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9 11:29:59

1980년대

연대구분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
세기구분
19세기 20세기 21세기
밀레니엄구분
제1천년기 제2천년기 제3천년기
1. 개요2. 세계적인 모습
2.1. 음악
2.1.1. 한국 음악
2.2. 영화2.3. 게임2.4. 만화, 애니메이션2.5. 대량 학살
3. 한국의 경우
3.1. 1980년대 한국의 정치3.2. 1980년대 한국의 경제, 사회
4. 일본의 경우: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5. 1980년대가 배경인 작품6. 이 시대에 시작된 것들7. 이 시대에 쇠퇴한 것들8. 이 시대의 상징들
8.1. 이 시대를 풍미한 것들8.2. 이 시대의 유행어
9. 1980년대에 들어가는 해10. 1980년대생
10.1. 한국
10.1.1. 사회·정치적 성향
10.2. 해외
11. 화제인물
11.1. 한국
12. 관련 문서

1. 개요

세계 경제가 전체적으로 호황을 맞고 있던 시기라 세기말적 분위기를 풍기는 1990년대와 석유 파동을 겪었던 1970년대와 달리 좀 더 밝게 묘사되는 부분이 있다. 로널드 레이건, 마거릿 대처와 같은 경제적 자유주의/신자유주의 성향의 지도자들이 영미권에 등장했고, 이에 따라 강력한 신자유주의 정권이 막을 열었다. 이 시기에 빈부격차가 급속히 커졌기 때문에 이들 정권의 경제적 성과에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최소한 70년대의 인플레는 사라졌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중남미나 동유럽권에서는 1980년대는 매우 암울한 시기로 기억된다. 미국이 인플레이션을 잡겠다고 고금리 정책을 펴면서 수많은 제3세계 국가들이 막대한 외채부담을 져야했고 그 과정에서 국가경제가 파탄난 나라가 한두 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빚을 갚기 위해 긴축정책으로 큰 고통을 겪어야 했던 국가들이 한두 곳이 아니었으며 공산권 가운데서 가장 자유주의 정책을 펼치던 유고슬라비아조차도 이때는 거액의 외채를 지고 있을 지경이었고, 거기에다가 지역갈등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하지도 못하였으며, 타 동유럽 국가나 중남미 국가라고 해서 딱히 사정이 다른 것도 아니었다. 당시 중남미 국가와 동유럽 국가들이 빚을 갚기 위해 필사적으로 재정긴축을 하고 수입을 억제시켜서 매년 무역흑자를 거두고 있는데도 하도 이자율이 높다보니, 이자조차도 못 갚았다는 슬픈 얘기도 전해져 내려오고,(다만 이들 나라 중에서도 루마니아는 그 비싼 이자율에도 어떻게든 빚을 다 갚기는 했다. 덕택에 차우셰스쿠 정권이 무너져내려졌지만) 소련은 동유럽 국가와 중남미 국가와는 다르게 일단 채권자에 가까운 위치이기는 했지만 결국엔 소련-아프간전과 유가하락, 체르노빌 사태라는 3중고가 겹치며 재정적으로 궁핍해지는 바람에 결국엔 개혁개방정책을 펴게 되었지만 결국 버티지 못했다. 뭐, 그래도 긍정적인 면을 찾자면 중남미에서 1980년대에 민주주의가 대부분 회복되었으며, 동유럽도 1989년을 기점으로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가 정착되었다. 한국, 대만, 필리핀이 민주화 된 시기와 비슷하다.

다만 냉전이 마지막 절정기였기 때문에[1] 이에 따른 긴장 역시 풀 수 없었다. 그러나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집권으로 소련에서 개방정책을 시도하는 등 냉전이 풀어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1980년 이라크의 이란 침공으로 이란-이라크 전쟁이 8년에 걸쳐서 일어났다. 중동의 전쟁이 미국의 국내정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등 중동 문제가 최중요 현안으로 급부상한 시기기도 하다. 이란 콘트라 사건도 그렇고.

언론인이자 페미니스트인 수전 팔루디(S.Faludi)는 자신의 도서 《백래시》 에서, 이 시기를 가리켜서 "백래시의 시대" 라고 불렀다. 70년대에 여성운동이 이루어냈던 모든 성취들을 전부 부정하고, 다시 그 이전의 가부장적 사회로 회귀하려고 미국 사회 전반에 걸친 움직임이 일었으며, 그 중심에는 로널드 레이건이 있었다는 것. 자세한 내용은 해당 도서를 참조해 보자.

80년대 말에는 공산주의가 잇달아 붕괴되면서 자유주의 열풍이 불기도 했다.
파일:1980.jpg

1986년~1988년3저 호황으로 세계경제가 황금기에 있던 시기다.[2]

2. 세계적인 모습

Top 10 Trends of the 1980s NewsChannel 9 - 1980s Video Timeline

2.1. 음악

대중 음악의 경우 MTV의 개국과 마이클 잭슨, 프린스, 마돈나의 혁명적인 등장 이후로 '보는 음악'의 시대가 열렸다. 뮤직비디오와 같은 새로운 홍보매체와 70년대의 펑크(Funk), 디스코뮤직에 일렉트로니카가 뒤섞여 새로이 파생된 현대식 댄스팝, 정교한 퍼포먼스, 무대 장치와 화려한 비주얼등이 음악계의 주류로 떠오른 시대이다. 신디사이저를 적극적으로 사운드에 활용하기 시작한 시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하드록에서 파생된 메탈을 중심으로 하는 록 음악이 여전히 초강세를 보이던 시절이기도 했다. 초반에는 모터헤드주다스 프리스트을 위시한 브리티쉬 메탈이, 중후반에는 메탈리카 메가데스 슬레이어 앤스렉스등의 스래쉬 메탈본 조비 머틀리 크루 화이트 스네이크 유럽 스콜피온스를 위시한 팝&글램메탈의 전성기가 바로 이 시대.

은 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창법이 조금 바뀐 채 활동하며 명곡을 뽑는 등 전성기의 중후반이다. 한편 언더그라운드에서는 과거 펑크 록의 흐름을 변주한 포스트 펑크가 유행했으며, 이는 후에 얼터너티브, 슈게이징, 하드코어 펑크 등의 기원이 된다. 이러한 흐름은 이후 2000년대에 들어 크게 재조명받게 된다. 그 외에 핑크 플로이드도 전성기의 후반을 누렸고 87년부터 건즈 앤 로지스가 엄청난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70년대 후반에 뉴욕 클럽 등지에서 나타난 힙합이 본격적으로 주류음악권에서 활약하기 시작한 시기가 바로 이 시기. 이 무렵에는 비스티 보이즈와 같은 힙합밴드의 형태도 존재하였다.

70년대에 태동한 일렉트로니카는 본격적으로 분화되어 테크노와 신스팝 등의 장르가 주류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이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여러 뮤지션들이 일렉트로니카와 자신들의 음악을 융합하려는 시도를 진행하기 시작한다.

2.1.1. 한국 음악

제5공화국3S정책에 힘입어 가요계의 히트곡들은 전체적으로 1970년대에 비해서 대단히 분위기가 밝아졌다. 그리고 전체적인 가요계의 시장 크기와 앨범판매량이 급증하기 시작한 시기였으며 이는 이후 1990년대를 거쳐 황금기를 맞이한다.

혹자에 따라선 1990년대를 한국음악의 전성기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90년대는 대중음악의 인기가 폭발적인 시기일 뿐, 장르의 다양성과 실험성에 있어서는 1980년대가 더 우위에 있었다는 여론이 있을만큼 상당히 음악적으로 발전한 시대다.

가왕 조용필이 신드롬적인 인기와 영향력, 뛰어난 음악성을 바탕으로 앨범판매량과 대상 수상기록, 가요톱텐 1위 기록등을 수시로 갈아치우며 한국 가요계를 완전히 평정했던 시절이다.

조용필 외에도 수많은 뮤지션들이 활동했다. 조용필의 어마무시한 인기와 영향력에 그나마 대항할 수 있었던 전영록, 김수철과 같은 네임드 남자가수들이 활약했던 시기이며 이선희와 같은 전설적인 여가수들도 등장했다. 기존의 한국음악계를 주름잡았던 트로트의 인기도 여전해서 주현미와 같은 트로트 가수들도 상당한 위치를 선점했던 시기다.

현 시점에 록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가장 록 음악에 관심을 두었던 몇 안되는 전성기였으며 70년대 세시봉 출신 포크송 가수들의 직속 후배격이라 할 수 있는 들국화, 김현식, 한영애, 신촌블루스, 빛과 소금 등의 뮤지션들이 한국의 언더그라운드 음악계를 개척하며 블루스와 록 음악의 장르를 다양화 시켰다. 또한 1980년대 초반 당시 유일한 슈퍼밴드였던 송골매가 활약했으며 1980년대 중후반에는 위에 언급된 록 뮤지션들의 후배격인 백두산, 시나위, 부활 등이 하드 록, 얼터너티브 록 음악을 기반으로 한 밴드활동으로 크게 돋보였다.

한편 한국 발라드의 뿌리인 유재하와 작곡가 이영훈-가수 이문세 콤비도 이 시기에 나온 뮤지션이다. 이 들의 영향으로 현재까지도 한국 가요계의 주류 장르라 할 수 있는 발라드 장르가 성립되며 1980년대 후반경 변진섭이 음반 100만장을 돌파하면서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게된다. 이는 이후 1990년대 신승훈의 등장으로 더욱 가세된다.

1980년대 중후반 이후에는 소방차, 김완선, 박남정을 비롯한 본격적인 1세대 댄스가수들이 등장하여 지금의 아이돌 가수처럼 큰 인기를 얻었던 시기였다. 이들의 인기 자체는 상당했지만 당시엔 댄스음악에 대해 일종의 차별적 시선이 존재하여 완전히 가요계의 주류였다고 일컫기엔 부족했으며 이는 이후 19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으로 판도가 뒤집히게 되었다.

즉, 1980년대에는 한국 가요계에서 좋은 음악들과 각종 실험적인 사운드가 많이 쏟아지던 시절이었으며 실상 현재 한국 가요계에서 즐길 수 있는 장르들은 거의 다 이때 나온거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물론 내부적으로 보면 가요 내용 검열이나 음반사의 음반판매 수입 독점, 창작자에 대한 저작권의 인식이 실상 전무했던 것과 같은 뿌리깊은 문제점이 여전히 자리잡고 있었다. 이는 1990년대를 거치면서 개선되기 시작했다.

2.2. 영화

  • 영화의 경우 특수효과의 사용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시기이기도 했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성공 이후 간간히 만들어지던 블록버스터가 보편화 되었다. 다만 CG 그래픽의 십분 활용은 90년대부터 확장되기 시작한다.
  • 잃어버린 10년을 겪기 전인 80년대 일본킹왕짱급 강대국으로 여겨졌었다. 당시 일본은 경제규모 세계 2위였지만 미국을 추월하여 세계 제1의 경제대국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 여겨졌었다. 지금은 한국이랑 크게 규모차이가 나지 않은 수준의 인프라지만 이것은 일본의 성장이 정체된 사이 한국이 그만큼 올라선 것일뿐이고, 당장 80년대 번화가 거리수준을 일본과 비교해봐도 한국은 그야말로 촌구석 중의 촌구석이였다. 블레이드 러너, 로보캅 3, 떠오르는 태양(라이징 썬), 다이 하드 등 80년대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일본에 대한 두려움이 잘 나타나 있다. 실제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일본의 경제성장을 매우 심각한 위협으로 여기고 두려워했다. 게다가 당장 눈앞에 놓인 비현실적인 환율이 심각한 문제였고 일본의 급성장은 이런 환율 탓이 크다는 게 당시 서구권의 인식이었다. 결국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의 5개국 경제 수장들이 모여 플라자 합의로 환율을 현실화하기로 합의한다.[3] 플라자 합의 이후 엔화는 파격적으로 평가절상되고 이런 엔화의 절상과 함께 일본 경제에 대한 과도한 환상은 거대한 거품을 만들어내고 거품 붕괴와 함께 일본의 성장은 서서히 끝이 나고 잃어버린 10년이 도래했다.
  • 다양한 장르가 성행했던 시기였다. 2010년대부터 저예산 영화와 블록버스터 영화가 분리되고 있다는 점에서 할리우드 대형 스튜디오에서 당시 제작비 예산이 블록버스터[4]와 저예산 영화들을 같이 만들어서 다양한 장르가 나올 수 있었다. SF 영화부터 청춘 영화, 슬래셔 영화까지 다양한 장르들이 고르게 흥행했다. 게다가 시나리오(각본)가 당시 기준으로 신선한 이야기들이 많이 성행하기도 했다. 그래서 흥행의 원동력되기도 했다. 복고풍이 불고 있는 2010년대에 들어서서 다시 리메이크로 제작할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2.3. 게임

아타리 쇼크라는 사상 최악의 스캔들로 인해 비디오 게임 산업이 큰 타격을 입었지만, 이후 닌텐도의 마리오 시리즈패미컴이 대박을 치면서 일본 제작사들에 의해 시장이 재개편, 2001년에 마이크로 소프트의 엑스박스가 나오기 전까지 콘솔 시장은 일본 제작사들이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게 된다. 횡, 종스크롤 액션, 슈팅게임들이 이 때부터 체계적으로 발전하면서 전성기를 맞이했고, 80년대 중, 후반엔 일본식 RPG의 대표라 불리는 드래곤 퀘스트,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가 시작되었다.

2.4. 만화, 애니메이션

한국 만화에 대한 검열은 여전했지만 보물섬, 아이큐 점프 같은 만화잡지들이 등장하면서 만화 시장이 팽창했던 시기. 특히 1983년부터 보물섬에서 연재된 김수정아기공룡 둘리는 전 세대의 사랑을 받으며 국민 캐릭터로 자리잡았고, 이현세공포의 외인구단은 실사영화와 TV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될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70년대 후반 로보트 태권 V를 필두로 활발하게 이뤄지던 국산 극장판 애니메이션 제작이 80년대 들어 소재고갈, 표절, 지나친 반공의식 주입 등을 이유로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고 1986년 우뢰매 시리즈의 히트로 순수 애니메이션 대신 실사와 애니메이션이 결합된 한국형 특촬물이 어린이 극장가를 장악했다.

서울올림픽을 앞둔 1987년부터 TV 애니메이션 제작이 시작되면서 떠돌이 까치(KBS), 달려라 호돌이(MBC) 등 단편 애니메이션들이 제작되었고 1988년 최초의 TV 시리즈 만화영화 달려라 하니가 방영되었다. 이때부터 90년대 초까지 한국 TV 애니메이션이 전성기를 맞았다.

일본은 은하철도 999기동전사 건담이 일으킨 아니메 붐이 8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다. 과거 TV판의 확장판 수준이었던 극장판이 오리지널 스토리로 제작되기 시작했고, 성인 소비자를 위한 OVA가 처음 등장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에는 해외 합작의 감소와 어린이 시청 인구 감소 등 버블경제의 역풍을 맞으면서 일본 애니메이션은 침체기를 맞는다. AKIRA 같은 대작도 1988년 첫 상영 당시에는 흥행이 저조했다.

80년대 일본 TV 애니메이션은 후지TV닥터 슬럼프, 시끌별 녀석들 같은 개그물과 북두의 권, 드래곤볼 등 소년 액션물을, TV 아사히도라에몽을 필두로 한 후지코 후지오 애니메이션과 건담 시리즈로 대표되는 리얼로봇물을 주로 편성했다.

일본 만화에서는 배틀물 소년 만화의 대명사 격인 드래곤볼이 1984년에 연재를 시작했다.

2.5. 대량 학살

전 세계 독재자들이 반정부 성향을 보이는 자국민들을 대량 학살하는 사건이 종종 발생했다.
  • 대한민국: 5·18 광주 민주화 운동 - 전두환 학살 주도, 현장 사망 165명, 상이 후 사망자 376명, 행방불명자 65명. 00 - 01 - 02 - 03 - 04
  • 중국: 톈안먼 사건 - 덩샤오핑 학살 주도, 7000명(나토 추정)~10000명(소련 추정) 사망 추정
  • 시리아: 1982년 2월 2일 하마 학살 - 하페즈 알아사드(당시 시리아 대통령) 지시, 리파트 알아사드(하페즈 알아사드의 동생) 주도, 38000명(리파트 알아사드 본인 주장)~4만 명(시리아 인권위원회 추정) 사망 / 타드무르 대학살 - 1982년 6월 하페즈 알아사드의 동생인 리파트 알아사드가 군대를 이끌고 정치범들이 수용된 타드무르 감옥에 진입, 재소자들 무차별 학살. 수천 명 사망 추정.
  • 짐바브웨: 구쿠라훈디 학살 - 로버트 무가베(당시 최고지도자, 짐바브웨 총리) 주도, 1982년~1983년간 마타벨레랜드 지역에서 2만여 명 학살.
  • 이라크: 알 안팔 작전 - 사담 후세인(당시 최고지도자, 이라크 대통령) 주도, 1986~1988년간 18만 2000여 명 학살, 1988년 3월 16일에는 할랍자에 독가스를 살포해 5000여 명 즉사.

3. 한국의 경우

3.1. 1980년대 한국의 정치

서울의 봄
역사다시보기 - 6월민주항쟁(The June Struggle for Democracy)

1987년 6월 항쟁6.29 선언까지는 5.17 내란으로 유혈 집권한 제5공화국 군사독재의 시대였다. 가장 치열한 민주화 운동이 벌어진 시대였다.

1980년대의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한국 진보세력의 사상과 이념이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한국 진보정치의 역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해방 전후사의 인식, 한국 전쟁의 기원 등의 서적으로 대표되는 친일파 청산론, 반공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된 북한에 대한 재평가와 북한과의 화해 및 통일의 추구, 그리고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서 비롯된 미국에 대한 재평가는 이후 이때 민주화 운동을 벌인 386세대들이 정권을 잡게 된 2000년대에 과거사 청산 활동, 북한과의 화해, 협력, 반미자주외교노선 등으로 현실정치에서 시도되게 된다.

3.2. 1980년대 한국의 경제, 사회

여자 삼청교육대
1980년대 초 고속버스 안내양 멘트
  • 1981년을 계기로 석유파동의 후유증을 극복하면서 중산층의 비율이 증가하기 시작하고 1986년부터 1989년에 이르기까지 3저 호황이라고 해서 경제 성장과 수출 증가를 거치면서 전 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할 정도로 중산층의 비중이 두터워졌다.[5] 또한 70년대까지만 해도 극소수의 부자들만이 소유할 수 있었던 자가용 자동차를 보유한 가정이 크게 늘게 되어 '마이카' (My Car)가 유행어가 되었다(마찬가지로 ‘오너드라이버’라는 말도 유행했다) 1가구 1자동차 시대는 90년대의 일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8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해서 보급률이 크게 늘어났고 주차난도 8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 되었던것도 사실이었다. 1985년의 한국의 GNP는 2310달러로 낮지는 않은 수준이었다.
  • 1980년대 중반 3저 호황으로 미국의 수입개방이 거세져 농축산물 개방이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지자, 농민들이 생계에 큰 위협을 받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1984년 함평/무안 농민투쟁, 1985년 소몰이 투쟁 등이 벌여졌고, 1985년에는 '함평농민회'라는 자주 농민운동조직을 결성했다. 이는 1987년 전국농민협회, 1988년 전국농민운동연합으로 각각 발전되었다. 공산품 역시 정부가 점진적으로 수입개방을 감행해 1986년 수입담배가 허용됐고, 1987년 물질특허, 1988년 영화직배 등이 각각 개방되었다. 1989년에는 GATT BOP원용조항이 폐지되고 GATT 11조(수출입 수량제한 철폐) 이행국이 되어 농산물 88.5%, 공산품 99.9%로 각각 증가했다. 금융시장 역시 1987년 외국보험사 지사 개설을 허용했고, 1988년에 현지법인 설립까지 허용했다.
  • 대학 졸업자들은 대기업에 취업이 잘 되고[6] 공무원의 경우에는 당시에는 그리 돈을 못 버는 직종으로 여겨졌기 때문에[7] 시험경쟁률이 낮아서 하급 공무원이 되기 쉬웠다. 다만 그때도 행정고시의 경우에는 엘리트가 되기 수월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경쟁률이 높은 건 마찬가지였기는 했다. 물론 당시 중소기업은 물론이고 대기업도 근로환경이 열악했다는 것은 넘어가자(...) 참고로 공무원 시험은 88년까지는 쉬웠으나 89년부터 취업율이 둔화되고 한국 경제가 예전만큼 시원찮치 못하게 되어 조금씩 어려워졌다. 91년 이후 만만치 않은 시험으로 어려워졌는데, 참고로 80년대 후반에 대학 입학한 학생들이 대학 안가고 7급이라도 시험 쳐서 들어갔다면 들어갔을 텐데 5~6년 만에 너무 어려워졌다고 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대기업도 대졸자라면 80년대에는 C-성적도 골라서 갈 수 있던 것을 91년 이후에는 성적이 B-이하라면 대기업 들어가는 것도 어렵게 되었다. 석유 가격도 80년대 중반부터 좀 안정화 되어서 마이카를 일단 사기만 하면 부담 없이 끌고 다니던 시기였다.
  • 전두환 정권이 박정희 정부와 차별화하려는 목적도 있었고, 올림픽 개최에 따라서 시민을 학살한 독재정권이었다는 점을 희석시켜야 되었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부분적으로 자유로워지는 면이 있어서, 통금이 해제되고, 교복이 자율화되었다. 그리고 일시적으로 개인 과외가 금지됨에 따라 사교육 없이도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던 세대가 형성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몰래 할 사람은 다 하고 과외 가격만 올랐다. "입학은 쉽게 졸업은 어렵게"란 명분으로 대학 정원도 급속하게 불어났는데, 이것이 결국엔 전두환의 의도와 달리 학생운동의 활성화(...)로 이어진다. 그리고 실제로 졸업 못한 사람은 자퇴율 때문에 많지 않았다.
  • 3S정책의 일환으로 <애마부인>을 위시한 에로영화들이 대거 제작되었고, 1988년 미국의 영화시장 개방 압력으로 직배가 허용되자 토종 영화인들이 반발해 시위까지 벌였다.
스포츠로 지배하라! 5공 3S 정책(프로야구)

K리그KBO 리그, 민속씨름이 시작되는 등 프로 스포츠가 활성화되기도 하였다. 또한 야구에 있어서는 해태 타이거즈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 1980년에는 아시안 게임을 한국에서 하기로 결정된 해이기도 하며, 1982년 서울에서 올림픽을 하기로 결정되었는데 이때를 계기로 대한민국의 세계적 지위를 알림으로 인해 한국인들의 자부심이 커지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했다.
  • 유소년층의 인구가 본격적으로 줄기 시작했을 때이기도 하다. 여성들의 취업률이 높아지는 등 사회적인 변화와 함께 1980년대 중반부터 산아제한 정책이 제대로 약빨(...)을 받아서 신생아수가 1987년에 62만으로까지 떨어지기까지 했고 출생아수 70만을 다시 넘기려면 1991년까지 기다려야 했다.[8] 더욱 중요한 점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출산율 2명대를 더이상 넘기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 1960년대생들이 성인이 된 시기다.
  • 컬러방송이 시작되었다. 사실 그 이전에도 컬러방송을 할려고 했으나,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계층 간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다 같이 흑백방송 보자는 기존의 흑백TV 사용자들을 배려(?)한 정책 때문에 무산됐다. 텔레비전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대한민국은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네 번째로 늦게 컬러방송을 개시한 국가다.
  • 1980년 코미디언 이주일이 전성기를 맞이하여 전 국민을 TV 앞으로 불러모으고 배를 잡고 뒹굴게 만들었다. 가히 이주일 신드롬이라 불러도 될 정도로 사회적으로 거대한 파장을 일으켰다. 이주일의 데뷔는 컬러방송의 시작과 거의 일치한다. 80년대 중반부터는 KBS에서 유머 1번지, 쇼 비디오 자키등이 방영되며 콩트시대의 황금기를 맞이한다. 컬러방송, 이주일, 조용필은 당시의 연예계를 관통하는 키워드였다.
  • 이때부터 지금의 서울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특히 강남, 특히 송파구잠실이 더욱 엄청난 속도로 개발되었다.

신데렐라 노래에 뜬금없이 1980년대라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4. 일본의 경우: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

1980s Tokyo, Japan - Traffic, Busy Streets, Shibuya Crossing, Rare 35mm Footage 80's Japanese TV Commercials (Part 1 of 4)[9]
  • 거품경제의 호황을 누리던 시기라 자신감이 충만해 있었고, 이 시기에 서브컬쳐에서는 미래 지향적인 작품들이 자주 제작되었다.
  • 8비트 게임기의 중흥기를 이끌어냈다. 패미컴만 해도 전설의 레전드.
  • 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은 희망적이고 자신에 차 있는 경우가 많다.
(1980~1989)일본과 주요국가의 명목 GDP 흐름[10] 1980년1981년19821983년1984년1985년1986년1987년1988년1989년
단위: 10억 달러(약 1조 원)
미국 전체 명목 GDP 2,862 3,210 3,345 3,638 4,040 4,346 4,590 4,870 5,252 5,657
일본 전체 명목 GDP 1,086 1,201 1,116 1,218 1,294 1,384 2,051 2,485 3,015 3,017
독일 전체 명목 GDP 826 695 671 669 630 639 913 1,136 1,225 1,216
프랑스 전체 명목 GDP: G7 704 621 589 564 534 559 775 939 1,025 1,031
영국 전체 명목 GDP: G7 542 520 492 466 441 468 570 704 855 865
중국 전체 명목 GDP 309 292 286 307 316 312 303 330 411 459
대한민국 전체 명목 GDP 67 76 81 90 99 103 119 150 202 248
이웃 나라 이야기 1부 불패신화

너무 높은 화폐가치로 인해 쌍둥이 적자[11]에 시달리던 미국은 수출을 증가시키기 위해 자국의 화폐가치를 절하할 방법을 찾는다. 결국 1985년 9월 22일 미국 뉴욕의 플라자 호텔에서 G5 경제선진국인 미국, 프랑스, 서독, 일본, 영국플라자 합의를 맺는다. 절상됐던 달러의 가치는 하락했고 독일, 일본의 화폐가치는 상승했다. 일본의 돈은 더욱 부동산에 몰리게 된다.[12]

당시 일본의 경제규모는 미국을 추월할 것처럼 보였다. 일본은 미국 경제규모 절반에 해당하는 명목 GDP를 달성했다. 그 수치가 1987년에는 51.0%, 1988년에는 57.4%, 1989년에는 53.3%에 달했다. 일본의 남아도는 돈들은 주식과 부동산에 집중적으로 쏠렸다. 덩달아서 부동산 불패신화가 불었고 거품도 증가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절상된 화폐가치 때문에 수출에 어려움을 겪을 것을 두려워했다. 때문에 일본 정부는‘엔고 불황’을 막기 위해 지속적으로 저금리정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것이 오히려 독이 되어 일본의 부동산거품과 주식거품에 더욱 불을 지르게 된다.
(1980~1989)일본과 주요국가의 1인당 명목 GDP 흐름
[13][14]/단위: 달러
1980년1981년19821983년1984년1985년1986년1987년1988년1989년
일본 1인당 명목 GDP: G7 9,312 10,217 9,431 10,216 10,786 11,464 16,890 20,367 24,604 24,522
핀란드의 1인당 명목 GDP: 북유럽국가 11,497 11,198 11,242 10,724 11,074 11,682 15,249 18,949 22,482 24,369
노르웨이의 1인당 명목 GDP: 북유럽국가 15,569 15,307 15,003 14,701 14,737 15,449 18,495 22,020 23,706 23,805
스웨덴의 1인당 명목 GDP: 북유럽국가 15,781 14,395 12,672 11,645 12,092 12,643 16,689 20,252 22,761 23,805
미국 1인당 명목 GDP: G7 12,575 13,965 14,410 15,531 17,099 18,231 19,078 20,062 21,442 22,879
덴마크의 1인당 명목 GDP: 북유럽국가 13,609 11,782 11,513 11,571 11,289 11,974 16,880 20,950 22,075 21,454
프랑스 1인당 명목 GDP: G7 13,111 11,493 10,858 10,329 9,733 10,146 14,003 16,869 18,324 18,324
독일 1인당 명목 GDP: G7 10,699 8,984 8,681 8,691 8,222 8,358 11,929 14,841 15,904 15,632
영국 1인당 명목 GDP: G7 9,629 9,227 8,746 8,281 7,818 8,292 10,071 12,395 15,035 15,171
대한민국 1인당 명목 GDP 1,778 1,968 2,075 2,268 2,474 2,542 2,906 3,627 4,813 5,860
중국 1인당 명목 GDP 313 292 281 298 303 295 282 301 370 407

1980년대 일본은 1인당 명목 GDP에서는 이미 미국을 추월하고 있었다.

1980년대~1990년대 미국 대중문화에서는 '일본위협론'처럼 보이는 사상들이 각종 매체에서 광범위하게 투영되어 있었다.
Robocop 3 Ninja fight (scene)

1993년의 작품이지만 그러한 시대적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로보캅 3[15]다. 이 작품은 1980년대 일본의 경제성장에 대하여 미국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일본의 미국 추월에 대한 우려는 80년대와 함께 종말을 맞은 것이 아니라, 일본의 거품붕괴가 일어난 이후인 90년대 중반을 지나며 사그러들었다. 일본의 주식시장은 1989년, 부동산시장은 1991년에 최고점을 찍은후 급격한 하락세를 겪으며 거품이 본격적으로 빠지기 시작했는데, 따라서 미일간 경제규모 격차가 가장 적게 났던 시점은 80년대가 아닌 1995년이었다. 이 해 일본 GDP는 미국 GDP의 71.1%까지 도달했으나, 거품붕괴와 아시아경제위기의 본격적인 영향을 겪으며 96년 59.7%, 97년 51.3%, 98년 44.4%까지 뚝뚝 떨어지게 된다.

5. 1980년대가 배경인 작품

해당 시기에 제작된 작품들 제외. 가상역사/SF물인경우 ▼.

6. 이 시대에 시작된 것들

지금도 널리 쓰이고 있는 것들을 적을 것.

7. 이 시대에 쇠퇴한 것들

이전 시대에 나와 지속적으로 쓰인 것들을 적을 것.

8. 이 시대의 상징들

8.1. 이 시대를 풍미한 것들

특히 대한민국 물건이거나 대한민국에서 흥한 경우 ●

8.2. 이 시대의 유행어

9. 1980년대에 들어가는 해

1980년 - 1981년 - 1982년 - 1983년 - 1984년 - 1985년 - 1986년 - 1987년 - 1988년 - 1989년

10. 1980년대생

10.1. 한국

1980년부터 1989년 사이에 출생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2019년 현재 80년대생은 만 30대이다.

1980년생은 2019년 기준으로 이미 한국식으로 40이 되었다. 1981년~1983년생은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이며 1986년~1989년생도 한국식으로 31~34세로 청년기의 막간을 보내는 중이다.

그리고 1991년~1993년 사이 출생한 20대 후반의 동생들 즉 한국 나이로 27~29세들이 이 뒤를 따르며 30대에 가까워지고 있다. 여자 기준으로는 1986년~1988년 출생 이후 여성들도 상당수가 기혼자이며 대한민국 여성의 평균 초혼 연령이 이 나이대에 있다.

국내에서 핵가족이 보편화된 게 이 시기로, 산아 제한이 급속도로 성행한 때도 이 시기이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고 했을 정도. 그래서인지 이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형제 수가 4명이상인 집안이 거의 없으며,[33] 외동이 흔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2019년 기준으로 1980년~1983년 사이 일명 이해찬 키드들은 이제 더 이상 청년이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세대이다. TV에서 청년으로 등장하는 세대는 주로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즉 1987년~1994년 출생자들로 1980년~1983년생은 사회생활을 어느 정도 한 중견으로 취급 받는다. 실제로 직장 등에서도 어느 정도는 짬이 찬 관리자 정도 직위다. 물론 80년대 후반생인 1986년~1989년생들은 그딴 거 없다. 여성의 경우는 사회진출이 빨라 빠르면 매니저 정도 직급을 달고는 있고 남자는 이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경우도 꽤 있다. 군대의 경우는 대위~소령 사이 계급이 이 때 출생자들이다.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사람은 대개 이 때 사람이다.

이들 이해찬 키드들의 경우는 한국에서 가장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낸 세대이기도 하다. 한창 3저 호황을 누리고 올림픽이 개최되던 시절에 태어났다. 물론 막 성인이 되던 차에 IMF 외환위기가 터진 조금 안습한 세대이기도 하다. 그래도 한 가지만 잘하면 된다는 모토 하에 헛된 기대와 함께 널럴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99~02학번들이다.[34]

슈퍼 그랑죠, 피구왕 통키, 나디아, 시간탐험대, 꾸러기 수비대, 천사소녀 네티, 소년기사 라무, 선라이즈용자물들, 세일러문, 웨딩피치, 마법기사 레이어스, 모노노케 히메, 슈퍼전대, 울트라맨, 시공전사 스필반 그 외 수많은 일본 애니들을 보고 자란 세대이며 반 평균 30~40명, 학년 평균 10개 정도의 반을 가졌던 학창시절을 보냈고 국민학교와 초등학교를 둘 다 다녔다. 보통 1985년생까진 국민학교, 그 이후는 초등학교다.

국민학교이던 시절부터 초등학생시절까지 일부는(특히 시골) 교실 중앙에 땔감을 연료로 쓰는 난로가 있었으며(검정고무신에 나오는 그것)교내의 복도는 나무로 되어있어 기름걸레, 왁스 묻힌 손걸레로 광을 내는 것이 주에 한 번은 있었다. 어릴때는 동네 놀이터에서 다방구, 얼음땡 등을 즐기고 골목에서 딱지와 줄팽이를 돌리던 세대이며 청소년기에는 방과후 피시방에서 친구들과 게임을 즐겼다.

더불어 학창시절에 오락실과 피시방을 공유한 세대이며[35] 1980년대 초반생들의 경우는 휴대용 카세트와 mp3/cd플레이어를 거쳤고 디스켓이 cd로, 다시 usb로 변했으며 패미컴에서 가정용pc(라 쓰지만 게임기)로의 변화를 겪었다.

또한 TBC 동양방송이라는 채널을 직접 경험한 적이 없는 세대들이자 두 개의 KBS 채널을 태어나자마자 접했던 세대들이다. TBC가 KBS에 합병되어 KBS 2TV로 바뀌었기 때문에 KBS 1TV와 2TV를 시청할 수 있었다. 그리고 10대에 가서야 SBS를 접하게 된다.

청소년기에 H.O.T, 젝스키스, S.E.S, 핑클로 대표되는 1세대 아이돌 그룹들에 열광했다.

행정적으로 직할시 러시 출신들이 많은 편이다. 1981년 경북 대구시, 경기도 인천시가 직할시로 승격되어 도에서 분리되고 1986년 전남 광주시가, 1989년 충남 대전시가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직할시 출신들이 생겨난 세대들이었다.

전두환, 노태우 단 두 사람이 집권했던 민정당의 보수정권하에서 유소년 시절을 보냈던 세대들이다.1980년 1월 1일생~ 1980년 8월 18일 이전 생까지만 최규하 정부 때 태어났다.1980년 9월 1일~ 1988년 2월 24일 이전생들만 전두환 집권기 때 태어났고 1988년 2월 25일 ~ 1989년 12월 31생까지가 노태우 집권기 출신들이다. 이후 1980년대생들이 10대나 유년 시절에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를 겪었고 청소년이나 20대 시절에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겪었다. 그러다가 20, 30대로 완전히 진입 후 다시 보수정권인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 청년 시절을 보냈고 현재 30대로 완벽히 진입한 지금은 문재인 정부를 겪고 있다.

1998년 부터 시작된 pc게임의 전성기와 함께 학창시절을 보냈고 대한민국 인터넷의 1세대를 청소년기에 몸소 겪으며 수 많은 포털 등 사이트와 메신저의 흥망을 함께했던 이들이다.[36]

그리고 흔히 외계어로 불리는 인터넷 신조어를 처음 사용한 세대이다.

이와 함께 IT기업들이 기존의 물질로서의 재화가 아닌 무형의 가치를 창출하여 순식간에 막대한 부를 창출하고 신흥 재벌이 되는 모습을[37] 학창시절에 보고 자란 이들로서 현재 인터넷을 활용한 사업을 벌이는 이들이 대부분 이 세대이다.

1980년대 중후반 즉 1986년~1989년 출생자 기준으로 이들이 초등학교 무렵인 1995년~1999년에는 아직 1980년대의 대학 만능주의가 만연했었지만 중학교 무렵엔 대입경쟁과는 모순되게도 열린 교실[38]이라는 모토하에 학생들의 자율성을 강조했다. 허나 이는 몇년만에 다시 대입만능론으로 회귀했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시절에는 인문계와 실업계로 편을 가르며 실업계는 성적이 부족한 학생이나 가는곳으로 가르치는 풍토가 만연했다. 또한 많은 예체능계 신규 대학들이 설립/개편되었다.

더불어 고교 이후 인문계에선 맹목적인 대입만을 가르쳤으나 이미 90년대의 대학=대기업 취직이라는 공식은 깨진 상황, 10여년간 대학만을 가르친 공교육의 피해자가 되었다.

'2017 시민희망인식조사' 결과 한국사회에서 전 연령대 중 가장 비관적인 세대인 것으로 나타나면서 희망제작소는 "집단우울증을 의심할 만큼 모든 항목에서 만족도가 낮다"고 평가하기도 했다.기사

10.1.1. 사회·정치적 성향

정치성향은 후 세대인 1990년대생들보다 진보성향이 강하다. 그렇지만 정치적으로 아주 강한 진보성향을 표방하면서 그외에 다른 면에서는 진보적 성향을 보기는 힘들며 한국 사회에서 기존에 내려오던 서열문화, 공동체문화, 권위주의에 여전히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인터넷을 어린시절부터 경험했고 2000년대 전반에 걸쳐 초기 인터넷 문화를 직접적으로 주도했던 세대이며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다음세대에 압도적인 영향을 끼쳤다.[39]

2000년대 인터넷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자국이성에 대한 불만과 혐오를 최초로 보이기 시작했던 세대이다. 대표적으로 서로를 비하적으로 칭하던 '루저', '고추장남', '된장녀'[40], '빠순이'등과 같은 용어들이 그 예이며 2010년대 이후 80년대생에게 영향을 받은 90년대생들은 눈에 확연히 드러날 정도로 자국이성혐오가 강화된 편이다. 그나마도 80년대 중후반생은 90년대생과 크게 다를게 없이 인터넷에서 자국 이성혐오를 조장하는 여론에 힘을 보태주고 있다. 그리고 일베나 워마드같은 자국 이성혐오가 강하고 우월주의 여론이 강세인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80년대생이 90년대생과 함께 여론을 주도하는 가장 강한 세력이다. 유아시절부터 인터넷을 접해온 90~00년대생보다는 덜할지언정 80년대생도 충분히 미성년자나 20대 초반 시절부터 인터넷에 노출되어왔고 또한 인터넷의 영향을 젊은 나이에 겪은 세대일수록 현실에서의 불만을 넷상에서 익명으로 자국혐오나 이성혐오등으로 해소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80년대생은 이 문제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심지어 온라인을 넘어서 조직적으로 오프라인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정치적으로 80년대 후반 생들의 경우에는 제법 사안에 따라 왔다갔다 하는 경우도 있으며 80년대 초반생들은 보수정권을 제법 겪었음에도 민주화를 체험하며 진보성향이 많이 강해졌다. 유아, 교육, 사회자산, 부동산, 회사 등에서 낮은 직위에 위치해 있고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대해 열광하고 북한과의 화해 및 반미, 반일 감정 정서가 가장 강하며[41] 사드 배치에 대해서도 반대하고, 한일군사보호협정 등에 반대한 세대도 1980년대생들이 많다. 그래도 한 때 17대 대선에서는 이회창문국현에게 표를 던졌지만 이후 다시 민주당 강성 지지 성향으로 변했다. 특히 대표적 유명한 정치인인 김광진이 있다. 보수 성향 정치인들도 없지않아 있는데 이준석, 손수조 등이 있다.

10.2. 해외

미국에선 1981년 이후 출생자들을 'Y세대'라 부르며, 1994년 대중잡지 <New York>지가 처음으로 붙인 명칭이다. 이들은 이혼 등으로 인해 파괴된 가정에서 태어나 에이즈나 마약, 범죄, 폭력 등에 시달리거나 죽는 등 선배 X세대보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성장했으며, 태어나면서 파괴되고 상실된 세계 속에서 생존을 위협받는 세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년 5월 23일 <New York> 지에 의하면 불확실한 미래에 좌절하는 X세대와 달리 '열악한 환경은 노력해서 극복해야 한다'는 건강하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지니고 있으며, 청소년 들어서 성차별 척결, 인종차별 반대, 에이즈 퇴치 등 미래에 살아갈 사회를 정화하는 데 노력하는 선행을 보인다는 점이다. 교양만화가 이원복 교수는 <현대문명진단>에서 해당 세대의 노력에 대해 "인류 스스로 파멸에서 구제되려는 자생력일지 모른다"고 보았다.

일본에서 1980년대생 역시 '빙하기 세대' 및 '사토리 세대'에 속하지만, 원로 애니메이션 전문가 야마구치 야스오는 저서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에서 '세대명도 없고 집단으로 말하기 거시기한 세대'라고 칭했다. 1980년대 이후 일본 사회가 평균화 사회에서 개성시대로 전환하면서 자아탐색, 자기발견이 주요 화제로 떠올랐으나, 이들의 부모들은 1990년대 들어 자식들이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자식들의 자기발견에 대해 모르고 '어떻게 하면 세상을 잘 살아가는가' 조차 가르칠 수 없었다. 1995년에 나온 애니 <신세기 에반게리온>도 스토리상 난해함 속에서 1980년대생들의 청소년 시절 고뇌를 투영한 게 그 반증이다.

11. 화제인물

11.1. 한국

  • 재계
    •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1983년 64K D램 개발 공헌.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1988년 삼성 '제2창업' 선언.
    • 김승연 한국화약그룹 회장: 1986년 구 명성그룹 관광계열사 인수해 재계순위 10위권에 등극시킴.
    • 김석원 쌍용그룹 회장: 1983년 효성증권, 1986년 동아자동차 인수로 사업다각화 주도.
    • 김선홍 기아산업 사장: 1980년대 '봉고신화'로 기아산업 재기에 공헌.
    • 김중원 한일그룹 회장: 1986년 국제상사 등 구 국제그룹 주요 계열사 인수.
    • 김용산 극동건설그룹 회장: 1986년 동서증권 및 국제상사 건설부문 인수.
    •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1982년 강원여객, 1983년 한국자동차보험, 1984년 일신제강 등을 각각 인수해 '탈 건설'을 선언함.
    • 김현철 삼미그룹 회장: 1984년 도산위기였던 그룹을 '전문화'로 회생시킴.
    • 박건배 해태그룹 회장: '탈 식품' 선언으로 사업 다각화 주도.
    • 박성용 금호그룹 회장: 제2항공사 '아시아나항공' 설립 주도로 기업 성장에 공헌함.
    • 임창욱 미원그룹 회장: 이하 동일.
    • 장상태 동국제강 회장: 1986년 연합철강 인수.
    •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 1980년 대한석유공사 민영화로 석유업계 중심으로 개편.
    • 현승훈 화승그룹 회장: '르까프' 출시로 운동화 고급화 주도.
    • 강진구 삼성반도체통신 사장: 1983년 64K D램 개발 공헌.
    • 정재은 삼성전자 사장: 1985년 한국의 경영자상 수상.
  • 체육계
    • 선수
      • 박노준
      • 박철순
      • 윤동균
      • 김성한
      • 김봉연
      • 김재박
      • 김용달
      • 김용운
      • 이만수
      • 양일환
      • 김용희
      • 김용철
      • 유두열
      • 최동원
      • 김시진
      • 이광은
      • 선동렬
      • 한대화
      • 방수원
      • 김일권
      • 김종부
      • 박창선
      • 최순호
      • 차범근
      • 허정무
      • 김주성
      • 이태호
      • 조광래
      • 김풍주
      • 김환진
      • 김태식
      • 박종팔
      • 장정구
      • 유명우
      • 이충희
      • 이문규
      • 이원우
      • 박수교
      • 김현준
      • 임정명
      • 안준호
      • 신동찬
      • 김진
      • 한기범
      • 허재
      • 유재학
      • 김유택
      • 김영희
      • 장윤창
      • 강두태
      • 박미희
      • 이운임
      • 이은경
      • 지경희
      • 이도희
      • 최윤희
      • 임춘애
      • 김수녕
      • 현정화
      • 조훈현 9단
  • 지도자
    • 김응룡
    • 김성근
    • 방열
    • 김인건
    • 박종환
    • 김정남
    • 우철우
    • 진준택
    • 송만기
    • 이창호
    • 전호관
    • 김철용

12. 관련 문서



[1] 대표적으로 1983년 핵미사일 오발 직전까지 간 사건.[2] 3저호황[3] 플라자 합의를 서방 여러 나라가 연합하여 일본을 굴복시킨 걸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절대 아니다. 오히려 일본 경제의 실력을 인정한 미국의 인증 선언에 더 가깝다. 플라자 합의는 근본적으로 환율의 현실화에 불과했고 실제로 그 효과가 나타날지도 당시에는 의심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당시에도 환율에 대한 결정권은 이미 정부가 아닌 민간으로 넘어간 상황이었고 때문에 5개국 정부가 합의했다고 하더라고 과연 환율이 정상화 될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현실 속에서 플라자 합의가 장래에 일본의 거품경제를 만들어내고 잃어버린 10년을 만들어 내는 간접적인 한 원인이 될 거라는 걸 누가 짐작이라도 할 수 있단 말인가.[4] 당시 블록버스터는 1000만 달러 이상이었다. 1991년 개봉한 터미네이터 2 이후에 들어서서 1억 달러 기준으로 올랐다.[5] 다만 이때 호황의 여파로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반까지 부동산값이 급속히 올라가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6] 물론 당시 대학진학률이 20%대에 불과했다는 것은 감안해야 된다.[7] 사실 이때는 대기업은 물론이고 중견기업 정도만 되어도 평생직장은 보장해주는 분위기였기에 공무원이 그리 메리트 있는 직종으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물론 공장다니는 것이나 농사짓는 것보다는 낫다고 여겨지던 수준.[8] 하지만 그마저도 1996년부터 다시 60만대로 떨어졌다.[9] 세 번째 아이브로우 광고에서 나오는 여성이 기무라 타쿠야의 부인 쿠도 시즈카.[10] (1980~1989)일본과 주요국가의 명목 GDP 흐름[11] http://www.lec.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550[12] 관련 기사[13] (1980~1989)일본과 주요국가의 1인당 명목 GDP 흐름[14] 북유럽 국가 1인당 gdp[15]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Story.do?movieId=11817&t__nil_main_synopsis=more[16] 타임슬립물로 당시 일본의 시대상을 보여주고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를 풍자한 일본 영화.[17] 이 시기의 TV 영상물들을 짜집기해서. 해당 소재가 90년대 초까지 커버하는 경우도 있지만 80년대 영상클립들이 압도적이다.[18] 초반부는 아니고 64회중 40회정도부터 1980년대로 넘어간다[19] 2025년의 가상역사와 이어지기도 하고 해서 반쯤은 가상역사. 그리고 고증오류문제도[20] 대개는 유신을 다루고 있지만 전두환의 집권 과정도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엄밀히 따지자면 5.17 쿠데타가 터진 80년도 4공은 4공이었다. 5공은 전두환이 11대 대통령에 이은 12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1981년부터 시작된다.[21] 전통적 개념의 코스프레는 18세기부터 있었지만, 서브컬쳐계 코스프레는 이 때부터 일본을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한국에 정식적으로 대중화가 된건 2000년대 초반.[22] 80년대를 풍미한 물건은 맞으나 대한민국에서는 구경해 보기는커녕 그 존재를 아는 이들조차 극소수 매니아뿐이었다. 일본에서나 80년대를 풍미한 물건.[23] 코모도어64의 경우 또한 국내에서 그 존재를 아는이가 전무하다. 삼성전자의 SPC-1000이나 금성사의 패미콤(FC-100) 정도가 80년대 초반을 풍미했다.[24] 봉고 트럭의 출시 년도가 1980년인데, 이듬해 나온 코치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기아를 살리는 1등 공신이 되었다.[25] 현대 소나타의 출시 이전 장관용 차량 4기통 제한등의 대내외적인 호조로 르망과 더불어 대우자동차의 찬란했던 좋은 한 때를 보여주는 자동차.[26] 맥가이버, 베이워치 시리즈가 대표적이다.[27] 대한민국에서는 1990년대 초에 현대전자에서 북미판 NES를 정발하면서 흥했다. 그 외에도 슈퍼콤 같은 패미클론으로 접해 본 사람도 많을 것이다.[28] 또 다른 패미컴으로 금성사의 개인용 컴퓨터(FC 시리즈)가 오히려 80년대를 풍미했다. 참고로 이 제품의 한글이름은 패미. 닌텐도 게임기 패미컴은 한국기준으로는 앞 주석에서처럼 1990년대에 유명했지 1980년대에는 그 존재를 아는이가 많지 않았다. 물론 세계적으로는 80년대 물건임은 맞다.[29] 한국에서는 일본보다 이르게 잡아도 이들 점프 일본만화들이 3년 정도 늦게 알려진 편이다.[30] 호조 츠카사의 만화. 국내에선 주인공 사에바 료가 당시 해적판 만화들의 한국명인 우수한으로 잘 알려져 있다.[31] 잡지책 소녀시대.[32] 다만, 이것은 1980년대보다는 1970년대에 더 유명했다. 1970년대 항목으로 옮기는게 맞을 듯.[33] 다만, 80년대 초반 한정으로는 4명 이상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으며 특히 시골이라면 더욱 더 흔하다.[34] 사실 1985년 이후 출생자는 대부분 초중고 사이에 IMF를 맞이한 세대이다. 저 얘기는 80년대 극초반의 소위 이해찬 세대 이야기다.[35] 1990년대 초/중반까진 오락실이 대부분이다가 1998년~1999년도에 전국적으로 pc방이 유행하며 오락실과 경쟁을 거쳐 이후 2000년 초반엔 대세가 되었다. 물론 이때 이들의 주 이용대상은 80년대 후반인 1986년 이후 출생자로 1990년대~200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이다.[36] 야후 코리아, 라이코스, 엠파스, 드림위즈 지니, 버디버디, 세이클럽에서 싸이월드 그리고 페이스북까지 겪는다![37] 야후, 구글, 다음, 네이버, 페이스북[38] 소위 이해찬 시대. 이때 고등학생이던 80년대 초반 출생자들은 제대로 엿 먹었다.[39] 2003년 당시 한국의 인터넷 보급률은 약 60%로 아이슬란드에 이어 전세계 2위였고 2002년에 이미 초고속 인터넷 가입 가구 수가 천 만을 돌파하였다. 실질적으로 인터넷이 사회에 상당한 영향을 주기 시작한것도 2000년대 초반부터인데 인터넷의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영향 모두 80년대생이 인터넷 문화를 주도하던 2000년대에 최초로 발견되었다. 이후 90년대생과 00년대생이 넷상에서 보여주는 문제점들은 이미 80년대생에서 발견할수 있었던 문제가 심화되었을뿐이다.[40] 이는 나중에 김치녀로 바뀌게 된다[41] 특히 위의 맘충같은경우 소황제영향으로 친중성향까지 갖고있다! 끔찍한 혼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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