152. "Al revés que muchos otros movimientos fascistas, la Falange sí elaboró un programa oficial, los Veintiséis Puntos, antes de fines de 1934. Estos tenían las características principales de la doctrina fascista y en la esfera económica pedían el establecimiento de un estado completamente nacionalsindicalista. [...] Que los falangistas tenían algunas características propias es algo innegable; pero éstas no les impedían compartir todas las calidades y características generales que compondrían un inventario del fascismo genérico"
Primo de Rivera, José Antonio (1971). Obras Completas. Madrid: Cronológica. p. 335. «En cambio, con lo que queremos nosotros, que es mucho más profundo, en que el obrero va a participar mucho más, en que el Sindicato obrero va a tener una participación directa en las funciones del Estado, no vamos a hacer avances sociales uno a uno, como quien entrega concesiones en un regateo, sino que estructuraremos la economía de arriba debajo de otra manera distinta, sobre otras bases, y entonces sucederá, señor Gil Robles, que se logrará un orden social mucho más justo».
Stanley G. Payne, Falange. Historia del Fascismo Español.Sarpe, Madrid 1985Morales, Gustavo (septiembre de 2004).
«Juventud, acción e izquierda en Ramiro Ledesma Ramos». El Catoblepas. Consultado el 10 de enero de 2018. 등
즉 파시즘은 전체주의의 한 갈래이나 전체주의가 곧 파시즘인 건 아니다. 비슷한 예로 공산주의는 사회주의의 한 갈래일 뿐 모든 사회주의가 공산주의는 아니다. 또한 구체적으로 어떠한 형태가 파시즘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역사적으로 파시즘 정권은 이론적 기반이 희박하고, 그때그때 기회주의적 성향을 자주 보여왔기 때문에 '무엇이 파시즘인가?'는 정답이 없다. 사람에 따라서 무솔리니와 히틀러 뿐만이 아니라, 프랑코 정권과 일본 제국의 군국주의를 파시즘이라고 하기도 하고, 페론주의 아르헨티나도 파시즘이라고 하기도 한다. 파시즘이라는 말을 남발하는 경우에는, 권위주의 독재정권에 죄다 파시즘 딱지를 붙이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으며, 파시즘이라는 말을 너무 오남용한다고 비판받는다.
4. 이론
자세한 내용은 파시즘/이론 문서 참고하십시오.5. 특징
자세한 내용은 파시즘/특징 문서 참고하십시오.파시즘이 극단적 민족주의로써 각 민족만의 이데올로기를 주장한 만큼, 국가와 민족마다 파시즘의 양상도 매우 달랐다. 시대에 따라서도 파시즘은 변화하였는데, 기성정치와 기득권을 타도하고 낭만적이고 순수한 민족공동체의 사회혁명을 추구하여 급진혁명적 성격이 강했던 초기 파시즘은[19] 집권을 위해 기득권과 타협하며 우경화된 후기 파시즘과 다른 모습을 가지며, 같은 시대와 같은 민족일지라도 파시스트에 따라서 그 양상은 매우 다양하였다.
견해에 따라선 파시즘을 사상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 현상이나 행동 방식으로 보기도 한다. 이에 따르면 세계 대전 시기에 나타난 파시즘은 당대 유럽의 혼란스러운 정세 속에서 이탈리아 왕국 등의 몇몇 국가들의 위기 의식으로 인해 발생한 파괴적 현상이나, 혹은 그로 인해 그 국민들이 국가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자신들의 권익을 확립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이때 사회 구성원들은 특정한 가치 아래에 하나로 강하게 결집되려는 경향을 보이는데[20] 여기서 그 특정한 가치로 다름아닌 '민족'이 선택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그저 그 당시에 민족주의적 정서가 유럽 국가들 간에 널리 퍼져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당시에 대중들을 동원하기 위한 포퓰리즘은 자연히 그런 민족주의적 정서를 자극하려고 하였고 그 결과로 나타난 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상적 지향점으로서의 파시즘이라는 것.
자유주의나 사회주의와 같은 다른 사상들의 경우에는 일단 로크, 루소, 벤담, 밀이나 생시몽, 마르크스와 같은 사상가가 주창하는 이론적인 체계를 가지고 나서, 이를 추구하는 운동이 있었던 반면에, 파시즘은 우선 무솔리니의 파시즘이라는 운동이 등장하고 나서, 거의 10여년이나 지난 후에야 조반니 젠틸레가 파시즘에 대한 이론적인 체계화를 하였다.[21][22]
따라서 파시즘은 체계화되기 불리한 측면을 지니고 있었고, 그렇게 모호한 가치의 집합이 된 파시즘은 일관된 논리체계에 기반한 이념이라기보단, 대중 정치와 대중 동원에 기반한 포퓰리즘적 민족주의 운동의 선행으로서 이루어진, 이성적인 논증보다는 감정에 기반하는 도덕적 태도에 가까웠다. 이처럼 파시즘은 일관된 모습이 없고, 이론체계가 매우 조잡하고, 낭만주의 신화와 관념론의 영향이 크며, 변화무쌍하고, 민족에 따라서 제각기 양상이 다른 등, 매우 모호하며 복합적인 사상이었으며, 심지어는 상호모순적이기까지 하였다. 이로 인하여 파시즘을 연구하는 학자들 마다 제각기 다른 파시즘에 대한 정의가 있으며, 파시즘에 대한 특정한 정의를 하기보다는 파시즘의 공통된 특징을 단순히 열거하거나, 이데올로기로 설명하거나, 행동방식으로 설명하거나, 민족 고유의 역사를 원인으로 설명하느냐와 같은 접근방식에 따라서도 파시즘에 대한 정의가 달라진다. 심지어는 파시즘이라는 사상은 없으며, 그저 무솔리니가 벌인 정치운동의 장광설이나 단순한 권력획득을 위한 방법론적 기회주의에 불과하였다고 보고, 파시즘의 성격을 주로 그것이 반대한 측면, 즉 반마르크스주의, 반자유주의(반자본주의), 반민주주의, 반의회주의, 반개인주의 등으로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대의 다른 견해에서는 파시즘이 비록 매우 모호하지만, 일단 파시즘이라는 이념에 기반한 가치관과 인간관, 정치관, 세계관, 목표에 대한 지향점이 있었으며, 이데올로기로서 실체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파시즘의 철학은 관념론적인, 도덕적이고 정신적인 성격의 인간혁명과 민족혁명을 통하여,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리고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며 헌신하는 파시스트적 인간형을 달성하여 이루어지는 민족공동체의 재탄생이라는 신화'를 가지고 있다. 하나된 민족이라는 유토피아적 전체주의 사회를 달성하려는 정치종교의 신화이며, 무솔리니는 파시즘이란 불완전하였던 리소르지멘토의 진정한 완성이라고 주장했다. 1990년대 로저 그리핀(Roger Griffin)을 필두로 한 '합의파' 학자들이 파시즘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로, '극단적인 민족주의에 기반한 대중주의(포퓰리즘)의 신화화된 형태'라고 정의 한 이래로, '합의파 이론'의 민족주의, 포퓰리즘, 신화(낭만주의)라는 요소들은 파시즘을 정의하는 최소한의 요건이자, 기준점으로 학자들 사이에서 사용되고 있다.
파시즘의 어원에 대해서 보자면, 1차 세계대전 시기에, 이탈리아의 사회주의자들은 전쟁에 대한 참전여부를 놓고, 분열되어 있었다. 이탈리아 사회당(PSI)지도부는 참전에 반대하였지만, 민족주의 성향의 사회당원들은 참전할 것을 주장하였다. 결국 베니토 무솔리니를 필두로 한 민족주의 세력은 갈등을 빚고는 탈당하여,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처럼 반민족적인 볼셰비즘에 대항하는 민족주의자들의 전쟁을 선포하며, 자신들의 사상을 파시즘이라고 하였다. 이는 1890년대 시칠리아 농촌지역의 사회주의 집단인 파시(fasci)의 사상이란 뜻으로 사용된 것이다. 1890년대 시칠리아의 농촌 사회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조직을 파시라고 한 적은 있었지만, 파시즘이라는 단어는 이때 무솔리니에 의하여 처음 등장하였다. 파쇼는(fascio) 파시의 단수형이다. 그리고 파시라는 조직명은 고대 로마 집정관의 상징인 파스케스에서도 유래되었다.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의 파시즘은 반유대주의, 인종차별주의, 우생학 등이 추가되어 나치즘(민족사회주의)이라 불린다.[23]
파시즘을 민족혁명의 신화라고 보는 학술적 정의와는 별개로, 일상에서 대중이나 언론들은 극단적 보수주의, 권위주의, 독재, 전체주의, 군국주의, 제국주의 등을 파시즘과 혼동하는데, 엄밀히 구분하자면 다른 개념이다. 본질적인 것과 부차적인 것의 문제인데, 공산주의가 통제와 검열을 하고, 학살하고 탄압하고 숙청했다고 해서, 그런 것들을 공산주의라고 학술적으로 정의하지 않는것과 같은 이치이다. 파시즘에 대한 대중적인 오해와 편견은, 민주주의 반대를 공산주의, 나쁜놈을 공산당이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용례에 불과하다.[24] 이념적 측면에서 파시즘은 민족주의 유토피아 신세계를 만들려고 하는 '혁명적 민족주의' 신화를 가지며, 자유주의의 타락한 자본주의 금권정과, 글로벌리즘, 부르주아 대의제 의회 민주주의를 타도하고, 공산주의의 타락한 물질주의, 민족분열적인 계급갈등, 국제주의에 대항하여, 아래로부터의 민중혁명과 민족단결을 추구하여, 순수하고 낭만적이며 유토피아적인 민족 공동체의 이상향을 건설하려고 한다.
6. 목록
6.1. 국가
자세한 내용은 파시즘/국가 목록 문서 참고하십시오.6.2. 정당
파시즘 이데올로기의 다양한 형태에 부합하는 국가 와 정당, 조직 및 운동, 별 목록. 이중에서는 파시즘이 아니었다고 반박하는 주장도 있으니 주의해서 보아야 한다. ☆가 붙은 정당은 논란이 있는 경우.지역 | 정당 | 년도 | 지도자 | 이념 | 국가 |
유럽 | 국가 파시스트당 | 1921년~1943년 | 베니토 무솔리니 | 이탈리아 파시즘 | 이탈리아 왕국 |
산마리노 파시스트당(PFS) | 1922년~1944년 | 줄리아노 고치 | 이탈리아 파시즘[25] | 산마리노 | |
주데텐 독일인당 | 1933년~1938년 | 콘라트 헨라인 | 범게르만주의, 나치즘 | 체코슬로바키아 제1공화국 | |
국가 파시스트 공동체 | ?? | 라돌라 가이다 | 나치즘 | 체코슬로바키아 제1공화국 | |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 1920년~1945년 | 아돌프 히틀러 | 나치즘 | 나치 독일 | |
독일 사회주의 국가당 | 1947년~1952년 | 오토에른스트 레머 | 나치즘 | 독일연방공화국 | |
오스트리아 국가사회주의 노동자당 | 1918년~1938년 | 발터 리엘(Walter Riehl) | 나치즘 | 오스트리아 | |
조국전선 | 1933년~1938년 | 엥겔베르트 돌푸스[26], 쿠르트 슈슈니크 | 오스트로파시즘[27] | 오스트리아 | |
화살십자당 | 1939년~1945년 | 살러시 페렌츠 | 나치즘 | 헝가리 왕국[28] | |
군단 운동[29] | 1927년~1941년 | 코르넬리우 젤레아 코드레아누, 호리아 시마 | 군단주의 | 루마니아 [30] | |
네덜란드 국가사회주의 운동 | 1931년~1945년 | 안톤 뮈세르트 | 나치즘 | 네덜란드[31] | |
렉스당 | 1935년~1945년 | 레옹 드그렐 | 렉시즘 | 벨기에[32] | |
국가사회주의 덴마크 노동자당 | 1930년~1945년 | 프리츠 클라우센 | 나치즘 | 덴마크[33] | |
국가사회주의 스웨덴 노동자당 | 1933년~1950년 | 스벤 올로프 린드홀름(Sven Olov Lindholm) | 나치즘 | 스웨덴 | |
국민연합 | 1933년~1945년 | 비드쿤 크비슬링 | 나치즘 | 노르웨이 | |
팔랑헤(통합 팔랑헤☆) | 1921년~1977년 | 호세 안토니오 프리모 데 리베라[34],프란시스코 프랑코 | 팔랑헤주의(프랑코주의) | 스페인 제2공화국, 스페인국 | |
국민대중행동☆ | 1930년~1974년 |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 살라자르주의[35] | 포르투갈 | |
국가조합주의당 | 1932년~1934년 | 프란시스코 롤라오 프레토 | 통합주의 | 포르투갈 | |
프루동 모임 (Cercle Proudhon) | 1911년~1914년 | 조르주 발루아(Georges Valois) | 프로토파시즘, 프랑스 파시즘 | 프랑스[36] | |
르 페소(Le Faisceau)[37] | 1925년~1928년 | 조르주 발루아(Georges Valois) | 프랑스 파시즘 | 프랑스[38] | |
불의 십자단 (Croix de Feu)☆ | 1927년~1936년 | 프랑수아 드 라 로크 | 프랑스 파시즘 | 프랑스[39] | |
프랑스 인민당 (French Popular Party) | 1936년~1945년 | 자크 도리오 | 나치즘 | 프랑스 | |
우스타샤 | 1929년~1945년 | 안테 파벨리치 | 나치즘 | 크로아티아 | |
라푸아 운동 | 1929년~1932년(-1944년) | 비흐토리 코솔라 | 나치즘 | 핀란드 | |
육군전우협회 (Army Comrades Association-ACA) | 1932년~1933년 | 이오인 오더피 | 파시즘 | 아일랜드 | |
신당(New Party)[40] | 1931년~1932년 | 오스왈드 모슬리 | 영국 파시즘 | 영국 | |
영국 파시스트 연합 (British Union of Fascists-BUF) | 1932년~1940년 | 오스왈드 모슬리 | 영국 파시즘 | 영국[41] | |
페르콩크루스츠 (Pērkonkrusts)[42] | 1921년~1943년 | 구스타우스 첼민슈(Gustavs Celmiņš) | 나치즘 | 라트비아 | |
알바니아 파시스트당[43] | 1939년~1943년 | 테픽 음보르자 | 이탈리아 파시즘 | 알바니아 | |
공화 파시스트당[44] | 1943년~1945년 | 베니토 무솔리니 | 이탈리아 파시즘 | 이탈리아 | |
아메리카 | 브라질 통합주의 행동[45] | 1932년~1937년 | 플리누 사우가두 | | 인터그렐리즘 | 브라질 |
국민급진기지 팔랑가 | 1930년대 중반 | 볼레스와프 피아세츠키 | 교권 파시즘, 팔랑헤 | 폴란드 제2공화국 | |
민족 해방 동맹(Alianza Libertadora Nacionalista-ALN) | 1931년~1955년 | 후안 발리스타 몰티나(Juan Bautista Molina) | 아르헨티나 파시즘 | 아르헨티나 | |
미국 은색군단 (Silver Legion of America) | 1933년~1941년 | 윌리엄 더들리 펠리(William Dudley Pelley) | 나치즘 | 미국 | |
아프리카 | 남아프리카 기독교 국가 사회주의 운동 (Suid-Afrikaanse Nie-Joodse Nasionaal-Sosialistiese Beweging)[46] | 1930년~1940년 | 루이스 바이하르트(Louis Weichardt) | 나치즘 | 남아프리카 공화국 |
오제바브란트바흐 (Ossewabrandwag) | 1939년~1952년 | 요하너스 판 렌스뷔르흐(Johannes Van Rensburg) | 나치즘 | 남아프리카 공화국 |
6.3. 인물
파시즘을 여러 측면과 시각으로 구분짓는 인물들의 국가와 출생과 사망,지역 | 관련자 | 출생 | 사망 | 국적 | 분파 |
유럽 | 베니토 무솔리니 | 1883년 7월 29일 | 1945년 4월 28일 | 이탈리아 왕국 | 이탈리아 파시즘 |
아돌프 히틀러 | 1889년 4월 20일 | 1945년 4월 30일 | 나치 독일 | 나치즘 | |
에리히 루덴도르프 | 1865년 4월 9일 | 1937년 12월 20일 | 독일 제국 | 국가사회주의[47] | |
프란시스코 프랑코 | 1892년 12월 4일 | 1975년 11월 20일 | 스페인국 | 프랑코주의 | |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 1889년 4월 28일 | 1970년 7월 27일 | 포르투갈 제2공화국 | 국민생디칼리슴 | |
미켈레 비앙키 | 1883년 7월 22일 | 1930년 2월 3일 | 이탈리아 왕국 | 이탈리아 파시즘 | |
에드몬도 로소니 | 1884년 5월 6일 | 1965년 6월 8일 | |||
에밀리오 데 보노 | 1866년 3월 19일 | 1944년 1월 11일 | |||
비흐토리 코솔라 | 1884년 7월 10일 | 1936년 12월 14일 | 핀란드 | 교권 파시즘 | |
프랑수아 드 라 로크 | 1885년 10월 6일 | 1946년 4월 28일 | 프랑스 제3공화국 | 프랑스 파시즘 | |
비드쿤 크비슬링[48] | 1887년 7월 18일 | 1945년 10월 24일 | 노르웨이 | 나치즘 | |
안테 파벨리치 | 1889년 7월 14일 | 1959년 12월 28일 | 크로아티아 | 교권 파시즘 | |
그레고어 슈트라서[49] | 1892년 5월 31일 | 1934년 6월 30일 | 나치 독일 | 슈트라서주의 | |
아르투어 자이스잉크바르트[50] | 1892년 7월 22일 | 1946년 10월 16일 | 오스트리아 | 나치즘 | |
엥겔베르트 돌푸스 | 1892년 10월 4일 | 1934년 7월 25일 | 오스트리아 파시즘 | ||
헤르만 괴링 | 1893년 1월 12일 | 1946년 10월 15일 | 독일 | 나치즘 | |
프리츠 클라우센 | 1893년 11월 12일 | 1947년 12월 5일 | 덴마크 | ||
안톤 뮈세르트 | 1894년 5월 11일 | 1946년 5월 7일 | 네덜란드 | ||
로사 린톤-오만 | 1895년 2월 7일 | 1935년 3월 10일 | 영국 | 영국 파시즘 | |
이탈로 발보 | 1896년 6월 6일 | 1940년 6월 28일 | 이탈리아 | 이탈리아 파시즘 | |
오스왈드 모슬리 | 1896년 11월 16일 | 1980년 12월 3일 | 영국 | 영국 파시즘 | |
살러시 페렌츠[51] | 1897년 1월 6일 | 1946년 3월 12일 | 헝가리 | 나치즘 | |
파울 요제프 괴벨스 | 1897년 10월 29일 | 1945년 5월 1일 | 독일 | 국가사회주의 | |
쿠르트 슈슈니크 | 1897년 12월 14일 | 1977년 11월 18일 | 오스트리아 | 오스트리아 파시즘 | |
자크 도리오 | 1898년 9월 26일 | 1945년 2월 22일 | 프랑스 | 프랑스 파시즘 | |
코르넬리우 젤레아 코드레아누 | 1899년 9월 13일 | 1938년 11월 30일 | 루마니아 | 군단주의 | |
하인리히 힘러 | 1900년 10월 7일 | 1945년 5월 23일 | 독일 | 나치즘 | |
호세 안토니오 프리모 데 리베라 | 1903년 4월 24일 | 1936년 11월 20일 | 스페인 | 팔랑헤주의 | |
라미로 레데스마 라모스[52] | 1905년 5월 23일 | 1936년 10월 29일 | 스페인 | 국민생디칼리슴[53] | |
윌리엄 조이스 | 1906년 4월 24일 | 1946년 1월 3일 | 영국 | 영국 파시즘 | |
배리 돔빌 | 1878년 9월 5일 | 1971년 8월 13일 | 영국 | 영국 파시즘 | |
호리아 시마 | 1906년 7월 3일 | 1993년 5월 25일 | 루마니아 | 군단주의 | |
레옹 드그렐 | 1906년 6월 15일 | 1994년 3월 31일 | 벨기에 | 나치즘 | |
아시아 | 기타 잇키 | 1883년 4월 3일 | 1937년 8월 19일 | 일본 제국 | 국가개조론 |
쇼와유신론 | |||||
오카와 슈메이 | 1886년 12월 6일 | 1957년 12월 24일 | |||
이시와라 간지 | 1889년 1월 18일 | 1949년 8월 15일 | |||
다치바나 고자부로 | 1893년 3월 18일 | 1974년 3월 30일 | |||
고노에 후미마로 | 1891년 10월 12일 | 1945년 12월 16일 | 대정익찬회 | ||
쁠랙 피분송크람 | 1897년 7월 14일 | 1964년 6월 11일 | 태국 | 타이 파시즘[54] | |
이범석 | 1900년 10월 20일 | 1972년 5월 11일 | 대한민국 | 일민주의 | |
안호상 | 1902년 1월 23일 | 1999년 2월 21일 | |||
양우정 | 1907년 11월 15일 | 1975년 10월 11일 | |||
아메리카 | 후안 바티스타 몰리나 | 1882년 | 1958년경 | 아르헨티나 | 나치즘 |
윌리엄 더들리 펠리 | 1890년 3월 12일 | 1965년 6월 30일 | 미국 | 나치즘 | |
프리츠 쿤 | 1896년 8월 15일 | 1951년 12월 14일 | |||
프랜시스 파커 요키 | 1917년 9월 18일 | 1960년 6월 16일 | |||
조지 링컨 록웰 | 1918년 3월 9일 | 1967년 8월 25일 | |||
아드리앵 아르캉 | 1899년 10월 3일 | 1967년 8월 1일 | 캐나다 | 나치즘 | |
플리누 사우가두 | 1895년 1월 22일 | 1975년 12월 8일 | 브라질 | 국민생디칼리슴 |
7. 분파
자세한 내용은 파시즘/분파 문서 참고하십시오.8. 멸칭으로의 의미 확장
자세한 내용은 멸칭으로써의 파시즘 문서 참고하십시오.
"파시즘"이라는 용어는 자칭 '반파시스트'인 급진적 반권위주의 정치 운동가들, 혹은 좌익 진영이 내외부의 적들을 향해, 심지어 간혹 우파진영에서도 고압적인 모습을 보이는 반대파 등을 비난하기 위해 오용하는 경향이 있다. 좌익이나 반권위주의자가 아니더라도 모든 극우 정권을 가리키는 멸칭으로도 쓰이고 있다.
9. 논란
9.1. 누가 파시즘인가?
파시즘은 좁은 의미로 이탈리아 왕국 안에서 무솔리니가 이끈 정치운동에 한정되어 서술되지만, 넓은 의미로는 그와 유사한 성격의 모든 운동들을 지칭한다. 이는 파시즘 체제 자체가 오랜 논의 없이 전쟁에서 패배하여 붕괴된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볼 수 있다.9.2. 권위주의 국가인가? 파시즘 국가인가?
또한 우익 권위주의 국가는 싸잡혀서 파시즘 국가로 비난당하는 경우가 많고 이중에서도 프랑코의 스페인이나 살라자르의 포르투갈의 경우는 적어도 전체주의 국가에는 속한다는 분석이 많고 파시즘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하지만 서구학계에서는 이베리아 반도의 독재정권[55]은 파시즘의 정의에는 부족하다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허나 이베리아 독재정권들이 추구한 협동조합주의적(corporatist) 경제방식이나 반정부적 인사들에 대한 수용소 건설, 무솔리니의 군사통치법 및 식민지에 대한 종주국의 의무(civilization) 등을 강조한 점, 아동들에게 교권주의적/군국주의적 관점을 세뇌시키는 등 보수반동적이었던 가톨릭 교회와 적극 협력하며 가톨릭 국가의 순수성과 피지배민족에 대한 우월성을 강조하고 그들(서사하라, 앙골라, 모잠비크 등)을 문명화를 시켜야 한다는 전체주의적 목표를 보면 단순한 권위주의 정권들로 치부하기도 힘들다는 주장도 있다. 이 점에서는 서구 학계는 파시즘의 도구를 빌린 것으로 설명한다. 특히 스페인은 1945년 이후 프랑코가 추축국과 거리를 두면서 파시즘 색채가 빠져 50년대부터는 권위주의 독재국가 정도로 통치가 완화(?)되었다.
9.3. 연구의 영역에 있는 파시즘
여러 학자들마다 서로간의 견해 차이로 인해 구분법 또한 나뉘게 되는데 공통적으로 파시즘에 영향을 받은 다른 나라들을 파시즘으로 보는가 아닌가에 따라 구분을 달리한다.- 유사 파시즘
- 파시즘 연구자인 그리핀이 정의한 이념으로, 파시즘의 주요 특성인 대중운동, 팽창주의, 과격한 민족주의/국가주의/인종주의, 국가조합주의 등을 모두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어느정도의 개념을 차용해서 국가 통치의 기법으로 삼게된 사상이다. 대표적으로 교권주의자/민족주의자들과 타협해서 국가 통치의 핵심으로 이용한 살라자르의 포르투갈/메탁사스의 그리스 등이 있다. 또한 일본의 국가주의처럼 직접적으로 유럽 파시즘과는 관련이 없더라도 큰 틀에서의 팽창주의, 군국주의적 행동이 일치하면 유사 파시즘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 식민지 파시즘
- 후지이 다케시 교수가 창안한 개념. 3세계에 흔히 보이는 우익 권위주의 독재자들은 파시스트인가 아닌가를 논하면서 나온 개념이다. 많은 3세계 국가들에게서 파시즘과 유사한 면모가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몇 가지만 지적하자면 지도자를 문화, 민족 정체성의 상징으로 내세우고 열광적으로 숭배한다거나, 좌우파를 망라한 기존 정치를 경멸하고, 경제에 대한 공동체 및 국가 개입을 강조하는 면모 등이 있다. 이 때문에 후지이 다케시는 이탈리아나 나치 독일과 같이 제국주의적 민족주의가 아니라, 저항적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식민지 파시즘이라는 개념을 소개한 바가 있다. 제6공화국 이전 대한민국과 현재의 북한, 중국 본토, 아프리카, 중남미, 이슬람권이 이 유형에 해당된다.
10. 창작물
- 문명 6 - 플레이 가능한 모든 문명은 3티어 정부로 민주주의, 파시즘, 공산주의를 선택할 수 있다. 현실을 반영하여 오직 전쟁에만 특화된 정부다.
11. 참고 문헌
- 파시즘: 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 (The Anatomy of Fascism, 2004년), 로버트 팩스턴, 교양인.
- 파시즘, 장문석, 책세상.
- 파시즘, 캐빈 패스모어, 고유서가.
- 장제스와 국민당 엘리티스트, 정두음, 선인.
- 비시 신드롬, 앙리 루소, 휴머니스트.
- 암흑의 대륙, 마크 마조워, 후마니타스.
- 사회사상과 정치 이데올로기, 앤드류 헤이우드, 오름.
- 영국 파시즘 연구 -대륙 파시즘과 구별되는 모슬리 파시즘의 특징들-, 김명환, 영국 연구 제11호.
- 체임벌린의 후기 사상과 모슬리 파시즘의 비교, 김명환, 역사와경계 92, 부산경남사학회.
- 모슬리의 조합국가론, 김명환, 역사와경계 50.
- 모슬리 파시즘의 현실인식, 김명환, 영국 연구 제10호.
- 프랑스 파시즘에 대한 논쟁, 김용우, 서양사론 제68호.
- 1930년대 프랑스의 파시즘과 보수주의 -불의 십자가 논쟁과 그 문제점-, 김용우, 서양사론 제60호.
- 프랑스 파시스트 이데올로기 형성에 관한 연구, 김용우, 서양사론 제45호.
- 파시즘을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 김용우, 프랑스사연구 제32호.
- 파시즘의 대중심리, 빌헬름 라이히, 그린비
- 신극우주의의양상, 테오도르 아도르노, 문학과지성사
- 파시즘의 알리바이?, 장문석, 영국 연구 제29호.
- 파시즘과 대중기반, 이국영, 국제정치논총 38(3), 한국국제정치학회.
- 비교사의 시각에서 본 한국의 파시즘과 권위주의, 채오병, 경제와사회 111, 비판사회학회.
- 루마니아의 파시즘, 엄태현, 동유럽발칸학 제8권 2호.
- 열광의 정치: 일본의 천황제 파시즘과 독일의 나치즘, 박한규, 대한정치화회보 14집 3호.
- 우리와 그들의 정치 (How Fascism Works: The Politics of Us and Them, 2018년), 제이슨 스탠리, 솔
- 히틀러 1&2 (Hitler, 2000~2001년)[56], 이언 커쇼, 교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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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결속주의. 이는 일본의 정치학자 고라이 킨조우(五来 欣造)가 제시한 번역어로, 파시즘의 어원인 파스케스가 속간(束桿)으로 번역되는 것을 감안한 명칭으로 보인다. 이런 한자어가 있긴 하지만 일본은 ファシズム(화시즈무), 중국은 法西斯主義/法西斯主义(파시쓰 주의/fǎxīsīzhǔyì)로 음차한다.[2] 내셔널리즘(nationalism) 중에서도 민족(ethnic)으로 내셔널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는 민족주의(ethnic nationalism).[3] 국가통제주의. 고전적 파시즘(이탈리아 파시즘)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던 베니토 무솔리니는 "모든 것은 국가(state)에 있으며, 국가 외에는 어떤 것도 없으며, 국가에 반대하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4] 대체로 영웅주의가 동반된다.[5] 보통 민족의 우열을 가려 자민족의 지배 권역을 넓히고 타민족을 배척하려는 태도로 이어진다.[6] 최소한의 합의이자 기준점으로 합의파 이론이 사용된다.[7] 막스 슈티르너 부류의 아나키즘[8] 에른스트 윙어의 노동자:그 형상과 지배에서 말하는 '아나크'라는 단어가 이 아나키라는 단어와 유사하다 보면 된다. 다만 아나키는 아니다.[9] 피우메 자유국, 피우메 음악국 등으로 불리나 정식 국명은 카르나로 이탈리아인 섭정국이다.[10] 학자나 개인에 따라서 파시즘이 아니라고 하는 경우가 섞여 있을 수 있다.[11] 속간에 묶여 있는 몽둥이는 태형을 집행할 권리를, 도끼는 사형을 집행할 권리를 의미한다고 한다. 동양에서 도끼를 부월이라고 부르며 도끼 모양이 임금 왕자가 된 것과 비슷한 원리[12] 민족주의와 다른 개념으로 쓰인다.[13] 대표적인 것이 바로 하루키치 시모이(下位春吉)라는 인물로 일본인인데 이탈리아로 건너와서 카르나로 이탈리아인 섭정국 시기 같이 일하던 인물인데 당시 단눈치오는 이 사람을 이탈리아의 사무라이라며 높이 평가한다. 당시 초기 파시즘이 얼마나 반인종주의적임과 동시에 민족주의적인가를 알 수 있는 모습이다.[14] Finzi sarà fucilato dai tedeschi alle Fosse Ardeatine nel 1944. Il dannunzianesimo dopo Fiume Archiviato il 22 febbraio 2014 in Internet Archive.. Renzo De Felice, D'Annunzio politico: 1918-1938, Bari, Laterza, 1978,[15] 진짜 사회주의가 아니고 말 그대로 우리만의 새로운 사회주의를 만들자는 뜻이기에 사이비 사회주의이다.[16] 아나키즘에서의 그 아나키가 맞으나 실제로 에른스트 윙거의 소설과 노동자: 그 지배와 형상에서 쓴 아나크는 아나키즘에서의 아나키와는 거리가 멀다도 그 스스로가 말하였다.[17] 사랑은 아나크적이지만 결혼은 그렇지 못하며, 전사는 아나크적이지면 '병사'는 아니다. 우발적인 살인은 아나크적이지만 계획된 고의적 살인은 그렇지 못하다. 예수는 아나크적이지만 사도 바울은 그렇지 못하다. 즉 이미 아나크는 그 전에 있던 노동자적인에 익숙하다. - 노동자: 그 지배와 형상[18] 현재 민족 볼셰비키를 칭하며 검과 망치를 이용한 휘장을 들고 다니는 이를 볼 수 있는데 바로 흑색전선이 처음 사용했던 휘장이다.[19] 다만 이것도 이탈리아, 튀르키예의 카드로 운동에만 해당되는 점이고 전통 파시즘을 담당하던 악시옹 프랑세즈를 위시로 하는 왕당파 파시스트들은 오히려 후기 파시즘보다도 더 극우적이고 반동적이었다.[20] 결집되기 위해 특정한 가치를 내세운다고도 볼 수 있다.[21] 심지어 이조차도 악시옹 프랑세즈와 같이 이미 베니토 무솔리니 전부터 파시즘의 기틀을 잡던 이들이 있었기에 더더욱 복잡하다. 때문에 파시즘을 반근대주의적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고 매우 근대적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고 심지어 둘 다 맞는 말이다.[22] 그 자체가 꼭 문제인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나 자본주의적 이념 역시 비슷한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23] 학계에서는 나치즘과 파시즘 사이의 공통점보다, 파시즘과 스탈린주의가 가지는 공통점이 더 많다고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파시즘은 나치 독일 이전에는 반유대주의나 인종주의가 딱히 없었다.[24] 독립운동가 중에도 안호상이나 이범석처럼 파시즘과 관련된 인물들이 있으며, 일본제국의 파시스트인 이시와라 간지는 조선의 독립에 호의적이었고, 기타 잇키는 일본인과 조선인에 대한 동등한 대우를 주장했다. 반서방적 민족주의 대중 운동인 의화단 운동이나, 동학농민운동, 그리고 동학이 중심이 된 일진회도 상당히 복합적인 성격을 가진다.[25] 이탈리아가 파시스트 국가가 되자 이에 영향을 받아 득세한 정당이다.[26] 오스트리아 나치당원들에게 암살되었다[27] 이 또한 이탈리아 파시즘에 영향을 받았다.[28] 1939년 5월 선거에서 200만 표 중 75만 표를 획득하며 크게 선전했으나 그 당시에는 호르티 미클로시 제독의 통치가 굳건하여 의미 없는 승리였다.[29] 이름이 여러 차례 변경되었고, 대천사 미카엘 군단, 철위대(Garda de fier), 국가를 위한 모든 것 등 여러 별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30] 이들은 이온 안토네스쿠와 협력하여 국민군단국가를 수립했으나, 안토네스쿠와 점점 대립하게 되고, 이들은 1941년 폭동을 일으켰다가 진압되어 해체된다.[31] 1935년 선거에서 7.94%의 지지를 확보했다.[32] 가장 성공적인 서유럽의 파시스트 정당으로 1936년 5월 선거에서 11.5%의 지지와 202석 중 21석의 의석을 차지했지만 1937년 4월 선거에서 가톨릭에서 공산주의자들까지 대동단결해서 파울 판 젤란드를 중심으로 모여 이들을 무너뜨림으로써 해산되고 만다.[33] 1939년 선거에서 5,000명의 당원, 덴마크 의회에서 1.8% 의 득표율로 3석을 얻어 원내 진출에 성공하였다. 또한 나치 독일의 덴마크 침공을 지원하였다.[34] 1936년, 스페인 제2공화국 정부에 의해 처형당했다. 그 이후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1937년에 팔랑헤를 중심으로 왕당파, CEDA, 카를로스파를 통합하였다. 다만 팔랑헤와 달리 통합 팔랑헤는 유사 파시즘 정당으로 분류된다.[35] 소위 이스타두 노부라 읽혀지는 그의 재임기 시기에는 국민생디칼리슴적 조합주의와 단순 군사독재정의 성격이 혼합되어 있었다.[36] 프랑스 파시즘의 시초로 평가받는 단체. 정당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싱크탱크에 가까운 단체였다.[37] 프랑스어로 파스케스라는 뜻[38] 프루동 모임과는 별개의 정당. 국가 파시스트당에 영향을 받았으며 한때 준군사조직인 푸른셔츠단의 회원만 25,000명에 달할 정도의 세력이 있었지만 내부 분열로 해산.[39] 후신은 프랑스 사회당(1936~1940). 성공 가능성이 높은 파시스트 정당이었으나 1940년에 예정된 선거가 독일의 침공으로 무산되면서 프랑스의 파시스트화는 적어도 프랑스인들의 손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40] 후에 영국 파시스트 연합(BUF)에 합당 하였다.[41] 1932년 설립 이후 1934년까지 빠르게 성장하여 데일리메일 발행자 로더미어 자작을 비롯한 여러 거물의 지지를 받으며 5만명의 당원을 확보했으나 1934년 올림피아 박람회장 난동 사건과 장검의 밤 때문에 충격받은 영국인들이 파시스트를 성토하고 기존 파시스트 당원들도 90%나 집단 탈당함으로 쇠락했다. 1936년 케이블가 전투를 벌이는 바람에 공공질서법이 통과되어 이들의 제복 착용이 금지되었고 1939년까지 2만명 수준의 당세를 회복했으나 영국 보수파들의 세력 회복과 거국내각의 등장으로 인해 망해버렸다.[42] 라트비아어로 "천둥 십자가"라는 뜻이어서 Thunder Cross-썬더 크로스 라고도 불린다.[43] 창당 시기를 보면 알겠지만 이탈리아 보호령 시기에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아 창당한 정당이다.[44] 국가 파시스트당의 잔당들이 창당한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의 정당이다.[45] 포르투갈어로 아사우 인테그랄리스타스 브라질레이라-Ação Integralista Brasileira.[46] 이니셜을 쓰지 않고 '회색 셔츠단'(Gryshemde)으로 통칭했다.[47] 독재 권력이 국가와 결합해 국가 체제가 제한적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준 인물이라 원류 파시즘의 선구자로 불린다.[48] 나치 독일의 괴뢰국의 수장이어서 결국 종주국의 이념을 따라갔다. 사상과 별개로 우주교라는 범신론 종교를 창시하기도 했다.[49] 나치당내 좌파 출신으로, 초기엔 국가사회주의를 따르는 히틀러의 충신이었지만 그의 좌파 성향 때문인지 장검의 밤 때 숙청당한다.[50] 오스트리아 출신이지만 오스트리아 나치당에 입당하는 등 나치즘 성향이었다.[51] 1939년 나치즘 성향의 정당인 화살십자당(Nyilaskeresztes Párt)을 설립하고 당수로 활동하다가 반정부 활동 혐의로 체포되어 형무소에 투옥되었고. 1940년 아돌프 히틀러의 압력으로 석방되어 독일로 건너간 후에 독일이 1944년 헝가리를 침공했을 때 나치의 지원을 받은 살러시 페렌츠와 화살십자당은 나치즘 인사로 집권했었다.[52] Ramiro Ledesma Ramos. 스페인 조합주의 파시즘의 창립자쯤 되는 인물이며 하이데거 철학의 권위자였다.[53] 라미로 레데스마 라모스의 스페인 최초의 조합주의적 파시즘 사상. 팔랑헤보다 더 급진적이며 팔랑헤의 전신 JONS에서 만든 사상이며 기술자, 기업가, 노동자 모두를 포함한 노동조합을 통한 직장민주주의 실현과 노동조합의 자가관리 실현 및 지방자치위원회의 직접민주주의실현과 이를 통한 노동조합 국가적 전체주의를 주장하던 좌파 파시즘적 성격을 가진 사상. 이후 라미로 레데스마 라모스 자체가 팔랑헤가 부르주아 냄새 난다며 탈당하면서 팔랑헤 자체에서 축출된 사상이다.[54] 대중운동과 실지회복주의 등 이탈리아 파시즘을 기반으로 하여, 인종적 우월 주장 등 나치즘 요소들 또한 포함한다. 다만 반유대주의 대신 화교를 유대인 포지션에 놓아 탄압했다. 탈아입구 정책 등 천황제 파시즘 요소들 또한 일부 포함하지만, 강력한 대중운동을 기반으로 국왕을 (상대적으로) 격하했다는 점에서는 이탈리아 파시즘과 유사하다. 당대에 잘나가던(...) 파시즘 요소들을 전부 들여와서 짬뽕했다고 봐도 무방하다.[55] 특히 살라자르의 포르투갈은 파시즘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온건한 모습을 보여줬다.[56] 히틀러 1 - 의지 1889~1936(Hitler: 1889-1936 Hubris), 히틀러 2 - 몰락 1936~1945(Hitler: 1936-1945 Nemes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