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락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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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 한국방송대상 | ||||
코미디언상 | |||||
오재미 이경애 (1995년) | → | <colbgcolor=#FFFFA1,#5D5E00> 최양락 이영자 (1996년) | → | (1997년) | |
이휘재 (2000년) | → | 최양락 (2001년) | → | 강성범 (2002년) |
TV 부문 남자 코미디 연기상 | ||||
제28회 (1992년) | → | 제29회 (1993년) | → | 제30회 (1994년) |
이경규 (일요일 일요일 밤에) | → | 최양락 (코미디 전망대) | → | 신동엽 (웃으면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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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0 -10px; color: #333;"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 진행자 | |||||
장도연 | 박미선 | |||||
고정 출연진 | ||||||
팽현숙 ♥ 최양락 | 김지혜 ♥ 박준형 | 이은형 ♥ 강재준 | ||||
반고정 출연진 | ||||||
임미숙 ♥ 김학래 | 심진화 ♥ 김원효 | 정경미 ♥ 윤형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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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1기(1975) | 이규혁 · 이기철✟· 이용식 | |
탤런트 2기(1978) | 김한일 · 노한욱 · 박미애 · 여정건 · 이문식 · 정애자 · 한무 | |
탤런트 3기(1980) | 김덕성 · 김학성 · 김종석 · 나도국 · 정귀영 · 정부미 · 근종기 · 박경순 · 김혜영 · 전정희 · 김영옥 · 원경애 · 이효신 · 정성월 · 이은순 · 최미진 · 한월순 | |
콘테스트 1기(1981) | 최양락[KBS][SBS] · 엄영수[KBS] · 이상운[KBS] · 김보화 · 이경규 · 이경래[KBS] · 박세민 · 김정렬 · 김혜영 · 김명덕 · 이철구★ | |
콘테스트 2기(1982) | 최병서 · 황기순 · 김문섭 · 김창준 · 이원승 | |
탤런트 4기(1983) | 김복배 · 단덕수 | |
콘테스트 3기(1983) | 장용 · 지영옥[KBS] · 김종석 · 김은우 · 배영만 · 정재환 · 이재포 · 노유정 | |
탤런트 5기(1984) | 김상호 · 박창현 · 임성균 · 조재호 | |
1기 (1987) | 이경실 · 정재윤 · 김은태 · 이현주 · 김성은 · 최홍림 · 정이래 | |
2기 (1988)[8] | 이옥주 · 박미선 · 손병재 · 정진수 · 김형진 · 이웅호[SBS] | |
2기 (1989)[10] | 서승만 · 김종하 · 김완섭 · 이명리 · 신경숙 · 최왕순 | |
3기 (1991), (1992) | 최성훈 · 이영자 · 이휘재 · 김한석 | |
4기 (1993) | 홍기훈 · 서경석 · 이윤석 · 박명수 · 김학도 · 표영호 · 나경훈 · 오승환 · 서춘화 · 강호동 · 전영준 · 표명선 | |
5기 (1994) | 정찬우[SBS] · 김태균[SBS] · 정성한 · 김가연 · 김광회 · 김철민† · 김소정 | |
6기 (1995) | 한재진 · 이정용 · 김효진 · 김장렬 · 김진수 · 정준하 | |
7기 (1996) | 김현철 · 노정렬 · 최현진 · 전영미 · 정경숙 | |
8기 (1997) | 고명환 · 문경훈 · 배호근 · 전광희 · 차승환 · 여윤정 | |
9기 (1998) | 정성호 · 고정호 · 강우석 · 방용화 · 이칠선 | |
10기 (1999) | 이혁재 · 박희진 · 문천식 · 라윤경 · 박은헌 | |
11기 (2000) | 장재영[SBS] · 손헌수 · 이진환 · 최병임 · 이우제[SBS] · 정용국[SBS] · 안선영 · 유재원 | |
12기 (2001) | 이은호 · 김선정 · 양헌 · 조인기[SBS] · 양철수 | |
13기 (2002) | 추대엽 · 조해욱 · 김수미 · 김미연 · 윤설란 | |
14기 (2004) | 오나연 · 이선미 · 전환규 · 김완기 · 문용현 · 곽신봉 · 임준혁[SBS]★ | |
15기 (2006) | 조현민 · 김두영 · 김주연 · 류경진 · 이문원 · 안용진 · 이국주 · 조승제 · 채명성 · 신동수 · 함효주† · 송병철[KBS] · 이승윤[KBS] · 김주철 · 오정태 · 이종호 · 김미려 · 김철민 · 박동근 · 홍가람 | |
16기 (2007) | 성은채 · 김경진 · 황제성 · 박초은 · 최우람 · 유정승 · 이석재 · 이시온 · 이태영 · 홍성진 · 김대성[KBS] · 허안나[KBS] | |
17기 (2008) | 천수정 · 권영기 · 기승미 · 송슬기 · 유대은 · 유상엽 · 정이랑 · 조성미 · 최설아 · 홍훤[KBS] | |
18기 (2009) | 근현 · 박지후 · 박진용 · 양해림 · 이지성 · 이지수 · 이정규 · 최재호 · 김영희[KBS] | |
19기 (2012) | 김병준 · 김용재 · 김현주 · 도대웅 · 박찬혁 · 박현정 · 신완순 · 심정은 · 유미선 · 윤상민[KBS] · 이명훈 · 이준수[KBS] · 장윤희 | |
20기 (2013) | 권형준 · 김마주 · 김상희 · 김정구 · 김예슬 · 오지환 · 이성배 · 허민행 | |
기수 불명 및 특별채용[26] | 김익근 · 김진규 · 박민환 · 이상훈 · 이창욱 · 이훈 · 정정아 | }}} * 특채 · 탤런트}}} : 코미디 탤런트 |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bc8f8f; font-size: .8em;" 콘테스트 : 개그맨 콘테스트[KBS] MBC보다는 KBS에서 주축으로 활동하거나 KBS 공채로 재데뷔[KBS] [SBS] MBC보다는 SBS에서 주축으로 활동하거나 SBS 공채로 재데뷔[KBS] [KBS] MBC보다는 KBS에서 주측으로 활동하거나 KBS 공채로 재데뷔[KBS] MBC보다는 KBS에서 주측으로 활동하거나 KBS 공채로 재데뷔[KBS] MBC보다는 KBS에서 주측으로 활동하거나 KBS 공채로 재데뷔[8] 88 개그맨 콘테스트에서 선발[SBS] [10] 89 개그맨 콘테스트에서 선발[SBS] [SBS] [SBS] [SBS] [SBS] [SBS] [SBS] [KBS] MBC보다는 KBS에서 주측으로 활동하거나 KBS 공채로 재데뷔[KBS] MBC보다는 KBS에서 주측으로 활동하거나 KBS 공채로 재데뷔[KBS] MBC보다는 KBS에서 주측으로 활동하거나 KBS 공채로 재데뷔[KBS] MBC보다는 KBS에서 주측으로 활동하거나 KBS 공채로 재데뷔[KBS] MBC보다는 KBS에서 주측으로 활동하거나 KBS 공채로 재데뷔[KBS] MBC보다는 KBS에서 주측으로 활동하거나 KBS 공채로 재데뷔[KBS] [KBS] [26] MBC를 주력으로 활동했거나 MBC에서만 활동했던 인물 기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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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채(1981) | 김정식 · 임하룡 · 정광태 · 최양락 | |
1기(1982) | 노영석 · 심형래 · 이경래 · 이선민 · 이승오 | |
2기(1983, 1984) | 김미화 · 김재훈 · 김한국 · 김혜정 · 이경애 · 이봉원 · 이선우 · 이정문 · 임미숙 · 조금산† ·엄영수 · 지영옥 | |
3기(1985) | 김용 · 김의환 · 팽현숙 · 한혜승 | |
4기(1986) | 곽재문 · 김영선 · 김정빈 · 김지은 · 김혜란 · 김호남 · 김황우 · 박승대 · 박현웅 · 서원섭 · 양종철† · 이숙녀 · 이현순 · 임인하 · 전형진 · 정우진 · 조문식 · 하상훈 · 한정호 | |
5기(1987) | 김종국 · 김진호 · 문정숙 · 성낙앙 · 안숙희 · 오성우† · 윤혜영† · 이희구 · 최형만 · 최승혁 · 오재미 · 이창훈 | |
6기(1990) | 김민석 · 김지선 · 김찬 · 김현영 · 문형주 · 배동성 · 백현욱 · 서인석 · 서현선 · 안수미 | |
7기(1991) | 금병완 · 김국진 · 김수용 · 김용만 · 남희석 · 박병득 · 박수홍 · 양원경 · 엄정필 · 유재석 · 윤기원 · 이영재 · 전효실 · 최승경 | |
8기(1991) | 김태호† · 김만호 · 남진아 · 신재수 · 윤국일 · 이정표 · 정헌범 · 한상우 · 한상진 · 한송이 · 황창주 | |
9기(1992) | 권영찬 · 김병재 · 박수림 · 세리 · 손동환 · 이창명 · 장미화 · 조성준 · 하철승 · 허동환 | |
10기(1993) | 이덕재 · 이태식 · 김생민 · 백재현 · 송은이 · 장웅 · 조혜련 · 지석진 · 이인철 | |
11기(1994) | 김경희 · 김성규 · 서길자 · 심원철 · 이병진 · 홍석우 · 강남영 | |
12기(1995) | 공기탁 · 김숙 · 유은주 · 이장숙 · 한상규 · 홍석천 · 황승환 | |
13기(1997) | 김미자 · 김현기 · 김현희 · 박성호 · 박준형 · 서동균 · 손윤상 · 양재희 · 유재현 · 이경화 · 이상철 · 이승환 · 임혁필 | |
14기(1999) | 김대희 · 김미진 · 김상태 · 김성희 · 김영철 · 김지혜 · 박은혜 · 김준호 | |
15기(2000) | 권혜수 · 김혜진 · 남상호 · 남진우 · 양희성 · 윤석주 · 정종철 · 조수원 · 홍종호 | |
16기(2001) | 김기수 · 김시덕 · 김영삼 · 김인석 · 손소연 · 윤선희 · 이재훈 · 정명훈 · 최희선 · 허승재 · 엄태경 · 윤성호 · 최국 | |
17기(2002) | 권진영 · 김다래 · 김민정 · 김병만 · 이경우 · 이정수 · 정형돈 | |
18기(2003) | 강주희 · 김병헌 · 김진철 · 류담 · 서남용 · 오지헌 · 이동혁 · 장동혁 · 채경선 · 하지영 · 이수근 | |
19기(2004) | 강유미 · 김대범 · 안상태 · 안영미 · 유상무 · 유세윤 · 윤경화 · 장동민 · 최정화 · 홍경준 · 홍인규 · 황현희 · 정철규 | |
20기(2005) | 김선하 · 김재욱 · 김지환 · 김진 · 노우진 · 박휘순 · 변승윤 · 신고은 · 신봉선 · 유민상 · 이동윤 · 이상구 · 정경미 · 조지훈 · 변기수 · 윤형빈 · 이종훈 | |
21기(2006) | 권재관 · 김경아 · 김종은 · 김지민 · 박나래 · 안일권 · 이상민 · 이상호 · 이혜석 · 한민관 · 홍순목 · 강일구 · 고혜성 · | |
22기(2007) | 곽현화 · 김준현 · 김지호 · 박성광 · 박영진 · 박지선† · 성현주 · 송준근 · 안윤상 · 양상국 · 양선일 · 이광섭 · 이원구 · 장도연 · 장효인 · 정범균 · 조윤호 · 최효종 · 허경환 · 허미영 · 김원효 · 조준우 | |
23기(2008) | 김대성 · 김민경 · 김희원 · 남영환 · 류정남 · 박소영 · 오나미 · 정태호 · 조승희 · 허민 · 김영민 | |
24기(2009) | 김선웅 · 김성원 · 류근지 · 안소미 · 이조원 · 허안나 | |
25기(2010) | 권미진 · 김기리 · 김영희 · 김장군 · 송영길 · 신보라 · | |
26기(2011) | 김수영 · 김정훈 · 김태원 · 김혜선 · 류근일 · 박소라 · 서태훈 · 이문재 · 이상훈 · 임우일 · 정승환 · 정진영 · 정해철 · 홍나영 · 홍훤 | |
27기(2012) | 곽범 · 김현기 · 김회경 · 남궁경호 · 박은영 · 송왕호 · 송필근 · 신윤승 · 오기환 · 유인석 · 이수지 · 이찬 · 임재백 · 정윤호 · 정찬민 | |
28기(2013) | 김나희 · 김병선 · 박성호 · 복현규 · | |
29기(2014) | 김니나 · 김승혜 · 박보미 · 송준석 · 윤승현 · 이상은 · 이세진 · | |
30기(2015) | 김민희 · 김원훈 · 송재인 · 심문규 · 이창윤 · 장하나 · 조충현 · 홍성현 | |
31기(2016) | 박진호 · 방주호 · 배정근 · 손별이 · 이승환 · 임성욱 · 조래훈 · 조진세 · 최희령 · 황정혜 | |
32기(2018) | 김두현 · 민성준 · | |
33기(2023) | 김시우 · 나현영 · 남현승 · 서아름 · 이수경 · 임선양 · 임슬기 · 오민우 · 오정율 · 장현욱 · 최기문 · 채효령 · 황은비 |
(a): 29기 중에서 유일하게 개그콘서트에 출연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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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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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채(1991) | 신동엽 · 표인봉 · 이재성 · 박채규 · 전창걸 · 구수한 · 성창수† · 장지연 · 유정화 · 김재원 | |
1기(1992) | 정선희 · 김경민 · 김경식 · 윤정수 · 장명준 · 장태준 · 최윤희 · 정은숙 · 박준화 · 김윤희 · 이은주 | |
영입(1992) | 김창준 · 곽재문 · 김은태 · 이현주 · 이웅호 · 서인석 | |
2기(1993) | 김현동 · 이동우 · 홍록기 · 염경환 · 이상은 | |
영입(1993) | 이경애 | |
3기(1994) | 노숙자 · 김현철[MBC] · 강남영 · 정성화 · 김학준 · 장동국 · 이우민 | |
영입(1994) | 최병서 | |
4기(1995) | 김병우 · 황봉알 | |
5기(1996) | 고두옥 · 오종철 · 지상렬 · 심현섭[KBS] · 강성범[KBS] · 김준호[KBS] | |
특채(1999)[6] | 김늘메 · 김재우[7] · 김기수 · 박보드레[8]· 이상탁 · 최승태 | |
6기(2001 ~ 2003) | 조세호 · 박재석 · 김주현 · 박보드레 · 김경욱 · 홍성기 · 손명은 · 김범용 · 김한배 · 이정필 · 고석준 · 김진성 · 윤성호[KBS] · 엄태경[KBS] · 최국[KBS][MBC] · 정용국[MBC] · 위양호 · 문세윤 · 김태환 · 한현민 · 정진욱 | |
7기(2003 ~ 2005) | 김신영 · 정만호 · 윤택 · 김태현 · 김일희 · 김재우 · 윤성한 · 이강복 · 황영진 · 정현수 · 권성호 · 이종규 · 김대훈 · 정삼식 · 최기섭 · 김형인 · 장경희 · 심진화 · 김형은† · 엄승백 · 박충수 · 최재욱 · 박상철 · 이동규 · 최영수 · 조우용 · 윤진영 · 김필수 · 김기욱 · 조원석[MBC] · 양세형 · 박규선 · 김홍준 · 김세아 · 남정미 · 이나겸 · 남호연 · 김용명 · 오인택 · 이용진 · 이진호 · 김민수 · 변기수[KBS] | |
8기(2005 ~ 2006) | 양세찬 · 미키광수 · 송형수 · 문용현 · 문원종 · 정일진 · 양상협 · 박우광 · 고은영 · 염기정 · 권혁일 · 이승주 · 손민혁 · 김민 · 조찬우 · 김용석 · 조두석 · 박근배 · 권주형 · 유남석 · 이동규 · 안삼성 · 이정수[KBS] · 정이랑[MBC] · 김정승 · 현병수 · 김용현 · 최은희 · 정주리 · 김현정 · 이경분 · 백보람 · 최성민 · 김영 · 하박 · 이종식 · 홍동명 · 강현 · 정민규 · 이준형 · 강완서 · 고장환 · 장홍제 · 이동엽 · 이광채 · 예재형 · 류용현 · 려명하 · 박영재 · 이상준 · 이은형 · 홍윤화 · 한승훈 | |
9기(2007) | 이광득 · 정아미 · 양귀비 · 유채하 · 강대호 · 김진곤[KBS] · 이수한 · 오기환[KBS] · 장유환[KBS] · 복현규[KBS] · 안시우 · 이은희 · 임준빈 · 백승훈 · 홍장원 · 홍현희 · MC 딩동 · 송왕호[KBS] · 김회경[KBS] · 김승혜[KBS] · 이세진[KBS] · 서태훈[KBS] · 신기루 · 송인호 · 우종현 · | |
10기(2008) | 김현중 · 황은전 · 한병준 · 주성중 · 김병수 · 김민제 · 김영춘 · 이상철 · 임성훈 · 오민우 · 정세협[KBS] · 권혁진 · 최서인† · 김건영 · 김성기 · 안정빈 · 김다혜 · 정보현 · 김민기 · 최기영 · 강재준 · 신흥재 · 박은영[KBS] · 이수지[KBS] | |
11기(2009 ~ 2011) | 강구현 · 김원구 · 서기원 · 안진호 · 김윤호 · 이민우 · 한명진 · 이융성 · 전명환 · 김병욱[KBS] · 김진아 · 남효나 | |
12기(2012) | 강아라 · 고유리 · 길용준 · 김승진 · 김정환 · 남태령 · 박강균 · 박인영 · 박영규 · 신찬미 · 이성호 · 이영준 · 장슬기 · 전영중† · 최충호 · 박민영 · 최백선 · 최소연 · 최수락 · 조승구 · 이원석 · 이현정[KBS] | |
13기(2013) | 김정현 · 김현주 · 박준호 · 박지현 · 박진영 · 박진주 · 백두현 · 서현제 · 홍명보 · 유한결 · 유룡 · 이신명 · 장다운 · 이재형 · 조인철 · 정재형 · 조준래 · 심영보[KBS] · 한으뜸 | |
14기(2014) | 정철욱 · 이창엽 · 이수빈 · 도광록 · 김승호 · 황지현 · 이재훈 · 이호찬 · 윤효동 · 주현정 · 이혜지 · 최부기 · 김다혜 · 고동수[33] · 박지선 · 구혜리 | |
15기(2015) | 김륜희 · 김지석 · 김영구[34] · 김형준 · 김환석 · 박형민[KBS] · 양준모 · 오복남 · 유재필 · 이동호 · 임미나 · 임라라 · 전승배 · 정승우[KBS] · 정호철 · 민솔유 · 최건희 · 송이지[KBS] · 전수희[KBS] | |
16기(2016) | 김리안 · 김지영[KBS] · 김진주 · 한송희 · 박지성 · 고권오 · 김종원 · 조훈 · 박종욱 · 주희중 · 이용주 · 김민수 · 이선민 · 정효균 | }}} 특채 · [1] 이적 3개월만에 KBS로 복귀[MBC] SBS보다는 MBC에서 주축으로 활동하거나 MBC 공채로 재데뷔[KBS] SBS보다는 KBS에서 주축으로 활동하거나 KBS 공채 및 특채로 재데뷔[KBS] [KBS] [6] 코미디 살리기[7] SBS 공채 7기로 재데뷔[8] SBS 공채 6기로 재데뷔[KBS] [KBS] [KBS] [MBC] [MBC] [MBC] [KBS] [KBS] [MBC] [KBS] [KBS] [KBS] [KBS] [KBS] [KBS] [KBS] [KBS] [KBS] [KBS] [KBS] [KBS] [KBS] [KBS] [KBS] [33] 경찰공무원으로 이직[34] 2013년도에 데뷔하였으나 기수가 없었다.[KBS] [KBS] [KBS] [KBS] [KBS] }}}}}} |
BRONZE MOUTH 상 수상자 | |||||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 2008년 | 2009년 | 2011년 | ||
손석희 | 노사연 | 이지아 | 김묘선 | 김소영 | |
2011년 | 2012년 | 2020년 | 2021년 | ||
류강국 | 최양락 | 김현철 | 김신영 | 이진우 | |
2021년 | 2022년 | 2023년 | |||
임서영 | 오창훈 | 정선희 | 정지영 | 박준형 | |
▶ MBC 라디오 골든마우스 수상자 |
한국인이 좋아하는 예능인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 2004년 한국갤럽이 창립 30주년을 맞이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알아보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조사 시리즈를 기획해 2004년부터 5년 주기로 발표하고 있다. | |||||||||
2004년 | ||||||||||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이주일 | 신동엽 | 유재석 | 김미화 | 정준하 | ||||||
6위 | 7위 | 8위 | 공동 9위 | |||||||
김용만 | 이경규 | 배삼룡 | 강호동 | 김제동 | ||||||
2009년 | ||||||||||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유재석 | 강호동 | 이수근 | 신봉선 | 이주일 | ||||||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최양락 | 안영미 | 심형래 | 박지선 | 유세윤 | ||||||
2014년 | ||||||||||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유재석 | 김준호 | 강호동 | 김준현 | 이국주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6위 | 7위 | 8위 | 9위 | 공동 10위 | |||||
이경규 | 신동엽 | 박명수 | 김지민 | 김기리 | 신보라 | }}} | ||||
2019년 | ||||||||||
1위 | 2위 | 3위 | 공동 4위 | |||||||
유재석 | 강호동 | 박나래 | 신동엽 | 이영자 | ||||||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이경규 | 이수근 | 양세형 | 송해 | 전현무 | ||||||
11위 | 12위 | 공동 13위 | ||||||||
김준현 | 김병만 | 박명수 | 김구라 | |||||||
2024년 | ||||||||||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유재석 | 신동엽 | 강호동 | 박나래 | 이경규 | ||||||
6위 | 7위 | 공동 8위 | 10위 | |||||||
장도연 | 이수근 | 탁재훈 | 전현무 | 김준호 | ||||||
11위 | 12위 | 13위 | 14위 | 15위 | ||||||
서장훈 | 박명수 | 이용식 | 이영자 | 하하 | ||||||
같이 보기: 한국인이 존경하는 인물, 좋아하는 스포츠선수, 좋아하는 소설가, 좋아하는 탤런트, 좋아하는 영화배우, 좋아하는 가수, 좋아하는 노래, 좋아하는 예능인, 좋아하는 유튜버 |
}}} ||
<colbgcolor=#15183C><colcolor=#fff> 최양락 崔揚洛[훈음]|Choi Yang-rak | |
출생 | 1962년 5월 20일[2] ([age(1962-05-20)]세) |
충청남도 아산군 도고면 덕암리 (現 충청남도 아산시 도고면 덕암리)[3][4][5]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본관 | 강화 최씨 (江華 崔氏)[6] |
거주지 |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동[7] |
신체 | 183cm[8]|87kg|270mm|A형 |
배우자 | 팽현숙 |
종교 | 무종교[9] |
데뷔 | 1981년 제1회 MBC 개그 콘테스트 대상 |
학력 | 화천초등학교 (졸업)[10] 도고중학교 (졸업) 온양고등학교 (졸업) 서울예술대학교 (연극과 81 / 전문학사)[11]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통합치유학 / 학사) 상명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 석사) |
별명 | 최알락[12], 초코양락[13], 버럭양락, 보조양락, 똥손양락, 미친 인간[14] |
취미 | 영화감상, 여행, 독서, 야구시청, 골프 |
링크 | [15]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방송인.2. 개그맨 이력
서울예전 연극과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81년 제1회 MBC 개그 콘테스트에 참가하여 당당히 대상을 수상[16]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녹음본[17] 그러나 당시 MBC에서는 대선배이자 레전드였던 구봉서, 서영춘이 아직 현역으로 활동 중이었고, 최양락은 대상을 받은 기대주였음에도 방송연기에 적응을 실패하는 바람에 MBC에서는 이렇다 할 성과를 전혀 내지 못했다. 최양락 본인의 말로는 1981년 6월에 대상을 받아 데뷔했는데 8월에 MBC의 모 PD가 활약은커녕 짧은 대사도 제대로 치지 못하는 최양락을 보고는 “MBC가 눈이 삐었지, 어떻게 1기 대상을 저런 놈한테 줬지?’ 라는 말을 하면서 자신을 쫓아냈다고. 직후 최양락은 같이 입사한 엄영수, 이상운과 같이 경쟁사였던 KBS로 방송사를 옮겼다.[18][19]이후 대부분의 활동은 KBS에서 했으며 KBS에서 활동하는 동안 쇼 비디오 쟈키나 유머 1번지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촐랑거리고 깐죽대는 캐릭터로 인기를 끌었는데[20] 대표적인 캐릭터로는 '네로 25시'의 네로, '고독한 사냥꾼'의 최우빈, '괜찮아유'의 최종학[21] 등이 있다. 치킨 브랜드 페리카나의 광고 모델과 노래로도 유명했다.
대표적인 유행어는 부인이자 같은 코미디언인 팽현숙과 같이 호흡을 맞췄던 코너 '남 그리고 여'에서 만든 "있을 때 잘해! 나는~ 봉이야!", 고독한 사냥꾼의 "내가 이 카페를 자주 찾는 이유는, 이곳에 오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대 때문이지"(오프닝) / "에구에구... 그날 난 (당했다) 됐다."(엔딩), 네로 25시의 오, 신이시여~~~!! 가 있다.
1984년 발매된 심형래의 코믹 캐롤이 성공한 후 코미디언들이 앞다투어 코믹송 앨범을 발표했던 시기에 최양락도 앨범을 냈다. 바로 '최양락 작품하나' 1988년에 발매된 앨범으로 최양락이 만화 주제가를 자기식으로 부른 곡들로 채워져있다.최양락이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직접 앨범을 홍보하는 영상[22] 이 앨범은 대박이 났다. 최양락은 이 앨범을 100만장 팔았다고 밝힌바 있다.관련 기사[23] 페리카나의 치킨 광고도 이 앨범에 수록된 요술공주 샐리 주제가를 사용한 것이다. 최양락은 2009년에 위 앨범을 다시 리메이크해서 최양락 Night Fever!!!라고 다시 발매했다. 이 앨범은 그리 잘 되지 못했지만 음악적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가 많다. 한겨레 기사.
극중에서는 임미숙과 부부로 엮이는 경우가 많았으나, 실제로는 팽현숙과 결혼한 사이다.[24] 임미숙은 반대로 김학래와 부부 사이다.[25] 김학래와 동기라서 최양락과 김학래 둘이 자주 콤비로 나서기도 했다. 실제로 꽤 친한 사이라고... 참고로 나이는 김학래가 8세 위다.
두 사람의 연애와 결혼이 이뤄지게 된 첫 계기는 최양락의 아버지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최양락은 함께 개그를 하면서도 팽현숙을 후배로만 대한데다가 연습할 때도 합이 안 맞는 경우가 많아 욕을 무지하게 해서 팽현숙이 삐치거나 혼자 운 적이 많았다고 한다. 최양락은 이런 모습에 관심은커녕 "현숙이 쟤는 부족하면 열심히 해야지 맨날 섭섭해하기만 하고 개그가 발전이 안 되는데 왜 저러냐"고 생각하여 오히려 불만이 더 많았었다고... 어느 날 시골에서 부모님이 올라오셨는데 혼자 사는 최양락을 보고는 안되겠다며 결혼을 재촉했다. 이에 최양락이 "아버지, 여자가 있어야 결혼을 하죠"라는 대꾸하자 아버지 왈, "너 왜 멀리서 찾니? 너랑 같이 일하는 현숙이라는 애, 아빠가 관상을 보니까 괜찮아. 오늘 당장 가서 유심히 한 번 봐봐라." 이에 최양락도 팽현숙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면서 점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러다가 사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일화는 이야기할 때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같은 코너를 하고 있던 최양락이 먼저 팽현숙에게 고백을 했고, 팽현숙이 거절하자[26] 그 뒤로 선배였던 최양락이 후배인 팽현숙에게 쌀쌀맞게 대했고 그것을 견디지 못한 팽현숙이 최양락의 고백을 수락했다는 버전도 있고 최양락과 팽현숙이 사귀게 되자 최양락이 의도적으로 둘의 연애 사실을 기자들에게 흘려서 기사가 났다는 버전도 있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남녀가 만나고 헤어지는 일에 대해 주변의 시선이 관대하지 않았고, 특히 여자 연예인은 사실이든 아니든 일단 열애설이 퍼지면 진짜로 결혼까지 가지 않으면 이미지에 타격이 컸다. 그래서 몇몇은 이런 점을 악용, 일부러 적당히 소문을 낸 후 협박 아닌 협박으로 여성과 강제결혼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서세원과 양원경.
하지만 팽현숙이 훗날 밝힌 내용상 서세원이나 양원경의 케이스와는 다르고, 최양락한테 당한 걸로 보기 어렵다. 본인이 최양락에게 요구해서 데뷔 2년 만에 최양락의 결정[27]으로 코너 주연을 맡으며 개그인생이 잘 풀린 것이고, 그 이후에 팽현숙이 해외촬영 후 귀국길에 최양락에게 줄 선물을 샀고, 그걸 본 선배 전영록이 최양락을 괜찮은 남자로 생각해보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도 했기 때문이다. 최양락이 팽현숙에게 "이제부터 진짜 사귀는거다."라고 선언한 것도 팽현숙이 선물을 사다 주자 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강요로 무언가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부부 사이도 대체적으로 상당히 좋다고 알려져 있다.
아내 팽현숙과의 연애 시기에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한창 팽현숙과 연애하던 때에 아는 기자에게 딱 걸려서 연애 기사가 나기 일보 직전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 결혼 확정도 아니니 신상 보호 좀 해달라고 부탁하면서 정 쓸거면 "최양락 모 후배와 열애설!!" 요 정도까지만 쓰라고 했는데, 다음날 신문에 난 기사 제목이 '최양락, 동료 개그맨 팽 모 후배와 뜨거운 사이!'라고 나와서 결국 동네방네 열애설이 퍼지고 말았다고 한다. 그녀가 누구인지는 당연히 안 봐도 비디오인 셈이다. 이 일화를 말하던 최양락은 "대한민국에 팽씨 성을 가진 개그우먼이 팽현숙 밖에 더 있겠냐고!!!"하며 격뿜했다.[28] 이때 팽현숙이 은퇴했다는 소문을 고의적으로 퍼트려 팽현숙이 한동안 방송 출연을 하지 못했다.
참고로 최양락은 팽현숙이랑 오로지 두 번만 합방해서 애가 둘만 있다며 섹드립을 친 적이 있었다.[29] 이외에도 처음 선배와 후배로 만난 사이라서 아직도 부부관계 할때 최양락이 "누워!" 하면 팽현숙이 "네 선배님"이라고 한다는 개그도 쳤다.
1991년 말 SBS 개국과 함께 SBS 희극인실 실장 자리[30]를 받고 이적한 뒤로는 주로 MC위주로 활동했다. 1994년 4월 24일 첫 회부터 SBS의 일요 아침 예능인 좋은 친구들을 진행하면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는데, 첫회부터 1995년 10월 22일까지는 이봉원, 1995년 10월 29일부터 1996년 8월 18일까지는 정원관, 1996년 8월 25일부터 1998년 10월 11일까지는 남희석과 함께 공동 MC를 맡은 바 있다.
하지만 1998년 10월 11일 방송을 끝으로 박수홍에게 바통을 넘겨주면서 ‘좋은 친구들’에서 하차하게 된다.[31] 여담으로 이 하차 비화를 아는 형님 2021년 4월 10일 편에서 팽현숙과 함께 밝힌 바 있다. 당시에는 조연출 통해서 "부장님이 보재요.", "국장님이 보재요." 그러면 거의 99%가 상을 준다는 이야기이거나, 새 프로그램 관련 논의 였는데 표정이 이상했다. "최양락 씨가 좋은 친구들 몇 년 하셨죠?"라고 해서 "5년 했는데요,"라고 하니 "많이도 하셨네. 이제 이런 프로는 후배한테 넘겨주고."라고 했다고 한다. 팽현숙은 당시 최양락과 비슷한 또래의 연령의 게스트 민경훈을 가리키며, "쟤보고 늙었다고, 너 방송 되게 오래하지 않았냐?"고 한 것과 다를 바 없는 식의 하차였다고.[32] 1999년 2월에는 김미화와 함께 진행을 맡아왔던 KBS 2TV 코미디 세상만사에서도 스스로 하차했다.[33] 이후 팽현숙은 홧김에 열 받아서 "'호주로 이민 가자'고 그래서 이민을 갔다"고 한다. 관련 기사
1999년 8월 2일 SBS 코미디 살리기[34] 의 공동 진행을 맡아 컴백했다. 그러나 진부한 형식의 개그와 여러 차례의 언어폭력으로 거침없는 비판을 받아 4개월 만에 조기종영되는 수모를 당했으며 급기야 1999년 9월부터 김미화와 함께 다시 게스트로 합류한 코미디 세상만사는 SBS 기분좋은 밤 탓인지 시청률 부진을 면치 못하고 다음 해 봄 개편 때 프로그램이 폐지됐다.
공교롭게도 2000년 2월 3일부터 기분좋은 밤 MC를 맡았던 박수홍은 좋은 친구들의 최양락 후임이었다. 게다가 최양락은 2000년 1월 22일 시작한 KBS 2TV 일요시트콤 반쪽이네로 첫 시트콤 출연을 했는데 대사나 연기, 장면설정 등이 모두 뭔가 어설픈 구석이 많았다는 지적을 받으며 10%대 미만의 시청률로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결국 3개월(4월 29일) 만에 조기종영되는 수모를 당했다.[35] 박수홍도 KBS 2TV의 시트콤 마주보며 사랑하며로 첫 시트콤 출연을 했는데 음란한 자태를 지나치게 묘사한다는 비난을 받았고 결국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종영했다.
최양락은 2000년 다시 MBC로 옮겨온 후, 일요일 낮에 코미디 닷컴이란 프로그램에서 진행한 바둑 대국을 패러디한 알까기 대국으로[36] 또 한번 큰 인기를 얻었다. 이때 아내 팽현숙의 권유로 도전한 단발머리가 지금까지도 시청자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알까기의 성공 이후부터는 MBC 표준FM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의 진행자로 계속 활동했다. 경인방송(ITV)[37] 외에는 TV 활동이 뜸할 뿐 방송 활동은 계속 하고 있었다.
마침내 2009년 야심만만 2에 게스트로 출연해서 일명 '최양락 젖꼭지의 변'으로 웃음폭탄을 터뜨리면서 올드팬뿐만 아니라 최양락의 리즈 시절을 모르던 어린 시청자들까지 사로잡았다. 이후 레전드의 복귀라는 화려한 상찬을 받으며 야심만만 2 MC까지 꿰찼으나[38] 오래지않아 프로그램이 폐지되면서 완전 복귀는 실패했다. 그 전에 명랑 히어로 이봉원 회고전 편에 출연하여 오랜만에 엄청난 입담을 보여주며 MC 자리를 얻고 본인 역시 회고전까지 출연했으나...역시 오래지않아 프로그램이 폐지됐다.
2012년 12월,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를 10년 간 진행한 공로로 최양락은 브론즈마우스를 수상했으며,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라디오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2013년 3월 3일에 KBS 창사 40주년 특집 개그 콘서트에서 김학래, 임하룡, 장두석, 이봉원, 이경래 등 올드 개그맨들과 함께 오랜만에 개그 무대에 올라섰다. 본인의 히트작 <괜찮아유>와 <네로 25시> 등에 출연하여 녹슬지 않는 희극 연기를 보여주었다. 특히 <네로 25시>에서는 김준호, 김대희, 홍나영, 신보라 등 개콘의 주축 후배 개그맨들과 놀라울 정도로 척척 맞는 개그 호흡을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네로 25시, 괜찮아유
14년 간 진행하던 라디오에서 갑자기 짤렸다. MBC 표준FM의 효자방송으로 10년을 넘게 군림하던 시사풍자 라디오였는데, 외압으로 작별인사도 못 하고 짤린 것. 이 프로그램은 배칠수나 안윤상처럼 대통령과 여러 정치인 성대모사를 잘하는 개그맨들을 출연시켜서 라디오 꽁트를 자주 했는데, 여기서 이명박이나 박근혜가 희화화된다며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공격한 적이 많았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 때 생긴 프로그램이라 김대중과 노무현 역시 희화화 되었음에도 김대중, 노무현은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다가, 보수정권이 되자 일이 터진 것. 물론 알기는 안 것이었는지, 마지막 날 방송의 끝곡이 '또 만나요'였으니... 2주 간 대타를 뛴 DJ는 학교 후배인 가수 박학기. PD저널의 폭로에 의하면 높으신 분들의 외압 때문이라고 밝힌 상태. 방송에서 잘리고 거의 한 달간은 위의 팽현숙이 운영하는 음식점 한구석에서 식음도 전폐하고 내내 술잔만 기울이고 있었다고 한다. 후속 프로그램은 "원더풀 라디오
더 팩트의 보도를 따르면 라디오에서 퇴출당한 이후에 술로 날을 지새웠다고 한다. 아내 팽현숙의 권유로 현재는 가게에 나와서 주차관리 등의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동안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말하는 것 자체를 피할 만큼 대인 기피적인 모습도 보여 라디오 퇴출이 최양락 개인에게 상당한 충격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하차 통보를 받기 전에 MBC 라디오국 간부들이 인사를 받지도 않고 무시하거나 딴청을 피우는 등의 알아서 나가라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이후 2020년부터 JTBC의 1호가 될 순 없어에서 부인 팽현숙과 함께 출연하며 다시 대중들의 주목을 받았다. KBS 2TV에서 방영 중인 살림하는 남자들에서도 출연했지만 현재는 하차했다.
2018년 11월 26일부터 TBN 한국교통방송 '최양락의 탄탄대로' 진행을 맡게 되어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 종영 후 2년 6개월 만에 라디오 DJ로 복귀했다(관련 기사). 첫 방송 당일 아내 팽현숙이 게스트로 출연하여 "왕의 귀환을 축하한다"라는 화환을 전달하며 라디오 DJ 복귀 소감을 밝혔다. 한밤의 교차로 주말 DJ를 진행한 가수 추가열도 같이 출연했으며, 동료 코미디언 김보화, 김학래와 전화 연결하여 라디오 DJ 복귀를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심지어 심형래도 출연했다.
매주 월요일에는 딸 최윤하가 고정 출연했으나 2020년 봄 개편으로 4월 17일 방송을 끝으로 하차했다. 후임 진행자는 이숙영.
2020년 9월 25일자로 개인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였다.
3. 개그 스타일
개그계의 트렌드에 따라 부침은 있었지만 순수하게 말로 웃기는 재능 하나만은 대한민국 올타임 넘버원으로 평가된다. 한 시대를 풍미한 중견 개그맨들이 각자의 컨셉이나 유행어가 있는 반면, 최양락은 딱히 그런 것 없이 정말 순수하게 본인의 타고난 센스와 입담으로만 승부보는 타입이다. 본인만의 독특한 화법에 고향색깔이 짙게 밴 특유의 충청도 사투리와 충청도식 개그[39]가 결합되어, 전혀 특별할 것 없는 진부한 일상 이야기도 최양락이 하면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웃기다는 평이 많다. 특히 의성어나 의태어도 교묘하게 웃기려는 의도없이 웃긴다는 느낌을 살리도록 정확히 맞게 쓰며, 표준어 어휘를 쓰더라도 한 박자 쉬었다가 빠르게 들어가는 충청도 사투리 말투에 적절한 어휘를 매우 잘 고른다. 그 유명한 '젖꼭지의 변' 에피소드도, 따지고 보면 별 것 없는 일상의 평범한 불상사일 뿐인데 맛깔나게 살려 레전드 에피소드로 승화시켰다. 개그맨 김학래가 라디오 스타에 나와 명명하길 "언어의 쌈마이"[40]다. 그 누구도 흉내 못낼 독특한 언어술사라고 한다.덕분에 트렌드의 변화로 TV에서 다소 밀려난 이후에도 입담 하나만으로 라디오를 십수 년간 진행했다. 이경실은 운전하며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를 듣다가 너무 웃겨서 운전을 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러 차를 길가에 세우고 웃은 적도 몇 번 있다고 하며, YTN에 출연하여 딱히 각 잡고 웃기려 하지도 않았음에도 앵커들이 웃겨서 진행을 곤란해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영상
다만 남의 개그나 캐릭터를 받쳐주거나 살려주는 능력은 사실상 전무하다. 아니 정확히는 본인부터가 그럴 생각이 없다.[41] 자신의 개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데다가[42] '내 개그는 내 개그, 네 개그는 네 개그' 식의 다소 보수적인 희극인 마인드를 갖고 있다보니 원맨쇼보다 상호간의 커뮤니케이션과 협동심이 더 중요한 오늘날의 버라이어티식 개그 트렌드와는 맞지 않는다. 본인의 성격부터가 겸손이나 배려심과는 거리가 좀 있는 편이다. 물론 입담은 어디 가지 않기에 단발성 게스트나 '혼자 떠드는' 식의 방송에는 특급이지만, MC나 고정 패널로는 곤란[43][44]하다. 요즘도 가끔 토크쇼에 나왔다 하면 빵빵 터뜨림에도 불구하고 방송에 안정적으로 복귀하지는 못하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는 셈이다.
실제로 유튜브 등지에서 나도는 소위 '최양락 레전드' 영상들(명랑 히어로 출연분, 야심만만2 젖꼭지 에피소드, YTN 뉴스 게스트 출연 등)은 대부분 자기 혼자 썰 푸는 장면들이고, MC와 게스트가 주거니받거니 하는 타이밍에는 오히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린다. 한마디로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천상천하 유아독존식 독불장군형 희극인이라 볼 수 있다. 일례로 2015년 팽현숙이 인터뷰에서 '최양락은 항상 대본을 혼자 쓴다.'[45]라는 것도 아마도 최양락의 능력을 띄워주기 위해서 한 말이겠지만, 정확히 분석하면 혼자서 모든걸 해결하려 하는 최양락의 스타일을 설명하는 발언이다.
최양락 개그의 한계는 본인이 가장 잘하는 분야에 안주하고, 당하는 역할은 절대 하지 않고 가장 빛나는 역할에만 집착하다 보니, 시대가 변화하는 흐름을 읽지 못하고 그 모습 그대로 정체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이 이경규와 가장 대비되는 부분이다. 이경규는 비록 개그 콘테스트에서 턱걸이로 합격하여 개그맨이 됐지만, 지속적으로 후배 예능인(규라인)들과 교류를 하면서 새로운 흐름을 몸소 터득하고, 그 과정에서 후배들을 띄워주기도 하고, 본인 역시 롱런을 하게 된다. 하지만 최양락은 함께하는 동료를 꼽자면 비슷한 연배의 이봉원, 김학래를 제외하면 크게 눈에 띄는 사람이 없다. 고향 후배 남희석이 그나마 최양락의 영향을 받았지만, 남희석의 인기는 본인의 능력이 더 크게 작용하였다.
이토록 자기 개그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최양락도 누군가를 위해 꽁트에서 받쳐주는 역할을 기꺼이 맡은 적이 있다. 그가 바로 '맹구'로 유명한 이창훈. 최양락과 이창훈은 KBS 2TV 유머 1번지 속 '맨손의 청춘'이라는 코너를 함께했는데, 이창훈은 어리숙한 목욕관리사 '이달용'을 연기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에 반해 최양락은 이전과 달리 진중하고 마음씨 따뜻한 이발사 역을 맡았다. 최양락이 이렇게 이창훈을 적극적으로 밀어준 것은 연극 배우였던 이창훈을 코미디언으로 데려온 것이 바로 최양락이었기 때문.[46]
4. 깐족거리기 끝판왕
특유의 깐족거리는 성격으로 유명한데, 훗날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서 자신의 흑역사를 직접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사회전반적으로 군기가 극심했던 시기였음에도 아랫사람이나 만만한 사람이든, 군기반장 선배나 스승처럼 윗사람이든 초면인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깐족거렸다. 이 점이 깐족계의 후배 유재석과는 분명히 다른 부분이다.[47] 그래서 사회적인 군대 문화, 똥군기가 지금보다도 훨씬 심했던 1980 ~ 90년대에는 선배 코미디언들에게 구타를 훨씬 많이 당했다고 한다. 얼마나 깐족거렸는지 똥군기를 안 잡았던 선배들, 특히 이홍렬, 임하룡, 전유성, 주병진[48] 같은 인품 좋기로 소문난 코미디언들에게도(...) 예외없이 맞는 게 다반사였다고 한다. 한마디로 어그로의 제왕. 사람 약올리는 것에는 완전히 천재 수준이었다. 그래서 김한국이 주인공이고 이상운, 양종철, 이봉원, 김학래, 조금산에 심지어는 여자인 임미숙까지 돌려가며 출연한 군대 코미디 코너인 동작그만에 오직 최양락만은 뺐다. 저 극심한 깐족거림이 도저히 군대와는 걸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최양락 본인 말로는 앞뒤 상황 생각 안 하고 웃기려는 욕심이 너무 강해서라고 한다. 또한 최양락이 이경실의 유튜브에 나와서 말하기를 "명색이 직업이 개그맨이면 후배 개그맨이 이 정도 장난을 쳐도 그냥 웃고 넘어가거나 같이 장단을 맞춰줄 것이지 성질을 부리고 때리냐?"고 생각해서 선배들에게 맞은 후 화가 난 적이 많았다고 한다.
- 명랑히어로에서 동기 이경규가 밝힌 바로는 신인 시절 두 사람이 코미디언실을 지나가는데 거기서 구봉서, 서영춘 등의 대선배들이 대본 읽는 것을 보자 최양락이 특유의 깐족대는 말투로 "야~ 코미디언이다~."라고 해서 단체기합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최양락은 조작된 냄새가 난다며 부정했다.
- 송년회 술자리에서 개그맨들끼리 야자타임을 했는데 젊은 나이에도 점잖은 개그를 잘 한다며 개그계의 신사란 별명이 있던 선배 주병진에게 안 그래도 악감정이 많았던 최양락이 "임마 니가 신사는 무슨 얼어죽을 놈의 신사야? 너는 신사도 아니야 임마!"라고 말하는 등 엄청나게 나댔다고 한다.[49] 이에 화가 난 주병진이 "자자, 이제 그만하지?"라고 했는데, 그때까지 한창 야자타임을 즐기며 까불던 최양락이 "그~만하기는 뭘 그만해 임마~잇!"이라고 깐족거리자 단단히 빡돈 주병진이 바로 접시에 있던 족발을 던져 버렸다. 주병진의 말로는 의도치 않게 홧김에 던진 족발이 최양락의 얼굴에 정통으로 맞았다고 한다. 다행히 코피는 안 났는데, 맞자마자 최양락이 너무 아파서 눈물을 많이 흘렸다고 한다. 이 때 임하룡과 전유성이 주병진을 말리며 "야 병진이 니가 너무 심했다. 양락이도 다 큰 애인데 사람들 앞에서 심하게 때리면 어떡하냐? 양락이 얘 울잖아?"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최양락은 갑자기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선배에게 맞은 정신적 충격 때문에 운 게 아니라 그냥 너무 아파서 울었다고 회고했다.
- 어느 날은 다른 방송사 선배[50]인 이홍렬과 같이 맞담배를 피웠는데 허락도 없이 이홍렬의 담배를 뺏어서 자기 담뱃불 붙이는 데 써서 구두로 맞았다고 한다. 정확히 말하면 이홍렬이 최양락과 담배 피우는 자리에서 자신이 이경규와 맞담배를 피웠을 때 갑자기 "양락이 너 경규랑은 관계가 어떻게 되니?"라는 질문을 했고 최양락이 "개그맨 동기인데요?"라 답했는데, "이경규가 내 허락 없이 담배를 뺏어서 자기 불 붙이는 데 썼다"고 뒷담화를 깠다. 그러자 그걸 들은 최양락이 "경규 형은 참 왜 그런대"라고 맞장구 치면서 이경규와 똑같이 이홍렬의 담배를 가져다가 불을 붙였다. 이홍렬은 "이 새끼가 더 나쁜 놈이네!"하면서 때린 것이다. 한 마디로 본인이 매를 벌어서 맞은 것. 이홍렬은 비록 화나면 무섭긴 해도 평상시에는 후배들한테 매사에 친절한 사람인데, 그런 이홍렬조차도 크게 빡쳐서 구두로 때릴 정도면[51] 어지간히도 센스 없이 깐족거리고 지분댔던 모양이다.[52] 최양락은 이 사건 이후 본인도 기분이 어지간히 나빴는지 10여년간 이홍렬을 선배 취급 하지 않았으며[53] 어쩌다 방송국에서 만나도 인사를 안 했다고 한다. 또한 향후 몇 년간 토크쇼에서나 사석에서나 이 일화를 널리널리 퍼뜨렸다고 한다. 덕분에 이홍렬은 질린 나머지 금연을 결심했다고... 이후 이홍렬이 "10년 전 일로 아직도 그렇게 삐쳐 있냐?"면서 최양락에게 화해를 청했고 최양락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이후 형 동생 관계로 지내고 있다고 한다.
- 아예 단체로 선배들에게 최양락 본인의 집에서 두들겨 맞은 사건도 있었다. 앙금이 있어 또 갑자기 반말로 불만 있던 선배에게 깐족거린 것 때문이지만, 최양락이 선배 이름과 맞기 전에 있었던 앙금의 내용은 안 밝혔는데, 맞은 사연은 이렇다. 최양락에게 사적으로 큰 불만을 갖고 있던 선배가 녹화가 없던 날 다른 동료들(최양락의 선배들)과 있다가 갑자기 최양락의 집으로 전화를 했다. 최양락이 전화를 받자 선배가 "어 양락아 나 XX인데 양락이 너 지금 집에 있지?"라고 말했고, 최양락은 속으로 '집에 있으니까 전화를 받은 건데 뭐 당연한 소리를 묻냐'고 생각해서 충동적으로 반말을 하며 깐족거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 양락이 집에 있어."라고 답했고, 당황한 선배가 "뭐? 너 지금 선배한테 반말하냐?"라고 하자 "어 반말해."라고 말했고, 분노한 선배가 "너네 집 예전에 몇번 말했던 마포아파트 거기 맞지?"[54][55]라고 했고 최양락이 "응 맞어"라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최양락은 나중에는 혼날 지라도 그날 집까지 올 줄은 몰랐는데, 수십분 뒤 그 선배가 같이 있던 다른 선배들을 잔뜩 데리고 직접 집까지 찾아와서 단체로 때렸다고 한다. 정말 이대로 죽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할 정도로 심하게 맞았다고... 단순 일대일 폭행과 달리 집단폭행은 사실 그때도 경범죄가 아니라 중범죄에 속하기 때문에, 검찰에 정식고소까지 하여 재판전까지 갔지만 방송국의 압력으로 흐지부지 합의해 버렸다고 한다. 더 충격적인건 KBS조차 당시 대스타였던 그 선배에게 출연정지 징계를 내리지 않은 것. 이후 제대로 처벌도 안된 현실에 충격을 받은 최양락은 개그맨을 그만두고 승려가 되겠다며 경상도의 산에 있는 절에 들어가 삭발을 하고 한달간 수행생활까지 했다고 한다. PD와 선배들이 경상도 산 속을 찾아가서 설득해서 다시 서울로 상경했다고...[56]
- 소문으로는 "전화 반말 사건" 때 동료들을 데리고 최양락의 집까지 찾아가서 집단 폭행한 그 사람이 김형곤이라고 알려져 있다. 만일 김형곤이 맞다면 언론보도상으로는 운전기사 문제였다고 한다. 당시 개그맨들은 네임드 스타들조차도 대부분 매니저는 안 두는 경우가 흔했지만, 행사 다니는 경우를 위해 운전만 하는 사람은 고용하는 경우가 어느 정도 있었다. 이것도 스타급들만의 특권이었다. 김형곤이 고용한 운전기사가 그만둘 때가 됐을 때 더 하느냐 마느냐로 김형곤과 약간 갈등이 있었는데, 그러는 사이 그 운전기사를 최양락이 설득해서 고용하자 자기 사정을 아는 후배가 자신에게 굴욕을 준 거라 생각한 김형곤이 최양락에게 수시로 욕설과 갈굼을 시전하기 시작했고 무서운 선배라 당할 수밖에 없던 최양락은 화가 났지만 그냥 당해주고 한동안 피했는데, 서로 적대적인 감정이 잔뜩 쌓인 상태에서 김형곤이 다시 최양락에게 따지기 위해 나와보라고 전화를 한 것이다. 집단 폭행은 일대일 폭행보다 사법행정에서 죄질이 크게 나쁘기에 당시처럼 선배가 후배를 쉽게 때리던 시절에도 금기시되던 일이다. 참고로 김형곤은 80~90년대에 개그맨 중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라고 통할 정도였고, 폭행 사건도 여러 번 일으킨 바 있다.[57] 실제로 김형곤에게 최양락이 심하게 맞은 사건은 내부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폭행 사건으로 신고되어 경찰 수사도 들어갔었고 1985년 당시, 언론 기사로도 보도됐었다. 참고로 당시 남아 있는 언론 보도 내용도 집단인지 단독인지는 기재되지 않아서 불명이지만, 일단 김형곤이 최양락의 집에 직접 들어가서 때렸다는 내용은 명확하게 나와서 이건 사실이다. 이후에 김형곤이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는 보도가 없어서 확실히는 알 수 없으나, 당시에 한창 활동하던 김형곤이 감옥에 가진 않은 것으로 보아 벌금형이나 합의 정도로 마무리됐던 걸로 보인다.
- 이성미가 임하룡에게 "노인네"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는데[58][59], 그 덕분에 많은 개그맨들이 임하룡을 노인네라고 불렀다고 한다. 임하룡은 원래 소심한 걸로 유명한데다 젊은 나이에 노인네라 불려서 속이 많이 상했었다.[60] 그러던 어느 날 촬영이 있는데 다른 스케줄들도 워낙 빡빡해 식사를 빵과 우유로 간단하게 하고 다음 촬영을 진행해야 했고, 그래서 임하룡이 최양락에게 빵과 우유를 좀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61][62] 최양락은 순순히 심부름을 하고 사온 빵과 우유를 나눠주는데, 이때 최양략이 10살이나 많은 임하룡에게 "노인네야!"라고 놀리자, 임하룡은 "너 지금 뭐라고 했냐?"라고 말하니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이빨 빠진 호랑이!"라고 깐족거리다가 결국 얼굴에 우유를 맞았다고 한다. 그 대인배로 유명한 임하룡마저 화를 냈을 정도니 특유의 주접이 정말 극심했다는 일화로 봐야 할 것이다.[63] 실제로 최양락은 이경실의 방송에 나와서 자신의 깐족거린 일화를 풀었을 때 "이 때는 내가 진짜 잘못한 거지. 그 형님은 늦은 나이에 데뷔한 것이 나름 트라우마였는데 그걸 건드려서..."라며 임하룡에게 사과를 하면서 당시 본인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반성했다.
- 심지어 전유성에게 "형님은 싸가지가 없어요!"라는 폭탄 발언을 투척하고 뒷문으로 도망친 적도 있다고 한다. 그것도 무슨 얘기를 하다가 나온 것도 아니고 뜬금없이 "한 말씀 드려도 돼죠?"라고 한 뒤 던진 것. 본인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래도 전유성은 뒷끝이 없는 쿨한 성격에다 평소에도 최양락이랑 워낙 친해서 다음날 최양락을 보고 태연하게 "너 어제 어디로 도망갔었니?"라고 물어봤고 최양락이 건물 뒷편으로 도망갔다고 실토하자 전유성은 "그래, 정말 잘했다! 어제 너 나한테 잡혔으면 맞아 죽었을거야"라며 넘어갔다고...[64] 이후 1호가 될 순 없어의 팽현숙에게 쪽파 맞은 에피소드에서 다시 자세하게 언급이 되었다. 당시 코너가 끝나고 최양락과 후배들이 선배들의 소품을 정리하고 소품실로 옮기는 과정에서, 최양락이 끝나고 약속이 있는지라 빨리 정리하기 위해 전유성에게 소품 정리할거 있냐고 세 차례나 물어봤으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곧 소품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최양락에게 뒤늦게 말해서 결국 최양락은 다시 소품을 갖다놓느라 약속에 늦고 말았다. "선배 후배를 떠나서 형님은 싸가지가 없다"고 말한 건 이 일에 화가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 이미 학창시절부터 이런 성격이었는지, 잘못을 해서[65] 선생에게 꾸중들을 때도 그냥 얌전히 죄송하다고 하면 될 것을 그 순간을 못 참고 개그맨 흉내를 내면서 개그를 치다[66] 한 대 맞을 걸 열 대 맞은 적도 많다고 한다. 당시 담임이 이성을 잃고 죽어라 패서 학생들이 "선생님! 양락이 죽어요!! 얘 원래 이래요!"라고 담임을 말리자 선생도 이성을 되찾고 아차차차 그만뒀을 정도로 제대로 분노 유발을 했다고 해피투게더에서 최양락 본인이 밝혔다. 이 다음에 같은 반 아이들도 오히려 최양락을 보고 "선생님이 이해가 간다. 임마!"라고 날 탓하더라고 할 수준이었단다. 물론 폭력을 휘두른 건 그 교사의 잘못이긴 한데, 본인의 잘못으로 훈계를 듣는 마당에 반성은 커녕 그 자리에서 개그나 치는 건 그냥 싸우자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음은 물론 반성하는 모습을 안 보인다는 증거다. 사실 그 시절은 체벌이 당연시되던 시절이기도 했고, 올객관식이라 찍어도 되는데도 대놓고 백지를 낸 것만 해도 '이 놈이 감히 반항하나' 싶을 법도 한데 거기다가 선생님에게 눈치 없이 장난까지 쳤으니 매를 번 것이다.
- 아무리 서열에 엄격한 개그계라도 이 정도면 어그로 끄는 실력도 갑인 셈이다. 의외로 성깔이 있는 편이었던 이홍렬[67]이나 주병진[68]은 그렇다 하더라도, 임하룡, 강석[69], 전유성은 개그계에서 손꼽히는 대인배로 후배들의 인망이 두터운 사람들로, 당시 후배였던 개그맨들이 방송에서 회고하기로는, 그들은 후배들이 선배들에게 부당하게 혼나는 경우에도 말리거나 막아준 적이 많은 걸로 알려져 있다.
- 상술한 깐족과는 별개로 똥군기/사례/개그계 문서에도 나와 있듯 정작 최양락 본인도 똥군기 문제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개그맨이도 하고[70], 이런 점과 더불어 본인 특유의 깐족대는 말투나 경솔해 보이는 행동 때문에 보수적인 기성세대들 중에는 이봉원[71][72]과 더불어 최양락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꽤 된다. 실제로 커리어 내내 방송국 간부 등 윗사람에게 찍혀서 밀려난 적이 수차례 있는데[73], 본인의 이러한 성격도 없지않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 2023년에는 이러한 성격을 반영한 MBN 프로그램 깐죽포차를 부인 팽현숙과 함께 진행 했으며, 2024년 본인의 대표 개그코너 괜찮아유에서 딴 유튜브 채널 '최양락의 괜찮아유'를 개설해 컨텐츠를 진행하는데 첫 상대가 같이 코너 진행한 김학래였고.. 말 그대로 엄청난 긁기를 선보이며 나이가 들어도 녹슬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74]
5. 기타
- '알까기' 시절 특유의 찰랑거리는 단발머리가 화제가 되었다. 서태지가 2000년 9월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이후로 근 5년만에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할 때 딱 그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최양락도 마침 그 시기에 '코미디닷컴'으로 MBC에 컴백했으며, 똑같은 머리모양 하고 있었는데다, 결정적으로 알까기가 떴다.(...) 그래서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상한 남자 단발머리'하면 최양락일 정도로 남자 단발머리의 대명사로 기억되고 있는데, 단발머리의 환상을 가진 여성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주는 존재다. 오죽하면 지금도 '최양락 머리 됐다' 라는 말이 '단발로 잘랐는데, 안 어울려서 망했다' 라는 뜻을 대체하고 있다.#1 #2 #3 최양락 본인도 이런 밈을 알고 있어서 그 이야기를 듣고 "지들이 못생긴 걸 가지고 왜 나한테 그래??" 라고 반응하면서 어이없어했다. 사실, 최양락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어이가 없을만도 했는데 서태지보다 최양락이 먼저 단발머리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했을 때 "내가 서태지씨보다 먼저 단발머리를 했어요." 라고 이야기를 했다.
- 나이보다 더 성숙해 보이는 얼굴에 은근한 컴플렉스가 있는 듯하다. 동갑인 최수종과 있을 때는 장인어른(최양락)에게 하극상 하는 사위(최수종)같다는 평을 받기도 하고, 8살 연상의 친한 형님 김학래와 동갑내기 취급을 받기도 한다.
- 다만 현재로써는 믿기 어렵겠지만 1990년대에는 1년 선배 개그맨인 정재환과 함께 미남 개그맨으로 여성팬들을 모으기도 했다.
- 첫 아들을 낳았을 당시, 최양락은 한강까지 가서 울었다고 한다. 아들을 보고 감동받아서가 아니라, 너무 잘생겨서... 유전자 검사까지 요구할정도로 충격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아들 혁이는 훗날 최양락이 좋은 친구들 진행자 시절에, "어린이 축구단" 설정의 새로운 코너를 런칭하려 해서 첫회에 어린이 축구단 멤버로 딱한번 출연했으나, 바로 코너가 사라지면서 더이상 나오지 않았다. 이게 유일무이한 방송출연 경력이다. 최양락이 감독 역할[75]을 맡기로 해서 본인의 아들도 넣어본건데, 일단 다른 선수들이 초등학교 1~2학년이었는데, 혁이만 미취학아동이라 처음부터 어울리기 힘들었고, 내성적인 성격이라 아무말도 안하고 있다가[76] 축구를 할때도 움직임 없이 그냥 뒤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서 방송분량이 나올게 없었고 나머지 선수들은 오히려 통제가 안되게 시끄러워서 최양락이 실질적으로 포기했기 때문에, 다음방송까지 코너를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가능성은 지금 봐도 낮았지만, 코너가 성공했다면 '날아라 슛돌이'의 원조가 될 수도 있었다.
- 183cm의 장신[77]인데다가 몸매라인도 예쁜 편이라, 옷태가 나는 스타일. JTBC 관찰예능 1호가 될 순 없어에서 친한 형님 2호 남편 김학래가 명품 편집샵에 데려가 최양락에게 옷을 입혔는데, 옷이 날개라는 말이 딱 맞게 완벽하게 젊은이들 스타일로 변신했다. 패널들은 최양락의 성공적인 메이크오버 특히 톰 브라운 룩을 입었을 때 스튜디오 패널들이 기립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 개그맨 김경민이 방송에서 말한 바에 따르면 그가 신인시절 차 운전도 하고 심부름도 하면서 매니저처럼 선배인 최양락(당시 소속사가 없던 시기로 추정)을 보필하며 다닌 적이 있다고 하는데, 하루는 시간이 늦어져 최양락이 김경민보고 자기 집에서 자고 가라고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김경민이 자기 집으로 돌아간 뒤에, 갑자기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최양락이 "저~기 경민~아. 혹시~ 우리~ 집에서 금반지 못 봤니?"라고 했고 "네? 예 형님 못봤는데요."라고 답하자 "그래~ 경민아~ 우리 하나(딸 이름) 돌잔치할 때 맞춘 금반지가 없어졌는데, 아무튼 너~는 아닐거야. 뭐 내가 어디다가 잘못 놨겠지~"라고 하며 끊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이후에도 최양락은 매일 한두번씩, 직접 만났을 때 얘기하거나 전화를 해서 "저~기 경민아, 너~는 아닐거야~ 그치?"라는 말을 계속 했다고 한다. 그때마다 김경민은 서러운 말투로 "형님, 저 진짜 아닙니다. 본 적도 없습니다."라고 매번 대답했지만, 다음날이면 또 전화가 오거나 직접 면전에서 의심하는 말이 날아왔다고 한다. 진짜 하루도 빠짐없이 전화나 면전에서 계속 그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몇주 더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고 한다. 김경민은 자신이 그동안 그렇게 선배를 모셔왔는데 도둑질을 할 거라는 그런 의심을 받은 게 황당하기도 하고, 너무 서러웠다고 한다. 이거 말고도 김경민이 최양락한테 감정 쌓인 에피소드가 몇 개 더있는데, SBS에서 신인들을 밀고 이적 온 탑 개그맨들의 분량을 줄이다보니 견제 심리가 있던걸로 추측된다.
- MBC로 오랜만에 복귀했을 때 박명수가 어머니와 통화하다가 "형수(동생의 이름) 아직 안 들어왔어? 이게 죽을라고." 라는 말을 했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최양락이 "아무리 콩가루라도 형수(형의 아내)에게 그러면 되냐?" 라고 오해를 하면서 박명수를 혼냈다가 "동생의 이름이 박형수예요" 라는 것을 알고는 빵 터졌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 천상 개그맨인 그답게 본업에 있어서는 굉장히 프로페셔널하다. 개그맨 후배에게 노하우를 설명할 때 꽤나 진지하다.
- 최양락은 제 1회 MBC 개그콘테스트(MBC 개그맨 공채 1기)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하기도 했고 평소에 자신의 개그 감각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심이 꽤 강하다. 또한, 코미디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해서 개그 철학도 매우 확고한데, "코미디니까 대충 해서 웃겨라." 라는 말을 가장 싫어한다고 한다. 오히려 코미디야말로 상황•멘트 하나하나가 정교한 작업이라고 자신이 출연하는 프로그램 1호가 될 순 없어 50회에서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전성기 때는 자신의 개그를 일종의 예술 활동이라고 생각하여 남들은 다 하는 밤무대를 뛰지 않았을 정도로 자신의 개그에 자부심이 강했다고. 그래서 한창 전성기 때도 동급의 다른 개그맨 동료들보다 궁핍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 과거 2호 부부 임미숙 ♡ 김학래와 개그코너 <슈퍼차 부부> 를 했을 때 리더였다고 한다. 부인 팽현숙에 따르면, 연습하다가 잘 못하면 나머지 세 사람이 최양락한테 혼났다고 한다.
- 최양락 본인은 성대모사 개그를 좋아하는 듯하다. 1호가 될 순 없어를 통해 만난 트로트가수 김수찬이 여러 트로트가수 대선배들을 찰떡지게 따라한 모습을 보고 취향저격이었는지 빵 터지고, 스튜디오에서는 후배 장도연이 홍잠언 군을 따라한 모습을 보며 역시 빵 터지기도 했다.
- 최양락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웃기다고 하는 이경실, 지금은 절친인 이봉원은 각자 데뷔하기 전부터 최양락의 개그를 좋아했다고 한다. 또한 친한 형님 김학래의 무매독자 김동영도 어릴 때부터 최양락 개그의 광팬이었다고 한다. 또한 최양락이 SBS 희극인실 개그실장 당시 지상렬이 존경했던 선배였다고 하고, 신봉선을 개그계로 이끈 우상이라고 한다.
- 2000년대 이후 방송에 복귀했을 때, 자신의 주 전공 분야였던 말로 웃기는 개그(토크쇼 계열)[79]를 주로 선보이는 버라이어티에 간간히 출연하곤 했지만, 이미 대한민국에서는 출연자들이 하나의 캐릭터가 되어 서로 캐미를 이루어서 상황 속에 녹아들며 웃기는 버라이어티 예능이 대세가 되어 버린 후였고, 결국 2010년 10월 MBC 개그 프로그램이었던 꿀단지 이후로는 지상파 예능계에서 다시 보기가 어려워졌다. 상술했듯이 최양락은 천상천하 유아독존 성향의 1인식 토크 개그 혹은 연기력이 중요한 정통 코미디가 주 전공이고, 우연히 주어진 특정 상황하에서 같이 출연하는 상대를 배려하며 서로 케미를 이뤄서 웃음을 뽑아내야 하는 21세기형 버라이어티에는 취약하다. 본인도 자신의 개그 성향이 버라이어티 예능과 안 맞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예능에 잘 출연하지 않는다.
- MBC 개그맨 공채 1기 동기인 이경규와 같이 출연한 방송이 극히 드물다. 일단 대상 수상 후 최양락이 얼마 되지 않아 KBS로 이적해버려서 동반 출연할 기회가 적었고 사적으로 친분도 딱히 없다고. 그래도 마주치면 대화는 하는 듯 하다. #
- 영화 배우의 꿈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호가 될 순 없어에서 언급하길 라디오 방송 <최양락의 탄탄대로>가 잘되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종영한 이유가 최양락이 영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소망이 생겨나서 갑작스럽게 라디오 제작진에게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라고 한다.
- 서울예술대학교 연극과 81학번으로 입학했는데, 졸업을 한 학기 남기고 MBC 개그콘테스트에서 대상을 받아 개그맨이 되면서 학업을 이어가지 못 했으나, 2010년대 초 재입학을 했다. 연극과는 최양락의 입학 당시 2년제 학과였으나, 최양락이 재입학을 할 때에 3년제로 개편되면서 1년 반 동안 학교를 다닌 끝에 2014년 2월 졸업했다. 졸업식에서 연극과 대표로 축사를 했는데, 함께 온 부인 팽현숙이 눈물을 흘리자 "여기가 장례식장이야?"라고 호통을 치며 웃음을 주기도 했다. 물론 호통만 친 건 아니고, 아내인 팽현숙의 지원이 있었기에 졸업할 수 있었다며 감사의 말을 남겼다. 대학 등록금을 팽현숙이 대 줬다고 한다.
- 배우 조재윤과 의외의 친분이 있다.
- 의외로 낯을 가리고 친한 사람이 많지 않다.[81] 그나마 친한 것으로 자주 언급되는 인물은 동기인 김정렬과 김학래, 함께 많은 방송을 진행했던 이봉원, 같은 충남 출신인 남희석 정도며 전유성과도 함께 여행을 가는 등 상당히 친하다. 최양락이 밝히길 전유성은 그의 개그 스승이자 우상이라고 한다.
- 친한 사람은 많지 않지만 술을 좋아하면 종족을 불문하고[82] 친구로 여기는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 과거 이홍렬 맞담배 에피소드에서 알 수 있듯이 상당한 골초였으나, 팽현숙이 자기야 - 백년손님과 유튜브 등에서 밝히길 금연에 성공한지 꽤 되었다고 한다.
- 아침에 일어나면 모닝커피를 즐길 만큼 커피를 좋아한다.
- 하루에 4~5시간은 본다고 할 정도로 연예계 소문난 야빠라고 하며, 한화 이글스 팬이라는 것은 한화 이글스 구단에서도 잘 알고 있는 아주 유명한 사실. 그리고 드디어 2021년 5월 19일 아내 팽현숙과 함께 시구, 시타를 했다! # 과거 2009년 한화 이글스의 홍보대사로서 등번호 52번으로 시구를 해본 바 있는 최양락이 수년 뒤에 부인 팽현숙과 함께 나타나게 된 셈. 등번호는 최양락은 53번, 팽현숙은 8번이다.[84]
- 과거 한참 LA 다저스에서 박찬호가 주가를 올리며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을 때 같은 충청도 출신에 야빠 기질을 가진 최양락은 우리 충청도의 자랑이라며 박찬호를 찬양하고 있었다. 하루는 박찬호가 선발등판해 대량실점해서 완패를 당한 적이 있었는데 그날 속상해서 가진 남희석[85]과의 술자리에서 한다는 말이 "그...투수라는 게 말이지 아무리 150, 158 던져봤자 아무 의미 없는겨. 그 직사각형 있지... 그 네모난 거... 거기에 넣어야 진짜 투수인겨"라며 남희석에게 푸념했다고 한다.
- 의외로 노래를 잘 부른다. 자신의 유튜브 채널 <희희양락>에서 그의 시그니쳐 캐릭터 네로황제 버전의 테스형을 불렀는데, 코미디언답게 코믹하게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음정과 박자가 정확해서 그의 노래실력이 괜찮다는 평을 받고 있다.
- 1호가 될 순 없어 36화에서 뮤직비디오를 출연하게 해준 트로트가수 김수찬을 초대했는데, 김수찬이 최양락의 노래를 듣고 잘한다고 평가했다. 즉, 프로 가수로부터 노래 실력을 검증받았다.
- 앞 문단에서 언급된 전국노래자랑에서 불렀던 노래가 '고향역'이고, 자신의 유튜브 채널 <희희양락>에서 '테스형' 을 부르고 트로트가수 김수찬 앞에서 '사랑은 눈물의 씨앗' 을 부른 것을 보아, 나훈아의 팬인 듯하다.
- 초등학교 시절 개에게 물린 적이 있어, 강아지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지만 팽현숙 지인의 베들링턴 테리어 부부 아톰(수컷)•아롬(암컷)이 왔을 때 강아지에 대한 공포를 나름대로 견뎌가며 산책시켰다. 이때의 경험이 매우 좋았는지, 강아지를 대하는 모습이 180도 바뀌어 상당히 긍정적으로 변했다.
- JTBC 관찰예능 1호가 될 순 없어에 출연하고 수많은 별명이 생겼다. 물론 대표별명은 초코양락. 개그맨은 캐릭터가 있는 것이 연예계 활동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기에, 최양락 본인은 이 별명에 상당히 만족하는 모양이댜.
- 별명으로 초코양락, 베짱이양락, 알콜양락, 쪽파양락, 버럭양락, 보조양락, 똥손양락, 사기양락이 있다.
- 본인의 별명이 초코양락인것을 인용해 팬카페 회원들을 '초코', '초코들' 이라고 부른다.
- 깐족거리는 것에 도가 튼 사람이지만 이름을 잘못 부르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모 방송 중 한 팬이 자신의 이름을 최향락이라고 불러 크게 분노한 적이 있었고 팻말에 최향락이라고 오타가 뜨자 그 팻말을 아예 찢어버렸다.
- 한동안 경기도 남양주시에 거주할 때 근처에서 간간히 목격담이 들려왔다. 근처 도농동 이마트가 입주한 건물에 있는 피트니스 클럽에서 봤다던가... 또 팽현숙이 현재 운영하는 음식점을 가면, 손님 접대하는 모습을 간간이 볼 수 있었다. 현재는 가평군 청평면으로 거처를 옮겼다.
- 상명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것이 확인되었다.[87] 이로써 부부가 모두 상명대 대학원 동문이 되는 진기록을 세웠다.
6. 출연작
6.1. TV
방영 연도 | 방송사 | 제목 | 비고 |
1982년~1986년 | 젊음의 행진 | ||
1983년~1991년 | 유머 1번지 | ||
1986년 | 명랑소극장 | ||
1987년 | 웃음꽃방 | ||
1987년~1991년 | 쇼 비디오 자키 | ||
코미디 하이웨이 | |||
1990년 | 가족오락관 | ||
1991년 | KBS 대행진 | ||
코미디 청백전 | |||
'91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 |||
1991년~1997년 | 코미디 전망대 | ||
1991년~1993년 | 웃으면 좋아요 | ||
1992년 | '92 SBS배 어린이농구 대회 | ||
꾸러기 대행진 | |||
추석특집 올스타 총출동 | |||
1993년 | 깜짝 비디오쇼 | ||
전국노래자랑 | |||
1993년~1996년 | 웃으며 삽시다 | ||
1994년 | 설특집 두포졸전 | ||
1994년~1998년 | 좋은 친구들 | ||
1996년 | 코미디 펀치펀치 | ||
웃음천국 | |||
1997년 | '97 신년특집 코미디 출발 | ||
열려라 코미디 | |||
1998년~1999년 | 코미디 세상만사 | ||
1999년 | 연예가중계 | ||
코미디 살리기 | |||
2000년 | 코미디 닷컴 | ||
2001년 | '01 추석특집 코미디 보물섬 | ||
오늘밤 좋은밤 | |||
박상원의 아름다운 TV얼굴 | |||
2001년~2005년 | 코미디 하우스 | ||
2002년 | 코미디천하 | ||
출발 드림팀 | |||
2002년~2006년 | 폭소클럽 | ||
2003년~2004년 | 쇼 행운열차 | ||
2004년 | 최양락, 이봉원의 금요천하 | ||
2005년 | 코미디쇼 7080 | ||
2006년 | 최양락의 엑스레이 | ||
2008년 | 박중훈쇼 | ||
2008년~2010년 | 신동엽, 신봉선의 샴페인 | ||
야심만만 2 | |||
2009년 | 최양락의 닷까기 | ||
2009년~2010년 | 괜찮아U | ||
부엉이 | |||
2010년 | 꿀단지 | ||
2011년 | 연예 위자료 청구사건 | ||
스타 부부쇼 자기야 | |||
나는 전설이다 | |||
개그시대 | |||
2017년 | 내 딸의 남자들 : 아빠가 보고 있다 | ||
2017년~2021년 |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 | ||
2018년~ 2020년 | 거북이 늬우스 | ||
2019년 9월 30일~2020년 8월 17일 | 밥은 먹고 다니냐? | ||
2020년 | 리스타트업, 살아있네 | ||
2020년~2021년 | 1호가 될 순 없어 | ||
2021년 4월 10일 | 아는 형님 | ||
2021년 6월 17일 | 청춘 꼰대 | ||
2021년 11월 4일~2022년 3월 11일 | 결혼은 미친짓이야 | ||
2021년 12월 19일~2022년 2월 20일 | 부캐전성시대 | ||
2023년 3월 8일 | 유 퀴즈 온 더 블럭 | ||
2023년 8월 10일 | 제철 요리해 주는 옆집 누나 2회 | [88] | |
2023년 12월 16일~ | 깐죽포차 | ||
2024년 4월 24일 | 유 퀴즈 온 더 블럭 | ||
2024년 6월 11일 | 살롱드립2 | [89] | |
2024년 9월 10일 | 청소광 브라이언 | [90] | |
2024년 10월 13일 |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 [91] |
6.1.1. 가족오락관
- 1990년 10월 2일
- 1992년 9월 27일
- 2001년 3월 24일
6.2. 라디오
- MBC 표준FM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 (2002년 4월 1일 ~ 2016년 5월 27일)
- SBS 러브FM 최양락의 개그세상 (2002년 4월 15일 ~ 2007년 4월 15일)
- TBN 최양락의 탄탄대로 (2018년 11월 26일 ~ 2020년 4월 17일)
6.3. 영화
- 1987년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 최 아랑 드롱 역
- 1988년 어른들은 몰라요[92]
- 1990년 난 깜짝 놀랄 짓을 할거야 - 철구 역
- 2006년 맨발의 기봉이 - 본인 역 (특별출연)
6.4. 드라마
- 2024년 개소리 - 구씨 역 (목소리)
7. 음반 목록
자세한 내용은 최양락/음반 목록 문서 참고하십시오.8. 수상
- 1981년 MBC 개그콘테스트 대상 수상
- 1987년 KBS 코미디대상 인기상
- 1989년 KBS 코미디대상 남자 연기상
- 1992년 SBS 올해의 스타상
- 1993년 제29회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남자 코미디연기상
- 1995년 SBS 스타상 코미디 부문 최우수연기상
- 1996년 제23회 한국방송대상 코미디언상
- 1996년 SBS 코미디대전 베스트대상
- 1996년 제8회 한국방송프로듀서상 코미디언부문 출연자상
- 2000년 MBC 코미디대상 최우수상
- 2001년 제28회 한국방송대상 코미디언상
- 2001년 MBC 방송연예대상 코미디/시트콤 부문 최우수상
- 2003년 iTV 송년특집 공로상
- 2003년 MBC 연기대상 라디오부문 우수상
- 2009년 제14회 대한민국연예예술상 남자 라디오 진행상
- 2010년 MBC 방송연예대상 남자 라디오 진행상
- 2011년 SBS 연예대상 베스트 커플상[93]
- 2012년 MBC 라디오 골든마우스어워즈 브론즈마우스
- 2012년 MBC 방송연예대상 라디오 부문 최우수상
- 2013년 제3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국무총리 표창
- 2015년 제21회 대한민국연예예술상 남자 라디오 진행상
- 2018년 KBS 연예대상 베스트 엔터테이너상[94]
- 2020년 올해의 브랜드 대상 베스트 커플[95]
- 2020년 SBS 연예대상 레전드 특별상
- 2020년 KBS 연예대상 베스트 커플상[96]
- 2022년 제10회 대한민국 예술문화인대상 문화예술공로상[97]
- 2023년 제3회 대한민국 공헌대상 문화대상[98]
- 2023년 제14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 표창
9. 홍보대사
- 2001년 안면도국제꽃박람회 홍보위원
- 2008년 안면도국제꽃박람회 홍보대사
- 2009년 영등포세무서 일일명예민원봉사실장
- 2009년 제48회 아산 성웅 이순신축제 홍보대사
- 2009년 한화 이글스 홍보대사
- 2009년 자전거사랑전국연합회 홍보대사
- 2017년 음성군 홍보대사
- 2017년 경기북부지방경찰청 교통안전 홍보대사
- 2017년 홍천군 홍보대사
- 2018년 남양주 일자리창출 홍보대사
- 2019년 가톨릭관동대 평생교육 지원사업 체제 홍보대사
- 2020년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홍보대사
- 2020년 충주옥하우징 홍보대사
10. 경력
[훈음] 날릴 양 물 이름 락[2] 민증상 1962년 5월 20일 생이 맞다.[3] 강화 최씨(江華 崔氏) 집성촌이다. 1991년 KBS 유머 1번지의 코너 괜찮아유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4] 충청도 출신, 한화 이글스의 엄청난 광팬이라고 한다. 빙그레 시절부터 팬이었다고 한다. 2021년 5월 19일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시구 및 시타를 아내 팽현숙과 진행하였다.[5] 고향인 덕암리는 아산시 내에서는 인근의 농은리와 함께 최강의 오지로 손꼽히는 마을로, 예산군 대술면과 바로 인접해 있는 마을이다.[6] 제정공파 28세 '洛'자 항렬.[7] JTBC의 1호가 될 순 없어 에서는 청평에서 거주하는 걸로 나왔지만 실 거주지는 남양주시 다산동이다.[8] 60대라는 나이를 감안하면 굉장한 장신에 속한다. 최양락 본인은 182cm라고 주장하는데 예전 아침마당 프로에 같이 나온 아내 팽현숙이 183이라 언급하는 등 알고 말한 듯 하지만 왜 거짓말을 하냐며 흥분한 적도 있었다. 평소에는 182cm라고 주장하지만 1호가 될 순 없어에서 톰 브라운을 사러갔을 때 자막에 183cm라고 뜨고 출연진 중 김지혜가 키가 183cm라고 말해도 지적하고 넘어가지 않았다. 다만 185cm인 박준형, 양상국과 섰을때 키가 비슷했었다.[9] 살림남에서 집안 공개 당시 아내가 방에 십자가와 불상을 같이 둔 이유에 대해 말할 때 어머니가 불교 신자임이 확인되었는데, 이를 통해 불교 집안에서 태어났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최양락도 과거 신문에는 종교가 불교로 기재되었고, 2008년 불교TV에서 최양락쇼 진행, 2009년에 불교계 언론과 인터뷰를 했던 기록이 있는 걸 봐서 2010년 이후 무종교인으로 전향한 것으로 보인다.[10] 도고초등학교 화천분교장으로 격하 후 2005년 3월 1일부로 도고초등학교와 통폐합되었다.[11] 81학번으로, 대학교에 입학한 해 개그콘테스트에서 대상을 받아 연예계에 뛰어들며 학업을 멈췄다가 재입학 절차를 통해 학업에 복귀하고 1년 반의 수학 기간을 거쳐 2014년 2월 졸업했다. 입학년도 기준 33년 만이다.[12] 2010년 MBC 알까기 제왕전 방송에서 보조 진행자인 홍진영이 일부러 그렇게 소개하기도 하고, 이름이 띄워질 때도 "알"을 일부러 크게 띄우며 그렇게 띄워졌다. 심지어 초기에는 본인도 안녕~들 하신지요? 최~ 알락입니다. 네에~? 라고 소개했다. 나중에 끝부분은 생략했지만.[13] 1호가 될 순 없어에서 나온 별명이자 최양락의 아이덴티티.[14] 1호가 될 순 없어에서 팽현숙이 최양락에게 "이 미친 인간아!!"를 시전해서 생긴 별명이다.[15] 1호가 될 순 없어에서 만든 팬카페이다.[16] 최양락이 대상을, 엄영수가 금상을, 김보화가 장려상을, 이경규가 인기상을 수상했다.[17] '직업에 있어서의 시간과 공간'이란 제목으로 출전해서 대상을 차지했다. 그는 이번 콘테스트에서 직업에 따라 권투 경기 등을 보는 각도가 다르다는 점을 소재로 채택했다. 마지막 대상 수상자로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잠시 동안 무대에서 정신을 잃는가 하면 트로피를 받아들자마자 눈물을 쏟던 그는 "국민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나를 가르쳤던 모든 담임선생님들께 이 기쁨을 전하고 싶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18] 전성기가 끝난 2010년, 2020년대와 유사하게 웃기는 능력 하나는 좋았지만 그때도 방송 트렌드에 적응을 못한 것으로 보여진다. MBC입사 동기이자 절친한 사이인 김정렬도 최양락의 이적에 대해 스카우트가 아니라 MBC에서 쫓겨난 것이라고 덧붙였다.[19] 최양락과 반대로 그의 선배 주병진은 KBS(원래는 동양방송에서 데뷔했는데 언론통폐합에 의해 KBS로 간 것)에 출연하다가 MBC로 이적했다.[20] 어설프면서도 애교스런 개성적인 연기로 중·고등생 등 10대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21] 보통 이름은 거의 불리지 않고 그저 양랙이 아부지로 불린다. 참고로 최종학은 실제 최양락 부친의 성함이다.[22] 해당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곡은 이 앨범의 유일한 오리지널 곡 <귀염둥이 철민이>로 유머 일번지의 코너 중 하나인 "남 그리고 여"의 캐릭터 송이다.[23] 위 기사에서는 앨범 4장을 냈다고 밝히고 있는데, 나머지는 크리스마스 캐롤이다. 네로 크리스마스라고 해서 네로 25시 팀이 부른 것이 있고, 꺼꿀이와 장다리라고 해서 코미디언 김정식과 부른 것이 있다.[24] 팽현숙과는 남 그리고 여에서 커플로 출연했고, 임미숙과는 네로 25시에서 황제와 황비로 출연했다. 덕분에 이를 이용한 개그도 곧잘 써먹었다.[25] 원래 동료 개그맨 조금산이 임미숙을 짝사랑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임미숙은 최양락과 같이 네로 25시에 메인으로 나올 정도로 인기가 높은 반면 조금산은 그냥 그저 그런 개그맨이었다. 조금산이 임미숙에게 접근한 시도는 본의 아니게 김학래와 임미숙을 연결시켜 준 꼴이 되었고, 결국 그 둘이 결혼하기까지 하면서 조금산은 그야말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 꼴이 되었다. #[26] 팽현숙이 훗날 방송에서 본인 이전에 최양락이 교제한 여성을 알고 있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27] PD가 반대하는데도 최양락이 팽현숙을 주연으로 해야한다고 우겼다. 과거 전유성의 명령으로 팽현숙에게 찾아가 개그우먼 시험볼 것을 요구한게 최양락이었기 때문에, 데뷔 후 코너 주연을 못하여 화가 난 팽현숙에 대한 미안함도 있었고 팽현숙에게 독촉까지 받았기 때문이다. PD가 신인때부터 연기를 잘해서 당시 이미 인기 코미디언이던 김미화나 이경애를 주인공 역할로 원했지만, 최양락이 "김미화건 이경애건 날때부터 스타였습니까? 걔네들도 기회를 줬으니까 된 거죠. 현숙이한테도 기회를 주면 됩니다."라고 주장했다고 한다.[28] 팽씨 성은 국내에 3,000여명밖에 안되는 희성이다.[29] 이건 이 부부와 유명 코미디 코너도 했고 충청도 출신이기도 한 김학래, 임미숙 부부도 과거에 다른 방송에서 이미 친 적 있던 드립이다. 최근에 언제 뽀뽀했냐는 얘기가 나왔을때 김학래가 "언제했는지 모르겠다"고 하자 임미숙이 "뽀뽀 안 했다. 결혼하고 딱 한번 뽀뽀해서 아들 하나 낳고 다 끝났다(?)"고 드립을 쳤다.[30] 명랑히어로에서 김구라가 SBS 희극인실 소집에 안 나왔다고 SBS 희극인실 실장인 최양락이 식당 술자리에서 김구라를 때렸다고 밝힌 바 있다. 그것도 최양락이 구두신은 발로 김구라의 무릎을 세게 차서 서 있던 중심을 잃게 만들었을 정도라고 한다.(대신 당시 최양락은 이날 김구라를 우연히 만나기 전에 이미 술을 많이 마신 상태였다고 한다.) 김구라는 대놓고 이를 "형님이 그때 제 쪼인트를 까셨다"라는 쌍스러운 어휘를 써서 이야기 했는데, 이에 대해 훗날 최양락은 "우리가 김구라씨가 물론 불만도 있고 맺힌게 있겠지만, 그냥 내가 당시 술에 많이 취해가지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소란피우면서 혼냈다고만 이야기하면 되지. 그것만 해도 내가 나쁜놈 되는 건데, 어떻게 방송에서 쪼인트라는 말에 깠다라는 말까지 쓰냐"며 적반하장격 항변을 했다. 김구라는 "아니 형님, 쪼인트를 쪼인트라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합니까?"라며 다시 항변했다. 물론, 이게 잘한 짓은 아니지만 김구라의 무명시절 개념상실한 행태로 인해 본의아니게 최양락이 김구라를 제대로 참교육을 해줬다는 농담도 있다. 이후 최양락은 이경실의 유튜브에 나와서 자신이 SBS 개그맨 실장이 된 후 가장 먼저 한게 "개그맨들 사이에 행해지던 폭력을 없앤 것"이라고 말하며 김구라와의 일화를 사실상 부정했다. 근데 그당시 신인이던 김경식은 본인이 NG를 너무 많이 내서 촬영스케줄에 문제가 생긴 날, 촬영 중단시간에 최양락이 10분간 세워놓고 말도 안하고 본인 분장만 고치며 차갑게 노려보다가 더 차가운 목소리로 "너는 그냥 애가... 안 되겠다... 아니 거기서 그 어떻게 그걸... 에이... 됐다.. 분장하러 가라.."라며 무시하는 말만 하고 자리를 뜨자 상처를 받아서 40살이 넘어서도 잊지 못했다고 한다. 차라리 최양락이 너때문에 녹화 꼬여서 이게 뭐냐고 화내며 한대 때리고 갔으면 잊었을 거 같다고 한다.[31] SBS 개국 당시, KBS에서 끌어왔던 개그맨들이 이용가치가 없어지자 토사구팽 형식으로 내쳤는데 최양락 역시 이에 말려들었다. 아이러니한건 최양락의 좋은 친구들 후임인 박수홍도 KBS 출신이었다. 근데 박수홍은 반대로 좋은 친구들에서 남희석과의 케미로 승승장구하며, 박경림 김장훈과 새 프로그램도 하고 이후 야심만만까지 쭈욱 나아가게 되었다. 사실 좋은친구들 전에도 이미 기쁜 우리 토요일로 차태현과 대박을 냈었다. 오히려 KBS 시절에는 유명한 개그맨이 아니었고, 당시 박수홍을 SBS 출신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았다.[32] 사실 개편 등 얼마든지 좋은사유로 둘러댈 말이 있었을텐데 아이돌 이름도 잘 모르지 않냐는 노땅 취급을 하며 아예 내보낼 작정을 했다고 한다. 사실 방송국 입장에서 시청률도 고공행진이었고 분위기 좋은 상황에 딱히 하차 명분이 없던것도 맞았다.[33] 이 과정에서 첫 회부터 MC를 맡아 온 김미화는 타의로 그만뒀다.[34] 초창기에는 오디션식으로 심사를 하는 위주로 진행 하다가 후반기에는 그 오디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참가자들이 개그코너를 진행 하는 위주로 변경하였다.[35] 이 작품은 출연진 대다수가 시트콤 첫 출연이었고 작가와 PD 모두 시트콤을 처음 해보는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같은 해 3월 초 방영 예정이었으나 전체적인 방송일정 변경 때문에 첫 회가 2000년 1월 22일로 앞당겨져 서둘러서 밤샘 제작을 해야 했다.[36] 2001년 봄 개편 때 <코미디 닷컴>이 폐지된 뒤 월요일 밤에 신설된 <오늘밤 좋은밤>으로 옮겨 계속 방송되었지만 '알까기', '추억은 방울방울' 등의 간판 코너가 2001년 9월 24일 종영된 후 하락세를 걸어오다가 그 해 가을 개편(10월 29일)으로 막을 내렸고 MBC는 그 이후 1년에 2개 이상 코미디 프로그램을 방영하지 않았다.[37] 2001년 가을 일본에서 돌아온 뒤 방송 활동 재개작이었던 SBS <코미디쇼 오 해피데이>의 조기종영 이후 실의에 빠진 이봉원이 <소문만복래>란 프로그램을 통해 최양락과 재회했고 이봉원은 해당 프로그램으로 TV 고정 출연을 재개했으며 그 이후에 한동안 경인방송 위주로 활동해 왔는데 김경식이 당시 최양락과 이봉원이 나온 iTV 고정 출연 프로그램( '소문만복래', '러브 러브', '코미디쇼 4막5장', '최양락 이봉원의 금요천하') 후보에 한때 거론되었으나 최양락, 이봉원 등 SBS 시절의 선배들과 같이 연기하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겨 고사했다.[38] 1999년 '코미디 살리기' 이후 SBS 고정 MC 복귀를 했는데 2001년 가을 '이주일 최양락 남희석쇼'로 SBS 복귀를 할 예정이었던 게 이주일의 폐암 판정으로 무산된 일이 있었다.[39] 느긋하고 넉살좋은 듯하면서 은근히 숨겨진 뒤끝과 촌철살인으로 대표된다.[40] 지상파 방송을 타기엔 다소 부적절한 단어지만, 이것 말고는 딱히 표현할 단어가 없다며 양해를 구했다.[41] 명랑히어로에 게스트로 출연해서 방송복귀의 의지는 보여줬지만, 본인이 게임을 잘 모르고 못하는데 이에 대해 받을 비난이 싫어서 예능형 버라이어티는 못하겠고, 오로지 토크형 버라이어티에 나가고 싶다고 프로그램을 가리는 모습을 보여줬다.[42] 위에도 나와있지만 최양락은 MBC 개그 콘테스트 1기 대상 수상자다. 굳이 최양락뿐 아니라 지상파 개그맨 초창기 세대들 상당수는 자기 개그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편이다. 최양락은 종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기는 개그콘테스트에서 1등으로 데뷔했고 이경규는 간신히 컷트라인으로 데뷔했다는 걸 강조하면서 자기가 웃기는 능력만큼은 이경규를 월등히 앞섰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드립으로 "그때 MBC가 코미디언 한명만 덜 뽑았어도, 우리 이경규씨는 지금쯤 다른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고 계셨을텐데"라는 디스를 방송에서 몇번 한적이 있다. 전성기 때는 자신의 개그를 일종의 예술 활동이라고 생각하여 남들은 다 하는 밤무대를 뛰지 않았을 정도로 자부심이 넘쳤다고 한다. 대신, 밤무대에 서지 않아서 한창 전성기 때도 동급의 다른 개그맨 동료들보다 궁핍한 생활을 했다고. 어느 정도 뜨고 나서도 80년대 후반까지 마포아파트에 살았는데, 사실 그곳은 이름만 유명하지 실평수가 9평 정도 되는 소형 서민 아파트였다. 동시대(80년대 중반)에 김형곤은 용산구 이태원동의 대형 주택에 살았다. 게다가 더 정확히는 의외로 후배들한테 돈을 잘 쓰는 것도 겹쳐서 그런 것이었다. 신인들 중에 본인이랑 같은 코너를 하면서 방송국에서 거리가 먼곳에 사는 후배들은 월세없이 최양락 집에 한두달 같이 살게 해주면서 식비나 교통비까지 대주곤 했다. 물건 사는 심부름을 시켜도 거스름돈은 후배가 다 가지게 해주었고, 본인 주도 회식을 하면 회식비는 물론, 3차나 4차 술자리처럼 늦게까지 남은 후배들은 택시비를 따로 주었다. 큰 집에 처음 살기 시작한건 팽현숙과 혼인하면서 고덕동의 대형빌라를 대출 끼고 샀을때부터라고 한다.[43]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최양락의 개그스타일은 충청도 특유의 리듬감과 완급조절을 통해서 청자의 호흡을 쥐었다 폈다하는 개그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이 스타일은 꽁트에서는 매우 효과적이지만, 긴시간 동안 게스트와 합을 맞추어야 하는 버라이어티 MC나 토크쇼에서는 그닥 도움이 되지 않는다.[44] 실제로 명랑 히어로 39회차 이봉원편의 게스트로 출연해서, 화려한 입담과 포복절도의 에피소드 방출 등으로 완전히 주객전도된 방송분량을 장악하더니, 47회차에서는 아예 본인이 주인공이 된 편이 만들어지고, 그대로 명랑히어로 독서토론회 코너에 고정MC로 합류했다. 하지만, 막상 합류해서는 MC들과의 티키타카를 전혀 못 보여주며 이후 3회만에 프로그램이 종영(물론, 명랑히어로 자체가 높으신 분들의 외압이 살짝 작용했던 것으로 포맷이 변경되면서 시청률이 떡락했다는 것도 일부 있다.)되었다. 그리고 2009년 방영했던 야심만만2에서 이른바 "젖꼭지" 에피소드로 프로그램을 뒤집어 놓더니, 이후 야심만만2 고정 MC로 섭외되었다. 하지만, 여기서도 딱히 이렇다 할 활약은 없었고 7개월 뒤 종영되고 말았다.[45] 근데 이건 심형래나 생전의 김형곤도 같은 일화를 말한 적이 있어서 좀 애매하다. 모든 코너인지는 몰라도 유머1번지 시절 그들이 코너주였던 꽁트는 그들이 조단역들 대사까지 다 정했다고 한다.[46] 그래서인지 이창훈이 코미디 대상을 받았을때는, 그간의 애쓴 공로보다도 "바보같은 사람이지만, 다 본인이 잘해서 상을 받은 것이라 생각한다."며 그를 축하해주었다.[47] 유재석은 깐족이 아니라 까불이였다. 다만, 20대 무명 시절에는 김용만의 집에서 밥 먹다가 반찬에 고기가 없다고 밥상에 뱀이 나오겠다고 김용만 어머니에게 몇 마디 붙였던 것을 보면 최양락처럼 사람 못 가리고 눈치 없고 할 말과 안할 말을 가려서 하지 못한 것은 맞다. 그나마 이후 유재석은 나이도 먹고 사회생활을 계속 하다 보니 뭐가 옳고 그른지를 제대로 캐치도 하고 무명에서 벗어난 후 성향을 고쳐서 까부는 습관을 버렸다. 지금은 프로그램을 위해서만 까불거린다.[48] 주병진은 온갖 사건사고를 많이 일으키긴 했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성격은 굉장히 온화하고 신사적인 사람이다.[49] 최양락은 당시 주병진이 주인공이던 KBS 코미디 프로그램의 코너에서 조/단역을 맡았는데, 평소에 연기 연습하다가 주병진에게 혼난 적이 많아서 쌓인 게 많았다고 한다.[50] 이홍렬은 데뷔는 TBC에서 했지만, MBC 특채 개그맨으로 주 활동도 MBC에서 했고, 최양락은 반대로 데뷔는 MBC에서 했지만 주 활동은 KBS에서 했다.[51] 이홍렬은 훗날 방송에서 본인은 키가 작은데 최양락은 키가 훨씬 크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도구를 쓰지 않으면 머리를 때릴 수 없어 안 된다는 본능적인 판단을 했다고 밝혔다.[52] 이홍렬은 비록 엄한 군기반장이긴 했지만 신인 때 이경규를 많이 챙겨준 사람이기도 하다. 어느 날은 이경규가 자신이 개그맨인 걸 주변 사람들에게 증명하고 싶어서 선배 개그맨들과 사진을 찍고 싶어했는데 혼날까봐 두려워서 감히 말 못하고 있다가 용기를 내어 그나마 자신에게 잘 대해주는 이홍렬에게 조심스럽게 자신과 사진을 찍어달라는 부탁을 했고 이홍렬은 "진작 말하지 그랬냐?"며 흔쾌히 웃긴 표정까지 지으며 같이 사진을 찍어주었다고 한다. 이후 이경규는 모 선배 개그맨한테 "후배가 선배랑 사진 찍는데 건방지게 실실 웃는다"는 이유로 코피가 터질 때까지 맞았다고... 게다가 똑같은 짓을 한 이경규는 혼을 안 낸 걸 보면 알 수 있듯이 허락 없이 선배 담배 뺏어서 불붙인 것 자체는 화나지만 그래도 넘어갔는데, 같이 흉보던 후배가 보란 듯 똑같이 그러니 폭발한 것.[53] 둘 사이의 냉전이 길어진 것은 90년대에 이홍렬이 방송 활동을 잠시 중단하고 몇 년간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했기 때문인 영향도 있다.[54] 사실 김형곤도 마포아파트에 산다는 것만 많이 들었지 몇동 몇호인지는 몰랐는데, 최양락과 2달 동거했던 후배 김한국에게 문의하여 동호수를 알아냈다고 한다. 김한국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가르쳐 줬다고 한다. 김한국은 본인보다 나이 어린 선배였던 최양락이 처음 마포아파트로 이사갔을 때 최양락의 요구로 짐을 나른 뒤 최양락이 "한국씨 집이 인천광역시 간석동이라고 그랬죠? 전철 타고 방송국 출퇴근하기 힘들테니까, 오늘 온 김에 한동안 우리 집에서 자고 방송국 다니세요."라고 하여, 적은 짐만 갖다 놓고 2달 동안 최양락과 동거를 했다고 한다. 설거지나 빨래를 하기도 했지만, 월세를 전혀 내지 않았고 출퇴근도 전액 최양락의 돈으로 택시 타고 다니고 같이 외식할 때는 최양락이 식사비도 전액 다 내주고 최양락의 자택에서 해먹는 식재료도 최양락 돈으로만 다 사는거라, 경제적으로는 꽤 큰 이익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이 어린 선배의 눈치를 보는 것도 그렇고 김형곤과 친해지기도 해서 김한국은 2달만에 최양락 집에서 나왔다. 김한국이 김형곤과 같은 소속사에 들어가게 되고 김형곤이 김한국의 상남자다운 모습을 좋게봐서 김한국에게 동갑이니 방송국 외에 둘만 있을때는 친구를 하자고 하여 친구가 되었고, 이후 김형곤이 아예 둘이 같이 살자고 하여 두 사람이 수개월간 같이 살았다고 한다. 김한국의 회상으로는 김형곤과 같이 산 지 6개월쯤 되어 이 사건이 터졌다고 한다.[55] 최양락은 원래 데뷔하고 3년간 신길동의 단칸방에서 월세를 살았다고 하는데, 3년 정도 지난 시점에 당시에도 지은지 20년이 지난 구축 소형 아파트(실평수 9평)였던 마포아파트로 이사갔다고 한다. 이후 팽현숙과 혼인할 때까지 돈을 모으면서 거기서 4년 정도 살다가 1988년에 신혼집으로 강동구 고덕동의 대형 빌라를 구매해서 이사를 가며 처음으로 큰 집에서 살게 되었다고 한다.[56] 최양락이 케이블 방송에 나오던 시절에 같이 출연했던 김학래가 이 절에서 삭발하고 살다온 이야기를 주병진한테 족발로 맞은 이야기에 붙였는데, 최양락이 그만 하라면서 "아니 그건 그때가 아니잖아. 그 얘기는 하지 마요."라고 했다. 김학래는 웃으면서 "아니 최양락씨 그때 절에서 살던거 맞잖아."라고 말했고 다른 개그맨들도 응했는데, 족발뼈로 맞은 사건이 아니라 이 사건 때문이었다.[57] 전성기 때 김형곤의 별명 ’공포의 삼겹살’도 그의 군기반장 이미지에서 나온 것.[58] 나이는 이성미(1959년 생, 1980년 데뷔)가 임하룡(1952년 생, 1981년 데뷔)보다 7살 어리지만 개그맨 짬밥으로는 1년 선배다. 현재의 장도연(1985년 생, 2007년 데뷔)과 정태호(1978년 생, 2008년 데뷔)의 관계가 이와 완벽하게 동일하다.[59] 그렇다고 이성미가 8살 많은 임하룡에게 노인네라는 별명을 붙여준 것도 예의없는 행동이기는 하다. 아무리 단순히 친한 선후배라고 할 짓은 아니라는 점. 사실 이건 임하룡이 워낙 대인배로 유명하기 때문에 너그럽게 넘어간 것이지 아무리 1년 선배라고 해도 7살이나 많은 오빠한테 대놓고 이러는 것은 개념없는 행위이긴 하다. 앞서 언급된 장도연 역시 후배 정태호를 막 대하진 않고, 동성끼리인데다 나이 차이도 비교적 적은(3살) 안영미와 신봉선도 어린 선배가 어느 정도 존대를 하며 조심스럽게 대한다.[60] 비디오스타 91화 참고.[61] 임하룡이 최양락보다 선배인 줄 아는 사람들이 있지만, 일단 기수상으로는 81년 특채로 동기이다. 그래도 과거 경인방송 프로그램에서 원로 개그맨들이 많이 나왔을 때 밝힌 바로 개그맨 채용 전 방송 경력이 있어서 이를 어느 정도 인정받아서 1980년 데뷔로 쳐 줬다고 한다. 최양락 본인도 아는 형님에 출연했을 때 심형래는 후배라고 불렀지만, 임하룡은 선배라고 불렀다. 최양락과의 나이가 딱 10살 차이가 난다.[62] 참고로 임하룡은 데뷔를 늦게 한 탓에 본인보다 약간 어린 이홍렬도 선배라, 이미 대스타 중년 개그맨이 되어서 했던 그 유명한 귀곡산장 코너를 하던 시절에도 선배 이홍렬이 코너 리더였다고 한다. 노래 삑사리가 이홍렬보다 상대적으로 많았던 임하룡을 이홍렬이 꽤 구박해서 서러웠다고 한다. 친해지고도 서로 "자기"라고 불렀으며, 더 친해지고 노년까지 된 지금도, 이홍렬은 "형"이라고 부르게 바뀌긴 했으나 "형 박자 좀 잘 맞춰!"라는 식으로 반말을 하고, 임하룡은 이홍렬을 아직도 "자기는 얼마나 잘하길래. 자기도 아까 한번 틀렸잖아."라며 "자기"라고 부른다. 2020년대 모 종편 프로그램에서 한 번 원로스타개그맨 특집 듀오로 나왔는데, 귀곡산장 특별연기를 하기로 섭외받고 방송전에 만나서 연습할 때 이홍렬이 옛날처럼 또 구박했다고 임하룡이 밝혔다. 댄스는 강한데 노래가 약하다고 한다.[63] 임하룡은 군기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찾아보면 미담만 줄줄이 나올 정도의 인격자이다. 이혼한 이경애가 루머로 고통받을 때 유일하게 나서서 그녀를 변호해주거나 감자골 사태 때도 이경규와 함께 이들의 편을 들어준 둘뿐인 선배였으며, 후배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자, 아들의 결혼식 때는 무려 하객만 2천명이 참석해 유재석조차 밥도 못 먹을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룬 인물이다. 그런 임하룡이 혼냈다는 말이 나오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최양락이니 이건 깐족계의 레전드란 말도 모자란다. 당장 위에서 주병진에게 족발을 얼굴에 맞은 뒤 울었던 최양락을 보고 상황을 수습했던 사람이 다름 아닌 임하룡이었으니...[64] 전유성과 최양락은 엄청난 절친으로 유명하다. 한때 전유성이 영화사에서 직원으로 일한 적이 있는데, 서울예전과 영화사가 가까워서 최양락이 매일 대학 수업이 끝나면 전유성을 만나려고 찾아오는 바람에 영화사 사장이 나중에 최양락도 본인 휘하 동료 직원인 줄 착각하고 같이 부산광역시로 출장을 보낸 썰이 있을 정도. 최양락은 그 와중에 진짜로 부산에 가서 전유성과 자고 왔다고 한다. 전유성은 최양락이 서울로 상경해서 처음으로 친해진 연예인이었다고 한다. 개그맨으로 뽑힌 직후 선배의 추천으로 개그를 배우러 전유성을 찾아간 것이 친해진 계기였다고...[65] 객관식으로 화학 시험을 치르는데 답안지를 이름만 쓰고 백지로 냈다고 한다.[66] 대표적으로 원로 코미디언 서영춘의 "에그머니나~?"와 표정 개그.[67] 이경규도 제일 무서운 선배로 이홍렬을 꼽았을 정도로 이홍렬은 개그맨들 사이에서 엄한 군기반장으로 유명하다. 정확히는 성격 자체는 무난하지만 군기를 잡을 땐 잡는 스타일로 그래도 이경규한테 그나마 잘해주던 선배였는데, 나중에 이경규가 이홍렬을 만만하게 보고 위에 기술한 담배 에피소드처럼 많이 까불기도 했다고 한다. 상술된 임하룡도 당시 40대 중후반의 베테랑 나이와 코미디대상 2회 수상자라는 전설적인 경력에도 불구하고 본인보다 연하인 선배 이홍렬에게 귀곡산장 노래연습 중 틀릴 때마다 구박을 당하고 무서워했다고 하니 무서운 선배였던 건 팩트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서로 경력이 되는 만큼 젊을 때 이경규나 최양락에게 화낸 것처럼 심한 건 없었고, 그냥 "형 자꾸만 틀리니까 저쪽에 가서 따로 혼자 박자 연습하고 와!"라는 정도의 명령만 내린 수준이라고 한다.[68] 이홍렬보다 어리지만 무서운 건 이 쪽이 더 심했다. 이홍렬한테조차 까불었다던 이경규도 주병진과 방송하던 시절에는 쉬는 시간에도 주병진에게만큼은 전혀 까불지 못했으며, 당시 방송국 희극인실이 개그맨들의 수다 문제로 시끄러울 때도, 주병진이 잠깐 나타나 조용히 하라고만 하고 가면 몇시간이 조용했다고 한다. 주병진의 친구이자 동시대 레전드 가수 이문세가 "사석에서 병진이가 후배들을 혼낼 때는 친구인 나도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고 했을 정도다.[69] 자세한 상황은 불명이지만 개그계의 또 다른 성인군자로 유명한 강석도 최양락의 깐족거림에 못 견뎌 한대 때렸다는 말이 있다. 임하룡과 마찬가지로 강석이 후배를 혼낸 유일한 케이스.[70] 다만 이 건을 증명하는 하상훈 구타 사건에 대해서는 진위가 불분명하다. 최양락이 얼떨리우스를 연기한 하상훈을 구타해 병원에 실려갔고 최양락이 사과했다는 뉴스가 신문에 실렸다고 퍼져 있었으나, 엄연히 언론에도 보도돼 있는 김형곤 건과는 달리 최양락이 하상훈을 때려 입원시켰다는 뉴스거리는 일절 보이지 않는다. 최양락 본인은 본인이 SBS에 새로히 들어옴과 동시에 똥군기를 다 없앴다고 항변했다. 그래놓고 후배 김구라가 쪼인트를 까는 바람에 이 쪽도 신빙성이 없어졌지만...[71] 본인 행적 때문이 아니라 이미지 때문에... 사업 실패 개그, 빚 개그를 하다 보니 여자한테 빌붙는 빈대&무력한 가장 이미지 생겼기 때문. 물론 실제 사생활은 그런 이미지와 거리가 매우 멀다. 1990년대에 가난한 무명 개그맨 후배들에게 보이기만 하면 용돈을 주고, 술집이나 식당 등에서 우연히 만난 다른 분야 연예인 후배들에게도 음식값을 계산하기 일쑤였으며, 술자리도 항상 다 계산하는 걸로 가장 유명한 개그맨이었고, 본인의 사업이 망했을 때도 더 경제적으로 어려운 무명 개그맨 후배에게 어쩌다 자신에게 들어온 행사 수입을 월세내라고 줘버려 부인 박미선의 속을 태웠을 정도로 후배들에게 많이 베풀어서 후배들이 충성을 바친다 할 만큼 개그계에서는 이미지가 매우 좋고 오히려 대인배 이미지로 대표적인 사람이다.[72] 심지어 최양락조차도 "나는 봉원이만큼 착하고 성격좋은 개그맨을 한 명도 본적이 없다"는 말을 남겼을 정도인데, 상술된 깐족질을 이봉원에게도 상당히 많이 해봤는데("봉원이 너는 대흥동 너네 집 근처에 걸어서도 갈 거리에 서강대학교에 홍익대학교에 좀 더 가면 연세대학교까지 다 있는데 왜 하필 경기도에 있는 이름 모를 대학을 그 개고생해서 버스를 몇 번을 갈아타고 다녔냐?"라고 학력 드립을 한 적이 꽤 있다고 하고 그 외에도 다른 것들로도 상당히 많이 약올려봤다고 한다.), 당시 이미 스타 개그맨이던 이봉원은 자존심이 상하고도 남을 드립으로 수십번이나 놀림감이 됐음에도 단 한 번도 화를 내거나 불쾌한 기색을 보인 적이 없고 최양락이 농담을 한 걸로만 받아들이고 이 형은 왜 이리 유머를 잘 하냐며 깔깔 웃기만 했다고 한다. 그런 대인배스런 태도에 오히려 더는 깐족질을 안 하게 되었고 이봉원과 있으면 마음이 편해서 단둘이 술을 정말 많이 마셨다고... 가장 결정적인 건 황기순 도박 사건인데, 황기순이 해외에 나가서 도박으로 소지금을 싹 날려서 무일푼 노숙자로 귀국하지도 못하고 거기서 꼼짝없이 구걸하고 앉아 있었는데 그때 황기순에게 항공 비용을 줘서 귀국하게 도와준 장본인이 바로 이봉원이다. 황기순에게 이봉원은 그야말로 생명의 은인으로, 만일 이봉원이 없었더라면 황기순은 정말로 지금까지도 거기서 말도 안 통하는 나라에서 노숙자로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73] 당장 MBC 개그콘테스트 대상으로 화려하게 데뷔했음에도 얼마 안 가 MBC의 모 높으신 분에게 찍혀서 쫓겨났다고 한다. MBC에서 데뷔하고도 정작 주 활동은 KBS에서 한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74] 여기서 KBS 직속 후배 권재관과 같이 진행하는데 최양락 본인이 이장으로, 권재관이 청년회장 컨셉으로 진행하고 있다. 보다보면 권재관 역시 최양락 못지 않은 깐족 신공으로 의외로 엄청난 시너지를 내고 있다.[75] 훗날의 날아라 슛돌이 김종국 역할 같은 것이었다. 물론 김종국과 달리 최양락이 축구를 자주하거나 잘 아는건 아니었으니 진짜 축구교실 코치가 코치로 와서 지도하는 형태.[76] 최양락이 다른 어린이들에게 경기계획을 설명하다가 혁이에게 "혁이도 축구 알지?"라고 했더니 혁이는 아무말도 안하고 계속 땅만 보고 서 있었다. 분위기는 미리 어떤 방송인지 설명도 안하고 당일날 그냥 축구장에 데려온 느낌.[77] 60년대 남성의 평균 키는 167~8 정도이다,오늘날로 따지면 190cm 정도의 장신이다.[78] 2010년에는 안녕...들 하셨지요? 네에~? 라고 한다. 듣는 사람에 따라 눼엑~? 으로 들릴 수 있다.[79] 상위에서 언급한 야심만만 시즌 2에서 제대로 터뜨리고, 이후 MBC의 떼토크쇼의 시초격인 명랑 히어로에서 이봉원의 게스트로 나와서 거의 자신 위주의 방송으로 빵빵 터뜨리는 등의 오리지널 토크쇼에서는 여전히 화려한 입담을 자랑했다. 당장 유투브에 "최양락 레전드"라고만 쳐도 옛날 전성기 시절 코미디외에는 대부분 위에 언급한 토크쇼 장면들이다.[80] 고향도 같은 충청남도다. 김응수는 서천 출신, 최양락은 아산 출신. 단, 김응수는 최양락보다 1살 연상으로 재수를 해서 서울예대에 진학했기 때문에 최양락과 학번이 똑같은 것이다.[81] 개그맨 김한국이 2023년에 본인의 유튜브방송에서 언급한 바에 의하면, KBS에서 같이 활동하던 시절에도 최양락과는 "한국씨~", "양락씨~" 상호존칭에 상호존대말을 쓸 만큼 어색한 사이였다고 한다. 나이는 김한국이 두살 많지만 방송데뷔가 최양락이 3년 빨랐고, 거기에 MBC 공채로 데뷔한 최양락과는 달리, 김한국은 KBS 공채로 데뷔했기에, 생각보다 서로간의 마음의 벽이 있었다고...[82] 부인 팽현숙의 지인이 베들링턴 테리어 부부반려견을 맡겼는데, 강아지용 맥주를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동지애를 느꼈다.[83] 1호 부부의 장녀 최윤하와 동갑이라고 한다.[84] 여담으로 그의 절친 이봉원 또한 한화 이글스 팬인데, 라디오스타에서 말하길 자신의 가게(봉짬뽕)가 있는 천안에서 오래 살다 보니 팬이 되었다고 한다.[85] 역시 충청도의 아들을 자처하며 골수 한화 이글스팬이자 박찬호팬으로도 유명하다.[86] 본인의 차도 아니고 남의 차를 주차하는 일인데 주차를 잘 하지 않으면 부인인 팽현숙이 일을 맡기지 않을 것이다.[87] 네이버 프로필에도 게재됐는데, 네이버 프로필은 본인 혹은 대리인만이 작성 가능하다.[88] 절친 이봉원과 동반 출연[89] 아내 팽현숙과 동반 출연[90] 아내 팽현숙과 동반 출연[91] 충남도지사 인 김태흠과 동반출연[92] 팽현숙과 함께 출연.[93] 팽현숙과 함께 수상.[94] 팽현숙과 함께 수상.[95] 팽현숙과 함께 수상.[96] 팽현숙과 함께 수상.[97] 팽현숙과 함께 수상.[98] 팽현숙과 함께 수상.[99] 다만 강의 같은 것은 하고 있지 않다. 아마 아내인 팽현숙이 관동대에 재학중이라 이름만 올린 것으로 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