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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실로, 지금까지의 역사적 예수 연구는 연구자의 가장 이상적인 인물상을 그려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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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트 슈바이처[1][2]}}}{{{#!wiki style="text-align:right"
양식 있고 성실한 현대인이라면 예수가 '희미한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거나 '인간적으로 미화된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 성경 학자나 역사학자치고 흔히 통용되는 의미의 '예수의 일생', 곧 예수의 전기傳記는 근본적으로 쓸 수 없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예수에 관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실속 있는 증언들은 신약 성경의 증언들뿐인데, 이것들은 신앙에 입각한 증거 제시지 연대라든가 장소라든가 심리에 대해 순전히 정확성만을 기하면서 작성된 체계적인 조사 보고서가 아니다. 그러나 바로 이 증언들을 통하여 이 역사적 인물에 관한 가치 있는 몇몇 자료들을 수집할 수 있는 가능성은 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고백되는 이 예수를 공정하게 다루어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의견 일치를 보이고 있는 최소한의 기초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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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프 도레(Joseph Doré)[3]}}}{{{#!wiki style="text-align:right"
'역사적 예수'라는 개념은 사료 비평적인 방법론을 적용하여 역사적 인물 예수를 연구하는 개념을 의미한다. 즉, 역사학에서 쓰이는 1차 문헌 비평을 신약성경에도 적용하는 개념[4][5]으로, 유신론이냐 무신론이냐와는 다른 개념이다. 즉, '역사적 예수'라는 개념은 "예수는 하느님의 위격인가, 아니면 그냥 사람인가?" 가 아닌, "예수는 어느 시대, 무슨 지역, 어떤 사람들에게 메시아로 여겨졌는가? 만약 그렇다면 어떤 양상으로, 무슨 이유로 그랬는가?" 등을 연구하는 분야이다. 따라서 오늘날 '역사적 예수' 분야는 성서비평학과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 그리스도교를 제외한 다른 종교인이나 심지어 무신론자도 공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예수의 이미지 향상에는 크게 기여했지만, 종교적 관점에서 보면 예수의 신성을 전제하지 않기에 신학적으로 상당히 경계되었다. 역사적 예수라는 개념 자체는 딱히 그리스도교에 반대되는 개념은 아니지만, 연구하는 학자 개인이 그리스도교의 교의와 충돌하는 해석을 내리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서비평학과도 엮여있기에 분야 자체는 서방 그리스도교 안에 수용되었다.
영어, 이탈리아어 위키피디아도 기독교관을 배제한 역사적 관점에서의 예수 문서를 역사적 예수라고 칭하지만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 스페인어판에서는 나자렛의 예수를 사용하기도 한다.
2. 연구의 시작
예수에 관한 첫 비판적인 전기가 쓰이기는 지금부터 겨우 200여년밖에 안 된다. 레싱이 라이마루스H. S. Reimarus의 유고집을 정리하여 《예수와 그 제자들의 목표Le dessein de Jésus et de sed disciples》라는 이름으로 출판한 것이었다(불어판도 1778년에 나왔다). 이 행보는 새로운 것이었으며 '계몽주의 시대'의 인간과 그때까지 아무런 낌새도 차리지 못한 채 '거룩한' 본문에 탐닉하고 있던 세계와는 점증하는 단층을 역력히 보여 주었다.
(중략)
이 무렵의 역사가들은 본문이 가리키는 지시물을 대뜸 사실적史實的인 것으로 대하였다. 그다음에 이들은 신앙에 입각한 일체의 해석을 뿌리치고 그와는 전혀 '다른' 예수의 '역사'를 심리적으로 재구성하려 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잊어버렸던 예수의 역사적인 모습을 되찾을 수 있으며 아울러 해석이라는 겉껍질을 벗겨 내고 '있었던 대로의 사실들'이 제모습을 드러내리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바로 라이마루스가 개척한 길이었고, 에르네스트 르낭Ernest Renan이 그의 책 《예수의 일생Vie de Jésus》(1863년 발행)에서 밟은 길이었으며, 그 밖의 많은 저자들이 똑같은 역사주의라는[6] 함정에 빠져 걸어간 길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해괴한 현상을 지켜볼 수 있다. 경전의 본문이라는 가리개 저 너머에서 알아냈다는 이른바 예수는 이상하게도 그 역사가의 모습을 닮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예수는 때로는 계몽 사상의 선생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낭만주의의 천재가 되기도 하며, 칸트와 같은 철학자가 되기도 한다. 차라리 청교도적이라고 할 도덕가 또는 사회 혁명의 투사, 터무니없는 거친 말로 세상의 종말을 통고하는 사이비 예언자로도 나타난다. 알버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는 1906년에 발표한 그의 유명한 《예수 생애의 연구사Histoire de la recherche sur la vie de Jésus》라는 책에서[7] 이런 연구 방법의 병폐를 정확하게 진단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 병폐를 고치지도 못했고 더구나 그 기원을 충분히 밝혀 주지도 못했다.
- 샤를르 페로, 《예수와 역사》, 박상래 옮김(서울: 가톨릭출판사, 2012 개정 1판), 88-90쪽
(중략)
이 무렵의 역사가들은 본문이 가리키는 지시물을 대뜸 사실적史實的인 것으로 대하였다. 그다음에 이들은 신앙에 입각한 일체의 해석을 뿌리치고 그와는 전혀 '다른' 예수의 '역사'를 심리적으로 재구성하려 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잊어버렸던 예수의 역사적인 모습을 되찾을 수 있으며 아울러 해석이라는 겉껍질을 벗겨 내고 '있었던 대로의 사실들'이 제모습을 드러내리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바로 라이마루스가 개척한 길이었고, 에르네스트 르낭Ernest Renan이 그의 책 《예수의 일생Vie de Jésus》(1863년 발행)에서 밟은 길이었으며, 그 밖의 많은 저자들이 똑같은 역사주의라는[6] 함정에 빠져 걸어간 길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해괴한 현상을 지켜볼 수 있다. 경전의 본문이라는 가리개 저 너머에서 알아냈다는 이른바 예수는 이상하게도 그 역사가의 모습을 닮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예수는 때로는 계몽 사상의 선생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낭만주의의 천재가 되기도 하며, 칸트와 같은 철학자가 되기도 한다. 차라리 청교도적이라고 할 도덕가 또는 사회 혁명의 투사, 터무니없는 거친 말로 세상의 종말을 통고하는 사이비 예언자로도 나타난다. 알버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는 1906년에 발표한 그의 유명한 《예수 생애의 연구사Histoire de la recherche sur la vie de Jésus》라는 책에서[7] 이런 연구 방법의 병폐를 정확하게 진단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 병폐를 고치지도 못했고 더구나 그 기원을 충분히 밝혀 주지도 못했다.
- 샤를르 페로, 《예수와 역사》, 박상래 옮김(서울: 가톨릭출판사, 2012 개정 1판), 88-90쪽
일찍이 토머스 제퍼슨이 신성과 기적 이야기를 제거한 예수를 논하는 등, 계몽주의와 맞물려 이 개념은 꽤 오래되었다. 그러나 계몽주의라는 시작에도 불구하고, 이 개념은 계몽주의를 넘어 가톨릭, 메인라인 개신교 등의 연구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리스도교는 엄연히 '나자렛 예수'라는 한 역사적 인물에 대해 무언가를 고백하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다만 사료비평적 방법론 등이 오늘날에 비하면 많이 미흡하던 시기였고[8] 소위 '진짜 예수'라며 내세우는 예수 이미지에 저자 개개인의 모습들이 너무 강하게 투영된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실마리가 된 것은 예수생애연구였다. 그것은 계몽시대의 소산으로, 처음부터 불길한 운세에 있었다. 거기서 예수와 복음서를 미리 갈라놓고 들어가게 된 것은 복음서란 신앙의 기록이며 그런 것으로 읽히기 위한 것이라는 학문적·방법론적 의식에서가 아니라 복음서에서 묘사되는 대로의 예수가 바로 역사상 예수와 똑같지는 않다는 의혹에서 나온 결과였다. 중요한 것은 이 예수를 교의敎義의 굴레에서 해방시켜 예수의 본디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일이라고. 이를 두고 슈바이처는 지적하기를,[9] 이 저자들에게는 예수의 일생을 기술하려 하기보다 좀더 예수 자신의 역사상 사실에 접근하려는 그런 노력이 없었으니, 자기 저서에다가 저자 자신의 미움이나 사랑을 능력껏 불어넣었다고 했다. 그래서 의심에서 벗어나 폭넓은 안목들도 가져온 이 시대는 복음서에 덤벼드는 공격성과 복음서를 두둔하는 호교론이 특징을 이루었다. 아무 전제도 없기를 그처럼 크게들 맹세했던가 하면, 여기서만큼 무전제가 등산시된 예도 드물다. 내놓은 예수상들은 필경 "계몽된 이들"의 그것이 아니라 고도로 주관적인 특징을 띤 것이었다.
- 요아힘 그닐카, 《나자렛 예수》, 정한교 옮김(왜관: 분도출판사, 2002), 14-15쪽
- 요아힘 그닐카, 《나자렛 예수》, 정한교 옮김(왜관: 분도출판사, 2002), 14-15쪽
3. 근황
독일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으로 말미암아 촉발된 '나자렛 예수의 역사성' 논쟁이 1950년대에 그야말로 폭풍우 같은 논전으로 발전했다. 불트만은 종교에서 역사성을 완전히 잘라버려야 한다고 주장했고, 오히려 예수의 역사성에 대한 연구가 예수의 숭고한 가르침을 더럽히고 있다고 비난했다.불트만은 예수를 되물음이란 신학적 의미가 없다고 논박하면서 알아듣기 어려운 표현으로 공식화해 놓기를, 자기로서는 그분의 "와 계심"Gekommensein이라는, 필경 십자가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그것이면 족하다고 했다. 내용상 연속성과 역사상 연속성을 구분하고 설명하기를, 얻어야 할 연속성으로는 내용상 연속성이면 충분하며, 그것은 그리스도 선포Christus-Kerygma를 믿고 받아들임으로써 이루어지는 그런 새로운 자기이해를 수용하고 적응하는 데 있다고 했다. 케세만은 내용성 연속성과 역사상 연속성의 구별을 맹렬히 반박하고, 하나가 다른 것 없이 존재할 수는 없다고 옳게 확언했다.[10] 이로써 그는 예수를 되물음이 신학적으로 필요한 일임을 주장했다. 우리는 여기서 그의 관심사를 그 핵심 내용상으로 동의할 수 있는가 하면, 그를 비롯하여 널리 불트만 학파와 그 후계자들이 역사상 예수에 관한 되물음의 가능성과 관련하여 주장하는 급진적인 비평에는 동의할 수 없다.
-요아힘 그닐카, 《나자렛 예수》, 정한교 옮김(왜관: 분도출판사, 2002), 25쪽
-요아힘 그닐카, 《나자렛 예수》, 정한교 옮김(왜관: 분도출판사, 2002), 25쪽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근래에 이르러 1985년에 로버트 펑크와 존 도미니크 크로산이 주축이 된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가 발족되어다. 크로산은 이미 현대 신학계에서는 그때의 예수, 지금 우리의 예수로 구분하여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2010년 봄에 쓰여진 신학자 스콧 맥나이트의 기고문을 보면 현재 역사적 예수 연구의 위상에 대해 알 수 있다. 맥나이트의 기고문에서는 1980년대에 열린 역사적 예수 연구 세미나의 인원이 5백 명이 넘었었지만, 2010년대 열린 역사적 예수 연구 세미나의 인원이 그 25분의 1인 20명밖에 되지 않아 사실상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는 끝난 것이라고 말한다. 과거 역사적 예수 연구의 1세대인 슈바이처의 '학자들은 스스로 재구성한 예수를 믿는다' 결론이 다시 나온 셈이다.
다만 예수 세미나만으로 역사적 예수를 왈가왈부해서는 안된다. 예수 세미나는 예수의 실제 발언을 가리는 등 역사적 예수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평가 받았지만, 그 일원의 대부분이 미국 서부의 신학자이며 연구 방법이 객관적이지 않다는 등 비판을 받았다. 이는 단지 교의적 예수와 역사적 예수의 차이 때문에 비판을 받는 것은 아니며, '종말론적 예언자'로서의 예수 상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학계 트렌드와 따로 놀고, 크로산의 헬레니즘적 예수상도 학계 일반과는 거리가 있다.[11] 따라서 예수 세미나의 흥망성쇠는 한 단체의 흥망성쇠이지, 역사적 예수 연구가 끝난건 아니라는 것이다. 역사 비평적 방법론으로 연구를 하는데 '연구의 끝'이라는게 있을 수 있다는 것인가?
한편 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해 있을법한 오해를 교정하자면, 이 분야가 '믿음의 예수'를 논박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거나, 혹은 종교계가 받아들이지 못한다거나 하는건 아니다. 일부 급진적 신학자의 반란(?)인 것도 아니다. 21세기 기준으로는, 적어도 서방 그리스도교 안에서는 가톨릭에서도 개신교에서도 성서비평학은 수용되어있고[12] 역사적 예수에 대한 개념은 성서비평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개념이다.
다음 발췌문을 읽는다면 '역사적 예수'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예수는 기적을 행하였는가? 이 질문에는 '예.' 아니면 '아니오.'라고 대답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그러나 성경 학자는 역사가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 질문에 가부간 양자택일하여 대답할 수는 없다. 그랬다가는 그는 자신의 학문의 원칙들을 짓밟는 결과가 될 것이다. 설혹 그 성경 학자가 철학적으로 말해서 하느님의 이례적인 개입이 존재한다는 것을 수락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시인하더라도, 그가 자기 권한과 자격의 한계를 넘어설 수는 없는 것이다. 자칫하면 루르드에서 어느 치유 사실이 기적적이라고 선언하기 위해서 엉뚱하게 주교단의 권위에 호소하는 어느 의사를 닮는 꼴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성경 학자는 이 의사와는 달리, 관련되는 서류를 모조리 손에 넣고 있는 것도 아니다. 설사 이 서류를 가지고 있다거나 기적이라고 일컬어지는 그 사건을 역사가의 입장에서 다시 완벽하게 복원하여 이야기해 줄 수 있다손 치더라도 그는 예수 당대의 사람들과 비교하여 더 나을 것이 조금도 없다. 그래서 그는 결국은 예수의 동작에 놀라게 되고, 그 뜻이 모호하여 여러 가지로 엇갈리는 해석들을 낳게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이와 같은 예수의 동작은 성경 주석가를 이끌어 예수라는 인물과 마주치게 하며, 아울러 그분에 대해서 어떤 태도 결정을 내리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예수라는 인물은 루카 복음서 2장 34절이 말하는 대로 "반대를 받는 표징"이다. 사실 당시에도 예수의 행적을 보고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마르코 복음서 1장 27절에서는 사람들이 "이게 어찌 된 일이냐?" 하면서 놀라는가 하면, 6장 2절에서는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하면서 의아해 한다. 그런가 하면 아예 노골적으로 부정적인 판단도 없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3,22)는 것이었다. 따라서 성경 학자가 자기 학문의 이름으로 어떤 기적 이야기의 역사적 진실을 확인해 준다고 한다면, 그는 자기 독자를 기만하고 있는 것이다. 신앙이란 강요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경우에 역사적인 조사 연구의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것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오히려 이 문제에 관한 참된 의미의 의견 일치가 성경 학자 각자의 기본적인 태도와는 상관없이 성경학계에서 확인되었다는 것이 놀랍게도 하나의 엄연한 현실인 것이다.
학계의 이 의견 일치는 다음 두 가지 점에서 이루어져 있다. 첫째, 예수는 당대 사람들에게 악마 추방자요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 간주되었음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그의 행적 중에서도 특히 그의 악마 추방은 하느님 나라에 관한 그의 선포에 직결되어 있었다는 데에 그 본질적인 특징이 있다는 사실이다. 역사가가 예수의 기적이 사실이라든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확인해 줄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는 당시 사람들이 예수를 사실상 기적을 행하는 사람, 악마 추방자요 치유자로 생각했다는 것만은 분명히 확인해 줄 수 있다. 악마 추방자라든지 치유자라는 낱말이 우리 현대인들에게 별로 좋은 인상을 주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런 낱말들에 늘 나쁜 뜻만을 부여하려 든다면 당치 않다. 그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시대착오를 범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성경학계의 이런 견해 일치는 어디에 근거하고 있으며, 기원 후 1세기의 사람들이 기적에 대해서 가졌던 개념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우리는 과연 예수의 기적 활동을 헬라 세계라는 당시의 역사적 문화적 맥락 안에 정확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의미는 어떠한 것일까? 요컨대 이렇듯 복잡다단한 주제를 놓고 과연 '역사'라는 것을 쓸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은 그 범위가 매우 넓다. 그래서 이제부터 소개하려는 종합적인 개관도 간략할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이를 더욱 발전시킬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가령 기적에 관한 예수의 말씀과 같은, 한 가지 점만을 천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분야에서는 관련되는 자료들이 모두 일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1. 복음서에 나오는 기적의 문제
1) 기원후 1세기의 기적관奇蹟觀
우리는 흔히 기적을 정의하기를 자연의 법칙에 비해서 또는 그 법칙을 거슬러서 일어나는 초자연적 능력이 발휘하는 어떤 행위나 작용이라고 한다. 옛날의 유다인 같으면 이런 기적의 정의에 다소 놀랄 것이다. 더구나 우리가 지금 '기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옛사람들이 '표징들semeia', '이적들terata', '위대한 업적dynameis'이라는 말로 가리키던 것과 정확하게 일치하지도 않는다. 그들에게는 하느님이 이 세상, 따라서 역사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의 직접적인 원인이나 다름없었다. 하느님은 어느 때고 개입하시고 간섭하신다. 그렇다고 그분이 질서를 혼란시키는 것은 아니다. 질서란 그분이 당신 섭리의 계획에 따라 계속적으로 창조하시기 때문이다. 인간이 보기에 하느님의 이 계속적인 개입과 간섭이 때때로 이례적인 성격을 띠고 나타나는 것은 당신이 세상에 현존하신다는 것을 좀 더 특별한 모양으로 드러내고, 당신이 원하시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시려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우주의 삼라만상은 하느님을 표시하고 그분을 가리키는 표지 또는 동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어떤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 놀라운 일들은 세상의 질서의 한계를 뛰어넘기 때문에 우리의 감각과 상식에 큰 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처럼 하느님은 당신의 새로운 뜻을 표징을 통해 알려 주시거나 당신이 보낸 심부름꾼을 사람들이 신임할 수 있도록 그 신원이나 사명을 증명해 주시기도 한다. 또한 선악에 따라 상을 주거나 벌을 내리고 구제도 하신다. 이와 같이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하느님의 기적들이 일어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하느님 계획의 확호성 또는 새로운 변경을 드러내 주는 데에, 또는 역사를 점철하는 그분의 구원 개입救援介入에 대해서 그분의 지배권, 그분이 주님이심을 확인해 주는 데에 목적이 있다. 일명 필론이 말하는 바와 같이 기적은 '구원의 표징'이다(《성경 고대사》 27,7; 지혜 16,6도 참조).
하지만 당시의 일반적인 견해에 따르면, 마귀들도 인간 또는 세상에 대한 저들의 지배권을 확보하려는 시도를 벌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적의 동작이란 그 자체만을 따로 떼어 놓고 볼때 매우 애매모호한 것으로 남게 된다. 기적이란 그것이 지니는 의미로 말미암아 가치를 띠게 된다. 그런데 이 의미는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식별해 내야 하는 것이다. 신명기 13장 2~4절에 하신 말씀 그대로다. "너희 가운데에서 예언자나 환몽가가 나타나 너희에게 표징이나 기적을 예고하고, 그가 말한 표징이나 기적이 일어나더라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따라가 그들을 섬기자.'하고 그가 말하거든, 너희는 그 예언자나 환몽가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기원후 1세기의 사람들에게도 거짓 기적이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것이었다(마르 13,22; 2테살 2,9). 다만 이 거짓 기적이 지니는 의미는 그가 속해 있는 종교 집단의 확신과 비교할 때 그릇된 것으로 판정되어야 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대번에 알 수 있게 된다. 기적의 문제는 이 기적을 행하는 사람의 권위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불러 일으킨다는 것이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마르 6,2)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주님의 기적 활동을 상당히 강조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 목적은 여러 가지겠지만 그중에는 예수를 핵으로 하는 권능의 전도顚倒를 번역하자는 목적도 있었다. 기적이란 한계를 뛰어넘는 그 무엇이다. 그렇기에 기적은 그것을 행했다고 사람들이 일컫는 그 사람에게 어떤 권능이 있다는 것을 이미 함축한다. 그것은 무엇을 '행한다'는 행위에 속하는 권능이다. 인간의 행동 범위에서도 그렇고, 그 인간을 떠받쳐 주는 세계에 있어서의 어떤 권능이다. 그만큼 인간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우주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그 밖에 기적을 말한다는 사실 자체는 곧 인간의 전체적 삶이, 무엇보다도 그 행동에 있어서, 바로 이 기적으로 통해 개입하시는 하느님에 의해서 얼마나 철저하게 지배를 받고 있는지도 아울러 말해 준다. 이렇게 놓고 볼 때, 자연의 원소들과 그 힘에 관련되는 기적들, 가령 풍랑을 가라앉힌 기적 따위도 좀 더 직접적으로 인간에게 상관되는 기적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하겠다. 사실 인간은 이 세계와 일체를 이루고 있으며, 하느님의 지배권은 만물에 미치기 때문이다.
결국, 자연 질서에 관련된다는 의미에서의 자연 이적을 치유 이적과 구별한다든가 치유 이적과 악마 추방의 이적을 구별한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 현대인의 사고방식에서 나온 구별이다. 사실 치유 이적은 구마, 즉 악마 추방의 이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 전승의 실태다. 그 까닭은 이 두 경우 모두 악마의 지원을 받고 있는 악, 곧 죄를 '축출'하는 기적이기 때문이다. 죄는 질병이나 어떤 신체적 결함과 일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요한 9.34). 따라서 마르코 복음서 2장 1~12절에 나오는 중풍 병자의 치유도 죄의 용서와 관계가 있다. 풍랑을 가라앉힌 기적도 예수께서 악한 권세를 제어하신 일종의 악마 추방의 이야기다(마르 1,25; 4,39; 루카 13,16). 이렇게 말하고 보니, 기원후 1세기 사람들도 그 근본에서는 서로 공통하는 이 두 가지 기적, 곧 악마 추방의 이적과 치유 이적을 웬만큼은 구별할 줄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지금까지의 개괄적인 관찰은 기적 이야기를 다룰 때 아무리 우리에게는 생소하다고 할지라도 각별히 조심해야 할 것을 촉구한다. 무엇보다도 성경에서 사용된 여러 가지 언어들을 정확하게 구별하면서 탐구를 계속해야 할 것이다. 신학 사상을 조형성이 풍부한 용어들로 표현하는 유다계 그리스도교의 언어는 기적 이야기의 언어가 아니다. 예컨대 예수의 유혹 이야기(마태 4,1-10)는 기적 이야기의 언어에 속하지 않는다. 혼미를 헤치고 나갈 수 있는 길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여기에 문헌 비판의 기여는 특히 중요시되어야 한다.
-샤를르 페로, 《예수와 역사》, 박상래 옮김(서울: 가톨릭출판사, 2012 개정 1판), 301-308쪽
학계의 이 의견 일치는 다음 두 가지 점에서 이루어져 있다. 첫째, 예수는 당대 사람들에게 악마 추방자요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 간주되었음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그의 행적 중에서도 특히 그의 악마 추방은 하느님 나라에 관한 그의 선포에 직결되어 있었다는 데에 그 본질적인 특징이 있다는 사실이다. 역사가가 예수의 기적이 사실이라든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확인해 줄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는 당시 사람들이 예수를 사실상 기적을 행하는 사람, 악마 추방자요 치유자로 생각했다는 것만은 분명히 확인해 줄 수 있다. 악마 추방자라든지 치유자라는 낱말이 우리 현대인들에게 별로 좋은 인상을 주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런 낱말들에 늘 나쁜 뜻만을 부여하려 든다면 당치 않다. 그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시대착오를 범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성경학계의 이런 견해 일치는 어디에 근거하고 있으며, 기원 후 1세기의 사람들이 기적에 대해서 가졌던 개념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우리는 과연 예수의 기적 활동을 헬라 세계라는 당시의 역사적 문화적 맥락 안에 정확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의미는 어떠한 것일까? 요컨대 이렇듯 복잡다단한 주제를 놓고 과연 '역사'라는 것을 쓸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은 그 범위가 매우 넓다. 그래서 이제부터 소개하려는 종합적인 개관도 간략할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이를 더욱 발전시킬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가령 기적에 관한 예수의 말씀과 같은, 한 가지 점만을 천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분야에서는 관련되는 자료들이 모두 일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1. 복음서에 나오는 기적의 문제
1) 기원후 1세기의 기적관奇蹟觀
우리는 흔히 기적을 정의하기를 자연의 법칙에 비해서 또는 그 법칙을 거슬러서 일어나는 초자연적 능력이 발휘하는 어떤 행위나 작용이라고 한다. 옛날의 유다인 같으면 이런 기적의 정의에 다소 놀랄 것이다. 더구나 우리가 지금 '기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옛사람들이 '표징들semeia', '이적들terata', '위대한 업적dynameis'이라는 말로 가리키던 것과 정확하게 일치하지도 않는다. 그들에게는 하느님이 이 세상, 따라서 역사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의 직접적인 원인이나 다름없었다. 하느님은 어느 때고 개입하시고 간섭하신다. 그렇다고 그분이 질서를 혼란시키는 것은 아니다. 질서란 그분이 당신 섭리의 계획에 따라 계속적으로 창조하시기 때문이다. 인간이 보기에 하느님의 이 계속적인 개입과 간섭이 때때로 이례적인 성격을 띠고 나타나는 것은 당신이 세상에 현존하신다는 것을 좀 더 특별한 모양으로 드러내고, 당신이 원하시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시려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우주의 삼라만상은 하느님을 표시하고 그분을 가리키는 표지 또는 동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어떤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 놀라운 일들은 세상의 질서의 한계를 뛰어넘기 때문에 우리의 감각과 상식에 큰 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처럼 하느님은 당신의 새로운 뜻을 표징을 통해 알려 주시거나 당신이 보낸 심부름꾼을 사람들이 신임할 수 있도록 그 신원이나 사명을 증명해 주시기도 한다. 또한 선악에 따라 상을 주거나 벌을 내리고 구제도 하신다. 이와 같이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하느님의 기적들이 일어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하느님 계획의 확호성 또는 새로운 변경을 드러내 주는 데에, 또는 역사를 점철하는 그분의 구원 개입救援介入에 대해서 그분의 지배권, 그분이 주님이심을 확인해 주는 데에 목적이 있다. 일명 필론이 말하는 바와 같이 기적은 '구원의 표징'이다(《성경 고대사》 27,7; 지혜 16,6도 참조).
하지만 당시의 일반적인 견해에 따르면, 마귀들도 인간 또는 세상에 대한 저들의 지배권을 확보하려는 시도를 벌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적의 동작이란 그 자체만을 따로 떼어 놓고 볼때 매우 애매모호한 것으로 남게 된다. 기적이란 그것이 지니는 의미로 말미암아 가치를 띠게 된다. 그런데 이 의미는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식별해 내야 하는 것이다. 신명기 13장 2~4절에 하신 말씀 그대로다. "너희 가운데에서 예언자나 환몽가가 나타나 너희에게 표징이나 기적을 예고하고, 그가 말한 표징이나 기적이 일어나더라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따라가 그들을 섬기자.'하고 그가 말하거든, 너희는 그 예언자나 환몽가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기원후 1세기의 사람들에게도 거짓 기적이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것이었다(마르 13,22; 2테살 2,9). 다만 이 거짓 기적이 지니는 의미는 그가 속해 있는 종교 집단의 확신과 비교할 때 그릇된 것으로 판정되어야 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대번에 알 수 있게 된다. 기적의 문제는 이 기적을 행하는 사람의 권위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불러 일으킨다는 것이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마르 6,2)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주님의 기적 활동을 상당히 강조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 목적은 여러 가지겠지만 그중에는 예수를 핵으로 하는 권능의 전도顚倒를 번역하자는 목적도 있었다. 기적이란 한계를 뛰어넘는 그 무엇이다. 그렇기에 기적은 그것을 행했다고 사람들이 일컫는 그 사람에게 어떤 권능이 있다는 것을 이미 함축한다. 그것은 무엇을 '행한다'는 행위에 속하는 권능이다. 인간의 행동 범위에서도 그렇고, 그 인간을 떠받쳐 주는 세계에 있어서의 어떤 권능이다. 그만큼 인간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우주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그 밖에 기적을 말한다는 사실 자체는 곧 인간의 전체적 삶이, 무엇보다도 그 행동에 있어서, 바로 이 기적으로 통해 개입하시는 하느님에 의해서 얼마나 철저하게 지배를 받고 있는지도 아울러 말해 준다. 이렇게 놓고 볼 때, 자연의 원소들과 그 힘에 관련되는 기적들, 가령 풍랑을 가라앉힌 기적 따위도 좀 더 직접적으로 인간에게 상관되는 기적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하겠다. 사실 인간은 이 세계와 일체를 이루고 있으며, 하느님의 지배권은 만물에 미치기 때문이다.
결국, 자연 질서에 관련된다는 의미에서의 자연 이적을 치유 이적과 구별한다든가 치유 이적과 악마 추방의 이적을 구별한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 현대인의 사고방식에서 나온 구별이다. 사실 치유 이적은 구마, 즉 악마 추방의 이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 전승의 실태다. 그 까닭은 이 두 경우 모두 악마의 지원을 받고 있는 악, 곧 죄를 '축출'하는 기적이기 때문이다. 죄는 질병이나 어떤 신체적 결함과 일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요한 9.34). 따라서 마르코 복음서 2장 1~12절에 나오는 중풍 병자의 치유도 죄의 용서와 관계가 있다. 풍랑을 가라앉힌 기적도 예수께서 악한 권세를 제어하신 일종의 악마 추방의 이야기다(마르 1,25; 4,39; 루카 13,16). 이렇게 말하고 보니, 기원후 1세기 사람들도 그 근본에서는 서로 공통하는 이 두 가지 기적, 곧 악마 추방의 이적과 치유 이적을 웬만큼은 구별할 줄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지금까지의 개괄적인 관찰은 기적 이야기를 다룰 때 아무리 우리에게는 생소하다고 할지라도 각별히 조심해야 할 것을 촉구한다. 무엇보다도 성경에서 사용된 여러 가지 언어들을 정확하게 구별하면서 탐구를 계속해야 할 것이다. 신학 사상을 조형성이 풍부한 용어들로 표현하는 유다계 그리스도교의 언어는 기적 이야기의 언어가 아니다. 예컨대 예수의 유혹 이야기(마태 4,1-10)는 기적 이야기의 언어에 속하지 않는다. 혼미를 헤치고 나갈 수 있는 길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여기에 문헌 비판의 기여는 특히 중요시되어야 한다.
-샤를르 페로, 《예수와 역사》, 박상래 옮김(서울: 가톨릭출판사, 2012 개정 1판), 301-308쪽
우선, 루르드의 성모 비유에서 말하듯, 학자 개개인이 종교를 이유로 학문적 방법을 무시할 정도로 이 분야가 만만한건 아니다. "성경 학자가 철학적으로 말해서 하느님의 이례적인 개입이 존재한다는 것을 수락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시인하더라도, 그가 자기 권한과 자격의 한계를 넘어설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기적 이야기에서 말하듯, '역사적 예수' 연구는 기적이 없었다고 말해서 교계를 공격하거나 방어하자는 의도를 가진 연구가 아니며,[13] 체험했다고 말해지는 신비를 과학적으로 논증하거나 반박하려는 연구도 아니다. 가령 "예수는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 간주되었음이 분명하다"는 학계의 의견 일치는 호교론적으로 신앙을 증명해주는게 아니고 반박해주는 것도 아니다. 또한 이 분야가 신약성경의 복음서를 깔보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매우 매우 중요한 사료로 취급하고 있다.
오늘날 누군가 예수 역사성의 근거를 묻는다면, 역사적 예수에 관한 전승들을 근거로 저술된 복음서들을 제시하면 된다. 복음서 저자들은 모두 예수의 삶에서 유래한 이야기들을 서술함으로써 역사상 실제로 일어난 사실들을 전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이 점은 특히 루카 복음 1장 1-4절에 분명히 드러난다).
-루돌프 슈낙켄부르크, 《복음서의 예수 그리스도》, 김병학 옮김(왜관: 분도출판사 2008), 504쪽
-루돌프 슈낙켄부르크, 《복음서의 예수 그리스도》, 김병학 옮김(왜관: 분도출판사 2008), 504쪽
이 책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각 복음서 저자의 신앙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또한 각 복음서가 서술한 것들을 비교·연구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전승사Traditionsgeschichte적 차이도 물론 주목할 것이다. 마르코가 복음서 저자들 가운데 최초로 믿음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그려 냈다. 이 마르코 복음서가 그 후 다른 두 공관복음서 저자 마태오와 루카에게 예수에 관한 자료로 제공되고, 그들의 예수 그리스도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요한 역시 이 공관복음 전승을 모르고 있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다만 그는 이 공관복음의 예수 그리스도관을 뛰어넘어 그리스도 신앙에서 발전된, 역사적 토대를 초월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제시해준다. 이는 그의 신학에서 발전된 것이다. 네 형태로 이루어진 복음서는 네 가지 양상의 그리스도론을 품고 있다. 그러나 이 그리스도론은 나자렛 예수라는 역사적 기반을 포기해 본 적이 결코 없다.
-루돌프 슈낙켄부르크, 《복음서의 예수 그리스도》, 김병학 옮김(왜관: 분도출판사 2008), 45쪽
-루돌프 슈낙켄부르크, 《복음서의 예수 그리스도》, 김병학 옮김(왜관: 분도출판사 2008), 45쪽
Q: 예수에 관해 뭘 좀 알고 싶은 사람은 신약성서 복음서들을 읽으라고 합니다. 보고하고 증언하는 텍스트들인데, 물론 신문·잡지의 보도기사 같은 그런 건 아니지요. 이 텍스트들의 성격을 어떻게 특징지으시겠습니까?
A: 과연 역사상 예수를 알려면 복음서들을 봐야 합니다. 그중에도 특히 공관복음서라고 부르는 가장 오래된 세 복음서, 곧 마르코·마태오·루가를 꼽습니다. 물론 이 복음서들도 역사상 사실에 관심이 있는데, 하지만 특별한 성격의 역사적 관심입니다. 역사상 예수를 그저 회고하려는 게 아니고, 동시에 선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예수께 대한 믿음을 일깨우고자 하지요. 다시 말해서 복음서에서는 역사상 예수께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맺어져 있습니다. 복음서에서 예수에 관해 보고하는 내용을 보면 예수의 공개활동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나타납니다. 즉, 예수께서 세례자 요한의 세례를 받고부터 십자가에 달려 죽고 묻히시기까지의 시기에 집중하고 있지요. 가령 예수의 교육에 관해서는, 청소년기나 어릴 적에 관해서는 우리가 아는 바가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집니다. 또 어떻게 생겼던지, 키가 얼마나 컸던지, 눈이 무슨 빛깔이었는지, 머리카락이 무슨 색이었던지, 옷차림이 어떠했던지, 이런 것들에 대해서도 무슨 말이 있는 곳이라고는 없습니다. 이런 것들도 무슨 전기에라면 모두 있어야 할 것들이겠지요. 복음서 저자들은 분명히 이런 물음들이라면 흥미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우리로서는 거의 답답할 만큼, 우리 신앙을 위해 중요한 것, 그리스도인 실존의 실현을 위해 의미있는 것에만 집중했어요.
-요아힘 그닐카(Joachim Gnilka) 방송 대담.[14]
A: 과연 역사상 예수를 알려면 복음서들을 봐야 합니다. 그중에도 특히 공관복음서라고 부르는 가장 오래된 세 복음서, 곧 마르코·마태오·루가를 꼽습니다. 물론 이 복음서들도 역사상 사실에 관심이 있는데, 하지만 특별한 성격의 역사적 관심입니다. 역사상 예수를 그저 회고하려는 게 아니고, 동시에 선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예수께 대한 믿음을 일깨우고자 하지요. 다시 말해서 복음서에서는 역사상 예수께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맺어져 있습니다. 복음서에서 예수에 관해 보고하는 내용을 보면 예수의 공개활동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나타납니다. 즉, 예수께서 세례자 요한의 세례를 받고부터 십자가에 달려 죽고 묻히시기까지의 시기에 집중하고 있지요. 가령 예수의 교육에 관해서는, 청소년기나 어릴 적에 관해서는 우리가 아는 바가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집니다. 또 어떻게 생겼던지, 키가 얼마나 컸던지, 눈이 무슨 빛깔이었는지, 머리카락이 무슨 색이었던지, 옷차림이 어떠했던지, 이런 것들에 대해서도 무슨 말이 있는 곳이라고는 없습니다. 이런 것들도 무슨 전기에라면 모두 있어야 할 것들이겠지요. 복음서 저자들은 분명히 이런 물음들이라면 흥미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우리로서는 거의 답답할 만큼, 우리 신앙을 위해 중요한 것, 그리스도인 실존의 실현을 위해 의미있는 것에만 집중했어요.
-요아힘 그닐카(Joachim Gnilka) 방송 대담.[14]
'역사적 예수' 연구가 고전적인 복음서 이해(예: 예수는 기적을 행했다)에서 역사 비평적인 이해(예: 예수는 기적을 행했다고 여겨졌다)를 추가하면서, 현장의 그리스도교 사목에 타격을 준 감이 없지는 않으나, 그 분야 자체는 서방 그리스도교 안에서 널리 수용되었고, 그리스도교 입장에서는 호교론적으로 꽤 기분 좋은 성과들도 나오고 있다. 가령 역사적 예수 연구는 예수의 신성을 확증해주지 않더라도, 신약성경 저자들이 희랍 철학의 본질 언어가 아니라 성서적인 언어로 예수의 신적인 면모를 말했다는 것을 보여준다.[15] 애당초 그리스도교는 AD 30년 쯤 근동 지방에서 활동한 '나자렛 예수'라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인상적인 경험과 분리할 수 없는 종교이고, 역사적 예수 연구는 그 인상적인 경험이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무슨 과정을 거쳐서 성경에 저술되었는지를 밝히는데 기여하기에, 신학적으로든 호교론적으로든 매우 중요한 분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에 등장하신 나자렛 예수를 역사적으로 규명하려는 것과 그분의 말씀과 행적을 사실 그대로 파악하려는 노력을 잘못이라거나 빗나갔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역사성은 도외시하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분의 메시지만 중요시한다면, 그분을 이상화하고 신화화하고 관념화하는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리되었다면, 믿음의 고백은 우리가 딛고 설 수 있는 사실적 기반을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루돌프 슈낙켄부르크, 《복음서의 예수 그리스도》, 김병학 옮김(왜관: 분도출판사 2008), 26쪽
-루돌프 슈낙켄부르크, 《복음서의 예수 그리스도》, 김병학 옮김(왜관: 분도출판사 2008), 26쪽
4. 예수의 실존 여부
오늘날 로버트 프라이스,[16] 게르트 뤼데만 등의 소수가 예수 실존에 의문을 던지고 있고[17] 이와 관련해서 한국에서 '예수는 신화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The Jesus Mysteries: Was the Original Jesus a Pagan God?'이라는 책이 전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예수의 역사적 실존에 대한 부정은 오늘날 학계에서, 학자 개개인의 종교를 논외로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신화론은 학계 전반에 걸쳐 변두리 이론(fringe theory) 정도로 취급되어 진지한 연구 대상으로 취급받지 못하고 있다. 절대 다수의 주류 학자들은 신화론자들이 연구 전문성 자체를 갖추지 못하고 주장에 근거를 끼워맞추는 아마추어리즘을 보인다고 비판한다.
학계의 자세한 입장은 예수/실존 여부 참조.
5. 관련 도서
1990년대에 간간히 소개되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활발히 번역서들이 소개되고 있다.대중들에게도 알려진 책으로 이슬람 입장에서 서술한 《젤롯》이란 책이 있다.[18] 다만 비전공자의 저작이고 이미 학자들에 의해 논박된 이야기를 다시 꺼내든 경우가 많아 학술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는 책이다. 한국에서 과하게 화제가 된 책이지만 전공자들은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고 있으며 캘리포니아 대학의 로마사학자 로버트 냅 교수는 '과대평가된 소설'이라고 한줄로 일축한바 있다. 다만 굳이 의미가 있다면 전문가의 영역이었던 역사적 예수 관련 이야기를 대중들에게 소개했다는 정도.
존 도미닉 크로산의 책이 유명하다. 크로산의 견해(헬레니즘적 견유)는 통설(종말론적 유다인 예언지)과는 중대한 차이가 있지만, 유명란 소수설을 제안했다는 점에서 읽을만하다. 그 외에도 바트 어만의 《예수는 어떻게 신이 되었나》, 존 쉘비 스퐁의 《만들어진 예수, 참 사람 예수》, 《기독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 《성경을 해방시켜라》등이 있다.
좀 부드러운 책을 읽고싶다면 마커스 보그의 《그리스도교 신앙을 말하다》를 추천한다. 쇼킹한 이야기를 담담하고 평이하게 쓰고 있어 진짜 예수, 진짜 기독교에 관심있다면 읽어볼 것.다만 도미닉 크로산도, 마커스 보그도, 스퐁 주교도 역사적 예수 연구 관련 학계 주류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영어권에서 현대 역사적 예수 연구의 주류 시각을 대표하는 학자들은 게저 버메스, 에드 패리시 샌더스, 제임스 던 등이나 이들 저서는 국내에 극히 일부만 소개되었다. 그중 제임스 던의 Jesus Remembered는 비교적 최근에 번역서가 나왔으며, 현재의 역사적 예수 관련 연구를 집대성한 명저다. 다만 번역의 질이 그렇게 좋다고 하기는 어렵다.
프랑스어권 책으로는 샤를르 페로(Charles Perrot, 1929~2013)의[19] 《예수와 역사》, 《초대교회의 예수, 그리스도, 주님 ―주석학적 그리스도론》이 읽을만하다. 전자는 공생활을 다룬 책이고, 후자는 예수의 죽음 후에 신약성경의 저자들이 예수를 어떻게 이해했고 표현했는가를 다룬 책이다. 페로는 예수 시대의 유대교 전문가로, 국내 프랑스 유학 가톨릭 성서학자들의 '대부'라 칭해도 어색함이 없는 학자이다. 한국 가톨릭 신약학계 제2세대라 할 수 있는 박상래, 정양모, 서인석 신부를 비롯 안병철 신부 백운철 신부 등에 이르기까지 프랑스에서 수학했던 대다수 한국 사제들이 그에게 어학 신약학 지도를 받았다.#
독어권의 책으로는 요아힘 그닐카의 《나자렛 예수》, 루돌프 슈낙켄부르크(Rudolf Schnackenburg, 1914~2002)의 《복음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추천한다. 슈낙켄부르크는[20] '역사의 예수'와 '믿음의 예수'를 조화시키려고 했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 보자면 역사적 예수'만' 책에서 다루지는 않으나, "비평적 예수 연구를 도외시하지 않으면서도 신앙과 역사 사이에서 교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21] 베네딕토 16세는 슈낙켄부르크를 "20세기 후반 독일어권의 성경학계에서 가장 출중한 학자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그닐카는 슈낙켄부르크의 수제자이다.
가톨릭 학계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지만, 역사적 예수 연구 동향에 대해서 다음 기사들을 참고해보는 것도 좋다.#1#2#3
예수에 대해 가장 상세하고 디테일한 내용을 전하고 있는 것은 역시 성경이므로,[22] 역사비평적, 본문비평학적으로 성경의 작성, 구성, 전승, 수정을 연구하는 것도 역사적 예수를 재구성하는 데 필요하며, 성서 주석학과 '역사적 예수'는 상당한 관련이 있다. 따라서 굳이 '역사적 예수'라는 키워드에 집착하지 않고, 현대 성서 주석학의 연구 성과가 잘 반영된 책을 읽는 것도 상당히 좋은 방법이다.
국내 연구자의 저서로는 독일 불트만 학파 보른캄의 제자로서 심원 안병무의 갈릴래아의 예수라는 책은 이분야의 국내 오랜 고전이다. 근래에는 2023년 6월에 출간된 진규선 목사의 마리아의 아들이라는 책도 있다.
6. 관련 문서
[1] 본디 철학·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대학 교수도 했던 사람. 신학 부문에서도 업적을 남겼다.[2] 1906년에 출판한 〈예수의 생애 연구사: 라이마루스에서 브레데까지(Geschichte der Leben-Jesu-Forschung: Von Reimarus zu Wrede)〉 중에서[3] 샤를르 페로, 《예수와 역사》, 박상래 옮김(서울: 가톨릭출판사, 2012 개정 1판), 15쪽에서 발췌.[4] 가령 마르코 복음서의 경우 예수 사후 불과 40여 년만에 저술되었는 등, 신약 성경의 저술 연대는 고대 사료로서는 매우 신속한 편이라 역사학자들에게도 매우 유용한 사료로서 연구된다.[5] 40년 만에 저술된 것이 뭐가 그렇게 신속하게 작성된 것이냐 할 수 있는데, 만약 춘추전국시대를 연구한다고 쳤을 때 현대 중국의 정사 중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사기도 춘추전국시대로부터 몇백 년 뒤에 작성된 책이다.[6] "역사주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떤 설화 본문에 문학적으로 표현된 역사와 실제로 과거에 구체적으로 일어났거나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역사 사이의 거리를 지워 버리고, 역사 이야기와 과거의 사건 이 둘 사이의 혼동을 도발하는 사상의 한 움직임이라고 하겠다."(같은 책, 99쪽)[7] (책 속 주석) A. SCHWEITZER, Geschichte der Leben-Jesu-Forschung, München 1906. 불어로 된 예수의 전기에 대해서는 J. G. H. HOFFMANN, Les Vies de Jésus et le Jésus de l´Histoire, Uppsala 1947을 보라. 최근에 출판된 가톨릭계의 전기로서는 J. GUITTON, Jésus, Grasset 1957(저자는 호교론을 펴기 위해서 철학을 끌어들인다.); A. NISIN, Histoire de Jésus, Seuil 1961(저자는 양식사 비판 방법을 사용한다.); H. COUSIN, Le Prophète assassinè, Delarge, Paris 1976(저자는 편집사 비판의 방법을 따르는 편이다). 여러 가지 동기에서 집필된 그 밖의 다른 책들 중에서 다음 몇 가지를 예거할 수 있을 것이다. J. POTIN, Jésus, ses idéas-son actoin, Le Centurion, Paris 1973; J.-L. SEGUNDO, Jésus deant la conscience moderne'', Cerf, Paris 1988(일종의 해방 신학적인 관점에서 집필했다).[8] 역사적 예수가 아니라 다른 역사 분야를 말한다 하더라도, 에드워드 기번이 생각하는 로마는 오늘날 역사학에서 보는 로마와는 상당히 차이가 난다.[9] (책 속 주석)A. Schweitzer, Leben-Jesu-Forschung 4.[10] (책 속 주석) 분석: E. Käsemann, Sackgassen im Streit um den historischen Jesus: Exegetische Versuche und Besinnungen II (Göttingen 1964) 31-68; Das Problem des historischen Jesus: Exegetische Versuche und Besinnungen I (Göttingen 1960) 186-214.[11] 참조:#1#2#3[12] 개신교 쪽은 교단 성격 따라 케바케이긴 하지만, '소수 급진 교단 한정 수용'이라 말할 수준은 이미 넘었다.[13] 물론 연구자 개인의 주관은 들어갈 수 있지만, 연구 분야 자체를 호교론적이라거나 무신론적이라 말할 수는 없다. 이것은 마치 역사학이라는 분야가 특정 국가의 우월성이나 애국심 등을 뒷받침해주려는 목적이 없는 것과 비슷하다. 연구자 개인의 생각은 다를 수 있어도.[14] 1992년 5월 28일, 독일 Bayern 방송국에서 「그리스도이신 예수. 안톤 켄테미히가 뮌헨 신약학자 요아힘 그닐카에게 묻는다」(Jesus, der Christus. Anton Kentemich befragt den Müncher Neutestamentler Joachim Gnilka)라는 제목으로 방송되었던 대담. 번역은 요아힘 그닐카의 저서 《나자렛 예수》 한국어판에서 그대로 발췌[15] 참조: 샤를르 페로, 《초대교회의 예수, 그리스도, 주님 ―주석학적 그리스도론》, 백운철 옮김(서울: 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01) 제7장[16] 바트 어만은 프라이스에 대해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없다고 평했다.#[17] 다만 뤼데만은 강하게 주장하지는 않고 있으며 프라이스의 경우도 예수의 실존을 부정하기는 하지만 예수 신화를 여러 인물의 이야기가 섞인 것으로 보는 측면에서는 다중인물혼합설에 가깝다.[18] 저자가 이란 무슬림 가정 출신으로 청년 시절 기독교로 개종했다가, 이후 이슬람으로 회귀한 이력이 있다.[19] 참고:#1#2#3[20] 참고:#1#2#3[21] 위 본문에서 링크한 책 소개에서 발췌.[22] 아무리 현대에 사료 비평이 발달했다지만, 정작 비평할 사료가 없다면 역사학자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동시대 사료, 곧 신약에 사료 비평을 적용하여 개연적인 설명을 탐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