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9-30 13:40:58

홍명보

홍명보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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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파일:Korea Republic KFA.png

69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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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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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최영일
(1997~1998)
홍명보
(1998~2002)
유상철
(2002~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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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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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파일:2002 FIFA World Cup Official Logo.png


파일:K리그 클래식 시그니처 문구 로고 없는거.png MVP
1991년 1992년 1993년
정용환
(대우 로얄즈)
홍명보
(포항제철 아톰즈)
이상윤
(일화 천마)

1992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박창현
FW
임근재
MF
신홍기
MF
김현석
MF
신태용
MF
박태하
MF
신동철
DF
홍명보
DF
이종화
DF
박정배
GK
신의손
1994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윤상철
FW
라데
FW
김경래
MF
신태용
MF
고정운
MF
황보관
DF
안익수
DF
유상철
DF
홍명보
DF
허기태
GK
신의손
1995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황선홍
FW
노상래
MF
신태용
MF
고정운
MF
김현석
MF
김판근
MF
아미르
DF
최영일
DF
홍명보
DF
허기태
GK
신의손
1996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라데
FW
세르게이
MF
신태용
MF
바데아
MF
홍명보
MF
하석주
MF
김현석
DF
윤성효
DF
김주성
DF
허기태
GK
김병지
2002 K리그 베스트 XI
FW
김대의
FW
유상철
MF
신태용
MF
이천수
MF
안드레
MF
서정원
DF
김현수
DF
김태영
DF
최진철
DF
홍명보
GK
이운재

2002 FIFA 월드컵
골든 볼
올리버 칸
실버 볼
호나우두
브론즈 볼
홍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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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Football Association
이름 홍명보
洪明甫 | Hong Myung-bo
출생 1969년 2월 12일 ([age(1969-02-12)]세)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광진구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신체 182cm[1]체중 74kg | B형
직업 축구선수(수비수[2] / 은퇴)
축구감독
축구행정가
등번호 20
소속 선수 상무 축구단(1991~1992 / 군복무)
포항제철 아톰즈(1992~1997)
쇼난 벨마레(1997~1999)
가시와 레이솔(1999~2001)
포항 스틸러스(2002)
로스앤젤레스 갤럭시(2003~2004)
감독 대한민국 대표팀(2005~2007 / 코치)
대한민국 U-23 대표팀(2007~2008 / 코치)
대한민국 U-20 대표팀(2009)
대한민국 U-23 대표팀(2009~2012)
안지 마하치칼라(2013 / 코치)
대한민국 대표팀(2013~2014)
항저우 뤼청(2015~2017)
기타 대한축구협회(2017~ / 전무이사)
국가대표 136경기 10골(대한민국 / 1990~2002)[3]
정보 더 보기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학력 광장초등학교
광희중학교
동북고등학교
고려대학교[4]
종교 무종교[5]
가족 본인 1남 2녀 중 첫째
가족 배우자 조수미, 장남 홍성민, 차남 홍경민
별명 영원한 리베로, 명보형[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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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축구인 생활3. 논란
3.1. 축구협회의 적자(嫡子)3.2. 러시아 월드컵 방송 3사 해설위원 비판 논란
4. 이야깃거리5. 홍명보에 대한 말,말,말6. 둘러보기

1. 개요

대한민국축구선수 출신 감독, 축구행정가. 2013년부터 2014년까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고, 2017년부터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를 맡고 있다.

14년간 대표팀 주전으로 활약하며 황선홍과 함께 1990년대 한국 축구를 이끌었다. 특히 국가대표팀에서 A매치 역대 최다기록인 136경기 출전기록을 가짐과 더불어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팀을 4강(준결승전)까지 올려놓은 한국 축구의 레전드이다. 이러한 활약에 힘 입어서 이 대회에서 아시아 선수 최초이자 유일한 월드컵 브론즈 볼을 수상했다.

선수/지도자로서 합법적 병역 브로커를 모두 달성한 케이스. 다만 홍명보는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상무에서 병역 생활을 했었고 그나마 4대 독자여서 6개월만 복무했다.

그러나 감독으로서는 (황선홍[7]과 마찬가지로) 극과 극을 경험했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U-23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동메달(3위)를 차지하여 많은 국민들에게서 극찬을 들었으나, 성인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으면서 스스로 세운 원칙마저 깨뜨리고 선수를 선발하는 등 속칭 '으리 축구(엔트으리)'를 하고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1무 2패라는 성적과 더불어 최악의 경기력까지 보이면서 국민들에게서 엄청난 비난에 받았다. 최고의 순간(2012 런던 올림픽)과 최악의 흑역사(2014 브라질 월드컵)을 모두 지녔기에 극과 극을 경험한 상황. 그런데 2017년이 되어서 항저우 감독에서 쫓겨난 후에도 여전해서...결국 2012년에 세운 공로마저 이대로 묻힐 위기. 위의 내용에 대한 것은 2012 런던 올림픽/축구 문서와 홍명보호/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문서를 참조 바람.

다만 또 거꾸로 행정가로서는 (감독으로서의 커리어와 정반대로) 극과 극을 경험한 것이 특징. 조광래??? 초창기 축구협회에서 전무이사로 활동할 때는 본인이 A대표팀 감독 시절 졸전, 낙하산 인사 문제와 당시 축구협회의 무능으로 많은 비난을 받았었는데, 부회장 겸 기술위원장에 김판곤홍콩 감독을 초빙하여 축구협회의 미숙한 행정 처리를 상당히 개선시키긴 했다. 다만 감독 시절의 실패가 너무 커서...

가족은 부모님과 배우자 조수미, 큰아들 홍성민, 작은아들 홍경민이 있다.

별명으로 좋은 의미로 '흥부, 홍명바[8], 통칭 영원한 리베로, 영원한 캡틴, 홍명보험' 등이 있으며, 나쁜 의미로 '돌명보, 홍보, 명보, 홍명박[9], 똥명보, 홍MB, 홍띵보, 홍띵넌, 홍덍보[10]' 등이 있다.

2. 축구인 생활

2.1. 선수 경력

파일:나무위키+유도.png   홍명보의 선수 생활에 대한 내용은 홍명보/선수 경력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파일:external/league-mp7static.mlsdigital.net/REUA_331263.jpg
2002 월드컵 준결승 진출 당시

2.2. 지도자 경력

파일:나무위키+유도.png   홍명보의 지도자 생활에 대한 내용은 홍명보/지도자 경력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파일:2012080500344_0.jpg
2012 올림픽 준결승 진출 당시

2.3. 행정가 경력

2017년 축협파동에 맞아 조직개편에 의해 전무이사로 선임되었다.[11] 참고로 박지성은 유스본부장이고 기술발전위원장은 놀랍게도 이임생.[12] 90년대 한국 축구를 이끌었던 카리스마 캡틴이었던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란 점을 높게 산 듯하다.그냥 조중연의 고대라인이라서이다. 분명 감독 시절의 실책이 크기는 하지만 선수 시절의 훌륭한 경력과 올림픽 대표팀에서의 성과 등 실적이 없는 인물이라고는 할 수 없다. 거기다 홍명보/지도자 경력 문서에도 나와있지만 홍명보 본인은 이전부터 지도자보다 행정가 쪽으로 꿈꾸고 있었다.

본인의 자서전에도 행정가가 되는 것을 더 희망하기도 했으니 어떻게 보면 궁극적으론 본인이 원하던 대로 행정가가 된 셈. 다시 감독직을 절대로 수행하지 않으리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일단 감독 생활의 끝이 썩 유쾌하지도 않았고 본인이 희망하는 진로로 다시 가닥을 잡았으니 감독은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본인 스스로도 지도자는 안 맞는다고 생각하고 행정가의 길을 갈 작정이라고 한다.

단, 홍명보의 행적에서 드러나듯 축협 파동의 근본적 원인으로 지목되는 정치라인을 탄 인사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축구팬들은 매우 부정적인 의견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박지성, 홍명보를 발탁한 축협의 깜짝인사가 애초에 근본적으로 스타 마케팅이자 2002년 추억보정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에 구조개편으로 이미지 쇄신을 꾀했던 축협의 이미지는 좋아지긴커녕 바닥을 모르고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홍명보를 살릴려고 얼굴마담을 박지성으로 두는 축협의 대범함을 볼수있다. 솔직히 박지성은 예산타다쓰는 실무자격이고 홍명보가 실세이다 조중연도 전무이사하다가 회장했다. 아무 경력도 없고 자격도 없는 넘을 부패한 인맥으로 월드컵 감독시켜놓으니 땅보러다니던 정신나간 작자를 한동안 외국나가서 여론뜸해지니 박지성을 방패막이로 해놓고 전무이사에 앉혔다[13] 애초에 전무이사라고 하면 고위 임원급 보직인데 홍명보는 행정가 준비를 하기는 하였으나 제대로 행정 실무를 수행한 적은 없으니 못 해도 전무급의 고위직은 아닌 위치에서 시작해야 정상이다. 사실상 또 낙하산이다.

애초에 행정가라는 어감 때문에 착각하기 쉬울 뿐 우리가 생각하는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공무원이 아니라 처음부터 은퇴 이후 한국 축구의 주요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고위직을 지망했다고 봐야 한다. 현장에서 뛰기 보다는 바로 고위직에 오르고 싶어했다는 이야기인데 뒤에 나오는 해설가들 비판 발언들을 보면 아이러니할 뿐이다.

이후에 알려졌지만, 김판곤을 축협 부회장 겸 국가대표감독 선임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임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 알려졌다. 김판곤 말로는 서로간의 연이 전혀 없는데 도대체 왜 본인을 추천했는지 놀랐다고. 많이 아는대로 현재까지의 김판곤 영입은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2018년 3월 22일 서울 중구 두타몰 특설무대에서 열린 2018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컬렉션 런칭 이벤트 '이빨을 드러내라' 토크쇼에 참석했다.[14]

3. 논란

3.1. 축구협회의 적자(嫡子)

홍명보는 선수 시절부터 은퇴 이후까지 모든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는 축구협회의 적자(嫡子)이다.[15] 다르게 말하면 적폐이다 신태용도 축구협회에서 차기 감독감으로 점찍고 U-20, U-23 감독을 맡기는 등 경력 관리해주며 챙겨줬지만 이 사람은 K리그 성남 일화 천마에서의 선수와 감독으로서 명성을 쌓아 축협의 간택을 받은 경우고 이광종 감독의 갑작스러운 악재[16]로 승급 시기가 예상보다 앞당겨진지라 선수 시절부터 작정하고 밀어준 홍명보하고는 비교도 안 된다. U-16 청소년 대표팀부터 시작해서 모든 연령별 대표팀 선수로 활약했는데 동시대에 A 대표팀 붙박이로 활약했던 황선홍과는 다른 케이스다.[17] 홍명보가 활약하던 1990년대 한국 축구는 고질적인 수비 불안으로 대패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대표 수비수인 홍명보는 선수 시절 수비로 욕먹어본 적이 단 한번도 없다. 대부분의 욕은 동시대의 공격수 황선홍이 모두 먹었다.[18] 몇 대 몇으로 지던 몇 골을 먹히던 대표팀 수비의 핵인 홍명보는 상대적으로 덜 비난을 받으며 14년간 대표팀에 붙박이로 있었다. 홍명보와 비슷한 스타일인 조용형이나 장현수 등이 얼마나 욕을 먹는가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다.[19][20]

위에서 열거한 선수 시절 대조적인 평가의 원인은 황선홍과 홍명보의 정치적 배경 차이도 있겠지만 1994년 미국 월드컵의 임팩트도 워낙 컸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2선까지 내려와 폭넓은 플레이가 가능했던 황선홍이 스위퍼 홍명보보다 훨씬 현대 축구에 맞는 선수였지만 볼리비아전의 임팩트가 너무나도 컸다. 한 경기라고 하지만 월드컵이 가지는 중요성, 특히 상대가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강팀도 아니고 본선 첫 승의 가능성이 너무나도 커 보였던 경기라... 반면 홍명보는 스페인전 극적 무승부를 주도하며 긍정적 의미에서 확실한 임팩트를 남겼다. 이 이미지가 2002년까지는 계속 가게 된 것이다. 사실 장현수 등의 사례를 봐도 결정적인 월드컵 한두 경기만으로 대중들 사이에서 평가가 고정되어 버리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1994년이야 그렇다 쳐도 심지어 1998 프랑스 월드컵 네덜란드전의 5:0 참사 때도 대표팀 수비의 핵인 홍명보를 욕하는 언론이나 팬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오히려 일부 팬은 부상으로 뛰지 못하고 벤치에 앉아있던 황선홍을 욕한다던가 모든 책임을 차범근 감독에게 전가했다.[21] 결국 축구협회는 역대급 병크인 대회 중 차범근 감독을 경질하며 무마하려 했다. 이때의 일로 차범근과 축구협회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고 #, 차범근 역시 이때의 일이 두고두고 남는다고 했다. 그 일이 있고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홍명보가 연락 한 번 없다며 서운하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연락이 없었던 부분에 대해서는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있다. 차범근도 진지하게 그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홍명보/선수 경력 참고. # #[22] 당시 차범근 감독을 경질한 것은 조중연 전무이사 겸 대표팀 단장인데 조중연, 차범근, 홍명보 모두 고려대 라인이다. 그러나 이 때 이후로 차범근이 라인에서 빠져나가며 조중연-홍명보의 라인은 더욱 굳건해진다. 참고로 조중연차범근을 희생시킨 후 축구협회에서 승승장구하며 부회장을 거쳐 축구협회장의 자리까지 올라갔다.

은퇴 이후 홍명보는 축구행정가의 길을 걸을 것이라며 여러 차례 공언했고 그래서 선수 시절 막바지 영어를 배우겠다며 미국행을 선택하기도 했다. # 그러나 영어를 배우기 위해 연수를 떠나겠다던 홍명보는 37세의 젊은 나이로 축구협회 이사의 자리에 오른다. # 그리고 축구행정가가 되겠다던 그는 2006 월드컵을 앞두고 코치 자격증도 없는 상태에서 국가대표팀 코치에 발탁되었다. 동시대의 선수였던 황선홍은 은퇴 이후 지도자를 목적으로 착실하게 코치 수업과 K리그 코치 경력을 쌓고 있었지만 축구행정가가 되겠다던 홍명보는 지도자 자격증도 없이 국가대표팀 코치가 되어 2006 독일 월드컵에 나서게 된 것이다. 당시 일부 언론과 팬들 사이에서는 홍명보에 대한 지나친 특혜라고 불만을 표현했지만 대부분의 언론은 홍명보을 두둔하며 넘어갔다. # 이후 홍명보는 감독으로서 2012 런던 올림픽과 2014 브라질 월드컵까지 출전하며 그야말로 승승장구하게 된다. 동시대 한국 축구의 기둥으로 활약했던 황선홍은 국가대표 감독이 되는 것이 꿈이라며 # 착실하게 K 리그에서 코치와 감독으로서의 경험을 쌓았지만, 클럽팀의 감독 경험이 전무하며 행정가가 꿈이라던 홍명보는 감독으로서 올림픽과 월드컵 본선에 출전하며 지도자로서도 모든 엘리트 코스를 찍는다.

이후 2014 브라질 월드컵을 말아먹고도 축구협회의 재신임을 받았는데 이는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 이러한 일에 대해 차범근의 아들인 차두리는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 이후 언론의 악화로 홍명보는 스스로 감독직에서 물러났지만 2017년 다시 축구협회의 행정 총괄 전무이사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때 홍명보는 인터뷰에서 "해보지 않았던 부분이기 때문에 부담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축구협회와는 많이 다르긴 해도 15년 이상 장학재단을 이끌며 경험을 쌓고 많이 배워왔다"고 말했다. # 즉, 축구협회에서 제대로 된 행정 경험을 쌓지도 않은 채 곧바로 행정 총괄 전무이사가 된 것이다. 지도자 자격증도 없이 국가대표팀 코치와 감독, 제대로 된 행정 경험도 없이 축구협회 행정 총괄 전무이사로 임명, 이제 홍명보는 축구협회의 적자(嫡子)라고 쓰고 적폐라 읽는다를 넘어서 몸통 그 자체이다.

홍명보는 선수 시절 대신 욕을 먹어준 욕받이가 있어 축구협회의 적자(嫡子)라는 것이 감춰진 채 선수 생활을 마쳤다. 그러나 은퇴 이후 행보에 대해서는 조금 더 똑똑해진 축구팬들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축구협회의 적자(嫡子)라는 것이 밝혀졌고 그래서 그것을 알고 나면 홍명보가 받아온 특혜와 꼰대질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2018 러시아 월드컵이 끝나고 박지성이영표안정환에 대해 직접적인 불만을 표시했으며 앞으로 한국 축구에 홍명보가 존재하는한 이영표안정환은 국가대표나 축구협회에 발을 들일 수도 없을 것이다.[23]

언론의 다양화로 인해 성역으로 있던 선수 시절과 달리 홍명보의 축구협회와의 특혜 관계, 학연 인맥에 대해 언급하는 경우도 생겼다. # 물론 그가 선수 시절 실력도 없이 국가대표 생활을 오래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수비 불안으로 욕을 먹는 일이 많았던 90년대 한국 축구에서 언제나 수비의 핵을 맡았지만 그를 향한 어떠한 비판도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축구팬들과 언론의 빈약한 정보량과 낮은 수준도 문제였는데 홍명보의 1994년 활약은 인정해도 1998년 시점에는 이미 스위퍼 시스템을 쓰는 팀은 한국 국대와 마테우스의 독일 국대 뿐이었고 양자 모두 성적이 참담했다. 일자 수비와 압박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었다면 홍명보는 이미 이 시점에서 계륵으로 비판받았겠지만 플레이 메이커를 중심으로 한 토탈 풋볼과 아리고 사키가 정립한 일자 수비에 기반한 미들 압박에 대한 구체적 이해와 구분이 부족한 상황에서 팬이건 언론이건 막연하게 압박 축구라는 표현을 오남용하고 있던 시절이다. 고종수, 윤정환 등 볼터치가 이쁜 플레이 메이커형 선수에 대한 기대, 황선홍을 비롯한 한국 스트라이커들의 문전 처리 미숙에 주로 집중된 비난은 이런 압박 축구, 토탈 풋볼에 대한 무지의 결과 개인기에 대한 막연한 일반론으로 축구 비평이 흘러간 결과였다.

‘리베로’ 홍명보 또한 이런 분위기 속에서 막연하게 올어라운드한 토탈 풋볼형 선수로 보인 덕에 비판의 칼날을 피한 감도 있다. 정작 우리를 5:0으로 격파한 히딩크는 개인기의 세도르프 대신 활동량과 압박이 좋은 다비즈를 주전으로 썼고 한국에 와서도 유상철, 김남일, 박지성 등 압박 축구에 어울리는 선수들을 중용했다. 또한 지단급이 아닌 플레이 메이커는 의미없다며 홍명보나 윤정환 등 그런 유형의 선수들에게 크게 집착하지 않았다. 이 부분은 1990년대 한국 축구와 언론, 팬들이 현대 축구에 대해 가장 크게 오해하고 있는 지점이었다.

어쨌든 한국의 베켄바워로 불리던 당시 홍명보는 한국의 토탈 풋볼형 선수로 보였고 팬들은 미드필더 중에서 한국의 크루이프를 찾는데 집착하며(나카타 히데토시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홍명보의 한계는 잘 모르고 있었고 현장 지도자들은 우리가 세계 강팀을 상대로 스위퍼 시스템 대신 일자 수비와 오프사이드 트랩 구사가 가능하겠느냐는 회의감이 있었기 때문에 이래저래 홍명보는 비판의 칼날을 피하게 된 셈이다.홍꾸라지 인증

3.2. 러시아 월드컵 방송 3사 해설위원 비판 논란

2018년 7월 5일 열린 대한축구협회 기자 간담회에서의 발언이 논란이 되었다. 주 요지는 "해설위원들이 첫 월드컵부터 계속 월드컵에서 성공만 해본 사람들이라 선수들이 못하는 것에 대해 공감이 떨어지는 것 같다. (감독이 되어) 현장 경험을 하고 오면 더 좋은 해설이 될 것 같다."인데, 이 내용이 들리기에 따라서는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당시 한국 공중파 방송사 해설위원인 안정환, 이영표, 박지성에게 "감독 안 해봤으면 말을 하지 마라"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2002년의 성공은 그동안 실패했던 선배들이 힘을 모여서 된 것이고, 세 해설위원은 그것을 토대로 첫 월드컵부터 성공을 경험하고 그걸 바탕으로 이후에도 계속 월드컵에서 성공만 했다"며 월드컵 기간 중 해설위원들의 지적 및 개선 요구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는 뉘앙스의 말을 남겨 각 언론 및 네티즌들로부터 질타를 받았다.

그러나 홍명보의 말대로 세 선수들이 2002 한일 월드컵 성공 이후 국가대표에서 계속 성공적인 결과를 낸 것은 아니다.[24] 오히려 2002 한일 월드컵의 성과로 높아진 국민들의 눈높이 때문에 대표팀 경기력이 그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을 때 욕을 먹었고 그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는 부담을 갖기도 했다.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첫 승의 성과를 거두기는 했지만 결국 1승 1무 1패로 예선 탈락하는 아픔을 겪었고 당시에도 16강 진출 실패라며 성공이 아닌 실패라 언급되었다. 또 원정 사상 첫 승을 거두는 성과에 대해서도 그 1승의 상대가 3패를 당한 토고라며 폄하되었다. 또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원정 사상 최초로 16강 진출을 달성했지만 높아질대로 높아진 기대치에 16강 진출이 당연하게 생각되어 큰 환호를 받지도 못했다. 오히려 8강 진출 실패라며 염기훈이나 이동국, 허정무 감독 등이 큰 비판을 받았다. 즉,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월드컵에서 항상 성공만 한 것이 결코 아니다. 지금에서야 다시 1990년대로 돌아가 16강 진출이 원래 어려운 것이다란 인식 하에 평가받지만 2006 독일 월드컵, 2010 남아공 월드컵 때의 16강 진출은 전 대회 4강팀으로서 당연히 달성해야 할 목표였다.

또한 박지성은 당시 대한축구협회 유스전략본부장이었다. 한마디로 이미 현장에 있었음에도 대한축구협회 소속인 홍명보가 같은 축구협회 소속으로 일하고 있는 박지성을 비판하는 것 역시 모양새가 이상한데 이영표와 안정환 둘만 떼어 비판하는 게 더 이상하기에 한꺼번에 말한 것으로 보인다.

홍명보는 "세 해설위원은 대한민국에서 많은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다. 좀 더 현장에 와서 받은 것을 돌려주고 축구계가 더 발전하도록 일을 했으면 한다."라는 발언을 덧붙였다. 저 말도 대단히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게, 해설위원들 역시 많은 팬들을 위해 나름의 지식을 동원하여 최선의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다. 현장에서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며 팬들이 스포츠를 좀 더 쉽고 재밌게 즐길 수 있도록 돕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다. 해설위원으로 활동을 시작한 이상 해설위원으로서의 본분을 지키며 최선의 해설을 통해 국민들을 즐겁게 하면 그게 바로 혜택을 돌려주는 것이다. 현장직은 봉사하고 희생하는 자리이고, 해설위원은 편하게 구경이나 하는 자리라는 식의 발언은 당장 축구 뿐만 아니라 수많은 다른 종목의 해설위원들을 폄하하는 말이나 다름없다.

물론 2002 한일 월드컵의 선수들이 혜택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월드컵이기에 거스 히딩크라는 전 대회에서 팀을 4강으로 이끈 명장을 데려오고 월드컵의 성공을 위해 K리그를 중단하는 등의 축구협회와 국가적 차원의 지원을 받은 것을 의미한다. 거스 히딩크라는 명장을 만나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선수들의 실력이 업그레이드되고 월드컵의 성공으로 병역 면제와 함께 여러 선수들의 유럽 진출의 길이 열리는 등 국가적인 혜택을 받은 것은 분명이다.[25] 이전의 한국 축구는 제대로 된 지원 없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오직 투혼으로 결과를 바라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혜택에 대해 이미 안정환, 박지성, 이영표는 2000년대 한국 축구를 10년 가까이 이끌어갔다. 오히려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높아진 기대치로 많은 부담감 속에서도 어느 정도 국민 기대치에 부응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이에 대해 반드시 지도자나 행정가가 되어 계속해서 한국 축구를 위해 뭔가를 하라는 것은 억지에 가깝다. 위의 항목에서 서술했듯이 특히 축구협회로부터 온갖 혜택을 받은 홍명보가 할 말은 더욱 아니다. 참고로 안정환은 아주대, 이영표는 건대, 박지성은 명지대 출신이다. 대한민국 축구판에 홍명보만큼 협회 덕 많이 본 선수가 어디있단 말인가?

또한 홍명보는 과거 2014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당시 월드컵 감독의 자격으로 MBC를 찾아 안정환, 송종국에게 "해설은 너희 생각대로 하면 된다. 좋은 얘기만 하면 안되고 쓴소리도 해라. 쓴소리를 듣는 게 전혀 불편하지 않다. 그건 바로 너희 역할"이라고 조언한 바가 있어, 4년 만에 자신의 말을 뒤집는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받게 되었다.[26]

오죽하면, 바로 홍명보의 이 발언을 까는 기사가 나와서 많은 커뮤니티에 퍼지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위 발언은 누가 봐도 꼰대스러운 발언이었으니 말이다.

4. 이야깃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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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짤.다른 종목의 돌부처, 스티븐 시걸??? 아니면 이 사람??
뭔가가 껴 있지만 신경쓰지 말자. 이 말 보고 한번 더 본 사람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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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 2012 런던 올림픽 축구 대표팀 감독으로서 8강전에서 영국을 승부차기로 꺾고 4강 진출을 확정짓고.
아래 :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국가대표팀 주장으로서 8강 스페인에서 마지막 승부차기를 성공짓고 난 후. 그리고 그와 관련된 . 쿨타임 10년짜리 웃음

파일:홍명보 승부차기.gif
12년이 지나고 까방권은 사라지고 말았다...
  • 위의 짤에서 보이듯이 사적인 자리에서도 표정 변화가 거의 없으며 침착하고 과묵한 성격이다. 결혼을 한 뒤 아내와 함께 있을 때도 마찬가지라서 홍명보의 아내는 가끔 인형과 대화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고 홍명보의 자서전인 '영원한 리베로'에서 직접 언급했다. 참고로 선수시절 나온 TV프로그램에서 직접 밝히길 프로포즈는 '김치찌개를 잘끓이니까 앞으로도 계속 끓여줘...'였다고.
  • 팀에서의 등번호20번. 처음 국가대표로 출전했을때부터 달았던 번호로 황선홍의 18번, 안정환의 19번과 함께 홍명보를 상징하는 번호로 자리잡았다. 올레 군나르 솔샤르와 함께 가장 유명한 20번 선수로서 한국 축구 한정으로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등번호가 되었다. 홍명보가 은퇴하자 그를 존경했던 포항 후배 이동국이, 이동국의 국가대표 차출이 불안해지자 제 2의 홍명보라는 평가를 받는 홍정호가 이어받았다. 지금도 전통적인 의미에서는 공격수가 주로 다는 20번을 수많은 한국 수비수들이 너도나도 다는 것을 볼 수 있다.
  • 홍명보가 홍명바로 둔갑한 사건이 있었으니. 8강 스페인전에서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4:3 상황에서 호아킨의 슛이 이운재에게 막혀 대한민국의 4강 진출 가능성이 높아지자 KBS서기철 캐스터가 흥분한 나머지 홍명보를 홍명바로 발음한 것.

파일:attachment/홍명보/japanhmb.jpg
  • 놀랍게도 홍명보를 주인공으로 한 일본만화가 존재한다. 제목은 홍명보 이야기. 이 만화는 2002 한일 월드컵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만화이며 작가는 닥터 노구치의 작가인 Toshiyuki Mutsu가 그렸다. 한마디로 작가가 홍명보에 대한 존경심을 담아 정성껏 만든 만화책이다. 스펀지 시즌1에서도 다룬 바 있다.
  • 두 아들의 이름이 각각 홍경민(!?)과 홍성민인데 공교롭게도 가수 홍경민의 본명이 홍성민이다. 팬이었나?

파일:attachment/홍명보/개만보좋.jpg
  •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에서 요술봉의 이름이 되기도 했다. 이는 봉(보)의 일본어 발음을 이용한 말장난 개그. 원작에서는 4권 제 51막에서, 애니메이션에서는 1기 9화에 등장. 변신시 사용자의 아버지를 누드로 만든다. 여담이지만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 만화 자체에서 한국인 이름을 엉뚱한데다 많이 쓴다. 월간 최홍만이라든가, 월간 최지우라든가,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라 할 수 있는 소드마스터 야마토가 연재된 월간 최용수라든가...[27] 거기에 위 짤방은 축까들이 홍명보 및 홍명보호를 깔 때 등장하기도 한다.
  •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오재석, 김승규와 함께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3~4위전 이란과 경기 후 기자회견에 나선 홍명보 감독은 "선수들 중 병역혜택을 우선으로 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연평도에서 전사한 장병에게 염치없는 짓을 하지 않았다. 남들이 피자, 햄버거 등을 섭취할 때 우리는 스스로 컨트롤했다"고 말하며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때운 야구국가대표팀을 비하 하는 발언을 했다. #
  • 브라질의 축구선수 둥가가 그와 비슷한 면이 많다. 해당 문서 참조.
  • 2018년 7월 5일 국가대표 후배이자 러시아 월드컵 해설자인 이영표, 안정환, 박지성의 발언에 대해 비판했다.# 이 부분이 흥미로운데, 세 해설위원이 '축구협회'를 직접 언급한것은 독일전이 끝난 후 박지성의 발언속에 한두번 언급된게 고작이었다는 것이다. 맥락상 축협에 문제제기를 한다고 생각될 여지가 있으나 두루뭉실 했던 세 해설위원들의 발언을 축협의 전무인 홍명보가 직접 나서서 언급한 것은 축협이 피해의식을 갖고 외부 인사들이 자신들을 비판한다고 생각한다는 방증이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말이 어울리는 상황.
  • 게다가 차범근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 출연한 하석주와 감동의 재회를 했었는데[28] 칼럼에서 차범근은 98 월드컵 이후 자신에게 연락을 안 한 선수는 하석주와 홍명보뿐이라고 언급하면서 논란이 또 커졌다. 하석주야 각주에도 적혀 있듯이 죄책감이 너무 커서 연락을 못 했다고는 하지만, 홍명보에게는 그럴 이유도 없었고 게다가 여러 가지 이유로 여론에게 비호감으로 찍힌 터라....
  • 김판곤 국가대표 선임 위원장이 벤투감독을 선임하기 직전에 여론이 험악해지자 마음고생이 심해져서 댓글에 대한 경험이 많은 홍명보한테 전화를 걸었고, "결과가 나오면 여론은 바뀐다"며 김판곤을 위로해줬다.위로를 해줬고 벤투 감독의 대한 평가가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으나 카타르전 사태와 관련해서는 이제 홍명보도 더이상 책임을 피하기는 어려워질듯 하다.

  • 2003년부터 2018년까지 16년간 본인이 만든 장학재단인 홍명보장학재단을 통해 홍명보 자선축구대회를 개최했었다. 16년간 총 22억 8천만원이 모였고 주로 소아암 환자들을 위해 사용되었다. # [29] 2018년 마지막 자선 경기 하이라이트
  • 현역시절 94년 미국월드컵, 유럽 올스타 vs 세계 올스타전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유수의 스페인팀과 대표적인 명문팀 FC 바르셀로나에서 영입제의를 받은적이 있다고 한다. 2002년 당시 기사원문은 삭제된상태고 퍼온 기사내용만이 남아있는상태이다. #
  • 잘 알려진 사실로 빠른 69년생이라 황선홍과도 상당히 친하다.\
  • 외모가 법학자 조국과 닮았다.

5. 홍명보에 대한 말,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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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는 한국의 기형적인 시스템이 낳은 기형아이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저런 선수가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1994 미국 월드컵 당시 이탈리아 해설자
"홍명보가 만일 지금 다시 축구를 시작한다면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유럽에서 백만장자가 될 수 있는 자질이 있다. 그러나 지금 늦었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인터내셔널해럴드트리뷴(IHT)의 칼럼리스트 랍 휴스
"마치 두 명의 말디니가 서 있는 것 같군요."
이탈리아 해설자,세계 올스타 경기에서 파올로 말디니와 함께 수비를 조율하는 홍명보를 보고
"나폴리를 떠나 유벤투스로 가게 된 치로 페라라의 자리를 홍명보로 메우고 싶었는데 안타깝다."
SSC 나폴리 구단주,1994년 홍명보의 영입에 실패한 후
"한국이 예선탈락한 것은 결코 한국 축구가 약하기 때문이 아니다. 차범근 감독은 홍명보같은 유능한 선수를 몰라봐 그를 공격수로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
아나톨리 비쇼베츠
"골대를 지키고 있다 보면 앞에 선 등번호 20이 얼마나 크게 보이는지 모른다."
미나미(가시와 레이솔 골키퍼)

6. 둘러보기

파일:Korea Republic KFA.png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FIFA 센츄리 클럽 가입 선수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순서 선수 이름 / 현재 소속팀 출전 횟수 데뷔 경기 은퇴 경기
1 홍명보 은퇴 136회 1990.02.04
(vs 노르웨이)
2002.11.20
(vs 브라질)
2 이운재 은퇴 131회 1994.06.11
(vs 온두라스)
2010.08.11
(vs 나이지리아)
3 이영표 은퇴 127회 1999.06.12
(vs 멕시코)
2011.01.28
(vs 우즈베키스탄)
4 유상철 은퇴 120회 1994.09.11
(vs 우크라이나)
2005.06.03
(vs 우즈베키스탄)
5 차범근 은퇴 119회 1972.05.07
(vs 이라크)
1986.06.10
(vs 이탈리아)
6 기성용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110회 2008.09.05
(vs 요르단)
2019.01.07
(vs 필리핀)
7 김태영 은퇴 104회 1992.10.21
(vs 아랍 에미리트)
2004.07.19
(vs 요르단)
7 이동국 전북 현대 모터스 FC 104회 1998.05.16
(vs 자메이카)
-
9 황선홍 은퇴 102회 1988.12.06
(vs 일본)
2002.11.20
(vs 브라질)
10 박지성 은퇴 100회 2000.04.05
(vs 라오스)
2011.01.25
(vs 일본)
}}} ||

[1] 여담으로 홍명보의 자서전인 영원한 리베로에는 183cm로 나와 있다.[2] 스위퍼[3] 1998년 3월 7일에 열린 홍콩 대표팀과의 다이너스티컵 경기를 포함하면 137경기가 된다. FIFA에서는 이 경기를 A매치로 인정하나 홍콩팀엔 게리 매키언(Gary McKeown)이라는 잉글랜드 국적의 외국인 선수가 기용되어 있어서 대한축구협회와 홍콩 축구 협회는 A매치로 인정하지 않아 KFA에서는 136경기로 기록함.[4] 축구 명문으로 과거부터 한국 축구에는 고려대 라인이 많다.[5] #[6] 형의 이미지를 빗댄 이름으로 2002년 월드컵 당시 4강에 진출한 것을 축하하는 의미로 생겨난 별명이다.[7] 황선홍은 클럽팀 감독으로서이다. 그 역시 극과 극을 경험했다. 당장 FC 서울에서 황선홍은 2014년 홍명보와 비슷한 삽질을 했었다.[8] 2002 월드컵 8강전 당시 KBS 서기철 캐스터의 발음 때문에 붙여진 이름. 홍명바! 4강 4강 흐으으헝엉엉. 그리고 얼마 안 있다가 '홍명바'라는 아이스바가 나왔다 카더라.#[9] 실제로 채널A에서는 이명박과 홍명보에 대한 평행이론을 방송한 적이 있다. 링크[10] 바리에이션으로 띵튽 홍띵넌 이라는 반어법(...)적 표현이 있다.[11] '축구협회 조직개편... 전무 홍명보, 유스본부장 박지성', 김태현, 국민일보, 2017년 11월 8일[12] 홍명보와 함께 고려대 라인[13] '한국축구 쇄신 핵심 '홍명보·박지성'… 위기 탈출 '특급 조커'로 나선다', 권영준, 스포츠월드, 2017년 11월 8일[14] 인사말하는 홍명보 축구협회 전무이사, 2018년 3월 22일, 네이버스포츠 박지혜 기자[15] 대한민국 축구를 양분하는 축구계의 인맥은 고려대와 연세대이고 그 중 홍명보는 고려대 출신이다. 고려대를 대표하는 축구인으로 차범근, 조중연, 연세대를 대표하는 축구인으로는 허정무가 있다.[16] 급성 백혈병[17] 황선홍의 경우 건국대 출신으로 A 대표팀 이전에 청소년 대표로 발탁되어 본 적이 없다. 그 때문에 처음 A 대표팀에 뽑혔을 때 굉장한 논란이 있었지만 데뷔 무대에서 골을 넣으며 논란을 잠재웠다.[18] 황선홍은 사실 1994 미국 월드컵 볼리비아전 외에는 심각하게 삽질을 한 적이 없었지만 늘 대표팀의 모든 비판을 혼자 떠안는 희생양이 되었다.[19] 요즘 같았으면 한골 한골 실점 상황에서 누구의 잘못인지 따지고 해당 선수가 까이겠지만 홍명보 선수 시절에는 상대적으로 황선홍이나 감독이 더 까였다.[20] 심지어 홍명보는 월드컵 본선 최단시간 실점의 원흉인데도 대한민국 축구 사상 최고의 수비수로 손꼽힌다. 해당 경기는 2002년 3-4위전 터키戰[21] 당시 주장이었던 홍명보와 차범근의 불화설도 있었는데 보통은 선수와 감독의 불화설이 있는 경우 선수가 욕을 먹지만 이때는 차범근이 욕먹고 쫓겨났다. 하지만 우리나라 운동선수들의 위계질서상 감독과 선수의 불화설이 사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22] 사실 차범근 역시 고려대 출신으로 이때까지 축구협회의 라인이며 어느 정도 특혜를 받았다. 1998 프랑스 월드컵 감독을 수행할 당시 클럽팀 감독으로 활약한 경험도 거의 없고 40대 중반의 나이로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때의 일로 인해 축구협회와는 완전히 틀어지게 된다. 자세한 것은 차범근 문서 참고.[23] 박지성의 경우 스타성을 겸비한 허정무 라인이기 때문에 홍명보와 사이가 틀어진다해도 허정무가 있는 한 쉽게 내쳐지진 못할 것이다. 반면에 이영표는 황선홍과 같은 축구 변방의 건국대 출신이며, 안정환은 더더욱 인맥이 없는 아주대 출신이기 때문에 축구협회의 몸통인 홍명보와 사이가 틀어진다면 사실상 발붙이기 어려워질 것이다. 어쩌면 이영표와 안정환 모두 이러한 썩어빠진 인맥 상황을 알고 해설가나 아예 방송인으로 활동하는 것일 수도 있다.[24] 특히 안정환은 국가대표로 활약하기 시작한 게 히딩크 부임 후인 20대 중후반부터로 자신의 월드컵을 시작하자마자 성공을 한 것은 아니다. 1998 프랑스 월드컵 때는 국가대표로 선발되지 못했기 때문에 기회가 아예 없던 것이다. 안정환의 국가대표 데뷔는 1997년.[25] 다만 안정환은 오히려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커리어가 완전히 꼬이기 시작했다. 안정환 문서 참조.[26] 게다가 소속팀에서 뛰지 못하는 선수는 대표팀에 뽑지 않겠다고 해놓고서는 박주영을 발탁한 게 바로 홍명보였다.[27] 몇몇 자막에서는 제이온스라고 되어있다. 뜻은 같고 발음의 차이.[28] 하석주는 월드컵 때 자신이 한 실책이 너무 죄송스러워서 그 이후로 차범근과 연락을 못 했다고 한다.[29] 댓글은 맹목적인 비난이 많아 보지 않는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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