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22 21:10:01

파올로 말디니

파올로 말디니의 역임 직책
{{{#!folding ▼
AC 밀란 역대 주장
프랑코 바레시
(1982~1997)
파올로 말디니
(1997~2009)
마시모 암브로시니
(2009~2013)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주장
프랑코 바레시
(1991~1994)
파올로 말디니
(1994~2002)
파비오 칸나바로
(2002~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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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올로 말디니의 수상 이력
{{{#!folding ▼
둘러보기 틀 모음
팀 수상
개인 수상
베스트팀
파일:UEFA 유로 2000 공식 로고.png
파일:attachment/FIFPro_logo.png

월드사커 역대 베스트 XI
FW
펠레
FW
리오넬 메시
MF
요한 크루이프
MF
지네딘 지단
MF
디에고 마라도나
MF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DF
파올로 말디니
DF
바비 무어
DF
프란츠 베켄바워
DF
카푸
GK
레프 야신
올-타임 유로 XI
FW
티에리 앙리
FW
마르코 판바스턴
FW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MF
지네딘 지단
MF
안드레아 피를로
MF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DF
파올로 말디니
DF
프란츠 베켄바워
DF
카를레스 푸욜
DF
필립 람
GK
잔루이지 부폰
유로 1988 베스트 XI
FW
마르코 판바스턴
FW
잔루카 비알리
FW
루드 굴리트
MF
얀 바우터스
MF
로타어 마테우스
MF
주세페 자니니
DF
파올로 말디니
DF
프랑크 레이카르트
DF
로날드 쿠만
DF
주세페 베르고미
GK
한스 판브뢰켈런
1990 FIFA 월드컵 베스트 XI
FW
위르겐 클린스만
FW
로저 밀러
FW
살바토레 스킬라치
MF
디에고 마라도나
MF
로타어 마테우스
MF
드라간 스토이코비치
MF
폴 개스코인
DF
안드레아스 브레메
DF
파올로 말디니
DF
프랑코 바레시
GK
세르히오 고이코체아
1994 FIFA 월드컵 베스트 XI
FW
로베르토 바조
FW
호마리우
FW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MF
크라시미르 발라코프
MF
게오르게 하지
MF
둥가
MF
토마스 브롤린
DF
파올로 말디니
DF
마르시우 산투스
DF
조르지뉴
GK
미셸 프뢰돔
유로 1996 베스트 XI
FW
다보르 슈케르
FW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FW
앨런 시어러
MF
카렐 포보르스키
MF
디터 아일츠
MF
폴 개스코인
DF
파올로 말디니
DF
마티아스 잠머
DF
마르셀 드사이
DF
로랑 블랑
GK
안드레아스 쾨프케
2003 UEFA 올해의 팀
FW
뤼트 판니스텔로이
FW
티에리 앙리
MF
파벨 네드베드
MF
지네딘 지단
MF
데이비드 베컴
MF
루이스 피구
DF
호베르투 카를루스
DF
파올로 말디니
DF
알레산드로 네스타
DF
파울루 페헤이라
GK
잔루이지 부폰
2005 UEFA 올해의 팀
FW
안드리 솁첸코
FW
사무엘 에투
MF
파벨 네드베드
MF
스티븐 제라드
MF
호나우지뉴
MF
루이스 가르시아
DF
파올로 말디니
DF
존 테리
DF
카를레스 푸욜
DF
카푸
GK
페트르 체흐

1995 FIFA 올해의 선수
수상
조지 웨아
2위
파올로 말디니
3위
위르겐 클린스만
월드사커 1994 올해의 선수
파올로 말디니
1994 Ballond'or
수상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2위
로베르토 바조
3위
파올로 말디니
2003 Ballond'or
수상
파벨 네드베드
2위
티에리 앙리
3위
파올로 말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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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sociazione Calcio Milan S.p.A.
파일:ACM Paolo Maldini.jpg
이름 파올로 말디니
Paolo Maldini
본명 파올로 체사레 말디니
Paolo Cesare Maldini
출생 1968년 6월 26일 ([age(1968-06-26)]세) /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 밀라노광역시
국적 이탈리아 파일:이탈리아 국기.png
신체 186cm | 체중 86kg
직업 축구선수(수비수[1][2] / 은퇴)
테니스선수(은퇴)
축구경영인
소속 선수 AC 밀란(1978~1985 / 유스)
AC 밀란(1984~2009)
기타 마이애미 FC(2015~ / 구단주)
AC 밀란 (2018~ /스포츠전략개발 디렉터)
국가대표 126경기 7골(이탈리아 / 1988~2002)[3]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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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3번(AC 밀란)[4]
가족 아버지 체사레, 장남 크리스티안, 차남 다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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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3

1. 개요2. 선수시절
2.1. 커리어
2.1.1. 클럽 커리어2.1.2. 국대 커리어2.1.3. 그 외
3. 은퇴 후4. 플레이 스타일
4.1. 공격력4.2. 수비력
5. 퇴장? 그게 뭐죠?6. 기타
6.1. 부전자전
7. 기록8. 말디니에 대한 말, 말, 말9. 경력
9.1. 우승9.2. 리그 기록9.3. 개인 수상
10. 같이 보기

1. 개요

이탈리아축구선수 출신 축구경영인. 2015년부터 마이애미 FC 구단주를, 2018년부터 AC 밀란 스포츠전략개발 디렉터를 맡고 있다.

AC 밀란이탈리아의 레전드이자 손에 꼽히는 레프트백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체사레 말디니이다. 이름의 스펠링 Maldini를 재배치하면 'Di Milan'. "밀란의" 라는 뜻이 된다.[5] 단순한 우연이겠지만 말디니 가문의 역사를 생각하면 그냥 우연으로만 생각하기엔 운명적이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중,후반까지 축구사를 관통한 역사의 산 증인. 그와 함께 필드를 뛰었던 선수들은 세월을 못이기고 하나 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오로지 말디니만은 굳건하게 20여년의 세월동안 산 시로와 밀란을 지켰다. 밀란 제너레이션의 1,2기를 모두 주전으로서 이끌었다는 점만 생각해봐도 얼마나 오랫동안 뛰었는지 알 수 있다.[6][7]

프란츠 베켄바워, 프랑코 바레시, 바비 무어, 가에타노 시레아, 다니엘 파사레야, 파비오 칸나바로, 엘리아스 피게로아와 함께 축구사에서 가장 위대한 수비수. 거기다 저 6명은 모두 리베로 보직의 선수거나 센터백인 데 반해 말디니의 주포지션은 레프트백이다.[8]

2. 선수시절

1985년 1월 20일, AC 밀란 vs 우디네세. 세르지오 바티스티니의 부상으로 교체된 말디니, 이 때 나이 고작 16세. 더 놀라운 건 17세의 나이일 때 AC 밀란의 주전이 되었다.

그 때부터 은퇴할 때까지 25년 동안 오로지 AC 밀란을 위해 활약했다. 자신의 아버지인 체사레 말디니와 함께 AC 밀란 최고의 레전드로 인정받고 있다.[9]

퇴장당한 기록도 그 오랜 커리어 내에서 단 2차례에 불과했다.

2.1. 커리어

국대엔 88년, 19세의 나이에 승선되면서 그때부터 2002년 은퇴하기 전까지 국대에서도 언터처블이었다. 아주리에선 총 126경기를 뛰면서 칸나바로에 의해서 기록 경신이 되기 전까지 이탈리아 A매치 최다 출전자였다.

2.1.1. 클럽 커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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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 밀란 단 한 줄로 요약되는 소속이력에 비해 말디니에 대한 기록은 설명하려면 입이 아플 정도로 많다.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5회[10], 세리에 A 우승 7회,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 5회, UEFA 슈퍼컵 우승 5회,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2회, FIFA 클럽 월드컵 우승 1회까지. 굉장히 사기적인 커리어을 자랑하고 있다.
또한 25년간 밀란에서 선수 생활을 보내며 각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선수들[11]과 공식경기에서 모두 상대해본 혹은 동료로 같이 뛴 유일한 선수다.[12][13][14]

특히 밀란 전체가 상황이 영 아니었던 93-94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센터백으로서도 엄청난 활약을 하며 우승을 이끌었고, 여기에 94 월드컵 활약까지 겹쳐, 발롱도르 3위,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그 다음 시즌은 94-95 시즌에서도 말디니는 밀란의 3연속 챔피언스 리그 결승 진출 및 준우승을 이끌면서 FIFA 올해의 선수상 2위에 등극하고, 9년만의 우승이었던 02-03시즌에는 월드컵의 아픔을 뒤로 하고, 원숙한 수비를 보이며 발롱도르 3위에 등극한다.[15]

2.1.2. 국대 커리어

국대에선 매우 뛰어난 활약을 했음에도 클럽과는 다르게 우승컵을 들지 못했다. 말디니는 4번의 월드컵[16]와 3번의 유로[17]에 출전했는데,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선 3위,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선 승부차기 끝에 준우승, 이어 UEFA 유로 2000 결승전에서도 다비드 트레제게에게 통한의 골든 골을 먹고 준우승에 그쳤다. 따라서 국대에서는 무관의 제왕.

일단 국가대표 데뷔는 1988년 이었는데 확실히 엘리트 코스를 밟은 선수 답게, 1988년에 데뷔하자마자 그해 유로와 올림픽에 참가한다. 유로 4강, 올림픽 4위로 그 한해를 마무리 한다. 특히 이제 막 국가대표에 데뷔한 선수로서 UEFA 유로 1988 베스트 11에 선정되면서 이미 완성된 슈퍼 수비수임을 보여줬다.

월드컵 단일 대회 역사상 최강의 수비 라인으로 평가받고 월드컵 단일 대회 최장 시간 무실점을 기록한 1990년 월드컵 키퍼 발테르 쳉가에 말디니-바레시-페리-베르고미[18]로 이어지는 라인 중 한 명이었다. 여러모로 수비에서는 레전드.

1994 월드컵에서는 조별예선으로 부상 아웃된 프랑코 바레시 대신. 4강전까지 임시 주장을 맡으면서 아주리 군단을 결승으로 진출한다. 아쉽게도 브라질과의 혈전 끝에 승부차기 패배로 준우승. 바레시가 결승 직전까지 부상 아웃되고 타소티가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루이스 엔리케의 코뼈를 부러뜨리면서 대회 아웃이 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주리 수비라인 포메이션은 정말 유동적으로 바뀌었었는데, 말디니는 이 대회에서 왼쪽 풀백, 왼쪽 윙백, 왼쪽 센터백, 즉 왼쪽 수비에 관한 모든 보직을 다 맡았다. 말디니의 수비능력을 압축해서 보고 싶다면, 94년 월드컵을 추천한다. 의도적으로 포메이션 체인징이 있었던 90년 대회에 비해서 말 그대로 부상과 퇴장에 따른 임기응변이 필요했던 대회였기 때문에 그의 수비능력이 더더욱 빛을 발했다. 그리고 대회 내내 포지션 변화에 따른 말디니의 수비 스타일 변화를 볼 수 있다.

UEFA 유로 1996에서는 바레시의 은퇴, 그리고 바지오는 이런 저런 상황으로 국대 탈락으로 아주리 자체의 경기력이 내려온 상황이었고, 결과도 조별예선 탈락이었다. 그랬는데도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1998 월드컵에서의 말디니는 여전히 훌륭했으나, 아쉽게 8강에서 개최국 프랑스와의 치열한 중원다툼, 수비싸움에서 아주리레블뢰는 승부의 결말을 짓지 못했고, 결국 승부차기로 프랑스가 4강을 올라간다. 이때를 기점으로 말디니의 후배 세대에서 리자라쥐, 카를로스 같은 왼쪽 수비수 역사에 남을의 명인들이 등장했다.

UEFA 유로 2000에서 아주리의 스쿼드와 디노 조프 감독의 전술이 맞아 떨어지면서 아주리는 승승장구했다. 부폰과 비에리가 부상으로 아웃되긴 했지만, 델 피에로와 인자기, 토티 등이 있었고, 알베르티니, 디 비아조, 피오레, 콘테 등등 미들진도 훌륭했다. 당시 디노 조프 감독은 율리아노-네스타-칸나바로로 3백을 형성한 후에 말디니와 잠브로타를 윙백, 나아가서 측면 미드필더로 썼는데, 베테랑과 중진 그리고 신예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강력한 모습으로 4강까지 진출했다. 4강전 개최국 네덜란드와의 경기는 그 재밌다는 유로 2000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명경기인데, 잠브로타가 경기 시작한지 극초반에 퇴장하면서 아주리의 수비라인은 즉각적으로 말디니-네스타-율리아노-칸나바로 포백으로 변환, 알베르티니와 디 비아조도 중원 싸움보다는 수비에 집중하게 된다.[19][20] 여기서 말디니는 네덜란드의 오베르마스, 또 젠덴과 공방을 저지했다. 당시 말그대로 절정의 스쿼드를 가지고 있었던 네덜란드였기 때문에 아주리는 말그대로 막는 것에 총력을 했는데, 여기서 말디니는 세도로프의 슈팅 타이밍을 잠시 놓치자 손을 내리고[21] 말그대로 몸을 던진다. 그야말로 말디니 수비의 처절한 명장면.[22] 경기는 대혈전 끝에 아주리의 극적인 승부차기 승리였다. 그리고 대망의 결승에서 왕조를 이루려하는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말디니는 앙리를 완전히 억제하면서 왼쪽을 장악했지만, 결국 통한의 역전패로 준우승의 분루를 다시 한 번 삼키게 된다. 물론 이 대회에서 말디니의 역량은 여전히 건재했기 때문에 당연히 대회 베스트 11에 선정된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그의 축구 경력 최초로 장기 부상을 끊으면서, 정말 아슬아슬하게 대회에 출전하게 된다. 하지만 부상 후유증으로 평상시 보다 떨어진 경기력도 있었고, 지역예선에서 3백을 쓰면서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승승장구했던 조반니 트라파토니가 갑자기 본 대회에서에서는 4백으로 포메이션을 전환하면서 아주리의 플레이 자체가 불협화음이 심했다. 거기다 네스타의 부상 아웃, 칸나바로의 경고 누적 등 악재가 겹치면서 16강에서 대한민국에 패배해 탈락. 더군다나 이 경기에서 이천수에게 뒤통수를 까이는(...) 안습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23] 그래서 그런지 2002년 월드컵은 안 좋은 기억 밖에 없는 생애 최악의 대회라고 한다.16강 탈락한 것도 모자라서 축구화로 뒤통수까지 맞았는데 당연히 좋은 기억이 있을리가....이 경기만 이겼으면 로타어 마테우스를 제치고 월드컵 최다 경기 출전[24]에 오를 수 있었으나 무산.

흔히 90년대 말부터 00년대 초, 중반까지 이탈리아 수비 라인 4백 베스트를 말디니-네스타-칸나바로-잠브로타 로 뽑는데 국제 메이저 대회에서 이 라인이 제대로 가동된 적은 유로 2000과 2002년 월드컵 조별 리그 첫경기 에콰도르전밖에 없었다.

특히 유로 2000에서는 그마저도 결승전에서는 4강전에서 잠브로타의 퇴장으로 발동 될 수 없었고... 그것은 결국 결승에서 통한의 역전패로 이어진다.

그리고 2002 월드컵은 조별 리그 첫 경기를 제외하고는 부상 당한 네스타 땜빵으로 들어간 마르코 마테라치의 돌고래짓에 허우적대다가 결국 마테라치의 커버 플레이를 해주던 칸나바로가 경고 누적으로 16강전에 못 나가게 되었다. 이 직전 시즌 말디니의 선수 생활에 손꼽히는 부상이 있었고 실제로 까딱했으면 참가를 못할 뻔했었다. 이 부상의 여파가 월드컵까지 이어지는 불운이 있었다. 거기다 네스타의 대회 중 부상과 칸나바로의 경고 누적까지.

울며 겨자 먹기로 말디니를 센터백으로 기용했는데 한국과의 16강전은 연장 후반 안정환의 헤딩을 제대로 커버 못해서 부폰이 골든 골을 허용하여 앞에서 언급된 것처럼 졌다. 참고로 말디니가 국가 대항전이나 국제 메이저 대회에서 커맨더 센터 백으로 선 경기는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25]

어쨌든 1994년 월드컵에서의 말디니[26]는 윙어와 무한 스위칭을 하며 상대의 오른쪽을 공격시에는 초토화, 수비시에는 우주방어로 고사시키는 포지션이었다. 특히 한창 팔팔했을 때 참가한 1994년 월드컵에서는 로베르토 바조,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와 함께 셋이서 월드컵 결승에 진출시켰다고까지 평가받으며[27] 이러한 움직임은 유로 2000까지 계속된다.

확실하게 센터백으로의 포지션 체인지를 한 건 2006년 쯤이었고, 그 직전 시즌까지만 해도 말디니-네스타-스탐-카푸로 대표되는 후덜덜한 라인의 왼쪽에서 군림했다. 이후 스탐이 떠나고 카푸가 슬슬 노쇠화하고 말디니의 체력도 떨어지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센터백으로 완전히 보직을 변경했다.

이 즈음해서 예전같은 오버래핑보다는 네스타와 함께 안정된 수비로 안습 시절 밀란의 구세주로서 공격 조작보다는 안정된 수비를 추구했으나 은퇴 시즌에 마지막 홈 경기와 원정 경기에서는 오랜만에 삘 받으셨는지 아니면 팬들에게 옛 추억을 주려 하신 건지 갑자기 센터백에서 상대방 진영까지 올라오셔서 패스를 찔러주시고 중거리포를 때리시는 등의 리베로 플레이를 보여주셨다.

마르첼로 리피는 파올로 말디니에게 2006년 월드컵을 함께 하자는 제의를 했고, 그 전에는 트라파토니가 말디니에게 2004년 유로 대회를 같이 하자고 제의를 했지만, 말디니는 두 제의 모두 거절.

근데 이탈리아는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안습. 더구나 이 때 충분히 주전으로 뛸만한 기량이어서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낸다.[28]

말디니가 은퇴한 직후 2010년 초에 마르첼로 리피는 이탈리아 축구 협회 측에 요청하여 이탈리아 vs 북아일랜드 경기를 말디니의 국대 마지막 경기로 정하려고 했지만, 이 역시 거절되었다. 42세에 국대에서?

2.1.3. 그 외

말디니는 부상이 크게 없는 선수로 또 유명하지만, 2001/02 시즌에는 저주가 걸렸던(…) 산 시로 구장에서 그만 부상을 당해 15경기를 뛰는 데 그친 바 있다.[29] 하지만 다음해 29경기를 소화하면서 부상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

2007-08 시즌에는 웬만한 젊은 수비수보다도 뛰어난 플레이를 보여주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특히 아스날전에선 평점이 제일 높았다. 사실 그 경기를 보면서 가장 혀를 찼던 것은, 상대 팀 아스날의 주장이라는 세스크 파브레가스는 말디니가 프로 데뷔했을 때 태어나지도 않은 새파란 것이었으니(파브레가스 87년생, 말디니 1군 데뷔 85년)...

저 유명한 말네스카 라인이 1990년대 후반이나 2000년대 초에만 만났다면 그 당시 밀란이 챔스를 몇 번은 더 먹었을 거라고 호사가들은 농담조로 이야기한다. 90년대 말 00년대 초라면 이들 각자의 전성기가 시작되고 있었거나 전성기의 정점에 도달해 있었기 때문. 말 그대로 수비계의 갈락티코.정작 말네스카가 만났던 00년대 중반에 네스타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3명은 슬슬 정점에서 내려오는 시기였다. 그리고 저 4명중 네스타를 제외한 3명이 사이좋게 돌아가면서 부상을 달아서...

다만 말디니 본인의 경우 일찍이 말네스카를 능가하는 진정한 밀란 역대 최고의 수비진이자 세계 축구 역사상 통틀어봐도 손꼽힐만한 수비진인 파올로 말디니-프랑코 바레시-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마우로 타소티 라인의 멤버로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3번이나 한적이 있었으니 아쉬움은 좀 남았어도 여한은 없었을듯?[30] 어찌보면 80년대말~90년대초의 역대급 수비진과 2000년대 중반의 역대급 수비진에 동시에 이름이 들어가 있는 것이 정말이지 말디니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였는가 잘 보여준다고 할 수도 있겠다.

원래는 2006/07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할 예정이였다. 재계약을 시도하던 밀란과의 협상도 연봉 문제로 진전이 안 되었지만, 5위로 그치면서 체면을 제대로 구긴 밀란이 안타까웠는지 2008년까지 더 뛰겠다고 발표를 했고, 다음 해에도 그 때 쯤 또 한 시즌 연장. 2009년에는 결국 2위로 시즌을 마침과 동시에 은퇴를 했다. 그가 뛴 경기는 총 902경기(챔피언스 리그 등 포함) 로, 오로지 밀란에서만 뛴 경기다.

은퇴 시즌인 08/09 시즌 말기에는 유베와의 경기에서 키엘리니한테 빡쳐서 키엘리니의 멱살잡는 평소 말디니답지 않은 거친 행동을 보이면서[31][32] 경고를 받았다, 그의 마지막 홈 경기에서는 밀란 팬들에게 야유를 받기도 했다. 밀란 팬들은 말디니를 존중하지만, 우리의 캡틴은 영원히 바레시라고 했는데, 이는 예전 2004/05 이스탄불에서 벌어졌던 챔스 결승전에서 밀란 팬들이 밀란의 드라마틱한 패배에 분노하여 비난하자 말디니가 역으로 팬들을 비난했던 것에 대한 보복이였다나 뭐라나. 또 다른 설은 밀란 보드진의 막장 경영 때문에 애꿎은 말디니가 희생되었다는 것.

어쨌든 이 일은 유럽 축구계의 저명한 선수, 인사들 모두가 '희대의 병신짓'이라고 비난할 정도로 희대의 병크였다.[33] 그래서일까, 바르사의 과르디올라 감독은 08-09 챔스 우승 이후 우승의 영광을 말디니에게 돌리는 등 그에 대한 존경심을 전했다.

이후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과 함께 첼시로 간다는 루머가 있었고, 실제로 안첼로티가 말디니에게 코치직을 제의했었다. 그러나 말디니는 이를 거절했고, 밀란 유스팀의 코치를 맡는다는 루머가 나오기도 했다.

3. 은퇴 후

2015년 5월 20일 북미 축구리그(NASL)[34]의 12번째 팀 마이애미 FC 구단주로 취임하였다. 해당 링크

밀란이 최근 들어서는 폭망한 상황인데 지금 개판 5분전인 밀란을 보는 말디니의 심정은 어떨까...비단, 말디니 뿐 아니라 그동안 전성기 시절의 잘 나가던 밀란을 거쳐간 수 많은 선수들도 비슷한 심정일 것이다.[35][36]

이후 망해가는 밀란에게 쓴 소리좀 하시다가 뜬금없이 스페인 라 리가의 아틀레틱 빌바오에게 원클럽맨 트로피를 받게 되었다. 물론 말디니는 밀란에서 은퇴했기 때문에 빌바오와 엮일 일이 전무하지만 빌바오의 특성을 볼때 끝까지 클럽을 지킨 파올로 말디니에 대한 예우와 존경심을 표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밀란 팬들은 클럽 최고의 레전드가 다른 팀에서 더 대우받는 모습을 보고 씁쓸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37]

2017년 6월, 프로 테니스 ATP 챌린저 투어 본선 무대에 진출했다.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저 정도 운동신경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강골은 강골이다.

2018년 8월, 드디어 밀란에 복귀했다. 직책은 스포츠분야 전략개발담당자

2019년에는 팀의 향후 노선 문제를 두고 갈등을 벌이다 사임한 레오나르두 아라우주의 후임으로 스포츠디렉터가 되었다. 스포츠 디렉터로써 첫 행보는 테오 에르난데스의 영입

4. 플레이 스타일

풀백을 넘어서 수비수로써 갖춰야할 모든 것을 갖췄다. 그야말로 모든 수비수들의 교과서라고 불릴만 하다. 키도 186cm로 큰 편이고, 스피드도 굉장히 빨랐으며[38], 체력도 좋아 공격을 하다가도 역습 시에 공수전환이 빨랐다. 처음엔 왼쪽 풀백이었지만, 센터백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되고[39] 나중엔 오른쪽에도 기용되었다. 놀라운 사실은 원래 그는 오른발잡이라는 것. 왼쪽에 주로 기용될 것이 확실시되자 웬만큼 다 큰 나이에 왼발을 오른발과 같이 쓰기 위해 죽도록 연습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양발의 밸런스가 보통이 아니다. 말디니가 정말 대단한 것은 죽도록 연습한 덕분에 프리 킥과 같은 데드 볼 상황에서도 왼발을 사용할 수 있었다는 것. 아무리 양발을 잘 사용하더라도 데드 볼 상황에서는 주로 자신있는 발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40] 그의 연습량이 얼마나 엄청났는지를 알 수 있다.[41] 1998년 월드컵에서의 말디니의 공격력과 수비력[42] 물론 보통은 본인이 오른발잡이로 태어나고 어릴 적부터 오른발 위주의 플레이를 익혀온만큼 오른발로 드리블을 하고 멋진 중거리슛도 발리슛도 하는 편[43]이지만, 조금만 수틀리면 측면에서 능글맞은 페인트로 어느 발이든 정확한 크로스와 패스를 보낼 수 있던 그의 양발 사용 능력 때문에 수십년간 숱한 라이트백들이 고통받았다. 말디니에게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수비력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고른 양발 사용 능력을 바탕으로 한 귀신 같은 탈압박을 바탕으로 상대를 농락하는 그의 개인기도 수준급이다 보니, 전방에서건 후방에서건 상대가 압박을 하든지 말든지 유유히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여줄 때가 많다. 40세에 이른 시점에서도 마르세유 턴을 자유자재로 쓸 정도니...

4.1. 공격력

워낙 수비력이 훌륭해서 말디니의 플레이를 제대로 보지 못 한 축구팬들은 말디니가 공격력까지 좋은 풀백이라는 점을 잘 모른다. 사실 말디니가 뛰던 시기에 공격력이 좋은 풀백하면 대부분은 호베르투 카를루스를 먼저 떠오르기 때문. 그러나 하단에 호나우지뉴, 안드리 솁첸코, 루드 굴리트가 언급했듯이 말디니는 공격력도 훌륭한 풀백이었다.

개인기가 좋아서 다른 수비수들이 공격수 사이에 둘러싸이면 주로 뻥축구를 하는 것과는 달리 말디니는 개인기로 공격수를 농락하고 드리블하여 오버래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흔히 말디니의 플레이를 '우아하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그의 이런 훌륭한 개인 능력에 있다. 이런 개인 능력의 진수가 가장 잘 발휘된 장면은 이탈리아가 3 백을 쓰고 윙 백으로 말디니가 나선 유로 2000인데, 특히 프랑스와의 결승전에서 말디니가 측면을 완벽하게 지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때는 지단도 어쩌지 못했고 경기는 이탈리아가 잡고 있었다. 물론 말디니는 당시에도 노장이었다. 프랑스의 골은 말디니의 체력이 떨어진 이후에 나왔다.



이 영상을 보라. 도대체 이게 어딜 봐서 수비만 잘하는 풀백이라고 하겠는가. 전성기 시절 그의 공격력은 무시무시했다.

4.2. 수비력

수비 능력은 역사상 최고라고 불릴 정도로 훌륭하다. 수비수로서 가져야 하는 모든 능력을 완벽하게 갖췄다. 그 중에서도 상대의 공격 방향을 예측하여 그 맥을 끊어 버리고 공격하지 못하도록 구석으로 밀어 버리는 능력은 절륜 중에서도 절륜. 유로 2000에서 네덜란드와의 4강전에서 당대 최고의 스피드 윙어인 오베르마스가 말디니를 경기 내내 단 한 번도 돌파하지 못하고 막혔다. [44][45] 지금도 '말디니 오베르마스' 라고 치면 그날 경기에서 말디니와 오베르마스의 1대 1 경합 동영상이 있다. 말디니의 수비력을 가장 명확하게 볼 수 있는 장면. 특히 이 경기는 이른 시간에 이탈리아의 퇴장이 있었기에 더욱 빛을 발했다. 오베르마스 역시 대단한 선수[46]기에 말디니를 돌파할 뻔한 모습도 보여주지만 그 때마다 말디니가 반칙을 써서라도 그를 확실하게 저지했다. 동료들 입장에서는 든든할 수밖에 없는 수비력. 그러니까 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최근의 로벤이 컨디션도 빨딱 서 가지고 돌파를 시도하려고 했는데, 단 한 번도 돌파를 못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거기다 오베르마스만 돌파를 시도한 게 아니라 오른쪽 풀 백이었던 젠덴이 오베르마스와 계속 스위칭하면서 돌파한 것. 사실상 혼자서 2명을 상대했다는 건데 단 한 번도 뚫리지 않았다는 건 경이적이다.[47] 네스타와 더불어 잔실수가 거의 없는 수비수이기도하다. 게다가 레프트백만 잘보는 것도 아니어서 1994년 월드컵에서는 주장[48][49]이자 센터백으로 거의 모든 경기를 출장하면서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 로베르토 바조와 더불어 이탈리아를 결승전에 진출시킨 선수로 평가받을 정도. 06/07 챔피언스리그 우승 때도 39세의 나이에 네스타와 조합을 맞추면서 센터백으로 뛰었다.[50]

필요없는 첨언인지는 모르겠지만 윙, 풀백으로서는 역대급 수비력을 자랑했지만 말년에 뛰었던 중앙 수비로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51] 주포지션인 레프트백으로는 단연 1위.[52]

5. 퇴장? 그게 뭐죠?

더 놀라운 사실은 20년이 넘는 커리어 중, 퇴장당한 건 단 두 번 뿐이라는 거다. 그 말은 말디니가 파울을 할 때도 상당히 지능적으로 한다는 것을 방증한다. 호나우두디에고 마라도나를 비롯해 지네딘 지단,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호나우지뉴, 루이스 피구 같은 선수는 말디니가 가장 힘들었던 수비수 중 한 명이라고 밝혔다. 반면 말디니 자신은 호나우두가 밀란으로 이적할 때 "호나우두는 여지껏 내가 마크했던 공격수 중 두 번째로 막기 힘든 선수"라며 격찬했다. 두 번째라니 무슨 개허세라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첫 번째가 마라도나...

여담으로 처음 마라도나와 붙었을 때 "에이 그래도 같은 사람인데 뭐 다를 게 있겠어?"라고 생각하고 마라도나와 경기에서 부딪혔고 당연히 그 경기에서 몇번의 신체적인 충돌이 있었는데 경기가 끝나고 허벅지가 쑤셔서 보니 멍이 나있었다고...

6. 기타

파일:attachment/sizemaldini_legend.jpg

풋볼 매니저에서 기묘하게 부상을 당한 짤방이 돌기도 했다.[53] 훈련이라고 했지만 축구훈련이 아니였을지도 모른다

축구잡지 포포투에 실렸던 안드리 솁첸코의 인터뷰에 의하면 걸어다닐 때마다 멋이 뚝뚝 흘러 넘치는 패셔니스타들이 즐비한 밀란에서도 말디니의 패션감각은 군계일학 수준으로 단연 최고였다고 한다.

여담으로 아버지 체사레 말디니와 함께 부자가 같이 한국에 온적이 있다. 다름아닌 2002 한일 월드컵 에서 아버지는 파라과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아들은 아주리군단 주장으로 참가한것. 알다시피 아주리군단은 당시 16강에서 한국에게 패배해 짐을 싸야만 했고 파라과이또한 16강에서 당시 괴물급 키퍼 올리버 칸이 버티고 있는 독일에게 밀려 탈락한다.[54]

피파 온라인 3에서 월드 레전드로 나왔으며 그 평가는 루드 굴리트의 수비수 버전. 피지컬도 무진장 센데다 오버롤도 93으로 매우 높아 얼티메이트 레전드로도 뚫기가 어렵다. 다만 보직이 센터백으로 나와서 영 안맞는다는 느낌이나 레프트백으로 놔도 유의미한 차이는 없다.

피파 온라인 4에서는 센터백 단연 최강 캐릭터로 나왔다 말디니는 레프트백일텐데...? [55]

필리포 인자기가 처음 국가대표에 왔을 때 상당히 묘한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왜냐하면 인자기의 테크닉이 상당히 좋지 않았는데 계속 득점을 뽑아내는 모습을 보면서 갸우뚱 했다고...[56]

6.1. 부전자전

그의 등번호인 3번은 영구 결번 되었으며, 말디니는 자신의 아들 중 한 명이 나중에 성인 팀에 데뷔를 할때 그 번호를 물려줄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파올로(말디니)의 등 번호 3번 역시 아버지였던 체사레 말디니의 3번을 물려받은 것이니, 어쩌면 등 번호마저 3대가 이어서 달게 될 지도.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꼭 영입하고 싶었던 선수라고 직접 밝힌 적이 있다. 파올로 말디니의 아버지인 체사레 말디니를 경기장에서 만나 자신이 얼마나 그를 영입하고 싶은지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자 체자레 말디니는 미소지으며 "제 할아버지도, 제 아버지도, 저도 AC 밀란에서 뛰었습니다. 제 아들도 그리 해야지요."라고 답했고 퍼거슨 감독은 더 이상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고. 체자레 말디니의 할아버지는 커녕 파올로의 할아버지도 밀란에서 뛴 적이 없는데 이런 썰은 어디서 나온 건지..

아무튼 크면 얼마나 잘해줄지 기대가 되는 선수...라고 생각했는데, 유스 레벨에서도 파올로의 두 아들은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명성을 잇기엔 너무도 평범한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다행히 큰 아들이 2013-14 시즌 겨울 이적 시장 때에는 1군에 올라와서 훈련 기회를 받고, 2014-15 시즌부터 프리마베라의 주전으로 뛴다니 일말의 기대감은 놓지 말자..였으나 첫째는 결국 일말의 성장도 보여주지 못한채 리가프로의 레지아나로 이적했다. 몰타 등을 떠돌다가 현재 이탈리아 4부리그로 이적했다. 일부의 말에 의하면 축구선수를 은퇴하고 다른 직종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2016년 현재 둘째가 더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한다.# 다만 포지션이 다르기에 3번을 그대로 물려받을지는 미지수.

7. 기록

  • FIFA 100에 선정
  • 월드 사커에서 올해의 선수로 선정된 바 있다. 이는 월드 사커 사상 수비수로는 최초의 기록이다.
  • 셀틱전을 통해 챔피언스리그에서 100번째 경기를 달성하였다.[57]
  • 통산 성인 경기 1000경기 출장을 달성한 선수이다. [58]
  • 2004/05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말디니의 골로 2개의 기록이 갱신되었다. 하나는 결승전 최단 시간 골 기록, 또 하나는 결승전 최고령 득점 기록이다. 하지만 이 기록이...
  • AC 밀란에서는 902번의 경기를 가졌다. 흠좀무. [59][60]
  • 인터콘티넨털컵에 5회 진출. 이는 코스타쿠르타와 같은 기록이다.
  •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선 8번의 결승전에 진출하면서, 최다 우승 기록자인 프란시스코 헨토(레알 마드리드)와 동일한 기록이다.
  • 부자가 챔스 우승을 경험하였다.[61] 파올로의 아버지 체사레 말디니는 주장으로서 처음으로 밀란에게 빅 이어를 안겨준 바 있다.[62] 현재 밀란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장식한 알파가 체사레라면 오메가는 파올로라고 볼 수 있다.
  • 월드컵에선 23경기를 뛰었다. [63]
  • 월드컵에서 뛰었던 23경기는 모두 풀 타임 출장이다.
  • 월드컵에서 무려 2217분을 뛰면서 최다 기록을 가지고 있다. [64].
  • 세리에 A에서 58경기 무패라는 기록도 가지고 있다.(1991년 ~ 1993년)
  • 22세에 26개의 타이틀을 얻었다.
  • 월드 사커에서 1999년에 선정한 20세기 역대 최고의 선수 21위(말디니 이상의 순위에서 이름을 올린 수비수는 베켄바워와 무어, 그리고 바레시. 각각 순위는 베켄바워는 4위, 무어는 14위, 바레시는 19위). 해당 링크
  • 월드 사커에서 2013년에 선정한 20세기 역대 베스트 11에서 당당히 왼쪽 풀백을 차지했다. 참고로 월드 사커에서 뽑은 역대 베스트 11 수비 라인은 말디니-베켄바워-바비 무어-카푸. 말디니는 이 수비 라인에서 유일하게 월드컵 우승 경험이 없지만 당당하게 왼쪽을 차지한 것을 보면 말디니의 위대함을 간접적으로라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 프랑스 풋볼지 선정 지난 60년간 최고의 선수, 수비수부문 1위에 선정되었다. 이건 꽤나 괄목할 것인데 어떤 조사기관을 찾아봐도 역대 최고의 수비수로 뽑히는 베켄바워를 제치고 1위에 선정된 것이다. [65]

8. 말디니에 대한 말, 말, 말

현 시점에서 리오넬 메시가 최정상에 있고 카카가 깊은 인상을 줬으며 지단은 의심할 나위 없는 천재였으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파올로 말디니다.
- 알렉스 퍼거슨
풀백으로 뛰면서 그는 왼쪽 측면을 아예 자기 소유로 만들어버리곤 했다. 그는 모든 걸 그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쉬운 것인 마냥 해냈다.
- 필리포 갈리
말디니는 내 우상이자 롤모델이다.어린 시절 세비야에서 살 때 아버지와 형제들이 말디니의 비디오를 보여주며 배우라고 했었다 .말디니는 아마 모든 축구 선수들의 귀감일 것이다. 그는 전설이다. 내 이름도 말디니처럼 오랫동안 기억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 세르히오 라모스
말디니는 39살에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했다. 그만큼 그는 뛰어난 운동선수고, 철저하게 프로페셔널하기 때문이다. 평범한 선수와 월드클래스 선수와의 차이는 말디니에서 볼 수 있다.
- 프랑코 바레시
내가 본 선수들 가운데 가장 열심히 노력하던 선수였다. 그가 수비에 있을 땐 정말 믿음직스러웠고, 공격에 있어서는 창의적이었다. 말디니는 진정한 리더쉽을 갖춘 훌륭한 올-라운드 축구선수이다.
- 안드리 솁첸코
말디니는 축구에서 좋다고 하는 모든 것들을 대표하고 있다.
- 다비드 비야
잉글랜드 국가대표로 뛰면서 말디니를 상대로 몇번 맞붙었었다. 나는 그가 윙어로부터 따돌려지는 것을 한번도 보질 못했다.
- 테디 셰링엄
그는 스타일리쉬한 센터백과 풀백이었다. 말디니의 경기를 읽는 능력, 태클의 타이밍 그리고 경기를 구성하는 능력이 그를 다른 선수들로부터 구분시켜줬다.
- 데니스 어윈
말디니는 내가 상대해 본 수비수들 중에서 가장 까다로운 수비수였다. 그는 강했고, 똑똑했고, 훌륭한 맨-마커였다. 그는 완벽한 수비수다.
-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그는 챔피언스리그 역사에서 가장 훌륭했던 수비수다. 그에 대해서 정말 놀라웠던 것은, 그가 공을 가졌을 때 그는 수비수가 아닌, 정말 클래스있는 미드필더와 같은 플레이를 펼쳤다는 것이다.
- 호나우지뉴
바레시 옆에 서 있던 말디니는 내 선수 생활 본 수비수 중 최고였다. 80년대 후반 AC밀란을 굴리트와 반 바스텐의 공격 중심 팀으로 기억하는데, 그 팀은 말디니를 중심으로 한 단단한 수비로 구성된 팀이었다.
- 마르셀 드사이
말디니의 공격 그리고 수비는 둘 다 월드클래스였다. 그는 18세 때의 기량을 39살이 된 2007년에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 루드 굴리트
1994년, AC 밀란이 바르셀로나를 무너뜨린 챔스 결승을 기억하나? 바레시와 코스타쿠르타가 경고 누적으로 나오지 못했을 때, 센터백으로 출장한 말디니는 일생동안 거기에서 뛴 것마냥 우월했다.
- 로날드 쿠만
훌륭한 선수들이 있고, 월드클래스 선수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경지를 뛰어넘는 지배자가 있다. 말디니가 그 예시다. 그는 밀란의 상징이다.
-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파올로 말디니는 내가 상대했던 수비수들 중에서 단연 최고다.
- 호나우두
말디니는 내게 있어서 아이돌 중 한명, 그를 뛰어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머리가 매우 좋은 선수며, 팀을 조작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이것은 말디니밖에 가능하지 않은것. 내 꿈의 하나는 그를 추월하는 것이었다.
- 호베르투 카를루스
그보다 더 뛰어난 풀백이 있었던가?
- 데니스 베르캄프
그는 모든 스포츠스타에게 존경받아 마땅한 인물이다.
- 릴리앙 튀랑
나에게 있어서 말디니는 본받아야만 하는 존재이다.
- 알레산드로 네스타
우리 팀(AC 밀란)이 이스탄불에서 패하지 않았떠라면, 말디니가 발롱도르의 주인공이 됐을 것이다.
- 안드리 솁첸코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라고 생각한다. 그는 밀란의 위대한 힘이며, 모범이 되는 선수다. 그와 같은 선수는 이제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 마시모 암브로시니
브라질이 펠레를 기리는 것처럼 우리도 말디니를 기려야한다.
- 지아니 리베라
순수하게 기술적인 능력으로만 따진다면, 호나우두가 나에게 있어 최고의 선수다. 그러나 모든 것을 종합해보면 파올로 말디니가 최고의 선수다. 진정한 수비수.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수비수. 앞으로도 최고일 수비수.
-안드레아 피를로
말디니는 20년 이상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나는 그에게 정중히 모자를 벗으며 정말 잘했다라고 밖에 할말이 없다.
- 다비드 트레제게

9. 경력

9.1. 우승

9.2. 리그 기록

시즌클럽소속리그리그FA컵유럽대회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1984/85 AC 밀란 세리에 A 1 0 0 0 0 0
1985/86 AC 밀란 세리에 A 27 0 6 0 6 0
1986/87 AC 밀란 세리에 A 29 1 7 0 - -
1987/88 AC 밀란 세리에 A 26 2 1 0 2 0
1988/89 AC 밀란 세리에 A 26 0 7 0 7 0
1989/90 AC 밀란 세리에 A 30 1 6 0 8 0
1990/91 AC 밀란 세리에 A 26 4 3 0 4 0
1991/92 AC 밀란 세리에 A 31 3 7 1 - -
1992/93 AC 밀란 세리에 A 31 2 8 0 10 1
1993/94 AC 밀란 세리에 A 30 1 2 0 4 0
1994/95 AC 밀란 세리에 A 29 2 1 0 11 0
1995/96 AC 밀란 세리에 A 30 0 3 0 8 0
1996/97 AC 밀란 세리에 A 31 1 3 0 6 0
1997/98 AC 밀란 세리에 A 30 0 7 0 - -
1998/99 AC 밀란 세리에 A 31 1 2 0 - -
1999/00 AC 밀란 세리에 A 27 1 4 0 6 0
2000/01 AC 밀란 세리에 A 31 1 4 0 14 0
2001/02 AC 밀란 세리에 A 15 0 0 0 4 0
2002/03 AC 밀란 세리에 A 29 2 1 0 19 0
2003/04 AC 밀란 세리에 A 30 0 0 0 9 0
2004/05 AC 밀란 세리에 A 33 0 0 0 13 1
2005/06 AC 밀란 세리에 A 14 2 0 0 9 0
2006/07 AC 밀란 세리에 A 18 1 0 0 9 0
2007/08 AC 밀란 세리에 A 17 1 0 0 4 0
2008/09 AC 밀란 세리에 A 30 0 0 0 2 0

9.3. 개인 수상

  • 브라보상[66]: 1989
  • UEFA 유로 올스타팀: 1988, 1996, 2000[67]
  • FIFA 월드컵 올스타팀: 1990, 1994
  • FIFA 올해의 선수: 2위 (1995)
  • 발롱도르: 3위 (1994, 2003)
  •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 1994
  • 세리에 A 올해의 수비수: 2004
  • FIFA 100: 2004
  • UEFA 올해의 팀: 2003, 2005
  • FIFA/FIFPro 월드 XI: 2005
  • ESM 올해의 팀: 1994/95, 1995/96, 1999/00, 2002/03
  • UEFA 클럽 풋볼 어워드: 최우수 수비수상 (2007)
  • UEFA 챔피언스리그 공로상: 2009
  • 마르카 레전드: 2009
  •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 2012
  • UEFA 유로 All-time XI: 2016

10. 같이 보기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 align=center><table width=320><table bordercolor=#3385d6> 파일:uefachampionsleaguelogo.png UEFA 챔피언스 리그
100클럽 가입 선수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3385d6 순서 [1]}}} [[UEFA 챔피언스 리그|{{{#3385d6 선수 이름 / 참가 클럽 [2]}}}]] [[UEFA 챔피언스 리그|{{{#3385d6 출전 횟수 [3]}}}]] 국적 우승 횟수
1 이케르 카시야스 파일:Champs_on_play.png
(Iker Casillas)
레알 마드리드 CF
FC 포르투 파일:Champs_on_play.png
177회 파일:스페인 국기.png ★★★
3회
2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파일:Champs_on_play.png
(Cristiano Ronaldo)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레알 마드리드 CF
유벤투스 FC 파일:Champs_on_play.png
162회 파일:포르투갈 국기.png ★★★★★
5회
3 샤비 에르난데스
(Xavi Hernández)
FC 바르셀로나 151회 파일:스페인 국기.png ★★★★
4회
4 라이언 긱스
(Ryan Giggs)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45회 파일:웨일스 국기.png ★★
2회
5 라울 곤살레스
(Raúl González)
FC 샬케 04
레알 마드리드 CF
142회 파일:스페인 국기.png ★★★
3회
6 파올로 말디니
(Paolo Maldini)
AC 밀란 135회 파일:이탈리아 국기.png ★★★★★
5회
6 리오넬 메시 파일:Champs_on_play.png
(Lionel Messi)
FC 바르셀로나 파일:Champs_on_play.png 135회 파일:아르헨티나 국기.png ★★★★
4회
8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파일:on_play.png
(Andrés Iniesta)
FC 바르셀로나 130회 파일:스페인 국기.png ★★★★
4회
9 클라렌스 세도르프
(Clarence Seedorf)
AFC 아약스
레알 마드리드 CF
AC 밀란
125회 파일:네덜란드 국기.png ★★★★
4회
10 폴 스콜스
(Paul Scholes)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24회 파일:잉글랜드 국기.png ★★
2회
11 잔루이지 부폰 파일:Champs_on_play.png
(Gianluigi Buffon)
파르마 칼초 1913
유벤투스 FC 파일:Champs_on_play.png
파리 생제르맹 FC
122회 파일:이탈리아 국기.png 0회
12 호베르투 카를루스
(Roberto Carlos)
레알 마드리드 CF
페네르바흐체 SK
120회 파일:브라질 국기.png ★★★
3회
12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파일:on_play.png
(Zlatan Ibrahimović)
AFC 아약스
유벤투스 FC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FC 바르셀로나
AC 밀란
파리 생제르맹 FC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20회 파일:스웨덴 국기.png 0회
14 사비 알론소
(Xavi Alonso)
레알 소시에다드
리버풀 FC
레알 마드리드 CF
FC 바이에른 뮌헨
119회 파일:스페인 국기.png ★★
2회
14 세르히오 라모스 파일:Champs_on_play.png
(Sergio Ramos)
레알 마드리드 CF 파일:Champs_on_play.png 119회 파일:스페인 국기.png ★★★★
4회
16 카를레스 푸욜
(Carles Puyol)
FC 바르셀로나 115회 파일:스페인 국기.png ★★★
3회
17 티에리 앙리
(Thierry Henry)
AS 모나코 FC
아스날 FC
FC 바르셀로나
112회 파일:프랑스 국기.png
1회
17 필리프 람
(Philipp Lahm)
FC 바이에른 뮌헨
VfB 슈투트가르트
112회 파일:독일 국기.png
1회
17 카림 벤제마 파일:Champs_on_play.png
(Karim Benzema)
올랭피크 리옹
레알 마드리드 CF 파일:Champs_on_play.png
112회 파일:프랑스 국기.png ★★★★
4회
20 페트르 체흐
(Petr Čech)
AC 스파르타 프라하
첼시 FC
아스날 FC
111회 파일:체코 국기.png
1회
20 다니엘 아우베스 파일:on_play.png
(Daniel Alves)
세비야 FC
FC 바르셀로나
유벤투스 FC
파리 생제르맹 FC
111회 파일:브라질 국기.png ★★★
3회
22 게리 네빌
(Gary Neville)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10회 파일:잉글랜드 국기.png ★★
2회
22 아르연 로번
(Arjen Robben)
PSV 에인트호번
첼시 FC
레알 마드리드 CF
FC 바이에른 뮌헨
110회 파일:네덜란드 국기.png
1회
24 존 테리
(John Terry)
첼시 FC 109회 파일:잉글랜드 국기.png
1회
24 제라르 피케 파일:Champs_on_play.png
(Gerard Piqué)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FC 바르셀로나 파일:Champs_on_play.png
109회 파일:스페인 국기.png ★★★★
4회
26 안드레아 피를로
(Andrea Pirlo)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AC 밀란
유벤투스 FC
108회 파일:이탈리아 국기.png ★★
2회
26 애슐리 콜 파일:on_play.png
(Ashley Cole)
아스날 FC
첼시 FC
AS 로마
108회 파일:잉글랜드 국기.png
1회
26 파트리스 에브라
(Patrice Evra)
AS 모나코 FC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유벤투스 FC
108회 파일:프랑스 국기.png
1회
26 데이비드 베컴
(David Beckham)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레알 마드리드 CF
AC 밀란
파리 생제르맹 FC
107회 파일:잉글랜드 국기.png
1회
30 빅토르 발데스
(Víctor Valdés)
FC 바르셀로나 106회 파일:스페인 국기.png ★★★
3회
30 세르지오 부스케츠 파일:Champs_on_play.png
(Sergio Busquets)
FC 바르셀로나 파일:Champs_on_play.png 106회 파일:스페인 국기.png ★★★
3회
32 프랭크 램파드
(Frank Lampard)
첼시 FC
맨체스터 시티 FC
105회 파일:잉글랜드 국기.png
1회
32 토마스 뮐러 파일:Champs_on_play.png
(Thomas Müller)
FC 바이에른 뮌헨 파일:Champs_on_play.png 105회 파일:독일 국기.png
1회
34 세스크 파브레가스 파일:on_play.png
(Cesc Fàbregas)
아스날 FC
FC 바르셀로나
첼시 FC
104회 파일:스페인 국기.png 0회
35 올리버 칸
(Oliver Kahn)
FC 바이에른 뮌헨 103회 파일:독일 국기.png
1회
35 루이스 피구
(Luís Figo)
FC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 CF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103회 파일:포르투갈 국기.png
1회
37 안드리 셰브첸코
(Andriy Shevchenko)
FC 디나모 키예프
AC 밀란
첼시 FC
100회 파일:우크라이나 국기.png
1회
37 마누엘 노이어 파일:Champs_on_play.png
(Manuel Neuer)
FC 샬케 04
FC 바이에른 뮌헨 파일:Champs_on_play.png
100회 파일:독일 국기.png
1회
현재 기록은 UEFA 챔피언스 리그/2018-19 시즌 종료 후 기준이고 매 경기가 종료될 때마다 업데이트 됩니다.
[1]: 순서는 UEFA 챔피언스 리그 출장 횟수가 많은 순서로 나열하고 출장 횟수가 같을 시 UEFA 챔피언스 리그에 먼저 데뷔한 선수를 우선순위로 둡니다.
[2]: 파일:Champs_on_play.png : 현재 UEFA 챔피언스 리그에 참가하고 있는 선수 및 클럽을 의미합니다. 파일:on_play.png : 현역선수를 의미합니다.
[3]: 본선 조별리그가 진행되기 이전의 예선 경기 기록은 제외한 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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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레프트백, 센터백, 라이트 백[2] 양발 사용 가능[3]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출전 역대 3위, 국가대표 마지막 경기가 2002년 대전 월드컵 경기장에서 있었던 우리 나라와의 월드컵 16강전이다.[4] 프랑코 바레시의 6번과 더불어 AC밀란이 지정한 두 개의 영구결번 중 하나[5] 이탈리아어 di는 전치사로써 영어의 of에 해당한다.[6] 밀란 제너레이션의 1,2기를 모두 주전으로 뛴 선수는 말디니가 유일하지만,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는 1기는 주전으로 2기는 주로 교체 멤버로 뛰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이 20여년 동안 밀란의 후방 수비를 책임지며 전성기를 이끌어 간 핵심 멤버였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7] 카를로 안첼로티가 1987년부터 1992년까지 밀란에서 선수로 뛸 때는 물론이고, 2001년에 밀란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에도 여전히 1군 선수였다.[8] 물론 30대 중반 이후에는 체력 문제로 센터백으로 전향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풀백으로도 뛰었다.[9] 미셸 플라티니를 동경하여 유벤투스 FC에 가고 싶어했지만 부친의 영향으로 밀란에서 활약한다.[10] 밀란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 횟수가 7회라는 점으로 볼 때 클럽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태반 이상의 공적을 세운 셈.[11] 미셸 플라티니, 디에고 마라도나, 프랑코 바레시, 마르코 판바스턴, 로타어 마테우스, 로베르토 바조, 호마리우,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조지 웨아, 마티아스 잠머, 데니스 베르캄프, 히바우두, 지네딘 지단, 호나우두, 루이스 피구, 올리버 칸, 스티븐 제라드, 프랭크 램파드, 데이비드 베컴, 라울 곤살레스,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프란체스코 토티, 호베르투 카를루스, 카푸, 릴리앙 튀랑, 안드리 솁첸코, 티에리 앙리, 파비오 칸나바로, 알레산드로 네스타, 카를레스 푸욜, 잔루이지 부폰, 호나우지뉴, 카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12] 선수생활을 한 년도로만 따지면 가에타노 시레아, 마르코 타르델리, 파올로 로시, 울리 슈틸리케 (1982년 월드컵에 출전한 선수들이다.) 까지도 겹친다.[13] 말디니의 1군 데뷔때 호날두는 이 세상에 없었다... 말디니의 1군 데뷔 1985년 1월 20일, 호날두 출생 1985년 2월 5일. 심지어 21살이나 어린 알레샨드리 파투와도 경기를 같이 뛴 적이 있으며, 말디니가 88/89시즌 유러피언컵(UEFA 챔피언스 리그의 전신) 결승전에 출전하여 우승의 영광을 누렸을 때 파투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14] AC 밀란과 바르셀로나는 05/06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만났지만 메시는 그때 부상으로 16강전에서 아웃당했다.[15] 여담이지만 네드베드의 수상으로 끝난 03년도 발롱도르 시상 당시 이탈리아 축구계는 전폭적으로 말디니의 수상을 지지했다.(유벤투스 라인은 차마 네드베드와 말디니 둘 중에 하나를 지지할 수가 없어서 조심스러운 중립을 유지) 네드베드 수상 이후에 이탈리안 축구인들의 반응이 의외로 코믹하다. 특히 가투소와 토티. 해당 링크[16] 1990 월드컵, 1994 월드컵, 1998 월드컵, 2002 월드컵[17] UEFA 유로 1988, UEFA 유로 1996, UEFA 유로 2000[18] 페리와 베르고미는 유기적인 포지션 체인징을 보여주었다. 일단은 페리는 센터백.[19] 이때 조프는 공격을 말그대로 알아서 하게 냅뒀다. 피오레나 델 피에로 같은 흔들기 명인들이나 인자기 같은 한방이 있는 선수들의 자율적인 플레이를 디노 조프 답지 않게 용인했는데, 특히 델 피에로 같은 경우는 드리블만으로도 네덜란드를 압박하는 장면을 꽤나 만들었다. 이후 후반에 교체로 투입된 토티도 특유의 배짱과 다이나믹함으로 네덜란드의 파상공세를 저지하는 역할을 했고, 역시 교체 투입된 델 베키오도 높이로 네덜란드 수비진을 압박했다.[20] 수비 포메이션은 이후 페소토가 알베르티니와 교체되면서 3백에 2명의 윙백을 쓰는게 아니라 철저히 수비를 염두한 5백으로 전환된다.[21] 핸드볼 파울을 피하기 위해서[22] 아쉽게도 한국에서 돌아다니는 영상에서는 이 부분이 짤려있다.[23] 이천수가 JTBC 뉴스룸에서 밝힌 바로는 일부러 깠다고 했다.[24] 이미 최다 시간 출전 기록자였다.[25] 보통 말디니가 센터백에서 뛸때는 전문 센터백인 파트너의 커맨드를 받으며 보조를 맞췄다. 바레시, 코스타쿠르타, 네스타 등.[26] 이때 대표팀 감독이 바로 밀란 제네레이션 시절 은사였던 아리고 사키였다.[27] 바레시는 부상으로 아웃. 기적적으로 결승전에서 복귀한다. 역으로 바레시의 공백을 완벽하게 커버했던 코스타쿠르타는 경고 누적으로 결승전 불참.[28] 사실 이것은 운이 없다기보단 말디니 스스로 들어온 복을 찬 것에 보는 것이 더 가깝다. 출전하지 말라고 한 것이 아니라 본인이 출전을 거부한 것이다. 아마 말디니가 출전을 거부하지 않았다면 국가대표 커리어에 월드컵 우승이라는 기록을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29] 그래서 데려온게 칼라제다.[30] 네스타도 말디니와 함께 밀란의 2000년대 2차례의 챔스 우승의 주역이었다. 다만 맨유에선 트레블의 주역이었으나 밀란에선 무관으로 그친 스탐이나 아예 주역으로 챔스우승을 해보지 못한 카푸는...그대신 카푸는 국대커리어가 끝판왕[31] 카카와의 공중 볼 경합 중에 키엘리니가 손으로 카카의 얼굴을 쳤는데 그걸 본 말디니가 "너 이 새끼 왜 우리 카카 때려"하면서 멱살을 잡은 것.[32] 이 일로 키엘리니는 완전 상처를 받았는데, 다름 아닌 키엘리니의 우상이 바로 말디니이기 때문. 키엘리니는 프로 데뷔 시절부터 레프트 백과 센터 백을 오갈 수 있는 차세대 말디니로 각광받기도 했고, 본인도 말디니를 따르다 못해 본인은 그에 비하면 미천한 몸이라고까지 하며 하악댔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당시 장면을 보면 멱살은 잡혔으나 싸우거나 화를 내기는 커녕 말디니에게 하소연하는 키엘리니의 모습에서 억울함과 서러움이 뚝뚝 묻어난다. 실제로 나중에 울었다...안습. 결국 말디니가 추후에 사과했다. 경기내내 너무 거친스타일로 카카를 괴롭히는 키엘리니를 보고 참다가 터진...[33] 심지어 상대였던 로마의 감독 스팔레티도 격분하였다.[34] 미국 메이저리그 사커의 하부리그로 2부리그 개념이지만 별도의 승강제는 없다.[35] 말디니가 건재하던 시절의 밀란은 챔스 진출은 기본으로 깔고 심지어는 결승 진출만 8회라는 정신 나간 전적을 자랑해서 강적인 면모를 자랑하는 팀이었는데 지금은 유로파리그 진출도 굉장히 어렵다![36] 당연히 폭망한 밀란에 대해 지적을 한 적이 있다.[37] 지금 밀란이 망란화되면서 최근까지 클럽을 지탱하던 모든 레전드와 척을 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게 다 레전드 대우를 형편없이 한 밀란 보드진, 그리고 베 총리 때문이다.[38] 1994 FIFA 월드컵 미국 당시 결승전 상대였던 브라질 선수들(베베투, 호마리우 등)에게도 스피드로 상대할 수 있을 정도[39] 1994 미국 월드컵 때도 말디니는 레프트백이 아닌 코스타쿠르타와 함께 센터백을 보았다.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과의 경기에서 센터백으로 출장했고 국대 은퇴 경기를 장식했다.[40] 현 시대에도 데드볼 상황에까지 필요에 따라 양발을 모두 쓰는 선수는 거의 없다. 오죽하면 게임에서도 제대로 구현되지 않은 경우가 흔하다[41] 대표적으로 유로 2000 4강 네덜란드전에서는 승부차기에서 왼발로 킥을 했다. 비록 결과는 실축이었지만.[42] 공격할 때 농락당하는 선수는 지네딘 지단이고, 수비할 때 농락당하는 선수는 유리 조르카에프이다.[43] 오른발 사용로 만들어낸 수많은 어시스트와 골 중에서도 단연 팬들의 뇌리에 강렬하게 남은 것은 2005년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킥오프 1분만에 피를로의 프리킥을 집어넣은 결승전 최고령 득점일 것이다. 하지만 로쏘네리들은 그런 거 기억하기 싫겠지[44] 오베르마스는 세계 축구 역사에서 손꼽히는 엄청난 준족이다. 100m 최고기록이 10초6이었다고 알려져 있다.[45] 당시 말디니의 나이는 한국 나이로 33세였다. 참고로 당시 오베르마스의 나이는 한창 팔팔한 28살... 저 나이에도 그런 미친 스피드를 탑재한 상태라는 것이다....... 애초에 테크닉이 아무리 좋아도 못따라 잡으면 무슨 소용인가?[46] 90년대 후반에는 단연코 월드클래스 윙어였다. 2000년에 바르셀로나로 이적하면서 기록한 250만 파운드의 이적료는 당시 네덜란드 선수 이적료 최고가를 경신한 기록. 다만 바르샤 이적 이후 부상으로 인한 스피드 저하로 폼이 확 죽어버리며 조기은퇴를 하고만다.[47] 혼자서 2명을 상대하면 당연히 뚫리니까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서는 좀 과장된 서술이라고 받아들이면 된다. 2명을 정확히는 번갈아가면서 상대한 건데 체력적으로도 그렇고 스타일도 그렇고 놀라운 플레이였던 것은 맞다.[48] 1994년 월드컵 때 주장은 프랑코 바레시였으나, 조별리그에서 부상을 당해서 조별리그와 결승전에서만 출전했다.[49] 참고로 바레시는 출장을 하지 못 하는 동안 재활 치료를 받고 있었다 ㅎㄷㄷ[50] 이때는 나이가 나이인지라 말디니보다는 네스타, 카카 등의 활약이 굉장히 돋보였지만, 말디니의 플레이도 나이에 비하면 굉장히 준수한 플레이였다.[51] 물론 그렇다고 해서 중앙 수비로 형편없었다는건 절대 아니고 준수했다. 풀/윙백으로는 역대 최고급이었고 센터백으로도 당대에 뛰어난 선수였다. 93/94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4:0 승리, 94년 월드컵 준우승, 2000년대의 밀란의 두차례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 등은 센터백 말디니가 이룬 위대한 업적들이다. 다만 이탈리아에는 센터백으로서는 말디니보단 바레시나 네스타 등이 더 뛰어났다. 단 바레시나 네스타는 당대 세계 최고 센터백으로 첫 손 꼽히던 선수들로, 현재까지도 언론사 역대 최고 센터백 투표, 여러 선수들이 뽑은 직접 겪어 본 베스트11 등에 꾸준히 순위권으로 이름을 올리는 올타임 레전드라는 건 함정...수비강국 이탈리아[52] 2위를 뽑는다면 90년대 이후에는 현역선수를 제외하고 호베르투 카를로스비센테 리사리수 등을 꼽을 수 있겠지만 올타임 기준으로 뽑는다면, 그들의 위치는 확 뒤로 밀려난다. 브라질 내에서만 하더라도 월드컵 4회 출전에 2회의 우승을 이끈 니우통 산투스가 있고, 인테르의 전설인 지아친토 파케티라든가, 토탈 풋볼의 수비 핵심이었던 뤼트 크롤 등이 버티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말디니는 꿋꿋하게 올타임 베스트 레프트백 No. 1을 지키고 있다.[53] 자세히 보면 첫 문장에서 팀 닥터와 말디니의 이름이 바뀐 것을 볼 수 있다.잠깐 그게 중요한 게 아닐텐데[54] 사실 이 없었으면 독일이 절대로 못이겼을 경기였다. 매우 졸전을 펼치다가 결국 올리버 뇌빌이 한골을 겨우 넣어 독일이 1:0으로 이겼기때문. 독일빠인 차범근마저 독일답지 않았다며 매우 혹평했던 경기로 유명하다.[55] 피온4는 TT시즌에 있는 센터백 빼곤 워낙 다른 센터백들의 성능이 느리고 구려서 TT시즌이 나오기 전까지는 말디니와 비에이라(참고로 비에이라는 주 포지션이 박투박 미드필더이다)조합이 가장 많이 쓰였다. 그래서 피온4는 엄청나게 욕을 먹는중. 그래도 말디니는 레프트백에 놔도 단연 최고라 할 만 하다. 레프트백에 두기엔 재능낭비라는 얘기를 들을 뿐... TC시즌 말디니는 아예 CB로 표기되서 나왔는 데, 94 챔피언스 리그 우승 당시 활약을 기반으로 제작했다고 한다. 이때 말디니는 센터백이었으니 어찌 보면 적절한 고증.[56] 리그나 국가 대항전에서 호나우두, 디에고 마라도나, 하비에르 사네티,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로베르토 바조같은 강적들을 상대하고 밀란에서는 프랑크 레이카르트, 마르코 판바스턴, 루드 굴리트같은 레전드들과 훈련했던 말디니 입장에서는 납득이 안갈 거 같다.[57] 챔피언스리그에서 100경기 이상 뛴 선수는 라울 곤살레스, 호베르투 카를루스, 안드리 솁첸코, 파올로 말디니, 데이비드 베컴, 올리버 칸, 루이스 피구, 클라렌서 세도르프, 라이언 긱스, 폴 스콜스, 티에리 앙리, 게리 네빌, 페르난도 모리엔테스, 이케르 카시야스, 사비 에르난데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리오넬 메시, 필립 람까지 모두 18명 뿐이다.[58] 이 기록을 달성한 또 다른 선수로는 라이언 긱스, 하비에르 사네티 등 몇명 되지 않는다.[59] 리그에서만 647경기를 뛰었는데, 이는 유럽 4 출전선수 중 가장 많은 기록이다.[60] 프리미어리그 - 라이언 긱스 (632경기), 프리메라리가 - 안도니 수비사레타 (622경기), 분데스리가 - Karl-Heinz Körbel (602경기)[61] 이런 사례는 말디니 부자를 포함하여 딱 세 번 있었다. 레알 마드리드의 마누엘 산치스 마르티네스와 그의 아들 마누엘 산치스 온티유엘로(마누엘 "마놀로" 산치스 온티유엘로). 바르셀로나의 카를레스와 그의 아들 세르히오 부스케츠. 신기하게도 모두 부자가 같은 팀이었다.[62] 결승 상대는 당시 벨라 구트만의 저주를 첫타로 맞은 에우제비우SL 벤피카였다.[63] 이 기록을 넘는 선수는 로타어 마테우스(25번)밖에 없다. A매치 150경기를 뛴 괴물인 것은 덤. 최근엔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24번째 경기를 뛰며 말디니의 기록을 넘은 또 하나의 인물이 되었다.물론 모든 경기가 풀타임은 아니었기에 말디니보다 플레이 시간은 적다.[64] 2위는 2052 분을 뛴 마테우스[65] 말디니는 이미 20대 말 30대 초반이었던 20세기 말, 21세기 초반에도 역사상 최고의 선수 20위 권에 랭크 되는 리빙 레전드였다. 이후에도 10년 가까이 더 뛰고,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추가하면서 꾸준한 클래스를 과시하면서 선수 평가가 더욱 올라갔고, 요즘은 역사상 최고의 선수 가끔씩 10걸에도 랭크되고 있다.[66] 이탈리아의 스포츠 전문지 《궤린 스포르티보》(Guerin Sportivo)가 매년 유럽의 젊은 축구 선수 가운데 가장 뛰어난 선수에게 수여하는 상[67] 말디니와 함께 올스타팀에 3번 수상된 선수는 로랑 블랑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