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1 22:10:39

이소라(가수)

이소라의 주요 수상 및 선정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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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음악인
남자: 휘성
여자: 이상은
그룹: 빅마마
(2004년)
남자: 이승철
여자: 이소라
그룹: 클래지콰이 프로젝트
(2005년)
남자: 조규찬
여자: 이상은
그룹: W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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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F83B6><colcolor=#fff> 이소라[1]
Lee Sora
파일:external/img.tenasia.hankyung.com/2014040914122276561-400x600.jpg
출생 1969년 12월 29일 ([age(1969-12-29)]세)
경상남도 충무시
(現 경상남도 통영시)[2]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본관 고성 이씨 (固城 李氏)
신체 164cm, AB형
가족 여동생 2명
학력 명지초등학교 (졸업)
서울문영여자중학교 (졸업)
동명여자고등학교 (졸업)
인천대학교 (산업디자인학 / 학사)
종교 무종교[3]
소속 에르타알레엔터테인먼트
데뷔 1992년 그대 안의 블루 O.S.T 타이틀곡 〈그대 안의 블루〉

1. 개요2. 활동3. 음반4. 음악성
4.1. 성향4.2. 보컬리스트
5. 방송 활동
5.1. 이소라의 프로포즈5.2. 나는 가수다 출연5.3. 나가수에서 다른 가수가 부른 이소라의 노래5.4. 그 외
6. 콘서트
6.1. 소극장 공연6.2. 김범수★이소라 조인트 콘서트
7. 논란 및 사건 사고
7.1. 예술의 전당 대관 거부 사태7.2. 출연 보이콧 사건7.3. 나는 가수다 재도전 관련 논란
8. 그 외
8.1. 다이어트에 관한 에피소드8.2. 와우 폐인
9. 그 외 이야깃거리10.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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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가수.

1969년 12월 29일, 경상남도 충무시(현재의 통영시) 출생. 동명이인의 모델과 동갑내기이고, 생일은 55일 늦다.[4] 한국 가요계를 대표하는 여성 뮤지션 중 한 명이다. 또한 최고의 여성 발라드 가수 중 한 명이자 그 실력이 현재진행형인 레전드 중의 레전드며 김동률 등과 함께 90년대 웰메이드 가요 문화를 이끌었던 뮤지션 중 하나다.

2. 활동

대표곡으로는 '난 행복해', '기억해 줘', '처음 느낌 그대로', '제발', '바람이 분다', '청혼'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 ‘너무 다른 널 보면서’,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 등이 있다.[5] 인천대학교 재학 중 아카펠라 재즈 그룹 '낯선 사람들'의 멤버로 데뷔, 특유의 음색 때문에 일부에서 인지도를 얻기 시작했다. 그러다 김현철과 듀엣으로 부른 노래인 그대 안의 블루가 대인기를 끌면서 대중에게 이름을 각인시켰다.

1995년 1집, <Vol. 1>에서 '난 행복해'를 타이틀곡으로 내세우며 솔로 데뷔. 이때 당시 뮤직 비디오에 이소라 본인이 직접 등장했는데 화면을 위아래로 늘여 놓아 이소라의 어머니조차 딸인 줄 몰라 봤다고 한다. 또, 후속곡 ’처음 느낌 그대로‘가 히트를 쳤다. 한터차트가 집계한 음반 판매량 차트에서 93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여자 솔로 가수 단일 음반 판매량 1위 기록을 세웠다.[6][7]

1996년 이소라 2집, '기억해 줘'를 타이틀곡으로 한 <영화에서처럼>이 '청혼'의 동반 히트에 힘입어, 이소라는 최고 수준의 여성 가수로 확실하게 자리잡게 된다.

1998년 이소라 3집, <슬픔과 분노에 관한>에서는 다소 파격적인 메탈 사운드를 선보인 '피해의식' 등과 '믿음',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가 히트를 쳤다.

2000년 4집엔 다시 김현철과의 프로듀싱으로 ''이라는 앨범을 발매했고, 제발이라는 또 다른 히트송을 냈다.

2002년 발매 된 5집. 소라의 일기라는 주제로 목소리가 얇아지며 점점 말을 들려주는 이소라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제와 다른 점이 있다면 5집부터는 메인스트림 세션들과 더불어 인디 록 뮤지션들과도 참여하게 되었다. '안녕'.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 ‘첫사랑’, '겨울, 이별' 등의 명곡들도 마구마구 배출한다. 이 앨범에서 가장 히트한 노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로, 발매 당시에도 타이틀 곡보다 더 많이 방송과 라디오를 타며 발라드 명곡으로 꾸준히 사랑받다가 2011년 나가수에서 부른 이후 인지도가 크게 올라가 현재는 이소라의 대표곡 중 하나가 되었다. 이 앨범에서는 이전까지 팝발라드 형식에 모던 록의 질감을 다소 유지해 왔다면(ex: 4집의 제발) 5집부터는 모던 록 선율에 팝 발라드 곡 구성을 연주해 오는 파격도 감행했다.

2004년 명곡 바람이 분다가 포함된 대망의 눈썹달 앨범이 발매된다.

6집에 수록된 '바람이 분다'의 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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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서러운 마음에
텅 빈 풍경이 불어온다
머리를 자르고 돌아오는 길에
내내 글썽이던 눈물을 쏟는다
하늘이 젖는다 어두운 거리에
찬 빗방울이 떨어진다
무리를 지으며 따라오는 비는
내게서 먼 것 같아 이미 그친 것 같아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바람에 흩어져 버린 허무한 내 소원들은
애타게 사라져간다

바람이 분다 시린 한기 속에
지난 시간을 되돌린다
여름 끝에 선 너의 뒷모습이
차가웠던 것 같아 다 알 것 같아

내게는 소중했던 잠 못 이루던 날들이
너에겐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나의 이별은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치러진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내게는 천금 같았던 추억이 담겨져 있던
머리 위로 바람이 분다

눈물이 흐른다

이렇듯 수준급 작사 실력을 보여준다. '-다'라는 종결어미를 적극 활용한 독창성은 물론이거니와, 이별의 슬픔을 극복하는 화자의 모습을 '바람' '비' 등의 소재로 표현하는 능력 역시 수준 이상이다.[8]

6집은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여자가수, 경향신문 선정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수록되는 등 대중적으로나 비평으로나 크게 성공했다.

2008년 4년 간의 공백 후 내놓은 7집도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작품이 되었다.[9] 7집은 발매 당시 큰 화제가 되었는데, 보라색 배경에 작은 꽃 하나 달랑 있는 앨범 자켓부터 범상치 않더니만 아예 앨범에 제목이 없다. 노래도 제목마저도 없으며 노래에 직접 제목을 붙여보라는 뜻이 담겨있다고 한다. 정확히 말하면 문자로 된 제목이 없는 것으로 각 곡에 그려진 손톱만 한 작은 그림이 그 곡의 제목이다.[10] 여담으로, 7집의 track9는 한국 애니메이션 고스트 메신저의 엔딩곡으로 쓰였다.

2010년 10월 21일 팝 리메이크 음반을 발표했다. 본인 말로는 이례적으로 후딱후딱 작업해서 그냥 냈다고 한다. Alone Again이 타이틀곡이긴 한데, 아니나다를까 죽고 싶다는 얘기를 쌍콤발랄하게 노래하고 있다... 이 앨범에는 'THE 우울' 이소라가 부른 무려 'Gloomy Sunday'가 들어있다!

드디어 6년 만에 8집이 나왔다. 2014년 4월 11일에 발매.[11] 제목은 8. 장르는 록. 8곡이 수록되었다. 앨범 발매 이전부터 앨범 수록곡들의 가사와 악보를 공개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이를 통해 6년만의 컴백을 박효신[12], 손승연 등 많은 후배 가수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타이틀 곡인 '난 별'을 커버하면서 이소라를 맞이했다. 재미있는 것은, 몇몇 곡을 제외한 대부분의 커버곡이 피아노 선율에 따라 전개되었는데, 정작 곡은 날카로운 모던록 느낌이 충만하다는 것이다.

또, 앨범 전체에 대해서도 1집과 2집의 몇몇 수록곡들과 3집의 후반부 트랙, 수많은 공연에서, 또 방송을 통해서도 그녀 스스로가 록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 바 있지만, 8집처럼 한 앨범 전체가 록으로 채워진 경우는 없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에 휩싸였다.[13] 하지만 장르가 바뀌어도 클래스는 바뀌지 않는 법. 그녀의 또 한 번의 실험이 퀄리티까지 잃지 않으면서 굉장한 호평을 받고 있다.

16년 10월에 정규 9집, '그녀풍의 9집' 으로 약 2년 만에 복귀를 예고했다![14] 김동률과 함께 작업한 노래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의 티저가 공개되어 있다. 이 곡은 11월 10일자를 기준으로 이소라 솔로곡으로 선공개되었고 9집 자체의 발표 시기는 미정이다. 가장 최근 활동인 2018년 6월18일 필스너 우르켈 파크 뮤직 페스티벌에서도 앨범이 나오는 시기는 확정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비긴어게인 코리아 등 다수의 방송에서 9집 발매를 약속하고는 있지만, 언제 나올 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또한 황인찬 시인, 이병률 시인과 함께 네이버 랜선 라이브 낭독회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이병률 시인이 왜 새 앨범이 아직 안 나오느냐에 대한 질문에 아직 마음이 없다고 대답했다. 사실상 당분간은 9집 앨범을 만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그러던 중 2020년 8월, 패션· 문화 콘텐츠 매거진 ‘데이즈드’ 8월호를 통해 발렌시아가(BALENCIAGA) 제품을 착용한 이소라의 화보가 공개되었다. 데뷔 28년 만의 첫 패션지 표지 모델이며 이번 제안은 다른 걸 묻지 않고 바로 수락했다고 한다. 그동안 여러 곳에서 제안이 와도 거절부터 하고 재고 따지는 게 많아 듣다보면 또 거절을 하게 될 것 같아 바로 수긍했다고 한다. 표지 모델로 이소라를 만나는 건 팬들도 처음이므로 굉장히 신선하면서도 진작 왜 이런 걸 하지 않았냐는 반응이다.

3.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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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음악성

4.1. 성향

낯선 사람들 활동 시절 때부터 본인이 가사를 직접 써왔으며 2집인 영화에서처럼부터 자신의 음반을 직접 프로듀싱한다. 단 한 번도 자신의 음반에 직접 작곡한 노래를 수록한 적이 없는데, 직접 작곡가와 편곡가를 섭외해 음반을 만들면 작곡가들한테 영화나 그림을 던져준 다음에 이런 느낌으로 쓰라고 주문한다고 한다.

대부분의 노래를 직접 작사하며 주로 이별이나 사랑의 아픔을 표현하는 노래가 많으며 특유의 허스키하고 섬세한 깊은 음색으로 감정을 잘 살려 부른다. 가사에 자신의 삶을 고스란히 담아내는지라 감정 이입이 잘 되고, 노래에 자연스럽게 깊은 감정이 묻어 나온다. 2집 때만 해도 풋풋하고 어설픈 가사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원숙미가 느껴진다.

감성적인 발라드를 부르는 가수로 잘 알려졌지만, 록 음악을 선호한다. 라디오에서 여러 번 언급했고 2집, 3집 이후 8집에 와서 다시 얼터너티브 록 위주로 앨범을 구성했다. 러브홀릭, 델리스파이스, 불독맨션 같은 록 밴드와의 음악 교류도 활발하며 6집 눈썹달을 들어보면 세션이나 편곡에서 이런 기호를 많이 느낄 수 있다.

그녀의 1집부터 7집까지의 모든 정규앨범에는 언제나 'thanks to'란에 고찬용, 김현철, 조규찬 세 사람의 이름만 들어가 있는데, 이는 자신의 목소리를 찾게 해준 이들에 대한 감사의 표현일 것이다.[15][16][17]
Thanks to
내가 노래할 수 있게 해준 찬용이
노래는 절제라는 걸 알게 해준 규찬이
나도 모르던 내 목소리를 찾아내준 현철이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낀다.
그리고 모든 것이 불안정한 나를 넘어지지 않게 옆에서 붙잡아주고 계신
나의 부모님께도

이소라 1집에 적힌 소개글.

가사에 주목하면, 가사에서 주제 의식이 변하고 있다. 이소라 본인이 점점 변화(혹은 음악적 진보, 자아의 발견)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1, 2, 3, 4집까지만 하더라도(5집이나 6집에서도 강력하게 우울함을 말하는 가사가 많다.) 가사가 실연에 대한 고통을 묵직하게 표현해냈다면 7집부터 가사가 다루는 내용의 폭이 넓어졌다. track 9 같은 경우에 노래 부르는 자기 자신에 대한 노래이며, 7집은 이별의 고통을 이전만큼 극심하게 부르진 않는다. 8집은 락이라는 장르의 특징도 있지만 실연에 대한 이야기가 흔치 않다. 이소라의 목소리도 얇아지고, 가사에서도 이별의 고통보다는 이제는 사랑의 희망이라든가 일말의 기대 같은 것을 바라고 있다. 일종의 시를 노래했달까. 이쯤되면 자기 인생을 걸어 노래하는 느낌이 드는 정도다.

4.2. 보컬리스트

비성하면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가수. 특유의 콧소리가 묻어나는 독특한 목소리가 매우 인상적이다. 애초에 김현철의 눈에 띄어 정식으로 데뷔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독특한 목소리 덕분이었다. 비성에 가려져 있지만 의외로 특유의 울림통에서 나오는 성량도 매우 뛰어나며 실제로 이소라의 라이브를 유심히 들어보면 나즈막히 부르는 노래도 상당히 크게 울리는 편임을 알 수 있다. 잔기교보다는 소리의 공명 그 자체에 집중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독특한 목소리와 풍부한 성량 덕분에 자칫 BMK박정현같은 소울, 팝, R&B 느낌이 짙은 보컬리스트로 오해되기 쉽고, 실제로 데뷔 전인 '낯선 사람들' 시절에는 재즈보컬로 활동했다.[18] 하지만 정작 그녀의 음악 스타일은 초창기 김현철이 프로듀싱했던 음반을 제외하고는 재즈적인 성향이 적은 편이다. 오히려 이후 보컬의 변화를 보면 그녀는 자신의 취향대로 락 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19]

기교를 굉장히 절제하는 스타일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소리의 공명 그 자체에 집중해서 노래를 하며, 감정적인 부분은 본인의 풍부한 음색으로 표현한다. 사실 이게 오히려 대단한 점인데, 일반적인 보컬리스트들과는 달리 말 그대로 목소리 하나만 가지고 곡의 분위기와 설득력을 이끌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소라를 보컬 테크닉이 떨어지는 가수로 오인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녀는 노래에서 매우 중요한 호흡을 잘 활용하는 가수로 유명하다. 정확히 말하면 발성에서 남는 호흡을 잘 활용한다. 성대가 많이 열린 상태에서 소리와 호흡이 같이 나오게 되면 가성처럼 들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게 이소라 특유의 보컬스타일이다. 이를 짤막짤막 내는 가수들은 몇몇 있지만 이걸 노래 전체에서 활용하는 가수는 이소라가 유일하다. 보컬에 대한 노하우가 상당하다는 증거이다.

특유의 비음과 음색 때문에 가성에만 의존해서 노래를 부른다는 오해를 많이 받는다. 실제로 이소라 목소리가 가성이냐 반가성이냐는 이야기는 은근히 의견이 갈리는 주제이기도 하다. 당연히 순수 가성에 의지한다기보다는 독특한 발성을 통한 믹스보이스로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왜냐하면 일반적인 가성으로는 이소라가 보여주는 것처럼 큰 성량과 또렷한 음정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노력의 문제가 아니고, 가성의 정의 자체가 성대가 접촉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소라의 목소리는 성대가 많이 열려 바람소리가 섞일 뿐이지 중심이 되는 발성은 단단하게 잡혀 있으며, 이는 곧 성대를 세밀하게 접촉시키며 컨트롤한다는 뜻이다. 사실 일반인 기준으로는 어마어마한 성량과 유니크한 목소리를 가진 보컬이기에 모창이나 심지어 따라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3집부터는 락 음악의 영향으로 락 느낌이 짙은 창법을 구사하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게 되었다. 3집 수록곡인 '피해의식' 같은 곡에서는 이게 진짜 이소라 맞나 싶을 만큼 강렬하게 울부짖는 이소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비록 4집에서는 프로듀서 김현철의 영향으로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는 힘들었지만, 이후 다시 본인이 직접 프로듀싱을 하면서부터는 락을 하는 이소라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가수다에서 보여줬던 '주먹이 운다' 무대가 대표적이다.

여담으로 수많은 레전드급 보컬을 탄생시킨 그룹 부활의 리더 김태원이 말하길 수십 년간의 프로듀싱 경험 가운데 단 한 번의 녹음으로 레코딩을 끝낸 가수가 딱 두 명 있었는데, 한 명은 고인이 된 김재기고 다른 한 명은 이소라였다고 한다. 녹음실 밖에서 듣고 있었는데, 딱히 지적할 부분이 없었다고 한다.

5. 방송 활동

5.1. 이소라의 프로포즈

이소라의 팬들이라면 아마 이소라의 프로포즈를 기억할 것이다. 그녀는 KBS 2TV의 심야 음악 프로그램인 "이소라의 프로포즈"를 1996년 10월 19일부터 2002년 3월 30일까지 진행했다. 후속타는 "윤도현의 러브레터".

언니네 이발관의 멤버인 이석원의 증언에 따르면 목이 안 좋은 상태에서 립싱크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대 아래에 가습기까지 켜 가면서 꿋꿋히 라이브를 고집했다고 한다. 가수 김경호는 평범한 신인이었던 당시 '이소라의 프로포즈' 신인 가수 소개 코너에서의 무대 한 번을 통해 전국적인 스타로 발돋움했다.[20] 그는 '하루 아침에 모든 게 바뀌어 있었어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소라의 프로포즈'는 직접 방청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인기가 많았지만 그녀가 립싱크를 많이 하는 가수나 아이돌 가수들이 나오면 강제 라이브를 하라고 한다든가 본인 스스로 방송 펑크를 냈을 정도로 립싱크 가수들을 무지 싫어했다. 특히 god가 나왔던 편에서는 갑자기 방송 펑크를 내서 급하게 미국에서 돌아온 박진영이 스페셜 MC로 진행했을 정도로 당시에 말이 많았다. 이때 그녀는 건강 문제라고 해명했지만, 자정에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는 나와서 god에게 반감을 가진 게 아니냐는 의혹에 시달렸다.

컨츄리꼬꼬와도 사이가 안 좋기로 유명한데, 당시 립싱크를 자주 했던 컨츄리꼬꼬와 '이소라의 프로포즈'와의 컨셉 자체가 맞지 않다면서 3번 섭외 중 2번을 펑크 냈다고 하며 그 바람에 컨츄리꼬꼬가 진행과 무대를 병행하는 상황이 벌어졌다.[21] 참고로 방송을 하면서 그녀가 스스로 방송 펑크를 낸 건 총 5번이었다고 한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방송에 대한 이소라의 자부심은 대단했는데, 한 에피소드로 박완규가 출연했을 때 박완규가 브릿지 염색을 했다는 이유로 국장이 녹화 재촬영을 요구했는데,[22] 이소라는 복장도 좋았고 노래도 잘했는데 왜 다시 찍어야 하냐고 먼저 집에 가버렸다고 한다. 덕분에 원본 그대로 방송이 나갔고, 그게 바로 전설의 론니나잇 첫방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제작진과 많은 갈등을 빚어왔으며, 그 갈등이 심했는지 종영되기 전에 본인 스스로 프로그램에서 하차한다고 이야기했을 정도였다. 결국 그 발언이 현실이 되었고 그 뒤 "이소라의 프로포즈"가 KBS joy에서 '이소라의 두번째 프로포즈'로 부활했으며 2011년 4월 26일부터 2012년 8월 7일까지 매주 화요일 밤 12시 10분에 방영되었다.

5.2. 나는 가수다 출연

2011년 3월 6일부터 6월 13일까지 우리들의 일밤의 코너인 나는 가수다에 출연했다. 방송 중 인터뷰에서 말했듯 너무 가리면 노래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출연을 결정했다고. 첫 무대에서 히트곡인 '바람이 분다'를 불렀고[23] 동시에 무대 진행까지 맡았다.

그러다가 3월 20일 방송에서 김건모, PD 김영희, 김제동과 함께 미친 듯이 까였으며 이날 김건모가 하차하게 된 것을 받아들이지 못해 폭력적으로 변하게 된 것인지 내가 좋아하는 김건모가 떨어지는 건 참을 수 없다고 울면서 녹화장을 나가는 깽판을 쳐버린 것이었으며 결국 여러 요소가 겹쳐져 김건모가 재도전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 발언이 선후배 친목질이냐며 얻어맞았는데, 이소라와 김건모는 친한 사이가 아니다.[24] 이 방송 촬영 직후의 한 라디오 프로그램(2011년 3월 13일자 MBC FM 정엽의 푸른밤)에서 이소라는 출연하게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는 서바이벌 포맷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 없이 김영희 피디에 대한 호감만으로 출연을 결정했다고 답했고, 앞으로 누가 꼴찌가 될 것 같냐는 질문에 꼴찌라는 말 자체가 잔혹하지만, 진심으로 자신이 꼴찌가 되기를 바랐고 6인 중 누군가가 꼴찌가 되어 상처를 받는 것보다는 차라리 자기가 꼴찌가 되어서 끝나는 게 좋겠다고 말한 바 있다. 즉, 그녀는 경쟁이라는 룰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5월 8일 방송분에서는 쾌활하고 밝은 댄스곡인 보아의 No.1을 원곡 재해석이 아닌 재창조 수준으로 편곡해, 뮤즈뷔욕를 연상시켰다는 호평을 받았다. 이후 노래 도중에 무릎을 감싸안고 앉아있던 모습에 아서스의 서리한과 갑옷을 합성한 이소라스 짤방이 뜨면서 화제로 떠올랐다.

그리고 5월 29일 방송분에서는 놀랍게도 임재범이 피쳐링 한 소울다이브의 주먹이 운다를 열창, 심지어 랩까지 소화하는 무시무시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미 실력우위를 재는 게 무의미한 가수들이 출연하는 상황에서, 나가수가 보컬능력 싸움이 아닌 프로듀싱 경쟁이 되고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셈.

6월 12일 방송분에서는 행복을 주는 사람을 잔잔한 선율과 함께 불렀으며 순위 합산에서 평균 10.3%로 7위를 차지해 나가수에서의 마지막 무대가 되었다. 이소라가 하차했을 때 동료 가수들은 물론 네티즌도 충격을 받았지만 정작 그녀는 김건모 7위 때와는 다르게 덤덤하게 결과를 받아들였다. 나가수의 편곡 스타일이 점점 무대를 가득 메우는 과잉 감동을 추구하는 데 대한 일종의 경고라는 시각도 있었다.

이 경연을 끝으로 MC 자리도 하차[25]했고, 신PD의 전화도 받지 않는 등 그간 '나는 가수다'에서 활동할 때 상처가 너무 커서 이젠 '나는 가수다'에서 그녀를 볼 일이 없는... 줄 알았는데, 10월 중순에 있을 '나는 가수다 호주 콘서트'에 함께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 콘서트에서도 경연 방식을 그대로 이어감에도 참석하는 것이 나타나자 이소라 팬들은 반색하고 축제의 분위기가 되었다.

그녀는 이날 이현우의 '슬픔 속에 그댈 지워야만 해'를 피아노 반주만으로 부른 감성적이고 절제된 무대를 선보였다. 이날 그녀는 본 경연에서도 기록하지 못했던 저조한 성적인 7위를 받았음에도 인터넷에선 오히려 그녀가 1위를 했어야 한다면서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다음 인터넷 투표에선 48%로 넘사벽급 1위를 했다. 이는 고음 위주의 무대가 대접받는 요즘 나가수의 분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 일깨우고 있다.

그리고 해당 노래를 4시간 전에 급변경해서 급편곡했다는 사실[26]이 밝혀지면서 더 큰 화제와 찬사를 불러 일으켰다.[27]

이번 호주 경연 방송 분량에서도 다른 가수에 비해 매우 적은 분량만이 나갔고 마지막 순위 발표 현장에도 와병을 이유로 참석하지 않는 등, 정말 나가수와의 관계가 회복된 것인지는 의문점이 남는 부분도 있으나, 김영희 PD가 경연 당시 상당한 공황 상태였고 노래 부르자마자 바로 공연장을 나가 하루 동안 밥도 안 먹고 호텔에 처박혀 있었다고 하면서 일단락.

또한, 이번 경연 때 보여준 이소라의 초췌한 모습 때문에 이소라 지병설까지 심심찮게 나왔는데 당시 호주 날씨가 방송에서도 언급되었던 것처럼 더웠다 쌀쌀했다 오락가락했기 때문에 몸이 약한 사람이라면 몸살이나 감기에 걸리기 딱 좋은 날씨 상황이었다. 예민한 성격의 이소라처럼 감정에 따라 컨디션이 쉽게 바뀌는 스타일의 사람에겐 컨디션 조절을 위해서 외부 출입을 자제했을 가능성도 있다.

2018년 본인의 콘서트에서 ‘슬픔 속에 그댈 지워야만 해’ 무대 비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당시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잊고 싶었고 또 잊어야만 했기에 이 노래를 선곡했다고. 이 무대 이후 정말 잊었고, 이후 그 사람과 만나거나 연락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나는 가수다에서 부른 경연곡
경연 가수 매니저 노래 순위
프리시즌 첫 공연 이소라 이병진 바람이 분다 6위
첫 경연 이소라 이병진 너에게로 또 다시 - 변진섭 공동 5위
두번째 경연 이소라 이병진 나의 하루 - 박정현 6위[28]
시즌 1 첫 공연 이소라 이병진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 5위
1라운드 1차 경연 이소라 이병진 No.1 - 보아 2위
1라운드 2차 경연 이소라 이병진 사랑이야 - 송창식 6위
2라운드 1차 경연 이소라 이병진 주먹이 운다 - 소울다이브 5위
2라운드 2차 경연 이소라 이병진 행복을 주는 사람 - 해바라기 6위(탈락)
호주 경연 2부 이소라 이병진 슬픔 속에 그댈 지워야만 해 - 이현우 7위
평균 5.3위

5.3. 나가수에서 다른 가수가 부른 이소라의 노래

  • 2011년 3월 27일: 제발 (김범수)
  • 2011년 11월 6일: 난 행복해 (거미)
  • 2012년 1월 1일: 처음 느낌 그대로 (적우)
  • 2012년 6월 17일: 바람이 분다 (한영애)
  • 2012년 6월 24일: 난 행복해 (정엽)
  • 2012년 12월 9일: 바람이 분다 (더 원)
  • 2015년 2월 13일: 바람이 분다 (스윗소로우)

5.4. 그 외

MBC 라디오 FM4U에서 "이소라의 밤의 디스크쇼"와, "이소라의 FM음악도시", "이소라의 오후의 발견", "이소라의 정오의 희망곡"을 진행했고, 2005년도에 KBS 시트콤인 "사랑도 리필이 되나요"에서 출연하여 2006년 2월 하차할 때까지 연기 활동을 하였다. 당시에 시트콤을 찍으려고 18kg를 감량했다고 하며 연기의 평가는 첫 연기인데도 준수했었다.

2004년 방영된 최수종쇼 서태지 특집편에서 짤막하게 등장, 서태지에 대한 인터뷰에서 너무 멋있고 동화 속 주인공 같다고 말했다. 더불어 피부 관리를 어떻게 하시는 건지 궁금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립싱크하는 가수들을 엄격하게 내칠 정도로 깐깐한 이소라와는 인연이 없을 것 같았던 무한도전에도 잠깐 출연했으며 자유로 가요제 특집에서 김C정준하의 듀엣곡에 피처링으로 참가했다. 정준하는 이소라를 보고 정말 놀라면서 같이 해서 영광이라고 했다. 김C에게서는 소리가 현같다는 평가를 받았다.[29][30]

2013년 KBS 제2라디오의 봄 개편을 맞아 저녁 6시에 방송되는 '이소라의 메모리즈'라는 팝 전문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다.[31] 7월 16일 100회를 맞아 특집으로 꾸며진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한다. 그 뒤 건강상의 이유로 12월 23일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후임은 하차하기 전에 대타로 뛰던 강수지가 맡게 되었다.

2014년 7월 22일에는 여름 휴가를 간 정찬우를 대신해 두시탈출 컬투쇼에 출연해 김태균과 함께 일일 DJ를 한 적이 있다.[32] 방송 활동이 드문 이소라의 팬들로썬 반가운 방송. 처음엔 어색해 하다가 라디오라는 걸 인지하고 순식간에 라디오 진행톤으로 바뀌는 것이 압권. 근래의 조용한 이소라의 이미지에선 상상도 하지 못할 엄청 망가지는 꽁트까지 했다. 3, 4부는 정준일, 원모어찬스와 라이브를 했다.
2017년 3월 26일 방영된 판타스틱 듀오 시즌2에 출연하여 출연자와 진행자로서 3번의 녹화를 진행했다. 애초에 이소라는 mc로서 3회성 단발 출연을 하기로 계약했다고 한다.

2017년 6월 25일 첫 방송인 JTBC의 음악 예능 비긴 어게인윤도현, 유희열, 노홍철과 함께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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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6일 시즌 4로 돌아온 비긴어게인 코리아에서 대선배로서 가수들의 정신적 지주 겸 진행자에 맞먹는 역할로 출연하였지만, 개인적 사정으로 인해 눈물을 보이며 5회를 끝으로 하차하였다.[33] 방송에서 눈물을 보인 적이 없었는데, 애정을 쏟았던 프로그램에서 개인적 사정으로 하차하게 되어 아쉬운 마음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5회 간의 출연이었지만 자신의 히트곡뿐 아니라 후배 가수들과의 듀엣 등 다양한 음악으로 가수 '이소라'의 진가를 다시 한 번 증명해냈다.

2020년 10월 30일, 히든싱어6 마지막 원조 가수로 출연했다. 방송을 전혀 모니터링을 하지 않아 방송 룰을 잘 모르는 모습을 보여줬고 심지어 자신의 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었던 어반자카파권순일을 못 알아보기도 했다. 1라운드에서는 투표와는 상관없었지만 자신이 몇 번에 있는지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통 번호를 언급하는 바람에 제작진들까지 깜짝 놀라는 사태도 벌어졌다. 1~3라운드는 득표율이 높진 않았으나 순위는 계속 낮았는데 4라운드에서는 엄청난 득표율로 우승했다.

6. 콘서트

6.1. 소극장 공연

2010년 4월에 세번째 봄 공연을 했으며 2009년 공연처럼 조용히 전석 매진을 했다. 오랜만에 외출이라고 본인 입으로 말했으며 집에서는 와우를 하고 지내고 풀 캐고 돌 캐고 그러는 게 너무 좋댄다. 노래는 전체적으로 우울하다. 가사는 소심하고 조심스러운 감정이 많이 묻어나며 7집에 와서는 사랑보다는 자기 탐구에 관한 내용들이 많다. 아이돌 열풍으로 아이돌만 넘쳐나는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귀중한 존재라고 할 수 있으며, 적어도 자신이 생각하고 자신이 부르려고 써낸 가사라는 게 느껴진다.

2009년 소극장 공연 때에는 공연을 한참하다가 거의 후반부쯤에 이런 목 상태로 돈 받고 노래할 수 없다면서 전액 환불을 해줬다. 현장 반응은 나쁘지 않았는데도 이소라 본인이 납득할 수 없는 노래였다고 5000만 원 정도의 손해를 부담하면서 그날 관객들에게 전액 환불했다고 한다. 언니네 이발관의 보컬 이석원의 산문집 "보통의 존재"를 읽어보면 당시 이소라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느낄 수 있다고 한다.

6.2. 김범수★이소라 조인트 콘서트

나는 가수다에서 김범수가 이소라의 제발을 불렀고, 중간점검 때 이소라의 행복을 주는 사람에 아주 잠시 피쳐링을 해준 일. 그리고 원래부터 이소라는 김범수가 동경하는 가수였다는 내용의 인터뷰 등의 인연으로 2011년 연말에 김범수★이소라 조인트 콘서트를 가졌다.[34] 콘서트 전부터 남자답고 강인한 둘의 포스터가 '로맨스는 없다' 등으로 화제가 되었다.

부산 콘서트에서 이소라 갤러리에서 조공하는 남녀 한 쌍의 인간화환이 떴는데 이소라는 그 두 사람을 직접 나와서 만나 준 데다가 공연 끝난 후 마무리 인사에서 관객들에게 자랑했다. 갤러리에서는 역시 와갤러의 패기는 다르다며 칭송하는 분위기.

7. 논란 및 사건 사고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7.1. 예술의 전당 대관 거부 사태

그야말로 전국을 뒤흔들었던 대사건.

사실, 이 사태에 앞서 2007년 싸이무릎팍도사에 출연하여 예술의 전당에 대해 서운하다 토로하며 문제를 제기한 바 있었는데,[35] 이 사태로 인해 재조명됨과 아울러 인순이 등 여러 가수들이 들고 일어나며 파장이 커졌다. 파장의 정도는 검색 결과 목록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들고 일어난 가수들 중 결정타는 패티김. 결국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유인촌은, 당시 사장으로부터 처분 결과를 보고받았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며 격노했다.[36] 그런데 정작 최초 공연은 조용필이 했다.[37][38][39]

간단히 내용을 요약하면 당시 예술의 전당은 대중가수들이 설 수 없었고, 이에 대해 싸이가 무릎팍도사에서 서운함을 드러냈다. 이후 공론화되었는데 그 와중에 이소라가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을 준비하다가 당시 공무원에게 금전 거래 요구를 받았고, 이에 이소라는 거부하였고 그 때문에 대관이 취소 당했다는 것도 밝혀진다. 당시 공무원은 면직 처분을 받았다고. 즉 이 사건은 이소라가 논란을 일으킨것이 아니라 부당하게 피해를 입은 사건이다.

이후로도 한동안 논란거리로 수년 동안 사그러들지 않았었지만, 2017년에는 한대수가 오를 예정으로 확인되는 등 나아진 모양새다.[40]

7.2. 출연 보이콧 사건

KBS에서 이소라의 프로포즈 출연 가수들의 동의 없이 라이브를 모은 컴필레이션 앨범을 발매했고 그것에 분노한 이소라가 출연을 보이콧한 사건이다.[41] 예술의 전당 사건보다도 더 오래된 일이지만 당시 시청자들이라면 기억하는 큰 사건. 규모로는 비교가 안 되기에 사건으로 표기했으나, 사실 관계자들 입장에서 보면 꽤나 위험한 사태였다.

판매량 집계 자료 음원 사이트들에서도 검색하면 발견되고 재생은 불가능했지만 지금은 가능하다.[42] 당시 잠깐이나마 팔려나간 음반들은 현재 희귀음반화되어 간간이 거래되는 상황을 검색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

당시의 방송국들은 무소불위의 파워를 갖고 있었다.[43] 게다가 요즘처럼 채널이 많던 시절도 아니라 그 위력은 엄청났다. 일명 파워 게임의 강자 격이라, 당시 힘이 약하던 기획사들은 그야말로 데꿀멍일 수밖에 없었다. 밉보이면 밥줄이 끊기기 때문.[44][45] 그렇다보니 방송국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컴필레이션 앨범을 찍어 팔아 돈을 벌어대곤 했다.

이에 그녀는 사전협의도 없이 멋대로 음반이 발매되었다는 사실에 격분, 출연 보이콧으로 정면 대응하며 부당함에 맞섰고, 결국 판매 중인 음반들이 전량 회수조치됨으로써 상황이 종료되었다.[* 관련된 가수들 명단을 보면 기절초풍할 일. 개중에는 이은미, 이문세는 물론 무려 조영남, 산울림까지도 있었다. 근래의 행태들을 보면, 저 당시처럼은 아니더라도 뮤지션들 대우가 떨어지고 있지는 않은 지 염려되고 있다.[46]

7.3. 나는 가수다 재도전 관련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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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그 외

8.1. 다이어트에 관한 에피소드

이문세가 별이 빛나는 밤에를 진행할 때, 주제를 정해주면 팩스로 사연을 받는 코너가 있었는데, 하루는 '가장 싫어하는 것 3가지'로 주제를 정했더니 이소라가 직접 1번 달리기 2번 달리기 3번 달리기 라고 팩스를 보냈다. 빵 터진 이문세는 너무 웃었다며 상품을 보냈다고 한다.

2005년에는 "사랑도 리필이 되나요"라는 일일시트콤에 조연으로 출연할 당시 기자회견장에 날씬해진 모습으로 나타나 기자들이 다이어트 비결을 묻자 '그냥 굶어서' 뺐다는 명언을 남겼다. 아래의 와우 관련 언급도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

8.2. 와우 폐인

2011년 3월 6일 방송된 일밤 나는 가수다 예고편에서 아니나 다를까 와우를 하며 성질내고 있었는데, 위 짤방으로 이소라가 와우 폐인임이 만천하에 인증되었다. 하지만 이소라의 팬 중에 이 짤방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이유는 아래에.

이소라 본인이 와우 폐인임을 인증한 건 먼 옛날 MBC라디오 '오후의 발견' DJ 시절부터이니 이미 7집 나오기 수년 전이다.[47] 급기야는 7집 앨범 때 20킬로 빠진 모습으로 나타나 팬들을 경악시켰는데, 운동이나 식이요법이 아닌 밤새 게임을 하며 굶어서 뺐다고. 그 게임의 정체는 그녀의 팬이라면 다 알고 있는, 위에서 이미 언급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아마 보면 충격과 공포를 느낄 것이다. 굶을 때 발생하는 스트레스와 쉽게 동나는 자제력의 반동을 게임으로 풀 수 있긴 하다. 다이어트를 하면서 격무에 시달리고 공부를 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지만 게임 한두 판이 큰 스트레스가 될 순 있어도, 길게 보았을 때 다른 활동에 비해 매우 스트레스가 적은 편이며 몰입감이 커서 지속성도 크다. 실제로 게임 폐인을 유지하면서 한두 끼씩 굶으면 굳이 운동을 안 해도 20키로 정도는 누구나 뺄 수 있다.[48] 원래 히키코모리 속성이라, 두문불출한 이유가 와우가 처음은 아니고, 게임 '포트리스'에서도 만렙유저 생활을 몇 년간 한 과거가 있다. 그보다 훨씬 전에는 나우누리 공개챗방에 자주 출몰하는 걸로 유명했다. 근데 이소라라고 해도 아무도 안 믿었다고. 하이텔에도 출몰한 적이 있었다.

이후 음악여행 라라라, 라이브 음악창고 등 나오는 모든 지상파 방송마다 간접 광고에 가까울 정도로 와우에 대한 넘치는 사랑을 고백하더니, 급기야는 2010년 7월 발매한 조규찬 9집에 이소라 자신이 작사한 노래 'WOW'를 함께 불러, 덕력의 발자취를 기록에 남김으로써 팬들을 경악시켰다. 어찌 보면 와우계의 박완규.

이렇게 말하면 코믹한 노래일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다. 이 노래의 후렴부에서 조규찬 이소라 두 보컬의 목소리는 누가 메인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교묘하게 바뀌는데 [49] 다르고도 같은 두 개의 목소리가, 현실에서 일면식도 없는 '너' 와 '나' 또는 가상의 나와 실제의 나의 교감이 서로 분리될 수 없을 정도로 깊음을 나타낸다는 빠심충만한 해석[50]도 있었으나, 조규찬의 9집 발매 인터뷰에서 그는 이 곡의 가사가 게임에서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의 문제라고 밝혔다.[51]

2011년 들어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했는데, 여기서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와우저의 위엄을 보였다. 근황에 대한 유희열의 질문에 집안일 하는 걸 제외하면 하루 종일 게임하면서 지낸다고 언급했다.(정확히 "대한민국에서 자신의 근황을 아는 사람은 오직 엄마 뿐"이라고 했다. 게임 안에서 사회생활이 가능하니까 밖에 나갈 필요성을 못느낀다고 한다. 설상가상 방송에서는 편집되어 언급되지 않았지만 유희열이 이상형에 대해 물었을 때 '타우렌 전사 남캐'라고 답했다.

2011년 방송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의 첫 장면에 벤츠 E클래스를 타고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대한민국에서 몇 안되는 '성공한 와우저'라 불러도 좋을 듯 싶다.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 출연 직후 와갤러들의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 와갤에서는 한때 이소라의 와우 업적점수가 8900점대를 상회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한때 와갤 여신자리에 등극하기도 하였지만, 방송에 나온 한 컷만으로 캐릭명과 업적 점수를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며, 와갤에서 이소라라는 말이 나온 '업적점수 8900대 사제' 캐릭터는 와갤길드에 소속된 와갤러이다. 그러나 성급하게 기사화되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결국 이소라의 프로포즈에서 자신의 점수가 6500점이라고 밝혔다. 물론 3월 20일 방송이 나간 이후로 와갤에선 다시 원래 반응으로 돌아감을 넘어서 싸늘한 눈으로 보게 되었다. 와우상의 여자들의 안 좋은 이미지 그대로라고. 그리고 4월 3일 와갤 눈팅을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52] 본격 와갤러 인증. 그리고 와갤의 분위기는 다시 역전되었다. 덕분에 다른 갤러리에서는 "이소라가 와갤러가 되더니 개드립만 배우고 왔구나", "왜 TV에서 그렇게 눈물 흘리면서 깽판을 쳤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녀는 와갤러였기 때문." 라는 얘기도 나왔다.

2013년 이후로는 컴퓨터 게임이나 인터넷조차 자주 접하지 않는다고 직접 발언했다. 하지만 다음 해인 2014년 즈음 다시 와우를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었는데, 다시 2017년 콘서트에서 게임을 잘 안 한다고 밝혔다가 2019년 12월, 단독 콘서트에서 와우 클래식에 빠졌다고 밝혔다. 여담으로 평소 시간을 모르고 지내는데, 게임을 하면 화면 구석에 시간이 나와서 게임 덕분에 현실 세계(?)의 시간을 인지한다고 했다.

9. 그 외 이야깃거리

1998년 '무라카미류는 도대체'라는 제목의 책의 집필에 참여한 적이 있다.[53] 23인의 국내 대중문화인이 무라카미 류의 작품 세계에 대해 논하는 책으로, 이소라 외에도 신해철, 윤상 등이 집필에 참여했다.

가수 이적(본명 이동준)과 동거를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소라의 곡 중에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는 '제발' 때문에 이와 연관지어 오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적과 모델 이소라같은 아파트에 사는 것이 와전된 것이다.

팬들 사이에서 종종 실연을 당할 때마다 앨범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는데 이는 과거에 이소라 본인도 직접 언급한 바가 있다. 즉, 몇몇 앨범은 사실이라는 소리. 한때 본인이 직접 작사한 노래를 부르다가 방송에서 울어버린 적도 있는데 본인이 진행하는 이소라의 프로포즈에서 "제발"이라는 노래를 부르다가 감정에 복받쳐서 울기를 반복하다가 3번째에서야 겨우 불렀다. 참고로 그 때 현장에서 이소라 콘서트 표를 판매 중이었는데, 관중들이 몽땅 쓸어갔다.[54]
[박효신] 040524, 040614 라디오 - 박효신 모니터링 해주는 이소라

2004년 음악도시 시절 고정 게스트였던 박효신을 매우 귀여워했다. 박효신의 TV 데뷔 무대로 알려진 2000년 1월 이소라의 프로포즈에도 나오기 전부터 같이 듀엣곡 "It's Gonna Be Rolling"을 녹음했을 정도로[55][56] 오래 보고 합동 콘서트도 여러 번 했던 사이라 막내 동생처럼 놀리면서 잘 챙겨줬다.[57][58]

박효신과는 2001, 2003 시월에 눈 내리는 마을, 2004 이소라&박효신의 'Sentimental City' 콘서트를 함께 하였고 2012 박효신의 'War Is Over' 콘서트에는 게스트로 와서 "바람이 분다"를 부르고 갔다.[59]

2003년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이소라가 "제발" 1절을 부르고 박효신이 2절을 부른 적이 있었는데[60] 대기하면서 1절을 듣고 있던 박효신이 이소라의 노래에 감동을 받아서 2절을 울면서 불렀었다.[61]

예전에는 반려동물을 8마리나 키웠으나, 한 마리씩 떠나보내고 지금은 두 마리가 남아있다고 한다.

10. 관련 문서



[1] 진행하던 라디오 ‘오후의 발견’에서 밝힌 바로는 순우리말 이름이다. 어머니가 꾸신 태몽이 동굴에 소라가 가득 쌓여있는 꿈이었다고.[2] 성장기 연고지는 서울특별시 서대문구.[3] 다만, 과거 이소라의 프로포즈를 진행하던 시절 만자목걸이를 몇번 차고 나온 걸로 보아 한때는 불교를 믿었던 걸로 추정되거나 혹은 진짜로 불자일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불교 언론에서도 기사화가 된 적이 있다.[4] 데뷔 시기도 비슷해 둘을 헷갈려 하는 사람도 있었고, 이런 저런 계기를 통해 모델 이소라와는 서로 진행하는 프로에 게스트로 부르는 등 친분을 쌓았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현재까지 둘 다 미혼이다.[5] 사실 적어놓은 곡들도 지극히 일부이다. 믿음, 이제 그만, track 시리즈와, 나는 가수다에서 불렀던 모든 곡들이 두루 사랑을 받았다. 그야말로 많은 곡을 히트곡으로 가지고 있는 가수. 전율이 일게 하는 가창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감정을 전하는 가수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평가이다.[6] 1995년 Top 10 Albums 한터차트[7] 한터 뮤직 어워드 2023[8] 시 읽어주는 남자 735호 백문이 불여일청, 2008-11-13, 한겨레21[9] 네이버뮤직 올해의 앨범. 한국 대중음악상 '올해의 팝 앨범', 트랙8 '올해의 팝 넘버' 수상[10] 파일:external/thumbnews.nateimg.co.kr/NISI20081216_0000373611_web.jpg[11] 사실 4월 8일 발매 예정이었다가 모종의 이유로 사흘 뒤로 연기했고 대신 4월 4일에 선공개곡 '운 듯'을 공개했다.[12] '기다리던 소라 누나의 앨범이 드디어 11일 발매 되는군요. 2년 전 W.I.O 무대 위에서 누나가 해줬던 말, 그때의 그 말들과 누나의 모습은 아직도 제 가슴을 뜨겁게 해주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소라 누나가 남겨줄 또 한 번의 추억들, 그 추억을 담기 위해 저와 함께 많은 팬 분들이 기다리며 설레는 것 같습니다. 작업실에서 이리저리 끄적이다 공개 되었던 ‘난 별’ 조금 불러봤는데, 역시나 소라 누나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인 것 같네요' 박효신 버전[13] 이는 선공개곡 '운 듯'이 잔잔한 곡이었기 때문에 더 충격이 컸을 가능성이 있다.[14] 이소라, 10월 정규 9집 발표…가요계 컴백, 2016-09-28, 엑스포츠뉴스[15] 고찬용은 '낯선 사람들' 시절 팀의 리더, 김현철은 자신을 솔로로 데뷔시킨 프로듀서, 조규찬은 현재까지의 보컬 디렉터로, 이 3인은 이소라가 지금의 목소리를 갖게 된 데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16] 한편 조규찬은 이소라같이 노래 잘하는 가수에게 보컬 디렉팅이 왜 필요하겠냐고 언급한 적이 있다. 물론 존경의 의미로.[17] 그런데 8집에는 이러한 Thanks to 란에 저 셋의 이름이 들어가지 않았다.[18] 나는가수다 시즌1 때 박정현의 '나의 하루'란 곡을 재즈 스타일로 편곡해 불렀을 때, '이 노래가 박정현 노래였나?' 싶을 정도로 원곡의 느낌과는 완전히 다른, 고급진 재즈로 바뀌었다.[19] 물론 그렇다고 이소라가 재즈를 멀리한다고 유추할 수도 없다. 실제로 그녀는 다양한 음악을 굉장히 많이 듣는 가수로 알려져있다.[20] 그 당시 꾸민 무대는 Skidrow의 'Youth Gone Wild'. 이때 PD는 무난하게 대중들에게 알려져있는 비틀즈let it be를 하라고 권유했지만 김경호가 이 곡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무대에 섰으며 이 무대로 그는 대박을 치게 됐다.[21] 한 번도 그룹 이름 자체를 언급하지 않았다.[22] 박완규는 PD에게 불려가서 이야기를 들은 뒤 화나서 "에이 시, 어디서 반말이야!"라고 화를 냈었고, 그 당시 부활의 기획사 대표"선생님! 잘못했습니다! 얘가 아직 가요계 이것도 모르고, 우리 태원이도 지금 얘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고(생략)"라고 거의 무릎 꿇듯이 사죄를 했다. 김태원이 인기 밴드 부활의 리더이긴 했지만 본인도 사고를 많이 친 입장이어서 PD 앞에선 약자였다. 다만 당시 PD는 오히려 박완규의 시원시원한 태도를 보고 마음에 들어했으며, 윗선(국장)에서 내린 결정이니 자네가 한번 참아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23] 하루가 지난 다음 날까지도 바람이 분다가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와 있었다.[24] 한 살 차이 손위며, 동시대 가수임에도 불구하고, 다름 아닌 연예계 인맥이라면 공형진과 1위를 다툴 김건모가 '이소라 씨'라고 부르는 사이. 친분이 있는 사이라면 차라리 백지영-김건모일 것이다. 나가수 1회 참조[25] 초창기 계획은 이소라는 하차해도 MC는 계속 하는 거였다.[26] '아침이슬'을 부르려 했으나 그녀가 당시 호주에 맞는 노래가 이거라 판단해 변경했다고.[27] 신형철의 문학 사용법 885호 고통은 고통스럽다고 말하지 않는다, 2011-11-10, 한겨레21[28] 나가수 카페에 의하면 6위라는 소리가 있다.[29] 무서운 건 그때 이소라의 반응이 "응! 그렇게 불렀어"라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했다. 자기 목소리를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의도한 느낌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셈이었다.[30] 다만 '현악기 같은 목소리'는 노래하는 사람들이 자주 쓰는 표현으로 무슨 신선같은 경지는 아니다. 레가토(음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게 연주하는 것)와 포르타멘토를 많이 사용하는 보컬 테크닉을 '현악기같다'고 표현한다.[31] 이소라, 4년만에 라디오DJ 복귀 "본인 의지 강해", 2013-04-02, 마이데일리[32] 이소라와 컬투의 인연은 꽤 오래된 편으로, 과거 컬트트리플 시절부터 이소라가 진행하던 라디오 방송의 고정 게스트로 종종 출연했었고, 이소라의 프로포즈에도 자주 출연했었다. 그리고 김태균은 이소라 3집 '우리 다시'의 공동 작사가로 참여 했기도 했었고 컬트트리플이 이소라의 프로포즈에서 부른 '소라 소라 소라'라는 헌정곡도 있으며 음원 사이트에서 찾아 들어보자.[33] 훗날 유희열의 스케치북 500회 특집 게스트로 초대되었을 때, 비긴어게인 하차 이유를 추측할 수 있는 얘기를 했다. 유희열이 근황을 묻자 키우던 개의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아 새벽까지 붙어 있으면서 간호해야 한다고 했는데, 같이 살고 있는 어머니 혼자서 간호를 하게 할 수는 없고 스케줄을 지속적으로 잡기에는 무리라고 판단해서 하차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34] 김범수 이소라 콘서트 - 대구, 인터파크트리플[35] 무릎팍도사 싸이 진솔한 이야기 화제, 2007-04-12, 데일리안[36] 유인촌장관 격노 “예술의전당 비리, 줄기찾아 엄단”, 2008-04-20, 뉴시스[37] 999년 조용필 한국 가수 최초 예술의 전당 공연 발표, 2011-10-14, 스포츠동아[38] 세종문화회관 대중가수 최초 공연도 조용필이다. 당시 패티김은 이미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한 경력을 지니고 있었다. 더불어 이선희, 이미자 등이 다녀갔으며, 2015년에는 보아도 했다.[39] 보아, 세종문화회관 콘서트 "여러분 있기에 가능", 2015-08-24, 스타뉴스[40] 예술의전당 오르는 로커 한대수···"딸 위한 음악동화죠", 2017-07-02, 뉴시스[41] 가수들의 소속사와는 이야기가 되었으나 가수들의 동의는 받지 않은것으로 보인다. 당시에도 방송사가 자사 프로그램에 방송된 곡들의 실황을 음반으로 발매할 경우 음반 출고가의 일부를 로열티로 해당 가수에게 지급하는 규정이 있었으나 당시 관행이나 가수와 방송사의 관계를 고려하면 제대로 로열티를 지급한 것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정규앨범 판매량 같은 돈 문제도 있지만,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본인 곡이 본인의 정규앨범이 아닌 앨범에 수록되는 것도 문제였다.[42] 2024년 기준으로 멜론이나 벅스뮤직에서는 스트리밍된다. 저작권 문제를 해결한것으로 보인다. 단 이소라의 'I.O.U'와 '네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 김광진의 '사랑의 서약', 임형주의 'Don't Cry For Me Argentina'는 멜론에서는 막혀있다.[43] '이소라…'라이브앨범 출시 1주일만에 긴급 회수, 1999-07-09, 중앙일보[44] KBS"히피·왜색풍 연예인 출연족쇄" 「서태지…」컴백무대 취소, 1993-06-26, 경향신문(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45] 천하의 그들도 머리 풀고 수수하게 입어야 했다.[46] 헤이즈 '도깨비' OST 논란…CJ 측 "두 사람에 깊은 사과, 한수지 버전 발매 검토”, 2017-01-26, 뉴스핌[47] 와우를 하는 게스트와 전문가급 입배틀을 나눴다는 기록이 있다.[48] 행여나 이 문단을 보고 진지하게 '게임하며 굶기' 다이어트를 하려는 생각은 위험하다. 굶으면 당연히 체중이야 줄겠지만 건강도 해칠 뿐더러 체지방이 주는 동시에 근손실도 크게 오고, 식사량이 돌아오면 요요현상이 강하게 올 가능성이 높다. 건강한 다이어트는 반드시 운동이 동반되어야 한다[49] 한 소절 지나고 다음 소절에서 바뀌는 게 아니라 한 소절 중간에 바뀌는 것이 서커스 묘기 수준.[50] 한 몸에 두 면의'아수라백작'을 연상해 보면 빠를지도. 이 곡에서 이소라는 보컬을 최대한 중성적으로, 조규찬과 비슷한 질감으로 내는데, 이소라 1집 이래의 보컬 디렉터가 조규찬이었음을 생각하면 이 노래는 한 목소리를 가진 두 성대에서 나온 노래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51] <스타 앤 조이>[AM7] 조규찬 “여섯 빛깔 피처링 만족도는 3000%”, 2010-07-26, 문화일보[52] 소라님 막공 다녀왔다. 나름의 후기 올려본다. ㅋㅋ, 2011-04-03, 나는 가수다 갤러리[53] 무라카미류는 도대체, 1998-01-08, 알라딘[54] 이소라 '제발' ..........잊지 못해 너를..........., 2001-02-24, 이소라의 프로포즈[55] 이 곡을 만든 김현철이 우연히 라디오에서 박효신의 해줄 수 없는 일을 듣고 박효신을 수소문하여 둘이 듀엣을 하게 됨[56] 021018~151219 라디오 - TV 데뷔 하기도 전에 이소라와의 듀엣곡 It's Gonna Be Rolling을 녹음한 19살 박효신[57] [박효신] 040524 라디오 - 박효신씨도 한 달에 한 번? (놀리는 재미가 있는 애기쿄)[58] [박효신] 040510 라디오 - 소라 누나한테 선물해야되는데... (발동동)[59] 박효신 이소라 - 바람이 분다 (2012 WAR IS OVER CONCERT)[60] 이소라 x 박효신(Lee Sorah x Park Hyoshin) - 제발 [윤도현의 러브레터] | KBS 20031114 방송[61] '제발'을 부르면서 울었던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