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24 17:54:18

최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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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시즌 스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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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김한길 15 김원식 16 하대성 17 박희성 18 조영욱 19 윤주태 20 박준영 21 양한빈 22 윤승원 23 윤종규 24 정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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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수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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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쑤 쑤닝 역대 감독
단 페트레스쿠
(2015-2016)
최용수
(2016~2017)
파비오 카펠로
(2017~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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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수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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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아시아축구연맹 로고.png 올해의 감독상
2012년 2013년 2014년
김호곤
(울산 현대)
최용수
(FC 서울)
토니 포포비치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 FC)
타카쿠라 아사코
타카쿠라 아사코
(일본 U-16 여자 국가대표팀)
타카쿠라 아사코
(일본 U-17 여자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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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ball Club Seoul
파일:htm2015070519573463006320.jpg
이름 최용수
崔龍洙 | Choi Yong-Soo
출생 1973년 9월 10일 ([age(1973-09-10)]세) /
대한민국 부산광역시 금정구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신체 184cm
직업 축구선수(공격수[1] / 은퇴)
축구감독
소속 선수 LG 치타스/안양 LG 치타스(1994~2000)
상무 축구단(1997~1998 / 군복무)
제프 유나이티드(2001~2003)
교토 퍼플 상가(2004)
주빌로 이와타(2005)
FC 서울(2006)
감독 FC 서울(2011 / 감독대행)
FC 서울(2012~2016, 2018~)
장쑤 쑤닝(2016~2017)
해설가 SBS(2018)[2]
국가대표 69경기 27골(대한민국 / 1995~2003)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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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금정초등학교(1979~1985 / 졸업)
동래중학교(1985~1988 / 졸업)
동래고등학교(1988~1991 / 졸업)
연세대학교(1991~1995 / 학사)
가족 -1 배우자 전윤정(2007- )[3]
-1 슬하 1남 1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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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
3.1. 감독 경력
3.1.1. FC 서울 감독대행 (2011)3.1.2. FC 서울 감독 1기 (2012~2016)3.1.3. 장쑤 쑤닝 감독 (2016~2017)
3.1.3.1. 2016 시즌3.1.3.2. 2017 시즌 초
3.1.4. FC 서울 감독 2기 (2018~)
3.2. 기록
3.2.1. FC 서울3.2.2. 주요 개인 수상
3.2.2.1. 표로 보기
3.3. 지도 스타일
3.3.1. 유망주 홀대?
4. 트리비아

1. 개요

대한민국축구선수 출신 감독. 2018년부터 FC 서울 감독을 맡고 있다. 감독으로선 K리그의 무리뉴라고 불릴 만큼 철저한 실리주의가 강점이다.

페널티 에이리어 안에서 발군의 파괴력을 보이는 선수였다. 1990년대 대한민국 정상급 스트라이커들이 그렇듯 아시아권에서 압도적인 제공권을 보였으며, 강력한 슈팅력을 보유했다. 이 때문에 독수리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독종 소리를 들을 정도로 승부 근성이 대단했기 때문에 J리그 진출 당시 사무라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만년 중하위권을 맴돌던 제프 유나이티드는 최용수 버프를 톡톡히 받아 일약 3위까지 뛰어올랐다. 한편, 국가대표로서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그야말로 대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2.1.1. 프로 데뷔 이전

그런데 현재와 같은 유명세와는 달리, 아마추어 시절에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으며, 연세대 90학번으로 3학년 시절에 겨우 주전을 따낼 정도였다. 동래고등학교[4] - 연세대학교 출신이다. 참고로 3학년때 같이 투톱을 이룬 선배가 89학번 김도훈이다 오오 기적의 세대

2.1.2. LG 치타스 / 안양 LG 치타스 (1994~2000)

1994년 LG 치타스 (현 FC 서울) 입단 후 신인상을 거머쥐고 1997년 상무에 입단, 1999년에 다시 안양 LG 치타스로 복귀하였다. 2000년 LG의 우승에 크게 공헌하며 그해 MVP를 차지하였다.

1999년에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입단 테스트 제의를 받고 김도근과 같이 런던행 비행기에 탑승했으나 낚시였다(...). 분명히 입단 테스트랑 메디컬 테스트까지는 받았는데 왠지 모르게 컴백. 본인도 왜 그때 입단을 못한 건지 영문을 모르고 있다(...).[5][6] 99년 중반에 군복무를 끝내고 안양 LG로 돌아와 2000년 K리그에서 우승을 이끌었다.

우승과 더불어 2000년 K리그에서 득점 2위 어시 1위를 하며 만장일치로 리그 MVP를 따낸다. 이때 당시 팀원이었던 이영표의 증언에 의하면 '무조건 용수한테 공을 보내!'가 전략이었다 한다.

2.1.3. 제프 유나이티드 (2001~2003)

파일:attachment/Choi_Yong-Soo_JEF_United_Ichihara.jpg
2001년 당시 한국 선수 최고 금액인 이적료 3억 엔에 제프 유나이티드로 옮겨 이적 첫 해에 득점 2위를 기록하였고, 올스타 선정. 이때 당시 본인의 인터뷰 등을 보면 초반에 전혀 패스가 안 오는 등 심리적으로 팀원들이 많이 서먹했던 듯했으나 비 오는 날 첫 골을 넣은 뒤 그런 거 없어졌다고 했다. 영상을 보나 실적으로 보나 최용수 중심으로 모든 공격을 펼쳤다. 간략하게 그 시절 영상 2002년에는 J리그 8천번째 골을 넣는 등 활약을 펼쳤다. 이때 월드컵이 끝나고 경기에서 6골을 넣는 등 득점력이 발군에 가까웠으나 문제는 이미 그리도 그리던 한일 월드컵은 끝났다.. 2003년에서도 팀내 6-7할에 가까운 골을 넣으며 제프 이치하라의 3년간 에이스로 군림했다. 이때 개막전에 골을 넣고 다음 시합과 그 다음 시합에 해트트릭을 기록해 이 달의 아시아 선수에도 뽑혔다. 니코니코동화에서도 제프의 시합 등에서 오래 전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최용수보다 존재감 넘치는 공격수는 거의 없다.", "한국은 최용수 이후로 이렇다 할 공격수가 없지."라는 평가가 따라다닌다. 지금도 최용수는 제프 유나이티드에서 팀의 레전드로 인정을 받는다.

2.1.4. 교토 상가 FC (2004)

2003년 말 교토에서 거액에[7] 교토 상가에 1년간 임대되었다. 등번호는 21번이며, 시즌 도중에 부상이 있기는 했으나 주장도 겸임할 만큼 많은 신뢰를 받고 많은 골을 넣었으나 팀이 6위로 승격하지 못해 아쉬운 한 해였다.

2.1.5. 주빌로 이와타 (2005)

2005년 주빌로 이와타로 이적했으나 부상과 부진으로 15경기 1골이라는 실망스런 성적을 남겼다.

2.1.6. FC 서울 (2006)

2006년 FC 서울의 플레잉 코치로 입단하여 정규리그 2경기에 출전하였고 같은 해 8월 5일 FC 도쿄와의 친선 경기에서 은퇴하였다.

2.2. 국가대표 경력

2.2.1.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1995~1996)

2.2.1.1. 비쇼베츠호 시절 (1994~1996)
2.2.1.1.1.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대표팀에는 연세대 4학년 때 입성. 1995년 좋은 피지컬을 가진 선수를 좋아하는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의 특성으로 올림픽 대표팀의 주전 공격수 자리를 차지했다. 당시 국대로 나선 다이너스티컵 중국전으로 국대 데뷔를 하였다.[8] 득점은 홍콩전 정도 뿐지만 많은 공격에서 유기적인 움직임으로 상대를 괴롭혔다. 이때 이미지로 비쇼베츠 감독에게 눈도장을 찍힌듯. 애틀랜타 올림픽 대표팀은 당시 역대 어느 때보다도 메달권 진입에 대한 기대를 높였고, 윤정환과 함께 올대의 중심선수로 활약했다.[9] 1차 지역 예선에서 홍콩과 인도네시아를 가볍게 쌈 싸먹고, 최종예선 조별리그의 사우디, 중국 전에서 어시스트 한개로 그쳤으나 준결승 이라크 전에서 혼자 두 골을 뽑아내고 결승전에서 페널티킥까지 성공시켰다. 그리고 김영삼 대통령의 "코너킥 아주 잘 찼어"그러나 본선 와일드 카드로 나온 황선홍에 밀렸는지 1차전 가나 전에는 결장했다. 멕시코, 이탈리아 전에서 출장했으나 공격 포인트를 올리지는 못하고 한국도 8강 진출에 실패했다. 여담으로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때 훗날 아챔에서 광저우 에버그란데의 감독으로 만날 파비오 칸나바로와 이 때 선수로 만났다.

2.2.2.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1997~2003)

2.2.2.1. 차범근호 시절 (1997~1998)
2.2.2.1.1. 1998년 FIFA 프랑스 월드컵
국가대표팀에 차범근 감독이 출범한 이후, 피지컬이 좋은 선수를 선호하는 차감독의 특성으로 최용수를 코리아컵에 시험삼아 기용하게 된다. 이 시도는 성공을 거두게 되었고, 결국 최용수는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아시아대륙 예선에서 주전 원톱으로 낙점되게 된다.[10] 1997년은 최용수 축구 인생의 리즈시절로 기억된다. 97-98년영상월드컵 지역 예선 홍콩 전 해트트릭을 시작으로, 최종예선 카자흐스탄 전 4골[11], 우즈베키스탄 전 3골[12], 일본 전 2어시스트로 7골 2어시스트를 몰아치며 바야흐로 최용수 시대를 여는가 했다. 그때 당시 활약상 실제로 월드컵 전까지도 상당했으며 국민들의 인기 역시 과장 섞어서 맨유시절 박지성카잔의 기적에 쐐기를 박은 손흥민만큼이나 폭발적이었다.

그러나 체코와의 평가전 이후(체코와의 평가전 하이라이트) 투 톱 파트너로 복귀한 황선홍이 하필이면 중국과의 다음 평가전에서 소림축구의 희생을 당하는 부상을 입었고, 최용수 본인도 본선 첫 경기인 멕시코 전에서 결장했다. 당시 왜 최용수를 기용하지 않았는가에 대해 차범근 감독과의 불화설까지 있을 정도였다. 차범근 감독이 해명하기를 '황선홍 부상 이후 투톱이 아닌 원톱으로 가야했는데 원톱으로 최용수를 세우는 것보다 김도훈이 낫다고 판단했다'고했다.# 이후 네덜란드 전과 벨기에 전에서 출전했지만 좋은 활약을 보이지는 못한다.[13]


최용수 선수는 프랑스월드컵 네덜란드와의 경기전 인터뷰에서 자신의 골 결정력이 네덜란드베르캄프에게 뒤지지 않고 네덜란드를 상대로 1승을 얻겠다고 호언장담했다.[14]
2.2.2.2. 허정무호 1기 시절 (1998~2000)
2.2.2.2.1.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
이후 방콕 아시안 게임에 출전해 조별 예선부터 16강 쿠웨이트 전까지 팀 내 최다 골인 7골을 넣으며 공격진을 책임졌으나 8강에서 2명이나 퇴장 당한 태국에게 2-1로 덜미를 잡혀 빛이 바랬다.[15]
2.2.2.3. 히딩크호 시절 (2001~2002)
2.2.2.3.1. 2002년 FIFA 한국/일본 월드컵
2001년 히딩크호 초기 시절부터 불리우면서 많은 시합을 치렀다. 컨페더레이션스 컵에도 출전했으나 호주전만 출장. 첫골은 9월 나이지리아와의 평가전에서 1골 1어시를 기록하고, 11월 크로아티아와의 평가전에서 선제골을 기록했다. 히딩크의 자서전에서도 멋진 골이라고 평가 받는 골이었다. 그뒤 2002년 골드컵에서도 미국 전, 멕시코 전 등에 출장했으나 대회 도중 엔트리에서 사라졌다.[16] 3월 유럽 평가전 핀란드전에서 황선홍의 2번째골을 어시스트했다. 터키전에서도 선발출장했으나 0-0으로 끝났다. 중국전도 선발 출장했으나 0-0어째 출전 시합 대부분이 클린시트다 그리고 마지막 평가전인 프랑스전에서 후반 교체 출장해서 옆구리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본선인 2002년 월드컵에서도 뛰었으나, 주전 경쟁에서 밀리며 이렇다 할 활약은 보이지 못했다. 조별리그 미국전에서 노마크 1m 거리에서 골대 위로 독수리 슛을 날리는 바람에 폭풍같이 까였다.
"야이! 이걸 못넣네요!"
- 신문선 해설위원, 최용수가 미국전에서 찬스를 놓치자
절묘한 패스를 넣어줬던 이을용이 슛이 빗나가는 순간 뒷목을 부여잡고 쓰러지는 장면이 백미. 해당 장면.

2002년 국대에서는 황선홍이 선발 원톱으로 낙점된 상황에서 안정환과 교체 멤버로 경쟁하던 상황이라 안정환의 콘디션(?)조절에 이바지 하느라 출전기회도 별로 없었는데 저런 실수까지 저질러서 그 이후로 경기에서 볼 수 없었다.[17] 미국전 이후 히딩크 감독이 선수단 전원 휴식을 취하게 해도 혼자서 연습했다지만 거의 출전하지 못했다. 16강 이탈리아전에는 후반 역전을 노리고 공격수만 5명을 세웠는데 이미 황선홍안정환이 모두 투입된 상태라 중앙 공격수인 최용수는 윙 포워드인 이천수, 차두리에게 밀려서 나오지 못했다.

월드컵 이후에도, 국대 경기에 간혹 주전으로 나왔었는데, 코엘류 시절 콜롬비아 전, 일본 전, 우루과이 전 전부 선발로 나왔으나 당시 지나치게 비대해져 많은 문제를 일으키던 중이었던 붉은 악마 중 일부는 국내에서의 A매치시에 저 월드컵 때의 일을 빌미로 최용수가 공만 잡으면 야유를 보내는 행동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던 도중 2003년 1회 동아시아컵 때 엔트리에 뽑혔으나 중국전을 마지막으로 대표팀에서 보는 날은 없게 되었다. 동아시아컵을 마지막으로 최용수는 국가대표팀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2.2.3. 총평

1998 월드컵 예선에서 황선홍이 부상 중으로 없던 대표팀을 훌륭히 본선으로 이끌었던 공로에도 불구하고 2002 월드컵의 영광의 그림자였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선수이다. 하지만 선수 시절 상대를 죽일 듯한 포스와 높은 제공권으로 기억되는 팬도 많다. 실제로 감독 시절 황선홍과 자주 부각되며 국대에서의 활약 또한 모두가 잊었다고 하기엔 기억하는 사람 또한 많다.

현역 때는 일본에서 가장 부러워하고[18] 무서워했던 공격수로 통했다. J리그에서의 활약이 워낙 좋았고[19] 95다이너스티컵에서 홍콩전 외에는 최용수는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했음에도 직접 대결 시 공격진에 제일 경계해야 할 선수라 하면서 패스만 보내면 일본 측 중계석에서 최용수만 부르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웃기다. 그러나 이건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일본의 컴플렉스 덩어리같은 선수인지라[20][21] 일본이 부러워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2000년 겨울 친선전에서도 "드디어 그 최용수가 돌아왔습니다!"라고 할 정도였다. 선호하는 배번은 10번으로 소속팀에서나 국대에서나 별 일 없으면 항상 10번을 달고 뛰었다. 다만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11번을 달았다.[22] 이후로도 2003년 콜롬비아 전을 제외하고 잠시 10번을 달았으나 은퇴할 때까지 11번으로 고정되었다. 교토 시절 21번, 이와타 시절 16번, FC서울에서 은퇴할 때는 11번을 달았다.

2.3. 기록

2.3.1. FC 서울

  • K리그 우승 1회 : 2000
  • 리그컵 우승 1회 : 2006
  • 리그컵 준우승 2회 : 1994, 1999
  • 슈퍼컵 준우승 1회 : 1999

2.3.2.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 FIFA 월드컵 4위 : 2002

2.3.3. 주요 개인 수상

  • K리그 신인선수상 수상 : 1994
  • K리그 인기상 수상 : 1995
  • FA컵 득점상 수상 : 1999
  • 올해의 키카골 특별상 수상 : 1999
  • K리그 베스트 11 선정 : 2000
  • K리그 최우수선수상 (MVP) 수상 : 2000
  • 체육인의 날 최우수선수상 수상 : 2001
  • 체육훈장 맹호장 : 2002
  • 자황컵 체육대상 남자 최우수상 수상 : 2002
2.3.3.1. 표로 보기
KEB 하나은행 FA컵 득점왕
1998년 1999년 2000년
김종건(울산 현대 호랑이) 최용수(안양 LG 치타스) 세자르(전남 드래곤즈)
파일:K리그 클래식 시그니처 문구 로고 없는거.png 신인왕
1993년 1994년 1995년
정광석
(대우 로얄즈)
최용수
(LG 치타스)
노상래
(전남 드래곤즈)
파일:K리그 클래식 시그니처 문구 로고 없는거.png MVP
1999년 2000년 2001년
안정환
(부산 대우 로얄즈)
최용수
(안양 LG 치타스)
신태용
(성남 일화 천마)
2000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최용수
FW
김도훈
MF
안드레
MF
신태용
MF
전경준
MF
데니스
DF
강철
DF
이임생
DF
김현수
DF
마시엘
GK
신의손

2.4. 플레이 스타일

최용수의 이전부터는 물론 현재까지도 국내 공격수(스트라이커 포지션) 중 최용수보다 성공한 선수는 몇 안 되지만, 그럼에도 최용수는 너무 일찍 나타난 영웅이었다. 준수한 결정력과 능숙한 포스트 플레이, 뛰어난 제공권 등 현대 축구에서 요구하는 덕목을 거의 갖췄다. 현 시대의 피르미누(리버풀), 카림 벤제마(레알 마드리드)처럼 전형적인 최전방 공격수지만 조금 수비적으로 내려와 2선과 연계해주는 플레이만 결합된다면 현대 축구에서 가장 교과서적인 선수가 되었을 것이다.

먼저 184cm라는 신장을 가졌다. 타겟형 스트라이커 치고 그리 장신은 아니지만 당시 한국 축구에서는 꽤 큰 편이었다. 그런데 볼의 낙하지점, 헤더 타이밍과 더불어 점프가 높아서 제공권은 국내 톱 클래스였다. 특유의 내리찍는 헤더는 지금도 구사해내는 선수가 전무하다. 벨기에 전에서는 왜....[23] 타겟형 치고 준수한 주력과 포스트 플레이에 최적화 된 몸싸움으로 전방에서 꿋꿋이 버텨주는 선수. 박스 바깥에서의 움직임이 날카롭다거나 예리한 플레이를 보여주지는 않지만 박스 내에서의 폼은 가히 최고였다.

플레이 스타일은 과감한 몸싸움과 포스트 플레이를 펼치는 전형적인 파워형 스트라이커로,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는 최다 득점을 기록하였다. 당시 세계 골게터 9위에 오를 정도로 월드컵 예선을 보던 이들은 하나같이 최용수를 칭찬했고 인기는 하늘을 찔렀으며 그에 대한 기대도 남달랐다. 다만 같은 시기 대표팀의 주전 스트라이커 경쟁자였던 황선홍이나 김도훈에 비해서 에이리어 밖에서 움직임이 단조롭다는 단점이 있었다. 또한 플레이 기복이 심한 편이라, 잘 되는 날에는 언터처블이었지만 안 되는 날엔 완전히 버로우를 하는 문제도 있었다.[24] 황선홍은 센스가 뛰어나며 윙 포워드 및 섀도우 스트라이커 쪽도 할 수 있는 포워드. 김도훈은 감각이 뛰어나며 결정력을 가진 포워드라면 최용수는 발군의 파괴력을 가지며 가장 좋은 제공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톱외의 포지션은 무리에 센스도 떨어지며 감각, 결정력 또한 위 둘에 비해 뛰어나다고 하기 힘들다. 그나마 말년에서는 약간 처진 스트라이커도 가능하게는 되었으나 그러면 최용수의 장점이 많이 사라지는 격인지라 자주 중용되는 포지션은 아니었다.

결국 미드필더들이 양질의 패스[25]를 넣어줘야 비로서 최용수의 득점력이 산다는 제약과 더불어, 세계적 강호를 상대로는 공격수를 한 명을 내려 허리를 두텁게 세우는 수밖에 없다는 전술적 한계까지 겹쳐 최전방에서 혼자 무기력하게 겉도는 경우가 잦았다.[26] 자연스럽게 팬들에겐 국내용이란 그릇된 인식을 심어주게 되었다.[27] 결국 커리어의 정점에서 출전한 1998 월드컵 본선에서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첫 경기인 멕시코 전 때 김도훈이 쥐가 나서 다리에 침 치료를 받아가며 풀타임을 뛰는데도 이미 에이스 취급을 받던 최용수를 아예 투입하지 않아 차범근 감독이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었고, 두번째 경기인 네덜란드 전은 출전하긴 했지만 누구 하나 못했다고 할 수 없을 수준으로 0:5로 탈탈 털린 경기(...). 그리고 대망의 예선 마지막 경기였던 벨기에 전에서는 결정적인 찬스 2번(노마크 헤딩 찬스와 각이 제법 열린 1:1찬스)를 날려먹으며 지탄을 받았다. 당시 벨기에 전 끝나고 인터뷰도 거부하고 혼자 숙소에서 씩씩대고 있으니까 당시 끗발이 있던 신문선이 방송을 위해 숙소 문 앞에서 '최용수'라고 나지막히 부르니 문을 열어주던 모습이 생방송을 타기도 했다.

그리고 이후 시대를 잘못 타고난 비운의 공격수들이라 할 수 있는 최용수, 김도훈의 은퇴 후 한국은 최전방 포지션에 상당한 난항을 겪게 되는데, 안정환이 있으나 본인은 공격형 미드필더 내지 섀도우 스트라이커 룰을 선호했으며, 대신 싸워줄 파이터 타입의 최전방 포지션이 비어서 유상철을 톱으로 올리는 비정상적인 운영까지 해 나가야 했다. 스트라이커 계보를 잇는 후발 주자인 이동국은 이러한 파이터 형이 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 가능했고 2000년대 초반의 혹사가 커 부침이 많았다. 그리고 이어서 청대부터 탄탄하게 성장한 조재진이 그 재목으로서 기대했으나, 알다시피 조재진은 득점력이 많이 부족해 기대에 걸맞는 선수도 아니었고 결국 잦은 부상으로 낙마하게 된다. 그럼에도 그간 보여준 등지는 스킬[28]이나 제공권 장악[29]은 대한민국 축구에 큰 도움이 될 정도였다. 이후 정조국이 청대 및 올림픽에서의 활약에 힘입어 차세대 대표팀 공격수로 각광받았으나 크게 성장하지 못하였고 이후 나온 박주영은 드디어 한국 정통 공격수의 계보를 잇는 선수가 나왔구나 했지만 완전체가 될 무렵 아스날로 이적해 망하고 말았다. 그리고 현재 거론되는 석현준김신욱은 아직 커리어에서 뚜렷하게 보여준 것이 없으며 최용수, 황선홍, 김도훈 급의 재능이 아니다.[30]

애초에 2018년 6월 19일 현재 K리그 득점 순위에 국내 공격수 최다 득점자가 나이 40에 조커로 활약하는 이동국인 것만 봐도 한국의 정통 공격수 계보는 사실상 끊겼다봐도 무방하며 최용수가 주전으로 뛰기 힘들어하던 그 시절과 비교하면 아주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이다. 그나마 2018 아시안게임에서 득점왕을 차지하며 우승의 주역 중 한 명이었던 황의조가 후계자로 떠오를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최용수도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 해설에서 자신보다 더 대단하다.라고 인정했으니.[31]

3. 지도자 경력

지도자로서의 업적은 다음과 같다.

K리그 우승 1회(2012)
FA컵 우승 1회(2015)
AFC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 1회(2013)
2012 K리그 감독상 수상
2013 AFC 올해의 감독상 수상

3.1. 감독 경력

3.1.1. FC 서울 감독대행 (2011)

2007년 FC 서울에서 현역 은퇴 이후 이장수, 세뇰 귀네슈, 넬루 빙가다, 황보관 감독을 거치는 동안 계속 코치로 일하고 있다가[32] 2011년 황보관 감독의 자진 사임으로 인해 감독 대행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취임 초기부터 짤방 작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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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이후 5경기에서 4승1무. 일명 형님 리더쉽으로 황보관 체제에서 심각하게 부진하던 서울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결국 팀을 리그 3위까지 끌어올리며 정규리그를 마감. 6강 플레이오프에서 울산에 패하며 탈락했지만 시즌 초반 리그 최하위까지 쳐지던 팀을 다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받을만 하다.

하지만 최용수를 다음 시즌에 정식감독으로 선임하는것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는데, 반대하는 측은 2011년 서울이 전술적으로 부족한 점을 지적했다. 최용수 감독대행 이후 연승을 거두며 순위를 끌어올리기는 했지만, 내용 면에서는 답답하거나 밀리는 경기들이 많았고, 골을 꾸역꾸역 집어넣으며 이겨왔기 때문이다. 득점이 데얀과 몰리나에게 지나치게 쏠렸다는 것도 덤이고. 찬성하는 팬들은 무너졌던 팀 분위기를 다시 살리고 순위를 끌어올린만큼 시즌 초반부터 팀을 만들 기회를 주어야한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12월 9일, FC 서울의 10대 감독으로 정식 임명되었다. 감독이면서도 권위를 내세우기보단 선수들과 어울릴 줄 알고 스스럼없이 선수들을 대하고, 선수들과 함께 기뻐하며 그 누구보다도 안되는 점을 아쉬워하는걸 표현한다. 하지만 경상도 사나이답게 금방 정색하는것이 최용수의 매력.

3.1.2. FC 서울 감독 1기 (2012~2016)

3.1.2.1. 2012 시즌
2012년 K리그가 본격적인 승강제를 치루면서 스플릿 시스템을 도입, 우승 경쟁이 한층 치열해졌다.

시즌 초반 수원이 무섭게 1위를 질주하는가 싶었으나 결국 서울에게 덜미를 잡혔고, 결국 30라운드를 마치고 리그 1위 성적으로 상위 그룹에 편성되었다. 31라운를 마친 결과 2위 전북과 승점 5점, 3위 울산과 승점 11점 차이로 한발 앞서나가고 있다. 신임 감독 치고는 정말 잘 나가고 있는 중. 그리고 11월 21일 제주 유나이티드를 1대 0으로 누르고 잔여 3경기 관계에 상관없이 우승을 확정지었다. 이로써 최용수는 K리그 최초로 단일 클럽에서 선수, 코치, 그리고 감독으로서 우승을 경험한 역사를 새로이 쓰게 된다. 이로써 그의 형님 리더쉽은 다시 한번 주목받는다.

그러나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FC서울 팬덤 내부에서조차 감독으로서 역량에 대한 의문이 불거져나왔다.
우선 최대 라이벌인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대한 징크스는 여전히 해결하지 못했다. 세제믿윤수원에 연거푸 졌다고 팬들이 버스를 가로막고 청문회감독과 면담을 요구하는 진풍경이 나오기도 했다. FC서울에 호의를 보이지 않는 디시 국축갤에서는 이 사건을 두고 북패에 이은 눕패라고 디스했다

또한 황보관 감독 사임 이후 흐트러진 팀 분위기를 다잡고 귀네슈-빙가다로 이어지는 FC서울의 팀 컬러에 섣불리 손대지 않은 점은 좋았지만, 딱 거기까지라는 게 문제였다. 즉 전임 감독의 노선을 그대로 답습하기만 할 뿐 자신만의 비전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특히 리그 막판 우승을 확정하고 43라운드 포항 원정에서 아무리 주전 멤버를 뺐고 시합에 임했다고 하지만 0:5로 참패하는 수모를 당하면서 데몰리션 콤비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지적이 나왔다.

여기에 한가지 더 지적해야 할 점은 스플릿 시스템 때문에 44경기로 늘어난 살인적인 리그 일정과 더하여 아챔이라는 변수를 대하는 감독들의 선택이다. 먼저 강력한 우승 경쟁자였던 울산은 후반기 리그 우승 포기를 선언하고 아챔에 올인했으며, 전북은 노장 최강희 감독이 대표팀에 차출되며 이흥실 코치가 감독대행 체제로 이끌고 있었으나 리그와 아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둘 다 놓치고 말았다. 결국 김호곤 감독은 아챔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고, 전북은 리그와 아챔에 개근하다시피한 에이스 이동국이 9월에 퍼져버리며 팀도 동력을 잃는 것으로 희비가 엇갈렸다.
반면 FC서울은 아챔을 뛰지 않았으며 마찬가지로 아챔에 참가하지 못한 수원이 봄철 오버 페이스를 한 나머지 여름부터 고꾸라지면서, 최용수 감독의 운영 능력보다 상대팀 감독들의 선택에 따라 결과가 갈린 점이 크다. 이번 우승으로 2013 시즌 아챔 참가권을 획득한만큼 본격적인 검증은 다음해라고 보는 편이 옳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최다 승점으로 우승을 했고, 더군다나 2위팀과 승점 17점이나 차이를 내면서 우승을 했다.
3.1.2.2. 2013 시즌
2013년 시즌이 시작되면서 최용수 감독은 K리그 클래식 2연패와 2013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모두 차지해 더블 우승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디펜딩 챔피언답지 않게 겨울 이적시장에서 군입대, 다른 팀으로 이적한 선수들에 대해 제대로 보강하지 않아서 팬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고 시즌을 시작했다.

서울이 2011년과 비슷한 추세로 아챔에서는 선전했지만, K리그 클래식에서는 포항과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인천, 부산, 경남, 울산, 수원, 성남을 상대로 초반 7경기 연속 무승을 기록해, 서울까들에게 하위 스플릿으로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비웃음을 들어야 했다. 분노한 서울팬들은 그를 경질시키고 귀네슈 감독을 모셔오라는 등 시즌 전 보다 더 까였다.

참고로 2011년부터 계속해서 보인 선수 로테이션을 거의 하지 않는 단조로운 전술이 2013 시즌에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그나마 지난 2012년의 경우 전시즌 플레이오프 광탈로 인해 아챔 진출권도 없었고, FA컵도 지긋지긋한 그놈들에게 일찌감치 져서 리그 일정에만 집중할 수 있었기에 베스트11 복붙의 문제점이 표면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리그+FA컵+아챔을 모두 소화하는 2013시즌 빡빡한 일정을 거치면서 그동안 잠재되어 있던 문제가 폭발한 셈이다.

결국 금강불괴 같아 보였던 데얀이나 하대성 같은 선수들이 하나둘 부상에 시달리고 있다. 선수들의 체력고갈로 인한 폼 저하가 가장 큰 문제였기에 그 더운 여름에도 베스트 11을 주야장천 굴리던 최용수 감독의 책임이 크다.

이처럼 로테이션 없이 경기 운영을 한 결과 당장 주전들은 지쳐서 폼이 떨어지고, 가뜩이나 '슬슬 한물 간 것 아니냐'는 평가를 받던 몰리나는 FC서울 팬들조차 '몰레기'라고 까며 내년 계약 연장할 필요 없이 중국에 팔아버리라고 이를 갈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는, FC서울은 10년 넘게 재능 있는 새싹들을 일찌감치 유스에 끌어모으면서 젊은 선수층이 두터운 팀인데, 막상 경기는 뛰는 놈만 뛰니 이런 젊은 선수들이 성장을 못하고 줄곳 정체하는 결과를 낳았다. 한마디로 싹수를 봤을 때는 제2의 기성용, 박주영, 이청용을 노려볼만한 재목은 수두룩한데, 키워내지를 못하고 만년 그냥 유망주로 묻어버리고 있다.

당장 리그의 트랜드가 긴축재정과 고액영입 대신 유망주 키워서 쓰기로 흘러가고 있고, 특히 포항 스틸러스가 잇단 유스출신 대박을 내면서 좋은 본보기가 되는 마당에 정작 감독이 거들떠보지도 않으니 팬들로서는 유망주를 모아왔는데 왜 써먹지를 못하니 하며 복장이 터질 노릇. 더구나 모기업 GS의 자금사정 악화로 인해 2014 시즌은 데몰리션 없이 시작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데 주전과 백업 격차가 크단 점은 마이너스 요소이다. 또한 단순한 전술 역시 까이고 있다.

그나마 지긋지긋한 수원전 징크스를 깨뜨린 게 다행이지만, 부산으로 옮긴 세제믿윤에게 변함없이 약한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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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성효부적까지 나왔다(...)

결국 FA컵에서는 부산에게 패해 8강 탈락했다.
리그에서는 초반 부진을 딛고 차곡차곡 승점을 따내며 무사히 상위권에 안착했다. 결국 최종 성적은 4위. 그리고 대망의 아챔은 종합 스코어 3:3, 원정 다득점 원칙에 의해 광저우 헝다에게 우승컵을 내주고만다. 자세한 내용은 AFC 챔피언스 리그/2013년 참조.

결국 이때를 기점으로 종신감독 드립이 흥하기 시작했다. 아챔 결승전은 객관적 전력을 봤을 때 서울이 조금 밀린다는 평을 받긴 했으나, 그래도 한번 해볼만하다는 쪽으로 팬들의 의견이 모였다. 그런데 스플릿과 맞물린 자비심 없는 일정이 문제였다. 9월 25일 아챔 4강전 서울 홈, 10월 2일 아챔 4강전 이란 원정, 10월 6일 리그, 10월 9일 리그 슈퍼 매치. 이처럼 해외 원정의 피로를 풀 시간도 제대로 없이 바로 리그 일정을 소화해야했고 설상가상 슈퍼 매치까지 끼어있었다. 더구나 서울이 아챔 결승에 오르면서 10월 26일 서울 홈 경기가 잡히는데, 앞선 10월 20일은 리그 우승을 노리는 울산과 경기를 치뤄야 했다.

두말 할 나위 없이 결승 1차전은 올인인 만큼 사전 컨디션 조절은 필수였는데, 문제는 자존심이 걸린 슈퍼매치와 우승의 향방을 가늠할[33] 울산전 둘중 어느 쪽을 버리느냐였다. 그리고 최용수 감독의 선택은 슈퍼 매치. 덕분에 슈퍼 매치에서는 승리했지만 울산전에선 0:2로 패했다. 결승 1차전에서 아쉽게 비겼을 때 팬들은 '아예 2주동안 주전의 체력을 비축했더라면'하는 아쉬움을 토로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승 2차전, 어렵사리 중계를 시청하던 팬들은 일제히 뒷목을 잡고 이뭐병을 외쳐야 했다. 홈에서 2:2 원정에서 1:1, 당연히 원정다득점을 생각해서 어느 순간 모험을 걸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 오히려 후반 막판 수비 라인을 내리고 지킨다(...)

그리고 AFC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다. 우승팀 광저우의 마르첼로 리피 감독이 서양인이고, 최용수 감독은 아직 젊은데도 불구하고 결승까지 팀을 끌어올린 점을 인정한 결과. 서울팬들로선 울지도 웃지도 못할 지경
3.1.2.3. 2014 시즌
2014 시즌은 33라운드 일정을 치른후 성적에 따라 A B 스플릿으로 나눈 뒤 5라운를 더 치뤄 팀별로 총 38라운드를 뛰게 된다.

시즌전부터 서울의 전력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가장 큰 문제는 데얀의 이적이었다. 7년간 리그 최고의 공격수로 활약하며 K리그 외국인 선수 통산 최다골, 역대 최다골 2위에 오른 레전드 데얀의 빈자리는 기존 선수진으론 메우는게 불가능했다.

3시즌동안 데얀과 콤비를 이뤘던 몰리나는 리그와 아챔을 병행하며 지나치게 혹사당하고 노쇠화까지 겹쳐서 13시즌 후반기부터 폼이 뚝 떨어졌다. 2014시즌 외국인 선수 가운데 연봉 1위라는 비싼 몸값때문에 처분하는 데 실패. 그리고 무릎 부상으로 전반기를 사실상 공치게 되었다. K리그 역사상 최고의 외인 수비수라는 찬사를 받은 아디도 2013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여기에 미드필더진에서 빌드업을 책임졌던 주장 하대성마저 베이징 궈안으로 이적하면서, FW-MF-DF 세 라인에서 핵심 선수가 고스란히 팀을 이탈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남아있는 네임드는 차두리, 고명진, 김진규, 김용대 정도였고 나머지는 폼이 하락했거나 주전경쟁에서 밀렸거나 아니면 아직 경험이 부족한 유망주들이었다.
심각한 위기상황에서 최용수 감독은 2014 시즌을 3백 체제로 운용할 것임을 천명했다. 최용수 감독은 유로 2012에서 준우승을 기록한 이탈리아의 3백 시스템을 인상깊게 보고 이때부터 3백 활용을 결심하고 2년간 연구해 왔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대전에서 멀티 플레이어로 활약하며 쓰리백과 포백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이웅희를 영입하고 외국인 슬롯 하나를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가 모두 가능한 장신 수비수 오스마르로 채웠다. 그리고 13시즌 후반기부터 쓰리백을 시험적으로 가동해 보기도 했다.[34] 이미 차두리, 최효진, 김치우 같은 수준급 측면 자원들을 보유하고 있어 아주 불가능하진 않아 보였다. 그러나 선수들이 생소한 쓰리백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전반기 서울은 총체적인 난국에 부딪치게 된다.

시스템이 생소했던 윙백들이 요령껏 시스템에 녹아들지 못해 체력소모가 극심했고 이는 후반전만 가면 양쪽 측면이 무너져 내리는 결과를 불러왔다. 여기에 중앙 수비수 김진규와 골키퍼 김용대까지 집중력을 잃은 모습을 보여주어 수비진이 말그대로 허물어졌다. 공격진이 나았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데얀 대신 원톱으로 세운 에스쿠데로는 본래 윙이었고 퍼스트 터치나 슈팅이 좋은 선수가 아니었기에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몰리나가 빠지나 세트피스 활용도 여의치 않았고 미드필더진은 하대성의 빈자리를 못채워 허리에서 빌드업이 안됐기 때문에 극심한 빈공에 시달렸다. 한마디로 초반에는 공격도 안되고 수비도 안됐다.

상황이 너무 안좋다보니, 리그 2경기와 아챔 3경기도 총 5경기를 치른후 일시적으로 4백으로 회귀했지만 무너진 팀 스피릿은 회복되지 않았다.
순위승점득점실점
1포항227122210
2전북20622147
3제주19613109
4전남175231110
5울산15433127
6수원154331311
7부산12334810
8상주101721012
9경남10244816
10서울923568
11성남923535
12인천4046214

위 표는 4월 27일 10라운드까지 마친 시점에서 FC 서울이 받은 성적표다. 전통적으로 슬로우 스타터 기질이 있긴 했으나,[35] 이 정도면 강등을 걱정해야 했다.

그리고 5월 3일 리그 11라운드, 리그 꼴지이자 무승 팀 인천을 맞이하여 0:1로 패했다. 이 믿어지지 않는 결과에 축구팬들은 '썩어도 준치인데 아무리 못해도 하위 스플릿 정도로 그칠 것이다'는 쪽과 '지금 전력으로는 곧장 강등이냐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루냐 문제일 뿐'이라는 쪽으로 나뉘어 한바탕 설전을 주고받기도 했다.

대대광강이 사라져 하위권 경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해 졌고, 월드컵 브레이크로 약체팀들이 혹서기에 체력을 보전할 수 있게 되었기에 팬들의 걱정은 점점 커졌고 경질론이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리그에서 졸전하는 와중에도 아챔에서는 꾸준을 승점을 쌓아 16강전에 안착했고, 16강에서 만난 가와사키 프론탈레를 상대로 원정 다득점 승을 거두어 8강에 올랐다. 그리고 포항 스틸러스가 8강 상대로 결정되어 걸어가는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가 성사된채 월드컵 브레이크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때부터 반등이 시작되었다.

일단 강등권까지 처박힌 성적을 조금씩 끌어올으며 상위스플릿 다툼을 벌일 정도로 올라가는데 성공했다. 가장 큰 개선점은 감독 생활 4년만에 로테이션을 돌리기 시작했고, 그게 꽤 성공적이라는 점이다. 서울은 최용수 감독 취임이래 12시즌 리그 우승, 13시즌 아챔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최용수 감독이 능력덕이라고 보는 이는 드물었는데, 여기에는 황선홍처럼 전술적으로 뛰어난 면모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도 있지만 1년 내내 베스트11만 돌리고 로테이션을 모른다는 점이 가장 컸다. 김현성, 박희성 등 유망한 젊은 선수들에게 경기력을 성장시킬 기회를 부여하지 않았고 이재권은 일부러 트레이드해서 데려와 놓고 벤치만 데웠다. 이때문에 서울은 데몰리션에 대한 의존도가 극히 높았으며, 아챔참가로 일정이 빡빡해진 13시즌 그 부작용이 터져 리그와 아챔을 모두 날렸다.
그리고 데몰리션이 떠난 14시즌. 시즌 초반을 완전히 말아먹으면서 팬들의 우려는 현실이 되는듯했다. 그러나 이때부터 조금씩 자신의 단점을 개선해가기 시작했다. 로테이션을 제대로 운영하며 리그성적과 아챔을 위한 선택과 집중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시즌 제대로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던 박희성, 고광민, 이상협, 김남춘, 최현태 같은 선수들이 기회를 부여받았고,[36] 대전에서 데려온 이웅희도 3백의 핵심으로 제대로 활용하고 있다. 이렇게 여름들어 로테이션을 활용하고 수비수들이 3백에 적응하자 조금씩 성적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일단 강등권은 확실하게 벗어났다.

8월 20일 스틸야드에서 열린 1차전에선 0-0 무승부를 기록하고 8월 27일 포항 스틸러스와의 아시아 챔피언스 2차전 홈경기에서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끝에 승부차기 스코어 3-0으로 승리. 4강에 안착했다. 몰리나, 에벨톤, 에스쿠데로, 김치우 등 작년같으면 무조건 나왔을 주전선수들을 과감히 제외시키고 고광민, 박희성, 윤일록 같은 젊은 선수들을 선발로 내보내 승리를 낙아챈 점도 고무적이다. 올시즌 리그와 아챔, FA컵까지 지겹도록 맞붙고 있는 서울과 포항인데 시즌 초반 서울이 헤맬때 패배한 것을 제외하면 서울이 우세를 보이며 FA컵과 아챔에서 포항을 물먹였다. 현 시점에서 최강희 감독과 함께 K리그 최고의 감독으로 꼽히는 황선홍 감독을 상대로 감동님 소리까지 들었던 최용수 감독이 우세를 보이는 점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추석 연휴 마지막날인 9월 10일 성남원정에서 2-1 역전승을 거둬 같은 날 수원에게 2-0으로 패한 울산을 제치고 6위에 등극, 드디어 상위 스플릿 진입에 성공했다.
9월 10일까지 진행된 판도로 봤을 때 상위 스플릿 잔류를 놓고 가장 유력한 경쟁 상대는 5위 전남과 7위 울산이다. 전남은 모기업 경엉사정이 악화일로를 걸으며 저비용고효율 스쿼드를 꾸린만큼 장기 레이스에서 후반부로 갈수록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약점이 있다. 한편 울산은 조민국 신임 감독이 부임한 여파로 팀이 정상궤도를 일탈해 삐걱대는 상태다. 더구나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축구 대표로 울산은 김신욱과 김승규를, 전남은 김영욱 안영우 이종호를 보내 전력 누수가 심한 것도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아직 3년차 햇병아리 감독에 불과하지만, 일부 축구팬들은 조심스럽게 40대 또래 감독들 가운데 차후 대표팀 감독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지 않겠냐며 장래를 점치고 있다.[37] 전술한 바와 같이 3년동안 여러차례 팀과 감독 모두 위기를 맞이했는데도, 군말이 새어나지 않게 '선수들을 잘 단속'하면서 어떻게든 '끝까지 버텨내서 성적을 내는' 뚝심은 감독으로서 커다란 장점이다.[38] 또 유려한 공격축구를 선호하는 신태용, 황선홍 감독과 달리 선수비 후역습의 간결하고 실용적인 축구를 추구하는 점도 세계 무대에서 대표팀의 위상과 전력을 고려해봤을 때 궁합이 맞는다.

9월 13일 인천과의 경기로 승점 40점을 돌파. 11승 8무 7패 승점 41점으로 5위에 올라있다. 현재 3위 수원과의 승점차이는 고작 3점.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이 가시권에 들어와있다. 현재 기세대로라면 충분히 티켓 획득이 가능한 상태. 덕분에 서서히 서울팬들이 최용수빠로 변하고 있다.

웨스턴 시드니와의 0-0 홈경기 무승부로 AFC 챔피언스리그 8강전부터 3경기 연속 0-0 무승부를 기록하고 있다. 연장전까지 도합 300분 무득점이다.[39] 웨스턴 시드니가 서울과 마찬가지로 선수비 후역습 스타일이라 지루한 경기로 흐르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고 예상대로 되었다. 웨스턴 시드니가 원정골을 기록하고 홈에서 잠궈버리는걸 우려했는지 홈에서도 그다지 공세지향적인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다. 후술하겠지만 현재 서울의 공격력으론 웨스턴 시드니 정도의 팀을 상대로 원정골 허용하면 만회하기 힘들다.

이후 리그에서도 무재배를 거듭해 전북전(0:0)과 경남전(1:1)에서 연달아 무승부를 기록했다. 웨스턴 시드니와의 1차전이나 이후 벌어진 2경기나 노출된 문제점은 같았다. 서울의 수비력은 변함없이 굳건했으나 가장 큰 문제점이었던 스코어러 부재에 계속 발목을 잡히고 있다. 전북전에선 홈에서 1군으로 나온 전북을 상대로 1.5군을 내보내 공격은 잘막았고 결정적인 찬스도 잡았으나 박희성이 그 찬스를 날리면서 무득점에 그쳤고 경남전에서도 에벨톤과 박희성이 결정적 찬스를 성공시키지 못했다.

데얀은 떠났고, 몰리나는 노쇠화로 폼이 죽었다.[40] 모기업 GS도 연고지 밀착, 유스 시스템 정비, 해외교류 등 구단 내실다지기에 집중하면서 10년 같은 대박영입은 안하는 상황. 11시즌 몰리나 영입 이후로 빅사이닝이 없다.[41] 12시즌 이재권, 13시즌 윤일록, 14시즌 이웅희, 강승조로 매년 유망주, 준척급으로 1~2명만 데려왔으며 이들중 윤일록은 13시즌 바로 중용되었고, 이웅희와 강승조도 14시즌 중반 최용수 감독이 베스트 일레븐에 대한 고집을 버리면서 기회를 부여받아 잘 뛰고있다. 2시즌 벤치에서 쌩으로 날리고 경찰청 입대한 이재권만 불쌍하게 되었다.

저렴한 자원이 필요하여 데려온 하파엘 코스타는 상반기에 워낙 부진했던지라 손해를 감수하며 에벨톤을 맞임대로 땡겨오는 딜을 했는데, 그렇게 데려온 에벨톤도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며 맥을 못추고 있다. 기존의 에스쿠데로는 원톱감이 아니라는 사실만 다시 한번 확인시켰고 유망주 박희성도 문전에서 미숙한 모습을 반복하고 있다. 한마디로 중앙 공격은 기대할게 못된다. 두두와 이상협만 남기고 공격진이 전멸했던 07년 귀네슈 부임 첫해와 유사한 상황이다. 그래서 측면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는데 측면에서 활력을 불어넣던 윤일록이 아시안게임에 차출되어 갔다. 게다가 조별 예선에서 오른쪽 인대 부상을 입어 4~6주를 끊어서 복귀후에도 한동안 결장해야 하며 추후 폼저하가 우려된다. 왼쪽의 김치우는 왼다리에서 뼛조각이 발견되어 수술대에 올랐다.

14시즌 서울은 실점을 잘안하지만 득점도 많이 못하는 팀이다.[42] 선제골을 먹으면 뒤집는게 쉽지 않고 주어진 찬스를 바로바로 못살리면 약팀 상대로도 덜미잡힐 위험이 높다. 즉, 답답하다고 함부로 공격적으로 나가는것도 쉽지않다. 때문에 리그, FA컵, 아챔 모두 굉장히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데, 없던 골결정력이 하루 아침에 생기는건 아니라서 최용수 감독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43]

10월 1일 웨스턴 시드니와의 호주 원정에서 0-2로 패배. 2년 연속 결승진출에 실패했다. 원인은 역시나 약한 공격력이었다.

30라운드 울산전에서 3-0 대승을 거두어 울산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했다. 이은 31라운드 상주전에서 연이은 원정경기로 인한 체력저하를 극복치 못하고 0-1로 패했으나 32라운드 전남전에서 모처럼 터진 몰리나를 앞세워 2-1로 승리. 상위스플릿 잔류를 확정짓고 재차 아챔 진출을 노려볼 수 있게 되었다. 10월 22일 FA컵 준결승에서 상주를 1-0으로 꺾고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FA컵 결승전에서 결국, 성남 FC에게 승부차기에서 패배하며 FA컵 우승을 놓치고,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도 힘겨워지는 듯 했다.

이런 와중에 리그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있었는데, FA컵 우승을 놓치고 4위를 기록하던 서울이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리그 3위로 진출하는 것뿐인데 3위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승점이 3점차인 포항 스틸러스가 반드시 패배하고 서울이 반드시 이겨야 가능했기 때문. 포항은 비기기만 해도 아챔에 진출할 수 있었다. 그나마 득실차는 이미 서울이 더 앞서 있었기 때문에 이기기만 한다면 거의 99%의 확률로 3위가 될 수 있었다. 문제는 포항은 홈에서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경기[44]10년 동안 포항 원정에서 승리한 적이 없었다.]하고, 서울은 제주 유나이티드와 원정 경기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시작부터 제주의 황일수에게 골을 먹히더니 포항-수원 경기도 김광석이 골을 넣으며 완전히 희망이 사라지는 가 했다. 그러나 6골로 팀 내 최다 득점자이던 윤일록이 동점골을 넣더니 옆 동네 경기에서도 이동국을 제치고 득점왕을 노리고 있던 산토스가 동점골을 넣었다. 게다가 얼마 안 가 시즌 내내 인민 먹튀 취급받던 정대세까지 골을 넣으며 아챔 진출 조건의 반이 이루어졌고, 결국 후반 45분에 오스마르가 역전골을 넣으면서 3위로 역전 성공. 아챔 진출에 성공했다.

이 마지막 라운드 상황을 간단히 요약해놓은 영상

아이러니하게도 서울과 수원의 관계는 슈퍼매치라고 할 정도로 타 팬들을 인정하지 않지만 꽤나 인지도 높은 라이벌 관계인데 그 라이벌인 수원이 서울의 아챔 진출을 도와준 격이었다.

다만 올 시즌 성적을 말하자면 그리 만족스럽다 볼 수는 없다. 2년 연속 리그 우승팀이 급작스런 전술 변화로 인해 초반에 크게 무너지고, 전술에 적응한 뒤에도 안정화된 수비에 비해 그리 늘어나지 않은 득점력을 생각하면 분명히 아쉬움이 많은 시즌. 그리고 엄격히 따지면 32라운드 전남전에서 스테보의 골을 무효로 만든 오프사이드 오심이 아니었으면 아챔은커녕 상위스플릿 진출도 불가능했다. 역대급 망시즌이 될 수 있었는데 심판의 오심이 살린 격.이래서 운장 소리를 듣는 거다.

아무튼 서울 프런트는 시즌 중반 이후의 모습을 괜찮게 평가했는지 3년 재계약을 제안했다. 그러나 14년 연말에 김주영이 중국 상하이로 이적하면서 내년 전력 약화를 고민하게 되었다. GS가 최근 건설사업 필두로 적자가 많이 발생한 탓에 올해도 눈에 띄는 영입없이 상당히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3.1.2.4. 2015 시즌
아챔 플레이오프에서 하노이를 7:0으로 격파하면서 좋은 출발을 보이는 듯 싶었으나, 개막 직전 세르히오 에스쿠데로가 중국으로 이적했다. 그리고 리그 개막전부터 울산-전북-포항에 매 경기 2골씩 먹히며 3연패를 기록하였다. 아챔 리그 조예선에서도 1승 1무 1패로 3위로 밀려난 상황. 서울은 부족한 공격력을 보강하기 위해 박주영을 영입하긴 했지만 이적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에 합류 시점이 4월 초로 잡혀있어 과연 박주영 효과를 보며 반등할 수 있을지 지켜보아야 할 듯.

4월 18일 슈퍼매치에서 1:5로 완패했다. 모처럼 공중파로 중계된 경기에서 체면을 크게 구겼기 때문에 서울팬들의 여론이 나빠졌다.

5월 들어서 리그 순위가 무려 10위까지 추락하면서 서포터들에게 퇴진 소리까지 듣고 있다. 그나마 아챔에서 막판 가시마 원정에서 3-2로 이기며 극적으로 조 2위로 16강에 진출하며 한 고비를 넘겼다. 하지만 아챔 16강 1차전에서 감바 오사카에게 홈에서 1:3으로 대패를 당하면서 팬덤은 다시 들끓었고, 결국 원정에서도 2:3 패배를 당하며 16강 탈락했다.

이후 리그에 집중하면서 차곡차곡 순위를 끌어올려 일단 6월 들어서 상위 스플릿에 안착했다.
리그 순위는 전북이 승점차를 크게 벌리며 1위를 지키는 가운데 수원이 약간 떨어져서 추격하는 모양새며, 서울 전남 제주 포항이 엎치락 뒤치락 하면서 3위 자리를 놓고 다투고 있다. 이들 네 팀은 매주 승점이 아닌 골득실차로 순위가 바뀔 정도의 치열한 접전 중이라 현 시점에서 시즌 성적을 예상하기는 어렵다. 특히 뒤에서 광주 성남은 승점 5점 정도, 울산과 인천은 8점 정도 차이로 따라오는 중이라 중위권 순위가 언제 어떻게 요동칠지 모르는 레이스가 이어지고 있다.

6월 27일 슈퍼매치에서 0:0으로 비겼다. 모처럼 공중파로 중계된 경기에서 맥빠진 경기를 펼친 덕분에 팬은 물론 언론조차 서정원 최용수 두 감독을 가루가 되도록 깠다.

6월 30일, 중국 장쑤 순톈이 가오홍보 감독을 경질하고 새 감독을 찾는 와중에 최용수 감독 역시 후보군에 들었다는 중국발 기사가 나왔다. 이 소식을 접한 축구팬들은 아브람 그랜트, 로베르토 디 마테오, 이장수 등의 네임드 감독 후보군 가운데 그냥 구색갖추기 정도로 들어갔지 않겠냐고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런데...
7월 2일 최용수 감독이 시즌 도중 장쑤로 옮겨 지휘봉을 잡는다는 기사가 떴다. 여기에 몇몇 기자들이 달려들어서 최용수가 서울을 떠나야 한다는 기사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서형욱이 올린 기사 잔류 확정 후, 듀어든이 올린 기사

그런데.....

다음날 거액의 제의를 거절하고 서울에 잔류한다는 기사가 떴다. 팬들의 반응은 거액의 제안을 거절하고 서울을 끝까지 책임진다는 의리에 대단하다는 호평과, 경기력이 좋지않아 나가라는 반응이 많은데 왜 안 나가냐는 혹평이 엇갈리고 있다. 상위권 팀이 시즌 중간에 감독을 바꾸는건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음으로 안 가서 일단 다행이라는 반응이 우세하다.

8월 휴식기에 아드리아노를 영입하고 다카하기의 실전투입 부활의 몰리나 에이스 박주영 등으로 FC서울의 판타스틱4로 리그 승점 자판기지만 전적에서 열세였던 윤정환감독의 울산현대에 승리 부산에 승리 대전에 승리하며 외적 내적으로도 훌륭한 경기력과 연승으로 9월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고명진이 중동가고 외인 3인방 미들진 다카하기-오스마르-몰리나 의 신형 미들진이 중원을 장악하는데다 심상민을 발견하며 또다른 공격옵션도 만들어 냈다. 하지만 9월 포항-전북-수원-성남의 상위권팀들과의 맞대결이 남아있어 새로운 FC서울의 진가를 알아볼수 있다.(위 팀들과 전반기에 1승3무4패의 저조한 성적이다.그에 비해 부산 대전은 전반기에도 3승1무다) 라고 할려고 했는데 8월 마지막 제주전에서 패했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거의 10년간 서울을 이기지 못한 제주가 윤빛가람 송진형의 골로 승리했다. 한창 성남과 순위 싸움이었던 시점에서 아쉬운 패배다.

이와중 박주영의 무릎이 아작나며 포항전 무승부 전북전 대패를 해서 입지가 위태위태해졌다. 그리고 수원과의 원정 시합전에 박주영이 무릎이 괜찮다고 출전을 예상하게 했으나 정작 시합에서는 벤치에도 넣치않는 언플로 시합도 전에 대패를 되갚는 3-0대승을 거두었다. 페이크다 이 병신들아 스킬을 획득했나보다 시합전에 오늘은 사이드와 세트피스에서 승부가 갈릴거라고 했는데 정확하게 맞추며 오래간만에 명장설이 뜨는가 했으나 다음 성남전에서 홈에서 패배를 기록하며 다시 또 지도력 문제가 뜨기 시작했다.

또한 특정선수에 대한 기대나 수요치가 너무 크다. 여름부터는 꿀영입아드리아노박주영 둘이 잘 풀리면 시합과 내용 둘 다 잡을수 있지만 둘 다 안풀리면 한없이 고전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상위스플릿은 일단 성공했고 후반기 리그성적과 FA컵을 따내면 올해는 평타 이상 한 감독으로 기억될 듯하다. 34라운드에서 성남에 역전승을 거두며 4위로 뛰어올랐고, 35라운드에선 전북과 비겼다.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두었다.

10월 31일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FA컵 결승에서 3-1 승리를 거두고 커리어 첫 FA컵 우승을 차지했다. 36라운드에서는 역대급 슈퍼 매치를 연출하며 4-3 신승을 거뒀다. 2위 포항과 승점 2점차로 남은 2경기 결과에 따라 준우승도 노려볼 수 있었으나 두 경기에서 1무 1패 하며 리그 4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3.1.2.5. 2016 시즌
괌에서 전지훈련중에 아드리아노와워메 박주영이그만좀다쳐!!!!!부상을 당해 국내 복귀했다 한다시즌은 아직시작도 안했음 그나마 작년, 재작년과는 다른 적극적인 영입으로 다른 자원들이 늘어난게 다행. 전지훈련에선 주세종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하는 전술실험을 했다.[45] 아챔에서는 부리람,산둥,산프레체 히로시마 등을 상대로 대승하고 조1위로 치고 나갔다. 리그에서는 전북을 상대로 0-1패를 하였으나 2라운드 상주전 부터는 순항중. 그런데 상주전까지 5경기동안 복붙이라 할정도로 베스트 11 후보 7명 멤버가 똑같아 로테이션은 뒀다 쌈싸먹냐? 라는 평가를 들었다.

최용수 감독은 A매치 기간 이전의 이같은 라인업 복사+붙여넣기에 대해서 새 얼굴이 많이 수혈된 팀의 조직력을 다지고 지난 3시즌간 팀 발목을 잡은 슬로우 스타터에서 벗어나기 위한 선택이었으며 조직력을 해치지 않도록 2~3명씩 점진적인 변화를 줄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3라운드 인천전부터는 로테이션을 조금씩 돌리기 시작했다.

플레이 메이커로 최고의 활약을 보여준 신진호가 입대한 후 적절한 대체자를 찾지못해 고심이 크다. 천하의 아데박 트리오도 미들진이 살아나지 못하면 공격력이 확줄어들기 때문에 이석현, 고요한, 주세종 등 많이 돌려 써보지만 전부 기대에 못미친 경기력을 보여줬다. 시즌 첫 슈퍼매치에서 무승부를 거둔 이후 기세가 한풀 꺾인 모양새. 포항전에서는 쓰리백 철퇴축구에 제대로 얻어 맞고 1-3으로 참패했다. 다행히 이후 주중에 치뤄진 대구와의 FA컵 16강에선 2골을 연이어 실점하고 끌려가다 아드리아노와 심우연을 투입한뒤 4-2로 뒤집어 엎어버리는 용병술을 보여줬다.

5월 14일 성남과의 경기에서 골키퍼 유현의 연이은 실수로 2-1로 끌려갔으나 박주영 교체로 경기를 반전시켜 3-2 역전승을 거뒀다. 이 경기 승리로 통산 100승을 올렸다. 42세 8개월 4일, 193 경기만의 성과로 K리그 역대 최연소, 최소 경기 100승 기록이다.[46]

6월 21일, FC 서울 지휘봉을 내려놓고 장쑤 쑤닝 감독으로 부임한다는 공식발표가 떴다. 최용수 감독은 6월 22일 안산 무궁화와의 FA컵 16강 경기를 마지막으로 서울 지휘봉을 놓는다. 후임은 황선홍 전 포항 스틸러스 감독. 작년에 한번 거절당한 장쑤인데 지속적으로 구애를 보내며 무려 연봉 35억을 제안했다고 한다. 2년 반 계약이니 기본연봉만 다 받아도 87억이다. 이런저런 수당까지 포함하면 100억까지 받을 수 있다. 이는 EPL 감독 평균 연봉(35억)을 뛰어 넘는 금액이다. 거기다 장쑤가 외인으로 영입한 테세이라, 하미레스와 호흡을 맞춰보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고 한다.

서울팬들은 장쑤가 제안한 금액이 워낙 커서 순순히 보내줄 수 밖에 없다는 쪽이 중론이다. 다만 아드리아노나 고요한 등 자신을 애제자들과 코치진을 중국으로 데려갈지 모른다는 우려와 개성강한 선수들을 잘 통제했던 최 감독의 부재로 리더쉽 공백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고 있다. 그나마 후임 감독이 황선홍이라 다행이지 인지도가 없거나 평판이 안좋은 인물이 후임이었다면 꽤나 민심이 흉흉했을 상황이었다.황보관 리턴즈가 아니니까

고별전이었던 6월 22일 안산 무궁화와의 FA컵 16강전은 윤주태의 멀티골을 앞세워 2-1 승리하여 유종의 미를 거뒀다.

3.1.3. 장쑤 쑤닝 감독 (2016~2017)

막상 떠날 때만 해도 이해한다, 응원한다, 그동안 좋았다는 훈훈한 댓글과 반응이 많았지만 그 후로 황선홍 감독이 몇 경기 동안 승이 없고 홍정호가 최용수의 팀인 장쑤로 이적하자 느닷없이 욕을 배불리 먹고 있다(...). 서울에서는 자기 갈 거 생각하고 로테이션 안 돌려서 체력 바닥나서 주전이 지금 황 감독 아래서 제대로 못한다고 까고, 홍정호 건은 유럽에서 주전먹은 애를 왜 데려가서 망치냐고 하는 것이.

결론부터 말하면 정상적인 상식을 지니고 있으면 애먼 사람 욕하지 말자. 최용수는 이미 이전에도 중국의 제의를 거부하고 남았었고 이번에 제의도 급작스럽지만 엄청난 금액을 보장했기에 프로라면 당연히 이적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전까지 최용수가 서울을 이끌며 2위까지 올리고 우승 경쟁도 만들고 있었는데 본인이 떠나고 새 감독이 오면 그 과정에서 혼란은 당연한 것이다. 정착기간까지 지켜봐야하는 것이지 이게 그 전임 감독이 떠났다고 욕먹을 부분은 아니다. 또한 괜히 패배를 누군가에게 돌리기 위해 최용수 감독이 건수가 잡힌 거지, 경기를 살펴보면 로테이션이 문제가 아니라 유독 경기마다 못하는 선수가 눈에 띄게 있었다. 그리고 홍정호 건도 홍정호 항목에 나와있지만 이적이 감독 혼자만의 의사로 되는 것도 아니다. 더더욱 홍정호는 이전부터 장쑤가 관심을 가져온 선수다. 무엇보다 아무리 구단 측이 밀어붙여도 선수가 원한다면 이적은 거부할 수 있다. 본인이 고액의 연봉을 위해 프로다운 선택을 내렸고 아우구스부르크와 장쑤도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이적한 것인데 이것을 최용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선수 본인이 정말로 성장을 위해 중국에 가고 싶지 않았다면 방법은 분명 있다. 다른 외국인 선수들이 중국 리그로 간다면 돈때문에 간다며 욕하면서 홍정호는 억지로 떠밀리듯 이적한 듯 분위기를 형성하고 감독을 비난하는 것은 진정한 축구팬의 모습이 아니다. 설령 최용수의 입김이 들어간 영입이라 할지언정, 프로의 세계에서 국적과 국가대표까지 모두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 대승적 차원이라고 하는 것은 프로 세계에서는 그저 본인들의 떼쓰기에 지나지 않는다.

장쑤 쑤닝의 전임 감독은 단 페트레스쿠였다.[47] 하미레스, 알렉스 테이셰이라, 등 3명의 용병빨로 리그에서는 2위를 하고 있었으나, 전술이 매우 단조로운데다가, 재미없는 수비 축구로 일관하여 그 좋은 성적에도 팬들과 서포터즈에게 욕을 상당히 먹는 상태였다.[48] 결정적으로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5월 4일 홈경기에서 전북에 비김으로서 3위로 탈락, 경기를 직관한 구단주가 크게 노해서 그대로 잘렸다고 한다.
3.1.3.1. 2016 시즌
중국 슈퍼 리그 2016년 14라운드부터 지휘를 시작했다.

6월 24일, 광저우 헝다와의 원정경기에서는 0:2로 패했다. 7월 2일, 랴오닝 훙윈과의 홈경기에서는 하미레스의 활약으로 4:3으로 가까스로 승리. 7월 9일, 산둥 루넝과의 원정경기에서 다시 1:2로 패. 7월 14일, 허난 젠예와의 중국축구협회 FA컵 원정경기에서는 1:2로 패배. 7월 16일, 박태하 감독이 지휘하는 옌볜 푸더와의 원정경기에서는 0:3으로 참패했다. 이 경기에서 옌볜의 김승대가 대활약을 했다.

아직 팀 파악이 덜 된 듯, 팀을 맡은지 한 달 동안 1승 4패의 저조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광저우는 그렇다 치더라도 산둥, 옌볜은 모두 10위 밖의 약팀이라서 더욱 충격적. 장쑤 입장에서는 팀을 2위에 올려놓았던 단 페트레스쿠 감독을 시즌 중 경질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

7월 20일 홈경기에서는 허베이 화샤를 4:0으로 대파했다. 이 경기에서 이적한지 얼마 안되는 홍정호가 출전했다. 7월 24일 다시 홈경기에서 허난 젠예를 4:1로 대파. 최용수가 치른 홈경기는 꼭 4점으로 이긴다는 징크스를 보여주었다.

7월 27일, 허난 젠예와의 FA컵 홈경기에서 다시 한 번 3:1로 격파하고 준결승에 진출했다.

취임 초반에는 굉장히 불안한 모습을 보였으나, 7월 말부터 안정감을 되찾았고, 8~9월에는 계속 승승장구를 하여 7월 중순 이래[49] 4연승을 구가, 9월 하순 25라운드를 마친 현재 기준 승점 50점을 기록하면서 승점 56점의 선두 광저우 헝다를 승점 6점 차로 바짝 뒤쫓고 있다.

9월 25일 벌어진 26라운드에서 항저우 뤼청에게 0:3으로 패하면서 선두 광저우 헝다와 승점 7점 차이로 벌어졌다. 이번 시즌 단 4경기만을 남겨놓고 있다.

최종적으로 리그 준우승을 차지하였다.

이어 벌어진 광저우 헝다와의 FA컵 결승전에서도 원정에서 1:1, 홈에서 2:2로 마치면서 1, 2차전 합계 3:3으로 비겼으나,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 아쉽게도 준우승에 그쳤다.

2016년을 모두 2위로 장식했는데, 나쁘지 않은 결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좋은 결과도 아니다. 원래 장쑤는 강팀이었고, 장쑤의 구단주는 우승을 위해 최용수를 영입했기 때문이다.
3.1.3.2. 2017 시즌 초
2017년 4월 6라운드를 마치고 2무 4패로 기록하며 강등권인 리그 15위를 마크, 최악의 성적을 거두었다. 물론 이런 부진에는 공격의 핵인 테세이라와 콜롬비아 국대출신 로저 마르티네즈 부상중이기 때문에 어쩔수 없는 면이 있고, 수비의 핵인 홍정호도 여러차례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다. 적어도 두 게임에서 치명적인 수비 실수로 결승골을 헌납했을 정도. [50]

초반부터 이렇게 전년 2위팀인 강팀을 추락시킬정도로 부진하면 , 서포터스나 구단주가 매우 성급한 중국 리그에서는 당연히 경질각이지만, 아챔 (F조 4전4승) 에서는 아직 선전하고 있기 때문에 자리를 보전하는 듯 하다.

하지만 끝내 4월 22일 중국 언론에서는 결국 경질이 유력하다는 보도가 났다. # 중국언론이 꼽은 후임 후보는 리진위 전 스자좡 융창 감독 대행.

4월 25일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대결을 앞두고, 구단주와 미팅을 갖고 일단은 유임을 결정하여 최용수 감독에 힘을 실어주었다. 하지만 장쑤는 제주에 패배하여 구단주의 기대는 물거품. 물론 이미 장쑤는 16강행이 확정되었기 이 게임보다는 28일의 톈진 취안젠 정규리그 제7라운드전에 더 컨디션을 맞출 것이라고 예상되기는 했기 때문에 이 패배는 예측되기는 했다.

4월 28일 톈진 취안젠과 1-1 무를 캤고, 5월 박태하가 지휘하는 옌볜 푸더와도1-1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마침내 5월 14일 강팀 산둥 루넝 전에서 하미레스와 테세이라의 활약으로 2-1로 정규리그 첫승을 거두고 강등권을 벗어나 14위로 올랐다.

5월 31일 AFC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상하이 상강에게 2-3으로 패하여, 구단의 마지막 기대를 무너뜨렸다. 여기서도 홍정호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여 1점을 헌납하였다.
6월 1일 결국 성적 부진 및 아챔 16강전 탈락의 책임을 지고 장쑤 쑤닝의 감독에서 사임했다. 약 10개월 간 재임한 셈.[51] 후임은 파비오 카펠로.

그러나 카펠로 역시 오래가지 못한 덕에 약간의 명예 회복이 된 상태다. 성적부진으로 중도 사임했지만, 장쑤측은 거액의 연봉을 계속 지급하고 있고 다른 팀과 계약하면 잔여 연봉이 지급이 중단되기 때문에 최용수가 그다지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안 한다는 루머가 있었으나 서호정의 최용수 복귀 기사에서 잔여 연봉 루머는 사실이 아니라고 보도되었다.

3.1.4. FC 서울 감독 2기 (2018~)

2017년 6월 1일 장쑤에서 사임한 후 방송 출연해설로 소일하는 동안, 친정 팀 FC 서울은 부진을 거듭하고 있어 지속적으로 복귀 여론이 높아졌다.

그리고 2018년 10월 11일 FC 서울 감독 복귀가 발표되었다!기사[52] 2018년 10월 20일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경기부터 팀을 지휘한다. 이미 팀은 하위 스플릿으로 추락한 다음이라 팀의 리더쉽과 분위기를 다시 복구하는 것이 과제로, 경기력과 재미 이전에 강등을 막는 게 급선무다. 상황이 워낙 급박한 탓인지 계약한 당일 바로 구리시에 소재한 FC 서울의 클럽하우스인 챔피언스파크로 출근했다.기사

그러나 FC 서울 감독 선임 이후 첫 경기였던 K리그1 33라운드 제주와의 원정경기에서 후반 37분 찌아구에게 결승골을 내주며 0:1로 패했다. 10경기 연속 무승으로 강등이 가시권으로 다가오고 있다.???:존경하는 황선홍 선배님 왜 이렇게 해놓고 가셨습니까[53] 홈 복귀전이자 하위스플릿 첫 경기였던 강원 FC전에서는 결과가 무승부로 아쉬웠지만, 한 경기에 슈팅 10개를 때리기가 힘들었던 팀이 부임 2경기만에 22개의 슛을 가져가며 주도권을 잡고 경기하는 팀으로 변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었다. 아울러 득점자는 3개월 동안 R리그에서만 유니폼을 입었던 박주영. 여러모로 서울 팬들 입장에서 반가운 경기였다.

스플릿 두번째 경기 대구원정에서는 70분까지 시종일관 압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단 슈팅을 22개나 날리고도 고작 1점만 낸거는 여전히 심각한 골결정력을 탓할 수 밖에 없다. 조현우의 슈퍼세이브가 여럿 나온 것을 감안하기는 해야겠지만 계속 불안한 모습을 보인 대구 수비진을 상대로 충분한 득점을 하지 못한건 사실이다. 또 70분 이후 선수들의 방전문제도 지적받아야한다. 이 때부터 대구에게 조금씩 찬스가 늘어났는데 결국 1:1 동점으로 끝나며 감독 복귀 이후 2무 1패로 3경기를 남긴 시점에서 강등권과 승점 4점차라는 위태위태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스플릿 3번째 경기 전남 드래곤즈와의 상암 홈 경기에서 3:2로 극적인 승리를 거두며 잔류 가능성을 높였다. 본인의 감독 복귀 이후 첫 승리이자, 12경기 연속 무승을 끊어낸 값진 승점 3점이었다. 36R 종료 이후 서울은 승점 40점을 기록하며 9위를 수성했고, 10위 상주 상무를 3점차로 따돌리며 잠깐이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지만, 37라운드에서 인천 유나이티드에 0:1 로 패하며 마지막 라운드까지 봐야 잔류와 강등 여부를 결정지을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잔류 여부가 걸린 상주전에서도 무기력한 경기 끝에 0:1로 패하면서 FC 서울은 창단 후 최초로 승강 플레이오프까지 치러야 하는 굴욕을 맛보았다. 최용수도 경기 내내 답답했는지 불안한 모습이 얼굴에 드러날 정도.

12월 6일 구덕에서 열린 부산 아이파크와의 승강 플레이오프 1차전 경기에서 3:1로 역전승을 거두며 잔류의 가능성을 높였다. 원정에서 거둔 다득점 승리로 홈에서 열릴 2차전을 유리한 위치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상암에서 열린 2차전에서도 1차전과 마찬가지로 부산에게 선제골을 내줬지만, 박주영의 극적인 동점골과 함께 1:1 무승부를 거두면서 통합 스코어 4:2로 최종 승강 플레이 오프에서 승리하며 힘겹게 K리그1 잔류에 성공했다. 2017시즌보다 2018시즌 평균관중이 5000명 정도 줄었을 정도로 팀 내외적으로 힘든 상황인데 이를 살려낼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후 인터뷰에서 '내가 감독자리를 왜 맡았지?'라고 후회한적도 있고, 언제는 선수들과 원정경기에 왔었는데 정신차리고보니 논두렁이었다는 꿈 이야기, 그리고 서울 프런트에게 "2부 떨어질겁니다. 그렇게 알고계십쇼."라고 얘기한 일화 등 온갖 마음 고생에 대해서 고백했다.

한편 19시즌 구상으로 위르겐 클롭의 압박 축구를 거론했다. 이탈리아 축구, 특히 콘테를 인강 스승으로 삼아 스리백을 깎아 왔는데 19시즌엔 클롭의 게겐프레싱을 수강할 모양이다.

이어서 찾아온 스토브리그에서 팬들의 기대와 달리 FC 서울 프런트는 최용수가 원한 만큼의 선수 영입을 이뤄주지 않았고, 최용수는 미디어데이에서 이런 부분에 대한 아쉬운 점을 토로했다. 하지만 2019시즌 K리그1 포항과의 개막전에서 황현수의 2골과 함께 2:0 완승을 거두며 분위기를 일신했다.

3월 첫 달의 모든 리그 경기를 마쳤을 때 3승 1무로 잠시나마 리그 단독 선두였다. 거기다 더욱 놀라운 점은 4경기 내내 실점을 기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팀을 확실히 환골탈태 시킨듯한 모습이다. 10라운드를 마친 5월 초 기준으로 5승 3무 2패로 리그 4위며, 3위인 대구랑은 1점 차이다.

11라운드 홈경기에서 2019시즌 돌풍의 팀인 대구를 2:1로 격파하고 3위로 올라갔다. 이 경기는 최용수가 대구 팀의 스타일을 잘 분석해서 대처했다. 서울이 이렇게 치고올라가니 작년 잠잠했던 만물 한웅수설, 서울우대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발목을 냅다 걷어차서 옐로를 줘도 부당하다고 떼쓰는 시민구단 팬들과 지들이 매수 해놓고 남한테 난리치는 매수구단 팬들이 쌍으로 서울 견제에 들어갔다. 아무래도 한웅수가 최용수 재임기에만 열일하는 모양이다 이 사람들 세뇰 귀네슈가 심판판정에 불만제기했을때 남탓한다며 일방적으로 린치하던 그 작자들이다.

3.2. 기록

3.2.1. FC 서울

  • K리그 우승 1회 : 2012
  • FA컵 우승 1회 : 2015
  • 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1회 : 2013

3.2.2. 주요 개인 수상

  • K리그 올해의 감독상 : 2012
  • AFC 아시아 올해의 감독상 : 2013
3.2.2.1. 표로 보기
파일:K리그 클래식 시그니처 문구 로고 없는거.png 감독상
2011년 2012년 2013년
최강희
(전북 현대 모터스)
최용수
(FC 서울)
황선홍
(포항 스틸러스)

3.3. 지도 스타일

FC 서울 1기때는 선수빨로 축구한다는 욕을 자주 먹었다. 그리고 엄밀히 말해 아주 틀린말은 아니었다. 최용수 감독이 자신의 색깔을 정립한건 14시즌부터이고 초년병 시절인 11~13시즌의 서울은 분명 절정의 폼을 과시하던 데몰리션 콤비를 위시한 선수발로 덕을 많이 봤다. 그러나 선수발로 가장 큰 고비인 초년병 시절을 무사히 넘기는데 성공했고 14시즌 부턴 본인의 색을 찾아갔다. FC 서울 2기에 이르러서는 더없이 열악한 팀을 이끌고도 상위권을 찍으며 엄청난 발전을 보여주고 있다.

13시즌까진 포백을 사용했지만 데얀과 하대성, 아디가 모두 떠난 14시즌 이후론 수비 지향의 3-5-2 혹은 3-4-3 포메이션을 주로 사용한다. 15시즌을 앞두고 공격적인 4백을 사용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처참하게 실패하고 하위권으로 추락한 뒤에 다시 쓰리백으로 돌아갔다.[54] 16시즌 완전히 자리잡은 최용수 쓰리백의 특징은 좌우 스토퍼의 공격 가담. 중앙의 스위퍼가 빌드업을 담당하는 전형적인 쓰리백과 달리 스위퍼는 최후방에서 서서 수비만 전담하고 좌우의 스토퍼가 오버래핑과 빌드업을 수행한다. 14시즌에는 중앙의 김진규가 빌드업을 하고 좌우의 김주영, 이웅희가 수비적인 역할을 하는 일반적인 쓰리백, 15시즌에는 노쇠한 김진규를 대신해 기회를 받은 박용우와 수비형 미드필더 오스마르의 스위칭 플레이가 추가 되었고 16시즌 지금의 형태가 정착되었다.

그래서 최용수 체제에선 스위퍼 자리에 3명중 가장 투박한 선수가 들어간다. 16시즌에는 발밑이 둔탁하지만 터프한 수비력이 있는 김원식이 스위퍼, 오스마르와 김동우가 좌우 스토퍼로 섰다. 18시즌 급히 복귀했을땐 김남춘이 중앙, 김원균과 김동우가 좌우에 섰다. 반대로 양 스토퍼는 부드러운 발밑으로 빌드업을 수행하고 활동폭을 넓게 가져가 오버래핑에도 적극 가담해야하는 팀내 가장 뛰어난 수비수들이며 구멍이 나면 프런트에서 바로바로 보강해줘야 하는 자리다.

공격진 운영에 있어선 윙 포워드를 거의 쓰지 않는다. 최용수식 쓰리백에서 측면은 철저히 윙백들이 전담한다. 윙들은 윙백을 소화할 수 있는 수비력을 갖추던가 활동량이나 조율능력을 갖춰 중앙에 서던가, 이도저도 아니면 최전방에 빠른 발 믿고 투톱으로 서게 된다. 대표적으로 윙포워드가 주포지션인 윤일록은 최용수 체제에선 투톱으로 선적도 있고, 기용은 많이 되었으나 황선홍 시절만큼 좋은 생산력을 보이진 못했다.

권위적이지 않고 소통을 중시하며 뒤끝이 없어 선수들이 부담스러워 할 지도자는 아니다. 유머러스한 인터뷰에서 잘 드러나듯 인터뷰나 언론플레이도 수준급. 본인이 FC 서울 한 구단에서 선수, 코치, 수석코치, 감독 코스를 차근차근 밟아왔기에 장악이 용이한 측면도 있겠지만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여러차례 힘든 상황이 닥쳐왔음에도 별 진통없이 팀을 추스리고 선수들의 지지를 끌어모은 점은 인정해 줄 만하다. 14시즌 종료 후 은퇴하려던 차두리는 최용수 감독의 요청으로 1년더 뛰기로 했고 FA컵 우승을 맛봤다. 박주영은 자칫 크게 충돌할 수 있었음에도[55] 잘 구슬렀고 15시즌 중반 최용수 감독의 중국행이 거론되었을 때도 가지 말라고 문자까지 보낼 정도로 최감독을 따랐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멘탈의 소유자 아드리아노나 13시즌 중국 이적문제로 마찰이 있었던 데얀도 큰 충돌없이 포용해냈다.

2019년 5월 이영미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선수단과 소통하는 방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저는 절대 베테랑들과 기 싸움 벌이지 않습니다. 저도 그랬지만 나이 먹어서 그 자리에 오른 선수들은 수많은 장애물들을 넘어섰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그 부분은 인정해줘야죠. 감독이 왜 선수 위에 군림하려 들까요. 요즘 선수들이 얼마나 머리가 비상한데요.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인 관계를 만들면서 베테랑 선수들이 팀을 위해 헌신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주면 됩니다. ‘네가 나보다 잘났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팀은 제대로 돌아가기 어렵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승부의 세계에 살았고, 이기는 경기를 많이 했던 터라 항상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마인드로 팀을 이끌다 보니 다치는 선수들이 생기더라고요. 4등을 하든, 5등을 하든 선수들 마음은 아프게 하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이전에는 제 성격이 별나서 선수들에게 싫은 소리도 많이 했거든요. 지금은 선수들에게 이렇게 물어볼 때가 많아요. ‘내가 너희들을 위해 무엇을 도와주면 되겠니?’라고. 선수들을 자극하려고 가슴을 후벼 파는 이야기보다는 선수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려고 질문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다만 선수들에게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정말 그렇게 하는게 하나 있는데 바로 팀은 안중에도 없이 자신을 내세우는 행위. 동료와 팀을 배려하지 않는 플레이를 정말 싫어하고 그런 행동을 한 선수들은 시즌 계획에서 아예 배제하는 것도 불사한다. 전지훈련중에 위험한 백태클을 범한 윤승원은 최용수가 장쑤로 떠나기 전까지 단 1경기도 뛰지 못했고, 18시즌 복귀후 가진 연습경기에서 동료의 뒷다리를 걷어찬 박동진 역시 그대로 잔여경기에 나서지 못했고 19시즌 구상에서도 배제되었다가 괌 전지훈련에서 성실한 모습을 보이고 팀 공격수 영입이 지지부진하여 겨우 기회를 받았다.

이장수 재임기 서울의 플레이 스타일은 투박하고 거칠었다. 세뇰 귀네슈 시기 빠른 템포의 패싱게임이 장착되어 전자는 극복했지만 젊은 유망주들이 중심이 되고 베테랑들이 케어를 못 해준 탓에 후자는 극복하지 못했다. 때문에 서울은 항상 팀 캐미스트리에 문제가 있다는 평을 들었고 08, 09시즌 잘나가다 시즌 후반 고꾸라졌다. 이 문제는 빙가다 감독 재임기 베테랑이 어느정도 극복되었으나 빙가다 감독은 1년만에 떠났고 주축 선수들이 유출되었다. 설상가상 후임 황보관 감독은 완전히 무능력했다. 이 모든 문제점은 11시즌 11경기 3승 4무 4패란 처참한 성적으로 이어졋다.

그 상황에서 등판한 최용수는 귀네슈가 정착시킨 공격축구와 빙가다때 잡히기 시작한 팀 스피릿을 모두 계승하는데 성공했다. 11, 13, 14시즌이 모두 스타트는 최악이었고, 유일하게 처음부터 치고나간 12시즌에도 중국 이적이 불발된 데얀과의 갈등이란 변수가 있었다. 그러나 과거처럼 제 성질 못이겨 자멸하는 모습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스타 플레이어가 없어도 조직력을 바탕으로 치고 올라가는 팀이 되었다.

귀네슈 시기 안티들의 주요 레퍼토리였던 거친 플레이도 무공해 축구란 기치아래 많이 사라져 12시즌 클래식에서 가장 파울 적은 구단으로 변모시켰다. 분명 선수단 매니지먼트 측면에서 우수한 감독이다. 13시즌까진 백업 멤버들을 활용하지 않고 베스트11에 지나치게 의존하다는 단점이 있었으나 14시즌부턴 로테이션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단점이라면 전술 다변화가 있다. 일단 전술뇌가 없는 감독은 아니다. 오히려 상당한 지장이다. 데몰리션의 후광과 화려한 공격축구를 추구하는 감독이 아니란 점이 더해져 황선홍, 최강희에 비해 머리 나쁘고 선수빨로 먹고 산단 이미지가 붙었는데, 14시즌 수차례 대결한 황선홍 감독은 여우라며 경계했고 최강희 감독과의 지략대결 결과도 좋다. 문제는 플랜A가 안 먹힐 때 즉각적으로 피드백을 해서 극복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이점이 가장 잘 드러난 점이 광저우 헝다와의 13년 AFC 결승전. 되든 안되든 과감한 공격이 필요한 순간에 되려 수비적으로 나가서 맥없이 트로피를 내줬다. 14년 34라운드 전북전에선 평소와 달리 전북이 수비적으로 나오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시간만 허비하다 경기를 내주기도 했다. 즉, 판짜기는 잘하는데, 융통성이 부족한 케이스. 축구 버전 안준호 감독이라고 하면 맞으려나..?

데얀이 중국으로 떠나기 전엔 정말 다급한 상황에 무작정 차올리는게 아니면 롱볼축구를 아예 안해서 장신 타겟맨 김현성이 홀대 받았다. 포스트플레이가 가능한 박주영 영입이후 박주영의 폼이 어느정도 올라오자 박주영의 헤딩을 아드리아노가 받는 공격패턴이 생겼다. 16시즌에는 심우연을 후반 조커로 활용해 공중볼 따내는 전술을 썼다.

3.3.1. 유망주 홀대?

종종 최용수가 서울 팬이나 다른 팀 팬 가리지 않고 선수빨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육성 능력의 부재에 있다는 주장이 있다. 본 항목 과거버전도 마찬가지.

해당 문단을 그대로 인용해 보면
어느 구단이든 항상 돈을 펑펑 쓰는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유망주를 키우는 육성능력이 안정적인 성적 유지에 중요하다. 최용수의 경우, 자본력이 좋던 시기, 각팀의 에이스급 선수를 영입하거나 기존 에이스급 선수를 유지하며 기강을 잡고 전술 안정성을 찾아 좋은 성적을 유지했다. 다만 어느 팀이든 선수는 늙기 마련이며, 자본이 딸리면 팔리기 마련이다. 최용수는 세대 교체에 대한 대응이 무능했기 때문에 선수빨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 최용수 체제 하에서 절정의 성장세가 꺾이고 평범한 선수로 전락하거나, 잊혀져버린 선수는 한 명 두 명이 아니며, 그 중 몇 명은 뒤늦게라도 이적을 해서 해당 팀의 핵심선수로 뛰고 있다.

과연 그럴까? 한명 한명 살펴보자.
문기한 역시 연령별 대표에서 기성용 파트너 만능 미드필더였지만, 타팀 임대도 이적도 없이 2군에 쳐박아둔 덕에, 부천에 이적을 하고 나서야 빛을 발하고 있다.

단언컨데 맞는 말이 단 하나도 없다. 문기한은 기성용 파트너 만능 미드필더였던 적이 없다. 태어나서 축구공 찬 이래 만능이었던적이 없다가 더 맞는 말이겠다. 경찰-대구-부천을 거치며 많이 나아졌지만 연령대 시절 전형적인 볼 예쁘게 차는 패서였는데 기성용 파트너로 어떻게 뛰나? 문기한의 주요 연령대 커리어인 2008년 AFC U-19 챔피언쉽, 2009년 FIFA U-20 월드컵때 기성용은 이미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들 실력에 국가대표팀 데뷔를 마쳐 국대와 올대를 오갔다. 문기한과는 급이 달랐는데 뭘 둘이 같이 뛴단 말인가. 문기한과 같이 뛰던 미드필더는 구자철, 김보경, 박종우 등이다.

문기한은 08시즌 3경기, 09, 10시즌 한경기도 출전하지 못했지만 이때 감독은 세뇰 귀네슈, 넬로 빙가다 감독이고 문기한은 그저 기량에서 기성용하대성에게 밀렸을 뿐 이다. 기성용 파트너 자리도 김한윤, 한태유, 고요한 제끼고 문기한이 들어갈 틈이 보이는가? 10시즌엔 하대성김한윤, 한태유, 최현태. 아디가 중원에서 뛴 적도 있고, 후반기에 제파로프까지 합류하며 중원이 꽉 들어차 당연히 뛸 수가 없었다. 하대성이 햄스트링 부상으로 이탈한 11시즌 초반 황보관 감독이 중용해보려 했지만 함량미달이었고 최용수 감독 부임 이후 하대성과 고명진에 밀렸다. 이때 하대성과 고명진 만 26, 23세 창창한 나이였는데 이게 무슨 유망주 홀대인가? 그냥 주전경쟁 밀린거지. 이때 문기한은 연령대에서 볼 예쁘게 차는 패서가 프로에서 실패하는 전형에 가까웠다.

문기한은 13~14 경찰청 복무로 많은 출장기회를 가져가며 부족한 면을 메워 15시즌 부천이 아니라 대구에 임대가서 역시 주전으로 뛰었고 16시즌부터 부천에 정착했다. K리그2가 1부리그 팀 경쟁에서 낙오된 선수들에게 재기의 장이 되어주었다는 미담의 주인공은 될 수 있어도 최용수의 유망주 홀대의 예시? 지랄도 정도껏해야 개성이다. 귀네슈와 빙가다 시절 좀처럼 자리잡지 못하던 고명진을 확고한 주전으로 정착시킨 사람이 11시즌 최용수다.
정승용은 2009년 당시엔 청대 주전급 윙어였으나, 문기한과 같은 케이스로 이적시키긴 아깝고 쓰기는 아쉬운 상태로 한창 성장할 시기 출전 기회가 없어 강원에 이적 후 주전으로 뛰고 있다.

정승용은 동북중, 동북고 시절 스트라이커였다. 연령대 대표팀에서 지동원과 투톱으로 호흡을 맞춘적도 있었다. 자, 서울 공격진을 보자 정승용이 데뷔한 10시즌 데얀, 정조국, 방승환, 이승렬 이었다. 2011시즌엔 최진한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던 경남으로 임대를 보냈다. 거기서도 부진하여 겨우 5경기 1골에 그쳤다. 김인한, 한경인, 윤일록 등에게 밀려 후반기에는 출장도 못했다. 풀백 전환도 서울에서 최용수의 권유로 시작했다. 공수 밸런스와 활동량이 받쳐주지 않아 못나왔을 뿐 이다. 강원에서 바디 밸런스를 잡고 활동량을 늘려 원래 가지고 있던 킥력과 스피드를 더해 공격형 풀백으로 거듭난건 맞다. 하지만 서울에서 홀대? 박희성, 윤일록, 고광민도 이땐 창창한 나이였다.
그 외에도 인천에 가서 빛을 발한 김원식, 이윤표, 최종환 등이 있으며, 부산에서 옛 기량을 찾은 이재권도 피해자 중 한명.

앞의 세명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헛소리이자 이 항목을 처음 작성한 이가 서울팬이 아니라는 증거이다. 이윤표는 최용수가 '코치'하던 2010 단 한해만 서울에 있었다. 10시즌 김진규가 겨우 만 25세였고 빙가다 감독은 김동우를 차세대 센터백 유망주로 낙점해 No.4 센터백으로 키우고 있었으니 유망주 홀대도 무엇도 그냥 경쟁에서 밀린 케이스다. 하물며 최용수와는 아무 상관이 없고.

김원식은 어떤가? 13~14시즌은 군복무, 15시즌은 인천 임대, 16시즌 최용수 재임기에는 중용되었으니 제외하고 프랑스에서 갓 복귀한 12시즌만 보자.

2012시즌 서울은 4백을 사용했는데 중앙 수비수로 김진규, 김주영, 김동우가 포진해 있었다. 이때까진 리그 정상급 수비수이자 빌드업 리더였던 만 27세 김진규가 부동의 주전이었고 빙가다 재임기(10시즌)부터 지속적으로 출전 기회를 부여하며 키우던 김동우와 수원과 한바탕 분쟁까지 감수하며 데려온 국가대표급 수비수 김주영이 경쟁하는 상황에서 갓 들어온 김원식에게 기회가 돌아갈 수가 없었다. 이 시즌 서울은 리그 최소 실점 팀이자 아챔도 나가지 않았다. 체력부담이 크지 않았고, 변화를 줄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먼저 군대부터 보내고, 임대보내 경험 쌓게하고, 16시즌 쓰리백의 한축으로 중용하는 육성의 정석을 선보였다. 부상 이후 밀려났지만 그건 황선홍한테 따지시고.

최종환에 대한 지적도 황당하긴 매한가지다. 10~11시즌 두 시즌 서울에 있었는데 10시즌은 최용수가 감독하기도 전이고 11시즌은 황보관 밑에선 전혀 못나오다가 최용수 선임 이후 7경기 뛰고 이적했다. 이 선수는 인천에서도 자리잡는데 시간이 꽤나 걸렸다. 이런것도 홀대라고 하는가?

이재권이야 말로 최용수에게 할 말 있는 몇안되는 선수다. 기껏 영입해 놓고 12~13시즌 2년간 거의 안내보냈으니까. 단, 12시즌부터 부상이 잦았던 점은 감안해야 한다. 14~15시즌 안산에 입대했으나 15시즌 안산에서 밀리고, 16시즌 대구에서 밀리다 17시즌 부산으로 이적한 후에야 정착했다.
김현성은 타 팀 임대 당시에는 폭발적인 활약을 보여주어 올림픽 대표로도 선발되었으나, 버리긴 아깝지만 쓰기는 싫다는 최용수의 선수 기용으로, 1부에서 10골을 넣던 선수가 2부에서 하급 선수 취급을 받고 있고, 게다가 대신 키운 선수가 박희성이다.

김현성은 10~11시즌엔 대구, 12시즌 후반기엔 J리그 시미즈에 임대갔고, 12시즌 전반기와 13시즌에 중용받지 못했다. 김현성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우호적인 말은 13시즌 기회를 못받아서 성장해야할 때를 놓쳤다는거 뿐 이다. 왜냐면 14, 15시즌 기회를 부여했을때도 못했고 16시즌 부산으로 이적한 뒤로도 꾸준히 못하고 있으니까. 18시즌엔 최윤겸 감독이 죽치고 밀어주고 있는데도 심각하게 부진했다. 그리고 김현성 대신 기회를 부여받은 선수는 역시 젊은 공격자원인 박희성이다. 지금이야 완전히 실패한 유망주지만 당시엔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아마추어로선 유일하게 선발되고, 1순위 지명을 받는등 기회를 줘볼만한 유망주였다. 박희성이나 김현성이나 둘 다 기회줘도 못해서 하현성 이었는데 기억 못하는 모양.
물론 2018시즌 FC서울의 성적 하락은, 황선홍 감독의 급진적인 기존 주축선수 방출과, 세대교체를 위해 기용한 선수들의 기량 부족이 크지만, 장기간 동안 자체 육성한 유망주가 거의 없다는 것은 최용수 감독의 단점을 그대로 나타낸다. 실제로 최용수는 서울에 돌아오고 나서 그동안 소홀했던 젊은 선수 육성, 기용을 인정하고 반성했다.

최용수는 16년 전반기에 떠났다. 2년 반동안 뭐했나? 16년부터 우승도전이니, 리빌딩이니 하면서 30줄 접어든 FA만 죽치고 영입해서 FA서울이란 비아냥 듣게 만든게 최용수인가, FC 서울 프런트인가? 가증스런 사실왜곡이 들어있는데 최용수가 선수들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다며 부족한 로테이션을 반성한건 14년도 여름이다. 18년도가 아니라. 14년 8월 16일 21라운드 인천전에서 로테이션을 돌려 김남춘(리그 첫선발), 이상협, 최현태, 고광민, 박희성에 슬럼프에 빠져 있던 윤일록을 기용해 5-1 대승을 거뒀는데 이때 재임 4년만에 로테이션 돌린다고 기사가 쏟아졌다. 최용수 감독이 달라졌다고 여러 언론사에서 기사 쏟아낸 것도 그때다.

로테이션에 인색하던 시절에도 귀네슈와 빙가다 체제에서 자리를 못잡던 만년 유망주 고요한, 고명진을 국대급 선수로 성장시켰고, 스스로 편견을 버리고 변화를 준끝에 14시즌까지 후보였던 고광민을 좌우 안가리는 멀티 플레이어로 탈바꿈시켜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올렸다. 박희성은 데뷔 첫해인 13시즌부터 백업으로나마 10경기 넘게 내보내며 기회를 줬으며 14시즌 강승조[56], 이상협이 중앙에서 기회를 받았고 이웅희가 14년 여름부터 주전 수비수로 도약했으며 김남춘이 로테이션으로 자리잡았다. 15시즌 유상훈이 주전 골키퍼로 올라서고 박용우를 김진규 뒤를 이을 빌드업 리더로 육성하려 했고 슈퍼매치에서 4골을 박은 윤주태가 조커로 자리잡았다. 이들외에 경남에서 영입해 키운 김주영윤일록까지 더하면 더 말이 필요없다.

요약하면 최용수는 베스트 일레븐 의존이 심한 감독이었지, 유망주 안쓰는 감독이 아니었다. 비슷한거 같지만 분명 다른 의미다. 스스로 반성하고 변화화기 전 11~14시즌 8월까지의 최용수는 로테이션에 인색한 감독이었지 젊은 선수에게 눈길 안주는 감독은 아니었다. 젊은 선수에게 인색했던 쪽은 오히려 덕장에 로테이션 잘 돌리는 감독으로 인식되는 서정원 쪽이다. 최용수 아래 성장한 젊은 선수도 제법 많고 최용수가 기회 안줘서 좋은 시절 날렸다 할 선수는 넓게 잡아 이재권, 김현성 두명 밖에 없다. 이전 항목은 주전 경쟁 탈락한 선수나 최용수와는 아무 상관없는 선수까지 싸잡아서 최용수의 유망주 홀대 희생양으로 몰아가는 터무니 없는 왜곡투성이였다.

19시즌 부터는 젊은 선수들 위주로 풀어가는 감독이 될 것으로 보인다. 프런트가 영입을 안해줘서 팀에 애들밖에 없으니까.

4. 트리비아

  • FC 서울 갤러리에선 '욘스'[57]라고 불리며 항상 까인다. 이기건 지건 선수 기용을 잘하건 못하건 항상 까인다. 하지만 후임 황선홍 감독이 선수단 장악에 실패하면서 2018년 4월 자진사퇴하면서[58] 재평가받는 중이다. 배성재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서 밝힌바에 의하면 아내분도 기분 안좋을때면 욘스라고 부른다고 한다. 아내분이 기분 좋을 땐 허니(....)
  • 프로야구 LG 트윈스 최악의 타격코치로 손꼽히는 서용빈과 친구사이이다. 1994년에 나란히 LG 스포츠단에 입단했다고.[59] 지금 축구야구가 사이가 안 좋다고 하지만 그 시절에는 두가지 다른 종목이 사이가 안 좋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시절이니. 가끔 잠실LG 트윈스 경기를 직접 관람하러 오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한다.[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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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년 K리그 올스타전 당시 골을 넣고 마리오 발로텔리를 패러디한 골 세리머니를 보여줬다. 몸은 발로텔리와 좀 거리가 있지만. 이 세리머니로 인해 살로텔리, 뱃살텔리 등의 별명이 탄생했다. 은퇴하면 숨길 수 없게 되는...
  • 2014년 K리그 올스타전에서는 전반 주심으로 투입되어 그날의 감동(...)을 함께 했다. 팀 K리그의 염기훈이 속닥거리자 애꿎은 박지성에게 경고를 주고, 반칙을 범한 K리그 현영민에게는 옐로 카드와 레드 카드를 꺼내들고 현영민에게 고르게 했다눈 가리고 아웅...(건성으로 눈을 가린 뒤) 옐로를 집어들고 감사해 한 현영민. 영상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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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래중-동래고-연세대 선배로 사적으로 꽤 친한 사이인 윤성효 감독과는 애증의 관계이다. 최용수 감독은 윤성효 감독이 수원에 있을 때 수원에 한 경기도 이기지 못했다. 상성 중에서도 극상성인 셈. 윤성효 감독이 수원을 떠나 부산으로 간 이후에 수원 상대 열세는 뒤집어 졌으나 이번엔 부산에 쩔쩔매서 윤성효 감독의 호구 소리들었지만 14시즌 부산이 강등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리면서 윤성효 징크스도 극복했다. 14시즌 전반기에 성적이 바닥을 치며 스트레스가 극심할때 윤성효 감독에게 전화해서 농담삼아 부적 좀 빌려달라고 사정했다고 한다.
  • 라디오스타에서 안정환의 증언에 따르면 국가대표 소집 때마다 안정환에게 족발 심부름을 시켰다고 한다. 본인은 이에 대해 안정환도 같이 잘 먹었다는 말과 함께 특별히 족발을 좋아하는건 아니고 당시 대표팀 숙소였던 장충동 타워호텔 인근에 유명한 족발집이 있다보니 자주 시켜 먹게 되었다고 밝혔다. 거기다 술 만 먹으면 자기가 기술축구한다고 자랑하는 사람이었다고한다... 안정환 : 힘축구인데...
  • 마리텔에서 안정환의 말에 따르면 원래는 말을 빨리 잘했는데 광고판에서 넘어져 다친 이후[61]로 조금 느려지고 어눌해진 것 같다고... 말을 반복하거나 음....어..... 등 말을 끄는 경우가 있고, 문장에 "상당히"가 상당히 많이 들어간다. 그러나 이 발언은 그냥 장난으로 원래 최용수는 말투가 이랬다증거 영상[62]
  • 1990년대 활동했던 선수로는 특이하게도 외국인 감독을 많이 만난 케이스다. 비쇼베츠(94-96애틀랜타), 히딩크(01-02 한일월드컵), 코엘류(03), 오심[63](03제프이치하라), 코치시절 귀네슈(07-09), 빙가다(10)
  • K리그 스토리 제조기하면 윤성효 감독이 많이 꼽혔지만 최용수 감독도 얽히고설킨 이야깃 거리가 화려한 편이다. 특히 다른 감독들과의 관계를 통해 스토리가 많이 뽑혀 나왔다. 14년에 극복하긴 했지만 윤성효 부산 前 감독에게 지독하게 약한 걸로 유명했고 전북 최강희 감독과는 서울정도 구단이 수비축구 하냐며 구단차원에서 디스하자 최 감독이 다른구단에 왈가왈부 하지말라며 응수하고 그러면서 최강희 감독 상대 전적이 좋은 편이라 흥미로운 대결 구도를 형성했으며 황선홍 前 포항 감독과는 14시즌 지겹도록 부딪치면서 너만은 잡는다는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었다. 황선홍 감독의 후임으로 온 절친 최진철 감독도 최용수 감독과의 대결에서 필승을 천명하며 이 구도를 이어갈 모습을 내비쳤고 울산 윤정환 감독과도 현역시절 최고의 파트너로 유명했던 선후배간 대결로 이슈를 만들었다. 가장 큰 라이벌인 수원의 서정원 감독과는 말할것도 없다.
  • PS1위닝일레븐 시절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인물이기도 하다 대표팀에서 능력치가 하향으로 나온건 대표팀 자체가 도저히 못써먹을 위닝5개정판과 6에서는 능력치가 하향이었으나 3부터 최용츠(チェ ヨンツ)로 등장하며 국대 최고의 포워드로 이름을 날렸다 J1이적시에 대뷔임에도 개사기급 능력치로 등장했다. 단지 같은날 발매한 위닝6에서는 하향인데 ps1위닝일레븐 2002애서는 또 최강 포워드로 등록돼있다.근데 후보다
  • 유쾌하고 개그스러운 모습과는 달리 당시 축구계에선 한주먹 했다고 한다. 사실 저런 모습도 감독 시절부터 부각된 것이지 선수 시절엔 굉장히 강인한 인상이었다. 하지만 LG 트윈스의 야구선수이자 탕아로 유명했던 신윤호가 LG 축구단 버스를 부수는 등 기행을 일삼았고 최용수는 그걸 따지러 갔다가 신윤호를 보자마자 포스에 눌려서 그뒤부턴 피해다니기 바빴다는 카더라가 있는데 진실은 저 너머에...
  • 상술했듯 선수 시절에는 매우 강인하고 과묵한 인상이었는데, 교토 상가 시절에는 팀 전통의 브라질식 깜짝 생일축하(생일을 맞은 사람한테 밀가루를 뒤집어 씌운 뒤 생일축하 노래를 부른다)를 해주려던 교토 상가 선수들 사이에서 "그 최용수에게 밀가루를 뒤집어씌워야 한다니"라며 긴장감이 흘렀다는 기사가 일본 축구잡지에 실릴 정도였다.
  • 기쁜 우리 토요일의 코너였던 '스타 이런모습 처음이야[64]'에서 여러 사람 골탕 먹일 때 가세한 적이 있으며 피해자는 최수종. 최수종도 축구광인데다 최용수와 안면이 있었는데, 불치병 아동을 돕는다며 잠실 경기장에서 승부차기 시합을 했었다. 결과는 최수종의 패배... 충격을 받은 아이가 갑자기 실려나가자 최수종이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데, 웬 양복 입은 외국인이 와서 말을 건넸다. 최용수는 "호나우도 매니저예요." 라면서 드립을 치고, 잠시 후 호나우도(?)가 나타났지만 역시나 가짜. 그제서야 몰카에 속은 걸 안 최수종은 분노(?)하며 줄행랑치는 최용수를 쫓아갔다.

  • 감독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잦아졌다. 특히 2018 러시아 월드컵이 다가오자 각 방송사에서 예전 대표팀 선수들을 게스트로 섭외하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예상치 못한 입담을 선보이며 젊은 세대들에게도 크게 어필하고 있다. 가장 압권은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로, 여기서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당시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차범근 전 감독과의 예상치 못한 고해성사(?)를 한 것은 국내 축구 커뮤니티에서도 화제가 될 정도.# 그리고 후반 독일전 이야기를 하다가 독일이 2승 후 주전들을 빼고 임할 거란 예상을 하니까 그러면 역으로 독일을 1승 제물로 삼자라는 손빈삼사법 드립을 치자 일동 대폭소했는데, 그 뒤....
  • 최용수의 어머니가 과거에 과일장사를 했다고 한다. 그때 과일을 너무 많이 먹어서 지금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SBS 축구 해설위원으로 합류했다. 예능에서의 입담 등을 보고 영입한 것으로 보이는데, 키르기스스탄전 전반 28분경 황인범의 슛을 보고 뜬금없이 선배를 디스 하는 패기를 보여 주더니[65][66] 황희찬의 홈런볼을 보며 본인의 독수리슛(...)을 회상하는 자학개그까지 선보였다. 이런 예능 입담이 먹혔는지 지상파 3사 예선 중계 가운데 시청률 1위(17.3%)를 기록했다. 다만 발성과 부정확한 발음을 고쳐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저 시청률 1위라는 것도 단독 중계였을 때라 그렇지, 3사 공동 중계로 돌입한 토너먼트 경기에서는 계속해서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 16강 이란전에서는 대기심이 교체선수를 엔트리가 20명이라 나올 수가 없는 등번호 30번(...)으로 표기하자, "정신이 나간 것 같습니다"라며 시청자들은 물론 배성재 캐스터까지 빵 터뜨렸다. 답답해 죽겠네...라는 혼잣말도 전파를 탄 것은 덤. 경기 종료 후에는 다시 황선홍 감독을 소환해 출국 전에 술을 얻어마셨는데 물회만 갖고 마시느라 힘들었다는 드립을 쳤다. 16강전과 8강전 모두 시청률 꼴찌를 기록했지만 막걸리 해설에 대한 호평이 자자해서 시청률이 올라갈 가능성이 커졌다. 여담이지만 혹자는 축구 볼 때 치킨이 아닌 명태포와 오징어가 생각난다면 최용수라고 표현하기도 했다.[67] 해설할 때 작은 특징이 또 있는데 감독 최용수의 축구관을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최용수는 볼을 뺏기면 상황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건 누구나 그렇지 않냐고 반론할 수 있겠지만, 한국이 상대 진영 깊숙히 들어가 공격하다 볼을 뺏기기만 해도 '볼 나오게 하면 안돼요!'라고 하는 등 유독 압박을 강조한다.[68] 이건 실리축구로 유명했던 FC 서울 감독 최용수가 선수들에게 볼간수와 압박을 굉장히 강조했음을 알려준다.
  • 다만 막걸리 해설의 대표격인 이상윤 해설과 비슷한 듯 다르게 호불호가 갈리고 특정 연령대 및 성별과 매니아층의 고평가에 비해 대중성은 확실히 좀 아쉬운 듯하다. 최근까지 감독을 역임하며 AFC 올해의 감독까지 되어본 커리어에 걸맞는 좋은 축구 보는 눈과 뛰어난 드립력을 보여주지만 발음이나 발성, 어휘 같은 해설자로서의 기본기에 있어서 부족한 면이 있다. 그래서 단독해설은 힘들고 객원해설에 가까운 3인 해설 체제가 맞는 옷이다. 다만 아직 케미스트리와 역할배분이 완벽하지 않아서 경기 양상과 본인 컨디션(?)에 따라서 그날그날 해설 평의 등락이 심한 편이다. 어차피 휴식기 기간에 잠시 하는 알바에 가까운 일이기도 하고.. 또한 댓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배성재가 진행하는 배성재의 TEN 프로에서 한 팟수(청취자)가 눈썹에 대해 장난스러운 드립을 쳤는데 눈썹 0:10부터 물론 SBS도 자체적으로 2018 아시안게임에서도 자체 평가를 높게 했지만 이번 파울루 벤투호의 평가전에서도 장지현위원과 함께 3인 체제로 다시 맡게 되었다.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배성재 캐스터와 장지현위원이 후반전 들어가지전에 멘트를 꺼냈는데 갑자기 "이번에 우연하게 또 댓글을 봤는데 내 평가가 막걸리 평가가 나왔다"라고 물론 경상도 사나이라 무뚝뚝한게 특징이지만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수 없지만 배성재의 모습이 약간 당황스러운 표정이 나왔다.
  • 신태용 전 국가대표 감독의 장남 신재원이 FC 서울에 입단하게 되자 "태용이 형(?) 주도권 넘어왔어"라는 말을 남겼다. 실제로 겉보기와는 다르게 신태용이 3살 위다.#

[1] 스트라이커[2]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남자 축구 해설위원으로 활약했으며 2018년 9월 7일 대한민국과 코스타리카의 친선경기 해설을 마지막으로 필드로 복귀했다. 방송활동에 대해 "잠깐 재충전을 위해 나와있을 뿐, 언젠가는 필드로 복귀하겠다"라고 계속 언급했는데, FC 서울이 2018 시즌 강등 위기에 몰리면서 복귀 시점이 좀 더 빨라졌다.[3] 재혼. 전 부인은 임남희(2005~2006).[4] 축구 명가로 유명한 명문고다. 전통적으로 야구보다는 축구 쪽에 투자를 하는 학교이며 박정태, 박지철 등을 배출해 낸 동래고등학교 야구부는 IMF를 맞이해 해체되었지만 김호, 김호곤, 최용수, 윤성효등을 배출한 동래고등학교 축구부는 아직까지 운영되고 있다.[5] 이후 이영표를 PSV에 내보낼 때 안양 LG 관계자의 인터뷰에 의하면 협상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임했다는 발언이 있다. 실제로 협상을 잘 했어도 웨스트햄 입단이 되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적어도 협상 자체는 어느 정도 진행되었다는 이야기. 덧붙여 김도근은 에이전트가 억지로 붙인 덤이었는데 워크퍼밋 발급 조건이 미달돼 갈수도 없었다.[6] 젊어서는 이게 정말 한스러웠지만 나이들고 나서는 초탈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들이 해외진출하려고 하면 웨스트햄으로 보내겠다고 자학개그를 자주 한다.[7] 당시 40억원 정도에 교토로 이적했다.[8] 국대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올림픽 대표라고 하는게 정상일 정도로 2-3군에 23세 이하였다. 이때 주장 완장도 차기도 했다.[9] 1996년 올림픽 대표는 1995년 초부터 발 빠르게 움직였는데, 지원도 98년 국대나 02년 국대에 맞먹을 정도로 남미나 북유럽과도 평가전을 자주 치렀다.[10] 당시 황선홍은 무릎 부상 재활 중으로 예선 전에 아예 나서지 못했다가 본선 진출이 확정되고 복귀했다.[11] 홈에서 해트트릭, 원정에서 1골.[12] 홈에서 1골, 원정에서 2골.[13] 그나마 벨기에 전에서는 후반전 때 얻은 헤딩슛이 정말 아깝게 크로스 바를 넘어갔다.[14] 최용수선수는 네덜란드전에서 반드시 결승골을 넣고 마르세유에서 네덜란드를 상대로 1승을 얻겠다고 호언장담했다. 마르세유 1승 기적은 있다[15] 시합 내용이나 결과는 둘째치고 이때 뭐가 문제가 있었는지 허정무가 감독을 하는 이상 최용수가 대표팀에 들어오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둘 다 연대 출신 선후배임에도 불구하고 허정무호는 2000년대 말에 해산되었다. 그러나 2000년에 최용수는 K리그 커리어 하이를 기록할정도로 리그내 최우수 선수였음에도 불구하고 평가전이나 아시안컵 등에서 불리우질 못했다. 심지어 중동에도 강하고 아시아 킬러인 그의 활약을 생각하면 참 미묘한 결과. 2000년말 허정무가 지휘를 내려놓고 임시 체제부터 드디어 최용수는 대표팀에 불리기 시작했다.[16] 하지만 이때 이후 김도훈과 이동국은 대회를 끝으로 엔트리에서 결국 탈락했다.[17] 안정환은 황선홍의 교체 멤버로 선발된 것이지만 황선홍의 폴란드전 허벅지 부상 이후 포루투갈전부터 스페인전까지는 안정환이 선발로 나왔다.[18] 트루시에 시절 전성기를 달렸던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이 유일하게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부러워하는 점이 최용수를 벤치 워머로 박아둘 정도로 공격수 자원이 넘쳐난다는 것이었다는 말도 있었다.[19] J리그에서의 활약만으로 따지면 득점왕까지 차지했지만 잦은 부상에 시달린 황선홍보다도 더 높은 평가를 받는 선수가 최용수이다.[20] 넘쳐나는 투지에 좋은 피지컬, 그리고 최고의 제공권. 이런 타입의 대형 공격수는 일본에서 예나 지금이나 전혀 없다. 대체로 피지컬 되는 체육 유망주들은 야구를 선택해서 그런 것으로 추측된다. NPB 선수들이 J리거들보다 연봉이 높고 MLB로 간 선수들이 유럽 진출한 축구 선수들보다 훨씬 더 성공한 것을 무시할 수는 없다.[21] 물론 2019년 한국에도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는데, 현재 황의조가 정통 공격수 계보를 잇기는 했지만, 플레이스타일을 보면 최용수와는 달리 테크닉을 좀 더 중시한 플레이를 보인다.[22] 당시 10번은 이영표가 달았다.[23] 훨씬 피지컬이 좋은 김신욱의 헤더를 보면 전형적인 피지컬을 이용해 밀어내는 헤더지 내려 찍어서 성공률을 높이는 헤더가 아니다.[24] 이건 이런 타입의 공격수들이 원래 그렇다. 팀 기복+본인 기복이라.[25] 이 방면에서 천재 미드필더라 불리던 윤정환은 독보적이었다. 날카로운 스루 패스에 최용수의 폭발력은 당시 국대 축구를 보는 즐거움이었다. 특히 절정에 달했던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당시 윤정환-최용수 콤비는 역대 베스트 콤비로 불려도 손색이 없다.[26] 프랑스 월드컵 네덜란드 전 전술은 3-5-2이지만 투톱 파트너 김도훈을 처진 스트라이커처럼 썼기 때문에 3-6-1 형태와 흡사했다. 더구나 허리 싸움에서 완전히 밀리면서 사실상 5-3-2로 흘러갔다...[27] 히딩크 이전 한국 축구계는 피지컬의 중요성을 절감하지 못한 채 막연히 개인기 드립이나 조직력 드립을 쳐대던 시절이었다. 반면 프랑스 월드컵에서 만난 상대는 네덜란드벨기에의 장신 떡대들이었으니, 심한 말로 계란으로 바위치기랄까.[28] 당시 이영표는 조재진이 한국에서 등지는 플레이를 제일 잘하며 세계에서도 높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29]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상당히 빛났다. 프랑스 전 박지성의 골을 어시스트한 헤딩이 조재진의 헤딩이었다. 크로스는 역대 한국에서 런닝 크로스가 제일 정확했던 설기현의 크로스였다.[30] 만일 이들이 위 레전드급 재능이라면 아직도 한국 축구가 박주영을 그리워 할 이유가 없다. 브라질에서도 경기력 다 빠진 박주영을 찾은 이유가 원톱으로 있으면서 2선에 찬스를 제공해주고 때로는 자신이 득점 그러면서도 전방에 자생 능력을 가진 선수라는 의미에서 위의 둘은 상당히 못 미친다.미치면 톱 걱정을 안 하지[31] 그러나 이 점은 골 결정력만 놓고 봤을 때 자신보다 대단하다는 거일 가능성이 크다. 황의조의 포스트 플레이 능력과 제공권은 최용수까지 갈 것 없이 박주영에게도 미치기 힘들다.[32] 연차가 쌓이다 보니 나중에는 수석코치로 승격됐다[33] 스플릿에선 상위 그룹에 속한 팀들끼리만 일정이 잡히는만큼, 우승 경쟁상대와 싸워 이기면 승점 3점 이상의 데미지를 입히게 된다.[34] 이렇게 차근차근 준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최용수, 서울까들에 의해 아디 빈자리를 메우기 위한 궁여지책이라거나 배운 적도 없는데 할 수나 있겠나 하는 등 말도 되지 않게 까였다.[35] 2013 시즌 10라운드 서울은 2승 4무 4패를 기록, 14개팀 가운데 10위로 쳐져있었다. 다만 이 때는 데몰리션이 건재했기에 17득점 16실점으로 득점만큼은 1위 포항과 공동선두를 기록하는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고 있었다.[36] 그간 베스트11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심했는지 21라운드 인천전에서 로테이션을 돌리자 4년만에 로테이션 돌린다고 기사가 떴다.[37] 물론 K리그 팬들은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K리그 감독을 그런식으로 유출시켜선 안된다는 이유 등으로 다들 반대한다.[38] 많은 사람들이 잘 까먹는데 황선홍 감독도 감독 초년병이던 부산 시절 3년간은(부산구단의 형편없는 여건을 감안하더라도) 좋은 소리 못들었다. 그리고 수원 시절 윤성효 감독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30년 역사의 K리그는 무능력자가 선수빨로 우승할 수 있을 정도로 녹록한 무대가 아니다.[39] 승부차기까지 포함해도 무실점이다. 흠좀무[40] 다만 데몰리션이 건재했다면 최용수 감독은 아직까지도 자신의 틀을 깨부수지 못해 FC 서울의 유망주들은 여전히 벤치만 데웠을 것이고 팬들의 재평가도 없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더 큰 감독이 되기위해 거쳐야 할 시련으로 볼수도 있다.[41] 이때도 몰리나의 존재감이 커서 그렇지 유출이 더 심했다. No.2 공격수 정조국과 핵심 센터백 김진규가 해외로 떠나고 측면 수비수 최효진, 김치우, 이종민이 동반 입대했다. 2명이 한꺼번에 빠진 우측 풀백은 고요한을 풀백 전업 시키기 전까지 답이 안나왔다.[42] 쉽게 말해 전북이나 포항같은 강팀과 붙어도 질 것 같지 않은데, 경남이나 상주같은 약팀이랑 붙는다고 이길 것 같지도 않은 팀이다.[43] 팀내 최다골 기록자가 윙어 윤일록(5골)이다. 결정력 문제는 한시즌 혹은 몇시즌 통째로 투자해서 기존 공격수를 키우던가 겨울에 새로 공격수를 수혈하는 방법밖에 없다.[44] 이 경기 전까지 수원은[45] 15시즌에는 박용우와 오스마르가 돌아가면서 쓰리백의 중앙 수비수와 수비형 미드필더 롤을 수행했는데 박용우의 경합능력과 볼키핑이 오스마르보다 떨어져서 오스마르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히 높았다. 주세종의 후방 배치는 오스마르가 수비로 내려왔을때 볼배급과 간수가 되는 자원을 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46] 종전 최단기간 100승 기록은 일화 차경복 감독과 전북 최강희 감독의 224경기. 최연소 100승 기록은 포항 박성화 감독의 44세 10개월 15일 이었다.[47] 페트레스쿠는 1990년대 세리에 제노아와 EPL 첼시에서 뛴 세계적인 오른쪽 윙백이었다. 루마니아가 1994년 월드컵 8강(승부차기에서 스웨덴에 패해 아쉽게 탈락) 돌풍을 일으키는데 큰 공을 세웠다.[48] 잘 안 알려져 있지만, 중국 축구 리그에서도 감독이 잘리는 이유 중의 하나로 팬심이 크게 작용한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어도 과거에는 3연패라도 했다 하면 서포터들이 홈경기장이나 구단 사무실 앞에서 "샤커!!"(사퇴)를 외치며 퇴진 시위를 할 정도였으니.[49] 한국과의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원정 1차전을 대비해서 중국 국가대표팀을 차출하기 위해 리그를 2주간 중단시키고 합숙훈련을 했다. 근데 결과는 2:3 패배[50] 장쑤 뿐만 아니라, 4월 현재 한국인 감독이 맡고 있는 옌볜 (박태하), 창춘 (이장수) 모두 삽질을 하고 있다. 이장수는 결국 5라운드 1무 4패로 경질. 그나마 장외룡의 충칭이 중위권 (8위)를 마크하고 있다. 중국리그가 막대한 자금력으로 유럽의 명장들을 대거수혈한 이상 한국 감독들이 좋은 성적을 내던 시절은 끝났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51] 전임 감독인 단 페트레스쿠가 2015년 FA컵을 우승시키고도 AFC 챔피언스리그 예선 탈락을 이유로 잘렸는데, 비슷한 재임 기간을 기록했다.[52] 중국 언론에서는 부진에 빠진 톈진 취안젠 차기 감독 후보로 전북의 최강희와 함께 거론되기도 했다.[53] 사실 황선홍은 포항 감독에서 물러난 후 2년 동안 영국에 축구 유학을 하면서 휴식을 취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반년 후에 최용수가 서울 감독에서 물러났고, 바톤을 넘겨받게 된 것. 황선홍은 포항의 레전드 선수로 당시 빈약한 포항의 선수 라인을 카리스마로 휘어잡아 잘 지도할 수 있었지만, 이런 방식이 서울에선 통하지 않았다.거기다 포항 탈주자도 있고.[54] 포백에서 급히 쓰리백으로 전환하며 아직 밸런스가 완전히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감바 오사카와의 AFC 챔피언스리그 16강 전을 맞이했고 우려대로 참패했다.[55] 15시즌 대전 원정 하프타임 때 최용수 감독이 부진함 폼을 지적하며 '경기력도 안좋은데 머리만 만지고 있다'고 싫은 소리 했더니, 그 자리에서 가위를 가져다 머리카락을 잘라 보였다. 최용수 감독 정도 되니까 싸한 분위기 속에 '성깔 있다'하며 껄껄 웃어넘기는 정도로 끝났지, 다른 감독이었으면 무슨 사단이 나도 크게 났다.[56] 강승조는 13시즌을 마지막으로 떠난 하대성 대신 새로 적용한 쓰리백의 중미를 맡기기 위해 14시즌 앞두고 데려온 선수라 최용수 감독이 로테이션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나서 주전으로 도약한 이웅희, 고광민과 달리 14년 3월부터 지속적으로 기회를 받았다. 활약이 시원찮아 오스마르 올리거나 몰리나 내리는게 훨씬 효율이 좋아 밀려났을 뿐 이다.[57] 최용수의 가타카나 표기인 チェ・ヨンス(체 욘스)에서 유래한 별명이다.[58] 보통 한국 프로 스포츠에서 자진사퇴란 사실상 경질이지만 구단은 위약금을 아끼고 감독은 커리어를 관리하자고 눈가리고 아웅 하는 것에 가깝다. 하지만 황선홍의 경우는 프런트 선수단 팬 모두의 믿음을 잃으면서 외통수에 몰려서 그만둔 것이다.[59] LG 트윈스 구단 홈페이지 게시판 '쌍둥이 마당'에 올라온 일화에 따르면, 과거 LG 트윈스가 셋방살이했던 구리 챔피언스 파크에서 임찬규 선수를 보러 온 어린이에게 최용수 감독이 챔피언스 파크 건물 2층에서 축구공을 던져 선물했다고 한다.[60] 사실 축구선수들과 야구선수들간의 사이는 굉장히 좋다. 단지 팬들끼리만 좋지 않을뿐.[61]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축구 결승전인 한일전 중계 때 골 넣은 이승우가 광고판으로 달려가자 올라가지 마라고 말한 것도 이 기억 때문인 듯하다.[62] 이 영상은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예선 결승이 끝나고 우승 귀국할 때인데 이때도 말투가 이랬다. 그리고 프랑스월드컵 예선은 97년이다. 시기상 이때부터 말투가 이랬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속였구나 안느![63]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은 그 분 맞다.[64] 박수홍이 진행을 맡았고 이경규의 몰래카메라 모티브로 제작된 코너였다. 유튜브에서 검색하면 나온다.[65] "아~ 정말 제가 존경하는 황선홍 선배의 슈팅을 보는 것 같습니다"(...)[66] 해당 경기 이후 황선홍으로부터 왜 조용히 있는 나를 건드리냐 라는 장난섞인 전화가 왔다. 야이 XX는 덤[67] 비유에 의하면 이영표는 치킨+콜라, 안정환은 치킨+맥주, 최용수는 명태포+오징어+진한 소주라고.[68] 지도자 커리어가 없는 안정환, 이영표는 '중앙에서 뺏기는 것보다는 차라리 상대진영에서 뺏기고 끊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해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