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17 20:00:09

K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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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축구 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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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영어: K League
한글: K리그
종목 축구
리그
창설
K리그1 1983년 5월 8일 ([age(1983-05-08)]주년)
K리그2 2013년 3월 16일 ([age(2013-03-16)]주년)
국가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리그 주관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 권오갑 (2013~)
최근
우승팀
K리그1 파일:JBHM_6star_Logo.png 전북 현대 모터스(2019)
K리그2 파일:GFC_emblem2.png 광주 FC(2019)
최다
우승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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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C 리그 랭킹 5위 #
링크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K_League.png공식 홈페이지,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K_League.png데이터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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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 명칭에 대해서1.2. 리그 창설 배경과 준비
1.2.1. 리그 출범 초기 (~1983)1.2.2. 새로운 변화 (1984~1992)
2. 참가 구단의 변동3. 참가 구단 연혁4. 참가 구단 (2020 시즌)5. 상금 규모6. 우승 트로피7. 리그 패치8. 공인구9. 시즌별 일람10. 리그 연혁
10.1. 역대 K리그1 우승팀10.2. K리그1 우승 횟수10.3. 역대 K리그2 우승팀10.4. K리그2 우승 횟수10.5. 역대 승강팀
11. K리그 시상식12. 역대 스폰서 및 엠블럼
12.1. 역대 스폰서12.2. 역대 스폰서 엠블럼
13. 특색14. 여담 15. 더비 매치16. 올스타전17. 외국인 선수18. 서포터즈19. 홍보 대사20. 문제점21. 관련 문서
21.1. 대회/규정21.2. 역사21.3. 관련 프로그램
22. 둘러보기

1. 개요

한국 축구의 힘[1]
K리그는 한국프로축구연맹 산하의 대한민국 최상위 프로축구 리그다. 1983년 슈퍼리그[2]라는 명칭으로 출범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현재까지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횟수가 가장 많은 리그[3]이기도 하다. 국내 일부 언론에서는 K리그를 아시아 최초로 출범한 프로축구 리그로 보도하기도 하였지만, # AFC에서는 1908년에 출범한 홍콩 1부 리그를 최초의 프로축구 리그로 간주하고 있다.#[4]

본디 단일 리그였으나, 2012년 승강제 도입을 통해 1부 리그 K리그 클래식(이후 K리그1으로 리그명 변경), 2부 리그 K리그 챌린지(이후 K리그2로 리그명 변경)의 2개 디비전을 보유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넓은 의미의 K리그는 두 개의 리그를 포괄한다. 또한 더 넓은 의미로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의 공식 약칭이기도 하다. 리그 포맷은 잉글랜드 풋볼 리그와 유사하며,[5] 춘추제로 운영되고 있다. 본래 포스트 시즌(K리그 챔피언십)을 개최하였으나, 2012년 승강제 도입 이후 폐지하여 정규시즌만 운영하고 있다.

1983년 대우그룹, 포항제철, 대한석유공사 3개 프로클럽, 한국기독교선교원, 국민은행 2개 실업클럽의 5개 클럽 체제로 출범하였다. 참가구단 변동 내역은 이어지는 해당 문단을 참고. 이후 긴 세월동안 변동을 거쳐 2020년 현재 1부 12팀, 2부 10팀으로 총 22팀이 참가하고 있으며, 한국에서 프로리그가 시행되는 종목 중 가장 많은 수의 구단을 보유하고 있다. 참가구단은 시민구단 11팀, 기업구단 10팀, 군팀 1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군경팀은 국군체육부대 산하의 상주 상무다. 소속 구단이 많아 한국에서 어느 종목이든 프로스포츠팀이 있으면서 프로축구단만 없는 도시는 고양시(남자농구단 고양 오리온스), 의정부시(남자배구단 의정부 KB손해보험 스타즈), 천안시(남자배구단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뿐이다.[6]

1.1. 명칭에 대해서

  • K리그의 1998년 이전 공식명칭은 한국프로축구대회였고, 1983~85년에는 슈퍼리그, 축구대제전 등의 별칭이 많이 쓰였다. 이후 평범하게 프로축구로 불리다 1994 시즌부터 코리안리그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된다. 이 명칭은 한국프로축구대회와 별도로 코리언리그라는 별칭을 사용하는 실업축구리그가 굴러가던 시절에는 프로축구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마침내 K리그(또는 K-리그)가 한국프로축구리그의 정식명칭으로 채택된 것은 1998년이었다.1998년에는 지금 사용하고 있는 "K-리그" 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다. 공식 표기법은 한글: K리그, 영문: K League, 이미지: K•League로 사용해야 한다.
  • 한국프로축구대회가 공식명칭을 코리안리그로 변경한 1994년 당시 협회측에서 리그 명칭을 K리그로 줄여 칭한 사례나 그렇게 홍보한 사례는 없었다. 당시 기자들은 '코리안리그'라는 명칭을 가진 두 종목인 실업농구와 프로축구를 전부 K리그로 줄여적기를 즐겼는데, 예컨대 축구는 축구K리그, 농구는 농구K리그와 같은 식으로 표기했다. 여기에 더해 신문선이 중계만 했다하면 멀쩡한 공식명칭 놔두고 K리그 타령을 해대기도 했다. 그러다 1998년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명칭변경사유나 이것이 무엇의 약칭인지 등 부연설명 없이 공식 명칭을 'K-리그'로 변경, 2010년부터 가운대의 대시를 빼고 'K리그'로 다듬으면서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니까 공식적으로 K리그는 코리안리그의 약칭이 아니라 그냥 K리그이다. 특이한 것은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정식 약칭도 K리그다. 반면 J리그는 비공식적인 애칭 내지는 약칭에 불과하다. 일본 프로리그의 정식명칭은 출범 당시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일본프로축구리그'이며 공식 약칭같은 것은 지정하지 않았다.
  • 1994년부터 비공식적으로 쓰인 것은 사실이나, 실업농구 역시 K리그로 줄여부른 시절이 있었다는 점에서 단순히 매번 '코리안리그'라고 다섯자나 할애하기 번거로워 쓴 것일 뿐 누군가 의도적으로 일본을 의식하고 베끼거나 한 것은 아니다. 한국프로축구협회는 70년대부터 종목을 불문하고 마르고 닳도록 쓰인 코리안리그(또는 코리언리그)라는 명칭 대신 쓸만한 것으로 국내에서 가장 널리 쓰이던 별칭인 K리그를 공식적으로 선점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일본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점은 맞으나 일본을 의식해 뜬금없이 지정한 짝퉁명칭이냐고 하면 아니다.
  • 단일 리그였던 K리그는 2013년 승강제 도입으로 두 개의 리그가 되었는데, J리그를 베낀 이름이라는 풍문때문에 명칭 변경에 대한 의견 취합을 거친 결과 전통 차원에서 명칭을 유지하기로 하고 1부를 K리그 클래식, 2부를 K리그로 명명한다. 상위 리그(또는 하위 리그) 신설 과정에서 최상위 리그의 명칭을 새로 짓고 기존 명칭을 하위 리그에 넘겨주는 일은 의외로 흔한 방식[7]이지만 이렇게 되면 1부 리그를 K리그로 줄여부를 수 없게 되어 명칭 혼란에 대한 지적이 많이 나왔고, 연맹은 이를 받아들여 개막전 전까지 2부 리그의 명칭을 바꾸겠다고 발표한다. 그리고 2013년 3월 11일 2부 리그의 명칭이 K리그 챌린지로 확정된다. 기존에 프로 클럽들이 운영하던 U-18 리그인 챌린지리그와의 명칭 충돌이 있었는데, 챌린지리그는 팬 투표를 통해 K리그 주니어로 개명하게 되었다.
  • 2018년부터는 각각 K리그1, K리그2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다만 혼란을 막기 위하여 2018년에만 한하여 'KEB하나은행 K리그1 2018 (클래식)', 'KEB하나은행 K리그2 2018 (챌린지)', 'K리그1 (클래식)', 'K리그2 (챌린지)'와 같이 기존 명칭을 병행한다.관련기사 지난 10년 사이 공식 리그명이 바뀌는 것이 어느덧 세 번째인데, 너무 자주 바뀌다보니 리그명 변경에 따른 혼란가중에 대한 비판이 크다. 이럴거면 5년 전에 리그명 공모는 왜 한 것이며, 클래식/챌린지 명칭에 혼동의 여지가 있었다면 애초에 선택하지 말았어야 옳다. 그게 아니라면 그 유럽의 주요 리그들처럼 K리그 클래식이라고 하면 누구든 자연스레 1부 리그라고 떠올릴만큼 오랜 시간에 걸쳐 정통성과 가치를 부여했어야 옳다.관련기사 오죽하면 리그 개막을 코앞에 앞둔, 당사자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선수들조차 혼란스러움을 나타낼 정도이다.관련기사
  • 하지만 현재는 K리그1, K리그2라는 명칭이 잘 정착되어 사용되고 있다. 또한 대한축구협회에서 구축하고 있는 프로 리그(K리그1, K리그2)-세미프로 리그(K3리그, K4리그)-아마추어 리그(K5리그, K6리그, K7리그)를 연결하는 K리그 디비전 시스템을 위해서도 리그의 명칭에 디비전 숫자를 넣어 표기한 것은 직관적이고 명료하다는 평가가 많다.

1.2. 리그 창설 배경과 준비

1.2.1. 리그 출범 초기 (~1983)

실업축구로 진행되던 한국의 성인 축구리그는, 최순영신동아그룹회장이 대한축구협회장에 취임하면서 본격적인 프로화의 닻을 올리게 된다. 최 회장의 공약 중의 하나가 바로 프로화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전부터 실업리그를 1부 리그와 2부 리그로 나누고 승강제를 진행하려는 노력이 1975년에도 있었고, 1980년에도 시도하려다 실업팀의 반발로 실패한 적이 있었다.

또한 당시 정권의 3S정책에 힙입은 바도 있었고, 무엇보다 전두환 대통령이 축구광이란 점이 가장 큰 배경이었다. 1981년 5월 청와대 비서관들이 국민의 관심을 돌리고자 프로스포츠를 만들기로 했고, 6월에 실업야구 롯데 감독 박영길과 최순영 전 대한축구협회장이 청와대로 불려갔다. 최회장은 축구의 프로화계획에 대해 물어보기에 "축구는 모든 준비가 다 되어 있다"고 확신을 갖고 말했다. 반면 야구 측 박영길 감독은 1976년 재미사업가 홍윤희가 주도해 만든 프로화 청사진이 이미 있다고 어필했다. 청와대는 어느 종목이든 정한 것이 아니었고, 어느 쪽이든 구체적인 실현 가능한 계획이 나오기를 바랐던 것. 여기서 축구계는 경기장 시설 투자 등 프로화 비용으로 139억원을 국비로 지원해 줄 것을 요구하였는데, 야구계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주요인물이었던 이호헌/이용일이 정부지원 없이[8] 프로야구를 만들 수 있다고 해 야구를 일단 프로화 하기로 한다.[9]

전두환은 프로축구 출범에 알게 모르게 영향력을 행사했다. 전두환은 1981년 4월 30일에 새마을 성금 기탁 기업인들을 초청해 만찬을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 선경그룹 최종현 회장에게 할렐루야가 있으니 나무아미타불팀을 만들어보시라는 농담을 던졌다. 그리고 한 달 뒤 느닷없이 유공의 프로축구팀 창단 검토가 등장한다.

1981년 10월 축구협회 최순영 회장은 기존의 할렐루야 팀에다 1982년 3개팀을 추가해 총 4팀으로, 다시 1983년 4개팀을 추가해 총 8팀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10] 그러나 원하는 대로 실현되지는 못했다.

1983년 2월에는 슈퍼리그 창설위원회가 축구협회 산하에 만들어지게 된다. 그러나 끊임없이 장애물들은 등장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브라질 프로팀 초청 건이었다. 국가대표팀과 브라질 프로팀과 초청경기를 통해 축구열기를 지핀다는 계획은 참신했지만, 당시 지방의 각 시도의 협회 지부는 "프로야구 때문에 관객유치가 곤란하다. 적자를 내면서까지 대회를 유치할 수는 없다"며 반대한다. 뿐만 아니라 프로화에 대해 오히려 실업팀이나 프로팀마저 슈퍼리그에 제각각의 이유를 대며 딴지를 거는 통에 협회는 내부간 싸움까지 겹쳐 어수선한 상태였다.

이러한 분위기를 일신한 것은 그해 개최된 대통령배로, 협회는 첫 개막전을 제외한 모든 경기를 무료로 개방함으로써 72게임 동안 20만명의 관중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고, 이는 주택은행한일은행 그리고 현대가 슈퍼리그 참가를 요청해 올 정도로 열기는 무르익게 된다.

1.2.2. 새로운 변화 (1984~1992)

전년도의 성공적인 흥행과 함께, 운영에 자신감을 얻은 기업들이 대거 참가하는데 힘입어 1984시즌에는 참가팀이 8팀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할렐루야, 대한석유공사, 럭키금성, 대우, 현대 프로 5개 클럽과 포항제철, 국민은행, 한일은행 실업 3개 클럽의 참가가 결정되었다. 상금도 대폭 늘어 1억 4천만원이 늘어난 3억원으로 결정되었다. 우승팀은 1억원, 2위팀은 7,500만원, 3위팀은 5,000만원 정도였다.[11] 특히 선수단의 규모에 있어서도, 해외선수들의 국내 복귀와 외국인 선수의 영입 등이 이어지며 그 질과 양이 대폭 개선되었다. 또한 관중을 불러오기 위해 경품 제공량도 원년의 1억 3천만원에서 3억 5천만원 가량으로 크게 늘리게 되었다. 한편 리그 명칭에도 변화가 있었는데, 외래어 사용이 심하다는 정부 지적으로 인해 「슈퍼리그」라는 명칭 대신 「축구대제전」이라는 말을 쓰도록 체육부가 지시한 사건이 있었다. 이로 인해 언론이나 대중들 사이에서 슈퍼리그나 축구대제전이라는 2개의 명칭이 병용되었다.

1985시즌엔 이러한 리그 확대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시즌 중이던 할렐루야는 7월 18일 이수정 단장이 선수단을 불러놓고 해체 의사를 밝힘으로써 3차 리그 참가를 포기했다. 또 아마추어로 전환할 선수만 받아서 새롭게 팀을 구성하겠다고 밝혀서 프로축구계에 충격을 던졌다. 특히 구단주인 최순영 당시 대한축구협회장은 '선교에 방해만 된다'고 말하며 해체입장을 밝혔다. 할렐루야의 해체가 리그에 미친 충격은 대단했다. 재정난에 시달리던 프로축구에게 있어서 할렐루야의 해체는 다른 축구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당시 최순영 축구협회장에게 사임을 요구할 정도로 축구계는 격앙되어 있었다. 이런 와중에 최순영 협회장은 오락가락하며 의사를 번복하다 결국 해체의사를 다시 밝혔고 결국 할렐루야는 해체되고 말았다.

1986시즌은 리그의 운영과 신인 충원에 있어 굵직한 사건이 일어난 해이다. 우선 실업클럽과 프로클럽이 격돌하는 ‘축구대제전(기존의 슈퍼리그)’과 별도로 프로클럽만 참가하는 ‘프로축구선수권대회’로 리그를 분리해 운영했다. 축구대제전은 지난해 우승팀 럭키금성을 비롯 대우, 포항제철, 현대, 대한석유공사 등 프로 5개 팀과 한일은행이 참가했다. 춘계리그와 추계리그로 나누어 각각 30경기씩 60경기를 치렀고, 각 리그 우승팀이 챔피언결정전을 가져 종합 우승팀을 가렸다. 프로 5개 클럽만 참가하는 "프로축구선수권대회"는 연고지를 순회하며 경기를 가졌다.[12] 한편, 김종부[13]를 둘러싼 각 클럽의 스카우트 파동이 일어났다. 선수의 마음을 사로잡은 대우와 이적 결정권자인 모교 고려대의 마음을 사로잡은 현대의 싸움으로 인해 김종부는 무적선수로 월드컵에 출전한다. 결국은 김종부는 제3의 클럽 포항제철로 가게 된다.[14]

1987시즌은 한일은행이 제외되어 프로 5개 클럽만의, 진정한 프로리그가 시작되었다. 리그의 숙원이었던 대회 운영방식이 단일리그,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입장 수입을 홈 팀이 관리하게 되었다. 또한 축구협회로부터 프로축구위원회가 출범하여 독립적으로 대회운영에 관한 사무를 주관하게 되었다. 또한 선수에 대한 연봉지급도 기본급과 수당으로 나눠 출전 수당을 지급하기로 하는 등 여러가지로 변화가 많았다. 특히 연고지 정착을 위해 대우 로얄즈는 홈 시즌티켓을 도입했고 나머지 팀들도 연고지 정착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88시즌엔 전 시즌까지 행했던 주말 2연전을 선수 보호차원에서 폐지하고 1경기만 치루도록 해 경기수는 작년보다 줄었다. 한편 올림픽도 있고 하여 프로 스포츠도 그 바람을 타지 않을까 하는 예상이 있었지만 잔디보호를 명목으로 서울 등 올림픽이 치뤄질 곳에서 경기를 치르지 못하게 지시하는 병크를 저지른다. 이러한 이유로 제주, 청주 등 중소도시만 돌아다닌 까닭에 관중 동원력은 좋지 못했고 평균 3~5,000여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15]

1989시즌에는 일화 천마의 리그 참가로 6개 클럽 체제가 이루어졌으며 그로 인해 한 시즌동안 소화해야 할 경기 수가 증가하였다. 4강 신화의 주역인 박종환 감독으로 한 일화는 연고지를 서울 동대문운동장으로 하였으며 잠실에서도 경기를 하였다.

1990시즌에는 도시지역연고제가 전면적으로 시행되었다. 이로 인해 럭키금성은 충청에서 서울로, 현대는 강원에서 울산으로 연고지를 이전하였다. 2군 리그가 처음으로 도입되었으며 대우동독의 프랑크 엥겔 감독을 선임하며 최초의 외국인 감독을 탄생시켰고, 일화사리체프를 데려오며 최초의 외국인 골키퍼를 영입하였다.[16]

1991시즌들어 럭키금성 황소가 모기업 사명 변경에 따라, 사원들 투표를 통해 LG 치타스로 팀명을 변경하였다. 또한 유공 코끼리는 인천과 경기 지역 연고에서 서울특별시 연고로 이전을 하였다. 리그 일정 또한 기존 6라운드에서 8라운드로 늘어 팀당 40경기를 소화했다.

1992시즌 아디다스컵이라는 이름으로 처음으로 리그컵이 신설되었다. 6월 3일 개막하여 격주 수요일마다 경기를 가졌다. 6개 구단이 2라운드 풀리그를 치른 뒤 1위와 2위가 결승전을 홈 앤 어웨이로 가지는 방식으로 초대 우승은 일화 천마가 가져갔다. 리그컵의 신설로 인해 정규리그는 다시 6라운드 30경기 체제로 복귀하게 되었다.

2. 참가 구단의 변동

연도 팀명 구단 형태 연고지 비고
1983 할렐루야 독수리 프로/종교[17]구단 강원/충남/충북 최초의 프로축구팀. 1986년 실업리그 행. 1998년 해체됐다.
유공 코끼리 프로/기업구단 서울/인천/경기 유공 코끼리부천 유공(부천)→부천 SK(부천)→제주 유나이티드(제주)
대우 로얄즈 실업/기업구단 부산/경남 대우 로얄즈부산 대우 로얄즈(부산)→부산 아이콘스(부산)[18]부산 아이파크(부산)
포항제철 돌핀스 실업/기업구단 대구/경북 포항제철 돌핀스포항제철 아톰즈포항 아톰즈(포항)→포항 스틸러스(포항)
국민은행 까치 실업/기업구단 전북/전남 1985년 실업리그 행. 1997년 해체됐다.[19]
1984 럭키금성 황소 프로/기업구단 충남/충북 럭키금성 황소LG 치타스안양 LG 치타스(안양)→FC 서울(서울)[20]
현대 호랑이 프로/기업구단 인천/경기 현대 호랑이울산 현대 호랑이(울산)→울산 현대(울산)
한일은행 축구단 실업/기업구단 없음 실업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참가.[21] 1987년 실업리그 행. 1997년 해체됐다.
1985 상무 축구단 군팀 없음 실업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참가.1986년 실업리그 행. 2003년부터 광주나 상주 등 지자체와 연고 협약을 맺으며 K리그에 다시 등장하게 되었다.
1989 일화 천마 기업구단[22] 서울 일화 천마천안 일화 천마(천안)→성남 일화 천마(성남)→성남 FC(성남)[23]
1994 전북 버팔로[24] 기업구단 전북 호남 최초의 축구단[25]. 경영 악화로 선수단이 전북 다이노스에 인수되면서 1994 시즌을 마지막으로 해체됐다.
1995 전남 드래곤즈 기업구단 전남 포항제철의 두 번째 구단.
전북 다이노스[26] 기업구단 전북 전북 다이노스(전북)→전북 현대 다이노스(전북)→전북 현대 모터스(전북)
1996 수원 삼성 블루윙즈 기업구단 수원
1997 대전 시티즌 기업구단 대전 창단 당시 컨소시엄 형태의 기업구단이었으나, 2006년 시민구단으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2020년 하나금융그룹에 의해 인수되면서 다시 기업구단으로 전환되었다.[27] 대전 시티즌(대전)→대전 하나 시티즌(대전)
2003 광주 상무 불사조 군팀 광주 광주가 신규 구단을 창단하려다가 어려워지자 상무 축구단과 연고 협약을 맺으며 광주를 연고로 창단하게 됐다. 2010 시즌을 끝으로 광주와 연고 협약이 종료되고, 상무 축구단이 상주와 새 연고 협약을 맺으며 광주 상무 불사조는 해체됐다.
대구 FC 시민구단 대구 최초의 시민구단
2004 인천 유나이티드 시민구단 인천
2006 경남 FC 도민구단 경남
2009 강원 FC 도민구단 강원
2011 광주 FC 시민구단 광주 상무 축구단이 상주와 새 연고 협약을 맺으며 상주로 연고를 이전하고 광주 상무 불사조가 해체되면서, 시민구단으로 새로 창단되었다.
상주 상무 군팀 상주 광주 상무 불사조의 상무 축구단이 상주로 연고지 이전을 하면서 새로 창단되었다.[28]
2013 안산 경찰청 축구단 경찰팀 안산 안산 경찰청 축구단(안산)→안산 무궁화(안산). 2016 시즌을 끝으로 안산과 연고 협약이 종료되고, 경찰청 축구단이 아산과 새 연고 협약을 맺으며 안산 무궁화는 해체됐다.
고양 Hi 종교구단 고양 고양 Hi(고양)[29]고양 자이크로(고양)[30]. 내셔널리그에서 K리그 챌린지로 프로 전환됐다. 2016 시즌을 마지막으로 해체됐다.
부천 FC 1995 시민구단 부천 K3리그에서 K리그 챌린지로 프로 전환됐다.
수원 FC 시민구단 수원 내셔널리그에서 K리그 챌린지로 프로 전환됐다.
충주 험멜 기업구단 충주 내셔널리그에서 K리그 챌린지로 프로 전환됐다. 2016 시즌을 마지막으로 해체됐다.
FC 안양 시민구단 안양
2015 서울 이랜드 기업구단 서울
2017 안산 그리너스 시민구단 안산 경찰청 축구단이 아산과 새 연고 협약을 맺으며 아산으로 연고를 이전하고 안산 무궁화가 해체되면서, 시민구단으로 새로 창단되었다.
아산 무궁화 경찰팀 아산 안산 무궁화의 경찰청 축구단이 아산으로 연고지 이전을 하면서 새로 창단되었다.[31] 2019 시즌을 끝으로 경찰청 축구단이 해체되면서 아산 무궁화도 함께 해체됐다.
2020 충남 아산 FC 시민구단 아산 아산 무궁화가 해체되면서, 시민구단으로 새로 창단되었다.
  • 1983년에 리그가 창설될 때 프로 팀 2개(유공, 할렐루야)와 실업 팀 3개(대우, 포항제철, 국민은행)를 묶어서 5개 팀으로 시작[32]해서 꾸준히 신생팀의 참가가 이어져 2012년도까지 16개 팀을 갖추게 되었다. 2020년 시점에서는 2개 디비전 체제로 1부 리그에 12팀, 2부 리그에 10팀 체제이다. 특히 2002년 월드컵 이후로 많은 구단들이 새로 창단되어 급속도로 규모가 커졌으나, 이들 대부분이 지자체구단으로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시민구단 문서 참조.
  • 대전 시티즌이 창단하기 전까지는 10개 팀이 안 되면 FIFA에서 정식 프로 리그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이 신빙성 있게 돌았으나, 사실이 아니다. FIFA에서는 각국의 리그 운영에 일일이 간섭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도 이를 믿는 사람들이 많은지 대한축구협회에서도 홈페이지의 FAQ에 이 부분을 넣었다.

3. 참가 구단 연혁

시즌 클럽 수 비고
1 2
1983 5 5 슈퍼리그 창설
할렐루야 독수리 참가
유공 코끼리 참가
대우 로얄즈 참가
포항제철 돌핀스 참가
국민은행 까치 참가
1984 8 8 럭키금성 황소 참가
현대 호랑이 참가
한일은행 축구단 참가
1985 8 8 국민은행 까치 탈퇴
상무 축구단 참가
1986 6 6 할렐루야 독수리 탈퇴
상무 축구단 탈퇴
1987 5 5 한일은행 축구단 탈퇴
1989 6 6 일화 천마 참가
1994 7 7 전북 버팔로 참가
1995 8 8 전북 버팔로 해체
전남 드래곤즈 참가
전북 다이노스 참가
1996 9 9 수원 삼성 블루윙즈 참가
1997 10 10 대전 시티즌 참가
2003 12 12 광주 상무 불사조 참가
대구 FC 참가
2004 13 13 인천 유나이티드 참가
2006 14 14 경남 FC 참가
2009 15 15 강원 FC 참가
2011 16 16 광주 상무 불사조 해체
상주 상무 참가
광주 FC 참가
2013 14 8 22 K리그 챌린지 창설
K리그 클래식에서 K리그 챌린지로 2개 구단 강등
K리그 챌린지에 6개 구단 참가
안산 경찰청 축구단 참가
고양 Hi 참가
부천 FC 1995 참가
수원 FC 참가
충주 험멜 참가
FC 안양 참가
2014 12 10 22 K리그 클래식에서 K리그 챌린지로 2개 구단 강등
2015 12 11 23 K리그 챌린지에 서울 이랜드 참가
2017 12 10 22 안산 무궁화 해체
고양 자이크로 해체
충주 험멜 해체
K리그 챌린지에 아산 무궁화 참가
K리그 챌린지에 안산 그리너스 참가
2020 12 10 22 아산 무궁화 해체
K리그2에 충남 아산 FC 참가

4. 참가 구단 (2020 시즌)

  • 정렬 순서는 연고지의 가나다 순 입니다.
엠블럼 구단 연고지 리그 참가 주 경기장
K리그1 2020
파일:attachment/gangwon_s.png 강원 FC 강원도(춘천시) 2009 춘천송암레포츠타운
파일:attachment/gwangju_s.png 광주 FC 광주광역시 2011 광주월드컵경기장
파일:attachment/daegu_s.png 대구 FC 대구광역시 2003 DGB대구은행 파크
파일:attachment/ipark_s.png 부산 아이파크 부산광역시 1983 구덕운동장
파일:attachment/sangmu_s_2.png 상주 상무 상주시 2011 상주시민운동장
파일:attachment/seoul_s.png FC 서울 서울특별시 1984 서울월드컵경기장
파일:external/s20.postimg.org/snfc2017.png 성남 FC 성남시 1989 탄천종합운동장
파일:attachment/bluewings_s.png 수원 삼성 블루윙즈 수원시 1996 수원월드컵경기장
파일:external/oi65.tinypic.com/672hq8.png 울산 현대 울산광역시 1984 울산문수축구경기장
파일:attachment/Incheon_s.png 인천 유나이티드 인천광역시 2004 인천축구전용경기장
파일:JeonbukHyundai_7starlogo.png 전북 현대 모터스 전라북도(전주시) 1995 전주월드컵경기장
파일:attachment/steelers_s.png 포항 스틸러스 포항시 1983 포항스틸야드
K리그2 2020
파일:attachment/GN_s.png 경남 FC 경상남도(창원시) 2006 창원축구센터
파일:대전 하나 시티즌 앰블럼.jpg 대전 하나 시티즌 대전광역시 1997 대전월드컵경기장
파일:attachment/bucheon_s.png 부천 FC 1995 부천시 2013 부천종합운동장
파일:attachment/seoul_e-land_s.png 서울 이랜드 서울특별시 2015 서울올림픽주경기장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139px-Suwon_FC_2016.svg.png 수원 FC 수원시 2013 수원종합운동장
파일:충남아산프로축구단.png 충남 아산 FC 아산시 2020 이순신종합운동장
파일:external/s20.postimg.org/ansangreenersfc.png 안산 그리너스 안산시 2017 안산와~스타디움
파일:attachment/anyang_s.png FC 안양 안양시 2013 안양종합운동장
파일:attachment/JND_s.png 전남 드래곤즈 전라남도(광양시) 1995 광양축구전용구장
파일:attachment/Jeju_s.png 제주 유나이티드 제주특별자치도(서귀포시) 1983 제주월드컵경기장

5. 상금 규모

리그 분류 부문 상금 비고
K리그1 2019 단체상 우승 5억 원
준우승 2억 원
페어 플레이 1000만 원 페어 플레이 점수를 산정하여 가장 점수가 높은 팀에게 수여한다.
개인상 득점왕 500만 원 [33]
도움왕 300만 원
K리그2 2019 단체상 우승 1억 원
개인상 득점왕 300만 원 [34]
도움왕 150만 원
  • 2011 시즌까지 K리그 우승 상금은 3억 원이었으나 2012 시즌부터 5억 원으로 67% 인상되었다. 준우승 상금도 1억 5천만 원에서 2억 원으로 인상되었다. 이것은 2006 시즌에 2억 원에서 3억 원으로 인상되고 난 후 6년 만의 인상이다. 참고로 대한축구협회 FA컵 우승 상금은 3억원이다.
  • 옆나라 일본의 J리그의 우승 상금은 2016 시즌까지 1억 엔 (한화 약 10억 7천만 원)으로 이미 K리그 클래식 우승 상금과 2배 이상의 차이가 있었으나, 2017 시즌부터는 10배 인상하여 J리그 챔피언 결정전 우승팀에게 10억 엔의 우승 상금이 주어질 것이라 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최근 영국 기업과의 중계권 협상에서 10년간 2조 5천억 원이 넘는 대형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비록 리그 예산 규모에서 J리그에 막대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고는 하나, 이 추세가 지속된다면 J리그와의 리그 경쟁력에서 더욱 열세를 보일 것이라는 점은 불보듯 뻔하다. 5억 원의 저조한 우승 상금과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도 올라왔다. 다만 이 기사에선 J리그의 우승 상금이 한화로 223억이라 소개하고 있다.#
  • 덧붙여 중동의 오일머니, 중국의 축구굴기가 한창 기승인 이적 시장에서 현실적으로 K리그 클래식의 우승 상금만 놓고 보자면 메리트 있는 액수는 아니다. 더군다나 5억 원의 우승 상금은 K리그가 승강제를 구축하면서, 2016 시즌까지 강등팀에게 5억 원씩을 지원하기로 하면서 강등팀하고 우승팀이 받는 돈이 어떻게 같을 수 있냐며 까인 적이 있을 정도다. 문제는 당장 K리그팬 스스로가 전혀 소비를 하지 않는다는 것. 실제로 K리그 우승 상금은 전적으로 메인 스폰서에 의지하고 있는데, 2017년까지는 연맹 회장의 소속사인 현대중공업에서 떠안았고, 2018년부터는 국가대표를 후원 중인 하나은행기존보다도 적은 금액으로 지급 중이다. 1984년 프로축구 원년에 우승 상금이 1억 원이었다. 2019년 우승 상금은 5억 원인데, 이는 전북 현대의 이동국 선수가 수령하는 연봉 10억 2772만 원의 절반보다도 적다.
  • 대륙컵인 AFC 챔피언스 리그는 2016 시즌부터 우승 상금이 2배로 뛰어 올라 종전의 150만 달러에서 2배가 오른 300만 달러(약 36억 원)를 우승팀에게 수여하기로 했다. 그럼 현실적으로 리그 3위를 지켜 AFC 챔피언스 리그 출전권만 확보한다면 K리그 클래식보단 챔피언스 리그에 올인하는 것이 수익이나 홍보 효과를 고려했을 때 너무나 당연한 결정 아닌가 싶겠지만... 실제로는 챔피언스 리그로 홍보 효과를 누릴 만한 기업도 거의 없고[35], 챔피언스 리그가 별 다른 입장 수입이나 중계권 수입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상금으로 본전을 치려면 생각보다 높은 성적을 요구하니 이래저래 구단들로서는 셈법이 복잡하다.
  •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부터는 대회에 차출된 선수의 수와 차출 기간에 비례해 피파에서 일종의 차출 보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2018년도 대회에서 3명이 차출된 전북이 보상금으로 리그 우승 상금의 2배가 넘는 10억 여원의 금액을 받았다. 심지어 1명만 차출된 대구, 제주, 성남, 수원 등도 리그 우승 상금의 절반에 육박하는 보상금을 받으면서, 리그 우승보다 소속팀 선수들이 월드컵에 차출되는 게 더 남는 상황일 정도로 K리그의 우승 상금이 너무 적다는 문제가 더 커지고 있다.

6. 우승 트로피

파일:K리그 챔피언 트로피.jpg 파일:k리그2 우승패.jpg
K리그1 우승 트로피 K리그2 우승 트로피
  • 그동안의 K리그의 우승컵들은 동네 체육사에서 파는 저가에 급조된 느낌의 우승컵들이었고 그나마도 거의 매년 바뀌어서 우승컵의 위엄과 전통을 나타낼 수 없었다. 2006, 2007 시즌 우승컵 그러나 2008년, K리그 25주년을 맞아 리그의 정통성과 통일성을 확립하기 위해 2007년부터 1년여에 걸친 기획 끝에 현재의 우승 트로피가 완성되었다. 재질은 24K 도금에 높이 50cm, 무게 7kg으로 되어있다.
  • 2013 시즌, K리그가 K리그 클래식으로 개편되고 기존 K리그를 계승하기에 우승 트로피를 그대로 사용한다.
  • 시즌 우승팀은 우승 트로피 하단에 우승 시즌, 클럽명이 새겨지며 1년간 보관, 관리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게 된다. 다음 시즌 우승팀이 결정되면 진품은 반납하고 동일한 크기의 황동 복제 우승 트로피가 주어진다. 연속 우승의 경우에는 진품 반납을 하지 않고 이전 시즌 우승에 대한 복제 우승 트로피를 또 수여받는다. 우승 트로피가 바뀐 뒤 첫 시즌이었던 2008 시즌 새 우승컵의 주인은 수원 삼성 블루윙즈였으며, 2015 시즌 전북 현대 모터스가 드디어 K리그 클래식 2연패를 달성하였다.
  • 2012년 승강제시행으로 2013년부터 K리그가 1부와 2부로 나뉘게 되자 우승 트로피 또한 관심 대상이 되었다. 1부 리그인 K리그 클래식은 승강제 도입 전의 K리그를 그대로 승계한 관계로 기존의 우승 트로피를 그대로 쓰고, 2부 리그인 K리그 챌린지는 우승 트로피를 새로 만들었다.

7. 리그 패치

K리그 챔피언 패치 K리그1 패치 K리그2 패치
파일:K리그1 2018 챔피언 패치.jpg 파일:K리그1 2018 패치.jpg 파일:K리그2 2018 패치.jpg

8. 공인구

K리그 역대 공인구
스폰서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0px-Logo_NIKE.svg.png
( ~2011년)
파일:external/i.onionstatic.com/640.jpg
(2012년~ )
형태 사용 연도명칭
파일:2000-01NIKE_GEO_MERLIN(K리그).jpg 2000 Nike GEO MERLIN
2001
파일:2002-03NIKE_GEO_MERLIN_VAPOR(K리그).jpg 2002 Nike GEO MERLIN VAPOR
2003
파일:2004-06NIKE_TOTAL90_ARROW(K리그).jpg 2004 Nike TOTAL 90 AEROWⅠ
2005
2006
파일:2007-08NIKE_TOTAL90_ARROW2(K리그).jpg 2007 Nike TOTAL 90 AEROW Ⅱ
2008
파일:2008NIKE_MERCURIAL_VELOCHI(K리그).jpg Nike MERCURIAL VELOCHI
파일:2009NIKE_TOTAL90_OMNI(K리그).jpg 2009 Nike TOTAL 90 OMNI
파일:2010-11NIKE_TOTAL90_ASCENT(K리그).jpg 2010 Nike TOTAL 90 ASCENT
2011
파일:2012 Tango12(K리그).jpg 2012 Tango 12
파일:Cafusa(K리그).jpg 2013 Cafusa
파일:2014ball.jpg 2014 Brazuca
파일:2015ball.png 2015 Conext15
파일:ball2016.png 2016 Errejota
파일:2017ball.jpg 2017 Krasava
파일:2018ball.png 2018 Telstar 18
파일:2019ball.jpg 2019 Conext19
파일:2020ball.jpg 2020 Tsubasa Pro
  • 2012 시즌부터 아디다스 국제 공인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2019년까지 계약이 되어있는 상태라 그 때까지는 J리그메이저 리그 사커 등에서 사용하는 공과 같은 것을 쓴다.

9. 시즌별 일람

K리그 시즌
1983198419851986198719881989199019911992
1993199419951996199719981999200020012002
2003200420052006200720082009201020112012
2013201420152016201720182019202020212022
K리그1 시즌
2013201420152016201720182019202020212022
K리그2 시즌
2013201420152016201720182019202020212022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시즌
2013201420152016201720182019202020212022

10. 리그 연혁

10.1. 역대 K리그1 우승팀

연도 우승팀 준우승팀 리그 방식
1983 할렐루야 독수리 대우 로얄즈 단일 리그
1984 대우 로얄즈 유공 코끼리 전후기 리그/챔피언 결정전
1985 럭키금성 황소 포항제철 아톰즈 단일 리그
1986 포항제철 아톰즈 럭키금성 황소 전후기 리그/챔피언 결정전
1987 대우 로얄즈 포항제철 아톰즈 단일 리그
1988 포항제철 아톰즈 현대 호랑이
1989 유공 코끼리 럭키금성 황소
1990 럭키금성 황소 대우 로얄즈
1991 대우 로얄즈 현대 호랑이
1992 포항제철 아톰즈 일화 천마
1993 일화 천마 LG 치타스
1994 일화 천마 유공 코끼리
1995 일화 천마 포항 아톰즈 전후기 리그/챔피언 결정전
1996 울산 현대 호랑이 수원 삼성 블루윙즈
1997 부산 대우 로얄즈 전남 드래곤즈 단일 리그
1998 수원 삼성 블루윙즈 울산 현대 호랑이 단일 리그/4강 플레이오프
1999 수원 삼성 블루윙즈 부산 대우 로얄즈
2000 안양 LG 치타스 부천 SK
2001 성남 일화 천마 안양 LG 치타스 단일 리그
2002 성남 일화 천마 울산 현대 호랑이
2003 성남 일화 천마 울산 현대 호랑이
2004 수원 삼성 블루윙즈 포항 스틸러스 전후기 리그/4강 플레이오프
2005 울산 현대 호랑이 인천 유나이티드
2006 성남 일화 천마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7 포항 스틸러스 성남 일화 천마 단일 리그/6강 플레이오프
2008 수원 삼성 블루윙즈 FC 서울
2009 전북 현대 모터스 성남 일화 천마
2010 FC 서울 제주 유나이티드
2011 전북 현대 모터스 울산 현대
2012 FC 서울 전북 현대 모터스 단일 리그/스플릿
2013 포항 스틸러스 울산 현대
2014 전북 현대 모터스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5 전북 현대 모터스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6 FC 서울 전북 현대 모터스
2017 전북 현대 모터스 제주 유나이티드
2018 전북 현대 모터스 경남 FC
2019 전북 현대 모터스 울산 현대

10.2. K리그1 우승 횟수

우승 준우승 우승 연도 준우승 연도
성남 FC 7 3 1993, 1994, 1995, 2001, 2002,
2003, 2006
1992, 2007, 2009
전북 현대 모터스 7 2 2009, 2011, 2014, 2015, 2017,
2018, 2019
2012, 2016
FC 서울 6 5 1985, 1990, 2000, 2010, 2012,
2016
1986, 1989, 1993, 2001, 2008
포항 스틸러스 5 4 1986, 1988, 1992, 2007, 2013 1985, 1987, 1995, 2004
수원 삼성 블루윙즈 4 4 1998, 1999, 2004, 2008 1996, 2006, 2014, 2015
부산 아이파크 4 3 1984, 1987, 1991, 1997 1983, 1990, 1999
울산 현대 2 8 1996, 2005 1988, 1991, 1998, 2002, 2003,
2011, 2013, 2019
제주 유나이티드 1 5 1989 1984, 1994, 2000, 2010, 2017
할렐루야 독수리 1 0 1983 -
전남 드래곤즈 0 1 - 1997
인천 유나이티드 0 1 - 2005
경남 FC 0 1 - 2018

10.3. 역대 K리그2 우승팀

연도 우승팀 준우승팀 리그 방식
2013 상주 상무 안산 경찰청 축구단 단일 리그
2014 대전 시티즌 광주 FC 단일 리그/승격 플레이오프
2015 상주 상무 수원 FC
2016 안산 무궁화 대구 FC
2017 경남 FC 부산 아이파크
2018 아산 무궁화 성남 FC
2019 광주 FC 부산 아이파크

10.4. K리그2 우승 횟수

우승 준우승 우승 연도 준우승 연도
상주 상무 2 0 2013, 2015 -
안산 무궁화 1 1 2016 2013
광주 FC 1 1 2019 2014
대전 하나 시티즌 1 0 2014 -
경남 FC 1 0 2017 -
아산 무궁화 1 0 2018 -
부산 아이파크 0 2 - 2017, 2019
수원 FC 0 1 - 2015
대구 FC 0 1 - 2016
성남 FC 0 1 - 2018

10.5. 역대 승강팀

연도 승격팀 강등팀
2012 - 광주 FC
상주 상무
2013 상주 상무 강원 FC
대구 FC
대전 시티즌
2014 대전 시티즌
광주 FC
경남 FC
상주 상무
2015 상주 상무
수원 FC
부산 아이파크
대전 시티즌
2016 대구 FC
강원 FC
성남 FC
수원 FC
2017 경남 FC 광주 FC
2018 성남 FC 전남 드래곤즈
2019 광주 FC
부산 아이파크
제주 유나이티드
경남 FC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자동 승강을 제외한 역대 승강전 결과에 대한 내용은 K리그/승강 플레이오프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11. K리그 시상식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K리그 대상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2. 역대 스폰서 및 엠블럼

  • 1994년 K리그가 한국 프로 스포츠 중 최초로 타이틀 스폰서십 제도를 도입했다. 최초의 타이틀 스폰서는 하이트맥주이며, 타이틀은 '하이트배 코리안리그'다. 만약 역사를 컵 대회까지 포함시킨다면, 1992년 아디다스가 리그컵 스폰서로 참여한 '아디다스배 프로축구 컵 대회'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아디다스는 1992년부터 2003년까지 무려 12년 동안 컵 대회를 타이틀 스폰서로서 후원하였다.

12.1. 역대 스폰서

연도 스폰서 리그명 금액
1994년 하이트맥주 하이트배 코리안리그 4억원
1995년
1996년 삼성물산 라피도컵 프로축구대회 추가바람
1997년
1998년 현대중공업 현대컵 K-리그 추가바람
1999년 현대증권 바이코리아컵 K-리그 15억원
2000년 삼성전자 삼성디지털 K-리그 18억원
2001년 포스코 포스코 K-리그 20억원
2002년 삼성전자 삼성 파브 K-리그 27억원
2003년 삼성 하우젠 K-리그 35억 8천만원
2004년 32억
2005년 34억
2006년
2007년 33억
2008년
2009년 없음[36][37] K-리그 없음
2010년 현대자동차 쏘나타 K리그 23억원
2011년 현대오일뱅크 현대오일뱅크 K리그 30억원
2012년 35억원(추정)
2013년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 챌린지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KEB하나은행 KEB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 챌린지 35억원
2018년 KEB하나은행 K리그1/2
2019년 하나원큐[38] K리그 1/2
2020년

12.2. 역대 스폰서 엠블럼

역대 스폰서 엠블럼 설명
파일:K리그 -하이트배.jpg 1994~1996 스폰서 엠블럼
파일:attachment/K리그/1997.jpg 1997 스폰서 엠블럼
파일:attachment/K리그/1998a.jpg 1998 스폰서 엠블럼
파일:attachment/K리그/1999.jpg 1999 스폰서 엠블럼
파일:K리그 2000시즌 스폰서 엠블럼.jpg 2000 스폰서 엠블럼
파일:attachment/K리그/2001.jpg 2001 스폰서 엠블럼
파일:attachment/K리그/2002.jpg 2002 스폰서 엠블럼
파일:K리그 2003시즌 스폰서 엠블럼.jpg 파일:K리그 2004시즌 스폰서 엠블럼.jpg 파일:K리그 2005시즌 스폰서 엠블럼1.jpg
파일:K리그 2006시즌 스폰서 엠블럼.jpg 파일:K리그 2007시즌 스폰서 엠블럼.jpg
2003~2007 스폰서 엠블럼
파일:K리그 2008시즌 스폰서 엠블럼.jpg 2008 스폰서 엠블럼
파일:/image/018/2010/02/26/1267149783.749436_PS10022600059.jpg 2010 스폰서 엠블럼
파일:external/pds.joinsmsn.com/201202221145775664_1.jpg 2011~2012 스폰서 엠블럼
파일:external/img.sbs.co.kr/30000239442_700.jpg 파일:2013 K리그 챌린지 엠블럼.jpg 2013 스폰서 엠블럼
파일:/image/014/2014/03/06/20140306162441554_59_20140306162504.jpg 파일:2014 K리그 챌린지 엠블럼.jpg 2014 스폰서 엠블럼
파일:attachment/_20153310854.png 파일:2015 K리그 챌린지 엠블럼.jpg 2015 스폰서 엠블럼
파일:/image/382/2016/03/04/76810995.1_99_20160304054731.jpg 파일:2016 K리그 챌린지 엠블럼.jpg 2016 스폰서 엠블럼
파일:keb_classic_noR.gif 파일:2017 K리그 챌린지 엠블럼.jpg 2017 스폰서 엠블럼
파일:K리그1 2018 엠블럼.jpg 파일:K리그2 2018 엠블럼.jpg 2018 스폰서 엠블럼
파일:K리그1_2019.png 파일:2019_K리그2.png 2019 스폰서 엠블럼

13. 특색

  • 1983년부터 1986년까지 K리그 참가 구단들은 명목 상 연고지를 할당 받았지만[39], 전국 도시를 돌아다니며 순회 경기 방식으로 리그를 운영했기 때문에 사실상 지역 연고지 제도 미시행 기간이었다. 그러다가 1987년부터 광역 지역 연고지 제도가 시행되어 유공 코끼리는 인천/경기, 포항제철 아톰즈는 대구/경북, 현대 호랑이는 강원, 럭키금성 황소는 충남/충북, 대우 로얄즈는 부산/경남 등 K리그에 참가하는 5개 구단이 광역 지역을 연고지로 정하여 홈 앤 어웨이 방식으로 리그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또한 1987년부터 K리그에 실업팀이 아닌 프로팀들만 리그에 참가하고, 리그를 홈 앤 어웨이 방식으로 운영하면서 홈 경기의 입장 수입을 구단이 관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광역 연고지라는 넓은 연고 범위로 인해 지역 연고 정착이 어렵고 흥행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1988년부터 포항제철 아톰즈가 포항에서 대부분의 홈 경기를 개최하였고, 1989년부터 대우 로얄즈가 부산에서 대부분의 홈 경기를 개최하였다. 게다가 1989년 일화 천마가 서울을 연고지로 창단을 하면서 사실상 도시 연고지 개념이 리그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결국 1990년부터 도시 지역 연고지 제도가 시행되었다. 이에 따라 포항제철 아톰즈는 포항, 현대 호랑이는 울산, 럭키금성 황소는 서울, 대우 로얄즈는 부산, 일화 천마는 서울 등 도시를 연고지로 정하여 리그가 운영되기 시작했고, 1991년 유공 코끼리가 뒤늦게 서울을 연고지로 정하고 합류하며 K리그의 모든 구단이 도시를 연고지로 두게 되었다. 서울을 같은 연고지로 갖던 유공 코끼리, LG 치타스, 일화 천마는 당시 서울동대문운동장을 홈 경기장으로 공동 사용했다. 1994년 광역 지역 연고지 제도가 부활하여 1994년 전북 버팔로가 전북, 1995년 전남 드래곤즈가 전남, 전북 다이노스가 전북 등 광역 지역을 연고지로 창단하였다. 그리고 정부와 프로축구연맹에서 2002 월드컵 유치를 위해, 서울에 축구전용경기장 건설 계획을 1995년 말까지 제출하는 구단만 서울을 연고지로 남을 수 있고, 그렇지 못한 구단은 서울을 연고지로 남을 수 없다는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을 시행하게 된다. 결국 유공 코끼리는 부천, LG 치타스는 안양, 일화 천마는 천안을 연고지로 정하게 되었고, 서울 연고지가 공동화(空洞化)되었다. 결국 서울 연고지가 공동화되어 각 구단이 개별적인 홈 경기장을 갖게되는 1996년부터 완전 지역 연고지 제도가 시행된 것이다.
  • K리그는 도시 지역 연고지 제도 시행 때부터 연고지를 결정할 때 프로야구가 연고지를 두고있는 대도시보다는 연고지가 겹치지 않는 중소도시를 위주로 공략하는 틈새 전략을 펼쳤다. 실제로 1990년대 후반기 K리그 르네상스 당시 포항울산동해안 더비가 흥하는 등 중소도시 공략 전략은 어느 정도 효과를 봤다고 할 수 있다.
  • 정부 주도로 리그가 창설되기 이전부터 승강제까지 갖춰서 확실하게 프로화하자는 안건이 진지하게 논의된 적이 있었지만, 구단들의 반발과 정부의 개입으로 졸속 프로화 되어[40][41] 2012년까지 프로 리그에 승강제가 없었다.
  • 해외에서 본다면 상당히 기묘하게 생각될 수도 있는 시스템이 K리그에 있다. 바로 국군체육부대 소속의 상주 상무와 경찰체육단 소속의 아산 무궁화가 프로 리그에서 뛰고 있는 것이다. 물론 찾아보면 타국에도 비슷한 사례가 꽤 있긴 하지만 보편적인 현상은 아니다. 러시아의 CSKA 모스크바와 같은 군 소속 프로팀은 전세계에 고루 존재하나, 현재는 어엿한 프로구단이다. 굳이 따지자면 베트남의 비엣텔 FC나 이집트의 엘 에탁 엘 하르비 정도가 적당하다. 현재 아산 무궁화는 경찰청 축구단이 해체되면서 함께 해체되어 더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 K리그는 한국의 4대 프로 스포츠 리그 중 유일하게 참가 구단의 약칭을 모기업명이 아닌 연고지명으로 전면에 내세우는 리그다. 이를테면 야구SK, 농구모비스, 배구삼성화재 등 팀명이 모기업의 상호명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언론은 물론 팬들조차도 이 팀들을 각각 인천 와이번스, 울산 피버스, 대전 블루팡스 등 지명을 기준으로 부르지 않는다. 이에 비해 K리그는 전북(전북 현대), 수원(수원 삼성) 등의 예시처럼 연고지명만 사용하거나 모기업명을 포함시킬 때도 반드시 연고지명의 뒤에 붙여서 사용하는 등 연고지명을 고집한다. 심지어는 서울(FC 서울)처럼 모기업이 있음에도 구단명에 아예 티를 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는 축구라는 종목 자체가 어느 국가 가릴 것 없이 연고지와 구단 간의 연대감이 매우 강하고, 팬들은 이 관계에 스폰서(모기업)가 침범하는 것을 상당히 경계하거나, 심하게는 혐오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는 주로 축구 역사가 오래된 유럽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한국의 프로 스포츠 대부분이 그렇듯 기업구단들은 주로 대기업들이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팀명에 기업명이 하나도 안 들어간 J리그의 팀들을 예로 들며 K리그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애초에 외국 팀들은 팀명에 기업명이 안 들어갔다는 주장 자체가 잘못되었으며[42], J리그도 이름만 그렇지 사실은 시민들이 출자하여 창단한 시민구단이 아닌 기업이 구단을 소유하고 있는 기업구단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세계 유수의 클럽들 중에서도 순수 시민구단은 상당히 드물다. 사람들이 기업이 구단을 운영하는 것을 비판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유럽 대다수의 구단들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설립하거나, 종교적 이유 혹은 노동자들이 모여 스스로 구단을 창단한 경우가 많다는 걸 이제야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43] 그리고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같은 일부 기업구단들도 기업 소유에서 벗어나 독립법인화하여 자체적으로 법인을 설립하여 프로팀을 운영하기 때문에, 일단 법적으로는 기업으로부터 독립해 있는 모습이다. 물론 스폰서라는 명목으로 모기업에서 지원을 해 주지만 이전보다 여러가지 절차가 까다로워진건 사실이다. 또한 기업명이 들어간다고 비아냥대는 일부 축구팬들도 있는데 기업들이 적자덩어리인 축구단을 운영하는 이유가 홍보 효과와 세금 감면 등의 이유인 것을 생각해 볼 때 축구판에서 전혀 득 될 것도 없는 논란거리다. 세계적인 추세로도 레드불 그룹과 같은 스포츠 자본 그룹의 활성화로 축구의 기업화가 심화되고 있으며, 한국과 같이 기업이 직접 계열사로 거느리는 경우가 적어서 그렇지 실제로는 설령 시민구단으로 시작했더라도 만수르가 매입한 맨시티처럼 많은 경우가 대자본가에게 소유되어 재정을 지원받고 있다. 심지어 EPL의 경우 2018-2019 시즌 20개 구단 중 12개 구단이 외국인 혹은 외국계 자본의 소유였다.
  • 그렇다고 기업구단이 다 잘하는 것도 아니다. 기업구단은 운영이 안정적이긴 해도 그 부작용으로 무사안일주의와 타성에 젖은 무능한 철밥통 프런트들이 득실거리는 곳이 되었고, 스폰서를 모집할 생각도 없이 모기업의 지원만 바라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기업 임원 혹은 오너의 변덕에 따른 리스크가 상존하고 있다. 이러한 부작용이 심화되면 부산 아이파크, 전남 드래곤즈, 제주 유나이티드의 강등과 같은 사례로 나타나게 된다. 실제로 제주 유나이티드는 그 누구도 강등당할 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았던 구단이었기 때문에 그 충격은 더 했으며, 더이상 기업구단도 강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메시지를 던져줬다.
  • 출범 당시에는 유럽과 같은 자유계약 제도를 채택하였지만, 1987년 시즌부터 축구에는 어울리지 않는 드래프트 제도가 도입되었다. 일명 김종부법 때문인데, 당시 한참 주가를 올리던 김종부를 잡기 위해 현대 구단[45]이 김종부가 재학중인 고려대에 상당한 지원을 했고, 결국 김종부는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학교측 설득으로 현대에 입단하기로 가계약한다. 하지만 김종부는 대우 로얄즈행을 원했기 때문에 이 계약이 무효라고 주장했고, 이 사건으로 인해 고려대 축구부에서 제명되고 축구협회의 선수등록을 말소당하는 우여곡절 겪는다. 그러나 1986년 월드컵 활약 후 축구협회가 현행 선수등록 규정을 개정해주면서 가까스로 대우에 입단할 길이 트였다. 그러자 격분한 현대 구단이 팀해체 선언이라는 초강수를 들고 나왔고, 결국 제3의 구단인 포항제철에 입단하기로 타협함으로써 흔히 말하는 김종부 파동은 일단락되었다. 결국 이로 인해, K리그에 드래프트 제도가 도입되고 만다. 그 후,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개최가 확정되자 K리그에 드래프트 같은 구시대적인 제도의 철폐 여론이 불었고, 결국 2001년 다시 자유계약 제도로 바뀌었다. 그러나 2005년 박주영 파동으로 다시 드래프트 제도를 도입, 이후 드래프트 제도가 이어졌으며, 2013년부터 부분 자유계약 제도 도입을 시작으로 2016년부터 드래프트 제도가 폐지되었다.
  •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인프라가 크게 확충되었고 축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4개 팀이 새로 창단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전체적인 리그의 모습을 봐도 2010년 시점에서, 10년 전인 2000년의 리그 모습과 지금의 리그 모습을 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 그러나 단기간에 많은 발전을 보였음에도 아직까지 미흡한 점이 많다. 하지만 그 미흡한 점들도 사람들이 해외 축구를 손쉽게 접하면서 K리그의 나아진 모습들이 평가절하되는 측면도 없잖아 있다. 한마디로, 빠르게 많이 발전했지만 사람들의 성에 차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어찌보면 사람들의 눈높이가 예전보다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보니 유럽 축구에 익숙한 사람들은 K리그에 이렇다 할 빅 클럽이 없고, 다 특색없는 고만고만한 팀들만 있다며 비판하는 경향이 많다. 물론 K리그가 타 리그에 비해 어느정도 평준화 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런 예측 불가한 순위결과가 스포츠의 본질적인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에 무조건 비판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오히려 순위가 고착화되어 있는데도 인기있는 해외 리그들을 보면 어째서 인기있는 것인지 의아하게 느껴진다.
  • 2012년 이후로는 암운이 드리워졌다. 브라질 경제만으로 운운하기엔 새로 영입되는 외국인 선수들의 수준이 많이 떨어졌고, 무엇보다 각 팀의 예산 삭감과 아시아 쿼터 제도의 도입으로 극심한 선수 유출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중국이나 일본 그리고 중동 국가들과 돈으로 경쟁할 수 없으니 유망주를 키워 파는 셀링 리그로 전락하게 생겼다. 연맹이 잘 해 주길 기대해야겠지만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 프로토를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좀 꺼리는 리그이기도 하다. 강팀과 약팀의 차이가 확실한 다른 리그에 비해서, K리그는 비교적 팀별 전력이 평준화한 편이라 경기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례로 2005 시즌부터 2010 시즌까지 총 6시즌 동안 같은 팀이 우승한 적이 없다. 심지어 2009 시즌 우승팀인 전북 현대 모터스는 창단 후 첫 리그 우승이었다.
  • K리그도 30여년 역사가 흘러 어느정도 성숙기에 이르다 보니, 리그를 주도하는 대여섯 팀들이 서서히 정착되어가기 시작하고 있다. 서울, 수원, 포항, 성남, 전북, 울산 등의 팀들은 K리그의 빅6라 불리며 국내 축구팬들 뿐 아니라 아시아권에서도 명문 클럽의 위상을 인정받고 있는 분위기이다. 두 구단은 워낙 빅 클럽이고 다른 네 팀도 최근의 아챔 우승으로 이름을 확실히 알렸다. 포항의 경우 모기업인 포스코의 철강사업으로 인해 뜬금없는 그리스에 유명세가 상당하다. 재정박살 전 그리스가 조선 산업이 발달해 이쪽 분야의 교류가 컸던 영향으로 파악된다.
  • 찾아보면 다양한 팀들이 나름의 역사와 이야기가 있다. K리그/더비 매치 항목에서 볼 수 있듯이 팀별로 여러 경기들이 많으며 잘 찾아봐야 한다. 모든 리그가 그렇지만 중립적으로 보면 별로 흥미가 생기지 않을 수 있다. 응원할 팀을 정해 놓고 그 팀을 중심으로 리그를 봐야 그 안에서 흥미를 느낄 수 있다. 응원팀이 확실하다면 동네 조기축구나 학교 체육 대회조차 미칠 듯한 감정 이입과 열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축구이기도 하다.[46] 물론 축구를 중립적으로 보는 사람들에게는 K리그의 경기 스타일이 조금 뻑뻑해 보일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라리가처럼 세련되고 매끄러운 패스 위주의 경기 스타일이 아니라, 강력한 압박과 몸싸움으로 상대의 장점을 지워버리는 식의 게임이 많기 때문에 해외 축구에 익숙한 축구팬들이 즐기기에는 K리그 특유의 투박하고 뚝뚝 끊어지는 경기 진행을 못 견뎌 할 공산이 크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또한 축구 스타일 중 하나일 뿐이고, 그렇게 투박하다고 까이는 한국 축구가 어떻게 수십 년간 아시아의 최정상 자리를 지켜올 수 있었겠는가. 일단 축구는 이기는 것이 우선이지 무턱대고 스타일을 바꾼다고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다.
  • 2013년부터 만 23세 이하 국내선수 의무 등록에 대한 규정이 신설되었다. 장기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유소년 육성 클럽 시스템을 한층 강화시키기 위하여 연맹이 신설한 제도다. 만 23세 이하 국내 선수는 출전 선수 명단에 최소 1명 이상 포함되어야 한다. 만일, 23세 이하 국내 선수가 포함되어 있지 않을 경우, 해당 인원만큼 출전 선수 명단에서 제외한다. 2013년에는 1명이었고, 2014년에는 2명으로 늘어났으며, 2015년부터는 2명 등록 및 1명 출전 의무화로 확대되었다. 단, 군경 팀은 적용받지 않으며 군경 팀과 경기시 그 상대 팀도 위 사항에 한시적으로 적용받지 아니한다. 군경 팀 선수는 9월 전역일 이후 원소속 팀을 상대로 경기 출전이 가능하다. 또한 23세 이하의 국내 선수가 각급 대표 팀 선수로 선발될 경우, 소집 기간에 개최되는 경기에서 해당 클럽과 그 상대팀은 차출된 선수의 인원 수만큼 엔트리 의무 등록 규정에 적용받지 아니한다. 차출된 선수가 동일하지 않을 경우 많을 팀을 기준으로 한다.
  • 2019년부터 만 23세 이하 국내선수 의무 등록 규정이 만 22세 이하로 바뀌었다. 즉, 기존의 규칙은 23세 이하와 동일하지만 나이만 어려진 셈이다. 2020년 부터는 상주 상무도 이 규정에 포함되는 것으로 예정되어있다. 이에 발맞춰 상주 상무도 어린 입대 자원을 찾았고, U-20월드컵 준우승의 주역인 전세진, 오세훈이라는 확실한 22세 이하 자원을 확보했다.
  • 수준에 대해서는 개개인마다 평가가 조금씩 다른 편이다. 단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제3자의 위치에서 보면 핌 베어백 감독이 2000년대 중반 시점 K리그를 네덜란드 2부 수준이라고 평했고, 그 외 대부분의 외국인 감독들이 내린 평가가 아예 유럽에 못들어올 정도는 아닌데, 그렇다고 완전히 들어올수 있다고는 할 수 없다 고 한다. K리그에서 매우 잘하는 선수들이 이재성(분데스리가)이나 권창훈(분데스리가)처럼 1~2부 리그로 가서 팀에서 탄탄한 주전 역할을 하는 경우가 대다수고 중간 정도 되는 선수들도 3부 리그까지는 안 가는 걸 보면[47], 대략 K리그의 수준은 빅리그의 2부 리그 혹은 UEFA 리그 랭킹 10위권의 1부 리그 정도로 평가된다.

14. 여담

  • 2007년 4월 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서울과 수원간의 리그 경기에서 관중 5만 5,397명이 입장하면서 한국 프로 스포츠 사상 최초로 한 경기 5만 관중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2010년 5월 5일에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서울과 성남간의 경기에서 6만 747명이 입장하는 대기록을 세우면서 한국 프로 스포츠 최다 관중 기록을 경신했다. 한편, 2010년 4월 4일에 있었던 서울과 수원 간의 경기에서 역대 4번째 최다 관중 기록인 4만 8,558명이 입장했고, 12월 5일 있었던 챔피언 결정전 2차전에선 5만 6,759명이 입장하면서 역대 플레이오프 최다 관중 기록을 경신했다.
  • 2008년 5월 18일 K리그 10라운드 부산과 성남 간의 경기에서는 일부러 골을 먹게 하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전반 37분 부산의 김태영이 쓰러지자 부산은 치료를 위해 공을 밖으로 내보냈고, 성남은 페어 플레이 정신에 입각해 부산에 공을 돌려줬다. 그런데 공을 내준 성남의 두두가 공을 내주자마자 곧바로 달려들었고, 공을 받은 부산의 김유진은 두두가 달려오는 것을 모르고 등을 돌린 채 방향을 바꾸다가 두두에게 공을 뺏겼다. 조동건의 패스를 받은 최성국이 그것을 득점으로 연결시키자, 부산 측에서 성남에 항의를 했다. 결국 성남의 김학범 감독은 선수들에게 한 골을 주라고 지시했다. 부산의 안정환이 아무도 막지 않는 상태에서 공을 몰고 가 득점을 했다. 당시 대표 팀 승선을 앞두고 있던 안정환의 시즌 연속 2호골이었다. 경기는 원정 팀 성남이 3 : 1로 승리했다.
  • 과거에도 위와 비슷한 사례가 있었는데 1997년 4월 26일 울산과 부천의 경기에서 부천의 윤정환이 하프 라인에서 울산의 김병지에게 공을 돌려주려고 찼다가 힘 조절에 실패, 김병지의 키를 넘겨 골을 넣었다. 당시 부천 감독인 니폼니시 감독은 2008년의 김학범 감독처럼 울산에게 한 골을 내주라고 지시했고, 부천의 골키퍼 샤샤는 이것을 미처 듣지 못하고 연달아 슈팅을 막다가 나중에서야 골을 내줬다.
  • 2008년 11월경 K리그 통산 10,000번째 골이 가까워지자 K리그 측에서 이벤트를 준비했는데, 하필이면 부산의 김태영자책골로 10,000번째 골을 넣으면서 모든 게 흐지부지 됐다.[48]
  • 2010 시즌 AFC 챔피언스 리그에선, K리그 4개 구단이 J리그, CSL, A리그 팀들을 전부 격파하고 동아시아에 배정된 8강 티켓 4장을 싹쓸이하는 기염을 토했다. 4팀 중 성남과 전북은 리그에서도 잘 했지만 포항(12위)과 수원(15위)이 리그에서 크게 부진했던 팀이라는 걸 고려하면 놀라운 성과. 결국 이 시즌에서 성남이 우승을 차지했다.
  • 역대 K리그1 승격팀 중 2015년 수원 FC를 제외하고 모두 기존 K리그1에서 강등을 경험했던 팀이 K리그1에 재입성을 하였다. 수원 FC는 당시 3부 리그 격인 내셔널리그부터 올라온 최초의 1부 리그 진출팀이 되었다.

  • K리그1에서 한번도 강등을 경험하지 않은 팀은 전북, 울산, 서울, 수원, 포항, 인천 6팀이며, 승강 플레이오프를 경험하지 않은 팀은 서울 제외 5팀, 파이널 B조차 경험해보지 못한 팀은 전북이 유일하다. 반대로 K리그2에서 한번도 승격을 경험해보지 못한 팀은 안양, 부천, 안산, 아산, 서울 이랜드로 5팀이며 플레이오프조차 진출해보지 못한 팀은 안산이 유일하다.
  • 2012 시즌엔 울산 현대ACL 우승 컵을 들어올리고 2013년 FC 서울이 결승에 진출하면서, 2009 시즌부터 K리그 클럽이 5회 연속 결승에 진출해서 3회 우승, 2회 준우승의 성과를 거두는 초강세를 보였다. 하지만 2016년 전북 현대의 우승 이후 계속된 3시즌 동안 K리그 팀들의 부진이 이어지는 중이다.
  • 또한 같은 시즌 K리그에서는 2부 리그와 승강제 창설을 앞두고, 처음 실시한 강등 제도에서 라이센스 미비로 상주 상무를 강제로 강등시키며, 프로축구 역사상 최초의 강등팀이 탄생했다. 그리고 승강제가 구축되고 K리그 클래식으로 개편된 2013 시즌엔 최초의 승강 플레이오프가 실시되었으며, 당시 K리그 챌린지 우승팀이었던 상주 상무가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1승 1패 다득점 우세로 승리하며 승격이 성공하였다. 이로서 최초의 프로축구 승격팀 또한 상주 상무가 되며 이색적인 기록을 달성했다.
  • 2013 시즌 강원 FC는 K리그 클래식 소속으로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그리고 2016 시즌 K리그 챌린지 소속으로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며 최초로 양대 리그 소속으로 모두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기록을 세웠다. 전자는 강등, 후자는 승격에 성공했으며 4경기 1승 2무 1패를 기록했다. 이후 이 기록은 부산 아이파크와 경남 FC가 나란히 이어받았다.
  • 2016년 성남 FCK리그 챌린지로 강등당하면서 만약 K리그 챌린지에서 우승할 경우, 성남 팬들은 K리그 클럽 팬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경험해볼 수도 있게 되었다. K리그 클래식 우승,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FA컵 우승 그리고 지금은 사라진 리그컵 우승까지 모두 경험해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8년 K리그2에서 최종 2위를 하면서 우승을 하지 못하고 승격이 되었다.
  • 일반적인 홍보대사와는 다르게 뽑힌 홍보대사들이 매우 열심히 활동하는 경향이 있다. 선수 은퇴 후 홍보대사가 된 안정환[49]은 아예 직함을 '홍보팀장'이라고 하며 홍보활동을 했고, 중학교 시절 축구선수였던 윤두준 역시 K리그를 알리는데 맹활약했다. 2016년 8월부터 홍보대사에 위촉된 박재정은 '성공한 축덕'이라는 이미지답게 전 경기장을 돌아다니면서 맹활약 했다. 2018년에는 사상 최초로 인터넷 방송인 감스트를 홍보대사로 임명했다. 팬들의 반응은 반신반의했으나, 감스트 본인의 노력으로 지금은 대다수의 팬들이 신의 한수로 인정했지만, 2019년 일어난 나락즈 성희롱 발언 사건으로 홍보대사 중단했다. 그래도 감스트는 복귀후 방송에서도 K리그를 아주 잘 다뤄주고있다. 감스트한테도 본인이 한때나마 메인스트림으로 올라서는 계기를 만들어준게 K리그이기도 하니까.
  • 승강제 도입 이후 가장 희로애락을 겪은 팀은 부산 아이파크다. 승강 플레이오프에 무려 4번이나 진출하여 합계 전적 2승 2무 4패를 기록 중이며, 4번의 승강 플레이오프 중 3번이나 강등 혹은 승격 실패를 경험했다. 2015년 구단 역사상 최초의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수원 FC에 패해 2부 리그로 강등된 이후 2016년을 제외하고 2017, 2018, 2019년 무려 3년 연속 승강 플레이오프에 올랐던 기록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2017년엔 상주 상무에게 승강 플레이오프 최초로 승부차기 패배, 2018년엔 뜬금없이 내려온 FC 서울과 맞붙어 합계 전적 1무 1패로 패배하며 다른 2부 리그 팀들에게 다이렉트 승격만이 승격의 길이다라는 인식을 강하게 심어주었다. 부산 아이파크는 강등 이후 항상 우승권 전력으로 뽑혔고, 실제로 리그 상위권을 계속 유지했음에도 1위로는 리그를 마치지 못하는 묘한 징크스에 빠졌다. 결국 2019년에도 K리그2 준우승으로 다시 승강 플레이오프로 갔고, 이번에는 경남 FC를 끌어내리는데 성공하며 5년만에 1부 리그로 복귀하는 데 성공했다. 5년만의 복귀는 역대 강등팀 중 가장 오랜 기간이 걸린 1부 리그 복귀 기록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승강 플레이오프에 한 맺힌 역사를 가진 팀이다.
  • 반면 인천 유나이티드는 K리그의 대표적인 생존왕으로 불리는 팀이다. 승강제 도입 이후 상위 스플릿에 속한 2013 시즌을 제외하면 2014 시즌 10위, 2015 시즌 8위, 2016 시즌 10위, 2017 시즌 9위, 2018 시즌 9위, 2019 시즌 10위로 6년 연속 하위 스플릿에 속하고도 승강 플레이오프조차 가지 않는 아슬아슬한 레이스로 잔류에 성공해왔다. 때문에 인천 팬들은 인천의 축구를 마약축구로 칭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아슬아슬한 행보를 유지하는 것 때문에 오히려 인천 팬들이 충성도가 높고, 항상 시즌 막판 이슈의 주인공이 되어 팀 자체의 인지도와 인기는 리그 내에서도 높은 편이다.
  • 승강제 도입 전에는 승강제를 실시하면 돈 없는 시민구단들만 2부 리그로 떨어져 해체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승강제 시행 불과 2년만에 부산 아이파크가 강등 당하면서 그러한 우려가 기우였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이후 2018 시즌 FC 서울이 승강 플레이오프를 다녀오며 강등의 위험을 맛봤고, 같은 시즌 전남 드래곤즈는 리그 최하위를 기록하면서 자동 강등을 당했다. 그리고 2019 시즌 제주 유나이티드가 리그 최하위를 기록해 자동 강등 당하면서 기업구단으로서 세 번째 강등 사례가 추가되었다.
  • 2013년 2부 리그인 K리그 챌린지가 창설되면서 세미프로 리그에 있던 구단들이 프로로 전환하거나 새로운 시민구단이 창단되어, 많은 구단들이 새로 프로 리그에 참가했다. 하지만 2017년 한꺼번에 두 팀이 줄줄이 해체되는 참사가 벌어졌다. 할렐루야 독수리의 후신을 자처하는 고양 자이크로가 30년 전과 똑같은 꼴로 해체를 선언했고, 유일한 충북 연고의 구단이었던 충주 험멜 역시 연고지 유지 문제와 재정난의 이중고로 결국 해체됐다. 이후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참가팀에 대한 자격조건을 강화했고, 이로 인해 K리그 2020 시즌 참가를 목표로 프로화를 추진했던 청주 FC의 K리그2 가입이 불허되는 결과를 낳게 됐다.
  • 프로 리그에 참가 중인 구단 중 가장 오래된 구단은 포항 스틸러스로 1973년에 실업팀으로 창단되었다. 하지만 세미프로 리그나 아마추어 리그에 참가 중인 구단까지 확장하게 되면 대전 한국철도 축구단이 더 오래되었는데, 무려 1943년에 실업팀으로 창단되어 현재까지 존속하고 있다.

15. 더비 매치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더비 매치/대한민국/축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6. 올스타전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K리그 올스타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7. 외국인 선수

  • 프로 리그 창설 시즌인 1983년부터 외국인 선수가 허용되었고, 포항제철이 당시 원료 공급사였던 브라질의 Companhia Vale do Rio Doce (약자로 CVRD) 소속의 세르지오, 호세를 임대 영입하면서 K리그에 외국인 선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듬해인 1984년부터 다른 팀들도 앞다투어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기 시작했고, 이 외국인 선수들은 K리그 수준 향상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
  • 외국인 선수에 대한 기본적인 규정은 2020시즌 기준 3+1+1명 보유, 3+1+1명 출전(아시아 쿼터, 동남아시아 쿼터 포함), 북한 출신 선수는 내국인 선수로 간주하며, 골키퍼 용병은 금지다.[50] 골키퍼 용병이 금지인 이유는 신의손(귀화 전에는 사리체프), 샤샤 등 초창기 외국인 골키퍼 용병들이 너무 잘했기도 하고, 골키퍼라는 특수한 포지션상 외국인 용병이 다수 점거해버리면 국내 골키퍼 육성에 차질이 우려되기에 일종의 보호 정책인 것. 단, 경기 도중에 골키퍼가 퇴장당하거나 교체 카드를 모두 쓴 상태에서 부상으로 실려나가서 외국인 필드 플레이어를 골키퍼로 대신 세우는 것은 허용된다.[51] 그리고 3명 이외에 아시아 용병 선수를 한 명 넣을 수 있는 아시아 쿼터제가 도입되어 수원의 리웨이펑, 강원의 마사 등 일본, 중국 선수들이 K리그에 등장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중국에선 편하게 뛰고 돈도 제때 받을 수 있는 K리그에 진출하고 싶어하는 선수들이 늘어나는 모양이었으나 CSL의 급성장으로 다들 엄청난 몸값 거품이 끼며 중국선수들을 보기 힘들어졌다. 가장 최근의 아시아 쿼터제 성공사례로는 경남 FC를 거쳐 전북 현대로 이적한 쿠니모토 타카히로, 수원 삼성에서 득점왕을 차지한 아담 타가트, FC 서울의 오랜만의 우즈벡 아시아 쿼터 선수인 이크롬존 알리바예프가 꼽힌다. 유럽조차 군소 리그에선 임금 체불이 흔하며 빅 리그에도 경영 파탄으로 돈 못 주는 팀들이 간혹 있다. K리그는 액수는 차이가 있어도 돈을 떼먹진 않는다. 현재는 톈진 톈하이에 소속된 과거 전북의 레오나르도 또한 원 소속팀인 AEK 아테네의 파산 및 임금체불로 인해 헐값에 전북으로 넘어온 케이스이다. 다만 에이전트가 사기쳐서 용병의 돈을 먹고 나르는 경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 2020시즌부터는 AFF 가맹국[52] 국적 선수들을 기존의 외국인 쿼터나 아시아 쿼터가 아닌 동남아시아 쿼터를 이용해 추가로 받을 수 있게 된다.[53] ## 비록 2010년대에 한국에 온 쯔엉이나 꽁푸엉 등 동남아 선수들의 결말이 좋지 못했으나, 베트남이나 태국 등 전통적 동남아 축구강호를 비롯해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 축구에 관심이 지대하고 인구도 많은 국가들에서 선수를 영입하고 동남아 축구시장에 K리그가 진출할 수 있게 되는 기회를 여는 것이다.
  • 호주가 AFC로 들어온 덕분에 2009 시즌을 앞두고 성남에서는 사샤 오그네노브스키, 인천에서는 호주 국가대표인 제이드 노스를 영입하여 아시아 쿼터제의 수혜를 입기도 하였다. 다만 잘 적응해서 성남의 수비라인의 한 축이 된 사샤와는 달리 큰 기대를 안고 입단한 노스는 팀 내 적응 문제 등으로 인해 한 시즌만에 유럽 군소 리그로 이적했다. 이후 많은 호주 선수들이 K리그에 도전했으나 실패가 많았고 그나마 2015 시즌까지 활약한 전북의 알렉스 윌킨슨과 중국으로 이적했다 다시 돌아온 제주의 알렉산다르 요바노비치 정도가 활약다운 활약을 펼쳤다. 그러다가 2017년 이후 수원 삼성의 매튜 저먼이 대 활약을 해주었고, 이후 수원 구단은 아담 타가트테리 안토니스등 공격과 미드필드 포지션에도 호주선수를 적극 기용하고 있다. 또한 매 시즌 복수의 구단들이 항상 아시아 쿼터로 호주 선수들을 기용하고 있다.
  • 역대 한국에서 활약하고 인기를 끈 용병을 꼽자면 피아퐁(서울), 라데(포항), 샤샤(부산 수원 성남), 마니치(부산 인천), 데니스(수원 성남 부산 수원 강원), 싸빅(포항 성남 수원 전남), 산드루(대구 전남 수원), 사리체프(성남 서울), 마토(수원), 에두(수원 전북), 데얀(인천 서울 수원 대구), 조나탄(대구 수원), 아디(서울), 세징야(대구) 등이 있다.
  • 가끔 알파이 외잘란 같은 먹튀도 있다. 한 때, EPL 블랙번 로버스에서 활약했던 호주의 브렛 에머튼의 경우 부산으로 입단이 확정되고 계약까지 다 하려고 하는 찰나, 본인이 거부를 해버렸다. 이후 8년간 블랙번에서 활약하다가 자국 리그인 시드니 FC로 이적하고 2014년에 은퇴했다.
  • 보통 아시아 리그라고 만만히 봤다가 분데스리가에 필적한다고 자부하는 압박에 고전하다가 떨어져나가는 케이스도 종종 있다. 2008년에는 FC 서울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와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에서 두루 활약한 키키 무삼파를 전격적으로 영입했지만, 2개월 동안 5경기 출전의 초라한 성적만 남긴채 퇴출됐다. 또한 2016년엔 페예노르트와 함부르크를 거친 네덜란드 국가대표 출신 로메오 카스텔렌이 수원 삼성에서 5경기 출전 기록만을 남긴 채 1년만에 이적했다. 2019년에는 조던 머치, 루크 카스타이뇨스가 이 빅네임 잔혹사에 이름을 올렸다
  • 2000년대 브라질의 경제 위기 상황에 힘입어 한때 브라질 외국인 선수들이 대거 K리그에 진출한 적이 있다. 나드손, 마그노, 도도 같은 브라질 A매치 경력이 있는 특급 브라질 선수들이 2000년대 초중반 K리그를 주름잡았으며 다들 리그를 말 그대로 폭격했다. 특히 나드손 같은 경우는 수원에서 3년간 활약하며 수원의 최전성기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이후 브라질 루트는 K리그 구단들의 주요 외국인 선수 수급 루트가 되었고, 브라질에 편중된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2010년대 초반까지는 브라질 이외의 선수를 보기가 힘든 시절이 지속되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안정적인 치안상황과 이웃나라 중국의 여러가지 리그 내외적 악재 속에서 차츰 중국 대신 한국을 선택하는 브라질 1부 리그 선수들이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고, 2020시즌에는 대전 하나 시티즌코린치안스 출신 안드레 루이스와, 수원 FC에 역시 코린치안스 출신 조나탄 말로니가 영입되었다. 안드레 루이스는 현지 리그에서도 수준급 유망주로 평가받는 자원이며, 조나탄 말로니는 브라질 1부 리그에서 100경기 이상 출장한 자원이다.
  • 2010년대 이후 남미의 경제사정이 좋아지고 특히 브라질이 신흥국으로 올라서면서 더 이상 값싸고 좋은 선수들을 수급하기 어려워지자, 구단들이 루트를 바꾸기 시작했고, 현재는 유럽 중소리그에서 이름을 알린 선수들이 많이 K리그에 입성한다. 그리스 리그에서 활약했던 레오나르도, 벨기에 리그 베테랑이었던 케빈 오리스, 오스트리아 1부리그 출신 리하르트 빈트비힐러 등 알짜 외국인 선수로 평가받은 유럽 리거들이 유입되기 시작했고, 특히 크로아티아 리그에서 좋은 선수들이 많이 오기 시작했다. 마테이 요니치, 미슬라프 오르시치가 대표적이었고, 특히 오르시치는 K리그의 활약을 발판으로 자국내 최고 명문팀으로 이적해 크로아티아 국가대표까지 뽑히는 성공사례를 만들었다.
  • 유소년 선수시절 세계수준의 유망주로 평가받았다가 커리어의 부침을 겪는 선수들이 커리어 회복을 위해 K리그에 들어오는 경우가 최근 잦아지고 있다. 2011년 20세 이하 월드컵 브라질 우승의 주역이었던 네게바, 코스타리카 국가대표 출신 엘리아스 아길라르, 분데스리가 진출 실패 후 한국으로 온 스테판 무고샤, 실력과 재능만으로는 해당 연령대 최강소리를 들었다가 사생활과 성격문제로 자국리그서 매장당했던 쿠니모토 타카히로 등이 K리그로 온 이후 다시 부활한 케이스다. 이후 더 높은 네임밸류의 선수들이 커리어 반전을 위해 K리그를 찾고 있으며 예산이 빠듯한 구단들이 이를 잘 활용해 수준 높은 외국인 선수들을 수급하기도 한다.

18. 서포터즈

구단이 전문 응원단을 고용하는 우리나라의 다른 프로 스포츠들과는 달리, 축구의 경우엔 전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팬들이 조직한 서포터즈를 중심으로 응원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서포터즈가 축구의 응원 문화를 상징하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서포터즈 문서 참조.

19. 홍보 대사

년도이름직업
2005년 클론 가수
2006년 노브레인 가수
2012년 안정환 前 축구선수
2013년 정준호 배우
2013년 신태용, 유상철, 이운재, 송종국 前 축구선수
2014년 윤두준 가수
2015년 로보카 폴리 애니메이션 캐릭터
2015년 윤두준 가수
2016년 박재정 가수
2016년 김병지, 김태영 前 축구선수
2017년 박재정, 러블리즈 가수
2018년 감스트 인터넷 방송 BJ
2019년[54] 강은비, 감스트[55], 릴카, 박문성, 이주헌 인터넷 방송 BJ

20. 문제점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K리그/문제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1. 관련 문서

21.1. 대회/규정

21.2. 역사

21.3. 관련 프로그램

22.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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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 구단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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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K리그 K리그2 ▶
과거 참가 구단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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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리그 및 대표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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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 구단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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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참가 구단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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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JTBC3 FOX Sports의 중계 슬로건.[2] 당시 표기는 수퍼리그로, 현행 외래어표기법에는 부합하지 않는다.[3] 통산 11회 우승으로 1위. 2위는 7회 우승의 J리그. 자세한 내용은 AFC 챔피언스 리그/기록 문서 참조.[4] 하지만 홍콩 1부 리그는 2014년부터 최상위 리그 지위를 잃었다.[5] EFL 챔피언십 - EFL 리그 1 - EFL 리그 2로 구성.[6] 참고로 고양시에는 고양 시민 FC, 천안시에는 천안 시청 FC가 있다. 의정부의 FC 의정부는 2018 시즌을 끝으로 해체됐다.[7] 터키 프로축구 리그의 명칭은 2000-01 시즌까지는 'TFF 1. 리그'였다가 2001-02 시즌부터 리그 체계를 개편하면서 1부 리그를 '쉬페르리그'로 개칭하고 'TFF 1. 리그'라는 이름은 2부 리그로 넘겼다.[8] 돈 안들이는 방법은 당연히 구단들의 모기업이 돈을 내는 것. 이와 관련된 융자혜택을 주고, 야구장 입장세도 수년간 면제해 주는 등의 방식을 제안했다.[9] 그럼 축구도 이렇게 하면 되지 않느냐? 야구는 이미 지역별로 어느 기업을 영입할지 플랜B까지 짜서 제출했다. 그런 야구조차 인천/경기 및 호남연고기업 영입에 한참 어려움을 겪다가 간신히 삼미, 해태로 구색을 맞췄을 지경인데 축구는 아예 아무 생각이 없었으니 도저히 견적이 안나왔다. 실제로 프로축구는 출범 이후 무려 10년간 호남구단 하나를 창단 못해서 빌빌대다가 결국 KBO의 쌍방울 레이더스 저리가라 수준의 빈곤 구단이던 전북 버팔로를 거쳐 현대 호랑이포항제철 아톰즈의 위성 구단으로 취급되던 전북 다이노스전남 드래곤즈로 갈음해야 했다.[10] 매일경제 1981년 10월 29일 기사[11] 2019년 K리그1 우승 상금이 5억원이다. 1984년의 우승 상금이 엄청난 건지. 2019년의 우승 상금이 짠 건지...[12] 원래 이번 시즌부터 홈 앤드 어웨이의 지역연고에 기반한 리그를 실행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체육부지역감정을 조장한다는 명목아래 반대의사를 표시했으며, 경품으로 관중을 유치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인터뷰까지 했다.[13] 1983년 세계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서 4강 신화라는 눈부신 활약을 펼친, 전 경남 FC 감독[14] 대우는 이미 김종부의 작은 형을 구단 경리담당으로 임명하고, 과거 2년간 김종부의 마음을 얻기 위해 가족까지 접촉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인 상황이었다. 현대도 만만치 않아서, 김종부의 모교인 고려대에 3억원의 시설투자를 약속했고, 고려대 측에서는 김종부에게 현대로 갈 것을 권유하게 된다. 김종부는 대우로 가고 싶은 의사를 여러번 드러냈으나 학교의 허락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러한 상황은 점점 악화일로를 걷게 된다. 현대는 김종부와의 가계약을 맺었다고 주장하며 법정싸움으로 옮겨가겠다는 자세를 취했고 김종부가 대우와 현대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혼란을 빚자 여론 또한 악화해간다. 결국 체육부가 나서서 이 사건을 조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여기에 고려대가 김종부의 제명을 요구하면서 축구협회는 김종부를 월드컵 대표에서 제외하는 충격적인 일로 이어진다. 결국 축구계가 나서서 김종부 구명운동이 일어나고 김종부는 우여곡절 끝에 대표팀에 합류하여 득점도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대우와 현대는 한치도 물러섬이 없이 김종부를 두고 계속 대결을 벌였고, 이 와중에 상처를 받는 것은 선수 뿐이었다. 월드컵 이후로도 계속된 싸움은 현대의 팀 해체 위협과 축구계 내분으로 이어졌고 결국 대우도 현대도 아닌 포항으로 김종부는 리그 데뷔를 이루게 된다.[15] 흥행이 실패하자 각 구단들과 언론들은 여러가지 흥행 방안을 내놓았는데, 결론은 역시 연고정착이었다. 선수를 연고지별로 선발한다던가 연고지 내 학교를 프로구단이 순회하여 교육한다든가 하는 지금과 비슷한 결론이었다.[16] 다음에서 제작하는 한준희 장지현의 원투펀치에서도 선정되어 “한국 축구에서 골키퍼의 패러다임을 바꾼 사건”으로 언급되었다. 사리체프를 시작으로 외국인 골리들이 대거 영입되고, 이에 위기감을 느낀 리그와 각 클럽에서 외국인 골리 영입금지를 규정화 했기 때문. 그 때문인지 김병지 v. 이운재로 시작되는 라이벌 구도가 확립되고, 서동명, 김용대, 신화용이라는 수준급 골리들이 발굴 육성되고 월드컵에서는 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권순태, 김승규, 김진현 등 다수의 골리들이 J리그에 진출하게 된다. 외국인 골리의 영입제한을 걸지 않은 일본에서 수준급 골리의 부재를 겪는 점을 볼 때 선견지명일지도.[17] 신동아그룹의 최순영 회장에 의해 창단되었다. 선교 목적의 구단이었기 때문에 신동아그룹 소속이 아닌 한국기독교선교원 산하에 구단이 창단되었다.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이 만들고 지원했기 때문에 기업구단으로 분류하기도 한다.[18] 2000년도에 대우그룹이 부도가 나면서 구단을 현대산업개발에서 인수했다.[19] 이후, 2000년에 재창단하였고 실업리그 전통의 강자로 군림하다가 2012년 해체됐다. 2006년 내셔널리그 1위팀이었던 국민은행을 K리그로 승격시키려 하자 승격을 거부해 파문이 일었다.[20] LG그룹에서 GS그룹이 분사하면서 운영사가 LG그룹에서 GS그룹으로 바뀌었다.[21] 당시 부족한 슈퍼리그(현 K리그)의 팀수를 늘리기 위해 실업리그 우승팀을 참가시키는 바람에 실업리그는 유야무야 되어버린다.[22] 통일교와 연관되어 다소의 논란이 있기는 했지만, 공식적인 운영사는 일화그룹이며, 선수단 내에 종교에 대한 강요는 없었다.[23] 2014년 기업구단에서 시민구단으로 전환되었다.[24] 1993년 창단 후, 완산 푸마→완산 제우 엑스터→전북 엑스터 등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나, 최종적으로 이름을 전북 버팔로로 바꾸고 리그에 참가했다.[25] 프로리그 창설 당시 국민은행이 호남을 연고지로 했으나, 이는 명목 상의 연고지였을 뿐 당시 리그가 전국 9개 도시를 순회하며 경기를 했기 때문에 사실상 연고지 개념이 없었다.[26] 전북 다이노스가 전북 버팔로의 선수단을 인수한 것일 뿐 전북 버팔로의 전체 자산을 인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북 다이노스가 전북 버팔로의 역사를 승계한다고 보지 않는다. 그러므로 전북 버팔로와 전북 다이노스는 서로 다른 구단으로 분류된다. 프로야구의 현대 유니콘스넥센 히어로즈의 관계와 같다.[27] 새로운 대전 하나 시티즌과 기존 대전 시티즌이 별도의 법인이기 때문에 구단 역사가 승계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하나금융그룹은 금융회사이기 때문에 비금융회사인 대전 시티즌 법인의 지분을 취득할 수 없다. 이는 금산분리 정책에 위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하나금융그룹은 대전 시티즌 인수 과정에서 유권해석을 얻어 재단법인을 설립하여 대전 시티즌 법인의 자산을 인수하도록 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새로운 법인이라 하더라도 대전 시티즌 법인과 계약을 통해 영업권과 영업자산을 양도받았으며, 기존 대전 시티즌 법인은 청산되었기 때문에 대전 하나 시티즌이 대전 시티즌의 역사를 승계한다고 보아야 한다.[28] 군경팀이 이전할 경우 다른 팀으로 간주하므로 신생 구단으로 분류된다.[29] Hi는 할렐루야 임마누엘의 약자다. 할렐루야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지만, 할렐루야 독수리와는 별개의 구단이다.[30] 스포츠 용품 제작업체인 자이크로와 명명권 계약 하면서 바뀐 이름으로, 운영사가 바뀐 것은 아니다.[31] 군경팀이 이전할 경우 다른 팀으로 간주하므로 신생 구단으로 분류된다.[32] 원년 팀 중 원래 연고지와 모기업을 유지중인 팀은 포항밖에 없다. 포항도 정확하게는 원년에는 대구/경북 연고지로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처럼 대구를 주연고지로 출범하고 1987년도 대부분 홈경기를 대구에서 개최하기는 했지만 당시의 연고 개념이 광역연고제였기 때문에 불가피한 일이었고, 결론적으로 광역연고제때나 도시연고제때나 같은 지역인건 포항밖에 없다. 유공은 이리저리 떠돌다가 현재 제주도에 정착/대우는 연고는 그대로이나 모기업 도산크리/할렐루야는 해체(고양 Hi FC는 이 할렐루야와는 완전히 별개의 팀이다.)/국민은행은 실업으로 다시 돌아갔다가 해체.[33] 승강 PO의 성적은 제외한다.[34] 승강 PO의 성적은 제외한다.[35] 전북, 수원, 서울 세 구단이 아직도 K리그 부동의 3대장으로 꼽히는 게 다른 이유가 아니다. 이들 기업 외에 아챔 홍보 효과라는 게 유의미한 구단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서울의 모기업인 GS도 아시아 홍보 효과 볼만한 사업 부문이라는 게 홈쇼핑 정도라 매우 애매하다.[36] 다만 챔피언십부터 현대자동차 SONATA가 스폰서.[37] 스폰서가 없어진 이유로 2008년 국정감사에서 삼성이 너무 오래 스폰서를 한다는 이유로 태클이 들어와서(…) 삼성에서 스폰서 연장 계약을 안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건 2005년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상관 없고 2008년 세계적인 경기불황으로 삼성전자가 스포츠 관련 스폰서를 대폭 철수하면서 생긴 일이다. 프로야구도 이때문에 마구마구에게 이전보다 적은 금액으로 스폰서를 받았다.[38] KEB하나은행의 스마트 뱅킹 서비스.[39] 할렐루야 독수리는 강원/충남/충북, 유공 코끼리는 서울/인천/경기, 포항제철 돌핀스는 대구/경북, 대우 로얄즈는 부산/경남, 국민은행 까치는 전북/전남을 연고지로 할당 받았다.[40] 사실 K리그가 KBO 리그보다 먼저 만들어질 수도 있었다. 1981년 5월에 열린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국민정서와 여가선용을 위한 3S정책의 일환으로 프로 스포츠 창설 지시가 떨어졌다. 청와대 비서관은 야구협회와 축구협회에 프로화 검토를 의뢰하게 되었는데, 대한축구협회에서는 운동장 야간조명 설치 등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고 보고한 반면, 대한야구협회 전무를 지낸 이용일과 운영부장 출신 이호헌이 가세하여 수립한 야구 프로화 계획서에서는 정부의 지원금 한 푼 없이도(=대기업을 등쳐먹으면 된다) 프로화가 가능하다는 골자의 내용으로 보고하여 청와대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결국 청와대는 우선 프로야구부터 출범시키기로 결정하였고, 프로축구는 프로야구 후순위로 밀리게 됐다.[41] 여담으로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이용일과 함께 프로야구리그를 준비했던 이진희 MBC 사장이 한국프로야구 준비 보고서를 전두환에게 제출하자 전두환이 깜짝 놀랐다. 이진희 사장이 "각하 뭐가 잘못됐습니까?"라고 묻자, 전두환 曰 "뭐야, 야구야? 난 축구인줄 알았지."라고 했다고 한다.[42] 바이엘 레버쿠젠, PSV 아인트호벤, 뉴욕 레드불스 등.[43] 예를들면 스코틀랜드의 명문 셀틱 FC 같은 경우엔 아일랜드 이민자들을 종교적으로 위로하자는 의미에서 '수사(修士)'가 창단했다.[44] K리그에 만들겠다는 기업이 없으니 지자체로 타겟을 바꾼 것이다.[45] 당시엔 울산 연고가 아니었다. 1990년이 돼야 울산광역시연고이전해 지금에 이르렀다.[46] 단, 여기에는 특정 선수나 클럽에 대한 애정 혹은 관심을 가질 것과, 그렇지 않을 경우 최소 인터넷으로 봐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애초에 상업 서비스인 K리그를 동네 조기축구, 학교 체육대회에 비견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부터가 논란 거리가 될 수 있다.[47] 가는 선수들도 K리그에서 가기보다는 현지에서 기회 찾아서 돌아다니는 것.[48] 그리고 이 장면은 2013년 UEFA 챔피언스 리그 경기에서 그대로 재현되었다. UCL 통산 6,000호 골이 터졌는데 그 골이 바로 세르히오 라모스의 자책골이었던 것.[49] 지금처럼 예능에서 맹활약하기 전.[50] 북한 출신을 내국인 취급하는 이유는 간단한데, 대한민국 헌법상 북한을 주권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데다 북한 사람들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하며, 당연히 북한의 영토도 대한민국의 영토라서 그렇다.[51] 데닐손이 동료 골키퍼가 후반전 경기중에 부상당하자 임시로 골키퍼를 본 적이 있다.[52]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미얀마, 베트남, 필리핀, 싱가포르, 라오스, 캄보디아, 브루나이 등[53] 외국인 3명 + AFC 가맹국 국적 선수 1명 + AFF 가맹국 국적 선수 1명[54] 아프리카TV와 상호업무협약(MOU)을 체결하여 릴카와 강은비는 K리그 스타터, 박문성과 이주헌은 K리그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었으며, 감스트는 2018년에 이어 2년 연속 홍보대사로 K리그와 함께하게 되었다.[55] 나락즈 성희롱 발언 사건으로 잠정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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