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7 15:46:12

이난영

파일:attachment/lee_nan_yeong.jpg
이름 이난영 (李蘭影)
본명 이옥례 (李玉禮)
출생 1916년 6월 6일, 전라남도 목포시
사망 1965년 4월 11일 (48세), 서울특별시 중구
십이지 용띠
별자리 쌍둥이자리
국적 대한민국
종교 천주교(세례명 : 마리아)
데뷔 1934년 노래 '불사조'
가족 배우자 : 김해송, 오빠 : 이봉룡, 조카 : 이민자
웹사이트 이난영을 목포의 품으로 (이난영 팬 카페)


1. 개요2. 기구한 인생3. 친일 논란4. 재즈 보컬로서의 이난영5. 대중매체에서

1. 개요

목포를 노래한 트로트 가수
엠넷 레전드 아티스트 100에서의 소개문구

이난영은 목포의 눈물로 유명한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본명은 이옥례이다.

2. 기구한 인생

1916년 전라남도 목포부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오빠인 이봉룡과 함께 갖은 고생을 하며 자랐다. 16세 때에 제주도에서 삼천가극단의 순회 공연 중 막간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다가 노래실력을 인정받아 순회극단을 따라다니게 됐다. 삼천가극단이 일본에서 순회 공연을 할 때 작사가강사랑이 이난영의 재능을 알아보고는 오케레코드사의 사장인 이철에게 추천해서, 1932년에 문호월의 곡 <고적>을 처음으로 취입했다.[1]

1934년 <목포의 눈물>을 불러 크게 히트를 쳐서 가요계의 스타로 갑작스럽게 등장했다. 1936년, 19세에 작곡가 김해송과 결혼했다. <목포는 항구다>, <다방의 푸른 꿈>[2] 등으로 당대 블루스의 여왕이라는 명성을 얻을 만큼 유명인이 되었다. 1939년에는 '오빠는 풍각쟁이'의 박향림, '연락선은 떠난다'의 장세정, '화류춘몽'의 이화자 등과 함께 '저고리 시스터즈'라는 이름의 그룹을 만들어서 활동했는데, 한국 최초의 걸그룹으로 꼽힌다. 광복 후에도 가수로 활약하였는데, 한국 전쟁때 김해송이 납북된 이후 KPK악단을 직접 운영했다. 이 시절, 후배 가수였던 남인수와 사랑에 빠진다. 자신을 챙겨주고 아껴주는 남인수의 모습에 반해서 사실혼관계로 지낼 정도였지만, 남인수가 폐결핵으로 갑자기 죽게 된다.

이후, 이난영은 자식들을 따라 미국에서 생활하다가 귀국하고 1965년 알코올과 아편 중독[3]의 후유증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다. 이난영의 자식들은 미국에서 김시스터즈, 김보이스 라는 이름으로 연예활동을 했고 1970년에는 내한공연도 했다.

3. 친일 논란

이난영은 <신춘엽서>, <이천오백만 감격>과 같은 친일 가요를 두 세 곡 정도 불렀다. <이천오백만 감격>을 같이 부른 남인수김해송은 전부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되어 있는 것에 반해, 이난영은 이름조차 올라가 있지 않다. 이유인 즉, 친일인명사전에 오르는 기준인 지속성, 반복성, 적극성이 없었기 때문. 확실히, 지속적으로 수많은 친일 가요에 참여한 남인수와는 달리, 이난영의 친일 가요는 그 숫자도 눈에 띄게 적고, 친일 가요에 참여한 적극성을 증명할 증거도 딱히 없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지금도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이난영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이난영에 대한 재평가에 대한 의견

4. 재즈 보컬로서의 이난영

한국 재즈계에서는 대표적인 원로 재즈 뮤지션으로 손꼽는다.

'항구의 불근(붉은) 소매'에서는 완벽한 스윙재즈 스캣 창법을 구사했으며 '다방의 푸른꿈'은 블루노트의 리듬기반으로 블루스를 노래했다. 친일 논란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 사실상 초창기 재즈의 시대였으며 개적자 정도의 위치에 있다. 이또한 그의 남편이자 작곡가 김해송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았다.

5. 대중매체에서

해어화에서 특별출연으로 등장한다. 배우차지연.
[1] 그런데 다른데서 먼저 선수를 치는 바람에 이철이 쌩고생을 해야 했다고…이 사건을 MBC 프로그램 타임머신에서 방영해줬었다.[2] 1939년에 발표된 이 '다방의 푸른 꿈'이라는 곡은 한국 최초의 블루스 곡이다. 남편인 김해송이 이난영을 위해 작곡해준 곡이기도 하다. 옛날 노래치고는 정말 세련되었다.[3] 이난영은 어렸을 때 부터 만성 위경련에 시달렸었고, 명치에 고통을 느낄 때 마다 아편을 피웠다. 참고로 이난영에게 아편 맛을 알려준 사람은 다름 아닌 남편 김해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