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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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blewidth=100%><tablebgcolor=#fff,#1c1d1f><rowbgcolor=#0075DB><width=25%><rowcolor=#fff> 초대
1980 ~ 1985 ||<width=25%> 2대
1985 ~ 1986 ||<width=25%> 3대
1986 ~ 1987 ||<width=25%> 4대
1987 ~ 1988 ||이한필 이상용 고광수 최선규 <rowcolor=#fff> 5대
1988 ~ 19946대
19947대
1994 ~ 20228대
2022송해 김선동 송해 이호섭·임수민 <rowcolor=#fff> 9대
2022 ~ 202410대
2024 ~김신영 남희석
<colbgcolor=#dddddd,#000><colcolor=#000000,#dddddd> 이호섭 | |
출생 | 1959년 10월 13일 ([age(1959-10-13)]세) |
경상남도 의령군 지정면 두곡리 두곡마을#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작곡가, 작사가, 방송인, 노래 강사, 트로트 가수, 대학원 교수 |
학력 | 서강대학교 (국문학 / 석사)[1] 서강대학교 (국문학 / 박사)[2][3] |
가족 | 아내 장남 이채운 차남 이재필 외 |
본관 | 재령 이씨 |
소속 | 한국가창교육원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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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작사가, 작곡가.전국노래자랑이나 아침마당 등 여러 방송에 출연함으로 푸근한 인상의 아저씨로만 생각할 수 있지만, 주현미, 설운도, 김연자, 김용임, 강진 등 여러 인기 트롯 가수에게 곡을 주어 히트곡을 많이 배출한 스타 작곡가로 저작권협회에 등록된 곡 수만 무려 900곡을 자랑한다.[4]
TV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음에도 작사/작곡 활동은 현역으로 활동 중이며 2013년부터 톡송이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노래 강사로 활동 중이다. 본인 주 장르인 트롯 곡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어떤 식으로 감정을 잡아야 할지 등 세세한 강의를 하며, 트롯 뿐만이 아니라 발라드, 국악, 댄스 심지어 팝송까지 강의한다.
2. 활동
1997년 4월 7일부터 2008년 4월 20일까지 KBS 해피FM "희망가요"를 임수민 아나운서와 함께 진행했었고, 이후 2008년 11월부터 2010년 4월까지 TBN 한국교통방송 "신나는 운전석"을 탤런트 김윤희와 함께 진행했었다.2014년 7월 18일 불후의 명곡 전설로 출연하였다.
2018년 2월 3일 김연자와 함게 다시 불후의 명곡 전설로 출연하였다.
2019년에는 본인 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남승민에게 대상 특전으로 곡을 선물해 주었다.
▲ KBS1 '아침마당' 中 |
3. 대표곡
3.1. 작사
3.2. 작곡
- 강진 - 삼각관계
- 김연자 - 십분내로
- 김용임 - 꽃바람
- 김용임 - 내장산
- 방실이 - 뭐야 뭐야
- 방실이 - 아! 사루비아
- 설운도 - 다함께 차차차
- 윤희상 - 카스바의 여인
- 이자연 - 찰랑찰랑
- 편승엽 - 찬찬찬
3.3. 작사/작곡 일체
- 윤희상 - 텍사스 룸바
4. 여담
- 작곡가가 되기까지 엄청 힘겹게 살았다고 한다. 그의 부친[5]은 글을 쓰며 좌익 활동을 했는데, 스스로 자수를 하였지만 6.25전쟁 발발 후 본인의 고향인 의령군에서 총살을 당했다고 한다.
- 세 살 때 남편과 사별한 큰 어머니에게 입양되었다고 한다. 유년시절 그는 원래 판사를 꿈꾸었지만 당시까지도 연좌제[6]가 남아 있어서 판사는커녕 공무원도 할 수 없었고, 어머니의 빚도 갚아줄 수 없다는 생각에 낙동강에 자살까지 하려 했지만 키워주신 큰어머니를 생각하여 포기하고 작곡가를 꿈꾸며 상경하였다고 한다. #
- 1986년 4월 3일 정규 1집을 발표하였고 그 이후 가수 활동겸업으로 디스코/트롯 메들리 앨범을 발매하였다. 2001년에는 작곡가 데뷔 15주년을 맞이하여 본인이 작곡한 곡을 셀프 리메이크하였고, 2004년에는 본인이 작사, 작곡에 참여한 곡을 비롯하여 여러 인기 곡들을 커버한 리메이크 앨범을 발매하였다. 2013년에 정규 2집을 발매해 '무정'이라는 곡을 발표했다.
- 자신의 이름을 딴 이호섭가요제가 있다. 상금도 상금이지만, 이호섭 작곡가가 대상특전으로 곡을 써준다. 추가로 장남 이채운 작곡가의 곡도 하나 받아서 2곡의 신규 음원이 나오게 된다. 코로나 때문에 자칫하면 사라질 뻔하였으나, 이후로도 이어져 꾸준히 합격자를 배출하고 있다. 그 중 몇 명은 실제로도 현역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1] 석사 학위 논문: 한국 개화기 시가와 악곡의 결합양상 연구 (2015. 02.)[2] 박사 학위 논문: 고려시가와 음악의 관계 연구 (2019. 08.)[3] #[4] 다만, 리메이크를 쉽게 허락해주는 작곡가이기 때문에 겹치는 곡들을 제외하면 실제로는 더 적다. 대표곡인 '십분내로'를 음원 사이트에 검색하면 원곡 가수 김연자를 비롯하여 리메이크 곡이 100개가 넘는다.[5] 생부가 아닌 호적상 부친, 즉 입양간 큰집의 큰아버지.[6] 연좌제는 1980년 8월 1일에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