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9 18:57:37

가족오락관

가족오락관 주요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한국PD대상
TV 대중문화 부문 작품상
한바탕 웃음으로
(1993년)
가족오락관
(1994년)
[1]
일요일 일요일 밤에
(1995년)

}}} ||
<colbgcolor=#dddddd><colcolor=#000000> KBS 1TV 예능
가족오락관
家族娛樂館|Family Entertainment
파일:KBS 가족오락관 로고.png
시청 등급 파일:모든 연령 시청가 아이콘.svg 전체 관람가
채널 KBS 2TVKBS 1TV
방송사 MIN Drama, KBS SKY DRAMA, KBS prime, KBS Story
방송 시간 역대 방송 시간 참고
방송 분량 1시간
방송 기간 1984년 4월 3일 ~ 2009년 4월 18일
방송 횟수 1237부작
제작 KBS, DSP미디어
책임 프로듀서 박정미
연출 한동규
각본 오경석, 박미경, 김여진, 최미림
출연 역대 MC 참조
HD 제작 HD 제작·방송

1. 개요2. 기획 의도3. 역사4. 오프닝 곡5. 변천사
5.1. 1980년대 초반5.2. 1980년대 중후반 ~ 1990년대5.3. 2000년대 초반5.4. 2000년대 중반5.5. 2008년 ~ 2009년 4월 18일
6. 역대 MC7. 역대 방송 시간8. 점수
8.1. 점수판의 역대 형태
9. 역대 게임10. 에피소드
10.1. 보조진행자 출신 연예인10.2. 가족오락관으로 유명해진 사례10.3. 전설의 왁자지껄 사건10.4. 그 외의 일화
11. 논란
11.1. 잦은 여성팀 편애 논란
12. 여담
12.1. 속어로서의 오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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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가족오락관.png
파일:familygame2.png
KBS예능 프로그램으로, 1984년 4월 3일을 시작으로 무려 25년 15일이라는 긴 역사와 총 1237회라는 오랜 방송 회차로 2009년 4월 18일까지 25년 동안 방영되었다. 주 진행자는 허참(본명 이상룡). 여성 진행자는 수차례 바뀌어 무려 21명이나 되는데도 막방까지 허참만큼은 바뀌지 않았다. 다만, 1987년에 교통사고로 인해 딱 한 번 방송을 펑크낸 적은 있다고 한다.

2. 기획 의도

시청자들이 부담없이 웃고 즐길 수 있는 건전한 오락을 제공함으로 생활의 활력소가 되게 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3. 역사

  • 대한민국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시초다. 다만, 초창기에는 열심히 대결해서 최종 점수를 확인하는 구도가 아닌 아침마당과 비슷한 형식으로 진행되다가 8개월만에 널리 알려져 있는 대결 구도로 바뀌었다. 이후 연예인을 출연시키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청률이 급격히 올라 시청률 35%를 찍으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시대가 시대임을 감안하고 일일 드라마, 뉴스 시간대와도 맞물렸던 걸 감안하면 현재로써는 상상도 못할 엄청난 시청률. 1991년부터 1994년까진 저녁 8시 전후, 1994년부터 1998년 봄까지 저녁 8시 30분 전후에 편성되었으며, 1998년 봄부터 2000년 봄까지는 8시 50분 ~ 55분 사이에 편성되었다. 그러다가 2000년 5월에 시행된 봄개편 때 프라임 타임 시간대에 2편의 드라마와 인간극장을 신설 편성함에 따라 저녁 7시로 앞당겨졌고, 더불어서 당해 가을에는 개편으로 KBS 1TV로 옮겼다.
  • 2000년대 들어서는 중장년층 전용 프로그램이라는 인식이 강해졌는데[2], 이는 전적으로 2000년 10월 시행된 가을개편으로 인해 기존의 KBS 2TV에서 KBS 1TV로 보내진 탓이 크다. 물론 1TV로 보내진 뒤에도 핑클 등 청년층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만한 젊고 신선한 게스트들이 꽤 출연했지만, 아무래도 방영 채널이 가진 이미지의 한계로 인해 신인이거나, 점차 나이가 있거나, 전성기가 지났거나, 많이 못 뜨거나, 가난한 생계형 연예인들 위주로 출연하게 되었고, 그대로 서서히 인식이 굳어지게 된다.
  • KBS 1TV 이동 후 토요일 프라임 시간대인 오후 6시에 편성되어 당대 인기 예능 프로그램들과 경쟁하게 된 것 또한 큰 실책이었다. 당시 경쟁했던 대표 프로그램들이 MBCgod의 육아일기목표달성 토요일, KBS 2TV개그콘서트였기 때문.[3]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자릿수 시청률을 굳건하게 유지하면서 끄떡없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1150회 정도를 시점으로 급격히 중장년층 시청자를 위주로 한 진행으로 방향이 바뀌면서 시청률이 6~7%대까지 서서히 떨어졌고, 심지어 '가족오락관 아직도 해?'라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로 존재조차도 희박해졌다. 그나마 2008년 11월에 시행된 가을개편 때 저녁 7시 10분으로 시간을 늦춰서 좀 더 시청하기 편해졌으나, 얼마 안 가 2009년 봄개편 때 돌연 온 가족의 시청이 어려운 오후 5시 10분으로 시간이 바뀌기에 이른다. 결국 2009년 4월 18일 방송을 끝으로 25년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허참은 다시 가족오락관을 KBS 2TV로 편성시켜 주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밝혔지만, 아무래도 타깃이 타깃에 방송 환경도 변했다 보니...
  • 사실 가족오락관의 시청률 및 인기 저하와 그로 인한 종영에는 점수 비공개로 인한 대결 구도의 긴장감 감소, 중장년층 위주의 패널 구성, 진부한 코너 구성, 무한도전1박 2일, 패밀리가 떴다 등과 같은 리얼 버라이어티로의 방송 환경 변화 등을 들 수 있는데, 어느 정도 KBS가 관리만 해 줬다면 계속 살아남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긴 했다. 실제로 2008년부터는 성 대결 구도에서 소녀시대, 원더걸스, 카라 등의 젊고 어리고 신인인 연예인들을 출연시키는 것으로 컨셉을 전격 변경했고, 이게 신의 한 수가 되었는지 8% 선의 준수한 시청률을 보이면서 다시금 살아날 듯한 조짐이 보였다. 하지만 2009년 봄 개편 때 윗선에서 제대로 된 예고도 하나 없이 갑자기 시간을 오후 5시 10분으로 일방적으로 바꿔버리면서 시청률이 반토막났고, 결국 겨우 네 번의 방송만에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말이 좋아서 종영이지 애초부터 윗선에서 억지스럽고 되도 않는 명분을 내세워 시간을 5시 10분으로 일방적으로 바꿔버린 후 언론플레이한 것이나 다름없다. 한 마디로 강제로 종영당한 것인데, 스포츠팀으로 치면 감독이 말이 좋아서 사퇴지 실상은 해고당해서 쫓겨난 셈이다.

4. 오프닝 곡

  • 1984년 4월 3일 ~ 1987년 10월 6일 : Bert Kaempfert - Zambesi
  • 1987년 10월 ~ 1995년 5월: Digital Emotion - Get Up Action
  • 1995년 6월 ~ 1996년 8월: 가족오락관 자체 BGM
    1992년 가족 노래방 코너와 1993년 다함께 차차차 코너 오프닝에서 쓰였다.
  • 1996년 7월: 클론 - 꿍따리 샤바라
    노래의 가사를 프로그램에 맞게 개사해서 오프닝으로 사용되었으며, 1997년까지 코너 소개 영상에도 등장[4]했는데, 고요속의 외침과 방과 방 사이에 사용되었다.
  • 1996년 9월 ~ 1998년 2월: 터보 - 트위스트 킹
    꿍따리 샤바라와 마찬가지로 개사했다.
  • 1998년 4월 ~ 1998년 6월 10일: 오룡비무방 - 비밥바 룰라 룰라
  • 1998년 6월 17일 ~ 1998년 12월 9일: Bellini - Samba de Janeiro
    오프닝 영상은 1998년 7월 8일(711회)에 교체되었다. 뒷날 무한도전에서 거꾸로 말해요 아하 코너에서 쌍박 테마곡으로 쓰였다.
  • 1998년 12월 23일 ~ 1999년 6월 2일: Orchestral Manoeuvres In The Dark - Pandora's Box
  • 1999년 6월 9일[5] ~ 2009년 4월 18일: Dr. Bombay(Jonny Jakobsen) - My Sitar
    1999년 ~ 2000년 클로징(KBS2, 제공 자막)[6], 2001년 하이라이트 클로징(KBS1, 지난주 시청자 퀴즈 당첨자 발표, 엔딩 크레딧)[7][8]에서도 사용되었다. 이 곡을 사용할 때의 오프닝 영상은 무려 3번의 교체가 있었고, 2003년 7월 5일(952회)부터 오프닝 영상이 고정되었다. 2002년 4월 6일 898회부터 2006년 7월까지의 하이라이트 클로징은 이 음악을 사용하지 않는다.

5. 변천사

5.1. 1980년대 초반

  • 1984년 2월 29일3월 16일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편성되었으며, 1984년 4월 3일에 정규편성 첫 방송을 시작하여 KBS2 화요일 저녁 7시에 80분간 방송되었다.
  • 형식은 주로 게임보다는 현재의 토크쇼 형식과 비슷한 형태로 진행되었다.
  • MC는 현재와 달리 앉아서 진행했으며, 주로 연예인보다는 스포츠 스타, 사회 각층 인사 등을 초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5.2. 1980년대 중후반 ~ 1990년대

  • 초창기에는 팀 구도 외에도 다양한 형식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한 바 있다.
  • 이 때부터는 주로 연예인들을 초대하여 널리 알려져 있는 대로 진행하게 되었으며, 잘 알려진 게임들의 대부분이 이때 만들어졌다. 한때 중반 30%대를 넘나드는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이 때가 이 프로그램의 전성기나 마찬가지였다.

5.3. 2000년대 초반

  • 2000년에는 수요일에서 목요일, 토요일로 세 차례나 바꿔서 진행되었다. 2000년 10월 가을개편으로 KBS1에서 토요일 오후 6시부터 60분간 방송하는 것으로 시간대를 옮겼으며, 당시 심의실의 심의로 뿅망치 게임, 내 여자의 남자 등이 사라졌다. 가족오락관 25年 게임 변천사…"뿅망치부터 이구동성까지"
  • 948회(2003년 6월 7일)부터는 기존의 4인 체제에서 특집 한정으로 적용했던 5인 체제를 기본으로 삼게 되었다.
  • 이 때부터 성 대결에서 벗어나 다양한 구성으로 종종 진행되었다.

5.4. 2000년대 중반

  •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그렇다 할 인기 게임들을 거의 내놓지는 못했고 1100회 대부터는 기존에 인기 있었던 게임들을 다시 선보였다.

5.5. 2008년 ~ 2009년 4월 18일

  • 시간대를 바꾸고도 오랫동안 끄떡없이 10%대의 시청률을 유지하던 가족오락관은 2006년 이후로 시청률과 인기가 하락세를 보였으며, 2008년 가을 개편 때에는 시작 시간이 토요일 저녁 7시 10분으로 변경되었고, 2009년 3월부터는 성 대결에서 다양한 구성 팀으로도 선보인 바 있다. 그럼에도 시청률이 통 호전되지 않은 것이 결국 종영의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 허참은 당시 무 자르듯이 프로그램을 없애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종영되기 7주 전인 2009년 2월 27일에 나온 보도자료에 편성이 변경된다는 언급이 있긴 했으나, 토요일 저녁 7시 10분에서 토요일 오후 5시 10분으로 시간을 바꾸는 것을 정반대로 오타를 내버렸으며, 그 다음날인 2월 28일 방송에서는 다음 주 토요일 저녁 7시 10분이라고 잘못된 자막을 내보내어 제대로 홍보가 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 2009년 3월 21일부터는 포맷을 대규모로 변경했으며, 스태프는 카메라 감독을 제외하고 모두 교체되었고, 코너 또한 '따로 또 같이'를 제외하고 모든 코너들이 교체되었다. 양원경, 배기성, 이종원 등을 고정으로 섭외했고, 팀도 혼성으로 나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뚝 떨어진 인기를 되살리기는 어려웠고, 결국 한 달 뒤인 2009년 4월 18일을 끝으로 25년의 긴 역사를 마무리했다.

6. 역대 MC

  • 남자 MC인 허참은 이 프로그램의 시작부터 끝까지 진행을 담당했고 공식적으로 총 21명의 여성 MC와 진행을 맡았다.[9]

  • 오유경[10] (1984.04.03. ~ 1985.01.22) - 패널: 1992.11.13. 1994.05.22. 2002.07.20. 2003.05.31. 2005.07.30. 2006.03.25. 2007.04.07.
  • 정소녀[11](1985.01.29. ~ 1987.09.29. / 1990.10.02.[12]) - 패널: 1988.12.27. 1990.07.24. 1994.05.22. 1996.10.30. 2008.01.05.
  • 장혜영[13] (1987.10.6. ~ 1988.10.25.)
  • 최영미 (1988.11.01. ~ 1989.05.30.) - 패널: 1994.05.22.
  • 김경희[14] (1989.6.6. ~ 1989.10.24.)
  • 김자영 (1989.10.31 ~ 1990.09.25 / 1990.10.09 ~ 1991.10.01.) - 패널: 1998.04.22.
  • 김혜영 (1991.10.08.~1992.10.04. / 1995.05.11.[15]) - 패널: 1991.09.10. 1994.03.11. 1994.05.22. 1996.04.24. 1998.04.22. 2008.07.26.
  • 전혜진 (1991 미스코리아 유림) (1992.10.09.~1994.10.07) - 패널: 1994.05.22.[16] 1998.04.22.
  • 이유리 (1994.10.14.~1995.04.27.) - 패널 : 1994.09.23.
  • 장서희[17] (1995.05.04. ~ 1995.09.06.) - 패널: 1994.12.23. 1998.04.22.
  • 오현정 (1995.09.13. ~ 1996.02.28. / 1997.03.05. ~ 1997.05.14.[18]) - 패널: 1994.12.09. 1995.03.09.
  • 오영실[19] (1996.03.06. ~ 1997.02.26.[20] / 1999.07.21. ~ 1999.07.28.[21]) - 패널: 1998.04.22. 2006.07.01. 2006.09.23. 2007.02.03. 2007.05.19. 2007.09.22. 2008.01.05. 2008.07.12.
  • 손미나 (1997.05.21. ~ 1999.07.14. / 1999.08.04. ~ 2001.11.03.)[22] - 패널: 2005.09.03. 2008.01.05.
  • 변우영 (2001.11.17. ~ 2002.03.30. / 2003.04.26.[23]) - 패널: 2001.03.10.
  • 윤지영 (2002.04.06. ~ 2003.04.19. / 2003.05.03. ~ 2003.06.21.) - 패널: 2004.05.08. 2004.11.27. 2006.06.03.
  • 박주아[24] (2003.06.28. ~ 2005.10.22.) - 패널: 2002.08.03. 2002.09.21. 2007.07.28.
  • 박사임 (2005.11.05. ~ 2006.03.11.) - 패널: 2004.01.10. 2005.07.02.
  • 이정민 (2006.03.18. ~ 2006.11.18.) - 패널: 2007.04.21. 2008.01.05.
  • 김새롬[25] (2006.11.25. ~ 2007.11.03.) - 패널: 2005.10.15. 2005.11.26. 2006.04.01. 2006.06.24. 2008.01.05.
  • 김보민 (2007.11.10. ~ 2008.03.29.) - 패널: 2004.06.05. 2005.02.26. 2005.09.24. 2005.12.31. 2006.03.11.
  • 이선영 (2008.04.05. ~ 2009.04.18.) - 패널: 2006.09.16. 2007.05.05.(무승부)

7. 역대 방송 시간

기간 채널 및 방송 시간
1984년 4월 3일 ~ 일자 미상 2TV 화요일 19:00
1992년 상반기 2TV 일요일 20:55
1992년 하반기 ~ 1995년 2월 17일 2TV 금요일 20:05
1995년 2월 23일 ~ 1995년 8월 31일 2TV 목요일 20:30
1995년 9월 6일 ~ 1996년 5월 8일 2TV 수요일 20:30
1996년 5월 15일 ~ 1997년 2월 26일 2TV 수요일 20:25
1997년 3월 5일 ~ 1997년 10월 15일 2TV 수요일 20:35
1997년 11월 26일 ~ 1998년 2월 11일 2TV 수요일 20:50
1998년 2월 18일 ~ 1998년 6월 10일 2TV 수요일 20:45
1998년 6월 17일 ~ 1998년 10월 7일 2TV 수요일 20:40
1998년 10월 14일 ~ 2000년 4월 26일 2TV 수요일 20:50
2000년 5월 4일 ~ 2000년 10월 5일 2TV 목요일 19:00
2000년 10월 14일 ~ 2008년 11월 15일 1TV 토요일 18:00
2008년 11월 22일 ~ 2009년 2월 28일 1TV 토요일 19:10
2009년 3월 14일 ~ 2009년 4월 18일 1TV 토요일 17:10

8. 점수

"가족오락관 최종점수, 몇 대~~~ 몇!!!"
파일:최종점수.png
가족오락관 803회(2000년 4월 26일 방영분)의 최종 점수
  • 방송이 진행된 지 8년이 넘었던 1992년에 이미 여성팀이 많이 이긴다는 멘션이 나왔을 정도로 쭉 여성팀이 한 수 위였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실제로 여성팀이 좀 더 자주 이긴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남성팀 vs 여성팀 대결 구도가 1년에 50회 정도라고 보면 보통은 남성팀 승리 횟수는 20승 전후, 여성팀 승리 횟수는 30승 전후였다. 물론 무승부로 끝나는 경우들도 있었다. 다만 2004년과 2008년에는 남성팀의 전적이 앞섰으며(2004년 25승 2무 vs 20승 2무, 2008년 28승 2무 vs 20승 2무.), 2006년에는 18승 1무 vs 21승 1무로 대등했다.[26] 2006년에는 특별기획이 다른 연도에 비해 많았고[27], 남성팀 vs 여성팀 대결 횟수는 다른 연도에 비해 적은 40회였다.
  • 이렇게 여성팀이 이기는 경우가 하도 많았던 탓에 일부 남성 시청자들 중에서는 '지나친 여성팀 우대 프로그램'이라면서 이 프로그램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투니버스의 막이래쇼에도 같은 논란이 있었고... 이에 대해 여성팀은 상호간의 팀워크도 잘 맞았던 반면 남성팀은 잦은 불협화음에 중구난방 그 자체였던 데다 MBC 일밤(당시 일요일 일요일 밤에) 서브 코너 대단한 도전의 OB팀과 YB팀처럼 출연진 연령대가 남성팀은 더 많은 쪽으로, 여성팀은 더 젊은 쪽으로 나온 적도 있어서[28] 아무래도 여성팀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는 의견이 있다.
  • 다만 허참이 간혹 노골적으로 여성팀에 유리하게 진행을 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최종점수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는 남성 시청자들이 많아지기도 했다. 예컨대 2003년 방송에 출연한 이혁재가 "허참이 항상 여성팀에 유리하게 진행해서 허참 말을 듣지 않았다"는 발언을 했을 정도로 허참의 여성팀 편애는 유명했다. 그래서인지 종영한 지 10년이 넘어갔음에도 KBS유튜브에 올리는 과거 영상의 댓글창에 판정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댓글러들이 여전히 출현할 정도로 이 판정 문제는 가족오락관을 대표하는 영원한 이슈로 남아 버렸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의 젠더 갈등을 반영하듯 지나치게 승패에 민감한 댓글러들이 많기도 하다. 심지어는 "일부러 여성팀이 이긴 회차만 올린다"고 주장하는 댓글러도 나올 정도.
  • 양 팀의 점수판은 세트장에 좌우 대칭으로 달려 있다.[29][30] 이전까지는 디지털 점수판을 사용했고, 게임 도중에라도 화면 속에서 점수를 볼 수 있었지만, 2004년 초부터는 더 이상 점수가 게임 도중에는 공개되지 않도록 바뀜으로서 더 이상 중간 점수를 확인할 수 없게 되었다.
  • 각 게임마다 1점부터 100점까지의 다양한 점수가 미리 설정되어 있고, 이 점수를 모두 합산한 점수가 최종점수가 된다.
  • 중간점수는 MC가 중간점수를 확인할 때 점수판에 적혀져 있는 점수가 중간점수다.
  • 마지막 게임이 끝나면 주부 방청객에게 인사를 한 다음 최종점수를 확인하기 전 가족오락관 하면 떠올려질 정도로 친숙한 구호인 "몇 대 몇~!"을 외치면서 최종 점수를 확인하게 된다.[31][32][33]
  • 최종점수 몇대 몇을 외치면 팡파레 BGM[34]이 나오면서 최종점수가 공개되고 허참이 그 최종점수를 외쳤다. 일부 여자MC[35]는 남성팀이 승리할 때 "남성팀 승리", 여성팀이 승리할 때 "여성팀 승리"를 외치며 거들었다.
  • 만약 동점일 경우에는 공동 우승으로 처리되었다. 다만 1995년 8월 24일(565회)에는 결승전 게임 대결! 뿅망치, 1998년 12월 23일(734회)처럼 막판 뒤집기 게임[36], 1999년 6월 2일(757회)처럼 대표끼리 나와서 눈싸움으로 승패를 결정했다.
  • 685회(1997년 12월 24일 방송분)에서는 970:980[37]으로 여성팀이 앞선 뒤, 30점을 가져오는 보너스 게임으로 30초 동안 케이크에 촛불 붙이기를 했다. 그 결과 남성팀이 촛불을 많이 붙였는데, 숨겨둔 반전으로 촛불을 빨리 끄는 팀이 승리하는 것이었고, 여성팀이 승리했다.[38] #
  • 과거에는 최종점수가 800점대나 900점대, 심지어는 1000점대까지 나온 적도 있었으며, 해가 지날수록 최종점수의 점수대가 점점 축소되었다.
  • 역대 최다 점수 차가 났던 회차는 737회(1999년 1월 13일 방송분)인데, 남성팀이 무려 940:0이라는 후덜덜한 점수 차로 대승했다. 이는 막판 뒤집기 게임 때문이다. 당시 중간점수(530:320) 확인 직후와 최종점수 확인 직전에 이렇게 두 번 했으며 결과에 따라 -500~+500까지 얻을 수 있었는데, 중반부에 여성팀은 김지선이 스톱을 외쳤을 때 -500에서 멈추는 바람에 이전 획득 점수가 모두 안드로메다로... 김애경: 얘, 얘, 지선이가 보지 말라 그랬어 얘가. 얘가 보지 말고 하라 그랬어. 막판엔 김학래의 맹활약 덕에 남성팀의 점수가 400점이 가산된 반면 여성팀은 김애경의 실수로 또 -500에서 멈춰버렸기 때문이다. #
  • 가끔 몇대 몇 구호를 외치는 것을 양팀 주장에게 맡기거나 양팀 팀원 중 한 명에게 맡긴 적도 있다.
  • 간혹 점수판 바탕색이 서로 뒤바뀐 상태[39]로 나온 적도 있다.
  • 가끔씩은 남 vs 여 구도가 아닌, 혼성팀[40]의 구도도 있었으며, 800회와 1000회에는 가수팀 vs 탤런트팀 vs 개그맨팀 3파전으로 진행했다.
  • 100의 배수 회차 중 200회, 800회, 1000회는 남여팀 대결이 아니었다. 500회(10주년 특집 2부), 600회, 700회, 1200회 특집은 남성팀이 승리했고 300회, 900회, 1100회 특집은 여성팀이 승리했다. 남성팀이 백회 단위 특집에서는 많이 강한 편이었다.

8.1. 점수판의 역대 형태

  • 초창기: 점수 체계 없음
  • 1980년대 중후반: 녹색 배경의 작은 디지털 점수판.
  • 1991년 12월 31일: 검은 배경에 대형 빨간 디지털 점수판
  • 1980년대 후반 ~ 1993년: 검은 배경에 큰 디지털 점수판(숫자 3개가 들어갈 수 있고, 각 자리마다 0~9만 출력할 수 있음.)
  • 1993년 ~ 2003년 8월: 작은 플립형 디지털 점수판(숫자 3개가 들어갈 수 있고, 각 자리마다 0~9만 출력할 수 있음. 가족오락관 하면 떠오르는 점수판이 바로 이것이며, 2000년 올림픽 특집에서 남성팀 점수가 1000점이 넘어가버려 천의 자리가 0이 되어버린 것으로 계산되는 오류가 발생하기도 했음. 또한, 1000점이 넘어가면 999로 표시하기도 했다.[41] 이 점수판의 특징은 6은 위가 빈 형태(알파벳 b)로, 9는 아래가 빈 형태(알파벳 q)로 뜬다.
  • 960회 ~ 980회(2004년 설 특집), 1054회 ~ 1078회: 작은 디지털 점수판.[42] 도중에 점수를 가리고 가족오락관 로고가 출력되었다.[43]
  • 981회 ~ 1053회, 1079회 ~ 1187회: 대형 LCD 모니터에 점수를 디지털 풍의 폰트[44]체를 사용해서 점수를 출력했다.
  • 1188회 ~ 1237회: 소형 LCD 모니터에 점수를 기울어진 디지털 풍의 폰트[45]를 사용해서 점수를 출력했다.

9. 역대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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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에피소드

파일:KBS 가족오락관 로고.png
방영 목록
1984년 1985년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 1990년 1991년 1992년 1993년
1994년 1995년 1996년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 2009년

점수칸(혼성 대결 제외)은 남성팀이 승리한 회차는 파란색, 여성팀이 승리한 회차는 빨간색, 비긴 회차는 회색으로 표기했으며, 이긴 쪽의 점수를 볼드체로 표기했다.

10.1. 보조진행자 출신 연예인

  • 신토불이, 99.9 등으로 유명한 트로트 가수 배일호는 이 프로그램의 FD 겸 보조 진행자로 활동하다가 트로트 가수로 데뷔하여 스타가 되었다.
  • MC 겸 리포터이자 트로트 가수 조영구도 이 프로그램의 FD 겸 보조 진행자로 활동하다가 리포터로 데뷔했다. 당시 허참이 본인까지 잘 챙겨줘서 "나도 허참처럼 유명 MC가 되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되었다고 한다.

10.2. 가족오락관으로 유명해진 사례

  • 이 프로그램을 거쳐간 연예인은 대부분 진정한 A급 연예인으로 거듭난 사례가 많이 있다. 조용필, 유재석, 채시라, 김혜수, 고현정, 이효리, 싸이, 고수, 등이 대표적이며,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배우 송재호, 최민식, 최민수도 가족오락관에 1990년대 초중반까지는 자주 나오던 출연자였다. 또한 오니즈카, 가츠 등 간지나는 사나이 전문 성우인 성완경도 출연하는 등 방송계의 이름있는 인물들은 신인 시절에 높은 확률로 출연했다.
  • 2013년에 MBC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로 뒤늦게 연예계에서 빛을 본 샘 해밍턴도 인기가 별로 없던 2007년과 2008년에 가족오락관에 총 네 번이나 출연했다. 그 뒤 진짜 사나이에서 참수리 고속정 방향타 수동조절 시 선원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달하는 통신 훈련이 마치 가족오락관의 '고요속의 외침'과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가는 점을 착안해서 제작진이 샘의 가족오락관 출연분(2008년 9월 27일 1210회 방송분)을 KBS에서 자료화면으로 퍼와서 확실하게 인증했다.

10.3. 전설의 왁자지껄 사건

이구동성 게임(네 명이 한번에 말을 하면 그걸 상대팀이 한 글자씩 듣고 정답을 유추해는 게임)에서 레전드 방송사고가 나왔다. 링크. 제시어가 "왁자지껄"이었는데, 첫글자가 ""으로 전달됐고, 이후 정작 두 번째 글자인 , 그리고 세번째 글짜인 는 제대로 전달되는 바람에, 이렇게 첫 세 글자가 완성되는 순간 스튜디오가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단순히 루머인 줄 알았으나, 라디오 스타에서 허참이 1989년 녹화 당시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발언하며 확정. 그 외에 당시 출연자였던 노사연이 라디오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당시 녹화 후 제작진에서 이걸 내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장시간 회의를 한 끝에 허참의 제안으로 투표를 해서 방송에 내보냈다고 하는데,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키며 당시는 물론 종영 이후에도 가족오락관 하면 언제나 가장 먼저 소환되는 아는 사람은 아는 전설의 방송사고가 되었다. 물론 본방은 나갔지만 송출 불가 판정으로 1980~1990년대 당시 방송사에서 유행하던 재방송분에서는 해당 부분이 편집되어 한동안 진위여부가 불투명하긴 했다.

사실 한꺼번에 네 글자를 듣기 어렵고 각자 한 글자씩만 받아 조합해야 하는 코너 특성상 첫 글자로 "왁"을 전달해봤자 입모양이 비슷하고 훨씬 용례가 많은 "왕"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제작진이 자체 테스트만 한 번 했어도 바로 거를 수 있었겠지만... 생방송도 아닌데 그냥 방송에 내보낸 것을 보면 그냥 문제 자체를 일부러 그렇게 구성한 것일 수도 있다. 이외에 마지막 글자가 "커", "털"(...)[46] 등으로 전달되었다는 얘기, 이 문제 때문에 해당 코너가 없어졌다는 얘기도 있으나 이 쪽은 루머이다.

당시 담당 PD가 고심한 끝에 재미를 위해 이걸 내보냈다는 이유로 시말서를 썼다는 여담도 있다. #

이 에피소드는 나중에 SNL에서 우랄산맥걸스데이가 이구동성으로 맞추면서 패러디되었다. # 하필 박소진이 첫 번째 단어를 라고 잘못 들었기 때문에...근데 진짜 이런 산맥이 있어요?

10.4. 그 외의 일화

  • 예전에 KBS 2TV 서세원의 토크박스에서 김학래가 언급한 일화 중에 하나다. 개그맨 김한석과 관련된 일화였는데, 김한석이 코미디 프로그램을 할 때 주변인으로 자주 나와 개그맨과 리포터를 전전하면서 활동했었다. 그 뒤 사랑의 스튜디오 객원MC로 뜨고 나서 가족오락관에서 섭외 전화를 받았는데, 가족오락관 녹화하는 시간이 코미디 프로그램 회의하는 시간하고 겹쳤던 것이다. 그렇다고 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라 임하룡에게 "저 오늘 친구 병문안 있어가지고 병원 좀 갔다오겠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임하룡이 "안돼! 인마!"하고 단칼에 거절하자 김한석이 "제 친구가요, 교통사고가 나가지고 다리를 다쳤거든요. 친구 좀 도와주겠습니다."라고 얘기했더니 '그래, 그럼 갔다 와!'라고 허락해서 가족오락관의 녹화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 그로부터 일주일 후에 어느 개그맨이 그가 나오는 방송분을 우연히 보는 바람에 6개월 출연 정지를 먹었다는 얘기가 있었다 카더라. 당시에 같이 출연했던 연예인이 이범수장진영이었다.
  • 가족오락관 최종회에서 김한국도 비슷한 일화를 언급한 바 있다. 개그맨 이창명과 관련된 일화였는데, 이창명 역시 TV는 사랑을 싣고 리포터로 뜨고 나서 가족오락관에서 섭외 전화를 받았는데, 가족오락관 녹화하는 시간이 코미디 프로그램 녹화하는 시간하고 겹쳤던 것이다. 본인 생각에 가족오락관에 출연하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하여 코미디 프로그램 측에 아프다고 핑계를 대고 가족오락관의 녹화에 참여했는데... 녹화 당일 코미디 프로그램 녹화장에서 가족오락관 녹화를 모니터해서 적발되는 바람에 4개월 출연 정지를 먹었다고 한다.
  • 뽀식이로 유명한 개그맨 이용식허참에게 대놓고 깐족거리면서 '잘났다 잘났어!', '잘있거라 간다!', '허참을 가족오락관 MC 자리에서 밀어내지 못했다' 등으로 야단맞을 말을 하거나[47], 게임 진행 도중에 허참을 뒤에서 한 번 때리거나[48], 맛있는 대결[49] 코너에서 음식 절도 사건을 일으키거나 마지막에 '몇 대 몇' 구호를 은근슬쩍 가로채기[50], 틀렸는데 억지로 정답이라고 따지기[51] 등의 기막힌 행적을 보였으며, 허참과 가끔 티격태격 케미를 보이기도 했었다. 물론, 사전에 미리 짜고 하는 드립이었고 허참과 매우 친한 사이라서 가능했던 개그였다.[52] 2022년 2월 1일에 허참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추억속으로만 남았다.

11. 논란

11.1. 잦은 여성팀 편애 논란

이 방송이 유독 여성팀에게만 지나치게 유리한 판정을 짓는 프로그램이다. 심지어 이 프로그램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오죽하면 남성 시청자들이 불만을 드러내기까지 했을 정도다.

게다가 976회(2003년 12월 27일 달려라 울엄마 특집 방송분)에서 이혁재도 출연했을 때 허참을 믿을 수 없다고 말했을 정도라고 하였고, 여성팀이 게임에서 자꾸 승리할 때마다 TV 채널을 돌렸다고 하는 시청자들도 대다수였다.

대부분 여성팀이 연승을 많이 할 정도로 승리를 많이 하였고, 남성팀이 승리한 횟수들은 많이 찾아볼 수는 없었다. 다만, 예외로 2002년(923회, 924회, 925회, 926회, 927회)과 2007년(1149회, 1150회, 1151회, 1152회, 1153회)에는 남성팀이 5연승이나 했다.

12. 여담

파일:가족오락관 방청객 초청.jpg
가족오락관 방청객 초청
  • 가족오락관 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주부 방청객이다. 초창기에는 가족이 방청객으로 왔기 때문에 남녀노소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방청석에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나, 어느샌가 주부 방청객을 초청하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주부 방청객은 30명 이상의 단체가 방청 신청을 하고 제작진이 순서대로 초청하는 형식이었다. 대부분 아파트 부녀회나 학교 어머니회였는데, 워낙 인기가 많다 보니 길게는 방청 신청한지 1년이 지나서야 초청받기도 했다고 한다. 방청객 중에는 모녀[53]와 장 보다가 얼떨결에 같이 방청한 사람[54]도 있었다. 방청객이 출연자 뒤에 있어서 얼굴이 나오는데다 어느 정도 코너에 참가하는 프로그램이 많았던 특성상 바로 방송에 투입되면 서로 뻘쭘해지는 문제가 있어서 방송 전에 레크리에이션 진행자(박해상)를 통해 노래 부르고 놀고 하면서 방청객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띄워놓고 나서 녹화를 시작했다. 관련 기사 1998년 6월 17일 방송분에서는 IMF 외환 위기로 힘든 아버님들을 격려하기 위해 제작진에서 삼성자동차 태평로 지점 회사원들을 남성팀 방청객으로 특별 초청한 적이 있으며, 2007년 7월 28일 방송분에서는 모 항공사에서 방청 신청하여 남여 직원들이 여성팀 방청객으로 초청된 적이 있었다.
  • 종영 직후에 이 프로그램의 포맷을 젊게 바꾼 "게임쇼! 기막힌 대결"이 일요일 오전에 KBS 2TV에서 방영됐지만, 단 7회만에 소리없이 종영되었고, 또한 기억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 2009년 12월에는 MBC의 일일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 79회에서 허참이 특별출연해서 '가족오락관'을 펼친 바 있다. #
  • 2011년 1월부터 이 프로그램을 젊은 분위기로 리메이크한 상상오락관이 토요일 저녁에 KBS 1TV에서 방영됐지만, 세대 랭크 공감쇼와 진실게임을 표방하는 등 이 프로그램과는 사실상 별개의 프로그램이었고, 시청률과 화제성 부진으로 4개월만에 종영되었다.
  • 2012년 5월에 JTBC 신화방송에서 신(新) 가족오락관이라는 이름으로 패러디했으며, 허참이 직접 출연하여 MC를 맡았다. 여자 파트너는 박지윤.
  • 2013년 추석 특집 때 맘마미아 맘마오락관으로 리메이킹되었다.
  • 2014년 2월 16일에는 1박 2일에서 패러디했으며, 허참이 직접 출연하여 MC를 맡았다. 여자 파트너는 이슬기.
  • 디시에서는 어느 떡밥을 화제로 이야기하다가 중간에 말이 와전되어서 엉뚱한 이야기로 전개되면 가족오락관 드립이 종종 나오는 경우가 있다. 가족오락관의 전설적인 코너 '고요속의 외침'에서 유래된 드립이다.
  • 투니버스에서 평일 밤 8~10시에 동명의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물론 이 KBS 프로그램과의 연관성은 없으며 주로 가족과 관련된 테마로 된 만화들 중 방송분을 임의로 선정해서 방영했다. 2018년에는 tvN <코미디빅리그>에서 '가족오락가락관'으로 패러디됐다.
  • 프로그램을 종영한 지 10년이 되는 2019년에는 허참을 비롯한 주요 진행자들이 11월 11일 아침마당에 출연해 이야기를 나눴다. 또한 플레이어에서 예능 박물관 특집의 한 코너로 가족오락관을 패러디한 웃지마! 가족오락관을 선보였다. 이때 특별 MC로 허참과 오영실이 출연했다. 거기서 보면 거진 수빈이 하드캐리했다.
  • 방영 초기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만화가 황정희[55]가 방송용 삽화를 그렸고, 배금택 작가도 삽화에 참여했다.
  • 1980년대부터 2002년 가을까지[56], 2006년 후반부터 2009년까지 시청자 퀴즈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소정의 선물을 증정했다.[57] 1990~1997년 1월에는 우편 접수(주소: 우)150-606[5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61호 가족오락관)로, 1997년 2월~2002년에는 ARS로, 2006~2009년에는 가족오락관 홈페이지 시청자 퀴즈 메뉴를 통해 진행했다.[59]
  • KBS 아카이브 유튜브 채널들인 옛날티비 : KBS ArchiveKBS 같이삽시다에서 가족오락관의 옛날 방송분 중 일부를 서비스하고 있다.[60] 원래는 KBS 퀴즈 매니아에서도 여러 방영분들을 서비스했지만, 현재 해당 채널은 퀴즈쇼와는 전혀 관련 없는 한식 전문 채널로 바뀌었으며, 그와 함께 가족오락관 방영분들도 안드로메다로...
  • 2006년에는 SBS의 도전 1000곡의 형식을 빌린 노래 특집을 여름 특집과 추석 특집으로 두 번 진행했다. 이는 가족오락관 메인인 오경석 작가가 도전 1000곡의 메인 작가를 겸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또한 노래방 형식을 도입한 프로그램은 가족오락관이 최초며, 그걸 계기로 도전 1000곡이 생겨났다고 한다. 노래 특집에 대한 내용은 노래의 제왕에서 참조하자.
  • 2022년 2월 1일, 가족오락관의 전설 허참이 간암으로 작고했으며 이 날은 2022년 설날 당일이기도 하다.

12.1. 속어로서의 오락관

이미 종영된지 오래된 방송이지만, 한때 국민적 인기를 자랑한데다 방송에 사용된 게임과 포맷이 후대 예능에서도 종종 쓰이면서 현재에도 여전히 높은 인지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고요 속의 외침'은 소리가 들리지 않게 헤드폰을 쓰고서 소리를 지르며 단어 전달을 한다는 독특한 방식과 이 과정에서 온갖 왜곡이 일어난다는 웃음 포인트 때문에 가족오락관의 대표 게임 중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훗날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 복불복 게임에서도 고요속의 외침을 하기도 하거나 신서유기 시리즈에서 등장하는 등[61] 맥락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고요 속의 외침에 빗대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루머, 뇌피셜 등을 기반으로 왜곡된 소문을 재생산하는 행위' 또는 '타인의 지적을 무시하며 루머나 뇌피셜 등 잘못된 정보를 옳다고 고집하는 행위', '위와 같은 이유들 때문에 말이 안 통하는 상황'을 '가족오락관' 내지는 '오락관', '오락관 돌린다' 등의 표현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런 의미의 '오락관'이라는 표현은 2010년대 중반에 등장해 주로 디시인사이드 쪽에서 사용되다 금방 유행이 지나갔지만, 루머나 뇌피셜로 인한 분쟁이 끊이지 않는 커뮤니티에서는 아직도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빨간약 떡밥으로 시끄러워지기 쉬운 키즈나 아이 마이너 갤러리를 비롯한 버츄얼 유튜버 관련 커뮤니티들이 있다.


[1] 1992년에는 TV 음악 코미디 부문, 1993년에는 TV 쇼 공개오락 부문, 1994년에는 TV 대중문화 부문, 1995년부터 2003년까지 TV 연예오락 부문으로 시상했고, 2004년부터 TV 예능 부문으로 시상하고 있다.[2] 이 때문에 일부 기성세대들은 자녀가 이걸 시청하면 “니가 무슨 이런 프로를 봐?”라며 디스하는 경우도 있었다.[3] 다만 개그콘서트는 시청률 저하로 이듬해 일요일 밤 9시로 이동한다.[4] 주로 엔딩 부분을 사용했다.[5] 2004년 12월 4일(1021회)까지는 뻐꾸기 효과음까지 넣어서 사용하다가 2004년 12월 11일(1022회)부터는 뻐꾸기 효과음 없이 오프닝을 진행했다.[6] 758회 ~ 825회[7] 841회, 851회, 854회 ~ 859회, 상품 소개 후 바로 나오며, 기존 하이라이트 영상과는 다르게 조금 빠르게 편집되었다.[8] 826회 ~ 829회, 831회 ~ 840회에는 뮤직비디오, 830회, 843 ~ 849회에는 출연 가수의 무대로 엔딩을 대체했다.[9] 우연히도 1990년대 7대, 9대~11대 여자 MC, 2000년대 14대 여자 MC부터는 거의 다 진행을 맡기 이전에도 패널로 나온 적이 있다.(15대 윤지영 아나운서와 18대 이정민 前 아나운서는 제외)[10] KBS 아나운서와 동명이인. 그러나 KBS 아나운서 오유경은 1996년 1월 10일, 1997년 2월 19일에 패널출연만 하였다.[11] 1987년에 허참 교통사고로 인해 1회차분만 단독으로 진행했다. 가끔 가족오락관을 최장 기간 6년 진행했다고 오해하는 분이 있는데, 허참과의 6년 진행은 동양방송 쇼쇼쇼 진행 기간과 KBS 가족오락관 진행 기간을 합한 것이다. 추석특집 대리 진행 회차분 포함 오해도 있다는 실질적으로 가족오락관 최장기간 진행자는 4년 가까이 진행한 손미나 아나운서다.[12] 추석 특집 회차분을 김자영 아나운서 대신 진행했다.[13] 1987 미스코리아 르망, 장은영(1992 미스코리아 선)의 언니.[14] 결혼과 동시에 프로그램 진행과 아나운서를 그만두었다.[15] 후임 장서희가 올 때까지 1회차 분을 임시 진행했다.[16] 10주년 특집 방송으로 출연진 겸 MC로도 활동했다.[17] 여자 진행자 중 최단 기간 진행. 가족오락관 567회 방영분에서 드라마 서궁 촬영과 개편이 겹치면서 가족오락관 진행을 그만 두게 되었다고 한다. 이전 MC 전혜진도 드라마 스케줄과 겹쳐서 그만두게 된것과 같은 것[18] 오영실 아나운서가 육아 문제 및 가사 사정으로 인해 프로그램을 그만 두고 손미나 아나운서가 입사 전이라 공백 기간까지 약 2달 동안 임시 진행했다.[19] 이 이후로는 여자 MC를 아나운서 위주로 기용했다.[20] 1996년 10월 9일은 오영실 아나운서의 방송 교육(해외 연수) 참여로 인해 진양혜 아나운서가 대신 진행했다. 1997년 1월 8일은 오영실 아나운서의 KBS 파업 참여로 허참 단독으로 진행했다.[21] 손미나 아나운서의 KBS 파업 참여로 인해 대신 진행했다.[22] 가족오락관 진행분만 여자 진행자 중 최장 기간 진행.(약 4년 5개월)[23] 윤지영 아나운서의 개인사정으로 인해 대신 진행했다.[24] 2002년에 도전! 주부가요스타에서 같이 진행한 적이 있다.[25] 가족오락관 역대 여자 진행자 중 최연소(1987년생, 당시 20세) 진행자이다. 또한 2000년대 여자 MC 중 유일하게 아나운서가 아니다.[26] 특히 2006년 초반에는 최종점수가 가장 낮게 나왔는데, 그 중 2006년 2월 18일(1080회)에는 220:110으로 남성팀이 최저점수로 승리한 적이 있었다.[27] 2006년 당시 혼성팀 대결을 다른 연도보다 많이 했다.[28] 702회(1998년 5월 6일 방송분)와 725회(1998년 10월 14일 방송분)가 그 예. 전자는 여성팀 주장이 조갑경(당시 32세)이었는데 그녀를 제외한 같은 팀의 나머지 멤버들은 모두 20대였고, 남성팀에도 당시 20대인 멤버들이 둘씩이나 있지만, 나머지가 모두 40대다. 후자는 당시 여성팀 출연진이 30대였던 최란을 제외하면 모두 20대였다.[29] 다만 초기~80년대 후반에는 세트장에 점수판이 없었고 화면을 따로 띄웠다.[30] 855회부터 잠깐 입구에 점수판이 설치된 적 있다.[31] 어떨 때는 하나 둘 셋을 외쳐 확인한 적이 있고, 한 팀 씩 점수를 확인한 경우도 있다.[32] <최종점수 확인> 자막은 1999년 5월 12일 754회부터 2009년 4월 18일 마지막회까지 사용되었다.(859회, 861회, 1229회는 제외)[33] 양쪽 모니터에 최종점수가 나오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92년 설특집(1992.02.04)에서는 복조리 갯수를 셌고, 1166회(2007.11.10)에서는 양쪽 모니터에 점수를 보이지 않고 최종점수를 자막으로 보인 경우도 있다.[34] 1993년 이전에는 TJ미디어의 대상 팡파레도 쓰인 적이 있다. 그 이후 가족오락관 자체 팡파레BGM이 사용되었다[35] 전혜진, 손미나, 박주아, 이선영[36] 복불복 게임의 일종으로 점수가 가산될 수도 있고 감점될 수도 있다. 화면에 +500점부터 -500점까지의 숫자들이 나타나는데 스톱을 외친 순간의 화면에 나온 점수를 가져간다. 이 게임 때문에 1999년 1월 13일(737회)에는 여성팀의 최종점수가 0점이었다. 아래 참조. 차이점으로는 1998년 크리스마스에는 십 단위 숫자까지 다르게 하여 다양한 배점이 나왔다면, 1999년 1월 13일에는 100 단위로 나왔다.[37] 엄밀히 말하면 양 팀 모두 1000점을 초과한 상황이었다. 중간점수가 450:500인 상황에서 당시 배점이 20점이었던 스피드 게임에서 남성팀은 총 28문제(10/8/10문제, 560점), 여성팀은 총 26문제(9/8/9문제, 520점)를 맞혔기 때문에 1010:1020이 정확한 점수다. 다만 가족오락관 점수판은 천 단위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양 팀 모두 1000점을 초과한 것에 어찌할 방법이 없었는지 점수판에는 양 팀 모두 40점이 깎인 970:980으로 표기되었다.[38] 당시 손미나가 보너스 게임 설명을 하던 중 허참이 "거기까지"라고 했고 손미나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던 것을 보면, 제작진과 MC들만 사전에 보너스 게임 방식을 알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점수판에서는 올라간 점수가 반영되지 않았다. 이 때는 여성팀이 1020점(보너스 게임 이후에는 1050점)이 되었으나 가족오락관 점수판이 천 단위가 적용되지 않아서 999점으로 떠야 하는데 왜인지 그 점수가 올라가지 않았다.[39] 1058회(2005년 8월 20일)에서는 남성팀이 분홍색 점수판, 여성팀이 파란색 점수판이 설치되어 나왔다.[40] 972회(2003년 11월 29일) 쿨FM팀 vs 해피FM팀의 대결이 대표적이다.[41] 초창기에는 천자리의 1을 뺀 형태로 점수가 표시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서 1070점이면 070으로 표기되는 식.[42] 960 ~ 980회에서는 큰 디지털 점수판을 사용했다.[43] 모니터에는 노란색 펜으로 가족오락관 로고가 그려진다. 961회에서는 로고로 가리지 않고 최종점수까지 보였으나 962화부터는 초반에는 점수를 보이다가 최종점수 공개 전까지는 가렸다. 이 때 사용한 폰트는 Times New Roman.[44] 사용폰트가 2개의 형태였는데 그 중 첫번째는 seven segment이며, 두번째는 불명이다.[45] 폰트의 이름은 LCD다. 참고.[46] "털"(...)은 노사연우렁차게 말해버리고, 그대로 테이블에 엎어져 배를 잡고 웃었다는 이야기가 가장 많다.[47] 허참이 1949년생으로 이용식보다 3살 더 많다.[48] 1074회에 해당.[49] 1188, 1194회에 해당.[50] 1135회에 허참이 일그러지는 표정을 지었다.[51] 846회에 해당.[52] 여담이지만, 1999년에 방송된 766회 방송분에서는 오프닝 게임을 위해 모자를 쓰게 되자 허참이 이용식더러 돌하르방이라고 했는데 티격태격까진 가지 않았다. 허참: 완전히 저러고 있으니까 돌하르방같애~[53] 1015회(2004.10.23)[54] 698회(1998.04.08)[55] 만화가 겸 삽화가 일송 최영수(1911~?)의 조카. MBC <유쾌한 스튜디오>, <건강백세> 등의 삽화를 맡았다.(출처: 한국 만화사 구술채록연구 10 황정희(비매품) - 한영주 편. 한국만화영상진흥원. 2010. p28.)[56] 이때는 일반 상식과 주부 기본 상식 문제가 주로 출제되었으며, 답안은 3지선다 또는 양자택일이 나왔다.[57] 이때 1200회에서 퀴즈 5인 5답에 나온 문제 중 하나를 낼 때, 선택지에 허참과 이선영이 나온 적이 있다.[58] 2021년 현재: 07328[59] 627회(1996년 10월 30일) 방송에서는 깜짝비디오 공모 이벤트를 진행했으나, 참여율이 저조했는지 결국 취소되었다.[60] 다만 영상자료실에선 1990년대 초반 이전 회차들 중 비디오테이프 재활용 등으로 유실됐을 수도 있다.[61] 신서유기 버전은 문제를 내는 사람 역시 헤드폰을 쓴다는 약간의 차이점은 있지만, 기본적인 형식은 동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