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2 06:13:51

예수의 형제 야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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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설명3. 행적

1. 개요

예수의 형제이자 신약 야고보서의 저자이다. 의인 야고보(James the Just)라고도 불린다. 외경 야고보 복음서가 있다.

초대 예루살렘 신자들의 리더로 추정된다. 바울로의 요청으로 열린 예루살렘 회의에서 너무나도 유명한 '이방인들에게 할례와 율법을 강요하지 말라' 결정을 내렸다.

신약, 초대교회 문서에 의하면 예수의 형제, 동생으로 나온다. 개신교에서는 나자렛의 요셉성모 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난 예수의 동복형제로 해석한다.

가톨릭정교회유대인의 언어 관습, 성경에 나타난 다른 상황, 초대교회에서 이야기된 전승 등을 근거로 성모 마리아가 평생 동정이었다고 믿기에 야고보를 예수의 이부형제로 보지 않고 가까운 친척 내지는 의붓형제로 본다.

이슬람에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쿠란에 예수(이사)의 형제가 있었다는 언급 또는 없었다는 언급은 명시적으로는 없다. 보통 예수의 형제의 존재는 이슬람에서 논의 자체가 되지 않는다. 다만 하디스 일부는 명확하게 예수는 형제가 없다고 언급하며, 하디스학을 체계화한 이븐 하자르도 하디스에 따르면 예수는 형제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2. 설명

예수의 가족이 처음부터 예수의 사역에 동참하였는지 알 수 없다. 마태오의 복음서에 예수가 제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가족은 집 밖에서 기다리는 장면이 나온다.
46 예수께서 아직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실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밖에 와 서서 예수와 말씀을 나눌 기회를 찾고 있었다.
47 그래서 어떤 사람이 예수께 “선생님, 선생님의 어머님과 형제분들이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시겠다고 밖에 서서 찾고 계십니다.” 하고 알려드렸다.
48 예수께서는 말을 전해 준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물으셨다.
49 그리고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바로 이 사람들이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다.
50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 마태오의 복음서 12장 (공동번역)

예수의 승천 직후 예수의 가족도 제자들과 함께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드린다. 이 시기 예수의 가족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13 성안에 들어온 사도들은 자기네가 묵고 있던 이층 방으로 올라갔는데 그 일행은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아, 필립보, 토마,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혁명당원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 들이었다.
14 그 자리에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비롯하여 여러 여자들과 예수의 형제들도 함께 있었다. 그들은 모두 마음을 모아 기도에만 힘썼다.
— 사도행전 1장

예수의 형제 야고보는 베드로, 요한과 함께 예루살렘 신자들의 지도자격이었다.
9 그뿐만 아니라 기둥과 같은 존재로 여겨지던 야고보와 게파[1]와 요한도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이 은총을 인정하고, 나와 바르나바에게 오른손을 내밀어 친교의 악수를 청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방인들에게 전도하고 그들은 할례받은 사람들에게 전도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10 한 가지 그들이 우리에게 요구한 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기억해 달라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바로 내가 전부터 열심히 해오던 일이었습니다.
— 갈라디아서 2장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결정적인 장면 중 하나인 이방인에게 할례, 율법 강요 금지 결정을 내렸다.
13 두 사도가 말을 마치자 야고보가 나서서 이렇게 말하였다. “형제 여러분, 내가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14 하느님께서 이방인들을 돌보시어 그들 가운데서 처음에 당신의 백성을 뽑아주시게 된 경위를 시몬이 말해 주었습니다.
15 이 사실은 예언자들의 말과도 일치합니다. 예언서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6 ‘그 뒤에 내가 다시 돌아와 무너진 다윗의 집을 다시 지으리니 허물어진 곳을 다시 고치고 그것을 바로 세우리라.
17 그리하여 살아 남은 백성들이 다 주를 찾고 내 백성이 된 모든 이방인들까지도 모두 주를 찾게 되리라.
18 오래 전부터 이것을 알게 해주시는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9 그러므로 내 의견은 하느님께로 돌아오는 이방인들을 괴롭힐 것이 아니라
20 다만 우상에게 바쳐서 더러워진 것을 먹지 말고 음란한 행동을 하지 말고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피를 먹지 말라고 편지를 띄웠으면 합니다.
21 예로부터 어느 도시에나 모세의 율법을 풀이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 율법을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읽어왔습니다.”
— 사도행전 15장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기원후 62년 대제사장 안나스(아나누스)에게 투석형으로 사형당했다고 한다. 순교에 관해 헤게시푸스가 기록한 전승은 다음과 같다.
모든 이로부터 의인이라 불리운 주님의 형제 야고보는 사도들로부터 교회를 전해 받았다. 그는 어머니의 태중에서부터 거룩하였다. 그는 포도주나 발효 음료를 마시지 않았고, 생명이 있는 음식을 먹지 않았다. 얼굴에 면도도 하지 않았고, 기름을 바르지도 않았고, 목욕도 하지 않았다. 오직 야고보만이 성소에 들어갈 자격이 있었다. 그는 홀로 성전에 들어가는 습관이 있었는데 종종 무릎을 꿇고 백성들을 위해 용서를 간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처럼 쉬지 않고 백성들을 위해 무릎 꿇고 하나님께 기도했기 때문에 그의 무릎은 마치 낙타의 발처럼 딱딱해졌다. 그의 위대한 거룩함에 의해, 그는 예언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의인이요 오블리아라고 불리었다. 오블리아란 그리스어로 “백성의 요새”와 “정의”를 뜻한다.
일곱 분파의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이 와서 그에게 예수께 이르는 길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그분이 구세주라는 사실이라고 대답했다. 이 대답을 듣고 어떤 사람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었지만, 일부 유대인들은 부활, 그리고 장차 그가 모든 사람들의 공로에 따라 상급을 주러 오신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과 통치자들이 예수를 믿게 되자 율법학자들, 바리새인들 사이에서 동요가 일어났다. 그들은 많은 백성이 예수를 메시아로 기대하는 것을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함께 야고보에게 가서 말하였다.
“백성들은 예수를 메시아로 기대하여 그를 좇음으로써 잘못된 길로 가고 있습니다. 그들을 제지하여 주십시오. 유월절을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오는 모든 이들에게 예수에 관해 올바르게 권면하여 주시기를 당신에게 간청합니다. 우리는 모두 당신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우리와 모든 사람들은 당신이 의로운 사람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니 높은 곳, 당신의 모습이 뚜렷이 보이고 모든 사람들이 당신의 음성을 쉽사리 들을 수 있도록 성전의 꼭대기에 서십시오.”
그렇게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은 야고보를 성전의 꼭대기에 세우고 그에게 외쳤다. “우리가 신뢰하는 의인이여, 백성들은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를 좇아 잘못된 길로 가면서 우리에게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가 문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예수의 문이 무엇인지 알려주십시오.”
그러자 야고보는 큰 소리로 대답했다. “왜 당신들은 나에게 인자이신 예수에 관해 묻는 것이오. 그 분은 하늘 위, 전능하신 분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고, 장차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오실 것입니다.”
그러자 많은 이들이 동의하며 야고보의 증언을 찬송하였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그러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이 서로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예수에 관한 이 증언을 허용하는 잘못을 범했습니다. 그러니 올라가서 그를 아래로 던집시다. 그러면 사람들이 두려워서 그를 믿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외치며 말하였다. “오! 오! 의인이 길을 잃었도다.”
이사야서에 기록된 바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 그들은 그들의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임이요,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이는 그의 손으로 행한 대로 그가 보응을 받을 것임이니라.”라는 말씀이 성취되었다.
그들은 올라가서 그를 아래로 떨어뜨리고 “의인 야고보를 돌로 치자.”라고 말하였다. 그들은 야고보가 아래로 떨어졌으나 아직 죽지 않았음으로 그에게 돌을 던지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야고보는 몸을 돌려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주 하느님 아버지, 그들을 용서하소서.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돌을 던지고 있을 때 예레미야가 말한 레갑의 자손인 제사장이 소리치며 말했다. “그만두시오. 당신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의인이 당신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때 어느 축융업자가 피륙을 두드릴 때 사용하는 곤봉으로 의인의 머리를 쳤다. 그리하여 야고보는 순교하였으며 사람들은 성전에 야고보를 매장하였다. 이곳에는 아직도 그의 비석이 남아있다. 야고보는 헬라인들과 유대인들에게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충실히 증거한 증인이 되었다. 이 일이 있은 직후 베스파시아누스가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장악하였다.
― 헤게시푸스 회고록 제5권

이 사건에 대한 또 다른 기록인, 그리고 그 진위 여부로 인해 논란이 있는 유대인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 37 ~ c. 100)의 저서 『유대인 고대사(The Antiquities of the Jews)』의 기록에서는 이렇게 서술되고 있다.
황제는 베스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알비누스를 유대인 행정관으로 파견하였다. 한편 아그립바 왕은 요셉을 대제사장에서 해임시키고 아나누스의 아들인 같은 이름을 가진 아나누스를 대제사장으로 임명하였다. 사실 그의 부친인 늙은 아나누스는 많은 행운을 누렸다고 사람들은 말하였다. 그에게는 아들이 다섯 있었는데 그들이 모두 대제사장에 올랐고, 그 자신도 오랫동안 대제사장의 명예를 누렸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다른 대제사장들에게는 없었던 일이다. 그런데 아들 아나누스의 성격은 오만하였으며 몹시 무례하였다. 그는 내가 이미 지적한 것처럼 모든 유대인들 중에서 가장 엄격한 심판을 내리는 사두가이파를 추종하였다. 아나누스는 베스도가 죽고 알비누스 신임 행정관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권위를 행사할 적절한 기회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산헤드린을 소집하여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의 형제 야고보와 다른 몇 명을 소환하였다. 그는 율법을 어긴 혐의로 그들을 고발하고 돌로 쳐죽이도록 보냈다. 그러나 예루살렘 시민들 중 가장 공평하고 율법 위반을 불안하게 생각하던 사람들은 아나누스가 행한 일을 싫어했다. 그들은 아나누스가 그런 행동을 못하게 명령하도록 요구하기 위해 왕에게 은밀히 사람을 보내었다. 왜냐하면 아나누스가 부당하게 행동한 것이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알렉산드리아로부터 오는 알비누스를 만나러 갔고, 그에게 아나누스가 허락 없이 산헤드린을 소집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알렸다. 그들의 말을 듣고 알비누스는 몹시 화가 나서 아나누스에게 문책할 것이라는 서신을 보냈다. 그리고 아그립바 왕은 아나누스를 대제사장에서 3개월 만에 해임시키고 댐네우스의 아들 예수를 후임 대제사장로 임명하였다
―『유대인 고대사』, 20, 199-203

바울로가 교회의 기둥으로 베드로, 요한과 함께 언급할 정도로 중요한 인물이다.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이자 유대계 신자들이 신뢰하던 인물로서, 갈라디아서에서 바울로가 예루살렘 상황을 전할 때 베드로와 요한보다 먼저 언급했을 정도였다.

신학적으로 바울로와의 어느 정도 긴장 관계가 발견되는데, 이러한 면모가 갈라디아서의 안티오키아 사건에서 발견된다. 베드로는 여기서 둘 사이의 중간 성향에 위치해 있었다. 이 셋이 관련된 안티오키아 사건이 정확히 어떻게 결론이 났는지는 갈라디아서만으로는 알기 어렵지만[2], 아무튼 야고보가 초기 교회의 핵심 지도자 중 한 명이라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3. 행적

  • 야고보는 예수님의 형제이다(마태복음 13:55; 마가복음 6:3; 갈라 1:19).
  • 예루살렘 교회는 베드로요한과 더불어 야고보의 지도를 받고 있었다(사도 15:13-21; 갈라 2:9).[3]
  • 야고보가 12사도의 한 사람 소 야고보인지는 이견이 있다. 그와 별개로 예수님의 형제(친척)로 신자들에게 신임을 얻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야고보는 예루살렘 총회에서 베드로와 함께 매우 설득력있고 타당한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이방인의 할례에 대한 중요한 결정을 내리도록 만들었다(사도 15:13)
  • 사도 바울로는 다마스쿠스 도상에서 회심한지 얼마 되지 않아 예루살렘을 방문하였는데, 이때 야고보와 처음 만났다(갈라 1:19; 2:9, 12).
  • 바울로가 제3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에도 야고보를 만났다(사도 21:18).
  • 바울로에게 정결예식을 행하라고 조언했던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야고보였다(사도 21:17-26).
  • 바울로가 상주하고 베드로가 잠시 머물던 안티오키아에 야고보는 사절단을 보낸 적이 있었다(갈라 2:12).
  • 감옥에서 풀려나온 베드로는 자기의 석방 소식을 먼저 야고보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하였다(사도 12:17).
  •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가 처음부터 예수께서 메시아라는 진리를 믿었던 것은 아니었다(요한 7:5).
    • 그러나 십자가 사건이 있은 후에는 사도들과 함께 행동하였음을 알 수 있다(사도 1:14).
    • 따라서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15:7에 언급된 야고보는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임이 분명하다. 또한 이 야고보는 야고보서의 저자인 것 같다. 그는 구약에 대하여 매우 정통했던 인물이었음이 들림없다(사도 21:17-26; 갈라 2:12).


[1] 게파는 베드로이다.[2] “바울로는 "오직 믿음으로만"(sola fide)을 주장하고 있다. …… 게파(베드로)는 두 맷돌, 야고보와 바울로 사이에 끼었다. …… 게파는 유대인 선교를 책임진 사람으로서 이런 상황에선 (게파를 인격적으로 모욕하기까지 한) 바울로와의 충돌을 결연히 감수하고자 했을 것이다. 게파는 바울로와는 달리, 기꺼이 타협할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필경 그는 훗날을 위해 그런 타협을 바랐을 것이다. 이 충돌이 어찌 끝났는지 바울로는 말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결말이 났다면, 그에 관해 갈라디아 교우들에게 입 다물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by 요아힘 그닐카(Joachim Gnilka), 《바울로》, 분도출판사, 2008, 159-161p[3] 참고로 예루살렘 총회가 열리던 시기에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는 이미 순교를 당한 후였다(사도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