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18 13:49:40

조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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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 FC 아카데미 코치
조지프 존 콜 (Joseph John Cole)
생년월일 1981년 11월 8일
국적 파일:잉글랜드 국기.png 잉글랜드
출신지 런던 파딩턴
포지션 미드필더
프로입단 1998년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
소속팀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 (1998~2003)
첼시 FC (2003~2010)
리버풀 FC (2010~2013)
릴 OSC (임대) (2011~2012)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 (2013~2014)
아스톤 빌라 FC (2014~2016)
코번트리 시티 FC (임대) (2015~2016)
코번트리 시티 FC (2016)
탬파베이 라우디스 (2016~2018)
지도자 첼시 FC 아카데미 코치 (2019 ~)
국가대표 56경기 10골

1. 소개

잉글랜드의 미드필더.

화려한 테크닉과 날카로운 패스, 수비수를 농락하는 창조성과 돌파력을 지닌 선수지만 체력이 약하고 잔부상이 많다는 점이 최대의 단점으로 꼽힌다.[1][2]

결국 잦은 부상이 그의 커리어를 꼬이게 만든 셈이다. 데뷔 당시에는 무려 '뉴 개스코인' 소리를 들었던 초특급 유망주였기에, 물론 클럽에서나 대표팀에서나 상당한 족적을 남기긴 했지만 어마어마했던 기대치만큼의 실력을 보여 주지는 못한 편. 한 때 첼시에서 활약했던 에덴 아자르조 콜의 완성형이라고 보는 사람이 많다.[3]

2. 플레이 스타일

다소간 활약한 기간은 매우 짧지만, 전성기 기준 조 콜은 아자르와 유사한 선수이다. 드리블 & 패스, 결정력 등.. 크랙으로서 가질 수 있는 퀄리티를 모두 보유한 선수였다. [4] 05/06시즌 맨유를 상대로 그가 기록한 골은 조 콜의 장점을 극명히 보여주는 골이기도 하다.

다만, 그 꾸준함이나 연계에 있어서 아자르에 비할 선수는 전혀 아니다. 또한, 결정적으로 잔부상이 워낙 많았다. 이로 인해서, 커리어 하이시즌 이상의 퍼포먼스를 끝끝내 보여주지 못하였다.

3. 클럽

3.1.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에 프로로 데뷔하여 21살의 나이에 주장완장을 찰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으나 팀이 2부로 강등당하자 첼시로 이적한다.

3.2. 첼시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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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니에리 감독 시절에는 주전 경쟁에 밀려 자주 출장하지 못했는데, 첼시가 무리뉴 감독을 선임하고 돈다발(...)을 쏟아붓자 점차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이 때 무리뉴 감독에 의해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에서 측면으로 위치를 옮기는데, 이게 대박.

04/05, 05/06 시즌 첼시의 우승에 큰 역할을 하며 EPL 정상급 윙어로 올라서게 된다. 특히 05/06 시즌 맨유와의 경기에서 보여준 골은 그의 재능의 화룡정점. 그리고 첼시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의 왼쪽 윙 자리도 차지했다. 본래는 오른쪽을 선호하지만(오른발잡이이기에) 당시 데이비드 베컴이 부동의 오른쪽 자리를 고수하고 있던지라 콜은 왼쪽으로 자리를 옮겼다.[5][6] 2006 독일 월드컵 때 유명한 골 중 하나인 독수리 슛의 장본인.

그러나 06/07 시즌을 앞둔 미국투어에서 부상을 당하며 기나긴 부상의 역사를 쓰기 시작한다.(...) 부상의 정도가 심각했던 탓에 06/07시즌을 통째로 말아먹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7] 그러다 07/08시즌 극적으로 부활하여 04/05, 05/06의 기량, 아니 그이상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팬들을 사뭇 설레게 하였다.[8] 특히 30R 토트넘전에서의 보여준 경기력은 가히 신급. 시즌 종료 후에는 첼시 올해의 선수로 뽑혔다. 그리고 모사이트에서 실시한 설문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라이벌로 선정되기도 하였으나(...) 08/09시즌이 시작되자마자 또 부상을 입었다.(!) 시즌전에 A매치에서 2경기 3골을 넣었고 08/09시즌 개막전에서 팀의 시즌 첫골을 성공시키는 등 쾌조를 보였던터라 08/09시즌에도 활약이 기대되었지만 10R 정도 지나자 급하락세를 보이며 결국 시즌아웃(...) 시즌이 끝나고 인터뷰에서 조 콜은 개막전을 제외하고는 몸이 정상이 아니었다고 한다.(도대체 뭘 했길래)

그 후 부상-복귀-부상-복귀(...)를 반복하다 09/10시즌을 끝으로 자유계약으로 첼시를 떠났다. 이미 그 이전부터 이적루머는 무성했으나 조 콜의 팀에 대한 자부심과 충성이 대단했기에 루머로서 끝났으나 계속된 부상과 포지션 경쟁자 플로랑 말루다, 니콜라 아넬카 등이 주전자리를 확고히 함에 따라 결국 본인도 팀을 떠나기로 결심하였다.[9]

3.3. 리버풀 FC

리버풀팬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안필드에 화려하게 입성했으나 개막전에서 양발태클로 퇴장을 당하는 등 영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리버풀도 같이 망하고 있다

리버풀에서 부진한 모습을 계속 보이는 원인 중 하나는 그가 뛰고 싶어하는 자리에는 스티븐 제라드가 뛰고 있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로이 호지슨의 신임을 받았던 것 같지도 않고...

3.4. 릴 OSC (임대)

2011년 8월 31일, 여름 이적 시장을 통해서 전 년도 프랑스 리그 우승팀인 릴 OSC로 1년간 임대 이적을 한 것으로 확인되었고 9월 1일 입단식을 통해서 공식 확정되었다.(등번호 26번 배번) 주급 5적이 이렇게 떠나갔다.

여담으로 프랑스 리그를 뛰지만 영국의 집에서 출퇴근을 한다고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아무리 릴이 프랑스 최북단 지역에 있다지만 현실적으로 힘든 이야기인지 프랑스에서 살았다.[10] 릴에서 어느 정도 좋은 모습을 보였고 프랑스 생활에 만족한 듯. 특히 음식은 환상적이라고 인터뷰했다.영국 음식과 비교해서 어느나라 음식이 환상적이지 않겠냐만은

하지만 릴에서의 시즌이 끝나고 리버풀로 다시 복귀하였다. 그리고 첫 경기 교체 출전 뒤 다시 부상으로 교체당하면서 유리몸 기질 어디 안 간다는 것을 몸소 보여줬다.(...) 결국 주전 확보에 실패했다.

여담으로 릴에서 뛰던시절 당시여러 빅클럽들에게 구애받던 에덴 아자르에게 첼시행을 추천했다고 한다. 여러 클럽들의 오퍼에 갈팡질팡 하던 아자르에게 결정을 하는데 어느정도 도움을 준듯하다.오오 첼전드

3.5. 웨스트 햄

마침 고향팀 웨스트 햄의 샘 알라다이스 감독의 오퍼가 들어와 2013년 1월 이적시장을 통해 이적료 없이 친정팀으로 돌아갔다. 1년 6개월 계약으로, 등번호는 데뷔 당시 웨스트 햄에서 달았던 26번. 이변이 없는 한 웨스트 햄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할 것으로 보였다.

3.6. 아스톤 빌라 FC

그런데 2014년 2월 3일자로 시즌이 끝나고 MLS로 이동한다는 기사가 떴다. # MLS행은 루머로 끝났고, 2014년 6월 9일 아스톤 빌라 FC로 이적하였다. 아스톤 빌라에서는 백업 멤버로 14-15 시즌 13경기(리그 11경기)에 출장하였다.

2015년 10월 16일 3부리그의 코번트리 시티로 단기 임대되었다. 2016년 1월 8일 겨울 이적 시장에서 코벤트리 시티로 완전 이적되었다.

3.7. 코번트리 시티

35일짜리 긴급 임대였는데 프리킥으로 전성기 시절 못지않은 멋진 골을 기록하는 등 꽤나 괜찮은 활약을 보여주었고, 2016년 1월 3일까지 임대 기간이 연장되었다.

코번트리 시티가 그를 겨울 이적 시장에서 완전 영입하고 싶어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 결국 코벤트리 시티가 조 콜을 완전 영입했다. 계약 기간은 6개월이다.

3.8. 탬파베이 라우디스

5월 4일 MLS 2부리그격인 NASL리그의 템파베이 라우디스에서 2017년까지 1년 연장 옵션포함하여 이적하였다.#

2018년11월13일 은퇴를 선언했다.

4. 지도자 생활

4.1. 첼시 FC

2018년 12월 28일 조 콜은 첼시 아카데미 코치로 선임되었다.

5. 여담

첼시 시절에 당시 인기 글래머 스타였던 킬리 하젤의 방에서 잠들었다가 그녀의 남자친구에게 두들겨 맞은 사건을 겪은 바 있다.


[1] 무리뉴 시절 첼시는 아르연 로번-디디에 드록바-데미언 더프의 쓰리톱에 조 콜을 로테이션을 썼는데, 이중 로번과 더프는 유리몸이고 그나마 조 콜은 준유리몸이었다.[2] 몸이 어느 정도 유리몸인 것도 있지만 테크니션답지 않게 무리한 플레이를 자주 하는 편이다.[3] 두 선수 모두 스피드, 기술, 패스가 좋고 2선의 양쪽 측면과 중앙 모두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사하다. 차이점이라면 두 선수의 내구성.[4] 둘의 신체사이즈는 비슷한 편이기는 하다. 낮은 무게중심을 바탕으로, 볼을 키핑하면서 드리블을 하는데 능한 선수[5] 당시 잉글랜드 대표팀에는 마땅한 왼쪽 윙어가 없었던 면도 컸다. 조 콜은 원래 오른발잡이이지만 왼발도 상당히 잘 썼기 때문에 왼쪽에서 뛸 수 있었던 것이다.[6] 2000년대 후반부턴 주발과 반대되는 사이드에 위치하는 인버티드 윙어라는 개념이 낯설지 않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7] 리버풀과의 챔피언스리그 4강에 나와 결승골을 넣는 등 간간히 활약했지만 리그에서 한 골도 못 넣는 등 극도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8] 그전의 조콜은 드리블을 너무 남발한다던가 불필요한 묘기플레이가 많았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러나 07/08시즌에는 완벽히 팀에 녹아드는 팀플레이를 선보이며 한층 향상된 기량을 과시했다.[9] 이적 전 주급문제로 구단과 재계약을 못하다가 떠났다고는 하지만 사실 팀내 점차 좁아지는 자신의 입지가 이적의 결정적 원인이다.[10] 영국 동남부와 프랑스 북동부는 해저터널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거리가 가깝다면 배나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출퇴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