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6-08-19 15:42:29

가톨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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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지역 전 세계
중앙기관 명칭 교황청(성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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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성직자 사제 및 부제 총합 157,146명(2023)[1]
주교 5,430명(2023)

1. 개요2. 명칭과 표기
2.1. '가톨릭'의 뜻2.2. 한글 표기 '가톨릭'과 '카톨릭'2.3. '교회', '가톨릭 교회', '로마 가톨릭 교회' 등 여러 명칭2.4. 한자 표기
3. 가톨릭 교회가 믿는 바에 관한 교리
3.1. 4대 교리3.2. 가톨릭 교회의 성경3.3. 하느님이 누구인지에 관한 가톨릭 교회의 신앙 고백3.4. 성모 4대 교의3.5. 신학
4. 가톨릭의 전례에 관한 교리
4.1. 전례4.2. 모든 전례의 으뜸인 성체성사(미사)4.3. 일곱 성사4.4. 시간 전례(성무일도)4.5. 전례력과 전례주년4.6. 성체 현시와 강복 예식
5. 가톨릭 신자들의 삶에 관한 교리
5.1. 가톨릭 신자의 6대 의무5.2. 7대 죄악과 7대 주선5.3. 성윤리와 생명윤리에 관한 강한 보수성
6. 가톨릭 신자의 기도에 관한 교리
6.1. 주님의 기도6.2. 성모송
7. 특징
7.1. 베드로좌를 중심으로 한 일치7.2. 다양한 예법, 하나의 교회
7.2.1. 라틴 가톨릭 교회
7.2.1.1. 로마 가톨릭 교회7.2.1.2. 독신 성직자 제도7.2.1.3. 성직자치단
7.2.2. 동방 가톨릭 교회
7.3. 규모7.4. 교황청 바깥의 가톨릭 성향 독립교회
8. 타 종파와의 차이
8.1. 비가톨릭 그리스도인에 대한 이해8.2. 정교회와의 관계
8.2.1. 필리오퀘 문제8.2.2. 정교회와의 차이
8.3. 개신교와의 차이 및 관점
8.3.1. 성공회와의 관계
8.4. 의화에 관하여
8.4.1. 가톨릭·루터교·감리교 공동 선언
8.5. 타 교파와 성사교류
9. 오해
9.1. 성모 공경에 대한 오해9.2. 성경, 성인에 관한 오해9.3. 구원관에 관한 오해9.4. 기타 오해들
9.4.1. 영미 개신교권에서 형성된 반가톨릭 역사왜곡과 선전
10. 문화11. 역사12. 동아시아에서의 가톨릭
12.1. 대한민국12.2. 중국12.3. 대만12.4. 일본
13. 미국에서의 가톨릭14. 비판
14.1. 전 세계14.2. 한국
15. 여담
15.1. 창작물에서의 가톨릭
15.1.1. 구마(엑소시즘)에 대한 오해와 진실
16. 인물17. 관련 용어 및 관련 문서18. 둘러보기

1. 개요

가톨릭(Catholic) 또는 천주교()[2]는 로마의 주교[3]이자 바티칸 시국국가원수[4]교황(敎皇)을 주교단[5]의 단장으로 하는 기독교 종파이다.

성좌와 일치하는 교회를 통틀어 가리키는 종교이자 전 세계의 종교 교파 중 가장 신자 수가 많다. 따라서 기독교의 교파 중 가장 신자 수가 많으며,[6] 정교회와 함께 기독교 역사상 가장 오래된 종파이다.[7]

2. 명칭과 표기

2.1. '가톨릭'의 뜻

파일:external/catholictradition.org/tg-7.jpg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에 가톨릭 교회Katholike Ekklesia가 있듯이, 주교가 나타나는 곳에 공동체가 있어야 합니다.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총대주교 순교자 (35년?-104년?), 《스미르나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분도출판사의 박미경 역주판으로부터 발췌.
그러므로 참종교를 찾으려면, 이교도들의 (사상적) 혼동 속에서도 찾지 말고 이단자들의 쓰레기 더미에서도 찾지 말고 (...) 오직 가톨릭catholici 또는 정교도orthodoxi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서, 다시 말해서 전일성(全一性)을 보존하고 정도(正道)를 따르는 사람들에게서 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그리스도 종교이며 그의 교회의 친교라고 하겠으니, 이 교회는 가톨릭catholica이며 가톨릭이라 일컬어지고 있으니 그것도 자기 신도들에게서만 아니고 모든 적에게서도 그렇게 불린다. 좋든 싫든 간에, 이단자haeretici든 열교schismatum 추종자든 자기네끼리 말하는 경우가 아니고 외부 인사들과 말하는 경우에는 가톨릭교회를 가톨릭이라 부르는 수밖이 없다. 온 세상에 이 이름으로 불리는 이상, 이 이름이 아니고서는 달리 구분할 수 없는 까닭이다.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354년-430년), 《참된 종교》[8] 분도출판사의 최원오 역주판으로부터 발췌.
세상의 끝에서부터 반대편 끝까지 모든 세상에 퍼져있기 때문에, 또 인간이 알아야 할 모든 가시적이고 비가시적인 천국과 지상의 지식을 모두 완전하게 교리로 가르치기 때문에, 또한 지배하는 자와 지배 받는자 또는 배운 자와 못 배운 자 등 모든 인간이 경건함에 복종케 하기 때문에, 육과 혼이 범하는 모든 죄를 치료하고 치유하기 때문에, 말과 행위로 또는 영적 은사로서 이름지을 수 있는 모든 덕을 온전히 지녔기에, 가톨릭이라 부른다.
예루살렘의 성 치릴로 총대주교 (313년-386년)《교리문답서》 영문역 중역
830 '가톨릭'이라는 말에는 '전체성' 또는 '온전성', '보편성'이라는 뜻이 있다. 교회는 다음 2가지 뜻에서 보편적(가톨릭)이다.

교회는 그 안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므로 보편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곳에 가톨릭 교회가 있다."[9] 교회 안에는 머리와 결합된 그리스도의 몸이 완전하게 존재한다.[10] 이는 교회가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구원의 완전하고 충만한 방법을" 그분에게서 받는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 방법들은 올바르고 완전한 신앙 고백, 온전한 성사 생활 그리고 사도적 계승을 통하여 서품된 직무 등이다. 본질적으로 교회는 성령 강림 날부터 보편된 것(가톨릭)이었으며, 그리스도 재림의 날까지 항상 보편될 것이다.

831 교회가 보편된 또 하나의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전 인류에게 파견하셨기 때문이다.[11]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을 이루도록 불린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이고 유일한 이 백성은 모든 세대를 통하여 온 세상에 퍼져 나가, 처음에 인간 본성을 하나로 만드시고 흩어진 당신 자녀들을 마침내 하나로 모으고자 하신 하느님 뜻의 계획을 성취해야 한다. 하느님의 백성을 돋보이게 꾸며 주는 이 보편성은 바로 주님의 선물이다. 이로써 가톨릭 교회는 온 인류가 그 모든 부요와 함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그분 성령의 일치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려고 힘껏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830~831항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를 믿나이다.
Et Unam, Sanctam, Catholicam, et Apostolicam Ecclesiam.[발음]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가톨릭'은 보편적(普遍的)이라는 뜻이다.[13] 즉 '가톨릭 교회'를 그 자체로 직역하면 보편된(보편적인) 교회/보편교회라고 해석할 수 있다. 어원은 그리스어 까톨리꼬스(καθολικός, katholikós) 및 라틴어 까토리꾸스(catholicus)를 차용한 프랑스어 까톨리크(catholique)이다. 즉 한국어 표기 '가톨릭'은 직접적으로는 프랑스어,[14] 어원적으론 그리스어 유래라 할 수 있다. #

여기서 말하는 '보편'은 모든 지역 교회들의 '합체'나 '여론의 총체'나 '세계' 등 산술적인 합계 개념이 아니다. 이는 '사람들'이 합체하여 '보편적인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사람'을 '사람'이게끔 하는 '사람의 보편적 요소'가 구체적인 '한 사람' 안에 있는 것과 같다. 곧, '교회들'이 합체하여 '보편교회'(가톨릭 교회)가 되는 게 아니라, '교회'를 '교회'이게끔 하는 '교회의 보편적 요소'(교회의 가톨릭적 요소)가 구체적인 '개별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 가톨릭 교회'라는 말이 모순 없이 쓰이는 것이다.[15] 곧, 전 세계의 모든 개별 가톨릭 교회들 각각 안에는, '교회'를 '교회'이게끔 하는 '가톨릭 교회'(보편교회)가 완전하게 존재하는 것이다.[16]

가톨릭 교회 이외의 교파들도 각자 자신이 보편적 교회임을 주장하고 있다. 개신교도 가톨릭(보편)주의를 주장하나,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17] 다만 일부 종파는 가톨릭 교회를 의식하여 가톨릭이라는 말 대신 유니버설(universal) 등 대체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2.2. 한글 표기 '가톨릭'과 '카톨릭'

외래어 표기법 규정을 그대로 따르자면 '카톨릭'이 맞지만, 1995년 제8차 정부언론외래어 심의공동위원회에서 전문 분야에서 쓰이는 관용을 존중하여, ‘가톨릭’을 대한민국 표준어로 확정하였고 문화체육관광부도 이를 존중하여 공식적인 표기로 사용하고 있다. 한국에서 ‘카톨릭’이라고 표기하거나 발음하더라도 의미 전달이 매끄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옛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자면 ‘카톨릭’이어서 과거 국어사전에는 카톨릭으로 실렸던 바도 있으나, 1995년 ‘가톨릭’이 표준어로 확정되면서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가톨릭’이 대표 표제어로 등재되어 있으니 이를 준수하는 것이 맞다. 관련 자료, 관련 글.

다음으로, 한국어의 ㄱ·ㅋ은 어두에 올 때 어차피 양쪽 다 큰 틀에서는 무성 연구개 파열음 /k/로 소리나며, 차이는 무성 무(약)기음 /k/냐 무성 유기음 /kʰ/냐에 있다. 하지만 교회 라틴어의 발음에서는 ㅋ 발음이 나는 것은 'Ch'밖에 없고, C로 시작하는 나머지 모든 단어는 'ㄱ' / 'ㄲ' / 'ㅊ' 발음밖에 나지 않는다.[출처]

개신교계에는 'C를 ㄱ으로 발음하는 이유는 한글 자모 순으로 배열시 개신교보다 먼저 오게 하기 위함'이라는 가짜뉴스가 돌아다닌다.#

2.3. '교회', '가톨릭 교회', '로마 가톨릭 교회' 등 여러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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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내부에서는 공식적으로 스스로를 그냥 교회라고만 부르며, 다른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구분하고 싶을 때는 가톨릭 교회라고 부른다. 사실 대부분의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보편적인(catholic)' 교회를 표방하고 있긴 하지만.[19]

로마를 중심으로 하기에 로마 가톨릭 교회(Roman Catholic Church, Ecclesia Catholica Romana)로 불리기도 한다. 이 역시 가톨릭과 더불어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사용되는 용례이기도 하다.[20] 그러나 로마 가톨릭이라는 말은 가톨릭 교회 전체를 뜻할 때도 있지만, 동방 가톨릭을 제외한 로마 예법의 교회를 일컫는 의미로도 쓰이기에, 이러한 차이에 유의해야 한다.# 가톨릭 교회 전체를 로마 가톨릭 교회라고 부르는 것을 틀렸다고 단정해서는 안 되지만, 자칫 동방 가톨릭 신자들에게 소외감이나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가톨릭 신자 스스로가 조심할 필요는 있다. 가톨릭 교회는 로마 예법 외의 동방 예법을 보존하는 23개 동방 가톨릭 교회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므로, 1.5%의 동방 가톨릭 교회를 포함한다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가톨릭 교회'라고 부르는 게 더 적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종교개혁 후 영국과 미국의 개신교에서는 가톨릭 교회의 보편성을 부정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로마교(Romanism)", "로마 교도(Romanists)", 혹은 "교황 추종자(Papist)"라고 비난 섞인 어조로 부르기도 하였으므로, 뉘앙스에 따라서는 '로마'에 대한 강조가 보편성과 대립되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로마 가톨릭 교회, 혹은 간단히 로마 교회라고 불리는 교회는 로마 교황을 으뜸으로 하는 전세계 교회를 일컫는 말로 시대에 따라 그 의미를 조금씩 달리해 왔다.

먼저 로마 교회라는 말은 로마 주교의 관할 아래 있는 지역교회라는 의미를 가진다. 로마에 교회가 세워진 것은 57년 이전으로 추정된다. 57~58년경 바울로가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당시 로마에는 그리스도교가 상당한 정도로 발전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으로 보아 바울로 이전에 로마에 그리스도교를 전도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사람이 바로 사도들의 우두머리인 베드로이다. 이러한 사실을 공식적으로 입증하는 문서는 <글레멘스의 제1서한>인데, 이 서한은 주교명단의 첫머리에 베드로의 이름을 적고 있다. 이때의 로마 교회란 ‘베드로에 의해 창설된 교회’ 혹은 ‘로마의 교회’라는 한정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로마 교회라는 말은 또 '동방교회에 대립되는 서방교회'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로마에 뿌리박은 그리스도교는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관용령 이후 급격한 발전을 보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많은 이단들이 속출하는 현상도 빚게 된다. 이때부터 로마 교회는 로마지방의 교회라는 의미와 함께 이단에 대한 정통교회라는 의미를 갖게 된다. 특히 동 · 서로마제국의 분열 후 격화된 교의논쟁으로 그리스도교는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로 분열되는데, 이때의 로마 교회라는 말은 동방교회에 대립된 교회로서의 의미를 갖게 된다.

마지막으로 로마 교회라는 말은 종교개혁 이후 분리된 프로테스탄트에 대해 보편적인 교회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로마 교회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다. 즉 로마 교회는 ① 그리스도, 교황, 주교, 사제로 이어지는 가시적 제도(可視的制度)로서의 교회다. ② 칠성사의 집행으로 생명을 얻고 유지하는 교회다. ③ 미사를 신앙생활의 중심으로 하는 교회다. ④ 성서와 성전에 동일한 권위를 부여하는 교회다. ⑤ 성지 순례와 수도생활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는 교회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 유럽 프로테스탄트에서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보편성을 부정하고 이를 로마 교황청 중심의 작은 교파로 인식하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들은 로마 교회를 로마교(Romanism)라고 경시하면서 가톨릭 신자들을 로마 교도(Romanists), 혹은 교황 추종자(Papists)라고 비난 섞인 어조로 부르기도 하였다.

보편적 교회로서 로마 교회는 교황청 아래 세계의 여러 교구를 둔 중앙집권적 조직을 갖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교회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천주교회, 가톨릭 교회, 로마 가톨릭 교회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사용되며 로마 교회라는 말은 별로 사용되지 않고 있다.
가톨릭 대사전, '로마교회' 문서

한편 정교회에서는 세계적 교회(Ecumenical Church)란 명칭을 자주 쓰는데 이는 가톨릭 교회(보편적 교회)와 비슷한 의미이다.[21] 둘 다 내부에서 스스로를 공식적으로 호칭할 때는 다른 수식어 없이 그냥 교회라고만 말하는 것도 동일하다. 예를 들어 '저희 죄를 헤아리지 말고 교회의 믿음을 보시어', '교회는 이것을 죄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등등. 따지고 보면 이것도 여타 잡다한 수식어 없이 교회라고만 칭해도 자신들을 완전히 나타낼 수 있다는 자부심의 표현이다.[22]

2.4. 한자 표기

한자문화권에서는 천주교, 천주교회라고도 불린다. 천주(天主)는 '하느님'을 한문으로 옮긴 것으로, 마테오 리치의 저서인 천주실의에서 유래되었다. 조금 더 고전적인 표현으로는 '성교회(聖敎會)'라는 표현도 있다.[23] 대한민국의 가톨릭 교회는 공식적으로 '천주교' 명칭을 병용하여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천주교 ○○교구'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가톨릭을 천주교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한국사에서는 천주교, 세계사에서는 가톨릭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또한 한국 가톨릭 교회 내에서도 천주교가톨릭이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병용한다. 이는 이 단어가 19세기 후반 개화기에 들어와 정착되었기 때문인데, 조선 후기 사람들이 catholic을 '가톨릭'으로 인식한 것이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당시 천주교 선교사(신부)들이 라틴어를 공부하고 이탈리아어나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등을 사용하였기 때문이다.[24] 이들은 처음 외래어를 한국어로 표기할 때 당연히 자신들의 언어를 기준으로 사용했다. 그래서 '카톨릭'이라는 말도 쓰였지만 한국 천주교의 공식 표기는 '가톨릭'이다.

천주교는 '로마 가톨릭'이라고 불러야 하고 '가톨릭'이라고 부르는 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어원을 따지고 보면, 천주교도 정교회(orthodox, 정통 교회)라 할 수 있고 모든 그리스도교 종파는 '여호와의 증인'이나 '하나님의 교회'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이름을 쓰는 여호와의 증인하나님의 교회가 존재하므로 그런 식으로 부르는 사람이 없으며, 사회적으로 가톨릭=천주교로 합의가 되어 있으므로 천주교를 가톨릭이라고 부르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다.[25]

조선시대에는 처음 받아들일 때 서양 학문의 일종으로서 들여왔기에 '서학(西學)', '천주학(天主學)', '천학(天學)'이라 불렀다.[26] 박해가 시작되면서 '사학(邪學)'으로 불리기도 했다.

한편 세계사 교육의 영향으로 개신교에 대응하여 '구교(舊敎)'라고도 불리나, 구(舊)의 어감과 신교를 승인하는 듯한 뉘앙스 때문에 천주교 내부에서는 지양되는 표현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보편교회를 지향하는 종교이다. 한편 이 '구교'는 종종 고의식파를 뜻하기도 하니 문맥과 주제를 잘 살펴야 한다.

3. 가톨릭 교회가 믿는 바에 관한 교리

3.1. 4대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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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회는 엄연히 하느님을 흠숭하는 교회이다. 따라서 가톨릭의 교리 가운데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네 가지 교리는 모두 하느님에 관한 것으로 다음과 같다.
1. 천주존재(天主存在): 하느님은 무(無)로부터 영원까지 언제나 항상 계시며,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완전하고 무한한 유일신이시다.
2.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느님은 오직 한 분이시지만 세 위(位)를 포함하여 계신다. 곧 성부, 성자, 성령이신데, 이 셋은 서로 높고 낮음도 없으시고 먼저와 나중의 구별도 없으시며, 그 자체로 온전한 한 분 하느님이시다.
3. 강생구속(降生救贖): 인류의 조상 아담하와가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범한 이후, 모든 사람은 그 원죄(原罪)로 인하여 천당에 들어갈 기회를 잃게 되었다. 그러나 성자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류의 모든 죄를 없애기 위하여 세상에 오시어 사람이 되시고, 마침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구속(救贖) 사업을 완성하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를 믿고 세례를 받으면 성자의 구속 공로로 천당에 들어가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4. 상선벌악(賞善罰惡): 사람이 죽으면 하느님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하느님은 선을 행한 사람에게는 으로 갚아주시지만, 악을 행한 사람에게는 을 내리신다.[27]
이 4대 교리는 복잡한 율법이 아니며, 정말 기본적인 가르침이다. 그리스도교와 전혀 관련 없는 일반인들도 대부분 이미 알고 있을 정도이다. 가톨릭을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교의 정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다른 그리스도교 교파에서도 대부분 통용되는 교리이다. 이 네 가지가 부분적으로라도 교리에 없다면 이단으로 취급된다. 심지어 아무리 심각한 이단조차도 3번과 4번을 부분적으로는 믿는다.

그래서 생명이 위독한 자가 대세[28]를 받는 등의 아무리 위급한 경우라도 이 4대 교리는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한다. 천주교 군종교구에서 주는 세례성사[29]에서도 4대 교리만큼은 반드시 주지시킨다.

한국 천주교에서는 4대 교리를 위와 같이 사자성어 형식으로 가르친다. 이는 한반도에 가톨릭이 처음 전파될 적에 가톨릭 교리를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해서 한자어로 번역한 것이 오늘날까지 내려왔기 때문이다.

3.2. 가톨릭 교회의 성경

가톨릭 교회가 성경에 관하여 취하는 입장은 아래와 같이 요약된다.
교회는 언제나 성경을 주님의 몸처럼 공경하여 왔다. 왜냐하면 교회는 특히 거룩한 전례를 거행하면서 그리스도의 몸의 식탁에서뿐만 아니라 하느님 말씀의 식탁에서도 끊임없이 생명의 빵을 취하고 신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늘 성경 말씀으로 양식과 힘을 얻는다. 왜냐하면 교회는 성경에서 인간의 말뿐 아니라,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성경 안에서 사랑으로 당신 자녀들과 만나시며 그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신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03~104항.
이러한 정신은 가톨릭 교회의 여러 중요한 전례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전례 중 제일 중요한 미사를 먼저 살펴보자. 미사를 구성하는 두 축은 말씀 전례성찬 전례이다. 말씀의 식탁[30]이라고도 하는 말씀 전례 중에는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과 『Ordo lectionum Missae』(미사 독서 목록)와 여러 규정이 정하는 바에 따라 성경을 읽는다. 그리스도의 몸의 식탁[31]이라고도 하는 성찬 전례 중에 바치는 여러 기도들은 알고 보면 성경에서 취한 것들이다.

시간 전례도 이러한 면모가 두드러진다. 저녁 기도와 아침 기도를 기준으로 보면, 시간 전례의 도입부나 초대송, 시편과 찬가, 성경 소구, 마리아/즈카르야의 노래, 주님의 기도 등이 모두 성경에 근원을 둔다. 사실상 찬미가와 응송을 제외하고는 모두 성경과 직접 연결된 셈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을 보기 위한 링크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 한국 천주교의 표준 성경인 『성경』 2005판에 관한 설명: 성경(한국천주교주교회의) 문서.
    • 이 한국어 성경 전체를 열람할 수 있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의 공식 홈페이지: 가톨릭 성경.
  • 가톨릭 라틴 예법의 표준 성경에 관한 설명: 불가타 문서.
    • 이 라틴어 성경 전체를 열람할 수 있는 바티칸 공식 홈페이지: Nova Vulgata
  • 여러 그리스도교의 성경에 관한 일반적인 내용: 성경 문서.
  •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에 관한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의 차이에 관한 설명: 이 문서의 개신교와의 차이 문단.

3.3. 하느님이 누구인지에 관한 가톨릭 교회의 신앙 고백

앞의 4대 교리 문단에서 가톨릭 교회는 하느님을 흠숭하는 교회라고 언급하였다. 그러면 '하느님은 누구이고 어떤 분이냐?'에 관한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하느님, 야훼, 천주, 성부, 성자(예수 그리스도), 성령이 각각 누구를 가리키는 말인지, 그리고 이들간의 관계는 어떤지도 관심사가 된다.

가톨릭 교회가 하느님을 누구라고 믿는지에 대한 신앙의 종합을 '신앙 고백'이라고 부른다.[32]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가톨릭 교회 역사를 통해 생겨난 여러 신경 중 '사도 신경'과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이 두 가지가 교회의 삶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33] 가톨릭 교회의 방대한 신앙 세계의 핵심이 신경에 녹아들어 있으므로, 신경의 표현 하나하나를 깊이 들여다보면 가톨릭 교회가 하느님을 누구라고 믿는지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을 보기 위한 링크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사도 신경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한 분이신 하느님을
저는 믿나이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늘과 땅과 유형무형한 만물의 창조주를 믿나이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또한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외아들
영원으로부터 성부에게서 나신 분을 믿나이다.
하느님에게서 나신 하느님, 빛에서 나신 빛
참하느님에게서 나신 참하느님으로서,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
성부와 한 본체로서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믿나이다.
성자께서는 저희 인간을 위하여, 저희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셨음을 믿나이다.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또한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음을 믿나이다.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저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수난하고 묻히셨으며
성서 말씀대로 사흗날에 부활하시어
하늘에 올라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심을 믿나이다.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그분께서는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영광 속에 다시 오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으리이다.
성령을 믿으며또한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믿나이다.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고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영광과 흠숭을 받으시며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나이다.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아멘.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를 믿나이다.
죄를 씻는 유일한 세례를 믿으며
죽은 이들의 부활과 내세의 삶을 기다리나이다.
아멘.

3.4. 성모 4대 교의

가톨릭 교회의 성모 마리아에 대한 4대 믿을 교리
{{{#!wiki style="color:#B2A45F; 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7BBFDE>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 <colcolor=#000000> 라틴어: Mater Dei, Dei Genetrix, Deipara
그리스어: Θεοτόκος(Theotokos)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 라틴어: Perpetua virginitas Mariae
그리스어: Αειπάρθενο(Aeiparthenos)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라틴어: Immaculata Conceptio
한자어: 무염시태(無染始胎)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마리아 라틴어: Assumptio Beatae Mariae Virginis
한자어: 몽소승천(蒙召昇天)
}}}}}}}}} ||

가톨릭은 이외에도 성모 마리아에 대하여 4대 교의를 정하여 믿을 교리로 가르친다. 여기서 '교의(敎義)'는 교회가 정한 믿을 교리를 뜻한다. 그러나 이는 성모 마리아께 대한 공경(恭敬)의 의미이지, 4대 교리처럼 하느님께 대한 흠숭(欽崇)의 의미가 절대 아니다. 숭배의 의미를 갖는 흠숭과, 존경의 의미를 갖는 공경의 차이를 명확히 구별해야 한다. 보통 예비신자 시절에 이걸 처음 배운다. 교황무류성을 통해 선포된 내용이므로 가톨릭 신자라면 반드시 믿어야 한다.
1. 천주모친: 예수 그리스도삼위일체의 제2위 성자 하느님이시므로, 그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하느님의 어머니이시다.
2. 평생동정: 성모 마리아예수 그리스도를 낳으시기 전과 후에 어떠한 아이도 낳지 않고 동정으로 사셨다.
3. 무염시태: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잉태되실 적부터 원죄가 없으셨다.
4. 몽소승천: 성모 마리아는 사망하실 적에[34]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하늘로 들어올림 받으셨다.[35] 성모 마리아는 원죄가 없으므로 공심판 때 일어날 육신의 부활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3.5.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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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신학적으로 가톨릭에 대해 알고 싶다면 호교론(護敎論)을 펼치는 책으로는 볼티모어의 대주교였던 제임스 기본스 추기경교부들의 신앙이나, 개신교 목사에서 가톨릭 신학자로 전향한 스코트 한의 저작들[36]이 추천된다. 좀 더 부드럽고 생활 신앙적 가르침을 원하면 스코트 한의 저작들을, 강한 호교적/교리적 가르침을 원하면 <교부들의 신앙>을 추천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깊은 교리 공부를 하려는 사람이라면 두 스타일 모두 깊이 음미해 보는 것이 더욱 좋다.

가톨릭에서 자부심을 느끼는 것 중 하나는 교부(敎父)[37]들의 탄탄한 철학적 토대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고전 저작 중에서는 <고백록>, <신국론> 등 철학자로도 유명한 성 아우구스티노의 저작들과 토마스 아 켐피스준주성범이 제일 많이 권해진다. 특히 <준주성범>은 개신교에서도 신앙 교재로 쓸 만큼 깊이 있는 고전 걸작.[38]

단 평신도 사도직, 교리교육 봉사직 이상에게 추천될 정도로 찐한 책들이 많으니 신앙생활이 익숙해진 다음 신부님/수녀님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가며 차근차근 읽는 것을 권한다. 물론 고전 중에서도 <신심 생활 입문>이나 <성녀 소화(小花) 데레사 자서전>처럼 새내기 신자에게도 추천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일드한 책들도 있다.

4. 가톨릭의 전례에 관한 교리

4.1. 전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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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모든 전례의 으뜸인 성체성사(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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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일곱 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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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시간 전례(성무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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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전례력과 전례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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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성체 현시와 강복 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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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가톨릭 신자들의 삶에 관한 교리

5.1. 가톨릭 신자의 6대 의무

가톨릭은 신자가 되는 것도 꽤 번거롭고(예비신자 교리 문서 참조.), 신자가 되어도 지켜야 할 것이 많은 종교다. 가톨릭 신자의 의무가 몇 가지 정해져 있는데 다음과 같다.
  • 2. 금육과 금식을 지켜야 한다. 금육은 매주 금요일이고, 단식은 재의 수요일주님 수난 성금요일에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데, 금육은 날개 달린 동물 또는 4발 달린 동물의 고기나 국물을 먹지 않는 것이고, 단식은 하루 1끼는 먹고, 1끼는 간단히 요기만 하고, 1끼는 완전히 굶는 것이다. 그리고 금육과 단식의 목적은 신자들을 괴롭히려는 게 아니라, 금요일에 십자가 처형으로 수난당하고 죽음당하신 그리스도의 고통에 동참하자는 의미, 그리고 육고기나 식사를 절제함으로 인해 아낀 돈을 가난한 자들을 위해 자선하는 뜻으로 행하는 것이다.
    • 2-1) 금육은 만 14세 이상부터 죽을 때까지, 단식은 만 18세부터 만 61세까지가 그 대상이며, 그 외에 환자, 허약체질, 육체노동자, 여행자, 수험생 등은 사전 관면을 받으면 걸러도 된다.[39] 하지만 사순 시기주님 수난 성금요일을 제외한 금요일의 금육은 1966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의무적인 것이 아닌, 신자들이 육고기음식을 금하는 전통적 금육이나 혹은 가족기도, 선행, 자선, 금연, 금주 등 다양한 희생으로 대체해서 지킬 수 있도록 완화했다.[40] 또한 금요일이 교회가 지정한 대축일과 겹치면 그날 금육 의무는 자동으로 면제된다. 대표적으로, 주님 부활 대축일 후의 8일간인 부활 팔일 축제 동안에는 금요일이더라도 금육이 자동 면제되며, 그 외에 연중 시기에도 간혹 금요일이 대축일과 겹쳐 금육 의무가 없는 날이 있다. 인터넷에서 가톨릭 전례력을 검색하거나 성당 달력 등을 확인하여, 금요일에 작은 글씨로 '금육'이라는 글자가 없는 날은 금육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 2-2) 그리고 금육을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고통을 기억하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값비싼 고기를 먹지 않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따라서 금육일이라고 비싼 회를 먹는 행동은 취지에 다소 어긋나는 것이다.[41] 금육이라는 형식에 치우치지 말고 그 의미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 2-3) 전국의 가톨릭계 대학 학생식당 및 가톨릭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와 유치원 급식까지, 금요일 메뉴에서 육고기를 보는 건 쉽지 않다. 이때는 생선이나 오징어 등 다른 단백질원이 제공되곤 한다.
    • 2-4) 단, 위에서도 서술했고, 신자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사실인데, 사실 가톨릭 교회에서는 1966년에 금육 규정을 완화한 뒤에도 사순 시기의 첫날인 재의 수요일, 사순 시기의 모든 금요일, 그리고 주님 수난 성금요일에는 단식과 금육 규정을 완화하지 않았다. 따라서 교구장 주교(또는 교구장 서리)나 수도회 장상의 공식적인 관면이나 별도 사목적 지시사항이 없다면, 사순 시기의 금요일에는 고기음식을 피하는 방식의 전통적 금육을 지켜야 하고, 재의 수요일과 주님 수난 성금요일엔 가톨릭 신자들은 단식과 금육을 같이 종일토록 지켜야 한다. 단식의 방법에 대해서는 상술한 방법 참조. 또한 많은 신자들이 간과하는 사실이지만, 금육재와 단식재 역시도 교회법이 정한 중한 계명이므로, 이를 지키지 않았을 시 (관면도 안 받고 대체 행위도 안 했다면) 성사와 영성체 전에 고해성사를 꼭 해야 한다. 다만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는 어쩔 수 없는 사정[42]으로 인해 금육을 지키지 못할 경우는 죄가 되지 않는다고 언급한 바 있다. 때문에 지킬 수 있는 경우는 최대한 금육/단식을 하고, 그러지 못할 경우에는 주일 등을 이용해 본당신부님께 말씀드려서 관면허락을 받거나 육식에 상응하는 다른 희생적 행위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3. 교회법에 의해 1년에 1번 이상 고해성사를 보도록 하는데, 한국 가톨릭에서는 1년에 1~2회 의무적으로 고해성사를 보도록[43] 하고 있고, 이때 신자 수를 집계하여 서류상 신자인 사람들은 따로 냉담자로 분류해서 신자 수에 집계하지 않는다. 신자들은 판공성사를 본 뒤 성사표[44]를 내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쩌다 신앙심도 깊고 성당도 매주 꼬박꼬박 나가는 사람이 판공성사를 못 봐서 냉담자로 처리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도 한다. 다만 판공성사를 3년 이상 거른 신자를 냉담자로 분류하여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에서 발표하는 신자 통계에서 제외시킨다는 주장은 약간의 오류가 있으며, 상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
    • 3-1) 한국천주교주교회의 2014년 춘계 정기총회에서 승인된‘주일 미사고해성사에 대한 한국 천주교회 공동 사목 방안’은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 제90조 2항 “부활 판공성사를 부득이한 사정으로 위의 시기에 받지 못한 신자는 성탄 판공 때나 다른 때에라도 받아야 한다.”라는 규정에 대한 적극적 해석을 통해‘부활 판공성사를 받지 못한 신자는 성탄 판공이나 1년 중 어느 때라도 고해성사를 받았다면 판공성사를 받은 것으로 인정하기로 하였다.’ 물론 이런 경우에는 따로 성사표를 받아서 고해성사 하고 고해실 안에 있는 별도의 바구니[45]에 성사표를 제출해야 한다.
  • 5. 교무금을 내는 것도 신자의 의무이자 양심이다. 천주교회에서 도움을 받는, 다시 말해 찢어지게 가난한 경우가 아닌 이상 수입의 1/60에서 1/10까지 자발적으로 액수를 정해서 무조건 내야 한다. 수입에서 정해진 액수도 없다. 그냥 본인이 내는 대로 내면 된다. 1,000원을 내더라도 좋은 마음으로 내는 것을 더 선호한다. 이를 위해 대다수 성당 사무실에는 통장 리딩기와 결제장비들이 갖추어져 있다.[47]
  • 6. 가톨릭 교회의 혼인 교리를 존중하며, 혼인법을 잘 지켜야 한다.(혼인성사 참조.)

이것이 가톨릭 신자가 지켜야 할 가장 큰 6대 의무이며, 이 외에도 전교하는 것 등 많은 의무가 교회법 및 각종 교리서에 깨알같이 적혀 있다. 특히 이들 중 대죄(어기면 반드시 고해성사 봐야 될 죄)를 짓지 말아야 할 의무도 기본적으로 모든 신자들에게 있다. 대죄 문서 참고.

종교 중에서는 신자 관리가 대단히 명확한 편이다. 인구조사에서 집계되는 신자 수가 자체적으로 조사하여 발표하는 신자 수보다 많은 유일한 종교. 이는 매년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판공성사를 받지 않는 영세자를 종교활동을 하지 않는 냉담자로 간주하여 신자 집계에서 제외하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기업체의 ERP시스템에 비견되는 통합된 전산 시스템인 양업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이를 바탕으로 냉담자 처리를 확실하게 한다.

한국 천주교는 1년에 두 차례(사순 시기대림 시기) 실시하는 판공성사를 3년 동안 하지 않거나 성사표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를 쉬는 교우(냉담자)로 분류하여 교적을 본당에서 교구청으로 이관하고, 판공성사표를 발급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적은 교구청에 보관하며, 당연히 신자 통계에 포함시킨다.

정부에서 발표하는 신자 수가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가 발표하는 교세 통계상의 신자 수보다 더 많은 주된 원인으로 다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신랑과 신부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비신자라면 일정한 조건 하에 관면혼을 통해 가정을 이룰 수 있다. 그 비신자가 혼인 후에 여전히 세례성사를 받지 않았더라도, 신자인 배우자와 자녀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고 자신도 천주교에 대해 딱히 거부감이 없다면, 정부에서 실시하는 인구조사에서 "우리 집은 천주교 믿어요."라고 응답할 수 있다. 그러면 교적에는 없는 사람이 정부 통계에는 신자로 잡힌다.

둘째, 한국 천주교에서는 유아세례를 받은 아기들이 10살 안팎쯤 되면 교리를 배워 첫영성체를 함으로써 비로소 천주교 교적이 생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신자 가정에서는 앞의 첫 사례에서와 마찬가지로 정부가 실시하는 조사에서 교적 여부에 관계없이 신자로 응답한다.

그러나 2010년대 중반부터는 각종 통계상의 신자 수가 천주교의 자체 집계 신자 수보다 많은 현상은 인식의 변화로 점차 역전되는 추세이다.

5.2. 7대 죄악과 7대 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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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성윤리와 생명윤리에 관한 강한 보수성

금욕배란주기관찰법을 제외[48]하고, 콘돔, 루프, 정관수술, 체외사정, 경구피임약모든 형태의 인위적인 피임낙태, 그리고 시험관 아기를 비롯한 인공수정을 교회의 가르침으로 강하게 금지[49]하고 있다.

비유적으로 설명하면, 꼬마 아이가 가스불이 켜진 주방에 간다면 부모는 "가지마!"라고 경고한다. 이는 아이에게 주방으로 가는 자유를 뺏으려고 하는 행위가 아닌, 아이가 해를 입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마찬가지로, 낙태를 죄로 여기는 것은 인간을 규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낙태로 인해 생명을 경시하는 더 큰 죄와 악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함으로 설명한다. 그렇기에 가톨릭에서 낙태는 당사자뿐 아니라 낙태를 주선한 이 역시 죄를 짓는 것이다. # #

그런 이유로 낙태의 부분 허용을 명시하고 있는 모자보건법 제 14조[50]전면 폐지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낙태 반대에 대한 가톨릭의 교리를 보다 세부적으로 자세히 파악하고 싶다면 낙태 문서의 '종교적 관점' 문단을 참조할 것.

낙태죄 폐지 후에는 반대의 의미의 범위가 넓어졌다.

체외사정의 경우 그리스도교에서 인공 피임 금지의 근거가 되는 성경 구절인 창세기 38장 1-10절에서 문제가 된 행위가 바로 질외사정이었다(이것은 다른 종파들의 경우, 해석이 다른 경우가 있다). 배란촉진제 사용에 대해서도 교육할 때 겁을 준다. 교회법에서 살인, 유괴와 함께 교회와 직접 관련이 없는 행위에 대해 처벌 조항이 있는 드문 케이스.

그 중 낙태죄의 형벌이 가장 강하며, 일반적인 낙태와 사후피임약[51], 질내 피임 기구 등을 이용한 피임을 전부 포함한다. 낙태죄를 범한 게 확실한 사람은 자동 파문된다. 또 낙태에 협력한 사람도 똑같은 죄를 범한 것이 되어 마찬가지로 자동 파문된다. 원칙적으로 이 죄에 대한 사면권은 교황주교에게 있는데, 일반적으로 주교나 교황을 찾아가 고해를 청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이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낙태 여성들이 보다 쉽게 고해성사를 볼 수 있도록 배려하고자 자비의 희년을 시작하면서 낙태에 대한 사면권을 크게 확대했다. 즉 모든 사제에게 사면권을 준 것이다. 자비의 희년 1년 동안 적용되는 한시적인 조치였으나 무기한으로 바뀌어 회칙이 선포되었다.

그러나 한국 가톨릭에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왜냐하면 서구와는 달리 여전히 가톨릭 교세가 강하지 않은 선교권 국가에 머물러 있는 한국에서는 주교들의 사면 권한은 이미 신부들에게 위임돼 있기 때문이다. 성품성사 문서 참조. 그래서 한국 천주교에서는 신부들이 예전부터 고해성사를 통해 낙태죄를 용서해 왔다.

교황의 이러한 결정은 가톨릭 교회가 낙태를 받아들이거나 방조한다는 것은 아니다. 죄는 단죄하지만 죄를 뉘우치며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고해성사를 통해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넓히겠다는 것이다. 낙태는 여전히 대죄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낙태는 비극이며 분명히 잘못된 행위"라고 했다. 다만 교회는 심판하고 단죄하는 교회가 아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처지에서 낙태를 선택하거나 강요당한 여성들, 깊이 깨닫지 못하고 낙태에 협조한 사람들, 낙태로 인한 죄의식 때문에 신앙으로부터 멀어져 간 사람들에게 이제 교회의 품으로 돌아오라는 초대를 하려는 것이다.

간혹 금욕도 강요한다고 잘못 아는 경우가 있으나, 사실 날짜계산법 자체가 가임기를 피하기 위한 1달에 약 10일 정도의 주기적인 금욕이다. 날짜계산법을 인정하는데 금욕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건 모순된다. 가톨릭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은 평생 금욕하며 살아간다. 평신도들도 본인이 원한다면 평생 금욕을 지키며 살아갈 수도 있다.

또한, 배아줄기세포의 연구도 매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하느님이 주신 하나의 생명체인 배아를 연구를 위해 파괴하는 것을 살인 행위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인공수정 문제에 관해서도 마찬가지.

사형에 대해서는 프란치스코 교황 전에는 조건부로 찬성했으나 프란치스코 교황 때 교리서를 개정하여 사형 자체를 반대한다. # 이는 사형 선고를 받은 인간의 불가침성과 존엄성에 대한 공격이므로 사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바티칸 시국은 교황령 시점인 1870년에 사형 집행을 한 후 더 이상 사형 집행이 없었다가 1969년에 완전히 폐지했다.

현재 가톨릭에서는 성관계를 하느님께서 남녀 일부일처 부부 사랑의 표현과 자녀 출산을 위해 주신 성스러운 행위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이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모든 성행위, 또는 생명 연구를 위한 생명의 파괴를 반대하고 있다. 자위행위, 부부관계를 벗어난 혼전 성관계 및 혼외 성관계(간통 등), 동성 간 성행위, 동성결혼에 대한 반대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마지막으로 첨언을 하자면, 피임에 관한 신학적 견해는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 사이에서 꽤나 갈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시 교황 바오로 6세가 "인간 생명" 회칙을 발표하며 모든 인공 피임 수단이 비윤리적이라고 선언하자마자 독일 주교들은 이에 반발하며 "쾨니히스타인 선언"을 발표하며 피임법을 쓸 것인가 말 것인가를 평신도들 개인의 양심에 맡기자고 주장했을 정도. 물론, 교계 제도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포함해 여전히 이 제도를 지지하고 있다.[52] 사실 이 논쟁은, 그저 성에 관한 논란이 아닌 "교회의 권위"에 관한 논쟁으로 대두되었을 만큼 매우 중요하다. 이에 관심이 있다면 하단의 링크에 첨부한, 상반된 의견의 두 칼럼을 참고해 보기를 추천한다.

# #

6. 가톨릭 신자의 기도에 관한 교리

6.1. 주님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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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성모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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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특징

파일:가톨릭1.jpg
네 모퉁이의 글귀는 각각 가톨릭 교회의 4대 속성인 하나인 교회, 거룩한 교회, 보편된 교회,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를 의미한다.
파일:external/www.institute-christ-king.org/eucharist_hand.jpg 파일:external/grandmageri422.files.wordpress.com/catholic-3.jpg
성경묵주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62790e05dbc5e8d857e6a80aca5b1399.jpg
성체 초대 교황 사도 성 베드로

7.1. 베드로좌를 중심으로 한 일치

두 명의 사도 베드로바오로가 로마에 설립하고 조직한 교회 (...) 가 지닌 수위권 때문에, 모든 교회가 이 교회에 동의해야 하는 것은 불가피한 문제다.
복된 사도들은 설립하고 건설한 그 교회를 리노의 주교 직무에 넘겨 (...) 지금은 엘레우테리오가 사도들로부터 제 12대로서 주교직의 상속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질서 안에서, 이러한 계승으로 말미암아, 사도들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의 전통과 진리의 설교가 우리에게 내려져 온다.
리옹의 성 이레네오 주교 순교자 (130년-202년), 《이단 논박(Adversus Haereses)》
누구든지 위의 사실들을 검토·조사해 보려 하면, 길게 논란할 필요가 없습니다. 신앙은 다음의 진리의 요약을 통해 쉽게 증명되며, 확신에 이를 수가 있습니다. 주께서 베드로에게,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감히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5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부활 후에 그에게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54]고 하셨습니다. 이렇듯이 주님은 그분(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셨고 그에게 양들을 맡기셨습니다.
모든 사도에게 동등한 권한을 주셨지만, 하나의 교좌를 세우셨으며, 당신 권위로 일치의 기원과 이치를 제정하셨습니다. 베드로 역시 다른 사도들과 같은 사도였지만 베드로에겐 수위권이 주어졌는데, 이것은 하나의 교회, 하나의 교좌가 드러나기 위함입니다. 사도가 모두 목자이지만 한마음으로 사목하기 위해 그 양떼는 하나입니다.
베드로를 향한 이 일치를 견지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신앙을 보존하고 있다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교회가 베드로의 교좌 위에 세워져 있는데, 그 교좌로부터 떠나 있는 자가 어떻게 교회 안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주교들의 일치는 베드로의 교좌이자 으뜸 교회(인 로마 교회)에서 나온다.
카르타고의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210년-258년), 《가톨릭 교회 일치(Incilit de Ecclesiae Catholicae Unitate)》[55], 《서간(Epistula)》
이 신경은 사도들의 으뜸인 베드로의 사도좌가 있고 그곳에서 공적인 결정을 내렸던 로마 교회가 간직하고 있는 신경이다.
밀라노의 성 암브로시오 주교 (339년-397년), 《신경 해설(Explanatio Symboli)》
실로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어 우리에게 내려오신 때부터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교회는 여기(로마)에 있는 큰 교회가, 구세주께서 약속하신 대로 지옥의 문이 결코 그를 이길 수 없는 유일한 기초라고 믿어 왔으며 지금도 믿고 있다.
크리소폴리스의 성 막시모 수도원장 증거자 (580년-662년), 《신학과 철학 소고(Opuscula Theologica Etpolemica)》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거룩한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하신 주님의 말씀, 곧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다."[56]"너희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물리치는 사람이다."[57]라는 말씀이, 그들의 뒤를 이어 그들을 따라, 가톨릭 교회의 교황들과 최고 사목자들이 된 모든 이에게 하신 말씀이라고 믿으며, 우리는 이 세상의 어떤 권력들도 총대주교좌를 다스리는 이들에게서 어떤 것도 절대로 불명예스럽게 하거나 그들의 주교좌에서 어떤 것도 제거하려고 할 수 없으며, 오히려 옛 로마의 교황 성하와 그다음 콘스탄티노폴리스(새 로마Nova Roma)의 총대주교, 그다음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그리고 예루살렘의 총대주교들이 모든 영예와 존경을 받기에 합당하다고 판단할 것을 결정한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옛 로마의 교황 성하를 거슬러, (…) 사도들의 으뜸인 베드로좌에 반대하여 글로써 또는 글을 쓰지 않고 어떤 모욕을 야기시키는 그런 자만심과 대담함을 행사한다면, 그는 저들과 동등하고 같은 단죄를 받을 것이다.
만일 세속의 권력을 향유하거나 차지하면서 이미 언급한 사도좌의 교황이나 다른 총대주교들 중 어느 누구를 내쫓으려 시도한다면 그는 파문될 것이다. 더 나아가, 만일 보편 공의회가 소집되어 로마인들의 거룩한 교회에 대해 어떤 의심이나 논쟁이 생겼다면,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마땅한 경의를 가지고 제기된 문제에 대하여 알아보고, 도움을 받든지 도움을 주든지 해결책을 받아들이는 것이 마땅하지만, 결코 옛 로마의 교황들을 거슬러 감히 판결을 내려서는 안 된다.
제4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교령 21조 (869년-870년)
에우제니우스, 주교, 하느님의 종들의 종, 영원한 기록을 위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자 로마인들의 빛나는 황제 요안네스 팔레올로구스의 동의와, 우리의 공경하올 형제들인 총대주교들과 동방 교회의 다른 대리인들의 동의로, 후술할 내용에 대해.(…)
거룩한 사도좌와 로마 주교는 온 세계에 대한 수위권을 보유한다. 로마 주교는 거룩한 사도들의 우두머리 베드로의 후계자, 그리스도의 참된 대리자, 전체교회의 수장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의 아버지요 스승이다. 로마 주교에게는 거룩한 베드로 안에서 전체교회를 양육하고 이끌고 지배하는 충만한 권력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주어져 있는바, 이 사실은 보편 공의회들의 문서들과 거룩한 법령들 안에도 나타나 있다.
더 나아가 우리는 나머지 총대주교들의 교회법적 서열을 갱신하는 바이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가 로마 주교 다음의 둘째 지위를 보유하며, 셋째는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넷째는 안티오키아 총대주교, 다섯째는 예루살렘 총대주교다. 이들의 모든 특권들과 권한들은 그대로 보존한다.
피렌체 공의회 SESSION 6 (1439년), 연합교령 《하늘들아, 기뻐 용약하라(Laetentur Caeli)》

예수12사도 중 하나인 베드로의 후계자라고 여겨지는 교황(敎皇)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 교황은 레오 14세이다. 초기 교회 시대의 교부들은 로마에 근거한 베드로좌와의 친교가 사도들로부터 이어져 온 정통 교회인지 이단인지를 구분하는 강력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한 해설과 이해가 필요하다. 일단 세간의 오해와는 달리, 가톨릭은 초대교회로부터 내려온 "베드로좌(교황청)와의 친교(일치) 포기는 정통신앙 이탈" 원칙을 지금까지 바꾸거나 포기하지 않고 유지하고 있다.[58] 다만 세부적인 정의나 적용은 조금 달라졌는데, 우선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처럼 성사와 사도전승 전통, 신품성사를 통한 변함없는 사도로부터 이어진 성직 체계(주교-사제-부제)를 유지는 하는데, 가톨릭 교황청과의 친교, 일치는 끊어진 유형을 이교(離敎, Schism)라고 한다.[59] 반면 대다수 개신교 종파나 16세기에 사도전승 신품성사 예식이 끊어진 성공회이단(異端, Heresy)으로 규정한다.[60]

이교와 이단의 차이점은 이교는 가톨릭은 아니나 초대교회의 직계이며, 가톨릭과의 기본 믿을 교리(성사 교리 포함) 역시 동일하되 교회의 최고 권위(교황)에 불복하는 상태이고, 이단은 가톨릭에서 필수적으로 여기는 믿을 교리를(하나라도) 고의적으로 부정하여 교회 자체로 인정받지도 못하는 교회 밖의 신자 공동체라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개신교는 성체성사나 성사 교리, 성모마리아에 대한 교리 등을 부정하므로 이단의 정의에 확실히 맞는다. 이교 종파나 이단 종파나 모두 고의적으로 이런 상태를 선택하거나 교리지식이 충분해져 가톨릭의 진리를 알게 되었으면서도 타 교파에 남아있다면 고의로 죄를 짓는 그리스도인이 되며, 원칙적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본다. 이 원칙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무관하게 현재까지 동일하다.

일단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에도 가톨릭 교리는 불가항력적으로(자기의 탓 없이 비고의적으로, 무지 등에 의해서) 가톨릭을 모르는 사람이 선하게 살 경우의 구원 가능성을 인정하였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를 직접 선언하여 교도권 차원에서 공식 인정한 데다, 타종파를 대하는 태도나 사목 방침도 온건해졌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같은 삼위일체 하느님을 섬기고 있는 개신교인들에게 '너희는 이단 종파이니 구원받을 수 없다'고 직접적으로 말하고 다니는 가톨릭 교도들은 많지 않다. 정교회의 경우에는 가톨릭에서 성사를 받기 힘들 때만 서로 성체성사까지 교류하고 있는 상황에, 같은 초대교회의 직계로 인정하는 종파라서 대외적으로 개신교보다도 더 온건한 편. 다만 성체성사의 유효성을 공유(비상상황에서의 상호 성사교류)한다는 사실이 교리적으로 해당 비가톨릭 교파의 교인이 구원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로부터 훨씬 전에도 오리엔트 정교회나 네스토리우스파처럼 성체성사나 성사의 유효성을 공유하는 교파들은 많았고 그때도 지금도 가톨릭은 해당 교파들의 성체와 성사가 유효하게 축성됨을 인정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해당 교파의 성체 축성의 (교회법상) '합법성'은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그들은 가톨릭을 알면서도 자기 탓으로, 고의로 거부하면 구원받지 못한다.

20세기 중반부터 가속화된 교회 일치 운동의 영향 때문에 "엥? 가톨릭이 정교회나 개신교 다 인정한 거 아니었어?" 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은데, 같은 삼위일체에 대한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교 종파로서 인정하는 것, 그리고 종교간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이들의 이교적/이단적 상태를 (원론적인 측면에서) 철회하려는 건 아니다.

일단 현재 가톨릭은 정교회에 과거 행해진 파문을 철회하였고(그러나 파문 철회가 정교회의 이교 상태를 해제하는 건 아니다) 오리엔트 정교회개신교와도 공격적인 단죄를 그만두고 끊임없는 화해와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단, 교황공석주의나 교황청을 무시한 불법적 주교 서품처럼 가톨릭 교회 내부에서 로마성좌와의 화해나 친교를 거부하는 집단은 여전히 파문으로 단죄한다. 다만 이점에서 논란이 상당한 성 비오 10세회와 중국 천주교 애국회는 2018~2019년 기준으로는 파문당한 공동체까지는 아니고 일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공동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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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그리스도교 계열의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연맹왕국인 정교회군웅할거개신교와는 달리 가톨릭은 철저하게 교황청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는 가톨릭에서 특정 교구나 성당이 비대해지거나 몰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중앙에서 일괄적으로 전체 통제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톨릭은 일부 트리엔트 전례를 따르는 지역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교구에서 똑같은 교리와 똑같은 방식의 전례(성사, 시간 전례 등)를 진행한다. 대부분의 성당이 동일한 전례를 가지므로 집에서 가장 가까운 성당에 가기 어려울 때는 다른 성당에 가더라도 같은 내용의 전례에 참여할 수 있다.

가톨릭 교회 개별본당의 재정원천은 매주의 봉헌헌금(개신교의 연보돈)과 교무금(대개 1달의 1일치, 삼심일조<三什一租>를 권유한다)이다. 교회방침은 각 본당의 예산중 일정비율(7~10% 정도)을 본당의 이웃돕기, 사회복지에 사용토록 권유하고 있다. 그리고 교구 운영을 위해 본당 총재원의 일정비율을 교구납입금으로 보낸다. 신자가 많은 성당에서는 교구에 납입할 수 있지만 적은 경우 도리어 자기의 교구청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교황청의 활동, 자선사업에 사용할 경비를 위해 매년 교황주일(성베드로 대축일 6/29에 가까운 주일)에 2차헌금(베드로헌금, Peter’s pence)을 하고, 이를 교황청에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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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의 Clero Secular는 지역 교구 계열이고, Clero Regular는 수도회 계열이다.

성직자는 주교품 > 사제품 > 부제품 순으로 품계가 나뉘어 있다. 주교품, 사제품, 부제품에 서품된 성직자를 각각 주교, 신부, 부제라고 부른다. 교황이나 추기경, 대주교 등은 품계는 주교이되, 부여받은 직책[61]에 따라 불리는 이름이다. 예를 들어 회사의 경우 부장, 차장, 과장등은 직급이지만 노조위원장, 체육부장, 민방위대장등은 직책인 것과 마찬가지다. 교황이라는 직책과 추기경이라는 직책은 모두 주교품에 해당하며, 앞서 설명했듯이 주교품에 해당하는 성직자는 모두 주교라고 부를 수 있으므로, 교황과 추기경도 주교라고 부를 수 있다. 실제로 교황의 다른 명칭으로 "로마의 주교 (Episcopus Romanus)" "로마 관구의 관구장 대주교 (Archiepiscopus et metropolitanus provinciae ecclesiasticae Romanae)" 등이 있다. 사제 안에서도 각 본당의 주임신부와 보좌신부들(교구사제), 수도회의 수도사제[62]들이 있다.[63] 또한 성직자들과는 완전히 별개로[64] 수도자들 역시도 계급이 있다. 수도자는 각 수도회장상에게 순명할 의무가 있다. 또한 평신도들은 성직자의 교도권에 대해 무조건 절대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다.[65]

게다가 가톨릭은 여타의 종교에 비해 보고 체계가 매우 잘 발달되어 있으며, 그래서 사건이 발생하면 일반 신부에서부터 교황에게까지 순차적으로 보고가 들어간다. 그러면 사소한 사항은 주교 선에서 해결하고, 중대한 사항은 교황이 판단한다.

심지어 교구 신부들의 경우, 흡사 군대에서 장교들을 뺑뺑이 돌리듯 한쪽 성당에 눌러앉지 못하게 주기적으로 다른 성당에 발령난다. 왜냐하면 한 성당에서 신부가 오래 눌러 앉으면, 해당 본당의 평신도들과 결탁해서 횡령 등의 영 좋지 못한 범죄를 저지를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가톨릭은 사제를 출신 연고지 본당으로 발령보내지 않는다. 그래서 서품된 뒤에 첫 미사만 출신 연고지 본당에서 집전하고 다른 동네를 떠돌게 된다.[66]

성경 스터디도 교구나 본당의 관리를 받아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가톨릭 신자가 교구나 본당의 인준, 관리를 받지 않은 개인 성경 스터디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가톨릭 교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이것을 모르는 일부 신자들이 모 사이비 종교의 성경 스터디에 가입해서 해당 사이비 종교에 빠지게 되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단이나 사이비가 아닌 정상적인 개신교에서 개설한 성경 스터디에 참여하는 것도 원칙적으로는 안 된다.

성경 번역본에 대해서는 전례용은 반드시 교회가 전례용으로 승인한 것만을 사용하며, 신자 개개인의 통독용 성경도 가톨릭 교회의 검열을 통과한(imprimatur) 번역본만 보는 것이 권장되어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후의 가톨릭 교회는 신자들이 개신교 성경을 개인 차원에서 보는 것을 막지는 않으나[67] 주위에서는 가톨릭용 내지는 교회의 검열을 통과한 공동번역(에큐메니컬) 번역본을 보라고 적극 권면할 것이다.

교회법을 봐도 가톨릭의 중앙집권적인 면모가 드러난다. 주교제 교파인 정교회성공회만 해도 각 지역 관구별(총대주교구)로 독자적인 교회법을 제정, 개정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대한성공회 교회법은 영국 성공회 교회법과 별개로 존재한다. 반면에 가톨릭에서는 교회법의 제정, 개정 권한은 오로지 교황청(바티칸)에만 있다. 각 지역 가톨릭 관구들은 독자적인 교회법을 제정할 수 없으며 단지 그 지역에 맞는 지침이나 세칙만 만들 수 있다. 단, 교회법에 대한 지역 보충 규정은 만들 수 있는데 이것도 교황청의 인준이 필요하다. 이는 전례 개정 문제도 마찬가지인데, 가톨릭에서는 한국어 미사 통상문 표현 하나 수정하는 것도 교황청의 인준이 필요하다. 교회 차원의 교과서라 할 수 있는 교리서도 교황청 차원에서 직접 편찬한 표준 교리서가 있다. 개신교 같으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

교파가 갈리는 개신교[68]에 비해 시간적으로도 공간상으로도 수직구조와 질서, 종횡의 짜임이 매우 치밀하다. 그만큼 덩치가 커지는 바람에 보수적인 종교가 되었다는 평도 있지만, 단일 조직으로서는 매우 철저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계서제를 통해서 하부 조직에 대해 상당한 통제력을 보이지만 이것도 완벽하진 못한 듯, 천주교 광주대교구에서 집단 파문사태까지 이를 만한 일이 하나 생겼다. 물론 모든 종교든 사람이 하는 일인 만큼 단점과 추태가 나타나기 마련인 법이며, 수십~수백 개 교파/교단의 통제가 아예 안 되는 개신교에 비해 아주 잘 관리된다고 할 수 있다. 개신교도 성공회와 같이 일부 체계가 잘 잡혀있는 교파/교단은 제외되지만 그것도 '교파/교단 내'에서의 통제라는 한계는 어쩔 수 없다.

이러한 중앙집권제는 교회 조직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전례에서도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목사의 성향에 따라 예배가 크게 달라지는 개신교와는 큰 차이점이다. 예를 들어, 전 세계 가톨릭 성당 중 라틴 예법을 따르는 곳에서의 그날의 전례는 모두 하나의 질서에 의해 돌아간다. 미사의 고유 기도문은 『Missale Romanum』에서 뽑은 기도문의 라틴어 혹은 모국어를 쓰고, 미사 중에 봉독하는 성경은 『Ordo Lectionum Missae』(『미사 독서 목록』, 미사 독서 문서 참고.)가 규정하는 바에 따라 선택된다. 비록 그 결과로 사용되는 기도문이나 성경의 몇 장 몇 절이 다 똑같다는 뜻은 아니며(미사 문서의 그날 미사의 고유 기도와 말씀이 전 세계가 모두 같은가? 문단 참고.), 트리엔트 미사나 동방 가톨릭 교회와 같은 다른 전례에서는 다른 방식을 쓰도록 허용하지만, 이러한 다름 또한 사도좌가 규정한 질서 안에서 운영된다.

이것은 중세 시절 정해진 미사 양식에 따른 것으로, 초기 카타콤에 숨어서 미사를 드리던 시절에도 신부들끼리 매일의 성경 구절을 짜맞추어 날짜에 맞게 미사를 봉헌했다고 한다. 교황청 경신성사성에서 1969년에 반포하고 1981년에 개정한 독서 목록 『Ordo Lectionum Missae』이 생각보다 잘 짜여졌기 때문에 주일 미사에 3년 동안, 그리고 평일 미사에 2년 동안 빠지지 않고 참여하면 주요 성경 구절을 모두 통독할 수 있다. 이 독서 목록이 나오자 개신교에서 참고하여 성서정과라고 부르는 비슷한 목록을 만들기도 했다. 여기에 시간 전례까지 1년 동안 하면 거의 완벽하다. 이렇게 1970년대부터의 가톨릭은 공식적인 전례에서 가장 성경을 많이 읽는 종파라고 할 수 있다.

7.2. 다양한 예법, 하나의 교회

3. 동서의 이러한 개별 교회들은 비록 예법이 다를지라도, 이를테면 전례와 교회 규범과 영적 유산이 어느 정도 서로 다르다 하더라도, 똑같이 교황의 사목적 통치에 맡겨져 있다. 교황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보편 교회에 대한 수위권을 지닌 복된 베드로를 계승하였다. 개별 교회들은 동등한 품위를 지니므로, 어떠한 교회도 그 예법 때문에 다른 교회보다 앞설 수 없고, 같은 권리를 누리고 같은 의무를 지니며, 교황의 지도 아래 온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여야(마르 16,15 참조) 할 같은 의무를 지닌다.
9. 교회의 오랜 전통에 따라, 동방 교회의 총대주교들은 특별한 명예를 지니며 아버지와 수장으로서 자기 총대교구를 다스린다. 그러므로 이 거룩한 공의회는 각 교회의 옛 전통과 세계 공의회들의 교령에 따라, 총대주교들의 권리와 특전을 회복시키기로 결정하였다.
현대 상황에 어느 정도 적응되어야 하겠지만, 이 권리와 특전은 동서의 교회가 일치되어 있던 때에 널리 누렸던 것이다.
총대주교들은 자기 교회회의와 더불어 최고 권위를 이루고 총대주교구의 모든 문제를 다루며, 총대주교구 지역 안에서 자기 예법의 새로운 교구를 설립하고 주교를 임명할 권한을 가진다. 다만, 모든 사안에 개입할 수 있는 교황의 양보할 수 없는 권리는 유지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동방 가톨릭 교회들에 관한 교령 『동방 교회들(Orientalium Ecclesiarum)』 중
라틴 가톨릭 교회가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가톨릭 교회는 라틴 교회를 비롯한 다양한 예법의 교회들이 단 하나의 교리로 일치하여 유일한 보편 교회를 이루고 있다.

가령 가톨릭 교리서는 라틴 가톨릭에서든 동방 가톨릭에서든 온전히 공유된다. 그러나 전례와 교회법 등 비교리적인 분야에선 다양성이 인정되며, 오히려 이 다양성이 교리의 단일성을 풍요롭게 한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단일 교리, 다양한 예법'이라는 특징은 역사적 평행 관계인 정교회와 비교할 때 가톨릭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이다. 정교회 역시도 동방에 지역 교회들이 있지만, 가톨릭에 서시리아 예법 가톨릭, 동시리아 예법 가톨릭, 콥트 예법 가톨릭이 존재하는 것과 달리, 정교에 서시리아 예법, 동시리아 예법, 콥트 예법은 존재하지 않으며[69] 오직 비잔틴 예법만을 사용된다. 다시 말해서 정교회에서 '비잔틴 예법'이 정통 신앙을 가리키는 단 하나의 통일성으로 간주되는 것과 달리, 가톨릭에서는 특정 예법이 정통신앙의 유일한 표지로 간주되지 않는다.[70]

7.2.1. 라틴 가톨릭 교회

절대 다수의 가톨릭 신자들이 속한 예법으로, 후술할 약 1,800만 명의 동방 예법 신자들을 제외한 모든 신자들은 라틴 예법에 속한다.

라틴 예법은 "주로 로마 예법이지만 암브로시오 예법이나 일부 수도회의 예법과 같은 지역 교회의 예법도 있다."(교리서 1203항)
7.2.1.1. 로마 가톨릭 교회
가톨릭 라틴 예법 내부의 로마 예법을 따르는 교회를 '로마 가톨릭 교회'라 한다. 대다수의 가톨릭 신자들이 속해 있기에 가톨릭 교회 전체를 '로마 가톨릭 교회'라 일컫는 경우도 있으나, 가톨릭 전체를 로마 가톨릭이라 일컫는 것에 대해서 동방 가톨릭 신자들은 불쾌감을 표하곤 한다. 따라서 가톨릭 교회가 동방 가톨릭을 포함한다는 것을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해선, '가톨릭 교회'라는 명칭이 더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What is the difference between Catholic and Roman Catholic?
가톨릭과 로마 가톨릭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The Catholic religion is the religion of the Catholic Church—i.e., that group of churches in communion with the pope. If a group isn’t in communion with the pope, it isn’t part of the Catholic Church.
Within the Catholic Church there are a number of individual churches, sometimes called rites. One of these is the Roman rite or Roman church. It includes most of the Catholics in the Western world. A Roman Catholic is a Catholic who is a member of the Roman rite.
There are many Catholics in the East who are not Roman Catholics, such as Maronite Catholics, Ukrainian Catholics, and Chaldean Catholics. These are all in communion with the pope, but they are not members of the Roman rite, so they are not Roman Catholics.
가톨릭 신앙은 가톨릭 교회, 즉 교황과 친교를 이루는 교회 집단의 신앙입니다. 만약 한 집단이 교황과의 친교 속에 있지 않다면, 이는 가톨릭 교회의 일부가 아닙니다.
가톨릭 교회 안에는 때때로 예법(rite)이라 불리는 많은 개별 교회들이 있습니다. 이중에 하나가 로마 예법, 곧 로마 교회입니다. 이는 서방 세계의 가톨릭 신자 대부분을 포함합니다. 로마 가톨릭 신자는 로마 예법의 지체입니다.
동방에는 로마 가톨릭 신자가 아닌 가톨릭 신자가 많이 있으며, 가령 마론 가톨릭, 우크라이나 가톨릭, 칼데아 가톨릭이 있습니다. #
7.2.1.2. 독신 성직자 제도
라틴 예법에서 독신 성직자 제도를 택하고 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71] 원래 유대교에 기반을 둔 만큼 기혼 성직자가 옛날에는 허용되어 있었고 당장 사도 베드로만 하더라도 기혼자였다. 그리고 지금도 독신 사제는 라틴 가톨릭 교회의 '예법'이지 가톨릭 교회의 '교리'가 아니다.
[사제생활교령] 16. 하늘 나라를 위하여 지키는 완전하고 영구적인 금욕은 주 그리스도께서 권고하셨다. 시대를 거쳐 오며 또 오늘날에도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를 기꺼이 받아들여 훌륭하게 지키고 있으며, 교회는 언제나 사제 생활의 특수 형태로 이를 대단히 중시하고 있다. 그것은 목자다운 사랑의 표지인 동시에 자극이며, 또한 세상에서 영적 풍요의 특별한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초대 교회의 실천과 동방 교회의 전통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듯이 그것은 사제직이 그 본질 자체로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동방 교회의 전통에서는 모든 주교와 함께 은총의 선물로 독신을 지키겠다고 선택하는 사제들도 있지만 그 밖에 대단히 훌륭한 기혼 사제들도 있다. 이 거룩한 공의회는 성직자의 독신 생활을 권고하지만 동방 교회에서 정당하게 시행하고 있는 다른 규율을 변경할 의사는 전혀 없으며, 혼인 안에서 사제직을 받아들인 모든 이가 성소를 끝까지 지키며 자기에게 맡겨진 양 떼를 위하여 그 생애를 온전히 아낌없이 바쳐 나가도록 커다란 사랑으로 격려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공의회 문헌이 말하듯, 영구적 금욕은 사제직이 그 본질 자체로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고 가톨릭은 인식한다. 즉 라틴 가톨릭 교회 내부의 예법이지, 가톨릭 교회의 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예법이 만들어진 원인은 나중에 교세가 퍼지고 나서 성직의 부자(父子) 세습 등 부작용이 많이 보고되어 일부러 금지시켜 버린 것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성경에서 예수가 하늘나라를 위해 불구가 된 사람에 관한 칭찬("사실 모태에서부터 고자로 태어난 이들도 있고, 사람들 손에 고자가 된 이들도 있으며, 하늘 나라 때문에 스스로 고자가 된 이들도 있다.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받아들여라."(마태 19,12)), 그리고 바오로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여 오롯이 하느님께 바치기 위한 독신이었던 것을 들기도 한다. 정치적인 이유로는 성직자가 결혼하여 그 자식이 성직에 종사하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교회의 재산이 외부로 흩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는 의견도 있다.

라틴 가톨릭 교회의 모든 성직자들이 독신을 지키는 것은 아니다. 부제의 경우 기혼자도 부제로 서품되어 부제가 될 수 있으나 이 경우 종신부제가 되어 사제로 서품되지 못한다. 동방 가톨릭 교회의 사제 이하의 성직자들은 그들의 전통이 인정되어 기혼 사제도 있다. 그러나 이미 성직에 있을 때 배우자와 사별하면 재혼할 수 없다. 주교는 기혼자 중에서 서임될 수 없으며, 수도회 소속의 성직자는 결혼할 수 없다. 한편 정교회는 기혼자도 사제가 될 수 있지만 사제가 된 뒤에는 결혼이나 재혼은 불가능하며, 주교는 결혼하지 않은 사람만 임명된다. 성공회는 주교를 포함한 모든 사제의 결혼이 허락된다. 하지만 가톨릭의 경우에도 다른 종파(특히 성공회와 정교회)의 성직자가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가톨릭 신부가 되었을 경우, 그 전에 결혼한 것은 인정하여 계속 부부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배려하기도 한다. 가톨릭에서는 결혼의 불가해소성을 교리로 삼으므로 이혼도 원칙적으로 죄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 외국의 예를 보면, 성공회 등 다른 종파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처자식이 있는 신부도 종종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사람들은 주교 등의 고위 성직자가 될 수는 없고 평신부에 머물러야 한다.
7.2.1.3. 성직자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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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라틴 예법 교회 내에는 '성공회 예법'을 따를 수 있도록 특별히 규정된 성직자치단(Personal Ordinariate)이라는 자치 교회가 존재한다. 성직자치단(Personal Ordinariate)은 성공회 전통을 지닌 신자들이 가톨릭 교회와 완전한 친교를 이루되, 자신들의 전례와 영적 유산을 일정 부분 보존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교회 구조로,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2009년 자의교서 Anglicanorum Coetibus를 통해 도입하였다. 이 제도는 성공회 내부에서 여성 서품, 전례 개정, 성윤리의 변화 등에 대한 반발로 이탈한 전통주의 공동체들, 특히 성공회 연속(Anglican Continuum) 운동과 전통 성공회 공동체(Traditional Anglican Communion)의 요청에 응답하는 형태로 마련되었다. 이미 1980년대부터 미국에서는 사목적 조치(Pastoral Provision)에 따라 전직 성공회 성직자의 사제 서품과 성공회 전례 본당 설립이 허용되었으며, 이러한 경험이 성직자치단 제도의 전신이 되었다.

성직자치단은 가톨릭 교회 내에서 교구와 법적으로 동등한 지위를 가지며, 성공회 전통을 따르던 신자들뿐 아니라, 성직자치단 내에서 입교 성사를 받은 이들, 성직자치단 구성원의 가족 등도 가입할 수 있다. 2013년의 규정 개정으로 세례만 받고 견진이나 성체성사를 받지 않은 가톨릭 신자 중 성직자치단을 통해 신앙을 회복한 이들도 소속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기존 가톨릭 신자들은 개인적 선호만으로는 성직자치단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 성직자치단은 모든 가톨릭 신자에게 열린 전례 공간을 제공하면서, 특정 전통을 지닌 신자들의 사목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준교구적 관할구로 기능한다.

7.2.2. 동방 가톨릭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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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론 전례 가톨릭 교회에서 쓰는 십자가[72] 다른 동방 가톨릭 교회에서 쓰는 십자가
가톨릭 교회에는 라틴 예법이 아닌 고유의 예법(동방 예법, Eastern Rite)을 따르고 있는 동방 가톨릭 교회들이 존재한다. 동방 가톨릭 교회들은 지역별 전례와 교회법, 그리고 전통을 거의 그대로 가지고 있어 외관상으로는 정교회오리엔트 정교회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교리는 가톨릭의 교리를 따르며, 교황의 수위권 역시 인정하고 따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가톨릭 소속 동방 교회는,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알렉산드리아(콥트와 에티오피아 교회로부터 유래), 시리아, 아르메니아 교회에서 유래한 가톨릭 교회들까지 있다. 그 기원은 상당히 다양한데 정교회오리엔트 정교회, 또는 네스토리우스파 일부가 가톨릭으로 귀일[73]하여 생성된 교회가 대부분이다. 반면, 오래전부터 교황 수위권을 받아들인 뒤 로마와의 일치가 끊어진 적 없이 독자적인 전통을 인정받았던 마론파와 같은 교회도 있다. 이런 배경이 있기 때문에, 종종 가톨릭 십자가와 정교회 십자가가 합쳐진 형태의 십자가를 가톨릭에서 볼 수 있다.

라틴 예법 가톨릭 교회 소속 평신도는 동방 가톨릭 교회의 전통과 규범을 존중하는 한 동방 가톨릭 교회의 전례에 아무 제한 없이 참례할 수 있고, 그 반대도 당연히 가능하다. 예법이 다를 뿐 같은 가톨릭 교회이고 다른 교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의 가톨릭 신자도 동방 가톨릭 교회의 미사에 참례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고 거기서도 성사는 다 받을 수 있다.

7.3. 규모

파일:Percent_of_Catholics_by_Country–Pew_Research_2011.svg
파일:external/image.kmib.co.kr/130314_06_1.jpg

신자 수는 2023년 교황청 연감 기준 약 14억여 명을 돌파하여 전체 그리스도교 인구의 절반을 초과하며, 이는 세계 인구의 17.7%로 약 1/6이 넘는 규모이다. #

여타 종교, 종파들과는 달리 구조적으로 교황청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교계체제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교리 문제 등으로 갈라져 나간 경우에는 명칭부터 가톨릭이 아니게 된다.[74] 이러한 시스템과 축적된 역사적 연륜 덕에, 덩치가 굉장히 커도 교황청을 중심으로 해서 신앙 공동체가 단일하게 잘 뭉쳐있는 정도가 독보적이다. 가시적인 종교조직으로서 지구상에는 물론, 세계사적으로 유례 없이 유일무이한 수준.[75] 따라서 가톨릭은 바티칸부터 명동성당은 물론 아프리카 오지 사막까지 모든 교리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모두 같다.[76]

다만 '교리'가 같다고 해서 그 교리를 실생활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법에 대해 모든 신자들이 똑같은 해석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당장 개신교 출신 개종자의 개신교 세례 인정 문제에서도 영미권 가톨릭과 한국 가톨릭의 입장이 많이 다르다.[77] 이를테면 성직자수도자들이 정치적 의견을 내는 것에 대해서는, 지역에 따라서 심지어는 같은 교구수도회 안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물론 그렇다고 한들 지역 교회들간의 통일성이 크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바티칸과 각 지역이 신학에서든 인사에서든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일례로 교황과 추기경들의 관계만 하더라도, 교황이 추기경들을 서임하고 그 추기경들이 교황을 선출하기에, 바티칸의 행보에 전 세계 지역 교회들의 의사가 실질적으로 반영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또한 교리의 통일은 국제적인 성직자 인사 교류가 매우 용이하게 하여, 오늘날 바티칸에선 아프리카나 베트남 같은 비서방권 출신의 주교들이 활약 중이다.

워낙 신자 수가 많고 역사도 매우 오래되다 보니, 그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크다. 실제로 세계사 교과서에서 배우는 유럽의[78] 종교사와 관련된 대부분의 내용은 가톨릭과 관련된 내용이다. 근현대에 들어서 개신교 신앙 정체성을 가진 앵글로색슨 계열 초강대국(영국과 미국)보다 힘을 쓰지는 못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세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러한 막강한 영향력은 종교로서가 아닌 정치단체로서도 발휘되곤 하는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러한 부작용을 알 수 있다.

오늘날에도 가톨릭 교회는 정신적 일체감을 가진 세계 최대의 초국가적 단일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 인구로 보면 이슬람보다 적다고 하는 의견도 있으나, 이슬람은 단일 종교집단이 아니며 전체 그리스도교처럼 다양한 종파가 공존하고 있다. 이슬람 최대 교파인 수니파는 가톨릭과 비슷한 인구 수를 지녔지만, 수니파는 개신교와 유사한 개교주의를 표방하기에 이렇다 할 구심점 없이 개신교처럼 여러 분파와 조직이 나뉘어 있고 분파간 대립을 한다.

체계가 잘 갖춰진 세계 최대의 초국가적 단일 조직으로는 UN도 있지만 유엔은 개인이 아니라 국가 단위로 가입하는 조직이다.[79] 그리고 실제 유엔에서 근무하거나 파견된 인원들을 전부 합쳐도 백만 명도 채 되지 않는다.

7.4. 교황청 바깥의 가톨릭 성향 독립교회

교황청 통제 밖 가톨릭(천주교)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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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가톨릭으로 인식하나, 교황청과 일치를 이루지 않은 단체들이다.
복고가톨릭 계열 위트레흐트 연합 ,(UU),
스크랜턴 연합 ,(US),
전통가톨릭 계열 성 비오 10세회* ,(SSPX),
성 비오 10세의 마리아 군단* ,(MCSPX),
일부 국가의 어용 천주교 조직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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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천주교애국회*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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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카톨릭교협회 ,(조카협),
사적계시 신봉 단체 팔마리아 가톨릭**
베이사이드 성모 발현
마리아의 구원방주 ,(나주 성모 동산),
*: 부분적으로나마 교황청과 일치되었거나, 명목상의 교황수위권은 인정하는 경우
**: 전통주의 단체이기도 하며, 콘클라베주의라는 하위 분류에 속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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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과 친교를 이루는 가톨릭 교회 바깥의 가톨릭적 성향을 지닌 독립단체들이 존재한다. 제 1·2차 바티칸 공의회 이래 다양한 사유들로 분파를 이루어 가톨릭 교회에서 떨어져 나갔으며, 전체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일단 가장 유명한 전통주의 가톨릭 계열의 경우 50만~100만, 복고 가톨릭 계열은 10만 내외로 추산되곤 한다. 종교학적으로는 독립교회라고 부르지만 가톨릭 신학적으로 이들을 "교회"라고 정의하지는 않는다. 스스로 가톨릭적 정체성을 지녔다고 여기지만, 개별 독립단체들의 내부 교리나 세속적 외압 문제 등으로 가장 중요한 사도좌와의 일치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가톨릭 교회 입장에선 이단 내지 열교 상태로 분류된다.

성향상 정교회나 개신교 등 타 종파들보단 더 가깝고 교황청에서도 몇몇 단체들엔 꾸준히 대화를 지속하려 노력하는 중이다. 어쨌든 가톨릭 교회와의 온전한 일치를 거부한 채 다양한 입장을 표방하는 단체들인 만큼 가톨릭 신자들의 평가 역시 천차만별이다. 개중에는 이단 종파인 개신교보다 더한 수준으로 취급되는 경우도 있으며, 실제로 사적계시 신봉 단체들 중엔 사이비 종교에 준하는 부류들이 없지 않다.

가톨릭 교회에서 갈라져 나갔다는 공통점이 있는 만큼 개신교에서도 이들에 대한 입장이 마냥 부정적이진 않고 다양한 편이지만, 사실 이들과 개신교의 신학적인 간격 또한 꽤 크기에 해당 독립단체들은 물론이고 개신교계에서도 이들을 개신교의 일부로 받아들이려는 시도 또한 미약하다. 그나마 복고 가톨릭교회는 개신교계에선 어느 정도 거부감이 덜한 편.

8. 타 종파와의 차이

8.1. 비가톨릭 그리스도인에 대한 이해

INTRODUCTION
서론

The Second Vatican Council, with its Dogmatic Constitution Lumen gentium, and its Decrees on Ecumenism (Unitatis redintegratio) and the Oriental Churches (Orientalium Ecclesiarum), has contributed in a decisive way to the renewal of Catholic ecclesiology. The Supreme Pontiffs have also contributed to this renewal by offering their own insights and orientations for praxis: Paul VI in his Encyclical Letter Ecclesiam suam (1964) and John Paul II in his Encyclical Letter Ut unum sint (1995).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과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 「일치의 재건」, 동방 가톨릭교회들에 관한 교령 「동방 교회들」을 통하여 가톨릭 교회론에 대한 이해를 더욱 심화하였음은 누구나 주지하는 바이다. 또한 이와 관련하여 바오로 6세의 회칙 「주님의 교회」(1964년)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하나 되게 하소서」(1995년)를 통하여 교황들도 통찰과 실천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였다.

The consequent duty of theologians to expound with greater clarity the diverse aspects of ecclesiology has resulted in a flowering of writing in this field. In fact it has become evident that this theme is a most fruitful one which, however, has also at times required clarification by way of precise definition and correction, for instance in the declaration Mysterium Ecclesiae (1973), the Letter addressed to the Bishops of the Catholic Church Communionis notio (1992), and the declaration Dominus Iesus (2000), all published by the Congregation for the Doctrine of the Faith.
이에 따라 교회론의 다양한 측면들을 더욱 명확하게 설명하려는 신학자들의 노력 덕분에 이 분야에서 수많은 글들이 쏟아져 나왔다. 실제로 이 주제는 가장 풍성한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때로는 정확한 정의를 내리고 잘못을 바로잡아 설명해야 할 필요도 있었다. 교황청 신앙교리성이 (교회에 관한 현대의 오류를 반박하는 가톨릭 교리) 선언 「교회의 신비」(1973년), (친교로서 이해되는 교회의 일부 측면에 관하여) 가톨릭 교회 주교들에게 보내는 서한 「친교의 개념」(1992년),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유일성과 구원적 보편성에 관한) 선언 「주님이신 예수님」(2000년)을 발표한 것도 이러한 목적에서였다.

The vastness of the subject matter and the novelty of many of the themes involved continue to provoke theological reflection. Among the many new contributions to the field, some are not immune from erroneous interpretation which in turn give rise to confusion and doubt. A number of these interpretations have been referred to the attention of the Congregation for the Doctrine of the Faith. Given the universality of Catholic doctrine on the Church, the Congregation wishes to respond to these questions by clarifying the authentic meaning of some ecclesiological expressions used by the magisterium which are open to misunderstanding in the theological debate.
이 주제의 광범위함과 관련된 여러 주제의 새로움은 지속적인 신학적 성찰을 요구한다. 이 분야에서 새로 발표되는 수많은 글 가운데 일부는 오류가 있는 해석에 물들어 있어서 혼란과 의혹을 낳고 있다. 신앙교리성은 이러한 여러 해석들에 관심을 기울여왔으며, 교회에 관한 가톨릭 교리의 보편성을 고려하여 교회론과 관련하여 신학 논쟁에서 오해받을 소지가 있는 교도권의 몇몇 표현들의 진정한 의미를 밝힘으로써 이러한 물음들에 응답하고자 한다.

FIRST QUESTION
Did the Second Vatican Council change the Catholic doctrine on the Church?
문의 1: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에 관한 이전 교리를 바꾸었는가?

RESPONSE
The Second Vatican Council neither changed nor intended to change this doctrine, rather it developed, deepened and more fully explained it.
답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에 관한 가톨릭 교리를 바꾸지 않았고 그러한 의도도 없었으며, 오히려 이를 발전, 심화시키고 더욱 완전하게 설명하였다.

This was exactly what John XXIII said at the beginning of the Council.[1] Paul VI affirmed it[2] and commented in the act of promulgating the Constitution Lumen gentium: “There is no better comment to make than to say that this promulgation really changes nothing of the traditional doctrine. What Christ willed, we also will. What was, still is. What the Church has taught down through the centuries, we also teach. In simple terms that which was assumed, is now explicit; that which was uncertain, is now clarified; that which was meditated upon, discussed and sometimes argued over, is now put together in one clear formulation”.[3] The Bishops repeatedly expressed and fulfilled this intention.[4]
이는 요한 23세가 공의회를 시작하며 한 연설에서 분명히 밝힌다.1) 바오로 6세는 이를 확인하였고,2) '교회헌장'을 반포하며 이를 자세히 설명하였다. "이러한 반포가 전통 교리에서 실제로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적합한 설명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바라셨던 것을 우리도 바랍니다. 과거의 것이 지금도 여전합니다. 교회가 수 세기 동안 가르쳐 온 것을 우리도 가르칩니다. 한마디로, 추정되던 것이 이제 분명해졌고 불확실하던 것이 이제 명쾌해졌으며, 숙고하고 토론하고 때로 논쟁하던 것이 이제 하나의 분명한 정식으로 종합되었습니다."3) 공의회에서 주교들은 이러한 뜻을 여러 번 표명하였고 또한 실현하였다.4)

SECOND QUESTION
What is the meaning of the affirmation that the Church of Christ subsists in the Catholic Church?
문의 2: 그리스도의 교회가 가톨릭 교회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RESPONSE
Christ “established here on earth” only one Church and instituted it as a “visible and spiritual community”[5], that from its beginning and throughout the centuries has always existed and will always exist, and in which alone are found all the elements that Christ himself instituted.[6] “This one Church of Christ, which we confess in the Creed as one, holy, catholic and apostolic […]. This Church, constituted and organised in this world as a society, subsists in the Catholic Church, governed by the successor of Peter and the Bishops in communion with him”.[7]
답변: 그리스도께서는 단 하나의 교회를 "이 땅 위에 … 세우시고" 그것을 "가시적 집단인 동시에 영적인 공동체"로 제정하셨기에, 이 교회는 처음부터 수 세기 동안 언제나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며 그 안에서만 그리스도께서 몸소 제정하신 모든 요소를 찾아볼 수 있다.6)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유일한 교회이며, 우리는 신경에서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라고 고백한다[…]. 이 교회는 이 세상에 설립되고 조직된 사회로서 베드로의 후계자와 그와 친교를 이루는 주교들이 다스리고 있는 가톨릭 교회 안에 존재한다(subsistit)."7)

In number 8 of the Dogmatic Constitution Lumen gentium ‘subsistence’ means this perduring, historical continuity and the permanence of all the elements instituted by Christ in the Catholic Church[8], in which the Church of Christ is concretely found on this earth.
교회 헌장 「인류의 빛」 8항에 나오는 '존재한다'는 말은, 이 변함없는 역사적 지속성과 가톨릭 교회 안에 그리스도께서 세워 놓으신 모든 요소의 항구함을 의미한다.8)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교회는 가톨릭 교회 안에서 구체적으로 발견된다.

It is possible, according to Catholic doctrine, to affirm correctly that the Church of Christ is present and operative in the churches and ecclesial Communities not yet fully in communion with the Catholic Church, on account of the elements of sanctification and truth that are present in them.[9] Nevertheless, the word “subsists” can only be attributed to the Catholic Church alone precisely because it refers to the mark of unity that we profess in the symbols of the faith (I believe... in the “one” Church); and this “one” Church subsists in the Catholic Church.[10]
가톨릭 교리에 따라, 가톨릭 교회와 아직 온전한 친교를 이루지 않은 교회들과 교회 공동체들 안에도 성화와 진리의 요소들이 있는 만큼,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들 안에도 현존하고 활동한다고 올바르게 말할 수 있다.9) 그러나 "존재한다"는 표현은 가톨릭 교회에만 쓸 수 있다. 이 표현은 우리가 신경에서 고백하는(하나인 교회를 … 믿나이다.) 일치를 가리키며, 이 하나인 교회는 가톨릭 교회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10)

THIRD QUESTION
Why was the expression “subsists in” adopted instead of the simple word “is”?
문의 3: 단순히 "이다"라는 표현 대신 "안에 존재한다"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무엇인가?

RESPONSE
The use of this expression, which indicates the full identity of the Church of Christ with the Catholic Church, does not change the doctrine on the Church. Rather, it comes from and brings out more clearly the fact that there are “numerous elements of sanctification and of truth” which are found outside her structure, but which “as gifts properly belonging to the Church of Christ, impel towards Catholic Unity”.[11]
답변: 이 표현은 그리스도의 교회와 가톨릭 교회의 온전한 동일성을 가리키기 때문에 교회에 대한 교리를 바꾸지 않는다. 오히려 이 표현은, 교회 조직 밖에서도 "성화와 진리의 많은 요소들"이 발견되지만 이 요소들은 "그리스도의 교회의 고유한 선물로서 보편적 일치를 재촉하고 있다."11)는 사실에서 비롯되며, 이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It follows that these separated churches and Communities, though we believe they suffer from defects, are deprived neither of significance nor importance in the mystery of salvation. In fact the Spirit of Christ has not refrained from using them as instruments of salvation, whose value derives from that fullness of grace and of truth which has been entrusted to the Catholic Church”[12].
"그러므로 이 갈라진 교회들과 공동체들이 비록 결함은 있겠지만 구원의 신비 안에서 결코 무의미하거나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성령께서 그 교회들과 공동체들을 교회의 수단으로 사용하시기를 거절하지 않으시고 그 수단의 힘이 가톨릭 교회에 맡겨진 충만한 은총과 진리 자체에서 나오기 때문이다."12)

FOURTH QUESTION
Why does the Second Vatican Council use the term “Church” in reference to the oriental Churches separated from full communion with the Catholic Church?
문의 4: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가톨릭 교회와 온전한 친교에서 갈라져 나간 동방 교회들을 가리키면서 "교회들"이라는 용어를 쓴 이유는 무엇인가?

RESPONSE
The Council wanted to adopt the traditional use of the term. “Because these Churches, although separated, have true sacraments and above all – because of the apostolic succession – the priesthood and the Eucharist, by means of which they remain linked to us by very close bonds”[13], they merit the title of “particular or local Churches”[14], and are called sister Churches of the particular Catholic Churches.[15]
답변: 공의회는 이 용어의 전통적인 사용을 따르고자 하였다. "그 교회들은 비록 갈라져 있지만 참된 성사들을 보존하고 있다. 특히 사도적 계승의 힘으로 사제직과 성찬례를 지니고 있어 아직도 우리와는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13) 따라서, 그들은 "개별 또는 지역 교회들"14)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으며, 개별 가톨릭 교회의 자매 교회들로 불린다.15)

“It is through the celebration of the Eucharist of the Lord in each of these Churches that the Church of God is built up and grows in stature”.[16] However, since communion with the Catholic Church, the visible head of which is the Bishop of Rome and the Successor of Peter, is not some external complement to a particular Church but rather one of its internal constitutive principles, these venerable Christian communities lack something in their condition as particular churches.[17]
"각 교회에서 거행되는 주님의 성찬례를 통하여 하느님의 교회가 세워지고 자라난다."16) 그러나 로마 주교인 베드로의 후계자를 가시적인 수장으로 삼는 가톨릭 교회와 이루는 친교는 개별 교회에게 외적인 보완이 아니라 내적인 구성 원리의 하나이며, 이들 존경할 만한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은 개별 교회라는 조건에서는 결함을 지니고 있다.17)

On the other hand, because of the division between Christians, the fullness of universality, which is proper to the Church governed by the Successor of Peter and the Bishops in communion with him, is not fully realised in history.[18]
다른 한편, 그리스도인들의 분열 때문에, 베드로의 후계자와 그와 친교를 이루는 주교들이 다스리는 교회 고유의 온전한 보편성은 역사 안에서 아직 완전하게 실현되지 않았다.18)

FIFTH QUESTION
Why do the texts of the Council and those of the Magisterium since the Council not use the title of “Church” with regard to those Christian Communities born out of the Reformation of the sixteenth century?
문의 5. 공의회 문헌과 공의회 이후 교도권 문서들이 16세기 종교 개혁에서 생겨난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에게 "교회"라는 명칭을 쓰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RESPONSE
According to Catholic doctrine, these Communities do not enjoy apostolic succession in the sacrament of Orders, and are, therefore, deprived of a constitutive element of the Church. These ecclesial Communities which, specifically because of the absence of the sacramental priesthood, have not preserved the genuine and integral substance of the Eucharistic Mystery[19] cannot, according to Catholic doctrine, be called “Churches” in the proper sense[20].
답변: 가톨릭 교리에 따르면, 이 공동체들은 성품성사에서 사도적 계승을 보존하고 있지 않으므로 교회를 이루는 본질적인 요소가 결여되어 있다. 이러한 교회 공동체들은 특히 직무 사제직이 없는 까닭에 성찬 신비의 참되고 완전한 실체를 보존하고 있지 않으므로,19) 가톨릭 교회에 따라 고유한 의미에서 교회들20)이라고 불릴 수 없다.

문헌 내 주석 전문 [접기・펼치기]
[1] John XXIII, Address of 11 October 1962: “…The Council…wishes to transmit Catholic doctrine, whole and entire, without alteration or deviation…To be sure, at the present time, it is necessary that Christian doctrine in its entirety, and with nothing taken away from it, is accepted with renewed enthusiasm, and serene and tranquil adherence… it is necessary that the very same doctrine be understood more widely and more profoundly as all those who sincerely adhere to the Christian, Catholic and Apostolic faith strongly desire …it is necessary that this certain and unchangeable doctrine, to which is owed the obedience of faith, be explored and expounded in the manner required by our times. For the deposit of faith itself, or the truths which are contained in our venerable doctrine, are one thing; another thing is the way in which they are expressed, with however the same meaning and signification”: AAS 54 [1962] 791-792

[2] Cf. Paul VI, Address of 29 September 1963: AAS 55 [1963] 847-852.

[3] Paul VI, Address of 21 November 1964: AAS 56 [1964] 1009-1010.

[4] The Council wished to express the identity of the Church of Christ with the Catholic Church. This is clear from the discussions on the decree Unitatis redintegratio. The Schema of the Decree was proposed on the floor of the Council on 23.9.1964 with a Relatio (Act Syn III/II 296-344). The Secretariat for the Unity of Christians responded on 10.11.1964 to the suggestions sent by Bishops in the months that followed (Act Syn III/VII 11-49). Herewith are quoted four texts from this Expensio modorum concerning this first response.

A) [In Nr. 1 (Prooemium) Schema Decreti: Act Syn III/II 296, 3-6]

“Pag. 5, lin. 3-6: Videtur etiam Ecclesiam catholicam inter illas Communiones comprehendi, quod falsum esset.
R(espondetur): Hic tantum factum, prout ab omnibus conspicitur, describendum est. Postea clare affirmatur solam Ecclesiam catholicam esse veram Ecclesiam Christi” (Act Syn III/VII 12).

B) [In Caput I in genere: Act Syn III/II 297-301]

“4 - Expressius dicatur unam solam esse veram Ecclesiam Christi; hanc esse Catholicam Apostolicam Romanam; omnes debere inquirere, ut eam cognoscant et ingrediantur ad salutem obtinendam...
R(espondetur): In toto textu sufficienter effertur, quod postulatur. Ex altera parte non est tacendum etiam in aliis communitatibus christianis inveniri veritates revelatas et elementa ecclesialia”(Act Syn III/VII 15). Cf. also ibid pt. 5.

C) [In Caput I in genere: Act Syn III/II 296s]

“5 - Clarius dicendum esset veram Ecclesiam esse solam Ecclesiam catholicam romanam...
R(espondetur): Textus supponit doctrinam in constitutione ‘De Ecclesia’ expositam, ut pag. 5, lin. 24-25 affirmatur” (Act Syn III/VII 15). Thus the commission whose task it was to evaluate the responses to the Decree Unitatis redintegratio' clearly expressed the identity of the Church of Christ with the Catholic Church and its unicity, and understood this doctrine to be founded in the Dogmatic Constitution Lumen gentium.''

D) [In Nr. 2 Schema Decreti: Act Syn III/II 297s]
“Pag. 6, lin. 1- 24: Clarius exprimatur unicitas Ecclesiae. Non sufficit inculcare, ut in textu fit, unitatem Ecclesiae.
R(espondetur): a) Ex toto textu clare apparet identificatio Ecclesiae Christi cum Ecclesia catholica, quamvis, ut oportet, efferantur elementa ecclesialia aliarum communitatum”.
“Pag. 7, lin. 5: Ecclesia a successoribus Apostolorum cum Petri successore capite gubernata (cf. novum textum ad pag. 6, lin.33-34) explicite dicitur ‘unicus Dei grex’ et lin. 13 ‘una et unica Dei Ecclesia’ ” (Act Syn III/VII).
The two expressions quoted are those of Unitatis redintegratio 2.5 e 3.1.

[5] Cf. Second Vatican Council, Dogmatic Constitution Lumen gentium, 8.1.

[6] Cf. Second Vatican Council, Decree Unitatis redintegratio, 3.2; 3.4; 3.5; 4.6.

[7] Second Vatican Council, Dogmatic Constitution, Lumen gentium, 8.2.

[8] Cf. Congregation for the Doctrine of the Faith, Declaration Mysterium Ecclesiae, 1.1: AAS 65 [1973] 397; Declaration Dominus Iesus, 16.3: AAS 92 [2000-II] 757-758; Notification on the Book of Leonardo Boff, OFM, “Church: Charism and Power”: AAS 77 [1985] 758-759.

[9] Cf. John Paul II, Encyclical Letter ''Ut unum sint', 11.3: AAS 87 [1995-II] 928.

[10] Cf. Second Vatican Council, Dogmatic Constitution Lumen gentium, 8.2.

[11] Second Vatican Council, Dogmatic Constitution Lumen gentium, 8.2.

[12] Second Vatican Council, Decree Unitatis redintegratio, 3.4.

[13] Second Vatican Council, Decree Unitatis redintegratio, 15.3; cf. Congregation for the Doctrine of the Faith, Letter Communionis notio, 17.2: AAS, 85 [1993-II] 848.

[14] Second Vatican Council, Decree Unitatis redintegratio, 14.1.

[15] Cf. Second Vatican Council, Decree Unitatis redintegratio, 14.1; John Paul II, Encyclical Letter Ut unum sint, 56 f: AAS 87 [1995-II] 954 ff.

[16] Second Vatican Council, Decree Unitatis redintegratio, 15.1.

[17] Cf. Congregation for the Doctrine of the Faith, Letter Communionis notio, 17.3: AAS 85 [1993-II] 849.

[18] Ibid.

[19] Cf. Second Vatican Council, Decree Unitatis redintegratio, 22.3.

[20] Cf. Congregation for the Doctrine of the Faith, Declaration Dominus Iesus, 17.2: AAS 92 [2000-II] 758.

-신앙교리성, 교회에 대한 교리의 일부 측면에 관한 몇 가지 문의에 대한 회신, 2007년 6월 29일[80]
{{{#!wiki style="margin:0px auto;display:table"
II. ‘자매 교회들’이라는 표현의 사용에 관한 지침}}}
9. 앞 단락들에서 제시된 역사적 준거들은 교회 일치를 위한 대화에서 자매 교회들이라는 표현이 지니는 중요성을 보여 준다. 따라서 이 말을 신학적으로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10.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자매 교회들은 오로지 개별 교회들(또는 개별 교회들의 집합, 예를 들어 총대주교좌 교회들 또는 수도 관구들)이 서로를 일컫는 말이다.7) 이렇게 자매 교회들이라는 말을 엄밀한 의미로 사용할 때에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는 모든 개별 교회의 자매가 아니라 어머니임을 언제나 분명히 하여야 한다.8)

11. 개별 가톨릭 교회와 비가톨릭 교회들에 대해서도 엄밀한 의미에서 자매 교회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로마 개별 교회는 모든 다른 개별 교회의 자매라고도 불릴 수 있다. 그러나 위에서 상기한 대로, 가톨릭 교회가 어느 한 개별 교회나 교회 집단의 자매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것은 단순히 용어의 문제만이 아니라, 가톨릭 신앙의 기본 진리인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단일성을 존중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사실 오직 하나의 교회가 있을 뿐이므로,9) 복수를 나타내는 교회들이라는 말은 개별 교회들에만 해당된다.
따라서 ‘우리 두 교회’와 같은 말은 오해와 신학적인 혼란을 일으키므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이 말을 가톨릭 교회와 모든 정교회(또는 어느 한 정교회)에 적용시킨다면, 개별 교회의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신경에서 고백하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의 차원에서도 복수의 뜻을 내포하게 되어 교회의 실상이 애매하여진다.

12. 끝으로, 엄밀한 의미에서 자매 교회들이라는 표현은, 동방과 서방의 공통된 전통에서 입증된 것처럼, 유효한 주교직과 성체성사를 보존해 온 교회 공동체들에게만 사용될 수 있음도 유념하여야 한다.

{{{#!wiki style="float:right"
로마 교황청 신앙교리성 사무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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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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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성심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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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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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관 타르치시오 베르토네 베르첼리 명예 대주교}}}
문헌 내 주석 전문 [접기・펼치기]
7.  위의 주(註) 2와 3에 인용된, 일치 교령 14항과 바오로 6세가 아테나고라스 1세에게 보낸 교황 소칙서 Anno Ineunte 참조.
8.  교황청 신앙교리성, 친교로서 이해되는 교회의 일부 측면에 관하여 가톨릭 교회의 주교들에게 보내는 서한 「친교의 개념」(Communionis Notio), 1992.5.28., 9항, AAS 85(1993), 843-844 참조.
9.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Lumen Gentium), 8항; 교황청 신앙교리성, 선언 「교회의 신비」(Mysterium Ecclesiae), 1973.6.24., 1항, AAS 65(1973), 396-398 참조.

-신앙교리성, 「자매 교회들」이라는 표현에 대한 공지, 2000년 6월 30일[81]

'교회'라는 말에 대한 가톨릭 스스로의 이해는 이러하다.
1. 가톨릭 교회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이며, 세상에 교회는 오직 하나만 존재한다.
2. 가톨릭 교회와 개별 교회(예: 한국 가톨릭 교회, 한국 정교회)의 관계는 어머니와 딸의 관계로 표현된다. 개별 교회들에 대해서는 여러 개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3. 개별 교회들끼리는 자매의 관계로 표현된다.
4. 엄밀한 의미에서 루터교, 장로회 등은 교회 공동체(ecclesial Community)이지 교회가 아니다.
4. 그리스도의 교회는 가톨릭 교회 안에 존재한다(subsist).
5. 비가톨릭 교회들과 교회 공동체들 안에도 그리스도의 교회가 현존한다(present).
6. 그러나 비가톨릭 교회들과 교회 공동체들 안에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존재하지(subsist) 않는다.

여기서 정교회와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데, 가톨릭이든 정교회이든 교회는 오직 하나만 존재한다고 본다. 다만 가톨릭의 이해에 의하면 동방의 개별 교회들이 유일한 보편 교회로부터 분리된 것이고, 정교의 이해에 의하면 서방의 개별 교회들이 유일한 보편 교회로부터 분리된 것이다. 때문에 가톨릭과 정교회가 서로를 '유이한' 보편 교회로 본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8.2. 정교회와의 관계

정교회에 대한 가톨릭의 입장은 비록 역사적으로 갈라져 서로를 파문했던 적이 과거에 있을지언정, 오늘날의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는 교리적 차이도 대동소이하여 서로를 초대 교회의 직계 후손임을 인정하는 편이며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 다만 완전한 친교는 이루지 못하고 있으며, 가톨릭은 정교를 분리주의 교회(이교·離敎)로 본다.

과거에는 서방과 동방이 완전한 일치를 이루었으나, 로마 제국 분열 후 서로마 제국의 서방교회에서는 6세기 말경 2차 중흥기를 누리는 아리우스파 이단에 대응하기 위해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 원본에 없는 "Filioque(그리고 성자)"라는 문장을 삽입했다.[82] 이에 9세기 후반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총대주교 포시우스(Photius)는 신학적으로 문제 있으며 더불어 신경에 어떤 변경도 금지한 에페소 공의회의 결정을[83] 위반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이 첨가를 강하게 반대했다. 또한 726년, 동방 황제 레온 3세가 성상 파괴령을 내려 반감이 증대된 것에 성직자 결혼 문제, 정치적 문제가 합쳐지면서 내내 불화를 겪다가, 1054년 로마에서 온 추기경 사절단과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인 미카일 케룰라리오스가 서로를 파문한 것으로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분리되었다(1차 교회분열). 그리하여 동방교회는 정교회의 이름으로, 서방교회는 가톨릭의 이름으로 역사가 갈라져 버린다.

가톨릭에서는 정교를 가톨릭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지역교회들로 인식하고, 정교는 그 반대로 인식하지만, 가톨릭과 정교의 주교직이 사도로부터 계승되어 왔다는 것은 서로 간에 인정된다. 그렇기에 동서 교회의 분열은 주교들의 분열이지 훗날 벌어지는 소위 종교개혁과는 전혀 다르다.[84]

근대에는 지속적인 교회 일치 운동을 통해 양 교회 간의 화해 노력이 꾸준히 이루어졌다. 이는 분열의 종결과 완전한 재통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나, 양 교회의 화해 자체는 정치·사회·문화·종교사에서 큰 의의를 가지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85]

종교적 권위가 거의 힘을 잃은 오늘날에도 교황청으로 대표되는 가톨릭 교회의 정치적, 사회적 권위는 범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이건 단순히 가톨릭 교리를 받아들이느냐 교황을 범그리스도교의 수장으로 보느냐 마느냐와 같은 신앙/교리적인 문제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로, 정치/사회적인 문제이다. 일단 서두에서 언급한 대로 거시적인 측면 뿐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가톨릭은 그리스도교 단일 종파 중 가장 오래되고 큰 규모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 당장 정치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집단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단순히 가톨릭(20%)-개신교(43%)로만 나누자면 현재에도 미국개신교 국가라고 불릴 만하지만, 종파로 파고들면 가톨릭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데, 최다종파인 가톨릭이 2위 종파인 남침례회의 4배가 넘는다. 성공회가 국교인 영국도 가톨릭 교세가 만만치 않다.[86]

물론 가톨릭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곳, 예컨대 이슬람, 가톨릭과 서로 간에 쌓인 게 많은 정교회권, 유난히 가톨릭에게 냉담한 북유럽도 있다.

하지만 이런 나라에서조차 정치/사회적으로 가톨릭이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낮지 않다. 교황청에서 새로운 사회 회칙을 발표하거나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언급을 할 경우 언론사에서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는 것을 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당장 교황 베네딕토 16세콘돔 사용에 대해 유화적인 발언을 했을 때 각국의 언론사들의 반응만 보더라도.[87]

8.2.1. 필리오퀘 문제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필리오퀘 문제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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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필리오퀘 문제#s-|]]번 문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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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필리오퀘 문제#|]]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필리오퀘 문제는 가톨릭과 정교회 사이의 큰 논쟁거리이다.
그것은 "성자로부터도(라틴어로는 Filioque)"라는 구절을 추가한 것이다. 즉 "성부로부터 발하는 ...... 성령을 믿나이다."라는 구절에 서방 교회가 "성자로부터도"라는 구절을 추가함으로써, 성령께서는 성부에게서와 똑같이 성자로부터도 발하게 되었다. 이 구절은 589년 스페인의 제3차 톨레도 공의회에서 처음으로 추가되었고, 8세기 후반 이후 전 프랑크 제국에 급속히 전파되었는데, 부분적으로는 신성에 있어 성자-성부의 동등성을 강조하면서 거기에 잔존하는 아리우스주의자들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 교황들은 처음에 이 구절을 추가하는 것에 반대했다가 수용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동방 교회는, 특히 포티오스가 9세기 후반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총대주교로 재임하는 동안에, 신학적인 근거와 더불어 신경에 어떤 변경도 금지한 에페소 공의회의 결정을 위반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이 첨가를 강하게 반대했다. 이는 11세기 동·서방 교회의 대분열의 주원인이 되었고, 이후 재일치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다.
-노만 P. 탄너, 《간추린 보편 공의회사》, 김영식·최용감 옮김 (서울: 가톨릭출판사, 2010), 55-56쪽

여기서 포티오스의 주장은 2가지로 압축된다. 첫 번째는 신경을 변경했다는 것이고, 2번째로는 신학적으로 그릇되었다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 포티오스가 잘못 파악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에페소 공의회(431년)가 변경을 금지한 신경은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381년)이 아니라 니케아 신경(325년)이라는 것이다.
381년 공의회의 그 신경은 오로지 칼케돈 공의회가 열린 451년부터 비로소 공식적으로 알려지고 확증되었으며 "보편 공의회"로 명명되었다.
-안젤로 아마토, 《예수 그리스도》, 김관희 옮김 (화성: 수원가톨릭대학교 출판부,[math({ }^{2})]2014), 445쪽

즉 에페소 공의회(431년)가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381년)을 변경 금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이 문서실에서 "졸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칼케돈 공의회 이전 시기에는 동방에서도 그저 드물게만 알려지고 사용되었는데, 무엇보다도 니케아 신경의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지위가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의 수용에 방해가 되었다. 그러다가 칼케돈 공의회에서 이 신경이 황제의 관리들에 의해 교부들에게 정식으로 강권되었고, 그리하여 거기서 이 381년 공의회가 추인받아 보편성을 획득했다.
(중략)
로마에서는 ··· 500년경까지만 해도 니케아와 에페소와 칼케돈 공의회 셋만 보편공의회로 인정했다.
-클라우스 샤츠, 《보편공의회사》, 이종한 옮김 (왜관: 분도출판사, 2005), 59-60쪽
이 교회회의는 이미 콘스탄티노폴리스 지역 교회회의(382년)가 교황 다마소에게 보낸 서한에서(키루스의 테오도레투스, 「교회사」Historia ecclesiae) "세계 공의회"로 불린다. 그렇지만 이 교회회의가 일반적으로 "세계 공의회"로 인정받은 것은 훨씬 나중 일이다.
-덴칭거,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소개

에페소 공의회가 겨냥하는 신경이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381년)이 아니라 니케아 신경(325년)인 것은 언뜻 보면 매우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왜 직전 세계 공의회가 아니라, 훨씬 전의 세계 공의회 신경을 겨냥한다는 말인가? 이런 일이 발생한 이유는, 세계 공의회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이해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공의회들이 "보편적"ōkumenisch인가라는 물음은 가장 까다로운 물음 가운데 하나다. 역사학자로서 교회론적으로 먼저 결단하지 않고는 결코 대답할 수 없는 물음이다. "보편적"(즉 "전반적"allgemein) 시노드와 지역적(부분교회적) 시노드의 명확한 구별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제쳐놓더라도, "보편적"이라고 주장했던 많은 시노드의 보편성이 오랫동안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오늘날까지도 논란되거나 부인되는 반면, 보편성 주장을 하지 않았고 실제로 전혀 보편적이 아니었으나 나중에 전체교회가 받아들인 시노드들도 있다. 후자의 대표 사례로는 그 신경이 오늘날 모든 중요한 그리스도 교파의 구속력있는 교리문서들 속에 들어 있는 저 공의회, 곧 381년에 개최된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를 들 수 있다.
-클라우스 샤츠, 《보편공의회사》, 이종한 옮김 (왜관: 분도출판사, 2005), 15쪽
니케아 공의회는 일차적으로 이전 공의회들도 했던 일 외에 다른 것을 하지 않았다. 공의회는 이단을 단죄하고 그것에 맞서 신경을 확정했다. 이전의 지역 시노드들과 비교해 보건대 니케아 공의회는 아직 질적이고 본질적인 우위성을 지니지는 못했고, 단지 양적으로 높은 지위를 누렸을 따름이다. 공의회 신경이 당시의 현실적 동기와 구체적 상황을 뛰어넘어, 전체교회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정통신앙의 시금석이 되리라고는 처음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것은 예를 들어 갈리아 지방에서 아리우스설에 앞장서 대항한 걸출한 전사 푸아티에의 힐라리우스가 니케아 신경을 공의회 후 30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고, 갈리아 주교들 대부분 역시 360년경에도 이 신경을 거의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사실 공의회들은 뭐라 해도 시대와 상황에 메인 기구로 간주되었다. 그러므로 니케아 이후의 공의회들이 니케아 신경의 정식들을 간과하고 성부와 성자의 관계에 대해 "새로운" 정식을 만들어냈다 하더라도, 후대의 관점에 터해 거기서 전체 교회의 "교의"에 대한 침해를 보아서는 안 된다. 사실은 그 반대이니, 이 "새로운" 정식들의 실패를 통해 비로소 전체교회의 구속력있는 신앙규범으로서의 니케아 신경에 대한 의식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사실 새로운 상황에서 전승되어 온 신앙에 대해 끊임없이 새로운 정식화를 모색하는 것은 뭐라 해도 수긍이 가는 일이다.
-클라우스 샤츠, 《보편공의회사》, 이종한 옮김 (왜관: 분도출판사, 2005), 45쪽

사실 세계 공의회(혹은 보편 공의회)라는 말은 엄밀하지 않았다. 제1차 니케아 공의회(325년)는 그보다 먼저 있던 지역 시노드들과 비교할 때 양적으로는 우위성을 지닐 수 있어도, 질적이고 본질적인 우위성을 지니지는 못했다. "공의회 신경이 당시의 현실적 동기와 구체적 상황을 뛰어넘어, 전체교회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정통신앙의 시금석이 되리라고는 처음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가령 갈리아 주교들 대부분은 360년경에도 니케아 신경(325년)을 거의 모르고 있었다.

심지어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381년)의 경우는, 보편성 주장을 하지 않았고 실제로 보편적이지도 않았지만 나중에 전체 교회가 받아들인 시노드에 해당한다.

조금 더 깨는 사실을 말하자면, 제1차 니케아 공의회는 공식 문헌이라는 게 있었는지조차 의심되고 있다.
공식 문서들이 전해 오는 에페소나 칼케돈 공의회와는 달리, 이 첫 보편 공의회는 회의록과 공식 문서가 없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 없다. 우리는 니케아 공의회에 관해 단지 결실, 측 카논(법규)들과 신경만 가지고 있을 뿐, 토의 과정과 내용은 모른다. 공의회의 진행과정에 관해서는 아타나시우스 같은 참석자들의 단편적 메모들과 하나 하나 매우 비판적으로 고찰해야 할 교회사가들의 기록들(예컨대 에우세비우스의 「콘스탄티누스의 생애」나 1백 년 뒤 소크라테스의 저술) 약간만을 가지고 있다. 도대체 공식 문서가 있었는지도 의심스럽다. 필경 고대 공의회들은 국가적 회합들의 관례를 넘겨받아 재판 기록들을 작성했지만 일반적으로 그밖의 자문회의들에 관해서는 기록을 남기지 않았던 것 같다.
-클라우스 샤츠, 《보편공의회사》, 이종한 옮김 (왜관: 분도출판사, 2005), 39-40쪽

또한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의 경우도 비슷하게, "문서들은 남아 있지 않다."
당시 동방 제국만 통치한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이 공의회를 소집했다. 당시 서방의 황제는 그라티아누스(375~383 재위)와 발렌티아누스 2세(375~392 재위)였다. 공의회에 참석한 주교 150여 명 가운데(소크라테스 『교회사』 5,8), 서방 사람들은 없었고, 로마의 주교 다마수스는 사절을 파견하지도 않았다. 이런 까닭에 공의회의 영향력은 처음엔 보잘것없었다. (중략)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문서들은 남아 있지 않다. 신경도 공의회 기록으로 보존되어 있지 않다. 공의회에서 결정된 법규들만 여러 교회법 모음집에 수록되어 있을 뿐이다.
-에른스트 다스만, 《교회사 II/2》, 하성수 옮김 (왜관: 분도출판사, 2016), 98쪽

물론 "무슨 시노드가 세계 공의회인가?"가 엄밀하지는 못했더라도 역사적으로 니케아 공의회와 신경은 정통과 이단을 가르는 중요한 기준으로 점점 지위를 확립해나간 것은 맞기는 하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또 있다. 바로, 옛 사람들에게 제1차 니케아 공의회가 후대의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와 에페소 공의회에 비해서 '매우' 우월하게 인식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거의 기정사실화한 다음과 같은 가정이 생겨났는데, 칼케돈 공의회에서야 비로소 거기서 벗어나게 될 터였다: 공의회들은 니케아 공의회의 손바닥 안에, 높디높은 니케아 공의회의 넓디넓은 그늘 아래 있다. 공의회들은 니케아 공의회와 대등하게 병렬하지 못하며, 비록 엄밀하게 예속적인 의미에서는 아닐지라도, 아무튼 근본적으로 "니케아 공의회의 현실화"일 따름이다. 여타 공의회들은 무엇보다도 이런저런 진술들이 니케아 신경에 부합하는지 아니면 상치되는지를 규명해야 하며, 전자는 승인하고 후자는 단죄해야 한다. 모든 것을 판단하는 척도는 니케아 신경이다. 여기서 니케아 공의회는 일련의 공의회 중 첫 공의회가 아니라, "슈퍼(超) 공의회", 후대의 모든 공의회를 규정하는 규범이 된다. 바로 이런 공의회관에 터해 1차 에페소 공의회(431)가 개최되었고, 2차 에페소 공의회(449) ―이른바 "강도 공의회" ―에서는 이 공의회관이 더 극단화됐다.
-클라우스 샤츠, 《보편공의회사》, 이종한 옮김 (왜관: 분도출판사, 2005), 52쪽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칼케돈 공의회(451년) 시대에 이르러서야 오늘날과 비슷하게 변화한다.
그러나 어쨌든 칼케돈 공의회의 수용을 통해 공의회 이념의 발전과정이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새로운 단계의 본질은 이 수용에서 니케아 공의회 후 결정적인 둘째 걸음이 내디뎌졌다는 데 있다. 과연 칼케돈 공의회의 수용과정에서 니케아 공의회의 독점적 지위가 점차 와해되었고, 니케아 공의회의 권위는 유일무이한 것이 아니라 ― 새로운 이단들과 새로운 역사적 상황들에 대응하여 언제나 새로운 신앙정식들이 요구되고, 또한 모든 참된 공의회는 동일한 권위를 보유하기 때문에 ― 반복될 수 있는 것이라는 의식이 뚜렷이 대두했다. 이런 의식은 458년 황제가 칼케돈 공의회의 유효성에 관해 문의한데 대한 주교들의 답변 「코덱스 엔키클리우스」Codex Encyclius로 처음 나타났다. 여기서 모든 주교들은 원칙적으로 칼케돈 공의회의 니케아 및 그때까지의 모든 공의회와의 연속성과 일치를 강조했다. 그러나 어떤 주교들에게는 여전히 오직 니케아 공의회만이 이 일치의 척도요 준거점이었다. 그들은 강조하기를, 칼케돈 공의회는 니케아 공의회와 일치하기 때문에 유효하고 정통적이라 했다. 그러나 다른 주교들은 동등성을 강조했는데, 특히 크레타 주교들의 한 서간은 그때까지 네 차례의 구속력있는 보편공의회를 서로 일치하는 동등한 공의회로 열거했다.[88]
―이런 맥락에서 이제 처음으로 그때까지의 보편공의회들이 확정·명기되었고, 또한 낮은 등급의 공의회들과 명확히 구별되었다. 이제 "네 공의회"는 고정된 상투어가 되었다.
(중략)
―더 나아가 6세기부터는 "네 거룩한 시노드"라 하여 네 복음서에 견주기 시작했으니, 이 공의회들은 복음서들과 마찬가지로 받아들여지고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중략)
―다른 한편, 이제 넷이라는 고정된 숫자는 그것에 뒤이어 일련의 숫자를 꼽을 수 있게 했다. 과연 이 숫자는 뒤이은 보편공의회마다 고정된 서수序數를 부여했다: "다섯째", "여섯째", "일곱쨰" ··· 보편공의회. 이 줄은 원칙적으로 완결되지 않고 계속 추가될 수 있었으나 "가운데 끼어들기"는 허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이름 붙이기는 피상적인 셈하기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한 공의회의 자기이해에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으니, 공의회를 앞선 공의회들과 결합시키고 그 연속성에 편입시켰다.
어떤 공의회가 몇째 보편 시노드로 지칭됨으로써, 그 공의회는 자신의 권위를 공시하고 동시에 다른 공의회들과의 연속성과 한 계열 안에 정렬하게 되었다. 칼케돈 공의회 때까지는 없었던 일이다. 한 공의회의 고유한 권리 주장을 위해 꼭 필요한 이런 셈하기는 통상적인 일이 아니었다. 아무튼 바로 그런 일을 통해서 예컨대 381년 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가 그 연속선상에 "끼어들" 수 있었다.
-클라우스 샤츠, 《보편공의회사》, 이종한 옮김 (왜관: 분도출판사, 2005), 88-88쪽

즉 제1차 니케아 공의회와 '동급'의 여러 공의회'들'이라는 생각부터가 칼케돈 공의회(451년)스러운 생각이라는 것이다.

결국 정리하면 이렇게 된다:

첫째, 세계 공의회에 대한 인식은 역사적으로 발전한 것이지, 제1차 니케아 공의회(325년)가 시작되는 순간에 오늘날의 형태로 갑자기 완성되고 출발한 게 아니다.

둘째, 칼케돈 공의회(451년) 시기까지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381년)와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으며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381년)는 세계 공의회로 인식되지도 않았다.

셋째,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에페소 공의회(431년)의 신경 변경 금지는 니케아 신경(325년)을 겨냥한 것이지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381년)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에페소 공의회는 무엇이라고 말했는지를 직접 살펴보자.
···거룩한 공의회는 성령과 함께 니케아에 모인 거룩한 교부들이 확정한 것과 다른 신앙 고백을 제시하거나 작성하거나 편찬하는 것이 어느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는다고 확정하였다. ···
-에페소 공의회, 치릴로파의 제6회기, 431년 7월 22일[89]

즉 역사적 맥락에서 보든 문장 자체로 보든, 에페소 공의회가 겨냥하는 것은 "니케아에 모인 거룩한 교부들이 확정한" 신앙 고백이다. 다시 말해 니케아 신경(325년)이지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381년)이 아니다. 그렇기에 에페소 공의회의 신경 변경 금지는, 엄격한 의미에서 이해되어선 안 되고, 다소 느슨한 의미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엄격한 의미로 이해해 버린다면, 훗날 칼케돈 공의회(451년)에서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381년)을 수용한 것부터가 에페소 공의회를 위반한 것이라는 이상한 결론이 나올 것이다.
니케아 공의회의 신경은 유명한 설교가이자 알렉산드리아의 한 본당 신부였던 아리우스(?~336)의 가르침에 관한 논쟁을 통해 생겨났다. 이 논쟁은 삼위일체의 제2위격인 하느님 아들의 신성에 관한 문제였다. 니케아 공의회의 구성원들은 이 신경을 자신들의 믿음이 가장 잘 표현된 것으로 받아들이고, 비록 아리우스라는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하느님의 아들이 다소 부족한 신성을 가졌다는 그의 주장을 단죄하였다. 엄밀히 말해서 어떻게 이 신경이 받아들여지게 되었는지는 공의회의 기록이 부족하기 때문에 불분명하다.
(중략)
431년에 열린 에페소 공의회는 이 신경에 어떤 것을 첨가하거나 변경하는 것도 파문의 형벌로 금지시켰다(COD, p.65). 한편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는 다시 교착 상태에 빠졌다. 특히 더 이상 어떤 것도 추가하는 것을 금지하기로 결정한 에페소 공의회의 맥락에서 공의회의 많은 구성원들이 니케아 신경을 넘어서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려 하지 않았다. 다른 한편 니케아 신경은 새로운 상황에 적합하지 않아 보였다. 특히 325년 이후 발생한 수많은 논쟁들을 고려할 때, 그 이상의 어떤 것을 언급할 필요가 있었다. 이때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대부제(archdeacon)는 381년 자기 도시에서 열린 공의회에서 선포되었던 신경을 해결책으로 제안했다. 하지만 이 신경은 선포된 이후 명백하게 교회 전반으로부터 주목받지 못하고 있었다. 칼케돈 공의회는 이 381년 신경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고, 에페소 공의회의 금지령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이것이 325년의 신경과 본질적으로 하나이고 같은 것이라 단언하였다. 이로써 합법적인 개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노만 P. 탄너, 《간추린 보편 공의회사》, 김영식·최용감 옮김 (서울: 가톨릭출판사, 2010), 48- 51쪽

그리고 칼케돈 공의회(451년)의 교부들이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381년)을 수용한 논리도 주목할 만하다. 그들은 381년의 신경이 "325년의 신경과 본질적으로 하나이고 같은 것이라 단언하였다."
콘스탄티노플 신경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진 것은 놀랍게도 칼케돈 공의회의 제 2회기인 451년 10월 10일 콘스탄티노플의 대부제大副祭인 아에티우스Aetius가 공의회에 모인 교부들을 향해서 큰 소리로 "150명의 주교들의 신앙"[90]에 대해서 읽을 때였다. 그 후 이 신앙고백문은 칼케돈 공의회의 신앙정식이 만들어지기 전에 니케아 신경과 통합되었다. 니케아 신경의 교정본과 콘스탄티노플 신경의 교정본을 감수한 바 있는 도세티Dossetti는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 참석한 모든 희랍 교부들과 라틴 교부들이 칼케돈 공의회 제2회기나 아니면 칼케돈의 신앙정식을 만들때쯤에 다음과 같이 이구동성으로 재확인했다고 전한다.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콘스탄티노플 신경처럼 오로지 칼케돈 공의회에서 알려지고 승인되었음을 시인한다.[91]
콘스탄티노플 신경이 70년이 넘도록 침묵을 지킨 이유[92]에 대해서 아직 완전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는 잠시 접어 두고 그 신경의 출처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칼케돈 공의회는 콘스탄티노플 신경을 이단규정을 간단하게 덧붙여서 니케아 신경을 본질적으로 추인하는 성격의 신경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니케아 신경과 콘스탄티노플 신경의 구조를 객관적으로 비교했을 때 콘스탄티노플 신경을 니케아 신경의 개정판 정도로 볼 수 없게 하는 어떤 편차가 보인다. "사실 이 두 텍스트는 전적으로 다르다."[93] 여기서 학자들의 의견은 양편으로 갈린다. 폰 하르낙과 같은 부류(F. J. A. Hort)는 콘스탄티노플 신경은 이미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 이전에 있었던 것으로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와는 무관하고 독립적이라고 한다. 반면 칼케돈 공의회의 회의록을 수집-편찬한 슈바르츠 등은 콘스탄티노플 신경은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 자체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지만, 이 두 주장 모두 콘스탄티노플 신경은 니케아 신경의 재확인이라는 교회의 전통적인 입장을 소홀히 하고 있다.[94] 그렇다면 부인할 수 없는 이 상이성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해결책은 1936년 프랑스 신학자 르봉[95]에 의해서, 그리고 이어서 켈리,[96] 리터,[97] 도세티[98] 등에 의해서 제시되었다. 이들에 의하면 "니케아의 신앙"이라든가 "신경" 또는 "318명의 교부들의 해설(ékthesis)" 등과 같은 표현은 성문화된 어떤 텍스트를 구체적으로 지칭하기보다는 신경의 신학적 내용, 무엇보다 "동일본질" 같은 니케아 공의회의 키워드를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경"이라든지 "니케아 신앙"이라는 호칭은 니케아에서 결정된 신앙내용을 근본적으로 수용하고 숭앙하는 어떤 특정한 신경에 주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교의사적 추이에서 볼 때 "니케아 신앙"이란 말은 "동일본질"이란 말로 결정된 확고부동한 내용을 다양한 언어로 표현하는 신앙고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너무나 다양한 나머지 그들 사이에서도 종종 확연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이런 다양성 안에서도 신앙고백의 내용은 본질적으로 일치한다는 것이다. 니케아 신경을 약간 각색해서 세례 때의 신앙고백정식으로 사용한다든지, 신경의 말미에 이단에 대한 경고문구 등을 삽입한다든지 하지만, 이 정식들은 그래도 여전히 "니케아 신경"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99]
381년 콘스탄티노플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본질에 있어서는 "니케아적인" 어느 한 지역의 신경을 선택해서 아폴리나리스 이단과 마체도니오 이단을 반박하기 위한 초석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공의회는 새로운 신경을 따로 채택하지 않고 단순히 반-이단적인 명문을 삽입하여 니케아 공의회의 교의적 결정을 재확인한다. 그러니까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새로운 신앙개조를 창작하지도 아니하고 니케아 신경과는 별개의 독립적인 신경을 보유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도세티가 정확하게 지적했듯이 니케아와 콘스탄티노플 신경들이라고 말해서는 안 되고, 단순히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100]이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니까 이것은 정통성이 검증된 하나의 반-이단적 명문화를 삽입한 신경, 즉 니케아신경을 자구적으로 재생한 것은 아니더라도 본질적으로 재확인하는 신경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안젤로 아마토, 《예수 그리스도》, 김관희 옮김 (화성: 수원가톨릭대학교 출판부, [math({ }^{2})]2014), 428-431쪽

따라서 니케아 신앙을 고수한다는 것은, 신경의 텍스트 모든 글자를 엄밀한 의미에서 보존하자는 말이 아니다.

더군다나, 교회의 역사에서 볼 때 오직 세계 공의회'만'이 신경을 변경할 수 있다고 여겨지지도 않았다.
"니체아-콘스탄티노플" 신앙고백은 "사도"신경과 마찬가지로 오늘날까지 모든 그리스도 교회의 정통교리가 되었다. 콘스탄티노플 공의회가 니체아 공의회 신경을 넘겨받고 보완하였다는 가정은 (오늘날까지 신경의 출전에 관한 상황 연구가 어렵다 할지라도) 맞지 않는 것 같다. 공의회 문서들은 남아 있지 않으며 공의회 신경은 공식적인 형태로 칼체돈 공의회 문서에서 처음 전해지나, 그 이전에 이미 콘스탄티아(살라미스)의 에피파니우스가 자신의 작품 「정박자」[101](374년)에서 이 고백을 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른트 마누엘 바이숴Bernd Manuel Weischer는 후대에 니체아-콘스탄티노플 신앙고백이 「정박자」에 삽입된 것으로 본다. 따라서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신경을 공식적으로 결정하지 않았지만, 칼체돈 공의회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 본문을 협의하거나 작성하였다는[102] 것이 오늘날[103]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견해이다.
-H. R. 드롭너, 《교부학》, 하성수 옮김 (왜관: 분도출판사, 2001), 407쪽
살라미스의 주교 에피파니우스: 「정박자」(Ancoratus), 374년

이 작품에는 두 양식의 신앙 고백이 들어 있다. 짧은 양식(118,9-13)은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150)과 매우 유사하며, 에피파니우스가 본래 니케아 신경을 인용한 자리에 후대 어느 필경사가 끼워넣은 것이다. B. M. Weischer, Qerellos IV 2: Traktate des Epiphanius von Zypern und des Proklos von Kyzikos(Äthiopistische Forschungen 6; Wiesbaden 1979) 49-51. 긴 양식(119,3-12)은 에피파니우스 자신이 니케아 신경을 확대시킨 양식으로, 교리 교육 때나 이단자들을 위한 세례 신앙 고백으로 쓰인 것이다.
(중략)
(ㄴ) 긴 양식
한 분이신 하느님, 전능하신 아버지, 유형무형한 만물의 창조주를 저희는 믿나이다.
또한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 하느님 아버지에게서, 곧 성부의 본질에서 나신 외아들, 하느님에게서 나신 하느님, 빛에서 나신 빛, 참하느님에게서 나신 참하느님,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 성부와 본질이 같으시며 그분을 통하여 하늘과 땅에 있는 유형무형한 만물이 생겨났으며,
저희 인간 때문에, 저희 구원을 위하여 내려오시어 육이 되셨으며, 곧 성령을 통하여 거룩하고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에게서 완전하게 태어나시어 사람이 되셨으니, 곧 성자께서는 죄 말고는 영혼과 몸과 정신과 인간의 모든 요소를 지닌 완전한 인간을 취하셨으며, 남자의 씨로도 아니고 인간 안에서도 아니라, 자신 안에서 유일하고 거룩한 일치로 육신을 이루셨으며, 예언자들 안에서 숨 쉬시고 말씀하시며 행하신 방법이 아니라 완전하게 인간이 되셨으며("말씀이 육신이 되셨으니," 그때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분의 신성도 인성으로 바뀌지 않았나이다.), 〈육신을〉 자신의 거룩한 완전함과 유일한 신성에 합치시켰으며(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두 분이 아니라 한 분이시오니, 바로 그분이 하느님이시고, 바로 그분이 주님이시며, 바로 그분이 임금님이시옵니다.), 바로 그분이 육신으로 고난을 받으시고 부활하셨으며, 바로 그 몸으로 하늘로 올라가셨으며, 영광 속에 성부 오른편에 앚으시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바로 그 몸으로 영광 속에 오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으리라 믿나이다.
또한 율법 안에서 말씀하시고 예언자들을 통하여 선포하시고 요르단 강에 내려오셨으며, 사도들 안에서 말씀하시고 성도들 안에 머무르시는 성령을 저희는 믿나이다. 바로 거룩한 영, 하느님의 영, 완전한 영, 보호자이신 영이시며, 창조되지 않으시고 성부에게서 발하시며, 성자께서 받아들이고 믿으신 분을 저희는 믿나이다. 하나이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를 저희는 믿으며, 회개의 유일한 세례를 믿으며, 죽은 이들의 부활과 영혼과 몸에 관한 공정한 심판을 믿으며, 하늘 나라를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그러나 성자나 성령이 없던 때가 있었다거나, 무에서 생겨났다거나, 또는 하느님의 아들이나 성령이 다른 실체(히포스타시스)나 본질에서[104] 나왔다거나, 바뀌거나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하는 자들을, 여러분과 우리의 어미니인 보편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는 파문한다. 또한 우리는 죽은 이들의 부활을 고백하지 않는 자들과 이 올바른 믿음을 따르지 않는 모든 이단을 파문한다.
-덴칭거 42-45항

살라미스의 주교인 성 에피파니우스의 저작 「정박자」(Ancoratus)에서는 2개의 신앙고백을 전한다. 이 중 짧은 것은 후대의 가필이니 논외로 한다고 하더라도, 긴 것은 덴칭거의 소개문에서 보듯 "에피파니우스 자신이 니케아 신경을 확대시킨 양식으로" 여겨진다. 즉 로마도 알렉산드리아도 콘스탄티노폴리스도 아닌, 살라미스의 주교 역시도 니케아 신경의 텍스트를 수정한 게 교회사의 현실이다.

결국, 서방 교회가 에페소 공의회의 신경 변경 금지를 위반했다는 것은 에페소 공의회 문헌 그 자체에서[105] 보든 역사적 맥락에서 보든 부적절하며, 에페소 공의회의 신경 변경 금지는 '텍스트'를 글자 그대로 보존하라는 의미로 이해될 수 없다. 만약 서방에 대한 그 비판이 타당하다면, 똑같은 원리로 칼케돈의 교부들을 단죄해야 할 것이다. 칼케돈 공의회 정신에서 볼 때, 이렇게 결론을 내리는 것이 훨씬 타당하다: "325년의 신경과 본질적으로 하나이고 같은 것"이라면, 신경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106]

그리고 서방 측의 필리오케 삽입을 독단으로 여길 필요도 없다. 니케아 신경은 살라미스의 성 에피파니우스에 의해서도 수정된 바 있으며, 589년의 톨레도 교회회의의 권위가 살라미스의 주교 '미만'인 건 당연히 아니며, 비록 레오 3세가 필리오케 삽입에 부정적이었다고는 하나 로마의 주교가 살라미스의 주교 '미만'인 것도 아니다.

8.2.2. 정교회와의 차이

정교회는 가톨릭교회와 성사적, 교리적 측면에서 거의 일치한다. 하지만 교황 수위권과 무류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예법이나 일부 세부적인 교리에서 차이가 존재한다. 가톨릭교회와 마찬가지로 성서와 성전을 계시 원천으로 받아들이지만 정경 목록에서 차이가 있다.[107] 또한 니케아 신경에서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고…”라는 구문 가운데 ‘성자에게서 발하시고’라는 문구가 잘못됐다는 신학적 입장을 동방 측이 내세운 필리오케 문제가 논쟁이 되기도 했다.

8.3. 개신교와의 차이 및 관점

개신교와 가톨릭은 루터의 종교 개혁이라는 큰 사건을 겪고 갈라진 데다 교리적인 차이도 상당히 큰 편이다. 상기한 바와 같이 가톨릭교회는 신학적으로 개신교를 교회로 보지 않는다. 아울러 한국천주교의 '천주교 용어집'이 2017년 개정되기 직전까지만 해도 한국 가톨릭교회에서 개신교를 부르는 공식 용어는 어디까지나 '프로테스탄트'였고, 1934년에 작성된 천주교 요리문답서에는 '열교(裂敎)'라는 표현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개신교'라는 용어 자체도 '프로테스탄트를 예우하는 차원에서 예외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된 용어'일 뿐이었다.[108] 가톨릭교회에서 성공회, 루터교회, 장로회 등 개신교 교단은 원론적으로는 '교회'가 아닌 '이단'으로 본다.

다만 가톨릭 교리에서 말하는 '이단'은 개신교 신자들의 용례와는 달리, '차마 그리스도교라 불러 줄 수 없는 무언가'라는 의미가 아니다. 개신교에서 받은 세례는 가톨릭에서도 인정되며[109] 교리서는 '이단'을 '배교'와 구분하고 있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은 개신교의 구원론적 가치 및 가톨릭과의 특별한 관계를 인정한다.[110]가톨릭에서 '이단'은 '유사 그리스도교'가 아니라 '일부 교리가 틀린 그리스도교'에 쓰는 말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단'이 공격적 단어인 건 분명하므로 개신교와의 대화에서 선호하는 단어는 아니다.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루터 개인의 평가는 많이 사라졌기 때문에 루터의 신학에 대해서 주로 비판적인 연구가 진행했고, 루터, 루터파 신학에 대한 평가는 16세기와 종교분쟁 시절 같은 극단적인 반응은 아니다. 20세기 신학 연구들의 성과로 마르틴 루터에 대한 평가는 많이 달라졌으며, 1965년 미국 가톨릭계 정기 출판물에선 이렇게 평가했다.[111]
우리는 오늘날 어제의 편협한 용어로 루터를 비난하는 것이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마르틴 루터란 인물도 예외 없이 역사 속에서 희미하게 되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가톨릭 인사들은 루터 개인과 루터주의를 구분하고 있으며, 일단 가톨릭 교리에 맞서서 루터의 교리 자체는 옳지 않지만 의도했든 그러지 않았든 결과적으로 가톨릭교회에 자극을 주었고 가톨릭교회 변화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까지는 인정하고 있다. 간단하게 말해서, 위대하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아무튼 거대하다고는 말하는 셈이다. 그래서 가톨릭교회의 교리와 역사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루터를 읽어 볼 것을 권하는 가톨릭 사제와 신학자들은 있다. 개신교의 주장에 맞서서 가톨릭교회 역시 교리와 논리를 정비하여 치열한 반박으로 교회 신학이 발전했기 때문에, 가톨릭 신학자들은 루터의 인용이 많고 그러기 위해선 많이 읽을 수밖에 없다.

또한 칼 바르트신정통주의 신학은 현대 가톨릭의 성경관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가톨릭 신학자 칼 아담은 <로마서 강해> 2편을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놀이터에 폭탄을 던졌다"고 극찬하였으며, 바르트 본인도 가톨릭 신학자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 추기경과 깊게 교류하였고,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바르트에게 존경을 표한 바 있다. 그 외에도 칼 라너, 이브 콩가르, 한스 큉 등 거물 가톨릭 신학자들은 신정통주의 개신교 영향을 어느 정도는 받았으며, 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도 많이 반영되었다. 결정적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때 전례의원으로 루터교회의 목사 등 6명의 개신교인이 참여한 것을 보면, 이때를 기점으로 가톨릭이 개신교를 그리스도교에서 하나의 중요한 흐름이자 대화 상대로는 인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모든 가톨릭 신학계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후의 개신교에 대한 교황청의 관점에 전부 동의하는 것은 아니라서, 성 비오 10세회를 비롯한 전통주의 가톨릭 일파들은 이에 기반한 해석관이나 현대 미사 등을 '개신교화'로 간주하며 비판적이다.

기본적으로 개신교와 그리스도교라는 공통된 틀안에 있어서 기초적인 사상은 같거나 비슷하지만, 세부적인 해석이나 신학적 입장은 개신교 종파에 따라 차이가 커진다. 가장 가톨릭과 비슷한 교리와 전례를 가진 개신교 종파는 성공회이며, 그 반대는 안식일교회(SDA)[112]이다. 개신교는 유형적인 일치에 중요성보다는 성경만을 더 중요하다고 여겨서 통일된 신학은 없다.
  •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교회론적인 차이이다.
가톨릭은 '교회'가 '하느님의 백성'(populus Dei)이자 '그리스도의 신비체'(corpus Christi mysticum, 그리스도의 뮈스테리온적 몸)로서 계시에 대한 정당한 해석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적극적으로 본다. 개신교와의 이러한 교회론적 차이는 성경, 성사, 각종 전통 해석에서 방법론적 차이로 이어진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마태 16,18-19)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모든 면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습니다. (에페 1,23)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에페 4,4)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됩니다.” 이는 큰 신비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두고 이 말을 합니다. (에페 5,31-32)
789 교회를 몸에 비유하는 것은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가 얼마나 밀접한가 잘 보여 준다. 교회는 단순히 그리스도 주위에 모인 것이 아니라, 그분의 몸 안에서, 그분 안에 하나가 되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세 가지 측면, 곧 그리스도와 결합하여 이루는 모든 지체 간의 일치, 그 몸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는 특히 강조되어야 한다.
795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교회는 ‘온전한 그리스도’(Christus totus)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이다. 성인들은 이러한 일치를 매우 생생하게 의식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단순히 그리스도인이 된 것뿐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 자신이 된 것을 기뻐하고 감사드립시다. 형제 여러분,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우리의 머리로 보내 주신 이 은혜를 이해하십니까? 놀라고 기뻐하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가 된 것입니다. 사실 그분은 우리의 머리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지체이기 때문에 그분과 우리는 온전히 한 인간입니다. …… 그러므로 머리와 지체들이 바로 그리스도의 충만함입니다. 머리와 지체들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와 교회를 말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노, 「요한 복음 강해」)

“우리 구세주께서는 당신이 취하신 교회와 하나의 인격체임을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성 대 그레고리오, 「욥기 교훈」)

“머리와 지체들은 말하자면 신비스러운 하나의 인격체이다.”
(성 토마스 데 아퀴노, 「신학 대전」)

잔 다르크 성녀가 재판관들에게 한 말은 거룩한 교회 학자들의 믿음을 요약하고 신앙인의 상식을 표현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는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789항, 795항
가령 성경에 대한 관점 차이를 보자. 일부에서는 "개신교는 성경을 중시하고 가톨릭은 전통을 중시한다"고 이분법적으로 단순화하기도 하지만, 가톨릭에서도 계시에 대한 최고 권위는 당연히 성경이다. 단지 최고 권위인 바로 그 성경에 대한 '해석'이 교단마다 다른 것이다. 여기서 가톨릭은 '가톨릭 교회의 해석'이 단지 인간적이거나 학술적인 수준을 넘어, '그리스도의 신비체'(그리스도의 뮈스테리온적 몸)[113]로서 성경에 대한 정당한 관점을 정말로 줄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물론 성경에 대한 인간의 해석이 '발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따라서 지상의 교회가 하는 성경 해석이 그 시대의 맥락과 불가분이라는 건 가톨릭 교회 스스로도 인정을 한다. 그러나 시대에 따라 발전하는 성경 해석을, 각각의 시대에서, 그 시대의 가톨릭 교회가 정당하게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이다.
  • 성전과 성경해석의 차이도 크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접기・펼치기]
>I. 사도전승

75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모든 계시를 자신 안에서 이루신 주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예언자들을 통하여 약속되고 당신께서 성취하시고 친히 전파하신 복음을 모든 진리와 윤리 규범의 원천으로 모든 이에게 선포하도록 사도들에게 명하셨다.”

사도들의 복음 선포

76 복음은 주님의 명에 따라 두 가지 방식으로 전해졌다.

- 구두로는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 그리고 그분과 함께한 공동생활에서 받은 것과 성령의 조언에 힘입어 배운 것을 설교와 모범과 제도로써 전달해 주었다.”
- 문서로는 “사도들과 그 직제자들이 성령의 감도로 구원의 소식을 기록하였다.”

사도적 계승으로 지속되는 복음 선포

77 “사도들은 교회 안에 복음이 영구히 온전하게 또 생생하게 보존되도록 주교들을 후계자로 세워 ‘자기 교도직의 자리를 넘겨주었다.’” 그러므로 “영감 받은 책들 안에 특별한 방식으로 표현되어 있는 사도적 설교는 세상 종말까지 지속적인 계승으로 보전되어야 했다.”

78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생생한 전달은 성경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성경과는 구별되는 것으로서, ‘성전’(聖傳)이라고 부른다. 이 성전을 통해서, “교회는 그 교리와 생활과 예배를 통하여 자신의 모든 것과 자신이 믿는 모든 것을 영속시키며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거룩한 교부들은 이 성전이 살아 있음을 증언하고, 믿고 기도하는 교회의 관습과 생활 안으로 이 성전의 풍요로움이 흘러 들어온다고 가르친다.”

79 이처럼 성부께서 성령 안에서 당신의 ‘말씀’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전해 주시는 통교는 교회 안에 현존하며 작용하고 있다. “예전에 말씀하신 하느님께서는 여전히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신부(교회)와 끊임없이 대화하시며, 성령께서는 복음의 생생한 목소리가 교회 안에서 또 교회를 통하여 세상 안에 울려 퍼지도록 하시고, 신자들을 온전한 진리 안으로 이끄시며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들 안에 풍부히 머물도록 하신다.”

II. 성전과 성경의 관계

하나의 공통적 원천

80 “성전과 성경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고 또 상통한다. 이 둘은 동일한 신적 원천에서 솟아 나와 어떤 방식으로든 하나를 이루며 같은 목적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둘은 모두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마태 28,20) 당신 백성과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신 그리스도의 신비를 교회 안에 현존하게 하고, 그 열매를 풍부히 맺게 한다.

두 가지의 다른 전달 양식

81 “성경은 성령의 감도로 기록되었으므로 하느님의 말씀이다. 곧 주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사도들에게 맡기신 하느님의 말씀은 성전으로 후계자들에게 온전히 전달되는데, 후계자들은 진리의 성령에게서 빛을 받아 자신의 설교로 그 말씀을 충실히 보존하고 해설하며 널리 전파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82 그러므로 계시의 전달과 해석을 위임받은 교회는 “오로지 성경으로만 모든 계시 진리에 대한 확실성에 이르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이유로 이 둘을 똑같이 경건한 애정과 존경으로써 받아들이고 공경해야 한다.”

사도전승과 교회 전승들

83 우리가 여기에서 말하는 ‘성전’(聖傳)은 사도들에게서 유래하는 것으로서, 그들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모범에서 그리고 성령을 통하여 배운 것을 전달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리스도교의 제1세대에게는 아직 기록된 신약 성경이 없었으며, 신약 성경 자체가 살아 있는 ‘성전’의 과정을 증언하고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지역 교회에서 생겨난 신학적, 생활 규범적, 전례적 또는 신심에 관한 ‘전승들’은 사도전승과 구별해야 한다. 이러한 전승들은 독특한 양식들을 이루게 되는데, ‘성전’은 다양한 장소와 시대에 따라 적용된 여러 표현들을 이러한 양식 안에 수용한다. 이 전승들은 교회 교도권의 지도 아래 ‘성전’에 비추어 보존되거나 수정되거나 또는 폐기될 수 있다.

III. 신앙의 유산에 대한 해석

전체 교회에 맡겨진 신앙의 유산

84 성전과 성경에 담긴 “신앙의 유산”(depositum fidei)은 사도들을 통하여 전체 교회에 맡겨졌다. “거룩한 하느님 백성 전체는 이 유산에 충실하면서, 목자들과 일치하여 꾸준히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친교를 맺으며, 빵을 떼는 일과 기도에 항구히 전념한다. 그리하여 전해진 신앙을 고수하고, 실행하며 고백하면서 주교들과 신자들이 일치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의 교도권

85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이나 전해지는 하느님의 말씀을 올바로 해석하는 직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교회의 살아 있는 교도권에만 맡겨져 있다.” 곧 로마 주교인 베드로의 후계자와 일치를 이루는 주교들에게 맡겨져 있는 것이다.

86 “그렇지만 교도권은 하느님의 말씀 위에 있지 아니하고 하느님의 말씀에 종속되어 봉사한다. 이 권한은 전해진 것만을 가르치며, 하느님의 명령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것을 경건히 듣고 거룩히 보존하고 충실히 해석한다. 그리고 교도권은 하느님에게서 계시되어 믿어야 할 것으로 제시하는 모든 것을 이 유일한 신앙의 유산에서 얻어 낸다.”

87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에게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다.”(루카 10,16) 하고 말씀하셨다. 신자들은 이 말씀을 명심하여 그들의 목자들이 여러 형태로 주는 가르침과 지도를 온순하게 받아들인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75-87항

가톨릭에서는 성경을 해석하거나 이를 대하는 관점에 있어서 사도로부터 내려온 전승인 '성전(聖傳)'을 중시하고 있다. 성경과 성전은 교회를 떠받치는 동등한 뿌리인 셈. 가톨릭이나 정교회에서는 기록된 성경과 달리, 명확히 기록되지 않은 형태로 교회의 초창기부터 전해 내려오는 가르침과 실천적 관행을 성전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통해 개인에게 말씀하신다고 가르쳐 성경 구절의 임의 해석을 허용하고 성전의 권위를 부인하는 개신교와 달리, 가톨릭은 성경이 교회의 성전이라는 맥락에서 발생했고, 바로 그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이것이 소위 카더라를 중시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가톨릭 교회에서 말하는 '성전'은, 성경을 발생시켰고 성경을 해석해온 고대 교회의 맥락 중, 교회가 오랫동안 신앙으로 받아들여온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당연히 문헌 증거 등이 요구된다. 가령 고대 교회의 어느 문헌에 언급이 되었다 하더라도, 교회가 신앙으로 받아들여온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그냥 '문헌'이지 '성전'까지는 아니다. 가톨릭 교회에서 초대 교회로부터 이어져 오는 성전뿐만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생겨난 각종 생활규범이나 예법 등에도 '전승'이라는 말을 써서 종종 오해를 부르지만, 이러한 자잘한 '전승'들이 사도적 성전과 같은 권위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114] 제도권 가톨릭 신학은 "개별 전통들(traditiones)을 과대평가하여 ‘단 하나의 거룩한 전통(Traditio)'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115]하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다.

또한 가톨릭의 계시론은, 성경에 대한 명제들을 고대 수준에서 박제하여, 앵무새처럼 되풀이하자는 의미도 아니다. 계시에 대한 교회의 이해가 시대적 맥락에 불가분으로 결합된 건 당연히 가톨릭 교회도 인정하며, 따라서 당연히 가톨릭 교회의 성경 이해는 '발전'이 가능하다. 오랫동안 가톨릭이 신앙으로 받아들여온 성전들이, '명제를 고정시켜 박제한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각각의 시대에 정당한 해석들을 제공하는 일종의 '엔진'이 된다는 것이 가톨릭 교회의 성전 이해이다. 따라서 가톨릭 교회는 당연하고 정당하게 현대의 비평적 성서주석학을 받아들인다.[116] 더 나아가, 성경에 대한 학술적인 분석에서는 사실 '가톨릭 성서학'이 '비그리스도교 성서학'이나 '개신교 성서학'과 거의 견해 차이가 없다. 단지 현대 성서학의 견해 중 특정한 견해를, 개별 가톨릭 성서학자 차원이 아니라 '가톨릭 교회'의 차원에서 책임질 수 있다는 게 가톨릭 성서학의 독특함이다. 가령 2022년에 원서가 발간된 권위 있는 가톨릭 주해서인 《21세기 제롬 성경 주해》The Jerome Biblical Commentary for the Twenty-First Century 머리말에서는, 오늘날 성서학에서 교단간의 차이가 얼마나 미미한지, 그러면서도 왜 지금도 '가톨릭 성서학'이 필요한지를 이렇게 설명한다:
현대 성서학에서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는 교회일치적 성격이 짙다는 점이다. 개신교. 정교회, 가톨릭의 간행물은 가톨릭과 개신교의 신학교, 그리고 신학대학에서 성경 교과의 참고 문헌으로 높이 평가된다. 가톨릭과 개신교는 '성서학회(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와 '신약성경학회(Society for New Testament Studies)'처럼 교파적으로 중립적이고 전문적인 학회뿐만 아니라, 명시적으로 '미국가톨릭성서협회(Catholic Biblical Association of America)'라고 고백하는 기관에서도 회원 자격을 공유하고 있다. 개신교와 정교회 학자들은 로마 가톨릭 학자들과 함께 협회에서 공식적인 직위를 맡고, 편집 위원회에서 활동하며, 공식 기관지인 〈계간 가톨릭 성경The Catholic Biblical Quarterly〉에 기사를 기고한다. 이와 같은 현상은 구약성경과 초기 그리스도교의 유다교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기여하는 글을 쓰는 유다인 학자들뿐 아니라, 신약성경 해석 자체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유다인 학자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가톨릭 성서학의 한 산물로서 이러한 주해 자료를 제공하는 데 여전히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이전 두 판에서 우려했던 바는,[117] 이 선택이 혹여 개신교나 유다교의 성서학에 대한 거부나 의심으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오히려 우리는 가톨릭 안팎의 동료들에게 성경 해석에 대한 가톨릭의 접근법을 특징짓는 고유한 관점들을 제공하고자 한다. 이러한 특성 중 상당 부분이 특히 주류 개신교나 정교회와 공유된다 해도, 가톨릭의 성경 해석은 궁극적으로 가톨릭 신앙 공동체에 책임이 있으며, 가톨릭 전례, 영성, 그리고 교회론의 특징적이고 본질적인 역할에 대한 관심을 반영해야 한다.[118]
즉 성서학에서는 사실 오늘날에 가톨릭과 메인라인(근본주의X) 개신교의 차이는 거의 없는 것에 가깝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 해석의 궁극적 책임은 가톨릭 '교회'에 있다고 가톨릭 신앙은 믿는다. 또한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성전에 대한 견해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아주 유명한 예시로 성모 마리아에게 예수 외의 자녀가 있었는지의 해석 차이를 보자. 성서학적 분석("인간 저자가 동시대 독자에게 1차적으로 말하고자 한 문필적 의미는 무엇인가?")으로 말하자면, 성경 그 자체에서는 이를 알 수 없다. 어느 해석이 그나마 더 개연성 있는지 견해 차이는 학자 개개인마다 있지만, 남아있는 단서가 너무 적으니 성경 텍스트만으론 어느 쪽으로도 확실하게 확답할 수 없다는 데는 가톨릭 학자이든 개신교 학자이든 동의한다. 하지만 평생동정이라는 성전에 근거하여, 가톨릭 교회는 성모 마리아에게 예수만이 유일한 자녀였다고 확언한다. 물론 이는 성전이 성경을 찍어누른 것이 아니라, 성전으로부터 성경과 모순 없는 해석을 도출한 것이다.

즉 가톨릭은 성경이 그 자체로 하느님의 말씀이며 (신앙과 도덕에 대해) 무오류한 진리를 담고 있다고 여기지만, 해석의 차원에서는 어디까지나 교회전승의 맥락 안에서 그 내용을 이해하라는 것.
필리포스가 달려가 그 사람이 이사야 예언서를 읽는 것을 듣고서, “지금 읽으시는 것을 알아듣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누가 나를 이끌어 주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서, 필리포스에게 올라와 자기 곁에 앉으라고 청하였다. (사도 8,30-31)

무엇보다 먼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어떠한 예언도 임의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예언은 결코 인간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성령에 이끌려 하느님에게서 받아 전한 것입니다. (2베드 1,20-21)

내가 늦어지게 될 경우, 그대가 하느님의 집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교회로서, 진리의 기둥이며 기초입니다. (1티모 3,15)

교리 중에서도 성경에 명시적으로 언급된 것이 아닌, 교회의 전승(성전)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내용들을 몇 가지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말로써 구전돼 온 전승의 존재를 암시하는 내용이 다음과 같이 성경에도 나와 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이 밖에도 많이 있다. 그래서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하면, 온 세상이라도 그렇게 기록된 책들을 다 담아 내지 못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요한 21,25)

나는 여러분을 칭찬합니다. 여러분이 모든 일에서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전한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코린 11,2)

배가 고픈 사람은 집에서 미리 먹어, 여러분의 모임이 심판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그 밖의 것은 내가 가서 일러주겠습니다. (1코린 11,34)

그러므로 이제 형제 여러분, 굳건히 서서 우리의 말이나 편지로 배운 전통을 굳게 지키십시오. (2테살 2,15)

형제 여러분,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지시합니다. 무질서하게 살아가면서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을 따르지 않는 형제는 누구든지 멀리하십시오. (2테살 3,6)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주어지는 믿음과 사랑으로, 나에게서 들은 건전한 말씀을 본보기로 삼으십시오. (2티모 1,13)

한편 개신교는 가톨릭보다는 상대적으로 전통에 대해서 회의적인 관점을 취한다. 다만 가톨릭을 거부한다는 틀만 공통될 뿐, 개신교 역시도 사실은 각 교단의 내부 전통을 중시하며, 스스로의 교단이 성경에 대한 정당한 해석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실 루터교회이든 장로회이든, 대부분의 개신교 교단들은 자신들보다 급진적인 교단들에 대항하여, 성경의 해석 전통과 교부들의 권위를 호소한다. 그러나 동시에, 교부들로부터 이어 온 가톨릭 교회의 해석 전통을 흔히 바리사이에 비유하기도 하며 그에 대항해서는 성경의 자증성을 주장한다. 이러한 이중적 입장으로 인해 개신교 신학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딜레마를, 성공회 신학자인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자조적으로 이렇게 평가했다.
성찬에 대한 개혁자들 사이의 심각한 불일치는 관주도적 종교개혁[119]을 항구적으로 두 개의 운동으로 분리시키는 일 이상의 역할을 했다. 그것은 루터가 아주 단순하다고 여겼던 그런 성경구절들의 해석에서도 일치를 이루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널리 증명해보였다. 1510년대 말과 1520년대 초에는 낙관적인 성경주석관이 일반 그리스도인이 성경을 이해할 수 있다는 주장에서도 분명히 나타났다. 그러나 1530년대 말에는 일반 그리스도인이 오직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에 능숙하며, 복잡한 언어학적 이론들에 익숙한 경우에만 성경을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프로테스탄트 성경독자들은 성경해석의 수단으로서 어떤 '필터'를 제공받았다. 이러한 '필터'의 한 예로, 루터의 『소요리문답』(Lesser Catechism, 1529)은 독자들에게 성경을 이해하는 한 틀을 제공했다. 그런데 가장 유명한 성경 안내서는 칼빈의 『기독교강요』 ㅡ 특히 1529년의 최종판 ㅡ 였다. 이 책은 처음에 칼빈이 루터의 요리문답을 모델로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541년도 불어판 서문에서 칼빈은 『기독교강요』가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참으로 성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나아가게 하는 열쇠나 입구와 같게 될 것"이라고 진술했다. 달리 말해서 독자들이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성경해석의 수단으로 사용해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쯔빙글리에게 쮜리히 시와 쮜리히 교회는 사실상 하나였고 동체였다. 다음 장에서 살펴볼 것처럼, 이것은 그의 교회론 및 성례론과 관련하여 특별히 중요한 문제였다. 결국 시의회는 신학적이고 종교적인 문제들에 개입할 권리를 갖게 되었다. 쮜리히의 종교개혁은 더 이상 올바른 성경해석에 관한 문제로 구애받지 않게 되었다. 시의회는 사실상으로 그들이 ㅡ 교황이나 공의회가 아닌 시의회가 ㅡ 쮜리히 시민들을 위해 성경을 해석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선언했으며, 이러한 권리를 행사할 의도가 있음을 알렸다. 성경에는 실로 해석하기 애매한 경우들이 있는데, 시의회가 성경 해석자로 활동할 것을 일방적으로 결정함에 따라 쮜리히 종교개혁의 정치적 성공이 실질적으로 보장되었다. 바젤과 베른에서도 쮜리히의 모델에 근거한 비슷한 결정이 내려져 스위스 종교개혁을 강화시켰으며, 1530년대 중엽에 제네바를 정치적으로 안정시킴으로써 간접적으로 칼빈의 종교개혁의 성공을 이끌었다.

초기 개신교 내부의 세력 갈등은 성경해석의 권위가 누구에게 있느냐의 문제와 관련된다는 사실이 명백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권위를 갖고 있다고 인정받은 사람은 누구나 종교개혁의 다양한 갈래들의 이데올로기 ㅡ 곧 사회적, 정치적인 견해 ㅡ 에 사실상으로(de facto) 통제를 받고 있었다. 비슷한 방식으로 교황의 세속적 권위는 로마가톨릭교회에 대한 권위 있는 성경해석자로서의 역할과 결부되어 있었다.

.... 관주도적 종교개혁이 초기에는 각 사람이 성경해석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후에는 사회적, 정치적 결과를 염려하게 되었다. 1525년의 농민반란은 루터를 비롯한 일부 사람들에게 솔직히 개별 신자들(특별히 독일 농민들)은 성경을 해석할 능력을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성경의 중요성을 그처럼 강조했다가 나중에 덜 교육받은 멤버들이 동일한 성경을 해석하게 될 것을(달리 말해서 관주도적 종교개혁자들과 다른 해석에 도달하게 될 것을) 두려워하여 성경으로 직행하는 일를 거부했던 것은 루터파 종교개혁의 아이러니의 하나이다. 예를 들면, 뷔르템베르트 공국의 학교규칙은 가장 유능한 학생들에게만 최종 학년에 신약성경을 배우는 일 ㅡ 라틴어나 헬라어로 배워야 했다 ㅡ 을 허락하도록 규정했다. 어쩌면 훨씬 다수였을 나머지 보통 학생들은 그 대신에 루터의 『소요리문답』을 읽도록 규정되었다. 직접적인 성경해석은 사실상 이렇게 소수의 특권을 지닌 집단의 몫이 되었다. 거칠게 표현해서 그것은 성경 해석자로 교황을 지목하는가, 루터나 혹은 칼빈을 지목하는가의 문제가 되었다. '성경의 명료성'의 원칙은 종교개혁 내부의 보다 급진적인 사람들이 성경을 해석했던 용례에 비추어 조용히 무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슷하게 모든 사람이 신실하게 성경을 해석하는 권리와 능력을 갖고 있다는 이념은 결국 오직 급진파들만의 소유가 되었다.
앨리스터 맥그래스(Alister McGrath) 씀, 최재건 번역, 『종교개혁사상』(Reformation Thoughts: An Introduction) 제3증보판 255-259쪽

개신교의 '성경 외의 성전은 불필요하고 성경만큼의 권위를 지닐 수도 없지만, 그러나 성경은 그 자체로 성경임을 완전하게 증거하기에 오직 성경만이 유일하게 권위를 지닐 수 있다'는 자증성 주장에 대한 가톨릭(과 정교회) 입장에서의 반박은, 그래서 도대체 성경 어디에 성경만이 교리의 유일한 바탕이 된다고 자증하는 내용이 있느냐?는 것. 역사적으로, (현재엔 외경이나 위경 취급받거나 교부들이 쓴 문헌들도 경전으로서 읽히던) 초세기 후 AD 4세기 말에 성경 목록을 73권의 정경으로 확정한 건, 틀림없이 AD 1세기의 초대교회 시기부터 주교들과 교부들로부터 전승돼 온 성전으로 인한 보편교회의 권위이지, 성경의 어떠한 책 안에도 '무오류한 진리를 담은 정경 목록은 73권(혹은 66권)이다'라고 기록된 게 아니며 '성경의 각 내용은 성경에 직접적으로 명시된 성경 구절만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쓰여있지도 않다.[120]

애초에, 시기적으로 뒤늦게 교회의 결정을 통하여 정경이 된 경전 목록신앙의 유일한 기준이자 척도로 삼는 것은 어떠한 역사적, 객관적인 근거가 없으며 오히려 선후관계를 거꾸로 뒤집기조차 하는, 굉장히 인위적이고 자의적인 믿음으로 본다. 1~2세기부터 작성된 여타 교부 문헌들에도 현재까지 교회에 남아 있는 여러 성사와 관습들의 핵심적인 형태가 교차적으로 남아있는 것은 덤. 결국 자기 자신이 가톨릭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개신교 역시도 가톨릭에 대해, "오직 성경대로 따르지 않고 가르치지도 않는 비성경적인 가톨릭"이라 비방하며 스스로를 대비시키듯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한다기보단, 실상을 따져보면 기존의 가시적인 보편교회를 대체하는 개신교 신학자들의 권위를 새로이 내세우고 거룩한 전통(성전)을 대신해, (성경 어디에서도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스스로가 만들어 낸 '개혁의 전통'을 통하여 성경 외부의 관점을 사용해 성경을 해석하게 되었을 뿐이라는 것.

또한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되는 중요한 사실은, 가톨릭의 성경과 성전에 대한 관계에서, "교리의 '일부는' 성경에 있고 '일부는' 성전에 있다"고 가톨릭이 교의적으로 확정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해석해도 가톨릭 교리와 충돌하는 건 아니고 또한 매우 인기 있는 해석이지만, 트리엔트 공의회는 "이 진리와 규범이, 기록된 책들'뿐만 아니라' ... 전승들 안'에도' 보존되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트리엔트 공의회 첫째 시기 제1교령)고 했을 뿐이다. 따라서 "가톨릭 교리의 모든 요소가 어떠한 방식으로든 간에 성경 안에 들어 있다"고 하더라도 가톨릭 교리와 모순되지는 않는다.
Sola scriptura[121]라는 원리는 궁극적으로 자기를 지양하는 공리이다. 적어도 그것이 무분별하게 이해될 때에는 그런 것이다. 이것은 Sola scriptura라는 종교개혁의 가르침이 성서의 소위 축자영감론(Verbalinspiration)의 구상과 내적이고 필연적으로 결합되었기 때문에 역사실증적으로 부당하며, 오늘날의 프로테스탄트 신학에서도 이제는 가르치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서도 미루어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성서가 역사적이고 매우 분화된 모습으로서의 생성에서, 즉 독립해서 그것만으로, 말하자면 하느님께서 직접 초래한 산물처럼 이해되는 한에서 사람은 성서에 교회의 생활한 증언에 전혀 의존하지 않는 그런 권위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그러한 성서의 절대적인 축차영감설의 원리를 실제로 포기하지 않은 채, 또한 당시의 종교개혁 시대의 의미에서 Sola scriptura라는 원리를 견지할 수는 없다. 그것은 자기 모순에 빠지든가, 또는 결국은 오직 Sola scriptura가 아니라 둘째 것, 즉 인간의 불가피하고 실존적인 영의 체험을 유일한 신앙의 원리로 삼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사람은 이미 성서에서, 즉 구체적인 책들에서 참 성서(하느님 말씀)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원리, 즉 고작 성서 형성의 동기를 부여하는 원리, 궁극적으로 성서를 형성하는 원리라는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런데 성서 그 자체가 성서를 증언한 교회 내의 존재라는 것을 전제한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즉 성서에 쓰여진 것은 원래 모두 사도들의 선교이며 그밖에는 다른 어떠한 전통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Sola scriptura라는 원리를 지지할 수 있다. 가톨릭 그리스도인에게도 전통과 교도직의 이해는 오직 성서 안에서만 그 내용을 이해할 원천과, "다른 것에서 규범을 받지 않는 규범"을 가진다. 적어도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의 시대에서는 성서에서 이야기되지 않아도 사도시대부터 전해진 특정한 신앙 내용을 중개하는 그러한 전통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신학자도 많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이것은 가톨릭의 교도직이 구속력을 가지고 가르치는 바가 아니며, 이에 관해서 이론(異論)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그러한 생각을 한다고 해도 아직도 그러한 전통이 성서를 규범으로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 그러므로 가톨릭이기 위해 Sola scriptura라는 원리에 이론(異論)을 주창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것은 가톨릭의 교의학에서 말해도 인정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정해야 할 원리인 것이다.
- 카를 라너(Karl Rahner). 『그리스도교 신앙 입문』(Grundkurs des Glaubens) 469-473쪽[122]

한편 교리 차이는 아니지만, 성서학에 대한 현장 사목 환경에서의 분위기 차이도 존재한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성서학에 있어서는 오늘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