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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dc7c0><colcolor=#fff> 엄영수 Uhm Young Soo | |
이름 | 엄영수(嚴?洙)[1] |
출생 | 1952년 8월 8일 ([age(1952-08-08)]세)[2][3] |
경기도 화성군 향남면 (現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 |
가족 | 아내 이경옥[4] 아들 2명, 딸[5] |
본관 | 영월 엄씨 |
병역 | 육군 제12보병사단 병장 만기전역[6][7] |
학력 | 발안초등학교 (졸업) 발안중학교[8] (졸업) 성북고등학교 (졸업) 홍익대학교 이공대학 (화학공학[9] / 학사) |
종교 | 기독교 |
신체 | 161cm, 58kg, AB형 |
현직 | 대한민국 방송 코미디언협회 회장 방송 코미디 노동조합 지부장 주식회사 세덴디테일링 명예회장(CEO) |
경력 | 한국 방송 3사 KBS · SBS · MBC 코미디협회 회장 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 노동조합 코미디지부장 서울특별시 동작구 홍보대사 화성시 홍보대사 제63회 경기도체육대회 화성시 명예 홍보대사 |
소속사 | 이메이드 |
데뷔 | 1981년 MBC 개그 콘테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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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껴주시고 성원해주시고 후원해주시고 격려해주시고 보태주시고 밀어주시고 염려해주시고 근심해주시고 걱정해주시고 사랑해주시고 은혜를 내려주시고 신경 써주시고 배려해주시고 두루두루 보살펴주시고 많이 웃어주시고 박수도 주시고 감사합니다.
대표적인 '속사포 개그'의 한 구절.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한국방송코미디협회장을 맡고 있다.대표적인 '속사포 개그'의 한 구절.
2. 데뷔 이전
1952년 8월 8일 경기도 화성군 향남면(現 화성시 향남읍)에서 태어났다.[10][11] 발안초등학교 재학 시절에는 어머니가 생선 행상으로 자식들을 키웠을 정도로 가난했었다.[12] 그러나 초등학교 시절 성적이 우수하여 발안중학교를 수석으로 입학했다. 이후 서울특별시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하기를 희망했으나 집안에서 반대하자, 15살에 가출해서 부모님 곁을 떠나서 상경해 공사판에서 일하면서 돈을 벌어서 성북고등학교, 홍익대학교 이공대학 화학공학과[13]를 다녔다. 동기들보다 3수의 나이에 홍익대학교에 진학했다고 한다. 대학 축제 때 이상용, 임성훈, 허참 등과 같은 방송인들과 인맥을 쌓게 되고 점점 코미디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고 한다.3. 코미디언 생활
1978년 TBC 라디오 방송 ‘노래하는 곳에’로 데뷔했다. 1981년 MBC 제1기 개그맨 콘테스트에 출전해서 금상으로 입상했지만 실질적인 활동은 KBS에서 했다. KBS의 젊음의 행진에서 여흥을 돋우기 위해 진행되는 콩트 코너인 하룡서당[14]에서 학동역으로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인지도가 오르기 시작했다. 뭔가 질문이 들어오면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몇분 동안 숨쉴 틈 없이 좔좔 읊어대지만, 정작 중요한 답만 모르는 캐릭터였다. 이런 '얼핏 말을 들어보면 똑똑한 듯해도 알고보면 허당인 수다쟁이' 캐릭터는 계속 이어져서, 김형곤의 대표작인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에서도 아부쟁이 예스맨 임원들과 달리 자기주장을 또렷이 내세우는 소신파인 듯 나가다가 아첨으로 끝내는 간신 캐릭터로 출연한다.유머 1번지 이후 시청자 세대쪽에서는 개그보다는 이혼 경력으로 알려졌는데 그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이혼이 사회 문제가 되던 시절인 것도 있지만 일단 신인 탤런트(17세 차이) 출신의 첫 번째 배우자가 집을 나가면서 서로간에 폭력 문제나 기타 여러가지 사적인 이야기를 잡지에 폭로하는 폭로전 양상을 벌이는 바람에 유명해졌다. 게다가 그런 일을 벌였으면 보통은 해외에서 2~3년쯤 잠적하는 게 보통인데 엄영수는 뻔뻔하게(본인 표현) 계속 TV에 나오고, 연예인들의 이혼 사건만 터지면 방송에 패널로 나오면서 이혼남 이미지로 굳어지게 됐다.
이런 사적인 이야기가 대중들에게 유명해진 것은 김형곤과 같이 진행하던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쇼 행운열차에 나오는 개그 대담 프로에서 김형곤이 심심하면 "엄용수 씨 제발 부인이 돌아왔으면 합니다"라는 멘트를 공개적으로 한 이유도 있다. 심지어는 엄용수가 “시청자 여러분의 가정이 화목하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하자 김형곤은 “엄용수 씨가 그런 말할 자격 되나요….”라는 황당한 말을 하기도 했다. 결국 시청자들의 항의로 나중에는 김형곤이 공식적으로 방송에서 사과했다.
하지만 엄용수 개인은 자신이 이혼한 것에 대해서 ‘희극’으로 승화시키고 결코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일화로 첫 번째 부인과 이혼 소송 중에, 친구에게 보증을 서기로 했는데 그 친구의 사업이 망하는 바람에 전재산을 잃을 뻔한 적이 있었다. 자기 말고 친구에게 보증을 섰던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재산을 다 잃었다고 한다. 다행히도 이혼 소송 중에 재산이 가압류된 상태여서 친구가 돈을 대출할 수 없었다고 한다. 엄용수의 말에 따르면 그때 이혼하지 않았다면 전 재산을 날릴 뻔 했다는 것. 그래서 첫 부인에게 “미안함이 있다.”라며 “아들도 낳아주고 내 재산도 지켜주기 위해 힘쓴 사람이다.”라고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후배 코미디언을 구타했다는 ‘루머’가 있다. 사실 개그계가 21세기 들어서도 군기가 빡세기로 유명한 바닥인데, 1980년대였으면 구타를 동반한 똥군기가 흔하디 흔한 일이었다. 엄영수와 같은 시절에 한창 활약하던 김형곤만 해도 2번이나 후배 구타로 입건되며 한동안 방송에 나오지 못했고, 알까기로 유명한 최양락도 구타의 피해자로 신문에 나기도 했지만 거꾸로 후배 구타로 시끄러운 일을 치른 바 있다. 김구라도 SBS 공채 코미디언 시절 최양락한테 조인트 까인 걸[15] 여러 차례 언급하곤 했다. 이런 모순이 극대화된 것이 김진철 사건. 그렇지만 후술할 내용들을 보면 엄용수는 오히려 대인배에 가깝고 구타 루머 또한 말 그대로 루머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다.[16]
스튜디오 코미디가 사라지고 스탠드업 코미디가 주류가 된 이후 코미디 현장에선 완전히 물러났고, 이후 6시 내고향에 오랫동안 고정 출연을 하면서 농촌 전문 리포터의 입지를 굳혔다. 참고로 무한도전 촬영을 하던 박명수를 농촌 노인들이 엄영수로 착각하는 해프닝이 생기기도 했다.
4. 성대모사
- 성대모사 실력이 그야말로 신(神)급으로 평가받는다. 정치인들 성대모사를 많이 했는데, 지금보다 국민들이 정치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던 시기였던지라 시기적으로 잘 맞아 떨어진 측면도 있었다. 코미디언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3김 성대모사를 모두 구사한다. 당대와 현재를 통틀어 이게 제대로 되는 사람은 엄영수와 최병서, 김학도, 안윤상 정도밖에 없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 모사는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시사풍자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여러 정치인 목소리 전담을 하기도 했다. 1980년대 드물었던 공개적인 김대중 지지자였다고 한다. 평화민주당의 각종 행사에 참석했고, 김 대통령 사망 당시에 인터뷰를 남기기도 했다. # 현재는 동명이인의 엄용수 국회의원 등 자유한국당 후보들의 선거유세를 도와주는 등 정파를 초월해서 활동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치인 성대모사와 풍자를 하다보니까 과거에는 방송 출연의 제약을 받기도 하고, 선거기간에는 방송 출연이 어려웠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상심하지 않고, “이참에 잠시 휴식시간을 가져야겠다”,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구나”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먹고 넘겼다고 한다.
- 정치인 외에도 다른 시사 인물들의 성대모사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라디오스타에 출연했을 때는 정치인이 아닌 시사 관련 인물들의 성대모사를 보여줬는데, 물먹인 소 사건을 보도하는 아나운서, 국문학자 양주동, 심지어 무장공비 김신조(!)를 성대모사하는 것을 보여줬다. 옆에 있던 심형래가 오랜만에 봐서 들을만 하지 예전에는 하도 들어서 경기를 일으킬 것 같았다고 하자, MC들은 신선하고 재밌다는 평을 남겼다.
5. 속사포 개그
성대모사 실력도 신급이지만 속사포 개그의 달인이다. 이 개그를 하게 된 계기로는, 신인 때 대사 한 줄 하는 것에도 임팩트를 주기 위해서 “(버스터미널에서) 대전 한 장이요!” 라는 대사에 “큰 대(大), 밭 전(田) 자 쓰는, 한밭이라고 하는~” 등의 수식어구를 붙이면서 시작했다고 한다.그의 밤무대 레퍼토리 중에 ‘엄영수와 함께’라는 아이템이 있다. 라디오 DJ 흉내를 내다가 갑자기 협찬사를 고지한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엄영수의 빛나는 밤이었습니다. 엄영수와 함께 하는 OO제약 XX물파스...”로 시작해서 약 400개 회사의 이름을 줄줄이 댄다. 그것도 단 5분간 말이다. 이걸 응용한 협찬개그도 있다. “오늘 이 프로그램은 주식회사 OOO, OO제과, OO맥주, OO사이다, OO화학, OO그룹, OO설탕, OO약품, OO자동차, OO중공업, OO라면, OO생명, OO타이어, OO제철, OO가구, OO은행과는 아무 관계 없이 우리끼리 하는겁니다”라고 속사포 개그를 한다.
추가로 버스 노선도 모두 외웠는데 지금은 노선망이 너무 복잡해지고 자주 노선이 바뀌어 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라디오 스타에서도 밝혔듯이 “아껴주시고 성원해주시고 후원해주시고 격려해주시고 보태주시고 밀어주시고 염려해주시고 근심해주시고 사랑해주시고 은혜를 내려주시고 신경써주시고 배려해주시고 두루두루 보살펴주시고 많이 웃어주고”를 쉴새 없이 말하는 것도 주요 레퍼토리다. #영상
자기소개를 할 때도 “안녕하십니까? OOO입니다” 대신 “이 나라 개그계의 사서삼경, 제갈공명, 바웬사, 공자, 맹자, 장자, 묵자, 권자, 스피노자, 베이컨, 칸트, 데카르트, 니체, 쇼펜하우어, 알렉산드리아, 마드리드, 메카, 듀이, 생시몽, 플라톤, 소크라테스, 인간 컴퓨터 엄영수입니다”라고 1분 만에 소개한다. #
5.1. 코미디언 협회장
사단법인 대한민국 방송 코미디언협회의 회장을 맡고 있는데, 원래는 친목모임에 불과하던 것을 엄영수가 사비를 들여 코미디언 권익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행사로 벌어들인 수입 일부를 코미디언협회를 위해서 쓰고 있다고 한다. 코미디언들을 위한 복지니 뭐니를 떠나서 당면 목표는 방송사마다 코미디 프로그램을 2개씩 만드는 것이라고 하는데, 절대甲인 방송사가 시청률을 이유로 만들어주지 않기 때문에 진척은 없는 상황이다.엄영수가 강도높게 비난하는 것은 오히려 동료 코미디언들로, 무명 때는 언젠가는 볕들날이 오겠지 하고 노예처럼 방송사에 충성하다 버려지고, 유명해지면 동료들에 관심 끊고 자기만 잘 살겠다고 하는 행태가 맘에 안 든다고 한다. 유명 코미디언들이 코미디언 권익 향상을 위해 손을 보태주긴커녕 십원 한장 기부하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심지어 배삼룡이 34개월간 입원해 있다가 사망했는데 그 동안 병문안 온 코미디언이 30명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사망 후에 빈소에는 코미디언들이 (언론 카메라에 찍히려고) 인산인해를 이룬 모습을 보고 비통했다고 한다.
라디오스타에서 김국진에게 차기 협회장 자리를 물려줄 마음이 있음을 내비치기도 했는데, 말로는 전통적으로 코메디 협회장은 이혼 경력이 있어야 된다고 했지만, 김국진의 지명도와 성격을 생각해서 은근 추천한 것이 아닌가 보이기도 한다.
2022년에 원로 연예인 송해의 사망 후 가족들에게 협회 명의로 장례를 치르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가족들과의 합의 끝에 코미디언협회장으로 치르기로 하면서 장례위원장을 맡아 장례식을 주관했다.
2024년부로 코미디언 김학래에게 후임 자리를 물려주었다.
6. 행사
초창기부터 행사의 제왕으로 불렸으며 여전히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게 행사다.전국 사방 곳곳을 돌아다니며 행사를 다니고, 우선 스케줄을 만들고 본다고 한다. 공연, 행사를 마치고 난 다음에 사례비를 묻고 있는대로 받는다고 한다. 연예인, 유명인이라고 무조건 돈을 많이 받아야하고 먼저 받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공감토크쇼 놀러와에서 밝힌 바로는 박리다매(薄利多賣)로 행사가 들어오면 일단 가격도 묻지 않고 선입금도 안 받고 가기 때문에, 떼인 것도 꽤 있다고 한다. 심지어 배추 세 포기(만원이 아니라 진짜 배추)를 받아 온 적도 있다고 한다. 이 외에도 명랑 히어로에서 김구라가 언급하길 마른 장작이 화물 트럭째 실어있는 걸 거절했다고 한다. 그런데, 명랑히어로 40화 이봉원 편에서 게스트로 나왔던 김정렬이 언급하길 강원도에 있던 행사에서 장작을 받아왔었던 경험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행사비로 장작을 받았다는 소문은 사실과 다르다. 팔공산 축제에 가서 행사비로 닭백숙을 요리할 때 함께 쓰는 옻나무를 몇 가마니씩 주었다는 것이다. 받은 옻나무가 많다 보니 지인들에게 한 가마니씩 나누어 주었더니 훗날 엄영수는 행사비로 장작을 받고 다닌다는 소문이 나게 되었다고 한다. 후배 개그맨인 서승만의 유튜브 채널에 직접 출연하여 밝힌 사실이다.
같은 나무처럼 보여도 백숙을 해먹을 때 쓰는 옻나무와 땔감, 장작의 값어치는 엄청나게 다르다. 하지만 그런 잘못된 소문이 퍼졌어도 자신에게 많은 행사가 집중되니 엄영수 본인은 오히려 전화위복이라고 좋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7. 출연작
7.1. 현재 출연작
기간 | 방송사 | 방송명 | 비고 |
2020년 9월 28일 ~ | 살아있네 |
7.2. 과거 출연작
기간 | 방송사 | 방송명 | 비고 |
1981년 ~ 1983년 | 일요일 밤의 대행진 | ||
즐거운 소극장 | |||
1987년 ~ 1991년 | 쇼 비디오 자키 | ||
명랑극장 | |||
1983년 ~ | 유머 1번지 | ||
시사터치 코미디파일 | |||
TV는 사랑을 싣고 | 게스트 | ||
1991년 ~ 1997년 | 코미디 전망대 | ||
6시 내고향 | 리포터 | ||
1997년 ~ 2000년 | 생방송 좋은 아침입니다 | 고정출연 | |
1999년 ~ 2004년 | 쇼 행운열차 | ||
2000년 ~ 2001년 | 생방송 오늘 |
8. 가족오락관
- 1996년 2월 14일
- 1996년 8월 21일
- 1999년 10월 20일
- 2007년 9월 1일
9. 여담
- 아들과 딸을 공개적으로 입양해서 훌륭히 키워서 결혼까지 시켰다는 훈훈한 미담이 있다. 모친 집에 세 살던 가족인데 부모를 잃고 남매가 모친 집에 와서 울고 있는 것을 보고 당시 총각임에도 불구하고 입양을 결정했다. 정말 대인배가 아닐 수 없다.
- 출생지는 경기도 화성시이지만, 부모님이 6.25 전쟁 발발하기 2~3년 전에 월남한 실향민이다. 정확히 말하면 실향민 2세. 그 당시 본인 포함 다른 가족들은 다 월남했는데, 본인의 누이 둘만 북에 남겨졌다고 한다. 1983년,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방송 당시 누이를 찾으려 시도 했지만, 찾지는 못한 듯.
- 동명이인 중에 전직 밀양시장과 초선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 엄용수가 있다. 두 사람이 친분이 있는 지 선거유세를 도와준 적도 있다고 한다.[17] 재밌는 일화다. 이 사람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엄용수 문서를 참조하기 바란다.
- 바둑에 관련된 연예인 중에 가장 유명한데, 단순히 유명한 수준이 아니라 네임드급 연예인 중에 실력도 최고로 손꼽힌다. 자신의 실력을 6-7단 정도로 생각한다고 인터뷰한 적이 있다. 바둑TV 개국 초기부터 활발하게 활동했고 (해설까지 했다) 바둑교육 컨텐츠(당시 VHS 비디오)를 만들어 잘 팔렸다고 한다. 또 EBS에서 양상국 九단과 함께 ‘바둑교실’ 진행도 했었다. 다만 돈은 별로 안 됐다는데, 군부대, 교도소 같은 곳에 무료 배포하기도 했다니 바둑에 대한 열정은 대단한 수준이다. 2014년에 여유만만에서 게스트로 나와서 한 말이, 자신은 연예인으로서 받은 방송상이 하나도 없고 받은 건 전부 KBS 사내 바둑상이라고. 본인은 방송생활 계속 이어가는 것 만으로도 만족한다고 했다.
- 사실 바둑, 특히 바둑 비디오에 관해서도 웃기는 일화 혹은 우스개소리가 있는데 컴퓨터와 인터넷 문화가 발달하기 전 1980년대말~90년대 초중반까지 청계천에서 포르노 비디오를 불법으로 많이 팔던 시절에 수많은 사기가 존재했는데, 비디오를 사고 집에 가져가서 틀면 야동이 아니라 다른 내용이 나왔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동물의 왕국이 나와서 사람이 아니라 그 동물들이 하더라는 이야기, 또 하나는 바둑강좌 비디오였다는 이야기이다. 1990년대 본인 또래의 모 개그맨이 방송에서 이에 대해 들었던 일화를 얘기한 적이 있는데, 자기 지인이 청계천에서 비디오를 구해서 친구들을 불러서 틀다가 엄영수의 바둑강좌가 나오자 친구들이 “아, 뭐야! 사기 당했네!”하고 포기했는데, 돈을 꽤 쓰고 그 비디오를 사온 지인이 포기하지 않고 계속 화면을 뚫어져라 보더니 “가만 있어봐, 이러다가 바둑돌 집어던지고 엄영수가 벗을 지도 몰라”라고 했다고 한다.
- 바둑 덕분에 마이 리틀 텔레비전 MLT-25에서 김구라가 바둑 콘텐츠를 가지고 방송할 때 게스트로 나왔는데, 게임을 폄하하거나 진행 맥을 끊어서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 현대레알사전에서 대후배 개그맨 박영진의 한국 성우 더빙 비하사건이 일어나자 코미디 협회장의 위치로서 후배들을 대신하여, 직접 사과를 했다. 아무래도 협회 대 협회의 일이라 회장이 직접 나선 걸로 보인다.
- 2018년 6월 14일 KBS 아침마당에 출연해 "고추 축제하면 (출연료로) 고추를 받고, 딸기 축제를 하면 딸기로 받고, 굴비 아가씨 축제하면 ‘아가씨’로 받는다"고 발언한 게 문제가 됐다. 같은 방송에서 자신이 6급 장애인이라 KTX 및 항공료를 30% 할인 받는다면서 “1년에 가만히 있어도 천만 원을 번다”고 발언해, “장애인이 할인 혜택으로 큰 돈을 버는 것처럼 함부로 말했다”는 이유로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6개 장애인 인권단체로부터 공동 항의성명서를 받았다. 여성 및 장애인 모욕 논란에 대해 19일 KBS 측이 사과 성명을 발표했고, 20일 본인도 역시 직접 사과문을 발표했다. 현재 해당회차 다시보기 게시가 중지되었다.
- 2018년 9월 아파트 주차장에서 차량 3대를 들이받고 경비원 2명을 치는 교통사고를 냈는데, 음주운전은 아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고, 차가 급발진하는 바람에 손을 쓸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 에어백이 터지지 않았더라면 큰 일 날 뻔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
- 결혼했다가 1년도 되지 않아 이혼한 두 번째 배우자는 이미 싱글맘이었으며, 그녀의 친아들은 나중에 대한민국에서도 손꼽히는 유명 남자 프로 골프선수로 성장한다.
- 영구와 땡칠이 시리즈 네 번째 작품인 영구와 홍콩할매귀신에서 메인빌런인 여우요괴가 둔갑한 홍콩할매귀신으로 출연했는데, 이름처럼 할머니 모습으로 여장을 했음에도 위화감이 없었다.
-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 출연한 바에 따르면 부탁을 받으면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이라고 한다. 그 정도가 간단한 수준이 아니라 엄청난 액수의 돈임에도 불구하고 대출을 받아서라도 도와줬으며 이런 예가 한두 명이 아니어서 코미디언계 대표 호구라고... 이러한 성격 탓에 사기도 많이 당했고 빌려줬다가 돌려받지 못한 돈도 많으며, 역으로 가족들에게 소홀했던 아버지가 되었다. 코미디언계를 살리고자 회비조차 거두지 않으면서 사비를 털어 코미디언 협회를 유지하고 있는 책임감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부분이다.
- SBS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2001년 설특집에 연쇄방화범으로 출연했다.
[1] 원래 이름은 엄용수(嚴龍洙)였으나 방송에 나올 때마다 사람들이 하도 '엄영수'라고 발음하다 보니 팬 서비스 차원에서 아예 개명했다고 밝혔다. #[2] 호적상 1953년생이며 시대적으로 유아 사망이 많아서 부친이 호적을 1년 늦게 신고했다.[3] 특이한 건 활동 당시 1952년생이라 안 하고 다녔으며 심지어 동갑내기인 1952년생 임하룡에게 수십 년을 형 선배라 호칭했는데 뒤늦게 동갑내기인 것을 알고 그동안 왜 형이라고 했냐고 따지기도 했다. 심지어 동갑내기인 걸 알게 되고도 그냥 형이라고 부르겠다고 했다.[4] 세 번째 결혼이며, 엄영수 쪽이 재혼이다.[5] 아들 중 1명은 친자식, 나머지 2명은 입양한 자식들이다.[6] 대학교 2학년 때 교통 사고로 엄지발가락을 잃어 6급 장애인(2019년 7월에 장애 등급이 폐지되면서 해당 등급으로 분류된 장애인들은 폐지 이전에 등급 조정을 받지 않는 한 모두 경증 장애인으로 재분류) 판정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원도 인제군 북면 원통리에서 3년간 군복무를 마쳤다. 한때는 병역면제를 받았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엄연히 현역으로 군복무를 마친 군필자다. 인터뷰 영상. 하지만 자신이 장애인이 된 것에 대해서 결코 우울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신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7] TV내무반 신고합니다 제12보병사단 편에 출신병 신분으로 출연했었다.[8] 수석으로 입학[9] 現 홍익대학교 공과대학 신소재·화공시스템공학부 화학공학 전공[10] 부모는 원산 출신의 실향민이다.[11] # 태어날 당시 건강 상태가 나빠, 부친이 얼마 살지 못할 줄 알고 출생 신고를 안 했다가, 다행히도 건강하게 커가자 비로소 호적 신고를 해서 1953년생으로 등재되어 있다고 꼰대희에서 밝혔다. 따라서 뱀띠가 아닌 용띠이며 1952년 생이다.[12] 영상 26분 55초부터[13] 現 홍익대학교 공과대학 신소재·화공시스템공학부 화학공학 전공[14] 이름 그대로 임하룡이 훈장인 서당에서 제자들이 바보짓을 하면서 사람들을 웃기는 코너였다. 여기서 심형래가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인 자신의 바보 연기를 대중들에게 처음 선보였다. 심형래의 "잘 몰르겠는대영"라는 유행어가 대중들 사이에서 유명하였으며 이듬해인 1984년에 심형래는 이 캐릭터를 바탕으로 <심형래 코믹캐롤> 앨범을 발매하여 큰 성공을 거둔다.[15] 후에 이걸로 가십거리 기사가 나오고 몇 달 후 다른 방송에서 김구라와 최양락이 다시 만났을 때 최양락이 방송에서는 김구라가 그냥 “그날 선배님이 저 못마땅하셔서 불러다가 혼을 내시면서 술기운에 고래고래 소리 치셨잖아요.”(실제로 큰 식당에서의 회식 중에 사람 없는 데로 데려가 때리긴 했다고 한다.) 정도로 말하길 바랐는데, 김구라가 “조인트를 깠다.”라는 어휘를 써서 너무 당황하고 곤란했다고 항의했다. 최대 욕설 정도까지의 폭로는 자신도 미안하니 이해할 수 있는데 물리적 폭력을 방송에서 얘기한 건 너무하다는 입장.[16] 김구라가 같은 선배인 최양락과 엄영수를 대하는 자세를 봐도 알 수 있다. 한창 독설 캐릭터로 독이 바짝오른 시절이었던 명랑히어로에서 최양락과 이봉원이 등장했을 때 사적으로도 친한 선후배사이인 이봉원에게는 편하게 대화를 하는 것과 달리 최양락에게는 바짝 얼은 태도로 평소의 그답지 않게 말을 상당히 아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기서 최양락이 김구라의 조인트를 깠다는 언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엄영수 선배에게도 이봉원과 마찬가지로 김구라가 마음 편히 대화를 하고 멘트를 날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마리텔 시절에 김구라의 트루스토리 바둑편에서 게스트로 엄영수를 초대하기도 했을 정도. 게다가 엄영수의 개그 코드가 맞는지 마리텔에서도, 라디오스타에서도 엄영수의 시그니처 개그(협찬 광고 읊기)에 진심으로 자지러지는 김구라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17] 사실 이 정치인 엄용수는 원래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밀양시장으로 당선되며 정치인으로 데뷔한 사람이다. 이후 2008년, 통합민주당을 탈당해서 한나라당에 입당한 것. 김대중 전 대한민국 대통령이 2004년 총선 당시 열린우리당을 공개 지지한 적이 있으니 이때쯤 맺은 인연이 이어진 듯.[18] 1980년대는 이미숙 주연의 뽕이 대히트하면서 메이저 영화지만 에로를 표방하는 작품들이 많이 나왔다. 전두환 정권의 3S정책 때문이기도 했고. 대표적인 것이 애마부인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