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06 19:05:24

남희석

남희석의 주요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백상예술대상_로고.png TV부문 남자 코미디연기상
김형곤
(1998)
남희석
(1999)
심현섭
(2000)
}}}||
파일:external/imgnews.naver.com/201504291707601114_1_99_20150429171507.jpg
이름 남기성 → 남희석(南希奭)[1]
출생 1971년 7월 6일 ([age(1971-07-06)]세),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
본관 의령 남씨
신체 180cm, 78kg, A형
가족 아버지 남성우, 어머니, 1남 3녀 중 첫째, 배우자 이경민(1975년 생)[2], 딸 남보령(南保寧)(2003년 생)[3], 남하령
데뷔 1991년 KBS 제1회 대학개그제
종교 개신교
학력 안양예술고등학교 연극영화과 (졸업)
서울예술대학 광고창작과 (전문학사)
단국대학교 연극영화과 (중퇴)
소속 보령기획→에이나인미디어(합병 후)
취미 낚시, 농구관람
특기 육상
별명 하회탈
SNS 파일:트위터 아이콘.pn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

1. 개요2. 여담3. 출연 프로그램

1. 개요

대한민국코미디언, MC.

유행어는 "바라바라바라밤~"

고등학생 시절 자니윤 쇼에 나가 자니 윤의 성대모사를 하여[4] 주목 받았다가 KBS 7기 개그맨[5]으로 발탁, 코미디 프로그램 '한바탕 웃음으로'에서 데뷔했으며, 이 당시 봉숭아학당에서 하회탈을 연상시키는 얼굴 표정으로 자신을 부각시켰다. 다만 콩트 코미디에서의 활약은 초반의 1년 정도이고 바로 군대를 가게 되어 경력 단절. 복귀 후 SBS 예능에서 활동 시작. SBS좋은 친구들을 시작으로 점차 MC계로 진출하여 현재는 한국 방송가의 주요 MC중 1인이 되었다.

성실한 타입으로 방송가나 CF 시장에서는 호감형에 든다고 하며 롯데리아의 CF 모델이 되었을 때에는 여러 아이디어를 제공해 광고기획사에서 '진정한 프로'라고 인정을 했고, 그 채택된 아이디어는 대박을 쳤다.

최고의 전성기는 SBS의 "좋은 친구들", "남희석 이휘재의 멋진 만남"을 진행할 때로 보는 편이 많다. 실제 당시의 두 프로그램은 예능 프로그램 시청률 1,2위를 다투었으며 남희석도 개그맨 인기순위 정상에 있었다.

이 당시 남희석과 그의 대표 예능인 좋은 친구들, 멋진 만남이 보여준 순간적인 인기와 임팩트는 탁재훈과 상상플러스가 보여준 2000년대 중반의 임팩트와 상당히 흡사했다. 특히 2000 ~ 2001년도에 보여준 그의 순간적인 인기는 서서히 식어가긴 했지만 여전히 압도적인 원톱이었던 김국진을 위협했을 정도였다. 다만 한창 전성기를 누릴 시기에 스트레스로 안면마비가 발생하여 약간의 공백기를 가지게 되었고 그 사이에 비슷한 클래스였던 신동엽, 김용만이 치고 들어오면서 짧은 전성기가 끝나게 된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리얼 예능으로 대표 되는 유강체제가 들어서면서는 최정상에서 완전히 내려왔다.

이후 많은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지만 그만큼의 폭발력을 보여주지는 못했고, 결혼하고 나서 생긴 약간의 공백기[6]에 엄청난 기세로 후배들이 치고 들어오며 잠시 자리를 잡지 못했다. 이후로는 외국인 & 어르신 전문 프로그램 MC로 이미지를 잡아가고 있다.

또 공백기 이후에 예능의 흐름이 스튜디오와 토크가 아니라 사실감과 현장으로 바뀐데 반해 남희석 본인은 체력문제나 진행자로의 성향 때문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하차하거나 하면서 "리얼리티에 약하다"라는 평을 듣게 되었다.[7]

특히 한국에 사는 외국인의 모습을 다루는 프로그램의 MC를 보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외국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보려는 본인의 의사도 어느 정도 있다고 한다.[8] 트위터에서는 농촌과 농민을 살려야 나라가 산다는 언급을 자주하고 있다.

2009년에 코미디쇼 희희낙락으로 간만에 개그계에 복귀했지만 프로 자체가 저조한 시청률로 쓸쓸하게 사라지면서 흑역사가 되었다.

2. 여담

  • 젊은시절 길을 걷던 중 그를 알아본 한 무리의 젊은 불량배들로부터 " 너네가 연예인이면 우리를 웃겨보라"는 명령을 받았고 자존심이 상해 이를 못 들은척하자 무지막지한 구타를 당했다고 한다. 이 당시 현장에 동행해 있던 탁재훈은 그들로부터 단 한대를 맞고 기절해버렸고 이상민은 너무나 격렬한 구타로 안면을 집중적으로 구타당해 안면전체가 함몰되어 보철물을 삽입하는 대수술을 해야했으며 오랜세월이 흐른 아직까지도 안면기능에 영구적인 장애와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9] 이상민의 말로는 그때 고가의 시계를 흘려서 그걸 주으려고 하다가 된통 맞은것이라고 한다.
  • 조선 개국공신으로 남은의 형인 남재[10]의 21대손이자 숙종 대 영의정인 남구만의 11대손이다. 남희석의 증조할아버지가 남구만의 8대 종손으로 그 대에서 종가와 갈라졌다.
  • 개그맨 남창희가 족보 상 증조할아버지 뻘이다. 싱글와이프에서 남창희가 남희석의 집을 방문하는 자리에서 남희석의 아버지[11]가 항렬때문에 남창희를 굉장히 어렵게 대했다.(...)
  • 한화 이글스의 엄청난 팬이다.[12] 가족이랑 야구경기 보는 것이 소원인지라 반강제로 아내 역시 롯데에서 한화로 팀을 바꾸게 하였다. 1999년 한국시리즈 최초로 개그맨, 아니 남자 연예인으로서는 최초로 시구한 적도 있으며 한화 우승 직후 관중석에서 환호하는 장면이 잡히기도 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만큼 잠실, 목동구장 원정응원오는 건 말 할 것도 없고[13] 대전구장에도 자주 오는 편으로서 물론 시구도 했고 구대성 은퇴식에 초청 받기도 했다. 특히 정민철과는 친분이 있어서 그의 말을 빌리자면 '모든 걸 털어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형'이라고 말할 정도. 그런데 2015년 6월 25일에...[14]
  • 생긴 건 안동 하회탈이지만 한화 이글스 사랑도 그렇고 고향보령시충청도 자체에 애정이 각별한 듯 하다. 보령 대천시가지 남쪽에 위치한 웅천읍에 아직도 남희석의 부모님이 하는 목욕탕이 있다. 금요 와이드 보령편에서도 직접 등장할 정도. 실제로 보령 출신 유명인 및 연예인[15] 중 애향심이 가장 깊고, 보령 출신인 걸 강조하는 유일한 사람. 애초에 탄광도시였다가 현재는 관광도시가 된 보령에서 가장 유명한 걸 떠올려봐라 하면 조금 과장 보태서 대천해수욕장, 머드축제와 남희석이 떠오른다는 얘기도 있는 정도. 첫째 딸 이름도 보령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딸은 이대형 팬. 근데 이대형도 보령 출신 게다가 자기가 차린 기획사 이름도 보령기획이다.[16]
  • 그가 자니윤의 성대모사로 인해 이름을 알리며 개그맨의 길을 열어나간 것처럼 그를 성대모사하며 개그맨의 길을 열어나간 후배가 있었으니, 바로 최국. 안면이 있던 이태식의 추천으로 KBS 개그 콘서트에 출연한 뒤 2001년 10월 SBS 개그 콘테스트에서 성대모사 개그로 입상하며 SBS 6기로 정식 데뷔하게 된다. SBS 공채 개그맨이지만 개콘에 출연하며 남희석 닮은꼴로 유명해졌고 남희석 역시도 최국을 높이 평가하며 그의 코너에 특별출연해주기도 했다.
  • 군대는 1992년 11월부터 6주간 신병교육을 논산에서 받은 후 남태령수도방위사령부 본부에서 복무했다. 가서 복사기를 주로 고쳤다고 하며 2000년대 초반엔 가끔씩 이걸 자학 개그로 써먹기도 했다. 가끔 군대 관련 코미디나 꽁트를 할 때 부대마크 자리에 SBS라고 써놓고 수방사의 약자라는 드립으로 써먹었다. 둘째 이름도 남태령으로 지으려다가 안 그래도 첫째 딸 이름도 고향 이름을 땄는데 둘째까지 그렇게 지을거냐며 아내에게 잔소리를 듣고 지금의 이름인 하령으로 지었다는 드립을 친 적도 있다.
  • 야구뿐만 아니라 축구팬이기도 한데 국가대표 출신으로 전남 드래곤즈,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뛰었던 공격수 신병호의 열혈팬이다. 전남 소속이던 시절엔 전남 홈경기장이 있는 광양까지 먼 길을 내려가 직관을 하기도. 그런데 FC 서울 홈경기에 초청되어 갔다가 구단 직원에게 가족이 보는 앞에서 모욕을 당한 사건 이후[17] FC 서울 및 국내축구에 대한 강한 반감을 SNS로 직원 실명까지 거론하며 표출하기도 했다.
  • 프로배구도 즐겨보는 듯 하다.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의 팬으로 보이며 챔피언 결정전에 응원을 온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날 경기에서 안산이 승리하며 챔피언 결정전에서 창단 첫 우승을 거머쥐었다.#
  • 복불복쇼2에서는 콧물 리액션으로 유명했다. 이상한 걸 먹으면 어김없이 바로 터져나오는 남희석의 콧물에서는 신비함마저 느껴졌다.
  • 자신과 똑같은 얼굴의 여동생이 있다. 이름은 남지희. 한때 방송출연을 하며 인기를 얻었지만 한동안 공백기를 가졌고 복불복쇼2에 오랜만에 등장했는데 사실 거기에서 요리 해설을 맡아 요리의 효능을 설명해주는 박성현 한의사가 바로 그녀의 남편이었다. 방송에서 보여지다시피 지적인 느낌의 미남이고 키도 컸다. 그래서 처음 남지희가 남편감을 집안에 소개했을 때[18] 남희석의 어머니가 남희석 보고 울면서 도대체 왜 저런 사람이 남지희와 사귀는지 모르겠다며 분명 뭔가 노리고 의도적으로 접근했다고 뒷조사 해보라고 시켰다고 남희석이 예능에서 밝힌 바가 있다. 농담이겠지?
  • 아버지 또한 남희석과 도플갱어수준으로 똑같다. 거의 분간이 힘든 수준. 친자확인이 전혀 필요없다. 어느 정도냐면 남희석이 아버지와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릴 때 아버지 얼굴에 '남희석님을 태그하시겠어요?'가 떴다고 한다(...).[19]
  • 남희석의 아내와 남희석의 부모님의 관계도 참 특이한데, 남희석의 부모님이 매우 개방적인 성품이고 아내도 매우 넉살이 좋은 성격인지 전혀 시가(媤家)를 어려워하지 않는다. '싱글와이프'에서는 남희석의 아내가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떠났는데 목적지가 바로 시가(...). 친정보다도 더 편하게 대하는 진풍경이 나타났다.
  • MTN에서 닭과 주식수익률 배틀을 했다. 그 프로그램에서 알게 된 주식전문가라는 사람을 다른 연예인들에게 소개해줬으나 그 전문가라는 사람이 다른 연예인들의 돈을 먹튀하려다가 결국 구속되었다.
  • 연예계에서 소문난 미식가이기도 하다. 때문에 테이스티 로드수요미식회 등과 같은 음식관련 프로에서도 등장하며 게스트들에게 인정을 받는 등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는 남희석 본인의 부친이 실제로 25년간 중화요리집을 운영하셨던 덕분이라고. 그래서 계란후라이 100개를 하루에 부치기도 했다고 한다. 근데 주방에 성냥 하나를 잘못떨어트린 바람에 중화요리집 전부가 불에 타버리는 해프닝이 일어났었다고 한다. 때문에 부친께선 불나고 나서 물 많은 걸 해야겠다며 목욕탕으로 직종을 바꿨다고 한다(...). 차오루: 중간이 없네요
  • 신동엽의 아성의 묻혀 잘 모르는 사람도 여럿있지만 이사람도 연예계에서 섹드립의 달인으로 정평이 나 있다. 섹드립으로 밀고나간게 아니여서 관련자료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되지만, 어떻게 옛방송을 찾아보면 이사람이 내가 아는 남희석이 맞나 싶을정도로 배 끊어질정도로 웃긴 섹드립을 구사한다. 본인은 신동엽을 절대 못이긴다고 한탄했지만, 정작 신동엽도 남희석에 대해서 "보통 야한 농담을 잘 하면 더러운 농담을 못 하고, 더러운 농담을 잘 하면 야한 농담을 못 하는데, 남희석은 둘 다 최고로 잘한다."라고 평가했을 정도다.
  • 군복무 당시에 휴가 준비를 다 마치고 부대에서 나가려던 찰나에 김일성 사망소식이 와서 부대로 복귀했다고 한다.
  • 2009년 ~ 2010년 김탁환 작가와 정재승 교수의 콜라보 소설 <눈먼 시계공>에서 '로봇 MC남'으로 방송에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정확히는 사이보그.) 남희석도 흔쾌히 동의했다고[20]. # 두 사람의 대중 강연회 사회자를 맡기도 했다. 김탁환과는 다른 프로그램으로도 같이 출연하는데, 이게 심각한 문제가 되는 장면이 나오는 것이라 이미지가 덩달아 타격이 큰 편이다.
  • 그의 이전 매니저는 2007년에 8~90년대 대표 아역배우 출신 김다혜와 결혼을 했는데 2년 후 경남 통영의 한 모텔에서 자살했다.
  • 2001년에 나온 컴필레이션 'Hero愛Rock'이라는 컴필레이션에는 희석찬가라는 노래가 수록돼 있다.(...) 가사는 완전 남희석을 찬양하는 내용.

3. 출연 프로그램



[1] 본래 이름은 의령 남씨 26세손 '기(基)O' 항렬에 맞춰 지은 남기성인데 점괘에 그 이름으로 계속 살면 19세에 불 타 죽는다는 말을 듣고 개명했다. 관련 인터뷰 기사. 참고로 19세에 진짜 불이 났었다고.[2] 치과의사로 알려져 있다[3] 그의 태어난 고향인 '보령'을 따왔다.[4] 이 당시 영상을 보면 MC 자니윤과 보조MC 조영남이 성대모사를 옆에서 듣고 제대로 앉지 못하고 웃느라 정신이 없다. 그런데 남희석이 증언하기로 이미 대기실에서 성대모사를 수십 번 했다고 한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너 여기 왜 왔니?'→'희석: 성대모사 하러요'→'그래? 한 번 해봐!'[5] 7기 동기들이 유재석, 김수용, 박수홍, 최승경 등이다.[6] 개인 건강상의 이유로 인하여 가장 전성기의 순간에 TV에서 사라져버린다. 갑자기 받은 높은 인기때문에 본인이 감당 할 수 없을 정도의 스케쥴을 소화하게 된 것이 그 원인. 스트레스로 인하여 안면마비(일명 구안와사)가 찾아왔는데, 마비가 풀리지 않아 대인기피증에 크게 시달렸고 평생 카메라 앞에 다시 서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7] 렛츠고 시간탐험대 초기에도 편집 탓이라기엔 말로만 때우는 모습으로 비춰지기도 한다.[8] 건강상의 이유로 인한 공백기간 중 생각한 것이 많다고 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인간적인 소재의 프로그램 위주로 프로그램을 받는 것과 과하지 않게 적당한 스케쥴만을 유지한다는 것.[9] 사실 이 젊은 남성들은 굉장히 질이 나쁜 인상이어서 한 눈에 딱 그런부류의 인간이라는 분위기가 있었으며 온몸이 그야말로 무기수준으로 단련되어 있는 대학 운동 선수들이었다고 한다.[10] 개국 이후에는 형제가 행보가 갈려 무인정사에서 살아남았고 태종영의정이 되었다.[11] 남창희의 손자 뻘(...).[12] 원래는 한밭구장 시절의 OB 베어스의 팬이였지만 OB가 서울로 연고지를 이전하면서 대전에 연고로 자리잡은 이글스 팬이 되었다고 한다.[13] 단 이상하게 원정직관 승률이 별로인 편이라 남희석 원정응원 온 게 카메라에 잡히면 에이 지겠다고 올드팬들이 투덜댔다 카더라. 실제로 고척돔에도 2017년 7월 5일 직관을 왔는데, 그날도 한화가 리드하다가 연거푸 홈런을 맞더니 그대로 넥센에 졌다.[14] 협회 규정을 보면 논란이 될 만한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TUE 신청서라는 게 있는데, 이걸 크보에 진단서와 함께 제출할 시 치료 목적으로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프로 선수도 사람이라 아플 수 있기 때문.) 아마 남희석과 같은 주사를 맞는 선수들은 TUE를 제출 후 사용했을 것이다.(일일히 언론에서 그런 것까지 보고하진 않으니까,다른 스포츠 종목 역시 사람들이 하는 거라 비슷한 규정이 있다.) 약진행은 치료 목적이 아니니까 문제지[15] 가수 이선희, 배우 하지원 등이 충남 보령 출신이다.[16] 장동국, 조세호, 남창희, 윤석주 등이 남희석의 기획사를 거쳐갔다.[17] 초청해 놓고 들여보내주지 않거나 가족 동반입장을 불허한 것으로 추정.[18] 두 사람이 사귀고 결혼한 것은 박성현씨가 한의사가 되기도 전인 한의대생 시절이었다.[19] 파일:남희석 남성우.jpg[20] "오래가는 개그맨’이 내 꿈인데, 40년 후에도 로봇 MC로 인기를 누리는 것으로 그리다니 제대로 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