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20 12:16:23

이적(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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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이적(李笛)
본명 이동준(李東俊)
출생 1974년 2월 28일[1][2]([age(1974-02-28)]세), 서울특별시 서초구
신체 173cm, 64kg[3], B형
학력 서이초등학교
영동중학교
반포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사회학 학사
가족 어머니 박혜란, 형 이동훈, 동생 이동윤
아내 정옥희, 슬하 2녀
소속 뮤직팜
그룹 패닉, 카니발, 긱스, 처진 달팽이
별명 맹꽁이, 적구리, 음악노예
데뷔 1995년 패닉 1집 앨범 '달팽이'
SNS 홈페이지파일:트위터 아이콘.pn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

1. 개요2. 생애
2.1. 학창 시절2.2. 1995~1996년: 패닉으로 데뷔 및 패닉 활동2.3. 1999~2004년: 첫 번째 솔로 활동 및 긱스 활동2.4. 2005~2010년: 패닉의 귀환, 다시 솔로 활동2.5. 2013~2014년: 5집 <고독의 의미> 발매 및 토이 7집 참여2.6. 2015~2016년: 소극장 전국 투어와 응답하라 1988 OST 참여2.7. 2017년: 미니앨범 발매
3. 음악 스타일과 가창력4. 디스코그래피
4.1. 패닉4.2. 솔로4.3. 참여 앨범
5. 천재6. 방송 활동7. 수상 경력8. 기타9. 관련 문서

1. 개요

이적(李笛)이라는 예명은 데뷔 직전, 대학교 4학년 때 지었던 것이다. 여러 가지 뜻으로 바꿔 가면서 쓰는 것이 보통이며, 데뷔 당시에는 학생운동 성향으로 해석하곤 했다. 재학시절 내내 대학로에서 음악이나 연극 접하는 데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의 '지문 사냥꾼'에 의하면 "내 이름은 적입니다. 피리 적(笛)입니다. 나는 피리 부는 사나이고 싶습니다."라는 구절도 있다. 2012년, MBC파업콘서트에 참석한 이적은 자신이 어떤 단체에 가서 노래를 부르면 그 단체는 "이적단체"가 된다는 아재개그를 쳤다.

2. 생애

2.1. 학창 시절

어렸을 때부터 음악, 작문에 대해 비범한 재능을 갖고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습한 얼굴로
AM 6:00이면
시계같이 일어나 쌀을 씻고
밥을 지어
호돌이 보온 도시락통에 정성껏 싸
장대한 아들과 남편을 보내놓고
조용히 허무하다.
(중략)
- 엄마의 하루

중학교 3학년 때 쓴 시로 이 시를 읽은 박완서가 어떻게 중3짜리 남학생이 엄마의 삶을 그리도 정확히 포착했냐고 감탄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시를 쓰게 된 계기가 어머니 생신을 깜빡하고 용돈을 다 써버려 선물 살 돈이 없자 궁여지책으로 즉석에서 써낸 것이라고 한다. 어머니에게 탄로당할까봐 걱정했는데 어머니가 크게 감동했다고 한다.
음악에선 첫 작곡(완곡한 곡)을 고등학교 1학년 때 했는데, 4집 발매 홍보차 놀러와에서 이 곡(제목 - 어린 사랑)을 부르자 옆에 있던 장기하가 "형 타이틀 곡보다 좋은데요?" 하며 농담하기도 했다. 이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해 가수가 되기 위해 여러 오디션과 가요제를 전전했지만 졸업 전까지 크게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주위 선배, 동기들의 비웃음 섞인 시선에 대한 대항하며 쓴 가사가 그 유명한 거위의 꿈이다.[4] 그 때 그의 나이는 겨우 스물 셋이었다.

힐링캠프에서 출연해서 말하길 그 '거위의 꿈'이 아프리카의 소년 합창단이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가벼운 의도로 쓴 가사가 누구에겐 큰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으며 앞으로 겸손한 자세로 음악을 해야겠다고 느꼈다고 한다.

2.2. 1995~1996년: 패닉으로 데뷔 및 패닉 활동

1995년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김진표와 함께 패닉으로 데뷔했다. 정확히 말하면 1994년에 A-Teen이라는 그룹으로 먼저 데뷔했지만 앨범 안에서의 비중이 워낙 적어 언급이 안 되는 듯. 당시 친구 녹음 도와주려고 왔다가 데모 테이프를 들은 들국화의 최성원이 발탁했다고 한다. 참고로 이 그룹의 또 다른 멤버가 바로 G.고릴라. 기사

참고로 이적과 김진표 둘 다 잘나가는 집안인 데다 집안끼리 사이가 돈독하다. 공부 잘하는 이적에게 김진표 공부 좀 가르쳐 달라고 맡겨놨더니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음악의 길로 갔다고 밝혔다. 후에 김진표가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에서 추억하길 이적은 남들 다 할 거 다 하고 놀 거 다 놀면서 늘 공부는 잘해 조금 재수 없었다고 한다. 가출하고 싶으면 하라고 얘기하면서 이적은 좋은 성적을 받아 학교 생활을 정상적으로 하고 있었는데 그게 너무 얄미웠다고 한다.

당시 전곡을 자신이 직접 작사/작곡/편곡했다는 신인답지 않은 모습과, 여기에 이적의 학벌[5], 서울대에서 독문학을, 이대에서 여성학 박사 학위를 받은 어머니[6]의 여성주의 운동 배경 등이 더해지면서 그는 단순한 가수가 아닌, 의식있는 아티스트이자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져 주는 아티스트의 한 명으로 인식된다.

그렇지만 서울대 사회학과 선배들은 이적이 사회적 메세지를 주는 엘리트 가수 평을 받는 것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90년대 초 술자리에서 서태지 노래 등 대중가요를 불러제껴 "그냥 강남출신 날라리"로 생각했다는 것. 참고로 서울대 사회학과는 2000년 전후까지도 술자리에서 민중가요 부르고 놀았다.

패닉 1집 타이틀곡인 '아무도'는 정말 아무도 모르게 묻혔으나, 수록곡인 달팽이가 가요 차트에서 여러 번 1위를 하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으며 후속곡인 왼손잡이도 10위 권까지 갈 정도로 히트를 쳤다.

1996년에는 정규 2집 <>이라는 앨범을 냈는데, 앨범 디자인부터 음악 자체까지 완전 파격적이었던 터라 여러모로 사회적인 충격을 주었다. 참고로 패닉 2집은 한국의 명반 100위 중 하나로 선정된 바가 있으며 활동곡인 <UFO>가 중위권까지 들면서 선전했다.

이후 1997년 전람회김동률과 프로젝트 그룹 카니발을 결성해서 카니발 1집 'Carnival'을 발표했다. 대표곡은 그땐 그랬지, 거위의 꿈, 비누인형 등이 있다. 이 중 비누인형은 중학교 교과서에도 수록되어 있다.

2.3. 1999~2004년: 첫 번째 솔로 활동 및 긱스 활동

1999년 패닉의 3집 'Sea Within' 이후 잠정적으로 패닉 활동을 중단하고 솔로 1집 'Dead End'를 발표하지만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고 실패한다. 이 솔로 1집은 이적 본인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 앨범이라고 한다. 원래 패닉 활동을 정리하고 긱스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 동안에 써 놓은 곡 중 패닉에도 긱스에도 사용하지 못할 것 같은 자투리 곡들이 아까워서 가벼운 마음으로 냈는데 예상보다 팬들의 관심이 폭발해서 좀 더 정성을 들일걸 하며 후회했다는 모양이다.

이후 이적은 솔로 앨범과는 별도로 정원영, 정재일, 강호정, 한상원, 이상민과 함께 6인조 밴드 '긱스(Gigs)'를 조직하여 활동했으며, 2000년까지 2장의 앨범을 냈다. 한 인터뷰에서 긱스 활동이 자신에게 준 영향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긱스 활동으로부터 나는 '보컬'을 얻었다."라고 얘기했다.

2001년에는 유희열의 원맨 프로젝트 밴드 토이의 정규 5집 'Fermata'의 '모두 어디로 간 걸까'의 보컬을 맡았다. 바로 전 해에 데뷔한 성시경과 함께 이 앨범에 투입된 토이의 객원보컬로, 이후 이적은 2014년까지 토이의 객원보컬로 자주 참여하고 있다. 또한 이 해 그는 김동률의 3집 앨범 귀향에, 4번 트랙 '우리가 쏜 화살은 어디로 갔을까' 의 작사와 피처링으로도 참여한다. 본인의 활동보다 피처링 활동으로 대중과 간접적으로 만난 한 해다.

이후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그는 평발이다.), 서초구청에서 공익으로 일하면서 틈틈이 앨범 준비를 했고, 소집 해제 후 2003년에 '하늘을 달리다',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 동갑내기 친구 김윤아과의 듀엣곡인 음산한 분위기의 '어느 날'김윤아와 함께 한 이적의 어느 날 라이브 등이 담겨 있는 솔로 2집을 발표했다. 성적은 약 80000장 정도로 동일한 날에 발매한 김진표 4집보다 좀 덜 팔린 정도로 뭐 그저 그랬다. 그리고 드라마 좋은사람의 OST인 방랑자(데프콘 피처링)를 불렀다(작사도 함).

2.4. 2005~2010년: 패닉의 귀환, 다시 솔로 활동

2005년에는 김진표와 함께 7년 만에 패닉 4집 '04'를 발표.

2007년에는 '다행이다'를 타이틀곡으로 발표한 솔로 3집 '나무로 만든 노래'가 2008년 제 5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음반, 올해의 노래, 최우수 음반(팝), 최우수 노래(팝) 부문에서 상을 받으며 4개 부문 수상이라는 기염을 토한다. '다행이다'는 원래는 1절 정도만 있는 소품으로 들어갈 예정이었는데, 김동률이 듣더니 메인으로 밀라고 해서 2절을 만들어 밀었다고 한다. 김동률은 로열티를 달라고 하는데 이적은 무시하고 있다고. 카니발 콘서트에서는 김동률이 부르기도 했다.

2009년에는 GMF 2009의 헤드라이너로 선정되었으며, '최고의 음악', '최고의 순간' 2개 부문을 수상했다. 2009년 11월 첫째 주에 있었던 서울대 사회학과가 주관한 "선배와의 대화"라는 초청강연을 통해 2010년 목표로 솔로 4집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0년 9월 30일에는 자신이 전곡을 직접 작사/작곡/편곡한 솔로 4집을 발표. 모든 곡이 사랑 관련 노래다. 네이버 오늘의 뮤직 2010년 10월 2주 '이주의 발견 - 국내' 앨범에 선정 및 꽤 높은 점수를 받았으며 2010 결산 올 해의 국내 앨범 10위에도 랭크. 명불허전. 좋아하는 팬들 역시 많지만 긱스와 패닉 시절의 똘끼 넘치던 모습이 그립다는 팬들도 많다고 하더라.

2.5. 2013~2014년: 5집 <고독의 의미> 발매 및 토이 7집 참여

2013년 11월 15일, 정인과 타이거JK가 피처링에 참여한 솔로 5집 '고독의 의미'가 발매됐다. 타이틀곡인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은 발매 4일만에 음원사이트 1위를 석권하는 희한한 흥행패턴을 보였으며, 11월 29일 뮤직뱅크에서 1위를 차지했다.

2014년 11월 18일, 토이 정규 7집 'Da Capo'에 'Reset'라는 곡의 객원 보컬을 맡았다. 7집 수록곡 중 가장 힘이 넘치는 곡이며, 타이틀곡인 "세 사람"(Vo. 성시경), 그리고 "너의 바다에 머무네"(Vo. 김동률) 등 곡과 함께 상위 차트를 휩쓸고 있다. 다만 유희열의 곡답게 곡 자체가 빠르고 높다.

2.6. 2015~2016년: 소극장 전국 투어와 응답하라 1988 OST 참여

올해도 3월 한 달간 서울 공연을 시작으로 소극장 공연을 중심으로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2016년 초 까지 공연 스케쥴이 잡혀있다.

또한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OST에 전인권의 '걱정 말아요 그대'라는 곡을 리메이크한 곡으로 참여했다. 편곡은 물론 기타, 피아노 연주까지 담당했고 오혁이 리메이크한 이문세의 소녀와 같이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드라마가 끝난지 1달 가까이 지난 2016년 2월까지 차트 10위권 안에 있다... 결국 2016년 멜론 연간차트 10위에 랭크하게 된다.

2.7. 2017년: 미니앨범 발매

12월 6일, 개인 페이스북 및 트위터 계정으로 12월 14일 오후 6시에 <흔적 part.1>을 공개한다고 게시글을 올렸고, 12월 12일, 나침반이라는 티져가 공개되었다.

라이브 원 인터뷰에서 밝히길, 2018년 3월 경 <흔적 part.2> 가 나온다고 했지만 감감무소식. 나중에 이적 홈페이지에 찬바람이 불어올 때쯤 나온다고 한다. 파트 나눈다고 했을 때 고문이라도 했어야 했다. 믹싱까지 끝냈다는 양반이... 아직 늦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벌써 2019년이다. 이적 보고있나?? 2019년 3월 2일, SNS를 통해 <흔적 part.2>가 드디어 이번 달 안에 나온다고 밝혔다. <흔적 part.1>이 공개된 지 1년 3개월 만이다.

3. 음악 스타일과 가창력

카니발 작업을 하면서 많이 힘들었다. 서로 지향하는 음악 스타일에서도 이견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스타일 자체가 난 노력형에 가까운데, 이적은 천재기 때문이다.
- 김동률
작곡/편곡 부분에서도 최고의 평가를 받지만, 이적하면 감각적인 작사 능력으로 유명하다. 패닉 2집 의 UFO만 봐도 그의 작사센스가 상당히 돋보인다. [7] 사랑타령 가사에 질려하다가 이적의 노래를 듣고 그의 팬이 된 경우도 상당수다. 오죽했으면 4집에서 이적이 모든 곡을 사랑관련으로 만들었다!!는 점이 말도 안 된다는 소리를 듣고 있을 정도….[8][9] 본인이 말하기를 무의식 중에 펑키(funky)한 음악을 자주 만들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이런 음악을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고.[10]

가창력 평가에서 본좌급보다는 아래쪽에 위치한다고 보통 평가를 받았었지만, 중저음을 단단하게 내는 이미지와 싱어송라이터라는 면이 강해서 그렇지 가수 중에서도 발성이 아주 좋은 편에 속한다고 한다. 실제로 이적의 안정적인 후두위치와 높은 피치에서 나오는 풍부하고 열린 소리는 다른 가수들에게서 쉽게 들을 수 없는 것이다. 같은 음정에서 이적과 다른 가수의 음질을 비교해보면 알수 있다. [11] 음향수준이 콘서트보다는 떨어지고 학생들의 떼창소리가 어마어마한 대학축제 라이브에서도 압도적인 명료함을 느낄수 있다

하지만 이는 전반적인 음악능력에 비해서는 후천적인 노력으로 만들어낸 부분이 크다. 데뷔 초에는 음색은 인정받았었지만 저음이 약하고 [12] 현재의 묵직하고 단단한 질감은 없었다. 라이브도 매우 불안하여 삑사리 영상도 찾아볼 수 있다. 그 후 국내 최고수준의 세션들과 밴드를 한 경험 그리고 발성훈련을 통해 솔로앨범부터는 슬슬 가창력 좋은 가수라는 평을 받기 시작한다. [13] 3집부터는 모두들 알고 있는 지금 이적의 목소리로 정착했다. 2014년 경부터는 한 번 더 진화해 이전보다도 더 티타늄같은 단단한 음색을 보여주는 중이다. [14] 현재는 발라드 가수의 입지도 공고히하면서 록 음악 페스티벌에서마저 성량이 상위권인 면모를 보여주는 중. 게다가 리듬감과 감성 [15]은 원래부터 기본탑재 패시브이니... 그야말로 노력하는 범재.

이적 특유의 창법은 그가 직접 만든 노래를 부를때 굉장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16] 라디오 스타에서 윤종신이 평가하기를 한국의 로드 스튜어트. 중저음이 특히 강하다.[17][18] 덧붙여,한국에서 스캣을 가장 잘 구사하는 가수 중 하나다. '하늘을달리다', '미인' [19], '그땐 그랬지' [20] 등에서 그야말로 똘끼가 폭발하는 스캣 애드립을 들을 수 있다. 알앤비가수가 아니다뿐이지 보컬리스트로서도 레전드 반열에 오르기 충분.

대히트를 기록한 '달팽이'가 그랬고, '다행이다'는 임재범의 '고해'와 함께 노래방에서 가장 많이 불리는 곡이라고 한다. 둘이 어찌나 많이 불리는지 여성 앙케이트 조사에서는 '남자들이 부르지 않았으면 하는 곡' 1위를 놓고 다툰다. 본인도 결혼 전 외국에 있는 여자친구에게 '다행이다'를 전화기 너머로 불러주었다고. 최근 콘서트에서는 이제 본인이 부른 것보다 노래방에서 남들이 부르는 걸 듣고 '다행이다'를 알게 되는 사람이 더 많아진 것 같다고. 최근 갑자기 유명세를 탄 '하늘을 달리다'같은 경우도 다른 가수가 부르면 원곡의 반도 못 살리는 수준. 슈퍼스타K2에서 미션곡으로 부르면서 호평을 받았던 허각조차도 이적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다는 평이 많을 정도이다. 그만큼 한국 대중가요계 메인스트림에서도 유니크한 창법의 소유자 중 하나라는 것은 확실. 5집 이후로는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과 걱정말아요 그대도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노래가 되었다.

소속사는 뮤직팜으로 김동률, 존박[21] 등이 동료이다. 하지만 김동률과는 현재 활동하지 않는다.[22]

4. 디스코그래피

4.1. 패닉

발매일 분류 앨범 명 수록곡 특징
1995년 10월 정규 1집 Panic Intro: Panic is Coming
아무도
너에게 독백
달팽이
다시 처음부터 다시
왼손잡이
더...
기다리다
안녕
Outro: 다시 처음부터 다시
패닉의 데뷔 앨범
1996년 10월 정규 2집 냄새
UFO

강(江)
어릿 광대
그 어릿 광대의 세 아들들에 대하여
벌레
불면증
Mama
사진
1998년 1월 정규 3집 Sea Within Penicillin Shock
숨은 그림 찾기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
태엽장치 돌고래

희망의 마지막 조각
단도직입
오기
여행
Red Sea of Red Sea
미안해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Edit)
패닉 디스코그라피 중 가장 어두운 가사
2005년 12월 7일 정규 4집 Panic 04 재회
균열
태풍
눈 녹듯
길을 내
나선계단
종이나비
뭐라고?
정류장
로시난테
추방

4.2. 솔로

발매일 분류 앨범 명 수록곡 특징
1999년 6월 정규 1집 Dead End Dead End
뛰어!
Game Over
Life on TV
해피앤딩
Rain
죽은 새들 날다
회의
적(敵)
지구 위에서
잘 자
2003년 5월 13일 정규 2집 2적 몽상적(夢想笛)
하늘을 달리다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
바다를 찾아서
장난감 전쟁
어느 날(Feat. 김윤아)
서쪽 숲
거울놀이
그림자
착시
순례자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Feat. JP)
하늘을 달리다의 수록앨범
2007년 4월 19일 정규 3집 나무로 만든 노래 노래
다행이다
어떻게
비밀
내가 말한 적 없나요
사랑은 어디로
얘, 앞산에 꽃이 피면
자전거 바퀴만큼 큰 귀를 지닌
소년
먼 길을 돌아온 뒤
같이 걸을까
무대
2010년 9월 10일 싱글 빨래 빨래[23] 이적의 첫 싱글
정규 4집 수록곡의 선공개
2010년 9월 30일 정규 4집 사랑 아주 오래전 일
그대랑[24]
다툼
빨래
두통
보조개
매듭
네가 없는
끝내 전하지 못한 말
이상해
2013년 11월 15일 정규 5집 고독의 의미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누가 있나요
사랑이 뭐길래(Feat. 타이거JK)
이십년이 지난 뒤
비포 선라이즈(Feat.정인)[25]
뜨거운 것이 좋아
뭐가 보여
숨바꼭질

고독의 의미
2017년 12월 14일 미니앨범 part 1 흔적 part 1 나침반
불꽃놀이
멋진 겨울날
2019년 3월 22일 미니앨범 part 2 흔적 part 2 숫자
하필
숫자 (Inst.)
하필 (Inst.)

4.3. 참여 앨범

발매일 분류 앨범 명 수록곡
1996년 이문세 10집 화무 조조할인
1997년 10월 카니발 1집 Carnival Carnival(Prelude)
롤러코스터(in Carnival Land)
그땐 그랬지

비누인형
축배
넝쿨
농담
그녀를 잡아요(Feat. 김진표, 서동욱)
거위의 꿈
1998년 9월 김동률 1집 The Shadow Of Forgetfulness 내 오랜 친구들(Feat. 서동욱)
2001년 5월 토이 5집 Fermata 모두 어디로 간 걸까
2001년 10월 김동률 3집 귀향(歸鄕) 우리가 쏜 화살은 어디로 갔을까
2011년 11월 29일 아이유 2집 Last Fantasy 삼촌
2014년 11월 18일 토이 7집 Da Capo Reset
2015년 11월 07일 응답하라 1988 OST 응답하라 1988 OST Part 2 걱정말아요 그대[26]

5. 천재

천재설이 돌 정도로 다방면에서 넘사벽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같이 있으면 그렇게 디스하는 유재석유희열,정재형도 이적의 머리는 인정할 정도.

무한도전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에 출연했을때 파트너 유재석과 식물원을 걸으며 얘기한 내용을 늘려서 <말하는대로>를 만들었고, 유재석이 중간점검때 속이는 곡으로 말하는 대로 말고 한곡이 더 필요하다 그러자 즉석에서 <압구정 날라리>를 만들어버렸다.
중간점검때는 연습하고 있는 10cm와 하하의 곡과 스윗 소로우와 정준하의 곡을을 희미하게 들었음에도 코드를 따버리자 내귀의 도청장치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거위의 꿈 가사도 23살때 김동률이 강압적으로 가사를 쓰라고 해서 그 자리에서 쓴 가사라고 한다.

이적의 가족도 심히 놀라운데, 이적의 부모님과 형제 그러니깐 이적의 가족은 대다수가 서울대 출신이다.[27][28].. 이 때문인지 대학가요제에 나오기 위해 서울대에 지원했다고 면접관에게 말했을을 정도로 이적은 서울대 가는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서울대에 들어갔다.

소설가로서의 재능도 있어서 '지문사냥꾼'이라는 소설책도 냈으며 이는 만화책으로도 나왔고[29], '제불찰 씨 이야기'라는 에피소드는 극장판 애니로도 만들어졌다.

라디오 DJ로서도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디제이 멘트를 작가가 아닌 자신이 직접 작성했으니… 게다가 DJ를 처음 맡은 프로그램은 과거 이문세가 10년 동안 진행하던 MBC의 간판 별이 빛나는 밤에였다. [30] 이때 매주 일요일에는 '일요 명작극장'이라는 꼭지가 있었는데 이적이 직접 집필한 희곡을 가지고 라디오 방송을 했다.[31][32] 이적의 텐텐클럽, 이적의 드림온, 이적의 음악공간 등 TV/라디오 프로그램도 몇 가지 진행했으나 지금은 모두 중단한 상태다.

  • JLPT 구 1급 자격증이 있다. 2004년 12월 처음 일본을 방문했는데, "여행을 갈 때마다 ‘초밥도 못 시켜먹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일본어를 익히기 시작했고, 또 하다보니 1급까지 마스터하게 됐다."고 한다. 유희열이 말하기를, 이적은 정말 단기간 내에 일본어를 습득했는데 그 기간이 채 한 달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적에게 어떻게 했냐고 물어보니까 나온 대답이 "그냥 하다보니 그렇게 됐다."였다..

일이 막히고, 잘 안풀릴때는 외국 서적 읽는다고 한다... 안쓰는 근육을 쓰는 것 같다고..

6. 방송 활동

  • 2011년 9월부터 2012년 3월까지 방영한 시트콤 하이킥 시리즈 3탄 <하이킥 짧은다리의 역습>에 출연했다. 작중 최고의 명문대인 명인대 출신 의사로 나왔다. 같은 등장인물이었던 윤계상과는 선후배 사이로 출연. 돈 욕심 때문에 대학 병원을 나와 항문 외과 개인 병원을 설립...했지만 병원에서의 업무 스트레스로[33] 세상에 대해 삐딱한 시선을 지닌 의사 역할로 출연. 스토리가 먼 미래의 이적이 회상하는 구조로 되어있기 때문에 나레이션 역할도 맡았다. 작품의 음악 감독 역할도 겸했으며, 오프닝 곡[34] 및 엔딩 곡과 OST '그런걸까', 강승윤과 함께 '웃어라 그대'를 불렀다. 그리고 극중에서 안수정에게 "스튜핏"! 소리를 듣는 대굴욕을 당하자 이에 대해 이적이 하는 소리가, "너는 스튜핏 100배다"라고.....
  • 2013년 5월부터 엠넷의 페이크 다큐, 방송의 적에 출연했다. 존박: '"어차피 이거 음악의 신 짝퉁이잖아요"'
  • 2013년 8월 힐링캠프에 나왔는데, 방송이 아예 통째로 짤릴 수도 있다는 소리를 듣고, 불안해 하지만 유재석의 인터뷰와 이경규의 병명을 밝혀서 방송에 나오겠구나 생각했는지 뒤로 갈수록 포텐이 터지며 방송을 뒤집어 놓았다.
  • 무한도전 253, 254, 255, 256, 306, 435, 438, 439, 480, 481, 482회에 등장하였다. 못친소특집을 제외하면 전부 음악관련 특집일때 출연하긴 했지만, 무도 녹화에 워낙 호의적으로 참가해줘서인지 무도 멤버들에게 5분 대기조라고 불렸다.. 이적 왈: 무의식적으로 목요일날에는 [37] 스케줄을 비우게 돼요.
  • 2018년 선다방에 카페지기로 출연하였다 그리고 1화 만에 카페 사장이 되었다. 가끔가다 [38] 기타나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불러준다.

7. 수상 경력

  • 2008년
    • 제5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팝 음반상
    • 제5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팝 노래상
    • 제5회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노래상
    • 제5회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상
  • 2009년
    •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최고의 순간상
    •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최고의 공연상
  • 2013년
    • 제50회 저축의 날 금융위원장 표창
  • 2016년
    •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 베스트 OST상

8.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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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적하면 잘 알려진 안습의 짤방.[39] 위 짤방의 주인공은 긱스 기타리스트 한상원이다. 그런데 잘 보면 이적의 평양냉면은 따로 있다. 짤방의 심층분석 여담이지만 이적이 보컬을 담당한 긱스의 '짝사랑'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난 네가 좋아! 냉면보다 더!!'. 실제로 이적은 평양냉면 마니아라고 하며 평양냉면 성애자 존박에게 냉면 맛집을 전수해준 장본인이다. 이적과 친분이 있는 장기하는 앞서 언급된 '짝사랑'의 가사를 설명하면서 이적이 평양냉면보다 좋아하는 거면 정말로 좋아하는 거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본인이 이 짤방에 관해 직접 라디오에 언급한 적도 있었는데 사진 속 자신의 모습과 당시의 마음이 전혀 다르지 않았다한다.
  • 가수 활동으로 서울대에서 장기 미등록자로 제적 상태였지만 2003년 재입학해서 결국 졸업장을 받았다.
  • 패닉의 1집, 2집이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등록되었다.이것과 관련한 이적의 인터뷰를 볼수있는데 90년대 초반,당시 20대 초반 나이에 음악활동을 하면서 확실히 범상치 않은 생각을 가졌던 뮤지션 이적의 모습을 발견할수 있다.[40]
  • 2007년 12월 결혼했다. 신부는 이화여대에서 발레를 전공한 정옥희 씨. 오랜 기간 연애 끝에 결혼했다고 한다. 부인이 미국으로 유학을 갔던지라 장거리 연애도 했었는데, 이 시기에 이적이 부인을 위해 만든 곡이 다행이다... 상기되었듯이 이적은 이 곡을 개인적인 곡이라 여겨 실제로는 히든 트랙으로만 삽입하려고 했다고 한다. '하늘을 달리다'에서 '귓가에 울리는 뜨거운 목소리'도 장거리 연애 시절 오래 통화하다 보면 수화기가 뜨거워져서 나온 가사라고 히든싱어 출연 당시 밝힌 바 있다. 결혼식에 참석했던 동료 가수들의 말에 의하면 굉장히 로맨틱한 결혼식이었다고. 슬하에 두 딸이 있다.
  • 2010년 11월 8, 22일자 놀러와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EDPS를 꽤 좋아하는 듯, 그리고 이젠 머리숱마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해 미용실에서 미용사가 흑채를 뿌려주는 굴욕까지 당했다고...
  • 동료 가수들에게서 최악의 패션센스 보유자로 유명하다. 아예 옷에 관심이 없어서 입던 옷만 계속 입다보니 친한 장기하의 증언에 따르자면, 코디가 입혀준 옷은 귀티가 나서 멋있는데 정작 이적의 사복패션을 보면 계절을 알 수 있다고 한다.
  • 최훈삼국전투기까메오 출연하기도 했다. 극초반부에 동탁에게 '적이다!'라고 외치고 칼로 뚫렸는데 '나 난 이적...'이라며 등장하자마자 사망크리.
  • 취미는 음담패설, 진실게임, 질투 등이라고 한다. 이적과 친한 사람들이 이적 얘기를 할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게 음담패설이고, 처음 만난 부부와 친해지자며 진실게임을 해서 부부싸움을 시킨 전설적인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라스만 봐도 보이지만 남 칭찬을 하면 "나는 뭐 없니?"라는게 보인다고 한다.
  • 그리고 LG 트윈스의 팬이란 건 아는 사람은 다 안다. 2002년 한국시리즈의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 자신의 공홈에 멋있었다는 글을 남겼고, 앨범 후기등을 통해 특히 김재현에 대한 애정을 많이 드러냈다. 그런데 정작 LG팬이라는 자료를 찾기 쉽지가 않은데, 이적이란 이름이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해보면 알 것이다.
  • 2014년 10월 4일 히든싱어에 출연. 모창가수들과 대결을 하였다. 결과는 이적의 우승. 1, 2라운드는 그럭저럭 참가자들이 선전을 했지만 이적 특유의 고음처리가 돋보이는 3라운드 <하늘을 달리다>에서 참가자들이 밑천을 드러냈다. 그러나 쉬울 줄 알았던 마지막 4라운드에서 가장 최근곡인 <거짓말,거짓말,거짓말>을 불러 이적이 우승을 하였지만 2위인 KoN과의 표차는 45대 34로 11표차에 불과했다. 김광석, 이수영편의 데자뷰.
    재미있는건 고등학생 참가자 한명을 제외한 다른 참가자들이 이적처럼 서울대, 카이스트, 부산대 등 명문대 출신 출연자였다.
    또한 준우승자가 1~3라운드동안 존재감이 덜하다가 4라운드가 되어서 갑자기 우승후보까지 급부상한 것도 포인트다.
  • 음악평론가 강헌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과거 글이 있다. 강헌이 음악평론이 아닌 가사평론만을 하고 있고, 음악적 소양이 너무 없다는 내용.강헌도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지 팟캐스트 걸신이라 불러다오에서 이적에 대한 악감정을 이야기 한 일도 있다.
  • 패닉 시절 한번은 TV 전파왕국이라는 SBS 프로그램에서 달팽이라는 노래가 일본 노래를 표절했다며 몰래카메라를 당했다. 말투가 상당히 귀엽다 자신을 잘챙기세여 세상은 참 삭막한 곳이예여! 매니져도 믿을게 못댑니다!
  • 시네21에서 이적표현물이라는 칼럼을 연재하였다.
  • 2007년 봄 서울대학교 축제 때 딱 한 번 와서 폭발적인 공연으로 축제를 초토화시켰다. 서울대 축제는 대체로 타대에 비해 조용하고 한산한 분위기인데 이날은 이적 공연으로 뜨거운 밤이었다. 나이 차이 나는 학생들의 환호가 신기했는지 "여러분 저 알아요?? 정말요?? 와~~" 하면서 좋아했다.

9. 관련 문서


[1] 여담이지만 전람회서동욱이 중학교 후배였다고. 참고로 서동욱은 4월 1일생. 즉 약 30 여일 밖에 차이가 안난다. 학교 선후배 관계였던 탓인지 서동욱이 형이라고 부른다..[2] 근데 김동률과는 친구다. 이쪽도 생일이 크게 차이안난다. 고작 보름차이. 서동욱과 달리 같은학교 출신이 아니니까 서로 말을 놓게된듯 하다.[3] 오래전 프로필이 아직 수정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키나 몸무게는 불명이다.[4] 작곡은 김동률[5]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92학번, 동 학과 00학번인 장기하의 8년 선배가 된다. 참고로 둘 다 빠른 년생이다.[6] 이적이 데뷔하기 전 이미 여성계에서 명망있는 학자였다.[7] 1집의 '지구 위에서'도 듣고 있으면 이게 한국가요가 맞나 의심이 든다[8] 그러나 이적 본인의 말로는 4집 '사랑'에는 이별 노래가 많다고 한다. 결혼을 하고 나니 부인과 연애하던 시절이 떠올라 쓸쓸한 감정이 든다고...[9] 4집에 들어 가사가 전반적으로 부드러워지면서 예전같지 않다는 평가도 있었다. 5집에선 이를 의식한 듯 '뭐가 보여', '병' 등의 곡을 수록.[10] 그래서 긱스(GIGs, 릴보이가 있는 그 긱스 아니다.) 활동이 다소 유니크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이부분, 물론 긱스는 나름 슈퍼밴드를 만들어보자!!!! 란 마인드로 한상원-이적이 의기투합한 상태에서 정원영과 정재일이 합류하고 이상민,강호정이 합류한 격이라서, 정말 이때는 Punk도 Funk도 다했다.[11] 흔히 말하는 김나박보다 발성이 좋은 가수가 없는 것이 아니다. 김나박은 알앤비창법 특유의 테크닉과 밸런스가 돋보이는 것이지 이적, 윤도현 등의 강한 성대접촉을 구사하는 가수들의 발성이 절대적인 기준에서는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물론 김나박의 발성이 안 좋다는 것또한 당연히 아니다![12] 힐링캠프에서 본인이 언급. 타고난 성종은 높은 바리톤이라는 견해와 바리톤의 기질이 있는 테너라는 의견이 팽팽하다. 흔히 말하는 테리톤이라고 보면 될 듯.[13] 1집 타이틀곡 'Rain'부터가 상당한 난이도를 자랑한다. 여러 가수들이 시도했다가 본전도 못 뽑는 중[14] 본인이 작곡한 정인의 '미워요'를 두 번 불렀는데, 이전에 부른 라이브와 2014년 라이브의 질감이 달라졌다.[15] 차분한 감성과 폭발하는 감성 양면으로[16] 이는 아래에서 언급되는 히든싱어 출연분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부분.[17] 착각하지 말아야할 게, 고음을 못하는 게 아니다. 당장 토이 7집에서 이적이 보컬을 맡은 'reset'만 들어봐도 알 수 있다. (3옥레가 나오는 'UFO'를 들어봐도 알 수있다!) 애초에 힐링캠프에서 쌩라이브로도 3옥도까지 쭉쭉 질렀다.[18] '다행이다', '달팽이', '빨래' 등 이적의 히트곡들을 노래방에서 불러보면... 이적이 절대 낮은 음역대를 가진게 아니다.[19] 봄여름가을겨울이 네이버 캐스트 라이브에서 공연한 곡이다. 원곡은 신중현과 엽전들의 곡이다. 봄여름가을겨울과 이적이 함께한 공연은 네이버캐스트에서 볼 수 있다.[20] https://www.youtube.com/watch?v=AT41EVCwko0 3분 5초부터...[21] 존박에게 '철부지'를 써줬다. 본인이 방송의 적 엔딩 때 부르기도 했다.[22] 다만 이는 이적과 김동률의 음악스타일이 상당히 다르다보니 어렵다고 한다. 당장 1997년 이후 첫 콘서트가 2008년이었다.[23] 루시드폴과 통화 중 "이제 빨래나 해야죠."라는 말에 영감을 받아 작사.[24] 콘서트에서 부를만한 신나는 레퍼토리가 2집의 '하늘을 달리다'밖에 없어서 만들었다고 한다.[25] 동명의 영화에서 모티브를 딴 게 맞다. 본래 솔로곡으로 만들려 했기에 키가 매우 높다. 듀엣 상대가 정인이 아니었다면 어려웠을 거라고.[26] 전인권의 노래를 다시 부름[27] 어머니는 서울대 여성학과, 첫째는 건축학과 (지금은 교수라고 한다.)둘째 이적은 사회학과 셋째는 인류학과(지금은 MBC PD로 최고의 사랑과, 20세기 소년 소녀를 연출한 그 PD이다.)[28] 아버지는 학력은 언급된바 없어 알 수 없으며 부인은 이화여대 출신이다.[29] 소설책에서 음혈인간(飮血人間)으로부터의 이메일, 독서삼매(讀書三昧)가 빠진 10개의 에피소드를 6명의 작가가 그렸다.[30] 물론 아무도 이문세 다음으로 DJ이 하기를 싫어해서 이적에게 가기까지 여러사람 거쳤다고 한다.[31] 일요 명작극장의 마지막화의 제목은 '아무도'. 데뷔곡의 제목을 我無島 = 내가 없는 섬으로 재해석해 만들었다. 사실 중국어로 해석하면 "나는 섬이 없다"라는 뜻이라고.[32] 당시 요일별 게스트가 매우 화려했다. 데뷔 극초반의 H.O.T.를 비롯해 이승환, 김동률, 유희열, 유영석, 김진표, 허리케인 블루, 양파 등… 지금 다시 모으라면 절대 불가능한 멤버들이다.[33] 매일 다른 사람들의 검열삭제를 보는 게 큰 고통이었다고 한다...[34]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 준비 당시 즉흥적으로 연주한 곡이 그 모태가 되었다.[35] 시즌2에는 관여하지 않았지만 같은 그룹 출신이었던 김진표가 멤버로 합류했다. 그러나 논란만 낳고 조기 하차.[36] 방송을 보다 보면, 이적의 언어능력을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대표적인 예가 나영석이 여행지를 가르쳐주지 않아서 페루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스페인어를 공부하였는데, 그때 배운 맥주라는 스페인 단어를 까먹지 않고 실전에서 사용하는 장면.[37] 목요일에 무도 녹화를 한다.[38] 선다방 출연자가 화장실을 갈때나, 카페를 열기전 쉬는시간, 최종결과를 공개하기전[39] 후에 방송의 적에서 존박이 이 짤방을 패러디 했었다.[40] http://pianoc.tistory.com/m/post/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