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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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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신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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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신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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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신승훈
<널 사랑하니까>
(19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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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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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한국갤럽이 창립 30주년을 맞이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알아보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조사 시리즈를 기획해 2004년부터 5년 주기로 발표하고 있다.
2004년
※ 2004년 한국갤럽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가수'를 선정.
1위 2위 3위 4위 5위
이미자 나훈아 조용필 현철
6위 7위 8위 9위 10위
태진아 신승훈 송대관 김건모 설운도
2009년
※ 2009년 한국갤럽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가수'를 선정.
1위 2위 3위 4위 5위
장윤정 BIGBANG 태진아 이미자 소녀시대
6위 7위 8위 9위 10위
나훈아 조용필 현철
손담비
MC몽 이승철
송대관
2014년
※ 2014년 한국갤럽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가수'를 선정.
1위 2위 3위 4위 5위
조용필 이선희 장윤정 아이유 태진아
6위 7위 8위 9위 10위
EXO 이승철 이미자 나훈아 소녀시대
2019년
※ 2019년 한국갤럽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가수'를 선정.
1위 2위 3위 4위 5위
방탄소년단 장윤정 나훈아 아이유 조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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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정 송가인 김건모 설운도 진성
같이 보기: 한국인이 존경하는 인물, 좋아하는 스포츠선수, 좋아하는 소설가, 좋아하는 탤런트, 좋아하는 영화배우, 좋아하는 가수, 좋아하는 노래, 좋아하는 예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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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424242><colcolor=#FFFFFF> 신승훈[1]
申昇勳 | Shin Seung-hun
파일:IMG_7570.jpg
출생 1966년[2] 4월 11일[3] ([age(1966-04-11)]세)
충청남도 대전시 신안동
(現 대전광역시 동구 소제동)[4]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본관 평산 신씨[5]
신체 168cm[6], 65kg[7], O형
가족[8] 아버지 신중철(1933~2022)[9]
어머니 김월현(1938년생)[10]
누나 신향자(1958년생), 신미영(1963년생)
남동생 신동은(1969년생)
여동생 신은영(1971년생)[11]
학력 대전동광초등학교 (졸업)
대전동중학교[12] (졸업)
대전대신고등학교 (졸업)
충남대학교 (경영학 / 학사)
종교 무종교[13]
병역 방위병 복무[14]
소속사 라인음향[15](1990 ~ 1999년)
무소속(1999 ~ 2002년)
도로시컴퍼니[16](2002년 ~ 현재)
데뷔 1990년 11월 1일[17] (데뷔일로부터 [dday(1990-11-01)]일, [age(1990-11-01)]주년)
데뷔 음반 {{{#!wiki style="background-color: #ffffff; display: inline-block; margin: 5px 0px; padding: 1px 2px; border-radius: 4px; border-style: solid; border-width: 1px; border-color: #8C6D70; color: #010326"
장르 팝 음악, 발라드
악기 기타, 피아노
별명 발라드의 황제, 국민가수, 신승달, 신승판, 신부장님, 섹시한 다람쥐[18], 마르지 않는 샘
공식 SNS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19](소속사 공식홈페이지)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소속사 페이스북 페이지)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소속사 트위터)
파일:유튜브 아이콘.svg[20](소속사 유튜브채널)
개인 SNS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개인 페이스북)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개인 인스타그램)
공식 팬덤 후니패밀리
서명 파일:신승훈 서명.jpg

1. 개요2. 데뷔 이전 생애
2.1. 유년기 (1966 ~ 1986)2.2. 청년기 (1986 ~ 1990)
3. 데뷔와 활동
3.1. 데뷔 (1990)3.2. 1~2집 활동 (1990 ~ 1992)3.3. 3~6집 활동 (1993 ~ 1998)3.4. 7집~10집 (2000 ~ 2006)3.5. 새로운 장르의 음악 시도 (2008 ~ 2013)3.6. 11집 이후 (2015 ~ )
4. 평가
4.1. 음악적 특징 및 평가4.2. 싱어송라이터로서4.3. '발라드의 황제'라는 별명의 족쇄4.4. 오디션 프로 심사위원으로서4.5. 역대 기록
5. 디스코그래피
5.1. 정규/비정규 앨범
6. 콘서트
6.1. The 신승훈 Show
7. 수상 경력
7.1. 시상식7.2. 가요 프로그램 1위
8. 여담9.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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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가수, 작곡가, 싱어송라이터, 음악 프로듀서.

음악방송 14주 연속 1위[21]라는 한국 기네스북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전세계적으로도 많지 않은 정규앨범 7연속 밀리언셀러(1집부터 7집 모두 100만장 이상 판매) 기록과 함께 1집부터 10집까지 골든디스크 10회[22] 연속 수상한 유일한 가수[23]이다. 게다가, 한국 가요음반 역사상 두 번째 기록인 총 누적판매량 1700만장 이상[24]기록과 아시아 최단기간 음반판매량 1000만장 돌파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2. 데뷔 이전 생애

2.1. 유년기 (1966 ~ 1986)

신승훈은 과거 프로필 상 1968년 생으로 되어 있었으나, 실제로는 1966년 4월 11일(음력 3월 21일)생이다. 충청남도 대전시 신안동(現 대전광역시 동구 소제동)에서 2남 3녀 중 셋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나 대전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노래 실력이 좋으신 부모님을 닮아 어렸을 때부터 노래하는 걸 좋아했으며 지금보다도 더 미성인 목소리로 마이클 잭슨의 Ben을 부르고 다녔다고 한다. 가족들이 노래를 전부 잘한다고 한다. 오죽하면 가족끼리 함께 노래방을 가면 남동생[25]이 워낙 트로트를 잘 불러 정작 가수인 본인은 찬밥신세가 된다고 이야기 할 정도로 가족들의 노래 실력이 뛰어난 편. 또한 초등학생 때에 아버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하모니카를 선물받아 곧잘 연주했다고 할 정도로 악기와 무척 친했다.[26]

그랬던 그는 중학생 때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된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데, 바로 아버지에게 기타를 선물 받게 된 것. 사실 이 사연엔 숨겨진 이야기가 있는데, 아버지와 동생과 함께 스케이트장에 가려다가 얼음이 녹는 바람에 가지 못하게 되었고, 아버지께서는 속상해하던 신승훈에게 바이올린을, 남동생에게 기타를 선물해주셨다. 하지만 신승훈은 바이올린보다 기타에 매료되었고, 동생과 서로 기타와 바이올린을 바꾸었다고 한다. 결국 이 일이 신승훈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계기가 된 셈. 후에 인터뷰에서 밝히기를 처음 기타를 잡았던 순간, 그것이 나의 인생을 지켜줄 생명체라는 걸 느꼈다고.[27] 훗날 가수 데뷔를 반대하는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당신이 기타까지 선물해주고 나선 이제 와서 뭘 반대하느냐'라며 가수가 꿈이었던 신승훈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고 한다.

이후 중학생 때 친구들과 Poet라는 밴드를 만들어 학교의 지원을 받아 활동을 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곧잘 반 대표로 노래를 부르며 빌보드 순위를 다 외우고 다닐 정도로 노래를 좋아했다고 한다.

2.2. 청년기 (1986 ~ 1990)

1985년 대전대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년 재수해서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음악과 전혀 상관없는 경영학과에 86학번으로 입학하게 되었다.[28] 하지만 음악의 꿈을 접을 수 없었던 신승훈은 충남대학교 통기타 동아리인 '팝스우리'[29]에서 음악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대학교 1학년 2학기부터는 본격적으로 통기타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대전에서 유명했던 PJ카페에서 처음 알바 오디션을 보았고, 돈 맥클린의 Vincent와 앨버트 하몬드의 For the peace of all mankind를 불러 바로 합격했다고 한다.[30][31]

훗날 인터뷰에 의하면 카페뿐만 아니라 음악 감상실, 호프집, 피자집, 미용실, 수영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으며[32], 이 때의 레파토리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 후 꾸준히 인기가 상승했는데 당시 대전에서 신승훈이란 이름을 다 알 정도였다고 한다.[33] 그런 유명세 덕분에 당시 성현기가 진행하는 대전 MBC 별밤의 보조 MC와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으며, 이때 즈음에 데뷔곡인 미소 속에 비친 그대를 작곡했다고 한다.[34] 후에 대전에서 열린 이문세[35] 콘서트와 양수경의 사랑은 창밖의 빗물 같아요 코러스에 참여하기도 했다.[36]

그러던 신승훈은 본격적으로 본인의 이름이 새겨진 앨범을 갖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수가 되겠다며 서울로 상경하였으나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고, 결국 3개월 동안 라면만 먹으며 버티다가 장이 꼬여 다시 대전으로 내려오게 되었다.[37] 이때 슬럼프를 심하게 겪어서 처음으로 '가수를 포기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했다고.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고 다시 대전에서 꾸준히 통기타 아르바이트를 하며 서울에 있는 기획사 6군데에 데모테이프를 돌렸다가[38] 작사가 신재각[39]에게 눈에 띄어 김창환을 소개받았고, 본격적으로 가수 데뷔를 준비하게 되었다.

3. 데뷔와 활동

3.1. 데뷔 (1990)

1990년 11월 1일[40]
오랜 무명생활을 청산하고 신승훈이라는 이름이 박힌 앨범을 내고 데뷔했는데, 방송 출연은 다음해인 3월에야 가능했다. 원래는 TV 첫 출연으로 KBS '연예가중계'가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촬영 전날 양쪽 눈이 콘택트렌즈로 인해 심한 결막염에 걸리는 바람에, 결국 촬영 당일엔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에서 양쪽에 안대를 찬 채로 누워있어야 했다. 이 여파로 이튿날 MBC '퀴즈 아카데미'[41] 제주도 편까지 몽땅 취소가 되었다. 이후 MBC의 '여러분의 인기가요'에서 '미소 속에 비친 그대'가 처음으로 20위권에 진입해서 1월 18일 방송에 출연하려고 했으나 이라크 사담 후세인쿠웨이트 침공으로 뉴스 특보를 하느라 출연하지 못했다. 3개월 뒤, 이상우의 '그녀를 만나는 곳 100m 전'과 함께 1위 후보에 올랐지만 무대 리허설까지 마쳤는데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제주도 방문 속보가 뜨는 바람에 또 출연이 불발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데뷔 음반부터 밀리언셀러(million seller)를 달성했다. KBS 가요톱텐에서는 태진아가 당시 "미안 미안해"로 3주 연속 1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름조차 모르던 신인이 갑자기 1위로 치고 올라 와서, 한동안 신승훈을 미워했다고 한다.[42] 골든디스크상도 신인상이 아닌 본상을 바로 수상했으며, 이는 향후 발라드의 황제로서, 국민가수로서 발돋움하게 된 시작이었다. 이러한 그의 성공이 없었다면 당시 기획사인 라인기획, 즉 김창환에게도 후에 데뷔하게 된 김건모, 노이즈, 클론 등등은 없었을 정도로 신인 가수 신승훈의 비중은 소속사 내에서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었고, 그의 입지는 단단해졌다. 관련 기사

3.2. 1~2집 활동 (1990 ~ 1992)

1990년대 초중반은 한국 가요계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던 시기로서, 신승훈은 그 변화의 중심에서 시작부터 최정상의 인기를 누렸다.

1990년 1집(미소 속에 비친 그대)
1집 <미소 속에 비친 그대>로 데뷔한 신승훈은, 데뷔 앨범부터 14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데뷔 직후 밀리언셀러 가수가 되었다.

1991년 2집(보이지 않는 사랑)
2집 <보이지 않는 사랑>을 발표하였다. 이 노래는 1990년대 최고의 메가히트곡 중 하나로 꼽히는 곡으로, 당시 16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특히 노래의 마지막 "그리움 때문일.. 꺼야~" 부분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43] 이때 SBS 인기가요에서 14주 연속 1위를 한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올랐으며, 그해 최다 1위를 차지한 노래가 됐다. 이 해 골든디스크 대상과 KBS 가요대상 대상을 수상했다.
또한 2집의 후속곡인 <우연히>를 통해 처음 댄스를 선보였고, '우연히'도 여러 차례 1위를 하며 '보이지 않는 사랑'의 인기를 이어갔다.

1992년
신승훈의 인기가 얼마나 많았는지 신승훈의 노래를 이탈리아 가수가 번안해서 부르기도 했다. 그것도 한류라는 게 전무하던 시절에.[44] #1 #2 그 외에도 하술하듯 미국, 벨기에에서도 그의 노래를 번안하기까지 했을 정도다.

3.3. 3~6집 활동 (1993 ~ 1998)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와 함께 가요계의 판도가 급격하게 바뀌면서, 발라드 가수들에게 상당한 타격이 왔던 시기였다.[45]

1993년 3집(Shin Seung Hun Vol.3)
<널 사랑하니까>를 타이틀로 한 3집이 170만장 넘는 판매고[46]를 올리면서, 발라드 황제의 건재함을 보여주며 2년 연속 골든디스크 대상을 수상했다[47]. 타이틀곡 외에도 2집의 후속곡이던 <우연히>처럼, 3집에서도 마찬가지로 빠른 비트의 <처음 그 느낌처럼>과 <로미오와 줄리엣>을 후속곡으로 활동하며 해당 곡들도 큰 인기를 끌었다.

1994년 4집(그 후로 오랫동안)
4집 타이틀 <그 후로 오랫동안>이 KBS 가요 톱텐에서 5주 연속 1위로 골든컵을 수상하고, <오랜 이별 뒤에>도 1위에 올라[48] 인기를 얻었다. 4집 앨범 역시 160만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밀리언셀러 성공 신화를 이어갔다.

1996년 5집(Shin Seung Hun V)
1996년 가요계는 별들의 전쟁으로 회자될만큼 치열했다. 솔리드, R.ef가 이미 컴백한 가운데, 신승훈은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을 타이틀로 한 5집[49][50][51]을 발표했다. 주 단위로 김건모, 클론, DJ DOC, 룰라, 터보 등이 연달아 컴백한 가운데, 5집의 수록곡 <내 방식대로의 사랑>, <운명>이 차례로 인기를 얻은 덕분에, 역대 2위에 해당하는 247만장의 음반을 판매하며 굳건한 인기를 증명했다.

1998년 6집(Shin Seung Hun VI)
6집 <지킬 수 없는 약속>을 발표해 IMF라는 시대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130만장이라는 판매고를 기록했다. 서태지와 아이들, H.O.T 등으로 대표되는 댄스가수의 등장으로 발라드 가수들이 큰 타격을 입은 것에 비해, 신승훈은 6집까지의 앨범이 모두 밀리언셀러를 달성하는 등 발라드 황제의 자리를 지키며 정상권의 인기를 지켰다.

그 이후에 그는 소속사 라인음향을 떠나게 되었다. 이전 소속사와의 저작권 문제로 인해, 1집부터 6집까지 대부분의 노래를 본인이 작사,작곡 했음에도 불구하고 원곡 그대로 부를 수도 없게 되었다. 심지어 신승훈의 동의 없이 1집부터 6집까지의 수록곡을 묶어 신승훈 이름으로 몇 차례 베스트 앨범을 내기도 했다. 주황색 바탕의 Endless Ballad, 파란색 바탕의 The Best, 검은색 바탕의(자세히 보면 신승훈 3집때 모습이 보인다) 불후의 명작이 그 대표적인 예다.

3.4. 7집~10집 (2000 ~ 2006)

신승훈은 라인음향을 떠나 무소속인 상태로 활동한다.

2000년 7집(Desire To Fly High)
라이온킹이 연상되는 아프리카풍의 음악을 선보인 7집 <전설 속의 누군가처럼>이 타이틀곡인 Desire to fly high를 발표했다. 이 앨범도 100만장이 판매되면서, 7연속 밀리언셀러라는 대기록을 달성하게 된다.

2002년 8집(The Shin Seung Hun)
도로시뮤직(현 도로시 컴퍼니)를 창업했다.
<사랑해도 헤어질 수 있다면>이 타이틀곡인 8집으로는 84만장을 기록하며, 그 해 단일앨범 최다판매량을 달성하였다.

2004년 9집(Ninth Reply)
<그런 날이 오겠죠>을 타이틀로 한 9집을 발표했으며 후에 일본에 진출했다.

2006년 10집(The Romanticist)
<Dream of my life>이 타이틀인 10집을 발매했다. 10집 앨범까지 골든디스크 본상에 선정되면서, 1집부터 10집까지 열 장의 정규앨범 전부 골든디스크 본상 수상이라는 기록을 달성하게 된다.[52][53]

이후 본격적으로 일본에 진출하여 콘서트와 정규 앨범, 싱글, 미니 앨범을 발표하였다. 신승훈의 음악은 일본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일본에서 활동한 5년의 기간동안 일본 TV방송 출연은 단 3차례 였음에도 불구하고, 2006년 일본인들이 뽑은 최고의 한류스타 가수부문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또한 도쿄를 비롯해 오사카, 나고야, 고베, 요코하마 등에서 대형 콘서트를 개최하였고, 당시 티켓들이 매진되어 암표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3.5. 새로운 장르의 음악 시도 (2008 ~ 2013)

2008년 Radio Wave
데뷔 18주년이 되는 해인 2008년엔 '3 Waves of Unexpected Twist'[54]라는 프로젝트성 음악 실험을 시도했다. <라디오를 켜봐요>를 타이틀로 한 Radio Wave라는 미니 앨범을 처음 발매하게 되었다. 신승훈은 해당 앨범 수록곡 중 가장 아끼는 곡으로는 <나비효과>를 꼽았다.
이 때부터 창법을 바꾸기 시작했다.[55] 사실 정규 10집이 발매되던 2006년부터 목소리에 대한 고민은 꾸준히 해왔다. 10집 정규 앨범을 발매하면서 '내 목소리가 나의 최대의 적', '내 목소리가 이렇게 싫어질 줄은 몰랐다' 라며 '이 앨범을 마지막으로 앨범을 내지 말까'[56]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본인 목소리만 들어가면 '신승훈화(化) '되는 것에 대해 적잖게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 이는 2008년 MBC 무릎팍도사에 나와서 진지하게 '내 목소리가 싫어요'라고 고민을 이야기한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당시 방송에서 '1000만장 넘게 팔린 가수 같은 경우 대중들이 목소리에 대해 익숙해지기 때문'인 것도 있고, 콜라 이론을 설명하면서 “내 목소리는 콜라 같다. 항상 콜라를 찾지만 마시면서 '야, 콜라 정말 맛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제 음악과 목소리가 그렇다.”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2009년 Love O'Clock
<사랑치>를 타이틀로 한 두 번째 미니앨범 Love O'Clock[57]을 발표했다. 정규앨범과 달리, 미니앨범은 여러 부담에서 벗어나 본인이 하고싶은 음악을 해보는 것에 집중하겠다고 한 앨범이다.

2013년 Great Wave
미니앨범 프로젝트의 마지막 Great Wave[58]를 발표했다. 참고로 Love O'Clock를 준비하던 당시, 일렉트로닉을 시도하려고 했으나 멜로디 중심의 전개인 본인의 스타일과 리듬을 쪼개는 방식인 일렉과의 차이를 느껴 접었고, 후에도 여러 번 장르가 바뀔 정도로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3.6. 11집 이후 (2015 ~ )

2015년 11집(I am... & I am)
9년만의 정규앨범인 11집을 발매하였다. 관련 기사

2017년
데뷔 이래 최초로 디지털 싱글앨범 LIMITED EDITION 이라는 이름으로 <Polaroid>를 발매했다. 기존의 '신승훈표 발라드'와 달리 삶을 얘기하고 위로를 주는 노래이다.

2020년 MY PERSONAS
<여전히 헤어짐은 처음처럼 아파서>와 <그러자 우리>를 더블 타이틀로 한 30주년 스페셜 앨범을 발표했다. 정규앨범이 아닌 30주년 스페셜 앨범이지만, 과거의 영광에 갇혀있는 가수가 아닌 현재진행형 가수가 되겠다는 의지를 담아 새로운 음악으로만 앨범을 구성했다. 신곡 5곡과, 빛 보지 못한 후배가수의 좋은 노래를 신승훈 버전으로 리메이크한 2곡이 담겨있는 앨범이다.

4. 평가

발라드의 황제라는 별명은 1991년 2집 '보이지 않는 사랑' 발매 이후 이 별명은 신승훈을 상징하는 별명이 되었다. 데뷔 때부터 작곡과 노래 양면에서 엄청난 역량을 보여주어, 조용필이 당시 신인이던 신승훈을 직접 본인의 후계자로 인정했을 정도였다. 신승훈의 공백기 동안 수많은 후배 발라드 가수들에게도 유사한 별칭이 붙여지기도 했다. 그러나 발라드의 황제라는 타이틀은 여전히 일반적으로 신승훈을 지칭하는 수식어로 통한다.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국민가수 호칭을 받은 가수[59][60]이다.

음악방송 14주 연속 1위[61]라는 한국 기네스북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전세계적으로도 많지 않은 정규앨범 7연속 밀리언셀러(1집부터 7집 모두 100만장 이상 판매) 기록과 함께 1집부터 10집까지 골든디스크 10회[62] 연속 수상한 유일한 가수[63]이다. 게다가, 한국 가요음반 역사상 두 번째 기록인 총 누적판매량 1700만장 이상[64]기록과 아시아 최단기간 음반판매량 1000만장 돌파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시대를 대표하는[65] 역대급 커리어를 가진 가수로서 전국민적 인기를 누렸지만, 2020년대의 젊은 세대들 중엔 신승훈의 음악과 음악사적 업적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는 신승훈 스스로 음악도 하는 가수가 아닌 음악만 하는 가수이고 싶다는 소신에 따라, 지난 30여년 간 음악 이외의 각종 방송활동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음악과 무관한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경우는 30여년을 통틀어도 두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 그것마저도 절친한 동료연예인들과 함께 토크쇼에 출연했던 것이 대부분이다.

일례로, 10년이 넘도록 가요계 최정상의 자리를 지켰던 전성기 시절부터 수많았던 CF섭외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도 CF를 찍지 않았다. 그 이유는 “본인은 슬픈 노래를 부르는 발라더이기 때문에 본인의 이미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66]로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또한 CF 특성상 사람들이 원하지 않을 때에도 계속해서 방송에 나오게 되는 것에 대해서도 꺼려진다고도 밝혔다.

또한 신승훈은 90년대 가장 큰 인기를 누렸던 국민가수였음에도,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의 배경음악으로 단 1곡만이 사용되었다. 또한 신승훈 음악에 대한 리메이크도 잘 이루어지지 않는 등 젊은 세대에 재조명 받을 기회도 훨씬 적었던 이유도 있다.[67][68]젊은 세대가 90년대 당시 신승훈과 그의 음악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모른다해도, 그럼에도 신승훈은 대한민국 대중가요 역사상 열손가락에 꼽히는 올타임 레전드 가수임엔 변함이 없다.

4.1. 음악적 특징 및 평가

신승훈의 대부분의 곡 가사를 보면 슬프지만 겉으로는 슬픔을 드러내지 않는 '애이불비(哀而不悲)'[69] 정서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신승훈의 음악적 모티브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데뷔곡인 '미소 속에 비친 그대' 가사에서는 '나는 울고 싶지 않아 다시 웃고 싶어졌지', '소녀에게'에서는 '슬픔이 내게 필요하다면 눈물을 미리 준비해둘게 그것이 니가 바랬던 거라면 슬픔마저 참아야 한다면 받아들일게 너를 위해서 나 혼자 슬픔을 감추며', '애이불비(哀而不悲)'[70][71]에서는 '그대 나를 떠나려는 이유를 굳이 알려하지 않으렵니다 그저 난 그대 가시는 그 길에 그대의 행복이 있길 바랄 뿐' 'I Do'에서는 'I don't wanna be 눈물로 널 잡고 싶진 않아 I don't wanna be 너의 짐이 되고 싶진 않아' 등등이 있는데, 전체적인 가사가 ‘애이불비’를 바탕으로 전개되고 있다.

또한 신승훈의 노래를 듣다 다 보면 소위 '라인'이라는 것이 있어서 비슷한 장르나 분위기끼리 앨범을 발매할 때마다 노래가 어떻게 변화해 나가는지 보는 재미도 있다. 즉, 앨범을 발매할수록 진화하는 셈이다.

특히 장르나 분위기가 비슷해서 일부 사람들은 다른 노래를 비슷한 노래로 안다든가 같은 노래로 아는 사람들도 있다.

장르로 몇 개만 나누어보자면
  • 가잖아 - 이런 나를[72]
  • 소녀에게 - 너를 보내며 - 널 위한 이별 - 그랬으면 좋겠어[73]
  • 로미오와 줄리엣 - 어긋난 오해 - 실수 - 엄마야 - 올거야 - 그게 바로 사랑이죠 - 어디선가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74]
  • 나처럼 - 오랜 이별 뒤에 - 그대 떠나갈 만큼 - 못된 기다림[53]
  • Game of R.O.K - 비상 - 내 멋대로 해라[76]
  • 애이불비((哀而不悲) - 애이불비2((哀而不悲2) - 송연비가(送緣悲歌)[77]
  • 운명 - 고개 숙인 너에게 - 전설 속의 누군가처럼 - 그런 날이 오겠죠 -
  • 소녀에게 - Lady[78] 등등이 있다.

앨범에 댄스곡을 1곡씩 넣는 특징이 있다. 3집에는 처음 그 느낌처럼, 4집에는 어긋난 오해를 수록했다. 모두 천성일의 곡이다.

4.2. 싱어송라이터로서

우리가 싱어송라이터를 논할 때 가장 위에 있어야 될 존재가 사실은 신승훈이며, 발라드 영역에서 시장과 예술성을 다 잡은 최고의 가수이다.
– 평론가 임진모
신승훈이 지금까지 스스로 자립하고 음악을 할 수 있는 건 바로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능력 때문이다. 데뷔 앨범 속 타이틀 곡인 '미소 속에 비친 그대'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발매한 모든 앨범의 타이틀곡을 직접 작사, 작곡하였다. 그런데 이 타이틀 곡의 대부분이 히트하여 여러 음악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하였고, 덕분에 1990년대 1위를 가장 많이 한 가수라는 타이틀을 가진 동시에 1990년대 1위를 가장 많이 한 작곡가라는 타이틀도 가지게 되었다.

5집부터는 작사, 작곡, 편곡, 프로듀싱 모든 것을 해왔으며 그 전의 앨범인 1집~4집 같은 경우에도 타이틀곡은 본인이 직접 작사, 작곡을 했다. 그 외에도 그의 앨범에는 자작곡이 많이 들어가 있다. 7집부터 지금까지 낸 앨범은 신승훈의 손에서 다 탄생했다.

엠넷 레전드 아티스트 100에 의하면 신승훈은 총 세 분야에 이름이 올라갔는데 그 중 두 분야가 보컬, 싱어송라이터다. 나머지 하나는 아이콘 분야이다. 이렇게 보컬, 싱어송라이터, 아이콘 세 분야에 다 뽑힌 가수는 김광석, 들국화, 조용필뿐이다. 물론 엠넷 레전드 100을 무조건적으로 신봉할 순 없겠지만, 그렇다고 또 완전히 무시할 수가 없는 게, 이 분야 관련 전문가들이 한국 가요사를 빛낸 가수를 모여서 선정한 것이기 때문. 게다가 음악에 종사하는 당사자들도 각자 본인이 뽑힌 분야를 방송에서 이야기하는 걸 보면 더더욱 인정받는 듯하다.

요즘에는 그가 싱어송라이터라는 인식이 어느 정도 자리잡았지만, 예전엔 남의 곡 받아서 활동하는 걸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을 정도로 가수로서의 이미지가 강했다. 맥케이의 첫 번째 싱글인 'Angel 2 me'와 슈퍼스타K7 결승전 때 살아남은 두 도전자에게 주었던 곡들을 봤을 때 작곡 실력이 보통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단순히 본인 스타일의 노래만 작곡을 잘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스타일에도 맞는 곡을 잘 주려고 하는 듯. 이러한 프로듀서로의 능력은 Mnet에서 방영한 더 콜에서도 볼 수 있다.

4.3. '발라드의 황제'라는 별명의 족쇄

신승훈의 앨범을 살표보면 2집 이후로 꾸준히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시도해왔다. '신승훈은 항상 똑같은 발라드만 부른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막상 신승훈의 음악을 제대로 들여다 보면 이렇게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시도한 가수도 별로 없을 정도로 정말 폭넓은 음악 스펙트럼을 갖고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주 종목인 발라드와 포크를 제외한 이외의 장르를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재즈 - 'I Love You', '나의 하루', '늦어도 11월에는'
맘보 - '내 방식대로의 사랑'
하우스 - '처음 그 느낌처럼'
뉴 잭 스윙 - '로미오와 줄리엣', '사랑느낌'
디스코 - '엄마야'
월드뮤직 - '전설 속의 누군가처럼'
R&B[79] - '소녀에게', '너를보내며', '순간을 영원처럼', '널 위한 이별', '사랑치', ‘그랬으면 좋겠어'[80]
레게 - '내일이 오면'
국악 - '애심가'
뉴에이지 - '애이불비'
보사노바 - '어느 멋진 날'
힙합 - 'Game of R.O.K' 등
모던락 - '라디오를 켜봐요'
브리티시록/브릿팝 - 'Sorry'

이렇게 다양한 음악을 시도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발라드의 황제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한 탓인지 대중은 여전히 신승훈 하면 슬픈 발라드만을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본인 스스로는 이런 이유때문에 발라드의 황제라는 타이틀이 감사하면서도 동시에 족쇄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러나 화가가 자기만의 화풍을 갖는 것이 중요하듯, 음악가 또한 자기만의 음악적 색깔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분명한 것은 신승훈은 다양한 음악적 변화를 시도해왔지만 동시에 그 안에 여전히 신승훈 고유의 감성과 음악적 색채가 뚜렷하게 뭍어난다는 것이다.

4.4. 오디션 프로 심사위원으로서

앨범 뿐만 아니라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활약했는데, 2010년 위대한 탄생 1기에 멘토로 출연해 따뜻하고 인간미 풍기는 멘토로 김태원, 이은미 등 타 심사위원들과 함께 프로의 구심점으로 맹활약했다. 구체적으로 '이게 이렇게 잘못됐다'라는 걸 지적하는 능력은 가장 뛰어난 편으로, 참가자의 단점에 대한 구체적인 지적과 개선법의 제시, 그리고 그것을 이해시키는 능력이 뛰어나다. 예를 들어 실력과 재능은 뛰어나지만 R&B와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로 R&B를 고집하는 참가자가 나왔을 때 이은미는 이를 두고 '블루지하지 않다' 라며 지적했고, 신승훈은 이를 '기타로 연주하면 재미없지만 색소폰으로 불면 참 어울리는 곡' 이라며 실제로 소리를 흉내내며 쉽게 이해시켰다. 또 모창을 지적받은 참가자에게 '처음에는 비욘세를 따라부르고 나중에는 리아나를 따라부른다' 라고 지적하는 식이다.

2012년 2월부터 엠넷에서 방영하는 보이스 오브 코리아에 출연했다. 그리고 그가 코치로서 가르친 손승연이 우승했다. 보이스 코리아 시즌2에서는 우승자를 배출해내지 못했지만 팬들은 이 영상을 건졌다. 사실 신승훈이 음악프로그램에 나오면 그 회는 음향도 다른 때와는 다르다고 할 정도[81]로 보코에서 중심축 역할을 수행했다. 그리고 신승훈이 보코를 할 수 있으면 시즌3이 진행되는거고 못하면 못하는거다 말을 했다고 한다.[82]

사실 위대한탄생과 보이스코리아 이전에도, 엠넷 슈퍼스타K 시즌1부터 시작해서 각종 오디션 심사위원 제의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누군가의 음악을 평가하고 탈락시켜야 하는 것은 본인의 성격상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해서 거절했다고 한다. 위대한탄생과 보이스코리아는 심사위원과 참가자의 수직적 관계보다는, 멘토와 멘티로서 참가자들을 이끌어주는 관계라는 점에서 선택했다고 한다.관련기사 여담으로 신승훈의 거절 이후 그 자리는 이승철에게 돌아갔고, 이승철은 슈스케 심사위원을 계기로 가수로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실제로 신승훈은 프로그램 내에서, 본인의 제자였던 참가자들에게 탈락 통보를 해야했을 때 눈물을 보이며 감정적으로 매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프로그램 종료 이후로도 제자들과의 인연을 이어가며, 탈락한 제자들도 계속해서 음악활동을 해나갈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돕기도 했다.

4.5. 역대 기록

  • 총 음반판매량 1,700만장(역대 2위)[83][84]
    아시아 최단기간 정규앨범 1,000만장 돌파.
    아시아 최단기간 누적판매 1,700만장 돌파.
  • 1집부터 7집까지 7연속 밀리언셀러출처
  • 1집부터 10집까지의 모두 골든디스크 본상 수상
    대한민국 골든디스크 역사상 최다 수상기록.
  • 역대 지상파 가요차트 최장기간 연속 1위
    2집 타이틀곡 '보이지 않는 사랑'이 MBC 여러분의 인기가요에서 11주 연속 1위, SBS 인기가요에서는 14주 연속 1위(통산 15회)를 기록하면서 역대 지상파 가요 차트에서 최장 기간 연속 1위를 기록했으며 두 방송사에서 10주 이상 1위를 한 유일한 곡이다.[85][86] 아울러 현재까지 우리나라 가요 차트 프로그램에서 10주 이상 1위를 한 곡은 이 두 곡을 포함해서 단 6곡 뿐이다.[87]
  • 단일 곡 음악방송 역대 두 번째 최다 1위(31회)[88]
  • 단일 앨범 역대 두 번째 최다 1위(40회)[89]
    - 2집 타이틀곡 ‘보이지 않는 사랑’ 30회[90]
    - 2집 후속곡 ‘우연히’ 10회[91]
  • 가요톱텐 역대 두 번째 최다 1위(26번, 1위는 조용필)
  • 가요톱텐 골든컵 수상 역대 2위(4번, 1위는 조용필)
  • 90년대 1위를 가장 많이 한 가수
  • 90년대 1위 곡을 가장 많이 만든 작곡가
  • 앨범 타이틀곡 100% 본인 작곡
  • 앨범 수록곡 90% 이상 본인 작곡
  • 신승훈의 해외 번안곡들 (신승훈→해외)
    • 중국 표절곡 약 20곡 이상
    • 공식 번안곡 여명(순간을 영원처럼, 가을빛 추억 등을 번안), 유덕화, 쑨난, 양한문(보이지 않는 사랑 번안), 위란(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 번안) 등 (대만에서는 보이지 않는 사랑 번안곡이 500만장), 손남( I believe 번안)
    • 영미권
      • '미소 속에 비친 그대'→올포원(All 4 One) ' I don't wanna cry'(#)
      •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뿐'→벨기에 혼성 밴드 시티즌 제인(Citizen Jane) 'Martian Puppies'
      • '날 울리지 마'→재키 무어(Jackie Moore) 'Only You'

5. 디스코그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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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훈의 정규 음반 및 EP 음반 목록
{{{#!folding [ 보기 · 닫기 ] 1집 미소 속에
비친 그대

(1991. 1. 15)
2집 보이지 않는 사랑
(1991. 11. 30)
3집 Shin Seung Hun Vol.3
(1993. 4. 15)
4집 그 후로 오랫동안
(1994. 9. 15)
5집 Shin Seung Hun V
(1996. 5. 1)
6집 Shin Seung Hun VI
(1998. 2. 1)
7집 Desire To Fly High
(2000. 3. 7)
8집 The Shin Seung Hun
(2002. 1. 14)
9집 Ninth Reply
(2004. 2. 3)
10집 The Romanticist
(2006. 10. 10)
EP 1집 Radio Wave
(2008. 10. 7)
EP 2집 Love O'Clock
(2009. 11. 12)
EP 3집 Great Wave
(2013. 10. 23)
11집 I am... & I am
(2015. 10. 29)
}}} ||

5.1. 정규/비정규 앨범

볼드체는 각 앨범의 타이틀곡이다.
발매일 앨범 앨범명 수록곡
1990년 11월 1일 Pre-Debut
Single
미소 속에 비친 그대 미소 속에 비친 그대
1991년 1월 15일 정규 1집 미소 속에 비친 그대 미소 속에 비친 그대
두번째의 사랑
오늘같은 이런 창밖이 좋아
그댈 사랑해
돌아봐줘
그대의 마음은
그리워라
그대여 안녕
미소 속에 비친 그대(MR)
돌아봐줘(MR)
1991년 11월 30일 정규 2집 보이지 않는 사랑 보이지 않는 사랑
영원히 사랑할 거야
가을빛 추억
우연히
거울 속의 나
오늘만은
쉬운 이별
햇살 속으로
오늘 밤이 지나면
영원히
날 울리지 마
미소 속에 비친 그대(Bonus Track)
1992년 12월 9일 라이브 앨범 SHIN SEUNG HUN LIVE 날 울리지 마
미소 속에 비친 그대
가을빛 추억
당신은 사파이어처럼(Intro Live)
당신은 사파이어처럼(In Studio)
햇살 속으로
오늘 같은 이런 창밖이 좋아
우연히
보이지 않는 사랑
1993년 4월 15일 정규 3집 Shin Seung Hun Vol.3 널 사랑하니까
소녀에게(Hey Girl)
로미오 & 줄리엣
어젯밤 꿈에
나처럼
밤이 내리면
널 위해서라면
처음 그 느낌처럼
1994년 9월 15일 정규 4집 그 후로 오랫동안
(Shin Seung Hun IV)
With You In The Rain...
그 후로 오랫동안
사랑 느낌
너를 보내며
내일이 오면
나만의 이별
오랜 이별뒤에
변해가는 내 모습
어긋난 오해
슬픈 사랑
로미오 & 줄리엣(Remix)
1996년 5월 1일 정규 5집 Shin Seung Hun V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
운명
내 방식대로의 사랑(House Ver.)
I Love You
Your Song
순간을 영원처럼
이쯤에서
Happy Birthday to Me
Game of R.O.K.
내 방식대로의 사랑
1998년 2월 1일 정규 6집 Shin Seung Hun VI 지킬 수 없는 약속
고개숙인 너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
무너진 사랑앞에서
우연한 만남
오래된 사랑의 끝
인연
실수
꿈 속의 그대
나의 하루
오래된 사랑의 끝(Bonus Disco Version)
2000년 3월 7일 정규 7집 Desire To Fly High Prologue
전설 속의 누군가처럼
가잖아
엄마야
내 안의 그녀
Goodbye My Love
이별 그후
어느 멋진 날
슬픈 거짓말
Change
Forever
Over The Rainbow
2002년 1월 14일 정규 8집 The Shin Seung Hun Eight Story
사랑해도 헤어질 수 있다면
哀而不悲(애이불비)
Loving You[92]
올꺼야
널 위한 이별
이런 나를...
Face Off
飛上(비상)
雨戀(우연)
Tomorrow
I Believe[93]
Loving You
2002년 11월 20일 스패셜 앨범
The Legend Why
그대 떠나갈 만큼
Always(Feat. 애쉬)
그대라서 고마워요[94]
Nostelgia(Inst.)
미소 속에 비친 그대+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보이지 않는 사랑
소녀에게(Hey Girl)
가을빛 추억
우연히
로미오 & 줄리엣
오랜 이별 뒤에
가잖아+이런 나를
Loving You(Remix Ver.)
엄마야(Remix Ver.)
전설 속의 누군가처럼
Christmas Miracle(Feat. 김조한)
Silver Bells (Feat. 이문세)
White Christmas
Last Christmas
I Love You For Sentimental Reasons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
2004년 2월 3일 정규 9집 Ninth Reply East Side Story
애심가
두 번 헤어지는 일
그런 날이 오겠죠
Come to Me
그게 바로 사랑이죠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어쩌죠
게으름뱅이의 어느 날 아침
사랑해도 되나요
그댈 잊는다는 게
네 멋대로 해라
그녀와 마지막 춤을
애이불비 II
2005년 7월 13일 (日) 미니 1집 I Believe I Believe (Japanese Ver.)
I Believe(Korean Ver.)
널 위한 이별(Korean Ver.)
I Believe(Backing Track)
2006년 10월 10일 정규 10집 The Romanticist Dream of My Life
송연비가
Lady(무궁화 꽃이 또...피었습니다)
시간을 뒤로 걸어
지금 만나러 갑니다
못된 기다림
그런가요
Love Actually
I Luv U I Luv U I Luv U
아파도, 그래도...
그랬죠(Song For Mother)
로미오 & 줄리엣
어디선가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Wonderful world
어떡하죠(천국의 나무 OST)
그래도 사랑이다(이 죽일 놈의 사랑 OST)
2008년 10월 7일 미니 1집 Radio Wave Different Wave
Hey
라디오를 켜봐요
나비 효과
I Do
너를 안는다
2009년 11월 12일 미니 2집 Love O'Clock 그랬으면 좋겠어
지금, 사랑할 시간
사랑치
이별할 때 버려야 할 것들
온도
2013년 10월 23일 미니 3집 Great Wave 내가 많이 변했어(Feat. 최자 of 다이나믹 듀오)
Sorry
그대
Love Witch(Feat. 버벌진트)
My Melody
그랬으면 좋겠어(Feat. Ra.D)
나비효과(Great Wave Ver.)
사랑치(Old School Ver.)
라디오를 켜봐요(British Ver.)
2015년 10월 29일 정규 11집 I am... & I am Part.1 이게 나예요
해, 달, 별, 그리고 우리(Duet. 김고은)
사랑이 숨긴 말들
Amigo
Would you marry me
I Will
2015년 11월 10일 정규 11집 I am... & I am Part.2 마요 (Feat. 빈지노)
Love Again
Hello, Hello, Hello
Time Is Mine
Interstellar
Would You Marry Me (Neo Ver.)
2017년 11월 27일 디지털 싱글 Limited Edition Vol.1 Polaroid
2020년 4월 8일 스페셜 앨범[95] MY PERSONAS 여전히 헤어짐은 처음처럼 아파서
그러자 우리
늦어도 11월에는
내가 나에게
이 또한 지나가리라
Walking in the Rain
사랑, 어른이 되는 것
Lullaby (Orchestra Ver.)

정규 12집은 언제 발표할거냐는 요구가 하도 빗발치니 정규 12집은 언제 발표한다고 약속은 못 드리겠으나 곧 발표한다며 2020년 4월 기준 현재 3곡 정도 완성되었으며 신승훈스럽지 않은 도전적인 노래를 만들 계획이라며 빠른 시일 내에 발표 예정이라고 한다.

6. 콘서트

  • 신승훈의 콘서트 목록과 관련해서 자세한 항목은 여기를 참조.

6.1. The 신승훈 Show

The 신승훈 Show는 신승훈의 콘서트 브랜드 네이밍으로서 2004년부터 사용중이며 이 뒤에 부제가 붙는 식이다.[96][97] 방송도 방송이지만 평소 브라운관에 보이지 않을 때에도 공연을 통해 입지를 다진 뮤지션답게 콘서트에도 엄청난 공을 들이는 편이다. 데뷔 초부터 꾸준히 콘서트를 해온터라 2016년 기준으로도 이미 1800회가 넘는 단독콘서트를 해왔다. # 평소에 게스트를 초대하지 않는 편으로 유명하며, 혼자 대형무대를 이끌어간다. 워낙 히트곡이 워낙 많기 때문에 게스트를 안 불러도 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앨범을 발표하면 전국투어를 여는데, 물론 그 앨범에 동료 가수가 참여해서 협업을 한 경우에는 같이 공연을 하기도 하며[98], 더 나아가서는 그냥 게스트를 초대하는 경우도 아주 가끔 있다.[99]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앨범을 발매해야 콘서트를 하는 경향을 보였으나 2012년 데뷔 이래 처음으로 앨범을 발매하지 않았음에도 콘서트를 열었다.[100][101] 평소 콘서트를 열면 연출, 편곡, 무대, 음향, 조명, 특수효과 등 테크니컬 부문부터 시스템 구성까지 모든 걸 다 신경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2004년부터 'The 신승훈 Show' 라는 브랜드 네이밍으로 관객들을 찾아가고 있으며 2013년 11월 9일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The 신승훈 Show - Great Wave라는 명칭으로 The 신승훈 Show의 시즌1을 마무리했으며, 이후에 The 신승훈 Show 시즌2로 찾아오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역대 The 신승훈 Show
{{{#!folding [ 펼치기 · 접기 ]파일:external/ticketimage.interpark.com/0400010802_3098_01.gif파일:신승훈 A white night.gif파일:external/ticketimage.interpark.com/0400010903_8983_01.jpg
2004년 The 신승훈 Show[102] 2008년 A White Night 2009년 Limited Edition[103]
파일:external/img.ezmember.co.kr/101ab3139325700abc76d3e89d3af59b.jpg파일:신승훈 Pop tour.gif파일:external/kmchart.gaonchart.co.kr/B648992AA1724A9DB8141C4BFCDEBCCF.jpg
2010-11년 My Way&Grand Finale[104] 2012년 Pop Tour 2013년 Great Wave[105]
파일:external/image.music.naver.net/140410_shin_post_201404091450.jpg파일:external/dorothycp.com/1442458384.jpg파일:Winter Special.jpg
2014년 Limited Edition2 2015년 I AM SHIN SEUNG HUN 2017년 Winter Special
파일:2020미소속에비친그대.jpg파일:신승훈 콘서트 미소속에비친그대.gif
~2020년 미소 속에 비친 그대~[106] 2022년 미소 속에 비친 그대[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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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수상 경력

7.1. 시상식

7.2. 가요 프로그램 1위

총 73회 1위
<rowcolor=#FFFFFF> 날짜 방송명 곡명 비고
1991년
5월 3일 MBC 여러분의 인기가요 미소 속에 비친 그대
(10회)
데뷔 첫 1위
5월 10일 1위
5월 17일
5월 19일 KBS 가요톱텐
5월 22일
5월 24일 MBC 여러분의 인기가요
5월 29일 KBS 가요톱텐
5월 31일 MBC 여러분의 인기가요 1위
(5주 연속)
6월 5일 KBS 가요톱텐
6월 12일 1위
(5주 연속, 골든컵)
9월 18일 KBS 가요톱텐 날 울리지 마
(4회)
1위
10월 2일
10월 9일
10월 23일 1위 (통산 4주)
1992년
1월 24일 MBC 여러분의 인기가요 보이지 않는 사랑
(31회)
1위
1월 26일 SBS 인기가요
1월 29일 KBS 가요톱텐
2월 2일 SBS 인기가요
2월 5일 KBS 가요톱텐
2월 7일 MBC 여러분의 인기가요
2월 9일 SBS 인기가요
2월 12일 KBS 가요톱텐
2월 14일 MBC 여러분의 인기가요
2월 16일 SBS 인기가요
2월 19일 KBS 가요톱텐
2월 21일 MBC 여러분의 인기가요
2월 23일 SBS 인기가요
2월 26일 KBS 가요톱텐 1위
(5주 연속, 골든컵)
2월 28일 MBC 여러분의 인기가요 1위
3월 1일 SBS 인기가요
3월 6일 MBC 여러분의 인기가요
3월 8일 SBS 인기가요
3월 13일 MBC 여러분의 인기가요
3월 17일 SBS 인기가요
3월 20일 MBC 여러분의 인기가요
3월 24일 SBS 인기가요
3월 31일
4월 3일 MBC 여러분의 인기가요
4월 7일 SBS 인기가요
4월 10일 MBC 여러분의 인기가요
4월 14일 SBS 인기가요
4월 17일 MBC 여러분의 인기가요 1위
(11주 연속, 최다 1위)
4월 21일 SBS 인기가요 1위
4월 28일 1위
(14주 연속, 기네스 신기록 등재)
5월 12일 1위
(통산 15주)
5월 27일 KBS 가요톱텐 우연히
(8회)
1위
5월 29일 MBC 여러분의 인기가요
6월 3일 KBS 가요톱텐
6월 5일 MBC 여러분의 인기가요
6월 10일 KBS 가요톱텐
6월 12일 MBC 여러분의 인기가요 1위
(3주 연속)
6월 17일 KBS 가요톱텐 1위
6월 24일 1위
(5주 연속, 골든컵)
1994년
11월 20일 TV 가요 20 그 후로 오랫동안
(9회)
1위
11월 23일 KBS 가요톱텐
11월 27일 TV 가요 20
11월 30일 KBS 가요톱텐
12월 4일 TV 가요 20
12월 7일 KBS 가요톱텐
12월 11일 TV 가요 20 1위
(4주 연속)
12월 14일 KBS 가요톱텐
12월 21일 1위
(5주 연속, 골든컵)
1995년
4월 19일 KBS 가요톱텐 오랜 이별뒤에
(1회)
1위
1996년
6월 5일 KBS 가요톱텐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
(3회)
1위
6월 9일 TV 가요 20
7월 6일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
8월 3일 내 방식대로의 사랑
(1회)
1위
1998년
3월 22일 SBS 인기가요 지킬 수 없는 약속
(3회)
1위
3월 29일
4월 5일 1위
(3주 연속)
2000년
4월 4일 KBS 뮤직뱅크 전설 속의 누군가처럼
(2회)
1위
4월 11일 1위
(2주 연속)
2002년
4월 6일 MBC 음악캠프 널 위한 이별
(1회)
1위

8. 여담

  • 신승훈이 처음으로 작곡한 것은 고등학생 때 '모닥불이 피던 다락방'이라는 노래다.[108] 처음엔 제목을 지어놓고 별 생각이 없었으나 만들고 나서 보니 다락방에 모닥불을 피우면 큰일인데 왜 이런 제목을 지었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 부모님의 속을 썩인 것이 없을 정도로 부모님 말을 잘 들었다고 한다. 충남대 경영학과에 진학하게 된 것도 위에 잠깐 언급된 바 있듯이 아버지의 반대로 '음악'의 '음'자도 꺼내지 못한 채 입학한 것. 입학하고 나서도 장학생으로 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 곡 작업할 때 워낙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곡이 잘 나오지 않을 때는 자괴감 때문에 본인도 모르게 머리로 작업실 벽을 찧는다고 한다. 자기도 모르게 하는 행동들이라 잘못하다가는 크게 다칠 것 같아서 작업실 내부를 다 뜯어고쳤다고 한다.
  • 평소 녹음할 때 마디를 끊어서 부르지 않고, 한 번에 한 곡을 부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중간에 맘에 들지 않으면 중단하고 처음부터 부른다. 노래를 정확하고 완벽하게 부르는 것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감정의 흐름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 대전 J뷔페에서 부모님 고희연(어느 분인지 정확히 알려지진 않았다)을 열었다고 한다. 그래서 대전에서는 그 뷔페가 '신승훈이 부모님 고희연 한 뷔페'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 환갑이 목전인 지금도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결혼에 대한 생각은 있어 보인다. 비슷한 연배가 아닌 나이차 좀 많이 나는 상대를 원하는 것도 비슷한 연배랑 결혼하면 2세가 힘들어할까봐라고 한다. 그렇지만 또 너무 어리면 안되고, 최소한 만화 짱가(아스트로 강가)나 우뢰매는 알아야 한다고 한다.[109]
  • 신승훈은 가수로 정식 데뷔하기 전에 대학교에서 만나 사귀고 있던 여자친구가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신승훈이 앞길이 불투명한 전업가수가 되는 것을 반대했으며 그가 가수의 꿈을 결코 버릴 수 없음을 알자 결국 그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그러나 신승훈은 그녀를 계속 그리워하고 있었고 그 당시에 작곡한 곡들에는 그러한 자신의 마음이 녹아있다고 한다. 안타까운 사실은 그녀 또한 신승훈이 가수로 데뷔하자 '혹시 나를 다시 찾아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를 기다렸다는 것. 그러나 신승훈은 데뷔 때부터 엄청난 인기를 얻었기에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기 힘들었고 결국 그녀와 다시 이어지지 못했다고 한다. 신승훈은 4집 활동을 마치고 휴식차 미국으로 여행을 떠났을 때 그녀가 다른 남자를 만나서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이제는 그녀를 정말로 놔줘야 할 때가 됐다.'하는 마음가짐으로 5집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110] 일설에 따르면 간단한 전화 통화조차 소속사의 허락을 맡으며 써야 했다고. 게다가 그때는 휴대전화가 대중화되기 전이었다. 이러한 사연 탓에 당시 그는 다른 동료 가수들과 같이 유흥업소를 가지 않거나 다른 여자를 소개받지 않아서 연예계의 수도승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한다. 또한, 신승훈이 한창 발라드 가수로 성공하고 있을 때 이 사연이 덩달아 유명해져서 방송 진행자들이 신승훈의 신곡이 나오면 항상 그녀에게 쓴 곡이냐고 묻는 바람에 두 사람 모두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 신승훈이 직접 들려준 7집 비화로는, 1~6집까지는 항상 사랑하는 사람이나 사랑했던 사람을 생각하며 노래를 썼는데 이 시절은 사랑과 거리가 멀어진 때라 '전설 속의 누군가처럼' 같은 노래가 나왔다고 한다.
  • 예전 한 방송에서 PC통신으로 신승훈과 팬들의 질의응답 시간을 마련한 적이 있었는데 한 팬이 "왜 그런 슬픈 발라드 곡만 만드세요?"라고 질문하자 신승훈이 "내가 슬프니까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또한 2011년 주병진 토크콘서트에서 주병진이 "왜 요즘은 사랑노래를 안 만드세요?"라는 질문에 신승훈은 "요즘은 러브송에 적합한 감정이 전혀 떠오르지 않고 사랑이란 감정에 대해 너무 많은 걸 알아버렸기 때문에 그냥 평생 기타만을 사랑하면서 독신으로 살 것 같다."라는 대답을 하기도 했다.
  • 데뷔앨범이 발표된 날짜가 1990년 11월 1일이다. 평소 존경하던 유재하의 기일에 맞추기 위한 것이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날 김현식이 세상을 떠나면서 한 시대를 대표한 가수 중 한 명이 세상을 떠난 그 날, 그 다음 시대를 대표한 가수가 데뷔하게 되었다.
  • 데뷔 초, 본인의 이름이 새겨진 앨범이 생긴 것도 신기한데, 그 앨범을 사람들이 좋아해주고 듣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고. 실제로 강남역에서 '미소 속에 비친 그대'가 리어카뿐만 아니라 사방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보고는 너무 신기해서 넋 놓고 서있던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사람들이 본인을 전혀 못 알아봤다고 한다. 그러던 와중에 한 여성이 근처 레코드판 가계에 들어가서 본인의 LP판을 사가지고 나오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게 되고, 너무 신기해서 고맙다고 이야기를 하려고 주변에서 얼쩡거리다가 이상한 눈빛을 받고는 그냥 굳어버렸다고. 근데 이러한 신승훈의 모습을, 이휘재가 직접 봤다.[111]
  •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데뷔 때부터 심장병 어린이들을 돕고 있다. 본인도 먼저 언급하진 않는 이유가 이런 건 오른손이 하는 일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라고 한다.
  • 1집 '미소 속에 비친 그대' 간주를 들어보면 신승훈이 발라드임에도 불구하고 스캣을 사용하였는데, 이는 당시 편곡을 맡았던 김명곤에게 색소폰으로 편곡을 해달라며 직접 노래를 부르면서 시범을 보인거였다. 하지만 당시 녹음된 것을 들은 김명곤은 그대로 음반에 싣는 것을 추천하여 스캣이 포함된 채 수록되었다.
  • 데뷔 초, 조용필과의 일화가 유명한데 당시 KBS홀 개관 기념으로 조용필 콘서트가 열렸는데 이 때 신인가수였던 신승훈을 불러 노래를 시켰다. 당시 '미소 속에 비친 그대'를 같이 부른 영상 또한 조용필은 당시 신인이었던 신승훈을 이렇게 평가하기도 했다. 힐링캠프에 출연했을 당시 신인시절 여의도의 한 수제비 집에서 조용필과 함께 수제비를 먹다가 조용필이 '네 라이벌은 누구니?'라고 하자 당시 활동하던 동료들인 '심신, 윤상이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러더니 조용필이 ‘그래? 난 네 라이벌이 안 돼? 그럼 넌 그렇게 살아’라고 말했다고 해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관련기사 또 한 그 자리에서 ‘꿈을 높게 가져’라고 조언을 해주었다고 한다.
  • 위에 언급한 것처럼 조용필이 아끼는 후배 중에 한 명이다. 35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본인 목소리와 가장 맞는 곡이라고 생각한 '비련'을 부르고 싶었으나 조용필이 '창 밖의 여자'를 부르라고 해서 불렀다고. 그리고 후배들과의 술자리를 마련하려고 하면 우선 신승훈한테 전화해서 후배들을 불러 모은다고 한다. 또한 MBC 위대한 탄생에서도 후배 신승훈을 보기 위해 연습실에 방문하여 깜짝 방송출연도 했을 정도다.
  • 미성과 음악적인 센스가 타고난 것과 달리 노력형에 가깝다. 신승훈은 기타, 피아노 죄다 독학으로 배웠으며 전문적으로 음악을 배워본 적이 전혀 없었다. 오죽하면 한 인터뷰에서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나’라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쿵후에 빠져서 부모님이 피아노 다니라고 주신 돈으로 쿵후학원 다녔을 때 당시로 돌아가 피아노를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 그 때 피아노를 배웠으면 작곡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을 것.’ 이라고 많이 아쉬워한 적도 있었다.[112] 그래서 tvN 백지연의 피플 인사이드에서는 ‘너무나도 평범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맘에 드는 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남들과 달라야 한다고 생각해서 오히려 스스로를 괴롭히고 더 혹독하게 대했던 것 같다’라고 답한 바 있고, 더 나아가서 20주년 기념 IZM 인터뷰에서는 ‘저 스스로가 너무 평범하게 자라왔던 사람이기 때문에 광기가 없으면 그 수많은 대중들을 울릴 수가 없거든요. 일단 무대 위에서는 그들과 기 싸움을 벌여야 하니까요.’라고 이야기 한 바 있다.
  • 프로라는 의식이 굉장히 강하다. 옷을 고를 때도 마이크를 잘 잡을 수 있게끔 포즈를 다 취해보고 사며[113], 지인들끼리 노래방에 놀러가서 노래 불러달라고 하면 다 불러준다고. 한 번은 ‘제가 직업이 가수인데 노래방까지 와서 노래를 불러야 돼요?’라고 하는 후배가 있어서 ‘가수라면 언제 어디서든 마이크를 보면 노래를 부르고 싶어해야 하고, 또 불러야 한다’고 호되게 혼냈다고. 실제로 팬미팅에서도 팬들이 불러달라고 하면 평소에 많이 부르던 노래라도 다 불러준다. 다만 팬들끼리 워낙 친하다보니 자주 부르는 노래를 요청할 때는 튕길 때가 있는데 그러면서도 저절로 기타에 손이 간다.[114]
  • 위와 관련된 예로 지금까지 데뷔한 이후에 단 한 번도 CF를 찍은 적이 없다. 기록 부분에 쓰여있긴 하지만, 당시에는 직접 광고가 대부분이었기도 했고, 슬픈 노래를 부르는 게 대부분이다보니 '그리움 때문일 거야'라고 불러놓고 광고를 찍으면 그에 대한 이미지에 괴리감이 느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또한 대중들이 자신을 보고 싶을 때 봐야지 보고 싶지 않을 때도 보게 하는 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다 거절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2008년 무릎팍도사에서 이야기하자 유세윤이 "저도 앞으로 CF를 찍지 않을겁니다."라고 했다가 강호동이 "앞으로 CF 제의가 들어오면 찍으시겠습니까?"라는 말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네"[115]라고 신승훈이 대답하자 데꿀멍이 된 건 함정. 문제는 무릎팍도사 이후에 이 발언으로 인해 7개의 공익광고가 들어왔다는 거고, 일반 기업광고도 제의를 받았으나 어찌할 바를 몰라 결국 포기했다고 한다. 참고 기사.
  • 비활동기 때는 작곡에만 열중하다 보니 살이 찌는데, 활동할 때만 되면 귀신같이 살을 뺀다. 하지만 엄청나게 굶고 미련하게 운동해서 살을 급하게 뺀다고 한다. 그래서 은근 다이어트의 달인이기도 하다. '냉면'으로 다이어트를 했던 적도 있는데, 이는 팬들 사이에선 이미 유명한 이야기다.
  • 뮤직비디오에도 꽤나 공을 들이는 편이다. 신승훈 뮤직비디오 중에 유명한 것이 '전설 속의 누군가처럼', 국내 최초로 ‘오브제 애니메이션’을 도입해 세계 애니메이션 대회에서 커머셜 부분 상을 받은 '사랑해도 헤어질 수 있다면', 국내 최초로 첨단 컴퓨터그래픽을 이용해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합성해 만든[116] '그런 날이 오겠죠', 기타를 제외하고는 모두 일러스트로 구성되어 제작만 두 달 걸린 '라디오를 켜봐요'[117] 등등이 있다.
  • 목소리 점검차 부르는 노래가 있는데, 이 노래들을 일본에서 불렀다가 그 영상이 한국에 올라와 난리가 났던 적이 있다. 저음은 버티 히긴스의 카사블랑카, 중음엔 돈 맥클린의 빈센트, 약간 고음에는 랜디 밴워머의 Just When I Need You Most, 고음엔 스타일리스틱스의 Because I Love You Girl다.[120]
  • 모창에 굉장히 능하다. 앞에서 서술한 것처럼 음악감상실에서의 관심뿐만 아니라 다른 기성가수들의 목소리는 어디서 어떻게 발성이 이루어지는지 연구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김종서, 양희은, 김동률, 이문세, 이적, 송창식, 조덕배[121], 등등 이러한 모창 덕에 음역대가 방대하다 못해 너무나 넓다. 애초에 가수들의 발성이나 습관을 캐치하는 센스가 있어서 가능했던 것도 한몫하는 듯. 그뿐만 아니라 덕분에 개인기도 확보하고 일석이조.
  • SBS 힐링캠프에서도 나온 이야기인데, 10집에 빅밴드를 쓴 'Love Actually'라는 곡이 삽입될 예정이었다. 마스터링까지 다 끝난 상황이었는데 뒤늦게 앞에 두 마디가 비슷하다는 후배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확인 끝에 비슷하다고 판단, CD를 다 폐기하고 다시 마스터링에 들어가서 빅밴드를 쓴 비용까지 포함하여 수천만원이 날아갔다고. 그 때 당시 ‘요즘 그 정도는 다 비슷해도 넘어가요’라고 이야기했던 후배는 신승훈에게 엄청 혼났다고 한다. 팬들은 10집 앨범 발매 당시 이 노래가 빠져서 어리둥절했었다. 처음에 발표된 트랙리스트엔 포함되었던 곡이 최종적으로 포함되지 않았으니 그럴법도 하다. 어쨌든 팬들이 계속 궁금해하자 훗날 2008년 팬미팅에서 그 노래를 잠깐 들려줬는데, 비슷한 부분이 아닌 뒷부분을 들려주었다. 사실 팬들은 비슷했던 부분이 어떻길래 그런건지 궁금했던 것도 있었는데 ‘앞부분은 안 들려 드릴게요’라며 곧 죽어도 그 부분은 들려주지 않았다.
  • 1990년대 3대장 중에 한 명인 김건모는 자신을 노력, 신승훈을 타고난 재능(미성은 타고나야 한다. 하지만 내 목소리는 군대에서의 혹사 끝에 얻은 노력)으로 놓는다. 신승훈은 반대로 자신이 노력, 김건모는 타고난 재능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두 명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김창환은 김건모를 노력, 신승훈을 재능으로 보아 김건모의 손을 들어주었다.
  • 애주가다. 게다가 도 엄청 세다. 그것도 본인이 먼저 취해서 가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옆에서 지켜본 맥케이 말로는 탱크 같단다. 주변 사람을 챙긴 적은 있어도 남이 챙겨 준 적도 없단다. 아버지께 술을 엄하게 배워서 그런 것 같다고. 참고로 주사도 없단다. 팔을 테이블에 괴다가 실수로 삐끗한 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술 마신 티를 낸 거라고. 2004년 9집때 '한밤의 TV연예'에 출연해 조영구와 술을 마시며 인터뷰를 했는데, 당시 첫 마디가 달다였다. 요즘엔 주로 와인과 사케를 즐겨 마시는 듯하다.
  • 굉장한 골초로 유명했다. 그런데 현재까지 미성을 낸다는 게 함정이다. 다만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목소리는 많이 변했다.
  • 엄청난 영화광이다. 팬들이 영화 DVD를 선물해주면 이미 본 경우가 허다할 정도로 영화광이다. 심지어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본 신승훈은 평소 친하게 지내는 장동건이 다음 작품으로 고민하는 것을 알고 김기덕 감독과 작업해 보라고 추천, 그래서 장동건이 출연한 영화가 해안선이다. 또한 당시 이문세가 진행하던 별이 빛나는 밤에 신승훈의 노래 세상[122] 코너에서 불가사리라는 영화를 추천해줬는데 이문세에게 무슨 그런 영화를 보냐고 한소리를 들었다가 그 다음주에 KBS 주말의 명화로 방송이 되질 않나 언급 후에 대여순위 1위를 달성해서 의기양양했다. 1995년 2월 26일에 故정은임 아나운서가 진행한 <FM영화음악>에 게스트로 출연한 적이 있는데 방송에서 자신은 얼굴이 알려진 연예인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은 영화관을 거의 가지 못해서 집에 120인치 대형 스크린을 포함한 홈시어터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렇듯 가수로 데뷔 안했으면 어떻게든 영화와 관련된 일을 했을 거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영화를 좋아한다.
  • 요리를 곧잘 한다. 싸이 부부가 초대를 받아 함께 놀러갔더니 샤브샤브를 내 놨다고. 근데 소스가 무려 11가지 인 것을 보고 싸이는 민간인 집에 소스가 11가지가 말이 되냐면서 놀랐다고 한다.[123] 또한 이문세가 신승훈집에 다짜고짜 놀러와서 손님이 왔으니 해줘야겠다는 생각에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떡국 만드는 법을 전화로 배워 음식을 해줬더니 이문세가 ‘이거 사온거 아니야?’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 별명이 '냉귀'다. 풀어쓰면 냉면 귀신. 그 정도로 냉면을 좋아한다. 날씨에 따라서 먹는 냉면이 다르다고 한다. 비오면 회냉면을 먹고 기분이 안 좋으면 비빔냉면을 먹고, 평소엔 물냉면을 먹는다고. 뒤에 다이어트 부분에 나오겠지만 냉면으로 다이어트 한 적도 있다.
  • 좋아하는 색은 초록색이다.
  • 심심하면 종종 한강에 찾아가서 비둘기 모이를 주고 온다고.[124] 비둘기가 살찌는데 일조하고 있다. 실제로 일본에서도 스탭들과 거리를 걷다가 비둘기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것을 보고 쭈그려 앉아 모이를 챙겨준 사진이 올라와서 팬들 사이에선 한동안 난리였다.
  • 발라드 가수들이 앨범을 내면 타이틀곡은 발라드, 후속곡은 댄스곡을 두는 일종의 활동 공식이 있는데 이를 처음 적용한 것이 신승훈이다. 그동안 이문세, 변진섭 등 발라드를 하는 가수들은 많았으나 후속곡을 댄스곡으로 내세운 경우는 없었는데 신승훈의 성공으로 조성모, 성시경 등등에게 영향을 끼쳤다.
  • 음반에 Thanks to를 잘 안 쓰는 걸로 유명하다. 지금까지 낸 앨범 중에서 Thanks to가 들어간 건 1집과 5집뿐이다. Thanks to를 쓰다보면 누구는 쓰고, 누구는 빼먹는 일이 있을 것 같아 애초에 적질 않는다고. 1집에는 ‘두 번째의 사랑’과 ‘그대의 마음은’을 작사, 작곡하고 ‘그대여 안녕’을 작곡한 백병교를 언급했으며, 5집에선 자신의 앨범커버를 만드느라 시험까지 포기한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 보통 공백기 때 친해진 음악인들이 있으면 그 다음 앨범엔 참여하는 확률이 높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권태은, 보이스 코리아 음악 감독. Great Wave 발매 이전엔 라이머 트위터에 신승훈 소식이 올라오자 다음 앨범에 어떻게든 참여하겠다는 느낌이 왔다는 팬이 한 둘이 아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라이머와 함께 술을 마셨던 최자, 버벌진트가 피처링을 해주었다. 후엔 데뷔이래 처음으로 버벌진트의 노래에 피처링까지 했다. 제프 버넷과도 친하다. 처음 만나던 날 본인이 아끼던 블루투스 스피커를 가지겠냐고 물어봤다가 단칼에 갖겠다고 하자 줬다고 한다. 그 후로도 꾸준히 교류하여 맥케이와의 듀엣을 성사시키기 까지 했다. 게다가 더 나아가서 제프 버넷에게 곡을 줄 예정이라고 한다.
  • 'I Believe'의 아시아 초 대박 흥행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저작권을 많이 받았을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8집 앨범에는 분명 작곡에 신승훈, 김형석 공동작곡이라고 쓰여있다. 하지만 저작권협회에 검색해보면 알겠지만 김형석 단독으로 올라가 있다. 이는 'I Believe'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당시 신승훈은 김형석 작업실로 놀러갔는데, 김형석은 'I Believe'를 작업하고 있었고, 신승훈이 놀러온 것을 본 김형석이 신승훈을 끌고가 녹음실로 가둬둔 다음 다짜고짜 노래를 시켰다는 농담이 있지만 신승훈이 기존에 쓰인 'I Believe'의 일부분을 수정하였다. 그 말인 즉슨 일부 가수들이 'I Believe'를 부를 뻔했다라고 하는데 신승훈이 일부 작곡에 개입한 이상 그때 제의받은 'I Believe' 노래와 신승훈 노래는 엄연히 다른 노래이며, 결국 다른 노래를 부를 뻔 했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어쨌든 신승훈이 작곡에 참여한 이상 공동작곡으로 이름을 올려야 하는 것이 원칙인데… 본인이 작곡한 비중도 적고[125] 우리나라 작곡가들이 가수들에 비해서 주목을 많이 못 받고 처우가 많이 열악하다고 하여 본인이 이름을 빼고 넘겨줬다. 그 결과는 초 대박.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 신승훈은 단 한 번도 농담조라도 아쉽다고 이야기한 적이 없다.
  • 'I Believe'를 녹음한 후, 후에 엽기적인 그녀가 개봉하자 직접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갔다고 한다. 근데 영화를 보다가 자기가 만들고 부른 OST인 'I Believe'가 흘러나오자 관객들이 웅성웅성 거리며 죄다 본인을 쳐다봐서 엄청 당황했다.
  • 흔한 직업병으로는 김형석과 신승훈, 그리고 지인들이 차를 타고 가는데 지인들은 아무 소리도 안 난다고 하는 반면에 김형석과 신승훈은 차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걸 알아채 억지로 카센터에 끌고 갔다가 당시 카센터에서 일하는 직원에게 이런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나사 하나 풀려서 난 소리였는데 도대체 어떻게 듣고 오셨어요?”
  • 센스가 있어서 그런지 문제를 잘 맞힌다. 예전 전파견문록이나 야심만만, 쟁반노래방, 상상플러스 등 무언가를 맞히러 나가는 예능에서는 정말 잘 맞힌다. 전파견문록에서는 항상 이겼으며, 야심만만에서는 사랑과 이별노래 부르기가 특기인지라 주제에 맞춰 답을 딱딱 집어내는 신공을 보여줬다.[126] 쟁반노래방에서는 마지막까지 시도 끝에 성공했으나 가사 유추를 꽤나 잘 해냈고, 상상플러스에서도 짜깁기에 대한 어원까지 맞혀버릴 정도로 문제를 잘 풀었다. 많은 방송인들이 재미를 위해 일부러 각종 문제의 답을 모르는척하는 것이 흔하다고 해서, 마음만 먹으면 문제를 잘 맞히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니다. 어렵거나 생소한 문제들은 시청자들도 각잡고 맞히려고 해도 잘 안되는 게 사실이다.
  • 광주광역시에서 열린 MBC 게릴라 콘서트에서 목표인원 10,000명보다 2,837명을 넘기면서 성공했다. 보통은 1시간 동안 자유홍보를 하는 것이 원칙인데 그에게는 예외 사항을 두어 30분 동안은 안대로 눈을 가린 채 정처없이 돌아다니는 차 안에서 단순히 사람이 많이 있을 것 같은 곳을 신승훈이 느낌으로만 차를 세워 한 곳당 10분씩 총 3번을 홍보한 다음 나머지 30분은 자유홍보 시간이 주어졌다.[127] 데뷔 이래 단 두 번 밖에 울지 않았던 사람 아니라고 할까봐 게릴라 콘서트 참가자중 유일하게 울지 않았다 그 이유로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 노래를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무대 위에서 밝힌 바가 있다.
  • 8집 활동할 당시, 박경림, 박수홍에 의해 치킨집 아저씨가 되었다. 당시 박경림, 박수홍이 진행하는 라디오에 신승훈과 몰래 전화통화가 이루어져서 생긴 일. 처음에 자기 소개하기를 여의도 근처 박경림, 박수홍이 평소에 시켜먹는 치킨집 사장이라고 소개한 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노래를 한 번 해보겠다고 해서 시켰더니 본인 노래를 불렀다. 그때 당시 박수홍, 박경림의 반응은 당연히 ‘노래를 참 잘 부르신다’면서 칭찬일색이었다. 후에 본인의 정체를 밝히고나서 박수홍, 박경림이 ‘지금 어디세요?’라고 물어보자, ‘지금 그곳은 몇 시죠?’라고 다시 되묻고는 박수홍, 박경림이 순순히 현재 시각을 이야기해주자 ‘여기도 같은 시간이에요’라고 이야기해서 다들 벙찌게 만들었다.
  • 2003년 1월, 프로모션 투어를 위해 홍콩 으로 갔다. '2002년 십대중문금곡 음악회 (十大中文金曲頒獎音樂會)' 시상식 [128] 에 참석했으며, 여기서 10년 만에 공식적으로 유덕화를 다시 만났다. 엽천문을 보고 '정말 유명한 여배우' 라고 방송에서 언급했다. [129] 그 외에도 이 시상식을 보며 다 같이 함께하는 자리에서 행진곡이 울려 퍼지는데, '홍콩의 가요계는 이런 사람들이 만드는 것' 이라 평했다.
  • 그의 인생에서 최악의 흑역사는 단연코 연제협 MBC 출연 거부 사태에서 한국연예제작자협회(연제협) 편에 선 사건. 이 사건에서 그는 김건모, 박진영과 함께 주동자였으며 후배 연예인들을 이 사건에 가담시킨 의혹을 받았었다.
  • 2014년 제작자로도 활동할 마음이 있는지 걸그룹을 데뷔시킨다고 한다. 기사 2015년 2월 맥케이를 선공개 형식으로 데뷔시키고, 훗날 맥케이가 포함되어 완전체로 데뷔시킨다고. 2018년까지 매년 한 팀씩 ‘Neo-Artist’라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데뷔시킬 예정이라고 한다.
  • 2017년 말에도 솔로 가수 로시를 프로듀싱 및 런칭하기도 했다.
  • 신승훈이 남에게 처음으로 프로듀싱해준 건 맥케이가 아니다.[130] 2006년에 이미 류자량(劉嘉亮)이라는 중국 가수에게 처음 프로듀싱을 해줬다. 당시 류자량의 사장이 신승훈의 음악을 듣고 감동받아서 류자량의 2집 수록곡 프로듀싱 및 노래 참여를 요청했다고 했다고. 류자량은 본인 앨범에 신승훈 3집의 '로미오와 줄리엣'과 5집의 '운명'을 리메이크해 수록했다. 이중 '로미오와 줄리엣'은 중국어 솔로로, '운명'은 신승훈과 듀엣으로 각각 한 소절씩 한국어와 중국어로 노래했으며, 이에 신승훈은 운명을 재편곡해줬다고 한다. 참고영상
  • 2002년에 발표한 스페셜 앨범의 타이틀곡 중에 하나인 'Christmas Miracle'은 신승훈이 발매한 노래 중에 겨울 느낌 물씬 나는 노래이다. 크리스마스와 잘 어울리는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이 곡은 햇빛이 짱짱했던 한 여름에 안면도에서 만들어졌는데. 기획사 직원들과 함께 MT를 가서 해수욕장 가서 놀고 있는 직원들을 바라보며 혼자 녹음기 들고 이 노래의 후렴구의 멜로디가 떠올라 녹음기에 녹음하고 바지 주머니에 넣었는데... 이 사실을 몰랐던 직원들은 단체로 신승훈을 들쳐업고 해수욕장에 빠뜨렸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소속사 직원들은 단체로 각잡고 녹음기 살려내려고 드라이기를 포함해서 온갖 기계를 사용해 녹음기를 말리며 안간힘으로 겨우 살려냈다고 한다.
  • 2006년에 미국의 기타 전문 제조회사 Fender(펜더)로부터 어쿠스틱 기타를 선물 받았다. 신승훈, 펜더 기타 세계 7번째로 기증받아 펜더 기타는 세계적으로 뛰어난 연주가와 음악가로 인정받고 있는 에릭 클랩튼, 제프 백, 에릭 존슨, 잉베이 맘스틴, 스티브 레이본, 일본그룹 튜브의 기타리스트 하루하타 등 총 6명이 기증받은 바 있으며 신승훈은 세계에서 7번째로 펜더 기타의 주인공이 되었다. 신승훈의 이니셜이 새겨진 이 기타는 세계 유일의 단 한 대밖에 없으며, 연주자가 아닌 가수에게 기타가 증정되는 것은 최초다. 또한 앞서 기타를 기증받은 6명에겐 일렉트로닉 기타가 기증됐으나, 최초로 신승훈이 어쿠스틱 기타를 기증받게 되었다. 한국인으로서는 최초이자 현재까지는 록의 대부 신중현과 함께 유이하다.
  • 하지만 위에 언급한 펜더는 요즘에 잘 쓰지 않고 덱스터 기타를 사용하고 있다. 사실 9집 때까지 푸른색의 기타를 데뷔 이래 줄곧 사용해 왔는데, 2집 ‘보이지 않은 사랑’으로 활동했을 당시 미국에서 사온 기타였다. 주로 덱스터 기타를 사용하다가도 간혹가다 푸른색 기타를 들고 나올 때가 있긴 하지만 오래 쓰여서 그런지 고이 모셔둘 때가 있고, 실제로도 고장이 나서 미국에서 겨우 고쳐서 돌아온 터라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다고 한다.
  • 2010년 데뷔 20주년을 기념하여 팬들이 아카이브 형식으로 헌정 전시회를 한 적이 있다. 제목은 ‘미소 속에 비친 그대, 그 후로 20년동안' . 이 때 전시회를 준비하던 팬들이 예전 자료를 보며 기함을 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예전이나 지금이나 인터뷰 내용이 똑같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예전이나 지금이나 음악과 관련된 철학만큼은 확고하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 팬클럽 이름은 후니패밀리. 줄여서 후피라고 부른다. 과거 히어로라는 공식 팬클럽이 있었는데, 이는 팬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팬클럽이 공식팬클럽이 된 보기 드문 사례였다. 또한 나우누리, 천리안 등등의 PC통신을 바탕으로 팬클럽등이 있었으나 2004년도에 신승훈의 모든 팬들을 일컫는 후니패밀리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고, 후에 2010년에는 모든 팬클럽이 후니패밀리로 흡수되었다. 참고로 일본 팬클럽 이름은 Symphony에서 유래된 Shin-phony이다.
  • 흰색 풍선을 H.O.T. 보다도 먼저 사용한 것은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 히어로였을 때 흰색 풍선을 사용했으며, 다만 H.O.T.가 흰색으로 알려지는 바람에 훗날 로고를 포함된 흰색 풍선을 사용하였다. 후니패밀리로 바뀐 지금은 파란색 야광봉을 사용하는데, 2004년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참고로 야광봉은 영어로 후니패밀리라고 쓰여있다.
  • 콘서트를 열 때 깜짝 이벤트성 무대나 특별 영상을 선보이곤 한다. 2002년엔 싸이의 새, 2004년엔 당시 인기있었던 리마리오 춤을 준비해서 추기도 했었고, 2008년에는 당시 인기드라마였던 베토벤 바이러스를 보고 참고해 관객들을 4구역으로 나뉘어 화음을 넣을 수 있게 가르쳐주더니 지휘자로 변신해서 캐롤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였다. 2009년 일본 콘서트에서는 평소에 인상깊게 읽었던 책 내용을 소개하면서 본인의 음악 철학과 관련 이야기를 나누다가 조카가 트로트에 맞춰서 춤추는 귀여운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으며, 2010년에는 영상 교차편집을 통해서 나가수에 출연해서 노래를 부르는 듯한 패러디를 했다. 또한 2012년에는 콘서트 자체가 일탈이었고 2013년에는 컴백하고 나서 박경림의 두시의 데이트에 출연해서는 대뜸 '이 스케줄 끝나고 2:8 머리 하러 가야 돼요'라고 해서 팬덤에선 "뭥미?" 싶었으나 때는 11월 9일, 콘서트 1부가 끝나고 2부로 넘어가는 순간 영상이 재생이 되는데 신승훈 vs 신기자가 만나 인터뷰 하는 영상이었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별 대단한게 없어 보이지만 신기자가 2:8 머리에 '점'을 찍고 나타난 것이었다. 게다가 귀요미송까지 불렀다. 그때 팬들의 반응은 충격과 공포, 그리고 엄청난 폭소가 이어졌다.
  • 본인이 생일이 되면 생일 겸 팬미팅 겸 미니콘서트 형식으로 항상 팬들과 만난다. 매년 만나는 것은 아니지만, 꾸준히 만난다. 꼭 생일파티가 아니더라도, 팬미팅을 통해서라도 만나는 경우도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지난 2014년 舊 역도경기장(現 우리금융아트홀)[131]에서 한 팬미팅. 워낙 비활동기에는 SNS도 자주 하는 편도 아니고, 꼭꼭 숨어버리기 때문에 팬들이 먼저 원하기도 하며, 본인도 팬들 만나고 싶을 때는 이벤트를 만들어 보려고는 한다.
  • 한국에서는 '레인맨', 일본에서는 '비를 부르는 남자'로 불릴 정도로 비와 관련된 일이 많다. 신기하게도 신승훈이 뜨면 비가 오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4집으로 활동할 당시 모 행사에서 '그 후로 오랫동안'을 부르는데 '그 후로 오랫동안 비가 왔어' 부분부터 비가 한 방울씩 떨어지더니 '하늘이여 나를 도와줘' 부분부터는 비가 마구 쏟아졌다.
  • 비 때문에 엄청난 일이 일어나기도 한 것이 팬덤 사이에서 불리는 바로 8.26사태. 어떠한 일이 있었냐면 2000년 데뷔 10주년 기념 콘서트를 앞두고 이미 한 차례 비가 많이 와서 그 다음주로 공연을 미뤘더니 공연 당일이 되니까 공연을 취소했던 1주일 전 보다 비가 더 많이 왔다. 감전의 위험이 있어서 공연을 강행할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하던 찰나에 공연장 주변 지하철역에서 비를 피해 대기하고 있던 만 명이 넘는 팬들이 하얀 우비를 입은 채 단체로 공연장을 향해 나오는 것을 보고 공연을 감행했으며 평생 맞을 비를 다 맞으면서 공연을 바라보는 팬들이 고마워 같이 비를 맞겠다며 지붕이 있어 비를 피할 수 있었음에도 무대 밖으로 나왔더니, 오빠가 비 맞으면 같이 맞겠다면서 만 명이 넘는 팬들이 우비 모자를 벗어버려서 하얗게 보였던 관객들이 순식간에 검게 보이는 상황을 보며 정말 울컥했다고.[132] 이때 신승훈은 데뷔 이래 두 번째로 팬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정식 콘서트 명칭은 Back to the future다.[133]
  • 이게 다가 아닌 것이 공연을 하는 날이면 비 오는 확률이 꽤나 높으며 한국에서만 이러는 것이 아니라 일본에서도 비가 온다. 가장 최근의 일로는 2013년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콘서트 날 당시 오후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가 점점 콘서트 할 시간이 다가오면서 비가 오는 걸 본 팬들은 '역시나'라며 평소에 준비해뒀던 우산을 펼쳤다고 한다. 그리고 오죽하면 신승훈이 2008년 10월 15일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뒤 제작진들도 그에 대해서 잘 아는 건지 다음주에 섭외한 게스트가 가수 '비'라는 점이다.
  • 2007년 생일파티에서는 술 마시면 평소에 노래방가서 부르는 노래라면서 팬들에게 불러준 노래가 바로 여자 노래인 이소라의 '난 행복해'였다. 이후에 몇 번 부른 적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시월에 눈 내리는 마을에서 원곡 가수인 이소라와 함께 듀엣을 했다. 이소라가 질색을 한 건 함정. 다만 팬들 사이에서는 지금까지 '난 행복해'를 부른 것 중에서 생파때 불렀던게 최고라고 칭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시월에서 부르는 영상 생파에서 부른 영상 다만 개인이 찍은 영상이라 음향이 좋지 않으니 감안하고 봐야 한다.
  • 콘서트에 가면 율동이라는 것이 있다. 율동 있는 노래를 살펴보면 '로미오와 줄리엣', '어긋난 오해'. '엄마야', '올 거야', '그건 바로 사랑이죠', '어디선가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등이 있다. 신승훈이 율동을 작정하고 만든 이런 노래들이 아니더라도 팬들 사이에서 공통적인 율동이 있는 경우가 있는데 '날 울리지 마'등이 해당되며, 또한 발라드라도 노래 템포에 따라서 야광봉 흔드는 방법이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다.[134][135] 콘서트를 오래하다보니 생긴 일종의 문화라고 볼 수 있는데, 어쨌거나 신승훈이 직접 율동을 만들었다. '엄마야'는 수영동작을 따왔으며, '올 거야'엔 '승훈짱'을 반복하는 율동이 있는데 이는 god가 '거짓말'을 불렀을 때 팬들의 'god짱!'이라고 외치는 후렴구 응원 방법이 부러웠는지 참고한 것. 그리고 언제부턴가 템포 있는 곡을 작곡할 때는 미리 율동을 생각해두고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 콘서트 문화중에 '땡깡[136]앵콜'이라는 것이 있다. 땡깡이라는 단어만 봐도 알 수 있다시피 콘서트와 앵콜이 다 끝난 후에도 아쉬워하는 팬들을 인해서 다시 나와서 팬미팅 형태로 앵콜을 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는 콘서트 무대에서 이야기하지 못한 내용[137]으로 수다를 떨기도 하고, 콘서트 트랙리스트에 포함됐거나, 혹은 포함되지 않아 듣고 싶은 노래가 있다고 요청하면 '무반주'로 불러주곤 한다. 실제로 대관 시간이 임박해서 급하게 부른 적도 있었으며 무대를 철거해야 해서 스태프들이 무대를 정리할 때에도 굴하지 않고 노래를 불러준다. 그 가수의 그 팬이라고 팬들도 그에 굴하지 않고 노래를 끝까지 듣는다.
  • 신승훈이 작곡한 곡 중에서 단 시간 내에 작곡한 노래와, 작곡에 오래 걸린 노래의 질문에 빨리 작곡된 노래중에는 10분만에 만든 Radio Wave의 'I Do'라고 대답했으며, 반면 오래 걸린 노래중에는 같은 앨범에 수록된 'Hey'라고 한다. 또한 이 노래는 성공할 것 같았는데 반응이 생각했던 것과 달랐던 노래로는 스페셜 앨범에 수록된 '그대 떠나갈 만큼'이라고 한다. 처음 가이드로 노래할 때는 가사가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 콩글리시로 불렀는데 팝송 같아서 혼자 뿌듯했다고. 다만 팬들 사이에서는 좋아하는 노래의 우선순위로 꼽는 경우가 많다. 또한 '그 후로 오랫동안'은 본인이 콘서트에서 노래를 부르면서도 '잘 만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반대로 부르면서 이 노래는 잘못 만들었구나 싶은건 3집의 타이틀곡인 '널 사랑하니까'라고 한다. 음의 변화가 너무 심하고, 음 자체도 높아서 그렇다고 한다.[138] 다만 팬들이 요즘엔 이 노래를 듣고 싶다는 이야기가 늘어나자 가끔씩 콘서트에서 부르곤 한다.
  • 사랑이 뭐길래, 천일의 약속으로 유명한 작가 김수현이 신승훈의 광팬이다. 사랑이 뭐길래에서는 당시 신인이었던 신승훈을 언급했고, 천일의 약속에서는 OST를 부탁해 직접 신승훈이 OST에 참여했으며 세 번 결혼하는 여자에서는 당시 발매했던 Great Wave의 Sorry를 듣고 맘에 들어 신승훈에게 부탁하여 OST로 직접 넣은 것. 이 외에도 신승훈이 데뷔 20주년이 되던 해에 '눈부셨던 20년, 또 20년을 더해서 찬란하게 보내시길'이라는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공연에도 직접 관람하러 오는등 무척이나 신승훈의 음악을 좋아한다고 한다.
  • 1990년대 초중반에 여러 히트곡을 남기며 최전성기를 보냈으나, 이상하게 응답하라 시리즈에는 신승훈의 곡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응답하라 시리즈 전체 통들어서 그의 곡은 2곡 나왔다.
  • 평론가들 평도 그의 명성에 비해 매우 박하다. 대놓고 혹평을 내리는 것은 아니나, 그의 음악적, 대중적 성공은 무시할 수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이름을 단 한 번도 못 올렸다. 해당 리스트가 대중의 취향을 고려하지 않고 매우 편향적인 선정을 했다는 평가가 왕왕 있지만, 적어도 앨범 하나로서 음악적으로도 대중적으로도 고평가를 받는 1집이나 5집이 리스트에 못 오른 것은 의아한 부분이다. 다만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항목에 이에 대한 반론도 있으니 참고할 것.
  • 예전에 토크쇼 나와서 많이 얘기한 바가 있는 얘기로는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독특한데, 음반 100장씩 구매이다. 물론 바쁜 시간을 쪼개서 좋아하는 음반을 사는 것이 가수 입장에서는 스트레스 푸는 일이 맞을 것이다. 그만큼 살 능력도 됐다.[139]
  •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시세 250억원 빌딩을 소유하고 있다. 신축 후 18년 만에 7배 가까이 오른 거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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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사랑
god
god
거짓말
AKMU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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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적상의 이름은 항렬에 맞춰 신동학이다.[2] 1968년생으로 오랫동안 알려져 왔으나, 실제 나이는 1966년생이다. 그런데 방송용 나이와 실제 나이를 혼용하는 모양인지 한동안은 1966년생인 김형석과 동갑임에도 불구하고 방송에서는 주로 김형석을 '형석씨'라고 부르거나 형이라고 칭하기도 하였다.[3] 음력 3월 21일.[4] 대전시는 1977년에 중구와 동구로, 1989년 대전직할시로 승격되어 충남에서 분리되었으며, 1995년 광역시로 바뀌었다.[5] 항렬상으로는 2살 연하 가수 신해철아들뻘이다. 실제로 아버지 성함이 신중철(1933 ~ 2022)자 항렬을 썼고 신승훈 본인은 35세손 동(東)자 항렬로 족보상 이름은 항렬자에 맞춰 신동학이다. 대신 남동생 신동은(1969년생)은 본명도 항렬 그대로 썼다.[6] 데뷔초 프로필엔 173까지도 되어있었으나, 실제 키는 168~169 전후로 추정된다.[7] 데뷔초엔 60kg도 채 안 될 정도로 깡마른 몸에 가까웠다.[8] 신승훈을 제외한 나머지 형제자매는 모두 기혼자로 2008년 본인의 언급에 따르면 조카가 6명이나 있다고 한다.[9] 2022년 2월 16일 88세의 나이로 노환으로 별세. 아버지가 건축업을 했었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살았던 대전 자양동의 본가는 아버지가 직접 설계한 2층 주택이었다.[10] 신승훈 7집 엄마야 뮤직비디오에 의도치 않게 출연했다. 3분 24초쯤[11] 신승훈이 차린 기획사 도로시컴퍼니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12] 현재의 우송중학교.[13] 신승훈 본인은 종교를 믿어본 적 없지만 신승훈의 가족들은 독실한 프로테스탄트라 개신교의 영향을 일부 받기도 했고, 또한 자신이 운영하는 소속사 소속인 자신의 수제자 로시 또한 독실한 개신교인이다.[14] 복무 시기는 데뷔 전 1988년으로 추정. 방위로 빠지게 된 사유는 시력이 나빠서. (참고로 안경과 별도로 항상 근시교정용 콘택트렌즈를 착용한다고 한다.)[15] 現 미디어라인엔터테인먼트, 작곡가 김창환이 설립한 기획사로 잘못 알려져 있는데 김창환은 라인음향의 대표 프로듀서였고 사장은 따로 있었다.[16] 신승훈이 2002년 창업한 연예기획사이다.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그 도로시에서 따왔다. 로시도 이 회사 소속이다. 과거에는 라쿤보이즈 출신 맥케이, 슈퍼스타k2 참가자인 김은비도 있었다.[17] 이 날은 유재하김현식의 기일이다. 히든싱어에서도 신승훈이 언급하였다. 다만 김현식은 데뷔한 날 당일인 90년 11월 1일에 사망해서 신승훈이 이걸 알고 데뷔하진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18] 2015년 힐링캠프 출연 당시 앨빈과 슈퍼밴드의 다람쥐 캐릭터 '사이먼'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별명[19] http://www.shinseunghun.com/으로도 들어가진다.[20] 소속사인 도로시컴퍼니 유튜브채널인데 사실상 로시의 개인 유튜브채널이나 다름없다.[21] 2집 '보이지 않는 사랑'으로 SBS 인기가요 14주 연속 1위 달성[22] 대상은 2회[23] 1990년 발매한 1집부터 2006년 발매한 10집까지, 16년 동안 앨범을 낼 때마다 매번 그 해 발매된 모든 앨범 중 가장 판매량이 많았던 10장의 앨범 안에 들어갔다는 뜻이다. 특히 2002년부터는 음반 시장에서 음원 시장으로 바뀌어가는 시기라는 걸 감안하면 대단한 기록이다.[24] BTS가 해당 기록을 깨기 전까진, 신승훈이 역대 누적판매량 1위였다.[25] 성격이 형인 신승훈과는 반대라고 한다. 본인은 부드러운 성격이라면 동생은 남자다운 성격이라고. 동생과의 에피소드로는 동네 뒷산에 놀러갔다가 동생을 잃어버려 해가 질 때까지 동생을 찾아다녔으나 나타나지 않아 울면서 집에 도착했더니 동생은 어머니 무릎에 누워 자고 있었다고 한다.[26] 후에 콘서트에서 하모니카를 직접 불기도 했다.[27] 1994년 5월, 4집 발표후에 나간 토크쇼에서 이야기 한 바 있다.[28] 음악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다고 한다.[29] 훗날 1집에 수록된 '두 번째의 사랑'과 '그대의 마음은'을 작사, 작곡하고 '그대여 안녕'을 작곡한 백병교를 이 동아리에서 만났다.[30] 아버지가 음악활동을 반대하셨는데, 신승훈이 통기타 알바로 직접 학비를 벌겠다고 했더니 바로 허락해주셨다고 한다.[31] 동시에 여러 곳에서 알바를 하다보니 매일 학교수업이 끝나자마자 통기타들고 대전 시내를 뛰어다니며 밤늦게까지 무대를 했다고 한다. 그만큼 월급도 꽤나 받았는데, 신승훈의 친구들이 종종 박수부대를 자처하며 몰려와서는 신승훈 이름을 대고 마음껏 술판을 벌리고 외상으로 달아두고 갔다고 한다. 그런 탓에 어떤 달에는 월급을 받기는 커녕, 다른 곳에서 받은 월급으로 외상값을 메꾸기도 했다고 한다.[32] 음악감상실에서는 본인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면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서, 관객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모창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이 이유 말고도 다른 가수들은 어떻게 어디서 소리가 나는지 연구하기 위해서도 연습했다는 듯. 미용실에서 노래를 할 경우 드라이기 소리 때문에 손님들이 노래를 듣지 않아 소리를 지르는 선곡을 해야 관심을 갖고 듣는다고 한다.[33] 무릎팍도사에서 밝히기를 팬레터가 보통 연예인급이었다고 한다.[34] 신승훈은 음악에 대해서 전문적으로 공부한 적이 전혀 없었던터라 자신이 작곡한 곡에 대해 자신감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미소 속에 비친 그대를 불렀는데 3층 옷가게 아주머니가 내려와 누구 노래냐며 물어보는 걸 보고는 자신감이 조금 생겼다고. 데뷔했을 당시에도 다른 작곡가의 곡을 받아 데뷔할 생각을 했지 본인이 쓴 노래가 타이틀곡이 될 거라는 생각을 애초에 하지도 않았다고 한다.[35] 후에 둘은 굉장히 친한 선후배 사이가 되는데, 방송만 나오면 아웅다웅 티격태격한다. 그리고 가요계의 대선배가 된 신승훈이 유일하게 비빌 수 있는 선배이자 신승훈이 깐족거릴 수 있는 선배이기도 하다.[36] 전영록이 아파서 대신 신승훈이 들어가게 되었는데, 당시 '전영록과 비슷하게 불러달라'라는 부탁에 코러스를 모창했다고 한다.[37] 데뷔 후 인터뷰에서 종종 위장병 얘기가 나왔던 것을 보면 원래도 위장이 좀 약한 편인 듯.[38] 그 중 한 곳에서는 아예들어보지도 않았는지, 높고 고운 미성인 신승훈의 목소리가 ‘너무 저음’이라며 거절당하기도 했다. 또 다른 음반사에는 (당시 발라드는 저음부터 시작하는 것이 일종의 관행이었는데) 미소속에비친그대는 너무 첫시작부터 지르기 때문에 이상하다며 거절하기도 했다고 한다.[39] 신승훈 2집 수록곡 <영원히 사랑할거야> 작사가[40] 이 날은 유재하김현식의 기일이다. 유재하는 1987년에 사망했으며, 운명의 장난도 아니고 김현식은 신승훈이 데뷔하던 날에 사망했다. 후에 인터뷰에서 '데뷔하기 전 우연히 김현식 선배와 딱 한마디를 나눠볼 수 있었는데, 후에 나중에 가수로 데뷔해서 선배에게 술도 얻어먹고, 이정표가 된 선배들의 조언도 얻고, 친한 선후배 사이가 되고 싶었다'며, 이정표 같은 선배의 사망에 많이 아쉬워했다. 오죽했으면 2012년 엠넷 원 콘서트에서는 김현식과 같이 노래를 부르고픈 마음에 영상 듀엣까지 했다. 관련영상.[41] 대학생들이 2인1조로 팀을 이뤄 퀴즈 풀이를 겨루던 프로그램으로 1987년 10월 18일부터 1992년 4월 5일까지 매주 일요일마다 방송되었다. 장학퀴즈의 대학생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42] 그 뒤 가요톱10 91년 연말결산에서 밝히기를, 고향이 같은 충청도라서 참았다고 한다.[43] 당시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길에서 신승훈을 보면 "저기 꺼야 지나간다! 꺼야!"라고 했다고 한다.[44] 사실 당시에 한국 가요는 동아시아, 잘 쳐봐야 동남아시아 정도에서만 수요가 있었다. 김시스터즈코리아나처럼 서양권을 무대로 삼고 활동한 경우는 논외.[45] 90년대 극초반까지 큰 인기를 누리던 김민우, 이상우, 변진섭 등도 이 무렵부터 급격한 하락세를 걷기 시작했다.[46] 당시 프로듀서의 말에 따르면, “1993년은 해방 이후 레코드업계 최고의 불황”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승훈의 앨범은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했다.[47] 정작 그 해 가요톱10에서는 15주간 1위 후보에 오른 게 전부였다. 1993년 8월 4일 방영분에서 김준선의 <아라비안 나이트>에 단 3표 차로 밀려 2위에 머물렀던 것이 아쉬울 따름.[48] 같은 기획사에서 한솥밥을 먹던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이 골든컵 수상으로 명예졸업한 직후인 1995년 4월 19일 방영분에서 그 해 잘못된 만남에 필적하는 대박히트곡 <날개 잃은 천사>(룰라)를 물리치고 1위에 올랐다.[49] 신승훈이 처음으로 전곡 작사, 작곡, 프로듀싱, 편곡 등 모든 앨범 작업에 다 참여하였다. 여담으로 이 노래는 1995년에 신승훈이 각별했던 자신의 할머니와 막역한 사이였던 듀스의 김성재에게 닿길 바라며 만든 노래라고 한다.[50] 신승훈 앨범 중에 역대 최다 판매량을 지니고 있다. 이 해 골든디스크 대상은 김건모가 탔는데, 신승훈이 김건모보다 판매량이 더 높았음에도 김건모가 타는 상황이 발생했다.[51] 당시 방송 관계자들도 신승훈이 대상을 받을 줄 알고 미리 축하전화를 했다가 놀랐다고 카더라.[52] 골든디스크 본상 수상이라는 것은 그 해 가장 많이 팔린 앨범 Top 10이라고 보아도 거의 무방하다.[53] 수상인원이 정해져 있지 않은 현재와 달리 당시엔 한 해 딱 10명으로 수상인원이 정해져있었다.[54] 한 앨범당 하나의 대표 장르를 정해서 내는 프로젝트 앨범.[55] 이전 앨범보다 한결 가볍고 산뜻한 목소리로 바뀌었다.[56] 가수로서 앨범을 내는 것 대신 작곡가나 프로듀서로 전향할 생각이 있었다고 한다.[57] R&B[58] 브리티시 락[59] 조용필, 김건모보다 먼저 언론에서 국민가수라는 호칭을 얻었다.[60] 임진모: 1996년 한 연예주간지에서 최초로 신승훈씨에게 '국민가수'란 영예로운 수식어를 붙여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후로 조금만 인기 있는 가수가 나오면 국민가수 운운하는데, 본인은 그 말을 들을 때 기분이 어떻습니까?[61] 2집 '보이지 않는 사랑'으로 SBS 인기가요 14주 연속 1위 달성[62] 대상은 2회[63] 1990년 발매한 1집부터 2006년 발매한 10집까지, 16년 동안 앨범을 낼 때마다 매번 그 해 발매된 모든 앨범 중 가장 판매량이 많았던 10장의 앨범 안에 들어갔다는 뜻이다. 특히 2002년부터는 음반 시장에서 음원 시장으로 바뀌어가는 시기라는 걸 감안하면 대단한 기록이다.[64] BTS가 해당 기록을 깨기 전까진, 신승훈이 역대 누적판매량 1위였다.[65] 당시 신승훈이 새로운 앨범을 내면 전국이 떠들석했고, 거리엔 온통 신승훈의 음악만 들릴 정도였다.[66] 슬픈 노래가 끝나자마자 갑자기 ‘맛있어요~!’하며 아이스크림이나 음료수 광고에 나오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67] 과거 신승훈은 본인 곡의 리메이크를 잘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느 시점 이후로 현재는 그 생각이 바뀐 것 같긴 하다.[68] 신승훈의 음악은 대체로 본인의 색채와 감성이 워낙 짙은 편이라, 리메이크를 잘 하기가 어렵다고들 한다.[69] 김소월 시인이 갖고 있는 정서이기도 하다.[70] 노래 제목 자체가 애이불비이다 보니 가사 전체가 애이불비 정서를 지니고 있다.[71] 이는 같은 라인의 노래인 애이불비2, 송연비가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72] 7집의 가잖아와 8집의 이런 나를이 꽤 유사성을 가지고 있는데 한 인터뷰에서 이 둘을 놓고 "비슷한 노래의 장르를 작곡하는 게 더 쉽지 않냐"는 질문에 "오히려 비슷한 장르를 작곡하는 게 힘들다. 왜냐하면 비슷한 코드, 비슷한 분위기, 비슷한 진행 과정인데 다르게 작곡을 해야 하니까."라고 답변했다.[73] R&B[74] 장르는 다 다르지만 공통적인 것은 콘서트 내에서 율동이 존재한다.[53] 기타 발라드 곡[76] 미니앨범인 Radio Wave에서 모던락을 취했기 때문에 이를 포함시켜도 된다.[77] 장르는 다르지만 애이불비 사상에서 발전시킨 비슷한 라인의 노래[78] 장르는 다른데 제목이 하나의 라인이다. '소녀에게'를 들었던 소녀들이 10년이 지나 '숙녀'가 되었다는 것을 표현하기 때문.[79] 신승훈 본인이 밝히기를 R&B를 좋아해서 꾸준히 시도를 해왔으나, R&B스러운 목소리가 아니다보니 스스로 만족도가 높지는 않다고 한다.[80] 정확히는 R&B의 하위장르인 네오 소울 장르에 해당[81] 다른 가수들은 PD에게 직접 음향을 이렇게 저렇게 해달라고 요구하기에 짬밥이 모자라다고 한다.[82] 그 뒤 3기가 2020년에 방영되었으나, 이 시즌에선 참여하지 않았고 시청률 부진과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인해서 조기 종영되었다.[83] 1위는 방탄소년단[84] 신승훈이 방송에 출연하여 가장 자랑스러운 기록으로 음반판매고 1위를 들며 이제는 디지털로 전환되어 영원히 깨지지 않을 기록이라고 말한적이 있다. 사실 신승훈 시대의 음반시장과 현재의 음반시장은 실질적으로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에,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과거에 음반은 음악을 듣기 위한 수단이었던 반면, 음악을 듣는 수단이 디지털로 완전히 넘어간 현재는 해당 가수의 앨범에 담겨있는 사진집과 다양한 아이템을 모으기 위한 굿즈의 성격이 강하다. 간단히 말해 90년대 당시엔 팬클럽이 아니더라도 그의 음악이 좋다고 생각하는 대중들이 그의 음반을 샀지만, 현재는 앨범을 사는게 아닌 모바일 앱으로 스트리밍해서 듣거나 다운받는다. 따라서 90년대 당시 ‘앨범판매량’의 의미는 국민적 인기의 척도로서 여겨졌으나, 현재는 스타의 팬덤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척도에 가깝다.[85] 참고로 한 방송사에서 최다 1위를 수상한 곡은 뮤직뱅크에서 16번 1위를 한 싸이강남스타일이다.(연속 1위 기록은 10주)[86] '보이지 않는 사랑'이 통산 16주 1위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SBS 인기가요 1992년 연말결산 방송 자료를 보면 14주가 맞다.[87] 못 찾겠다 꾀꼬리 - 조용필(10주: kbs 가요톱텐 1982년 9월 1일 ~ 11월 3일)/서태지 - 난 알아요(10주: mbc 여러분의 인기가요 1992년 6월 19일 ~ 8월 21일)/소녀시대-Gee(11주: 뮤직뱅크)/방탄소년단 - Dynamite(10주: 쇼 음악중심 2020년 8월 29일 ~ 11월 14일)[88] 1위는 방탄소년단Dynamite(32회)[89] 1위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1집으로 총 41회 1위를 수상했다.[90] 가요톱텐 5회, 여러분의 인기가요 11회, 인기가요 14회[91] 가요톱텐 5회, 여러분의 인기가요 3회, 인기가요 2회[92] 사랑해도 헤어질 수 있다면 뮤직비디오 주인공이 라이브 콘서트에서 나왔다.[93] <엽기적인 그녀> OST[94] 사랑해도 헤이질 수 있다면 뮤직비디오 주인공이 남학생이 아닌 여학생으로 잠시 등장을 하였다.[95] 데뷔 30주년 기념앨범이다.[96] 예를 들어 Christmas Memories, Christmas In Love, Christmas Miracle, Color Of Romance, A White Night, Acoustique, Limited Edition, Love O'Clock, My Way, Pop Tour, Great Wave 식으로 붙는다.[97] 물론 처음 열렸던 2004년 The 신승훈 Show는 부제가 없었다.[98] 라디, 버벌진트, ash, 김선경 등등[99] 더불어 웨일도 와서 불렀다.[100] 이 때의 부제목은 'Pop Tour'로서 대중성을 노린 제목이기도 하며, 평소에 부르고 싶었던 노래를 부르기 위해 작정한 듯 이렇게 다른 사람의 노래를 많이 불렀던 적이 없었을 정도로 불렀는데, 팬들은 마치 노래방에 와서 한을 푸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101] 보통 남의 노래 2곡을 부르면 본인 노래 2곡을 부르는 식이었다고 한다.[102] 'The 신승훈 Show'라는 이름으로 열린 첫 번째 콘서트이다[103] 데뷔 이래 처음 소극장에서 열린 콘서트이다[104] 데뷔 20주년 기념 콘서트였으며, 전국투어때의 부제는 'My Way', 서울에서 앵콜콘서트때의 부제는 'Grand Finale' 였다.[105] The 신승훈 Show의 시즌1의 대미를 장식했던 콘서트였다.[106] 2020년 열릴 예정이었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확산으로 인해 연기되다가 끝내 취소되었다.[107] 무려 5년만에 열린 단독 콘서트다.[108] KBS 상상플러스나 엠넷 봄여름가을겨울의 봄에서도 부른 적 있다.[109] 그런데 짱가를 알 정도면 나이가...[110] 그 외에 5집 작업을 시작할 무렵, 평소에 본인을 예뻐해주던 할머니의 별세, 그리고 아끼던 후배인 듀스의 김성재의 죽음 등을 겪었고 5집에 이들에 대한 자신의 복잡한 심정을 녹아냈다고 한다.[111] 상상플러스에 출연했을 당시 직접 이야기를 했다.[112] 피아노를 포기하고 배운 쿵후라 그런지 쌍절곤을 돌릴 줄 안다. 한동안 팬들의 부탁으로 인해서 자주 쌍절곤을 돌렸으나 요즘엔 팬들도 많이 봐왔고, 본인도 많이 해온 터라 쌍절곤을 찾는 경우는 없다.[113] 성시경이 방송에서 웃기려고 이야기를 여러 번 한 적이 있지만 사실 굉장히 프로답다고 볼 수 있다.[114] 사실 그 전에 팬들은 평소에 잘 안 부르는 노래를 신청하긴 한다.[115] 다만 일반 기업광고가 아닌, 공익광고라는 전제를 달았다.[116] 당시 뮤직비디오를 만들던 도중 전력 과부하로 인해 정전이 되면서 데이터가 손상이 돼 급히 미국까지 가서 살려왔다.[117] 영상 관련 잡지에도 실릴 정도였다.[118] 당시 방송국 리포터였는데 뮤직비디오에 출연하자마자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된다.[119] 명세빈은 신승훈 뮤직비디오로 연예계에 데뷔를 하게 됐는데, 우연히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명세빈이 신승훈을 보고 싸인을 요청했고, 신승훈은 그런 명세빈을 보고 연예계쪽 일을 할 생각이 없냐고 묻자, 연예계 진출의 의사가 있었던 명세빈은 그렇게 연기자로 데뷔하게 되었다.[120] 무릎팍도사에서 이 노래를 불렀다가 강호동에게 파리넬리 아니냐는 질문을 받곤 했다.[121] 연배가 비교적 어린 10~20대의 팬들은 신승훈 덕분에 조덕배를 알았다고 카더라.[122] 팬들 사이에선 줄여서 신노세라고 불린다.[123] ‘김승우의 승승장구’편에 나온다.[124] 힐링캠프에서도 언급한 바 있고, 그 전에도 여러 번 이야기 한 적있다.[125] 이는 AMIGO에서도 가사 마지막 문장을 신승훈이 작사했음에도 비중이 낮다며 공동작사로 올리는 걸 포기하고 작사가 김이나 단독 이름으로 저작권을 올리기도 했다.[126] 당시 김제동도 ‘이건 답이 아닌 것 같다’라고 이야기하면 진짜로 정답이 아닐 정도로 촉이 좋았는데 그걸 신승훈이 깼다.[127] 그 날 첫 번째로 멈춘 곳은 한산한 아파트 쪽이었고, 두 번째는 한산한 거리에 멈췄다. 다행히도 세 번째는 인파가 많은 거리가 선정되어 이전의 부진을 만회했다.[128] 보통 홍콩은 음악 시상식을 이듬해 신년에 개최하는 형식이다. 한국으로 치면 10대 가수 가요제다.[129] 매염방, 장국영 등도 봤는데, 해당 시상식의 25주년을 기념하여 가요계 공로로 작곡가, 인기있던 가수들이 받았다.[130] 다만 남에게 곡을 준건 처음이 맞다.[131] 2004년 당시 역도경기장은 후니패밀리라는 이름으로 처음 모였을 때 팬미팅 했던 장소. 그러다보니 팬들과 신승훈 본인도 애착이 많은 장소이기도 하다.[132] 이 부분은 무릎팍도사에서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133] 이 공연 이후로 8집 히든트랙으로 실린 Thanks! My Guardian Angel! 속칭 수호천사라는 팬송이 탄생했으며, 훗날 'You Are So Beautiful' 비공식 팬송이 생기긴 했다.[134] 물론 마음 가는대로 흔들어도 된다.[135] 게다가 코러스가 나오는 노래들, 예를 들어 '너를 보내며', '지킬 수 없는 약속', '널 위한 이별'등은 팬들이 떼창으로 코러스를 넣어준다.[136] 표준어는 아니지만 이미 팬덤 내에서는 고유명사화 되어 그대로 적는다. 원래는 '생떼'로 순화해서 써야 하는 것이 원칙.[137] 앞으로의 계획이라든가, 스케줄이라든가 이런저런 소소한 이야기를 한다.[138] '미소 속에 비친 그대'같은 경우엔 처음부터 지르긴 하나, 초반부 음과 후반부 음의 높낮이가 많이 차이가 나지 않는 반면 이 노래는 고음에서 더 높은 고음으로 간다.[139] 그 당시 CD가격은 지금과 큰 차이가 없는 13,000원 정도였다. 130만원이면 그 당시 기준 중사급 직업 군인 월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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