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4 21:22:44

잔루카 팔리우카

잔루카 팔리우카의 기타 정보
파일:internazionale_hof.png[br]FC INTERNAZIONALE MILANO HALL OF F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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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ruby(쳉가, ruby=발테르)] [ruby(사네티, ruby=하비에르)] [ruby(마테우스, ruby=로타어)] ㅤㅤㅤㅤ
호나우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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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前 축구선수
파일:gianluca pagliuca.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잔루카 팔리우카[1]
Gianluca Pagliuca
출생 1966년 12월 18일 ([age(1966-12-18)]세)
이탈리아 볼로냐
국적
[[이탈리아|]][[틀:국기|]][[틀:국기|]]
신체 190cm
직업 축구선수 (골키퍼 / 은퇴)
소속 선수 볼로냐 FC 1909 (1984~1986 / 유스)
UC 삼프도리아 (1987~1994)
인테르나치오날레 (1994~1999)
볼로냐 FC 1909 (1999~2006)

아스콜리 칼초 1898 FC (2006~2007)
국가대표 39경기 (이탈리아 / 1991~1998)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기록
5.1. 대회 기록5.2. 개인 수상5.3. 수훈
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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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의 前 축구선수. 리즈 시절 삼프도리아와 1990년대 이탈리아 대표팀의 주전 골키퍼였다.

2. 클럽 경력

볼로냐 FC 유스 출신이었으나, 부야딘 보슈코브 감독의 눈에 띄어 1987년 삼프도리아로 이적. 주전 골키퍼로 맹활약하였다.

특히 팔리우카는 90/91 시즌 리그 31라운드에 1위를 달리던 삼프도리아를 승점 4점 차이로 맹추격하던 리그 2위팀인 인테르를 상대로 치른 경기에서 로타어 마테우스의 PK를 비롯해 14개의 슈팅을 선방해내는 인생경기를 벌임으로써 팀의 2:0 승리를 이끌어 팀의 해당 시즌 리그 우승에 큰 공헌을 했다.

팔리우카는 삼프도리아의 창단 첫 스쿠데토유러피언 컵위너스컵 우승에 기여하며 1994년까지 삼프도리아에서 활약했다.

1994-95 시즌을 앞두고, 팔리우카는 이적료 700만$에 인테르로 이적, 2년 연속 UEFA컵 결승 진출에 기여했다. 96-97 UEFA컵에서는 FC 샬케 04에 1, 2차전 합계 승부차기에서 패했지만, 97-98 시즌에는 SS 라치오를 3-0으로 승리하며 UEFA컵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1999-2000 시즌을 앞두고 국가대표 골키퍼 자리를 놓고 경합했던 안젤로 페루치가 인테르에 입단하자 고향팀 볼로냐 FC로 이적해 세리에 B 시절인 2005-06 시즌까지 뛰며 노익장을 보여줬고, 2006-07 시즌 아스콜리 칼초 1898 FC에서 역대 최고령 출장 기록을 경신한 뒤 현역에서 은퇴했다.

2021년 12월, 골키퍼 부문으로 2021년 인테르의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3. 국가대표 경력

삼프도리아에서의 눈부신 활약을 인정받아 1990 이탈리아 월드컵 때 처음으로 아주리 군단에 합류했다. 하지만 발테르 쳉가의 그늘에 가려 1경기도 출전하지 못했고, 1991년 6월 소련과의 친선경기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이 후 치열한 주전 경합 끝에 1994 미국 월드컵 지역예선부터 주전 골키퍼 자리를 굳혔다.

그리고 대망의 1994 미국 월드컵. 팔리우카는 여기서 극과 극을 오가는 플레이로 자신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렸다. 아일랜드와의 경기에서 레이 휴튼의 그림같은 왼발 로빙슛의 희생양이 되더니, 노르웨이와의 2차전에서는 아크까지 뛰쳐나와 상대의 역습을 막아내려다가 핸드볼 파울을 범해 퇴장당하며[2] 후보 골키퍼였던 루카 마르케자니가 노르웨이전 로베르토 바조를 대신해 출전하게 되었고[3],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멕시코전과 16강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 선발로 나섰다. 하지만 아리고 사키 대표팀 감독은 출전 정지가 풀린 스페인과의 8강전부터 팔리우카를 재신임했고, 팔리우카는 사키 감독의 기대에 부응해 브라질과의 결승전에서 120분을 무실점으로 넘긴 뒤, 승부차기에서도 브라질 1번 키커인 마르시우 산투스의 킥을 막아내며 앞 차례였던 프랑코 바레시의 실축을 만회하고 자신의 진가를 가감없이 발휘했다. 하지만 다니엘레 마사로클라우지우 타파레우 골키퍼의 선방에 막히고 마지막 키커인 로베르토 바조의 킥이 홈런(...)이 되면서 2-3으로 패배, 다 잡은 우승컵을 놓쳤다.

이 후 안젤로 페루치와의 주전 경쟁에서 밀리면서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대표팀 와일드 카드를 제외하고는 한동안 아주리 군단의 멤버로 뽑히지도 못하다가 이후 다시 발탁되었고 1998 프랑스 월드컵 직전에 페루치가 전치 1개월 부상을 입으면서 다시 메이저대회 주전으로 참가하였다. 4년 전과는 달리 안정적으로 수비진을 지휘하며 팀을 8강까지 이끌었지만 프랑스와의 8강전에서 또 승부차기로 패했고[4],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국가대표와 작별했다.

4. 플레이 스타일

190cm의 장신에 운동능력까지 겸비한 이상적인 골키퍼였다. 아울러 페널티 킥 선방에도 일가견이 있어서 세리에 A 순혈 골키퍼 중에는 최고 기록인 24개의 세이브를 기록했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 구에린도로: 1996-97, 2004-05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올해의 선수: 1995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명예의 전당: 2021

5.3. 수훈

  •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장 5등급: 1991

6. 여담

  • 현역시절 유니폼을 막 입었다. 팀 스폰서가 아식스인데 전에 입던게 편해서 아식스 로고만 위에 붙였다거나, 엄브로 킷이 이뻐서 개인적으로 요청하고 입었다거나..가제타 델로 스포르트와의 인터뷰


[1] 이탈리아어에서 i는 앞에 오는 자음과 결합해 반모음의 지위를 갖기에 실제 음절은 팔류카에 가깝게 발음된다.[2] 참고로 이는 FIFA 월드컵 역사상 최초의 골키퍼 퇴장이라고 한다(...)[3] 경기는 이탈리아의 1-0 승리.[4] 여기서도 프랑스의 2번 키커 비셴테 리사라수의 킥을 막아내며 제 몫은 했다. 그러나 동료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루이지 디 비아조의 실축으로 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