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4 02:29:17

키어런 다이어

키어런 다이어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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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의 前 축구선수
파일:NINTCHDBPICT000599884074.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키어런 다이어
Kieron Dyer
본명 키어런 코트니 다이어
Kieron Courtney Dyer
출생 1978년 12월 29일 ([age(1978-12-29)]세)
잉글랜드 서퍽 주 입스위치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
[[잉글랜드|]][[틀:국기|]][[틀:국기|]])
신체 173cm
직업 축구선수 (미드필더 / 은퇴)
소속 선수 입스위치 타운 FC (1995~1996 / 유스)
입스위치 타운 FC (1996~1999)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1999~2007)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2007~2011)
입스위치 타운 FC (2011 / 임대)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2011~2013)
미들즈브러 FC (2013)
국가대표 33경기 (잉글랜드 / 1999~2007)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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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의 前 축구 선수.

2. 클럽 경력

입스위치 타운의 로컬 보이 출신으로 17살의 나이에 팀에 입단하여 빠르게 퍼스트 팀 멤버로 자리잡았다. 그는 잉글랜드 내에서 최고의 유망주로 이름을 날렸으며,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입스위치에서 3시즌 동안 활약 후 1999년 플레이오프 끝에 프리미어리그 승격이 좌절되자 이적을 결심한다.

1999년 7월, 다이어는 뉴캐슬 유나이티드로 700만 파운드의 이적료에 입단한다. 이는 후에 코너 위컴이 입스위치에서 선덜랜드로 이적하기 전까지 구단 최고 수입의 이적료였다.

자국 최고의 재능인만큼 많은 기대를 안고 입단하며 바비 롭슨 감독 휘하에 중용받아 번뜩이는 퍼포먼스를 여러차례 보여주었지만, 데뷔 초 때부터 말썽이었던 멘탈이 문제를 일으켰다. 실제로 2003-04 시즌에는 라이트 윙으로 기용하길 원했던 롭슨과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기를 원했던 다이어와 서로 마찰이 일어났다. 이에 팬들도 반발하며 그의 행동을 비판했고, 심지어 팀에서 쫒겨날 뻔하기도 했지만 그가 꼬리를 내리면서 일단락이 되기도 했다.

다이어는 뉴캐슬 내에서 핵심 선수였지만 잦은 부상과 동료 선수와의 충돌 등으로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한 채 2006-07 시즌을 끝으로 팀을 떠난다.

이후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에 합류했지만 몹쓸 유리몸 기질로 인해 4시즌간 35경기 출전이 전부였다. 심지어 고액 주급자였던 다이어는 클럽과 팬들에게 눈에 골칫덩이였으며, 2011년 3월 11일에 친정팀 입스위치로 단기 임대를 떠났으나 최고의 재능을 가진 다이어는 이미 잦은 부상으로 망가진 뒤였고 별 다른 활약없이 쓸쓸히 원소속팀으로 복귀했다.

2010-11 시즌 종료 후 승격팀 QPR과 1년 계약을 채결했다. 그리고 8월 11일 볼턴과의 개막전을 통해 첫 선을 보였으나 필드를 밟은지 3분만에 또 다시 부상을 당하고 만다. 결국 이 경기가 시즌 첫 경기이자 마지막 경기였고 또 다시 기나긴 재활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팀은 다음 시즌에도 그를 안고 갔지만 전반기동안 7경기 1골에 그치며 믿음을 제대로 저버렸다. 그래도 이전보다 조금 더 출전하기는 했다. 결국 이듬해 1월, 팀에서 방출되었고, 겨울 이적시장 마감을 앞두고 미들즈브러에 입단했다.

보로에서는 9경기에 나서 2골을 기록하고 시즌을 마친 뒤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현재는 입스위치의 아카데미 코치로 재임 중이다.

3. 국가대표 경력

당대 자국 최고의 재능으로 불려왔던 만큼 각 연령대 대표팀을 두루 거쳐왔다. 1999년 9월 4일에 룩셈부르크를 상대로 A대표팀 데뷔전을 치렀고 팀은 6:0으로 승리했다.

이후 팀은 UEFA 유로 2000 본선에 진출했고 다이어도 최종 엔트리에 승선할 것으로 점쳤으나 경기 외적으로 말썽을 일으키는 악동을 케빈 키건 감독은 질색해했고 그를 외면했다.

다이어는 신임 감독 에릭손의 아래에서 단 45분만 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2002 FIFA 월드컵 최종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선수단이 발표된 지 이틀 후, 그는 사우스햄튼과의 리그 전에서 엘 칼레이의 태클에 무릎 인대 부상을 입으며 또 다시 국제 메이저대회 참가가 좌절되는 듯 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개막 이전에 회복하여 생애 첫 월드컵 무대에 참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본선에서 3번의 교체 출전을 했다.

그는 유로 2004 지역 예선에서도 몇 차례 활약하며 본선 진출에 힘을 보탰고 이듬해 본선에 참가하는 23인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본선 무대에서는 2차전 스위스과의 경기에서 루니 대신 교체 투입되어 7분만을 소화한 것이 유일했다.

이후에는 잦은 부상으로 대표팀에 얼굴을 비추는 일이 줄어들었고 2007년을 끝으로 대표팀 커리어를 마감하고 말았다.

4. 여담