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1 17:17:35

게슈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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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국가경찰
Geheime Staatspolizei
[1]
파일:당수리(1935–1945).svg
<colbgcolor=#000><colcolor=#fff> 설립 1933년 4월 26일
해체 1945년 5월 8일
선행 기관 프로이센 비밀경찰
상급 기관 친위대 국가보안본부(RSHA)
유형 비밀경찰
관할 나치 독일
나치 독일 점령하 유럽
규모 32,000명(1944년 기준)[2]

1. 개요2. 유래3. 나치 독일에서의 활동4. 패망5. 조직 편성6. 출신 인물7. 제복8. 대중매체에서9. 기타10.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파일:Gestapo_Klatovy.jpg
보헤미아-모라바 보호령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한 게슈타포 대원들
Geheime Staatspolizei ist jeder Platz.
게슈타포는 어디에나 있다.
하인리히 뮐러
정식명칭은 친위대(SS) 국가보안본부(Reichssicherheitshauptamt, RSHA) 제4국(Amt. Ⅳ)-비밀국가경찰국(Geheimes Staatspolizeiamt, Gestapo).[3]

아돌프 히틀러나치당의 독재를 위해 앞장서서 잔인한 고문과 탄압을 한 것으로 악명 높은 조직이며 홀로코스트에서도 직접적으로 가담한 전쟁범죄 집단이다. 그래서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주요 책임자들은 체포되어 단죄되었으며 일부 게슈타포들은 처벌을 피하기 위해 해외로 도주했다. 죄질이 경미하거나 이용가치가 있을 경우 세계 각국의 정보기관에 채용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악명으로 인해 '게슈타포'라는 단어 자체가 보통 명사가 되어 세계적으로 욕설이자 멸칭으로 통하고 있다.

게슈타포는 흔히들 악랄한 나치 경찰의 상징으로 인식되지만, 게슈타포가 곧 나치의 경찰 조직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었다. 일반적인 경찰 업무는 질서경찰(Ordnungspolizei, 약칭 Orpo)이 담당했으며, 형사 경찰(Kriminalpolizei, 약칭 Kripo)[4]살인범, 강간범, 방화범과 같은 흉악범에 대한 수사와 심문을 담당했다. 군사경찰이자 군대의 방첩임무를 담당했던 기관은 독일 국방군 소속 비밀 야전 경찰(Geheime Feldpolizei, GFP)이 담당했다. 물론 이들 역시도 홀로코스트의 주 가해자들이었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2. 유래

원래는 프로이센 자유주 정부 정치경찰로 정치첩보활동 전담반을 분리해서 독일 공산당이나 극우 민병대자유군단독일 사회에 만연했던 극단주의 정치단체를 감시사찰하는 부서였다.[5]

3. 나치 독일에서의 활동

1933년 나치가 정권을 잡자 프로이센 자유주 내무장관인 헤르만 괴링이 기존 비밀경찰에서 반나치 성향 간부들을 숙청하고 재창설했다. 여기서부터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게슈타포의 시작이다. 초대장관은 괴링의 조카사위인 경찰간부 출신 루돌프 딜스[6]가 임명되었다.

1934년 하인리히 힘러가 게슈타포 장관으로 취임한 후부터는 친위대(SS) 보안국(SD)의 하부기관으로 편입되어 전국적인 비밀경찰기구로 발전했다.

1936년에는 '게슈타포 법'이 통과되었는데 이에 따라 게슈타포는 초법적인 존재가 되었으며 이에 따라 사법적 검토 없이 고문이나 즉결처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독일 시민권을 가진 독일 국민들도 게슈타포 요원에 대해 소송을 할 수 없었다. 특히 게슈타포는 사람을 강제수용소로 보낼 권한이 있는데 이를 보호관찰권(Schutzhaft)으로 불렀다. 이는 게슈타포가 한 번 결정하면 사법부도 되돌릴 수 없는 조치였다. 심지어 게슈타포는 영장 없이 임의로 가택을 수색할 수 있었다. 사생활 보호는 게슈타포에게 통하지 않는 법칙이나 다름 없었던 셈이다.

1939년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7]는 당과 국가의 비밀경찰기구들의 중복을 피하기 위해 관할 분야를 조정했는데 이 과정에서 친위대와 내무부 산하로 국가보안본부(RSHA)가 창설되고 게슈타포는 국가보안본부 제4국으로 편입되었다.

2차 세계 대전으로 폴란드가 점령되자, 폴란드 국내군의 사보타주 활동을 소탕하고 숨어있는 유대인들을 색출하는데 앞장섰다. 프랑스에서는 파리 중심부에 게슈타포 사령부를 설치하고 레지스탕스들을 체포해서 고문가했다. 여성, 노인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또한 동유럽의 점령 지역에서는 유대인들을 즉결처형하거나 절멸수용소로 이송시켜 학살하는데에 가담했다.

때로는 아인자츠그루펜이나 경찰 대대에 대한 지휘권을 행사했다. 점령 지역에서는 현지의 나치 부역자들이 창설한 보조경찰들을 통제해 점령 지역을 안정화시키고 유대인들을 색출하는데 활용했다.

또한, 독일 본토 내 반나치 인사들을 색출하고 처벌하는데에도 앞장섰으며 1943년에는 대부분의 반체제 조직들을 와해시키는데에 성공했다. 1944년에는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이 발생하자 가담자를 색출해내 강제수용소에 수감했다. 수감된 가담자들은 인민재판소에 보내져 롤란트 프라이슬러 판사에 의해 사형을 선고 받게 되었다.

연합군의 폭격기들이 본격적으로 독일 본토에 전략폭격을 가할 때 게슈타포의 청사들 역시 전략폭격 표적에 포함되었다.

패망 직전인 1945년에는 하인리히 힘러의 배신 행위에 가담한 무장친위대 장성인 헤르만 페겔라인을 체포해 처형했다.

4. 패망

현재 그 자리가 어떻게 되었는지 보여주는 영상

1945년 나치 독일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망함에 따라 상부기관인 슈츠슈타펠과 함께 해체되었다. 이때 게슈타포의 절반은 그들의 악랄함에 치를 떤 연합군에 의해 즉결처형되거나 자살하는 것은 물론 제3국으로 도망쳤다. 나머지 절반은 각국 정보기관에 포섭, 흡수되었다. 전후 이스라엘이나 이집트, 시리아와 같은 중동 국가들은 이들을 필요에 따라 포섭해서 자기 사람으로 썼고 영국미국, 소련 정보부에서 일하게 된 자들만 해도 수백 명이나 되고 심지어 서독동독의 방첩부대나 첩보기관에서 근무한 이들도 적지 않다. 서독 연방정보국의 모체인 겔렌 조직과 동독슈타지로 흘러들어가기도 했다.

5. 조직 편성

  • C부(행정 담당)
    • C1과 - 인사 파일, 카드, 색인, 정보 및 관리, 여권 담당
    • C2과 - 보호관찰(Schutzhaft) 담당[9]
    • C3과 - 언론 보도 담당
    • C4과 - 나치당원 감시 담당
  • E부(보안 및 방첩 담당)
    • E1과 - 간첩반란 담당
    • E2과 - 산업 스파이 담당
    • E3과 - 서유럽 담당
    • E4과 - 스칸디나비아 담당
    • E5과 - 동유럽 담당
    • E6과 - 남유럽 담당
  • G부(세관 및 국경 경비, 출입국 담당) - 1944년 신설됨.

각 독일의 점령 영토와 절멸수용소 그리고 강제수용소에는 여러 개의 하위 게슈타포 부서들이 있었다. 아인자츠그루펜은 국가보안본부 소속이었지만 게슈타포가 지휘권을 행사하기도 했다.

6. 출신 인물

7. 제복

파일:스탠리 투치 아이히만.jpg
스탠리 투치가 연기한 아돌프 아이히만. 게슈타포 제복의 특성을 보여준다.
파일:게슈타포 제복.jpg
게슈타포 제복을 재현한 노르웨이 아케부스 전쟁역사박물관

게슈타포의 제복 규정은 정해지진 않았지만 대다수의 게슈타포들은 일반적으로 필드 그레이의 친위대 제복(1939년형)을 착용했다. 대신 다른 친위대와 달리 오른쪽의 칼라장에는 SS를 상징하는 시겔 룬 문자 대신 검은색의 공백만이 존재해 다른 친위대와 구분했다. 왼쪽의 팔에는 다이아몬드 모양의 "SD(Sicherheits dienst의 약칭, 보안부)" 패치가 붙어 있었으며 소매에 착용한 커프 타이틀에도 "SD"라고 적혀 있었다. 세간의 인식과 달리 하켄크로이츠 완장은 착용하지 않았다.[10]
파일:Gestapomen_following_the_white_buses.jpg
게슈타포 사복조
잠입 임무를 해야 할 때에는 사복으로 위장한 채로 활동하기도 했다.

8. 대중매체에서

대중매체에서 나올때는 친위대 제복보다는 다른 옷을 입고 나올 때가 많다. 특히 서양권 매체에서 더 그러한데 검은색 트렌치 코트정장, 검은색 중절모를 쓰고 추가로 나치완장을 차기도 한다. 아무래도 친위대원과의 구분을 위해서 인듯하다.

9. 기타

  • 1980년대까지는 대한민국의 초, 중, 고등학교 교사들이 다방이나 끽차점, 극장 등을 출입하는 초, 중, 고등학생들을 숨어서 지켜보다가 기습적으로 적발해서 혼내는 경우가 많아서 게슈타포라는 별명이 붙은 교사가 흔했었다. 이 당시에 청소년 유해업소의 기준이 넓던 시대라 21세기 시점에서는 말도 안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 현재 독일에서는 '게슈타포'가 경찰에 대한 멸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명칭의 유래와 역사성 때문에 '게슈타포'는 멸칭 중의 멸칭이라고 한다.

10. 관련 문서



[1] 게하이메 슈타츠폴리차이[ɡəˈhaɪmə ˈʃtaːtspoliˌtsaɪ\]로 발음한다. 약칭은 게슈타포(Gestapo, [ɡəˈʃtaːpo\]).[2] 첩자 및 포섭된 정보원까지 합하면 10만이 넘었다는 기록도 있다.[3] 자매조직으로 제6국(Amt. VI)-해외보안국(SD-Ausland)이 유명하다. 약칭 보안국(SD)은 게슈타포 제2대 국장이었던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초대 국장을 맡아 친위대의 수장 하인리히 힘러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주물렀던 걸로 유명하다.[4] 친위대 국가보안본부 제5국[5] 이 외에도 프로이센 자유주에는 폭동진압임무를 맡은 프로이센 무장경찰도 있었는데 내전까지 벌어졌던 전후 독일의 혼란상에 대비하기 위해 이들은 기관총은 물론 장갑차까지도 보유했다. 베르사유 조약으로 군비가 육군 10만으로 제한되었기 때문이다.[6] 후임 게슈타포 장관들과 달리 패전 이후로도 처벌을 거의 안 받았고 오히려 1953년까지 서독 내무부 등에서 일하다가 은퇴했다. 유대인 박해에 관한 건 대부분 거부했고 결정적으로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에 참여했다가 괴링의 조카사위라는 지위 덕택에 간신히 목숨만 건졌기 때문이다. 당장 게슈타포 장관직에서 해임당한 후 장검의 밤 당시에도 죽을 뻔 했다가 역시 괴링의 보증으로 목숨을 건졌다. 1957년 사냥 도중 총기 오발로 사망했다.[7] 제국보안본부 초대본부장[8] 그 유명한 아돌프 아이히만이 근무했던 부서이다. 홀로코스트에 있어서 핵심 기능을 하던 부서 중 하나로 독일 국영 철도의 화물 열차들을 징발할 권한도 있었다.[9] 강제수용소로 이송해 수감시키는 것을 담당했다.[10] 하켄크로이츠 완장을 착용한건 오히려 친위대가 아니라 나치당의 간부들이었다.[11] 물론 알 만한 사람은 전부 게슈타포라 부르고, 본인들도 Gestaposoldat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지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