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15 17:09:53

서세원

서세원의 주요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KBS_로고.png 코미디대축제 대상
오재미
(1994)
서세원
(1995)
신동엽
(2002)[1]

파일:mbc.png 연기대상 코미디부문 최우수상[2]
배일집
김보화
(1987)
서세원[3]
김혜영
(1988)
배연정
이규혁
(1989)

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 TV부문 코미디연기상
이용식
이성미
(1987)
서세원
김정식
배연정
(1988)
김미화
김한국
최병서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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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ttachment/ssw-starnews2.jpg
2013년도 사진
이름 서세원(徐世源)
출생 1956년 3월 18일 ([age(1956-03-18)]세)
충청북도 청주시
본관 달성 서씨[4]
신체 180cm, 69kg, O형
종교 개신교
가족 관계 아버지 서우석(1997년 별세)[5],
아내 서정희[6],
서동주,
아들 미로(서동천)(1985년 생)[7],
혼외 딸 1명[8]
수상 1999년 제6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희극연기상

1. 개요2. 생애3. 몰락
3.1. 영화 제작3.2. 목사 자격 논란3.3. 영화계 복귀 논란3.4. 이혼
4. 가족
4.1. 전처 - 서정희4.2. 딸 - 서동주4.3. 아들 - 서동천4.4. 혼외딸 - 서XX
5. 그 외

1. 개요

대한민국의 전직 코미디언, 전직 영화 제작자, 전직 목사였지만, 2014년 기준으로 세 분야에서 모두 제명되었다.

2. 생애

1956년 3월 18일, 충청북도 청주시에서 아버지 서우석(1920~1997, 충청남도 예산군 출신)과 어머니 정태순(1920~1988, 충청북도 청원군 출신) 슬하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79년 TBC 라디오를 통해 데뷔한 뒤 대부분의 활동은 MBC에서 했으며 MBC에서 활동하는 동안 영일레븐, 청춘만세, 청춘행진곡이나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서세원은 데뷔한 직후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동시대의 라이벌들인 김형곤, 주병진보다[9][10] 인기면에서 언제나 우위에 있었다.[11][12]

청춘보감이라는 코너에서 서세원 최고의 유행어인 산넘고 물건너 바다건너셔[13]가 탄생했고 주병진이 본격적으로 뜨기 전 당대 젊은이들에게 가장 인기를 끌고 있던 예능 프로그램도 서세원이 진행하는 영 일레븐이었다. 그 후 KBS 2TV에서 최양락이 네로 25시로 너무나 잘 나가자 MBC에서는 최양락의 대항마로 서세원을 다시 내세웠을 정도였다.[14] KBS는 꽁트 중심의 상황극, MBC는 유행어를 민다는 방향성을 보였었다.

또한 인기 연예인을 초빙해서 개그를 하는 <서세원의 스타데이트>를 진행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훗날 대한민국 토크쇼의 교두보를 마련하기도 했다.[15] 이후 서세원은 서세원의 스타 데이트를 진행한 경험을 밑바탕으로 1990년대 중후반부터 토크쇼 진행자로 변신, 2000년대 초반까지 KBS 2TV의 간판 프로그램인 '서세원쇼' 로 흥행하게 된다. 주 코너는 '토크박스' 로 출연 연예인들이 서로 센 이야기들을 해서 서세원이 등수를 매기는 방식. 다만, 이 프로그램의 컨셉[16]은 한국 방송의 고질적인 병폐인 일본 방송 베끼기다. 일본의 장수 인기 토크 프로그램 고키겡요(ライオンのごきげんよう, 1991년부터 방송)의 코너 '주사위 토크'를 그대로 따라했다. #

그 외에 코미디 세상만사, 시사터치 코미디 파일 등의 KBS 코미디 프로그램[17]과 라디오 '가요산책'[18], '공포체험 돌아보지마', 1998년 '서세원의 좋은 세상 만들기'[19]의 진행자로 방송계의 폭발적인 위세를 누리며 데뷔 20여년이 지난 1990년대 후반까지 김국진, 이경규 등의 탑레벨 개그맨 다음가는 1군~1.5군 정도의 위치는 꾸준히 지키고 있었다.[20] 신인 때부터 인기를 끄는 스타로 시작하여 정통 콩트코미디가 유행할때는 콩트로, 연예오락(지금의 예능)이 유행할 때는 그 진행자로, 시대흐름이 바뀌어 오는 것에 따라 발맞추어 모두 성공했던 최강 커리어의 희극인이었다. 그야말로 전성기가 아닌 적이 없을 정도.

여기까지의 경력만 보면 개그계의 거성이자 예능 대부로 남을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춘 전설의 연예인이지만…

3. 몰락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3.1. 영화 제작

이미 1980년대에 영화 '납자루떼' 를 감독하여 쫄딱 망한 바 있던 서세원은[21] 2001년에 조폭 마누라를 제작[22]하면서 대박을 거뒀다. 그러나 조폭 마누라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이 영화의 흥행은 상당한 거품이 끼어 있었다는 평가. 이러한 평가는 비단 후세의 평가에 국한된 것일 뿐 아니라 개봉 당시인 2001년에도 존재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 그 밖에도 이 영화를 촬영할 때 보조출연자로 진짜 조폭을 썼다도시전설까지 존재한다.

어쨌거나 당시 TV쪽에선 서세원이 한창 끗발을 날리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TV 쪽에선 이 영화의 성공이 꽤 과장되게 묘사되었고, 서세원 본인도 꽤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였다. 예를 들면, 토크쇼 등지에서 나폴레옹을 이해하겠다거나, 내가 얼마나 대단한지 한국 영화계가 이제서야 알 만할 것이라는 등의 발언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날렸던 것.

하지만 그의 성공은 정말 잠깐이었다.

이듬해인 2002년 발표한 긴급조치 19호가 그야말로 폭망했다. 감독은 조폭 마누라의 감독이었던 김태규이지만, 서세원이 전작의 성공에 도취된 탓이었는지 지나치게 개입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내용을 보면 개입을 안했어도 평작조차 될 수 없던 영화였다. 영화는 서세원쇼 극장판, 혹은 서세원의 인맥자랑에 불과한 괴작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영화를 홍보하는 과정[23]에서 PD들에게 돈을 먹인 것과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급하여 세금과 제작비를 포탈한[24] 사실이 들통났다.

또한 영화계 쪽 사람들은 진작부터 전작인 조폭 마누라의 제작과 흥행에 대해 그리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세원의 이런 빠른 몰락에 대해 '그러면 그렇지..'라는 반응을 보였다. 사실 조폭 마누라의 성공은 서세원의 방송계 쪽 인맥빨이 제법 크게 작용한 것인데, 영화계 쪽에서 볼 때 이런 행위는 같은 시기 개봉한 경쟁작들에 대한 상도의에 어긋난 짓이었다. 또한 한국 영화계의 발전에 조폭 마누라같이 질 낮은 영화의 성공은 악재가 될 것이라는 인식 또한 존재했다.[25] 결국 긴급조치 19호 이후 서세원의 극적인 몰락은 이전작인 조폭 마누라가 지나치게 거품이 끼어있었던 것에 대한 반등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몰락한 서세원은 결국 2003년 홍콩을 거쳐서 미국으로 도피했다가 인터폴에 수배까지 되었다. 결국 궁지에 몰려 2004년 귀국[26]. 판결은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이 소송은 대법원까지 가서 2006년에 확정되었다. 참고로 이수만도 이때 서세원과 같이 걸려 비슷하게 집행유예를 받았다.

참고로 이 시기 해외 도피로 서세원쇼를 펑크내고 강제 종영시킨 것에 대해 KBS로부터 미운털을 제대로 박혔고, 이는 2009년 KBS가 그의 출연금지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이 소송이 진행되는 와중[27]인 2004년 도마 안중근을 제작했다. 하지만 평과 흥행 모두 망했고, 프리미어 엔터테인먼트 인수 과정에서 또 다시 비리 혐의가 드러나면서 이후 방송 출연이 어렵게 되었다.

2010년 서세원이 각본과 감독까지 담당한 영화 젓가락이 개봉되었다. 하연주, 박무영 주연에 이수근이 조연, 남희석이 특별출연으로 나왔던 이 영화는 혹평마저 받지 못하고 철저하게 묻혔는데, 전국 관객이 고작 488명에 불과했다. 상영관을 많이 잡지 못해서 이 정도의 결과가 나왔다는 불필요한 쉴드를 칠 수도 있겠으나 애초에 영화가 훌륭하면 상영관이 적어도 입소문이 퍼져서 보러 오는 관객도 충분히 늘어날 수 있다. 한 예로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는 상영관을 단 1개만 잡아 상영했는데도 관객 수가 100만이 넘었다. 결국 영화 질이 떨어지니 그에 걸맞은 결과가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자, 생각해 보자. 영화는 평타만 쳐도 자리 500개짜리 극장을 10번 정도는 채워주니 최소 5,000명은 마련된다. 결국 상영관 갯수를 떠나 상영관을 꽉 채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얘기다.

3.2. 목사 자격 논란

이후 신학대학에 다녀 목사가 되었으며, 서울 강남구 청담동교회를 세웠다.[28] 하지만 2014년 4월 13일, 사업난(?)으로 손해를 보며 이 교회는 문을 닫았다고 한다. 매주 들어오는 헌금 액수가 교회를 운영하기엔 턱없이 부족해서 매주 적자를 보게 되었는데,[29] 그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교회를 그만두었다고. 비싼 강남을 떠나 강북으로 교회를 이전할 계획이었으나, 2014년 5월 아내 폭행 사건에 휘말리면서 소속 교단에서 목사직을 박탈당하며 제명당했다. 관련 기사

서세원이 목사가 되는 과정과 해당 교단이 어디인지도 관심사였는데, 서세원 본인은 미국에서 공부했다고 했으나 "목사 안수는 개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공식적인 발언을 하기가 힘들다"며, 끝내 어느 신학교에서 교육받았는지는 밝히지 못 했다. 안수를 받았다는 장로회 군소 교단도 한기총이나 한국교회연합에 가입되지 않은 교단으로 밝혀졌다. 쉽게 말해서 자칭 목사 수준이었다는 것. 해당 교단은 교세 확장이나 금전적 동기로 서세원이 유명인인 데다가 보수층에서 서세원을 정치적으로 키워주니, 외국 미인가 신학교(또는 무자격)을 근거로 목사 직위를 매매한 걸로 보인다.[30]

서세원이 목사가 될 당시 이를 우려하며 훗날을 내다보는 칼럼이 있었다. (강만원 칼럼) 서 아무개의 간증집회… 목회는 '개그'가 아니다!

목사 재직 기간 중 일명 '신 들린 언어'라고 불리는 방언을 남발해 논란이 되었다.[31]

3.3. 영화계 복귀 논란

그러다 난데없이 다시 영화계로 복귀한다며 2014년, 《건국대통령 이승만》이라는 영화의 감독을 맡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후 '건국대통령 이승만' 시나리오 심포지움에서 "3,000만 관객을 동원해야 한다""'빨갱이'들에게서 국가를 지켜보자" 고 외치면서… 그의 정치적, 민주주의적 인식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말았다. 3.15 부정선거를 '작은 실수'라고 말한 것은 .[32]

게다가 이 자리에서 하던 말을 들어보면 '나를 욕하는 사람들은 종북이자 쓰레기' 라든가 자신을 두려워한 나머지 영화계가 자신을 매장했다느니 극장들이 외면했다느니, 칸 영화제에서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밀양변호인에서 주연을 맡은 송강호는 마귀라는 되도 않는 망언들을 이어간 것은 물론[33] 미국 영화는 60%가 예수 영화라면서 한국 영화는 예수 영화로 돌아가야 한다, 이승만 영화로 예수 한국을 세우자는 식의 종교 편향적인 말까지 늘어놓으면서, 그야말로 심형래가 하던 과대망상과 허세를 능가하고 있다.[34]

또한 할리우드 배우들을 동원하겠다느니, 등장할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등 배역에 대해선 할리우드 스타들을 캐스팅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가서 무릎을 꿇고라도 사정을 할 것이다. 제작비는 걱정 안 해도 된다"면서 "해외 영화제도 모두 휩쓸 것이다"라고 자신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나친 수준으로 미화한다는 논란도 논란이지만, 워낙 서세원의 이미지가 좋지 않은 데다가 그가 영화들을 B급도 아닌 산업 폐기물 수준으로 만들다보니 이승만을 긍정적으로 보는 측에서조차 "왜 하필 감독이 서세원이냐" 는 식으로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제작비 10억을 모으겠다며 호언장담했으나, 2015년 2월 28일 부로 종료된 시점의 금액은 불과 143만 원으로 목표 금액의 0.1% 수준. # 당연히 영화의 제작 가능성 자체가 불투명해졌다. 지원자도 10명 정도밖에 안 됐다고 해서 '얼마나 가치가 없으면 같이 사진 찍은 사람들한테도 돈을 못 받냐' 라고 비아냥을 들었다.

게다가 후술할 아내 폭행 사건까지 겹쳐지면서 결국 영화 감독직에서도 하차했다.

3.4. 이혼

2014년 5월 10일 아내 서정희를 폭행했다는 혐의로 입건되었다. 그러자 당뇨혈압 같은 여러 질병을 하소연했다고. 서정희는 법원에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그동안 사이 좋은 부부라고 알려졌지만 실상은 아니라는 온갖 소문을 부채질하게 만든 셈.

결국 서세원은 상술한 대로 영화 제작진에서 하차하게 되었고 서정희의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에 불복하고, 5월 21일 서울가정법원에 이의를 제기했다. 2014년 5월 22일, 해당 사건이 대한민국 검찰청송치되었다.

그러다가 2014년 7월 24일, MBC에서 방영된 리얼스토리 눈에서 서세원이 그동안 아내를 폭행해 왔다는 사실이 CCTV를 통해 공개되었다. 영상을 보면 저항은커녕 몸도 못 가누고 쓰러진 서정희의 왼쪽 다리를 잡고 땅바닥에 질질 끌고 다니는 서세원의 모습이 공개되었는데 대중의 반응은 분노 그 자체였다. 친딸에게까지 폭언을 일삼은 증거 자료도 언론에 공개되었다. 또한 서정희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서세원이 딸 또래의 내연녀와 외도를 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주장까지 하면서, 서세원의 이미지는 더 바닥까지 가고 있다. 게다가 증거가 담긴 CCTV까지 공개되었으니 빼도 박도 못하게끔 확인사살된 셈. 그 뒤 법원은 서정희에게 임시 보호 명령을 내렸다.
한 여성 월간지에서 인터뷰한 서정희는 "서세원이 목사가 되면 그래도 달라질 줄 알고 참았지만, 전혀 달라진 게 없더라"며 분노했다. 서정희 역시 전도사로 독실한 개신교인으로, 서세원이 "그동안의 가정폭력과 사회 범죄 생활을 마감하고 새롭게 목사가 되어 살겠다"고 변명하여 마지막 기회로 여겨 교회까지 차리면서 같이 목회활동을 한 것이었는데, 사람은 변하기 어렵다는 말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2014년 8월 사문서 위조 혐의로 피소됐다. 검찰은 서정희 폭행혐의 대해 서세원을 불구속 기소했다. 2015년 5월, 재판부는 서세원에 대해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

상황이 이 지경이 되자 1990년대 과거 영상들이 새삼 주목받게 되었다. 아내의 어색해하고 불안해하는 방송 출연 장면들이나 "신혼 때는 말 잘 듣더니 요즘엔 안 지려고 한다" 는 등의 서세원의 농담이 매우 의미심장하게 이해되며, "가정에서 줄곧 권위주의적이었다"는 자녀들의 폭로 등이 이어지면서 세간은 경악을 금치 못하는 상태. 여기도 한번 참고를 해보는 거도 나쁘지 않다.

2015년 8월 21일, 합의 이혼했다. 법정에는 서정희 측은 서정희 본인, 서정희 측 변호사가 모두 참석한 반면 서세원 측은 서세원 측 변호사만 참석했다. 재산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되면서 서세원 부부는 장장 32년 만에 드디어 가족에서 남이 되었다. 이 법정에서 서정희의 표정이 의미심장했는데, 마치 오랜 기간 동안 붙잡혀 있다가 석방된 전쟁포로와도 같았으니...[35]

이혼 후 서정희는 전 남편 서세원에 대한 입장을 모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가 있다. 서정희 단독인터뷰 "서세원, 이젠 완전히 용서했다"

4. 가족

4.1. 전처 - 서정희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서정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2. 딸 - 서동주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서동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3. 아들 - 서동천

파일:attachment/서세원/sdc.jpg

아들인 서동천(예명 미로)은 과거 나우누리 등 PC통신망에서 잠깐[36] 활동하다가[37] 연예인으로 데뷔했다. 사실 서세원의 아이였기 때문에 어린 시절에도 방송을 타곤 했었는데 도저히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현대과학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 비평이 이어졌다. 이후 서동천에서 서종우로 개명했지만 네이버에선 서종우라 검색하면 이 사람에 대한 정보는 안 나온다. 꼭 서동천이라고 검색해야 인물정보가 나온다.



2007년에 '미로밴드'라는 이름으로 밴드를 결성했는데, 실력이 매우 형편없었던지라 결성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활동이 중단되었다. 특히 SBS <음악공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불렀던 Nirvana의 'Smells Like Teen Spirit' 은 유튜브에서 안 좋은 의미로 화제가 되었고 결국 한국 내에서 기사화까지 되었다. 심지어 당시 관객들의 말에 의하면 하도 삑사리가 나서 몇 번 재촬영한 것[38]이라나. 이에 대해서 해당 당사자는 "밴드는 가수와 다르고 가창력은 별개의 문제다" 라고 했던 글이 발견되면서 이건 뭐… 사실상 언론에서 듣보잡 취급한 것이 오히려 나았을 정도였다. 결국 2집 앨범을 끝으로 연예계 생활은 종료. 2013년 8월 결혼했을 때에는 '과거의 활동 새삼 주목'이라고 취급 받았을 정도였다.

어머니 서정희의 폭행 피해 사실에 대해 서동주와 다르게 "부모님 두 분의 일이라 아들인 내가 관여할 수 없는 문제인 것 같다"며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만 과거 방송에서 초등학생 때 "아빠가 주먹으로 나를 때렸다"는 등의 발언, 이혼 소송에서 "필요하면 엄마를 위해서 증인으로서 얘기를 하겠다"는 발언, 누나와 함께 법원에 모친보호요청을 한 것을 볼 때, 역시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던 것 같다.

4.4. 혼외딸 - 서XX

그의 나이 59세에 한 명문대 음대 출신의 내연녀 사이에서 얻은 딸이다. 2015년생으로 서동주보다 32살 아래 서동천보다 30살 아래이다.

5. 그 외

  • 1991년 말 SBS 개국과 함께 이적했으며, 다음 해 10월 7일부터 고질병인 허리디스크 때문에 한동안 방송활동을 쉬었다가 같은 달 26일부터 SBS 측과 1년 전속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1993년 5월 24일 시작된 MBC 전격 팡팡쇼 MC를 맡았다. 결국 그해 7월 10일 MBC 측으로부터 고소를 당했고 같은 해 9월 1일 서울인사지법으로부터 전속계약 종영(1993년 10월 26일)까지 SBS가 허용하지 않는 타방송사 출연이 금지되었다. 서세원이 진행한 '전격 팡팡쇼'는 서세원 사건 이후 1993년 9월 13일자부터 정원관이 후임으로 들어왔으나 얼마 안 되어서 가을개편(10월 11일)으로 프로그램이 막을 내려야 했다. 서세원은 '전격 팡팡쇼'에서 중도하차한 뒤 1995년 4월 18일 시작한 교양 프로그램 TV 시간여행을 탤런트 김희선과 공동 진행했지만 SBS와의 전속계약이 끝나지 않았던 개그우먼 정선희를 출연시킨 것이 문제가 된 것뿐 아니라 보조 MC 김희선의 역할이 거의 없다는 지적을 받아 1995년 가을개편으로 프로그램이 막을 내렸고 정선희는 1995년 10월 SBS를 떠나 KBS로 둥지를 옮겨야 했다. 이후 서세원은 2000년 4월 30일이 되어서야 KBS 2TV 새 프로그램 행복남녀 메인 MC를 맡기 위해 빠진 이경규의 후임으로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메인 MC를 맡아 MBC 복귀를 했지만[39] 당시 4개 프로그램의 겹치기 출연에 따른 시청률 부진 탓인지 같은 해 5월 18일 방송분을 끝으로 빠졌고 이 프로그램이 MBC에서의 마지막 진행 프로그램이 되었다.
  • 자기 이름을 걸고 하던 서세원쇼가 종영된 것은 게스트로 나온 김남일의 부모님을 조롱한 논란에 안이하게 대처하다 게스트들의 단체 보이콧을 받고 제작이 불투명해져 종영된 것이라 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종영된 사유는 연예계 비리 사건으로 서세원 본인이 촬영을 펑크내고 홍콩으로 도피하여 서세원이 돌아오기를 마냥 기다릴 수 없었던 KBS가 결국 종영시켜버린 것이다.
  • 1997년 박완규가 보컬이었던 부활이 자신이 진행하던 라디오 스튜디오에 들어오자 다짜고짜 박완규에게 멋진 척 하지 말라고 욕을 했다고 한다.
  • 지금은 국민MC들 중의 하나인 유재석이 초보 개그맨이었던 시절부터 서세원과 가까웠고[40] 서세원도 서세원쇼 등에서 당시 무명인 유재석을 많이 띄워주었다.[41]그전까지 무명이었던 유재석이 서세원쇼에서 고정 게스트로 나와 친구 찍새와의 에피소드를 맛깔나게 풀면서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던 것은 유명한 일. 코미디 세상만사 시절에도 유재석을 중간꽁트 주인공으로 넣는걸 출연자와 연출 담당자들 회의선에서 최종컨펌한게 출연자 중 가장 입김이 있던 서세원과 김미화.[42] 때문에 서세원이 유재석에게 여러모로 큰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하는 글도 있다. 유재석은 신인 때였던 1990년대부터 대중들, 개그맨 동기나 후배들에게 깐족거리는 비호감 이미지를 얻었던 것에 비해 은근히 선배 개그맨들에게는 예쁨과 호의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심형래 영화에 출연할 때도 심형래가 주인공(20살인 초등학교 3학년 역할)인 자신의 짝꿍 반장 역할로 유재석을 추진해서 시켜줬을 정도면 사실 꽤 대단한 총애다.[43] 심형래, 서세원 당시 원탑 개그맨 둘에게 총애를 얻었다니 놀랍다.[44]



서세원쇼 토크박스 시절의 유재석.
  • 양원경은 아내와 결혼하려고 기자를 매수하여, 거짓 스캔들을 꾸며서 아내 인생을 작살냈다. 그 다음에 결혼했다고 방송에 나와 자랑했는데 이 아이디어를 내준 놈이 서세원이라 한다. 그 뒤에 양원경은 2011년 이혼당했다.
  • 강병규이병헌을 고소한 이병헌 전 애인 배후세력이라는 루머를 까발렸다. 그 후부터 강병규와 이병헌은 서로 앙숙이 되었다.
  • 2006년, 닛시엔터테인먼트 대표로 있었는데 이때 박효신 등 소속 가수와 맺었던 계약이 틀어지면서 민사소송을 당해서 결국 계약 보증금 약 9억 원을 배상했다.
  • 2009년에 주가 조작 및 회사 자금 횡령으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받고 KBS에서 출연금지가 되었다. 집행유예가 끝나는 2012년KBS 한테 출연금지 해제를 신청했지만 거부당했다. 심지어 KBS 미디어 에서는 이런 이유로 인해 서세원쇼 에 대한 영상판매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
  • 딸 서동주 명의로 큰 돈을 빌려서, 자기가 운영하는 회사 여직원을 딸과 닮게 성형수술하려고 시도했다. 이때 서동주가 반발하자 서세원은 머리끝까지 화나서 딸을 무척 혼냈다. # 이쯤 되면 서세원은 그야말로 뼛속까지 인간 말종이다.
  • 아들 미로와 딸 서동주는 법원에 모친보호요청을 하면서 서세원은 현재 서정희에게 반경 1km 이내 접근금지 명령을 받았다. 게다가 이걸 신청한 사람들은 아내가 아닌 자녀들이니 이쯤되면 이미 자녀들도 그를 내다버렸다. 부부 사이가 나빠도 자녀들과 잘 지내면 상황에 따라 동정할 수는 있겠지만, 그는 자녀들도 내다버렸으므로, 아주 작은 동정도 쓸데없다.[45][46] 이에 대해 그는 "표현의 자유라 해도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면 안 된다"며 날뛴다. 이 추태를 어디까지 보여주려고 이럴까? 누구나 알다시피 그는 이미 아버지로서도, 남자로서도 실격이다. 이런 인간에게 물들지 않은 자식들이 대단할 뿐.
  • 2015년 5월 14일, 법원은 서세원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1] 6년간 중단되었다가 2002년에 'KBS 연예대상'으로 부활[2] 1990년까지는 MBC 연기대상에서 코미디 부문을 따로 시상했고, 1991년부터 1994년까지는 드라마 부문과 통합한 'MBC 방송대상'에서 코미디 부문을 시상했다가 1995년부터 MBC 코미디대상으로 분리되어 2000년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2001년부터 MBC 방송연예대상으로 바뀌어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3] MBC에서는 출연금지 명단에 없기 때문에 취소선 금지[4] 전 부인인 서정희본관이 이천 서씨라고 한다.[5] 1999년 아버지를 추억하는 글이 실린 책이 출간된 적이 있는데 서세원이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모양이다. 참조.[6] 2015년 8월 21일에 이혼했다.[7] 노래 못 부르는 미로밴드리더인 그 미로 맞다.[8] 2015년 생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2015년 세는 나이 기준으로 60살에 새 을 얻었단 얘기다. 그간 행적을 보면 아이가 심히 걱정된다.[9] 데뷔가 비슷했던 대신 서세원보다는 동생들이다. 다만 80년대 중반 부터 상황이 달라지는데 김형곤이 유머 일번지의 레전드 코너들인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탱자 가라사대'등의 시사풍자 콩트를 통해 전성기 심형래의 대항마 수준으로 올라섰고 주병진은 콩트 스케치쇼였던 '일요일 밤의 대행진'이 '일요일 일요일 밤에'라는 버라이어티 예능으로 포맷을 바꾸면서 메인MC 자리를 도맡으며 원톱으로 군림하게 된다.[10] 서세원도 그 인기 자체는 죽지 않아서 인기 토크쇼인 서세원쇼를 진행하는 등 90년대 들어서도 꾸준히 활약했으나 몇년 있지 않아서 흑역사가 줄줄이 터지고 몰락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11] 물론 80년대 중반부터의 압도적인 원탑은 후배인 심형래였다. 심형래 직전 시대에 서세원이 정상급 코미디언들 사이에서도 최고였던 것은 틀림없다.[12] 다만 원탑은 아니었다. 이분이 계셨기 때문이다..[13] 꽁트 속에서 악덕 상인이나 사기꾼 역할의 서생원이란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권선징악을 주제로 하기에 마지막엔 징벌을 당한다. 이때 "한 번만 용서해 주신다면 이 어린 양들을 이끌고… 산 넘고 물 건너 바다 건너셔 뗏목을 타다가 뒤집어져셔 모터보트 갈아타는데 모터보트 기름 떨어져셔 그냥 막 헤엄치면셔셔셔 셔셔러셔셔셔" 처음엔 목사 말투로 하다가 회를 거듭할 수록 바리에이션으로 노래를 부른다든지, "Over the mountain cross the river cross the sea"의 식으로 막영어로 개사한다든지 했다. 박명수가 1990년대 신인때 이승철 흉내만 내는게 식상하다는 평을 듣자, 서세원을 닮은 걸로 한번 주목받아 보려고 잠깐 이 유행어로 성대모사 개그를 썼던 적이 있었다. 물론 결국은 다시 원점인 이승철 흉내로 돌아왔지만, 그 이후에도 종종 써서 서세원이 방송에 안 나오게 된 현재에도 한번씩 방송에서 (분장 등을 했을때 민망하면) 산넘고 물건너 바다건너셔를 할때가 있다. 무한도전 시절에도 유재석이 분장한 박명수에게 '서세원 선배님 닮았다'고 하면 입을 내밀고, '안녕하십니까아 서세원입니다아아'로 시작해서 자동옵션으로 이 유행어를 몇번 했다. 뗏목을 타다가 뒤집어져쎠쎠쎠까지만 하고 마무리하는 게 포인트.[14] 네로 25시의 기믹을 살짝 베껴서 지하실의 멜로디라는 코너로 인기를 끌었다. 여기서는 당시 반국가단체로 간주되었던 전대협의 명칭을 패러디한 전협(전국도둑협회)의 회장으로 등장해서 네로 25시에서 최양락이 보여준 개그와 비슷한 기믹의 개그를 보여줬다.[15] 대한민국 TV 토크쇼는 초기에는 진지한 대담에 가까웠는데 1979년에 방영된 '화요일에 만납시다', 1982년부터 1992년까지 방영된 장수 프로그램 '11시에 만납시다' 가 대표적이다. 이것이 코미디언이 진행하는 농담 섞인 형태로 변한 것으로 대표되는 것은 1989년 3월부터 방송된 한국계 미국인 코미디언 '쟈니 윤 쇼' 였는데 시기적으로 서세원의 스타데이트와 유사하다.[16] 주사위를 던져서 토크 주제를 정하는 것[17] 서세원은 MBC 출신이지만 1990년대 SBS의 개국과 맞물려 본인을 포함한 중견급 코미디언들의 대이동을 거친 끝에 심형래, 임하룡 등이 떠난 KBS 코미디계에서 리더 격으로 자리잡았다.[18] "오늘은 왠지" 등의 유행어를 만들었다.[19] 좋은 세상 만들기는 일본의 거물 개그맨 아카시야 산마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포맷을 표절한 것이었다. 서세원쇼에서 뻐드렁니를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로 삼는 것, 웃을 때 바닥을 뒹굴면서 과하게 리액션을 취하는 것 등도 산마가 원조.[20] 사실 한참 후배인 김국진은 둘째치고, 동세대 후배인 이경규만 해도 서세원의 전성기 때인 80년대에는 단역 개그맨에 불과했다. 당시 원탑 발라드 가수였던 이문세가 그나마 라디오에서 이경규의 재능을 좋게 봐서 자기프로그램에서 막간유머를 장기간 하게 밀어줬던게 그나마 어려운 생활을 버틸 수 있게 해줬던 정도였다. 그렇다고 이경규 전성기에 서세원이 크게 딸린 적도 없었다. 이경규의 일밤 시절에도 서세원 역시 본인이 진행하는 프로그램들로 큰 인기를 가지고 있었으니 심형래가 영화 제작 문제로 빠진 21세기에, 서세원이 후술된 막장짓거리들을 안 했더라면 현재까지도 이경규보다 예능계에서 쉽게 더 압도적 권위를 가질 수 있었다.[21] 그나마 납자루떼 말아먹은 건 본인 쇼에서도 개그 소재로 써먹을 만큼 별 것 아닌 일이었고, 나중엔 패널들이 쇼에 찾아와 이걸 언급할 정도였다. 참고로 이 영화의 주제가를 불렀던 사람이 바로 이수만이다.[22] 감독은 아니다.[23] 이는 긴급조치 19호에 대한 것이라는 이야기와 조폭 마누라라는 이야기가 공존한다. 둘 다 했을지도.[24] 조폭의 자금을 돈세탁해준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조세 포탈 및 배임증죄혐의. 훗날 알려지기로는 이 시기에 실제 조폭 자금이 한국 영화계에 많이 유입됐다고 한다.[25] 그리고 우려했던 대로, 조폭 마누라의 성공 덕분에 몇 년간 고만고만한 조폭 코미디들이 극장가를 휩쓸었다.[26] 명목은 허리디스크 악화로 인한 수술의 필요성이었지만, 사실은 여권이 만료되고 인터폴에 수배 중인 상황이었기 때문이다.[27] 구속되어서 구치소에 들어간 지 20일 만에 보석으로 일단 석방되었다.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서 도마 안중근을 찍었다.[28] 방송에 나와서 교회 홍보를 지나치게 많이 했다가 역시 죽도록 까였다.[29] 신자가 30명뿐이었다. 적자가 안 날 턱이 없다. 교회들이 신자들을 모아오기 위해 온갖 쌩쑈를 하는 게,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타 종교들과 달리 개신교는 개인이 임의로 교회를 세울 수 있고, 널리고 널린 게 교회와 목사이니… 어마무시한 레드오션이다.[30] 처음 목사가 되길 권유한 것은 놀랍게도 전 부인 서정희였는데, 권유한 이유가 목사가 되면 인성적인 문제가 해결될 것 같다는 생각 때문. 하지만 오히려 역효과만 났다.[31] 본래 정신 똑바로 박힌 개신교인들은 자칫하면 "나 방언 받음! 부럽지?"라는 의미로 들릴 수 있기 때문에, 정말 기도에 몰입해서 바깥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를 정도 빼고는 방언을 크게 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32] 다만 장소가 장소이고, 본인도 그 발언을 한 후, 김구김대중, 노무현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도 다 찍을 것이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보아 영화 감독을 맡은 것은 개인적 성향이라기보다는 그냥 본인의 과거 영광을 되찾는 것이 목표인 듯하고 해당 심포지움에서 한 발언은 그냥 립서비스인 듯하다. 게다가 이 사람, 의외로 진보 성향의 기자인 주진우하고도 친분이 깊은 사이.[33] 우연의 일치인지 훗날 폭로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이창동 감독과 배우 송강호의 이름이 수록되어 있다.[34] 심형래는 적어도 자신의 영화를 정치적, 종교적 문제에까지 연결하지는 않았다.[35] 서정희 문서에도 기술되어있지만, 18세이던 서정희를 서세원이 성폭행하여 임신시켜 강제로 결혼하게 된 경우라 석방된 전쟁포로라는 말도 결코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젠더문제가 심화된 2010년대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당시는 여자도 성폭행 당한 여자에게 돌을 던지던 시대라 서정희 입장에서는 달리 어쩔 도리가 없었다. 비슷한 사건으로는 이 서세원에게 쓰레기짓을 전수받은 양원경의 결혼 건이 있다.[36] 여성동아 기사에는 이 시기의 사진과 일부 글들이 남아있다. 다만 이 글은 이 시기 서세원은 KBS 최고 출연료를 자랑하면서 빌딩 몇 채를 소유한 상황이었으면서도 상당히 소박한 이미지로 묘사되고 있다는 것 등을 고려해서 봐야 한다. 그 외에 '나우누리 랑랑'으로 검색하면 주옥 같은 글들이 꽤 많이 보인다.[37] 이 기간에는 엄청난 악평을 받았다. 서동천 '랑랑'(중국의 유명한 초거물급 피아니스트와는 다르다!)으로 검색하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수준의 글을 감상할 수 있다.[38] 한 번 재촬영을 한 것은 맞지만 기타줄이 끊어져서 재촬영을 했고 삑사리 때문은 아니었다.[39] 이 때 맡은 코너 이름이 유머당이었는데 첫 화만에 억지개그라는 평을 듣고 코너가 종영됐다.[40] 1994년에 심형래가 찍은 영화 영구 시리즈인 '영구와 우주괴물 불괴리' 에 두 사람이 함께 나왔던 것이 인연이 된 것으로 보인다.[41] 토크박스 1위를 자주 주었고, 녹화 전에 유재석에게 개인기를 미리 연습하라고 시켜서 어쩌다가 토크가 재미없는 날에는 개인기를 시켜 방송분량 늘릴 기회를 주곤 했었다. 참고로 스포츠에서 말고 재미를 주는 장기라는 의미로의 개인기라는 단어는 서세원쇼에서 처음 쓰인 말이다.[42] 박수홍의 말로는 당시 본인이 진행하던 SBS 방송 코너에 유재석을 본인이 넣어주려고 피디들에게 홍보하던 중에, 뜬금없이 KBS 코미디 세상만사에 갑자기 유재석이 들어가는 바람에 못 넣어줬다고 한다.[43] 당시 다른 젊은 개그맨들은 심형래 영화에서 다 얼굴도 보일랑말랑하는 비중의 단역이었지 유재석처럼 중요 조연은 커녕 일반적 비중의 조연도 못했다. 일반적인 조연은 엄용수김학래처럼 심형래와 비슷한 또래의 베테랑 개그맨이나 정극 배우들(김수미 등)이 맡았다. 그야말로 특급 총애.[44] 사실 유재석이 데뷔하던 시기 당대 최고 여성 희극인이었던 김미화도 유재석을 예뻐해서 꽁트에 꽂아준 적도 있었다.[45] 물론 이 경우는 서정희의 주장 내용 중에 강간에 가까운 일을 겪고 결혼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한 확실한 상호합의가 없다면 꼭 자녀와 잘 지내는 것만으로 부부 사이의 문제를 동정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예를 들면 아내와 이혼했지만 자기 딸과는 매우 가까운 헐크 호건.)[46] 도널드 트럼프는 말실수와 기행 때문에 말이 많지만, 딸인 이반카 트럼프는 아버지를 잘 변호하고, 참모로서 제대로 움직인다. 더군다나 이반카는 아버지가 몸담는 정당인 공화당을 찍어준다.[47] 큰딸인 서동주보다 32년 연하, 아들 서동천보다 30년 연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