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7 15:35:07

아르센 벵거

아르센 벵거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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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날 FC 역대 감독
팻 라이스
(1996)
아르센 벵거
(1996~2018)
우나이 에메리
(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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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축구감독
파일:벵거의22년.jpg
이름 아르센 벵거
Arsène Wenger
[1]
출생 1949년 10월 22일 ([age(1949-10-22)]세) /
프랑스 그랑테스트지방 바랭주 스트라스부르군 스트라스부르시
국적 프랑스 파일:프랑스 국기.png[2]
신체 191cm[3]
종교 가톨릭[4]
직업 축구선수(수비수[5] / 은퇴)
축구감독
소속 선수 FC 뮐루즈(1973~1975)
ASPV 스트라스부르(1975~1978)
RC 스트라스부르(1978~1981)
감독 AS 낭시(1984~1987)
AS 모나코(1987~1994)
나고야 그램퍼스(1995~1996)
아스날 FC(1996~2018)
국가대표 없음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
3.1. 낭시모나코를 거쳐 J리그3.2. 아스날
3.2.1. 그 외 이야기
3.3. 비판3.4. 전체적인 평가3.5. 어록
4. 경력
4.1. 선수4.2. 감독4.3. 개인수상

1. 개요


프랑스축구선수 출신 감독이다. 1996년부터 2018년까지 아스날 FC 감독을 맡았다.

1949년 10월 22일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에서 출생하였다. 1996년 9월 30일 이래로 약 22년 동안 아스날의 감독직을 수행하였고, 2017/18 시즌을 마지막으로 사임하였다. 아스날 클럽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감독으로 별명은 'Le Boss', 'The Professor'(교수).

2.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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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센 벵거의 선수 시절
청소년 시절 아마추어 팀 FC Duttlenheim, AS Mutzig 등에서 활약하였다. 선수 경력은 골키퍼로 시작하였으나, 경쟁력이 없었기에 수비수로 전업하였다. 190cm 이상의 키로 공중볼을 클리어하는 능력은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아마추어로 보내다가, 차후 프랑스 리그 프로팀인 스트라스부르(RC Strasbourg)로 이적하였다.

대개 선수들이 전성기에 접어드는 29세 때 1부 리그에 데뷔하였다. 78/79 시즌, 소속팀 스트라스부르가 리그앙(당시명칭 르 샹피오나)에서 우승하지만, 출장 경력은 단 11경기에 불과하였다. 이는 벵거의 프로 출전 기록 전부이다.

학업과 선수 생활을 병행한 끝에 명문인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차후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아스날 부임 초기 시절, 일부 선수들은 벵거의 선수 시절 커리어를 실패하였다며 비꼬았다.

3. 지도자 경력

3.1. 낭시모나코를 거쳐 J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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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부터 선수생활을 은퇴하고 스트라스부르의 유소년팀을 이끌면서 스태프 생활을 시작했다. 선수로서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벵거는 일찌감치 지도자 수업을 쌓으면서 감독이 될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감독생활의 첫 발걸음은 낭시 로렌(Nancy-Lorraine)에서 시작되었다. 부임 첫 해에 팀은 리그에서 강등되고 말았지만 클럽은 계속 벵거를 신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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벵거 제 1의 전성기

1987년 AS 모나코가 벵거를 감독으로 선임하면서부터 벵거의 인생에도 큰 반전이 일어나게 된다. 부임 첫해인 87-88 시즌에 AS 모나코를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고 이 해에 프랑스 최고의 감독상을 수상하게 된다. 아울러 이 때에도 쇼타콘어린 선수들의 재능을 알아보는데 일가견이 있어서 티에리 앙리, 릴리앙 튀랑, 엠마누엘 프티 같은 어린 재능들을 발굴해내기도 한다. 또한 최초의 비 유럽인 발롱도르 수상자인 조지 웨아 역시 아르센 벵거에 의해 유럽 무대에 발탁이 된 선수이다.[6] 젊고 재능있는 감독으로 승승장구하던 벵거의 커리어에 제동이 걸린다. 프랑스 리그앙[7]에서 다른 팀에서 불거져온 승부조작 의혹[8]이 터지면서 르 샹피오나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열심히 했음에도 자신이 팀이 만년 2위만 하게 된 이유를 알고 회의감이 온 벵거와 어수선해진 AS 모나코는 리그 순위가 9위로 떨어지는 등 안팎으로 문제가 일어나자 보드진과의 마찰에 휘말려 94년 해임당한다. 훗날 벵거는 '혹시나 자신의 선수들도 승부조작에 연루된 것이 아닌지 의심했다'라며 이 당시 자신이 인간 본연에 대해, 그리고 축구라는 스포츠에 굉장히 불신감을 가졌던 암흑기라고 회고했다. 모나코를 떠난 벵거에게 바이에른 뮌헨에서 감독직을 제의하지만, 정신적인 피로감이 극심하던 벵거는 거절하고 칩거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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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변방으로 떠났던 나고야 그램퍼스 감독시절

잠시 칩거를 하며 머리를 식히고 있던 벵거는 1995년 막 출범한 일본 J리그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당시 나고야는 게리 리네커를 영입하는 등 우승에 대한 열망이 강했으나 2년 연속 꼴지라는 성적에 그치는 팀이었다. 벵거가 부임한 이후 구단의 전폭적인 지원과 유럽의 선진적인 축구 시스템의 도입으로 나고야는 1년만에 리그 3위를 달성하고 덴노배 우승컵까지 들어올렸다. 그야말로 J리그의 흥행을 혼자서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뛰어난 지도력을 선보였다.[9] 당시 하나라도 더 배우고자 했던 열정적인 선수들을 보면서 축구의 즐거움을 다시 한 번 느꼈다고 한다. 특히나 벵거는 일본의 식문화에 매우 감명을 받았다. 쌀밥과 생선, 그리고 채소 위주로 소식을 하는 일본의 식문화에 아이디어를 얻어 엄격하게 식단까지 관리하는 팀 운영을 하는 계기로 삼았다. 2년도 채 안 되는 부임 기간이었지만 벵거는 최근에도 일본에서의 감독 생활은 자신의 감독 인생의 변곡점과 같은 시절이라고 언급한다.

3.2. 아스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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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센 벵거/아스날 FC 문서로

3.2.1. 그 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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벵거의 어록
주제 무리뉴가 팀의 승리를 최우선으로 선택하는 실용주의자라면 벵거는 결과가 다소 좋지 않더라도 자신의 철학을 중시하는 로맨티시스트에 가깝다. 테크닉 축구와 패싱게임의 열렬한 신봉자로 문서 시작의 부분의 말을 봐도 아름다운 축구[10]에 대한 진실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다만 이건 축구장 내에서의 일이고, 축구장 안팎의 일을 통틀어서 본다면 벵거는 합리적인 실용주의자다.

다만 벵거 자신의 이상주의적 성향[11] 때문에 승리를 놓쳐버린 적이 많다. 이는 승리를 위해서라면 과감히 전술을 바꾸는 알렉스 퍼거슨과 대조된다. 그래서 지도력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구단의 부채문제, 매년 끊이지 않는 선수들 부상러쉬와 이적파동 탓도 있다. 그래도 어떻게든 4위안에 턱걸이는 한다. 11/12시즌에 기둥 두 개를 팔아먹으며 드디어 나락으로 떨어지나 했지만 탁월한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주며 3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벵거의 고향인 스트라스부르는 유럽의 경계도시라는 별명답게 프랑스치고는 이질적인 문화가 많은데, 아이리쉬 펍도 그중 하나다. 어린 시절 벵거는 이 펍에서 놀며 깽판을 치는 아저씨들을 보고 자라났다고 했다. 그때부터 술을 극도로 멀리했으며, 그 덕에 아스날의 신년파티는 차나 음료수, 초밥으로 조촐하게 치룬다고 한다. 그때 어른들이 주고받았던 축구 이야기가 지금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회고했다.

벵거는 5개 국어[12]에 능통하며#, 2004년 10월 이즐링턴의 자유상을 수상했고 두 개의 학위를 보유하고 있다.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경제학 학위를 받았고 하트퍼드셔 대학에서 사회학 학위를 받았다. 또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최초로 성공한 외국인 감독이다.

상당한 지일파이다. 일본어도 어느정도 하는 편[13], 일본 J리그의 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 감독으로 재직하던 시절에 일본 문화가 꽤 인상적으로 느껴졌던 모양이다. 대체적으로 일본인들의 근면성실함과 육류를 적게 먹는 식생활을 높이 평가한다.[14] 아스날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에도 일본 관련 발언을 자주하며, 최근에도 감독생활의 마무리를 찍는다면 일본에서 하고 싶다라는 발언을 했다.[15] 다만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을 가능성은 적은 편. 벵거 왈, '대표팀 감독은 마조히스트가 아닌한 수행 불가능한 직책이다'라고.

193cm의 장신. 이와 관련된 우스갯소리로 페어 메르테자커를 영입할 당시 "드디어 벵거가 자신보다 큰 선수를 영입했다!" 따위의 드립이 나돌았다. 다른 팀 감독들을 능가하는 이기적인 기럭지로 여성팬이 좀 있는 듯하다. 이른바 미노년 간지.[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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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색(또는 흰색)셔츠에 빨간색 넥타이가 트레이드 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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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의 주머니에 손을 못 넣는 모습이 팬들을 빵터지게 만들었다. 주머니 지퍼를 실수로 안 연 것이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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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지퍼가 고장나서 한참동안 지퍼를 붙잡고 씨름하시는 바람에 또 팬들을 빵 터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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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13년 5월 4일, 이런 모습이 중계 카메라에 잡히며 감독계의 짤방 제조기로의 등극을 노리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렇게 유독 점퍼를 가지고 애를 먹는 모습이 자주 포착된 탓에 팬 미팅 중 팬으로부터 '언제쯤에야 좋은 점퍼를 입을 수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결국 2014-2015 시즌부터 아스날의 공식 킷 스폰서가 된 푸마의 롱 자켓 광고를 찍었다. 푸마 자켓은 지퍼가 잘 올라가서 걱정없다는 내용. 마지막에 귀요미 표정을 지으며 "I think so too"라고 말하는 것이 압권. SNL에서 패러디한 내용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약빤 광고라 화제가 되었다. 벵거는 근엄한 교수님 이미지에서 코믹한 이미지로의 변신을 노리는 듯 하다.
벵거의 푸마 자켓 광고.

2010년 10월 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알렉스 퍼거슨 감독에 이어 프리미어 리그에서 두 번째로 오랫동안 감독을 하고 있다. 두 팀이 라이벌이기도 하고, 아무튼 2000~04년 정도까지만 해도 서로 죽어라고 깠는데 요새는 아스날이 우승 경쟁에서 한 걸음 비껴있는 모습을 보이면서 퍼거슨도 그렇고 벵거도 그렇고 서로 다투지는 않는듯 하다.[17] 하지만 팬들은 화해하기로 한 적이 없다. 그리고 이 퍼거슨 감독이 2012-2013시즌을 마치고 은퇴하면서 그가 가장 오래된 장수 감독이 되었다.
일명 올드 트래포드에서 아스날을 외치다

2009년 8월 29일 올드 트래포드에서 있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스날의 경기에서 로빈 반 페르시의 골이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자 격분한 벵거가 화풀이로 바닥에 있던 물병을 걷어찬다. 이를 본 4심이 벵거에게 항의를 했지만 화가 난 벵거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무시했다. 그러자 주심이 벵거에게 경기장 퇴장 명령을 내린 사건이다. 사실 감독 퇴장은 무리한 판정이었고 이게 추가시간도 거의 다 끝났을때라서 벵거는 "그럼 나는 어디 가있으란 말이냐"라고 항변했던 일화가 있다. 퇴장에 항의하던 벵거는 결국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테크니컬 에어리어 바로 뒤의 관중석으로 올라가 서는 퍼포먼스를 보였다. 벵거의 이런 당당한 모습에 대기심도 제재를 못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마저도 박수를 치면서 응대했다. 경기는 벵거 퇴장 후 채 1분이 되지 않아 끝났고, 이후 영국 축구심판협회는 이 퇴장에 대해 벵거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참고로 당시 경기의 주심이자 벵거에게 퇴장명령을 내린 심판은 구너의 주적 마이크 딘이다.

상대 전적상에서 벵거 감독이 퍼거슨에 비해 근소하게 우세했으나 최근에 역전당했다.

UEFA 챔피언스 리그UEFA 유로파 리그같은 국제 대회에서는 그다지 인연이 없다. 2006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준우승한 것이 전부다. 유럽무대 징크스로 많은 욕을 얻어먹지만 전전임 감독이었던 조지 그래엄의 지루하며 전형적인 영국 구단 아스날을 이 정도로 변모시킨건 전적으로 벵거의 공이다.[18]

또한 선수를 보는 안목 또한 뛰어나, 벵거의 밑에서 빛을 발한 선수가 많다. 대표적인 선수로는 아스날의 왕이라 불리던 티에리 앙리, 파트리크 비에이라와 전 주장 세스크 파브레가스 등이 있다.

어린 선수들을 주로 기용하는 탓에 로리콘 벵거라고 불리기도 한다.정확히는 남자들이니 쇼타콘이지만[19] 하지만 정작 본인은 24세가 돼서야 프로 리그에 데뷔했다. 이 유망주 정책은 구단의 여유롭지 못한 재정상황 때문이기도 하였다. 벵거 자신도 경제학 학위를 가진 관계로 그런 재정적인 부분을 상당히 신경쓴다.

사실은 20대 중, 후반의 저평가되었거나 가치가 하락한 선수들을 영입하여 갱생시키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에미레이츠 구장을 짓기 전엔 재활 공장장이란 별명이 가장 유명했다. 최근 사례중엔 08-09 윈터브레이크 때 적절히 안드레이 아르샤빈을 영입을 한 것도 있고, 09-10시즌때 비교적 노장인(?) 토마스 베르마엘렌을 데려온 것, 또 12-13시즌에 루카스 포돌스키산티 카솔라 등을 영입한 것이 벵거 본연의 스타일이라고 볼 수 있다.
선수에 대해 경영학적 시각을 철저히 견지하는데, 20대 초중반의 젊은 선수는 앞으로 기량이 상승할 확률이 높으므로 그에 대한 금전적 가치가 많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실제로 20대 후반의 완성된 선수를 데려온 경우가 별로 없으며, 그나마 이적료 지출을 극도로 꺼린다.[20]

프랑스 출신 선수들을 애용하고 정작 잉글랜드 출신 선수는 애용하지 않아서 한때 아스날은 프랑스 리그 소속팀으로 불린 적이 있다. 원인은 벵거가 아스날을 테크니컬한 축구를 하는 팀으로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 축구 스타일이 섬세함 축구보다 빠르고 거친 축구를 선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예 유스들을 키우는 전략을 선택했다.

지금은 프랑스 출신 선수들의 비율은 줄어들었지만 잉글랜드 출신 선수들의 비율은 별로 늘어나지 않아 FIFA나 UEFA에서 은근슬쩍 까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잉글랜드 선수들로 팀의 중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자국 유망주들을 많이 기용하고 있다.[21]

2009-2010 시즌 중 레알 마드리드 감독으로 부임할 것이라는 루머[22]가 파다했다. 벵거도 연이은 무관에 대한 비판에 시달리고 있었고, 레알 마드리드 역시 전통의 라이벌 FC 바르셀로나에 밀려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벵거는...
레알 마드리드는 어렸을적 내가 동경하던 클럽이지만 내게 있어 소중한 것은 자유다.
레알 마드리드는 사온 선수들이 아니라 어린 선수들을 통해 성공을 이뤄야 한다.
사람들은 내가 아름다운 축구에 대해 집착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단지 (현재의)어린 선수들이 계속 성장하고 같이 뛰면서 그들의 게임, 그들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을 사랑할 뿐이다.
맨 처음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을 짓기로 했을때 나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클럽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하면서 최고의 레벨에 계속 오르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어린 선수들로 이뤄진 팀을 만들어서 한 걸음 한 걸음씩 위로 올라가는 것.
우리는 이제 건전한 재정을 유지하면서 아주 어린 선수들로, 재정 건전성을 전혀 고려치 않는 팀들을 상대로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150M씩 적자를 내면서 축구팀을 운영하는건 내게는 속임수나 다름없을뿐이다.
...라는 간지폭발인터뷰를 날렸다. 사실 이 발언 하나에 그동안 벵거를 향한 비판-계속된 무관, 로리콘, 똥고집, 매우 짠 돈씀씀이 등등에 대한 모든 대답이 다 들어있다고 봐도 무방하다.[23] 레알 마드리드 외에도 PSG, 바이에른 뮌헨,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감독직 제의가 수없이 들어왔으나 벵거는 모두 거절하고 아스날에 잔류중이다. 그 이유를 벵거는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내가 아스날에 충성하는 이유는 변방에 있던 나에게 감독직을 제의했던 것이 엄청난 도박이었기 때문이다. 아스날이 나를 감독으로 선임한 것은 용기가 필요한 결정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아스날에 내 흔적을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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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네이버에서 인물 정보를 잘못 올려 학력이 삼척초등학교 중퇴로 나온 적이 있다.

아스널이 득점시 자리에서 일어나며 두 주먹을 불끈쥔 채로 팔을 흔드는 동작을 하는게 한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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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011 시즌 말, 볼턴 원더러스를 상대로 (이번에도 후반 말 역전골을 허용하고) 패배해서 사실상 우승과 거리가 멀어진 경기에서 경기초반 어이없는 실점을 할 때 지은 표정이 뭔가 오묘해서 잠시 현지 포럼들의 필수요소로 등극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1-2012 시즌 3차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원정경기에서 무려 2:8이라는 대패를 당해 115년만에 아스날의 8실점을 재현했다. 이로 인하여 엄청난 비난에 직면한 상황이다.

하지만 클래스는 역시 클래스인지라, 한때 강등권까지 밀려났던 순위를 올리고 또 올려서 결국 챔피언스 리그 직행 티켓을 확보할 수 있는 3위로 리그 일정을 마무리지었다. 물론 여기에는 로빈 반 페르시의 공이 지대하였지만, 반 페르시의 득점포가 박싱데이 이후로 다소 누그러졌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3위로 시즌을 마무리지을 수 있었던 것은 벵거의 능력이 결정적인 요인이었다고 봐야한다. 사실 2005년 FA컵 우승 이후 무려 7년간 무관이지만, 강등권으로부터 3위까지 팀을 끌어올린 내공으로 인해 이번 시즌을 일컬어 '실패한' 시즌이라 부르는 사람은 없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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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3시즌 챔피언스 리그 16강 1차전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무력한 경기 끝에 패배가 확정되어가는 시점에 눈에 눈물이 맺혀있는 모습이 중계 카메라에 장시간 포착되며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이날은 아스날 홈 경기였는데도 불구하고 1-3이라는 스코어로 완전히 압도당한 경기였다. 상대가 원정골 3골을 득점함으로써 2차전이 뮌헨 홈인 점을 감안하면 8강 진출에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클럽인 아스날이 유럽무대에서 다시금 무기력하게 탈락할 수도 있다는 좌절감에 센치해진 듯. 애증관계가 된 팬들의 가슴까지 뭉클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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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망주를 유혹하는 벵교수2014년 브라질 월드컵 기간, 리우의 해변에서 휴가를 즐기는 벵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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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스트라스부르에 본인의 이름을 딴 경기장이 건설되었다. 600석 규모에 10억 원이 투입되었다. 본인도 개장식에 참석.

2016년 10월 13일 "어린 선수로 구성된 팀은 우승 어렵다."라는 말을 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경험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건 괜찮은데 그간의 행적으로 인해 팬들은 "맞는 말인데 벵거 입에서 그런말이 나오다니..."라는 반응.

평창 동계올림픽 스위스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중 리비오 벵거(Livio Wenger)가 있다. 혈연적 관계는 없고 성만 같을 뿐이다. 그런데 몇몇 짓궂은 아스날 FC 팬들은 이 선수를 유심히 시켜보다가 1500m에서 메달 획득에 실패하자 일제히 이 사진과 연관시켜 열심히 벵거를 깠다. 리비오 벵거 선수는 무슨죄

3.3.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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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단 한 번도 빅 이어를 들지 못했지? [24]

축구계의 로맨티스트 vs 실패 전문가[25]
위 사진 속 인물들은 가운데 있는 벵거를 제외하고 모두 챔피언스 리그에서 한번 이상 빅 이어를 들어본 감독들이다.[26] 이 중 마르첼로 리피비센테 델 보스케월드컵도 들어보았으며 알렉스 퍼거슨주제 무리뉴, 펩 과르디올라트레블까지 달성해 감독 커리어의 정점을 찍은 감독들이다.[27] 심지어 로베르토 디 마테오의 경우 우승한 11-12시즌에 첼시에 감독직으로 시즌을 시작한것이 아니라 시즌 도중에 부임한 감독대행 신분인데도 빅 이어를 들었다.[28] 지단은 감독 부임 첫 해부터 빅이어를 들었고 그 이후 역사상 최초의 2연패, 3연패를 달성했다. 데뷔 직후 벵거의 챔스 기록을 압살했다

시계방향으로 12시부터 퍼거슨[29], 베니테스[30], 안첼로티[31], 지단[32], 디 마테오[33], 리피[34], 히츠펠트[35], 델 보스케[36], 과르디올라[37], 무리뉴[38]. 근데 하인케스옹은 왜 없냐[39]

잉글랜드 뿐만 아니라 전세계 축구 역사를 통틀어 손꼽히는 명장이긴 하지만 최근들어 특유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실수를 반복하는 경향이 생겨 비판 여론도 있다.

가장 큰 비판은 역시 유망주 선호 문제다. 유망주 키우는 것에 맛이 들려서 우승을 위해 한두 명 정도는 꼭 필요한 베테랑 선수를 등한시한다는 비판을 많이 받는다. 2003/2004년 우승 시즌 이후 그 다음 시즌이 끝난 여름 이적시장부터 파트리크 비에이라, 티에리 앙리 등 주축 베테랑 선수를 거의 매년 한명씩 내치다시피 했지만 이들의 대체자가 될만한 선수들을 사오지 못했다.[40]

물론 세스크 파브레가스, 로빈 반 페르시 등 유망주들이 성장해서 그들을 대체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설사 능력상으로는 비등하다고 하더라도 비에이라나 앙리가 발휘하던 리더십이나 여타 정신적인 부분은 결코 되찾지 못했다.[41] 결국 이것은 스쿼드 전체의 고질적인 정신력 부족으로 이어졌고 "벵거의 아이들"은 매년 우승의 문턱에서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경기 후반 집중력 부족으로 어이없게 승점을 놓치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첼시, 맨체스터 시티에게 자리를 내주는 과정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결국엔 최근 들어 매년 시즌 초반 돌풍 -> 이번에야말로 우승할 수 있다는 기대감 -> 팬들의 강한 기대와 언론의 주목에 따른 중압감 -> 어이없는 실수 -> 3위 or 4위라는 과정을 무서울 만큼 정확하게 반복하고 있다. 2010/2011 시즌도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4-0으로 앞서다 후반전에서만 4골을 내주며 4-4로 동점을 당하고, 오랜만에 첫 트로피일 수 있었던 칼링 컵 결승에서 후반 인저리 타임 슈체스니와 코시엘니의 경기 막판 예능 플레이로 그 다음 시즌에 챔피언십으로 강등되는 하위 팀 버밍엄 시티에게 패배를 당한 후 완전히 자신감을 상실, 시즌 후반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에부에가 경기 막판 PK를 헌납하기까지 하며 마지막 남은 절호의 리그 우승 기회를 완전히 날려버렸다.

또한 지나치게 유망주 위주인 벵거의 영입 정책이 특히 문제가 되는 곳이 센터백과 골키퍼, 두 포지션이다. 골문은 옌스 레만이 노쇠하여 떠난 이후 프리미어 리그에서 손꼽히는 키퍼 마누엘 알무니아와 함께 수많은 동유럽 유망주만 영입하며 아직도 확실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고, 팀의 주축이었던 콜로 투레윌리엄 갈라스를 너무나도 쉽게 내준 수비 라인은 토마스 베르마엘렌이라는 걸출한 영건 이외에는 아직도 특별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눈 딱 감고 1천 5백만 파운드만 풀어서 제대로 된 베테랑급 센터백과 골키퍼 하나씩 사와서 수비 실책만 없애면 당장이라도 우승할 수 있다는 지적이 몇년 전부터 있었으나[42] 수년 째 성공적인 선수보강에 실패하고 있다.

결국 골키퍼는 유소년에서 올라온 슈체스니가 포텐셜 대폭발알무니아나 파비안스키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드디어 파비안스키의 예능 축구를 안 보고 있다 그런데 2014/15시즌엔 그 슈체스니가 12월이 지나며 폼이 떨어진데다가 흡연행각이 적발되며 벵거의 눈 밖에 났고, 결국 14/15시즌 직전에 영입된 콜롬비아산 골리 다비드 오스피나가 주전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오스피나는 그 슈체스니보다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주며 단숨에 주전자리에 말뚝을 박아버렸다.

수비 라인의 경우 벵거도 유망주 위주의 정책에 한계를 느끼고[43] 베테랑 수비수인 세바스티앙 스퀼라치를 사왔으나 경기력이 기대 이하였고, 결국에는 2010년 여름 이적시장 기간에 로리앙에서 뛰던 로랑 코시엘니를 영입, 그 다음시즌에는 여름 이적시장에서 패닉바이 투자를 하며 페어 메르테자커를 영입하며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골키퍼 쪽은 슈체스니의 경기력이 원래대로 돌아가면서 다시 불안해졌지만 결국 리그앙에서 영입된 오스피나가 제대로 해결했나 싶더니, 15/16 시즌을 앞두고는 자타공인 월드클래스이자 초 베테랑 골키퍼인 페트르 체흐까지 영입해버리며 이 문단 맨 첫줄에 상술한 비판에 대해 모두 답변한 셈이 되었다. 수비수는 결국 온전히 영입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건데, 특히 경험이 필요한 포지션에는 영입을 아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더욱이 애초부터 필리페 센데로스나 요한 주루가 주전으로 나설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한편, 아스날이 에미레이트 스타디움 건축을 위해 엄청난 빚을 졌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로, 이 때문에 당분간은 돈이 있는데도 안쓰는 것이 아니라 없어서 못 쓴다는 이야기도 있다. 오히려 없는 돈에 유망주만 가지고 이 정도 스쿼드를 만들어낸 벵거를 고평가하기도 한다. 어쨌든 돈을 막 쓸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더 잘 쓸 수 있냐, 혹은 어느정도는 써야 되는데 왜 안 쓰냐 이것이 비판의 주안점일 것이다. 허나, 이것에 대해서는 비판론자가 부채 & 당시 아스날에 대해서 무지한게 크다. 첫째로 아스날이 에미레이츠 구장을 설립한 다음에 문제시 된 것은 단기 부채였다. 장기 부채와 달리 단기 부채는 말그대로 빚이기때문에 빨리 해결해야 할 사안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부채를 앉은 상황에서 더 적극적인 투자를 하는 것은 말도 안되다. 게다가, 맨유의 퍼거슨과의 비교도 어불성설이다. 왜냐하면 저러한 상황에서도 퍼거슨은 오언 하그리브스 & 안데르손, 베르바토프등 상당히 고액으로 지불을 해서 선수를 영입한 케이스가 많다. 당장에, 아스날이 외질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15M이 아스날의 최대 이적료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이 빚을 갚으려고 한 상황에서 아스날이 금융위기에 직격타를 맞은 것 역시 감안해야 한다. 당시에 부동산으로 수익을 얻어서 부채를 해결하려 하던 아스날은 이 금융위기로 인해서 상당한 손해를 보기도 했다.

영입 정책 이외에도 전술적인 부분에 대한 비판도 있다. 화려한 숏 패스와 테크닉을 위주로 "아름다운 축구"를 추구하는 아스날은 역사적으로 항상 밀집수비와 피지컬이 좋은 팀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왔다. 샘 알라다이스 시절의 볼튼과 풀리스 시절의 스토크가 이를 활용해 압도적인 전력차에 비해 제법 선전했다. 그리고 진정한 벵거 써는 기계는 스페셜 원 주제 무리뉴. 무리뉴의 제자들 중에선 압도적인 피지컬을 보유한 디디에 드로그바가 아스날만 만나면 문자 그대로 박살을 내버렸다. 이 둘이 부딪치기 시작한 지 10년이 넘도록 한번도 못 이기다가. 2015-2016 시즌 커뮤니티 실드에서 승을 거두며 그나마 무승 행진은 끊어냈다. 2014-2015 시즌에서 무리뉴의 첼시를 상대로 패배할땐 무리뉴를 밀치는 일이 일어나 물의를 빚기도 했다.

그 외에도 자존심이 강하고 약간 우월 의식이 있는지 경기후 심판 판정에 불만을 제기하거나 상대 팀을 깔보는 발언을 하는 빈도가 높다. 자신을 비판하는 이들에게 감독도 안 해봤으면 조용히 하라든지.

한국에서는 일본에서 감독 생활 및 미야이치 료를 비롯한 일본 유망주 영입으로 일빠라고 까였으나 11-12 시즌 여름 이적시장 막판에 박주영을 가로채면서 국민 감독이 될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박주영을 경기에 내보내지 않아 박주영 팬들에게 집중포화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 닉 밴필드 당시 리저브 감독이 박주영에 대해 비판한걸 보면, 훈련장에서 썩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이 때문에 벵거에 대해서 몇몇 축구 커뮤니티에서 그야말로 인신모독에 가까운 욕설을 쏟아내기도 해 한 때 아스날 팬들은 속을 끓이며 앓아야 했다.그리고 2012년 박주영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셀타 비고로 임대되어 아스날을 떠났고 강등권 팀에서도 초반 반짝 후 별반 출장을 못함으로 역시 이유가 있었다는 재평가를 받게 된다. 그리고 박주영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그야말로 병맛같은 활약을 함으로서 벵거가 박주영을 아주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는 게 만천하에 드러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팀에 계속 무리하게 남으려고 했던 박주영도 문제지만 기회를 조금도 안줄거면서 이럴거면 뭐하러 박주영을 영입했냐는 벵거에 대한 재비판이 생기기도 했다.

벵거는 학자풍의 지적인 스타일로, 선수단을 카리스마로 휘어잡는 스타일은 아니다. 바비 롭슨경 처럼 '아버지 리더십'으로 선수들을 관심있게 지도하며 포용력이 강한 덕장의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 선수들과 좋은 일이던, 나쁜 일이던 간에 대화를 많이 하고 섬세하게 컨디션을 파악하며 적극적인 신뢰를 보여주는 스타일. 티에리 앙리, 비에이라, 엠마누엘 아데바요르, 콜로 투레, 세스크 파브레가스, 로빈 판 페르시, 사미르 나스리등 벵거의 수하에 있었던 선수들 모두 벵거를 평할 때 '친아버지' 같은 분이라고 평한다. 비에이라는 이적요청을 하러 휴일 벵거의 집에 찾아갔는데, 자신을 따뜻하게 반겨주는 벵거를 보고 "이 아버지 같은 분을 내가 떠나야 하나" 하고 심하게 마음이 흔들렸다고 한다.[44] 이러한 리더십으로 인해 설령 팀과 안 좋게 헤어지더라도 야망이 없고 투자가 없는 아스날의 보드진이나 정책에 비판을 할 뿐 벵거에 대해 직접적인 디스를 하는 선수는 없고 도리어 감사를 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스날의 팬들은 팀이 수렁에 빠졌을 때 퍼거슨같이 호통을 치건 펩 과르디올라 특유의 화법으로 선수들에게 이야기를 전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정신력을 다시 한번 재무장 하게 만드는 모습이 드물기에 아쉬워 하는 부분도 없진 않다.

또한 선수단 관리에 상당히 큰 문제가 있다고 지적된다. 이러한 점은 몇년 전부터 점점 제기되다가 2014-15 시즌에서는 대놓고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메수트 외질의 부상으로 큰 논란을 빚기도 했고. 주로 적절한 체력 관리와 휴식없이 특정 선수를 혹사시켜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선수가 방전되고 덩달아 팀 성적도 하락한다는 점, 관리가 필요한 선수를 로테이션 없이 계속 돌리는 점 때문에 선수 생명이 우려되는 선수(윌셔?)도 나올 정도 그러나 새 트레이닝 코치를 선임하고 벵거 스스로 문제점에 대해서 인식하고 있다고 줄곧 말해왔으며 작년과 대비하여 부상 빈도율이 20% 줄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2015년 중요한 타이틀 레이스에서 얼마만큼 피드백을 보여줄지 관건이 될 전망이었지만, 그딴거 없고 또 선수단에 부상자가 속출하며 나가리됐다. 아오 빡쳐 산체스, 카솔라, 코시엘니, 월콧 등 팀내 부상자만 10명이다.

근래에는 무리뉴가 선수단과의 불화로 자멸하면서 가만히있던 감독들의 평가가 올라가는 현상을 겪었는데, 벵거 역시 이중 하나 였으나 무리뉴가 팀에 부임한지 2년만에 해낸걸 무려 12년 동안 못하고 있는 건 여전히 고민해봐야 될 문제다. 챔피언스 리그는 전성기 때도 해내지 못했고. 아무래도 12년이 짧은 시간이 아닌 만큼 기존 라이벌 팀들이 몰락하거나 리빌딩에 들어가면서 우승권에 도전할 수 있게 된 지금에도 벵거를 비판하는 아스날 레전드들은 꾸준히 있는 편. 최근의 아스날 선수들 중에 레전드라 부를만 한 선수가 없다는 것과, 챔스에 꾸준히 나감에도 불구하고 2~3년 주기로 주장직까지 단 선수들의 이탈이 매우 잦았다는 점, 또한 그라운드 안에서 사기를 북돋고 감독의 전술을 누구보다 주도하면서 이끌어야 될 됨됨이를 갖춘 인물이 그나마 바르셀로나로 이적을 한 앙리 이후에는 없었다는 것은 트로피 획득 문제 만큼 아쉬운 대목이다. 현지에서도 벵거에 만족하지 못하는 여론이 대세인지 한 영국의 매체에서 경질이냐 유임이냐의 조사를 했는데 84%의 팬들이 경질에 표를 던졌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그리고 웨스트햄 전에서 3:3으로 비기며 15-16 시즌에도 우승이 사실상 좌절되자 벵거를 대차게 까는 칼럼이 올라왔다. 아스널이 무너진 10분, 10년의 실패를 보여주다

가장 중요한 성적으로 얘기하면, 벵거는 2003-2004 시즌 이후 리그 우승을 차지한 적이 없으며, 챔피언스리그에선 2009-2010 시즌 당시에 FC 바르셀로나와의 누 캄프 원정 8강 경기에서 메시에게 4골을 먹히는 굴욕적인 결과를 보여준 이후로는 7년 연속 16강에서 탈락하고 있다. 2013년 여름 이적시장 마지막 날에 데려온 메수트 외질 영입을 시작으로 2014년 알렉시스 산체스, 2015년 페트르 체흐 정도의 선수들을 매 여름 이적시장마다 데려왔는데도 불구하고, 매년 우승권 도전을 한 시즌 내내 유지하면서도 아깝게 2, 3위에 등극하는 정도의 결과 밖엔 거두지 못하며 가수 여자친구가 말하는 "다가서지 못하고 헤메이고 있어 좋아하지만 다른 곳을 보고 있어"가까워 지려고 하면 할수록 멀어져 가는 우리 둘의 마음처럼의 상태가 10년 넘게 변하지 않고 지속되다보니 구너들의 인내심을 바닥을 치고 벵거의 퇴진론의 힘을 실어 주게 되는 것이다.

2016-17 시즌 개막전에서 클롭리버풀에게 패배하자 구너들은 벵거를 다시 비난하기 시작했고 영국 언론들 또한 벵거 감독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특히 이 경기에서 수비수들의 부상으로 인해 롭 홀딩 - 칼럼 체임버스라는 우승을 노리는 팀으로서는 정말 한숨밖에 나오는 중앙 수비진을 내세웠고 그 결과가 홈에서의 4실점 대패로 이어지자 아스날 팬들이 들끓고 있다. 발렌시아 CF의 수비수인 슈코드란 무스타피와 여름 내내 이어져왔고 2라운드 레스터 시티전 이후 벵거도 영입설을 시인했으나, 당초 발렌시아의 FFP 규정 저촉으로 인해 25m~30m에서 형성됐던 협상이 지지부진한 사이 FFP 문제가 해결되었고 발렌시아는 무스타피를 데려가려면 바이아웃인 50m을 지르라며 쎄게 나오고 있는 상태라 영입은 요원해보이는 상황.

이 와중에 벵거는 아스날에서 근무하는 600명의 직원들을 우선적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선수영입에 신중할 수 밖에 없다는 인터뷰를 하면서 국내외 거너들의 어이를 날려버렸다. 벵거 본인이 주전 수비수 로랑 코시엘니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던걸 알고 있었음에도 레스터 시티전에 출전시킨 걸로 드러나 팬들의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코시엘니는 별 이상 없었고 끝내 무스타피를 영입하긴 했다. 그 뒤로 순항하는 줄 알았는데 16라운드 에버튼 전에서 역전패를 당함으로써 그동안 무패로 인하여 말을 하지 않았던 실점이 잦은 것에 대한 수비불안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2016-17 시즌 분명히 드러나기 시작한 문제는 벵거는 전술적 유연함이 제로에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감독마다 스타일이 다르겠지만 경기의 흐름을 읽고 필요할 때 선수를 교체한다거나 전술에 변화를 줘야하는데 벵거는 계속 이 부분이 부족하다고 지적받고 있다. 벵거가 근 10년 간 고집하고있는 4-2-3-1 전술은 본래 카운터에 최적화된 전술이기 때문에 선수단의 대다수가 빠른 주력을 무기로 움직여야한다. 하지만 벵거가 좋아하는 패스 마스터 선수들은 대부분 주력이 느리거나 몸으로 버텨주지를 못하기 때문에(그라니트 자카) 벵거는 공격의 빌드업을 양 윙백에게 전담시켰고 이는 엑토르 베예린이 아스날의 공격을 주도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초반 베예린이 파악되기 전에는 대부분의 EPL 팀들이 베예린의 오버래핑을 막지 못하고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이후 베예린이 공략당하면서 아스날은 수비의 뒷공간을 그대로 노출하기 시작했고 이는 16-17시즌 처참한 성적을 보이는 가장 큰 이유이다.

보통 전술적으로 유연한 감독이라면 플랜 B를 꺼내 수비의 불안을 해소하는 모습을 보였을테지만 벵거는 계속 같은 이유로 실점하면서도 같은 전술, 같은 선수를 꺼내고 있다. 경기에서의 패배 후 인터뷰를 보면 "운이 없었다. 심판의 재량이 문제이다. 공격진이 골을 못넣었다."라는 이유를 이야기 하기 시작하며 대차게 까이고 있다.[45][46]

2016-17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이 문제점이 그대로 노출되었는데 바이에른 뮌헨과의 16강 1차전에서 자신이 고집했던 4-2-3-1을 그대로 복붙했고, 전술이 통하지 않을 때 플랜 B도 준비하지 않은 결과 평상시와 같은 아스널의 선택은 바이에른 뮌헨의 표적이 되기 딱 좋았다. 티아고 알칸타라, 사비 알론소, 비달로 이뤄진 뮌헨의 중앙은 아스널의 허리를 압도했다. 압박으로 아스널의 허리 공간을 좁혔고 아스널이 압박해 들어오면 사비 알론소를 중심으로 쉽게 쉽게 탈압박해 나왔다.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더글라스 코스타, 아르연 로번의 공격진은 수비가 두껍지 못한 아스널의 문전을 계속해서 위협했다. 아스널의 늘어나지 않은 수비 숫자는 특히 1대1에 강한 로번에게 치명적 기회를 경기 내내 내주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경기 기록이 말해주는 바이에른 뮌헨의 일방적 페이스였다. 점유율 69% 대 31%, 성공 패스 694개 대 198개, 패스 성공률 90% 대 73%, 슈팅 24개 대 8개 등 뮌헨의 압도적 우위였고 결국 5-1이라는 스코어를 받아야 했다. 2차전에서도 똑같이 5대1 대패를 당하며 총합스코어 10-2로 16강에서 탈락했다.

16/17시즌 아스날은 결국 리그 5위로 시즌을 마무리하며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놓쳤다. FA컵을 우승하기는 했으나 해도 결코 좋은 시즌이라고는 이야기 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시즌은 다른 선수 누구의 탓도 아닌 벵거의 고집이 팀을 5위로 만들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시즌 초 부터 카솔라의 부상으로 중원에는 창조적인 역할을 할 선수가 없었지만 별다른 영입 없이 아론 램지를 믿고 경기를 운영했고 팀은 주저앉았다. 본인의 아집이 담긴 4-2-3-1은 시즌 마지막의 마지막이 되서야 포기했고 그 때는 이미 너무 늦은 시점이었다. 그래도 FA컵 결승에서는 뛰어난 용병술을 보여주긴 했다.

17/18시즌 개막 전 알렉상드르 라카제트를 영입하면서 드디어 변하나 기대하게 만들었지만, 단순히 저번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놓쳐 화가 난 팬들을 달래기 위한 영입인 것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승 경쟁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루카쿠, 린델로프를 영입 했는데도 수많은 링크를 띄우고 있고, 맨체스터 시티는 베르나르두 실바, 작년 우승팀인 첼시 FC는 뤼디거, 바카요코, 드링크워터 등 스쿼드의 뎁스를 두껍게 만드는데 힘을 쏟고 있지만 아스날의 이적시장은 오히려 주전급 선수들을 팔고있다. 챔벌레인 등 주전 선수들을 파는 모습을 보면 라카제트를 데려와서 화난 팬심을 급하게 달래고, 자신들의 빈 주머니를 다시 채우기 위해 주전급 선수들을 파는 보드진과 벵거의 모습을 볼 수 있다.[47][48]

리그 개막 후 레스터 시티, 스토크 시티전에서 저번 시즌보다 전술적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더니 리버풀 FC와의 경기에서 4 : 0이라는 스코어로 대참패를 당했다. 아스날의 유효 슈팅은 90분 동안 0회로 리버풀을 상대했던 왓포드 FC보다 못한 모습을 보였다.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벵거는 자신의 한계를 보여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넘치는 체력으로 상대를 강하게 압박하고 공을 뺏은 후 역습하는 리버풀 FC위르겐 클롭의 전술을 생각하면, 아스날은 수비를 내리고 뒷공간을 내주지 않으면서 한 방을 노리는 전술을 썼어야했다.

이는 저번 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주제 무리뉴 감독이 사용했던 전술이고 리버풀은 거기에 자신들의 기량을 백퍼센트 발휘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르센 벵거는 요즘 최악의 폼을 보여주고 있는 롭 홀딩, 대니 웰벡을 주전으로 내보내는 이해가 안가는 선발 명단을 내놓았다. 심지어 롭 홀딩리버풀 FC처럼 역습을 즐겨하는 레스터 시티와의 경기에서 뒷공간을 계속 내주며 혼자 2실점을 하는 모습을 불과 2주전에 보였었다! 리버풀 FC는 누가 봐도 약점이 되는 롭 홀딩을 공략하기 시작했고 전반에만 2 : 0, 후반에 두 골을 얻어맞으며 4 : 0으로 털리고 말았다.[* 이 중 롭 홀딩이 관여한 실점은 3실점. 심지어 서브에는 슈코드란 무스타피가 있었지만 벵거는 쓰지 않았다. 언론에서는 벵거가 선수와 밀당을 하려한다고 이야기 하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본인의 자존심을 위해 알고도 팀을 패배하게 만들었다는거다.

리버풀 FC와의 경기 후, 팀의 주전급 선수들의 이적 루머가 단체로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알렉시스 산체스맨체스터 시티로, 알렉스 옥슬레이드-체임벌린첼시 FC,리버풀 FC와 연결되고 있고[49], 슈코드란 무스타피인터 밀란[50], 메수트 외질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올리비에 지루에버튼으로 링크가 나고 있는 상황.[51] 이 선수들 중 두 명만 나가도 이번 시즌 아스날은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은 커녕 유로파 리그 티켓도 보장 할 수 없다. 결국 알렉스 옥슬레이드-체임벌린은 약 £40m의 이적료로 리버풀 FC에 이적했다.

일단 겨울 아직까진 여느 때처럼 챔스권을 위해 경쟁 중이다. 온갖 잡음들로 주변이 시끄러울 와중에도 한결처럼 흔들림없이 더도 덜도 아닌 4위 싸움을 벌이는 걸 보면 꾸준하다고 해야할지, 발전이 없다고 해야할지...

팬덤은 국내나 현지나 전부 벵빠와 벵까로 나뉘어 하루가 멀다하고 으르렁대는 중으로 매 주말 경기결과 하나 하나에 팬들의 들고 일어나는 모습이 아스날이 처한 현상황을 보여주는 대목이겠다.

보드진과 크뢴케 회장은 아스날 FC의 우승을 바라는 것 보다, 팀을 유럽 선수권대회에 진출시키고, 그걸로 방송 수익료나 팬들에게 티켓 값을 올려 팔면서 돈을 버는 걸 중점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아스날의 끊임없이 반복되는 매시즌 되풀이는 보드진의 탐욕과 벵거의 점점 시대에 뒤쳐지는 올드함 때문이라 봐도 과언이 아니다.

전체적으로 벵거를 비판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벵거의 영광의 10년 역사 이후를 비판하는 경향이 크다. 특히, 외질과 산체스가 오면서 아스날의 아기자기함이 사라지고 원맨 캐리로 인해서 경기가 결정되는 성향이 많아지자 더더욱 이는 심화되었다. 확실히, 후기 벵거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다만, 후기 벵거만을 근거로 벵거를 비판하기에는 전기 벵거의 퍼포먼스가 상당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전체적인 감독의 커리어를 평가할 때 이렇게 후기만의 성과를 바탕으로 비판을 받는 이는 벵거만한 감독도 그닥 없을 것이다.

총평하면 벵거는 2000년대 초반 잉글랜드 프로축구의 전술의 새로운 트렌드를 도입하고 좋은 성적을 달성했지만, 200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현대축구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며 낙오되었다. 벵거는 특히 중앙지향적 전술을 선호하며, 다양한 측면플레이어들을 중앙에 배치하거나 중앙지향형으로 플레이하게 만들며 능력을 개화시킨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이는 약팀, 강팀을 제외하고 중앙공간을 수비적으로 메꾸면서 10백 체제로 대응하는 전술에 취약했고, 지속적으로 승점을 따는데 실패하면서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로베리, 메시, 호나우두, 네이마르 등으로 대표되는 측면플레이어들이 현대축구에서 세계적인 월드스타로 거듭난 것은 현대축구에서 그만큼 측면공간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벵거는 전형적인 윙어스타일의 선수를 거의 기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윙어스타일의 선수를 중앙지향적으로 사용하면서 자신의 전술에 대한 집착적인 고집을 부렸고, 다른 감독들에게 완전히 파훼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벵거는 2000년대 후반부터 로테이션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상실하고 베스트일레븐을 일정과 관계없이 거의 풀타임 출장시키면서 혹사시켰다. 2000년대 초반 어린 선수들과 로테이션 선수들을 교체하며 용병술의 이득을 보았던 것과 대조되는 점으로, 2000년대 후반에는 대부분의 교체가 80분 이후에 시간끌기 식으로 이루어졌었다. 물론 이는 얇은 선수층으로 인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즉시전력감을 영입하지 않았던 벵거 자신이 초래한 문제이다.

많은 팬들이 벵거가 추구하는 패스 위주의 축구를 아름답고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벵거의 이상적인 중앙지향형 패스축구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상대팀 박스 근처에서 수적 우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풀백, 미드필더, 공격진을 포함하여 모두가 박스 근처에 배치되면서 역습에 취약하게 된다. 이는 10백 후 역습전술에 가장 취약한 형태이며, 벵거는 이 약점이 모두 파악된 후에도 전술을 포기하지 못하고 집착하다가 결국 도태된 것이다.

3.4. 전체적인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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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날이 장기적으로 발전할 기초를 마련한 명장

EPL의 축구 스타일을 바꿔버린, EPL에 혁명을 일으킨 감독

아스날에서 가장 건강한 남자#

무패 우승, 명예의 전당, 그리고 이제는 대통령 수제자까지 가졌다.

참고해 볼 만한 글

일단 킥 앤 러쉬가 주류를 이루던 EPL에 당당히 입성해서 패싱 플레이 등 축구판도를 완전히 바꿨고, 훈련 시스템이나 선수 체크[52] 등 여러 방면에서 축구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아스날에 처음 와서 바꾼 것이 음식 부문이다. 알콜에 빠져있던 아스날의 영국 선수들의 술을 금지하고 과도한 육식 대신 일본에서 경험한 채식 위주의 식이요법을 적용했고 그 결과 후반전만 되면 체력이 고갈되던 아스날 선수들은 전후반 90분을 뛰고도 더 뛰고 싶어할 정도로 체력이 급달라졌다.[53] 이건 그저 한 예시에 불과하고 벵거를 다룬 칼럼을 찾아보면 대단한 점을 많이 찾을 수 있다. 후에 이런 방식이 널리 전파되었지만 벵거가 선구자인 것은 아니다. 음주 금지와 식단관리 같은 것은 다른 감독들도 먼저 시작했던 부분으로 벵거보다 거의 10여 년 먼저 잉글랜드 축구팀에 부임한 퍼거슨도 이러한 면을 엄격하게 관리했다.

또한 많은 이들이 벵거하면 아스날밖에 생각치 않는데, AS 모나코에 대한 기여도 상당하다. AS 모나코가 명문으로 상당히 인정 받았던 시절이 바로 벵거 감독이 이끌었던 시절이다. 밑에 경력을 보면 알겠지만 리그앙 우승 1회, 프랑스컵 우승 1회에 위너스컵 준우승 리그앙 준우승이 3번인데, 한마디로 모나코 부임 내내 팀을 우승권 언저리에 올려놓은 셈.

벵거 부임 직전 1994-95 시즌, 아스날은 12위였다. 이후 벵거가 부임한 1996-97 시즌부터 아스날은 많은 발전을 이루었고, 축구 스타일이 지루하다고 지적된 아스날을 부임하자마자 단숨에 바꾼 내공은 무시할 수 없다.

박지성의 맨유 입단 즈음인 2005년부터 해외축구를 접한 한국의 해축 팬들에겐 무관이라 조롱받고 있고 능력없는 감독이라 폄하되고 있다. 그러나 벵거 감독은 독일 국대의 플레이메이커이자 레알 마드리드의 핵심선수가 레알 마드리드라는 세계 최고의 명문 구단을 떠나서 감독 하나만 보고 아스날에 오게 한 감독이며, 17년 연속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한 감독이자, 그리고 감독들의 무덤 레알 마드리드에서 언제나 영입 1순위로 점찍어 뒀던 감독이다. 프랑스 국가대표팀의 영입 1순위이였던 것도 사실이다.

벵거가 오기 전 아스날은 리그 우승 10회 FA컵 우승 6회의 성적이었다. 지금이야 맨유, 리버풀과 더불어 명문 취급받지만, 당시 트로피 숫자로 보면 넘사벽의 맨유나 리버풀보다는 오히려 에버튼이나 아스톤 빌라와 가까운 클럽이었다. 벵거 부임 두 시즌 전인 1994-95 시즌을 기준으로 보면, 에버튼은 리그 우승 9회 FA컵 우승 5회였고, 아스톤 빌라는 리그 우승 7회에 FA컵 우승 6회 그리고 무려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아스날과 정말 비슷하다. 에버튼과 아스톤 빌라가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부진한 사이 벵거의 아스날은 90년대 중반부터 2005년까지 리그 우승 3회와 FA컵 우승 4회를 했고[54] 낡은 구장에서 새로운 구장으로 이사까지 했다. 거기에 1998-99 시즌 이후 17시즌 연속 챔피언스 리그 무대에 참가 중이며 2000-01 시즌부터 17시즌 연속 챔스 16강에 진출 중이다.[55] 이런 기록을 가지고 있는 클럽은 레알 마드리드[56]나 맨유 정도가 유일.[57] 가장 꾸준한 것이 가장 쉬워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어려운 법이다.[58]

위에도 있듯이, 세계 최고의 구단인 레알 마드리드가 항상 원했지만 늘 정중히 거절해온 감독이 아르센 벵거다. 바이에른 뮌헨 역시 모나코 감독이었던 시절 부터 꾸준히 러브콜을 보냈다. 하지만 벵거는 모나코 감독을 사임하고 뮌헨과 J리그 중 J리그를 택했다. 잠시 머리를 식히러 갔던 J리그에서도 1년 만에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팀을 우승권에 바로 안착시키는 등, 트로피를 드는 능력도 무시할 수 없다.[59]

그리고 무엇보다 벵거 감독의 가장 뛰어난 점, 그리고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점은 바로 구단의 재정관리 부분인데, 사실 현재 아스날이 무관의 세월을 견디고 있는 이유는 벵거의 무능이 아니라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을 지은 데에 대한 후폭풍이다. 지은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데 무슨 소리냐고 묻는 이들도 있겠지만, 천만의 말씀.

아스날 이외에 구장 새로 지었다가 강등 안 된 팀 없다.[60][61] 바이에른 뮌헨: 우리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여기도 있는데?? 볼프스부르크:모기업이 승격기념으로 새로 지어줌 거기에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은 땅값이 엄청난 런던의 한복판에 지은데다 모든 시스템이 전부 최신이기 때문에 돈은 그것대로 더 들어갔다. 어마어마한 부채를 떠안고[62][63] 거기에 빨리 짓기 위해, 나이키/에미레이츠 등과 스폰서 계약을 사실상 헐값에 가까운 돈으로 일시불로 받아서[64] 재정적으로 허덕이는 팀을 매년 챔피언스 리그로 이끈 것은 전적으로 벵거의 힘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당시 에미레이츠를 지을 돈을 은행에서 대출받았을 떄 은행이 내건 조건 중 하나가 벵거의 5년계약이었다. 구단주의 지원도 없이 클럽이 자칫하면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수많은 클럽을 거절하고 아스날을 지킨 것은 개인으로는 큰 커리어적 희생이었지만 팀으로서는 기반이 닦여지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벵거가 언제나 자신보다 아스날를 우선시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65]

거기에 EPL의 스카우터 제도 또한 벵거가 새로운 파도를 일으켰을 뿐더러[66], 선수를 보는 눈 또한 대단하다. 2000~2006년 무렵 벵거가 선수 사고 파는 솜씨는 정말 경탄을 자아내는데, 콜로 투레, 티에리 앙리, 송, 파브레가스, 아데바요르, 반 페르시, 가엘 클리쉬, 니콜라 아넬카, 바카리 사냐, 에보우에, 알렉산드르 흘렙과 같은 선수를 단물 실컷 빨아먹고 팔았다. 정말 이 시절은 벵기꾼, 벵타짜라는 말이 어울리던 시절. 플라미니, 갈라스, 애슐리 콜, 로베르 피레스도 장사에는 실패했지만 쏠쏠하게 잘 부려먹었다. 2000년 후반~2010년대 초반에도 영입질을 못하진 않았는데 부상 + 얇은 스쿼드의 한계 때문에 말아먹은 경우가 많다. 그리고 산티아고 카소를라로랑 코시엘니, 기어이 포텐을 터트린 아론 램지 사례를 보면 이 분의 촉은 아직 살아있다. 다만 부임 당시 가장 진보적인 훈련, 진보적인 선수 관리로 일컬어졌던 벵거의 선수 관리 스타일이 2000년대 후반 들어 집중적으로 부상 병동화가 되면서 비판을 받고있다. 당시에는 진보적이었으나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평. 이 부분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2013-14 시즌에 들어서며 7,000만 파운드의 이적자금을 손에 쥐고서도 자유계약으로만 단 두 명을 영입[67]한 채로 이적시장 마감 하루 전날 북런던 라이벌 토트넘 핫스퍼와의 더비전을 치르게 되자 잉글랜드 현지뿐 아니라 전 세계의 팬들이 "팬들에 대한 기만이다."라며 분노의 수위가 높아졌으나...[68] 선수 영입에는 단 한 푼도 쓰지 않은 채 지난 시즌의 베스트 일레븐으로 나선 아스날은 이날, 폭풍영입으로 스쿼드의 절반을 갈아치운 토트넘을 경기력으로 압도하며 1-0으로 승리했으며 경기후 이적 상황에 관해 묻는 인터뷰에서 벵거는 "우리는 한두 명의 슈퍼 퀄리티를 영입할 것이다."라며, 뭔가 밑장을 깔아놨을 때 항상 지어오던 특유의 의문스러운 미소를 던지곤 돌아서 분노했던 팬들에게 혼란을 초래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적시장 막판에 레알 마드리드에서 메수트 외질을 영입 완료하며, 이번에는 슈퍼 퀄리티에 대한 약속을 정말로 지켰다.[69] 그것도 클럽 레코드를 경신하는 4,250만 파운드(5000만 유로)로 역대 EPL 영입금액 2위, 타 리그에서의 이적으로는 역대 1위(!!!), 2013년 EPL 내 1위에 해당하는 금액을 질러버린 것.[70] 기존 클럽 레코드였던 안드레이 아르샤빈의 영입금액 1,500만 파운드(추정)에 비해서도 세 배 가까이 되는 충격적인 액수였기에 전 세계 축구팬들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벵거는 자신을 향한 '짠돌이' 로리콘, '몽상가', '완고한 늙은 독재자' 등등의 비난 여론에서 흐름을 완전히 반전시켜버리는 데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더ㅈ이상 벵거의 독단을 방치할 수 없다'며 인내심을 잃었던 팬들이 다시금 벵거를 찬양하며 자신의 믿음이 신실치 못했음을 참회하고 있다고... 벵멘 ...인줄 알았으나 이후로도 지속적인 문제가 드러나면서 점점 그에 대해 신뢰를 잃는 이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71]

그리고 푸마와의 메가급 스폰서를 맺고 빚을 대부분 청산한[72] 2014년 오프시즌에는 7월도 안 지났는데 메없산왕 알렉시스 산체스를 바르셀로나에서 데려왔고 레알 마드리드의 사미 케디라 역시 노리고 있다. 대대적인 돈질을 하는 벵거를 벵수르 보고 모든 유럽 축구팬들이 적응이 안되는 동시에 그동안 구장으로 인한 재정난이 심각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수비수를 안 사서 현재 심각한 스쿼드난에 시달리고 있다는게 함정. 구장의 빚도 거의 갚아가는데다, 푸마와의 스폰서딜을 계약하여 자금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특히, 현재 아스날의 이적 정책에 있어서 벵거가 끼치는 영향력이 막대하다. 최근에 영입된 외질 & 알렉시스, 체흐, 쟈카 모두 벵거가 전화로 직접 연락을 취해서 영입에 성공한 케이스. 쉽게 말해서, 가지디스나 다른 스카우터들이 특정 선수를 뽑아온다면, 거기서 벵거가 자신이 마음에 드는 선수를 찍어서 마침표를 찍는 역할이라고 봐야 한다. 결국 벵거가 없으면 화룡점정을 할수 없다는 뜻. 실제로 가지디스는 작년에 열린 AST 미팅에서 벵거가 없으면 월드 클래스 영입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간접적으로 벵거의 경질 논의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넌지시 밝히기도 하였다. 실제로, 벵거가 아스날을 그만둔다면 아스날의 요긴한 프랑스 자원들이 아스날을 선택할지, 그리고 벵거만 보고 아스날에 온 외질, 산체스 등의 월드클래스 선수들도 아스날에 남아있을지도 크나큰 의문 중 하나.

그리고 소위 말해서 잉글랜드 내에서 고유의 색과 전술을 구사하는 축구팀을 만든 몇 안되는 감독이다. 벵까들이 흔히 말하는 게, 벵거의 아스날에 전술이 없다는 것인데...이건 벵스날 경기를 보기는 한 건가? 아니면 1시즌만 보고 평가한 건가? 라고 할 정도로 말이 안되는 망언이다. 플랜B가 아쉬울지 몰라도, 벵거만큼 플랜 A를 장기적으로 기복없이 보여준 감독은 퍼거슨이 유일하다. 게다가, 2014-15 시즌 부터는 적극적으로 플랜 B를 활용한 전술을 자주 사용한다. 특히, 현재 시즌인 2016-17 시즌에 벵거가 선택한 산체스 톱은 윙어로서 한계를 보여주던 산체스의 폼을 살려주고, 아스날 역시 실점에 대한 리스크를 줄이면서 득점력이 더 터지게 만들 정도로 꾸준히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벵거의 전술의 유연함이 적다는 것 역시 반박이 가능하다. 벵거 부임 이후 아스날의 공격진을 연도별로 분석해보면,

1기 : 이안 라이트 - 베르캄프
2기 : 앙리 - 베르캄프 (그외 윌토르, 카누 등등)
3기 : 아데바요르 - 반 페르시 (그외 에두아르도)
4기 : 반 페르시 (442 포메이션에서 433 or 4231를 시도)
5기 : 올리비에 지루 (본인의 축구와 대척점에 있다고 봐도 무방할 타겟 스트라이커 운용)
6기 : 알렉시스 산체스 (펩 역시 인정한 최적의 산왕 사용법)
7기 : 오바메양 (미키타리안, 외질을 이용한 빠른 역습 축구)

벵거가 늘 공격진에 한정해서는 새로운 스타일의 선수를 사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연 유연하지 않은 감독이 저러한 컨셉의 변화를 추구할 수 있을까? 게다가, 산왕톱은 바르샤에서도 실패하고 칠레에서도 산왕은 세컨톱으로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줬다는 것을 무시할 수가 없다.(다만 벵거 감독은 측면 전술을 선호하지 않고 상당히 취약하다. 클래식 윙어 자체가 현대축구에서 도태된 포지션이긴 하지만 여전히 측면에서 직선적 움직임을 이용한 플레이는 가장 강력한 도구 중 하나이다. 펩, 클롭과 같은 현대 축구계의 명장들이 용병술을 통해 측면 전술을 사용하는 점과 대비된다.) 자세한 내용은 벵거볼 문서 참조.

그리고 벵거가 4231 포메이션을 고집한다는 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맞기는 한 게, 실제로 이 전술의 장/단점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스날이기 때문. 허나, 틀린 점을 꼽자면 외질이라는 선수를 이미 윙어로도 기용하면서 4141 전술도 쓰려했다가 실패한 것을 기용하면 벵거보다는 외질이라는 No.10 선수가 가지는 한계를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요근래 하메스나 KDB, 라키티치 등이 뛰는 포지션이나 탑클래스 레벨이 레바뮌에서도 No.10이 가지는 한계 때문에 4231은 별로 안 쓰이는 전술이기는 하다. 허나, 아스날이 외질을 버리고 해당 전술로 가기에는 돈이 많이 든다. 당장에 433이 주 포메이션인 팀들의 선수들의 몸값이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2017년 4월 11일 기준 위의 발언은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과거의 벵거는 전술적으로 유연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전술적 유연함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벵거의 4231 전술은 중원이나 중앙 수비수가 빌드업을 천천히 해야하는 전술인데 벵거가 고집하는 아름다운 공격축구 '벵거볼'과는 대척점에 있는 전술이다. 벵거는 실제로 4231의 빌드업을 양 윙백이 시작하도록 지시해서 윙백이 윙어만큼 오버래핑하도록 지시했고 이는 아스날이 최근 5경기 내내 뒷공간이 털리며 실점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크리스탈 팰리스에게 3:0으로 패배하며 더 이상 변명의 여지도 없음을 보여줬다.)

플랜 A인 4-2-3-1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때 다른 공격 옵션인 올리비에 지루를 중심으로 2톱 전술을 구성하는 플랜 B 전술을 팬들은 바라고 있다.[73]

하지만 벵거는 본인이 추구하는 축구를 위해 오직 4-2-3-1만 고집하다 시즌의 마지막이 되서야 아름다운 축구 소위 벵거볼을 포기했고 그 때는 너무 늦어 리그 5위,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 실패라는 결과를 낳았다.

최근에 빌리 빈이 벵거에게 한 발언이 바로 벵거라는 감독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보여준다. "한 클럽을 100년이나 염두에 두고 클럽을 운영하는 사람."

벵거라는 감독을 평가할때는 그가 20년 동안 감독 생활을 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그 감독 커리어에서 벵스날의 컨셉은 다양하다.

1기 - 프티 & 비에이라는 강력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한 중원 장악
2기 - 피레스 & 융베리라는 미드필더면서 공미도 소화가능하면서 득점에도 능한 다재다능한 사이드 플레이메이커의 활용
3기 - 세스크를 중심으로 시작하게 된 소위 세스갱의 시작
4기 - 외질과 로시츠키, 카솔라, 램지 등을 주축으로 한 원터치 플레이의 극대화
5기 - 3백으로의 귀환 및 모든 선수들의 공수 가담 및 밸런스 유지
6기 - 4백으로 다시 귀환 램지, 자카를 이용한 수비적으로 경기
7기 - 자카의 수비가담과 윌셔의 역습 제공

22년 동안 벵거가 획득한 타이틀 갯수는 생각보다 적을 수도 있다. 하지만 좁게는 아스날과 EPL, 넓게보면 유럽 축구계에 족적을 남겼던 벵거에 대해서 호르헤 발다노가 아리고 사키를 평가했던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결과만 중요하다고 하면서, 미래에 남는 건 커리어뿐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 사람의 기억에 남는 것은, 축구의 위대함을 찾아 나설 때 얻어지는 느낌이다. 가령, 비록 파비오 카펠로의 AC 밀란이 더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우리는 아리고 사키AC 밀란을 더 생생하게 기억한다.

한때 국내 아스날 팬카페 하이버리를 운영했던 공인했던 아스날 팬 박종윤(축구) 캐스터의 벵거에 대한 평가 벵거 아웃? or 벵거 종신? 이것을 듣고 택하라

3.5. 어록

나의 꿈은 타이틀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가장 완벽하고 이상적인 축구가 그라운드에서 단 5분만이라도 구현[74]되는 것을 보는 것이다.
슈퍼스타를 사 오지 않고 키운다.
평가 수치가 높은 선수는 결국 대성했다.
감독은 항상 혁신가여야 한다.
선수의 능력 향상은 경기의 다양한 상황 속에서 설령 정답이 아니더라도 스스로 해답을 찾아낼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나는 카솔라가 누군지 모른다.[75]
아스날에서 일하는 600명의 고용인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영입은 신중해야 한다.
앙리, 팬들 야유 제대로 들은거야?
사람들의 판단, 의견, 지난 결과에 따른 실망감은 내 알바가 아니다. 내가 신경 쓸 부분도 아니다
우리는 우승하는데 있어 아무런 문제 없다
나보다 더 많은 FA컵 트로피 가진 사람 있는가?
파예는 생테티엔 시절부터 지켜보던 선수다. 파예 안 산 이유? 우리에겐 외질, 윌셔, 카솔라, 램지가 있다[76]
유망주의 육성이 어려운 것은 '이 선수에게 출전 찬스를 주자'라는 각오와, 매주마다 정예 멤버를 보고싶어하는 전문가나 서포터를 적으로 돌리고서 '그딴 것보다도 너를 믿기로 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강인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인생을 살면서 몸에 익힌 윤리관은 축구를 통해 배운 것이다. 클럽으로서 우리는 교육적인 의무를 지고 있다. 아스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시합이나 행동을 통해 윤리관을 배울 수 있어야만 한다.
"경기력이 나쁠 때의 유일한 해결책은 전력보강이다"라는 풍조를 나는 무엇보다도 증오한다. 해결책은 팀이 단결하고 비판에 응수하며 자신들에게는 충분한 실력이 있다고 증명하는 것이다.
결과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결과는 모든 것이다.
선수의 잠재능력을 꿰뚫어보는 방법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언제나 상대의 장점을 발견해나가는 것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이 사람에게는 무엇인가가 있다. 무언가 좋은 것을 갖고 있다. 라며 자신을 설득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90분만으로도 '인생은 멋지다'라고 느끼며 귀가할 수가 있다. 이 사실에 나는 긍지를 느끼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프로 축구의 존재의의이다.
축구에는 전세계에 대한 책임이 있다. 프리미어 리그의 빅매치는 전세계의 5~7억명, 가끔은 10억명이 보기도 한다. 인도나 남아프리카의 아이들이 집에 앉아서 루니나 파브레가스를 바라보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그들과 같은 선수의 영향력은 대단히 거대하다.
이 일을 하면서 내가 가장 신뢰하는 것은 자기자신을 바꿀 수 있는 인간이다. 왜냐하면 자기자신을 바꾼다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걸 할 수 있는 인간이야말로 가장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는 인간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 일을 하고나서 곧바로 자신의 감정을 내비치지 않는 방법을 익혔다. 그리고 일본에서의 경험이 이 능력을 완벽하게 만들었다. 그 나라의 사람들은 예를 들어 아침에 아내가 죽더라도 직장에 출근하고 심지어 그 사실을 주변에 알리지 않는다. 개인적인 문제로 주변에 를 끼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전쟁이 끝난 직후에 태어나 독일을 미워하도록 교육받으며 자라왔지만, 이윽고 의문을 느끼게 되었다. 국경을 넘어보니 독일 사람들은 우리들과 무엇하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을 미워하는 것은 정말로 멍청한 짓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스날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서 팀의 가치를 소중히 지켜주길 바란다. 아스날에 대한 나의 사랑과 지지도 영원할 것이다.

4. 경력

4.1. 선수

  • RC 스트라스부르(1978–1981)
    • 우승
      • Ligue 1 (1회): 1978–79
연도클럽출장수(골)
1973–1975Mulhouse56(4)
1975–1978ASPV Strasbourg80(20)
1978–1981RC Strasbourg11(0)
8시즌통산147(24)

4.2. 감독


* AS 낭시(1984~1987)
* AS 모나코(1987~1994)
* 우승
* Ligue 1 (1회): 1987-88
* Coupe de France (1회): 1990-91
* 준우승
* UEFA Cup Winners' Cup (1회): 1991-92
* Ligue 1 (3회): 1990-91, 1991-92, 1992-93
  • 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1995~1996)
    • 우승
    • 천황배 축구대회 (1회): 1996
    • J리그 Super Cup (1회): 1996
    • 준우승
    • J리그 (1회): 1996
  • 아스날 FC(1996~2018)
    • 우승
    • Premier League (3회): 1997-98, 2001-02, 2003-04
    • FA Cup (7회): 1997-98, 2001-02, 2002-03, 2004-05, 2013-14, 2014-15, 2016-17
    • FA Community Shield (7회): 1998, 1999, 2002, 2004, 2014, 2015, 2017
    • 준우승
    • UEFA Champions League (1회): 2005-06
    • Premier League (6회): 1998-99, 1999-2000, 2000-01, 2002-03, 2004-05, 2015-2016
    • FA Cup (1회): 2000-01
    • League Cup (3회): 2006-07, 2010-11, 2017-18
    • FA Community Shield (2회): 2003, 2005
    • UEFA Cup (1회): 1999-2000

4.3. 개인수상

  • French Manager of the Year: 1988, 2008
  • J. League Manager of the Year: 1995
  • Onze d'Or Coach of The Year: 2000, 2002, 2003, 2004
  • FA Premier League Manager of the Year: 1998, 2002, 2004
  • LMA Manager of the Year: 2001–02, 2003–04
  • BBC Sports Personality of the Year Coach Award: 2002, 2004
  • Freedom of Islington: 2004
  • FWA Tribute Award: 2005
  • English Football Hall of Fame: 2006
  • Premier League 이달의 감독: 13 times (March 1998, April 1998, October 2000, April 2002, September 2002, August 2003, February 2004, August 2004, September 2007, December 2007, February 2011[77], February 2012, September 2013)

[1] /aʁsɛn vɛŋ(ɡ)ɛʁ/. Arsène Wenger를 프랑스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하면 '아르센 벵게르'지만, Wenger라는 성씨는 독일계 성씨이기 때문에 국립국어원의 표기 용례에서는 감독의 성에 독일어 표기 규정을 적용시킨 '아르센 벵거'를 표준 표기로 삼고 있다.[2] 독일계 프랑스인[3] 젊은시절 194cm.[4] 존 크로스의 책 "아르센 벵거 - 아스날 인사이드 스토리"에 따르면, 2014년 여름 이적시장, 가장 분주했던 마지막 날에 가톨릭 신자였던 벵거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러 로마로 갔었다고 한다. 참고로 아스날은 2014년 여름 이적시장 마지막 날 대니 웰벡을 영입했다.[5] 센터백[6] 훗날 조지 웨아가 조국인 라이베리아의 대통령까지 된 걸 생각하면 엄청나게 성공한 제자가 아닐 수 없다.[7] 당시 명칭 르 샹피오나[8] 참고로 저 때 승부조작을 시도한 주동자 중 한 명이 장-피에르 베흔이다. 당시 마르세유와 경쟁하던 AS 모나코의 감독이 벵거였기에 둘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악연을 이어가는 중이다. 베흔은 2년간 축구계에서 퇴출된 뒤 현재는 프랑스 A급 선수들을 독점하는 에이전트이자 프랑스 축구계의 흑막으로 활동중이다. 베흔은 아스날에서 맨시티로 이적한 사미르 나스리의 에이전트도 맡고 있으며, 그의 맨시티 이적에는 베흔의 역할이 컸다는 후문이 있다.[9] 그러나 아르센 벵거의 증언에 따르면 AS 모나코에서 감독으로 있을때 바이에른 뮌헨을 비롯한 여러 명문 클럽들의 오퍼도 거절했는데 경질당한 배신감에 가장 먼저 오퍼오는 팀의 감독으로 가려고 결심하고 있었는데 J리그에서 오퍼가 와서 갈지말지 고민을 하다가 갔다고 한다. J리그로 가기 전에 이미 벵거는 여러 우승 기록을 가진 유럽에서 주목받는 감독이었다.[10] 벵거가 말하는 아름다운 축구는 아스날 전성기에 보여준 우두다다 닥공 축구에 가깝다. 유로 2012를 프랑스TV에서 해설하면서 스페인의 점유율 축구에 대해서도 재미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점유율을 부수적인 산물로 보는 공격적 성향을 드러내는 셈.[11] 한 경기만 봤을때는 맞는 말이지 전체적인 아스날의 커리어를 보면 그렇지만도 않은게...사실 추구하는 패스축구가 이상적인 거지 구단 운영 모습을 보면 굉장히 현실주의적인 사람이다. 경제 전문가이기도 하고.[12] 영어, 불어, 독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일본어는 능통하다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기본회화는 충분하다 한다.[13] 2015년 2월 가브리엘 영입과 관련된 가디언 인터뷰에서 나고야 감독시절 배운 일어를 언급했다.[14] 현대 프랑스 요리관이 일본 요리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탓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15] 또 2010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 이후 혼다 케이스케를 칭찬한 일화라든지, 최근 일본의 유망주 미야이치 료를 영입한 일이라든지 일본 선수에 대한 관심을 많이 표명하는 편이다.[16] 벵거가 부정할 수 없는 미노년인 것은 사실이지만 간과하기 힘든 것은 노안이기도 하다. 젊을적부터 머리가 허옇게 샜고, 주름이 움푹 진 얼굴이라 로볜만큼은 아니더라도 나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들어보였다. 게다가 예순을 넘긴 지금도 흰 머리와 주름진 얼굴은 더 심해져 모르는 사람이 보면 십년은 더 나이든 영감님으로 착각할 정도다. 그러나 그 노안을 무시할 정도로 우월한 기럭지와 정장 코디, 이른바 미노년의 멋으로 상쇄한다.[17] 11/12 시즌에는 퍼거슨이 초반 나락에 떨어진 아스날과 벵거에 대해 걱정해주기까지 했다. 물론 팬들은 굴욕이라고 느낄수도...[18] 애초에 조지 그래엄이 사퇴하게 된 계기 자체가 흑역사다. 선수 영입 대가로 에이전트에게 뒷돈을 받아먹었다.[19] 이런 선수 기용 때문인지 그를 디스하는 응원곡 중 아르센 벵거의 아버지는 지미 새빌이고 아들은 아담 존슨이라는 내용의 곡 같이 조롱 수준을 넘어 선 것 같지만 그의 선수 기용을 조롱하는 노래가 있다.#[20] 하여튼 국내 유럽축구 팬덤에서 아스날의 별명은 벵거 유치원이다. 그와 반대되는 팀은 밀란 노인정이다.[21] 중하위권 팀에 상당수의 아스날 유스 출신 잉글랜드 선수들이 있다. 그 선수들의 실력이 아스날의 수준에 안 맞는 것일 뿐이다. 이 부분을 아스날 서포터들은 유스 키워서 2부리그나 중, 하위권팀들 먹여살린다고 주장하고 있다.[22] 레알 마드리드의 페레즈 회장이 벵거를 좋아한다는 것도 한몫했다는 설이 있다.[23] 하지만 '왜 확실한 공격수를 영입하지 않는가'에 대해서 '샤막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선수지만 보르도에서 제시한 금액을 지불할 생각이 없었고, 따라서 샤막에게 '우리에게 에두아르도가 돌아왔어. 자네를 벤치에 앉혀두고 싶은 생각은 없다네.'라고 말했다.'라고 그 당시엔 간지나는 답변을 했지만... 상황이 바뀌어서 샤막은 공짜로 아스날로 이적했고, 에두아르도는 결국 밀려 샤흐타르 도네츠크로 이적했다;[24] 참고로 구글에서 비슷한 문구로 검색하면 결과에서 벵거와 아스널이 최상단에 나온다(..)#[25] 실패 전문가 발언은 영국언론과 선수들이 강력하게 비판한 무리뉴의 발언이다. 실제로, 무리뉴는 벵거가 사임을 한다고 밝힐때 자신의 과거 발언에 대해서 후회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수위 높은 비난이었다.[26] 본래 위 짤은 안첼로티 혼자 손가락질 하는 사진이 있었지만 지단의 챔스 우승으로 지금과 같이 수정되었다.[27] 특히 퍼거슨은 이 업적으로 기사작위까지 받았다.[28] 다만, 디 마테오는 그 이전에도 MK 던스, 웨스트 브롬을 감독한 적이 있었다. 감독 경력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보다시피 챔스권 팀을 맡은 적은 첼시가 처음이었다.[29] 1998-99, 2007-08 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서 우승.[30] 그 유명한 이스탄불의 기적이 있었던 2004-05 시즌 리버풀 FC에서 우승.[31] 2002-03, 2006-07 시즌 AC 밀란에서, 2013-14 시즌 레알 마드리드 CF에서 우승.[32] 손가락 질을 하고 있는 대머리. 2015-16, 2016-17, 2017-18 시즌 레알 마드리드 CF에서 챔스 개편 이후 유일하게 3연패를 이룬 감독. 레알 마드리드 감독을 맡은 첫 해부터 우승에 성공하면서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한 최초의 프랑스인 감독이라는 타이틀마저 가져갔다. 참고로 2013-14 시즌에는 코치로도 우승을 했다.[33] 2011-12 시즌 첼시 FC에서 우승[34] 1995-96 시즌 유벤투스 FC에서 우승, 이 후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도 우승하며 챔피언스 리그와 월드컵을 모두 우승한 최초의 감독이 되었다. 2013년에는 광저우 헝다 감독으로 AFC 챔피언스 리그도 우승을 했다.[35] 1996-97 시즌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2000-01 시즌 FC 바이에른 뮌헨에서 우승. 여담으로 2001년 이후 뮌헨은 물론 분데스리가에서는 챔피언스 리그 우승팀이 한동안 나오지 않다가 2012-13 시즌 뮌헨이 우승을 하였다.[36] 1999-2000, 2001-02 시즌 레알 마드리드에서 우승, 이후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으면서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유로 2012를 우승하면서 챔피언스 리그와 월드컵, 유로를 모두 우승한 감독이 되었다.[37] 2008-09, 2010-11 시즌 FC 바르셀로나에서 우승. 2009년에는 최초이자 유일하게 6관왕(전관왕)을 찍었다.[38] 2003-04 시즌 FC 포르투에서, 2009-10 시즌 인터 밀란에서 우승을 했다. 2010년에는 세리에 A 최초로 트레블을 달성했다.[39] 물론 하인케스는 97/98 레알 마드리드에서, 12/13 바이에른 뮌헨에서 빅 이어를 두번이나 들었다. 심지어 12/13 뮌헨은 트레블이다.[40] 물론 앙리나 비에이라와 같은 실력과 위상을 가진 선수는 현역으로 뛰고 있는 선수들 중에서 손에 꼽힐 정도다. 그 정도로 엄청난 선수들이였다는 것.[41] 되찾기는 커녕 주장이 임명되어 팀을 이끌어야 할 세스크 파브레가스는 매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썽을 부렸고 결국 떠났다.[42] 물론 그런 경험있는 베테랑급 센터백과 골키퍼는 타 팀 주전이고 그걸 누가 싼 값에 팔겠으며 아스날 같이 오일머니가 없는 클럽이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인지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43] 특히 요한 주루는 재앙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줬던 터라.[44] 실제로 비에이라는 어려서 아버지를 잃었는데 20대 초반 나이에 아스날에 왔기에, 중요한 사적인 결정을 할 때면 항상 벵거와 상담할 정도로 그를 "진짜" 아버지로 여겼다. 별도로 현재 두 사람의 관계는 비에이라가 벵거에게 대놓고 서운함을 내비치면서 서먹한 사이가 되었지만.[45] 그렇다고 아스날에 공격 옵션이 없는것도 아니다. 올리비에 지루라는 스트라이커가 있지만 벵거는 지루에게 전술을 맞추기보다는 자신의 4-2-3-1의 1에 지루를 그대로 기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46] 지난 유로 2016에서 지루가 그토록 활약한 이유는 지루가 앙투안 그리즈만과 함께 2톱으로 나와서이다. 4-4-2의 프랑스 전술에서 지루는 큰 키에도 불구하고 좋은 연계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타겟형 스트라이커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그리즈만에게 어시스트를 주는 모습을 보여줬다. 아스날에도 그리즈만과 같은 알렉시스 산체스라는 선수가 있지만 벵거는 소위 벵거볼 이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축구를 위해 지루를 주구장창 톱에 세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47]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자면, 17-18시즌 부터 시행된 STCC룰의 영향도 있다.(FFP룰과 비슷한 내용이다) 이 규정은 선수 급료의 인상 폭이 연간 7m을 넘지 않아야 한다는 조항이다.[48] 그럼 위에 나온것 처럼 맨시티나 맨유, 첼시같은 팀들은 어떻게 저리 영입을 많이 하냐며 의문점을 제기 할 수도 있다. 저 팀들의 폭풍 영입이 가능했던 이유는 예외 조항을 충족 시켰기 때문이다. 반면 아스날은 그지같은 재정 상태로 예외 조항에 해당되지 못했고, 결국 새로운 선수 영입을 위해서는 기존 산수를 처분해야 하는 그지같은 상황에 놓였다.[49] 체임벌린 이적에 대해 설명하자면 당시 체임벌린은 중앙 미드필더로 뛰기를 간절히 원했다. 하지만 아스날은 그걸 받아드릴 수 없었고, 계약기간이 1년이 남았던 그를 팔 수밖에 없었다. 결국 체임벌린은 중앙 미드필더 출전을 약속한 리버풀로 떠나게 된다[50] 무스타피의 이적 루머에 대해서는 초반에는 벵거에게 실망했다는 의견이 다수였지만 훗날 아내의 향수병으로 인해 이적을 추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51] 월드컵을 앞두고 주전 출장을 원했다. 결국 여름에는 잔류했지만 겨울에 오바메양이 오면서 첼시로 이적했다.[52] 벵거 감독은 아스널 선수들의 경기력 유지를 위해 음식을 철저히 통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스널에서는 케첩도 금지 식품 중 하나다. 격렬한 운동을 마친 사람이 단시간에 케첩을 많이 섭취할 경우 일시적으로 혈액이 응고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연구 결과 때문이다.#[53] 다만 최근에는 이 육식을 적게 먹는 채식 위주 식이요법 때문에 부상이 잦다는 시선도 있다.[54] 2016-17 시즌 첼시를 꺾고 팀 역사상 12회의 우승을 기록함. EPL 최고 기록.[55] 2016년 12월 12일 기준. 1998-99시즌 첫 출전에서는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단 이때는 챔스 본선이 32팀이 아니고 24팀이 6개 조로 나누고 각조 1위 팀 6팀과 2위 팀 중에 승점이 높은 2팀이 8강에 진출하는 식이었다. 두 번째 출전인 1999-00 시즌에는 챔스가 32팀으로 개편됐는데 이때는 조별리그에서 3위를 기록하고 유로파로 밀려났다. 그리고 유로파결승에서는 갈라타사라이에 패하여 준우승. 이후 3번째 출전인 00/01시즌부터 지금까지 32강 조별리그를 통과하고 16강에 합류 중이다.[56] 레알은 1997-98 시즌부터 지금까지 18시즌 개근 중이다.[57] 바르셀로나는 2002-03 시즌 6위, 바이에른 뮌헨은 2006-07 시즌 4위(당시 분데스리가의 챔스 티켓은 3장)를 기록하면서 챔스 진출 기록이 중간에 끊어졌다. 맨유도 2013-14 시즌 기록 브레이커 모예스의 활약으로 챔스 무대 연속 진출을 마감했다.[58] 지금이야 부활에 성공했지만 리버풀도 사비 알론소 등이 이탈한 후 챔스권 진입도 못했고, 첼시는 챔스 우승으로 다음시즌 챔스권을 획득한 것이지 당시 리그 성적은 6위로 형편없었다. 맨유도 모예스 이후 챔스권 진입 실패. 토트넘도 한시즌 챔스 진출 이후 다음 시즌은 리그에서 부진. 아스날과 비슷한 행보를 보였던 스페인의 발렌시아, 클롭 이전의 도르트문트가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잇달아 실패한 사례, 그리고 이탈리아의 AC밀란이나 인테르같은 명문들도 정점을 찍은 이후 중위권에 머무르는 현재만 봐도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꾸준히 획득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챔피언스 리그 진출은 오일머니가 없는 유럽의 명문팀에 사활이 걸린 문제인데, 진출에 실패할 경우 막대한 중계권과 스폰서를 포기해야하기 때문이다. 만약 아스날이 에미레이츠 이적 이후 가장 재정이 쪼들리던 2000년대 말에 챔스 진출에 단 한 번이라도 실패했다면 엄청난 나락으로 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59] 나고야 그램퍼스는 당시 결코 강팀이 아니었고 리그에서는 부진했다.[60] 경기장 옮기고 강등되지 않은 팀은 맨시티가 있긴 한데 이쪽은 영연방 경기에 사용된 경기장을 250년 "임대"받은 것이라 엄연히 경기장을 지은 것은 아니다.[61] 오늘날에는 축구계에 막대한 자본이 유입되면서 구장을 신축하면서도 살아남는 구단들이 존재한다.[62] FM에서 빚이 많은 구단을 해본 사람이라면 더 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짧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10년 가까이 매달 수억~수십억씩 채무 상환으로 빠져나가는게 상당한 부담이 된다. 때문에 처음에 구단 재정이 넉넉하다고 선수를 마구 사버리면 얼마 안 가 재정난에 빠지기 쉽다. 보통은 챔스 등에 꾸준히 나가면 중계 수입으로 그럭저럭 버틸 수 있으나, 만약 챔스에서 광탈하고 출전 자격조차 얻지 못하면 순식만에 몰락할 수 있다. 현실에서 이런 테크로 순식간에 몰락한 대표적인 예로 리즈 유나이티드가 있다.[63] 참고로 FM에서 아스날의 구단 부채는 한화로 5,000억 원에 이른다. 단순 수치긴 하지만 몸값만 따진다면 호날두, 메시, 네이마르 등을 몽땅 사고도 남는 금액이다.[64] 말하자면 몇 년간 스폰서에 의한 수입은 거의 없었던 셈.[65] https://www.independent.co.uk/sport/football/news-and-comment/arsenal-news-deloitte-football-money-league-arsene-wenger-effect-cemented-european-world-financial-a7534306.html.[66] 이건 축구 잡지 포포투에 나온건데 타 구단과 다르게 아스날은 특유의 피라미드식 스카우터 제도를 갖고 있었는데, 덕분에 세스크 파브레가스를 손쉽게 낚아올 수 있었다. 또한 제2의 파브레가스의 재능이라 불리는 게디온 젤라렘 역시 이 제도 덕에 데려올 수 있었다고. 이는 타 구단에 없던 상당히 특이한 제도였으므로 다른 구단은 금방 벤치마킹하게 되었다. 가장 빨리 벤치마킹한건 당시 알렉스 퍼거슨이 이끌었던 맨유였고 지금은 타 구단들도 이런 방식이 보편화되었다고.[67] 야야 사노고마티유 플라미니.[68] 잉글랜드 경기전 방송 캡처사진에 의하면 '0파운드 vs. 1,000만 파운드'의 그래픽이 떡하니 있었을 정도이니 아스날 팬들이 느꼈을 굴욕감은 엄청날 것이다.[69] 이번에는 이라는 것은 전에는 그 말을 어겼다는 이야기이다. 이전의 슈퍼 퀄리티가 누구였느냐 하면...알렉스 옥슬레이드-체임벌린이다. 그래서 아스날 팬들은 체임벌린을 슈퀄이라고 부른다.[70] 그러고도 최대 영입자금 7,000만 파운드를 다 쓰지 않았기 때문에 흑자다. 즉 본인의 소신에도 위배되지 않는 행위였다는 것.[71] 늘상 지루의 부진과 함께 나타나는, 공격수에 대해 오버페이라도 했어야 한다는 여론이 중심이다.[72] 다만 이후 회계 자료를 보면 장기 부채가 아직도 많이 남아있으며 이 장기 부채가 해마다 단기 부채로 전환되어 아직도 빚 갚느라 허리가 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올림픽 경기장 날로 먹은 웨스트햄 보면 혈압이 아스날이 EPL 빅클럽 치고 쌓아놓은 현금에 비해 지출이 적을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73] 지난 유로 2016에서 지루와 앙투안 그리즈만이 보여준 투톱은 프랑스를 결승에 올리는 위력을 보여줬다.[74] 한국에서 벵거가 한 말로 가장 유명한데, 실제 벵거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하이버리라는 아스날 국내 커뮤니티에서 마치 벵거가 말한 것처럼 슬로건으로 달아 놓은 전적이 있어 벵거가 말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영어 검색에도 하나도 안 나온다. 그럼에도 이 말이 유명한 이유는 역시 아리고 사키의 철학을 그대로 물려받아 발전시킨 벵거라는 감독의 정체성을 어느정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말하는 아름다운 축구는 사키이즘의 완벽한 실현이다. 재밌게도 사키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난 단순히 역사에 쓰여지기 위해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난 90분간 내 경기를 보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기 때문에, 이기는 것에서 오는 기쁨이 아닌, 무언가 특별한 것을 보고 즐기는 것에서 오는 기쁨을 느끼기 위해 이 일을 하는 것이다.” - 아리고 사키[75] 일명 "벵피셜". 저 말을 하고 카솔라는 아스날로 이적했다.[76] 근데, 이러고서 벵거는 파예가 아스날이 잃어버린 부분을 메울 수 있는 선수라고 말하였다...머하자는 거?[77] 무려 38개월만의 수상이다.[78] 외국인 대상 명예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