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도스 공국 Printsipat di la Pind Principato di la Pind | ||
이탈리아 왕국의 괴뢰국 | ||
위치 | 그리스 북서부 | |
수도 | 멧소보 | |
정치체제 | 선거군주제 | |
국가원수 | 대공 | |
언어 | 아로마니아어 이탈리아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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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핀도스 공국은 이탈리아 왕국이 1917년과 2차대전기에 재차 건국을 시도한 국가다. 아로마니아인들의 국가로 그리스에서 분리시키고자 하였으며 강역은 그리스 동북부 에페이로스 지역의 일부였다. 어원은 그리스 중부의 핀도스 산맥이다."핀도스 공국"이라고 흔히 불리는 것과는 다르게 실제로 계획된 명칭은 없었다. 1917년의 해프닝은 단칼에 거절되고 순식간에 사태가 종식되었으며 2차대전기의 설립 시도에서도 "핀도스 자치국"이나 "블라흐 자치국"과 같은 명칭이 쓰였을 뿐. 하지만 오늘날 1917년과 2차대전기의 시도를 일컫는데 "핀도스 공국"이라는 명칭이 널리 쓰이게 된 것이다.
2.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의 시도
핀도스 공국 건국 시도는 제1차 세계 대전 때부터 시작된다. 1917년 8월-9월 경에 일어난 해프닝이다.이탈리아 왕국이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점령하에 놓인 알바니아의 남부를 점령하며 그 여파로 동북부 그리스에는 상당수의 이탈리아군이 주둔하게 된다.
당시 이탈리아는 이탈리아-루마니아 관계 개선을 위해 루마니아인들이 동질감이 느끼던 아로마니아인들의[1] 지지를 얻고자 하였고 이는 그리스의 아로마니아인 대표들이 독립과 자치를 위한 이탈리아의 도움을 얻을 수 있으리란 오해를 하게 된다.
그 결과 1917년 8월 29일, 동북부 그리스 13개 아로마니아인 마을들과 그들이 대표들이 아로마니아인들의 자치령 수립과 이탈리아의 보호를 요청하는 서한을 이오안니나의 이탈리아와 루마니아의 공사관에 보낸다. 하지만 이탈리아와 루마니아 모두 단 하루만에 단호한 거절의 답변을 주고[2] 그 다음날 이탈리아군은 동북부 그리스에서 철군하고 이 소동을 일으킨 아로마니아인 대표들은 9월 3일에서 7일에 걸쳐 그리스 정부에 의해 체포된다.
위 이미지에 녹색 원 13개가 1917년 이탈리아 보호령 수립을 요구했던 13개 아로마니아인 마을들의 위치이다. 위 왼쪽의 선은 그리스-알바니아 국경이다.
3.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시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파시스트 이탈리아는 1940년 그리스를 침공하고 그 결과 그리스는 이탈리아 왕국과 나치 독일, 그리고 불가리아 왕국에 의해 분할점령된다. 2차 대전 시기의 이탈리아는 그리스의 분할을 반겼고 아로마니아인들이 발칸반도 고대 루마의 후예라는 믿음을 가지며 아로마니아인 독립 세력을 지원한다.따라서 1941년 아로마니아 독립 세력으로 구성된 "로마 군단"이 알키비아디스 디아만디스(Αλκιβιάδης Διαμάντης)에 의해 세워졌고 디아만디스는 멧소보에 아로마니아인 의회[3]를 세운다. 이탈리아 괴뢰 그리스국 총리인 요르요스 촐라코글루(Γεώργιος Τσολάκογλου)에 준독립 "핀도스 자치국"이나 "블라흐 자치국" 설립을 논의한다. 하지만 촐라코글루는 자신의 국가를 분할하려는 이러한 주장을 거부한다. 이탈리아 또한 1941년 중후반에 가서는 아로마니아인 다수는 그리스인으로 동화되어 이탈리아를 적대한다는 것은 알아내고 반그리스, 반불가리아, 친이탈리아 가치를 내비치는것도 일부며 이들 또한 개인적 야심과 정치 밎 경제적 보복을 위해 이탈리아를 지지하는 척하는 것을 간파하고 아로마니아 독립에 대한 지지를 점진적으로 취하한다. 다만 로마 군단 자체는 유지되어 그리스 점령 이탈리아군과 점령지 유지 및 파르티잔 토벌 등에 협력한다.
디아만디스 또한 1942년부터는 로도스 섬이나 루마니아에 더 오랜 시간을 지내며 로마 군단의 지도자 자리에서 내려왔으며 1943년 이탈리아가 항복하자 독일은 발칸 반도에서의 이탈리아 점령지를 탈취해 아로마니아인 로마 군단과 아로마니아 독립 시도 또한 완전히 무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