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22 17:43:10

카를로 안첼로티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안첼로티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본 인물의 아들에 대한 내용은 다비데 안첼로티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파일:라리가 EA SPORTS 로고.svg
2023-24 시즌 구단별 감독
{{{#!wiki style="margin:0 -10px -5px"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555555,#aaaaaa
호세 라몬
산도발

파일:그라나다 CF 로고.svg
{{{#!wiki style="display: inline; background-color: currentcolor; padding: 3px 3px; border-radius: 2px; background: #ff4b44; font-size: 0.8em;"
가르시아
피미엔타

파일:UD 라스팔마스 로고.svg
이니고
페레스

파일:라요 바예카노 로고.svg
카를로
안첼로티

파일:레알 마드리드 CF 로고.svg
하비에르
아기레

파일:RCD 마요르카 로고.svg
사비
에르난데스

파일:FC 바르셀로나 로고.svg
루벤
바라하

파일:발렌시아 CF 로고.svg
마누엘
펠레그리니

파일:레알 베티스 발롬피에 로고.svg
마르셀리노
가르시아 토랄

파일:비야레알 CF 로고.svg
키케
플로레스

파일:세비야 FC 로고.svg
클라우디오
히랄데스

파일:RC 셀타 데 비고 로고.svg
이마놀
알과실

파일:레알 소시에다드 로고.svg
디에고
시메오네

파일: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로고(2017~2024).svg
에르네스토
발베르데

파일:아틀레틱 클루브 로고.svg
루이스
가르시아

파일:데포르티보 알라베스 로고.svg
페페

파일:UD 알메리아 로고.svg
하고바
아라사테

파일:CA 오사수나 로고.svg
미첼
산체스

파일:지로나 FC 로고.svg
마우리시오
펠레그리노

파일:카디스 CF 로고.svg
호세
보르달라스

파일:헤타페 CF 엠블럼.svg
<colbgcolor=#ffffff,#191919> 파일:스페인 국기.svg 라리가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세리에 A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프리메이라 리가파일:튀르키예 국기.svg 쉬페르리그
전 세계 리그 및 대표팀 감독
}}}}}}}}}}}}}}} ||
카를로 안첼로티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둘러보기 틀 모음
대표팀
클럽
파일:유벤투스 FC 로고.svg

39대
파일:AC 밀란 로고.svg

66대
파일:첼시 FC 로고.svg

31대
파일:파리 생제르맹 FC 로고.svg

32대
파일:레알 마드리드 CF 로고.svg

59대, 66대
파일:FC 바이에른 뮌헨 로고.svg

54대
파일:SSC 나폴리 로고.svg

79대
파일:에버튼 FC 로고.svg

33대

AS 로마 주장
아고스티노 디바르톨로메이
(1980~1984)
카를로 안첼로티
(1984~1987)
주세페 자니니
(1987~1996)
}}} ||
카를로 안첼로티의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파일:AIC_logo.png
2000-01 · 2003-04
파일:월드사커 로고.png
베스트팀

2014 FIFA 올해의 감독
수상
요아힘 뢰프
2위
카를로 안첼로티
3위
디에고 시메오네
2022 FIFA 올해의 감독
수상
리오넬 스칼로니
2위
카를로 안첼로티
3위
펩 과르디올라
}}} ||
카를로 안첼로티의 기타 정보
[ 펼치기 · 접기 ]
파일:logo_asr_hall_of_fame.png
AS Roma Hall Of Fame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파일:c1ianztwdtnp0gpu1zep.jpg
추가연도 등록인물
2012 프랑코 탕크레디 (GK), 카푸, 자코모 로시, 아우다이르, 프란체스코 로카 (DF)
풀비오 베르나르디니, 아고스티노 디바르톨로메이, 호베르투 파우캉, 브루노 콘티 (MF)
로베르토 프루초, 아메데오 아마데이 (FW)
2013 아틸리오 페라리스 (MF), 세바스티아노 넬라 (DF), 주세페 잔니니 (MF), 빈첸초 몬텔라 (FW)
2014 알시데스 기지아 (MF), 뱅상 캉델라 (DF), 카를로 안첼로티 (MF), 루디 푈러 (FW)
2015 귀도 마제티 (GK), 세르조 산타리니 (DF), 다미아노 톰마지 (MF),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FW)
2016 조르조 카르피[1] (MF), 토니뉴 세레주 (MF), 잔카를로 데시스티 (MF), 아르카디오 벤투리 (MF)
2017 프란체스코 토티 (FW)
2018 마리오 데미켈리[2] (DF), 줄리아노 타콜라 (FW), 로돌포 폴크 (FW)


[1] 통합 전 클럽인 FBC 로만 출신이다.[2] 통합 전 클럽인 포르티투도 로마 출신이다.

}}}}}}}}} ||

파일:AC 밀란 로고.svg[br]AC MILAN HALL OF FAME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e30013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HAMPIONS
8 [ruby(에바니, ruby=알베리고)] 5 [ruby(코스타쿠르타, ruby=알렉산드로)] 13 [ruby(네스타, ruby=알렉산드로)] 21 [ruby(피를로, ruby=안드레아)]
5 [ruby(안퀼레티, ruby=안젤로)] 11 [ruby(모라, ruby=브루노)] 4 [ruby(안첼로티, ruby=카를로)] 11 [ruby(갈리, ruby=카를로)]
6 [ruby(말디니, ruby=체사레)] 32 [ruby(아비아티, ruby=크리스티안)] 10 [ruby(세도르프, ruby=클라렌스)] 9 [ruby(마사로, ruby=다니엘레)]
32 [ruby(베컴, ruby=데이비드)] 10 [ruby(사비체비치, ruby=데얀)] 4 [ruby(알베르티니, ruby=데메트리오)] 1 [ruby(쿠디치니, ruby=파비오)]
5 [ruby(갈리, ruby=필리포)] 9 [ruby(인자기, ruby=필리포)] 6 [ruby(바레시, ruby=프랑코)] 8 [ruby(가투소, ruby=젠나로)]
1 [ruby(게치, ruby=조르조)] 1 [ruby(갈리, ruby=조반니)] 7 [ruby(로데티, ruby=조반니)] 4 [ruby(트라파토니, ruby=조반니)]
9 [ruby(알타피니, ruby=조제)] 4 [ruby(칼라제, ruby=카카베르)] 5 [ruby(슈넬링거, ruby=칼 하인츠)] 10 [ruby(후이 코스타, ruby=마누엘)]
8 [ruby(드사이, ruby=마르셀)] 2 [ruby(카푸, ruby=마르쿠스)] 23 [ruby(암브로시니, ruby=마시모)] 12 [ruby(지다, ruby=네우송)]
3 [ruby(말디니, ruby=파올로)] 5 [ruby(데 베키, ruby=렌초)] 22 [ruby(카카, ruby=히카르두)] 7 [ruby(도나도니, ruby=로베르토)]
10 [ruby(굴리트, ruby=루드)] 10 [ruby(보반, ruby=즈보니미르)]
GOLEADOR
9 [ruby(보피, ruby=알도)] 7 [ruby(파투, ruby=알레샨드리)] 7 [ruby(세브첸코, ruby=안드리)] 9 [ruby(인자기, ruby=필리포)]
10 [ruby(리베라, ruby=잔니)] 11 [ruby(산타고스티노, ruby=주세페)] 11 [ruby(그렌, ruby=군나르)] 9 [ruby(노르달, ruby=군나르)]
9 [ruby(조던, ruby=조)] 9 [ruby(알타피니, ruby=조제)] 10 [ruby(스키아피노, ruby=후안 알베르토)] 99 [ruby(호나우두, ruby=루이스 나자리우 지 리마)]
11 [ruby(시모네, ruby=마르코)] 9 [ruby(반 바스텐, ruby=마르코)] 9 [ruby(헤이틀리, ruby=마크)] 9 [ruby(콤빈, ruby=네스토)]
9 [ruby(비어호프, ruby=올리버)] 7 [ruby(프라티, ruby=피에리노)] 11 [ruby(비르디스, ruby=피에트로)] 8 [ruby(윌킨스, ruby=레이)]
22 [ruby(카카, ruby=히카르두)] 10 [ruby(바조, ruby=로베르토)] 80 [ruby(호나우지뉴, ruby=호나우두 지 아시스 모레이라)] 11 [ruby(이브라히모비치, ruby=즐라탄)]
BALLON D'OR
7 [ruby(세브첸코, ruby=안드리)] 9 [ruby(웨아, ruby=조지)] 10 [ruby(리베라, ruby=잔니)] 9 [ruby(반 바스텐, ruby=마르코)]
22 [ruby(카카, ruby=히카르두)] 10 [ruby(굴리트, ruby=루드)]
CAPTAINS
4 [ruby(비곤, ruby=알베르토)] 5 [ruby(벳, ruby=알도)] 9 [ruby(세베니니, ruby=알도)] 3 [ruby(말데라, ruby=알도)]
7 [ruby(스카리오니, ruby=알레산드로)] 4 [ruby(보노미, ruby=안드레아)] 7 [ruby(소르마니, ruby=안젤로)] 5 [ruby(트레레, ruby=아틸리오)]
4 [ruby(안노비치, ruby=카를로)] 8 [ruby(로바티, ruby=체사레)] 6 [ruby(말디니, ruby=체사레)] 8 [ruby(사니, ruby=디노)]
8 [ruby(모란디, ruby=에르네스토)] 3 [ruby(솔데라, ruby=프란체스코)] 3 [ruby(차가티, ruby=프란체스코)] 6 [ruby(바레시, ruby=프랑코)]
8 [ruby(레이카르트, ruby=프랑크)] 10 [ruby(리베라, ruby=잔니)] 11 [ruby(모레티, ruby=조반니)] 6 [ruby(안토니니, ruby=주세페)]
9 [ruby(노르달, ruby=군나르)] 9 [ruby(푸리첼리, ruby=에토레)] 5 [ruby(킬핀, ruby=허버트)] 1 [ruby(부폰, ruby=로렌초)]
9 [ruby(반 헤게, ruby=루이스)] 11 [ruby(키아루지, ruby=루차노)] 5 [ruby(페르베르시, ruby=루이지)] 5 [ruby(로사토, ruby=로베르토)]
2 [ruby(살라, ruby=마르코)] 23 [ruby(암브로시니, ruby=마시모)] 2 [ruby(타소티, ruby=마우로)] 10 [ruby(리드홀름, ruby=닐스)]
8 [ruby(토뇬, ruby=오메로)] 3 [ruby(말디니, ruby=파올로)] 9 [ruby(부리니, ruby=렌초)] 9 [ruby(안토넬리, ruby=로베르토)]
4 [ruby(베네티, ruby=로메오)] 6 [ruby(부리아니, ruby=루벤)] 9 [ruby(아르카리, ruby=피에트로)] 1 [ruby(로시, ruby=세바스티아노)]
27 [ruby(세르지뉴, ruby=세르지우 클라우지우 두스 산투스)] 5 [ruby(바티스티니, ruby=세르지오)] 33 [ruby(실바, ruby=티아고)] 11 [ruby(노벨리노, ruby=발테르)]
}}}}}}}}}}}} ||
레알 마드리드 CF
Real Madrid Club de Fútbol
파일:man50_t186_2023_1_003_000.png
<colbgcolor=#ffffff> 이름 카를로 안첼로티
Carlo Ancelotti
출생 1959년 6월 10일 ([age(1959-06-10)]세)
에밀리아로마냐 주 레조넬에밀리아현 레졸로
국적
[[이탈리아|]][[틀:국기|]][[틀:국기|]]
신체 179cm
직업 축구 선수 (미드필더[1]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ffffff> 선수 AC 파르마 (1976~1979)
AS 로마 (1979~1987)
AC 밀란 (1987~1992)
감독 이탈리아 대표팀 (1992~1995 / 수석 코치)
AC 레지아나 1919 (1995~1996)
AC 파르마 (1996~1998)
유벤투스 FC (1999~2001)
AC 밀란 (2001~2009)
첼시 FC (2009~2011)
파리 생제르맹 FC (2011~2013)
레알 마드리드 CF (2013~2015)
FC 바이에른 뮌헨 (2016~2017)[2]
SSC 나폴리 (2018~2019)[3]
에버튼 FC (2019~2021)
레알 마드리드 CF (2021~ )
국가대표 26경기 1골 (이탈리아 / 1981~1991)
정보 더 보기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ffffff> 가족 아들 다비데 안첼로티
사위 베니아미노 풀코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
1. 개요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4. 지도자 경력
4.1. 감독 스타일
4.1.1. 장점
4.1.1.1. 강력한 플랜 A를 구축하는 전술적 역량4.1.1.2. 덕장
4.1.2. 단점
4.1.2.1. 좁은 선수 기용 폭4.1.2.2. 부족한 세부 전술4.1.2.3. 친인척 관리
5. 평가6. 기록
6.1. 선수
6.1.1. 대회 기록
6.2. 감독
6.2.1. 대회 기록6.2.2. 개인 수상
6.3. 수훈
7. 여담8. 안첼로티에 대한 말, 말, 말9.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이탈리아AV배우 출신 감독. 현 레알 마드리드 CF 감독을 맡고 있다.

1992년 지도자로 데뷔한 후 1999년에 유벤투스의 감독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AC 밀란, 첼시, 파리 생제르맹, 레알 마드리드, 바이에른 뮌헨 등 다양한 클럽들을 지도하며 UCL 4회 우승과 유럽 5대 리그[4] 우승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2. 선수 경력

현역 시절 포지션은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등 미드필더 모든 위치에서 뛸 수 있었고 왼쪽 윙어도 소화할 수 있었다. 현역 시절에는 스타 플레이어로서 상당히 화려한 경력을 자랑했다. 지금은 성격 좋은 덕장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선수 시절엔 꽤 터프한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레졸로와 파르마 유스 팀을 거쳐 1976년 당시 세리에 C에 머물렀던 AC 파르마에서 선수 데뷔를 한 카를로 안첼로티는 비록 하부 리그에서였지만 뛰어난 활약을 선보였고, 3년 뒤인 1979년부터 명문 AS 로마로 이적한다.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a9a4e7a85cf604fbb08aca8c0e87efe8.jpg
안첼로티는 이적 첫 시즌부터 하부 리그 유망주였음에도 주전을 보장받으며 맹활약을 펼치게 된다. 특히 코파 이탈리아 결승전에서 토리노 FC를 상대로 역전 결승골을 터뜨리면서 팀은 3-2로 승리하고 안첼로티는 감격스러운 첫 우승컵을 들어올리게 된다. 특히 이 시절의 안첼로티는 말 그대로 토리노 킬러였다. 로마에게 유난히 취약했던 토리노 FC는 물론이고 그 당시 전성기를 구가하던 유벤투스에도 안첼로티의 로마는 매우 위협적이었다. 안첼로티의 등장 이후 로마는 유벤투스의 난적으로 급부상하게 된다. 유벤투스에게 플라티니가 있다면 로마에겐 안첼로티가 있을 정도로 매우 큰 전력을 차지하였다. 다만 1982년에 안첼로티가 부상으로 시즌을 날리게 되고 로마는 3위에 그치고 만다. 그러나 안첼로티는 1년 만에 돌아왔고 로마는 다시금 살아나 마침내 41년 만의 스쿠데토를 얻어낸다. 그렇게 처음으로 유러피언 컵도 출전하여 1라운드와 16강 경기를 뛰며 팀의 승리에 공헌하였지만 유벤투스와의 리그 경기에서 부상을 당해 또 시즌을 쉬게 된다. 결국 안첼로티를 또 잃은 로마는 유러피언 컵과 세리에 A에서 준우승에 그치고 코파 이탈리아 우승만 건지고 만다. 그 후, 로마의 주장 아고스티노 디바르톨로메이가 은퇴를 하였고 안첼로티는 그의 후임으로 주장에 임명된다. 그러나 그가 주장으로 있던 3년 동안 로마가 얻은 우승컵은 코파 이탈리아 하나에 그치고 만다.
파일:external/www.tifomilan.it/n_ac_milan_carlo_ancelotti-5140906.jpg
안첼로티는 1987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타겟이 되어 AC 밀란에 입단하며 밀란 제너레이션의 일원이 된다. 그리고 밀란에서 처음 보내게 되는 1987/88 시즌에 안첼로티는 5년 만의 첫 스쿠데토를 획득한다. 1988/89 시즌에는 결승전에서 풀 타임을 뛰었고 CSA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를 4-0으로 꺾으며 처음으로 빅 이어도 만져보게 된다. 바로 다음 해에는 SL 벤피카를 상대로 1-0 승리를 거두며 다시 타이틀을 따냈고, 밀란을 유러피언 컵에서 2년 연속으로 우승하게 한다. 그렇게 황금기를 보내던중에 1992년, 또 부상을 당해 더 이상 선수 생명을 이어갈 수 없었고 안첼로티는 그대로 밀란에서 현역 은퇴를 선언한다.

승부의 신이라는 책에서 AC 밀란에서 선수로 뛸 당시 파비오 카펠로 감독이 팀에서 제외시킨다고 반감을 가진 적이 있어서 이유를 들을 생각도 없었고, 훈련에도 참가하지 않은 적이 있다고 인터뷰한다. 안첼로티가 감독이 되면 이해가 될 거라는 카펠로 감독의 말에 지금은 누구보다도 그 말을 잘 이해한다고 한다.

3. 플레이 스타일

오늘날의 푸근한 명감독 이미지에 다소 묻힌 감이 없지않아 있지만, 선수 안첼로티 또한 '패스가 뛰어난 육각형 미드필더'로 이름을 떨친 엄청난 월드클래스 선수였다. 이탈리아 축구가 세계를 평정하던 시절에도, 안첼로티는 같은 이탈리아 국적 선수들 중에서도 발군으로 꼽혔다. 안드레아 피를로같이 넓은 시야, 기민한 볼 컨트롤, 정확한 패스능력으로 정평이 난 선수였지만 피를로와는 달리 굉장히 적극적으로 필드 전체를 뛰어다녔기 때문에 수비와 공격 모두 곧잘 했다. 어쩌면 본인 스스로가 이렇게 미드필더로서의 덕목을 고루 가진 월드클래스였기 때문에 먼 훗날 자신의 장점 절반씩을 극대화해놓은 피를로와 젠나로 가투소 조합의 가능성을 꿰뚫어보고, 완성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엄청난 활동량을 가진 패스마스터로 유명했던 선수로, 패스 공급자로서 뛰어난 개인기, 볼 컨트롤과 창의력을 갖고 있었지만 꽤나 조심스러운 면모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그 창의성을 시도 때도 없이 남발하지 않고 적재적소에, 꼭 필요한 순간에만 활용하는 선수였다. 우월한 축구 지능을 사용해 필드 전역에 패스를 찔러주는 한편 수비력도 좋고 결정적인 한방을 근거리와 중거리에서 모두 넣어줄 수 있는 득점력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아리고 사키의 AC밀란 드림팀에서 척추와 같은 역할을 담당했다. 사키의 밀란에서는 주로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AS로마에서는 우월한 활동량을 앞세워 윙어로 주로 출전했다. 다만 그 외에도 유스시절에는 세컨드 스트라이커, 커리어 한창 도중에는 공수 전역을 뛰어다니는 박스-투-박스 미드필더, AC밀란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나오지 않을때에는 포백을 보호하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올 정도니 바로 옆의 루드 굴리트까지 불세출의 올라운드 플레이어를 2명이나 보유한 AC밀란은 그야말로 행복한 비명을 지르지 않을수가 없었다. 특히 수비형 미드필더 시절에는 특유의 창의력을 이용해서 단순한 포백보호에 치중하지 않고 전방 볼 배급을 하며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로서의 플레이를 정립했는데, 레알 마드리드 시절의 사비 알론소를 생각하면 어떤 플레이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차이점은 안첼로티가 30년은 먼저 했다는 것 또한 이는 훗날 AC밀란에서 맹위를 떨친 레지스타인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안드레아 피를로의 교범이 되어 현대축구에 후방 플레이메이커 개념을 정착시키게 되었다.

다만 뭔가 푸근한 지금 이미지와 부합하게 일반적인 운동선수로서 운동신경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우선 속력이 느렸고, 피지컬적으로 완성된 선수는 아니었다. 커리어 후반에는 잦은 부상으로 신음하여 33살이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은퇴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만 안첼로티는 피지컬적으로 재능이 없는 편이라는 사실을 그 스스로가 잘 알았기에 노력파가 되었고, 풍부한 활동량으로 부지런하고 투쟁적으로 미드필드 전역을 뛰어다닌 팀 플레이어 그 자체가 되어 항상 팀의 성공에 크게 기여하였다.

4. 지도자 경력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카를로 안첼로티/지도자 경력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4.1. 감독 스타일

4.1.1. 장점

4.1.1.1. 강력한 플랜 A를 구축하는 전술적 역량
안첼로티가 가진 최대 장점은 가지고 있는 선수들의 장단점을 파악해 선수의 장점은 극대화하고 약점은 다른 선수와의 시너지로 가리며 팀에 최적화 된 조합을 단 기간에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밀란에서 두 번째 시즌에 챔피언스 리그 우승[5], 첼시에서 첫 번째 시즌에 리그 우승, 레알 마드리드 1기 첫번째 시즌에 코파 델 레이 & 챔피언스 리그 우승, 레알 마드리드 2기 첫번째 시즌에 리그 &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달성하는 등 단기간에 팀의 성적을 우승권으로 올려놓을 수 있는 것.

수비 전술을 강조하는 이탈리아 출신 답게 수비의 안정화를 강조하며[6], 미드필더 출신 답게 최적의 중원 조합을 만들어내 강력한 중원 장악력을 만드는 것에 특출난 실력을 보이는 감독이다.
  • 밀란 시절에는 유명한 4-4-2 다이아몬드 / 4-3-2-1 크리스마스 트리 포메이션으로 미드필더 숫자에 4-5명을 투자하며 중원의 장악을 제1의 목적으로 하는 베스트 11을 구축했다. 안첼로티는 이 시기에 엄연히 현대축구에서 가장 세련된 전술을 구사했는데, 공격형 미드필더로 커리어 초기를 보냈지만 피지컬의 열세로 별 성과가 없던 안드레아 피를로를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 배치시키고 후방 플레이메이커로서 상대의 압박에서 벗어난 채로 패스와 경기 조립의 재능을 십분 발휘할 수 있게 해주었고, 피를로가 가진 수비와 운동 능력에서의 상대적 약점은 운동 능력과 수비력이 뛰어난 젠나로 가투소가 채워줬고, 보다 전방에는 링커 역할을 하는 클라렌스 세도르프와 스피드를 활용한 역습 상황에서의 볼운반과 날카로운 패싱력을 활용한 찬스 메이킹, 정확한 결정력으로 득점까지 모두 정상급으로 해내는 카카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배치하며 화룡점정을 찍었다.
  • 첼시 시절 역시 2007년 팀과 이별했지만 여전히 팀의 DNA에 깊게 자리잡고 있던 무리뉴의 4-3-3을 훌륭하게 계승해 미하엘 발락 - 마이클 에시앙 - 프랭크 램파드의 강력한 중원을 구축했으며, 공격적으로 활용되던 발락을 수비적으로 기용함과 동시에 램파드의 공격력을 극대화해 램파드에게 커리어 하이 시즌을 선물했다.
  • 첼시 시절에 이어 이번에는 다이렉트로 무리뉴의 팀을 이어받은 레알 마드리드 1기에는 첼시 시절과 달리 중원 재개편에 적극 뛰어들며 시스템부터 선수 구성까지 완전한 재개편을 진행했다. 무리뉴 시절 중원은 사비 알론소, 사미 케디라의 더블 피봇에 메수트 외질이 전형적인 공격형 미드필더로 기용되었는데, 근본적으로 무리뉴 하에 선수비 후역습 기조의 수동적인 축구를 하기도 했고 세 명 모두 압박 대처 능력이 떨어져 빅게임에서 상대와 맞불을 놓는 양상이 벌어질 때 중원 장악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7] 안첼로티는 부임 후 과감히 외질을 쳐내고 앙헬 디 마리아를 왼쪽 중앙 미드필더로 기용하면서 히트를 쳤고, 12-13 시즌 영입되었지만 서브에 머물러 있던 루카 모드리치를 중용해 디 마리아 - 알론소 - 모드리치라는 압박 대처 능력도 강하고 레알 마드리드가 무리뉴 하에서 가장 잘하던 속공은 물론 상대의 압박을 지속적으로 이겨내고 주도적으로 중원을 장악해 경기를 풀어내는 것이 요구되는 경기들에서도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결과 8강과 4강에서 지난 두 시즌 동안 레알 마드리드를 탈락시킨 도르트문트와 바이에른 뮌헨을 만나서도 중원 힘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며 이들에게 승리했고, 레알 마드리드가 12년 동안 염원하던 라 데시마를 안겨주었다. 이후 14-15 시즌에 알론소, 디 마리아의 이탈에도 영입생인 토니 크로스하메스 로드리게스에게 이들의 역할을 계승시키며 팀에 성공적으로 녹아들 수 있도록 해주었다.
  • 이후 바이에른 뮌헨, 나폴리, 번번히 실패하며 에버튼 감독까지 맡게 될 정도로 위상이 추락했으나 이런 흑역사 속에서도 바이에른 뮌헨에서 티아고 알칸타라의 포텐을 폭발시키고 나폴리에서는 그의 지도 하에 파비안 루이스, 알랑 마르케스가 세리에 최상급 미드필더로 스텝업했으며, 에버튼에서 애제자인 하메스 로드리게스를 쏠쏠하게 써먹는 등 미드필더를 잘 다루는 특유의 감각을 보여줬다. 다시 팀의 부름을 받은 레알 마드리드 2기에는 첫 시즌에는 모드리치를 제외하면 폼이 떨어진 크카모를 중용하면서 감이 떨어졌다는 비판을 받았으나, 후반기부터 적재적소에 에두아르도 카마빙가페데리코 발베르데를 기용하고 성장시키면서 여전히 미드필더 다루는 감각이 뛰어남을 증명했다. 22-23 시즌에는 오른쪽 중앙 미드필더로서 발베르데의 포텐을 완전히 폭발시키고 카세미루의 갑작스러운 이탈로 중책을 맡게 된 오렐리앵 추아메니를 나름 성공적으로 팀에 녹여내었고, 23-24 시즌에는 주드 벨링엄을 마치 밀란 시절 카카를 다루듯 프리롤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용하고 윙어들을 최전방 공격수처럼 좁혀 벨링엄을 보좌하며 벨링엄의 강력한 공격력을 최대치로 써먹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수비 전술에 있어서는 확실히 현대 축구에서 다수의 강팀들과 전술적으로 세련된 언더독 팀들이 추구하는 적극적인 프레싱과 높은 수비 라인에 비해서는 보수적인 모습이다. 빠른 수비 복귀와 공격수들의 수비 가담을 강조하지만 높은 수비 라인과 프레싱은 안첼로티의 팀에서는 전력에서 절대적인 우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찾아보기 힘들고, 대신 수비 라인과 미드필더 라인 사이 촘촘한 간격과 컴팩트한 수비를 강조한다.[8] 특히 강팀과의 경기에서는 라인을 높여서 맞불을 놓는 것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미드필더들이 수비 라인 위에 블록을 쌓아 핵심 공간을 줄인 채로 상대의 공격을 받아내는 데에 집중한다. 하지만 중원의 선수 구성이 점점 젊어짐에 따라 어느 정도 전방 압박을 구사하는 모습이 늘어나고 있긴 하다.

공격 전술은 선수들의 창의성과 개인 역량에 맡기는 편이며, 플레이와 포지션에 있어서 선수들에게 매우 높은 자유도를 부여하는 감독이다. 이 또한 빌드업과 공격 전개를 모두 통제하는 현대 축구의 트렌드와는 상반되는 모습이다. 선수의 장점을 극대화해 알맞는 포지션에 배치하고 역할을 부여하며 이들을 위한 공격 루트를 만들어 일관성 있게 그들이 날뛸 수 있는 환경을 깔아주는 것이 안첼로티의 특징이다. 이로 인해 선수들 개개인의 컨디션과 상대의 대응에 따라 때때로 공격이 무질서하고 비효율적으로 변하기도 하며 이로 인해 "해줘 축구"라는 조롱을 받기도 하지만 선수들의 창의성을 억제하지 않고 이들의 강점을 최대의 효율로 뽑아먹는 데에는 안첼로티 만한 감독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레알 마드리드 2기 기준 용병술도 높은 평가를 받을 만 하다. 강력한 플랜 A를 중시하기 때문에 갑자기 선발 라인업을 크게 뒤엎는 경우는 보기 힘들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답게 경기 전 분석은 물론 경기 중 흐름과 상대 팀의 장단점을 파악하는 감각이 매우 뛰어나며 경기에 필요한 선수를 알맞은 타이밍에 투입해 흐름을 뒤집는 데에 신기에 가까운 역량을 보여준다. 또한 경기 중에 선수들의 위치나 역할을 세부적으로 조정해 변화를 주는 역량도 우수하다. 이러한 그의 역량으로 챔피언스 리그 21-22 시즌 헬대진에서의 열세를 극복하고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4.1.1.2. 덕장
"안첼로티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브라질에서 선발로 뛸 수 있도록 많은 조언을 해줬다. 그는 나에게 많은 자신감을 주었다. 그는 필요할 때면 항상 나에게 강경했다. 그는 나의 아버지와 같다."
비니시우스 주니오르
파일:external/2.bp.blogspot.com/222.gif
AC 밀란 시절에는 젠나로 가투소에게 걸핏하면 폭행당했다.
파일:external/1.bp.blogspot.com/111.gif
첼시 시절. 존 테리드록바에게 쓰다듬당하는 안첼로티.
파일:external/3.bp.blogspot.com/444.gif
레알 마드리드 시절. 엘 클라시코를 이기고 루카 모드리치에게 깜놀당하는 안첼로티.
파일:external/1.bp.blogspot.com/%EC%95%88%EC%B2%BC%EB%A1%9C%ED%8B%B0.gif
그 어떤 장난질을 당해도 무신경했지만, 치차리토윙크에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파일:FB_IMG_1651633275272.jpg
레알 마드리드 2기 시절. 21-22 시즌 라리가 우승 퍼레이드 당시의 모습으로, 선글라스를 쓴 채로 시가를 피우는 제스처를 취해 웃음을 자아냈다. 실제로는 시가를 피우지 않는다고 한다.

전술 이상으로 안첼로티의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한 덕목은 바로 그의 인품과 그로 인해 따라오는 선수들의 충성심이라고 할 수 있다. 선수 개개인을 존중하고 그들과 속깊은 대화를 나누며 깊은 신뢰를 쌓는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선수와의 불화는 거의 없으며, 선수들도 안첼로티를 큰형님처럼 생각해서 미스터 혹은 코치로 부르지 않고 카를로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적지 않게 장난질의 희생양이 되는 감독이다. 특히 레알 마드리드 선수진은 선수들과의 친화력을 뽐내며 화목하게 지내는 안첼로티에 비해 무뚝뚝하고 단절된 모습을 보이기로 유명한 베니테스가 감독이 되자 하나같이 입을 모아 안첼로티가 너무 그립다고 말했고 특히 크로스와 모드리치는 이적까지 고민했다고 밝혔다. 그 호날두가 직접 "안첼로티 감독은 화를 잘 내지 않는다"라며 친화력에 엄지를 치켜들었을 정도이다. 이에 안첼로티는 "그렇다, 나는 크고 순한 곰이라서 화를 잘 못 낸다."라고 말했다. 특히 안첼로티가 감독으로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팀 중 하나인 레알 마드리드는 스타들이 모인 팀인 만큼 선수들을 장악하지 못하면 온갖 불화설과 가십거리가 나오는 팀인데, 안첼로티의 부드러운 리더십은 이런 팀을 원팀으로 만들고 다독이기에는 안성맞춤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인터뷰를 해도 다른 빅클럽의 감독들과는 달리 상당히 온화하고 부드러운 어투를 사용한다. 첼시 감독 부임 시절에는 무리뉴 감독의 날카로운 독설을 들어왔던 팬들이 안첼로티는 좀 심심하다는 평이 많았다. 덕분에 언론이나 선수단과 트러블을 일으키지 않는 편이다. 레알 마드리드 시절에 일화로 안첼로티의 딸이 디에고 로페스를 두둔하며 사람들이 카시야스만 신경쓰는 걸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는데 논란이 커지기 전에 빠르게 카시야스에게 사과를 전했다. 위 사실은 카시야스가 직접 밝혔다.

첼시에서도 선수단과 굉장히 원만한 사이였다. 존 테리가 말하기를,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은 무리뉴지만, 안첼로티도 크게 차이나지 않는 2등이다. 그리고 선수 관리 측면에서는 안첼로티가 내가 본 사람 중 1등이다. 그렇게 탑 레벨에서 오랫동안 감독하면서 요즘 선수들까지도 잘 다루는 모습을 보면 그의 능력을 알 수 있다." 라고 할 정도로 그의 선수단 관리 능력을 상당히 고평가했다.

나폴리에서도 선수단과는 사이가 좋았다. 나폴리에서 함께 했던 알랑 마르케스가 방출 명단에 오른 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제의를 거절하고 안첼로티 하나만 보고 에버튼으로 이적할 정도였다.

다만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선수단과의 불화로 경질당했고, 파리 감독 부임 이후부터는 가끔 인터뷰에서 독설을 하는 경우가 생기면서 덕장, 보살 이미지가 조금씩 깨지기도 했다. 에버튼에서는 아쉬운 성적에도 구단이 안첼로티를 장기적으로 구단을 이끌 적임자로 보고 플랜을 짰는데 레알 마드리드에서 제의가 왔다는 이유로 바로 구단을 떠나버리면서 덕장 이미지에 흠을 남겼다.

4.1.2. 단점

4.1.2.1. 좁은 선수 기용 폭
밀란 시절을 제외하면 안첼로티는 한 팀에 3년 이상 머무르지 않았으며, 챔피언스 리그에서 무려 4번의 우승을 거둔 것에 비해 항상 빅클럽을 맡았음에도 리그 우승 기록은 5번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의 화려한 커리어에 유이한 흠집이다. 이로 인해 로테이션에 인색하고 주전급 선수들에 대한 혹사가 많기 때문에 단판전에 비해 장기 레이스에서는 약한 편이고 보수적인 선수 기용과 플랜 A에 대한 고집 및 유망주들에게 주어지는 제한적인 기회로 인해 팀의 장기적인 블루 프린트를 완성시키지 못한다는 비판이 안첼로티의 커리어 내내 따라왔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안첼로티가 이런 결과에 대해 비판받아야 하는 부분은 플랜 A의 요구 사항에 조금이라도 맞지 않는 선수의 선발 기회를 크게 제한하는 그의 보수적인 경향 및 좁은 선수 기용 폭 때문에 시즌 중 핵심 선수의 결장에 매우 취약하다는 것이지, 안첼로티가 안토니오 콘테 마냥 무조건적으로 베테랑들을 지나치게 선호해 팀의 세대 교체를 방해한다는 비판이나 로테이션에 인색하다는 비판은 그의 커리어를 돌아보면 정확한 비판이라고 하기엔 힘들다. 안첼로티가 윈나우에 특화된 감독은 맞지만, 자신의 플랜 A에 맞는 로테이션 자원들이나 유망주들이 있다면 이들을 적극적으로 등용하는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애초에 플랜 A를 선발 선수들의 성향에 맞춤 제작으로 짜면서 그 플랜 A를 짤 때 고려되지 않은 선발이 아닌 선수들도 똑같은 전술 하에 똑같은 경기력을 보이기를 기대하는 것이 그의 가장 큰 문제이다.
  • 유일하게 장기 집권을 한 밀란 시절 커리어는 리그에서 강력한 지배력을 보이던 유벤투스인테르에 밀려 리그 우승을 03-04 시즌 단 한 번 밖에 하지 못했지만 챔피언스 리그에서 02-03 시즌 우승을 시작으로 스쿼드 변화가 지속적으로 있어왔던 5년 동안 패권을 놓지 않았기 때문에[9] 표면적으로는 이러한 비판을 받는 것이 의아할 수 있으나, 내용을 파고들면 카카로 대표되는 주전급 선수들의 지속적인 혹사 및 자신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로테이션 급 선수들에 대한 외면으로 시간이 갈수록 밀란의 라인업이 고착화되어 노인정이라는 조롱을 들을 정도로 평균 연령이 올라가고 경기력이 하락한 것은 사실이다. 물론 안드리 셰브첸코 같은 주전급 선수들의 이탈에 대해 플랜 A를 세부적으로 수정하고 자신의 기준에 맞는 새로운 주전급 선수들을 팀에 잘 녹여내는 대응을 보이기도 했지만 주전급 선수들에 대한 혹사와 그로 인해 밀란 후반기에는 잇몸으로 버티듯 하는 위태로운 경기들이 매우 많았다.
  • 하지만 밀란 시절 세대 교체를 미루고 핵심 선수들만 기용하며 팀의 라인업 고착화와 고령화의 원인이 되었다는 비판을 안첼로티만 감수하기엔 그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다. 안첼로티가 선수 기용에 있어서 상당히 보수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애초에 안첼로티에게 영입 권한도 없고[10] 밀란의 기조가 윈나우였기 때문에 뎁스를 늘리고 유망주를 영입하는 것보다는 나이가 있고 비싸더라도 검증된 베테랑 선수들을 수급하는 데에 집중했고, 안첼로티 역임 당시 밀란에 등장한 유망주도 그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월드클래스 공격형 미드필더인 후이 코스타를 밀어내고 적극적으로 기용한 카카, 그리고 뛰어난 재능을 가져 안첼로티가 여러 번 기용했지만 결국 팀원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유약한 멘탈을 가져 팀에 녹아들지 못했던 요앙 구르퀴프 뿐이었다.
  • 첼시 시절 역시 베스트 11 위주로 돌리는 모습이 보였다. 첫 시즌에는 강력한 플랜 A를 바탕으로 리그 우승에 성공했지만 두 번째 시즌에 들어서서 프랭크 램파드의 부상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며 팀의 공격 라인업의 무게가 현저하게 떨어졌으며, 그 결과 리버풀 전 패배를 시작으로 팀이 순식간에 무너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선두 경쟁에서 뒤쳐져 간신히 리그 준우승을 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첼시 시절 역시 하미레스, 존 오비 미켈을 적극적으로 기용하는 등 로테이션을 아예 안돌린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첼시 시절을 갖고 단순히 로테이션을 하지 않는 감독이라고 못 박기에는 무리가 있으며, 밀란 시절과 마찬가지로 영입에 대한 권한도 경쟁자였던 알렉스 퍼거슨과는 달리 안첼로티에겐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100% 폭넓게 다룰 수 있는 스쿼드를 구상한 것도 아니었다. 감독의 의사와 관계 없이 페르난도 토레스에 거금을 지른 것이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안첼로티를 비판해야 하는 부분은 램파드의 공백에 대한 플랜 B 부족이지 로테이션과 유망주 등용에 인색함은 아니다.
  • 레알 마드리드 1기 시절 역시 강력한 베스트 11을 기반으로 라 데시마를 일궈냈지만 두 번째 시즌 루카 모드리치의 부상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토니 크로스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한 것이 수비적으로 큰 리스크를 일으키며 전반기 22연승이라는 미친 페이스를 보였음에도 후반기 부진한 결과 무관에 그치며 경질되었다.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에서 역시 안첼로티의 영입 권한은 없었으며, 14-15 시즌 정확한 패스 전개에 못지 않게 수비적 역량이 뛰어난 사비 알론소의 대체자로 패스 전개는 알론소에 전혀 뒤지지 않지만 수비력이 그리 좋지 않은 토니 크로스를 대체자로 영입한 것은 명백한 보드진의 의사로 이뤄진 결정이다. 안첼로티는 이러한 그들의 결정을 받아들이고 최선의 플랜 A를 가동했지만 결국 스쿼드 밸런스에 한계가 드러난 것 뿐. 오히려 안첼로티에 대한 비판은 첼시 시절과 마찬가지로 모드리치가 부상으로 빠졌을 때 대처가 미흡했다는 점이다. 애초에 모드리치를 1대1로 대체할 수 있는 로테이션 자원이 있을 리가 없으니 모드리치가 부상으로 빠지면 대대적인 플랜 수정이 필요한데, 안첼로티는 보수적인 경향 때문에 플랜을 수정하지 않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치뤘다고 볼 수 있다.
  • 안첼로티의 최대 흑역사 중 하나인 바이에른 뮌헨 시절 역시 좁은 선수 기용폭이 그의 발목을 크게 잡았다. 애초에 전술 컬러가 확실하고 빡센 바이에른 뮌헨의 컬처에 맞지 않는 감독이기도 했지만 전 시즌 펩 과르디올라요주아 키미히, 킹슬리 코망 등 어린 선수들을 쓸만한 선수들로 키워놓은 것을 무시하고 30대가 한참 넘은 로베리를 주구장창 굴렸으며, 티아고 알칸타라를 자유로운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용하며 그의 포텐을 폭발시킨 것은 좋았지만 반대로 토마스 뮐러를 철저히 외면했다. 오히려 또 다른 흑역사인 나폴리 시절에는 주전들의 체력 관리를 위해 로테이션을 적극적으로 가용했고, 나폴리가 주전과 비주전의 격차가 큰 팀임에도 많은 선수들에게 출전 기회를 제공했지만 별 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나폴리 시절에는 후술하겠지만 전임 마우리치오 사리 하에 철저하게 세부적인 전술이 주입되는 것에 익숙한 선수단과 세부 전술을 짜는 것에 크게 관심도 없고 소질도 없는 안첼로티의 성향이 너무나도 상극이었기 때문에 실패한 것에 가깝다.
  • 레알 마드리드로 복귀한 첫 시즌에는 크카모 중 모드리치를 제외하면 나머지 둘의 폼이 점차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중용하고 에두아르도 카마빙가, 페데리코 발베르데에게 특히 빅게임에서는 제한적인 출전 시간을 부여하며 보수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긴 감독 커리어와 계속되는 하락세로 느낀 것이 있었는지 로테이션에는 그리 인색하지 않고 전력 우위에 있는 상대에게는 로테이션을 적극적으로 돌렸으며 카마빙가와 발베르데가 선발로 투입되는 경기에서는 그들의 강점을 살릴 수 있게 미묘하게 역할을 바꿔주며 그가 커리어 내내 지적받았던 플랜에 선수를 끼워넣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검증된 자원들임에도 불구하고 에덴 아자르, 가레스 베일을 철저히 외면하고 비니시우스 주니오르, 호드리구 육성에 힘을 쏟으며 베테랑에 의존한다는 비판을 정면으로 받아치는 데에 성공했다. 이로 토대로 여유롭게 리가를 우승하고[11] 선수들의 체력을 안배한 뒤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리그 막판까지 우승 경쟁을 펼치며 지친 리버풀에게 체력 우위를 점해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 두 번째 시즌에도 호드리구를 변칙적으로 세컨드 스트라이커로 기용하고 다니 세바요스를 로테이션 자원으로 중용하는 등 전술적 유연성과 로테이션은 확실히 예전에 비해 개선된 모습이 보이고 있다. 또한 레프트백의 붕괴에 대해 에두아르도 카마빙가를 레프트백으로 활용하며 현명하게 대처하는 등 핵심 선수의 부재에 대한 대처도 확실히 개선된 모습이 있다. 세 번째 시즌에도 주전 공격수들인 비니시우스, 호드리구와는 확실히 성향이 다른 호셀루, 브라힘 디아스를 경기 중에나 로테이션의 일원으로 선발 투입했을 때 그들에 맞는 조정을 해주는 모습을 보아 더 이상 선수단 운영에 있어서 마냥 보수적이고 유연성이 떨어지는 감독이라고 평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4.1.2.2. 부족한 세부 전술
안첼로티는 레알 마드리드 1기까지만 해도 전술적으로는 거의 비판을 받지 않았으나, 바이에른 뮌헨과 나폴리를 거치며 전술적 트렌드에서 뒤쳐진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레알 마드리드에 복귀해서도 안 풀리는 경기에서는 전술적인 비판을 많이 받는다. 2000년 대 밀란을 지휘하던 시기 안첼로티는 전술적으로 극찬을 받는 감독이었고 첼시에서도 주장 존 테리가 그의 세부 전술에 대해 극찬하는 등 전술적으로 굉장히 세련된 모습을 보여줬지만 2000년 대 말과 2010년 대 초에 펩 과르디올라, 위르겐 클롭, 디에고 시메오네라는 트렌드 세터 3인방의 등장과 함께 전술의 트렌드가 빠르게 변화하는 것은 물론 팀 컬러를 큰 틀 하에서 획일화하고 감독이 세부적인 것까지 크게 개입하는 추세로 변했는데, 여전히 팀 컬러를 확립하고 그 안에서 세부 전술을 다듬는 것보다 가지고 있는 자원으로 최적화된 베스트 11을 구축하는 데에 집중하고 선수들에게 크게 자율성을 부여하는 안첼로티가 이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바이에른 뮌헨에서의 실패는 유프 하인케스, 펩 과르디올라 하에 주도적인 축구를 추구하고 세부 전술의 지속적인 훈련과 발전을 통해 상대를 분쇄하는 강력한 팀컬러를 구축한 바이에른 뮌헨과의 컬처와 안첼로티 특유의 선수의 자율성에 맡기는 성향이 마찰을 일으킨 것이 가장 크다고 봐야하며[12], 이때 안첼로티는 커리어 사상 거의 처음으로 선수들과 공개적으로 불화를 겪을 정도로 선수단의 신임을 잃었다. 나폴리에서의 실패 역시 같은 맥락으로, 전임자인 마우리치오 사리는 펩도 한수 접고 들어갈 정도로 광적으로 선수들의 플레이를 통제하고 패턴 플레이를 지독하게 주입시키는 감독인데 안첼로티는 이런 전술적 디테일에 크게 투자하지 않는 감독이다 보니 사리의 훈련 및 전술 방식에 익숙해져 있던 선수들과 마찰을 겪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성공적으로 꺾여가던 커리어를 반전시킨 레알 마드리드 2기에도 조직적인 세부 전술보다는 가장 잘하는 선수들에게 공격 테이블을 깔아주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이 선수들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면 경기력이 크게 꺾이기도 한다. 레알 팬들이 안첼로티 체제 하에서 유망주들의 성장 및 팀의 성적에 큰 불만을 품진 않으면서도 안첼로티를 "해줘 축구하는 감독"이라고 까는 것은 이러한 스타일 때문이다.
4.1.2.3. 친인척 관리
선수단 운영 및 전술 외적으로 지적되는 안첼로티의 문제는 친인척 관리다. 사실 안첼로티는 원래부터 자기의 사위를 자신의 직장에 고용해 왔었을 정도로 이 부분에 있어서 모든 이가 그러려니하는 입장이었다. 실제로, 레알 1기, 2기 모두 사위 베니아미노 풀코영양사로 재직할 정도였다.[13]

다만, 문제가 불거진 것은 자격이 없는 자신의 아들 다비데 안첼로티폴 클레멘트의 후임 수석 코치로 임명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아무리 자신의 아들이 능력이 좋아도 자격이 있는 이가 하는 게 맞는데 그게 아니다 보니 팀의 분란과 반목이 생기면서 제대로 무너지게 된게 뮌헨 시절 안첼로티이다. 어찌 보면 덕장과 라커룸을 잘 관리한다는 안첼로티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드러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한 것. 이는 나폴리에서도 그대로 반복하여 그 시즌 나폴리는 전 시즌만도 못 한 성적을 거두고 온갖 잡음 끝에 안첼로티는 다시 경질되었다. 그러나 에버튼에서도 아들과 사위를 그대로 데려온다고 하니 이 가족주의는 절대 못 고칠 듯하다. 그나마 다비데는 레알 마드리드 수석 코치 부임 이후에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5. 평가

선수 시절에도 AS 로마AC 밀란을 거쳐 수많은 우승컵을 들어올려 뚜렷한 족적을 남겼고, 감독으로서도 유럽 5대 리그를 오가며 수많은 우승컵을 쌓아 올려 역대 최고 수준의 감독 반열에 올랐다.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팀을 올린 것만 총 5회로 역대 감독들 중 최다이며, 그중 AC 밀란레알 마드리드의 사령탑으로서 통산 챔피언스 리그 4회 우승을 이끈 챔피언스 리그 역대 최다 우승 감독이다.[14][15] 또한, 그는 유럽 5대 축구 리그(세리에 A, 프리미어 리그, 리그 1, 분데스리가, 라리가)에서 모두 우승을 경험한 최초의 감독이기도 하다.[16]

2022년 6월, 축구 전문 통계 매체 '트랜스퍼마크트'의 통계 조사에 따르면, 안첼로티는 21세기 들어 올린 승수만 611승으로 21세기 들어 가장 많은 승리를 맛본 감독[17]이다. 기사 링크 단순한 승수뿐만 아니라 같은 기간 동안 앞서 언급한 5대 리그 우승 및 UCL 최다 결승 진출 & 최다 우승 & 최다 승리의 금자탑을 쌓아 올린 만큼, 21세기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인 셈이다.

비록 안 풀릴때의 답답한 면과 주전 선수들에게 의존하는듯한 혹사 축구, 일명 "해줘 축구"로 비판받지만, 그럼에도 탁월한 리더십과 의외로 준수한 전술적 역량으로 동 시기 감독들이 하나둘 쇠퇴해갈 동안 아직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는 명감독 중 한 명이다.

종합하자면 본인 만의 확고한 전술적 색채나, 센세이션함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적재적소에 선수를 배치하고 선수단의 교통정리와 선수의 특성과 잠재력을 잘 파악하는 감독이다. 펩의 티키타카, 클롭의 게겐프레싱과 같이 안첼로티를 상징할 만한 전술적인 무언가는 없지만 때로는 역습 축구, 때로는 공격 축구, 때로는 수비 축구를 보여주며 상황과 상대에 맞게 이길 줄 아는 이기는 방법을 아는 감독이다.

6. 기록

6.1. 선수

6.1.1. 대회 기록

6.2. 감독

6.2.1. 대회 기록

6.2.2. 개인 수상

  • FIFA 올해의 감독 2위: 2014, 2022
  • UEFA 올해의 감독: 2002-03[18], 2021-22
  • 세리에 A 올해의 감독: 2000-01, 2003-04
  • 판키나도로: 2002-03, 2003-04
  •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감독: 2009년 11월, 2010년 8월, 2011년 3월 · 4월, 2020년 9월
  • 리그 1 올해의 감독: 2012-13
  • 라리가 이달의 감독: 2014년 10월, 2015년 4월, 2023년 8월
  • 트로페오 미겔 무뇨스: 2014-15
  • 유럽 올해의 축구 감독[19]: 2003
  • 유럽 시즌의 축구 감독: 2002-03, 2006-07
  • 월드 사커 올해의 감독: 2003
  • IFFHS 세계 최우수 클럽 감독: 2007, 2014, 2022
  • 엔초 베아르초트상: 2014
  • 글로브 사커 어워드 올해의 감독: 2014, 2022
  • 글로브 사커 어워드 최고 언론 주목 축구인: 2014
  • 옹즈도르 감독상: 2021-22
  •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 2015
  • AS 로마 명예의 전당: 2014
  • AC 밀란 명예의 전당

6.3. 수훈

  •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장 5등급: 1991
  •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장 4등급: 2014

7. 여담

  • 잊혀진 사실이나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선수로서 만난 적이 있다.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본선 조별리그에서 같은 조에 속했던 탓인데 당시 안첼로티는 주전은 아니었으며 교체 멤버로도 출전하지는 못했다. 참고로 이 경기는 3:2로 이탈리아가 승리.

    밀란 시절엔 겨우 40대의 젊은 감독이었는데도 '안 선생님'이라고 불리며 할아버지 감독의 대명사처럼 통했다. 대부분 라이트 축구 팬들은 파비오 카펠로, 마르첼로 리피, 아리고 사키, 지오반니 트라파토니 등 30~40년대 출생자들과 같은 세대인 줄 안다. 젊은 감독의 대명사였던 주제 무리뉴보다 달랑 4살 많은데 말이다. 심지어 젊은 시절 선수로 활약할 때부터 이미 노안이었다. 사실 요아힘 뢰브보다 한 살 형이다. 그리고 언행이 둥글둥글한 덕장이란 것도 닮았다.
  • 조세 무리뉴가 스스로 스페셜 원이라고 거만하게 칭할 때, 자신을 어떻게 묘사하겠냐는 질문에 "만두처럼 생긴 뚱보"라고 말할 만큼 성격이 부드럽고 낙천적이다. 그가 덕장으로 불리는 이유이다. 다만 그도 선수시절 명성을 날린 스타 플레이어다운 에고와 기질을 가지고 있는데, 지시에 어긋나는 선수나 팀 화합을 저해하는 선수에 한해서는 꽤 강경한 모습을 보이고, 팀이나 그를 저격하는 인터뷰에도 능글스럽게 맞받아치는 등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파일:attachment/카를로 안첼로티/안첼로티3.png}}} ||
안첼로티의 선수 시절 외모 변천사인데, 로마 시절까지는 나름 준수한 외모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AC 밀란 입단 후에 급노화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사진의 얼굴을 세로로 나누어 보면 왼쪽과 오른쪽의 표정이 다르게 찍힌 게 많다.
파일:external/i.dailymail.co.uk/2DB9F57C00000578-3287536-A_mock_up_images-a-39_1445691821255.jpg}}} ||
2016년에 개봉하는 스타트렉 비욘드에서 카메오 출연이 확정되었다! 다만 대사나 단독 출연 장면은 없고 배경에 살짝 걸치는 엑스트라였다고.
파일:external/static.goal.com/38652_heroa.jpg}}} ||
다른 축구 감독들에 비해 유독 흡연 장면이 많이 찍힐 정도로 상당한 골초인데, 감독이 선수들과 맞담배를 했단 카더라도 있을 정도다. 선수들의 흡연에 대해 크게 신경을 안 쓰고, 오히려 자기가 경기장 필드 위에서 대놓고 피고 다닌다.
  • 음식을 즐기는 식도락이다. 은퇴하고 나서 좋았던 점 중 하나가 토르텔리니를 많이 먹는다고 뭐라 할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 안첼로티의 진짜 트레이드마크는 바로 눈썹. 웃거나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을 때마다 왼쪽 눈썹만 유난히 올라간다. 오죽하면 나폴리가 눈썹 그림을 오피셜로 띄우고, 영어로 "Ancelotti e"까지만 쳐도 "eyebrow"가 맨 상단에 있을 정도였다.
  • 밀란에서 선수 생활과 감독 생활을 했지만 어렸을 때는 인테르 팬이었다고 한다. 계기는 밀라노에서 일하는 사촌이 사다 준 인테르 유니폼. 그로부터 몇 년 후 인테르가 자신의 동네에 원정 경기를 와 아버지와 함께 보러갔지만 표가 매진되었다. 그렇지만 이미 여기 왔으니 갈 수 없다고 울며불며 난리를 쳤고, 결국 경기장 관리인의 재량으로 후반전부터 들어가서 봤다고 한다. 결과는 인테르의 6:1 대승이었는데, 모든 득점이 후반전에 나온 점수였다.
  • 모국 이탈리아에서 코로나19에 사람들이 많이 감염되자 마음 아프다는 말을 하였다. #
  • 트랜스퍼마크트의 자료에 의하면 21세기 리그에서 가장 많은 승점을 얻은 감독 순위에서 706경기 1,434점으로 1위를 차지했다. 그 뒤를 이어 702경기 1,381점의 아르센 벵거 감독, 561경기의 1,194점의 주제 무리뉴 감독 등이 순위권을 이루고 있다.
  • 2007년도에 대한민국 어느 기자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에 관심있다고 했었다. 립 서비스였을 가능성이 높지만 당시 한국 축구에 대해서 흥미롭다고 했었으며 어느 국가든간에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맡을 수도 있다고 했다. 참고로 이때 대한민국 레플리카를 선물받았다.
  • 2022년 라리가 우승으로 유럽 5대 리그 우승컵을 모두 들어본 직후에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있어달라는 대로 있고 나서 감독직 은퇴를 선언하겠다는 말도 했다. 그러나 대표팀 감독도 해보고 싶다고 말했는데 캐나다 대표팀 감독직에 관심을 드러냈다.
  • 2022년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더블로 감독으로써 전성기가 훌쩍 지났음에도 우승을 쉽게한다고 이스타TV를 중심으로 안첼로티가 운장이라는 이야기가 농담조로 많이 돌았었다. 하지만 위의 지도자 경력과 전술 스타일만 읽어봐도 이 사람이 운으로만 감독 생활을 이어간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저 우승하는 법을 알 뿐.
  • 안첼로티의 운장이라는 이미지가 단순 농담은 아닌게,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이탈리아 출신 방송인 알베르토 몬디에 의하면 본국인 이탈리아에서조차 안첼로티는 '운이 좋은 사람' 이미지가 있다고 한다.#[21] 단순히 감독 커리어만 운이 좋다 보는 것이 아닌, 선수 시절부터 시쳇말로 '날로 먹는' 경우가 많아서 운이 좋은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 위르겐 클롭 감독에게 상당히 강한 모습을 보이는데, 첫 대결이었던 13-14 시즌 챔피언스 리그 8강에서 합산 스코어 3 대 2로 승리해[22] 4강에 진출했고, 나폴리 감독 시절에는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클롭의 리버풀을 만나 18-19 시즌 1승 1패를 기록했으며[23] 19-20 시즌에는 나폴리에서 다시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만나 나폴리의 홈에서 2:0 승리를 거뒀으며 원정에서는 1:1 무승부를 기록한 뒤 얼마 뒤 리그에서의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었다. 상대적으로 약체였던 에버튼 감독 시절에도 19-20 시즌 리버풀을 상대로 홈에서 0:0, 그 다음 시즌 2:2로 무승부를 거둔 뒤[24], 안필드 원정에서 2 대 0으로 승리하는 이변을 보였다. 21-22 시즌에서는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도 만나 1:0으로 승리해 우승을 차지했고, 다음 시즌 22-23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도 만난 리버풀을 안필드 원정에서 5:2, 베르나베우 홈에서 1:0의 스코어로 잡아내며 클롭 상대로 강한 그의 기록을 이어나갔다.
  • 이탈리아에서 군 복무를 했던 경험이 있다.

8. 안첼로티에 대한 말, 말, 말

"라커룸과 팀 미팅에서 봤던 감독 안첼로티는 늘 한결같은 모습이었다. 심지어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도 농담을 생각하곤 했다. 그리고 우리는 경기에 나서서 승리를 거뒀다."
파올로 말디니
"감독으로서 그를 만난 적은 없지만, 내가 그를 최고라 하는 이유는 간단해. 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키와 카펠로의 장점을 모두 가진 감독이야."
프랑코 바레시
"내 커리어 중 최고의 감독이다."
알레산드로 네스타
"안첼로티는 내가 지금까지 겪은 감독 중 최고다. 그는 유럽 최고의 클럽만을 이끌어 온 명장이다. 안첼로티 감독은 선수가 가진 힘을 최대한 끄집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세르히오 라모스
"친애하는 안첼로티 감독님. 나는 승리를 원합니다. 모든 대회에서 우승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안첼로티, 당신이 필요합니다."
로만 아브라모비치
"카를로, 감독님은 제 아버지입니다."
세르지뉴
"이미 동료들과 안첼로티 감독의 뛰어남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그는 최고의 감독이다. AC 밀란과 레알 마드리드를 지휘하며 챔피언스 리그에 큰 족적을 남겼다."
사비 알론소
"과르디올라 감독은 분명 세계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이지만, '''단연 최고는 따로 있다. 내가 생각하는 최고는 바로 카를로 안첼로티다."
마르첼로 리피
"안첼로티 감독은 많은 걸 가르쳐주셨다. 그는 매우 따뜻한 사람이다. 나를 비롯해 PSG 선수들은 그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다. 언젠가 다시 안첼로티 감독의 밑에서 축구를 하고 싶다."
마르코 베라티
"아르센 벵거 감독과 안첼로티 감독은 비슷하다. 선수들에게 최선을 끌어내려고 하며, 각각의 모든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려 한다. 컵 대회에서는 어린 선수들을 내보내고, 스쿼드의 모든 선수들을 활용한다. 두 감독을 만난 것은 나에게 행운이다."
알렉스 이워비
"안첼로티는 세계 최고의 감독이다."
파비오 카펠로

9. 둘러보기

파일:레알 마드리드 CF 로고.svg
레알 마드리드 CF 2023-24 시즌 코치진
{{{#!folding [ 펼치기 · 접기 ] 감독 파일:UEFA EURO ITA.png 카를로 안첼로티(Carlo Ancelotti)
수석 코치 파일:UEFA EURO ITA.png 다비데 안첼로티(Davide Ancelotti)
체력 코치 파일:UEFA EURO ITA.png 안토니오 핀투스(Antonio Pintus)
골키퍼 코치 파일:UEFA EURO ESP.png 루이스 요피스(Luis Llopis)
기술 보조 코치 파일:UEFA EURO ITA.png 프란체스코 마우리(Francesco Mauri)
영양사 파일:UEFA EURO ITA.png 베니아미노 풀코(Beniamino Fulco)
기술 분석가 파일:UEFA EURO ITA.png 시모네 몬타나로(Simone Montanaro)
재활 전문가 파일:UEFA EURO ESP.png 호세 카를로스 가르시아 파랄레스 (José Carlos García Parrales)
경기 고문 파일:UEFA EURO ESP.png 첸도(Miguel Porlán Noguera "Chendo")
}}} ||

파일:레알 마드리드 CF 로고.svg
레알 마드리드 CF 2023-24 시즌 스쿼드[간략]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레알 마드리드 CF 2023-24 시즌 스쿼드
파일:COURTOIS_23/24.webp
파일:CARVAJAL_23/24.webp
파일:MILITAO_23/24.webp
파일:ALABA_23/24.webp
파일:BELLINGHAM_23/24.webp
1 2 (3C) 3 4 5
티보 쿠르투아
Thibaut Courtois

파일:벨기에 국기.svg | GK
1992.05.11 ([age(1992-05-11)])
2018~2026
다니 카르바할
Dani Carvajal

파일:스페인 국기.svg | DF
1992.01.11 ([age(1992-01-11)])
2013~2025
에데르 밀리탕
Éder Militão

파일:브라질 국기.svg | DF
1998.01.18 ([age(1998-01-18)])
2019~2028
데이비드 알라바
David Alaba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 DF
1992.06.24 ([age(1992-06-24)])
2021~2026
주드 벨링엄
Jude Bellingham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 MF
2003.06.29 ([age(2003-06-29)])
2023~2029
파일:NACHO_23/24.webp
파일:VINICIUS_23/24.webp
파일:KROOS_23/24.webp
파일:레알 마드리드 CF 로고.svg
파일:MODRIC_23/24.webp
6 (C) 7 8 (4C) 9 10 (VC)
나초 페르난데스
Nacho Fernández

파일:스페인 국기.svg | DF
1990.01.18 ([age(1990-01-18)])
2013~2024
비니시우스 주니오르
Vínicius JúnioR

파일:브라질 국기.svg | FW
2000.07.12 ([age(2000-07-12)])
2018~2027
토니 크로스
Toni Kroos

파일:독일 국기.svg | MF
1990.01.04 ([age(1990-01-04)])
2014~2024
- 루카 모드리치
Luca Modrić

파일:크로아티아 국기.svg | MF
1985.09.09 ([age(1985-09-09)])
2012~2024
파일:RODRYGO_23/24.webp
파일:CAMAVINGA_23/24.webp
파일:LUNIN_23/24.webp
파일:JOSELU_23/24.webp
파일:VALVERDE_23/24.webp
11 12 13 14 15
호드리구
Rodrygo

파일:브라질 국기.svg | FW
2001.01.09 ([age(2001-01-09)])
2018~2028
에두아르도 카마빙가
Eduardo Camavinga

파일:프랑스 국기.svg | MF
2002.11.10 ([age(2002-11-10)])
2021~2029
안드리 루닌
Andry Lunin

파일:우크라이나 국기.svg | GK
1999.02.11 ([age(1999-02-11)])
2018~2024
호셀루
Josélu

파일:스페인 국기.svg | FW
1990.03.27 ([age(1990-03-27)])
2023~2024[2]
페데리코 발베르데
Federico Valverde

파일:우루과이 국기.svg | MF
1998.07.22 ([age(1998-07-22)])
2017~2029
파일:레알 마드리드 CF 로고.svg
파일:LUCAS_23/24.webp
파일:TCHOUAMENI_23/24.webp
파일:CEBALLOS_23/24.webp
파일:FRAN_GARCIA_23/24.webp
16 17 18 19 20
- 루카스 바스케스
Lucas Vásquez

파일:스페인 국기.svg | MF
1991.07.01 ([age(1991-07-01)])
2015~2025
오렐리앵 추아메니
Aurélien Tchouaméni

파일:프랑스 국기.svg | MF
2000.01.27 ([age(2000-01-27)])
2022~2028
다니 세바요스
Dani Ceballos

파일:스페인 국기.svg | MF
1996.08.07 ([age(1996-08-07)])
2017~2027
프란 가르시아
Fran García

파일:스페인 국기.svg | DF
1999.08.14 ([age(1999-08-14)])
2023~2028
파일:BRAHIM_23/24.webp
파일:RUDIGER_23/24.webp
파일:MENDY_23/24.webp
파일:ARDA_23/24.webp
파일:KEPA_23/24.webp
21 22 23 24 25
브라힘 디아스
Brahim Díaz

파일:모로코 국기.svg | MF
1999.08.03 ([age(1999-08-03)])
2019~2027
안토니오 뤼디거
Antonio Rüdiger

파일:독일 국기.svg | DF
1993.03.03 ([age(1993-03-03)])
2022~2026
페를랑 멘디
Ferland Mendy

파일:프랑스 국기.svg | DF
1995.06.08 ([age(1995-06-08)])
2019~2025
아르다 귈러
Arda Güler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 MF
2005.02.25 ([age(2005-02-25)])
2023~2029
케파 아리사발라가
Kepa Arrizabalaga

파일:스페인 국기.svg | GK
1994.10.03 ([age(1994-10-03)])
2023~2024[3]
레알 마드리드 CF 2023-24 시즌 카스티야 콜업 명단
파일:diego-pineiro_ama8696_-2_2023081.png
파일:rafael-obrador_jt18190_550x650_2.png
파일:MARIO_MARTIN_550X650Thumb.jpg
파일:ALVARO-RODRIGUEZ_JT18160_550X650Thumb.jpg
파일:FRAN_GONZALEZ_550x650Thumb.jpg
26 27 28 29 30
디에고 피녜이로
Diego Piñeiro

파일:스페인 국기.svg | GK
2004.02.13 ([age(2004-02-13)])
2023~2025
라파엘 오브라도르
Rafael Obrador

파일:스페인 국기.svg | DF
2004.02.24 ([age(2004-02-24)])
2022~2024
마리오 마르틴
Mario Martín

파일:스페인 국기.svg | MF
2004.03.05 ([age(2004-03-05)])
2021~2026
알바로 로드리게스
Álvaro Rodríguez

파일:우루과이 국기.svg | FW
2004.07.14 ([age(2004-07-14)])
2022~2027
프란 곤살레스[U-19]
Fran González

파일:스페인 국기.svg | GK
2005.06.24 ([age(2005-06-24)])
2022~20--
파일:LUCAS-CA_ZARES_JT18141_550X650Thumb.jpg
파일:NICO-PAZ_JT18203_550X650Thumb.jpg
파일:gonzalo_1vc0280-2-1-1_2023081212.png
파일:ALVARO-CARRILLO_JT18167_550X650Thumb.jpg
파일:MARVEL_JT18315_550X650Thumb.jpg
31 32 33 34 35
루카스 카니사레스
Lucas Cañizares

파일:스페인 국기.svg | GK
2001.05.08 ([age(2001-05-08)])
2021~2024
니코 파스
Nico Paz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 MF
2004.09.08 ([age(2004-09-08)])
2023~2027
곤살로 가르시아
Gonzalo García

파일:스페인 국기.svg | FW
2004.03.24 ([age(2004-03-24)])
2023~2025
알바로 카리요
Álvaro Carrillo

파일:스페인 국기.svg | DF
2003.04.06 ([age(2002-04-06)])
2023~2025
마르벨
Marvelous Garzón

파일:스페인 국기.svg | DF
2003.01.07 ([age(2003-01-07)])
2022~2025
파일:VINICIUS-TOBIAS_JT18171_550X650Thumb.jpg
파일:EDGAR_2023/24.jpg
파일:THEO-ZIDANE_JT18252_550X650Thumb.jpg
파일:MARIO-DE-LUIS_JT18231_550X650Thumb.jpg
파일:자코보 라몬.webp
36 37 38 39 41
비니시우스 토비아스
Vinícius Tobías

파일:브라질 국기.svg | DF
2004.02.23 ([age(2004-02-23)])
2024~2026
에드가르 푸홀
Edgar Pujol

파일:스페인 국기.svg | DF
2004.08.07 ([age(2004-08-07)])
2022~2027
테오 지단
Theo Zidane Fernández

파일:프랑스 국기.svg | MF
2002.05.08 ([age(2002-05-08)])
2021~2024
마리오 데 루이스
Mario de Luis

파일:스페인 국기.svg | GK
2002.05.06 ([age(2002-05-06)])
2021~2025
하코보 라몬[U-19]
Jacobo Ramón

파일:스페인 국기.svg | DF
2005.01.06 ([age(2005-01-06)])
2023~2028
레알 마드리드 CF 2023-24 시즌 임대선수
파일:MARVIN_2324.png
파일:vallejo 23/24_granada.png
파일:REINIER23/24.webp
파일:Latasa_2324.png
파일:라파 마린 2324.png
2 5 12 14 16
마르빈 파르크
Marvin Park

파일:스페인 국기.svg | DF
2000.03.07 ([age(2000-03-07)])
UD 라스팔마스 임대
2022~2024
2024.06.30 복귀
헤수스 바예호
Jesús Vallejo

파일:스페인 국기.svg | DF
1997.01.05 ([age(1997-01-05)])
그라나다 CF 임대
2023~2024
2024.06.30 복귀
헤이니에르 제주스
Reinier Jesus

파일:브라질 국기.svg | FW
2002.01.19 ([age(2002-01-19)])
프로시노네 칼초 임대
2023~2024
2024.06.30 복귀
후안미 라타사
Juanmi Latasa

파일:스페인 국기.svg | FW
2001.03.23 ([age(2001-03-23)])
헤타페 CF 임대
2022~2024
2024.06.30 복귀
라파 마린
Rafa Marín

파일:스페인 국기.svg | DF
2002.05.19 ([age(2002-05-19)])
데포르티보 알라베스 임대
2023~2024
2024.06.30 복귀
구단 정보
회장: 플로렌티노 페레스 / 감독: 카를로 안첼로티 / 홈 구장: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출처: 레알 마드리드 CF 공식 홈페이지, 라리가 공식 홈페이지 / 마지막 수정 일자: 2024년 2월 11일
※ 주의 기기 환경에 따라 펼칠 시 상당히 길 수 있습니다.
※ 주의 스쿼드에 대한 간략한 틀은 간략 틀을 참고해주세요. 또한 이 틀을 수정할 때는 간략 틀도 같이 수정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주의 라리가 1군 등번호 규정에 의거해 1번부터 25번까지 등록, 공석인 번호는 비워뒀습니다.

[간략] 간략한 틀은 이곳 참조 바람[2] RCD 에스파뇰에서 임대[3] 첼시 FC에서 임대[U-19] U-19팀에서 콜업[U-19] U-19팀에서 콜업
}}}}}}}}} ||


[1]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왼쪽 윙어로도 뛰었다.[2] 2017년 9월 28일 경질[3] 2019년 12월 11일 경질[4] 세리에 A, 프리미어리그, 리그 1, 분데스리가, 라리가[5] 첫 시즌은 챔피언스 리그가 아닌 UEFA컵에 참가했고 4강까지 진출했다.[6] 안첼로티가 이끌어온 팀들 중 풀 시즌 기준으로 경기당 1실점이 넘어가는 팀은 안첼로티 커리어 최저점이었던 20-21 시즌 에버튼이 유일하다.[7] 특히 11-12 시즌 4강에서 맞붙은 바이에른 뮌헨이나 12-13 시즌 4강에서 맞붙은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이런 경향이 강했으며, 심지어는 16강에서 만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퀄리티 떨어지는 중원에도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8] 21-22 시즌 후반기 챔피언스 리그 토너먼트 여러 경기에서 오른쪽 윙어로 나선 발베르데를 수비 시에는 빠른 기동력을 앞세워 종종 오른쪽 윙백에 가까운 위치에 배치시켜 백5를 만들게끔 주문하는 등 세부적인 조정을 통해 수비적인 안정성을 확보하는 능력이 상당히 뛰어난 감독이다.[9] 02-03 시즌 우승, 03-04 시즌 8강, 04-05 시즌 준우승, 05-06 시즌 4강, 06-07 시즌 우승[10] 대표적으로 안첼로티는 팀의 전술을 바꿔 윙어를 기용하기 위해 프랑크 리베리 영입을 요청했었으나, 보드진이 이를 거절하고 공격수인 알레샨드리 파투를 영입한 예가 있다.[11] 물론 디펜딩 챔피언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라이벌 바르셀로나가 전반기에 크게 무너지며 일찌감치 격차를 벌릴 수 있기도 했다.[12] 펩의 빡세고 복잡한 훈련에 익숙해져 있던 바이에른 뮌헨 선수들이 안첼로티의 느슨한 훈련에 불만을 가졌다는 일화는 매우 유명하다.[13] 이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었다. 그러자 안첼로티는 "내 딸이 걔랑 결혼한 게 그렇게 잘못이야?"라고 꽤 불쾌해했다. 그러나 이 사위도 장인이 일이 없는 경우엔 쭉 무직 상태였기에 낙하산 취급받는 실정이다.[14] 2002-03, 2006-07 시즌 AC 밀란, 2013-14, 2021-22 시즌 레알 마드리드.[15] 밥 페이즐리, 지네딘 지단보다 1회 앞선다.[16] 2003-04 시즌 AC 밀란, 2009-10 시즌 첼시, 2012-13 시즌 파리 생제르맹, 2016-17 시즌 바이에른 뮌헨, 2021-22 시즌 레알 마드리드. 재밌는 것은 각자 딱 한 번씩만 우승했다. 두 번 이상 같은 리그에서 우승한 적은 없다. 보통 리그보다는 유럽 전체의 빅클럽이 경쟁대상인 챔피언스 리그 우승이 훨씬 어려운데, 리그 우승 횟수와 챔피언스리그 우승 횟수가 크게 차이나지 않는 특이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것.[17] 2위는 588승의 아르센 벵거, 3위는 563승의 펩 과르디올라.[18] 주제 무리뉴와 공동 수상.[19] 알프 램지 어워드[20] 사실 2021-22 챔스는 결승을 제외한 토너먼트 전 경기가 기적일 정도로 극적인 승부가 많았다.[21] 해당 영상 3분 8초부터.[22] 당시 안첼로티는 레알 마드리드, 클롭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감독이었으며, 1차전 홈에서 3:0으로 승리했고, 2차전 원정에서 2:0으로 패배했다.[23] 이때 승점과 승자승, 원정다득점, 골득실까지 모두 동률이었으나 리버풀에 총 득점수가 2골 모자랐던 나폴리는 리버풀에 밀려 조3위로 유로파리그로 갔다. 반면 기사회생한 리버풀은 승승장구하며 우승했다.[24] 다만 이 경기는 VAR 오심의 이득을 봐서 겨우 비겼으며, 애초에 전반전에 조던 픽포드가 퇴장당해야 되는 장면 역시 VAR 오심으로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