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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형래의 주요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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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언상 | ||||||||||||||||||||||||||||||||||||||||||||||||||||||||||||||||||||||||||||||||||||||||||||||||||||||||||||||||||||||||
주병진 배연정 (1990년) | → | 심형래 김미화 (1991년) | → | 이경규 박미선 (1992년) |
코미디대상 대상 | ||||
김형곤 (1987년) | → | 심형래 (1988년) | → | 임하룡 (198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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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좋아하는 예능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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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78787><colcolor=#fff> 심형래 沈炯來|Shim Hyung-rae | |
출생 | 1958년 2월 21일[1] ([age(1958-02-21)]세)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문래동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본관 | 청송 심씨 (靑松 沈氏)[2] |
신체 | 172cm, 75kg[3], B형[4] |
가족 | 아버지 심승두, 어머니 이용녀, 형, 여동생 5명 딸 |
학력 | 서울영등포초등학교 (졸업) 영도중학교 (졸업) 여의도고등학교 (졸업)[5] |
종교 | 천주교 (세례명: 요셉) |
데뷔 | 1982년 제1회 KBS 개그 콘테스트 동상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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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겸 영화배우, 영화감독, 영화 제작자이다.1980~9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코미디언으로, 특히 영구 캐릭터가 확실하게 입지전적에 오른 인물이다. 이후 영화 제작자로 전향하여 SF 영화 제작에 투신했으나 영화 제작과 관련하여 수 많은 논란에 휩싸이며 몰락했다.
2018년부터 마당놀이계에 성공적으로 진출하였으며 2021년에 시작한 요식업 사업도 전국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둘 정도로 성공하여 어느정도 폼을 회복한 상태다.
이제 시대가 변해서 영구 캐릭터에 의존하기보단 코미디언이자 사업가인 심형래의 역량으로써 새롭게 검증 받아야 할 입장에 있다.
2. 특징
개그계와 영화계의 전설의 바보. 전자는 바보 연기로 전설이 된 대희극인임을 뜻하고, 후자는 진짜로 레전드급 바보가 되었다는 뜻이다. 오죽하면 "바보 흉내내서 번 돈, 바보 짓으로 날렸다."라는 말이 있다.그의 행적을 종합하면 영화감독이자 희극배우였던 찰리 채플린을 부족하게 모방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설마 희극인인 그가 찰리 채플린을 모를 리는 없었으니 의도적으로 모방한 바가 있을 것이다. 희극배우로서 심형래는 코미디언 계의 레전드였고 웃음을 주는 데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찰리 채플린에 비하면 깊이가 부족한 감이 있고, 영화 감독으로서는 시티 라이트, 모던 타임즈 등 작품성도 탁월한 영화를 만든 찰리 채플린과 비교하기 힘든 수준으로 격차가 크기 때문. 그래도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중 찰리 채플린과 삶의 궤적이 가장 겹치는 인물이기는 하다.#전성기가 지난 21세기에 태어난 아이들도 코미디언으로서의 심형래를 알고 있을 정도로 그야말로 역대 최고 코미디언이라는 말에 반박이 불가능할 만큼 많은 인기를 누렸던 사람이다.[6] 영화배우로서 재능도 괜찮아서 많은 영화를 흥행시키기까지 했다. 어느 정도 한국이 기틀이 잡힌 1980년대 이후 개그맨들 가운데, 해외 인기를 고려하지 않을 경우 가장 인기의 고점이 높았던 사람은 심형래다. TV 프로에서 자신을 대표하는 영구 등의 캐릭터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을 뿐만 아니라, 어린이 영화라는 장르적 한계나 비판은 있지만 영화로서도 엄청난 대성공을 거두었다. 우뢰매 1편은 당대 전산화가 이루어지기 이전이라 제대로 된 추산이 불가능했지만, 제작사에서의 발표만으로도 387만, 어림잡아 셈한 것을 따질 때 1000만은 가볍게 넘고 최대 2000만까지로 추산되기도 한다. 우뢰매가 다 흥행한 건 아니지만 9편까지 나오고 영구와 땡칠이 등 수많은 흥행영화까지 포함하면, 80년대 이후 개그맨 가운데 심형래 전성기 시절의 인기를 넘는 개그맨은 없다.[7]
하지만 영화감독으로서는 최악의 평가를 받는다. 블록버스터 영화에 대한 지나친 집착, 낡은 애국 마케팅, 시대와 전혀 맞지 않는 문화적 코드, 감정에 호소하는 언론플레이, 영화와 영화 제작 기술 등을 포함한 문화예술콘텐츠 분야에 대한 지식과 개념의 심한 결여, 말만 번지르하게 내뱉는 언행불일치를 통해 제작역량에 비해 돈을 마구 쓰는 영화 뿐만 아니라 온갖 연줄과 인맥을 동원한 부정한 수법과 고용인들을 노예처럼 부려먹으면서 월급 체불하여 사복을 채우는 등[8] 그야말로 한국 문화 산업에 안 좋은 선례가 된 흑역사를 남겼다. 개그맨과 영화 감독으로서 행보가 명암이 극단적으로 갈리는 인물이다.
3. 생애
자세한 내용은 심형래/생애 문서 참고하십시오.4. 성격
데뷔 시절부터 개그맨 동료들이 무시하던 바보 연기를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삼아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인기를 얻은 직후 <심형래 코믹 캐롤>을 발매하여 대한민국 코미디 앨범 시장의 판도를 뒤바꿔 놓는 등 레전드 개그맨으로서 활동한 것이 독이 되었는지 자신이 생각한 바를 밀어붙이려는 고집과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대단히 강한 인물이다. 자신감은 좋다. 자신감이 없는 사람은 스스로를 깎아먹는다. 그러나 반대로 자신감이 너무 과한 인물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믿는 것은 중요하지만 자신을 회의하는 능력도 중요한 법. 그는 자신을 지나치게 믿는 행보로 부족한 결과물에 굴욕을 받는다. 결과물만 부족했다면 그나마 옹호를 받았을 것. 이제껏 했던 패기 넘치는 발언들이 죄다 망언화되었는데, 어찌나 많은지 본 나무위키 내부에서조차 따로 문서로 편성될 정도이다.자세한 건 심형래/망언을 참조.
못하니까 안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니까 못 하는 것이다.
이 말을 하는 건 좋은데, 문제는 이 말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한 절차와 과정 부분이 자신에게 생략되어 있다. 일례로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전작업이 필요하고 자신의 역량이 어떤 수준인지부터 간파한 다음 거기에 맞게 영화를 촬영해야 하지만, 심형래는 분수에 맞지 않는 너무 지나친 자신감 때문에 자기의 장단점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 안 하고 자신의 주특기인 저예산 코미디 영화, 어린이 영화를 찍는 대신에 수백억대 제작비가 드는 블록버스터급 영화를 무리하게 제작했다가 말아먹었다. 대표적으로 D-WAR. 영화를 촬영하려면 시나리오가 뼈대가 되고 CG는 그 시나리오라는 뼈대에 입히는 살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런 알고리즘도 간과하면서 무조건적인 자신감으로 뛰어들었고, 자신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않다가 지금 같은 쪽박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하면 된다'만 있을 뿐 '어떻게 해야 한다'가 없는 사람이다.
인터뷰를 보면 유명한 작품을 자기 영화와 비교하며 평가 절하하거나 다른 영화들을 인정하지 않고 혹평하는 경우가 많다. 심형래의 영화철학에서 좋은 영화란 돈을 많이 번 영화다. 본인 기준을 갖다 들이댄다 손치더라도 보통 심형래가 평가절하한 영화들은 세간의 평가는 뒤로 하더라도 상업적으로는 손익분기점을 넘긴 작품들이기에 손익분기점을 넘어본 적이 거의 없는 심형래 영화보다 좋은 영화들이다. 예를 스파이더맨 3나 반지의 제왕 시리즈 같은 작품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하다못해 그런 대작들을 들이받는 게 아니라 흥행이나 평가 둘 중 하나에서 완전히 실패했거나 아예 둘 다 잡지 못한 작품 등 실제로 망한 영화들만 가지고 그렇게 부정적으로 얘기하고 그런 대작들은 그래도 인정해주면서 페이스 조절을 했으면 전문가 티를 내는 엉터리라는 비아냥은 좀 들을지언정 이렇게까지 비참해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심형래의 인터뷰를 보면
- 용가리: 티라노의 발톱은 이런 게 힘들어서 뭣 때문에 안 됐다. 이번 용가리는 다르다.
- 디워: 용가리 때는 이런 거 때문에 힘들었다 미국에서 내가 영어를 몰라서 사기를 당했다. 하지만 이번 디워는 다르다.
- 디워2: 디워 때는 처음 미국에서 촬영해서 문화가 달라 힘들었다. 라스트 갓파더는 간섭하는 목소리가 많아서 실패했다. 하지만 이번 디워2는 다르다 기대해도 좋다.
이런 변명이 반복된다. 새로운 영화가 나올 때마다 이번에는 다르다고 하는 식이다.
인터뷰를 가만히 보면 자신의 영화에 무슨 문제가 있고, 왜 사람들이 비판하는지,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에 대해 여전히 이해를 못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행적들을 줄줄이 보인다. 영화에는 문제가 없는데 단지 코미디언 출신이라는 편견 때문에 음해하고 비판하고 평가절하한다며 왜 내 영화에만 그러냐며 억울해 하고, 흥행실패나 결과물에 대해서는 변명으로 일관하기 바쁘다. 진지하고 냉철한 자기반성이나 피드백을 기대하기 힘든 성격이다. 용가리나 디워나 라스트 갓파더나 플롯의 허술함은 그대로이고 발전이 없음을 보면, 사실 냉철한 자기반성과 노력을 해도 좋은 작품이 나올까 말까인데 말이다.
영화제작 이후의 성격은 상술된 내용과 같지만 개그맨 전성기 시절엔 전형적인 타고난 희극인 성격이었다. 전두환 정권이던 신인시절에는 희극인 축구모임에 검사들과 수사관들이 갑자기 여러명 나타나서 상당수의 개그맨 선배들을 마약혐의로 마약검사[9]하겠다고 찾아다녔는데, 후보선수로 벤치에 있던 심형래는 검찰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만 듣고 검찰청 행사 섭외를 하러 온 줄 알고 수사관을 붙잡고 "그 사람 말고 제가 가면 안 될까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수사관들은 정신나간 놈인줄 알고 피했다는데, 심형래는 "제가 다 아는데 제가 가면 안될까요."라면서 따라다니다가 포기했다고 한다. 어떻게든 행사출연료를 받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실 심형래의 발언 중 많은 부분은 아마도 그가 개그맨의 자아를 가지고 있어서일 것이다. 그의 언행은 심한 허풍이거나 과장, 거짓말이 많지만 사실 개그맨들은 방송에 나와서 다 허풍을 치고 과장을 하고 거짓말을 하면서 웃기려고 한다. 심형래의 발언도 가만히 보면 사실 개그맨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않나 싶은 발언이 적지 않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영화 제작자, 감독으로서의 생활과 정체성이라면 당연히 영화 제작자와 감독으로서의 언행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일본의 유명 개그맨이자 영화감독인 기타노 다케시 역시 영화 감독 기타노 다케시와 개그맨 비트 다케시를 분리하고 있는데 심형래는 이런 부분이 절대적으로 모자라고 잘못되었던 것이다.
개그를 하던 무렵에는 장인정신이 있어서 항상 코디나 스타일리스트를 쓰지 않고 본인이 얼굴 메이크업을 다 했다고 한다. 바보연기용 무대 의상도 까다롭게 본인이 다 고르다 못해 방송국 소품실에 마음에 드는 옷이 없으면 자신이 동대문이나 종로 등지에서 사 와서 적당히 자르고 찢어서 리폼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같은 코너의 조단역 후배가 분장을 마음에 안 들게 하면 본인이 다 해주면서 가르치기도 했을 만큼 의외로 꼼꼼했다고 하며, 바보연기용 소품테스트도 까다로웠다고 한다. 다 직접 써보고 음향과 비주얼을 고려해서 골랐다고 한다.
5. 논란 및 사건 사고
자세한 내용은 심형래/논란 및 사건 사고 문서 참고하십시오.6. 출연작 목록
6.1. 지상파
- 유머극장 (KBS2)
- 하룡서당 (1984)
- 즐거운 소극장 (KBS2)
- 유머 1번지 (KBS2)
- 수평선은 말이없다 (1986)
- 변방의 북소리 (1986~1987)
- 서기 988년 (1988)
- 영구야 영구야 (1988~1990)
- 충무로 차차차 (1990)
- 동궁마마는 아무도 못말려 (1990)
- 내일은 챔피언 (1990~1991)
- 이상해와 심형래의 폭소소동 (1991)
- 감초의전방 (1991)
- 별당아씨 (1992)
- 심가이버 (1992)
- 명랑 소극장 (KBS2)
- 쇼 비디오 자키 (KBS1/KBS2): 김광한에 이어 2대 메인 MC를 맡기도 했다.
- 동물의 왕국 (1987~1989)
- 내 사랑 펭귄 (1989)
- 벌레들의 합창 (1989~1990)
- 병사 심틀러 (1990)
- 코미디 하이웨이 (KBS2)
- 한바탕 웃음으로 (KBS2)
- 꿈의 대화 (1991)
- 로보트 망치 (1992~1993)
- 왈순할매 (1993)
- 코미디 전망대 (SBS)
- 웃으며 삽시다 (SBS)
- 수퍼파워 김치맨 (1994~1995)
- 웃음은 행복을 싣고 (KBS2)
- 내 사랑 지지 (1994)
- 이어도 분교[10] (1994~1995)
- 코미디 일번지 (KBS2)
- 쇼 행운열차 (KBS2)
- 개그콘서트 (KBS2)
-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 (KBS2, 2022)
6.2. 위성/케이블
6.3. 영화
심형래 감독 영화 작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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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5px -10px" | 영구와 공룡 쭈쭈 | 티라노의 발톱 | |||||
핑크빛 깡통 | }}} | ||||||
1990년대 중 · 후반 | |||||||
파워 킹 | 드래곤 투카 | 용가리 | |||||
2000년대 이후 · 현재 | |||||||
D-WAR | 라스트 갓파더 | }}}}}}}}} |
※ 감독 겸 배우인 경우는 따로 표기하지 않습니다.
- 각설이 품바타령 (1984)
- 철부지 (1985)
- 작년에 왔던 각설이 (1985)
- 심형래의 탐정큐 (1985)
- 우뢰매 시리즈 - 6편을 제외한 시리즈 주연배우로 출연
- 외계에서 온 우뢰매 (1986)
- 외계에서 온 우뢰매 2 (1986)
- 외계에서 온 우뢰매 - 전격 3(쓰리) 작전 (1987)
- 우뢰매 4탄 - 썬더 V 출동 (1987)
- 뉴머신 우뢰매 5 (1988)
- 심형래의 쫄병군단 (1990)
- 돌아온 우뢰매 7 (1992)
- 에스퍼맨과 우뢰매 8 (1993, 렌탈비디오용)
- 무적의 파이터 우뢰매 (1993, 렌탈비디오용)
- 여로 (1986)
- 따귀일곱대 (1987) - 감독 남기남, 주연 심형래, 백일섭[11]
- 슈퍼 홍길동 1 (1988)
- 스파크맨 (1988)
- 영구와 땡칠이 시리즈 - 전 시리즈 주연배우로 출연
- 영구와 땡칠이 (1989)
- 영구와 땡칠이 2: 소림사에 가다 (1989)
- 영구와 땡칠이 3: 영구람보 (1990)
- 별난 두 영웅 (1990) - 감독 남기남, 주연 심형래, 박미선[12]
- 영구와 땡칠이 4: 홍콩할매귀신 (1991)
- 포졸 형래와 벌레 삼총사 (1990)
- 흑기사 형래와 광대들 (1990)
- 영구와 황금박쥐 (1991)
- 영구 홀로 집에 (1992)
- 영구와 부시맨 (1992)
- 영구와 흡혈귀 드라큐라 (1992) - 감독, 주연, 배드엔딩[13]
- 사부님 사부님 (1990)
- 심형래와 괴도루팡 (1990)
- 황금탈 형래와 땡초도사 (1990)
- 드래곤볼 (1990) - 심형래가 무천도사로 등장한다.[14]
- 각시탈 형래와 깨비깨비도깨비 (1990)
- 가보면 알꺼야 (1990)
- 영구와 꼬마삼총사 (1991)
- 돈키호테 형래와 산초특공대 (1991)
- 007 폭소대작전 (1991) - 007 시리즈의 패러디물로, 심형래와 초등학생들이 우연히 보물찾기 지도를 발견하여 사건에 휘말리는 영화.
- 칙칙이의 내일은 참피온 (1991) - 감독 전유성, 주연 심형래
- 별당 형래와 여의주 작전 (1992)
- 골목대장 형래와 검은 망또 (1992)
- 영구와 부시맨 (1992)
- 영구와 공룡 쭈쭈 (1993) - 감독
- 티라노의 발톱 (1994) - 감독
- 핑크빛 깡통[15] (1994) - 감독
- 심비홍 (1994) - 감독 장동일, 주연 심형래[16]
- 할매캅 (1994)
- 영구와 우주괴물 불괴리 (1994) - 감독
- 파워 킹 (1995) - 감독
- 드래곤 투카 (1996) - 감독
- 용가리 (1999) - 감독
- 디 워 (2007) - 감독
- 라스트 갓파더 (2010) - 감독
- 써니 (2011) - 특별출연
6.3.1. 보류/무산된 작품
- Fish War
- 황금섬
- 용가리 2
- 콘 돌[17]
- I WANNA GO HOME
- SHADOW ANGEL
- 뉴 파워킹
- 용가리 애니메이션
- 추억의 붕어빵 [18]
- 유령도둑
- 카오스
- D-WAR 2: 미스테리즈 오브 더 드래곤[19]
6.4. 광고
7. 같이 보기
8. 참고/관련 자료
- 저서
- 심형래의 진짜 신나는 도전 - 21세기북스새날. 1999.
9. 여담
- 디시인사이드 설립자인 김유식 대표와 얼굴이 닮았다.[21] 일본 배우인 후지이 미나가 김유식과 찍은 사진을 심형래와 찍었다고 트위터에 올려서 디시에서는 김유식 사진을 보면 심형래로, 심형래 사진을 올리면 김유식이라고 취급한다.[22] 김유식과 닮았다고 평가받는 류제국도 심형래 취급받기도 한다.
- 이정현의 바꿔 활동 초기에 입은 특이한 의상은 심형래의 영구아트가 제작해줬다.
- 2021년에는 대구 향토 프랜차이즈 요식업체 삼정코리아가 심형래를 홍보대사로 위촉한 후, '홍콩할매불닭발', '영구통닭' 같은 심형래 이름을 이용한 프랜차이즈 사업을 전개 중이다.
[1] 음력으로는 1월 3일생이다.[2] 안효공파-문정공파 23세. 심온의 18대손, 심희수의 12대손으로 항렬이 높은 편에 속한다. (족보)[3] 네이버 프로필 기준[4] #[5] 오래 전부터 고려대를 나왔다고 알려졌었기 때문에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이 아니다.[6] KBS에서는 명절 특선 때마다 추억의 개그맨들을 섭외해서 개그콘서트와 콜라보레이션을 하기도 했다. 이봉원이나 최양락 등 여러 개그맨이 섭외됐지만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추억의 개그맨은 심형래였다.[7] 유재석만이 해외 인기를 고려했을 때 넘을 수 있다.[8] 단, 폭력, 도박, 공금 횡령 등은 모두 무혐의가 나왔고 임금체불에서는 1심에서 집유 2년, 그 뒤 23명 중 19명과 합의를 완료하여 항소심에서 1500만 원 벌금형을 받았다. 즉, 심형래는 그렇게까지 악인은 아니고 그냥 사업가로서 능력이 좀 많이 없다고 볼 수 있다.[9] 당시는 아무런 증거 없이 막연한 소문만으로 연예인들을 검사나 형사들이 수사한 적이 많다. 현재는 위헌이라 안 되지만 1970~80년대에는 매일같이 일어나던 일이었다. 가수왕 조용필이 무고하게 대마초 혐의로 체포당해서 사흘간 고문까지 당하고도 몸에서 대마초 성분이 전혀 안 나와 무혐의가 되자 아무 보상 없이 풀려난 것도 모자라 방송출연 정지를 당해 극심한 중증 우울증에 걸렸었다. 자살충동까지 자주 들었다고 했을 정도였다. 검사와 형사가이 잘못해놓고 의혹을 받은 것만으로 연예인 책임이라고 거꾸로 방송국 간부들을 협박했다고 한다.[10] 놀랍게도 이창훈과 호흡을 맞춘 작품이다.[11] 심형래가 영구가 아닌 천재 기믹으로 나온다. 백일섭이 퀘스트를 주고 심형래가 이 퀘스트를 성공하면 백일섭에게 따귀 1대를 때리며 심형래가 백일섭의 따귀 7대를 때리는 데 성공하면 백일섭의 딸과 결혼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12] 실제로는 심형래가 한참 선배지만 작중에서는 친구로 나온다. 둘이 덩치도 거의 비슷하다.[13] 영구가 꿈에서 빼어난 미모의 여자가 드라큐라와 함께 있는 것을 보게되는데, 다음날 꿈속의 여자가 미라라는 이름으로 전학오고 영구네 마을에서 사람들이 실종된다. 영구는 미라가 드라큐라라고 확신하고 친구들과 함께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미라가 사람들을 납치하는 것을 막게되는데 미라는 자신이 드라큐라에게 물려서 그의 명령을 들을 수 밖에 없었다고 울자 영구가 미라를 용서하고 친구들과 함께 우역곡절끝에 드라큐라를 물리친다. 마지막에 미라가 웃으면서 이제 자신에게 걸린 저주가 풀렸다고 영구를 껴안고 좋아한다고 고백하고 친구들이 얼레리꼴레리 하면서 둘이 같이 있게 해주자고 떠나고 영구는 예쁜 여자애가 자기를 껴안고 좋아한다는 말에 좋아하는데 갑자기 영구를 안고있던 미라의 눈빛이 변하면서 입안에서 감춰진 송곳니가 나오면서 영구의 목을 물려고 하며 영화가 끝난다. 즉, 미라는 드라큐라와는 별개의 흡혈귀였으며 영구는 미라에게 물려 자신도 흡혈귀가 되는 배드엔딩인 것이다.[14] 근데 보면 원작 초반 내용 대충 간추린 느낌이 든다.[15] 놀랍게도 심형래 유일의 멜로영화이다.[16] 해당 작품에서는 본인 이름인 심형래로 출연했다. 444년전 한 고인이 마왕을 물리치고 봉인하는데 마왕이 부활하고 마을을 지나가던 도사가 형래를 제자로 받아들여 도술을 전수해준다. 그 도술은 유명인들의 능력을 시전자가 쓸수있는 도술인데 번번히 실패하자 도사가 네가 아는 사람중에 가장 강하고 멋진 사람을 생각하라고 하자 영구가 황비홍 영화를 떠올려서 황비홍의 능력을 사용하게 되고 자신이 성에 황비홍을 더하여 심비홍이라는 이름으로 그에 맞서 싸워 결국 마왕에게 이겨 다시 봉인한다. 마지막에 도사의 정체가 밝혀지는데 444년전 마왕을 봉인한 사람으로 이미 죽었지만 마왕이 다시 부활할 것을 염려하여 성불하지 않고 마을의 수호신으로 남아 있었던 것. 마지막에는 형래를 대견해하며 성불한다.[17] 예고 영상만 나왔다.[18] 다만 제작 자체는 좀 되다 말았던지, 당시 이 영화에 쓰일 미니어처를 작업했었다는 관계자가 작업했었던 미니어처들 사진이 존재한다.(이외에도 관련 자료가 여럿 있다. 이름도 그렇고 세트장의 분위기로 봤을때 추억팔이 컨셉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2011년 개봉예정이었다는데 영구아트가 파산하지 않고 2010년대 초반 좀 지나서 개봉했다면 당시 뉴트로 붐에 편승했을 작품 정도로 남았을지는 모른다. 전 관계자의 사진들로 추정해볼수 있는 사실은 미니어처를 배경으로 인형들이 스톱모션으로 움직이는 형태의 애니메이션이 되었을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당시 심형래의 CG 집착으로 볼때 미니어처 배경을 기반으로 CG 애니메이션의 조합으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일단 남겨진 작업 사진을 보면 미니어처 인형도 가끔 보이는데, 미니어처 배경에 인형 움직임에는 CG를 혼합한 형태가 되지 않았을까 추정된다.[19] 2025년 개봉을 목표로'만' 하고 있다.[20] 극장 애니메이션 판의 CG를 영구아트무비가 외주받았다.[21] 둘 다 횡령 건으로 곤욕을 치른 경력이 있다.[22] 후지이 미나 말고도 차유람도 똑같은 실수를 했는데, 팬들이 정정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