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1-17 01:43:49

추축국

추축국
-2 Axis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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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white * 전쟁 도중 추축국에서 연합국으로 전향 [br] # 간접적 지원 여부 논란 있음 [br] + 괴뢰 국가/정권 및 위성 국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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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Greater_East_Asia_Conference.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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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938_Naka_yoshi_sangoku.jpg
《사이좋은 세 나라(仲よし三國)》
1938년 제작된 일본의 프로파간다 선전물이다.
사진 속의 인물은 오른쪽부터 무솔리니, 고노에 수상, 히틀러.
파일:NmKWAC5.jpg
독일이 영국을 붙잡고 이탈리아가 이를 뽑는 모습
한국어: 추축국
한자: 樞軸國[1]
영어: A xis powers
독일어: Achsenmächte
이탈리아어:Potenze dell'Asse
1. 개요2. 비슷해보이지만 전혀 다른 것3. 과정
3.1. 나치 독일3.2. 일본 제국3.3. 이탈리아 왕국
4. 상세
4.1. 결속력4.2. 기여(?)4.3. 관련 유엔 조항
5. 전쟁 이후6. 목록
6.1. 가입국6.2. 괴뢰 정부6.3. 친추축국 성향 국가6.4. 추축국의 인물들
7. 추축국이 점령한 지역8. 관련 문서9. 둘러보기

1. 개요

파일:Adolf_Hitler.jpg 파일:베니토 무솔리니.jpg 파일:Emperor_Hirohito_portrait.jpg
퓌러 아돌프 히틀러 두체 베니토 무솔리니 덴노 미치노미야 히로히토
유럽의 국제 관계는 로마베를린을 연결하는 선을 "추축(axis)"으로 하여 변화할 것이다. - 베니토 무솔리니(1936년)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나치 독일, 이탈리아 왕국, 일본 제국을 중심으로 세계정복을 시도한 진영'.[2] 1940년 나치 독일, 이탈리아 왕국, 일본 제국 3국이 체결한 삼국 동맹 조약으로 시작되었으며 대표적인 저 세 국가를 따로 삼국동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이디어는 헝가리 왕국의 쥐울러 굄뵈시(Gyula Gömbös) 총리가 내었으며, 추축국이라는 명칭은 베니토 무솔리니의 발언에서 유래했다. 독일과 이탈리아의 상호 협정으로 두 나라가 국제 정치의 중심축(추축)이 된다는 각오가 담긴 이름. 결과적으로 국제정치학에서 두고두고 가루가 되도록 까이는 중심축이 되었으니 예언 적중(?)

한자로는 樞軸國이라고 표기하며, 영어로는 Axis powers라고 한다. Axis alliance, Axis nations, Axis countries라고도 하며 간단하게 Axis라고도 표기한다. 참고로 영단어 Axis는 축이라는 뜻으로 근래에는 Axis of evil(악의 축)이라는 표현으로 유명하다.결국 왜 축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2. 비슷해보이지만 전혀 다른 것

제1차 세계대전에서도 독일이 전쟁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서 패전했으며, 당시에도 연합국과 연합군[3]이 존재했기 때문에 당시의 독일측 국가를 추축국, 그들의 군대를 추축군이라고 오인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때의 독일은 속칭 제2제국으로 불리는 독일 제국이며 옆동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오스만 제국, 불가리아 왕국 등이 한편이었고, 이탈리아와 일본이 반 독일 세력에 섰다. 그래서 영문 명칭은 Central Powers라고 부르며, 국가는 중앙(유럽)국, 동맹국으로, 군대는 중앙(유럽)군, 동맹군으로 부른다.

3. 과정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 이탈리아 왕국이 추축국으로 맺어진 과정.
맺어지는 과정도 상당히 드라마틱 했는데 일본 제국만 하더라도 초기에 나치 독일과 맺어지는 것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상당히 거셌다.

3.1. 나치 독일

3.2. 일본 제국

삼국 동맹 체결에 대해 가장 거세게 반발했던 곳이 바로 일본 제국의 해군이였다.[4] 이후 찬성으로 돌아섰기는 했지만 삼국 동맹 체결에 두고두고 발목을 잡아 육군측과 삼국 동맹을 긍정하는 측의 여론에게서 크게 비난당하기도 했다.

이러한 해군측의 삼국 동맹 체결에 반대하는 것을 상징하는 인물이 바로 야마모토 이소로쿠이다.

3.3. 이탈리아 왕국

4. 상세

4.1. 결속력

처음 이들 추축국들 사이의 관계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미국, 영국소련과 껄끄러웠던 관계였던 것처럼.[5] 한 예로 중일전쟁에서 중국 국민혁명군은 초반에 일본군과 싸울 때 독일이 퍼다준 독일제 무기로 싸웠다. 게다가 1928년 주중 독일 군사고문단을 조직, 한스 폰 젝트알렉산더 폰 팔켄하우젠과 같은 장군을 보내서 상하이-난징 간 방어선도 짜줬고 차관을 주면서 여러모로 국민혁명군의 현대화, 아니 독일화를 도왔다. 간단하게 중일전쟁 초반의 국민혁명군은 나치 군복을 입고 싸웠다. 그리고 알렉산더 폰 팔켄하우젠이 만들어 놓고 간 방어선은 국지적인 전투에서나마 국민당군의 전과답지 않게(?) 일본군을 갈아버리는 전과를 세우고그러나 일본군에 2배로 갈린다, 종전 후 장개석은 폰 팔켄하우젠에게 무려 100만 달러를 보내준다.[6][7] 그러나 이는 일본이 중국과 전쟁을 하기 이전부터 이루어진 협력 관계이고, 곧 나치 독일에서도 이런 황당한 상황을 깨닫고 중화민국과의 협력 관계를 단절하고 폰 팔켄하우젠을 소환한다.[8] 1941년에 태평양 전쟁이 터지고 중화민국이 연합국으로 참전하면서 공식적으로 전쟁 상태가 되었다.

당시 지멘스의 중국 지사장이자 많은 중국인 난민들을 살린 욘 라베일본 점령 하 난징의 참상히틀러에게 알리려 했지만 이미 힘러가 보고를 받고는 독-일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여 게슈타포로 대응했다(...) 히틀러는 난징과 욘 라베에 관한 보고는 티끝만큼도 받지 못했다! 다행히 욘 라베가 반역행위를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게슈타포도 알고 있었기에 주의만 주고 풀려났다. 욘 라베는 전쟁이 시작되고 독일의 지멘스 본사에서 근무하며 외부인과의 접촉을 차단하는 선에서 끝냈다.

이탈리아의 경우 독일보다 심각한데, 1933년에 히틀러가 총통이 되고 1934년에 처음 오스트리아 합병을 시도하자, 전쟁을 불사하면서까지 이를 막으려고 했다. 결국 아직 전쟁을 치를만한 상태가 아니라고 판단한 히틀러가 합병을 보류하면서 일단락되었다. 독일과 이탈리아 사이가 가까워진 것은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를 침공해서 국제적으로 왕따가 되었을 때 유일하게 독일, 일본만이 이탈리아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연합국에는 절대강자인 미국에다가 역시 강대국인 소련, 영국, 프랑스 등이 있었지만, 추축국에 소속된 국가들 중에 제대로 된 강대국은 독일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전세계와 싸울만큼의 국력을 가지진 못했다. 하나하나 보자면 일본은 군부가 장악하고 있어 정부의 제대로 된 통제가 불가능했고, 이탈리아는 1870년 이탈리아 왕국으로 통일되기 직전까지 별 볼일 없는 도시국가 집단에 불과했다. 한편 독일도 여러 소국으로 나뉘어 있다가 제2제국으로 통합된 시기(1871년)가 비슷하기는 하나, 독일은 강국이었던 프로이센 왕국 주도로 통합된 것이고 1차대전을 거의 혼자서 이끌 만큼 강대한 국가였다. 물론 전쟁으로 큰 피해를 보긴 했으나 전쟁 피해 자체는 보통 수년 뒤면 복구되기 때문에 독일의 국력은 1차대전 직후 혼란기를 제외하면 언제나 유럽 국가들 중에서 가장 강성했던 편이었고, 전간기 말기에 독일을 휩쓸었던 대공황은 전세계가 휘말렸던 재앙이었으니 독일만의 문제였다고는 할 수 없었다.

문제는 독일의 역량이 연합국의 초강대국 둘 이상을 동시에 상대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당장 미국이나 소련 둘 중 하나만 달랑 떼어놔도 독일이 이길 수 없는 판인데[9], 독일은 이를 둘 다 상대해야 했다.

당장 이러한 안습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가 대전 기간 동안 생산된 전 세계 군수물자의 절반 이상을 생산했던 미국의 압도적인 공업력이었다. 추축국의 핵심 국가인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전쟁 기간 내 군수물자 생산력을 전부 합쳐도 미국 하나보다 모자랐을 지경이었던 것이다.

물론 추축국이 연합국에 비해서 살림에 여유가 없다고는 하지만 이들도 서로서로 도움을 주고 받았는데 독일과 일본의 예가 단적이다. 독일은 최신 무기와 그 설계도를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일본까지 잠수함으로 갖은 고생을 하면서 공여해주었으며(물론 일본 잠수함들이 운반하는 경우도 많았다.), 일본 또한 해군 관련 기술을 독일에게 전수해주는 등 서로 도움을 주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일본은 물론이고 독일 또한 그렇게 전수받은 기술을 써먹지 못했다.[10] 게다가 심지어는 일본의 기습적인 진주만 공습으로 미-일 태평양 전쟁이 개시되자 독일은 미국에게 선전포고를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공격에 기뻐하며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하였다. 태평양 게릴라 전술은 덤.

물론 이는 일본의 적국인 미국을 독일이 공격해주면 일본이 독일의 적국인 소련을 공격하거나 최소한 견제해줄 것이라고 믿었던 것에서 기인한 판단이었으나, 이러한 히틀러의 생각과는 달리 일본은 '소련과의 불가침 조약'을 맺은 상황이었고, 소련과의 대치지대에 있는 관동군의 정예사단을 포함한 나머지 병력을 인도네시아에 몰빵했다.[11] 이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계속 이어져서, 일본은 1945년 8월 소련의 선전포고로 불가침조약이 일방적으로 파기[12]될 때까지 독일과 전쟁 중이던 소련을 공격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13]

독일과 일본이 이런 상황이면 이탈리아라도 제대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런 거 없다. 당장 이탈리아는 지방의 힘이 더 강해서 무솔리니가 제대로 권력을 잡고 있다고 보기도 힘들었다. 더욱이 독일과 일본은 초기에 선전이라도 했지 이탈리아는 고작 그리스에게 전쟁걸었다가 털리기까지 했으니 도움이 되기는 커녕 도움을 줘야 할 판이다.

더불어 추축국에 속한 기타 국가들도 군사적인 면에 한정해서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루마니아 왕국은 헝가리, 불가리아와 발칸 전쟁, 제1차 세계대전에서 루마니아가 빼앗아간 도브루자, 트란실바니아 같은 영토 문제로 인해 원수관계였고, 불가리아 왕국은 애초에 나치의 압력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끌려가다시피 했었고 역사적으로도 독일보다는 러시아와 더 굉장히 친밀했기에[14] 독소전 참전에도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히틀러가 루마니아에게 압력을 넣은 덕분에 루마니아로부터 발칸전쟁때 잃었던 도브루자 등 영토 일부를 양도받고 더불어 독일이 그리스와 유고슬라비아의 영토 일부도 나눠줬던 것도 있기에 추축진영에 가담했지만 끝내 독소전에는 파병을 거부했고 전쟁 당시 나치의 유대인 말살 정책 홀로코스트에 맞서 유대인들을 나치에게 넘기지 않으며 독일과 대립하였다.[15][16] 그리고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전세가 바크라티온 작전과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연합국에게 유리해지고 소련이 동유럽, 발칸반도 일대로 밀고 내려오자 바로 독일과의 국교, 동맹관계를 파기하여 루마니아로부터 얻은 도브루자 지역과 기존 나머지 본토 지역들을 제외한 그리스와 유고슬라비아의 점령지 영토들을 포기하고 소련에 붙어 독일군을 공격하였고, 나치 패망 이후 소련의 지원을 받는 사회주의 일당제 공화국 정부가 수립되어 소련의 위성 동맹국이 되었다.

헝가리 왕국의 경우 끝까지 독일과 함께 싸웠지만 2차대전 말기 은근슬쩍 강화하려고 하다가 독일군에게 점령되어 독일의 괴뢰 정부가 수립되기도 했고,[17] 핀란드 역시 독일과 일본군 다음으로 추축국 군대 중 가장 잘 싸웠지만 알다시피 독일 뒤통수를 치고 소련과 강화하고, 라플란트에서 독일군과 싸우기도 했다.[18] 태국은 일본 제국을 도와 동남아 전선에서 일본에게 협력하기도 했었지만 실제적으로는 일본 제국의 강압에 일본군과 강제적으로 동맹을 맺다시피했었고, 전쟁 기간 동안 수많은 태국 처녀들이 종군 위안부로 징발되어 일본군에게 강간, 성폭행 당하기까지 했었다. 게다가 내부에서도 전쟁을 주도했던 쁠랙 피분송크람 총리 내각과 전쟁을 반대했던 왕실이 갈등을 빚었고, 일제에 대항하는 레지스탕스 세력들이 태국 왕실등 지배층 세력의 지원하에 일본군을 공격하기도 했었다. 제2차 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나자 제2차 세계대전의 전승국이었던 프랑스영국, 네덜란드 등 서유럽 연합국들은 태국이 일제에 협력한 것을 이유 삼아 독일이나 일본처럼 영토 강제 할양, 군정 지배, 전쟁을 주도했던 군부, 지배층들에 대한 전쟁범죄자 재판 회부 등 태국을 처벌할 것을 주장했으나 아시아, 태평양 전선의 연합군 주도권은 미국에게 있었고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태국이 일본 제국에 의해 억지로 끌려갔던 전적을 고려, 참작해 태국에 대한 처벌을 부과하지 않았다. 이라크 왕국은 한동안 영국의 심각한 내정간섭을 받다가 민족주의자인 라시드 알리를 중심으로한 정변으로 인해 잠시 반영으로 돌아서고 추축국 측에 참전하다가 1달 만에 패배하였기에 딱히 영향을 준 것도 없다.

결론적으로 추축국은 어느 누구 하나 제대로 협조하질 않았다. 독일-이탈리아-일본 이 3국부터가 서로간에 도움이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4.2. 기여(?)

추축국들은 핀란드[19]를 제외하면 전체주의권위주의에 찌든 독재국가라는 특징이 있었기 때문에 세계대전 이후 극단적 민족주의나 독재를 철저하게 배척하고 민주주의를 장려하고 인간의 권리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식이 전 세계적으로 퍼지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당장 조지 워커 부시이란, 북한, 이라크를 가리켜서 "악의 축(AXIS OF EVIL)" 이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을 정도로 추축국은 다른 동맹의 국가들과는 달리 악의 세력으로 인정받을 만한 범죄행각을 많이 저질렀다.

물론 현실은... 당장 밉보이지만 않으면 오히려 독재 체제를 지원하기도

4.3. 관련 유엔 조항

지금도 유엔의 규칙 중에 '옛 추축국이 다시 전쟁을 준비하는 등의 불온한 움직임이 보일 경우 연합국이나 기타 국가가 선전포고 없이 바로 기습적으로 전쟁을 개시해도 무방하다.'는 조항이 남아있을 정도로 취급이 나쁘며, 이게 흔히 말하는 적국조항이다. 물론 이 조항은 나치 독일이나 일본제국으로 복귀할 정도는 되어야 가능하므로 사실상 사문화된 상태. 유엔헌장 53조와 107조로 이곳을 참조.
유엔 헌장 제53조 #
1. 안전보장이사회는 그 권위하에 취하여지는 강제조치를 위하여 적절한 경우에는 그러한 지역적 약정 또는 지역적 기관을 이용한다. 다만, 안전보장이사회의 허가없이는 어떠한 강제조치도 지역적 약정 또는 지역적 기관에 의하여 취하여져서는 아니된다. 그러나 이 조 제2항에 규정된 어떠한 적국에 대한 조치이든지 제107조에 따라 규정된 것 또는 적국에 의한 침략 정책의 재현에 대비한 지역적 약정에 규정된 것은, 관계정부의 요청에 따라 기구가 그 적국에 의한 새로운 침략을 방지할 책임을 질 때까지는 예외로 한다.
2. 이 조 제1항에서 사용된 적국이라는 용어는 제2차 세계대전중에 이 헌장 서명국의 적국(추축국)이었던 어떠한 국가에도 적용된다.
유엔 헌장 제107조 #
이 헌장의 어떠한 규정도 제2차 세계대전중 이 헌장 서명국의 적이었던 국가에 관한 조치로서, 그러한 조치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정부가 그 전쟁의 결과로서 취하였거나 허가한 것을 무효로 하거나 배제하지 아니한다.
그래서 어떤 국가를 지칭해서 추축국 같다고 하면 그게 바로 욕이다. 부시도 그걸 노리고 발언한 것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고, 부주의하게 흔들어버린 결과 이슬람을 내세운 막장 세력이 등장했다.

5. 전쟁 이후

말 그대로 석기시대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으나, 냉전이 그들을 살렸다. 독일은 동부 지역이 다른 나라에게 뜯겼을 뿐만 아니라 그 뜯어진 영토의 절반이 소련에게 점거되어 공산화되었고, 나머지 동유럽 역시 소련의 영향하에 놓였다. 중국 대륙에 있던 일본군이 물러나고 소련이 한반도 북쪽을 공산화시키자, 추축국을 연합국이 나눠서 점령해려고 했던 계획은 여러 과정을 통해 깨지고, 미국은 2차대전 후 '소련'을 새로운 적으로 간주. 이탈리아와 일본, 그리고 나머지 독일 절반을 붙들고[20] 엄청난 경제 지원을 하며 소련에게 맞설 대항마로 내세웠다. 특히 일본은 고도 성장을 거쳐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다만 이탈리아는 선진국의 말석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독일도 자국의 지역강국 지위를 전쟁 전보다 더 올리지는 못했다.

6. 목록

일단 제2차 세계대전에서 추축국 소속으로 전투에 참여한 국가와 비슷하지만, 각 국가의 사정이 있어서 목록이 약간 다르다.

그리고 추축군과는 약간 개념이 달라진다. 상세한 것은 해당 항목을 참고하라.

6.1. 가입국

  • 나치 독일
  • 이탈리아 왕국
  • 일본 제국
  • 헝가리 왕국 - 많이 알려져 있진 않지만, 일방적으로 추축국으로 끌려간 오스트리아와 달리 헝가리는 추축국 설립 아이디어를 낸 국가이다. 따라서 그 공로를 인정받아 추축국 사이에서 준 메이저 행세를 했고, 1944년에는 할 거 다 해먹은 제독이 소련에 붙으려 했으나 이에 반발한 화살십자당과 독일군이 전 국토를 점령해 일본과 함께 끝까지 독일 편에 서서 싸우기도 했다. 또한 유고슬라비아, 소련 등지에서 저지른 전쟁범죄도 만만찮다. 전후 소련에 점령당해 공산화된다. 하지만 의식있는 국민들 몇몇은 폴란드인들을 돕기도 하는 일면을 보여주었다.[21]
  • 루마니아 왕국 - 소련에게 빼앗긴 베사라비아(몰도바) 지역을 되찾기 위해 가입. 결국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전세가 연합국에게 돌아가자 나치와 동맹을 끊었으나 결국 소련군에게 공산화되어 소련의 위성국으로 전락한다. 결국 한참후인 1989년에 동유럽 민주화 혁명 바람을 틈타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를 몰아내고 공산주의 독재 국가에서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다. 당시 독재자였던 이온 안토네스쿠 자체가 히틀러의 모방하에 유태인 학살도 저질렀으며 이쪽도 일제, 나치 독일 못지 않게 학살 등 전쟁범죄도 만만치 않게 자행하였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이쪽이 나치 독일, 일제 다음으로 적극적으로 참전한 국가이다. 약 45만명의 루마니아군이 전사하였는데, 이는 독일, 일본을 제외한 추축국 국가 중에 가장 많은 전사자를 낸 수치이며, 심지어 이탈리아보다도 많은 전사자를 내었다.[22]
  • 핀란드 - 겨울전쟁 당시 소련에게 빼앗긴 지역을 되찾기 위해 가입. 레닌그라드 공방전에서 독일군에 특히 가담했다. 결국 전후 소련에게 배상금을 물게 된다. 하지만 핀란드의 경우에는 빼앗긴 지역만 되찾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에 처음엔 독일군과 협력하다가 중간에 교묘하게 배신해서[23] 공산화된 동유럽의 추축국들(불가리아, 루마니아)과는 달리[24] 핀란드는 공산화는 면했다. 그래서인지 헝가리와 마찬가지로 추축국이었단 사실이 잘 알려져 있진 않다. 그래도 사정을 이해하는 일반인들조차 지금은 조용히 사는 국가인 핀란드가 뜬금없이 과거에 추축국이었단 사실 자체에 충격먹은 사람들이 많다. 타 추축국에 비하면 나쁘지 않은 국가이지만 어찌되었든 레닌그라드에서 추축군에 의해 어마어마한 소련 민간인이 학살당하고 죽었기에 결국 승전하던 소련에게 목덜미를 잡히게 되어, 냉전 기간 동안부터 지금까지도 소련/러시아의 입김하에 강하게 놓여있다. 실제로 중립이라고는 하나 냉전 시기부터 소련 앞에서 알아서 길 수밖에 없었고 지금까지도 군사 훈련이나 무장 등은 러시아의 군사 영향을 강하게 받은 상태이다.
  • 이라크 왕국 - 독립하긴 했지만 실제로는 영국의 괴뢰 국가에 가까웠다. 반영 민족주의자 라시드 알리가 쿠데타를 일으켜서 정권을 잡은 후 참전했지만 한 달만에 영국군에 의해 역관광 당하고 영국군은 1947년까지 이라크에서 철수하지 않았다.
  • 태국 - 일본의 동맹국. 추축국이긴 했지만 추축국의 가입 과정도 일제의 강압에 의한 것이었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우리는 원치 않게 일본놈들과 손잡아야 했어요'라고 미국,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태평양 전쟁의 서방 연합국에게 싹싹 빌기까지 했다.[25] 전쟁 중에도 태국 내에서 반일 세력이 조직적으로 활동하고 주미 태국대사가 귀국을 거부하고 미국에서 이를 지원하기도 했다. 사실 태국이 일본의 뒤통수를 친 것은 당시 친일 군사독재자였던 쁠랙 피분송크람의 실각이 결정타이기도 했다.
  • 산마리노 - 이탈리아에 둘러싸여 있어 이탈리아에 파시즘 정권이 들어서자 산마리노도 똑같이 파시즘 정권이 들어서 이탈리아,독일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추축국에도 가입하였지만 전쟁 중에는 중립을 지키다가 결국 전쟁 말에 연합국으로 참전한다.
  • 유고슬라비아 왕국 - 가입한 지 3일만에 쿠데타로 탈퇴했다. 이후 유고슬라비아 침공으로 추축군에게 점령당한다.
  • 불가리아 왕국 - 나치의 강압과 위협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가입하긴 했지만 당시 보리스 3세 전 국왕[26]과 권력층들이 국내의 반대 여론을 탄압하고 독일과 동맹 조약을 맺고 제2차 대전 초기 그리스, 유고슬라비아 침공에 참여하여 독일군에게 영공, 영해, 육로 등을 개방하고 군대 병력까지 파병하였다. 그러나 1944년 연합국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으로 전세가 연합국에게 유리해지자 독일과 동맹을 끊고 소련, 영국, 미국, 유고슬라비아, 그리스 등 연합국의 편에 서서 독일군을 공격했으나, 결국 나치 패망 이후 소련에 의해 왕정이 폐지되고 공산당 정권이 수립되어 1989년 냉전 체제가 종식될 때까지 사실상 소련의 괴뢰국으로 지내야 했다. 그렇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일본, 이탈리아, 루마니아, 헝가리 등 다른 추축국들과 다르게 학살, 전쟁범죄 등도 별로 많이 저지르지도 않았는 데다 가입 과정도 일제의 강압, 위협에 의해 추축국에 가담해야 했던 태국처럼 나치의 강압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가담해야 했고, 불가리아도 제2차 대전 당시 자신들이 제2차 대전 당시 전범국가가 아닌 전쟁 피해국이라고 주장하는 등 과연 불가리아를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으로 봐야 할지는 역사 학자들마다 논란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도 나치의 외압에 의해 일방적으로 독일과의 동맹 조약을 맺고 추축국에 들어간 뒤에도 독일군 점령지, 주둔지의 차별적 대우를 받고 전쟁으로 큰 피해를 입는 등 불가리아 사람들의 독일에 대한 감정은 그리 썩 좋지 않다고 한다. 오죽하면 독일의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해서도 독일의 상임이사국 진출에 반대하고 있는 체코나 폴란드 등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게 피해를 입었던 동유럽 연합국 국가들의 반대 입장을 적극 지지하며[27] 나치 독일이 유럽 일대에서 저지른 전쟁 범죄 만행들을 들먹이면서 독일의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을 반대하기까지 하고 있다. 그래도 발칸 전쟁 당시 루마니아한테 빼앗긴 남부 도브루자 지역을 나치독일군의 지원으로 되찾는 등 제2차 대전 이전의 국경선으로 되돌아가거나 오히려 그 이전보다 영토들을 전승국들에게 강제 할양당하고 종전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의 전범국가로 전락해버린 일본이나 독일, 이탈리아, 루마니아, 헝가리 등 다른 추축국들[28]에 비하면 수혜자로 볼 수도 있다.

6.2. 괴뢰 정부

6.3. 친추축국 성향 국가

엄밀하게는 추축국이 아니며, 나중에 연합국이 된 국가도 많다.
  •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발트 3국) - 전쟁 이전부터 소련에 점령당했었고, 일시적으로 동방 국가판무관부라는 이름하에 나치 독일의 영토로 들어서지만, 전후부터 소련 붕괴기까지 소련에 대한 앙금이 크기 때문에 지금도 대체적으로 (국가나 개개인의 정치성향에 따른 차이가 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연간하면 소련보다 나치 독일에 훨씬 호의적이다.
  • 스페인국 - 파시스트 정권. 스페인 내전에서 독일과 이탈리아의 지원을 받아 승리한 후 프랑코가 정권을 잡으며 친독 성향이 강해졌으며 독소전 당시 의용군도 파병하였다. 그러나 내전 수습 등의 이유로 의용군 외에 공식 참전은 하지 않았고, 독일의 패색이 짙어진 후 바로 등을 돌리고 연합군에게 항구를 개방하는 등 적극 협력하여 프랑코는 전쟁 후에도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 스웨덴 - 유럽 온갖 국가가 독일에게 공격받아 지배당하는 상황에 독일의 침략을 받지 않기 위해 노르웨이로 가는 군사통행권을 주었으며, 독일이 필요로 하는 철광석 양의 절반 이상을 전쟁 기간 내내 퍼주고 일부 스웨덴인 자원병이 핀란드 전선에서 싸우기도 하는 등의 협력을 하였다. 이 때문에 스웨덴은 독일과 끝까지 싸우다 나라를 빼앗긴 노르웨이의 증오를 샀다. 그나마 어느 정도는 참작이 가능한데 스웨덴을 둘러싼 세 나라 중 덴마크와 노르웨이는 독일에게 점령되었고 핀란드는 독일의 동맹국이었기에 스웨덴이 독일에게 개겼다면 순식간에 무너졌을 것이다. 이와 별개로 독일은 전쟁에서 승리한 후 레벤스라움이 완성된다면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 게르만인들은 독일 국민으로 대우해주기로 계획했었다. 그러나 이 말은 스웨덴도 결국은 주권을 빼앗겼을 것이라는 이야기.
  • 소련 - 처음에는 독일을 경계하여 좋지 않게 보고 영국프랑스에게 친화적인 자세를 보였으나 양국은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 소련을 무시했다(이는 영국과 프랑스에게 엄청난 까일 거리가 되었다). 결국 소련은 히틀러에게 접근, 독소 불가침조약 이후 독일의 폴란드 침공, 프랑스 침공 등을 용인하고 독일이 필요로 하는 물자를 대량 수출함. 물론 어디까지나 독소전쟁이 터지기 전까지의 일이며, 독일의 선제공격이 시작된 이후에는 당당한 연합국의 가장 중요한 멤버 중 하나로 활동했다.
  • 이란 제국 - 당시 국왕인 팔레비 1세는 추축국에 호의적이였고, 독일과 석유 거래도 했다. 그러나 페르시아 침공 이후 영국소련의 강압에 의해 연합국 측에 참전한다.
  • 인도[31] - 1차대전 때 영국을 돕다 뒤통수를 거하게 맞은 마하트마 간디 등 독립운동 지도자들이 2차대전 때는 무반응,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그러다 인도 독립을 보장받자 그제서야 영국을 돕기 시작.[32] 그러나 인도 내에서는 마하트마 간디, 자와할랄 네루와 맞먹는 독립운동가인 찬드라 보세는 추축국과 협력하여 인도를 독립시킨다는 계획으로 추축군에 소속되어 싸웠다. 현재는 의도는 좋았다고 평가받는 편.
  • 아르헨티나 - 친독일 성향이 강했고, 2차대전이 끝난 후에도 도망쳐 온 나치 잔당들을 숨겨주기도 했다. 그래서 1950년대까지 KGB, MI6, 모사드, UDBA를 비롯 각종 첩보기관들이 나치 잔당들을 찾아서 조지기 위해 활발히 활동했다 한다. 그리고 그렇게 모사드는 기어코 나치 잔당을 잡아서 조졌다.
  • 칠레 - 이웃 남미 국가인 아르헨티나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군사적으로 친독일 성향이 강했고[33] 종전 이후 아르헨티나와 비슷하게 파울 셰퍼, 발터 라우프, 안테 파벨리치 등의 나치 독일과 크로아티아 독립국 등 구 추축국의 전범 인사들을 숨겨주거나 도피 루트를 제공해주기도 했었다.
  • 터키 - 오스만 제국 시절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동맹이었으나 같이 패전하여 나라가 멸망하는 일을 겪었다. 히틀러와 나치는 1차대전의 동맹이었던 터키를 꼬드겨 추축국에 끌어들이려고 노력했다. 터키는 방공 협정에 가담하고, 독일과 불가침 조약을 맺는 등 친독일 성향이 있긴 했으나, 과거 오스만 제국이 해체되는 뼈 아픈 경험을 한 뒤라 2차대전에 개입하고 싶어하지 않아했다. 터키 공화국의 국부이자 초대 대통령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이미 2차 대전이 벌어지기 직전에 히틀러에 대해서 제 정신이 아닌 인물이라고 평해서 그 본성을 꿰뚫어 보았으며 무솔리니에 대해서도 "자기 국민의 손에 목이 매달릴 놈이지"라고 평가한 바 있다.그리고 무솔리니는 죽어서 주유소 천장에 발목이 매달렸다 그리고 또 한 번 벌어질 세계 대전에 미국은 필연적으로 참전할 것이며, 미국에 의해 종결될 것이라 예언했다(...) 아타튀르크의 식견에 따라 터키는 결국 마지막엔 연합군 측에 줄을 서게 되며, 이후 줄곧 친미 국가의 길을 걷게 된다.
  • 폴란드 제2공화국 -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전 독일, 헝가리 등 추축국 국가들과 같이 뮌헨 협정에 약조하여 주테텐란트, 톄신 등 체코슬로바키아가 차지하던 영토들을 강탈한 적도 있었지만[34]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연합국의 편에 선다.
  • 덴마크 - 독일이 침공하자 하루만에 항복하고 독일의 보호령(덴마크 보호령)임을 선언했으며, 독일과의 협력 정책을 고수하였다. 방공 협정에도 가담하여 사실상 추축국 가입국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여기까지 보면 독일이 점령했으니 그렇다고 볼수있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직전인 1939년 5월 31일, 독일과 불가침조약을 맺은 역사가 있다.그래놓고 왜 침략하냐
  • 바티칸 - 정확히 말하자면 교황 비오 12세는 개인적으로는 나치를 혐오하였고, 1937년에는 나치즘을 비판하는 독일어 회칙도 발표했다. 또한 유대인 난민들에 대해서도 협조적이었다. 다만 종교로서의 가톨릭이 아닌 국가로서의 바티칸은 이탈리아를 무솔리니가 꽉 잡아버린 바람에 묶여있었다. 또 무솔리니가 '로마 카톨릭의 수호자'라고 스스로를 홍보하기도 했다. 그리고 만주국, 슬로바키아 제1공화국, 비시 프랑스, 크로아티아 독립국 등 추축국의 괴뢰 국가들을 승인하는 병크를 저지르기도 했다.[35]

6.4. 추축국의 인물들

※ 유명하고 군의 간부들만 서술하기 바람.
* 나치 독일* 이탈리아 왕국* 일본 제국* 헝가리 왕국* 루마니아 왕국* 핀란드
* 요한 빌헬름 랑겔
* 에드빈 링코미에스
* 리스토 뤼티
* 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헤임
* 비시 프랑스* 크로아티아 독립국
* 토미슬라브 2세
* 안테 파벨리치
* 노르웨이 크비슬링 정권* 세르비아 구국정부
* 밀란 네디크
* 바르다르 마케도니아
* 이반 미하일로브
* 로코트 자치국* 러시아 인민 해방 위원회* 슬로바키아 제1공화국* 벨라루스 중앙 라다
* 라다슬로 아스트로스키
* 중화민국 왕징웨이 정권* 만주국* 몽강연합자치정부* 자유 인도 임시정부* 베트남 제국* 캄보디아 왕국* 라오스 왕국
* 시사방봉
* 태국
* 라마 8세
* 쁠랙 피분송크람
* 완 와이타야쿤
* 필리핀 제2공화국
* 호세 P. 라우렐
* 이라크 왕국
* 라시드 알리
* 파이살 2세
* 압달라
* 버마국
* 바 마우

7. 추축국이 점령한 지역

추축국/점령지 문서 참조.

8. 관련 문서

9. 둘러보기

세계대전의 진영
제1차 세계 대전 연합국(협상국) 동맹국
제2차 세계 대전 연합국 추축국

2차 세계대전의 주요 추축국
파일:나치 독일 국기.png 파일:1500px-Flag_of_Italy_(1861–1946).svg.png 파일:1280px-Flag_of_Japan_(1870–1999).svg.png
독일 이탈리아 일본

파일:파스케스.png 파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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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white * 1922~1943의 [[이탈리아 왕국|{{{#white 이탈리아 왕국}}}]]과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white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br] # 파시즘 여부 논란 있음 }}}
}}}||


[1] 신자체로는 枢軸国[2] 실제로 추축국은 한때나마 영국소련의 일부와 중립국을 제외한 유럽 대륙과 북아프리카, 동북아시아, 동남아시아 심지어 태평양의 섬들까지 영향력 하에 둔적이 있다. 세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셈.[3] 1차 세계대전의 연합국은 협상국과 협상군으로도 불린다.[4] 때문에 패배한 이후 여론은 해군과 해군 출신 인물들에게 상당히 호의적으로 돌아서는데 기여하기도 했다.[5] 애초에 두 세력은 이념이 달랐던 나라로, 미국과 영국은 세계 최초로 나타난 공산주의 국가를 경계하는 입장일 수 밖에 없었다. 반대로 소련 입장에서는 적백내전 당시 반혁명군을 지원했고, 병력을 보내 직접 개입했기 때문에 서구 국가들이 언제든 다시 침공해올 수도 있는 잠재적 적국으로 보였다. 그러나 소련도 외교적인 마찰을 자주 일으켰는데, 자국 영토에 불시착한 영국과 미군 전투기들을 갖은 이유를 대며 압류한 다음 멋대로 뜯어서 기술을 빼갔다. 이외에도 연합국 대사관 직원이 간첩 혐의로 체포되는 등 영국과 미국 수뇌부를 분노케하는 짓을 소련은 태연하게 저질렀다. 특히 폴란드 문제라던지..[6] 물론 이 갈아버렸다는건 국지적인 전투일뿐 큰 전투에선 대부분 중국군이 갈려버리며 패하고 그 증거로 중요도시와 거점을 모두 잃었다.[7] 일본이 노구교 사건 을 기점으로 중국 침략을 가속화 하자 '너 왜 우리 동맹국 때려?! 사이좋게 지내!' 라고 했던 게 나치 독일이다.[8] 이 부분은 하츠 오브 아이언 시리즈에 구현되어있다. 안습한 중화민국의 유일한 중간급 성능의 연구진으로 폰 팔켄하우젠이 등장하는데 중일전쟁 이후 중화민국이 밀린다 싶으면 독일 군사 고문 소환 및 만주국 승인 이벤트가 뜨며 사라진다. 반대로 중화민국이 일본을 압도해서 밀어내고 만주로 진격하면 싹수가 노란 일본을 버리고 중화민국을 챙기려는 건지 그런 거 없다.[9] 소련과 미국은 애시당초 독일과 체급이 달라도 너무나 달랐기 때문에, 독일이 이들과 1:1로 전쟁하더라도 이기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나마 소련은 독소 불가침조약으로 방심하고 있는 사이에 불시에 기습적인 침공을 감행한 충격 효과와, 대숙청 때문에 소련 내부의 사정이 혼란했다는 점이 먹혀들어가서 그나마 초기에는 우위를 점했지만, 기본적인 체급의 한계상 감당할 수 없는 상대였고, 초기에 소련의 숨통을 끊어놓지 못한 시점부터 독일의 패배는 예정되어 있었다. 미국의 경우에는 아예 독일이 사실상 미국 본토를 타격할 방법이 전혀 없다(일단 영국도 넘어서지도 못했고, 다음으로는 대서양을 건너야 했다)는 점과, 자원이 부족한 독일과는 달리 미국은 광활한 북아메리카의 풍부한 자원으로 자본을 두둑히 깔고 있다는 점, 그리고 쌍방간 기술력에서도 유의미한 차이는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독일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거기다 초반에 졸전해서 그렇지 영국도 만만한 상대는 결코 아니었다.[10] 독일이 제공한 U-511, MG 151/20을 보면 알겠지만 일본군의 기술로는 어찌 써먹는 것이 한계였고 양산은 불가능했다. 독일 또한 우선순위에서 밀려 일본이 전해진 군함 건조 노하우를 제대로 써먹지 못했다.[11] 물론 관동군도 병력 규모로만 본다면 굉장히 위협적인 전력임엔 틀림없었다. 이오시프 스탈린도 처음 독소전쟁에 몰빵할 때 일본의 침략 가능성을 두려워했었다. 허나 리하르트 조르게의 첩보 덕분에 비로소 안심하고 대독전선에 병력을 몰빵할 수 있었다.[12] 여담으로 일본 우익사관에서는 이걸 바탕으로 '1945년에 소련이 불가침 조약을 깨고 일본을 공격했다'는 이유로 비난을 한다. 그러나 소련은 전쟁에 돌입하기 이전에 조약을 파기하고 전쟁 상태에 돌입할 것임을 선포하였다. 더구나 4월에 이미 소련은 소-일 상호 중립조약을 더 이상 연장하지 않을 것을 일본 정부에 통보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대일전 참여의사를 전달한 상태였으므로, 갑작스러운 뒤통수치기라고 할 수도 없다.[13] 물론 상식이 있는 국가라면 불가침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통보도 안하고 쳐들어가는 짓 따위는 안하는 게 맞다. 이와는 별개로 능력도 없었기도 한데 진주만 공습 특히 원인 항목에서도 알 수 있겠지만, 얘네들은 애초에 양면전쟁을 할 능력 따위는 없었다. 게다가 중일전쟁(이기고 있는 것 같아도 인구가 많고 국토가 넓으니 무한 전쟁에 가깝다. 중공군 개입 이후의 6.25 전쟁을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을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미국에게 선전포고한 것도 양면전쟁의 상황. 여기서 소련까지 치면 삼면전쟁이라는 병신력의 막장 상황이 오게 된다. ~~[14] 실제로 러시아는 러시아-투르크 전쟁에서 불가리아를 오스만 제국에서 독립시킨 적이 있었다. 인종적으로도 불가리아는 슬라브계다.[15] 반면 나치의 압력에도 유대인들을 나치에게 인도하지 않으며 홀로코스트로부터 자국내 유대인 국민들을 보호하고 독소전 참전을 거부함과 동시에 발칸반도 전선 일대에서 학살이나 약탈들을 크게 자제하며 전쟁범죄 만행이 거의 없다시피한 불가리아와는 반대로 루마니아는 직접적으로 유대인들을 학살하거나 유대인들을 아우슈비츠에 넘기며 홀로코스트에 참여하기까지 하고 독소전쟁,유고슬라비아 전선 일대에서 유대인 이외 슬라브등 여타 타민족들을 학살하는 등 온갖 크고 작은 전쟁 범죄 만행들을 자행하였다.[16] 이 때문에 불가리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에서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의한 유대인 사망자가 단 1명도 나오지 않은 유일한 국가로 집계되기도 했었다.[17] 다만 이런 것과는 별개로 헝가리군독일군의 명령에 충실하게 따랐다.[18] 그리고 핀란드는 추축국의 주요국가들인 일본 제국이나 나치 독일, 이탈리아 왕국 등처럼 파시즘, 전체주의에 경도된 지배층들이 집권하면서 추축국이 된 것이 아니라 소련이 겨울전쟁으로 카렐리야 등 영토를 강탈하는 바람에 소련이 빼앗아 간 영토를 회복한다는 명분 아래 나치독일과 손을 잡고 추축국에 합류했기에 경우가 다르다.[19] 여기는 소련을 원수 보듯 하는 나라였기에 참전.[20] 원래는 영국/프랑스/소련과 함께 나누는 것이 예정이었다. 그러나 소련이 독일 절반을 점령한 후, 미국은 독단으로 서독, 일본, 이탈리아를 점거했다.[21] 자세한것은 폴란드의 폴-헝 관계 참조.[22] 겨우 7만명 정도의 차이이지만, 당시나 지금이나 이탈리아루마니아를 비교하면 국력으로나 인구로나 당연히 이탈리아가 많은 전사자를 내어야 정상이다.[23] 그로인해 타이,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 과 함께 SCAPIN 1757호와 1912호에선 특수 지위 국가(Special Status Nations)에 분류되어있다.[24] 그러나 아래 항목에서 보듯이 불가리아는 좀 논란이 있다.[25] 실제로 제2차 대전 종전 후 영국프랑스, 네덜란드 등 서유럽 연합국들은 태국을 전범국으로 처벌할 것을 주장했으나, 실제로 태평양 전선에서의 연합군 발언권은 미국에게 있었고 미국은 전쟁 당시 태국이 일정부분이나마 일본 제국에게 강제로 동맹국으로 끌려갔던 이력이 있었던 것을 감안해 태국을 용서해줬다. 덕분에 미국은 전후 냉전이 시작되고 동남아에 든든한 우방 하나를 얻게 되었는데 특히 태국군은 6.25전쟁에 미군과 함께 UN군으로 참전하여 공을 세웠다.[26] 당시 불가리아 왕가는 독일계였다. 보리스 3세의 부왕인 페르디난트 1세 문서 참조.[27] 심지어 이 국가들은 불가리아가 제2차 대전의 전범국이 아닌 전쟁 피해국으로 인정까지 해주고 있다.일단 제2차 대전 당시 나치독일과 싸웠지, 불가리아하고 싸운 게 아니니까.[28] 일본-쿠릴열도, 남사할린, 대만, 만주, 조선 등 식민지와 영토들을 중국과 소련에게 할양하거나 독립시키고 현재의 혼슈, 홋카이도, 시코쿠, 큐슈 등 일본 열도 4개 섬으로 영토 축소그런 놈들이 인과응보인 주제에 피해자 행세하며 쿠릴열도 내놓으라고 러시아한테 시비건다, 독일-동프로이센, 슐레지엔, 폼메른을 폴란드와 소련에게 상실하고 전후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 이탈리아-이스트리아 반도와 리예카 시, 로도스섬을 유고슬라비아와 그리스에게 할양, 루마니아-베사라비아 지역을 소련에게 할양, 헝가리-뮌헨협정, 제2차 세계대전으로 빼았아 먹었던 유고슬라비아, 루마니아, 체코슬로바키아 영토들을 다시 원래 지배하던 주변국들에게 다시 내주고 전쟁 이전이자 현재의 영토 면적으로 축소되었다.[29] 이후 독일의 괴뢰국이 됨.[30] 우스타샤의 학살로 유명하다.[31] 인도 제국 정부가 추축국에 호의적이였다는게 아니라 독립운동가들이 호의적이였다.[32] 중국(이때의 중국 정권은 국민정부)과 미국이 인도 독립운동진영을 지지해 준 덕도 크다.[33] 아르헨티나보다 더하면 더한 나라라고 할 수 있는 게 현재 칠레군에서 예전 나치독일의 국가였던 호르스트 베셀의 노래의 곡조를 이용해 만든 해병대 군가를 만들어서 지금까지 쓰고 있는 놈들이다![34] 그러나 폴란드가 뮌헨 협정으로 체코에게서 강탈하였던 테신은 체코에게 병합되기 전에 체코가 폴란드를 침공해서 뜯은 영토였다. 자세한 건 제국주의 문서 참고.[35] 다른 중립국들은 스페인을 제외하면 이런 짓을 하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