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1 02:11:38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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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gliari Calcio
<colcolor=#373a3c>
<colbgcolor=#b10d28> 이름 <colbgcolor=#ffffff,#191919>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Claudio Ranieri
출생 1951년 10월 20일 ([age(1951-10-20)]세)
이탈리아 라치오로마
국적
[[이탈리아|]][[틀:국기|]][[틀:국기|]]
신체 182cm
직업 축구 선수 (라이트백 / 은퇴)
축구 감독
경력 <colbgcolor=#b10d28> 선수 AS 로마 (1973~1974)
US 카탄차로 1929 (1974~1982)
칼초 카타니아 (1982~1984)
US 팔레르모 (1984~1986)
감독 비고르 라메치아 (1986~1987)
캄파니아 푸테올라나 (1987~1988)
칼리아리 칼초 (1988~1991)
SSC 나폴리 (1991~1992)
ACF 피오렌티나 (1993~1997)
발렌시아 CF (1997~1999)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1999~2000)
첼시 FC (2000~2004)
발렌시아 CF (2004~2005)
파르마 FC (2007)
유벤투스 FC (2007~2009)
AS 로마 (2009~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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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모나코 FC (2012~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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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포드 FC (2021~2022)
칼리아리 칼초 (2022~ )
국가대표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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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축구 감독. 2022년 부터 칼리아리 칼초의 감독을 맡고 있다.

프로 선수 은퇴 후 바로 감독 커리어를 시작하며 평생 별다른 휴식기도 없이 오로지 축구 하나만을 하면서 살아왔는데, 국내 축빠들 사이에서는 좋게 말하면 소방수, 리빌딩의 귀재, 마법사, 나쁘게 말하면 저니맨, 실컷 팀 잘 만들어놓고 후임자 좋은 일만 시키는 감독으로 통했다. 때문에 졸장은 아니지만 B급 명장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평가는 비슷하여, 영국 언론에서 붙여준 그의 가장 유명한 별명은 "땜장이(the Tinkerman)." 이 어휘는 들여다보면 journeyman과 repairman이 합쳐진 뜻으로 위기에 처한 구단을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닌 라니에리의 경력을 더할 나위 없이 표현했다.

축구팬들에게는 첼시와 발렌시아 1기 때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항상 후임 좋은 일만 시킨 감독은 절대 아니며 로마, 인테르, 유벤투스 등의 빅클럽에서 임시 감독을 맡아 좋은 모습을 보인 적도 있다. 감독을 지낸 클럽들을 살펴보면 트로피를 차지하는 임팩트가 조금 부족할 뿐 결코 저평가받을 감독이 아니다. 그럼에도 한 구단에서 길게 커리어를 지속하지 못한 데에는 그 자신의 책임도 분명히 있는데, 발렌시아 2기라든가 바로 그 로마, 인테르, 유벤투스의 정식 감독으로 부임 후 삽질을 거하게 한 바도 있다.

그럭저럭 밍숭맹숭한 평가를 받던 그의 입지를 완전히 뒤집어 놓은 계기는 레스터 시티 감독 부임. 만년 2부 리그 팀이었던 레스터 시티 FC를 가지고 2015-16 시즌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당시 그의 별명도 좋은 쪽으로 바뀌어 "the Godfather"로 칭송받았다.

사용하는 전술 자체는 크게 특이할 것이 없다. 한골 싸움을 즐기는 이탈리아식 4-4-2에 잉글랜드의 빠른 역습을 가미한 형태로 경기 중 비대칭 상황을 인위적으로 형성하여 이점을 누린다. 그러나 라니에리는 이러한 전술에 더해 선수들의 특징을 극한까지 끌어내어 잘 조율해냈다.

2. 선수 경력

파일:external/img.thesun.co.uk/c5_2689462a.jpg

고향팀인 AS 로마에서 1973년 22살의 나이로 데뷔하였으나 고작 6경기 뛰고 1974년 당시 세리에 B클럽인 카탄자로로 이적 후 9시즌 동안 225경기에 나오며 시즌당 평균 25경기 정도 출장하며 주전 선수로 활동했다. 카탄자로가 비록 2부 리그 클럽이었지만 1977년에는 1부 리그 승격을 하기도 했고 라니에리가 이적한 후 한 시즌 만에 다시 세리에 B로 강등되어 지금까지 1부 리그 승격은 없으니 타이밍 좋게 이적한 셈이다.

1982년 당시 세리에 B에 소속돼 있던 카타니아로 이적하여 한 시즌 만에 1부 리그로 승격시켰고 1984년에는 카타니아의 지역 라이벌인 팔레르모로 이적하여 2시즌 동안 활약한 뒤 35살의 나이로 은퇴했다.

3. 감독 경력

3.1. 초창기

은퇴후 1986년에는 라메치아, 1987년에는 푸테올라나 같은 아마추어 리그 소속팀 감독을 경험한 라니에리는 1988년 당시 3부 리그(세리에 C1) 팀인 칼리아리 감독으로 부임하고 2년 만에 연속 승격(3부 리그→2부 리그→1부 리그)시켜 1990/91 시즌 세리에 A에 올라가고 첫 1부 리그 시즌인 1990/91 시즌 리그 14위를 기록한다. 나폴리는 이런 괄목한 성적을 기록한 라니에리를 주목하였고 1991/92 시즌 라니에리를 나폴리의 감독으로 임명한다. 첫 시즌인 1991/92 시즌에는 리그 4위를 기록하며 좋은 출발을 보였으나 그 다음 시즌 리그 11위를 기록하며 성적 부진으로 사임한다. 다만 이 당시 지안프랑코 졸라라는 나폴리의 레전드를 발굴하기도 하였고 당시 19살의 어린 수비수인 파비오 칸나바로를 1군으로 승격시켜 경험을 쌓게 해주기도 하였다.

3.2. ACF 피오렌티나

곧바로 2부 리그로 강등되어 있던 ACF 피오렌티나의 감독으로 부임하였고 1993/94 시즌 세리에 B 우승을 차지하여 그 다음 시즌 바로 팀을 1부 리그로 승격시켰다. 그리고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의 11경기 연속골로 1994/95 시즌은 중위권에 안착한다.

3시즌 동안 10위-4위-9위로 중위권 성적을 꾸준히 유지하였고 1995/96 시즌에는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차지하였다. 재임시 후이 코스타프란체스코 톨도를 영입하여 주전으로 발돋움시키기도 하였다.

3.3. 발렌시아 CF

1997/98 시즌에는 발렌시아 CF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부임 후 곧바로 미구엘 앙굴로, 가이스카 멘디에타, 프란시스코 파리노스를 1군으로 승격시켰고 산티아고 카니자레스를 영입하여 팀의 기반을 다지기에 들어간 라니에리는 첫 시즌에는 리그 9위를 기록했지만 두 번째 시즌인 1998/99 시즌에는 리그 4위를 기록하며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획득했고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차지했다. 라니에리가 만들어놓은 발렌시아는 후임 감독인 헥토르 쿠페르가 그대로 이어 받아 1999/00, 2000/01 두 시즌 연속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이라는 기록을 남기게 되고, 뒤이어 라파엘 베니테스 감독의 리그 우승까지 이어진다.

3.4.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파일:20190102_003915.jpg
1999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감독으로 감독직을 옮기지만 그 전 클럽에서의 좋은 모습과는 달리 썩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2000년 3월에 해임당했고, 종국에는 세군다 리가로 강등을 당했다. 솔라리, 바라하, 하셀바잉크, 호세 마리, 발레론 같은 선수들이 포진되어 있었지만 선수들을 잘 융합시키지 못한 면도 있고 1999년 12월에 헤수스 힐 회장과 이사진이 방만한 팀 운영으로 영업 정지령을 받고 팀 자체가 재정적인 문제를 겪으면서 혼란스러웠던 부분과 프런트 진과의 불화 또한 강등의 이유 중 하나다.

그나마 이 시기에 이룬 유일한 업적은 1999년 10월 29일에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원정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3:1 승리를 이끌어낸 것이었는데, 이는 2013/14 시즌 전까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승리한 마지막 경기로 기록되어 있었다.

3.5. 첼시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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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바로 2000년 9월에 첼시 FC의 감독으로 부임한다. 당시 영어를 쓰는데 제한이 있었던 라니에리지만 운 좋게도 이탈리아와 스페인 출신의 선수와 코칭 스태프들이 있어서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고 2000년과 2001년에 프랭크 램파드, 엠마누엘 프티, 바우더베인 젠덴, 예스퍼 크론카르, 윌리엄 갈라스 등을 영입하며 팀의 기반 다지기에 들어갔고 기존에 첼시에 머물면서 팀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맡았던 지안프랑코 졸라를 중심으로 팀을 운영한다.

2000/01, 2001/02 시즌 연속 6위를 기록하며 중위권을 꾸준히 유지하였고 2002/03 시즌에는 극적으로 리그 4위를 기록 챔피언스 리그 진출 티켓을 따낸다. 리그에서의 꾸준한 성적과는 달리 팀은 재정적인 문제로 빚이 많았었는데 이 당시에 축구에 흥미를 가진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첼시의 인수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고 인수 후 수많은 빚은 해결이 되었다. 그리고 로만의 재정을 바탕으로 스콧 파커, 클로드 마켈렐레, 에르난 크레스포, 조 콜, 아드리안 무투, 글렌 존슨,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 웨인 브리지, 데미안 더프 등을 영입하였고 2003/04 시즌엔 리그 준우승과 챔피언스 리그 4강이라는 호성적을 거두지만 로만이 기대했던 챔피언스 리그 우승에는 미치지 못하자 라니에리를 경질시킨다.[1] 하지만 라니에리가 첼시 시절 영입하였던 램파드와 조 콜, 마켈렐레, 브리지, 더프, 갈라스 등은 이후 주제 무리뉴 감독 체제 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로만 체제 이후 첼시에도 상당한 공헌을 한 셈이다. 게다가 첼시 역사상 최고의 주장이자 그 자체인 존 테리를 본격적으로 1군에서 활약을 한 것도 라니에리 감독이 부임하기 시작한 2000/01 시즌 때임을 감안하면 첼시에서도 라니에리의 리빌딩 능력은 발휘된 셈.

먼 훗날 2016년 라니에리는 레스터 시티의 감독으로 첼시에서 이루지 못한 우승을 일궈내는데, 공교롭게도 라니에리의 우승은 첼시가 2위 토트넘과 무승부를 거두면서 확정되었다. 이날 스탬포드 브리지의 첼시 홈 관중들은 경기 종료 직전 오랫동안 불리우지 않았던 라니에리의 응원가를 부르면서 라니에리의 쾌거를 축하해 주었다. 또 재미있는 점이라면 레스터 시티 우승의 숨은 주역 중 하나인 센터백 로베르트 후트가 라니에리가 첼시 감독을 할 때 1군으로 승격시켰던 유망주라는 것이다. 어린 유망주였던 제자를 어느덧 30이 넘은 노장으로 다시 만나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룬 것.

3.6. 발렌시아 CF 2기

해임된지 1년도 안 돼서 발렌시아 CF의 부름을 받고 5년 만에 발렌시아로 복귀한다. 이탈리안 커넥션을 구축하려는 의도로 당시 세리에 A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준 마르코 디 바이오, 베르나르도 코라디, 스테파노 피오레, 에밀리아노 모레티 등 이탈리안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였다. 시즌 초반에 UEFA 슈퍼컵에서 FC 포르투를 꺾고 우승을 차지, 그 후 초반 6경기에서 승점 14점을 얻는 등 순항을 보였으나 그 이후 팀이 급격히 무너져 리그 막판에는 리그 7위로 추락하였다. 한 시즌만에 발렌시아에서 물러난다. 발렌시아에서의 급격한 부진의 이유는 전 시즌인 2003/04 시즌 리그 우승과 UEFA 컵 우승을 하며 더블을 차지할 정도로 완성된 스쿼드를 가지고 있었는데 여기에 라니에리가 이탈리안 커넥션을 구축하고자 데려왔던 이탈리아 선수들이 기존 발렌시아 선수들과 융화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더블의 결정적인 공헌을 한 플레이메이커 파블로 아이마르를 내쳤으며 이탈리아 선수들이 약속이나 한 듯 제대로 리그에 적응하지 못하고 부진에 빠지면서 팀 자체가 무너져버렸다는것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3.7. 세리에 A 감독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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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이후로 감독직을 시작한지 19년 만에 백수생활을 즐기게 된 라니에리는 1년 반 뒤인 2007년 2월에 파르마 FC의 감독으로 10년 만에 세리에 A로 복귀한다. 파르마 부임 당시 파르마의 승점은 겨우 15점으로 강등권이었다. 그런 파르마를 라니에리는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서 임대 중인 주세페 로시를 내세워 남은 10경기에서 17점의 승점을 따내 극적으로 1부리그 잔류에 성공한다. 그 뒤 풀럼과 맨체스터 시티, 팔레르모와 연결이 되었으나 모두 무산되었다.

라니에리는 그 후 2007년 6월에 유벤투스 FC의 부름을 받아 감독에 임명된다. 이 때는 유벤투스 팬들 사이에서도 찬반이 심했는데 2006년 칼치오폴리 사태로 2부 리그로 강등된 유벤투스를 (비록 델 피에로, 다비드 트레제게, 지안루이지 부폰 같은 에이스들이 남아있었지만) 재빠른 팀 수습으로 2006/07 세리에 B 우승으로 1년 만에 승격시킨 디디에 데샹 감독이 프런트와의 불화로 한 시즌 만에 경질되었기 때문. 프런트와의 불화는 그렇다 쳐도 능력 자체는 팬들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데샹의 후임으로 라니에리가 임명된 것에 의구심을 품는 팬들도 있었다. 유벤투스 감독직 부임 이후 빈첸초 이아퀸타, 즈네덱 그리게라 등을 영입하고 조르조 키엘리니를 레프트백에서 센터백으로 주요 포지션을 바꾸는 등 첫 시즌에 리그 3위를 기록하며 곧 바로 챔피언스 리그 티켓을 거머쥔다. 2008/09 시즌에는 애증의(?) 관계인 주제 무리뉴 감독이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의 감독으로 부임되어 상당한 화제거리가 되었다. 2008/09 시즌에도 순항 중이었으나 리그 막판 두 달 동안 리그 7경기에서 6무 1패를 기록하는 부진에 빠져 리그 우승컵을 인테르에게 넘겨준 라니에리는 결국 시즌 종료 후 유벤투스 이사진에 의해 경질된다.[2]

경질된지 4달도 채 되지 않아 2009년 9월 고향팀인 AS 로마의 감독으로 부임한다. 시즌 초반 제노아와 유벤투스에게 패배하며 전임자 루치아노 스팔레티가 경질되자, 그 후임으로서 부임해 첫 경기에 시즌 첫 승을 거뒀다. 한때 25경기 무패 행진을 기록하며 무리뉴의 인테르와 리그 우승 레이스를 벌였고 시즌 막판 맞대결에서 승리하며 잠시 선두에 오르기도 했으나 35라운드 삼프도리아와의 홈경기에서 1-2 역전패를 당한 것이 빌미가 되어 승점 2점이 부족하여 준우승에 머무른다. 코파 이탈리아에서도 인테르에게 패배하여 리그와 컵대회 모두 준우승을 기록했다. 리그 무패 행진과 컵대회 준우승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그 다음 시즌은 2010/11 시즌에서는 챔피언스 리그 16강전에서 FC 샤흐타르 도네츠크에게 패배하였고 리그에서는 중반 이후 계속되는 부진 끝에 2011년 2월 이사진에 의해 경질된다.
파일:Clau.jpg

2011년 10월 가스페리니의 뒤를 이어 시즌 중반에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감독으로 부임한다. 초반에 리그 8연승을 기록하고 가스페리니 체제에서 약체 취급받던 트라브존스포르전 충격패로 시작한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조1위를 이끌어내며 네라주리의 재건을 이끄나 싶었지만 귀신같이 7연패를 당하며 이도저도 아닌 모습을 보여주며 부임한지 1년도 안 되어 2012년 3월 해임된다.[3]

3.8. AS 모나코 FC그리스 대표팀

해고된지 두 달도 안 되어 곧바로 AS 모나코 FC 감독으로 부임했다. 당시 모나코는 2부 리그에 있었는데, 공개된 재산만 11조 원이 넘는 러시아 갑부의 구단주 취임으로 강팀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라니에리를 선임한 것. 첫 시즌에 곧바로 2부 리그 우승을 하며 팀을 1부 리그로 승격시켰고 2013/14 시즌에는 리그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2014년 5월, 경기력이 좋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질되었다.

그 후 2014년 7월, 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UEFA 유로 2016 예선에서 4경기 연속 무승에 결정타로 유럽 최약체인 피파랭킹 187위 페로 제도에 안방에서 0:1로 패하는 등의 수모를 당하며 조 꼴찌로 추락, 결국 부임 4개월 만인 11월 16일, 전격 해임당했다.

2015년 2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제의를 받았으나 고사하였다. 결국 이 자리로는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이 부임했다.

3.9. 레스터 시티 FC

파일:external/i.telegraph.co.uk/ranieri_3530868b.jpg
2015년 7월 전임 감독인 나이젤 피어슨이 프리시즌에 선수단의 성추문 사건으로 인해 사임하자, 후임 감독으로 확정되어 11년 만에 프리미어 리그로 돌아왔다. 일단 첫 반응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다. 그런데…

3.9.1. 2015-16 시즌

파일:external/a5c93e3e5ce01aac5f8cce570965aeb2902b2abed244531d6870cc5cff5e877c.jpg
파일:external/41.media.tumblr.com/tumblr_o44en5XU4n1tuqm8ro1_500.png

더 이상 꿈만 꾸는 것은 싫다, 이젠 꿈을 현실로 만들 차례다.

2015년 7월 전임 감독인 나이젤 피어슨이 프리시즌 선수단의 성추문 사건으로 인해 사임하자, 후임 감독으로 확정되어 11년 만에 프리미어 리그로 돌아왔다. 나이젤 피어슨 전 감독이 팀의 프리미어 리그 승격 및 잔류에 이바지했던 터라 라니에리의 감독 임명 소식에 서포터들은 반발을 보이기도 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근 10년 만에 프리미어 리그로 복귀한 라니에리는 초반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전에는 팀이 그저 리그 잔류만 해도 감지덕지이던 상황에서 누구도 예상 못할 리그 1위 달성을 이뤄냈다! 이젠 레스터 서포터들에게 라니에리느님이라고 찬양받기에 바쁘다. 그도 그런 것이 해축 역사상 너무나도 경이로운 기록을 연일 세워주고 있다. 그만큼 라니에리는 놀라운 지도력과 전술을 보여주며 2015년 12월 15일 첼시에게 2:1로 이기며 무리뉴 당시 감독이 경질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것은 라니에리 지도력이 정말 큰 관련도 하였지만 제이미 바디리야드 마레즈, 은골로 캉테 등이 터져주면서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가볍게 언급하자면, 지난 시즌 로테 자원이었던 제이미 바디는 4~14라운드까지 꼬박 11경기 연속골을 넣으면서 뤼트 판니스텔로이가 보유하고 있던 프리미어 리그 10경기 연속골을 한 경기 차이로 앞서며 프리미어 리그 신기록을 세웠다. 마레즈는 모든 득점에 관여를 할 정도로 무서운 공격력을 뽐내고 있다. 나이가 많은 편도 아닌데 공격 템포 조절 능력이 베테랑급이다. 캉테는 한마디로 프리미어 리그 중원을 씹어먹고 있다. 그 외에 캉테의 파트너인 대니 드링크워터의 활약상 및 백업 선수진의 조화, 최후방 4백 라인의 견고한 수비력까지 더하면서 단단하면서도 치명적인 파괴력까지 지닌 팀으로의 진화에 성공한다. 물론 선수의 활약도 감독의 능력이 어느 정도 받쳐줘야 되는건데[4] 여기서 라니에리의 역량이 굉장히 잘 드러난다.

16라운드 첼시전을 기점으로 박싱데이가 시작된다. 많은 해축팬들은 늘 그래왔듯이 DTD는 어김없을 것이라는 예측이 대부분이었지만 일각에선 첼시전 이후 어쩌면 상승세를 타서 승승장구할 것이라는 예측도 심심찮게 들려왔다.

그런데 16라운드 이후 프리미어 리그 5경기에서 승-패-무-무-승 이라는 경이적인 기적을 해냈다. 더 놀라운 것은 당시 경기 일정이 에버튼 FC(원정)-리버풀 FC(원정)-맨체스터 시티 FC(홈)-본머스 AFC(홈)-토트넘 홋스퍼 FC(원정)이었다는 것이다. 리버풀전 빼곤 거의 평타 이상은 한 셈. 따라서 순위도 유지됐다.

17라운드 에버튼전에선 3:2로 레스터가 원정에서 승리를 따낸다. 서로의 화력 대결이 기대되는 경기였는데 당시 득점 순위 1, 2, 3위[5]가 모두 있는 팀들의 경기였다. 에버튼에서는 루카쿠와 미랄라스가 각각 1골씩 넣었지만 마레즈의 멀티골과 오카자키의 결승골로 승리했다.

18라운드 리버풀 원정경기에선 아쉽게 0:1로 졌다. 특히 시몬 미뇰렛의 선방이 컸다.

19라운드 맨시티전에선 0:0으로 비겼다. 홈이었지만 그래도 맨시티를 잠재웠다는 걸로도 충분히 찬사 받을만했다.

20라운드 본머스전에서도 골은 없었다. 마레즈가 PK를 실축한 게 아쉬웠다. 그리고 해축팬들은 이제 DTD가 시작된다면서 레스터를 까기 바빴다. 그런데…

21라운드 토트넘전, 굉장히 중요한 경기였지만, 토트넘의 홈 화이트 하트 레인이었고, 또한 무서운 상승세였기 때문에 승리 예측은 약 2:8. 그러나 이 경기는 레스터의 색깔을 한껏 보여주었다. 선수비-후역습. 물론 토트넘도 레스터와 비슷한 전술이었지만 선수들의 결속력이란 면에서 다시 한번 라니에리의 능력이 드러난 경기였다. 두 팀 다 매서운 공방전을 펼쳤지만 경기 후반 로베르트 후트의 결승골로 결국 1:0으로 승리하였다.

22라운드 아스톤 빌라 원정 경기에선 1:1로 비겼다. 게스타드와 오카자키가 각각 골을 넣었다. 마레즈가 PK를 실축한 게 아쉬웠다.

23라운드 스토크 시티를 홈으로 불러들여 3:0으로 박살냈다. 스토크도 이번 시즌에 맨시티, 맨유를 잡는 등 만만치 않은 전력이었지만, 결국 라니에리의 역량이 이번에도 발휘됐다.

24라운드 리버풀전, 리그 1차전에서 설욕을 당했던 만큼 이번엔 홈으로 불러들여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고, 바디의 원더골을 포함한 멀티골을 앞세워 2:0으로 클롭의 영혼을 탈탈 털었다.

25라운드 맨시티전, 최근 2연승을 달리고 있는 1위 레스터와, 오늘만을 위해 칼날을 갈아온 맨시티의 대결이었다. 결과는 3:1, 원정에서 시원하게 털었다. 특히 이날 경기는 후트의 세트피스가 참 인상적이었는데, 라니에리가 독을 품고 세트피스 연습을 하였는지 후트가 헤딩으로 멀티골을 넣었다. 이날은 후트 뿐만 아니라 레스터의 모든 선수가 다 잘해주었는데, 카스퍼 슈마이켈피는 못 속이는 선방으로 레스터의 실점 하나를 덜어줬고, 마레즈는 자신의 클래스를 보여주는 수비수&키퍼 농락골을 넣었다. 바디는 뒷공간을 몇 번이나 파고들며 날카로운 모습을 보여줬고, 캉테는 야야 투레페르난두가 버티는 중원을 압도했다.

레스터-토트넘의 돌풍, 핵심은 '압박+역습'

EPL 팀 챔스 출전 확률, 레스터 98%-맨유 15%-리버풀 0.2%

BBC 진행자 리네커 "레스터 시티 우승 땐 팬티만 입고 방송하겠다" 선언

26라운드 아스날전, 우승의 밑거름이 될 수 있는 경기에서 1차전처럼 제이미 바디가 PK를 얻어내 득점함으로써 분위기를 좋게 이어나갔지만 심슨의 퇴장으로 인해 수적 열세에 몰렸다. 그래도 잘 버티다가 시오 월콧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더니, 대니 웰벡에게 후반 94분에 극장골을 선물받으며 아스날에게 더블을 허용했고 우승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경기 후 라니에리는 선수단에 1주일의 휴가를 주었다.[6]

29라운드까지 마친 현재, PL최초로 승점 60점을 달성하면서 여전히 선두에 위치해있다. 2위 토트넘과는 승점 5점차. 우승 경쟁 후보인 토트넘과 아스날이 미끄러지는 와중에 레스터는 착실히 승점을 쌓아갔다.

32라운드 홈에서 사우스햄튼을 상대로 승리하여 리버풀 원정에서 비긴 2위 토트넘과의 격차를 승점 7점차로 벌리면서 점점 더 우승을 향해 가고 있다.

33라운드 선덜랜드를 2:0으로 이기면서 맨유를 3:0으로 대파한 토트넘과 격차를 여전히 7점을 유지했다. 이로써 33라운드 기준 레스터가 자력 우승에 필요한 승점은 단 9점.

34라운드에서 웨스트햄을 상대로 2:2 무승부를 거두긴 했으나, 다음 경기인 35라운드 스완지전에서 4:0 승리를 거둠으로써 매직넘버를 2로 줄였다. 그리고 2위 토트넘이 WBA와 비기면서 자연스레 매직넘버는 1이 되어 남은 3경기에서 1승만 거두면 자력 우승이 확정된다.

36라운드 맨유전, 최근 맨유가 4위 싸움을 위해서 반드시 승점 3점이 필요한 상황이다. 역시 홈팀 맨유가 전반 7분 앙토니 마르시알의 선제골로 앞서나갔다. 그 후 계속 맨유의 파상 공세에 밀리는 듯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은 전반 15분에 웨스 모건이 바로 동점골을 넣으며 1:1을 만든다. 하지만 계속해서 맨유는 레스터 시티를 밀어붙였고 85분에는 동점골을 어시스트했던 수비의 핵심 드링크워터가 퇴장당하며 매우 불리한 경기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라니에리의 레스터 시티 특유의 실리 축구가 어김없이 나타나며 경기를 그대로 1:1 무승부로 끝냈다. OT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한 아쉬움을 남긴 채로 여전히 매직넘버는 1이다.

하지만 라니에리의 친정팀이라고 할 수 있는 첼시가 토트넘의 승리를 막는 활약을 함으로써, 레스터 시티는 다음 게임에 관계없이 우승을 확정지었다. 팀의 에이스 제이미 바디는 동료 선수들을 집에 초대해 이 경기를 함께 시청하였고, 경기 종료와 동시에 자신들의 우승이 확정되자 동료들과 함께 크게 환호하였다. 라니에리는 첼시의 경기를 본 뒤에 거스 히딩크 첼시 감독에게 전화해서 고맙다는 말을 다섯 번이나 했다고 한다.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치러진 시즌 최종전 첼시 원정경기에서, 첼시 선수단[7]과 히딩크 감독 및 팬들의 기립 박수를 받으며 그라운드에 입장했다. 이때 첼시 팬들이 라니에리의 첼시 감독 시절 응원가를 부르기도 했다. 그야말로 12년 만의 금의환향이다.

이러한 기적과도 같은 행보에 구단주는 라니에리 감독에게 특별 성과급을 지급하기로 했다고 한다. 원래 리그 17위일 때 170만 파운드를 지급하고, 1등수씩 올라갈 때마다 10만 파운드가 추가되는 계약이었고, 이에 의하면 총 330만 파운드를 지급받아야 하지만 레스터의 행보를 본 구단주가 500만 파운드를 지급하기로 했다.

이런 기적이나 다름 없는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상상을 현실로 만들었기에 라니에리와 레스터 시티의 2015/16 시즌에 대해서 실제 영화화를 진행한다는 루머도 있다. 만약 영화화가 진행된다면 라니에리에게 딱인 배우는 로빈 윌리엄스가 최고의 적임자였을테지만 아쉽게도 이미 고인이 되었다. 더구나 라니에리와 나이가 동갑이라서 더더욱 아쉬울 따름이다.

그러나 다음 시즌에…

3.9.2. 2016-1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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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개막이 2달이나 남았는데 벌써부터 주전급 전력 이탈 조짐이 심하다. 은골로 캉테가 첼시로 이적했으며, 제이미 바디는 아스날의 제안을 거절하고 레스터와 4년 재계약을 맺었고, 리야드 마레즈 역시 붙잡는데 성공했다.

결국 캉테 외에는 전력 손실이 거의 없었지만, 현재 리그 20라운드 승점이 역대 디펜딩 챔피언 중 최하인 21점을 기록한 상황이다. 이는 무리뉴가 첼시에서 경질된 시즌보다 낮다.

캉테의 공백을 멀티자원 다니엘 아마티가 겨울이적시장 에서 윌프레드 은디디가 올 때까지 정말 잘 매웠다.

하지만 라니에리의 잦은 전술변화로 크게 눈에 띄지는 못했다. 실제로 캉테보다 이 기간 아마티의 스탯이 더 좋았는데 대다수는 모르고 있다. 캉테가 안떠났더라도 팀 성적은 개판일것이다.

라니에리는 전 시즌 역습 전술을 배척하고 잦은 전술 변화를 시도했다. 덕분에 역습에 특화된 바디의 기량을 떨어 트리고 팀 성적도 곤두박질 친다.

팀 주포 제이미 바디와 에이스 리야드 마레즈는 상대의 전력분석과 집중 견제에도 불구하고 바디는 시즌 스탯 15골 6도움, 마레즈는 10골 7도움을 올렸다. 마레즈는 라니에리의 챔스 동화에 큰 기여를 했다.

라니에리는 이 시즌 프리미어리그+컵경기 원정경기 무승이라는 처참한 성적을 낸다.

결국 챔피언스 리그 16강 1차전 세비야 원정 1:2 패배 이후 경질되었다. 반응은 갈리는 편인데 우승을 안겨준 감독을 일찍 버렸다며 너무하다는 평이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반응이 대다수다. 리그 6연패를 당하고 강등권 추락, 원정 경기 무승, FA컵에서 3부 리그팀에게 지고 챔스 16강 1차전까지 패배하며 경질되었다. 경기력이 정말 최악 중에 최악이었다.

특히 기존의 4-4-2 역습 전술을 버리고 마레즈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세우는 윙없는 2톱 전술, 3백, 점유율을 최대한 가져가는 4-2-3-1 등 다양한 전술변화를 시도했으나 성적은 처참했고 경기력은 형편없었다.

경질당한 이후 중국에서 그를 데려오기 위해 거액의 오퍼를 날린 상황이며 라니에리는 중국 클럽들의 오퍼에 관심이 없고 유럽에 남길 희망한다고 한다. 현재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게 홈에서 충격적인 패배로 팬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고 있고 토리노 FC전 결과에 따라 운명이 결정될 파울루 수자의 후임으로 ACF 피오렌티나행 루머가 솟아 오르고 있는 중이다.

레스터 시티를 떠난 후에도 라니에리는 레스터에 대한 애정을 계속 보여주고 있다.

2018년 10월, 레스터 시티의 구단주 비차이가 헬기 추락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그와 각별한 관계였던 라니에리는 사고 후 추모경기이자 첫 홈경기인 번리전에 직접 킹파워 스타티움을 방문해 경기를 직관하고 눈물을 흘리며 비차이를 추모했다.

3.10. FC 낭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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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리그 1의 FC 낭트의 감독으로 부임하는 것이 유력했지만 65세 미만인 감독만이 리그 앙 팀을 이끌 수 있다는 규정 때문에 계약이 지연되었다. 마침내 프랑스축구협회(FFF)의 승인을 받았고 낭트는 15일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라니에리 감독과 2년 계약을 맺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9라운드 종료 시점에서 승점 17점으로 팀을 5위까지 올려놓았다. 아직 시즌 초반이고 9위 EA 갱강과 단 4점 차이밖에 안 나는 아슬아슬한 5위지만 그래도 준수한 성과임에는 틀림없다. 그 후에 3위까지 순위가 상승했으며 3~5위를 매 라운드마다 왔다갔다하고 있다.

3.11. 이후

2018년 7월 이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후보로 거론되었다. 그리고 7월 11일 골닷컴 코리아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 제안을 받은 뒤 고심했으나, 클럽팀을 맡고 싶어서 정중히 거절했다."라고 밝혔다. 이로써 한국 대표팀 감독 의향이 없음을 공식적으로 밝힌 최초의 감독이 됐다. 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은 것을 제외하고는 대표팀 감독을 맡은 경험이 없다는 걸 고려한다면[8] 진정으로 클럽팀 감독을 원해서 거절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같은 강팀 이상이 아니면 라니에리 자신이 원하는 선수단으로 구성하는 게 쉽지 않고, 특히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의 경우 거스 히딩크 혹은 히딩크의 이상의 성과를 거둔 감독이 아니라면 여론의 움직임에 크게 요동쳐서 임기를 채우기도 벅차서 거절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 이외의 내용은 벤투호/선임 과정 문서 참조.

레스터 시티의 비차이 회장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사망한 이후 추모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본인에게 있어서 클럽의 한 페이지를 함께 한 인물 중 한 명이기에 꽤나 착잡한 심정일 듯하다.

3.12. 풀럼 FC

슬라비샤 요카노비치의 후임으로 강등권에 머물고 있던 풀럼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축구팬들은 12월 6일 레스터 시티와의 경기를 기대하고 있다. 부임 후 첫 경기인 EPL 13R 사우스햄튼전에서 3:2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 좀처럼 승리를 거두지 못하며 팀을 강등권에서 구해내지 못하고 매우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FA컵에선 3라운드에서 EFL 리그 2올덤 애슬레틱에게 홈에서 1:2로 역전패를 당하며 조기탈락을 당해버렸다.

리그 15경기에서 단 12점밖에 수확하지 못한 그는 결국 EPL 28R 소튼원정에서 0:2 패배를 당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시간으로 3월 1일 새벽, 감독직에서 해임되었다.

3.13. AS 로마 2기

디프란체스코 감독이 경질되고 감독 자리가 공석인 AS 로마에서 라니에리 감독에게 잔여시즌을 맡긴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예전에도 로마 감독을 맡기도 했었고 그 당시 성적 또한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로마측에서 자리가 비어있는 라니에리에게 빠르게 접촉했다. 그리고 로마에 있는 참피노 공항에 도착하였다. 사실상 공식 발표만 남은 상황. AS 로마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공식 발표가 됐다. 계약은 3개월 계약으로 잔여 시즌 계약.

취임 후 12경기에서 6승 4무 2패를 기록하며 흔들리던 팀을 빠르게 안정시켜 시즌을 6위로 마감했다. 결국 챔피언스 리그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팀이 어려운 상황에서 3개월간의 잔여시즌 감독직을 흔쾌히 승낙하고 불안정했던 팀의 중심을 다시 잡아 서포터들의 지지를 받았다. 본인이 인터뷰에서 이번 시즌까지가 자신의 임무이며 다음 시즌 감독은 맡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로마와 아름다운 이별을 하게 되었다.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서포터들이 라니에리의 헌정문구를 걸었고 그것을 본 라니에리 감독이 울먹이는 모습이 중계카메라에 포착됐다.

3.14. UC 삼프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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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장난인지 2019년 10월 12일, 로마 시절에도 자신의 선임자로 중도 경질되었던 디프란체스코가 삼프도리아에서도 중도경질된 뒤 2년 계약으로 감독자리에 앉았다.

부임 후 그렇게 순탄치만은 않은 앞날을 보내고 있는데 첫 리그 3경기에서 2무 1패에 그치며 손쉽게 첫 승을 따내지 못했다.[9] 그렇게 한달이 지난 후 11월 4일 SPAL과의 원정 경기에서 잔루카 카프라리의 결승골로 겨우 부임 첫 승을 거둘 수 있었다.

이후 우디네세와 제노아를 잡고 AC 밀란과 비기면서 6경기 2승 1무 3패를 기록, 팀 순위를 2020년 1월 6일 기준으로 강등을 피할 수 있는 16위까지 끌어올렸다. 코로나19로 인한 리그 중단이 끝나고, 리그가 재개된 이후, 7월 무려 리그 9경기에서 5승을 쓸어담으며 반등해 리그 15위로 극적 잔류에 성공했다.# 세리에A 전문 소방수로서의 명성을 이번 시즌에도 이어나간 셈이다.

20-21 시즌에도 안정적인 운영으로 리그 9위를 차지하며 선수단과 팬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재정이 악화된 구단은 라니에리의 고액 연봉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 결국 재계약을 하지 않으면서 1년 반의 임기만을 채우고 이별하게 된다.

삼프도리아 측에서는 지난 시즌 디 프란체스코가 꼬라박기 전까지만 해도 몇 시즌 간 안정적으로 중위권을 마크해 오고 있었던 만큼 감독을 교체하더라도 현재의 위치를 보전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다고 판단한 듯 하며, 바꿔말해 부담스러운 몸값을 지불해가면서까지 라니에리와 계약을 연장할 메리트를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후 릴 OSC에서 데려오기 위해 오퍼를 넣었고 곧 부임이 임박하다고 한다. 하지만 OSC 릴에서 조셀린 구르방네크를 영입하게 되면서 없던 일이 되버렸다.

2021년 10월 2일 왓포드 감독직을 두고 협상 중이다.#

3.15. 왓포드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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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5일, 성적 부진으로 경질된 시스코 무뇨스 감독의 후임으로 부임했고, 2년 계약을 맺었다. # 이후 부임을 위해 구단에 모습을 보였다.

데뷔전 8R 리버풀전 홈경기에서 마누라 라인의 대활약으로 인해 0:5로 크게 깨졌다.

하지만 9R 에버튼 원정경기에서 조슈아 킹의 활약으로 5-2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후로 부진하여 리그 17위까지 내려가며 강등권으로 추락했다. 그런 와중에 12R 홈 경기에서 맨유를 4:1로 잡는 이변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후 연패를 거듭하면서 구단의 신뢰를 잃어버렸고, 하위권 순위 경쟁 팀이였던 노리치 시티에게마저 3대0으로 완파당하며 2022년 1월 25일자로 부임 3개월만에 경질되었다.

이후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 4강 레스터vs로마전에서 모습을 드러냈고, 양쪽 팬들에게 박수를 받았다.

2022년 9월 AC 몬차의 감독직을 거절했다.

3.16. 칼리아리 칼초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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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24일, 31년 만에 칼리아리로 복귀했다. 계약 기간은 2025년까지이며 2023년 1월 1일부터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다.# 초반 6경기는 4승 1무 1패로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후 리그 5위를 차지해 팀을 승격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고, 플레이오프에서 베네치아, 파르마, 바리를 모두 잡으며 칼리아리를 한 시즌 만에 승격시켰다.

4. 감독 기록

4.1. 대회 기록

4.2. 개인 수상

4.3. 수훈

  •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장 2등급: 2016[13][14]

5. 여담

  • 대부라고 불리지만 실제로는 샌님 신사의 이미지가 강하고, 실제 성격도 퍼거슨 등의 감독과 다르게 굉장히 조용하고 차분하다고 한다.
  • 백수 생활이 길지가 않고 여기저기 많은 클럽을 오가는데, 그게 A급 감독에 비해 몸값이 1/7 수준인 것도 한 몫 했다. 하지만 레스터 감독직 이후 몸값이 많이 올랐다.
  • 감독 경력 초창기에는 특이한 선수 교체로 유명했다. 경기가 안 풀린다 싶으면 3명을 동시 투입하는 일이 많았다.
  • 무언가 자신만의 전술적인 철학이 있다기보다는 그때 그때 상황에 맞게 팀을 운영하는 편이다. 주로 4-4-2를 사용하지만, 이것이 라니에리의 전술이라고 불리는 전술은 없다. 해외에서도 라니에리의 전술을 분석한 칼럼을 찾기 힘들다.
  • 2015-16 시즌 레스터의 전술은 경기장을 극도로 좁게 사용하면서 일시적인 수적 우위를 꾸준히 얻어내는 토탈 사커이다. 레스터가 공격할 때는 경기장 한쪽으로 쏠려서 상대가 레스터의 선수들을 마크하기 위해 움직이면서 수비 진형에 불균형을 유발하게 된다. 상대 수비가 자기 자리를 잃은 틈을 타 마레즈나 바디 등이 프리하게 마무리하는 게 기본 공격 형태. 물론 이런 전술을 사용할 경우 자기네 진영도 한쪽 공간이 비게 되어 역습에 취약해 지는데 이를 은골로 캉테가 중심이 돼서 단단하게 막아주고 있다. 정말 날카로운 역습을 하지 않는 한 노리기 쉽지 않다.[15][16] 강팀들도 대처하기 어려운 공격 전술에 왠만한 수준이 아니면 약점을 노리기도 힘든 까다로운 전술을 완성해낸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 물론 마레즈가 있기에 더 위협적이지만 작년과 별반 다르지 않은 팀을 강등권에서 우승으로 끌어올린 것은 라니에리의 업적이 분명하며 진정한 의미의 명장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애초에 프리미어 리그는 선수 한두명이 잘한다고 1등을 차지할 수 있을 만큼 만만한 리그가 아니다.
  • 맨시티를 압도하는 경기력에서 그가 얼마나 리빌딩으로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를 확실하게 주는 감독인가는 증명되었다. 반할의 맨유와 무리뉴의 첼시 모두 정상적인 폼을 유지하지 못했다고는 하지만, 레스터는 분명히 전력적으로 훨씬 우위에 있는 팀들을 모두 압도했다. 이러한 점은 그의 능력이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정도가 아니라 그냥 라니에리의 능력이다. 반할이 레스터에 있다고 생각해보자.모르지 뭐(...)
  • 레스터에서와 이전 구단에서 크게 달라진 점으로 휴식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 것을 꼽았다. 레스터의 선수들은 이 이탈리아 감독이 진행할 혹독한 전술 훈련을 우려했으나, 라니에리는 부임 후 선수단 면담에서 1주일에 2회 휴식을 선수진에 약속했다고. 1주일 동안 경기 1회, 강훈 2회, 회복/가벼운훈련 2회, 휴식 2회를 갖는 것을 루틴으로 가능한 시즌 내내 반복하였다고 한다. 특히 경기 다음 날은 선수들이 뭘 해도 터치하지 않는 휴가일이라 한다.
  • 아르센 벵거 아스날 감독과는 무리뉴와 벵거와의 관계처럼 천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극상성이다. 프리미어 리그에 있는 동안 14번을 붙어서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하지만 챔스에선 이겼다. 레스터 시티가 돌풍을 일으키는 2015-16 시즌에서 2패를 기록하며 시즌 상대전적 더블을 헌납한 유일한 팀이 아스날이다. 리그 우승은 레스터가 차지했으니, 전투에선 졌지만 전쟁은 이겼다고 해야하나.
  • UEFA 대회 총괄이사 조르지오 마르케티[23]와 닮은 꼴로 유명하다. 국내에서는 물론 해외에서도 추첨 방송이 나오면 관련 드립이 끊이지 않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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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체티노와 함께 신태용호 시절의 플랜 A에 큰 영향을 준 감독이다. 어떤 전술을 써도 허우적대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바로 라니에리가 레스터시티에서 사용한 두줄수비 4-4-2를 사용함으로써 손흥민의 사용법과 경기력 상승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것이다. 라니에리가 사용한 4-4-2는 두 줄의 수비로 수비를 단단히 하고 역습을 하는 축구로 주로 약팀들이 강팀을 상대로 많이 사용하는 전술인데, 이것이 상대적으로 축구 약소국인 한국팀에게는 잘 맞는 이유. 그래서인지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후보에 올랐다는 카더라가 있다. 2018년 7월, 바히드 할릴호지치가 한국 국대 대표 감독으로 후보에 올랐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알제리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다시 4년만에 돌아가려 검토한 뒤로[24] 알제리 알 타스 지는 한국 감독 후보로 루이 판 할, 안드레 빌라스보아스, 클라우디오 라니에리가 거론되고 있다는 보도를 했다. 그러나 라니에리가 클럽팀을 맡고 싶어 거절했다라는 인터뷰를 하며 대한민국 축구 협회의 오퍼가 있었음을 공식으로 인정했다. #
  • 매주 미사에 참례하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1] 사실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못해서 경질당했다고 보기에는 이전부터 라니에리의 경질은 첼시 내에서 알게 모르게 나오고 있었다. 이 감독이 보여준 호성적과는 별개로 로만은 장기적인 플랜과 함께 결국 강팀을 원하고 있었고, 라니에리를 이 프로젝트에 적합한 인물로 보지 않았던 것. 라니에리가 훌륭한 감독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지만 첼시를 최강의 팀으로 이끌 인물로는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미 이 당시에 스벤예란 에릭손 감독이 물망에 올랐었고 면접까지 봤었지만 결국 포르투를 이끌며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라는 엄청난 성과를 이룬 조세 무리뉴를 영입하게 된다.[2] 그러나 그 이후 유벤투스는 2시즌 연속 7위를 찍는, 일명 잭팟투스라고 불리는 암흑기를 거치게 된다.[3] 사실 이건 라니에리 탓을 하긴 좀 그런 게 티아고 모타를 미드필드 핵심으로 놓는 플랫 4-4-2를 통해 상당한 호성적을 거뒀으나, 보드진에서 모타를 겨울 이적시장에서 파리 생제르맹 FC에 팔아넘기면서 추락하기 시작했다.[4] 2013/14 시즌의 FC 바르셀로나루이 판 할 강점기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처럼, 준수한 선수들을 갖춰도 전술 잘 못 짜면 성공할 수 없다.[5] 1위 제이미 바디, 2위 리야드 마레즈, 3위 로멜루 루카쿠[6] 타팀은 유럽 대회와 FA컵을 치르는 주간인데, 유럽 대회는 해당 사항이 없고 FA컵은 이미 탈락했다.[7] 특히 라니에리 시절 멤버 중 유일하게 아직 첼시에 남아 있는 존 테리의 미소가 인상적이다.[8] 또 그리스 대표팀 감독 당시 성적이 매우 좋지 않았다.[9] 라니에리 부임 이전 팀은 리그에서 1승 6패를 기록하며 리그 최하위까지 내려왔다.[10] C1(3부 리그), C2(4부 리그) 팀만 참여했던 코파 이탈리아[11] League Managers Association (리그감독협회)[12] Hall of fame del calcio italiano[13] 참고로 2등급 대장군장을 수훈받은 축구인은 라니에리, 디노 조프, 로베르토 만치니 3명밖에 없다. 이탈리아의 2006 월드컵 우승을 이끈 마르첼로 리피조차 3등급 장교장을 수훈받는데 그쳤다.[14] 또한 조프는 현역 시절 이탈리아의 유로 1968 · 1982 월드컵 우승에 공헌하고 나서 은퇴한 후에야 2등급 대장군장을 수훈받은 것이고, 만치니는 2018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라는 참사를 겪은 이탈리아를 재건해 유로 2020 우승을 이끈 특수성이 감안되어 2등급 대장군장을 수훈받은 것이다. 그런데 라니에리는 레스터 시티의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이룬 것만으로 단번에 2등급 대장군장을 수훈받았다. 이탈리아에서도 레스터 시티로의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대업적으로 평가한다는 것.[15] 덕분에 아스날 FC 같이 스피드로는 만만치 않은 팀에 되려 털리기도 했다. 물론 아스날의 뒷공간은 좋은 먹이였지만.[16] 대부분 축구팬의 관심이 경이적인 골행진을 기록한 바디에 쏠렸지만, 상당수 축구 전문가들은 15-16 시즌 레스터의 핵심으로 캉테를 꼽았다. 캉테가 중원에서 버텨주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고 역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 유럽축구 전체를 돌아보면 바디와 비슷한 공격수들은 여럿 있지만, 은골로 캉테는 그야말로 유일무이한 유형이다.[17] 2015-16 시즌 레스터 시티 FC[18] 2012-13 시즌 AS 모나코[19] 1993-94 시즌 ACF 피오렌티나[20] 1988-89 시즌 칼리아리 칼초[21] 잉글랜드, 프랑스, 이탈리아[22] 2, 3부리그도 엄연히 프로 리그이다.[23] 챔피언스리그유로파리그 조추첨 및 토너먼트 대진 추첨을 진행하기 때문에 자주 볼 수 있는 분이다.[24] 하지만 이후 할릴호지치도 결국 알제리 팀 감독직을 거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